'창조과학'의 '창조론'에는 없는 여성과 성 소수자들의 권리


 



김나미

(미국 Spelman College 교수, 종교학)




     [창조과학 세미나] 강의가 한국의 한 명문 사립대학교에서 2015년 2학기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설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창조과학회 (이하 창조과학회)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진 담당교수는 수업 계획서에서 “기독교인 과학자로서 성경의 내용 중 과학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보는 수업을 할 것”이고, “종의 기원, 노아의 홍수, 창조와 진화, 성경과 과학, 우주의 창조 및 진화론 등을 주제로 강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이 나간 직후 여러 가지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 명문대에서 ‘창조과학 세미나’ 개설을 둘러싼 소란은 미국에서 종교학을 가르치는 나에게 흥미로운 뉴스로 다가왔다. “내가 만약 창조와 관련된 주제들을 가지고 강의를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분명한 것은 수업의 목적, 그리고 이 주제들에 대한 접근 방법에 있어서 나는 [창조과학 세미나] 와는 다른 동기와 방법을 가지고 그 강의를 바라볼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위의 주제들과 관련된 성경의 내용은 과학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의 과학적 증거들을 드러내는 것을 추구해 온 창조과학회에서 말하는 ‘창조’는 물론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이다 (참고로 창세기에는 두가지 창조설화가 있다). 창조과학회는 몇 명의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1980년 서울에서 열린 “80 전세계 복음화 십자군” 대회에서 주최한 ”창조냐, 진화냐?”라는 세미나에 참석한 후에 1981년에 설립한 단체이다. 그 세미나는 현대 창조과학의 아버지로 알려졌고 창조연구기관(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의 공동 설립자인 헨리 모리스와 그의 동역자들이 진행했다. 창조과학회의 비젼과 선교는 성서무오설을 믿는 근본주의 기독교의 입장을 반영한다. 창조과학회는 열방의 구원, 창조신앙의 회복, 교육개혁과 창조과학관 정립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 무엇보다 진화론을 과학적 허구성을 지닌 복음전파의 커다란 장애물로 여기는 반면에, 성서무오설, 즉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적 이해를 바탕으로 창조를 바라보는 관점을 가장 과학적인 이론이라 주장한다.  

    ‘창조론’ 대 ‘진화론’ 논쟁이 교육현장에서 논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이하 교진추)가 말과 시조새의 진화 과정이 상상의 산물이라며 정부에 낸 교과서 내용 삭제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이를 2012년 6월 12일에 과학전문학술지 '네이처(Nature)'가 기사로 내보냈다. 기술강국, 인터넷 대국인 한국에서 벌어진 ‘믿거나 말거나’ 한 일이라며 자기네들끼리 뒤에서 키득거렸을 것을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진다. 창조과학회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알려졌고, ‘반진화론’ 학술 단체로 스스로 규정을 내리는 교진추의 궁극적 목표는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삭제하고 진화론의 부정적인 영향들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과학이란 이름으로 창조과학회가 한국 사회에 이런 식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이 우려되지만, 사실 나는 창조론이 ‘진짜’ 과학에 의해 어떻게 효과적으로 반론되어 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논의과정에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설화’를 과학의 언어로 얘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창조설화’ (creation narrative) 를 포함해서 스무가지가 넘는 다양한 ‘창조설화'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어디서 왔고, 어떻게 번식을 하고, 하늘과, 땅과, 동식물 및 자연의 현상들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각각의 설화들이 생겨난 지역에서 쓰였던 다양한 표기형식과 언어를 통해서 설명하고 표현해 낸 상징적인 이야기들이다.  

    각자가 지닌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 종교에서 말하는 ‘창조설화’는 진실된 이야기이다. ‘진실되다’는 것은 그 이야기가 과학실험을 통해서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길을 제시해 주는 ‘살아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성서의 내용을 진리로 믿는 기독교인들이 그 내용이 진리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그 내용을 과학적으로 검사하여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내용이 의미하는 바를 삶에서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통해서 그 진리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즉, 검증을 통해서가 아니라 고백과 실천을 통해서 진리를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창조론과 관련해서 진화론이 더 정확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논의를 하는 데도 별로 관심이 없다. 이것은 진화론을 포함한 모든 과학 이론들이 지속적인 검증을 받아야 함을 의미하고, 소위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고 알려진 이론들 또한 특정한 역사적 상황과 관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추구할 때 역사적 패러다임 전환이 어떻게 당대의 ‘객관적 진리’라고 불리는 것들과 조응하는지에 대해 주목해야한다. 19세기 말의 다윈주의에 영향을 받은 사회적 다윈주의가 어떻게 인종주의, 제국주의를 뒷받침했는지는 그저 하나의 간접적인 예일 것이다. 

    ‘창조과학’의 문제는 문자주의적 성서해석과 그 해석에 근거한 신학에서 보여지는 집요한 반지성주의와 여성차별 및 성소수자 차별의 요소들이다.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본주의 기독교의 초석인 성서무오설과 성서의 문자주의적 해석에 바탕을 둔 신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근본주의’[각주:1]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성서의 무오를 믿는 일반적인 복음주의적 신앙”을 옹호하는 신학은 19세기 중반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각주:2] 그런 신학은 19세기 성서의 권위를 둘러싼 논쟁 중에 만들어 졌고, 천년왕국설 운동과 함께 근본주의 기독교의 특징이 되었다. 근본주의 기독교의 토대가 되는 성서의 문자주의적 해석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고, 그런 해석은 일관성 없이 선택적으로 적용되어져 왔다. 이런 성서무오설은 19세기 말부터 미국의 백인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으로 전파되었고, 이들에 의해 문자주의적 해석만이 성서를 올바르게 읽는 방법이라는 통념이 한국교회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성서무오설은 19세기 중.후반 미국내 여성의 역할에 대한 성서적 입장과 관련해서 일어난 광범위하고 심각한 논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각주:3]근본주의 기독교에서는 무엇보다도 가정과 사회에서 질서를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여기서 질서는 다름 아닌 창조질서를 말하는 것이고,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은 창조 질서 안에 내재된 것으로 믿었다.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만들어 졌다는 것을 성서적 진리로 받아들였고, 이브의 종속은 물론 더 나아가 여성들의 ‘다른’ (사실은 불평등한) 지위가 하느님의 원래 창조질서안에 있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근본주의 기독교는 그저 추상적인 무질서나 사회의 혼란이 아니라, 젠더 (성)와 관련한 “무질서 또는 혼란의 가능성”[각주:4] 에 대해 염려를 한 것이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가정 예찬/숭배’ (the Cult of Domesticity) –‘여자들에게 어울리는 곳은 남편을 섬기고 자녀들을 양육하는 사적인 공간이다’– 에 근거한 젠더화된 신학을 미국의 기독교 우파가 이어 받게 된다.[각주:5] 근본주의 기독교의 맥을 잇는 미국의 기독교 우파가 받아들인 젠더화된 신학 체계에서 여자들은 우선적으로 자신들의 가정과 하느님의 관계를 책임져야 하는 반면, 남자들은 하느님 아버지와 역사적으로 남성이었던 그리스도를 대표한다.[각주:6] 다시말해서, 젠더화된 신학은 위계질서적인 젠더체계와 이성애 가정만을 정상적인 것으로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젠더 (남성과 아버지로) 에 관한 태도 역시 미리 규정짓고 있는 것이다.[각주:7] 

    이렇듯, 성서의 문자주의적 해석과 그것에 근거한 신학이 여성들과 성소수자들에게 해로운 것임은 자명하다. 그것이 여성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여성은 가정의 우두머리 –아버지든 남편이든– 에게 속하고 복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의 종속은 창조질서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하느님이 창조한 첫번째 인간이고, 여자는 남자로 부터, 남자를 위한 조력자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물론 창조과학을 따르거나 문자주의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정말 한 명의 여자가 감히 하느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먹은 뒤 모든 인간 후손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하느님이 만든 ‘보기 좋은’ 세상을 ‘죄가 가득한’ 세상으로 완전히 뒤집어 엎어 놓을 만큼 ‘강했다’라고 해석하지는 않을 것이다.  

    성소수자들에게 문자주의적 해석은 딱 두가지 선택을 주고 있다 – 죄인으로서 영원한 정죄를 받던가 아니면 ‘자연스러운’ 젠더이원론과 이성애규범주의에 완전히 순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자주의해석을 통해서 설명되는 창조질서에는 성소수자들을 위한 곳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든 창조과학을 믿고 가르친다는 것은 아담과 이브의 ‘혈액형’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려는 것만이 아니다. 여자의 역할은 (남성)배우자를 돕는 것이고, 성은 출산과 관련해서만 가치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립적이고, 남성과 동등하게 취급받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나, 성을 다향한 형태로 표현하거나 관계를 맺는 것은 모두 창조질서에 반하는 ‘무질서’를 조장하는 것이 된다. 아무리 ‘과학적’인 것으로 잘 포장된다고 하더라도 창조과학은 창조질서로 여겨지는 이성애 가부장제의 구조와 권력을 강화시킬 뿐이다. 교육에 있어서 비판적 사고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창조과학이 ‘과학적 검증’의 한 방식으로 교육 제도속으로 슬며시 들어오는 것과, 여성들과 성소수자들의 권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글의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내가 만약 이런 주제들을 가지고 한 학기를 진행한다면, 한국 명문대에 개설된 [창조과학 세미나]와 어떻게 다를 것인가? 나는 우선 여러종류의 ‘창조설화’들을 비교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안에 나타난 인간관계, 젠더형성과정, 삶과 질병과 죽음의 이해, 사회의 금기사항들, 인간과 자연의 관계 등이 각각의 종교와 문화권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의미를 달리하는지를 밝힐 것이다. 그리고 나서 최종적으로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것 같다. 최근 관심을 많이 받는 ‘종교와 과학’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해도 대학교 1학년생들에게 필요한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게 하는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할 주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무엇을 왜, 어떤 교육철학과 목적으로, 그리고 어떻게 가르치는냐 일 것이다. 감동을 주는 소설이나 은유 가득한 시를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듯이, 다양한 창조설화들도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창조설화를 다양한 이론과 방법을 통해 해석해 내고 설화의 의미들이 사람들의 삶에 미쳐온 영향 (긍정적, 부정적인 것 모두 포함해서)들에 대해 토론을 하고, 거기에서 좀 더 나아가 현재의 내 삶과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와 연관지어 생각하면서 더 많은 질문들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이라면 해 볼 만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수업의 목적이 한 종교의 한가지 교리만을 ‘진리’로 가르치려는 ‘교화’ (indoctrination) 또는 ‘주입’이라면 교육의 장에 들어설 수 없고 그래서도 않된다는 것이다. 왜냐면 대학을 비롯한 학교들은 ‘교화 공장’ (indoctrination mill)이 아니기 때문이다. 


ⓒ 웹진 <제3시대>




  1. “근본” (fundamentals) 이란 단어는 1910년 미국에서 출간된 The Fundamentals 의 제 일권에 처음 표기 됬고, “근보주의자들”이라는 용어는 커티스 리 러즈 (Curtis Lee Laws)가 1920년에 처음으로 썼다. See Ernest R. Sandeen, The Roots of Fundamentalism: British & American Millenarianism, 1800-1930 (Chicago,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0). [본문으로]
  2. Ibid., 106. [본문으로]
  3. Margaret Lamberts Bendroth, Fundamentalism and Gender: 1875 to the Present (New Haven,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93), 34. [본문으로]
  4. Ibid., 113. [본문으로]
  5. Kathy Rudy, Sex and the Church: Gender, Homosexuality, and the Transformation of Christian Ethics (Boston, Mass: Beacon Press, 1997), 26. [본문으로]
  6. Ibid., 39. [본문으로]
  7. Ibid., 3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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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주례를 마치고

임보라
(향린교회 부목사)

1994년 함박눈이 내리던 3월24일 결혼을 했다.
내가 태어난 날도 하염없이 함박눈이 내리더니, 결혼하는 날에도 함박눈이 내린다고 '복이 많아서 그래' 하면서, 집안 어르신들이 덕담을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월이 지날수록 결혼을 결정한 이후의 과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누가 떠밀어서 한 결혼이 아니었건만,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겠다고 집안에 공표를 한 이후, 결혼은 당사자들의 몫이기보다는, 양가 부모님의 몫이 되었다. 
결혼예식을 할 장소 선정부터, 예단, 예물, 신접살림 마련 등, 학생이었던 두 사람은 이것저것 스스로 준비하고 마련할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 경우 맏딸인지라, 집안의 첫 경사인 만큼, 내 중심이 아닌 부모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노래운동을 한다고 이곳저곳 지방 공연을 다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결혼을 누가 하는 거냐? 네 살림인데 관심 좀 가져라’라는 말씀을 부모님으로부터 들어야 했다.
거기에 덧붙여 그때 내가 얼마나 주체적이었으며, 또한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해 두 사람이 고민하며 토론했던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쉬울 수밖에....

2008년 가을, 내 평생 처음으로 “주례”라는 것을 부탁받았다.
목사가 된 이후, 장례를 비롯해서, 경조사를 집례할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결혼주례’ 만큼은 난생 처음인 나로서는 그 부탁이 생소하기도 하고, 버겁게 다가왔다.
게다가 난 부목사가 아닌가. 담임목사님이 자리를 비우신 것도 아닌데, 내가 교회 청년들의 주례를 선다는 것 역시 한켠 부담스러웠다.
이 부담스러움을 담임목사님과 나누니 ‘주례라는 것은 결혼하는 당사자들이 의미를 갖고 부탁을 한 것인 만큼, 내 목회의 일부로 여기세요.’라는 격려 담긴 답변이 돌아왔다.

언젠가는 주례를 해야겠지만, 나이도 아직 어린 것 같고, 또 여전히 여성 주례자가 희귀한 한국사회이기에 두 커플에게도 ‘부모님과도 상의했냐고?’ 몇 번씩이나 확인했다.
사실 부모님들은 결혼식 당일에서야 만나게 되는데, 예복가운을 입기 전, 인사를 드리면 아버님들의 경우, 매우 어색해 하고 당황스러워 하시는 모습을 대하게 된다. 하객들 역시도 준비를 위해 앞에서 왔다갔다하는 나를 향해, 다양한 느낌이 담긴 시선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수없이 보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여성, 그리고 여성목회자, 혹은 여성 주례자에게 갖는 좋게 말해 신선함, 사실은 생경함과 편견이 아직은 이 사회 가운데 여전히 남아 있음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결혼주례도 그렇지만 장례집례는 때로는 더 깊은 편견이 드러나기도 한다. 내 스스로는 일정 정도 극복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인생주기 중, 결혼, 장례 등을 여성이 집례하는 것에 대해 터부시하는 관행이 사라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 것인지....          
    
이혼율이 높다고 호들갑을 떨면서도, 정작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제대로 묻지 않는 사회가 한국사회이다. 그저 겉으로만 보이는 현상에 대한 의례적인 진단을 내릴 뿐.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여성인권운동을 하고, 운동이 아니더라도 한국사회 내에 뿌리박혀있는 가부장제와 유교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그 뿌리 깊음을 확인해야만 하고, 거기에 박제화된 기독교의 교리까지 동원되어 고정된 여남의 역할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장소가 다름 아닌, 결혼식 때였다는 고백을 자주 듣곤 한다.
인구가 줄어가고 있으니 자식 많이 낳아라 신신당부하고-심지어 적어도 4명은 낳아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도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여성의 마땅한 의무라고-, 결혼하는 당사자들의 성장과 만남의 과정은 쏙 빠진 채, 학력과 경력만을 나열하는 것에는, 나부터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이 식상할 뿐 아니라, 때로는 분노를 느낄 때도 있었을 것이다. 의례적인 주례는 차라리 없는 것이 좋겠다하여, 주례가 없는 결혼식도 많아지고 있다는데(한겨레 21, 727호) 여성의 눈으로 모든 것을 다시 보자고 부르짖고 있는 나는 과연 어떻게 이 숙제를 풀 수 있을 것인지, 정말 많은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결혼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니, 제일 많이 등장하는 것이 ‘결혼 후 재테크’관련이어서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결혼의 의미가 두 사람의 재테크에 있다니, 아무리 물질 중심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라지만, 해도 너무한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풀어내는 책자들도 대부분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사실 앞뒤를 읽어보면 그 부분만 떼어낼 것이 아닌데 말이다-이라는 것이 주된 줄거리인 경우가 많았다.   

결혼 주례 어떻게 준비하나? 라는 책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 전후를 되돌아보면서, 내가 아쉽게 생각했던 것들을 메모하는 것에서부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왜 하려는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결혼제도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두사람이 어떻게 다른지, 혹은 어떤 면이 같은지에 대한 테스트, 연애 시작의 과정, 연애 과정 중의 위기와 극복, 어린 시절의 이야기, 가족, 친구들에 대한 기억들, 신앙관, 결혼 후 닥칠 일상에 대한 점검 등등 두 사람이 미리 나누면 나눌수록 좋을 이야기 거리들과 함께, 두 사람의 특별한 날인 결혼예식을 그저 그런 순서로 진행할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은 물론 함께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축제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당사자들과 의논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갖기로 했다.

내 생애 첫 주례는 지영이와 상연이의 결혼식이었다.
독일 유학 중인 상연이가 한국에 있는 동안 결혼식을 올려야 했기에, 너무도 짧은 시간 모든 것이 결정되고 준비되었다.
오랜 기간, 연애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된 이 두 사람과는 네 차례의 만남 시간 밖에 갖지 못했지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진지하게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그 가운데 한번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또 다른 커플, 영은이와 훈호와 함께 네 사람이 모여, 연애 이야기와 결혼 후, 일상에서 부딪힐 수 있는 여러 주제들을 놓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있었는데, 유쾌하면서도, 솔직담백했던 이야기들이 오고간 시간이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다.

지영이와 상연이의 결혼식은, 첫 경험이었기도 했거니와, 검찰청에 있는 강당에서 진행되다 보니, 그 주변 분위기로 인해 더 긴장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시간가량 진행된 긴 예식 내내 대부분의 하객들이 자리를 지켜주어 참 감사했다.
시종 여유있는 웃음을 잃지 않았던 지영이의 모습, 반면 긴장하여 지영 손도 잡지 않고 혼자 휙~하니 가버렸던 상연이의 모습이 생각난다. 뒤에서 얼마나 터지려는 웃음을 참았는지... 

영은이와 훈호는 결혼 준비기간이 여유가 있던 편이라, 만남의 횟수가 7번에 이르게 되었다. 여성인권 활동과 공부모임을 통해서도 평소 자주 속 얘기들과 생각들을 나눌 기회가 있어 왔지만, ‘결혼’이라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여러 차례 나누다보니, 어린 시절 상처가 되었던 기억을 나누는 더 깊은 단계로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영은이를 봤을 때부터 결혼 생각이 들었다는 훈호는 결혼식 시작 때부터 울고 싶었다더니, 결국 축복기도 할 때 쯤 눈물을 터트려 그 모습 지켜보던 나까지 울컥하게 했다.


두 커플과의 나눔 속에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삶에서 서로를 보듬어 가야하는지, 두 사람을 둘러싼 세상과 이웃 그리고 하느님과 어떻게 소통해 나가야 할런지의 문제는 비단 결혼을 준비하는 두 사람 뿐 만 아니라, 주례를 맡은 내 자신도 끊임없이 되짚어보아야 할 과제이니 말이다.

결혼식은 끝났지만, 우리에게 펼쳐질 시간이 더 많기에, 함께 나누고, 서약한 것들을 얼마나 진지하게 삶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몇시간이고 마주 앉아 함께 나눌,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가 더 많다.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가 꿈꾸며 일구어 가고자 하는 하느님 나라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나눔으로 또 나눈 바대로 살아내려는 우리의 삶 속에, 그리고 그것을 나누는 우리의 나눔 속에 이미 와 있다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 웹진 <제3시대>

* 향린교회 http://www.hyangli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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