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든어택2> 서비스 종료에 부치는 글



(평범한 워킹맘, 페미니스트, 간간이 글쟁이로 변신)


1.


    먼 옛날의 이야기부터 꺼낸다. 어린 시절 나는 게임 마니아였다. 누군가 게임이란 뭐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지금의 나를 만든, 어두운 십대 시절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유일한 친구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 심한 왕따를 겪었다. 하루하루가 우울하고 고통스러웠던 내게 게임은 단지 가상의 것이 아니라, 내 존재를 긍정해주는 유일무이한 세계이자, 나의 접속을 받아주는 단 하나의 네트워크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모든 게임이 좋았다. 후에는 온라인에 빠졌지만 초창기에는 오프라인 게임에 매료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소년 만화 잡지 <챔프>를 사면 게임 시디를 무료로 증정했는데, 나와 친오빠는 그 시디들을 소중하게 모으곤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플레이했던 건 <메타녀2> 였다. <메타녀2>는 메타토폴리지 대학 부속 여자 고등학교가 배경인 여고생들의 전투 RPG 게임이다. 주된 스토리 라인은 고등학교 내 동아리 전쟁이다. 동아리 간의 균형을 깨고 생물부가 반란을 일으키고, 생물부의 사주로 천문부 역시 네오 천문부와 오리지널 천문부로 쪼개진다. 주인공들은 오리지널 천문부의 일원들로 학생회 등과 힘을 합쳐 메타여고의 정의를 다시 세우려고 한다.  


   <메타녀2>의 캐릭터들은 모두 여자이다. 등장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일본 특유의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있지만 모두 제각기의 설정에 맞게 갑옷이나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 바이오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생물부 일원은 대개 실험 가운을 입고 있고, 수영부는 수영복(비키니가 아니라 학생들의 원피스 수영복) 차림 위에 길다란 가디건을 걸쳤다. 비행부는 전형적인 파일럿 차림이다. 그외 마술부, 학생회, 천문부 모두 각자 부서의 특성에 맞게 제복을 차려입고 있다.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등장인물들의 코스튬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는다.


    게임에는 ‘메타여고'라는 제목을 상기시키지 않으면 헷갈릴 정도로 중성적인 캐릭터가 다수 등장한다. 짧은 숏컷에 강력한 공격력, 화끈한 성격을 갖춘 사토 노리코(노유리)는 대사마저 걸걸한 말투로 번역되었다. 듬직한 궁수로 등장하는 야마다 타쿠미(하유미)는 긴 생머리를 갖고 있지만, 특유의 근엄한 표정과 정제된 말투로 그녀가 여고생 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꼬마 유치원생 같은 캐릭터도 있지만 군인 그 자체 같은 캐릭터도 있다. 게임은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매력을 깊게 살려 그에 맞는 스킬과 대사, 에피소드들을 균형 있게 할당한다. 


   그러나 <메타녀2>의 인기는 사실 대단하지 않았다. 그때 정말 유행했던 건 <프린세스 메이커2>였다. 사람들 모두 너나할 것 없이 딸을 교육시키고, 아르바이트에 보내고, 무사수행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나도 <프린세스 메이커2>를 재미있게 했었는데 몇 번 C급 엔딩을 보고나선 그만 지쳐버리곤 했다. 그때가 되어 찾는 건 치트 프로그램이었다. 돈 액수를 늘리거나 매력, 기품 지수를 조정하여 왕자를 만나고 결국 ‘프린세스' 엔딩을 맞이하고 난 이후로는 딸의 미래에 별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치트 프로그램을 만지다가 우연히 딸이 완전히 속옷 바람으로 벗겨지는 치트가 발동되었다. 깜짝 놀랐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딸을 벗겨 놓은 채, 혹은 노출도가 굉장히 심한 레어 코스튬을 입혀 놓은 채로 플레이하고 있었다. 반복되는 패턴과 단일한 스토리 라인을 ‘보완’하는 의미로 게임은 코스튬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프린세스 메이커2>가 전체 이용가였던 반면 <메타녀2>가 19세 이상 이용가였다는 사실이다. <메타녀2>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전쟁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혼세하디 혼세한 난을 진압하고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데서 더 없이 ‘교훈적'인데다가, 캐릭터들이 겪는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이 첨예하게 표현되어 시나리오가 굉장히 문학적인데도 불구하고 슬립 수준의 코스튬이 난무한 <프린세스 메이커2>보다 더 유해하다는 판정을 받았던 것이다. 십 년도 더 된 이야기다. 


2.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갈 즈음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고, 뒤이어 내 인생 게임인 <바람의 나라>가 나왔다. <바람의 나라>가 단일 서버였을 때부터 열성 유저였던 나는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어둠의 전설>, <라그나로크>, <퀴즈퀴즈> 등 온라인 게임 세계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대개 2D의 귀여운 캐릭터들이 아장아장 걷는 그래픽이었다. 노출도가 심할래야 심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긴 했지만 그때도 레어템은 대개 여캐의 코스튬인 경우가 많았다. 레어가 아닐 지라도 게임 내 코스튬 비중은 여캐의 것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고렙 템이거나 레어템일 수록 전투에 불편할 기다란 드레스나 원피스 종류가 많았다. 지금 <서든어택2>에서 문제되었던 것처럼 속옷 수준의 코스튬은 아닐지라도 직업적 특수성을 살린 남캐의 장비에 비해 여캐의 것은 언제나 게임 밖, 게이머가 살고 있는 세계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졌다.


    사실 게임을 신나게 플레이하고 있던 그때는 그 내용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다만 내가 즐겨 플레이했던 <메타녀2>와 무언가 다르다는 위화감 정도만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메타녀2>의 캐릭터는 확실히 <서든어택2>와 달랐다. 특정한 맥락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메타녀2>의 캐릭터들은 구태여 여성스럽지 않아도 저마다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건 <메타녀2>가 유달리 여자 캐릭터들의 매력을 다중적으로 잘 살려냈다기보다는, 게임 자체의 퀄리티가 탄탄할 때 풍부한 컨텍스트 속에서 캐릭터가 저마다의 매력을 갖추게 되는 편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웹툰 <게임회사 여직원들>에 보면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한국 게임 업계에는 이런 말이 있죠. 재밌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은 돈이 없고, 돈이 있는 사람은 돈 버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재밌는 게임을 만드는 건 판타지다.”[각주:1] ‘돈 버는 게임’은 어떤 걸까. 모르긴 몰라도 <서든어택2>는 ‘돈 버는 방식’을 전적으로 잘못 이해한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서든어택2>에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들은 ‘서든어택’의 세계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짧디 짧은 바지, 출렁거리는 가슴, 한없이 음란스러운 여캐 시체들은 오히려 포르노의 세계에 가까운 것이다. 게임의 세계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있는 이 캐릭터들은 오로지 선정성만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초창기 플레이하던 유저들도 대부분 ‘총을 쏘아 맞추는’ 희열이 아니라 ‘야릇한 시체를 구경하는’ 재미로 게임을 한다는 이야기가 돌 지경이었다. 


   <서든어택2>의 실패는 말초 신경의 패배다. <서든어택2> 개발팀은 게이머를 이끄는 것이 자극과 선정성이라고 여겼던 모양이지만, 그건 게임 업계가 여태 제도적으로 부당하게 제한되어 온 그 시각들과 바로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서든어택2> 개발팀은 게임을 폄하하고 무시하는 입장을 <서든어택2> 안에 완전히 내재화한 것이다. 반면 충실히 FPS의 세계를 구현하고, 그 세계관 속에서 저마다의 매력을 갖춘 캐릭터들을 적절하게 배치한 <오버워치>는 대 성공을 거뒀다. 게이머들은 여기에 정확하게 응답하고 있었다. 


3. 


   ‘프린세스 메이커’의 시대는 끝났다. 더 이상 누구도 - 디즈니조차도 ‘공주’를 만들기 위해 매달리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서든어택2>에서 본 바와 같이, 여성혐오는 (정당하지 않지만) 효과적이지도 않다. 여성의 코스튬으로 승부하고 여자 캐릭터를 언제나 반쯤 포르노의 세계 속에 위치시켰던 모든 게임들은 기획을 다시 짜야 할 것이다. 게임이 게이머를 위해 있을 지언정 캐릭터는 게이머를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캐릭터는 게임의 세계관 속에 그대로 녹아 들어 있어야 비로소 생명력을 얻게 된다. 


   <서든어택2>는 이 사실을 완전히 잊었거나, 무시하고 있었다. 게임의 세계관과 무관하게 창조된 캐릭터들은 방황하다가 끝내 그들의 탄생지를 ‘강남역 10번 출구’로 택하고야 말았다.[각주:2] 지금 우리 사회의 전 이슈가 몰려 있는 곳, 그리고 그 장소 자체로 ‘여성혐오’를 뜻하게 된 ‘강남역’ 말이다. 이윽고 <서든어택2>는 ‘여성혐오 게임’으로 회자되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단순히 우연으로 엮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본업이 개발자인 나는 얼마 전 모 게임 회사에서 이직 면접을 본 적이 있었다. 임원 면접에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말이 있냐길래, “게임으로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라고 물었더니 한 면접관이 이렇게 답했다. “게임으로 사람들이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하고 싶다.”라고. 아마 그건 그 사람 개인만의 답변이 아니라, (비록 형식적인 것일 지언정) 게임 업계에 종사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꿈일 것이다.


   이제 다시 그 말을 게임업계에 되돌려주고 싶다. 포르노와 여성혐오, 여성 멸시와 차별은 이미 현실 세계에서 염증이 나도록 널려 있다. <서든어택2>은 단지 이러한 여성 혐오의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았을 뿐이어서, 게이머는 게임을 통해 ‘다른 세계’를 엿볼 수조차 없었다. 게임이 스스로 웜홀의 기능을 포기한다면, 게이머가 굳이 그 세계에 접속할 필요가 있을까. 다시 게임이 ‘다른 세계'를 회복할 수 있기를, 그리고 2016년 7월 29일[각주:3]을 기점으로 ‘돈 되는 게임'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웹진 <제3시대>

  1. 다음 <만화속 세상> 연재 작 <게임회사 여직원들> 85화 중 [본문으로]
  2. <서든어택2>의 홍보 티저 영상 배경이다 [본문으로]
  3. <서든어택2> 개발사인 넥슨 지티가 <서든어택2> 서비스 종료를 고시한 날짜다. (서비스 종료 예정일은 2016년 9월 29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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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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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준석
    2016.08.08 09: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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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궁금했는데 쓰시는 필명은 무슨 뜻인가요?
    • 2016.08.11 06:1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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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사실 별 뜻은 없습니다.ㅎ 필명을 굳이 쓰는 이류는 본명에 컴플렉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 본명에 "경"이 들어가 있어서 보통 "갱" 으로 많이 불렸어요.^^ (경민 >> 갱민 식으로요 ㅎㅎ )
  2. 2016.08.11 10:1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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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당신의 장점이 뭔지 아시나요/
    남자들은 물이 많은 여성을 좋아합니다
    당신이 전형적인 수,,여성입니다
    다만, 지금 그것을 발견못한것 같은데
    한번 도전해볼래요



더불어 존엄한 삶



신윤주



   창문을 열면 인왕산 자락이 빼꼼히 보이는 집에서 결혼하고 네 해를 살았다. 바다는커녕 개울가로도 둘리지 않은 한 동짜리 아파트였지만 건축할 당시의 유행을 따랐는지 유난히 벽이 희었고 한쪽에는 등대를 닮은 파이프가 기둥처럼 솟아 있었기에, 하늘이 파랗게 맑은 날이면 나는 사진으로만 봤던 산토리니의 풍경 속에 들어있기라도 하듯 황홀해했다. 그리고 언제나 계절은 안방과 거실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널찍한 창 너머에서 바람과 풍경과 소리를 실어 날라주었다.    

   그 널찍한 창 너머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건 이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어느 날 정오 무렵에 여자는 왕복 이차선 너비의 골목 쪽으로 난 창가에 서서 삼십분 이상 욕설을 퍼부어댔다. 쌍시옷이 잔뜩 들어간 말들로, 분노를 담아 힘껏, 세상을 향해 자신의 남편과 남편의 내연녀에 대한 험담을 쏟아냈다. 아랫집 여자였다. 적잖이 거슬리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경비 아저씨에게 내려갔다. 아랫집 여자 아무래도 좀 이상한 것 같다고, 어떻게 조치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상의를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오히려 여자를 안타까워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는 바람에 저렇게 됐다나봐. 그냥 놔 둬.”   

    또 하루는 문 밖 복도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보다 위층에서부터 씩씩대고 중얼중얼하며 계단을 내려가는 아랫집 여자의 소리였다. 옥상에는 왜 갔을까. 얼마 뒤에 보니 인터넷이 되지 않고 있었다. 전화 상담을 통해 할 수 있는 조치를 해보았지만 해결이 되지 않아 결국 서비스 기사분을 불렀다. 그는 옥상 위에 전선이 다 끊어져 있다고, 처음 있는 일은 아니라고 했다. 누군가 전선에 일부러 가위질을 해놓는 것 같다고 했다.  

    여자의 맞은편 집에 사는 302호 부부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앞집에서 이상한 전파 소리가 들린다며 무작정 쳐들어가 소리를 추적하려 한 것이다. 우리 집에도 올라온 적이 있다. 아기 소리가 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우리 부부 사이에는 아기가 없다.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장롱에 아기를 숨겨 놓았을 거라며 집에 들어오려는 걸 겨우 문간에 세워두었다. 지나치게 확신에 찬 여자를 보며 확실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반응들은 어떤 소리 혹은 응시에 대한 반응 같았다. 그런 가설을 세운 뒤로는 여자와 여자의 딸이 외출하는 시간에 복도나 계단에서 마주치게 될 경우에 되도록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 듯이 행동했다. 그러던 중에 여자가 어린 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러 외출하는 시간과 내가 집에서 나서는 시간이 이틀 연속으로 비슷한 때가 있었다. 내려가던 계단에서 멈춰서는 것도 애매해서 최대한 둘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나는 다시 경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여자는 딸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니 저 여자는 왜 자꾸 우리가 나가는 시간에 나와? 미쳤나봐. 확실히 미쳤어.” 

    그때는 정신병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증상들은 DSM의 진단 체계를 따라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분류되거나, 다른 분류법에 의거하여 편집증으로 진단되기도 하는 정신 질환에서 흔히 확인되는 양상이었다.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정신자동증mental automatism'에 걸린 사람은 늘 어떤 목소리가 자신에게 뭔가 말한다고 느낀다. 들리는 말의 내용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중얼대는 목소리가 있고 나중에는 그 목소리에 적대감이 서려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각주:1] 환청이나 환각과 더불어 망상은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증상으로 꼽힌다. 환청이나 환각이 떨어져나가지 않은 충동의 대상인 목소리나 응시가 출현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증상이라면, 프로이트-라캉주의에서 망상은 이러한 현실적인 것the real과 대면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의미를 고정하는 자가 치료 기제로서 의미를 지닌다.[각주:2]  

    자서전적 기록에 의한 프로이트의 분석 사례 중 편집증 환자 슈레버에 관한 것이 있다. 슈레버는 42세에 처음으로, 51세에 두 번째로 발병을 했다. 슈레버가 두 번째로 발병 했을 때 그는 항소심 법원의 재판장으로 임명된 상태였다. (나중에 라캉은 슈레버가 재판장으로 호명된 사건을 두고 부성 은유 혹은 상징적 은유 기능의 잠재적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계기로 보았지만,) 당시 슈레버 자신은 과중한 업무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믿었다. 불면증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증세로 고통 받던 슈레버는 첫 번째 발병 시에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 재입원을 결정하고, 이후 증세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프로이트는 슈레버가 입원했던 존넨슈타인 요양소의 보고서를 인용하며 슈레버의 증상이 악화되는 과정을 전한다. 


    ‘즉 그는 뇌가 물러졌다거나 혹은 자기는 곧 죽을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환각을 근거로 한 피해망상이 이미 증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비록 초기에는 가끔 나타나기만 했지만 말이다. 동시에 감각 과민증이 심하게 나타났다. 후에 시각적인 환각과 청각적인 환각이 점점 자주 일어났고 동시에 일반 감각도 혼란스러워졌다. 이런 환각이 그의 감정과 생각을 지배했다. ...... 그는 목욕탕에 빠져 죽으려고 몇 차례 시도했고 “그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청산가리”를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의 망상은 점점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신과 직접 대화한다고 하였고 혹은 자기는 악마의 놀이감이라고도 했고 ...... 나중에는 자기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또 자기를 괴롭히고 다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들에게 욕을 퍼부었다.[각주:3]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는 동안 슈레버는 고문에 가까운 목소리에 끊임없이 시달렸고 결국 그 목소리의 메시지에 순종하듯 자신의 망상 체계를 완성했다. 처음에는 여자로 변하는 환각이 든다는 것이 괴롭기만 했지만 점차 이러한 생각과 화해해 가면서 자신의 몸으로 느낀 여성적 포지션의 흥분을 권리이자 의무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결국 새 인류를 낳는 소명을 맡은 여자가 되기로 한다. 슈레버에게 이 서사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 혹은 현실에 해당하는 것이었다면 완전히 다른 현실 감각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서사는 정신병자의 망상 체계일 뿐이다. 어떤 정신병자의 망상 체계는 실제로 타자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귀결되기도 하기 때문에 망상을 환자 스스로의 회복을 꾀하는 일종의 서사 체계로서 이해한다고 해도 인식 기반의 차이 이상의 불안과 공포를 유발할 수 있다.  

    보름쯤 전에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있었던 살인 사건의 범인 역시 정신병을 앓는 주체였다. 경찰은 피해자의 상처 부위가 깊고 잔인했다는 점을 보아 이 사건은 면식범에 의해 저질러진 일일 것이라고 추측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실 둘은 원한 관계가 없었다. 원한 관계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관계도 맺은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살해된 젊은 여성은 범인에게 어떤 잘못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그를 무시하고 공격했다는 여성 일반(에 관한 망상)에 대한 죗값을 치렀다. 그녀에게 ‘희생양’이라는 말 외에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그러나 여성에게 적절한 이름을 붙이는 일에 서투른 한국 사회의 몰지각한 호명 방식을 따라 그녀를 ‘화장실녀’라고 부르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부적절한 호명은 그녀에게 꽂힌 두 번째 비수였다. 아니,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 무수히 반복된 공격의 연장이었을지 모른다.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 현상은 강남역 살인 사건을 대하는 대중의 반응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확연히 얼굴을 드러냈다.  

    2006년도에 신조어와 유행어 1위를 기록한 ‘된장녀’라는 단어의 등장을 기점으로 여성들은 ‘~녀’로 손쉽게 호명되기 시작했다. 희화화되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사회적인 현상으로서 범주화될 수 있는 여성들은 ‘된장녀’, ‘김치녀’, ‘건어물녀’ 등 주로 먹을거리와 연관된 이름들로 시작되어 ‘취집녀’, ‘무개념녀’, ‘오크녀’ 등으로 무수히 이어지고 그 외의 단발적 사건 속에서조차 언론의 주도로 가십성 ‘~녀’들이 생산되었다. 

    신조어는 기존의 어휘들로는 담아낼 수 없는 어떤 사물이나 개념을 가리키기 위해 새로 만들어내는 말이다. 일군의 ‘~녀’ 시리즈를 한 범주의 신조어군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 특히 최근 10~15년 사이에 기존의 이데올로기로 해석할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여성이 출현했다는 뜻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시리즈의 첫 주자인 ‘된장녀’에 관한 묘사를 표본적으로 살펴보면 몇 가지 키워드가 발견되는데, 명사(구)로는 ‘외국계 커피전문점’, ‘뉴요커’, ‘패밀리 레스토랑’, ‘남자 탤런트’, ‘남자 선배’, ‘비싼 밥’, ‘문자메시지’ 등이, 그리고 용언에 해당하는 구문으로는 ‘착각하다’, ‘수다를 떨다’, ‘빌붙다’, ‘얻어먹다’, ‘의미없는 ...... 작성하다’, ‘시간을 허비하다’ 등이 나타난다.[각주:4]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보았을 때 (반대 성의 연예인에 관해 평가하고 시시덕거리는 것은 남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인데) 여자가 남자 탤런트를 두고 평가의 잣대를 들이미는 일은 가당치 않으며,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외국계 커피전문점에 밥값에 준하는 돈을 지불하고 커피를 향유하는 것은 스스로 뉴요커라는 착각하며 사치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소비 주체가 여자라는 이유로 여전히 남자 선배에게 빌붙어 비싼 밥을 얻어먹으려고 하는 것은 기회주의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남자’이고 ‘선배’이기 때문에 밥을 사줘야할 것 같은 압박감이 그들을 괴롭게 한다. 이것이 십여 년 전의 인식이다.  

    이 딸들의 어머니들은 자신들을 길러낸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했으나 반감도 가지고 있었다. 가족 내 남성 형제들에 대하여 박탈당했던 권리를 딸에게는 회복시켜주고 싶지만 동시에 성 역할에 관한 한 아직 일정한 혼란을 겪는다. 이 아들들의 아버지들은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어머니 세대와는 다르다는 것에 대하여 일정한 불만을 지니기 쉬우며 산업의 역군으로서의 자부심과 급변하는 산업 구조에서 파생되는 변화 속에 불안을 느낀다. 이들 부모 세대의 욕망 속에 전근대적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포섭될 수 없는 여성과 남성이 출현했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경쟁했으며 사회에 진출했다. 이제 남성들은 공적인 장에서 양적으로 배가된 대상들과 경쟁해야 하고 사적인 장에서 이전보다 까다로운 타자들에게 구애해야 하게 되었다. 새로운 여성은 남성의 선택을 기다리는 대상에 머무는 대신 유혹하고 선택한다. “ ‘선배 졸려염 ㅠㅠ’ 같은 의미 없는 문자메시지를” 전송하고 난해한 해석의 문제를 야기하는 주체인 것이다. 만일 이러한 여성 주체를 ‘~녀’라는 이름으로 호명하는 것을 통해 고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시대착오적 망상일지 모른다.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산업화 세대의 정상성이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는 시대에 수정되지 않은 여성적 정상성을 요구하는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정조가 여성혐오다. 그러나 산업화 세대의 도덕규범은 이미 영토를 초월한 교류를 통해 세계적 보편을 상당히 공유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상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성 역할, 성적 취향, 성 정체성, 나아가 혼인, 출산, 성매매 포르노 등에 관한 도덕규범과 법규범이 제시하는 정상성은 한국 사회에는 더 이상 정상적인 여자, 정상적인 성, 정상적인 결혼,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것이 없음을 시사한다. 정상성은 신화일 뿐이다. 정상성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겠지만 기준을 조정해나가는 일은 상대적으로 가능한 접근이다. 가령 범죄에 대한 규정과 접근을 달리함으로써 범죄율이 감소하고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다시 사회에 복귀하고 사회 안에서 생산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의 비율이 늘어나는 효과를 낸 네덜란드의 사례가 있다. 결과적으로 교도소 운영에 필요한 예산은 절감되었고 대신 범법자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은 늘어났다.[각주:5] 이 사례의 시사점은 한국 내 범법자를 처우하는 법제도를 변경하는 일에 있다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변화에 있다. 지금껏 한국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방식이 격리하거나 못 본 체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그들을 사회 안으로 끌어안고 더불어 지낼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약한 것은 근절해야 하는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개인과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의 가해자는 3월 말 경에 가출을 하고 한동안 한 지하철역의 남자화장실에서 노숙을 했다고 한다. 만일 그가 가출을 하지 않았거나, 가출을 했더라도 좀더 안정적인 사회적 보호 시설에서 머물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까? 또한 애초에 그가 가출한 동기는 아버지가 그를 다시 병원에 입원시키려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각주:6] 만일 그의 아버지가 관리 불가한 자신의 아들을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키는 대신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가족이 가정 안에서 모든 경제적, 정신적 비용을 부담하고 돌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살인 사건의 가해자가 처했던 사연을 들었을 때 한때 아랫집에 살았던 여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허락된 삶의 조건이 무엇이었든 그녀는 상대적으로 존엄을 지키며 일상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정신분열증 연구자인 실바노 아리에티는 치료를 받지 않는 “평범한” 정신병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모르며 미묘하고 절제된 광기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백색 정신병,” “평범한 정신병”, “일상적 정신병”, “비밀스러운 정신병” 등으로 일컬어졌다. 대리언 리더는 이러한 정신병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며 우리는 미치지 않고도 미친 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리더는 우리가 정신병의 편재함을 알아야 하며, 정신병의 구조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광기가 촉발된 사람을 돕기 위해서다.[각주:7]  

    정부는 강남역 사건의 대책으로 공중 화장실을 개선하고, CCTV의 수를 늘리며, 조현병 환자들을 전수 조사하여 행정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것은 이 사회로부터 여성을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말만큼이나 문제의 핵심과 무관한 듯이 보인다. 애초에 여성혐오는 여성을 계속해서 대상의 위치에 두고자 하는 욕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성의 안전과 여성혐오의 연관성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주체성과 욕망을 지닌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남성과 여성 모두의 이데올로기적 거부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바탕으로 이슈를 다뤄야 한다. 마찬가지로 조현병 환자들을 전수 조사하여 병원에 몰아넣는 것은 방법이 될 수 없다. 그들은 불안해 보이는 방식으로 세계를 대하지만 여전히 존엄한 인간 주체이다.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환경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국가는 이 영토에 머무는 인간 주체들의 존엄을 지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남성은 여성을, 신경증자는 정신병자를, 이성애자들은 LGBT를, 국적을 소지한 자들은 외국인 체류자를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동등한 욕망을 지닌 주체일 수 없는 것처럼 취급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이젠 더불어 존엄하게 살 길을 모색하자. 언 발에 다시 오줌을 누기에 한국 사회는 너무 춥다.  


    * 필자소개  

메모광. 학부에서 국제어문학을, 석사과정으로 비교문학을 공부했으며, 향후 프로이트 라깡주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1. 대리언 리더, 『광기』, 배성민 옮김 (까치글방, 2012), 60-61쪽. [본문으로]
  2. 대리언 리더, 위의 책, 29, 96쪽. [본문으로]
  3. 지그문트 프로이트, 전집 9권 『늑대 인간』, 김명희 옮김 (열린책들, 2003), 112-113쪽. [본문으로]
  4. 백승찬, “ ‘된장녀’가 어쨌다고...”, 「경향신문」 2006년 8월 6일. [본문으로]
  5. True Activist, “Netherlands Closing 19 Prisons Due to Lack of Criminals”, True Activist, April 12, 2004 <http://www.trueactivist.com/netherlands-closing-19-prisons-due-to-lack-of-criminals/> [본문으로]
  6. "검거된 미제사건-강남역 살인 사건의 전말", <그것이 알고 싶다>, SBS, 2016년 6월 4일 방송분. [본문으로]
  7. 대리언 리더, 『광기』, 2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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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진짜 여성'에 대하여


- 장강명 소설 [댓글부대] 리뷰

 





(평범한 워킹맘, 페미니스트, 간간이 글쟁이로 변신)


0.


    이 글은 <댓글부대>에 다는 하나의 긴 댓글이다. 내 뒤엔 합포회도 없고, 수십만의 조작된 ‘좋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이 글은 쏟아지는 다른 컨텐츠들에 금방 묻혀버릴 것이다. 그래도 구태여 이 글을 쓰는 건 <댓글부대>의 독자인 나, 불쾌하고 속상한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 대부분의 댓글이 그런 목적에서 쓰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1.


   <댓글부대>의 주요 전선은 정치 성향이 아니라 젠더였다. 여초 커뮤니티를 붕괴시키는 것이 팀-알렙의 목적이어서만은 아니다. <댓글부대>에서 여성은 가장 하찮고 대상화된 존재인 동시에, 가장 중요하며 언제나 중심에 있다. 둘의 증오는 여성이 자의식을 가진 하나의 주체로 등장했다는 데에서 불꽃처럼 타오른다. 그들에게 여성의 주체성은 그 자체로 남성의 기득권 상실이다. 마음대로 가슴을 주무를 수 없고, 내키는대로 섹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그들의 성욕을 반영하는 것처럼, <댓글부대>에서는 섹스가 매 챕터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룸살롱과 안마방에서 시작해 요정에 이르기까지 작품 내 등장하는 다양한 성매매 장소는 팀-알렙과 합포회의 남성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남성성은 진보로 표방되는 여성(혹은 여성으로 표방되는 진보)에게 끊임없이 위협 받는데, 그래서 더욱 더, 팀-알렙과 합포회의 남자들은 본인들이 지배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성기로서의' 여성들 속으로 파묻힌다.


    팀-알렙과 합포회의 일원들은 성매매 업소에서만 쾌락과 안정감을 느낀다. 잠시동안 합포회의 일원이 미팅을 주선했던 ‘강연 카페'같은 곳들은, 그들이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될 트렌드이자 위협이다. SNS와 온라인을 지배하지 않으면, 지금의 돈도 권력도 깡그리 무력화될 것이라는 불안도 같은 방식으로 표출된다. 그들이 지배하지 못했고, 아직까지 알지 못하는 공간들은 그 자체로 그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선다. 그래서 합포회는 몇 천만 원의 돈을 투자하면서까지 ‘지능형 댓글 알바'인 팀 알렙-을 고용하는 것이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공간을 붕괴시켜 이윽고 온라인을 지배하기 위해서. 


   이러한 맥락에서 합포회는 팀-알렙에게 진보적 정치 성향을 띤 여성 커뮤니티를 공격하라고 지시한다. 팀-알렙은 합포회에서 준비해 준 커뮤니티 아이디들을 활용하여 커뮤니티 안에서 논쟁의 불씨를 피우고 싸움을 부채질해가며 손쉽게 커뮤니티를 붕괴시킨다. 그들은 여성 커뮤니티에 내부 균열을 일으켜 회원 간 갈등을 촉발시켰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이중성을 폭로하기도 했다. ‘사회의 폭력성’을 누구보다도 경계하는 이들이 조그마한 계기가 주어지자 내부에서 서로를 ‘폭력적’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댓글부대>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은 듯 했다. “온라인에서 제 아무리 여성/진보가 득세하는 것처럼 보인다해도 실제 세력은 남성/보수들의 손아귀에 있으며, 온라인도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깨부술 수 있다”고. 그러나 <댓글부대>라는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다른 메세지는 이렇다. “아무리 온라인을 누군가 침입해서 깨부수더라도, 여성/진보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는다.” 


   끝내 그들이 여성을 혐오하더라도 그들은 결국 커뮤니티를 부술 뿐이지, 여성을 부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여초 커뮤니티 하나를 끝장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보의 ‘망조'를 불러낸 건 아니다. 손에 꼽는 국지전이고, 어차피 이들은 그들의 커뮤니티 하나를 잃었을 지언정 스스로의 정체성에 위협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댓글부대>라는 작품 속에서 지속적으로 신변상의 위협을 느끼는 건 팀-알렙과 합포회다. 커뮤니티의 여성들은 기껏해야 고소에 대한 처벌을 두려워할 뿐이다.


2. 


    나는 현실과 허구의 영역이 모호할 정도로 세심하고 사실적으로 쓰여진 이 소설에서 유독 젠더 양상만 극단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여성들 중에서도 그가 채택한 건 극단의 여성상이었다. 한 부류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팀-알렙, 합포회 남성들에게 성적 쾌락을 주는 여성들이다. 그리고 다른 한 부류는 여초 사이트에서 정치적 성향을 뚜렷하게 내보이며 팀-알렙, 합포회를 은연 중에 비웃는다.(실제 비웃지 않았더라도, 팀-알렙과 합포회는 여초 커뮤니티의 회원들이 자신들을 비웃고 우습게 여긴다고 생각한다.)


   이 극단화된 여성상은 온라인의, 그것도 남초 커뮤니티의 상상적인 여성상을 그대로 베껴 놓은 듯 했다. 그에 비하면 그나마 작중의 남성들은 다양화된 편에 속한다. 여성이 사회적 약자임을 이해하고 있는 K신문 기자와 업소 여자에 대해 저속한 뒷담화를 나누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들과의 로맨스를 기대하는 찻탓캇, 여자는 그저 노리개로만 취급하는 합포회까지 나름의 스펙트럼을 갖추고 있다. 


   <댓글부대>는 온라인에서 과잉묘사된 여성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마치 정말 있는 여자처럼, 어딘가에서 본 사람처럼. 사실 이건 남초의 보수 커뮤니티에서 여성 혐오를 부풀리는 데에 자주 사용되는 방법이다. 사실이 아닌 사건을 자신이 직접 본 것처럼 날조하면서 ‘역시 김치녀 클라스’라는 식으로 여성을 매다는 것이다. 


3.


   <댓글부대>의 남성 캐릭터는 입체적이다. 특히 <댓글부대>의 주요 화자인 찻탓캇이 그렇다. 본인들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한편 어떤 불안감을 직시하고, 성매매 여성을 ‘더럽게’ 보면서도 그녀들에게 어떤 연민과 애정을 가진다. 그러나 <댓글부대>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단편적이다. 이중적이라는 의미와는 다르다. 작중에 여성 ‘캐릭터’는 없다. 이 작품에서 여성은 그저 ‘관찰된 객체’로서만 존재한다. 


   <댓글부대>가 지닌 리스크는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장강명은 <댓글부대>가 진보와 보수, 그리고 온라인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작중에 설정된 여초 커뮤니티의 이미지와 성매매 업소들의 비중 때문에 사실 ‘정치적 성향’의 문제는 크게 보이지 않았다. 구태여 짚는다면 ‘역시 진보는 분열로 망하는군’이라는 뻔하디 뻔한 클리셰 정도. 오히려 읽혔던 건 이런 말이었다. “조작 가능한 건 ‘정치적 여론’이 아니라 ‘성별 간 적대감’이다.”


   나는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여성을 ‘된장녀/간장녀/생강녀’라는 식으로 개인들의 다양한 성질들을 과장하여 구분짓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어째서 우리 사회의 성적 구도는 늘 한결같이 ‘극단적’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혐도, 여혐혐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쉽게 구분하고 판단 짓지 못하는 개인들이 다양하게 있을 뿐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스타벅스를 좋아하면서(된장녀) 에코백을 메고 다니는(생강녀) 사람도 분명 있는 것처럼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죽기 전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극단’과 ‘중간적인 것’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문단만을 여기 옮겨 본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모든 극단에 적용될 것이네. 다시 말하면 매우 신속한 것과 매우 느린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검은 것과 흰 것 등등. 이처럼 모든 것에 있어서 극단은 희귀한 데 비해 그 중간적인 것은 대단히 많은 법이네. 자넨 이와 같은 것에 대하여 관찰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나?”[각주:1]  


   나는 이 질문을 그대로 장강명에게 돌리고 싶다. ‘자넨 중간적인 여성에 대하여 관찰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나?’[각주:2] 정말로?  



ⓒ 웹진 <제3시대>

  1. 플라톤 저, <파이돈> 중 [본문으로]
  2. 이전에도 나는 장강명 작품에서 느껴지는 이러한 아쉬움에 대하여 쓴 적이 있다. <표백>, <삶어녀 죽이기>, <한국이 싫어서> 의 여자 주인공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비현실성과 마녀성이 주제였다. 해당 글 원문은 여기서 확인 가능하다. http://ichungeoram.com/958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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