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묵시록 7 : 헤겔의 미국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18세기의 유럽과 미국


    미국역사에서 내가 아는 제일 재미 있는 사건 하나는 역사책에서 ‘제퍼슨과 무스’라는 제목으로 등장하는 18세기에 있었던 일이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썼고 3대 대통령을 지낸 뛰어난 지식인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당시 미국의 대사로 불란서에 거주하고 있었다. 제퍼슨은 큰 무스 한 마리를 사냥해 뿔까지 있는 상태에서 박제해 불란서로 보내라는 주문을 미국에 했다. 18세기의 운송수단으로 한겨울에 거대한 무스를 박제해 불란서로 보내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으나, 제퍼슨은 지속적인 요구를 했고 마침내 뜻을 이뤘다. 박제된 무스는 자연학과 지질학으로 18세기 유럽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부폰(Comte de Buffon)에게 보내졌다. 부폰은 지구의 역사를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연구했던 학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 결과 그 역사가 4,000년이 아니라 75,000년이란 새로운 주장까지 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찰스 다윈이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진화의 이론을 펼친 학자였다. 제퍼슨이 평소 알고 지내던 부폰에게 미국의 무스를 보낸 건 그의 우정을 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우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부폰이 자신의 저술 <자연사>에 신대륙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을 기술했고, 그 내용은 부폰의 명성에 걸맞게 미국에 대한 유력한 이론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부폰은 미주 신대륙의 토양이 유럽에 비해 열등하다고 보았고, 그 증거를 동식물의 퇴행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즉 같은 동물이라도 미국에서 낳고 자란 동물은 연약하고,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간 동물도 그 땅에선 점차적으로 기운을 잃게 된다는 이론이었다. 그 후 미국의 퇴행성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이론으로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같은 입장에서 미국을 연구한 결과물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부폰의 영향을 받은 드포우(Cornelius De Pauw)란 학자는 동식물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만일 유럽인들이 미국에 가서 살게 되면 몸과 마음이 연약해지고 정신적 활기를 잃는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과 행복추구라는 이념을 기초로 한 역사의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자 했었던 제퍼슨에게 당시 유럽의 이런 미국론은 어처구니없고 근거없는 분석에 불과했다. 이를 반박하고 바로잡는 건 미국을 사랑하는 건국의 지식인의 역할이었다. 말이나 글로 부폰과 같은 대학자의 오류를 바로잡는 건 어렵다는 판단을 했을까, 그는 단번에 미국 자연의 왕성함을 보여줄 물증을 찾았다. 그가 떠올린 게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명물인 거대한 사슴과의 동물 무스였다. 박제된 무스를 받았을 때 부폰의 표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웃을 수밖에 없는 해프닝이었지만 당사자들은 진지한 학문의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불란서에서 귀국한 제퍼슨은 ‘버지니아 주에 대한 기록’(Notes on the State of Virginia)이라는 미국의 자연과 정치제도를 알리는 기념비적인 책을 썼고, 그 내용의 상당한 분량을 부폰의 논리에 대항할 실증적이고 경험적인 자료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는데 할애했다. 그는 오히려 미국의 자연환경이 자신이 경험한 유럽보다 훨씬 났다고 판단했지만, 그 판단은 결국 습관적인 것이란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제퍼슨은 그 책의 불어판까지 낼 정도로 미국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고, 미국 특히 버지니아의 뛰어난 자연과 건국의 정치적 실험의 정당성을 유럽에 알리고자 했다.   



    부폰은 왜 과학의 이름으로 미국에 대한 황당한 주장을 했을까? 그의 저술엔 상당한 분량의 지구에 대한 지질학적 고찰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의 생각을 요약하면 미국의 환경이 퇴행적인 이유는 기온이 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미국의 땅은 늪지대가 많았고, 그런 지형에서는 생명의 진화가 더디거나 퇴보한다고 생각했다. 그 땅에서 태어난 원주민들은 게으르고 지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생식기까지 작았다는 주장은 당대 최고의 자연학자의 주장이라 믿기 힘들지만 그 논리만은 일관성이 있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도 미국에 오래 살다보면 환경의 영향을 받아 퇴행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두포우의 주장도 추종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미국에서는 부폰이나 드포우 같은 학자들이 만들어낸 18세기 미국론을 주로 반미주의(Anti-Americanism)의 시작이라고 본다. 신대륙은 열등하고 미국은 결국 망할 나라라는 생각은 유럽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식민주의적인 세계관을 반영했지만, 부폰 자신은 과학만을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훗날 자신의 미국론이 틀렸다는 고백까지 했었다.  


    (반미주의의 역사와 사상적 배경은 여기서 다룰 것은 아니지만, 미국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 개념에 대한 문제만을 제기하자면, 시대나 사안에 따르는 ‘반미’는 언제나 있을 수 있지만 ‘반미주의’라 지칭할 만한 이념의 역사가 실제 미국 밖에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반미주의란 개념은 미국 내에서 만들어진, 미국의 선민의식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는 입장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대립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선민의식을 고수하려면 이를 부정하는 세력이 있어야 한다. 미국을 적대시하는 세력들이 왕권주의, 공산주의, 테러리즘 등의 이념의 탈을 쓰고 도사리고 있다는 인식은 미국역사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것이지만, 이를 반미주의라는 용어로 묶는 행태는 20세기의 일이었다.) 


    대통령 후보시절 오바마는 시골의 가난한 백인들이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소외되고 왜곡된 세상인식을 갖게 되었고, 국가의 정책으로 생활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고 총과 근본주의 신앙에 빠진다는 말을 해 엘리트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얼마 후 미국 남부에서 활동하는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라는 록밴드는 오바마를 은연중 비판하는 “God and Guns”라는 곡을 냈다. 가사가 재밌다. God and guns/Keep us strong/That’s what this country/Was founded on/Well we might as well give up and run/If we let them take our God and guns. 


    18세기 유럽의 미국론을 반대한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제퍼슨과 같은 미국의 학자들과 남미의 가톨릭 성직자들이었다. 제퍼슨이나 그와 함께 건국에 앞장섰던 매디슨 또는 먼로 같은 인물들이 건국의 이념과 백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고자 했다면, 남미에는 17세기부터 원주민들의 학살을 막으려는 노력을 해온 예수회 신부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클라비에로(Francisco Javier Clavijero) 신부가 있었다. 그는 멕시코 원주민들의 인간적 존엄성과 그들이 만든 문명의 명예를 지키고자 했다. 모두 계몽주의 사상에 익숙했었고, 그들의 논쟁은 이성적인 판단을 추구했고 또 상대에게 요구했다. 제퍼슨은 부폰의 논리를 정치적인 것으로 공격하지 않았고, 다만 자신의 경험과 관찰을 언급하며 부폰의 주장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클라비에로 역시 드포우와 같은 유럽의 학자들의 무지를 이성의 차원에서 나무랐다. 18세기 유럽의 학문을 유럽중심주의나 식민주의 또는 제국주의의 산물로 읽는 건 정당하고 옳을 수도 있지만, 의심과 해석과 이데올로기에 익숙한 20세기 학문의 산물이다. 


    유럽인들은 왜 신대륙에 대해 학문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그 관심은 영토 확장과 식민지 지배의 욕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극 관심은 유럽의 정체성과 역사의식과 실존적인 차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그 기원은 1492년 신대륙 발견에서 출발한다. 당시 유럽은 성경에 기초한 지리와 역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대륙이 발견됐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땅엔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생명체들까지 살고 있었다. 그 땅이 어떻게 생겨났고, 사람들이 어떻게 그곳에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실존적 고민으로 발전했다. 신학에 의존한 유럽의 세계관 속에 새로운 세상이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럽의 신대륙 충격은 수많은 신학과 신화 그리고 철학과 과학의 상상과 해석을 낳았고, 신대륙은 근대유럽의 정체성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계몽과 이성의 시대라 불렸던 18세기까지도 그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데카르트와 코페르니쿠스가 대표하는 근대유럽의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은 그 충격이 만든 결과라 말할 수 있다. 


    그 충격의 신학적인 차원도 간략한 설명이 가능하다. 서구기독교에서 진리의 시간은 언제나 과거형이었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것을 성경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온전히 신의 영역, 계시의 영역, 즉 묵시록의 영역이었다. 신대륙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한 사람들은 당연히 신학자들이었다. 많은 유럽인들은 교회에서 설명해주지 못했던 신대륙에 대한 이해를 중세의 예언서들에서 찾았고, 마침내 묵시적 상상력을 동원해 ‘새로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묵시록은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새로운 시대는 과거의 법칙들이 와해되는 시간이었고, 새로운 방법, 새로운 실험, 새로운 가치들이 등장하는 시간이었다. 교권이 억제할 수 없는 상상력과 새로운 지식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17세기 자연과학이 그 산물이었고, 유토피아라는 개념과 그에 대한 열망이 종말론적 묵시록과 함께 등장했다. 


    16세기 유럽의 지식인들과 성직자들 사이에서는 신대륙의 원주민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분류해야 할지에 대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원주민들을 직접 목격한 스페인의 선교사들 중심으로 중세의 전통적인 존재의 구분법 - 신과 천사와 인간 그리고 동물과 식물 – 가운데 원주민이 속한 곳이 어딘지 묻는 것이었다. 원주민들도 유럽인과 같은 인간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이후에도 그들이 미개하고 야만적이란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그 이유를 마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계몽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더 설득력이 있는 답이 필요했다. 18세기에 등장한 유력한 설은 그 차이가 기후와 토양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역이 다른 사람들이 기질과 성향에서 차이가 있고, 그 이유가 토양과 기후의 조건 속에서 결정된 것이라 믿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환경이 사람의 성향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은 사실 오랜 역사가 있는 것이지만, 서양에서는 기독교 신학의 영향력이 쇠퇴하면서 등장한 세상의 자연적이고 과학적인 이해의 일부였다. 부폰을 중심으로 ‘자연사’(Natural History)란 당시로선 모순적인 개념이 등장한 것도 그때였다. 지구의 역사가 교회에서 가르쳐준 것과 다르다는 주장은 지질학이라는 과학의 이름으로 나왔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에게나마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부폰에게 신대륙의 사람들이 뒤떨어진 이유를 그 땅이 습한 기운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 결과 동식물의 성장발육도 더디고 동물들의 지능도 낮고 오히려 퇴행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제퍼슨이 미국은 습하지 않을뿐더러 습한 것과 열등하고 퇴행적인 것은 도데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물을 수밖에 없었다. 부폰은 왜 신대륙의 습도가 높다고 생각했을까? 신대륙에 큰 홍수가 있었기 때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이 아는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게 만든 홍수는 단 하나, ‘노아의 홍수’였다. 그러나 부폰이 언급한 홍수는 노아의 홍수가 아니었다. 왜냐면 노아의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고, 그 이후 인류의 역사는 이미 성경에서 기록되고 서양에서 물려받은 역사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대륙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선 또 다른 홍수가 있어야 했고, 부폰은 제 2의 대홍수가 있었다고 믿었다. 오래전 바다와 육지의 경계는 지금과 달랐고, 육지의 지층에 바다의 흔적이 있다는 사실은 부폰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이론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건 ‘대홍수’라는 개념이다. 홍수로 세상이 새롭게 되었다는 건 서구역사에서 매우 익숙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그 신화적 개념으로 신대륙을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18세기 과학과 신학이 모호하게 연결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결국 그 홍수 때문에 신대륙의 기온이 습하고 되었고, 그 때문에 미주의 땅과 정신이 퇴행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었다.

 

    신대륙에 사람들이 살게 된 연유에 대한 많은 가설이 지금까지도 존재하지만, 근대 초기에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는 설명이 하나 등장했다. 16세기 초 스페인 출신 성직자로 남미에서 선교사로 있으면서 원주민들의 인간성을 증언하고 스페인 군인들의 참혹한 학살을 고발했던 라스카사스(Bartolome de Las Casas, 1474-1566)가 제시한 설이었다. 원주민들이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12지파 중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10개 지파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을 인간적으로 다뤄 기독교로 개종 시킨다면 이는 예수가 재림하는 마지막 날을 예비하는 길이고, 서구세계가 구원받는 길이라 믿었다. 라스카사스는 원주민들의 언어와 관습 속에 구약시대 유대인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믿었고 이를 증명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후 남미의 스페인 선교사들은 라사카사스를 따라 이 이론을 유럽에 소개했고, 미국의 백인들 중에서도 이를 믿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의 이론을 지금 보면 유럽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황당한 식민주의 이론이지만, 이를 통해 원주민들을 이 학살이 아니라 개종의 대상임을 켜야 할 분명한 이유를 제공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신대륙과 원주민들의 발견은 그에게 예언의 완성, 곧 새로운 하늘과 땅에 대한 계시가 이루어지는 종말론적 사건이었다. 그 계시와 구원의 드라마는 원주민들이 있어야 완성될 수 있었다. 라스카사스의 이론이 맡았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신대륙에 살고 있던 새로운 인간들의 존재를 유럽의 세계관 속에서 설명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이후에도 이스라엘 민족의 사라진 지파라는 논리는 유럽의 지식체계 밖에 있던 (아프리카나 아시아) 사람들의 존재를 유럽의 입장에서 설명해주는 유용한 이론으로 쓰였다. 하다못해 일본인들의 정체가 이스라엘의 사라진 지파들이라는 설까지 비교적 최근 책으로 나올 정도로 쉽게 사라지지 않는 매력적인 이론이었다 (Joseph Eidelberg, The Japanese and the Ten Lost Tribes of Israel). 청교도들이 미국 땅에 내리기 이미 100년 전에 미국의 종말론적인 사명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라스카사스의 논리는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헤겔의 미국


    미국에 대한 헤겔의 언급은 주로 그의 <역사철학강의>에서 나온다. 18세기 부푼과 드포우는 신대륙과 미국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갖고 있었지만, 그들의 이해는 근거 있는 것으로 19세기 유럽에 널리 퍼져 있었고 헤겔까지도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미국이 헤겔의 철학에서 중요하진 않더라도 그의 역사철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역사철학의 묵시적인 차원의 이해에도 도움이 된다. 헤겔의 <역사철학강의> 그의 글 중에서 비교적 이해하기가 쉽고, 그에게 가장 중요한 ‘역사’란 개념이 실제로 사람들이 사는 땅과 연결되어 설명되기 때문에 그의 편견과 숨은 의도를 파악하기에 용의한 면이 있어서 오랜 시간 헤겔철학의 입문서로 여겨졌던 책이다. 이 글에선 그 책 앞부분‘역사의 지리적인 바탕’이라는 장에서 나오는 미국에 대한 언급만 살펴보겠다. 하지만 대상이 헤겔이기에 그를 미국이라는 상황과 연결짓는 배경설명이 빠질 수 없다. 19세기 유럽의 제일 중요한 철학자이지만 그만큼 제국주의, 전체주의, 민족주의, 인종주의 등을 옹호하는 철학을 했다고 욕을 먹는 철학자도 없다. 그러나 헤겔 이후의 서양의 철학은 모두 헤겔과의 대화 속에서 나왔다. 사회적인 관계를 앞세우는 다양한 맑스주의 전통의 철학에서 인간의 개인적인 차원을 다루는 실존주의까지 헤겔을 싫어할 수는 있어도 헤겔의 영향에서 벗어나긴 힘들었다. 미국 실용주의 철학의 전통을 세운 듀이와 퍼어스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는 1989년 이후 동구권의 몰락으로 이념의 역사가 끝났다는 논쟁과 함께 헤겔이 다시 학자들만이 아니라 언론에서까지 회자되기도 했다. 자본주의 세계화의 등장과 함께 부쩍 늘어난 역사의 종말이나 묵시적인 역사의 이해에 대한 연구에서 헤겔의 철학은 빠지지 않고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신학에서 보자면 헤겔이 없는 성서학을 생각할 수 없고,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였던 성부와 성자의 관계 즉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답을 제공해 준 사람도 내 생각엔 헤겔이었다. 여기서 헤겔을 다루는 이유는 헤겔 자신이 미국에 대한 언급을 했기 때문이고, 그 속에서 역사의 종말이라는 묵시록의 내용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헤겔의 철학에서 미국이 중요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헤겔의 철학이 역사의 철학이고, 그 철학에서 역사는 이미 완성된 종착점에 다다른 상태였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유럽의 의식 속에 등장한 신대륙이 그의 철학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헤겔의 역사철학의 중요한 부분을 먼저 살펴보자.  


    헤겔철학의 가장 큰 공헌은 그의 역사철학에 있었다. 하지만 역사철학이라는 말 자체는 모순적인 면이 있다. 철학은 합리적인 전체의 통합성을 추구하는 것인데, 역사는 비합리적인 우연과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사건들의 연속이 아닌가? 헤겔은 철학이 역사의 시간을 다루려면 그 내용은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믿었고 또 실제로도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의미는 역사가 합리적인 이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고 이를 증명하는 건 신학이 아니라 철학의 역할이란 말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헤겔만의 강력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유명한 변증법은 역사의 합리성을 논증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역사는 합리적일뿐만 아니라 발전하고 완성과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 역사에 끝이 있다는 가정이 어떻게 (신학이 아니라) 철학의 가정이 될 수 있을까. 역기서 ‘절대’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철학이 다루는 합리적인 이성은 상대적인 우연에 시달리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어야 한다. 현대에서 용납되지 않는 용어이지만, 헤겔에게 ‘절대’(Absolute)라는 게 없으면 신학과 철학은 일상의 혼란 가운데 표류하게 된다. 역사가 합리적이란 말은 절대적인 것을 향해 나아간다는 말과 같다. 역사 속에서의 이성이 바로 그 유명한 헤겔의 정신이다. 역사는 ‘정신’이 스스로의 절대성을 찾아나가는 정신의 역사였다. 헤겔에게 역사의 출발으로 정신이었고, 또 역사의 끝은 정신이 절대적인 자기의식을 회복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헤겔은 자신의 시대가 바로 그 역사의 종말의 시대로 이해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헤겔이 역사의 끝과 자신의 철학이 어떤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해석들이 다양하다. (역사의 종말이라는 표현도 헤겔이 아니라 헤겔의 역사철학 해석으로 유명했던 코제브(Alexander Kojeve)와 니체 같은 이들의 해석이었지만 헤겔의 개념으로 흔히 쓰이고 있다). 


    헤겔에게 역사가 정신으로 시작한다는 말은 역사가 자연을 극복한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말과 같았다. 헤겔이 왜 자연과 역사를 구분하고 세계사를 자연을 극복한 정신의 역사로 이해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역사철학강의> 서론에 나온다. 그의 입장은 18세기 계몽주의 학자들이 “유행”처럼 추구했던 자연 속에서 이성을 찾고 신을 찾는 경향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작업은 보편적인 인간의 역사에서 신을 찾는 것이었다. 역사의 선악과 굴곡진 모습을 합리적인 이성으로 설명하여 악의 문제가 신의 섭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헤겔은 이 사실을 증명하는 길을 역사 속에서 활동하면서 화해와 통합으로 갈등의 역사를 치유하는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대신 자연은 새로운 것이 없는 시간의 반복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역사가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인간의 모든 시간이 헤겔의 역사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정신은 모든 민족의 삶 속에서 동일하게 존재하고 활동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헤겔의 역사는 정신으로 시작하지만, 그 정신의 활동은 국가라는 제도를 통해 드러났다. 또 국가는 뛰어난 인물 (헤겔의 표현에 의하면 ‘세계사적인 인물’)들에 의해 이끌어지기 때문에, 유럽처럼 정신이 올바른 괘도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정신이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 있고 따라서 역사의 발전이 더디고 이성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민족도 있고, 집단으로 모여만 살뿐 역사 이전(Prehistory)의 자연과 같은 단계에 머물러 있는 집단도 있다. 예컨대 원시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역사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이식의 수준이 합리성에 이르지 못하는 야만의 시대가 지나야만 역사가 시작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 역사는 정신을 통해 발전하고, 현재는 과거보다 더 성숙한 정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과거는 현재를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헤겔에게 정신의 역사는 유럽과 그 이전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에서 제대로 발전을 했고, 자신이 살았던 19세기 유럽에서 자신의 역사를 통해 완성된다고 이해했다. 그 정신의 원리는 자유였고, 유독 서구의 역사 속에서만 자유의 개념이 발전했다는 헤겔의 입장은 19세기 유럽이라는 그의 시대적 한계를 말해주기도 한다. 이 역사는 이제 끝이 났기 때문에, 모든 역사는 과거형이다. 헤겔의 철학이 닫힌 구조를 갖고 있다거나 전체주의적이라 비판하는 이유는 그의 역사철학에 과거의 역사와 그 역사가 끝나는 현재만 있을 뿐, 내일이나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헤겔은 미국이라는 난제를 만난다. 신대륙이라는 미국을 그의 역사철학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와 과거를 품은 현재밖에 없고, 철학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영원한 현재에 대한 관심뿐이다. 그래서 헤겔은 미래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을 ‘미래의 땅’이라 불렀다. 미국이 미래의 세상을 주도할 것이란 의미가 아니었다. 헤겔의 역사관에서 미국은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었기 때문에 미래라고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이유가 재밌다. 헤겔에게 신대륙이란 개념은 단지 새롭게 발견된 대륙이란 의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신대륙 자체가 유럽보다 지질학적인 나이가 어리다 믿었고, 그 때문에 미국의 모든 것을 미성숙한 것으로 이해했다. 미국의 땅과 동식물만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원주민들도 그렇다고 보았다. 모든 게 작았고 약했다. 동식물들은 맛도 없었고,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이 등장하자마자 그 모습에 기가 눌려 몰락하기 시작했다. 헤겔이 미국을 다룬 건 <역사철학강의>의 앞부분 “역사의 지리적 바탕”이라는 장에서였다. 미국은 지리적인 땅일 뿐 정신의 역사에 이르지 못했다. 당시 의견이 분분했던 미국이 경제나 민주적인 제도는 성숙하지 못한 유럽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미국은 역사 정신의 무대인 국가를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 왕정체제를 선호했던 헤겔에게 미국의 민주주의는 성숙하지 못한 시민들의 망상적 실험에 불과했던 것이다. 


    여기서 헤겔이 제시했던 성숙한 국가가 되기 위한 조건이 매우 특이하다. 농민들이 개척할 땅이 풍부하지 않아 도심으로 그들이 몰려들어야 했고, 계층 간의 구분이 첨예화 되어 긴장상태가 조성되어야 했다. 다시 말해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과 긴장 가운데서 정신이 살아나 (헤겔식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의미였다. 인간이 자연의 삶을 영위할 수 없고, 경작할 땅이 부족하고, 계층 간의 긴장이 고조 됐을 때 정신의 역사가 시작한다면, 헤겔의 철학이 19세기 유럽의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자유주의 체제의 태동과 연관이 있다는 의심은 정당한 것이다. 


    ‘미래의 땅’이란 표현을 생각해보자. 역사는 현재로 끝났기 때문에 더 발전된 기술과 이념과 문명의 미래는 없었다. 역사의 미래는 없고, 더 나아가 헤겔의 미래는 (연속적인) 역사가 없었다. 미래에 역사가 없기 때문에 ‘미래의 땅’이라고만 했을까. 땅은 역사 이전의 상태다. 여기서 헤겔이 말하지 않은 묵시록의 미국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미래를 주로 땅과 흙의 상태로 표현한 현대문화의 장르는 Post-Apocalyptic이다. 영화로도 유명한 코맥 매카시의 <로드>는 대표적인 Post-Apocalyptic장르의 소설이다. 묵시적 대재앙의 사건으로 세상의 역사가 끝난 인류의 미래는 잿빛 하늘과 땅으로 표현된다. 미래를 화려한 문명이 아니라, 죽은 땅이 다시 살아나 자연이 회복되고 다시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간주하는 건, 그 장르 작품들의 흔한 주제설정이다. 헤겔은 미국의 미래를 잘못 이해했지만, 그의 논리 즉 역사가 끝난 이후는 다만 역사 이전의 자연 곧 땅의 시대밖에 생각할 수 없다는 논리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국은 20세기 서구문명의 중심이 되었고, 세계사적인 국가가 됐지만 그 힘은 역사를 끝낼 각오와 힘, 곧 묵시적인 힘이라 할 수 있다. 헤겔은 자신이 그런 미래에 관심이 없다고 했지만, 인류에게 남은 미래가 그런 미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헤겔은 인류의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실수를 했지만, 그의 과오가 메시아주의나 그와 상응하는 다가올 무엇인가를 논하는 철학보다 심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미래를 다가올 내일이 아니라 모든 문명과 문명의 의미가 파괴된 땅과 자연으로의 회귀라면 19세기가 아니라 21세기의 상상력에 더 적합한 진단이었는지도 모른다. 19세기의 철학자로서 헤겔의 문제는 전체성, 통합성, 절대성을 표방하는 타협 없는 철학의 교리적인 확신에 빠져 이를 지켜내려 했던데 있었다. 모든 의미 있는 것들을 절대 교리의 철학으로 통합시켜 신학과 예술을 포괄하는 철학을 꿈꿨던 헤겔의 자만심도 한몫을 했다. 

    헤겔은 분명히 자신의 철학이 역사의 끝에 서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역사의 시간이 앞으로도 더 지속되는 걸 부정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 역사가 끝난 상태는 어떤 것일까. 철학이 미래에는 관심이 없고 현재적이고 영구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다면 절대와 보편을 성취한 헤겔의 철학과 유럽역사의 영광은 계속되는 것일까? 역사는 더 이상 진보하지 않고 이제 남은 건 유럽 밖의 깨달음이 늦고 진화가 더딘 국가들이 유럽을 서서히 따라오는 것뿐이라면, 그건 미래가 아니라 유럽역사의 현재가 진행 중인 상태를 말한다. 전쟁을 예를 들자면, 한쪽의 절대적인 우세로 대세가 이미 기울었고 승전까지 선언된 상태지만 작은 전투는 계속되는 상황이 비슷한 경우일 수도 있다.  


    헤겔은 마지막 전쟁이나 묵시적인 사건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헤겔이 불란서 혁명이 공포의 테러 체제로 변하는 과정을 묵시적으로 이해했을 수도 있고, 자신이 좋아했던 나폴레옹이 예나(Jena)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고 이를 역사를 바꾸는 마지막 전쟁이었다 생각했을 수도 있다). 미래의 예언은 철학이나 역사철학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헤겔을 묵시적으로 읽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역사가 완성되고 끝이 난다는 생각만큼 본질적으로 묵시적인 것은 없다. 헤겔이 철학을 역사의 끝에서 영원한 것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보았다면, 그 철학은 재림이나 천년왕국이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개념들을 쓰지 않더라도 묵시적인 학문이 될 수밖에 없다. 역사가 그 목적을 성취했기 때문에 만약 미래가 있다면 퇴보적인 의미밖에는 가질 수 없다고 그의 생각에서 묵시록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헤겔에게 신대륙은 귀찮은 존재였다. 이제 역사가 완성되는 마지막 시점에 그 발전과 전개를 설명하는 논리의 선명함을 퇴색시키는 성가신 땅이었다. 귀찮은 것은 생각하기 싫은 법, 헤겔은 신대륙을 생각과 사유의 영역 밖의 존재로 내몰았다. 그러나 헤겔에게 생각 밖의 영역이 있을 수 있을까? 정신이 절대적인 자기의식으로 모든 것을 통합하고 녹여내고 이해한 시대가 열렸는데, 생각 밖에 무엇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정신으로 완성되는 헤겔의 역사는 현재에서 끝나고 이미 완성된 역사는 미래가 필요 없다. 헤겔은 신대륙과 미국을 미래의 땅이라 선언했다. 여기서 미래가 절대적인 사유를 추구하는 철학의 영역 밖에 있고, 역사는 이미 끝난 것이라면 미래는 헤겔이 말했던 Pre-history가 아니라 Post-history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묵시 이후 (Post-Apocalyptic)한 땅이 되고, 19세기 유럽에 관한 헤겔의 진단과 선언은 묵시록에 속하게 된다. 


    헤겔은 인류의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실수를 했지만, 그의 과오가 메시아주의나 그와 상응하는 다가올 무엇인가를 논하는 철학보다 심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미래를 다가올 내일이 아니라 모든 문명과 문명의 의미가 파괴된 땅과 자연으로의 회귀라면 19세기가 아니라 21세기의 상상력에 더 적합한 진단이었는지도 모른다. 19세기의 철학자로서 헤겔의 문제는 전체성, 통합성, 절대성을 표방하는 타협 없는 철학의 교리적인 확신에 빠져 이를 지켜내려 했던데 있었다. 모든 의미 있는 것들을 절대 교리의 철학으로 통합시켜 신학과 예술을 포괄하는 철학을 꿈꿨던 헤겔의 자만심도 한몫을 했다. 



ⓒ 웹진 <제3시대>



    (참고도서) 


    제퍼슨과 무스의 일화를 중심으로 18세기 유럽의 자연사 연구와 미국담론의 연구물로 Lee Alan Dugatkin의 [Mr. Jefferson and the Giant Moose: Natural History in Early Ameirca]란 책이 있다. 책의 표지그림이 흥미로워 글 앞부분에 삽입했다. 제퍼슨과 부폰에 관한 일화도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는 1900년도에 출간된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제퍼슨의 입장을 편집해 알파벳 순서대로 모아놓은 책인데, ‘기후’(Climate)와 연관된 글들을 참고했다. 18세기 이후 신대륙을 두고 벌어졌던 논쟁을 다룬 것으로 잘 알려진 책은 1955년 스페인어로 처음 출간된 Antonello Gerbi의 [The Dispute of the New World: The History of a Polemic, 1750-1900]이다. 라스카사스가 신대륙 원주민들의 고난을 기록한 책은 [A Short Account of the Destruction of the Indies]이다. 스페인의 남미정복 역사를 유럽과 타자의 만남이라는 개념으로 이론화 한 대표적인 저술은 Tzvetan Todorov의 [The Conquest of America]란 책이다. 헤겔의 <역사철학강의> 영어판은 온라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Sibree 번역의 [The Philosophy of History]. 헤겔과 미국의 관계를 내게 처음 소개해 준 글은 20세치 초 스페인의 철학자 Jose Ortega y Gasset이 쓴 “Hegel and America”란 글이었다. 그 후 비슷한 연구는 남미에서 해방철학을 추구해온 Enrique Dussel과 같은 이들이 제삼세계의 입장에서 진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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