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1]


경로를 벗어나기

: 소모적 공간으로부터의 탈출




 

최규창[각주:1]


 


       20여년전 내가 계획했던 학업을 모두 마치면서 나는 먼저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의 수 많은 겁박에 시달려야 했다. 편하고 자유로운 학교를 떠나 정글과 같은 직장생활에 들어서면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전쟁과 같은 상황에 시달리게 되리라는 것이다. 자신들은 그래서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그들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다만 내가 직면해야 했던 것은 과도한 업무나 피곤함이 아니라 무의미의 전쟁이었을 뿐이다. 기억해보면 매일이 고민의 연속이었던 20대의 삶이 나에게는 더욱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IMF 구제금융 시기를 통과했던 나의 직장생활은 업무가 과도하기는 했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 항상 답이 나오는 일이었고, 나름 성취감도 있었기 때문에 선배들의 말처럼 이곳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메를로-퐁티의 말대로 우리의 의식과 세계는 일종의 '순환적 인과성'을 가지는데, 이는 인간의 의식이 세계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동시에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체는 존재하기 위해 다른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하지만, 현상학적으로 우리의 의식은 항상 '무언가에 대한' 의식이기 때문에 자기의존성이나 독립성이 성립하지 않는다. 의식과 세계의 관계는 우리의 경험의 지평에서 거시적, 미시적으로 항상 포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런 역동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점점 무뎌져 가는 것을 느꼈다. 말하자면 내가 보기에 주식회사 또는 자영업을 기반으로 소비를 촉진하는 형태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구성원의 의식과 세계의 인과성 경험을 극히 일부의 시스템 내로 제한하고 그것을 반복시키는 체계였다.  

       인생의 과제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오늘날 대다수가 살아가는 삶의 패턴은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다. 마치 젊은 시절에는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희생하고, 늙어서는 건강을 일부나마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써야 한다는 우스개소리처럼, 생업이 결부된 일상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의식의 지향성이란 기껏해야 조직이 지시한 과업의 종착점, 또는 보상이나 대가에 대한 기대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지향성이 미시적 영역에만 머물러 있을때 우리가 기술적 질서가 지배하는 이 지독한 '무의미의 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한은 그리 길지 않다. 결국 우리는 항상 다른 것, 본질적인 것을 지향하게 되고 그것은 곧 다른 공간에 대한 욕구와 이어진다. 결국 나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기로 했다. 그 후 한동안의 방황은 마치 경로를 잘못 들어섰을 때 계속 경고를 날리는 네비게이션 ‘미쓰 김’의 다급한 목소리같은 수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어린 아들을 키우는 아내가 쌀독에서 쌀이 떨어져간다고 슬쩍 내비치는 목소리에 의해 증폭되어, 나에게 더욱 많은 혼란과 고통을 야기시켰다. 그 때 내가 가장 집중했던 것은 무모하게 목표를 높게 설정한 법인사업과 새로운 개념의 공동체 세우기 작업이었다.   

      일상의 틈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일상은 존재양식이 굳건하고, 경로가 분명하며, 시간과 공간에 의한 자기 분열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상은 의식의 지향성을 제한함으로써 순환적 인과성의 균형을 허물뿐 아니라, 반대로 의식에 의해 포착되는 것도 거부함으로써 어떠한 의미도 명확히 생성되지 못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인간은 늘 인생의 의미를 생각만 하면서 인생을 다 보내게 된다. 경로를 이탈하지 않으면 틈이 만들어지지 않고, 틈이 없으면 의미도 파악되지 않는다. 그리고 틈이 만들어지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시공간은 다시 하나의 ‘전체’로 인식되어 의미를 소거해 나간다. 대략 우리는 10년 단위로 인생이 화살처럼 지나가는 것을 인식한다. 승진, 이직 같은 사회적 역할수행이 대략 그 주기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로 이탈도 일어나지 않는 그 10년은 사실 '하나의 공간'처럼 인식되고, 반복학습되는 습성 외에는 전후좌우의 구분도 의미가 없어진다.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내가 더 이상 동일하지 않은 사건, 나에게 공동체는 그렇게 인식되어야만 했다.   

       보통 기독교인이 일상의 균열을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노력들은 정기적 모임이나 기독교 외부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나 역시 매 주 두 세 군데의 성경공부 모임과 종교/시민사회 영역의 모임, 교회 활동 등에 참여해 왔다. 그러나 ‘모임’ 수준의 활동은 삶의 변화를 가져올만한 충분한 밀도를 제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모임 자체의 유지를 위한 에너지가 너무 과다하여 쉽게 지치고 오래 지속되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구성원들의 삶을 죄어오는 삶의 이슈들은 모두가 나누고 공유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이 밀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주거를 함께 하는 공동체였다.

       처음에 우리는 같은 동네에 모여사는 공동체를 생각했다. 하지만 가정간의 물리적 거리는 공동체의 목적 달성과 반비례한다는 점을 금방 인식할 수 있었다. 서로 길 건너편에 사는 가정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이슈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우리가 계획한 방식이 아니었다. 먼길을 가기 위해서는 천천히 가야 하는 법이다. 결국 우리는 목적의 경중을 떠나 서로 밀접하게 얼굴을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선택했고, 급기야 땅을 사서 함께 들어가 살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아무런 경험도 없고 모두 각자의 직장 일로 정신없이 바쁜 이들이 추진하는 일이 순조롭게 될리도 없었거니와, 건축주가 종일 감독을 해도 스트레스로 10년 늙는다는 집짓기를 우리 여섯 가정이 기한 내에 해 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대가로 우리는 매우 혹독한 시련을 맞았고, 꽤 큰 재정적, 시간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수 차례 공사가 중단되고, 모두가 전재산을 날릴뻔한 위기를 여러 번 맞이했다. 하지만 이 경험은 반대로 서로 굳건한 연대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합리적 대안이 도저히 만들어지지 않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집단적 무의식 속에 어떤 공통적인 경험을 가지게 된다. 일종의 체념이나 비움의 경험인데, 이것을 함께 겪는 사람들이 가지는 연대는 특별한 것이었다. 그 절정에 있었던 것이 바로 분양 사기를 당한 일이었다. 공동체 구성원 여섯 가정이 살 집을 제외한 나머지를 분양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들마저도 속일 수 있는 고도의 심리술을 가진 이들에게 주택을 몇 채 넘겨줘버리는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진정한 사기는 언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황과 맥락을 이용하여 신뢰의 공간을 만들고 입체적으로 대상을 공략하는 기술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말은 맥락과 증거로 분석할 수 있지만, 입체적인 공간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한번 만들어진 신뢰의 공간은 말에 의해 허물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기는 여지없이 성공하게 된다. 결국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우리는 이 사건을 복구하기 위해 2년간 기나긴 법정 싸움을 하게 된다. 결국 공동체는 '시작이 미약했던’ 수준이 아니라 마이너스 상태로 출발하게 되었다. 나중이 ‘창대하게’ 되리라는 보장 역시 전혀 없었다.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 

       정말 중요한 문제는 당시에도 너무나 흔했던 공동체라는 말의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공동체 자체가 하나의 공간이지만, 공동체란 구성원들이 각자의 공간을 점유하는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거기서 인간으로서 인정을 획득한다. 그리고 그것이 공동체안에서 이루어지면 그 공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괴테의 유명한 싯구처럼 우리에게는 '들판과 숲과 바위와 정원이 언제나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대가 그곳들을 장소로 만든다.’ 각자가 가진 자기 몫의 ‘공간'은 공동체를 통해 ‘장소'로 전환된다. 따라서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선호하던 급진적 형태의 경제 공동체를 지양하고,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고 공통점을 찾아가는 작업을 거치기로 결정했다. 보통의 기독교 공동체가 가지는 정언적 질서와 분명한 목적의식을 일단 소거하는데는 많은 고통과 불안이 뒤따랐다. 우리는 경로를 벗어나 다른 길을 만들어보기로 한 이상 이 작업을 '언젠가는 다시 큰 도로와 합류할’ 성격의 안전망 안에 두는 것도 포기하기로 하였다. 각자의 공간과 삶의 여정을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구체적인 정체성에도 귀속되지 않으면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임의적 특이성’(아감벤)을 불러내는 일이기도 했다. 굳이 윤리적이거나 신학적, 정치적이지 않아도 각자에게 주어진 길로 ‘참 인간됨’을 성취해 갈 수 있는 기반으로서 공통의 장소를 제공하는 (루소의 이상과 같은) 유기체적 소시민 사회로서의 공동체를 생각했던 것이다. 분명 우리 개개인은 각자에게 주어진 윤리적 명령에 나름 충실했다고 생각하지만, 공동체의 목표가 명확하게 ‘선교’를 향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부담을 주었다. 정말 벤야민이나 아감벤이 말한대로 ‘세속화’(적극적으로 교리적 삶을 노정하지 않는다는 면에서)와 메시야적인 것이 긴밀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면, 각자가 자기의 존재방식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담아낼 수 있다면, 이것이 공동체의 새로운 경로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생각이 반드시 정당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기존의 공동체들이 지속적인 모델로 남지 못하는 한계는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서로를 존중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규칙이나 강령이 없이 공동체를 시작해 보기로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존재방식을 존중하면서도 모두 공유하고 있는 교집합 지점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세워가야했기 때문에, 결코 큰 규모를 지향할 수 없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연결하는 느슨하고 질긴 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어쨌든 공동체는 우리가 모두 사람이라는 점 외에, ‘공동’하는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운동의 중요한 요소인 구현 가능성, 지속 가능성, 재현 가능성의 문제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공동체 기획은 ‘연대’를 통한 가능성의 문을 여는 것이었다. 흔히 기독교인의 중요한 정체성의 하나를 세상과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라고 가정하지만, 이것은 사실 가능하지 않은 이상이다. 보통 환대를 사적 공간의 포기와 연결짓기 때문에 이러한 의지에는 한계가 명확히 설정된다. 김현경(<사람, 장소, 환대>)이 말하듯, '사적 공간의 개방'과 '공공성의 창출'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공공성의 창출은 오히려 사적 공간을 보호하고 확장시킬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이나 한 가정은 진정한 환대와 용서를 하나의 이상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공동체는 그 이상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마치 기독교 신앙이 현실과 무관한 ‘종말'을 현재의 실존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도록 하듯이, 무조건적 환대의 불가능성도 공동체라는 구조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이며, 원칙론적 규범에서 실천 가능한 규범으로의 전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임의적 특이성’을 추구하는 나의 공동체에서, 나는 실재로 한 가정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 심리적, 정치적, 사회적 차원에서 공동체가 구현해 내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것은 현재 우리의 생활세계가 쳇바퀴로 고정되어 있는 거대한 체계 속에서, 일종이 균열과 새로운 가능성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것은 일종의 플렛폼으로서의 공동체 개념이다. 마치 컴퓨터의 운영체계(OS)나, 휴대폰에 내장되는 미들웨어처럼, 일단 구동되면 어떤 기능이든 어플로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는 그런 상황과 비슷하다.   

       이렇게 우리는 주거공동체를 짓고 13년을 넘게 살았다. 사실 삶은 이론보다 훨씬 강력하고 실증적이다. 심지어 삶에서 귀납적으로 구축된 이론 역시 (칼포퍼가 논리실증주의를 비판하듯이) 앞으로의 상황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복잡한 이론들도 대부분 단순한 사례에서 비롯되고, 그것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체계화되어 갔다. 프로이트도 (이후 많은 수정을 거쳤지만) 몇 명의 아이들을 분석한 자료로 그 유명한 '유아의 성욕에 관한 이론들'을 만들어 냈다. 나는 공동체에 대한 현대 맑스주의자들의 이론들이 복잡한 체험에서 나왔다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참고하거나 용어를 빌릴 수 있을 뿐, 반드시 실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이유는 없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구체성의 체험이지 이론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공동체가 지속되어 온 과정을 중심으로 내가 경험한 공동체의 동력과 삶의 이야기를 담아 보려고 한다.  


ⓒ 웹진 <제3시대>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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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저항하기, 고통에 복종하기[각주:1]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마태복음 25장 31-46절

31    "인자가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서 올 때에, 그는 자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는 모든 민족을 그의 앞에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서, 

33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37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38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39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40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41    그 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서, 악마와 그 졸개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43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어 있을 때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지 않았다.' 

44    그 때에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45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46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다."


1. 본문에 관하여

1) 행위구원론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성서 본문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비유로 분류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학자들 사이에선 논란이 있긴 하지만―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행위구원론을 보여주는 본문으로 일찍부터 해방지향적인 신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했던 마태복음 7장 15-27절의 본문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라고 말하는 로마서 2장 1-16절의 본문이나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고,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야고보서 2장 14-26절의 본문처럼 이 본문 역시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본문은 다른 본문들처럼 일반적인 차원의 도덕적 선행이 아니라, 구체화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대적 차원의 행동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관심을 끌어왔습니다. 그만큼 이 비유가 전달하는 신학적 메시지 안에는 사회윤리적인 함의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비유는 인자가 돌아왔을 때, 그는 모든 사람을 심판할 것인데, 그 심판의 기준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각 개인들이 자비와 사랑의 태도를 보여주었는가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종말에 메시아 앞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했던 소외된 이들에게 보여준 행동에 기초하여 의인으로 인정받거나 악인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구원을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믿었던 신학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신조나 의례, 예수나 기독교에 대한 지적인 이해나 고백보다,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위한 관심과 선행으로 드러난 사회적 연대의 실천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구원 및 영생의 최종적인 기준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2) 영생의 기준

오늘 본문은 양과 염소를 가르는 인자의 최후 심판의 날이 온다는 사실을 단순히 경고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최후의 심판이 내려지는가를 알리는 데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심판의 기준은 청중의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나 왼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나 구별할 것 없이 모두 자신들에게 내려진 판결을 두고 충격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데서 잘 드러납니다. 

헬라어 원문으로는 “언제 우리가 당신을 보았습니까?”(37b, 38b, 39절), 그리고 “언제 우리가 당신을 보지 않았습니까?”(44b)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자가 그들을 구별하는 것은 누구에게 그들의 선한 행위가 보여졌냐는 것입니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왼쪽에 서게 된, 즉 양으로 분류되어 복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 이유, 반대로 두 번째 그룹이 오른쪽에 서게 된, 즉 염소로 분류되어 저주받은 사람으로 판정받게 된 이유는 메시아가 행한 두 개의 답변에서 잘 드러납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40절) 그리고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45절). 

가장 놀라운 대목은 예수의 현존이 “굶주린 사람들, 목마른 사람들, 나그네 된 사람들, 헐벗은 사람들, 병든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예수의 형제자매였던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이었다는 것, 즉 예수는 그들과 자신을 철저하게 동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식적인 기독교 신앙에 근거하여 행동했기 때문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도 몰랐던 사이에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돌보았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언제 우리가 당신을 보았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보았던 바로 그때였다고 말합니다. 

3) 값싼 행위구원론

자, 그렇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이렇게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인식하고 그들을 최대한 잘 돌봐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이 비유가 복음서에 기록될 당시의 맥락에서, 이 본문이 증언하는 그 이웃 사랑의 행위가 갖는 당시의 역사적-사회적 무게를 헤아리지 않고, 우리 시대로 곧바로 가져와서 문자적으로 적용할 경우, 이 본문은 값싼 행위구원론의 전거로 소비되기에 안성맞춤이 아닐까 의심하게 됩니다. 부지불식간에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푼 것이 예수에게 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현대의 기독교인들 입장에서 이것보다 더 쉽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랑의 리퀘스트’에 전화 한 통만 해도 ARS로 소년소년가장이나 결식아동, 장애인, 재해민들과 같은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고(“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교회로 찾아온 이주노동자들이나 결혼이주여성, 탈북자와 같은 우리 시대의 나그네들을 예배 시간에 환영할 수 있으며(“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아름다운 가게’와 같은 시민단체에서 주최한 바자회에 헌옷을 내놓음으로써 가난한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할 수도 있고(“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하다못해 동네마다 있는 헌옷 수집함에 옷을 집어넣어도 결과적으로는 누군가에게 입을 것을 주는 것이 됩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 정도는 봉사활동 차원에서 병원이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여 몇 시간 동안 환자들을 돌봐줄 수도 있고, 교우들이 가족들의 병문안을 갈 수도 있고(“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그리 흔한 경험은 아니겠지만 교도소나 구치소에 있는 지인을 면회 갈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렇게 일상생할 중에 큰 부담 없이 한 선행이나 봉사만으로도 최후의 심판 앞에서 그리스도를 섬긴 공을 인정받아 최종적인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쉬운 구원이 어디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어릴 적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본문이 그런 방식으로 교회에서 쉽게 소비되는 경우를 무수히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이 본문이 말하는 실천이 이토록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일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본문은 현재의 시점에선 전혀 다르게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값싼 행위구원론의 전거로 이 본문이 소비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그게 가능할까요? 


2. 마태공동체의 삶의 자리

1) 예수의 ‘형제자매들’

이 비유가 지시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비유가 누구의 입장에서 전달되고 기록되었는가를 파악하는 일이 요청됩니다. 이를 위해선 40절의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라는 표현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은 바로 그 ‘형제자매들’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성서에서 ‘형제자매’로 번역된 헬라어 원문의 단어는 ‘아델폰’(αδελφων)으로서 ‘형제’를 의미하는 남성 단수 명사 ‘아델포스’(αδελφος)의 복수형태입니다. 신약성서에서 ‘형제’라는 단어가 문맥상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의 혈연적 관계를 지시하지 않을 때, 그것은 전적으로 동일한 신앙공동체에 속한 동료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오늘날 교회에서 교우들끼리 서로를 ‘형제자매’로 지칭하는 것).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거나,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이방인들을 ‘형제’라고 지칭하는 그런 예는 성서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단어가 복수형태로 쓰일 때는 명백히 남성과 여성을 포괄적으로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비유에서 인자가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는 그 형제자매들은 기본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비유는 오직 마태복음에만 기록된 비유입니다. 따라서 학자들은 여기서 나타난 ‘형제자매들’을 마태복음과 연관된 ‘마태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혹시 마태공동체라는 단어가 생소하신가요? 현대 복음서 연구는 각각의 복음서, 즉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서의 배후에는 그 복음서의 전승을 연행하며 전달하고, 또한 문서화하여 기록하고 다시 전수했던 각각의 공동체들이 존재한다는 학문적 가설 위에서 발전해왔습니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가설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성서 내적인 증거와 교회사적인 증거들을 갖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통해 우리는 이 책 배후에 마태공동체라고 하는 미지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 마태공동체를 이해하는 것, 즉 이 비유를 자신들의 복음서 안에 담아냄으로써 자신들의 독자적인 신학을 드러내고 있는 마태공동체의 삶의 자리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이 비유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원래의 역사적-사회적 문맥 속에서 올바르게 파악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2) 사회적으로 배제당한 집단

마태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였을까요? 마태공동체의 자의식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위치를 여전히 유대교 안에 두고 있는지, 아니면 유대교 바깥에 두고 있는지에 대해선 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엇갈린 해석들이 맞서고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유대교와의 관계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어떻게 규정했든지 간에, 복음서를 통해 추정할 수 있는 그들의 사회적 현실만큼은 그들이 유대교 내에서 철저히 주변부로 밀려나있는 집단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마태복음 도처에서 확인되듯이, 마태공동체가 유대교의 다른 집단들로부터 비방, 회당에서의 채찍질, 산헤드린이나 지방 법정에 고발당함, 박해와 추방, 죽임 당함 등의 처절한 폭력을 경험한 공동체였다는 사실을 통해 충분히 입증됩니다. 마태공동체가 유대교 사회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몇 개의 본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5장 11-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예언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의 예수는 산상수훈을 통해 제자들에게 축복을 선언하는데 이는 그들이 ‘모욕’을 당하고 ‘모든 악한 말’을 듣기 때문입니다. ‘욕하다’라는 용어 'ονεδισωσιν’은 개인들 간의 직접적인 ‘비방’을 의미하고, ‘거짓으로 모든 악한 말을 하다’라는 어구는 공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특정한 방식의 사회적 비난을 의미합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런 부정적인 경험은 마태공동체가 다수의 유대교 집단들로부터 일방적으로 배제당하는 과정에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방과 비난이 ‘박해’(διωξωσιν)라는 단어와 동시에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던 마태공동체의 신앙적 일탈이 그러한 모욕과 비방의 결정적인 이유였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태공동체가 당한 박해와 비방, 모욕이 공식적인 유대교 회당 지도부에 의해서만 자행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다수의 광범위한 유대교 집단들로부터 마태공동체가 일종의 ‘왕따’, 즉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를 당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겠습니다. 사회적 배제라는 현대 사회과학의 개념이 뜻하는 바가 “다차원적인 불이익으로서 어떤 사회의 주류적 환경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포함하며, 이것이 상당기간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를 마태공동체에 적용하는 것이 그리 무리한 해석은 아닐 것입니다.  

한편 마태복음 10장 17-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회당이나 법정에 끌려 나가 채찍질당할 것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10장 22절에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고, 23절에서는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말하며, 급기야는 23장 34절에서 예수 자신이 보낸 예언자들 중 일부가 유대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회당에서 채찍질당하고 가는 동네마다 박해를 당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물론 이 모든 언급들은 마태공동체가 이스라엘 땅에서 자신들의 동족들로부터 당한 박해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랐던 이들이 겪은 사회적 배제와 집단적 폭력에 대한 기억은 로마 지배 체제에 대한 유대 민중들의 반란과 그에 대한 로마의 대대적인 진압으로 일어난 유대-로마 전쟁(서기 66-70년)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마태복음은 그 전쟁으로 인한 폭력의 경험과 이후의 여파를 처절한 언어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전쟁 당시의 경험을 마치 종말에 닥쳐 올 환난을 방불케 할 정도로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때 마태공동체와 같이 예수를 추종하던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환난에 넘겨지고 죽임을 당하며, 그들이 따랐던 예수의 이름으로 인해 모든 민족, 즉 유대인과 이방인들 모두로부터 미움을 받고, 결국엔 공동체 내부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여 서로를 적대자들에게 팔아넘기고 서로 미워하는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태공동체는 단순히 물질적 궁핍으로 인해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던 약자 계층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적 정체성으로 인해 그들이 속해 있던 사회로부터 폭력적으로 배제당하면서 빈곤과 위험에 처한 사회적 소수자 집단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본문으로 다시 돌아와서, 이러한 종교적․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속한 어떤 누군가(‘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를 도와준다는 것이 과연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는 것일지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공동체라고 하는 집단이, 우리가 별 부담 없이 도와줄 수 있는 평범한 사회적 약자계층이 아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의도적으로건 비의도적으로건 하나로 뜻을 모아 함께 배제하고 박해했던 그런 저주받은 이들에게 감히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특별한 행동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러한 소수자 집단을 향해 연대를 실천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전체적으로 그들에게 부과했던 어떤 권위적이고 일반적인 판단을 정면으로 거슬렀을 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불우이웃돕기나 약자들에 대한 자선활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서, 매우 민감한 사회적 논란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그런 비상한 사회적 연대의 행동을 의미할 것입니다. 유대교 일반과는 다른 신앙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온갖 종류의 사회적 배제와 폭력, 그리고 억압과 박해를 자초한 그런 집단을 향하여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 요즘 말로 하자면, ‘외부세력’이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자신들을 향해 연대의 행동을 보여준 그 특별한 이들에게 마태공동체는 종말에 도래할 메시아 예수의 권위에 의지하여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들을 대상으로 한 메시아의 최후 심판에서 주어지게 될 최종적인 구원이란, 바로 그렇게 마태공동체 자신들과 같은 이들을 향해 위험을 무릅쓴 연대를 실천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음을 마태공동체는 세상에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3. 어떤 ‘권위’에 복종할 것인가?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이라고 하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는 1960-1963년에 걸쳐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을 수행한 후, 그 실험에 대한 보고서를 책의 형태로 1974년에 발표하게 됩니다. 그 책의 제목은 『권위에 대한 복종』(Obedience to Authority)인데요. 제목 그대로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얼마나 권위와 명령에 잘 복종하는지에 대해 실험한 결과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지난 20세기에 이루어진 수많은 심리학 실험들 가운데 이 실험만큼 유명하고 또한 논란이 된 실험도 없을 것입니다. 

일단 실험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밀그램은 ‘기억과 학습’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실험 참가자들을 모집합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2인 1조가 되어 매회 실험에 참여하게 됩니다. 실험을 주관한 과학자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선생’으로, 다른 사람을 ‘학생’으로 명명하고, 그들에게 이 실험은 선생이 학생에게 내리는 처벌이 학생의 학습 능력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학생들이 단어를 기억하는 데 있어 처벌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라고 설명했던 것입니다. 

과학자는 이제 학생 역할을 맡은 피험자를 방 안의 의자에 앉히고, 과도한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해 양 팔을 의자에 묶은 다음, 전극봉을 그의 손목에 부착합니다. 그는 단어의 목록을 공부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틀릴 때마다 ‘선생’ 역할을 맡은 실험 참가자가 전기충격의 강도를 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얼핏 보면 실험실 안의 ‘학생’이 실험 대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알고 보면 ‘선생’이 실험 대상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학생은 밀그램이 고용한 연기자였고, 선생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이 실험의 진짜 피험자, 즉 실험 대상자였던 것입니다. 피험자의 역할을 맡은 것처럼 보이는 학생에게는 실제로는 아무런 전기 충격도 가해지지 않았고, 그는 단지 충격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연기를 할 뿐이었습니다. 물론 선생의 역할을 맡은 실험 참가자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은 고통을 호소하고 실험의 중단을 요구하는 희생자들에게 점점 더 심한 충격을 가하라는 권위적인 명령이 내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디까지 그 명령을 따르는가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실험이 진행되자, 놀랍게도 이 실험에 ‘선생’으로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생’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데도, 상당히 높은 수치에 이르기까지 전압을 높여 그들에게 충격을 가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심지어 일부의 ‘선생’들은 최고 수치로 전압을 올리라는 과학자의 명령에 전혀 토를 달지 않고 묵묵히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들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이 실험을 중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갈등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실험실의 합법적인 권위자인 과학자가 그들의 옆에 서서, 그들로 하여금 애초에 맺었던 실험 완수의 의무를 다하도록 무언의 압박을 가했습니다. 아울러 학생들이 고통을 표현할 때마다, “실험을 계속 해야 하냐?”고 묻는 참가자들에게 “전기충격이 극도로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몸의 세포 조직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히지는 않는다.”고 말하면서 실험을 계속하도록 종용했습니다. 

따라서 이 실험의 진짜 피험자였던 선생들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과학자의 명령에 계속 복종하여 학생에게 점점 더 강한 충격을 가하거나, 희생자들의 요구를 쫓아 실험을 중단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요구, 즉 권위적인 명령을 내리는 과학자의 목소리와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는 학생의 목소리 사이에서, 전자의 목소리에 복종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권위적인 명령의 목소리가 강하게 울려 퍼질 때, 자신들 앞에 다가온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그런 비도덕적인 성향이 강화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요컨대, 도덕적 책임감이 사회적 권위 앞에서 무너질 수 있음을 이 실험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실험이 모두 끝나고,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을 ‘선생’의 역할을 맡았던 실험 참가자들에게 알려주었을 때, 그들의 상당수는 학생들이 계속해서 답을 틀렸기 때문에 본인들도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즉 본인들이 희생자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낼 수 있는 여러 불가피한 상황적 요인들을 각자 나름의 변명거리들로 늘어놓았습니다. 아울러 희생자와의 거리감, 즉 희생자가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익명성이 강화될수록, 이와 같은 비도덕적 행위에 더욱 쉽사리 끌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결국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권위 있는 존재에 대한 믿음,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그 죄책감을 면해줄 수 있는 기발한 변명의 논리들, 그리고 희생자와의 거리감 내지는 가해자의 익명성에 근거하여, 그들은 비윤리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사회적 권위의 목소리에 순순히 복종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밀그램의 이 실험이 왜 ‘아이히만 실험’으로 불렸는지 이제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에 실무자로 참여했으면서도, 자신은 그저 공무원으로서 국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그래서 어떠한 잘못도 없다고 말했던 ‘아이히만’(Adolf Otto Eichmann)이라는 인물처럼, 누구라도 일정한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그 상황에서 비도덕적인 행위를 쉽게 저지를 수 있음을 이 실험은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실험에 참여했다가 학생이 지르는 비명의 소리를 듣고 실험에 계속 하기를 거부했던 소수의 피험자들도 있었습니다. 밀그램은 자신의 책에서 그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대학에서 구약성서를 가르치는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사람입니다. 물론 그 신학자 역시 처음에는 학생이 답을 틀릴 때 마다 별 다른 고민 없이 전기 충격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학생이 고통을 호소하며 실험에 저항하자 이 실험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자기 옆에 있던 과학자에게 실험을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는 학생의 저항을 무시하고 실험을 계속 하라는 과학자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고, 자신의 의지로 실험을 중단했으며, “왜 이 실험이 이 사람의 생명보다 우선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라며 과학자와 논쟁을 벌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무리 전기 충격이 세포 조직에 영구적인 손상을 가하지 않는다고 과학자가 말할지라도, 학생이 겪을 정서적인 충격과 신체적 고통이 크다는 사실을 과학자에게 일깨워주려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실험을 중단한 것을 실험실에서의 과학자의 권위에 대한 불복종이 아니라, 희생자의 요구에 복종한 것이라고 정당화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과학자의 명령과 학생의 명령이 서로 대등한 것이었고, 자신이 복종하는 대상은 과학자가 아니라 학생, 즉 희생자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신학자의 태도에 강한 충격을 받았던, 밀그램은 그에 대해 평가하기를, “그는 모든 종류의 권위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악한 권위를 선한 권위, 즉 신성한 권위로 대체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마태공동체를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과정에 일상적으로 동참했던, 혹은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무관심 속에 외면했던 당시의 마태공동체 주변에, 수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 이웃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그런 행동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유대교의 권위, 더 나아가 유대 사회의 지배적인 질서에 순순히 복종했습니다. 아울러 마태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사회적 박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마태공동체 자신들에게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고 하는, 책임 전가의 논리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태공동체는 유대교 주류가 배척했던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었던 유대교의 이단자들이었고, 이방인들에게까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나라의 축복을 개방했던 동족의 배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런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는, 즉 당시 사회가 일반적으로 합의하고 있었던 지배적인 가치관이나 세계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므로,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충분히 정당한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마태공동체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외쳤던 고통의 비명소리보다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결정과 이스라엘 사회의 전체적인 합의가 더 권위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유대교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사회적 권위의 목소리와 마태공동체의 고통의 목소리 사이에서 대부분의 유대인들, 그리고 유대인들 주변의 많은 이방인들은 전자의 목소리에 복종하고자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대교 사회의 권위적인 목소리보다 마태공동체의 고통의 목소리에 더 복종했는가를 따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단 한 사람도 없었을 수도 있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마태공동체의 고통에 응답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권위의 목소리를 거슬러서, 고통의 목소리에 그 자체에 응답했던, 즉 사회적 권위가 아니라 고통의 권위에 복종했던 그 소수의 사람들에게 메시아는 최후의 심판의 순간에 영생을 허락한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과 마태공동체가 증언하는 구원은 그런 것입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배제당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고통을 겪고 있는 바로 그런 이들의 모습으로 그리스도가 현존한다고 했을 때, 그의 부름에 응답한다는 것은 사회적 권위의 목소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모종의 결단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주어져 있는 최후의 심판이란 그렇게 두 개의 목소리 사이에서 우리가 과연 어떤 목소리에 응답했는가, 어떤 목소리의 권위에 복종했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좌우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는 영생이란 그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기존의 지배적인 사회적 가치관과 규칙 등에 정면으로 맞서서, 사회적으로 배제당하고 있는 어떤 이들에게 용기 있게 다가갈 때, 고통당하는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고, 그들의 고통의 음성에 제대로 귀 기울이고, 그들의 필요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며 그들이 벌이고 있는 운동과 실제적으로 연대했을 때 비로소 주어질 수 있는 그런 것입니다. 이 정도 말씀드린 것만으로도 마태복음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구원이란 것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무겁고 어려운 것인지를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4. “연대, 그 참을 수 없는 어려움”에 관하여

지난 금요일(2월 7일) 오전에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이 2009년에 정리해고당한 쌍용자동차 노동자 153명에 대해 작년의 1심 판결을 뒤집고 2심 재판에서 해고 무효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정리해고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던 쌍용차의 경영현황에 관한 회계장부가 애초부터 조작된 것이라고 하는 노동자들의 주장이 6년 만에 비로소 진실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그 진실이 진실로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대가가 따랐는지를 떠올려본다면, 고등법원의 이번 판결은 당연하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다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2009년 5월 22일부터 8월 6일까지 약 76일간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사측의 구조조정 단행에 반발해 쌍용자동차의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농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루액은 기본이고, 테러나 폭동 진압 때나 쓰는 다목적발사기를 및 테이저건 등을 사용하여 노조원들을 무자비한 방식으로 진압했습니다. 그전에 이미 사측은 농성을 와해시키기 위해 노조원들이 점거하고 있던 공장에 단전 및 단수 조치를 시행했고, 식료품 및 의료진·약품의 반입조차 금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농성으로 인해 64명의 노조원들이 구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속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사측이 영업손실 100억 원, 파업 진압 당시 헬기 손상과 경찰 장비 손상, 경찰 치료비 등의 명목으로 경찰이 14억7000만원, 공장에서 발생한 원인 모를 화재의 책임을 노조에게 전가하면서 메리츠화재가 청구한 구상권 110억 원을 합계하면, 해고 노동자들에게 청구된 전체 손해배상 및 구상금액은 총 224억7000만 원에 이릅니다. 너무 커서 실감도 안 나는 금액이지요.

그러나 그것으로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쌍용차 사태의 진짜 비극은 그 다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14년 2월 현재까지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 가운데 자살과 스트레스성 사망자가 총 24명에 달합니다. 《시사IN》이 2011년 3월 쌍용차 해고 노동자 4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50.4%가 자살 충동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실제 자살 시도도 많았습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인 김정우씨는 감옥에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왜 쌍용차에서 24명이 죽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한 사업장에서 이런 이례적인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사회적·경제적인 분석이 이뤄져야 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보십니까? 이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 투쟁을 벌일 당시에 76일 동안 식수와 전기가 끊어진 농성장에서 용역과 경찰로부터 수시로 끔찍한 폭력에 시달렸으며, 마지막 날 헬기에서 최루탄이 난무하고 전자총으로 폭행을 당하는 등 전쟁에 버금가는 야만적인 진압을 경험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자살이나 스트레스성 사망을 단순히 농성 현장에서 겪었던 폭력의 후유증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파업이 모두 끝난 후에도 천문학적인 손해 배상 청구소송에 시달렸고, 쌍용차 출신이라는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다른 회사로의 취업에도 어려움을 겪었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 전체로부터 자신들의 선택과 저항과 고통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인정’과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이 그 죽음의 진정한 원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들의 자살과 스트레스성 사망은 경제적 어려움 탓도 크지만 파업 이후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버림 받았다는 고립감, 본인들이 무가치하다는 자존감 상실,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냉담함과 갈등 등 여러 사회심리적 요인에 의해 촉발되었습니다.

국가와 회사, 언론, 정치권, 고용시장, 지역사회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시민사회 등으로부터 이들은 공공연한 비방과 모욕, 박해, 처벌, 무관심과 냉소, 따돌림 등을 지속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결국엔 그 ‘한’맺힌 분노와 슬픔이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떠돌면서 연쇄적으로 또 다른 죽음을 불러온 것이 아닐까요?

결국 24명의 사람들이 죽음으로 자신들의 정당함과 그 고통의 억울함을 호소하기까지, 우리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고통과 저항의 목소리에 귀기울기 보다는 국가와 자본의 권위적인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국가와 자본의 목소리를 거스르고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다시 말해 사회의 권위적인 목소리가 아닌 고통 받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그 자체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우리는 잘 압니다. 

6년 만에 법원이 정리 해고 무효 판결을 내리기 전에, 이미 공개된 다양한 증거 자료들을 통해 드러난 사실들만이라도 제대로 믿었더라면, 아니 그전에 노동자들의 주장에 관해서라도 제대로 귀를 기울였더라면, 2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계의 상황에 내몰려 죽임당하는 그런 비극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끝내 그들의 죽음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저항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정당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그들의 고통에 있는 그대로 다가가 그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얼굴을 마주해야 할 우리 주변의 고통 받는 이웃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그리 착하거나 유순하기만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도처에서 폭력적인 결말을 담은 비유가 많이 등장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오래 시간 동안 겪은 폭력과 배제의 경험으로 인해 마태공동체의 내면은 피폐해졌고, 분노와 복수의 감정이 시시때때로 공동체 내부의 구성원들을 향해, 또는 공동체 바깥의 타자들을 향해 돌출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여러 상처 입은 저항자 집단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저와 여러분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일단 우리 스스로가 사회적 편견이나 자기 검열의 심리기제를 깨뜨리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지만, 무조건 다가간다고 해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찾아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어떻게 말을 건네고 어떻게 그들을 도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역시 우리에게 남겨진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신앙에 대한 최후의 평가가 바로 그렇게 어렵고도 힘겨운 연대의 실천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서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과연 누구의 목소리에 복종할 것이냐고. 사회의 명령과 권위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고통의 비명소리에 복종할 것인가. 누구의 얼굴을 볼 것이냐고. 국가의 얼굴, 자본의 얼굴을 볼 것인가, 아니면 고통당하는 이웃들의 얼굴을 볼 것인가. 그 목소리를 듣고, 그 얼굴을 보고도 그들을 외면할 것이냐고. 지금 그 목소리와 얼굴 속에서 예수를 보고도 그렇게 외면할 것이냐고 말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미래도 결정될 것입니다. 우리를 어느 한쪽으로 분명히 이끌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그 어느 한쪽의 사람들의 얼굴에서 바로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그래서 마침내 그분의 손을 기꺼이 붙잡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2014년 2월 9일 천안살림교회 예배 설교문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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