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통신> : 미국 대선을 통해 본 한국 대선 읽기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Hyde-Park 사람들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된 다음 날(11월7일) 시카고 신학교 채플에서 시카고 대학 역사학 교수로 있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저자이기도 한 부르스 커밍스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미국 대선이 어제 진보진영(?)의 승리로 끝났고, 이제 남은 우리나라 대선에 대한 전망을 듣기 위해 학교로 가는데, 학교 진입하는 골목마다 경찰들이 깔려 있어서 시간이 좀 걸렸다. 오바마가 지금 하이드팍에 와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지역이 몇 군데 있는데, 시카고 남부 하이드팍(Hyde-Park)이 그 중 하나다. 시카고대학을 끼고 있는 이 지역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후계자라 여겨지는 흑인인권 운동의 대부 제시 젝슨 목사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고, 그 밖의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담론들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미국진보 진영의 몇 안 되는 거점이다. 오바마의 집이 바로 이 하이드팍에 위치한다. 오바마는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상원의원시절부터 이곳 하이드팍에 살았고, 오바마의 부인 미셀 오바마는 시카고 대학 병원 행정부원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오바마의 아이들은 시카고 대학내에 있는 부속 중고등학교에 다녔는데, 가끔 아이들을 학교에 ride해 주는 오바마의 모습이 종종 목격되기도 했었다. 우리학교 지하에 위치했던 서점에서 갓 출간된 오바마의 책에 대한 사인회도 열렸고… 이렇듯 하이드팍에는 오바마의 흔적과 추억이 곳곳에 서려있다.

미국 대선의 계산법

대선이 있기 전 하이드팍 사람들은 오바마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여론조사의 추이만을 따져보자면 만만치 않은 접전이 예상되었었다. 미국은 주마다 대통령 선거인단 수가 다르고, 주단위 선거인단 투표에서 승리하면 그 주 선거인단 수 전체가 모두 해당 대선 후보의 표가 된다. 이런 이유로 전국단위 선거인단 투표율에서 승리했지만, 선거인단 수 확보에 실패하여 대통령이 안된 케이스도 있다. 2000년 공화당 부시와 민주당 엘 고어가 맞붙었을 때가 그랬다. 이번에도 오바마와 롬니 간 투표율에서는 별 차이 없었는데, 선거인단 수에서는 오바마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늘 그랬지만 경합주들의 표심의 향배가 승부를 결정지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나름 확고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우리나라보다 더함). 그래서 공화당의 지지기반인 남부 바이블벨트로 상징되는 지역에는 민주당이 선거운동을 포기하고, 민주당의 지지기반인 뉴욕, 시카고, 샌프란 같은 대도시의 표심에 공화당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당락의 관건은 소위 Swing State라 불리는 경합주들의 향배다. 이것이 미국 대선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게임의 법칙이라 볼 수 있다. 플로리다,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위스콘신, 버지니아, 아이오하, 뉴햄프셔, 콜로라도 등이 대표적인 Swing State이다. 대부분 미중서 백인 밀집지역에 몰려있다. 오바마는 초접전이 되리라고 보았던 지역들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대의원수를 확보하여 332명(오바마가 얻은 선거인단수)대 206명(롬니가 얻은 표)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오바마가 잘 해서라기보다는…

오바마 승리의 요인에 대한 많은 분석들이 있었다. 막판에 몰아친 허리케인 샌디가 롬니의 열기를 식혔다는 의견에서부터 여성결정권(낙태)을 둘러싼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망언이 롬니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에 이르기까지 이번 선거 역시 많은 이야기 거리들을 남겼다. 사실 이번 대선은 4년 전 과는 달리 오바마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커서 오바마를 선택했다기보다는, 롬니에 대한 경계와 불안 때문에 오바마를 택한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오바마 1기는 전 부시 행정부의 무리한 전쟁으로 엉망이 된 경제상황, 그로 인한 국론분열, 전쟁 종주국이라는 국제사회에서 추락한 미국의 위상 등 어느 것 하나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있었던 것이 없었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딴지에도 불구하고 나름 소신껏 경제회생의 의지를 관철시켜 실업률을 선거막판에 7%대로 떨어뜨린 점, 의료보험과 이민법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는 점 등이 그나마 오바마의 자존심을 세워준 부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7%후반에 머물고 있는 실업률,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실물경제, 미국민들이 갖고 있는 강한 미국에 대한 미련과 미국의 대외정책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불신 사이에서 어떻게 대외정책을 지혜롭게 풀어가야 하는지의 문제, 이번 선거에서도 하원 장악에 성공한 공화당, 풀리지 않는 난제인 이스라엘과 중동평화 등등 오바마 집권2기 역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고, 그렇다고 특별히 뾰족한 돌파구는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오바마의 지난 4년을 학점으로 따지만 B- 정도, 그리고 앞으로의 4년도 전체적으로 흐림의 상황인데 미국민들은 다시 오바마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민들은 왜 다시 오바마를 선택했고, 이번 미국 대선의 메시지를 한국대선에 어떻게 감정이입을 시켜야 할까?

부시의 망령 

필자가 보기에 가장 큰 오바마의 승리요인은 공화당의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막혀있는 태도에 대한 반사이익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미국이 영국 식민지 시절 무리한 조세강요에 항거한 ‘보스톤 차사건’(Boston Tea Party, 후에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됨)에서 유래했다는 ‘티 파티’운동은 오바마가 추진하는 각종 경제개혁에 발목을 잡으며, 국가안보 최우선(테러와의 전쟁), 전 국민의료보험 확대 반대에 목소리를 냈는데, 이는 전통적 공화당 지지자들을 하나로 묶는 데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부동층을 끌어안는 데는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하였다. 롬니는 오바마와의 1차 TV토론을 거치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나름 보수적인 이미지를 벗고 중도적 이미지를 보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롬니는 선거운동기간 내내 공화당 출신의 전임 대통령 부시와 비슷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무지 애를 썼지만, 그가 말하는 공약들은 미국민들로 하여금 부시의 악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기업들에게는 세금인하, 친재벌, 탈규제를 약속했고, 불공정무역에 대한 보복을 강조하면서 중국을 몰아부치며 다시 냉전의 분위기를 연출하려 한다는 점, 오바마의 어정쩡한 정책들이 미국의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켰기에 ‘강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점 등 롬니는 너무나도 Bush스러웠다.  지난 4년으로 부시를 잊기에 미국민들은 부시에게 당한 것이 너무나 많았고 혹독했다.

너무나 닮은 롬니의 사람들과 박근혜의 사람들

롬니의 지지세력은 백인, 부자, 남성들이었다. 이는 오바바의 지지층인 유색인종, 가난한 자, 여성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표심이었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여성결정권(낙태)을 찬성하는 오바마에 맞서 보수적 기독교 세력들의 표를 규합하기 위해, “강간에 의한 임신도 하나님의 뜻” 혹은 “강간으로 임신이 안 된다”는 망언을 일삼았다. 그야말로 남성우월주의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이런 구태는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쳐 20대 유권자의 60%, 30대 유권자의 55%를 오바마로 향하게 했다. 공화당의 여성비하는 여성표에도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쳐 여성유권자의 55%가 오바마를, 44%가 롬니를 지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도 정치권에서 발생하는 여성비하 발언과 성추문 사건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사례가 한 두 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온도차는 미국 유권자들과는 전혀 반대다. 예전에 최연희, 박계동 같은 사람들 식당여주인, 여기자 성희롱 사건이 터졌을 때 뻔뻔하게 응수했던 것 기억해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이미지에는 별반 타격이 없었다. 성희롱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던 한나라당 사람들이 버젓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로 무사히들 안착했다.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면서  ‘당대표가 여성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성희롱당’ 이미지 성립이 불가되고 있지 않는가?’라는 물음을 가진 적도 있었다. 문제는 박근혜의 ‘여성성’이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아니, 지금 생각해 보니 그녀의 의지대로) 반(反)여성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여성성은 철저히 가부장제에 기생하는 여성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는 한국 여성운동의 최고 수혜자일는지 모르겠다. 모든 사회운동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운동의 열매는 투쟁한 당사자들보다는 권력에 근접한 사람들이 맛보기 마련이다. 여성운동 역시 가부장제 사회의 기득권과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여성이 최대 수혜자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물론 그 여성은 힘있는 아버지를 둔 딸들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그 굴레가 딱 대통령의 딸, 재벌의 딸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2012 미국 대선 총평, 그리고 한국 대선

한국에 조.중.동이 있다면 미국에도 그에 못지 않는 수구, 보수 언론이 많다. 대표적인 것인 폭스 뉴스와 러시 림보인데, 그곳에 등장하는 조갑제 같은 보수언론인들의 땡깡과 억측과 막말이 이번 미국 대선에서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공화당의 꼴통 이미지를 더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독설로 유명한 폭스뉴스 진행자 빌 오라일리는 6일 선거가 끝난 후 이런 말을 하였다: “미국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미국이라 할 수 없다. 미국의 인구분포가 바뀌어 백인들이 이제는 소수파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말이다.  아직까지 패배의 원인을 정확하게 감지 못하는 미국 근본주의 세력의 현실감각을 잘 표현해주는 논평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미국대선은 시대의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에서 공화당의 롬니보다 오바마의 자유로운 이미지가 아직까지 미국 유권자들에게 약발이 먹히고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대선 때마다 공화당이 물고 늘어졌던 낙태와 동성애 문제에 먼저 선수를 치면서 공격적으로 맞섰고, 의료보험, 이민법 문제 등에서 보여준 오바마의 제스처는 다문화 사회를 걸어왔고, 지향하는 미국의 정체성과도 부합하는 일관된 태도라 볼 수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최초로 레즈비언 상원의원이 탄생했고, 메인주와 메릴랜드 주에서는 동성결혼이 투표로 합법화되어 미국 내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주의 숫자를 아홉으로 늘렸다. 콜로라도와 워싱턴 주에서는 마리화나가 합법화되었다. 이로서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주가 19개에 이르렀다. 한국에 계신 분들은 미국 사회가 망조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으나, 미국 사회가 매우 치열하게 차이와 다름에 대해 고민하고 몸부림 치면서 다양성을 수용하는 최적의 방식을 놓고 숙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이제 12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우리는 미국 대선으로부터 무엇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까? 앞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오바마는 유색인종, 가난한자, 여성들에게 표를 얻어 대통령에 재선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오바마는 흑인의 93%, 히스패닉의 71%, 아시아계 70%, 여성55%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이들을 무조건 가난한 자 혹은 소수자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백인 남성 위주의 미국 주류사회에서 상대적 약자였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들은 본인들에게 덧칠된 사회적 약자라는 굴레를 극복하고 자신의 계급과 사회적 위치를 자각하면서 그것을 배신하지 않은 채 적극적으로 이번 대선에 참여하였다. 즉 자신의 계급에 반하지 않는 정치 참여가 미국사회를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는 말이다.  4년 전 이명박이 당선되었을 때,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다: “국민은 무능보다는 부패를 선택했다.” 그 다음해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은 서울 강북을 싹쓸이했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지난 선거에서 자신의 계급을 대변하는 후보보다는 자신이 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부추기고 그 환상을 계속 주입하는 후보에 한 표를 행사했다는 말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그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남아 있는 대선 기간 동안 자신의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자기의 입장과 계급과 위상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각자가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일 날, 나의 신념에 부합하는 한 표를 정직하게 행사한다면, 우리사회가 조금 앞으로 옮겨지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답답한 마음은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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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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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20 22: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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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태씨, 이 기사는 내려주시죠. 보기싫군요.

미국 이민법을 바라보는 데리다의 시선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지난 웹진46호에서 필자는 데리다의 ‘해체’에 대한 범박한 정리를 시도하였고, 이어서 데리다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진보. 보수 각 진영이 보이는 (데리다에 대한)입장의 차이와 의심의 근거를 잠시 설명한바 있다. 이번 웹진에서는 올해 미국 대선의 최대 이슈로 등장한 이민법에 대한 데리다의 입장을 따라가면서 데리다의 해체주의와 좀 더 친근하게 놀아보기로 하자.

 

프롤로그:  2012년 미국 대선의 관전포인트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올해 대선을 치룬다. 재선을 노리는 민주당의 오바마와 공화당의 룸니의 대결로 좁혀진 미 대선은 몇 가지 측면에서 보수와 진보진영 사이의 첨예한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동성애, 이민법, 그리고 의료보험 논쟁이 그것이다. 우선 지난 5월 오바마가 동성애 결혼 지지선언을 미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하여 공화당에 먼저 싸움을 걸었다. 전통적으로 대선때마다 공화당은 낙태와 동성애 이슈를 물고 들어와 보수기독교세력의 표를 결집시키면서 상대적으로 진보적 의견을 피력하던 민주당 후보의 발목을 잡아왔었다. 특별히 200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부시와 민주당의 케리가 맞붙었을 때,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명백한 사기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소위 ‘도덕적 승리(moral victory)’를 모토로 미국 기독교 우파의 결집을 이끌어내는데 공화당이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이란 물론 낙태금지와 동성애 반대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다르다. 먼저 오바마가 공화당을 상대로 공격적으로 동성애 문제에 시비를 걸었다. ‘변화와 희망’으로 상징되었던 오바마의 개혁적 이미지를 다시 곧추세우고, 다소 느슨해져버린 진보진영 표심을 회복하려는 속셈이 깔려있다는 정치평론이 등장했고,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동성애 결혼을 찬성하는(47%) 비율이 반대하는(43%) 의견보다 높게 나타나 공화당을 경악시켰다. 앞으로 남은 대선 레이스에서 공화. 민주 양당에 동성애 이슈가 어떻게 작동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동성애 이슈 못지않게 이번 미국 대선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은 이민법에 대한 양당의 입장이다. 지난 2012년 6월 25일 미 연방대법원은 애리조나 이민법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다.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서 수시로 국경을 넘는 멕시코 불법이민자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애리조나 주정부는 지난 2010년 재정한 이민법에서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반인권적 조항을 삽입하였고, 이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는 애리조나 이민단속법이 연방정부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는 제소를 대법원에 제출한바 있다. 대법원 판결은 애리조나 이민법 가운데 문제가 되었던 4개 조항 중 3개가 위헌이라고 밝혔다. 위헌으로 판결된 3개의 조항은 다음과 같다: (1)이민자가 합법 체류신분 증명 서류를 소지하지 않을 경우 이를 범죄로 간주하는 것, (2)공공장소에서 불법체류자들의 구직행위를 불법화한 것, (3)추방 가능한 범죄가 의심되는 이민자를 경찰이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한 것 등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교통법규 등 다른 위반으로 경찰의 검문을 받을 때 체류신분이 의심될 경우 합법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 제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위헌 소지가 분명치 않다는 판결을 내려 많은 이민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 직후 잰 브루어 애리조나 주지사는 “경찰 검문권 조항을 즉시 시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혀 불법체류자 단속을 강하게 암시하였다. 애리조나 이민법 판결로부터 촉발된 이민법논의는 올 미국 대선을 좌우할 뜨거운 감자로 등장할 것이다. 

 

데리다의 유로 2012 관전기

 

데리다 본인은 부인할 수도 있겠으나, 현대철학의 흐름속에서 데리다는 시종일관 해체를 자기 사유의 주제로 삼았던 인물로 기록된다. 하지만, 데리다를 읽는 필자는 늘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가 뭐지?’를 놓고 계속 고민해왔다. 데리다의 저서들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뭔가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데리다 특유의 사유와 레토릭을 경험하면서, 필자는 데리다의 해체는 해체의 대상, 그리고 해체 후에 도래할 또 다른 내용에 포커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데리다가 취하는 태도와 방법이 오히려 해체를 이해하는 중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개념에 대한 신뢰와 개념은 미끈하게 설명되어져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던 필자에게 데리다는 매혹적인 인물임과 동시에 위험한 인물이다.  
이렇듯 데리다에 대한 동경과 좌절이 마치 미친x 널뛰듯 오락가락하던 내게 얼마 전 끝난 유로 2012에서 스페인 축구팀이 선보인 ‘제로톱’ 전술은 데리다의 해체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통로가 될 법도 하다. 펠레나 마라도나, 호나우도가 차지했던 센터포드 자리를 텅 비게하는 스페인의 제로톱은 기존 축구 전술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낯선 사건이었다. 센터포드 자리는 비어있는 기표이고 그 자리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기존의4-3-3이니 4-4-2니 3-5-2니 하는 축구의 전술은 수비-허리-공격을 분할한 후 나름의 입장과 역할을 전제로 한 전술이었다. 사람들은1974년 독일 월드컵때부터 등장한 요한 크루이프로 상징되는 네델란드의 토털사커가 기존의 축구전술을 뒤엎는 세계 축구계의 혁명적 사건이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는 엄격히 말해 공격과 수비수간의 간격을 30-40m 내외로 유지하는 현대 압박축구의 기원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공격수와 수비수간의 경계를 허물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유로 2012에서 선보인 스페인 축구는 <공격-허리-수비>라는 기존의 체제를 완전히 해체시켰다. 백넘버 상으로 공격수와 수비수를 구별할 수 있겠으나 수비수도 기존의 수비수 개념이 아니다. 양쪽 윙은 끊임없이 오버래핑에 가담하고, 중앙수비수들은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거나 제공권 확보를 위해 센터포드 위치로 이동한다. 적절한 비유가 될런지는 모르겠으나 스페인 축구팀은 마치 영화 테미네이터 II에 나오는 은색 액체 괴물로봇 T-1000 같다. 그 놈은 팔이 녹아내리면 다시 합성이 될 때 팔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리가 되기도 하고, 머리는 계속 머리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녹았다가 다시 재생될 때 손이 되거나 배 부위가 되기도 한다. 정말 괴물이다. 스페인 축구가 그렇다. 역할해체, 영역해체를 통해 스페인 축구는 세계 축구계의 괴물로 진화하고 있다. 스페인 축구가 이런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패스에 있다. 다른 세계적 수준의 팀에 비해서도 스페인 축구팀의 패스회수가 3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한다. 기존의 시스템에 입각한 축구는 수비에서는 쓰리백, 포백, 공격에서는 원톱, 투톱, 허리에는 중원을 지휘하는 지단 같은 플레이 메이커 등 선수 개개인의 역할과 전술이 주어져 있었고 그것이 얼마만큼 유기적으로 작동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렸다. 미리 약속된 패턴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스페인은 다르다. 수없이 이어지는 패스와 그 패스를 통해 창출되는 순간적이고 무계획적이며 불특정한 공간에 불특정한 다수가 마치 벌집에 벌들이 드나들 듯 골대 주변에서 난장을 부리다 칼침을 놓는다.
지난 웹진(56호)에서 필자는 데리다의 사유의 궤적을 언급하면서 데리다 초기를 나타내는 키워드로 산종, 대체보충, 차이 등을 지목하였고, 후기 데리다는 유령, 정의, 법, 메시아성, 환대 등의 용어가 중심을 이룬다고 했었다. 이 모두가 ‘해체’라는 강력한 원톱을 중심으로 움직일만도 한데, 정작 데리다는 본인이 해체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조차 거북하게 생각했었다. 데리다는 ‘해체가 무엇이냐?’ 는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장의논리에 입각하여 ‘산종’을 이야기 할 때도 있었고, ‘유령’을 언급할 때도 있었다. ‘차이’를 강조했다고는 하나, 어느 날에는 느닷없이 ‘법과 정의’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해체’라는 말을 가급적 자제하며, 스페인 축구로 비유하자면 ‘제로톱’ 전술을 구사하면서, 데리다는 그 비어있는 해체의 중핵을 메우려하지 않았다. 스페인 축구팀이 굳이 센터포드를 두지 않고 제로톱 전술을 구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해체의 철학자 데리다! 하지만, 해체는 제로톱이고 공갈이다. 그 공갈은 차이, 유령, 환대, 대체보충, 산종, 정의, 메시아성 등의 이름으로 옮겨다니면서 기존 지성계의 판을 어지럽힌다. 그렇다면, 데리다가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노렸던 것은 무엇일까? 물론, 골을 넣는 것이겠지. 그 Goal은?

 

다시, 데리다를 생각하다.

 

데리다가 시종일관 그의 사상 전체를 관통하면서 집착했던 문제는 결국 ‘경계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경계의 문제’는 서구 철학의 전통에서 볼 때 안과 밖의 문제, 즉 경계의 이편과 저편, 내부와 외부, 주체와 객체를 분할하여 이편과 내부와 주체에게 권리와 자격을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종국에는 정치적/윤리적 문제로 귀착된다. 데리다는 이 경계의 조건들이 무슨 장엄하고 숭고한 원칙과 대의가 아니라, 실상은 임의적인 땜질과 봉합, 그 권위의 원천이 다분히 자의적이고 우연스러운, 그래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게다. 그러니 제발, 앵글로 색슨이나 게르만이나 유대인이라고 목에 힘주지도 말고,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에 산다고 거드름 피지 말라는 말이다.
다시 서두에서 언급했던 미국 애리조나 이민법 문제로 돌아가 데리다식 국가관에 대해 생각해보자. 종교개혁과 산업혁명을 거치며 중세 봉건주의는 서서히 파국을 향해 치달았고, 새롭게 등장한 시민계급은 전시대의 강제와 규율이 아닌, 자신들의 이드와 이익을 존중하고 보장해줄 새로운 형태의 통치시스템을 요청하게 된다. 근대 국가 형성에 영향을 끼친 루소의 ‘사회계약설’에 의하면, 국가는 구성원 전체가 가진 공동의 힘으로 개인의 신체와 재산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고, 개인은 국가란 이름으로 결합되나, 국가의, 국가에 대한 결속과 연대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관과는 비교가 안되는 느슨한 것이었다. 어쩌면 국가는 새롭게 분출되는 시민계급의 well-being(잘 먹고 살 사는 것)을 위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시민계급에 의한 (중세 봉건시대와는 다른) 권력의 사회적 재전유, 그것이 바로 근대국가의 탄생이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억측일까?
내셔널리즘이라는 담론은 근대라는 시간과 공간, 즉 담론을 규정하는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그 권위가 확립되는 것이지, 국가 자체에 무엇인가 숭고하고 고유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 단군의 자손, 아리안의 후예 등 온갖 종류의 국가담론과 민족신화는 안과 밖을 대조시켜 안에 있는 나의 특권과 권리를 정당화하려고 설정된 기획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외국인 이민을 반대하거나, 불법외국인 노동자를 색출하려는 국가의 논리는 숭고한 국가질서와 전통을 전제하지만, 기실 그것은 자기의 이익에 방해가 되거나 위협을 가하는 이물질에 대한 응징 내지 박멸 그 이상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데리다는 우리 삶 도처에 세워진 기존의 경계들에 질문을 던지고 되묻는 작업을 감행한다. 우리의 습관과 관행, 우리의 익숙함과 안온함을 위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모든 코드들, 경계지어진 것들의 기원을 집요하게 캐물으며 데리다는 기존의 경계, 코드, 규칙, 법들을 해체하면서 확장한다. 그것이 바로 데리다식 정치이고 윤리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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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는 박근혜의 미래다!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2008년 미 대선에 대한 기억: 오바마에 대한 깔대기

 

지난 달에 이어 ‘철 지난 미국 대선을 통해 본 2012년 한국대선 읽기’ 두 번째 글이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캐리와 공화당의 부시가 맞붙었을 때, 본 게임 전에 결선에 나갈 민주당 후보를 뽑는 최종 전당대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모임에서 캐리에 대한 지지 연설을 했던 몇몇의 연사가 있었다. 그 중의 한 명이 유독 눈에 띠었다. 당시 필자는 미국 온지 2~3달 밖에 안되었던 터라 어리버리하던 시기였고, 귀도 뚫리지 않았던 때라 무척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였다. 그런데 유독 그 사람의 영어는 귀에 쏙쏙 들어왔고 비록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의 에너지와 열정만은 너무나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정치가이고, 차기는 모르겠지만, 차차기 민주당 대권후보군으로 부상할 인물 중 하나라고 시카고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던 한 친구가 말했줬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가 바로 현 미국 대통령 바락 오바마이다. 오바마는 차차기 민주당 대권 후보군 중 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차기 2008년 선거에서 미 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뒤늦게 나는 그가 내가 살고 있는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주의 주지사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가 다니는 교회가 현재 필자가 재학하고 있는 시카고 신학교가 속해 있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인 UCC(United Church of Christ)라는 점, 그의 멘토가 지난 2008년 대선에서 선거초반 ‘갓 뎀 아메리카’논쟁으로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시카고 트리니티 UCC교회의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라는 점, 그리고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오바마가 당선된 그날 밤 시카고 밀레니엄 Park였는지, 아니면 오바마 취임식 날이었는지 가물가물한데, 유독 CNN에서 그 실황을 중계하면서 클로즈업 했던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시카고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이자, 몇 십 년 전에(지미카터가 대통령으로 당선될때)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는 제시 잭슨 목사이다. 그는 미국 흑인인권 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 멤피스에 있는 한 모텔 2층 베란다에서 저격당 할 당시 바로 그 옆에서 선생을 부축하고 후송하고 죽음까지 목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잭슨목사는 후에 오바마의 정치적 후견인이 되었다. 그날,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제시 잭슨 목사가 아무 말도 없이 아무 표정도 없이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계속 방송을 타고 전파되었는데, 많은 미국민들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감격만큼이나 제시 잭슨 목사의 눈물이 지닌 의미에 더 울컥해 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눈물을 흘리는 제시 잭슨 목사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날을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 밤 나는 ‘발터 벤야민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었고, 발터 벤야민의 유명한 <역사철학 테제>에 대한 발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업에 참여한 교수, 학생들의 관심사는 온통 최대의 선거인단을 보유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선거결과에 집중되어 있었다. 캘리포니아만 접수하면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수업의 전반부가 끝나고 후반부가 시작될 무렵 캘리포니아가 민주당으로 넘어왔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그것이 어느 정도 가시화되자 모두 수업을 접고 신학자 폴 틸리히가 시카고에서 강의할 때 자주 갔다던 맥주집으로 향해 축배를 들었다.
특별히 우리학교 식구들이 느끼는 오바마 당선에 대한 기쁨과 흥분은 유별났다. 앞서 말한 오바마의 정치적 후견인인 제시 잭슨 목사, 오바마의 맨토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가 모두 시카고 신학교 출신이라는 점 (둘 다 공교롭게도 시카고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학교 졸업식이나 무슨 행사가 있을 때 어김없이 참석하여 걸출한 입담으로 사람들을 한 바탕 웃기고 간다), 오바마의 집이 차로 우리학교와 2분 거리이고, 오바마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우리학교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이며, 오바마가 쓴 책의 Book 사인회가 우리학교 지하 Co-op Book Store에서 열렸고, 대선 때 마다 민감한 이슈로 떠오르는 낙태, 동성애 등의 윤리적 이슈들에 대한 신학적 자문에 (물론,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편에서) 우리학교 교수들이 오바마 캠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는 소문 등등…..여러가지 시카고 신학교와 오바마 간의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우리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두 세달 무척 행복했던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그런 종류의 신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우리가 노무현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물론, 오바마는 국내정치에 있어서 부시보다 상대적으로 탁월한 진보적인 색깔을 드러내 보였다. 미 진보진영의 숙영 사업인 의료보험 개혁안을 추진하고, 동성애자 군복무 제한에 대한 철폐, 이민정책과 불법체류자 문제에 있어 공화당보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정책을 펼친다는 점, 무엇보다도 수 백년 동안 백인들의 폭력에 신음하고 위축되었던 흑인들의 자존감에 긍지를 주었다는 점이 가장 큰 오바마의 치적(?)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역시 미 합중국의 대통령이었다. 외교적 문제나 국제 분쟁을 바라보는 관전포인트나 FTA에 임하는 자세 등은 어느 미국 대통령 못지 않게 국익에 종속된 모습을 보이며 그것에 충실하다. 특별히 한국과의 FTA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FTA 사상 유례없는 유리한 조건으로 타결함으로 미국의 국익을 챙겨 불안했던 재선 가도에 한숨을 돌렸다는 평가를 현재 받고 있다. 그래서 오바마는 MB를 좋아한단다.

힐러리에서 박근혜를 보다!

바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2008년 미국 대선은 민주당의 막강했던 두 명의 대선 주자 오바마와 힐러리간의 민주당내 경선이 오히려 본게임보다 더 많은 흥행과 토론의 이슈, 그리고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냈던 경우다. 11월이 대선이었는데 민주당은 치열했던 양 진영간의 난타전으로 인해 여름에서야 비로소 대선 후보가 정해지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여성대통령이 먼저 나와야 하느냐?’ 아니면, ‘흑인 대통령이 먼저 나와야 하느냐?’ 이 문제는 ‘여성의 해방이 먼저일까?’ 아니면, ‘흑인 해방이 먼저일까?’ 라는 전통적 주제와 결부 되면서 많은 이야기 거리들을 만들어냈다. 둘 다 워낙 묵직한 존재론적인 차원의 문제인데다, 그 존재론적인 차이로 인한 억압과 폭력의 기억을 둘이 공히 경험하고 있는 까닭에 사람들은 좀처럼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힐러리는 1800만 표를 득표하고도 패배했다. 그리고 패배 시인 연설에서 힐러리는 “비록 나는 가장 높고 견고한 유리 천장을 깨지는 못했지만 1,800만개의 금을 가게 한 균열을 냈다”고 말했다. 참고로 미국은 건국 후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여성 대통령도 배출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것도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동안의 눈물겨운 투쟁의 시간을 거쳐 현재 미국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놀랄 만큼 높아졌다고는 하나, 미국 사회가 기본적으로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환상으로 통합을 꾀하려는 사회이고,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의 대부분이 보수적 신앙노선 위에서 여성의 역할을 성경에 나와있는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유럽과 비교할 때 미국 여성의 역할과 한계가 기본적으로 제한적이고 뚜렷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힐러리가 말한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 사회내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과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장벽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힐러리의 마지막 연설은 나름 멋있고 감동적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비록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서 오바마에게 고배를 마셨지만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하게 색깔을 바꾸어 가며 권력에 대한 야심찬 면모를 선거운동 기간 내내 보여줬다. 오히려 오바마보다 의제설정에 있어서 한 발 앞섰던 것 같고, 오바마보다 모든 공약에서 반보 진보적인 내용을 선보였다. 오바마는 본인이 흑인이라는 상징성이 득이 될 수도 있지만, 득표에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도 있음을 너무나도 잘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온화하고 무난한 모습으로 백인들이 지닌 본인에 대한 거부감을 다독이는데 상당한 노력을 경주했었다. 하지만, 힐러리는 달랐다. 오바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정적으로 비치는 본인의 이미지를 극복하고자 아주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자세로 자신이 오바마보다 더 진보적임을 천명하였다.
특별히, 힐러리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남편이 대통령이었다는 프리미엄을 거부하였다는 사실이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힐러리는 남편을 대동하지도 않았고, 본인에게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의 후광이 미치는 것에 대해 의식적 거리두기로 일관했다. 가부장제 시스템 속에서 여성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혹은 남편의 이름으로 포장된 채 소개되거나 전달되기를 바라는데, 힐러리는 단호히 남편이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백악관을 재탈환하려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비록, 퍼스트레이디 라는 껍질을 벗어 던지고 민주당 대선 후보자로 변신하였던 그녀의 과감한 도전은 좌절되었지만, 힐러리의 자세와 시도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문득, 이 대목에서 박근혜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왜일까?

필패, 박근혜 ?

둘 다 퍼스트레이디였다는 점, 둘 다 아버지의 이름 혹은, 남편의 이름이라는 가부장제 시스템의 수혜자라는 점, 둘 다 대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등 여러가지 물리적, 외형적 공통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자는 같지만 다르다. 힐러리는 그동안 자신을 감싸고 왔던 외피가 그녀의 대선가도에서 마이너스가 될 요소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뼈를 깎는 고통으로 환골탈퇴하여 자신을 대선경쟁 레이스에 나온 주자들 중 가장 왼쪽에 위치시켰다. 하지만, 박근혜는 여전한 박정희의 후광과 여전한 지역정서와 여전히 변하지 않는 보수-수구적 마인드에 휩싸여 있다. 물론 박근혜의 대세론은 실재로 존재하며 실제로 그것은 지난 4.11 총선에서 분명히 입증되었다. 그녀는 아무때나 선거를 치러도 minimum 35%이상의 확고한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박근혜 필패론의 근거라면? 뭔가 알 수 없는 유령이 지금 자기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까? <다음 호에 계속>

P.S: 다음 호에서는 데리다의 후기 철학을 대변하는 유령론(hauntology)에 기대어 박근혜 필패론의 근거를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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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2.05.22 11:4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P.S 2> 제가 이 글을 쓸때 약간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박근혜가 승리한 4.11 총선 결과때문에 열받아 있었고, 총선 후 얼마후에 있었던 Ph.D Qual Exam 과목중 하나가 Derrida였는데, 시험 예상 문제중 Derrida의 유령론를 둘러싼 문제들이 많았죠. 시험공부를 하면서 잘 하면 박근혜 현상과 데리다의 유령론을 하나로 엮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시험도 끝나고, 총선결과에 대한 흥분도 사라진 지금, 더구나 통진당이 개판을 치고 있는 요즘의 형국을 보면서... 내가 괜한 말 했다는 후회가 밀려듭니다. 한달간 무척 괴로울 것 같네요. 일단 써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접겠습니다.
  2. 김형태
    2012.06.14 00:5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국민을 궁민으로 만드는 지도자라고 국민이 선택에 뽑았다면 ....그 결정을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을지요...

    권력앞이 비열하고 더러운 것은 진보. 수구세력 다 똑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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