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우파'와 대형교회, 다섯 번째[각주:1]


'주권교인'과 귀족영성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성령운동의 역사와 자본주의


    신사도운동(new apostolic movement)적 성령운동 이론가인 피터 와그너(Peter Wagner)는 20세기 북미에서 일어난 성령운동의 역사를 3번에 걸친 ‘물결’(wave)로 유형화했다. 그에 의하면 ‘제1의 물결’은 1900년대 초의 ‘오순절운동’, ‘제2의 물결’은 1960~1970년대의 ‘은사주의운동’, 그리고 ‘제3의 물결’은 1980년대의 ‘신사도운동’이다. 한데 여기서 신사도운동은 그 기원을 1980년대로 소급할 수 있으나 1990년대에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으니, 시기를 정정하는 게 낫다.

    한편 피터 와그너가 말하는 성령운동을 내 식으로 말하면, 개신교적 감성이 일으킨 종교적 열광주의 현상이다. 소리의 현상인 방언, 몸의 현상인 경련, 그리고 그런 현상과 결합해서 나타난 몸과 정신의 치유 등이 성령운동의 핵심적 구성요소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 시기다. 성령운동의 첫 번째 물결이 휘몰아치던 시기는 미국의 빠른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에서 도시로 대대적으로 이주하게 된 이들이 자본주의의 야만적 폭력성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던 때다. 두 번째 물결은 소비사회로의 이행이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배제와 박탈의 새로운 양상이 심화되던 시기에 일어났다. 그리고 세 번째 물결은 신자유주의적 체제로의 변동이 폭력적으로 진행되던 때다. 요컨대 세 번의 성령운동의 물결은 모두 자본주의적 구성 양식의 급격한 변화와 관련이 있는데, 특히 그 변화 과정에서 심각한 고통의 상황에 놓인 이들 사이에서 성령의 바람이 휘몰아쳤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날 이성적인, 즉 계산 가능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개신교적 감성의 정치를 통해 폭력으로부터의 해방구를 찾아내려는 현상이 바로 성령운동이라는 것이다.

   이때 성령운동의 지도자는 대중의 감성을 집단적으로 고조시키는 전문가다. 그이를 매개로 해서 성령운동의 대중은 절망이 희망으로 반전되는 몸과 정신의 체험을 하게 된다.  

   이 글이 주목하는 것은 세 번째 물결인데, 이와 관련해서 하나 더 이야기할 것이 있다. 앞의 두 번의 물결은 자본주의적 변화 과정에서 주변화된 대중 사이에서 더 강렬하게 발생하며, 그 지도자들도 그런 체제에서 배제된 자 중의 하나였다. 한데 놀랍게도 세 번째 물결의 주요 대중은 사회적으로 결코 주변화된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자산능력을 보유하고 좋은 직업을 가졌으며 향후에도 상승 가능성이 막힌 이들이 아닌 계층 출신이 많다. 그리고 지도자들도 대개 매우 성공적인 사회적 능력을 갖춘 이들이었다.  

   한국에서 1970~1980년대에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성령운동을 이끌었던 것은 조용기와 순복음교회다. 그의 성령운동의 출발점은 1954년, 전후(戰後) 사회적 보건의료체계가 철저히 붕괴된 상황에서 방언과 병고침으로 유명했던 나운몽의 성령운동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성령운동을 포장하는 신학적 서사를 채운 것은 미국의 오순절운동과 은사주의적 성령운동의 담론이었다. 즉 첫 번째와 두 번째 물결의 담론이 결합되어 조용기 현상의 서사를 구성한 것 같다. (이에 대하여는 나의 책 《시민K, 교회를 나가다》를 보라.)


신앙의 감성적 기획으로서의 ‘귀족영성’과 1990년대


    한편 신사도운동적 성령운동이 한국에 상륙한 것은 1980년대 초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일부 성령운동 계열의 선교전문 신앙단체들에 의해서다.(마라나타선교회, 예수전도단 등) 하지만 1980년대 말 온누리교회가 ‘경배와 찬양’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 프로그램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이 교회 성장의 중요한 촉매 역할을 했고, 1990년대 말 이후 전국적인 붐을 일으켰다.

   ‘경배와 찬양’이란, 예배의 모든 요소가 설교자에게 집중되어 있는 전형적인 예배 형식을 파괴하고, 설교자만이 아니라 찬송, 공간구성과 운용, 조명 등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따로 그리고 서로 간섭하며’ 일으키는 메시지 효과를 통한 해체적 예배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워십 디자이너라는 기획자의 전문적 역할이 중요하다. 아무튼 이러한 해체적 예배 기획은, 설교자의 말을 통해 이성적 해석을 자극하는 개신교의 전통적 예배 양식과는 달리, 예배참여자의 감성을 자극하여 종교적 메시지를 체감하게 한다는 점에서 성령운동과 친화적이다.  

    그렇다면 왜 성령운동과 친화적인 종교성이라는 캐릭터를 갖는 온누리교회에 수평이동을 거듭하던 교인들이 정착하게 된 것일까? 앞의 연재글에서 말했듯이, 이들 수평이동을 반복하던 교인들은 정보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이들이며, 그러한 능력에 걸맞게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갖춘 이들이 많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은 종교시장에서 이들의 까다로운 종교성을 유념하며 종교상품적 이미지로서의 교회적 캐릭터를 창출한다. 즉 이들은, 소비사회의 소비주체적 시민에 대응되는, ‘주권교인’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왜 사회적 소외계층들이나 선택한다는 성령운동적 신앙에 집단적으로 매료된다는 것인가?


   한국계 독일 철학자 한병철이 쓴 《피로사회》는 이를 이해하는 하나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무한긍정의 정신으로 무장하며 더 높은 성과를 위해 끊임없이 그리고 자발적으로 노동하는 인간상을 강조한다. 성공한 자라고 멈추거나 속도를 늦출 수 없다. 그 순간 그이는 추락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를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가 바로 신자유주의적 세상이다. 하여 이 시대의 사람들은 누구든 쉼 없이 자기를 불태우며 노동해야 한다.  

    문제는 노동의 대열에서 낙오된 자만이 추락의 위기를 겪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낙오되지 않으려면 성공을 위해 쉼 없이 달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몸과 정신의 자원이 과도하게 소진되어 버림으로써 ‘추락’의 위기를 겪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많은 이들이 소진성 질환에 걸린다. 소화기 계통의 질환들, 대사증후군(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심혈관계 질환, 우울증, 조울증 등에 시달리는 것이다. 나아가 소진성 질환에 걸리지는 않았어도, 추락의 예감 속에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무기력 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말했듯이 이들은 일터에서 밀려나고 가족이 파괴되고 사회적 관계가 무너진 자들이 아니다. 아니 그 반대다. 무기력증이나 소진성 질환 같은, 이미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추락한 이들이 더 잘 걸린다는 증상에, 모든 것이 건재한 듯 보이는 중상위층의 귀족적 시민들도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에서 이러한 증후는 1997년 외환위기와 더불어 본격화되었다. ‘경배와 찬양’으로 표상되는 온누리교회적 영성이 전국화된 시기와 정확하게 겹친다. 즉 중상위계층 사이에서도 소진성 질환이 만연한 가운데 이러한 질병의 치유를 위한 종교적 기획들이 등장하던 시기에, 온누리교회의 성령운동은 그 중 가장 성공한 종교상품에 속한다. 예배에서 무대와 객석, 대중과 설교자로 양분되던 중심-주변의 이분법이 해체되고, 설교자의 강론에 집중되었던 메시지가 예배를 구성하는 요소들 속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특히 ‘경배와 찬양’이라는 명칭에서 드러나듯 찬양은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다. 일렉트릭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축을 형성하여 건반과 타악기와 어우러지고 이것을 율동 섞인 찬양대의 팝적이면서도 진취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예배 대중의 감성을 자극한다. 대중은 찬양대와 함께 노래하고 율동하면서, 찬양대의 관람자인 동시에 일원이 된다. 그리고 찬양 이끔이가 그 사이사이에 간단명료한 멘트를 던져 대중과 함께 하는 경배 예배의 메시지를 명료히 한다.  

온누리교회의 '경배와 찬양' 집회


손기철 장로 집회에서 그의 안수에 쓰러지는 교인들


    이 멘트들은 네러티브 없이 한두 단어, 한두 문장 정도에 그친다. 하여 그 멘트는 전체 예배 속의 일부이면서도 예배에 견고히 묶여 있지 않고 따로 튀어나와 예배 대중의 개인 속으로 쑥 들어가 버린다. 하여 예배 대중 개인이 겪고 있는 실존 상황과 맞부딪친다. 그런데 그 멘트의 내용은 대부분 축복과 윤리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하여 예배 대중은, 전통적 예배의 집단성과는 달리, 개개인을 호명하여 축복을 선사하며 삶의 신앙적 규범을 부여하는 예배와 만난다. 이것이 ‘경배와 찬양’이 만들어내는 예배의 이팩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종의 치유의 작용이 시작된다.

    한데 종종 이 예배는 보다 본격적인 치유집회와 만난다. 온누리교회에도 손기철 장로라는 과학자이자 대학교수인 전문적 치유사가 활약했다. 목사 자신이 퇴마사(exorcist)였던 은사주의적 교회들와는 달리, 한 평신도가, 그것도 사회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이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최근에는 그의 집회에 이단시비가 일면서 그의 집회는 온누리교회와 분리되었지만, 초기에 이것은 이 교회 성장의 주요 요소였다.  

    그의 집회는, 방언과 경련 등이 뒤섞이면서 무질서한 상태에서 은사체험과 치유가 일어나는 전통적인 치유집회와는 달리, 매우 질서 있게 진행되며 윤리적 강론의 비중이 매우 크다. 또 일반적 은사주의 퇴마사들은 병원의 치료(therapy)와 적대적인 경향이 있는데 그는 이 둘을 이분법적으로 가르지 않고 치유(healing)와 병행할 것을 권고한다. 현실의 모든 것을 상실한 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의지하는, 하여 일반 의료체계와 극적으로 분리함으로써 치유를 실현하려는 은사주의적 치유집회와는 달리,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도 축복의 징표를 얻어낼 수 있고, 사회 질서에서 일탈하지 않는 윤리적인 삶에 대한 요청이 동반된 축복이 강조되는 것이다. 요컨대 그의 집회는, 제3의 물결에 속하는 일반적 성령운동처럼, 자신의 것을 다 걸지 않아도 되는 이들의 신앙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온누리교회가 표상하는 성령운동의 영성은 귀족적이다. 신앙에 삶을 다 걸지 않아도 되는 이들에게 닥친 삶의 위기를 축복으로 되돌려준다. 동시에 축복의 수혜자들에게 윤리를 부과한다. 즉 온누리교회적 귀족영성은 신비체험이자 윤리적 재무장의 과정이다. 내가 이 연재 서두에서 강조했던 중간범주의 존재들이 윤리를 통해 웰빙적 삶을 추구하고 나아가 사회의 계몽적 주체로서 스스로를 주체화하는 것과 잘 결합되는 신앙의 양식이 이 교회의 귀족영성 속에 구현되고 있다.


캐릭터 교회들과 신자유주의


    1960~1990년 사이 대성장기에 대형교회들은 대개 유사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목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있었다. 권위주의 시대의 독재자의 그것처럼 일종의 영웅주의가 대성장기를 이끌었다. 한데 ‘주권교인’들이 수평이동을 거듭하는 가운데 그들을 정착시키는 데 성공한 대교회들은 종교시장의 상품으로서 교회를 대외적으로 이미지화하는 캐릭터를 필요로 했다. 사랑의교회와 온누리교회는 그런 현상을 선도했던 대표적 교회들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다섯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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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네 번째[각주:1]


주권교인과 캐릭터 교회들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주권교인'과 교회의 캐릭터화


    지난 글에서 ‘주의 종’들의 천민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 ‘주의 종’이란 성직자를 지칭하는 한국 개신교의 독특한 용어다. 이 표현 속에는 역설적으로 대중에게는 주(主)를 대리하는 자라는 함의가 담겨 있다. 특히 설교는 ‘주님’을 대언하는 행위로서 여겨졌다. 한데 ‘주의 종’들의 학력 저하와 교회 대중의 학력 상승이라는 지적 비대칭성의 심화는 설교에 대한 교회 대중의 불신을 초래했다.

    실제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던 1990년대는 대학생 수가 가파르게 상승했고 출판 시장도 정점에 도달한 시기였다. 신학교에서 현대신학의 논의들을 외면하는 가운데, 신학적 고급 정보가 담긴 교양서들이 속속 출간되었고, 심지어 교양서적 시장에서 반기독교적 과학서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합리성과 과학성에 대한 낙관적 태도가 절정에 이른 1990년대에 이러한 대중적 지식의 고급화의 대열에 고학력자가 많은 개신교의 신자들이 대거 참여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반면 그 얼마 전까지도 교회 성장의 한 축을 이루었던 부흥회가 도시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고, 폐업하는 산기도원의 수가 급격히 늘었다. 즉 1990년대의 교회 대중은 목사와 그의 신학적 주도권에 깊은 의심을 품고 있었다.

    한편 이 시기는 민주주의적 제도화를 향한 열망이 거센 풍랑처럼 밀려들던 때였다. 낡은 권위주의를 청산하려는 거대한 파도가 그 선두에서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회는 낡은 권위주의를 대표하는 구지배적 질서의 표상이었다. 시민사회는 교회를 향하여 따가운 눈길을 던졌고, 매스미디어는 교회에 얽힌 추문들을 앞 다투어 들춰내고 있었다. ‘주의 종’들의 부패와 비리, ‘나쁜’ 종교적 행동들, 성적 추행 등이 연일 세간에 폭로되었다.

   많은 교회 대중은 ‘주의 종’들이 허술한 설교자들일 뿐 아니라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인들일 수 있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에 대한 교인들의 가장 소극적인 저항은 설교를 경청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교회 활동에 적극적인 교인들 몇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놀랐던 것은, 과거에는 메모하면서 설교를 경청했던 이들이 바로 며칠 전 목사의 설교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행동들도 많았다. 여러 교회의 설교들을 비교하면서 비평적 평가를 서로 나누는 이들도 많아졌다. 2천 년대 초 기독교 잡지 기획자 한종호와 신학자 정용섭이 합작하여 만든 ‘설교비평’ 프로젝트가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설교비평 붐을 일으킨 것은 이러한 현상의 직접적 여파였다. 

   이렇게 각기 설교비평가들이 된 이들이 더 나은 설교를 찾아 교회를 옮겨 다녔다. 지난 글에서 명명했던 ‘주권교인’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주권교인’들이 교회를 선택하는 첫 번째 기준은 설교였지만, 그것이 유일하거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이들 까다로운 교인들,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니면서 적극적 비평가가 된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교회들은, 설교의 내용과 설교자의 테크닉에만 의존하지 않고, 예배 형식, 예배음악, 예배당의 공간 배치, 음향・조명・시각효과 등을 캐릭터화하는 데 큰 힘을 기울였다. 나아가 교인 프로그램이나 교회건축물에서도 그 교회만의 개성을 추구했다. 바야흐로 이 시기에 성공한 교회가 되려면 자기만의 캐릭터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1990년대 이성적 기획과 감성적 기획의 시대에 성공한 교회들


    1990년대 중반, 교세가 정체 혹은 감소하고 있던 시절, 하여 개신교 교계에서 위기론이 솔솔 번져나가던 시절, 교인들 사이에서 두 교회에 관한 입소문이 널리 퍼져가고 있었다. 이사를 하든, 귀국을 하든, 진학을 하든, 기독교인이 서울로 오게 되면 어느 교회를 방문할까? 이때 추천 1순위의 교회가 바로 사랑의교회와 온누리교회다.

   1940~50년대 한국개신교를 대표하는 교회라면 영락교회였고, 1970~1980년대를 상징하는 교회가 (여의도)순복음교회(1958년 대조동 산동네에서 시작해서, 1961년 서대문로터리로, 그리고 1971년에 여의도로 교회당을 옮겼다)라면, 이 두 교회는 1990년대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락교회는 월남이주자들에서 시작해서, 군선교와 도시 중상위층 선교의 성과로 이룩된 교회였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농이주자들의 신자화에서 시작해서 도시 중상위층의 신자화로 이어지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교회다. 특히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신자 규모를 가진 교회다. 하지만 내부 갈등과 사회적 지탄이 겹치면서 이 슈퍼울트라급 초대형교회의 성장세도 꺾이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 빠르게 성장세를 탔을 뿐 아니라, 무수히 많은 교회들에 영향을 미친 새로운 주역이 등장한 것이다. 우선 이 두 교회의 성장은 새신자의 유입보다는 여러 교회들을 순방하던 ‘주권교인’들을 정착시킴으로써 이룩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도대체 무엇이 까다로운 ‘주권교인’들의 마음에 든 것일까? 나는 앞에서 이 시대 성공한 교회들은 캐릭터화의 성공과 맞물린다고 보았는데, 바로 이러한 성공을 대표하는 교회가 이 두 교회였다. 단순화하여 말하면 사랑의교회는 ‘제자훈련’이라는 캐릭터로서, 그리고 온누리교회는 ‘귀족영성’이라는 캐릭터로서 ‘주권교인’을 사로잡았다. 전자는 이성의 기획으로, 후자는 감성의 기획으로 1990년대 교회 대중으로부터 열광을 받았다.

   이 얘기를 하려면 1990년대 한국사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 시기에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식 인프라가 급성장했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민주주의가 사회적 제도화의 중심논리로 부상한 시기이기도 했다. 또한 국민의 시민적 주권의식이 급상승했다. 게다가 소비사회로의 급속한 이행기를 맞아 시민 각자의 취향에 대한 권리의식도 크게 신장했다. 이 시기에 사회에는 이성의 기획들이 난무했고, 이는 민주주의적 사회설계를 둘러싼 논쟁들이었다. 물론 1980년대에도 이러한 논쟁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논쟁은 진보적 사회운동의 공론장에 한정된 것이었다. 한데 1990년대 이후 이 논쟁은 범사회적인 공론의 장에서 진행되었다. 한편 이러한 정치적 사회설계를 둘러싼 공론장의 양성화는 논쟁 주체의 전문가화를 촉진했다. 동시에 많은 대중은 지적 관객이 되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전문가화’ 현상, 이것은 정치적 사회설계 논쟁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 전 부문에서 전문가화 현상이 빠르게 확산되었고, 그만큼 시민들은 각기 전문적 기능들을 보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제 학생들은 거리에서 시위자가 되기보다는 도서관으로 몰려들었고, 시민들의 재교육 붐이 활성화되었다. 부모들의 자녀들에 대한 사교육 열기도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전례 없이 전 사회적 기조로 치솟게 된 이성의 기획은 전문가로 살아남기 위한 전사회적 경쟁과 맞물리게 된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이성주의의 강화와 경쟁 시스템으로의 빠른 전환 속에서 사람들은 감성적인 위로를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되었다. 특히 사회적 낙오자만이 아니라 상승 가능성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라는 감성의 기획이 요청된 것이다. 이렇게 이 시기의 이성의 기획과 감성의 기획은 사회 엘리트층이라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신앙의 이성적 기획으로서의 '제자훈련'과 1990년대




    그런데 사랑의교회와 온누리교회는, 이 교회들의 각기 다른 캐릭터는 이 두 기획에서 굉장한 성과를 이룩하였다. 먼저 제자훈련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제자훈련’은 일종의 신앙에 대한 이성적 훈련 프로그램을 표상하는 용어다. 그 기원은 딕 요크(Dick York)라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독립선교사에게서 유래한다.

    그는 1960년 대구에서 선교학교를 열었는데, 거기서 10여명의 제자들을 훈육한 훈련 아이템은 성서 읽기와 전도로 요약된다. 성서 읽기 훈련이란 ‘묵독’하고 그 의미를 깊게 되새기는 신앙훈련이다. 그때까지 한국에선 음률에 따라 흥얼거리며 낭송하는, 일종의 전근대 구술사회 선비들의 책읽기 같은, 성서 읽기가 일반적이었는데, 딕 요크의 제자들은 근대적인 문자사회적 읽기 특징인 ‘묵독’의 훈련을 받은 것이다. 낭송이 발성되는 소리의 외면적 효과가 의미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독서법이라면, 묵독은 내면화를 통한 의미 형성이 강화되는 독서법이다. 4-4조니 7-5조니 하는 외면 사회의 관행적인 음률에 따라 낭송되는 글의 호흡과 리듬이 글의 느낌을 만들어내고 그 의미의 기조에 영향을 미친다면, 묵독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었던 개인적 기억들이 내면에서 글과 어우러지면서 의미를 만들어내게 하는 것이다. 이런 묵독의 훈련은 당시 지적인 성향의 청년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1980년대 대학가에서 널리 확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흥회식 감성 폭발을 강조하던 교회에선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낯선 신앙 양식으로 취급되었다.  

    한편 딕 요크의 전도 훈련은, 부흥회처럼 감성이 분출하는 이벤트 전도와는 달리, 구원의 교리로 설득하는 방식의 포교법을 수련하는 것이다. 이는 성서 묵독과 맞물린다. 즉 묵독하는 이는 내면의 상처와 사투를 벌이면서 그 상흔을 극복하게 했던 구원의 논리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 논리를 타인에게 전하는 것이 전도였다. 당연히 그이는 확신에 차서 매우 논리적 어법으로 타인을 설득하는 방식의 전도를 수행한다. 한데 당시 한국교회는 이런 낯선 전도 방식의 수행자들을 가리켜 구원파라고 비아냥댔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 중 몇이 스스로를 ‘구원파’라고 주체화하면서 신앙분파들을 만들었다. 지난 2014년 침몰한 세월호를 소유한 회사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커다란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유병언을 교주로 하는 기독교복음침례회도 이런 ‘구원파’의 일파였다.

    그리고 다른 일부는 선교전문의 신앙단체들을 만들었다. 이 선교전문 신앙단체들에서 딕 요크 방식의 성서 읽기와 전도 훈련을 ‘제자훈련’이라고 명명했다. 이러한 이성적인 지적 신앙양식은 1980년대까지는 아직 일부 소수의 지식층 사이에서만 활성화될 뿐이었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이 1990년대에 이성적 기획이 주도하는 시대와 맞물리면서 제자훈련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다.

    그것을 주도한 것이 바로 사랑의교회였다. ‘구원파’로 낙인찍힌 이단화된 집단들과 선교전문 신앙단체들의 훈련 프로그램으로 일부 지식인 신앙대중에 국한된 현상이었던 것이, 사랑의교회와 더불어 교회의 캐릭터로 부상했고, 보다 폭넓은 교회 대중, 특히 교회들을 떠돌던 주권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음 글에서는 ‘신앙의 감성적 기획으로서의 귀족영성과 1990년대’를 온누리교회 현상과 관련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첫번째 글로, [주간경향]에는 <대형교회는 강력한 웰빙 문화공간이다>(1183호. 2016. 07. 05)로 게재되었습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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