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골탈태: 콩은 청국장이 되고, 포도는 와인이 되고

 


박여라*




    지금 나는 '홍어 과다' 상태다. 지난 1년 동안 먹은 홍어는 내 평생 그 이전까지 먹은 홍어보다 훨씬 많다. 가리는 음식이 없어 뭐든 잘 먹지만, 그리고 홍어는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이라고 여기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느 날 홍어가 먹고 싶다든지, 먼저 나서서 먹으러 가자고 주창할 정도로 홍어가 내게 우선순위가 높은 음식은 아니다.


    작년 겨울 몇이 모여 홍어삼합에 애탕을 먹고 다음에 또 만나기로 했는데, 처음 만날 때 고른 홍어집 명단에서 다른 곳들도 가보자고 한 게 발단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홍어 먹은 얘기를 하다가 그 모임에서도 홍어를 먹으러 갔다. 급기야 몇 주 전 원래 모임 사람들과 홍어 기행이라며 영산포엘 다녀왔다.


    나주 기차역에 내려서 영산포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온 동네에 홍어 기운이 공기에 가득했다. 좋다고 하기도 싫다고 하기도 모호하고 오묘했다. 문득 오래전 만들었다 망한 청국장이 떠올랐다.


    먹고 싶은 것은 다 만들어 보던 시절, 좋은 콩 구해다 무쇠솥에 푹 삶고 정성 들여 뜸 들였다. 그리고 꼬마 불이 켜 있어 늘 미지근한 구식 가스 오븐에다 청국장을 띄웠다. 끈끈이가 잘 떠서 보기에 모양은 좋았는데 냄새가 좀 청국장 더하기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 더 있었다. 온도가 너무 낮았을 수도 있고 그 오래된 오븐 안에 오만가지 잡균이 있어 다같이 콩에 들러붙어 함께 번식했을 수 있다.


    그래도 가게에서 파는 것처럼 한 덩이씩 빚어서 양념을 얹고 이쁘게 포장했다. 막상 청국장을 끓이니 냄새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들인 정성이 아까워 연거푸 몇 끼를 끓여 먹다 결국은 나머지를 버렸다. (정성은 정성이고, 청국장은 사 먹는 걸로!) 문제는 그 뒤로 며칠을 두고 부엌에만 들어가면 풍기던 그 청국장인 듯 청국장 아닌 청국장 같은 냄새가 영 없어지지 않았다. 홍어를 먹으러 간 영산포구에서 이때가 떠올랐다.  


    콩이 청국장(또는 된장)이 되는 과정은 환골탈태(換骨奪胎)다. 한자어 뜻 그대로는 뼈를 바꾸고 태를 빼내는 그런 변화다. 뒤져보니 중국 송나라 때 무슨 문헌에 적혀있기로는 시 쓰는 방법을 설명하는 말이란다. 옛 시문을 따다 뜻은 그대로 두고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환골'이고, 자기 표현으로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탈태'라고 한다.


    발효는 환골탈태 같은 변화과정이다. 콩이 청국장이 되는 과정도 그렇고, 흑산도 홍어가 영산포 삭힌 홍어가 되는 과정도 그렇고, 포도가 와인이 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물론 온도, 습도 같은 조건이 잘 맞아야 하지만, 재료는 단순하고 꼭 필요한 효모는 공기 중에 있다. 그리고 환골탈태하여 알아볼 수 없이 다른, 더 좋은 것이 된다.  


    나주 내려가는 길에 일행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내보았다. "우리 다른 것도 먹으러 다녀요." 그럼 냉면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어떨까 하다 곧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영산포구 수많은 홍어집 가운데 아무 데나 들어가 앉았는데, 막상 먹다 보니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데 한 3년은 먹자"는 말에 크게 호응을 보내진 못했지만, 충분히 이해는 가더라는! 아이고야, 다음번엔 와인을 한 병 가져가야겠다.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썼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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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을 바라보며 와인 한잔하다

 


박여라*




    사람들이 와인에 대해 불평할 때 뭐 이리 많고 복잡하냐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 얼굴을 생각해보자. 지구에 인구가 75억인데 그 사람들 얼굴이 다 다르게 생겼다. 똑같은 얼굴은 정말 하나도 없다. 나무도 돌도 꽃도 고양이도 다 다르게 생겼다. 자연이다.


    와인이 셀 수 없이 많고 복잡하고 다양한 것은 자연에서 왔다는 증거다. 그리고 살아있기 때문에 그대로 머무르지도 않는다. 물론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도 다른 개체이기에 엄밀하게는 다 다르다. 와인도 공장에서 찍어내듯 대량생산된 경우는 거의 그러하다. ‘참이슬’처럼. 그러나 한 사람이 같은 나무에서 거둔 포도로 만들어도 작년 와인과 올해 와인은 다르게 마련이다. 그러니 같은 포도종이어도 어디에서 어떻게 키웠는지 그해 날씨에 따라 다른 와인이 되는 것은 두말해 잔소리다.


    복잡하고 너무 많다 뭐랄 것이 아니라 다양해서 좋다고 할 일이다. 길을 걸어가는데 사람들 얼굴이 다 똑같다면 상상만 해도 징그럽다. 그리고 무섭고 끔찍하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뱉어내는 수많은 말로 유난히 피곤한 계절을 보냈다. 같은 이야기도 사람들은 자신이 받아들인 대로, 이해하는 대로,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했고 그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은 또 각기 여러 버전으로 퍼져나갔다. 돌아 돌아 나에게 다시 들리는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달라서 혼란스럽고, 이런 방식이 여러 번 반복되니 힘겨웠다.


    바벨탑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말이 다 같아서 마음 먹은 대로 하늘 높이 탑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말을 서로 다르게 하여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 같으면서도 신화 같으면서도 성서에 담긴 이야기.


    그렇다. 우리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 뒤섞였다고. 내가 이것이 저러하다고 말할 때 그 똑같은 단어가 남들도 공장에서 찍어낸 듯 같은 뜻으로 쓰냐고.


    좋아하는 장난감 ‘옥스퍼드 와인 컴패니언’(잰시스 로빈슨)을 집어 들었다. 와인 언어는 세 가지 단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맛을 보고 향을 맡는다, 와인을 묘사하는 단어들이 분명치 않다, 고객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 이상한 표현들을 만들어낸다. 이 부분을 읽으며 그렇지! 맞다! 했다. 또한, 우리가 뭔가를 묘사할 때 표현하는 말과 평가하는 말은 다른데, 와인에 대해서 말할 때는 이 구별이 쉽지 않다는 점도 특징이란다.


    바디감이 있다, 가 대체 무슨 말이냐고. 몸뚱어리(body)가 있다는 거냐. 무거운 느낌이 있다는 거냐. 와인 언어는 한 번에 듣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이 정말이지 너무 많다. 영어로도 full body의 반대말이 empty body가 아니고 light body인지 이상한데, 우리말로 옮기려면 더 이상해져서 그냥 풀바디, 라이트바디다.


    어떤 향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다. 이끼 냄새라니. 누가 이끼 냄새를 맡냐고. (물론 와인 오타쿠들은 제대로 알고 표현하려고 돌멩이도 핥아본다.) 이끼도 장소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향이 날 것이다. 분명히 묘사하려면 자세히 설명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일 수 있겠다. 언제나 그럴까? 문맥이 복잡할수록 더 공감대도 많겠지만, 그래서 더 오해의 여지도 클 것이다.


    와인이 복잡한 이유는 바벨탑 건설현장에서처럼 말이 뒤섞여서인가. 백과사전에 ‘와인 언어’에 대한 부분 끝에 ‘와인 철학’을 더 읽어보라는 안내가 있다. 과연 와인은 언어만 문제가 아니었다. 와인 경험이 객관적일 수 있냐가 큰 물음표를 달고 버티고 있는 문제다. 그러니 옳고 그름에 대해 논의는 아니라는 점, 그런데도 괜찮은 와인이라는 건 어떤 와인인가, 맛의 기준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 완전 내 취향이다.


    사람들이 같은 와인도 다르게 경험한다는 것은 사실 와인을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한다기보다는 흥미롭게 한다. 이야기를 나눠야만 하는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얼마큼 떫은맛이 느껴져야 아주 떫은지 약간 떫은지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신맛에 민감한 편인지 단맛에 민감한지 관심도 없었는데, 무엇을 잘 느끼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는 과정이 신기하다. 혼자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론적으로 괜찮은 와인은 향과 맛이 단순하지 않고 여러 가지 복잡하며, 시고 달고 떫고 하는 요소들과 알코올이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잘 어우러져 있으며, 여운이 길게 남는 와인이다. 그런 기준들을 두고도 내가 좋아하면 좋은 거다.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시비를 가릴 수는 없지만, 와인이 맛있는 때는 그 자리의 이야기가 좋을 때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럴 때 와인은 옳다. 다른 주류에 비교해 와인이 그 역할을 잘 한다. 밥상을 물리고 차 한두 잔 더 마시는 것처럼 느긋하게 이야기 나눌 때가 어울린다.


    다시 성서로 돌아와 창세기 11장을 보면, 거기엔 ‘바벨탑’이라는 말은 없다.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고 탑을 쌓았다. 야훼께서 땅에 내려와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싶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말을 뒤섞었고, 사람들은 도시 세우던 일을 그만두었다.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창세기 11장 9절, 공동번역) 여기에 붙은 각주도 전에 없이 눈에 들어왔다. 바벨은 히브리어로 ‘뒤섞어 놓는다’는 말과 소리가 비슷해서 ‘혼란’이라 해석되었는데 갈대아어로는 ‘신의 문’이라는 뜻이란다.


    바벨은 하나님께 이르는 문이었을까? 사람들의 말이 뒤섞인 것은 벌일까, 축복일까? 둘 다 아니지만, 굳이 고르자면 축복으로 보고 싶다. 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니까. 혼란 속에서 서로 도우며 함께 하나님께 이르라는 뜻 아닐까, 맘대로 갖다 붙여본다. 하다못해 와인도 말이 혼란스럽고 복잡해서 알기 어려운데, 하나님은? 그러니까 저 아는 대로 재단하고 저 좋은 대로 제한하지 말라고. 경험과 이야기를 나눠 더 잘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문에 함께 이를 수 있게 서로 도와주자고.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썼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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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 가브리엘 미션에 가면 오래된 포도나무가 있다

 



박여라*




    칠레 와인 회사 ‘산 페드로’는 1865년에 설립되었다. 그래서 생산하는 와인 라인 중 하나를 ‘1865’라 이름 지었다. 한국에서 아주 인기다. 2004년 발효된 칠레 FTA, 뒤이은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이 가져온 와인 담론도 큰 역할을 했지만, 마케팅 언어가 잘 들어맞았다. 18세에서 65세 누구나 즐기는 와인이다, 골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18홀 65타 치세요~ 선물하고, 세일할 때 마트에서 18천원인데 레스토랑에서는 65천원이라는 둥.


    레토릭으로 흥행(?)을 불러일으키기로는 최근 2천 년 동안 예수가 최고다. 복음서 수많은 이야기 속 예수의 언어는 시대, 나이, 지역, 인종, 문화, 성별 할 것 없이 수많은 차이를 끌어안는다. 여전히 내게는 예수 자신을 참포도나무로 비유하면서 하나님은 농부이시며 너희는 가지라 한 요한복음 15장이 화두다. 여기서 포도나무 이야기는, 그러니 너희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마무리된다. 


    이번 여름에 미국 캘리포니아 ‘천사장 성 가브리엘 미션’에서 1861년에 심었다는 포도나무를 만났다. 1860년대라면? 캘리포니아는 동부와 다른 양상이긴 했지만,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져 전쟁을 벌일 때부터 있던 나무라니!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그렸고, 칠레 와인 회사 산 페드로가 설립된 때도 이즈음이다.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은 때이며,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온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에서 살해되고 병인박해, 병인양요가 일어난 1866년에도 이 나무에 와인 만들 포도가 열리고 있었다.


    엘에이 도심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샌 가브리엘에 있는 이 미션은 후니페로 세라 신부가 1771년 9월 8일 세웠다. 캘리포니아 21개 미션 중에서 4번째다. 남쪽으로 90km 거리에 있는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 미션과 함께 샌 가브리엘 미션은 대규모 포도경작을 했다. 한창때는 포도밭이 170 에이커(68만8천 제곱미터, 20만 평)에 이르렀다고 한다.


    150살 넘은 포도나무를 만나는 일이 소기 목적이긴 했는데, 가서 보니 샌 가브리엘 미션은 과거에 포도뿐 아니라 오렌지, 올리브 같은 과실과 곡식, 채소 재배와 돼지, 양, 소 같은 가축에 벽돌공장과 목공, 수공예, 비누와 초 공장까지 말하자면 꽤 커다란 산업단지 같았다. 실제로 여기서 생산된 것들이 생산이 어려운 인근 미션에 공급되었다고 한다. 교통요충지라 무역이 활발했다고 한다. (물론 일은 원주민들이 했고 고된 노동과 질병 등으로 죽은 원주민 6천 명이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ㅠㅠ)


    하마터면 포도나무 고목을 못 만날 뻔했다. 왜냐하면 ‘나이 든 어머니 포도나무'라고 이름 붙은 이 나무는 미션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미션에서 길을 건너 마을회관 마당에 있다. 미션 안에도 제법 큰 포도나무가 하나 있어서 성당 바깥에 길게 난 회랑 위를 이 포도나무의 긴 가지들이 지붕처럼 덮고 있었다. 이 나무가 그 나무인가, 하고 떠나려다가 미션으로 가는 길에 보았던 허름한 대문 앞으로 갔다.


    ‘포도나무 공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대문이 아까는 닫혀 있었는데 다시 가보니 활짝 열려 있었다. 어머니 포도나무는 거기 있었다. 문헌을 뒤져보니 이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가 280평(930 제곱미터)을 덮었는데 여러 해 전 깔끔하게 다듬었다고 한다. 그래도 서른 명은 충분히 둘러앉을 수 있을 만한 커다란 공간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그 아래에서 캘리포니아 여름 땡볕을 피할 수 있었다.


    수령이 한 80년 정도로 굵고 키 작은 포도나무가 줄지어 있는 포도밭은 가보았어도 이렇게 땅에서 몸을 비틀며 솟아 나오는 커다란 짐승 형상을 하고 있는 포도나무 한 그루를 목격하니 기분이 묘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가느다란 가지가 여러겹으로 촘촘하게 뒤엉켜있었다. 더 놀라운 건 포도 열매가 많이 달려있다는 거였다. 젊은 포도나무의 탐스러운 열매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지만, 나이 든 어머니는 긴 세월 지나도록 꾸준히, 최선을 다해 열일하고 계셨다. 예수는 이런 사랑을 말한 걸까. 질문을 쥐고 있으면, 놓지 않고 계속 물으면 답을 만나는 날이 오겠지. 


    덧붙임. 와인보다는 포도나무 이야기지만, 꼭 1년만에 와인 글을 쓴다. 다시 시작한 여행이 기대된다.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썼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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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와인 이야기

 



박여라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같은 배에서 나온 이웃종교이지만, 유대교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음을 전제하고 이 글을 시작한다. 그나마 아는 것도 띄엄띄엄 단편적이고 겉핥기 수준이다. 이웃이나 동료들이 지키는 절기를 통해 알게 된 특별한 관습이나, 전해들은 이야기, 영화, 역사로 알고 있는 탈무드, 홀로코스트 정도다. 유대교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와인이 그들의 종교예전과 일상생활 속에서 늘 있어왔다는 점에서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서이다.


    이슬람교까지 해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 세 자매(또는 세 형제, 혹은 삼남매?) 종교는, 같은 지역에서 뿌리를 함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인에 대해서는 각자 아주 다르게 발전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슬람을 세운 예언자 마호메트(570-632) 당시나 중세에 무슬림이 세차게 영역을 넓혀나가던 때까지도 이슬람교에서 지금처럼 철저히 음주를 금했던 것은 아니다. 꾸란(코란)에 와인이 네 번 언급되는데, 긍정적인 것부터 부정적인 것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중세에 이슬람 점령지에서도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어 마신 기록과 흔적이 있다. 무슨 이유에선지 이후 칼리프 시대를 거치며 철저한 금주로 돌아섰다. (이 분야도 한 번 연구해봐야겠다.) 고대로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든 역사적인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동 아랍에서는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와인소비는 커녕 와인제조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가서 신기했던 것 하나는 어지간한 크기의 슈퍼마켓에 가면 유대인을 위한 코너가 꼭 있다는 거다. 미국내 유대인 인구가 대략 6백만명, 전체 3억 인구의 2.2%라고 한다. 뉴욕 주처럼 전체 인구의9% 에 이르는 곳도 있지만, 캘리포니아 유대인 인구는 겨우 3%다. 100명 중 이 3명을 위하여 마치 당연한 것처럼 코셔(Kosher)라 써있는 코너가 따로 있다. 그리고 주류 관련법에 따라 주마다 경우가 다르겠지만, 와인가게에 가지 않고도 코셔 코너에서 케뎀(Kedem)이나 매니셰비츠(Manischewitz) 브랜드 와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국 북동부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콩코드 포도종으로 만든 와인이라 맛은 대단할 것 없는 그냥 그런 와인이다. 그래도 코셔와인이다. 


    코셔규정은 대략 주후 2세기 정도부터는 지켜왔다고 한다. 히브리 성경에 있는 대로 먹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에 관한 규정, 이후 탈무드와 랍비 전통에 따라 더 자세한 규정, 논란이 있는 규정 등이 있다. 와인의 경우 ‘이방인'이 만드는 와인은 우상숭배에 쓸 목적으로 만들었거나 그렇게 쓰일 가능성을 지닌다고 여겨, 유대인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든 와인은 철저히 금했다. 그러나 향신료를 넣고 끓였다거나 저온살균과정을 거친 와인은 우상숭배에도 쓰일 일이 없음이 분명하니 (우상님께도 신선한 와인을!), 그런 경우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상관없이 코셔규정에 합당하다. 코셔와인은 처음 포도가 으깨지는 과정부터 발효, 청징(淸澄, 탁한 성분을 걷어내어 와인을 맑게 만드는 과정), 병입과 유통까지 코셔규정에 합당한 재료를 사용하며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이 지휘감독하여야 한다. 


    무슬림이 이른바 ‘성지'를 점령한 7세기 이후에는 와인을 만들지 않다가 1880년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이스라엘과 요르단 서안지역에서도 와인을 만든다. 최근까지도 이 지역 와인들은 맛으로 알려진 와인은 결코 아니다. 포도재배도 그렇고 와인만드는 기술도 그렇고 모두 다시 일구어야 했으니 맛을 기대하기는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에는 350개 와이너리가 와인을 연간 6천5백만병생산하고 있다. 2014년 세계 와인생산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3배 가까이되는 규모이고 매해 크게 성장하고 있다. 


    작년 11월말 ‘뉴욕타임즈’는 이스라엘 토착품종 ‘마라위'로 만든 와인을 상업와인으로 개발 발매한 와이너리를 소개했다. 이 지역 토착품종으로 와인을 상품화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마라위 와인은 이야기거리가 된 이유는, 현지 대학과 협업으로 DNA 검사를 통해 다윗왕과 예수가 마셨을 고대 와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내고 복원하려는 프로젝트의 생산품이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에 있는 내용으로 마라위라는 와인품종을 주후 220년까지 추적해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즈 기사 제목은 ‘이스라엘, 예수와 다윗왕이 마신 와인 재창조를 목표 삼다’였는데, 이 기사를 국내 모일간지에서 ‘예수가 마셨던 포도주 복원 성공… 유전공학의 개가'라는 제목을 달고 그다음날 인용보도하여 좀 거시기했다.) 


    이스라엘에서 만든 와인이라고 자동으로 코셔와인이 되거나 모두가 코셔규정에 따라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세계 굵직한 와이너리에서 마케팅 차원에서라도 코셔 규정에 따라 코셔와인을 만들고 있고, 요즘은 미국 와인가게에서 코셔와인을 찾으면 대개 한두 가지 갖춰 놓고 있다. 맛도 꽤 괜찮다. 


    곁가지 이야기인데, 이스라엘에서는 안식년 규정 때문에 오늘날에도 7년째 되는 해마다 포도나무를 다 뽑아버리고 땅을 쉬게 하는 지 궁금했다. 실제로는 포도밭을 남에게 팔아버린다고 한다. 왜냐하면 포도나무는 3년 되는 해부터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포도를 거두기 시작하여 대략 수령 20년까지가 제일 좋은 때인데, 7년째에 나무를 뽑아버리는 일은 경제적으로도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쓰고 있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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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와 와인, 그리고 나

 



박여라



들어가며


    와인 공부를 시작한 뒤 서가에서 여러해 만에 성서를 꺼내들었다. 와인에 관련된 단어들을 주석책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그 단어들이 나오는 성서본문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예전엔 생각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의미로 본문이 가깝게 다가왔다. 와인이 성서를 읽는 새로운 렌즈가 되어준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도 되어주겠구나 하며 와인공부가 더 재미있어졌다.

    그러고 나서 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경건하거나 근본주의거나 또 다른 어떤 이유로든 술을 죄악으로 여기는 개신교 신앙인들 중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와인 한 잔에는 너그럽다. 구세주 예수도 제자들과 포도주를 나눠마셨으니까. 그런가 하면, 성서 본문에 예수가 마셨다는 그 포도주는 우리가 아는 와인이 아니라 알콜이 없는 포도즙이라고 애써 주장하는 문헌이 적지 않다. 신학논문도 꽤 있다. 그래도 그 와인이 무알콜 포도즙이면 신앙이 무너질 것만 같은 그들의 주장하는 이유에 귀기울이는 것은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나의 신앙과 삶을 새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성서와 와인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살며 알게 된 사실은 그곳이 성서에 나오는 지역과 기후가 아주 비슷하다는 점이다. 한 해는 건기와 우기 두 계절로 나뉘어 일년 강수량의 대부분은 10월에서 4월 정도에 몰려있고, 나머지 기간에는 비가 아주 드물게나 온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낮에 해가 뜨겁지만 공기는 건조하다. 그래서 한여름에도 그늘에만 있으면 전혀 덥지 않다. 비가 오지 않아도 저녁이면 안개가 몰려와 공기와 땅을 적신다. 남부 내륙 캘리포니아같은 사막이 아니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은 여름이 좀 습하다고 들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밀, 보리,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 올리브 나무와 꿀(대추야자)이 있어 부족함이 없는 땅이라고 적었다.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 모두가 오늘까지도 그 지역 특산농산품이다. 비슷한 기후라 캘리포니아에서도 포도, 올리브, 무화과, 겨자 등 성서에 나오는 나무와 과실을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음식재료로도 흔하다. 자주 접하다보니 성서가 씌여진 지역의 자연과 문화가 한국에서보다는 가까이 느껴진다.

    성서 언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 ‘포도주'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여럿이라서 기준에 따라 통계가 좀 다르지만, 포도주는 성서에 대략 220회 정도 나온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물과 빵, 그리고 올리브유나 무화과 등 다른 음식에 비해서도 훨씬 빈번하다. 그리고, 올리브유와 포도주는 음식 이상의 용도와 의미가 있었다. 와인의 역사는 수메르, 이집트, 페니키아 등 고대 근동부터 기록이 남아있다. 포도주가 자주 언급되는 성서 역시 지리, 자연환경, 인류학적으로 이 맥락 속에 있다. 비유와 이미지, 율법 등에 포도밭, 포도원 일꾼, 포도나무, 포도열매가 자주 등장하는 것에 비해 아쉽게도 교회에서 포도주가 주인공으로 이야기하는 대목은 대략 세 가지 정도 뿐이다. 갈릴리 가나에서 벌어진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첫번째 표적 (요한복음), 그리고 제자들과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나눈 ‘최후의 만찬'에서 앞으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마다 당신을 기억하라 하신 장면,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금식논쟁 중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와인의 역사를 공부하며 성서와 겹치는 지점들은 더 다양하고 깊게 파고 들고 싶다.


그리스도교와 와인


    성서가 기록으로 남은 역사지리적인 현장이 포도주와 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포도주는 그리스도교와 함께 전세계로 퍼졌고, 포도주 연관기술도 그리스도교와 함께 발전했다. 4세기 말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에서 공식종교가 되었고, 로마시민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가있던 와인은 제국의 세력을 따라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로 퍼졌다. 로마제국이 쇠퇴한 뒤에도 와인을 위한 포도재배지지역에선 포도재배와 와인제조가 계속했다. 역병과 온갖 혼란 속에서 일어난 수도원운동은 중세를 지내며 근대에 이르기까지 결과적으로 포도재배와 와인생산에 관련된 모든 과정에서 획기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다. 

    유럽국가들이 근대 이후 식민지를 만들며 전세계로 마구 뻗쳐나갈 때에는 오늘날 와인 신세계로 불리우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로 포도나무와 와인기술을 가져가 무역을 했다. 미사를 위한 와인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와인은 삶의 일부였다. 캘리포니아만 해도 와인은 그렇게 전해졌다. 스페인이 가톨릭을 전하기 위해 18세기 말 식민지 샌디에고(지금은 캘리포니아 최남단)에 미션을 세웠다. 거기서부터 북쪽으로 약 1천km에 걸쳐 50km마다 총 21개의 미션을 세웠다. (50km라는 거리는 짐을 진 당나귀가 하루 이동할 수 있는 거리라고 한다.) 이 길을 지금도 ‘왕의 길(El Camino Real)’이라고 부른다. 로스엔젤레스, 산타 바바라, 산 루이스 오비스포, 카멜, 샌프란시스코 등 미션이 세워진 곳이 오늘날 도시가 되었고, 유명 와인산지의 중심지다. 가장 북쪽에 있는 캘리포니아 미션은 나파 옆 소노마에 있다.


포도나무를 키우다


    몇 년 전에 와인을 만드는 포도품종 묘목을 우연히 얻어 마당에 심었다. 올해 처음으로 잎이 돋는 과정부터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달리고, 포도가 익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책에서 배운대로 가지치기도 하고, 아침저녁으로 변화를 지켜보며 거미줄도 걷어내고 습기에도 바람이 잘 통하라고 잎도 좀 정리하고, 또 열매가 익어갈 때에는 햇볕을 잘 받을 수 있게 했다. 풀지 못한 수수께끼처럼, 혹은 내게 내려진 선문답이나 화두처럼 포도나무에 관한 말씀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포도나무를 키우는 농부 하나님과 참 포도나무인 예수, 그리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라는 말씀. 그 뜻을 알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런데, 새싹을 내고 가지가 뻗어나가고 열매가 맺는, 살아있는 포도나무가 말씀에 생명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올해 포도는 여섯 송이 달렸다. 소량이라도 와인을 만들어 볼까 생각이 없진 않았는데, 그 꿈이 물건너 가고 있다. 죽 쒀서 새 주고 있다. 포도알이 하나씩 익는 대로 새들이 다 먹어치우고 있다. 마당에 하릴없는 고양이도 한 마리 상주하건만, 새가 포도를 쪼아먹을 때 쫓기는 커녕 그저 새가 뭐하나 지켜본다. 이번 주에는 포도를 따야겠다.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쓰고 있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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