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들로 세일즈하게 하라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영성 마케팅


    마케팅학계의 구루라고 불리는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의 책 《마켓3.0》은 산업사회의 ‘마켓1.0’과 소비사회의 ‘마켓2.0’에 이어 ‘마켓3.0’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보면서, 각 시대를 특징짓는 키워드를 각각 ‘이성’, ‘감성’, 그리고 ‘영성’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영성’이라고 함은 기능성이나 욕망을 넘어서 가치를 상품에 담아 판매하는 것이라고 코틀러는 해석한다. 역시 마케팅학계의 구루답게, 현상의 징후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가 그리는 미래의 자본주의는 참 매혹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코틀러의 해석은 차라리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영성 마케팅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최근에는 코틀러의 예측처럼 비약적으로 확대되어 향후 시대의 대세가 될 것처럼 보인다. 한데 이때 영성 마케팅은 ‘종교적 신비체험의 상품화’라고 하는 게 더 객관적 지적이다. 즉 종교적 신비체험이 하나의 교환가치를 지닌 상품으로서 시장에서 매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점술가가 복채를 받고 고객의 길흉화복에 대해 조언해주는 것이 가장 일상적인 영성 마케팅의 예라고 할 수 있다. 한 스마트폰 회사 경영자는 아이폰의 등장을 스마트폰의 감성화라고 해석하면서 향후의 스마트폰에서 대중은 영성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스마트폰이 추구하는 미래 마케팅 전략은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고객이 종교적 신비체험과 같은 종류의 감성 체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코틀러의 ‘마켓3.0’론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상품화 능력의 탁월성, 아니 전능성일 것이다. 하여 인간의 체험 중 영성까지 상품화한다는 것은 상품이 되지 않고 남은 인간의 체험은 더 이상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자아내게 한다. 하여 우리는 향후에 이런 자기계발의 명령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영들로 세일즈하게 하라!”


〈사도행전〉 16장 읽기. 정신의학과 역사학적 비평


    여기서 우리는 〈사도행전〉 16장에 주목하게 된다. 이 텍스트는 ‘영성 마켓’에 관한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고, 그것은 우리 시대의 ‘마켓3.0’의 논점을 비판적으로 읽는 데 훌륭한 전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 텍스트에는 ‘프뉴마 퓌토나’ 들린 여성이 등장한다. 한글 새번역 성서는 “귀신들려 점을 치는 여종”이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그 헬라어 성서본에는 “프뉴마 퓌토나 들린 파이디스케”로 되어 있다. ‘파이디스케’(παιδισκη)는 인신이 타인에게 예속된 어린 여성을 뜻하니 ‘여종’이라고 번역해도 무방하다. 다만 고대로마 사회에서 여성의 결혼가능 연령이 12세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녀는 아마도 12세를 넘지 않은 소녀였을 것이다. 

    문제는 ‘퓌토나’(πνευμα πυθωνα)인데, 인접어인 ‘퓌톤’(πυθον)이 ‘점쟁이’를 뜻하고 ‘퓌토네스’(πυθωνες)가 복화술사를 의미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프뉴마 퓌토나’는 입을 열지 않고 말을 하는 점술사, 그 안에 들어가 점술을 하게 하는 영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이 구절은 입을 열지 않고 소리를 내는 방식의 점술행위를 하는 노예소녀를 의미하는 것이겠다. 

    점술은 일종의 예지능력이다. 그것을 고대인들은 현상세계 이면의 세계와 대화하는 능력으로 보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 예지능력자가 현상세계 밖의 존재, 즉 영과 접신한 결과라고 이해했다. 하여 이 소녀는 접신자였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녀 속에 프뉴마 퓌토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사도행전〉 16장의 텍스트로 돌아가 보자. 그녀가 바울을 몇날 며칠을 쫓아다니면서 그의 사역을 방해한 모양이다. 이제까지 바울은 아라비아와 시리아, 그리고 소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했다. 특히 시리아 북부와 소아시아 동부는 바울의 활동 본거지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소아시아의 서부 해안에도 활발히 활동한 결과 바울의 주요 거점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서쪽, 이오니아 해를 건너, 생면부지의 땅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역으로 길을 떠났다.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니 많이 설렜겠다. 그렇게 떠난 길의 첫 목적지가 바로 ‘빌립보’다. 과거 알렉산드로스가 난 곳, 어쩌면 바울은 이 도시가 한때 세계 정치의 중심지였던 것처럼 그리스도 복음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게 하리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당도한 곳이다. 한데 이곳엔 야훼의 회당(쉬나고그)이 없다. 단지 성밖으로 흐르는 지각티스(Zigaktis) 강가 한 곳에 기도처(프로슈케, προσευκη)가 있었을 뿐이다. 이스라엘 교포사회가 형성되지 않았고 소규모의 비공식적 예배 모임 정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잠잘 곳, 먹을 곳, 만날 사람 등 모든 것이 막막했다. 그러다 프로슈케에서 루디아(소아시아 서부 지역) 출신의 한 여성 사업가를 만났고, 그녀로 인해 비로소 기식할 곳이 생겼으며 사람들을 소개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에게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거리에서 겨우겨우 뭔가를 말하려 하는데, 그때마다 한 소녀가 따라다니면서 그의 말을 방해한다. 그녀가 말한 ‘내용’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바울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인데,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녀의 말이 상황에 부적합한 것이라는 데 있다. 일종의 ‘경계선 장애’ 증상이 바울과 사람들과의 대화를 가로막았던 것 같다. 바울은 부아가 치밀었던 모양이다. 하여 그녀를 향해, 아니 일반적인 통념처럼 이 점술가의 몸속에 들어가서 그녀를 지배하는 영, 본문이 말하는 바로는 ‘프뉴마 퓌토나’를 향해 버럭 소리 지른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니, 이 여자에게서 나오라.” 

    한데 이 축귀 발언 직전의 그의 심사를 본문은 이렇게 표현한다. “귀찮게 여겨서”(디아포네떼이스. διαπονηθεὶς). 여러 영어 성서본들은 이 단어를 훨씬 더 강한 불쾌감과 적대감을 드러내는 단어인 annoy로 표현한다. 그녀에 대한 애틋함이 전혀 없이, 단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도로서의 소명을 방해하는 자에 대한 분노가 축귀행위로 나타난 것이다. 성서의 축귀 장면들에서 이처럼 인간애가 결여된 텍스트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 텍스트에서 소녀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서 이 사건 이후에 소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텍스트는 무관심하다. 오히려 텍스트가 관심 갖고 있는 것은 그녀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이 복수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필경 그녀가 점술사 길드에 속한 노예였다는 뜻일 것이다. 여기서 길드(guild)란 동직조합을 의미하는데, 고대로마 사회에서 사용된 용어로는 콜레기아(collegia)다. 콜레기아(collegia)는 지중해 해안 지역 도시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데, 인구 혼합이 크게 진척되면서 스스로의 안전과 이해를 위해 형성된 일종의 자체결사체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종족적, 종교적 콜레기아다. 하지만 국제무역이 발달하면서 동직조합 성격의 콜레기아도 무수히 만들어졌고 그것이 일종의 길드인 셈이다. 그리고 빌립보에서는 점술사 콜레기아들이 존재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소녀는 그중 한 점술사 콜레기아에 속한 노예겠다. 그렇다면 아마도 점술 능력이 무력화된 소녀에게 일어난 일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무능력해진 많은 노예들의 운명처럼, 그녀는 죽임을 당했거나 매춘업자에게 팔려갔거나 했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 그렇다면 바울의 축귀 행위는 소녀를 둘러싼 저간의 사정, 나아가 이 도시의 사정을 염두에 두지 않은 섣부른 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 

    좀더 이 도시의 사정을 살펴보자. 바울이 간과한 것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서 말이다. 이 텍스트가 주목하는 것은, 말했듯이, 소녀의 주인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바울 일행을 당국에 고발한다. 그 이유는 그녀로 인해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데 그 이후 사태의 전개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그 소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바울의 행동은 고작 영업 방해일 텐데, 그들은 “우리 도시를 소란스럽게 했다.”고, 일종의 소요죄로 고발했다. 일단의 도시주민들이 그들의 주장에 따라 동조시위를 했다고 하니, 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과장이 주민들에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당국도 그 황당한 고발을 받아들여 바울 일행에게 체형을 가한 뒤에 구금해 버렸다. 체형이란 사람들에게 당국의 지엄함을 과시하기 위한 체벌이고, 고대로마 도시들에서 이는 죽을 만큼 혹독한 매질을 의미했다. 결국 바울 일행은 거의 초죽음이 된 몸으로 감옥에 갇혔다. 

    이런 사태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는 말인가? 내가 보기엔, 이것을 이해하는 하나의 가능성은 이 도시 주민들이 그 천한 소녀에 덧씌워 있는 ‘퓌토나 프뉴마’에 대한 공격을 자신들에 대한 공격과 동일시하는 ‘무의식적 과민증상’을 집단적으로 표출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그 직전까지의 이 도시의 역사적 체험 때문에 그러하다. 자, 그렇다면 이제 이 도시가 겪은 역사적 체험에 대해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이 이 도시에 나타난 때로부터 90년쯤 전 이곳에선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인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와 카시우스(Caius Longinus Cassius)가 이끄는 10만 명의 대군과 이들을 궤멸하려고 온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이끄는 12만 명의 대군 사이의 엄청난 전투가 벌어졌다. 정규군 전사자만 무려 2만 명이나 되는 치열한 전투였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잘 훈련된, 하나하나가 살인병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로마제국의 정예병사 20여만 명이 맞붙었다. 《풀루타르쿠스 영웅전》의 묘사를 분석하면 이 전투는 전략이 부재한 대군이 단순 충돌한 전투였다. 그만큼 치열했고 피해는 막심했다. 1세기 중반 빌립보 시의 인구는 15,000~20,000명으로 추산된다. 그들에게 이 어마어마한 전투는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전투의 희생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살아남은 자들도 죽은 자 못지않은 혹독함이 뒤따랐다. 한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후 이 도시에서는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절대1인이 되기 위한 정치적 격변이 세 번이나 벌어졌다. 그때마다 지배층의 급격한 변동이 있었고, 그들과 얽힌 서민들의 삶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자신들의 의지나 행동과는 상관없이 느닷없이 닥쳐온 재앙, 그것에 대항할만한 아무런 수단도 가질 수 없었던 철저한 무력감,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체험, 이러한 상황에 놓였던 이들 가운데 나타나는 신체와 정신의 장애 현상으로 대표적인 것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이하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다. 아마도 기원전 42년과 그 이후의 사건들을 경험했던 빌립보의 많은 사람들은 심각한 트라우마로 인한 PTSD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PTSD의 전형적 증상의 하나는 과거의 특정한 기억이 때로는 언어적 이미지(가령 특정 진술이나 상황)로 또 대로는 비언어적 이미지(가령 특정 색깔, 냄새 등)로 끊임없이 현재의 삶 속에 침입해 들어와(침습기억, intrusive memory) 안정된 생각과 행동을 뒤흔들어 놓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증세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이(transference)되곤 하는데, 전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의식적 동일화’(unconsciousness identification)다. 예컨대 1980년 광주사건을 겪지 못한 광주의 후예들이 부모나 이웃 어른의 트라우마적 불안 증상을 접하면서 그것에 무의식적 동일화를 체험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때로는 간접체험자 가운데 병증적으로 감정이 전이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프뉴마 퓌토나 들린 소녀’는 그러한 병증적 전이로 인해 90여 년 전의 트라우마, 그것의 기억에 끊임없이 침습(侵襲)되는 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무속인들의 자기 진술에서 종종 나타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이나 가족, 혹은 타인의 트라우마적 기억에 대한 무의식적 동일화 체험이 영계의 언어를 읽어내는 ‘무(巫)의 감수성’을 갖게 하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이들의 ‘무의 감수성’에 의해 접신한 이가 발설하는 언어는 그 사회의 대중, 그들의 집단적 기억이 투사된 영적 언어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즉 그 접신자를 매개로 사회와 프뉴마 사이의 무의식적인 감정적 공감대가 형성된다. 트라우마적 집단기억은 침습기억처럼 그때의 기억조각을 불쑥불쑥 드러내곤 하지만 그것은 파편적(fragmented)이어서 서사성(narrativity)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PTSD를 겪고 있는 이들의 일반적 증상의 하나는 서사화(narratization)의 붕괴 현상이다. 이것은 특정 사건을 이야기로 풀지 못하는 데서부터 그런 상태가 점점 확대되어 모든 말을 횡설수설하는 식의 언어 장애를 나타내는 데까지 다양하다. 전자에서 후자로 증상은 점점 악화되는 과정을 나타낸다. 한데 ‘무’의 감수성을 가진 접신자의 영적 언어를 사람들은 자신들의 단절된 기억과 동일시되는 다른 언어, 즉 환유적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프뉴마 퓌토나 들린 소녀의 말이 도시주민들의 억제된 기억의 환유로 여겨졌다면, 그녀의 영적 언어 능력을 무력화시킨 바울의 호령에서 사람들은 과거 그들의 부모와 이웃어른들에게 덮쳐와 언어 능력을 무력화시킨 사건들과 무의식적인 동일화를 체감했을 수 있다. 하여 바울에 대한 대중의 적대감은 그의 언행이 그들의 무의식적 상처를 도지게 했던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이 도시 주민들에게 점술에 대한 친근감과 의존성은 크게 확대되었다. 이는 점술산업의 비약적 확대를 가져왔다. 점술자 길드가 속속 만들어졌고, 노예든 자유인이든 점술자들이 고용되었다. 요컨대 영성 마켓이 활성화된 것이다. 

    그것은 프뉴마 퓌토나 들린 소녀가 점술능력이 무력화되는 순간 점술조합의 주인들에게는 불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 사회의 고통을 품은 소녀의 몸은 아무런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단지 그 사회의 영성 마켓에서 창출하는 이윤만이 그녀의 가치를 대변할 뿐이다. 

    하여 점술조합의 주인들이 바울을 고발한 동기는 “자기들의 돈벌이 희망이 끊어진 것”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도시 주민들과 당국을 설득한 언어는 “우리 도시를 소란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했듯이 그 도시 주민들의 파괴된 기억, 그럼에도 그들로 하여금 존재가 붕괴되지 않고 살아낼 수 있게 한 하나의 비결이 그들의 봉쇄된 기억을 환유적으로 나타내는 그녀 같은 접신자들의 영적 언어 때문이라고 한다면, 도시 대중은 바울의 소행을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여겼을 것이고, 하여 당국도 그를 가혹하게 처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겠다.    


빌립보의 바울과 오늘의 교회, 실패의 내력


    이런 관점에서 〈사도행전〉 16장을 읽는다면, 우리는 오늘 시대를 보다 깊게 보는 성찰에 이를 수 있다. 필립 코틀러가 말했듯이 우리 시대는 점점 영성 마켓이 활발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영적 체험들을 필요로 하고, 그것을 세일즈에 동원하라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더욱 그러하다. 우리 근대사에서 점술업 단지가 만들어진 것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피난 온 맹인 역술가들이 영도다리 밑 노상에서 점술 거리를 만든 데서 유래한다. 이후 우리사회는 거듭된 격변을 거쳤고, 특히 최근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점술산업은 엄청나게 확산되었다. 2012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점술가 50만 명, 그 매출액이 4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영화나 드라마, 소설, 만화 등에서 좀비나 빙의 소재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도 영성 마켓이 널리 확산되고 있는 증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개신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들에서 영성운동 혹은 성령운동이 열광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코칭 프로그램, 힐링 프로그램 등이 종교계 안팎에서 크게 확산되고 있다. 요컨대 영성은 한국사회에서 이미 거대한 마켓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데 이러한 영들로 세일즈해야 하는 사회, 특히 영성 마켓을 거대하게 창출하는 오늘의 사회는 깊고 구조적인, 개개인으로서는 도무지 대처할 수 없이 다가오는 사회적 고통의 결과라는 데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영성 마켓의 부름을 받는다. 살아남기 위해 영적 체험까지도 마켓에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자신, 우리의 체험들, 결국은 우리의 영적 체험들까지도 그것이 발생시키는 부가가치로만 존재 의의가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프뉴마 퓌토나 들린 소녀처럼 영적 능력이 시장에서 무력화되는 순간 우리의 고용주는 우리를 용도폐기할 것이고, 사회나 국가는 그것을 묵인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해 버릴 때 그런 자신을 불러일으키고 자존적 주체가 되도록 일으켜 세울 내적 동력인 영마저도 그렇게 시장적 가치로 환원되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그 소녀의 개인사, 그리고 그 소녀가 살고 있는 도시의 역사를 주목하지 않은 채 섣불리 그녀의 삶에, 나아가 그녀에게 투사된 그 도시사회에 끼어들었다. 선교사라는 그의 소명이 그리스도를 매개로 타인의 삶에 끼어드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방식은 타자의 삶에 끼어들기 위해서 그 자신이 그 타자가 되었다. 한데 바울은 그녀의 고통과 그 도시의 비극적 역사를 묻지 않은 채 자신의 능력을 과시적으로 드러냈다. 하여 그는 뼈저린 자기 성찰이 필요했고, 〈빌립보서〉 2장의 저 유명한 ‘그리스도 찬가’는 바로 그 자신의 처절한 자기 성찰의 기록이다. 그 성찰을 간략히 말하면, ‘자기 비움’(케노시스)이다. 

    오늘의 그리스도교도 빌립보에서의 바울의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사회와 개인이 겪고 있는 아픔들과 절망, 그것이 환유적으로 표출된 종교성을 단순히 귀찮은 것으로 취급한다. 그리고는 너무 큰 소리로 ‘불신 지옥, 예수 천국’을 부르짖는다. 그러는 사이 자본주의는 영성 마켓을 확대하고 사람들의 삶 곳곳에 끼어든다. 그리고 나아가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영적 자원을 판매하는 자가 되라고, 영들로 세일즈해야 한다고 속삭이고 있다. 하여 피로사회에서 존재가 고갈되는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의 가능성을 부추기는 내적 동력이 되어야하는 영조차도 자본주의적 가치의 평가 아래 귀속시키고 있다. 하여 그리스도교 복음의 실패는 결국 사람들의 고통에 다가가지 못하는 종교, 곧 그리스도교의 실패로 귀결될 것이다.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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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알린스키(Saul D. Alinsky)와 실용주의적 급진주의(I)

 



서명삼

(University of Chicago, 종교사회/인류학 박사과정수료)




    1. 오늘날 하나의 유령이 미국을 배회하고 있다 – 사울 알린스키라는 유령이. 사실 이 유령은 이미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공동체조직운동(Community Organizing)이란 이름으로 (진보적) 교회와 노동조합 그리고 빈민가와 이주민 단체 등을 숙주로 삼아 이곳저곳에서 지속적으로 출몰해왔다. 다만 이 유령은 이제껏 그 출입이 워낙 신출귀몰하고 그 형태를 변화무쌍하게 바꿔온지라 그동안 겉으로 드러나 눈에 보이는 그 파생 단체나 조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천년대 들어 바락 오바마라는 알린스키의 사도가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이 유령은 하루 아침에 미국의 정치판 자체를 뒤흔드는 핵심 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보수측에서는 과거 오바마가 시카고 남부의 흑인 빈민가에서 공동체조직운동가로 활동했던 전력을 상기시키며 이 운동의 창시자인 알린스키가 실은 골수 ‘빨갱이’이었으므로 그 영향을 받은 오바마도 알고보면 불온한 ‘사회주의자’일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색깔론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 진보측에서는 오바마의 등장을 계기삼아 다시금 미국의 풀뿌리 민주주의 전통을 되새겨보며 알린스키식 공동체조직운동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진지한 논의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게다가 오바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 민주당의 핵심 지도자 중 한사람이자 다가오는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유력 후보 1순위로 꼽히는 힐러리 클린턴 역시 대학시절 알린스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앞으로도 당분간은 미국 정치판에서 알린스키에 관한 관심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 미국에서의 이런 흐름에 호응이라도 하듯 최근 한국에서도 알린스키의 이름이 부쩍 자주 거론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사실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알린스키의 공동체조직운동은 이미 60년대 말에 해외 선교사들과 기독운동가들을 통해 국내에 도입되어 당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도시지역의 (기독교계) 빈민운동과 노동운동에 중요한 실천적-담론적 기틀을 제공해준 바가 있다. 그래서 알린스키는 적어도 70년대 민주화 운동에 잠시라도 발을 담갔던 이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러나 한정된 지역이나 제한된 직군 내에서 해당 공동체의 구체적인 이익증진이나 삶의 질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알린스키식 운동방식은 1980년대라는 혁명적 열기 속에서 등장한 각종 ‘과학적’ 사회변혁담론과 체제변혁적 대정부투쟁방식에 눌려 한동안 진보세력 내부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알린스키의 주 저서『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이 2008년에 완역되고 또 한국에서 공동체조직운동의 확산에 큰 기여를 한 박형규와 오재식의 회고록들이 각각 2010년과 2012년에 연달아 출간되면서 지난 10여년 사이에 다시금 알린스키와 그의 운동론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다시 말해 6-70년대의 진보세력 내에서 주된 운동 담론이자 실천 양태였던 알린스키식 공동체조직운동이 8-90년대에 한동안 주춤했다가 2천년대에 들어서 다시금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3. 그런데 최근 한국사회에서 알린스키의 유령이 재소환되고 있는 맥락을 살펴보면 그 의도가 단순히 한동안 잊혀졌던 과거의 진보운동전통을 새롭게 재조명해보고 재평가해보는데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그보다 오늘날 알린스키의 운동론은 종종 범진보진영 내부의 ‘온건파 비주류’ 세력이 (주로 586세대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강경파 주류’ 세력을 비판할 때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준거틀로 인용되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2014년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강준만의 ‘싸가지 없는 진보론’은 일단 현재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좌우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온건한 중도파가 권력의 향배를 결정짓는 중요한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러면서 그는 1960년대 말 알린스키가 미국의 신좌파 운동에 가했던 비판을 오늘의 한국 ‘주류’ 진보세력 (특히 구 민주당 계열)에게 그대로 적용시켜 이들이 과거 운동권 시절의 거칠고 날선 언어 및 행동양태와 결별하지 않고서는 결코 중도적 투표유동층의 지지를 얻어내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한편 얼마전 정의당의 당대표 선거에 나와 ‘2세대 진보정치론’를 내세우며 큰 주목을 받았던 조성주 역시 586세대가 주축인 진보정당 1세대를 비판하기 위해 알린스키의 운동론을 끌어들인다. 조성주에 따르면, 이들 진보정당 1세대는 민주주의적 정치 광장과 노동조합을 건설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당사자들이지만 과거 80년대 운동의 성과에 안주하다 보니 그 이후 급속히 변해온 한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한다. 그동안 탈정치화된 광장 밖의 소시민과 탈계급화된 노조밖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왔는데 오늘날 진보정당이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80년대식 운동 패러다임에서 완전히 탈피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이런 현실 인식 하에서 조성주는 알린스키의 운동론을 언급하며 앞으로 차세대 진보세력은 보수 기득권층과의 추상적인 이념 대결이나 권력다툼에 소일하지 않고, 대신 그들과 때로 과감히 절충도 하고 타협도 하면서 광장 밖의 소시민과 노동 밖의 노동자의 삶을 소박하나마 실질적으로 개선시키는 데 온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강준만과 조성주는 각기 서로 조금씩 다른 정치적 의제와 입장을 내세우면서도 (간단히 말해 강준만은 중도보수층에게 호소력이 있는 안철수를 대선 후보로 지지한 바가 있고 조성주는 정의당에 몸을 담은 채 주로 청년 비정규직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한다), 알린스키와 그의 운동론이 오늘날 답보상태에 빠져있는 기존 진보정치와 운동세력에게 유의미한 대안과 돌파구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4. 여기서 강준만의 ‘싸가지 없는 진보론’이나 조성주의 ‘진보정치 세대교체론’을 둘러싼 논쟁에 직접 (게다가 뒤늦게) 뛰어들 생각은 별로 없다. 일단 큰 틀에서 오늘날 한국의 진보세력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중 하나가 아직 ‘조직되지 않은 자들을 조직화하는 (organizing the unorganized)’ 방법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 그 세력기반을 확장시키고 강화시키는 작업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전혀 이견이 없다. 다만 그들의 현실분석이나 각자 제시한 해결책이 과연 어느정도 타당성과 실효성을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과 궁금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강준만이나 조성주가 각각 주된 포섭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사회계급 혹은 계층 — 그게 온건한 ‘중도층’이건 ‘광장 밖의 시민’이나 ‘노조 밖의 노동자’건 간에 — 의 정치, 사회, 문화적 성향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나 분석을 아직 접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의 주장에 대해 왈가왈부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강준만처럼 주변사람들과 인터넷을 통해 이런저런 얘기들을 접한 후 그게 마치 ‘빅데이타’라도 되는 것마냥 용감하게 자기 주장을 전개할만한 배짱도 없다)

 

    5. 다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이들이 알린스키를 마치 바른생활을 선도하는 도덕교사이거나 소통과 타협의 중요성을 부르짖는 평화의 사도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이다.


    6. 논지가 좀 흐려질 위험은 있지만, 우선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어가자. 사실 저런 식으로 알린스키를 이해하는 게 완전히 틀린 얘기만은 아니다. 알린스키는 분명 1960년대 미국 신좌파 학생운동의 과격한 언어사용이나 그 일부 (특히 Weathermen 소속 단체)의 폭력성에 대해서 아주 단호하게 비판하면서 합리적인 소통과 타협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또한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알린스키가 (백인) 중산층을 조직화하는데 한층 더 관심을 기울이면서 앞으로 공동체조직운동은 이들의 온건한 도덕적-문화적 성향에 최대한 맞춰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 또한 맞는 얘기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성과 포용성을 마치 알린스키 운동론의 핵심 주제인 것마냥 묘사하는 데 대해서는 일정정도 의문을 제기하지 하지 않을 수 없다. 알린스키가 상투적이기 그지없는, 그래서 도리어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당하기 일쑤인, 욕설을 남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 건 사실이나, 동시에 그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풍자하고 심지어 상황에 따라 엄포를 놓고 협박까지 할 필요성도 있음을 역설하기도 했다. 폭력의 사용여부에 있어서도 알린스키가 무슨 평화주의의 이념에 입각해 무조건적으로 반대한 게 아니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 따라 그에 걸맞는 운동의 목표와 효과적인 저항의 방법을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는데, 이에 비추어볼 때 그는 60년대 말과 70년대초의 미국이라는 상황에서 무장폭력운동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일말의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거의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는 판단 때문에 반대한 것 뿐이다. 또한 알린스키가 종종 ‘비겁함’과 동일시되는 ‘타협’이라는 개념을 가치전도시켜 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려고 한 것 역시 맞으나, 이를 좀더 정확히 풀어서 말하자면 그는 인간사회라는 게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의 충돌로 점철되어 있으므로 어차피 대결과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일 테지만 간혹 가다 그동안의 투쟁에 쏟은 노력을 조금이라도 보상받고 또 잠시나마 숨을 고르기 위해서라도 때때로 ‘타협’하는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8. 알린스키가 70년대 초부터 (72년에 급작스럽게 사망하느라 제대로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중산층을 조직화하는데로 관심을 돌리게 된 데에는 좀더 자세한 배경설명이 필요하다. 사실 알린스키는 1930년대 말부터30여년 동안 주로 가난한 (가톨릭계 백인 이주민) 노동자들이나 빈민가의 흑인들을 대상으로 공동체조직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흑인 단체들의 경우 마틴 루터 킹 같은 민권운동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흑인권력 (Black Power)’를 구축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인종도 다를 뿐더러 가뜩이나 몇몇 소수의 카리스마적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운동에 비판적이었던 알린스키는 당시의 흑인민권운동과 어느정도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알린스키에게 남은 선택지는 (백인계) 노동자 단체, 기독교 단체, 그리고 진보적 학생단체와 연대해서 활동하는 것 뿐이었는데 이마저도 사정이 그리 여의치 않았다.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미국 대부분의 기독교 단체나 AFL-CIO같은 미국의 노조단체에서는 애국주의에 입각한 반공주의 세력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당시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6-70년대의 신좌파 학생운동과 일정부분 긴장관계에 놓여있었다. 그러다가 신좌파 학생운동이 미국 국기를 불태우거나 폭탄테러를 감행하는 점점 과격한 운동방식을 취하게 되면서 이들의 관계는 점점 악화일로에 빠지게 된다. 평생을 소비에트식의 교조주의적 공산주의에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맥카시즘으로 상징되는 국가주의적 반공주의에도 적극 반대했던 알린스키였건만 당시 상황은 그로 하여금 교회와 노동단체 아니면 신좌파 학생운동 두 세력 중 하나만 선택해서 연대하도록 강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60년대 후반 무렵 알린스키는 카메라 제조회사 코닥 (Eastman Kodak)을 상대로 흑인고용확대투쟁을 벌이다가 우연한 기회에 소위 ‘소액주주운동’이라는 (한국에선 90년대에 참여연대가 도입해 대 히트시킨 바 있던) 새로운 운동방식을 개발해 처음으로 실행에 옮기게 된다. 이 운동을 통해 알린스키는 어느정도 주식을 보유한 중산층을 조직화 할 수 있다면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 훨씬 더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바로 이 경험을 계기로 70년대부터 운동의 초점을 중산층에게로 옮겨가기로 작정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여러가지 상황이 맞물려 알린스키가 피치 못하게 자신의 운동 노선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게 된 것이다.


    9. 이런 시각에서 보면 알린스키의 운동론은 강준만이나 조성주가 소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입체적이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들처럼 알린스키에게서 도덕교사나 평화의 사도 같은 모습을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때에 따라 입에서 거친 욕설과 음담패설을 내뱉는 독설가이자 온갖 더러운 것들(각종 쓰레기부터 심지어 인간의 배설물까지)을 동원해 상대방을 골탕먹이길 즐기는 일종의 협잡꾼 (trickster)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이것저것 선택할 여지가 별로 없는 전쟁의 상황 속에선 폭력을 비롯한 어떠한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 현실주의자였으며 동시에 물리적 힘이 압도적으로 강한 적을 상대할 시에는 그 해당 적의 가장 약한 부분만을 찾아 그곳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거나 아니면 다른 여러 세력들과 연대하여 아군의 역량을 증진시키는데 주력하라고 충고하는 일종의 책략가이자 전략가이기도 했다.


    10. 그래서 굳이 그의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을 짚어보라면, 나는 그가 신좌파의 ‘싸가지’ 없음과 공격성을 비판하는 대목보다는 오히려 (마치 부르디외의 행위이론을 그대로 옮겨 적어 놓은 듯한)[각주:1] 다음과 같은 대목을 꼽을 것이다: “특정한 상황에 모두 들어맞는 (일반적인) 처방이란 건 있을 수 없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듯이 똑같은 상황의 반복이라는 것도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 (각종) 압력, 그리고 권력의 패턴 등 이 모든 것들은 변화하는 요소들이고, 이들은 오직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형태의 조합으로서만 존재한다. 아니 심지어 그 순간에서 조차도 이 변수들은 항상 변화하는 상태에 놓여있다. 전술과 전략은 반드시 [알린스키가] 설명한 규칙과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맞게 적용시켜야만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조직운동가가 전장에 갖고 나가야 할 것은 바로 이 원칙들일 뿐이다. 운동가는 이 원칙들을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하고 나아가 전략적으로 그 원칙들을 특정한 상황에 맞게끔 바꾸어 나가야 한다.”


    11. 눈치빠른 독자라면 이미 제목에서부터 알아차렸을 테지만, 이 글의 요점은 알린스키를 급진주의적 실용주의자로 보아야 비로서 그의 운동론을 좀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단지『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의 부제에 알린스키가 “현실적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실용주의적 입문서 (A Pragmatic Primer for Realistic Radicals)”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그의 책 곳곳에 적시해 놓은 철학적 명제와 사회학적 전제가 그가 얼마나 미국의 실용주의 전통, 그중에서도 특히 그가 다녔던 시카고대학의 실용주의 학파 및 도시사회학파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는지 잘 웅변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알린스키가


• 영구불변의 진리란 없다.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고 변하기 마련이다. 

•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라; 자신의 희망사항을 덧씌우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 유연해져라. 변화하는 정치적 상황에 적응하라. 그리고 작용과 반작용의 과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라. 

•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가?’라고 묻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질문이다. 그보다는 언제나 ‘이 특정한 목적이 이 특정한 목적을 정당화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 목적과 거기에 이르는 과정은 아주 긴밀히 연결된 것으로 그 둘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 모든 종류의 신조 내지는 도그마는 민주적 사회질서의 방해물이다. 

• 모든 가치판단은 특정 행위가 발생하는 특정한 시간적 콘텍스트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의사소통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경험치를 고려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 대중은 종종 그들이 뭘 원하는지조차 잘 모른다. 그래서 때로 그들이 민주적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된 자격을 갖고 있는지 의심하는 엘리트주의자들도 있다. 조직운동가는 이런 의심을 떨치고 대중에게 다가가 소크라테스식의 산파술 (계속 질문을 던져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게 하는 소통방식)과 교육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절실한 문제들을 스스로 발견하고 그에 적절한 해결방식을 모색하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다시말해 조직운동가는 대중들에게 급진적 민주주의 (radical democracy), 즉 다원주의에 기초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습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창조적 사회교육가라고 할 수 있다.


라고 주장할 때, 그는 찰스 피어스, 윌리엄 제임스, 그리고 특히 존 듀이로 대표되는 실용주의의 중요한 명제들을 자기 식으로 소화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앞으로 이 연재물에서는 알린스키와 그의 공동체조직운동을 일종의 창문으로 삼아 먼저 미국의 급진적 실용주의 전통과 그로부터 파생된 시카고 도시사회학파 이론을 들여다 보고 그 다음 60년대 말 이 운동이 한국으로 건너와 전파되고 이식되는 과정까지 몇 차례에 나누어 살펴보기로 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참고문헌> 

강준만. 2014. 『싸가지 없는 진보』. 인물과 사상사. 

박형규. 2010.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박형규 회고록』. 창비. 

오재식. 2012.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대한기독교서회. 

조성주. 2015. “진보의 대안은 용기있는 타협.” 프레시안. . . 2015. “용기있는 타협과 작은 성공으로 단단해져라.” 한겨레.

조승혁 편.1983. 『알린스키의 생애와 사상』. 현대사상사. 

허병섭. 1987. 『스스로 말하게 하라: 한국 민중 교육론에 관한 성찰』. 한길사. 

Alinsky, Saul David. 1971. Rules for radicals; a practical primer for realistic radicals. New York: Random House. Breidenstein, Gerhard. 1971. Christians and social justice: a study handbook on modern theology, socio-political problems in Korea, and community organization. 

Horowitz, David. 2009. Barack Obama's rules for revolution: the Alinsky model. Sherman Oaks, Calif: David Horowitz Freedom Center. 

Horwitt, Sanford D. 1989. Let them call me rebel: Saul Alinsky, his life and legacy. New York: Knopf. 

Lamaison, Pierre & Pierre Bourdieu. 1986. “From Rules to Strategies: An Interview with Pierre Bourdieu.” Cultural Anthropology, Vol. 1, no.1, February, pp. 110-2. 

Stout, Jeffrey. 2010. Blessed are the organized: grassroots democracy in America.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White, Margaret B., & Herbert D. White. 1973. The Power of people: community action in Korea. [Tokyo?]: Urban Industrial Mission, East Asia Christian Conference.

  1. 이런 의미에서 어쩌면 알린스키가 자신의 책 제목을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전략』으로 수정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겠다는 생각도 든다. 규칙(rule)과 전략(strategy)의 구분에 대해서는 Pierre Lamaison and Pierre Bourdieu, “From Rules to Strategies: An Interview with Pierre Bourdieu,” Cultural Anthropology 1, no.1 (Feb., 1986):110-20를 보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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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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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시뮬라크르, 그리고 제의"_ 텍스트로서의 복음서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양식비평 연구에서 미학적 의미에서의 ‘작가’라는 개념은 떠오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연구가 관심을 둔 곳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한 예로, 불트만은『공관복음전승사』에서 “삶의 자리가 개체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한 공동체의 삶의 전형적인 상황 혹은 행동방식인 것처럼 문학 형태 및 형식은 사회학적 개념이지 미학적 개념이 아니다.”[각주:1]라고 썼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는 전승의 역사뿐만 아니라 그 법칙성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고 자신하도록 만들었다. “마태와 누가의 마가 처리에는 어떤 법칙성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Q는 마태와 누가에서의 재구성에 의존되지만, 그러나 여기서도 마태와 누가를 비교해 보면 가끔 Q에서부터 마태와 누가까지의 어록 자료의 발전이 어떤 법칙 하에 있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법칙성이 실제로 확인될 수 있다면, 이 법칙성은 마가와 Q에서 확정되기 전의 전승 자료에서 이미 작용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 자료의 형태로 확정되기 이전의 전승 단계에까지 소급해 갈 수 있다.”[각주:2] 그러나, 샌더스는 이러한 확신이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각주:3] 뿐만 아니라, 구테게만스는 형식주의와 구조주의 언어연구에 힘입어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는 양식비평의 방식이 과연 옳은 일인지 진지하게 되물었다.[각주:4] 또한 개별적인 전승 자료들의 문제를 넘어 문헌 구성의 문제를 물음으로써, 그는 양식비평이 가진 대부분의 전제를 반박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전승의 익명성, 공동체성, 전승의 발전 법칙 등과 같은 양식비평의 여러 전제들에 물음을 제기했던 것이다.[각주:5] 

     물론, 여기서 편집비평에 대한 언급은 빠트릴 수 없다. 막스젠에 따르면 복음서 저자들은 전승 자료들에 변화를 가하지 않고 단지 짜깁기만을 시도한 그러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순한 편집자 이상이었던 것이다.[각주:6] 때문에, 양식비평에서와 달리 복음서 저자들은 전승 자료들을 날것 그대로 보존해서 넘겨준 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관점에 맞게 전승들을 재구성한 하나의 신학적 작가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고로, 미학적 관점에 대한 고찰을 더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미학적 개념은 신학적 비평에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미학적 개념은 자료들의 구성뿐만 아니라 자료들 자체에도 저자의 개성이 개입되었을 수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 저자가 단순한 수집가가 아니라 신학적 작가의 지위로 격상된 이상 구성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전승 자료들의 신뢰성 역시 담보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절단된 개별전승들조차도 각 복음서들의 줄거리에 맞게 주조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노릇이 된 것이다. 사실, 형식과 내용을 분리할 수 없다는 언어연구의 관점에서 보자면 절단된 개별전승들마저도 신뢰성에 있어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은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미 불트만은 “편집이 단지 구전으로 전승된 것만을 대상으로 했다고는 볼 수 없다……또 우리의 마가복음서가 처음 문서화된 이후에도 가필되었으리라는 가정을 반대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차적인 자료들을 전승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각주:7]라는 벨하우젠의 말을 기꺼이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일차적 자료와 이차적 자료가 분리될 수 있고 그렇기에 복음서에서 역사적으로 순수한 일차적 자료를 안전하게 분리해낼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미학적 개념에서는 일차적 자료냐 이차적 자료냐 하는 구분은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미학적 개념에서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생생한 체험, 즉 일차적 자료가 후대의 공동체의 체험, 즉 이차적 자료를 지배하고 움직이며 나아가고 있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미학적 개념은 그 반대의 경우를 요구할 수도 있다. 종교적 경험의 측면에서 보자면 부활에 대한 미학적 경험과 같은 것을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우얼 바하는 “성서의 화자는 전설의 진실성에 대한 그의 믿음이 그에게 요구하였던 바로 그것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가 만들어낸 것은 본래 리얼리즘을 지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성을 향한 것이었다. 그것을 믿지 않는 자에게 재앙있거라!”[각주:8]라고 썼다. 마찬가지로, 그는 “마가복음을 쓴 필자는 그로 하여금 예를 들어 베드로의 성품을 객관적인 사실로써 그릴 수 있게 할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일어나고 있는 일의 복판에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명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만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위에든 사건에서는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즉 베드로가 어떻게 도망할 수 있었는가를 말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다.”[각주:9]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정타를 날렸다. “성스러운 글들의 전체 내용이 주석에 관련시켜지고 주석은 말하여진 것을 그 감각적 기초에서 떼어내는 일을 했다. 왜냐하면 독자나 청자는 실제 일어난 감각의 사건에서 눈을 돌려 그 의미를 생각하도록 요구받았기 때문이다.”[각주:10] 

     따라서 복음서 연구에서 전승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기준으로 논의되고 있는 구전이론 역시 미학적 개념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찮은 일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바하가 지적한 것처럼 종교적인 미학적 경험은 주석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날 것 그대로의 감각적인 체험은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석적 텍스트/이야기를 구성할 사명을 지닌 신학적 작가에게 대체 일차적 혹은 이차적 구분이나 구전과 같은 개념이 어떤 의미를 지녔겠는가? 과연 개별전승들의 신뢰성을 구전이론으로 방어해보고자 노력하는 최근의 보수적인 보컴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는 타당한가? 역사적인 예수와 가까웠을 수도 있는 특정한 개인들의 원초적인 목소리에 기대어 전승의 신뢰성을 설득하고자 애쓰는 보컴의 노력은 실로 눈물겹다.[각주:11] 하지만 그는 이것이 데리다가 지적한 현전의 형이상학을 추구하는 신학적/철학적 노력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길지만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2] 


 왜 음소는 기호들 중에서 가장 이념적인가? 소리와 이념성 사이의 아니 그보다는 목소리와 이념성 사이의 이 공모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내가 말할 때, 이 수행의 현상학적 본질에는 내가 말하는 그때 내가 나를 듣는다는 사실이 속한다. 나의 숨결에 의해 그리고 기표작용의 의도에 의해 혼이 불어넣어진 기표는 내게 절대적으로 가까이 있다. 살아있는 작용, 생명을 주는 작용, 기표의 신체에 혼을 불어넣어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표현으로 변형시키는 생기, 언어의 영혼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자기현전과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혼은 세계에 그리고 공간의 가시성에 내버려진 기표의 신체 속에서 죽음을 맞을 위험에 처하지 앟는다. 음소는 현상의 구사가능한 이념성으로 주어진다. 이렇게 영화작용이 자신에 의해 혼이 불어넣어진 것의 투명한 정신성 속에서 자기에게 현전함, 이렇게 삶이 자기 자신에게 내밀함, 이로 말미암아 말은 살아 있다고 늘 일러져 왔던바, 그러한 모든 것은 그러므로 말하는 주체가 현재에 자기를 듣는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서 데리다는 “기의의 형식적 본질은 현전이고, 소리로서의 로고스와 그것이 인접하는 특권은 현전의 특권이다.”[각주:13]라고 고쳐 썼다. 또한, 우리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자연적 문자언어는 목소리와 숨결에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것의 본성은 문자학적이지 않고 영기학적이다. 그것은 성직자의 것이고, 신앙고백의 내적인 성스러운 목소리와 아주 가깝고, 우리가 자신 안으로 되돌아가면서 듣는 그 목소리와 아주 가까운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적 감정에 신의 목소리가 충만되고 진실하게 존재하는 현전이다.”[각주:14]라고 말이다. 신학의 구전에 대한 집착은 바로 이러한 연유때문일 것이다. 신의 목소리는 역사적 두께를 몰아내고 순수한 것을 되찾도록 최초로 믿은 자들의 음성 속에 심어놓은 것이기에 우리가 그 목소리의 목격자를 찾아낸다면 역사적 신뢰성을 충분히 담보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이미 문자로 정착된 복음서에서 때가 끼지 않은 순수한 전승을 찾는 것이 가능한가? 이와 관련해, “문자는 자신의 망각이고 외재화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면화하는 즉 정신의 역사를 여는 기억의 반대[각주:15]”라고 한 데리다의 지적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록 데리다의 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리쾨르 역시 “직접적인 목소리, 얼굴표정, 몸짓 대신에 이러한 매개물들을 이용하는 기록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굉장한 문화적 성취이다. 여기서 인간적 사실은 사라져 버린다. 대신 이제 물질적 표식들이 메시지를 전달한다.”[각주:16]고 지적한 바 있다. “담화의 운명이 이제 목소리에서 글자로 옮겨[각주:17]”진 것이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이것보다 좀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글로 씌어진 담화에서는 저자의 의도와 텍스트의 의미가 더 이상 일치하지 않는다.[각주:18]”는 점이다. “절대적인 지금/여기는 시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위치들의 절대적 원천이었던 화자의 목소리, 얼굴 표정, 몸짓이 외적인 물질적 표지들로 대체되면서 폐기된다. 그리고 텍스트를 작가의 현존과 분리시키며 그것을 미래의 잠재적 독자층에게 열어 놓는 텍스트의 의미론적 자율성이 생겨난다.”[각주:19] 그렇다면, 텍스트란 목소리를 통한 자료들의 신뢰성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살펴 본 작가라는 미학적 개념까지도 파괴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적한 것처럼, 텍스트란 텍스트의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개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다른 의미는 영향사를 통해 중개될 것이다. 그렇기에 영향의 불안은 텍스트 내에 잠복해 있는 하나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전의 전승들과 해석들을 위협하고 덮쳐버리는 하나의 시뮬라크르로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텍스트로서의 복음서란 개별적인 전승 자료들만의 문제도 그렇다고 저자만의 문제도 아닌 독자가 개입되는 훨씬 더 복잡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 웹진 <제3시대>

  1. 루돌프 불트만, 『共觀福音書傳承事』, 허혁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70, p.4 [본문으로]
  2. 루돌프 불트만, 같은 책, p.7 [본문으로]
  3. Sanders, The Tendencies of the Synoptic Tradi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9, pp.23~24 [본문으로]
  4. Guttgemanns, Candid Questions Concerning Gospel Form Criticism, trans by William Doty, The Pickwick Press, 1979, p.75 [본문으로]
  5. Guttgemanns, 같은 책, p.129 [본문으로]
  6. Willi Marxsen, Mark the Evangelist, trans by Roy Harrisville, Abingdon Press, 1969, p.21 [본문으로]
  7. 루돌프 불트만, 앞의 책, p.2 [본문으로]
  8. 에리히 아우얼 바하, 『미메시스』, 김우창, 민음사, 1987, p.25 [본문으로]
  9. 에리히 아우얼 바하, 같은 책, p.62 [본문으로]
  10. 에리히 아우얼 바하, 같은 책, p.62~63 [본문으로]
  11. 이에 대해서는 리처드 보컴, 『예수와 그 목격자들』, 박규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5, pp.39~79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12. 자끄 데리다, 『목소리와 현상』, 김상록 옮김, 인간사랑, 2006, pp,118~119 [본문으로]
  13.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4, p.42 [본문으로]
  14. 자크 데리다, 같은 책, p.39 [본문으로]
  15. 자크 데리다, 같은 책, p.53 [본문으로]
  16. 폴 리쾨르, 『해석이론』, 김윤성․ 조현범 옮김, 서광사, 1994, p.61 [본문으로]
  17. 폴 리쾨르, 같은 책, p.64 [본문으로]
  18. 폴 리쾨르, 같은 책, p.65 [본문으로]
  19. 폴 리쾨르, 같은 책, p.7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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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블루스





나상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객원연구원, 목사, 뮤지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요한복음서 8:32



어린 조카가 동화책 읽어달라고 조른다. 보통 한 번에 두 권 읽어주는데, 으레 한 권은 조카가, 또 한 권은 내가 고른다. 마침 잘 됐다 싶어 내가 뭘 골랐겠는가? 그렇다. 그림 형제의 『브레멘 음악대』를 쓱 뽑아서 조카를 옆에 앉히고 근엄한 어조로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대략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주인들을 위해 뼈 빠지게 일했던 동물들이 늙고 병들자, 주인들은 쓸모없어진 동물들을 학대하고 쫓아내고 급기야는 잡아먹으려고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동물들은 생존하기 위해 탈출하여 브레멘을 향해 떠난다. 바로 그곳, 브레멘에 도착하면 음악대를 결성하자고 굳게 의기투합하고선 말이다. 근데 날이 어두워져 쉴 집을 찾다가 도둑들의 소굴을 발견하게 된다. 동물들은 힘을 뭉쳐 도둑들을 놀래켜 집밖으로 쫓아내버린다. 그 뒤, 동물들은 브레멘에 가지 않고 그 집에 남아 날마다 음악회를 열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다 읽고 나서 깜짝 놀랐다. 뭐야? 브레멘에 안 갔단 말이야? 브레멘에 안 가는 걸로 끝맺는 이야기인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왜 난 동물들이 브레멘에 간 걸로 기억하고 있었을까…… 그래도 브레멘에 가야 제목에 걸맞게 ‘브레멘 음악대’라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난 깊은 혼란에 빠졌다. 그럼 ‘브레멘’은 도대체 뭔가? 

    브레멘은 동물들이 꿈을 펼치려는 공간이었다. 브레멘에서 같이 밴드활동 열심히 해서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고 음악으로 인정받고 싶었을 게다. 비록 사람대접은 못 받을지언정 음악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맘껏 표출하여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싶었을 게다. 그런데 동물들은 브레멘에 가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자족적인 음악공동체로 사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브레멘으로 표상되는 시민사회를 향해 가망 없는 인정투쟁을 하기보다는, 공동체 내적으로 끊임없이 서로 소리를 주고받으며 동물로서의 자아를 긍정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음악대, 그들이 바로 『브레멘(에 안 간) 음악대』가 아닐까? 이런 생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그런데 내 궁금증은 그것만으론 해소가 안 된다. 그렇다면 과연 브레멘 음악대는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했을까? 도대체 어떤 음악을 같이 해야 오래오래 행복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늙고 병들어 버려진 동물들의 울음을 담아낼 그릇으로 무엇이 가장 제격일까? 다행히 음악을 좀 아는 나로서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름하여, 블루스(Blues)! 

    왜 하필 블루스일까? 미국 남북전쟁 전후 흑인공동체의 역사에 관해 얘기를 좀 해야겠다. 

    때는 바야흐로 1619년, 제임스타운이라는 곳에서 최초로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로 매매된다. 이후 1700년에 이르기까지 북미대륙에서 모든 아프리카 흑인들의 신분은 점점 종신노예로 규정되게 된다. 흑인노예들은 하루에 적어도 15시간에서 20시간 동안 힘겨운 노동에 시달렸으며,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웠다간 사정없이 매질을 당했다. 흑인여성이 출산하게 되는 경우 산후 3주가 지나면 밭에 나가 일을 해야 했단다. 농번기가 되면 흑인노예들은 죽도록 일해야 했고, 그 노동에 대한 보상은 전혀 받지 못했다. 이 시기 흑인노예들은 노동요(Work Songs)[각주:1]를 부르면서 가혹한 노동으로 인한 고통을 이겨내고자 몸부림쳤다. 

    이후 19세기 동안 노예제도하의 흑인공동체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례가 있었는데, 그것은 주일날 교회에 모여서 흑인영가(Spirituals)[각주:2]를 부르는 것이었다. 이들은 성서에 기록된 구원사를 근거로 하여 하느님이 노예살이로부터 반드시 자신들을 해방시켜주실 거라 굳게 믿고, 그러한 확신을 음악적으로 의례화했는데, 그것이 흑인영가이다. 백인들로부터 철저하게 존재를 부정당하고 굴욕과 자기멸시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일쑤였던 흑인노예들은 교회에 나가 흑인영가를 부르면서 흑인다움(Blackness)을 긍정하고 맘껏 자신을 뽐내며 실존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드디어 남북전쟁이 일어난다. 이 전쟁 중 링컨 대통령이 그 유명한 ‘노예해방선언’(1863.1.1)을 선포한다. 이로써 흑인들은 노예살이로부터 곧 풀려나리란 희망에 부풀었고, 실질적으로는 종전 후 미국 수정헌법 제13~15조의 성립으로 노예제도폐지가 확정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자유로워진 흑인들은 빈곤의 늪에 허덕이게 되고, 어떻게든 연명하기 위해 백인들의 온갖 차별대우를 감수하고 노동현장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해야 했다. 이러한 남북전쟁 직후의 분위기 속에서 블루스 뮤지션들이 등장한다.  

    수백 년간 노예살이로 신음해야 했던 흑인들은 노예제도가 폐지되자, 이제는 오히려 농장에서 쫓겨나 노동시장에서 도태되어 굶어 죽을까봐 벌벌 떨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수많은 흑인들의 삶이 파국으로 치닫던 이때, 흑인들은 변화된 환경에 처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할 새로운 음악, 블루스를 필요로 했다. “블루스는 파국으로부터 출발한다.”(코넬 웨스트) 

    블루스[각주:3]는 일상의 느낌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희노애락의 감정을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게 특징이다. 가사를 살펴보면, 성애에 대한 묘사도 매우 생생하다. 육체적 감각경험에 대한 개방적 태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런 개방적인 면은 과거 노동요나 흑인영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음은 물론, 동시대 백인음악인 포크(Folk), 컨츄리(Country)에서도 찾기 힘들다. 블루스는 몸의 담론인 것이다. 

    사실, 난 블루스 음악양식(Musical Style)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블루스는 노동요와 흑인영가의 음악적 요소를 고루 간직하고 있다. 노동요로부터 ‘메기고 받기(Call & Response)’를 가져왔고, 흑인영가로부터 ‘블루노트(Blue Note)’를 사용하는 전통을 이어받았다. ‘메기고 받기’를 통해서 연주자들은 음악적으로 대화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블루노트는 3도, 7도를 일부러 반음 내려서 연주하는 음들인데, 연주시 불협화음을 일으켜 긴장감을 유도하기 위해 쓰인다. 선율로 존재의 목소리를 표현한다면, 화성(Harmony)은 그 존재를 둘러싼 세계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놀랍게도, 흑인영가와 블루스는 블루노트를 사용함으로써 세계-내-존재가 세계와 불화하는 데 따른 부조리감을 느끼게 해준다. 이처럼 흑인영가와 블루스에서는 실존주의의 의례화를 꾀한 흔적이 엿보인다. 블루노트는 곧 반항인 것이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요소와는 별개로, 블루스가 지닌 가장 혁신적인 음악요소는 ‘즉흥연주(Improvisation)’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것을 하라!’ 이것이 즉흥연주의 정신이다. 다시 말해, 우연성, 예측불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혼돈을 향해 존재를 기획투사하는 것이다. 또한 즉흥연주는 불확정성의 연주이며, 선율의 고착화를 피해 끊임없이 변주하는 것이다. 여기서 최종적 표현, 궁극적 표현의 순간은 계속 지연되며, 그 과정에서 차이가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다. 블루스는 매우 짧고 단순한 악곡구성을 지녔음에도 끝없이 열려 있는 텍스트로서 자유의 모험을 의례화하고자 시도했다는 점에서, 본격 즉흥연주음악인 재즈의 초석을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블루스는 대화의 의례요, 반항의 의례요, 자유의 의례이다. 주인들로부터 폐기물 취급을 받은 동물들의 공동체, 브레멘 음악대가 블루스를 연주하는 공동체였다고 상상해보자.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의례, 그것은 그 공동체에게 있어서 진리와 다름없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아포리즘은 브레멘 음악대에게는 ‘블루스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거야’라는 말로 다가오지 않을까? 

    상상의 나래를 좀 더 펼쳐보자. 브레멘 음악대가 전형적인 화성음악(Homophony)이 아닌 다성음악(Polyphony)[각주:4]으로 블루스를 했다면 어땠을까? 다성음악은 참여자로 하여금 무아지경에 이르게 한다.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그 효과는 배가된다. 나의 소리와 다른 이들의 소리가 상호침투하여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혼돈의 난장이 벌어진다. 다성성이 증가할수록 음조(Tonality)의 중심점이 흐트러지며,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면 백색소음 내지 파도소리로 승화하게 된다. 그 경지에서 ‘나’의 소리를 얘기한다는 건 무의미하다. 이미 거대한 소리에 혼합되어 무화되었기 때문이다. 브레멘 음악대가 다성성의 블루스를 추구했다면, 그들은 머물던 집에서 나와 브레멘에 가지 않고선 못 배길 거다. 다성음악의 정신은 더 많은 이들의 소리를 필요로 하니까. 그래서 분명 나중에 브레멘에 가서 더 많은 이들과 더불어 대화적이고 반항적이며 자유로운 문화를 꽃피우기 위한 투쟁으로서 블루스사건을 일으키고자 애쓸 거라고 나는 믿는다. 결코 폐쇄적 정체성에 매몰될 수 없는 탈정체성의 정치로 나아가는 음악적 정체성의 구현체가 바로 다성주의 블루스니까. 아, 이렇게 사유의 장난을 한껏 벌여놓고 나니, 브레멘 음악대의 블루스, 줄여서 ‘브레멘 블루스’의 신화화 작업은 이제 겨우 마무리된 것 같다. 

    신화는 의례에 이르고자 하고, 의례는 신화에 이르고자 한다. 신화와 의례는 상호의존 관계를 잘 맺어야 현실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나는 이 글에서 『브레멘 음악대』 이야기를 블루스라는 의례와 어떻게든 결부시켜 신화화하는 장난을 감히 시도해보았다. 또한 공동체의 폐쇄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다성주의 음악이 과연 얼마나 유용한가 고려해보았다. 신화가 결핍된 의례는 공허할 뿐이요, 의례가 결핍된 신화는 황당할 따름이다. 우리에게 결핍된 것은 무엇일까? 아니 기성의 신화와 의례가 아닌, 변화한 시대의 권력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신화와 의례를 새롭게 모색해보는 건 어떨까?  


ⓒ 웹진 <제3시대>



  1. 참고동영상 https://youtu.be/eX4DYoLrCwM [본문으로]
  2. 참고동영상 https://youtu.be/UKZ8ob_G5uc [본문으로]
  3. 참고동영상 https://youtu.be/VgTWSEfGwEU [본문으로]
  4. 참고동영상 https://youtu.be/-R-QbBwXjU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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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와 와인, 그리고 나

 



박여라



들어가며


    와인 공부를 시작한 뒤 서가에서 여러해 만에 성서를 꺼내들었다. 와인에 관련된 단어들을 주석책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그 단어들이 나오는 성서본문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예전엔 생각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의미로 본문이 가깝게 다가왔다. 와인이 성서를 읽는 새로운 렌즈가 되어준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도 되어주겠구나 하며 와인공부가 더 재미있어졌다.

    그러고 나서 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경건하거나 근본주의거나 또 다른 어떤 이유로든 술을 죄악으로 여기는 개신교 신앙인들 중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와인 한 잔에는 너그럽다. 구세주 예수도 제자들과 포도주를 나눠마셨으니까. 그런가 하면, 성서 본문에 예수가 마셨다는 그 포도주는 우리가 아는 와인이 아니라 알콜이 없는 포도즙이라고 애써 주장하는 문헌이 적지 않다. 신학논문도 꽤 있다. 그래도 그 와인이 무알콜 포도즙이면 신앙이 무너질 것만 같은 그들의 주장하는 이유에 귀기울이는 것은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나의 신앙과 삶을 새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성서와 와인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살며 알게 된 사실은 그곳이 성서에 나오는 지역과 기후가 아주 비슷하다는 점이다. 한 해는 건기와 우기 두 계절로 나뉘어 일년 강수량의 대부분은 10월에서 4월 정도에 몰려있고, 나머지 기간에는 비가 아주 드물게나 온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낮에 해가 뜨겁지만 공기는 건조하다. 그래서 한여름에도 그늘에만 있으면 전혀 덥지 않다. 비가 오지 않아도 저녁이면 안개가 몰려와 공기와 땅을 적신다. 남부 내륙 캘리포니아같은 사막이 아니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은 여름이 좀 습하다고 들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밀, 보리,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 올리브 나무와 꿀(대추야자)이 있어 부족함이 없는 땅이라고 적었다.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 모두가 오늘까지도 그 지역 특산농산품이다. 비슷한 기후라 캘리포니아에서도 포도, 올리브, 무화과, 겨자 등 성서에 나오는 나무와 과실을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음식재료로도 흔하다. 자주 접하다보니 성서가 씌여진 지역의 자연과 문화가 한국에서보다는 가까이 느껴진다.

    성서 언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 ‘포도주'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여럿이라서 기준에 따라 통계가 좀 다르지만, 포도주는 성서에 대략 220회 정도 나온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물과 빵, 그리고 올리브유나 무화과 등 다른 음식에 비해서도 훨씬 빈번하다. 그리고, 올리브유와 포도주는 음식 이상의 용도와 의미가 있었다. 와인의 역사는 수메르, 이집트, 페니키아 등 고대 근동부터 기록이 남아있다. 포도주가 자주 언급되는 성서 역시 지리, 자연환경, 인류학적으로 이 맥락 속에 있다. 비유와 이미지, 율법 등에 포도밭, 포도원 일꾼, 포도나무, 포도열매가 자주 등장하는 것에 비해 아쉽게도 교회에서 포도주가 주인공으로 이야기하는 대목은 대략 세 가지 정도 뿐이다. 갈릴리 가나에서 벌어진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첫번째 표적 (요한복음), 그리고 제자들과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나눈 ‘최후의 만찬'에서 앞으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마다 당신을 기억하라 하신 장면,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금식논쟁 중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와인의 역사를 공부하며 성서와 겹치는 지점들은 더 다양하고 깊게 파고 들고 싶다.


그리스도교와 와인


    성서가 기록으로 남은 역사지리적인 현장이 포도주와 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포도주는 그리스도교와 함께 전세계로 퍼졌고, 포도주 연관기술도 그리스도교와 함께 발전했다. 4세기 말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에서 공식종교가 되었고, 로마시민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가있던 와인은 제국의 세력을 따라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로 퍼졌다. 로마제국이 쇠퇴한 뒤에도 와인을 위한 포도재배지지역에선 포도재배와 와인제조가 계속했다. 역병과 온갖 혼란 속에서 일어난 수도원운동은 중세를 지내며 근대에 이르기까지 결과적으로 포도재배와 와인생산에 관련된 모든 과정에서 획기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다. 

    유럽국가들이 근대 이후 식민지를 만들며 전세계로 마구 뻗쳐나갈 때에는 오늘날 와인 신세계로 불리우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로 포도나무와 와인기술을 가져가 무역을 했다. 미사를 위한 와인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와인은 삶의 일부였다. 캘리포니아만 해도 와인은 그렇게 전해졌다. 스페인이 가톨릭을 전하기 위해 18세기 말 식민지 샌디에고(지금은 캘리포니아 최남단)에 미션을 세웠다. 거기서부터 북쪽으로 약 1천km에 걸쳐 50km마다 총 21개의 미션을 세웠다. (50km라는 거리는 짐을 진 당나귀가 하루 이동할 수 있는 거리라고 한다.) 이 길을 지금도 ‘왕의 길(El Camino Real)’이라고 부른다. 로스엔젤레스, 산타 바바라, 산 루이스 오비스포, 카멜, 샌프란시스코 등 미션이 세워진 곳이 오늘날 도시가 되었고, 유명 와인산지의 중심지다. 가장 북쪽에 있는 캘리포니아 미션은 나파 옆 소노마에 있다.


포도나무를 키우다


    몇 년 전에 와인을 만드는 포도품종 묘목을 우연히 얻어 마당에 심었다. 올해 처음으로 잎이 돋는 과정부터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달리고, 포도가 익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책에서 배운대로 가지치기도 하고, 아침저녁으로 변화를 지켜보며 거미줄도 걷어내고 습기에도 바람이 잘 통하라고 잎도 좀 정리하고, 또 열매가 익어갈 때에는 햇볕을 잘 받을 수 있게 했다. 풀지 못한 수수께끼처럼, 혹은 내게 내려진 선문답이나 화두처럼 포도나무에 관한 말씀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포도나무를 키우는 농부 하나님과 참 포도나무인 예수, 그리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라는 말씀. 그 뜻을 알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런데, 새싹을 내고 가지가 뻗어나가고 열매가 맺는, 살아있는 포도나무가 말씀에 생명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올해 포도는 여섯 송이 달렸다. 소량이라도 와인을 만들어 볼까 생각이 없진 않았는데, 그 꿈이 물건너 가고 있다. 죽 쒀서 새 주고 있다. 포도알이 하나씩 익는 대로 새들이 다 먹어치우고 있다. 마당에 하릴없는 고양이도 한 마리 상주하건만, 새가 포도를 쪼아먹을 때 쫓기는 커녕 그저 새가 뭐하나 지켜본다. 이번 주에는 포도를 따야겠다.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쓰고 있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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