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과학'의 '창조론'에는 없는 여성과 성 소수자들의 권리


 



김나미

(미국 Spelman College 교수, 종교학)




     [창조과학 세미나] 강의가 한국의 한 명문 사립대학교에서 2015년 2학기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설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창조과학회 (이하 창조과학회)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진 담당교수는 수업 계획서에서 “기독교인 과학자로서 성경의 내용 중 과학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보는 수업을 할 것”이고, “종의 기원, 노아의 홍수, 창조와 진화, 성경과 과학, 우주의 창조 및 진화론 등을 주제로 강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이 나간 직후 여러 가지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 명문대에서 ‘창조과학 세미나’ 개설을 둘러싼 소란은 미국에서 종교학을 가르치는 나에게 흥미로운 뉴스로 다가왔다. “내가 만약 창조와 관련된 주제들을 가지고 강의를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분명한 것은 수업의 목적, 그리고 이 주제들에 대한 접근 방법에 있어서 나는 [창조과학 세미나] 와는 다른 동기와 방법을 가지고 그 강의를 바라볼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위의 주제들과 관련된 성경의 내용은 과학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의 과학적 증거들을 드러내는 것을 추구해 온 창조과학회에서 말하는 ‘창조’는 물론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이다 (참고로 창세기에는 두가지 창조설화가 있다). 창조과학회는 몇 명의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1980년 서울에서 열린 “80 전세계 복음화 십자군” 대회에서 주최한 ”창조냐, 진화냐?”라는 세미나에 참석한 후에 1981년에 설립한 단체이다. 그 세미나는 현대 창조과학의 아버지로 알려졌고 창조연구기관(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의 공동 설립자인 헨리 모리스와 그의 동역자들이 진행했다. 창조과학회의 비젼과 선교는 성서무오설을 믿는 근본주의 기독교의 입장을 반영한다. 창조과학회는 열방의 구원, 창조신앙의 회복, 교육개혁과 창조과학관 정립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 무엇보다 진화론을 과학적 허구성을 지닌 복음전파의 커다란 장애물로 여기는 반면에, 성서무오설, 즉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적 이해를 바탕으로 창조를 바라보는 관점을 가장 과학적인 이론이라 주장한다.  

    ‘창조론’ 대 ‘진화론’ 논쟁이 교육현장에서 논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이하 교진추)가 말과 시조새의 진화 과정이 상상의 산물이라며 정부에 낸 교과서 내용 삭제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이를 2012년 6월 12일에 과학전문학술지 '네이처(Nature)'가 기사로 내보냈다. 기술강국, 인터넷 대국인 한국에서 벌어진 ‘믿거나 말거나’ 한 일이라며 자기네들끼리 뒤에서 키득거렸을 것을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진다. 창조과학회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알려졌고, ‘반진화론’ 학술 단체로 스스로 규정을 내리는 교진추의 궁극적 목표는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삭제하고 진화론의 부정적인 영향들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과학이란 이름으로 창조과학회가 한국 사회에 이런 식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이 우려되지만, 사실 나는 창조론이 ‘진짜’ 과학에 의해 어떻게 효과적으로 반론되어 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논의과정에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설화’를 과학의 언어로 얘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창조설화’ (creation narrative) 를 포함해서 스무가지가 넘는 다양한 ‘창조설화'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어디서 왔고, 어떻게 번식을 하고, 하늘과, 땅과, 동식물 및 자연의 현상들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각각의 설화들이 생겨난 지역에서 쓰였던 다양한 표기형식과 언어를 통해서 설명하고 표현해 낸 상징적인 이야기들이다.  

    각자가 지닌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 종교에서 말하는 ‘창조설화’는 진실된 이야기이다. ‘진실되다’는 것은 그 이야기가 과학실험을 통해서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길을 제시해 주는 ‘살아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성서의 내용을 진리로 믿는 기독교인들이 그 내용이 진리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그 내용을 과학적으로 검사하여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내용이 의미하는 바를 삶에서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통해서 그 진리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즉, 검증을 통해서가 아니라 고백과 실천을 통해서 진리를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창조론과 관련해서 진화론이 더 정확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논의를 하는 데도 별로 관심이 없다. 이것은 진화론을 포함한 모든 과학 이론들이 지속적인 검증을 받아야 함을 의미하고, 소위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고 알려진 이론들 또한 특정한 역사적 상황과 관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추구할 때 역사적 패러다임 전환이 어떻게 당대의 ‘객관적 진리’라고 불리는 것들과 조응하는지에 대해 주목해야한다. 19세기 말의 다윈주의에 영향을 받은 사회적 다윈주의가 어떻게 인종주의, 제국주의를 뒷받침했는지는 그저 하나의 간접적인 예일 것이다. 

    ‘창조과학’의 문제는 문자주의적 성서해석과 그 해석에 근거한 신학에서 보여지는 집요한 반지성주의와 여성차별 및 성소수자 차별의 요소들이다.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본주의 기독교의 초석인 성서무오설과 성서의 문자주의적 해석에 바탕을 둔 신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근본주의’[각주:1]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성서의 무오를 믿는 일반적인 복음주의적 신앙”을 옹호하는 신학은 19세기 중반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각주:2] 그런 신학은 19세기 성서의 권위를 둘러싼 논쟁 중에 만들어 졌고, 천년왕국설 운동과 함께 근본주의 기독교의 특징이 되었다. 근본주의 기독교의 토대가 되는 성서의 문자주의적 해석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고, 그런 해석은 일관성 없이 선택적으로 적용되어져 왔다. 이런 성서무오설은 19세기 말부터 미국의 백인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으로 전파되었고, 이들에 의해 문자주의적 해석만이 성서를 올바르게 읽는 방법이라는 통념이 한국교회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성서무오설은 19세기 중.후반 미국내 여성의 역할에 대한 성서적 입장과 관련해서 일어난 광범위하고 심각한 논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각주:3]근본주의 기독교에서는 무엇보다도 가정과 사회에서 질서를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여기서 질서는 다름 아닌 창조질서를 말하는 것이고,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은 창조 질서 안에 내재된 것으로 믿었다.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만들어 졌다는 것을 성서적 진리로 받아들였고, 이브의 종속은 물론 더 나아가 여성들의 ‘다른’ (사실은 불평등한) 지위가 하느님의 원래 창조질서안에 있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근본주의 기독교는 그저 추상적인 무질서나 사회의 혼란이 아니라, 젠더 (성)와 관련한 “무질서 또는 혼란의 가능성”[각주:4] 에 대해 염려를 한 것이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가정 예찬/숭배’ (the Cult of Domesticity) –‘여자들에게 어울리는 곳은 남편을 섬기고 자녀들을 양육하는 사적인 공간이다’– 에 근거한 젠더화된 신학을 미국의 기독교 우파가 이어 받게 된다.[각주:5] 근본주의 기독교의 맥을 잇는 미국의 기독교 우파가 받아들인 젠더화된 신학 체계에서 여자들은 우선적으로 자신들의 가정과 하느님의 관계를 책임져야 하는 반면, 남자들은 하느님 아버지와 역사적으로 남성이었던 그리스도를 대표한다.[각주:6] 다시말해서, 젠더화된 신학은 위계질서적인 젠더체계와 이성애 가정만을 정상적인 것으로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젠더 (남성과 아버지로) 에 관한 태도 역시 미리 규정짓고 있는 것이다.[각주:7] 

    이렇듯, 성서의 문자주의적 해석과 그것에 근거한 신학이 여성들과 성소수자들에게 해로운 것임은 자명하다. 그것이 여성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여성은 가정의 우두머리 –아버지든 남편이든– 에게 속하고 복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의 종속은 창조질서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하느님이 창조한 첫번째 인간이고, 여자는 남자로 부터, 남자를 위한 조력자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물론 창조과학을 따르거나 문자주의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정말 한 명의 여자가 감히 하느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먹은 뒤 모든 인간 후손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하느님이 만든 ‘보기 좋은’ 세상을 ‘죄가 가득한’ 세상으로 완전히 뒤집어 엎어 놓을 만큼 ‘강했다’라고 해석하지는 않을 것이다.  

    성소수자들에게 문자주의적 해석은 딱 두가지 선택을 주고 있다 – 죄인으로서 영원한 정죄를 받던가 아니면 ‘자연스러운’ 젠더이원론과 이성애규범주의에 완전히 순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자주의해석을 통해서 설명되는 창조질서에는 성소수자들을 위한 곳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든 창조과학을 믿고 가르친다는 것은 아담과 이브의 ‘혈액형’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려는 것만이 아니다. 여자의 역할은 (남성)배우자를 돕는 것이고, 성은 출산과 관련해서만 가치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립적이고, 남성과 동등하게 취급받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나, 성을 다향한 형태로 표현하거나 관계를 맺는 것은 모두 창조질서에 반하는 ‘무질서’를 조장하는 것이 된다. 아무리 ‘과학적’인 것으로 잘 포장된다고 하더라도 창조과학은 창조질서로 여겨지는 이성애 가부장제의 구조와 권력을 강화시킬 뿐이다. 교육에 있어서 비판적 사고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창조과학이 ‘과학적 검증’의 한 방식으로 교육 제도속으로 슬며시 들어오는 것과, 여성들과 성소수자들의 권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글의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내가 만약 이런 주제들을 가지고 한 학기를 진행한다면, 한국 명문대에 개설된 [창조과학 세미나]와 어떻게 다를 것인가? 나는 우선 여러종류의 ‘창조설화’들을 비교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안에 나타난 인간관계, 젠더형성과정, 삶과 질병과 죽음의 이해, 사회의 금기사항들, 인간과 자연의 관계 등이 각각의 종교와 문화권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의미를 달리하는지를 밝힐 것이다. 그리고 나서 최종적으로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것 같다. 최근 관심을 많이 받는 ‘종교와 과학’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해도 대학교 1학년생들에게 필요한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게 하는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할 주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무엇을 왜, 어떤 교육철학과 목적으로, 그리고 어떻게 가르치는냐 일 것이다. 감동을 주는 소설이나 은유 가득한 시를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듯이, 다양한 창조설화들도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창조설화를 다양한 이론과 방법을 통해 해석해 내고 설화의 의미들이 사람들의 삶에 미쳐온 영향 (긍정적, 부정적인 것 모두 포함해서)들에 대해 토론을 하고, 거기에서 좀 더 나아가 현재의 내 삶과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와 연관지어 생각하면서 더 많은 질문들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이라면 해 볼 만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수업의 목적이 한 종교의 한가지 교리만을 ‘진리’로 가르치려는 ‘교화’ (indoctrination) 또는 ‘주입’이라면 교육의 장에 들어설 수 없고 그래서도 않된다는 것이다. 왜냐면 대학을 비롯한 학교들은 ‘교화 공장’ (indoctrination mill)이 아니기 때문이다. 


ⓒ 웹진 <제3시대>




  1. “근본” (fundamentals) 이란 단어는 1910년 미국에서 출간된 The Fundamentals 의 제 일권에 처음 표기 됬고, “근보주의자들”이라는 용어는 커티스 리 러즈 (Curtis Lee Laws)가 1920년에 처음으로 썼다. See Ernest R. Sandeen, The Roots of Fundamentalism: British & American Millenarianism, 1800-1930 (Chicago,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0). [본문으로]
  2. Ibid., 106. [본문으로]
  3. Margaret Lamberts Bendroth, Fundamentalism and Gender: 1875 to the Present (New Haven,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93), 34. [본문으로]
  4. Ibid., 113. [본문으로]
  5. Kathy Rudy, Sex and the Church: Gender, Homosexuality, and the Transformation of Christian Ethics (Boston, Mass: Beacon Press, 1997), 26. [본문으로]
  6. Ibid., 39. [본문으로]
  7. Ibid., 3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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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 이후의 선교 1]



새로운 신학 운동의 전위대로서의 선교학




홍정호

(신반포감리교회 목사)




    공부모임에 가면 자연스럽게 전공을 묻는 질문을 받습니다. 보통 신학이라고 짧게 답하고 관심사를 나누는 대화로 이어지지만, 세부전공을 묻는 분들에게는 ‘선교학’이라고 말합니다. 간혹 발음을 잘못 듣고 “신학에는 그런 전공도 있느냐”며 화색(?)을 드러내는 분도 있지만, 대개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간혹 선교학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보이는 분도 만납니다. 한 마디로 ‘그런 것도 학문이냐’는 것이지요. 심지어 선교학은 식민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도구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말도 듣곤 합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나는 법이라니, 선교학을 두고 이런 거친 반응을 보이는 걸 이해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경험에 의한 편견이 상식으로 고착된 결과일 테니까요.


    학문으로서의 선교학은 종교적 타자와의 만남을 신학적으로 주제화하는 작업입니다. 서양 근대 신학의 분과학문체계가 선교학에 할당한 역할은 주로 방법론적인 실천과 관련된 것이었지만, 선교학은 타자와의 만남이 일으키는 사건에 대한 성찰을 통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종교 신학, 종교간 대화의 신학, 종교다원주의 신학, 아시아신학, 세계기독교 신학, 상호문화 신학 등 연구의 주제와 대상에 따라 조금씩 그 이름과 내용을 달리하는 이들 신학의 바탕은 기실 선교학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학문들은 모두 종교적 타자와의 만남을 신학적으로 주제화하려는 시도, 곧 선교적 실천으로부터 비롯된 타자와의 만남에 대한 성찰과 관련 있다는 점에서 선교학의 연구와 분리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선교학은 그것을 하나의 방법론적 실천으로 제한하려는 근대 신학의 과학적 사유의 한계에 저항하면서, 분과학문의 전문성을 침범하는 통합적 사유를 촉진합니다. 선교학은 ‘모든 것으로서 아무 것도 아닌’ 신학적 정체성을 지향함으로써 근대 신학의 붕괴 이후에 도래할 새로운 신학의 탄생을 알리는 서곡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도 선교학이 그러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할 수 없는 그곳에서, 선교학은 그 특유의 잡스러움과 탈경계적 지향성을 통해 하나의 ‘전공’으로 안착하는 데 성공한 근대 신학의 자기 완결적 주체성을 뒤흔드는 탈구축(de-construction)의 사도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합니다. 말하자면, 선교학은 신학(Theology)으로부터 신학적인 것(the theological)으로의 이행을 통해 존재-신학(Onto-theology)의 붕괴 이후의 신학적 사유와 실천을 주제화하는 일군의 새로운 신학 운동의 전위대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신학 운동의 전위대로서의 선교학의 역할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지리적 경계를 넘어 타자와 만나는 선교사의 실천과 상응합니다. 선교사가 이미 설정된 지리적 경계 너머의 타자를 향하듯 선교학은 근대 신학의 지리적이고 인문학적인 경계를 넘는 탈구축의 사유와 실천을 지향합니다. 이를 위해 선교학은 지적 세계의 소통의 문법으로 자리 잡은 익숙한 사유의 구조화 방식, 곧 과학주의적 사유의 문법과 결별하고, 그 체계 내에서의 권위를 스스로 반납함으로써만 선교적인 실천에 가 닿을 수 있다는 역설과 마주합니다. 학문성을 추구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는) 학문적이지 않아야 할 이중의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 신학에서 신학적인 것으로의 이행의 전위대를 자처하고 나선 선교학의 운명입니다.


   어쩌면 ‘새로운 선교학’(New Missiology)이라고 명명해야 할지도 모를 이 선교학은 시체 해부나 다름없는 존재-신학과 그 유산의 정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죽은 신을 두고, 그 구성과 체계를 논하거나, 애도의 담론을 재생산해 내는 따위의 일은 저들의 몫입니다. 선교학의 관심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의미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와 다른 것으로서의 살아계신 하나님과 날것으로서의 신의 타자성이야말로 선교학이 관심을 기울이는 영역입니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은 대상에 대한 인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타자(the Other)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그렇기에, 말해진 것(the said)으로서의 ‘존재’와 그것의 ‘의미’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와 다른 것’의 말함(saying)에 대한 탐색, 그리고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와 다른 것)의 총체성을 더듬어나가는 타자성의 주제화야말로 선교학이 관심을 기울어야 할 영역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쯤에서 어떤 분들은 그런 건 윤리나 종교철학이지 선교학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 새롭다고 말해야 할 선교학이 실천신학의 범주에 오롯이 안착되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텐데, 그런 분들에게 저는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의 『미나마 모랄리아』의 한 구절을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아카데미라는 사유의 조직체가 갖고 있는 권력은 너무나 커서 그 바깥에 머물고자 하는 사람을 허공을 향해 외치는 불평꾼으로, 자화자찬하는 요설가로, 그리고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사기꾼으로 몰아간다.”[각주:1] 이 말을 뒤집어보면, ‘불평꾼’, ‘요설가’, ‘사기꾼’이라도 아카데미라는 사유의 조직체 안에 머무는 한 정통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네요. 나아가 아도르노는 “자기 유지의 정신을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철학 본연의 임무”[각주:2]라고 말합니다. 모름지기 학문이라 이름붙일 수 있을 만한 것이라면 자기 유지의 정신과의 싸움은 불가피한 것이겠습니다. ‘선교’ 뒤에 따라붙는 ‘학’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선교학은 자기 유지의 정신과 보다 적극적으로 싸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재의 제목을 ‘관용 이후의 선교’로 정해보았습니다. 선교가 관용은커녕 배타주의의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여전히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관용 ‘이후’가 웬 말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관용은 한 번도 ‘제대로’ 실천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억지로’ 실천될 수 있을 뿐입니다. 관용은 언제든 깨지기 쉬운 주체중심의 윤리, 즉 타자의 타자성을 주체의 효율적 관리 아래 두기 위한 자유주의적 기획의 도덕주의적 구현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관용 담론에서 주체는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선 적이 없으며, 타자는 대상의 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관용 이후의 선교에 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관용 담론의 신학적 내면화를 통해 주체 중심의 윤리가 재생산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주체의 지배가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자리매김할 것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주체의 지배가 일으키는 문제는 (이렇게 말하는 게 가능한 것이라면) 서양적 주체를 한국적 주체로 자리바꿈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이 “자기 유지의 정신”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용은 이 자기 유지의 정신을 통해 재생산되는 주체의 견고한 자기중심성의 지속을 위한 알리바이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관용이 문제가 아니라, 관용을 통해 재생산되는 주체의 견고한 자기중심성이 문제인 것입니다.


    관용을 통한 주체의 지배가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종교다원주의’ 신학에서입니다. 자기중심적 배타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배타주의’와 자기중심성의 계기를 드러내는 ‘포괄주의’와 달리, ‘종교다원주의’는 관용을 전면에 내세우기에 그 은폐된 자기중심성을 망각하기 쉬운 기만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종교에 관한 자유주의적 관용 담론은 개별 종교의 정체성에 각인된 차이를 존재론화(ontologize)하고,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차이를 자연화(naturalize)하는 식민담론을 재생산해 냄으로써, 관용을 통한 주체중심의 통치의 지속에 기여합니다. 이 점에서 관용 이후의 선교에 관한 탐색은 ‘종교다원주의 이후의 선교’에 관한 모색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더 나은 선교는 관용의 이념을 신학적으로 내면화하려는 주체중심의 실천을 넘어서는 선교(학)의 타자 윤리적 전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앞으로 그 이야기를 조금씩 해 보겠습니다.


* 필자소개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강사,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객원연구원


ⓒ 웹진 <제3시대>

  1. 아도르노,『미니마 모랄리아』, 96. [본문으로]
  2. 앞의 책. 10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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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에 저항한 묵시문학: 초기 유대교의 저항신학” 


(Anathea E. Portier-Young)




김진양

(Ph.D. The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the Old Testament))




    지난 201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 성서학회에서 다니엘서 섹션의 논문 발표회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아나띠아 포티어-영(Anathea Portier-Young)이라는 젊은 성서학자의 책 『제국에 저항한 묵시문학: 초기 유대교의 저항신학』(Apocalypse against Empire: Theologies of Resistance in Early Judaism)에 대한 논평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것이다.[각주:1] 포티어-영의 책이 2011년 출판되자마자 각종 학술저널에서 서평이 쏟아졌고 저명한 성서학자들의 극찬도 이어졌다.

    20세기 초반 성서학자들의 유대교 묵시문학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문학적 장르나 묵시의 사회학적 배경에 집중되었다.[각주:2] 그러나 20세기 후반 성서학자들은 묵시를 제국에 저항한 유대교의 독특한 문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른다.[각주:3] 포티어-영의 연구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지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차원에서 유대교 묵시문학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포티어-영은 현대 정치 사상가들의 이론을 통해 제국의 지배와 저항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둘째, 포티어-영의 유대교 묵시문학의 사회적/역사적 배경인 셀류쿠스 제국의 지배를 재해석했다. 셋째, 포티어-영은 저항에 대한 이론적 연구와 셀류쿠스 제국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다니엘서와 에녹서를 재해석했다. 특별히 포티어-영의 다니엘서와 에녹서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의 “공포정치”(Program of terror)에 대한 저항이라는 주장은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1. 포티어-영은 마르크스, 베버, 알튀세, 푸코 등의 정치사상 이론과 그람시의 사회주의 사상이론을 바탕으로 셀류쿠스 제국의 지배와 유대교 묵시문학의 저항을 분석한다. 이는 이전의 성서학자들이 주로 묵시문학을 문헌적/역사적으로 접근한 연구방법과는 다른 접근방법임에 틀림없다. 포티어-영은 사회주의와 반파시즘을 주장한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패권”(Hegemony)이론과 마르크스, 베버, 알튀세의 “지배”(Domination)이론,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지배구조를 셀류쿠스 제국의 지배형태에 적용한다.[각주:4]

   패권(Hegemony)은 사회적 문화적 차원에서 우월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배를 의미한다.[각주:5] 가령, 표준말 제도는 패권(Hegemony)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표준어의 사전적 정의는 “교육적, 문화적, 정치적인 편의를 위하여 한 나라의 표준이 되게 정한 말로서 우리나라는 서울의 현대 중류 계급이 사용하는 말을 표준어로 삼았다”고 한다. 서울의 현대 중류 계급이 사용하는 말이 표준말이라는 것은 권력의 승자가 사용하는 말이 표준말이 된다는 것과 같다. 사투리를 사용하면 차별받는 표준말 제도는 획일적인 문화 패권의 결과물이다.

    포티어-영은 그람시의 패권이론의 핵심인 “비폭력적 형태의 지배”(Non-violent forms of control)에 주목하였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의 유대인 박해는 살인, 고문, 노예제도, 강압적 규제, 파병 등 폭력적인 통치뿐 아니라 일상의 삶, 즉 관습이나 문화적 가치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박해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안티오쿠스 4세는 유대 사람을 헬라인으로 교화시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헬라제국의 체육관을 세웠고, 예루살렘 성전을 올림포스의 제우스 신당이라고 명명하였으며(마카비하 6:2), 히브리 문화와 관습을 헬라 문화와 관습으로 완전히 대체시킨 것이다. 포티어-영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이고 사회적 박해가 바로 패권(Hegemony) 즉, “비폭력적 형태의 지배”에 해당된다고 주장한다.[각주:6] 유대 묵시문학은 바로 이러한 비폭력적 형태의 셀류쿠스 제국의 지배에 대하여 대안적 가치를 내세움으로써 저항하였던 것이다. 대안적 가치는 다니엘서와 에녹서의 기도와 금식이다. 묵시문학은 이러한 대안적 가치로 세상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하늘의 권력을 강화함으로써 제국의 질서와 체계를 전복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지배(Domination)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직접적인 억압의 형태를 일컫는다.[각주:7] 안티오커스 4세 이전의 헬라제국의 지배(Domination)는 정복, 살육, 노예, 군사력 과시, 새로운 과세제도 도입, 또는 경제적 억압정책으로 펼쳐졌다. 안티오쿠스 4세의 지배(Domination)는 유대인의 예배, 안식일, 음식규례, 하나님의 주권 등을 무효화하는 정책으로 지배(Domination)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


    2. 포티어-영은 그동안 불모지나 다름없는 셀류쿠스 제국에 대하여 깊이 있는 연구를 하였다(“Seleucid Domination in Judea”).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바로 주전 200년과 167년 사이에 유대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이다. 포티어-영은 셀류쿠스 제국의 전략적 지배 체계를 자세히 분석하였고 이 분석의 결과 안티오쿠스 4세의 유대인 박해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의 유대인 박해는 단순히 유대주의와 헬라주의간의 갈등을 넘어선 제국의 “공포정치”(State of terror or program of terror)라는 것이다.[각주:8] 이러한 접근은 안티오쿠스 4세의 유대인 박해의 원인을 규명하는 놀라운 학문적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전 167년 안티오쿠스 4세가 유대인의 법을 금지하고 새로운 종교적 관례를 제정하였다. 마카비하서에 의하면, 22,000명의 셀류쿠스 제국의 군사가 이미 예루살렘에 주둔하였고 수천 명의 유대인을 노예로 삼는 박해를 자행하였다. 그러나 엔티오쿠스 4세는 이제 제국의 지배를 재건하기 위해 다른 차원의 박해를 자행한다. 포티어-영은 안티오쿠스 4세의 현실정책 이라는 렌즈로 그의 박해의 수준과 방법을 분석하였고, 이 분석에 의하면 안티오쿠스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냉소적이고 잔인한 실용주의자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3. 포티어-영은 마지막 장에서 안티오쿠스 4세의 박해 시대에 기록된 것을 추정되는 다니엘서와 에녹서의 일부분을 분석한다(the Apocalypse of Weeks, the Book of Dreams). 포티어-영은 다니엘서를 안티오쿠스 4세의 “공포정치”(Program of terror)에 맞서 언어, 상징, 선포, 가르침을 통한 저항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니엘서 전체를 안티오쿠스 4세 시대의 저항이었다고 보는 견해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다니엘서를 안티오쿠스 4세의 공포정치에 대한 저항이라고 본 것은 객관적 문헌에 근거한 일리 있는 주장이다. 포티어-영은 안티오쿠스 4세의 “공포정치”(Program of terror)에 맞서 다니엘서가 보여주는 저항의 형태는 “비폭력 저항”(Program of nonviolent resistance)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유대 묵시문학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저자가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고대의 전설적인 인물의 이름을 대신해서 사용하는 익명성이다. 포티어-영은 정치사회학자 제임스 스캇(James Scott)의 저항이론인 “숨겨진 사본”[각주:9]에 근거하여 익명성은 묵시문학의 저자가 현실의 위협에 도피하였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글을 고대 위인의 권위를 사용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제국의 불의한 지배에 저항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각주:10] 포티어-영은 비폭력 저항을 주장하는 다니엘서와는 반대로 에녹서는 폭력적 저항을 촉구한다는 점도 분명히 밝힌다.[각주:11] 


   결론적으로, 포티어-영의 책은 다음의 네 가지 측면에서 묵시문학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 유대인 묵시문학의 정치 사회적 상황인 셀류쿠스 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였다. 

   * 안티오쿠스 4세의 공포정치는 다양한 차원의 묵시문학을 태동시켰음을 밝혔다. 

   * 안티오쿠스 4세의 비폭력 형태의 지배는 비폭력 형태의 저항임을 보여주었다. 

   * 고대와 현대의 공포정치에 대한 이론적 방법론적 관계를 정립하였다.[각주:12] 


     묵시문학 연구의 대가인 존 콜린스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유대 묵시문학의 다양한 차원의 전략적 저항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미국이 셀류쿠스 제국(특별히 안티오쿠스 4세)과 같은 제국처럼 공포정치를 시행한다면, 포티어-영의 주장처럼 다양한 차원의 전략적 저항이 때때로 테러리스트라는 꼬리표를 달고 등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각주:13] 마치 일본제국에 저항한 항일 운동자들이 테러리스트라고 불린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론적으로, 묵시문학은 무기를 들고 폭력적인 전쟁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념적,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인 차원을 통해 비폭력적으로 저항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 유대 묵시문학은 현실을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도피하는 몽상적 문학이 결코 아니다. 묵시문학은 제국의 억압과 폭력을 하늘의 힘으로 저항하는 고대 학자들의 혁명임을 포티어-영은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 필자소개

    현재 미 연합감리교회 북 일리노이 연회에서 목회,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에서 구약학 전공(Ph.D.), Wartburg College에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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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athea E. Portier-Young, Apocalypse Against Empire: Theologies of Resistance in Early Judaism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1). [본문으로]
  2. 대표적으로 Paul Hanson, The Dawn of Apocalyptic (Fortress Press, 1975); John J. Collins, The Apocalyptic Imagination: An Introduction to Jewish Apocalyptic Literature, 2nd edition (Michigan: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8). [본문으로]
  3. 대표적으로, Richard A. Horsley, Revolt of the Scribes: Resistance and Apocalyptic Origins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0). [본문으로]
  4. Antonio Gramsci,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ed. Quintin Hoare and Geoffrey Nowell Smith (London: Lawrence and Wishart, 1971). [본문으로]
  5. 포티어-영, pp. 11-12. [본문으로]
  6. 포티어-영, p. 11. [본문으로]
  7. 포티어-영, p. 23. [본문으로]
  8. 포티어-영, p. 136. [본문으로]
  9. James Scott, Domination and the Arts of Resistance: Hidden Transcript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0). [본문으로]
  10. 포티어-영, p. 310. [본문으로]
  11. 포티어-영, p. 371. [본문으로]
  12. 포티어-영, p. 396. [본문으로]
  13. 포티어-영, xii.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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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수현
    2015.09.19 00: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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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끔한 정리와 일목요연한 비평에 감사드립니다. 꽤나 읽기 힘든 (두껍기도하고.. 역사적 서술이 많아서요...ㅜㅜ) 포테이 영의 책을 소개해주셔서 후학들과 저에게 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특히나 시험준비하는 저에게 득템이네요... 히브리어도 가르쳐주시고 여러가지로 신세지고 있습니다. ^^ 강건하시길 기원합니다...
  2. 김진양
    2015.09.30 11:4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한 박사님, 시험준비 중이시군요. 잘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늘 번쩍번쩍 빛나는 관점과 학식을 보여주셔서 제가 큰 도움이 됩니다.


마음의 우묵함에 관하여

 



유경종

(본 연구소 회원)



    어릴적에 시골에 있는 친척집에 놀러 가면 또래가 비슷한 사촌형제들이 우리 형제를 반겨주었다. 우리들의 놀이터는 마을 뒤편의 돌산이었다.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돌을 캐 간 흔적들이 널려 있는 돌산은 조금은 위험했지만 재밋거리가 가득한 산 속 본부였다. 돌산 한 구석에는 작은 돌샘이 있었다. 바위가 깨진 틈새로 촉촉한 습기가 배어들고, 그 물기가 바위 아래의 우묵한 자리에 고여 들어 만들어진, 작은 돌절구만한 샘이었다. 물은 맑고 깨끗했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아이들 몇몇이 놀다가 마른 목을 축이기에는 그만이었다. 돌샘가 비밀장소에 숨겨놓은 작은 쪽박으로 서너 바가지 떠서 돌려 마시면 물은 금새 바닥을 드러냈다. 물이 다시 고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어느 날인가는 조바심을 갖고 물이 차기를 지켜봤지만 한없이 지루했다. 돌샘의 물 따위는 잊어버리고 한바탕 놀다가 와 보니 어느 새 물은 아까처럼 고여 있었다. 시간과 함께 천천히 고이는 물이 어린 눈에도 신기했다.


1. 고임, 그리고 우묵함


    뭔가가 고인다는 말 속에는 어딘지 은근한 느낌이 배어있다. 갑작스레 몰려들어 가득 채우는 것은 고인다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폭우로 홍수물이 들어 찬 광경을 보며, 물이 밀어닥쳤다고 말하지 고였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언제 채워졌는지 모르게 천천히, 눈에 보이지 않도록 시간을 잡아먹고 모여들어야 비로소 고여 들었다고 말할만하다. 망각의 뒤켠에서 은밀히 수위를 높여가는 것이 고임의 전략이다.

    속도와 함께 중요한 것은 고임의 자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뭔가가 고이려면 고이는 자리가 우묵해야 한다. 평평하거나 기울어진 곳에서는 아무것도 고일 수 없다. 우리 몸도 군데군데 우묵한 자리가 있어서 사람 노릇을 하는 이런 저런 고유한 특징들이 고여 든다. 짠 눈물이 고이는 눈두덩도 우묵하고, 수줍은 미소가 고이는 보조개도 우묵하고, 섹시함이 흘러 고이는 배꼽도 우묵하고, 퇴근시간이면 하루의 피로가 고여 드는 발바닥 가운데도 우묵하다. 신체뿐인가. 생각해보면 우묵함은 모든 숨 쉬는 것들을 보듬고 기르는 기본적인 형태다. 산새의 둥지도 우묵하고 토끼의 굴도 우묵하다. 짭쪼름한 바다 향을 품은 꼬막껍질도 우묵하고 선홍빛 알덩이가 고여 있는 게껍질도 우묵하다. 생명을 보듬고 키우는 자리가 이렇듯 우묵해서일까, 온 인류의 생명에 관심을 두고 이 세상을 찾아온 아기 예수도 우묵한 구유를 골라 누울 자릴 잡았나보다.

    비단 생명체 뿐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욕망이 중력의 힘이 지배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에 맞서 뭔가를 시도하려면 우묵함의 유용성에 기대어야 할 때가 많다. 형태가 굳어지지 않은 것들은 늘 움직이고 흐르고 흩어진다. 그 유동적인 것들을 어르고 달래서 잠시나마 한 장소에 함께 머물도록 다독이는 형태가 바로 우묵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가 고여 든 우묵함에는 흩어지려는 본능과 붙들어두려는 힘 사이의 긴장이 항상 존재한다. 공기가 고여 들어 배를 띄우는 나룻배 바닥의 우묵함에서도, 찌개가 끓으며 맛을 고이게 하는 뚝배기의 우묵함에서도, 진동이 고여 들어 소리를 품어내는 만돌린 울림통의 우묵함에서도 아슬아슬한 물리적 긴장이 함께 머문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리 없이 고이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우리 마음의 풍경이다. 누군가가 보고 싶어지는 간질간질한 마음도, 누군가가 꼴 보기 싫어지는 냉랭한 마음도 하루아침에 황톳물처럼 밀어닥치기지 않고 대개는 돌샘물처럼 소리 없이 고여 든다. 내 마음에 고이는 것이지만 나도 잘 감지를 못한다. 이상하다 싶어 들여다보면 이미 찰랑찰랑, 여차하면 넘쳐날까 겁날 정도로 가득 고여 어쩔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음의 풍경도 우묵함 없이는 고여 들지 못한다. 동일한 시간 속에서 동일한 경험을 해도 누군가에게는 강렬한 의미가 남고,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인상조차도 남지 않는 차이가 바로 마음의 우묵함을 지녔는지의 여부가 아닐까.


2. 내 마음이 평평해졌다.


    몇 달 전 직장에 취직을 했다. 사십대 중반이 되도록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해 본 적이 없이 비정규 단순직이나 소규모 자영업을 하면서 적당히 먹고 살아왔는데, 어찌하다 보니 시절의 인연에 이끌려 작은 지역신문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뒤늦게 시작한 직장생활은 하나부터 열까지가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내 이름이 박힌 명함이 어색했고, 서로를 직함으로 부르는 이들이 생경했다. 더군다나 지역신문사의 형편이 뻔해서 전문적인 업무 분담은 언감생심이고, 일당백의 정신으로 서너 가지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해야 겨우 하루가 마감되었다. 영업도 뛰고, 인맥도 챙기고, 수금도 하고, 가끔씩 기사도 쓰고, 행사도 기획하고, 배달도 하고, 노가다도 뛰고... 하는 일의 멀티스러움에 비해 보수는 무척 섭섭하지만, 이게 다 내 삶의 행동반경을 넓혀줄 수 있는 경험이 되어 주려니 스스로를 독려하며 버티고 있다. “솔직히 니 나이와 니 주제에 그 정도 직장이면 감지덕지”라는 주변 친구의 애정어린(?) 말에 반박을 하기도 힘들고, 내 스스로도 더 이상 불안정한 삶의 형태를 지켜내기가 겁도 나고 해서다.

   하지만 그렇게 바쁘게 몇 달 살다보니 최근 들어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언제부턴가 내 안에 뭔가가 고이지를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징후는 여기저기서 감지되었다. 오래간만에 휴일의 느긋함을 즐기려고 도서관에 갔는데 읽고 싶은 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서 빨리 자기를 찾아내 읽어달라고 아우성치던 책들은 다들 어디로 간걸까. 신문 신간면이나 이런 저런 책 정보를 슬슬 훑어보기만 해도 읽고 싶은 책과 사귀고 싶은 작가들이 우묵한 마음에 고여들곤 했었는데, 거의 두어달만에 찾은 도서관에서 우물 뚜껑을 열어보니 흥미를 사로잡은 책과 작가의 리스트가 고이지 않은 것이다. 억지로 책 몇 권을 골라서 대출절차를 밟았지만 메마른 돌샘 바닥을 스텐 컵으로 긁는 소리가 나는 듯 했다. 내 안에서 책에게 내어 주었던 우묵했던 고임자리가 평평해진게 분명했다.

   얼마전엔 아무도 없는 예배실에 들어갔는데 기도가 나오질 않았다. 예전에는 뭘 기도했었는지, 누굴 위해 기도해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찬송가 가사처럼 나 예수께 조용히 나가 내 모든 짐 내려놓으려 해도 마음이 안 열리고, 유치부 친구들의 노래처럼 샛별 같은 두 눈을 사르르 감아보아도 꽃잎 같은 입술이 가만히 열리지 않았다. 보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뻘쭘했다. 대중기도나 합심기도, 통성기도는 적성이 안 맞는 관계로 일찌감치 끊은 탓에 그나마 유일하게 유지해 온 기도의 끈이 홀로 넋두리하는 기도였는데, 그 길마저도 막혀버린 것이다. 기도꺼리의 고임자리도 평평해졌다.

   두세달에 한 번 정도 스마트폰 갤러리에 저장된 사진들을 정리한다. 버릴 건 버리고, 모아두고 싶은 사진들은 성격이나 장소별로 구분해서 포토앨범에 저장하곤 한다. 그런데 최근엔 몇 달만에 갤러리를 정리하면서도 앨범 하나를 만들지 못했다. 일 때문에 찍거나 주고 받은 너저분한 사진들을 싸그리 모아서 삭제했더니, 갤러리에 소장하고픈 사진이 몇 장 남지 않았다. 스마트폰에 사진도 고이지 않았구나. 기억하고 싶은 순간도, 붙들어두고 싶은 인상도 없이 시간이 휘발해 버렸다. 사람은 엄청나게 많이 만나는데 거꾸로 일상 속의 의미의 고임자리는 평평해졌다.

   늦은 저녁 사무실 책상에 앉아 오래간만에 뭔가를 끄적거려보려고 다이어리 폴더를 열었는데 좀처럼 손가락이 안 움직인다. 생각이 고이지 않았다. 예전에 편의점에서 일할 땐 뭔가를 쓰고 싶은 욕망이 수시로 고이곤 했었다. 카운터에서 책을 읽거나 잡념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고여있던 생각이 넘치면 급한대로 포스기의 얇고 긴 영수증을 잘라서 그 위에 단상들을 끄적이기도 했었다. 그렇게 끄적인 단상들을 모았다가 일주일에 한두 번 다이어리 폴더를 열어 넘침의 흔적들을 옮겨놓곤 했다. 지금도 책상 서랍 어딘가에는 편의점 카운터 시절의 영수증 낙서를 모아놓은 종이봉투가 처박혀 있을 거다. 그런데 명색이 글을 다루는 직장에 다니면서 오히려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메말라버린 것이다. 생각의 고임자리가 평평해졌다.

   전문적인 내공을 가진 분들은 예외일 수 있겠지만, 나처럼 보통 사람의 경우 일과 스케줄에 쫓기는 삶을 살다 보면 책도, 기도도, 사진도, 생각도 고여 들지를 않는다. 마음의 자리가 평평해지는 것은 아주 합리적인 우리 몸의 선택능력의 결과다.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 자꾸만 고여 들면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잡스러운 것들이 고여 들지 못하도록 우묵했던 마음의 자리를 평평하게 펴 버리는 것이다. 삶의 형태가 우리 마음의 형태를 수시로 교정하는 것이다.


3. 슬픔도 분노도 고이지 않는 세상


    시선을 조금만 넓게 열어보면, 나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언제부터인가 점점 우묵함을 잃어버린 듯하다. 사회적 고임의 자리가 잘 감지되지를 않는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수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이런 평평하고 밋밋한 사회적 감성의 조짐이 내 기억속에 처음으로 감지된 사건이 용산 참사였던 것 같다.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망루에 올라간 이들이 불에 타 죽었는데도 사회적 슬픔과 분노가 제대로 고여들지를 않았다. 이상했다. 하지만 그 이상한 느낌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우리사회가 만들어내는 공포영화 시리즈는 장르와 버전을 변주하며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공포와 충격의 종류도 일일이 열거하기가 참담할 정도로 다양했다. 선거 부정을 저지른 이가 버젓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가 하면, 수많은 이들이 죽음의 벼랑으로 내 몰리는데도, 아니, 실제로 어이없는 죽음이 이어지고 있어도 슬픔도 제대로 고이지 않고, 분노도 제대로 고이지 않는다. 피가 끓다가도 잠시 뿐, 눈물 흘리다가도 잠시 뿐, 분노도 애통도 시간과 함께 고이기는커녕 평평하게 흘러내려 메말라버린다. 정당한 분노, 정당한 슬픔에 대한 고임의 자리를 지켜내기에는 우리 삶의 기초가 너무도 불안정하기 때문일까.

    지금과 비교하면 예전에는 세상 이 구석 저 구석이 지금보다는 좀 더 우묵했었던 것 같다. 노인들이 하릴없이 돌아다녀도 흉이 되지 않는 동네도 우묵했고, 학생들이 적당히 공부하던 교실도 우묵했고, 주말부터 청년들이 히죽거리며 모여들던 교회도 지금보다는 우묵했다. 도처가 우묵한 세상 속에서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정보나 감각들이 고이고, 필요할 때는 함께 모아 낸 감각들을 서로가 제 그릇만큼 떠다가 썼던 것도 같다.
    하지만 수많은 정보가 보이지 않는 전파를 타고 촘촘하게 공간속을 날아다니면서 엄청난 저장고를 만들어내는 시대를 맞아서 고전적인 사회의 우묵함은 거추장스러워졌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간의 우묵함 대신, 보이지 않는 가상 공간의 우묵함을 우리 손으로 선택하고 구축했다. 포털도 우묵하고, 클라우드도 우묵하고, 이런 저런 SNS도 얼마나 우묵한가. 우묵하다못해 움푹하고 아득할 정도로 깊다. 그런데 정작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다고, 그 깊고 아득한 공간에 마실 물이 가득하니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슬픔과 비웃음과 분노와 조롱이 한 웅덩이에 섞여 마실 물 한 모금을 찾을 수 없다. 오늘의 웃음과 눈물은 오늘에 털어내야지 내일의 웃음과 슬픔이 또 들어 찰 공간이 비워진다. 그렇게 매일의 웃음과 슬픔과 분노를 숨가쁘게 처리하는 사이에 이 사회의 고임 자리는 평평해졌고, 우리들 역시 눈두덩도 평평하고 발바닥도 평평한 환자들처럼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를 싫어하게 되어버린게 아닐까.


4. 심심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이야기가 너무 거창해졌다. 사실 사회적 우묵함에 대한 고민은 내가 들먹일 깜냥을 넘는 주제다. 나는 다만 내 안에서 말라버린 고임의 자리가 슬프고 섭섭할 뿐이다. 그래서 다시금 내 안의 우묵함에 집중하고 싶고, 거기에 책이나 기도나 생각이나 영화나 노래처럼 뭔가 잡다하고 실용적이지 않은 것들이 고여 들기를 차분히 기다리고 싶을 뿐이다. 내가 내 자신의 우묵함을 회복해야 타인의 우묵함에 대해서도, 그리고 이 사회의 우묵함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언급을 할 자격이 비로소 생긴다는 게 나의 궁색한 변명이다. 그러기 위해서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다시 좀 더 게을러지고, 좀 더 심심해질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들을 찾아내야 하리라. 그리고 그 게으름과 심심함의 시선으로 내 주변 사람들의 우묵함도 들여다보고 싶다. 마음의 우묵함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서로에게 격려의 눈빛을 보내며 이런 덕담도 건네보고 싶다. 게으른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가 우묵한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심심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가 가진 우묵한 마음에 잡다하고 빛나는 것들이 고여 들 것입니다.


* 필자소개

    몇 달 전부터 고양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신도제일교회에서 청년들과 생각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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