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진실에 대한 신념을 회복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뒤늦은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지난 한해 동안 웹진 제삼시대를 편집을 맡아 수고해 주신 이상철 목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항상 제삼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를 위해 기도하고 후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과, 이 웹진의 애독자들께도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향해, 새로운 사회와 교회를 위한 신학을 찾아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희망 가득한 새해가 되기를 빕니다.  


    새해 첫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인도 체나이에 와서 대학관계자들 회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 하루 종일 회의실에 앉아 빽빽한 일정을 부지런히 따라가다 보면 시간 감각도 무뎌지고 이때쯤이면 누구나 갖는 여유와 성찰의 시간을 상상하는 것도 어색할 지경이 됩니다. 그러다 문득 방으로 배달된 아침신문을 접어들 때 비로소 시간을 기억해 냅니다.


    체나이에서 발행되는 1월 2일자 데칸크로니컬(Deccan Chronicle)이라는 남인도 지역신문의 우리 식으로 말해서 오피니언란에 실린 아닐 다커(Anil Dharker)라는 언론인의 글입니다. 2016년을 채웠던 테러, 난민, 브렉시트, 그리고 미국 대선이 보여주었던 묵시가득한 세계와 민주주의의 불안을 그는 “트럼프”(trump)라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이미 동사가 되어 버린 단어로 표현합니다. “거짓과 편견이 합리성과 진실을 뒤덮어 승리를 외쳤고(trumped), . . . 선거운동 과정에서 편견을 부추기고 거짓을 퍼뜨리는 일에 전력을 다한 트럼프(Trump)가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현실, 이것이 바로 2016년 세계의 모습이었다 합니다. 테러와 난민 문제는 서구 사회를 분열시켰고, 문제 해결을 위해 설득하고 조정해야할 국가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고, 거짓과 유언비어로 조장된 공포가 결국은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말입니다.


    터키 해안에서 발견된 세 살배기 어린아이 이안 크루드의 죽음을 바라보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부끄러워하던 그 마음이 세계인들의 한결같은 마음인 줄 알았습니다. 이렇듯 인간이 비참해지고 낮아질 수 있을까 하는 탄식의 마음을 다들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수치와 분노로부터 인간과 생명의 존엄회복을 향한 사람들의 외침과 참여가 당연히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고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마음이 숨어 있었고 다른 세계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살던 곳에 살 수 있었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보트에 오르지는 않았을 것이고, 생존의 문제가 아니었다면 국경을 넘어설 각오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난민들의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는데,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과 두려움이 자라나고 있었고, 오히려 그 상황을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자리 잡았던 것입니다. 난민들을 나의 소유와 나의 특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여기에 영국 돈이 유럽으로가서 난민들을 위해서 낭비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통했고, 미국인들에게도 이민자들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고립주의적으로 또 내향적으로 자기 자신들만을 바라보는 이기적인 시각을 더욱 거세게 불러일으켜, 온갖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채워진 선거운동이 가능한 상황이 되고, 끝내는 거짓과 편견이 많은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을 압도해 버리는 상황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연말 객담의 자리에서 지금은 “민란의 시대”라고 하시던 어떤 교수님의 말이 생각납니다.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와 정치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대중이 광장으로 나와,, 예측 불가능하게 자신들을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으로 생각했습니다. 어처구니 없게도 “샤이 박근혜”라는 말도 생각나고, 안심하지 말라 박근혜보다 더한 대통령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경고하시는 어떤 분도 함께 생각납니다. 분명 우리는 광장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에 도취하면 그 광장은 그야말로 대중의 밀실이되고 대중의 도피처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어디를 향해갈지 모르는 민란의 한 복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숨어있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들이 다시 한번 고개를 들고 무서운 배신을 감행할 여지 마저 충분한 상황입니다. 바로 이곳입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교차하는 이 곳에서, 인간과 생명에 대한 새로운 확신과 그것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를 향한 비전을 엮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회의 도중에 영국에서 온 한 신학자로부터 종교개혁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해석을 들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 그 중에서도 영국 종교개혁은 교회론적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새로운 사회를 향한 비젼이 교회론적 변화의 결과물의 만들어 냈다고 해석했습니다. 교회의 개혁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통해서 온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정말 새로운 이야기 처럼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인간이 비천해지고 낮아진 상황을 거듭해서 탄식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확신과 긍정을 요구합니다. 지극히 시장화되고 상업화된 세계, 그래서 인간마저 상품과 소비재로 삼는 세계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신학적으로 다시 다듬어 내는 일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신학적인간학 자체를 다시 선언하고 일상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서 애써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실 보다는 설득력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세계, 아니 진실이나 진리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세계, 그래서 최대한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욕심을 이끌어 내서라도 설득하고 이길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세계, 이런 세계 속에서 진실과 가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신학적으로 깊이 숙고하고 다듬어 내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광장의 희망을 우리 일상의 변혁으로 그리고 신학과 교회의 변혁으로 이끌어 가는 우리의 광장신학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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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묵시록 10 : 1950년대 핵폭탄 시대의 묵시록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20세기의 가장 큰 묵시록 사건은 히로시마의 핵폭탄이었다. 서양에선 오랜 시간 신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꿈꾸어 왔지만, 그 능력이 세상을 끝낼 수 있는 힘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히로시마의 핵폭탄 이후 전개된 역사는 세상이 곧 파괴된다는 묵시록의 드라마였다. 냉전이라고도 불렸던 이 드라마는 세상의 종말을 전제로 한,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 끝을 공포 속에서 기다려야만 하는 오랜 전쟁이었다. 지금은 희미해진 기억일 수 있으나, 80년대 후반 냉전체제가 와해될 때까지의 역사는 핵폭탄의 묵시록과 씨름하는 시간이었다. 일상의 삶에서 학문과 예술까지 그 묵시록의 그림자는 길고도 뚜렷했다. 미국은 당연히 그 드라마의 주역이었다. 서구역사에서 세상의 끝은 한때 공포의 전쟁과 지옥의 불꽃으로 형상화 되었지만, 핵폭탄은 그 드라마의 끝이 인간이 만든 과학에 있음을 예고했다. 1945년 이후 1950년대 후반까지 미국에서 핵폭탄의 묵시록 시대의 본질을 또 그 시대를 견디고 살아나가는 방식을 예술로 표현한 세 사람이 있다. 비밥(Bebop)재즈의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추상표현주의의 잭슨 폴락(Jackson Pollack), 그리고 비트세대 문학의 잭 케루악(Jack Kerouac)이었다. 


    그들의 작품세계에서 묵시록을 읽는 건 이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파커와 폴락과 케루악이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가장 창의적인 예술작업을 했고 그들의 장르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이뤄냈다는 사실에는 논란이 있을 수 없다. 이들이 공유했던 공통적인 가치는 아마도 지금(Now)이라는 순간과 즉흥성이라는 자세의 중요함일 것이다. 시간이 미래에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쌓여있는 게 아니고 다만 지금으로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직관적 판단을 그들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다. 비트세대의 ‘비트’(Beat)는 여기서 그 순간의 시간이었고, 폴락의 드립페인팅의 드립(Drip)은 붓이 움직이는 시간의 흐름을 부정했다. 폴락과 케루악은 그런 시간과 종말의 동기의식을 재즈에서 찾았다. 특히 케루악과 비트세대의 작가들에게 비밥은 그들을 위한 음악이었다. <길 위에서>를 제대로 읽기 위해선 그 책에서 재즈의 리듬을 찾아야 한다. 1947년 뉴욕에서 버스로 길을 떠나 도착한 곳은 당시 재즈의 블루스로 유명했던 시카고였다. 케루악은 서부로 출발하기 전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들은 비밥 재즈의 ‘빛의 소리’는 그의 여정을 위한 축도와도 같았다. 케루악은 찰리 파커에 대한 시를 썼을 정도로 그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고, 자신의 글쓰기 이론을 재즈와 비교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의 글쓰기는 비밥의 즉흥적 창의성을 모방한 것이다. 비밥의 독주가들이 누린 시간과 호흡의 자유를 글에서 표현하고자 했고, 색소폰을 불듯이 이미지를 글로 묘사하기 원했다. 케루악은 또 자신의 글이 수정하지 않고, 쉬지도 않고 써내려간 즉흥적인 것이라는 인상을 남기려 했다. 따라서 케루악 책의 이런 부분을 망각하면 남는 건 피상적이고 밋밋한 글읽기뿐이다. 코폴라 감독이 20년 넘게 그 책을 영화로 제작하려 했지만 실패했던 이유는 케루악의 글의 리듬감을 영상으로 담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사실은 실제 영화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폴락 역시도 밤낮으로 재즈를 들을 만큼 심취해 있었다. 그 시대의 재즈음악을 자신의 미술처럼 예외적이고 창의적인 예술이라 생각했다. 잭슨 폴락이 물감을 캔버스에 떨어트려 남긴 점들과 불규칙적인 선은 즉흥적인 재즈의 선율이었다. 그 선율의 시간은 이어지지 않는 시간, 지금밖에 기약할 수 없는 시간 이었다. 폴락은 자신의 작품을 핵폭탄 시대의 미술로 이해했었고, 그 이해는 음악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말까지 남겼다. 


잭슨 폴락 (1912~1956)


    폴락은 케루악이 길을 나섰던 1947년 드립페인팅의 실험을 시작했고, 케루악의 책은 폴락이 사망한 다음 해였던 1957년에 출간됐다. 1947년이라는 해가 우연일 수도 있지만, 냉전이라는 묵시록의 드라마가 시작하던 시기였고, 그들의 새로운 실험은 그 묵시록에 적응하고 또 저항하려는 몸부림이었다는 사실에서 우연이 아닌 필연의 가능성을 읽게 만든다. 1947년은 또 시카고의 과학자들이 Doomsday Clock(지구종말시계)라는 걸 만들어 핵폭탄의 위기로 세상이 종말에 얼마나 가까이 와있는지를 측정하기 시작한 해였다. 2016년 12월 말, 그 시계는 종말 3분 전을 가리키고 있다. 종말시계는 냉전시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묵시록의 시간을 살고 있음을 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해왔다. 폴락은 1950년 한 인터뷰에서 그 시대의 화가가 과거의 방식으로 핵폭탄의 시대를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기법을 필요로 한다는 말로 자신의 드립페인팅(Drip Painting)의 방식을 옹호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은 핵폭탄의 시대를 어떻게 드러냈는지 파악하려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볼 근거가 없지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핵폭탄 투하로 잿더미가 된 히로시마의 도심을 공중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폴락의 작품을 떠올리는 것은 착시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그렇게 보인다. 그의 드립페인팅에서 무엇을 보았다고 말해야 할까. 그의 작품에서 갈기갈기 찢겨져 어떤 분별력도 허락하지 않는 황폐한 공간을 읽을 수 있지만, 거기서 서예의 선율을 읽는 사람도 있다. 폴락이 1947년에 완성한 드립페인팅의 초기 작품의 제목은 “Full Fathom Five(다섯 길 바닷속)”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등장하는 대사의 일부다. 풍랑으로 좌초한 배에서 익사한 아버지가 다섯 길 다닷속에 누워있고, 그 뼈는 산호로 변하고, 눈은 진주가 되어버린 처참한 광경을 묘사하는 대사다.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유토피아와 종말론에 대한 상상력이 뚜렷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신대륙 발견이 제공한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과 17세기 유럽의 종교와 정치가 영국에서 거대한 묵시록의 서사로 발전했던 역사가 그 배경에 있었다. 서양에 근대라는 시대를 열게 해준 이념은 유토피아와 묵시록이라는 뿌리가 같은 상상력이었다. 폴락이 그의 작품에 그런 제목을 붙인 이유가 건 <템페스트>의 묵시록 때문인지 아니면 작품 속에 바닷속 심연의 묵시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해석의 여지만 남길 뿐 명확하지는 않다.



(Full Fathom Five, 1947)


    폴락은 기존 회화의 캔버스보다 훨씬 큰 캔버스를 작업실 바닥에 펼쳐놓고 그 위에서 물감을 떨어트렸다. 눈높이의 이젤에 걸쳐진 캔버스에 붓을 든 손을 움직여 그린 그림과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차이가 느껴진다. 눈높이에서 손을 내밀어 맺는 관계가 개인적인 친밀감을 나타낸다면,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면서 맺는 관계는 전체적이고 지배적인 관계를 암시한다. 넓은 캔버스에 물감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폴락 자신도 그림의 일부가 되어 물감이 묻은 발자국을 남기는 일도 있었다. 그의 드립페인팅에서 어떤 묵시록을 읽는다면 무리일까. 물감을 공중에서 떨어트리는 과정이 폭탄을 공중에서 투하하는 장면을 연상시키고, 완성된 작품이 폭탄처럼 투하된 물감의 방울들이 퍼지고 번져서 만들어진, 어떤 의미도 용납하지 않는 무엇이라는 사실에서 묵시록의 형상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는 상상이다. 화가가 그림 안에 있어야 했다는 사실은 캔버스가 컸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이 헤어 나올 수 없고 객관적인 시각이나 관계가 불가능한 혼돈의 상태 그리고 파괴되고 분열된 전체의 상태를 의미한다면 그런 형태를 뜻하는 용어는 사구사상에서 묵시록밖에 없다. 폴락에게 드립페인팅의 의미는 핵무기 시대 미술의 도구가 될 수 없었던 이젤과 붓의 죽음 위에 서서 그가 제공한 묵시록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폴락의 드립페인팅에서 묵시록을 읽은 사람이 있다. 당시 유명한 미술비평가 헤롤드 로즌버그(Harold Rosenberg)였다. 폴락과 같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이 빠질 수 있는 위험을 ‘묵시록적인 벽지’(Apocalyptic Wallpaper)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그 후 이 표현에 주목한 사람들은 ‘묵시록’보단 ‘벽지’쪽에 더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 실제 두 단어의 의미를 함께 살린다면 폴락에 대한 상당히 재미있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Number 1 - Lavender Mist, 1950)


    <벽지란 무엇인가? 19세기 벽지가 상업적으로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이후 벽지는 자체적인 존재감이 없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어떤 평론가가 누군가의 작품을 벽지에 비교한다면 그 내적인 예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앤디 워홀이 한때 벽지를 순수한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했지만, 팝아트의 입장에서 그런 작업을 했다는 것 자체가 벽지의 낮은 위상을 반증해 주는 것이었다. 폴락의 드립페인팅을 벽지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설명할 수 있는 의미를 찾기도 힘들고, 어디가 중심이고 무엇이 주제인지 파악하기 힘든 추상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다는 한 평론가의 비판을 폴락은 오히려 자신의 의도를 간파한 찬사라 여겼다. 중심이 없고 시작과 끝이 모호한 작품을 다른 어떤 것을 위해 준비된 배경에 불과하다고 볼 여지는 충분하다. 로즌버그의 평가도 전문적이었지만 비슷했다. 폴락과 같은 추상표현주의 작품엔 긴장감이 없고 작가들이 만들어낸 캔버스의 세계에 만족하면서 결국은 그들의 예술성을 소멸시키는 자기부정으로 빠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로즌버그는 왜 그런 벽지가 묵시록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폴락의 작품이 분열과 파괴된 상태를 연출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하지 않았다. 실제 폴락의 묵시록은 그 작품의 벽지성과 연결되어 있다. 벽지의 그림은 한 장으로 끝나지 않고, 그 중심이 한 가운데 위치해 있지도 않다. 벽지는 한 장씩 연결되어 공간의 전체, 그 세상을 다 채워야 제 역할을 하게 된다. 폴락의 벽지엔 시작도 끝도 구분할 수 없는, 분열되고 파괴된 세상이 존재한다. 한때 폴락은 한쪽 벽에 자신의 작품을 두고 대형 거울로 반사시켜 그림으로 공간 전체를 채우는 실험을 했었다. 자신이 의도했던 핵폭탄 시대의 미술이 그의 드립페인팅이었고, 그 기법을 통해 빠져나올 수 없고 회피할 수 없는 세상의 전체적인 파괴와 몰락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아닐까. 그렇다면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한 게 아니라 묵시록의 벽지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라는 요청이었다. 그의 드립페인팅이 삼차원적인 깊이를 추구하지 않았던 이유는 묵시록의 붕괴된 공간은 세상과 사물의 삼차원적인 특징을 상실한 곳이기 때문이다. 로즌버그는 그의 명성에 어울리는 직감적 통찰력으로 그런 그림을 묵시록의 벽지라 부른 것이다.


    핵폭탄의 묵시록이 지배하던 냉전시대 초기에 치열했던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시각적 경쟁을 포함했다. 핵폭탄 실험 직후 하늘까지 치솟아 오르는 죽음의 버섯구름을 찍은 사진은 즉각 공개되어 환상과 공포의 분위기를 경쟁하듯 키워나갔다. 폭탄은 히로시마에서 이미 터졌고, 묵시록은 더 이상 미래형 종말론이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더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핵폭탄 실험을 기록한 사진들은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묵시록의 드라마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고 있었다. 이런 묵시록의 이미지가 냉전의 도구이자 무기였다면, 폴락의 미술작품도 그런 시각에서 볼 수는 없을까?

    냉전시대 미국정부가 미국의 우월성을 알리기 위해 문화예술계를 전략적으로 지원해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다. 미키마우스에서 뮤지컬까지 미국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가 갈망하고 향유하는 자본의 보편적인 문화가 되기까지 CIA와 같은 기관의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이 비밀은 아니었지만, 그 구체적인 정황은 냉전시대의 기밀문서들이 공개되면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잭슨 폴락의 추상표현주의까지도 그런 전략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폴락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의 작품을 국제적으로 알리고 부각시키는데 미국정부의 비밀스런 작업이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 사실은 추상표현주의가 미국적인 미술로 홍보되고 부각되는 과정과 냉전체제의 치열했던 경쟁의 단면을 이해하는데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상식과 실용을 중요시 했던 미국사회에서 20세기 초반 유럽의 추상적인 예술은 대중적인 호응을 얻지 못했다. 폴락의 드립페인팅은 미국 회화의 전통이 아닌 유럽의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었다. 그의 작품에 미국적이라 할 만한 특별한 내용은 없었고, 그가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가로 부각되는 과정도 불분명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이념전쟁이라는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해지는 면이 있다. 추상표현주의는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맛서는 자유진영의 대안이었던 것이다. 소련의 리얼리즘이 통속적이고, 소재의 제한이 많았고, 사회주의 이념의 통제를 받는데 반해 추상표현주의와 같은 미국의 예술은 표현의 자유와 작가의 자율성이 자본주의의 속성 안에서 절대적으로 보장받는 예술이라는 논리였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자유’였다. 미국에는 자유가 있고 소련에는 통제가 있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CIA에선 당시 극단적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였던 추상표현주의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폴락의 그림이 미국의 실용적 진취성과는 거리가 먼 유럽의 데카당스와 허무주의를 대변한다는 비판이 있었어도 ‘자유’라는 깃발 아래 미국적인 것으로 수용될 수 있었다. 이런 전략 아래 폴락은 미국적인 작가가 되어야 했다. 언제부턴가는 폴락에 대한 설명으로 ‘와이오밍 주 출신의 카우보이’란 수식어가 붙어 다니며 그를 시골 출신의 토속적인 미국작가로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의 작품의 크기를 미국서부의 거대하고 광활한 공간을 재현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여기서 새로운 질문을 해보자. 폴락의 작품을 CIA에서 주목한 이유를 리얼리즘과 추상주의의 이념적 대립이 아니라 그의 작품이 담고 있는 냉전의 묵시록에서 찾을 수는 없을까? 냉전이 묵시록의 이미지 전쟁을 포함하는 것이라면, CIA에서 본 것은 그의 작품이 담고 있는 자유로운 작가정신이 아니라 버섯구름의 사진보다 더 큰 묵시록의 암시가 아닐까? 사진의 리얼리즘보다 추상화의 암시가 묵시록의 드라마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강박증을 증폭시킬 수 있고, 냉전의 승리는 그 초조함에 달려있다고 보지는 않았을까? 답은 어디서도 찾을 없다. 폴락의 작품을 보고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위에서 참고한 로즌버그의 글은 그의 유명한 에세이 “The American Action Painters"(1952)이다. 냉전시대 CIA와 미국 예술계의 관계에 대해선 Frances Saunders의 연구가 독보적이다 - Who Paid the Piper?: CIA and the Cultural Cold War. CIA가 비밀리에 지원한 것은 잭슨 폴락만이 아니라 Willem de Kooning과 Mark Rothko와 같은 동시대 미국작가들이 대상이었다. 폴락의 인터뷰 Jackson Pollack: Interviews, Articles, and Reviews란 책에 실려있다)

    핵폭탄의 묵시록이 지배하던 냉전시대 초기에 치열했던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시각적 경쟁을 포함했다. 핵폭탄 실험 직후 하늘까지 치솟아 오르는 죽음의 버섯구름을 찍은 사진은 즉각 공개되어 환상과 공포의 분위기를 경쟁하듯 키워나갔다. 폭탄은 히로시마에서 이미 터졌고, 묵시록은 더 이상 미래형 종말론이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더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핵폭탄 실험을 기록한 사진들은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묵시록의 드라마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고 있었다. 이런 묵시록의 이미지가 냉전의 도구이자 무기였다면, 폴락의 미술작품도 그런 시각에서 볼 수는 없을까?

    핵폭탄의 묵시록이 지배하던 냉전시대 초기에 치열했던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시각적 경쟁을 포함했다. 핵폭탄 실험 직후 하늘까지 치솟아 오르는 죽음의 버섯구름을 찍은 사진은 즉각 공개되어 환상과 공포의 분위기를 경쟁하듯 키워나갔다. 폭탄은 히로시마에서 이미 터졌고, 묵시록은 더 이상 미래형 종말론이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더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핵폭탄 실험을 기록한 사진들은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묵시록의 드라마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고 있었다. 이런 묵시록의 이미지가 냉전의 도구이자 무기였다면, 폴락의 미술작품도 그런 시각에서 볼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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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타자성의 관점에서 본 신약성서 1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1. 시작하며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평했다. 세월호 이후를 사는 우리 역시 그렇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절망적이게도 300여 명의 아이들이 수장된 현실을 애도하기는커녕 혐오스러운 말을 쏟아내는 교회들을 돌아보면서 야만이 아닌 살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의심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교회는,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 해온 신학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앙리 레비의 말대로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으로 전락해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 세월호 사건을 향한 교회의 혐오스러운 발언들은 교회뿐만 아니라 신학에서 신앙적인 것으로 공공연히 통용되던 타자를 향한 평상시의 폭력적인 이해가 표출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고 말이다. 또한, 자연스럽게 이러한 의심은 내게 기독교의 경전인 성서를 다시 묻도록 만들었다. 어쩌면 타자를 향해 혐오스러운 말들을 내뱉도록 하는 하나의 근거로 이미 성서가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하나의 깊은 회의가 찾아왔던 것이다. 다행인 걸까. 바로 그 순간 다음과 같이 물었던 스퐁의 말이 떠올랐다.[각주:1]

 

우리는 궁극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서구 종교계에서 그렇게 널리 존중되고 있던 이 성경책이 어떻게 또 다른 악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성경을 악용하는 것을 막고 중지시킬 수 있을까? 성경은 다시 한번 생명의 원천, 그것도 궁극적 원천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늦었고 성경도 이미 너무 더럽혀졌나? 나는 이 책에서 이런 주제들을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당연히 스퐁의 이러한 질문들 중 눈에 들어온 것은 그 어느 것도 아닌 “이미 늦었고 성경도 너무 더럽혀졌나?”라는 그의 물음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르낭, 지라르, 그리고 프로이트의 복음서 해석은 꽤 유용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내게 타자에 대한 기독교적 폭력의 시초가 반유대주의라는 점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기독교적 동일자로 신앙을 일궈온 내게 이것은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믿고 따랐던 복음서가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을 일으키는 근거가 되었다는 점은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타자에 대한 폭력의 문제가 성서에 이미 내장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였다. 사실 이런 나와 달리, 이미 교회의 역사에서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아주 오래된 하나의 전제였다. "반유대주의는 결코 근대에 생겨난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과 함께 오랫 동안 몇 천년에 걸쳐서 그들의 존재를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이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는 다양한 변종을 하고는 했습니다. 오래전 신을 죽인 백성 유대인에 대한 기독교회나 교부들의 적의에서 시작된 그것은 이윽고 세속화되어 유럽 정신사의 그림자 부분을 형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각주:2] 하지만 교부들에서야 비로소 이 문제가 돌출했을까? "바울의 선교행동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원시 기독교회는 저들을 유대교에서 떼어놓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1세기 말부터 2세기 초에 걸쳐 발생한 원시 기독교회의 유대교 회당으로부터의 분리 단절은 그 후 수많은 트라우마를 야기했던 기독교적 반유대주의의 배경을 이루는 사건입니다."[각주:3]는 지적을 참조하면, 애초에 복음서부터가 유대교를 하나의 타자로 놓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반유대주의 문제는 복음서가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 이미 얼룩져 있음을 보여주는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 문제뿐이겠는가. 여성과 동성애도 성서에 내장된 타자에 대한 폭력을 보여주는 예들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 도킨스를 비롯한 전투적 무신론자들이 엄청난 열을 올리고 있음을 참조한다면 말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이고, 관용을 모르며, 인종차별주의, 부족주의, 편협성과 손을 잡고, 무지라는 옷을 입고, 자유로운 탐색을 적대시하고, 여성을 경멸하고, 아이들에게는 강압적인, 조직화된 종교는 양심에 커다란 짐을 지고 있어야 마땅하다."[각주:4]는 히치스의 말을 인정하고선 성서를 찢어버려야 하는 걸까. 마치 2세기의 마르시온처럼 말이다. 하지만 무시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참조한다면, 성서 역시 악으로 혹은 폭력으로 더럽혀져 있다는 점을 너그럽게 인정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결국 어떻게 읽고 해석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해진다고 봐야하는 건 아닐까. 사실 이런 일이 비단 성서에만 적용되는 일이겠는가. 다른 종교의 경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투적 무신론자들이 유대교뿐만 아니라 이슬람 경전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을 가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아가 종교의 경전들뿐만 아니라 실은 모든 텍스트가 떠안고 있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복음서의 폭력성을 인지시키고, "반유대주의적 편견의 뿌리로 만들려 하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그대로 동일시할 수 없는" 해석을 제안하는 일이지 않을까.

     이를 위해, 본론에서 독서행위에 관한 논의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독서행위는 읽고 있는 텍스트를 그대로 따르는 행위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육영수가 지적한 것처럼 독서행위는 "흰 종이 위에 고정된 검은 글씨를 인지하는 지각 행위가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경험, 교육과 가치관 등에 비추어 텍스트의 복잡한 의미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능동적 행위"[각주:5]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비록 폭력에 오염된 성서구절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늦깍이 신학생 마르틴 루터는 어느날 수도원 다락방에서 오직 신앙에 의한 의로움이라는 성경 구절에 벼락 맞아 면죄를 구원의 보증수표로 선전하는 가톨릭 천년왕국에 분연히 도전"[각주:6]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루터가 유대인을 향해서는 "전 그리스도교국에 대한 굶주린 경찰견이자 살인마이며, 완전 고의로 … 그들은 물과 우물에 독을 풀고, 아이들을 유괴하며 토막 내었는데 이는 그리스도인의 피로 은밀하게 자신의 분노를 삭이기 위해서였다."[각주:7]는 악랄한 저주를 퍼부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가 유대인에게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한때 그는 유대인을 약속의 자녀로 꽤 극찬했던 적이 있다. 그렇다면 루터는 독서행위는 단순히 텍스트를 따르는 행위가 아니라 이 보다 좀 더 복잡한 행위라는 육영수의 지적을 잘 보여주는 예이지 않을까. 아무튼, 독서행위에 관한 논의는 우리에게 성서가 나쁜 텍스트이기에 찢어버리거나 애초에 믿지 말아야 하는 열등한 경전이라고 주장하는 오늘날의 전투적인 무신론자들보다 좀 더 복잡한 물음과 답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계속되는 논의에서 독서행위가 텍스트를 단순히 반복하는 행위가 아닌 좀 더 복잡한 행위라면 대체 성서를 어떻게 읽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모색하기 위해 르낭, 지라르, 그리고 프로이트를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한 바 있지만, 이들을 반유대주의가 복음서에 내장되어 있음을 보여준 사람들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복음서를 읽고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서로 달랐다. 기독교적 사고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 킴볼의 논의에 기대어 보자면, 르낭은 배타주의적 사고에, 지라르는 포괄주의적 사고에, 그리고 프로이트는 다원주의적 사고에 속한다. 킴볼에 따르면 배타주의적 사고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정당한 구원의 방법을 제공해준다는 신념”[각주:8]인데, 특히 배타주의에서도 극단에 위치한 입장인 문자주의는 “종교적 다양성이 야기하는 복잡한 이슈들을 해결해보려 애쓰는 태도는 찾아보기”[각주:9]어려운 그런 사고를 갖고 있다. 포괄주의적 사고는 "과거 수백 년 동안의 많은 다툼과 불화를 잊고 상호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며 함께 힘을 합쳐 평화, 자유, 사회적 정의, 도덕적 가치관을 보존하고 장려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각주:10]하는 입장지만, 그럼에도 "모든 종교에 나타난 하느님의 구원과 역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계시를 모두 인정"[각주:11]한다. 다원주의적 사고는 "기독교를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보지도 않고, 다른 종교의 완성형으로 보지도 않는다. 구원을 얻기 위한 다양한 행로가 모두 실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인정한다."[각주:12] 물론 르낭, 지라르, 프로이트를 이 유형들에 딱 들어맞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에 나타난 반유대주의를 어떻게 대면하고 해석해 가야하는지를 모색함에 있어 중요한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하나의 결론적 제안을 도모할 것이다. 반유대주의를 비롯해 타자에 대한 폭력을 하나의 성스러운 종교적 경험으로 제안하는 신약성서의 이야기들을 읽을 때 어떤 독법이 권장될 수 있는지와 관련해서 말이다. 특히, 개인의 거룩한 종교적 행위로서의 성서 읽기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함께 고려하면서 말이다.


2. 중심글


   1. 종교적 체험으로서의 독서행위 : 배제인가 포용인가


     엘리아데는 종교적 체험을 성스러움에 대한 경험이라고 했다. 물론, 그에 따르면 성스러움은 혼란스러운 것들을 정돈해주는 일종의 방향잡기 혹은 자리 잡기로 정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방향잡기는 소위 신들이 행한 것들을 그대로 따르려는 소위 모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엘리아데의 논의를 참조할 때 비로소 이해가 가능해진다. “인간 행위의 의미와 가치는 있는 그대로의 물질적인 여건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원초적인 행위의 재현, 신화적인 전범의 반복이라는 인간 행위의 특성과 결부되어 있다. 영양섭취는 단순한 생리작용이 아니라 일종의 성찬식의 되풀이이다. 혼례와 집단적인 오르지도 신화적인 원형들의 반향이다. 그런 행위들이 반복되는 것은 태초에 신들, 조상들, 영웅들에 의해 그 행위들이 축성되었기 때문이다.”[각주:13] 한 마디로, 종교적 체험은 신들이 행한 행동들을 그대로 따르려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책의 종교인 기독교는 성서를 읽음으로써 이런 욕망을 실현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기독교, 특히 오직 성서만으로를 외치는 개신교는 이런 현상이 좀 더 심하게 나타난다. 스펄전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4]

 

다른 모든 책이 한곳에 모아져 불에 태워졌다고 해도 그것은 거룩한 책 한 페이지를 소거했을 때보다 세상에 끼치는 손실이 적습니다. 다른 모든 책은 아무리 좋더라도 단지 금박과 같아서 금 1온스를 얻기 위해서는 다량의 책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순금입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들의 정신적인 부라 해도 그 안에는 계시의 진리와 같은 보석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성서가 다른 어떤 책보다 귀하고 중요하다는 논지는 기독교인들이라면 대체로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지가 좀 더 확대되면 성서는 영감 받은 책이기에 오류가 없고, 성서만으로 충분하며, 최고의 책이고, 일관되고 참된 세계관을 주는 유일한 책이라는 주장으로까지 번진다. 성서는 일종의 나침반으로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해석해주는 결정체가 된다. 이렇게 되면 이미 스펄전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다른 모든 것은 열등하고 하찮으며 성서에 비춰서 이해되어야 하는 부차적인 것이기에 배타적인 태도가 쉽게 형성된다. 성서가 말하는 바가 무조건 옳다는 식으로 정립되고 나면 성서가 말하는 모든 문자는 진실이고 진리이고 따라야 할 기준이 되는 것이다. 특히, 개신교인들에겐 성서와 일치시키는 삶이 하나의 종교적 체험임을 상기하면 때론 꽤 위험한, 심지어 폭력으로까지 비화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예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때문에 개신교에서 독서, 특히 성서읽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알다시피, 점차 사회가 다원화되고 개방되어가고 사람들 역시 그러함에도, 교회는 배타적인 방식의 성서읽기만을 추천함으로써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측면이 많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서읽기가 배타적이 아닌 타자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은 일단 자기가 읽는 성서에 대해 거리를 두고 심지어 비판적으로 읽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읽기의 묘미는 설사 문자 그대로를 따른다하더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폭력적인 본문을 읽는다하더라도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것이고, 누군가는 그대로 따라할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성서를 문자 그대로 따르려는 사람들이 교회에선 신앙심이 깊은 걸로 존중받는다. 그렇기에 나쁘게는 성서읽기란 무엇이며 어떤 태도로 성서를 읽어야 타인과 소통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 오늘날 교회에서 드러나는 소수자와 타종교를 향한 끊임없는 혐오는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제 중심을 잡아주는 성스러운 종교적 체험으로서의 성서 읽기가 타자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는 읽기가 되기 위해선 어떠해야 하는지를 르낭, 지라르, 그리고 프로이트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또한, 이 세 사람을 통해 서문에서 독서란 흰 종이 위에 고정된 검은 글씨를 인지하는 지각 행위가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경험, 교육과 가치관 등에 비추어 텍스트의 복잡한 의미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능동적 행위라는 육영수의 말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같은 복음서를 읽었음에도 이 세 사람은 전혀 다르게 읽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2. 배타주의적인 기독교적 동일자로서 복음서 읽기 : 르낭의 『예수의 삶』


     1863년 에른스트 르낭은 초자연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순전히 인간적인 모습만을 묘사한 『예수의 삶』을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날 우리가 보기엔 당연하게 보이지만 당시에 이 저서는 많은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다. 왜냐하면 당시 프랑스의 가톨릭은 이 책을 금서목록으로까지 지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바이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아주 감동적인 사건으로 묘사한다.[각주:15]

     르낭의 예수의 삶은 세계 문학의 한 사건이었다. 그는 지금까지는 단지 신학자들만 관심을 가졌던 문제를 전 교양인의 세계에 제시한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하나의 예수상을 제시했는데, 그 예수는 생활한, 그가 문예작가로서 갈릴리의 푸른 하늘에서 만난, 감동된 붓으로 포착한 예수였다. 세상은 감동을 받았으며 살아있는 예수를 보는 것 같았다. 세상은 르낭과 함께 푸른 하늘을, 물결치는 누런 곡식들을 먼 산들과 화려한 백합들을 게네사렛 호수 주변에서 보았으며, 그와 함께 살랑거리는 갈대밭에서 산성 설교의 영원한 선율을 들었다.  

     확실히, 르낭은 슈바이처의 이런 찬사를 받을 만하다. 그는 이 저서를 쓰기 위해 갈릴리 지역을 자주 여행했음을 강조하고, 특히 역사비평의 원칙을 고수했음을 분명히 밝힌다.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기까지 우리는 역사비평의 원칙, 즉 조차연적인 이야기는 말 그대로 허용될 수 없으며 그것은 항상 고지식함이나 속임수를 내포하고 있고,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을 해석하고, 그것이 품고 있는 진리와 오류가 어떤 것인가를 찾아내는 것이라는 원칙을 고수할 것이다.”[각주:16] 따라서 독자는 1세기 갈릴리에서 살았던 한 인간을 객관적이고 편견이 없는, 마치 살아있는 실제의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자신의 저서에 묘사된 예수는 기독교의 교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그가 주장하는 대목에선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기독교 기원에 관한 역사를 구상했을 때, 하고 싶었던 것은 요컨대 인물이 거의 관련이 되지 않은 교리의 역사였다. 그러나 그 이후 역사란 추상적인 개념의 단순한 유희가 아니며, 역사 속에는 교리보다는 인물이 더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종교개혁이 만들어 낸 것은 은총 받음과 속죄에 관한 교리가 아니라 루터와 칼빈인 것이다.”[각주:17]

     그러나 르낭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슈바이처의 찬사는 길어봐야 한 페이지를 넘지 않았다. 이후 슈바이처는 줄곧 르낭을 비판하기에 여념이 없다. 르낭은 자신이 역사적 원칙을 견지했다고 불평하겠지만, 슈바이처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르낭이 취급한 방법들에게는 역사적 계획에 관한 언급을 볼 수 없다. 말은 모두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되는 곳이면 어디나 삽입해 넣었다. 한 마디 말도 거저 버려두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적 상황에 맞는다고 본 것은 한 마디도 없다. 개체 장면들을 너무나도 마음대로 짜 맞추고 있다.”[각주:18] 심지어, 찬사를 보낸 뒤 바로 거침없는 혐오를 내뿜었다. “르낭의 예수의 생애처럼 무미한 것들이 꿈틀거리는 책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혐오한 책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말이 가진 가장 추악한 의미에서의 그리스도교적 예술품이다.”[각주:19] 또한, 르낭에 대한 콜라니의 비판을 전하며 확인사살을 감행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기대에 부풀어서 관심을 가지고 르낭의 책을 읽었으나 가장 분격된 실망으로 그 책을 덮었다.”[각주:20] 슈바이처가 이렇게까지 비판하는 이유는 르낭이 그린 예수가 1세기 유대교의 맥락이 아니라 19세기 서구의 도덕적 이상향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로, 1세기 유대교의 묵시적인 세계상을 고려하고자 했던 슈바이처에게 “그가 실현하려는 혁명은 언제나 정신적인 혁명이었다. …사실 그가 세운 것은 내가 영혼의 나라라고 부르고 싶은 하느님 나라였으며, 예수가 세웠던 것, …바로 이것이 영혼의 자유라는 교리”[각주:21]라는 르낭의 진술은 "단순한 세계에서 살기 위해 감상으로 향유를 바르고 화려하게 꾸며야 했던 것“[각주:22]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이 같은 슈바이처의 비판엔 가혹한 측면이 있다. 1세기 유대교의 맥락을 르낭이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을지라도, 르낭의 『예수의 삶』은 슈바이처 자신도 인정한 바와 같이 대중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비판적으로 조사된 예수의 생애』를 썼다가 독일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대학으로부터 쫓겨난 슈트라우스마저도 르낭의 필체를 본받아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으려 했을 정도니 말이다. 더군다나, “이교적이지만 공손함으로 가득한 종교의 역사를 만들고자 하며, 18세기의 메마른 합리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신학의 엄격함으로부터 종교를 보호하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랑송은 르낭이 비종교적인 과학으로 이 작품을 종교적으로 만들었다고 쓸 수 있었던 것”[각주:23]이라는 박무호의 지적을 기억하면, 르낭은 19세기의 일반적인 서구 기독교 대중들에 맞는 새로운 기독교를 제시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특히, 당시의 기독교 교리에 염증이 난 일반 대중들에게 1800년 동안 기독교는 보편적이고 단순한 영혼의 가르침을 설파한 예수를 교리로 혹은 철학으로 가두어왔다는 르낭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가슴을 뛰게 하는 한편의 시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각주:24]

 

     예수는 교리의 창시자가 아니라 상징의 제작자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정신을 가진 세상의 선구자인 것이다. 한편으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덜 기독교적인 사람들은 4세기부터 기독교를 형이상학적인 유치한 토론의 수단으로 몰아 버린 그리스 교회의 박사들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복음서로부터 거대한 대전이라는 수백만 개의 논문을 끌어내려 했던 중세 라틴의 스콜라 철학자들이었다. 어떤 예외적인 운명에 의해서 18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여전히 순수한 기독교가 보편적이며 영원한 종교라는 특성을 지닌 채 나타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기독교는 완전히 자발적인 영혼들의 운동의 결실이며, 태어날 때부터 교리의 속박이라고는 없었고 300년 동안이나 양심의 자유를 위하여 투쟁해 왔기 때문에 기독교가 겪어온 타락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그 탁월한 기원의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새로워지기 위해서 기독교는 복음서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 때문에, 다시 말해 기독교가 보편적이고 영원한 종교라는, 따라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복음서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르낭의 인식은 다른 종교, 특히 유대교를 꽤 폭력적으로 다루는 토대가 된다. 역사가 아닌 인간의 보편적 정신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르낭은 "예수가 유대교에서 출발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예수는 유대교의 계승자라기보다는 그의 업적이 특징짓고 있는 것을 보면 유대 정신과의 단절인 것이다."[각주:25]라고 선언해 버린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은 건방지고 오만하며, 중세의 스콜라 철학자나 신학자들처럼 논쟁과 궤변을 일삼기를 좋아할 뿐 영혼에 대해서는 정작 아무 것도 모르는 얼간이들로 전락하고 만다. 샴마이 학파는 편협하고 배타적이다. 이들의 율법은 구시대적 악습이고 철폐되어야 하는 유치한 것이다. 때문에 율법이란 단지 기독교 탄생의 필수적인 근원만을 보유한다는 의미에서만 좋은 것이다. 이 외에는 위선이고 광기이고 오류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미치광이에 가까울 정도로 율법을 사랑했던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 자체에 휩싸여 버린 낡은 엄격함은 유치한 것에 불과했다. 엄격함을 유지하고 있던 유대 회당은 단지 오류의 산실에 불과했다. 융통성이 없는 위선과 예수와의 투쟁은 지속되었다."[각주:26] 심지어 유대교에 그치지 않고 이슬람과 교묘하게 겹쳐놓고선 이 두 종교에 대해 독설을 퍼붓기까지 한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1세기 유대교의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예수의 생애를 다루었다는 슈바이처의 지적은 정확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 “르낭이 예컨대 유태인이나 이슬람교도에 관한 의견을 서술하고자 하는 때면 언제나 그의 마음 속에는 셈족에 관한 현저히 신랄한 비판이 숨어 있었다. 인도 유럽어에 비하면 셈어는 윤리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타락된 형태이고 …르낭의 자아에서 셈어가 유럽인의 동양지배의 상징이며 또 자신이 속하는 시대를 지배하는 것의 상징이기도 했다는 점을 우리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각주:27]고 지적한 사이드의 말을 참조하면, 르낭이 『예수의 삶』에서 왜 그렇게 유대교와 이슬람을 다음과 같이 헐뜯었는지도 이해가 된다. [각주:28]

     조그만 갈릴래아인 집단은 이곳이 상당히 낯설었다. 당시의 예루살렘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현학적인 태도, 신랄함, 논쟁, 증오, 그리고 영혼의 왜소함 등으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그곳에서는 광신이 극에 달해 있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결국 궤변가의 문제로 귀착되어 버리는 율법연구가 유일한 공부였다. 이러한 문화는 영혼을 연마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러한 것은 회교도들의 부질없는 교리, 즉 회교 사원 주변에서 발생되는 공허한 지식과 다를 바 없었으며, 많은 시간과 추리력을 소비하면서도 손실만을 초래할 뿐, 영혼에 대한 교리에는 이용되지 않았다. 유대박사와 율법학자들의 지식은 완전히 미개한 것이었으며 도덕성이 완전히 결여된 보상없는 부조리였다.  


     인류를 고양시킬 수 있는 보편적인 영혼의 종교를 예수를 통해 찾고자 했던 르낭이 어떻게 유대교나 이슬람교를 이렇게까지 왜곡하고 저주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물론 <예수의 삶>의 저자로서 유명하고, 그것이야말로 기독교와 유대인에 관한 그의 기념비적인 역사서술의 선두를 장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의 삶이 사실은 일반사와 완전히 동일한 유형의 업적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각주:29]는 사이드의 말을 거치면 놀랍지 않다. 차라리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이드는 르낭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민족지의 발생과 함께, 차이가 분류되고 다양한 진화 과정이 확장되었다. 즉 진화는 원시종족으로부터 종속 인종을 거쳐 마지막으로는 우등 인종 또는 문명 민족으로 나아간다. 고비노, 메인, 르낭, 흄볼트는 핵심이다. 원시, 야만, 퇴화, 자연, 반자연과 같은 일반적으로 사용된 범주도 여기에 속한다."[각주:30] 그렇다면, 르낭이 그린 예수는 유럽중심이고, 심하게는 인종주의적인 측면까지도 내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이를 확인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각주:31]

 

     자국민보다도 현명하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사람은 스스로의 조국에 대하여 고통을 느낄 수 없다. 국민들에게 가혹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과 함께 과도하게 바르게 사는 것보다도, 도리어 국민과 함께 오류를 범하는 쪽이 낫다.  


     이제, 기독교가 보편적이고 영원한 영혼의 종교라는, 따라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복음서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르낭의 말은 이전과 달리 아름답게만 들리지 않는다. 한번 물어보자. 과연 그는 자신이 말한 바대로 복음서로 되돌아갔는가. 되돌아갔음에도 복음서에 서술된 초자연적 요소를 배제해 버리는 그의 시도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참조한다면, 복음서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그의 말은 차라리 어떤 의도, 즉 교리나 철학을 던져버리고 단순한 영혼의 세계에 살고자 하는 소망을 강렬히 키워야 하는데, 그 영혼의 세계란 다른 어떤 장소도 아닌 유럽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유럽의 타자인 유대교가 열등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더구나 복음서마저도 유대교를 비판해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문명 대 야만이라는 19세기의 서구적 서사를 이미 승인한 르낭에겐 말이다. 서구 백인 기독교라는 동일자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사유했던 르낭에게 유대교에 대한 복음서의 폭력적 서사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고 오히려 예수의 선한 영혼을 선명하게 부각시켜주는 촉진제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폭력과 타자성의 문제는 예수의 고귀한 영혼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었고, 할 수만 있다면 짓밟아도 상관없는 배경이지 전경은 결코 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존 쉘비 스퐁, 『성경과 폭력』, 김준년․ 이계준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07, p.31 [본문으로]
  2. 미야타 미쓰오, 『홀로코스트 이후를 살다』, 박은영·양현혜 옮김, 한울, 2013, p.18 [본문으로]
  3. 미야타 미쓰오, 앞의 책, pp.58~59 [본문으로]
  4.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 김승욱 옮김, 알마, 2008, p.90 [본문으로]
  5. 육영수, 『책과 독서의 문화사』, 책세상, 2010, p.40 [본문으로]
  6. 육영수, 같은 책, p.21 [본문으로]
  7. 레너드 스위들러, 『절대 그 이후』, 이찬수·유정원 옮김,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3, p.234 [본문으로]
  8. 찰스 킴볼, 『종교가 사악해질 때』, 김승욱 옮김, 에코리브르, 2005, p.286 [본문으로]
  9. 찰스 킴볼, 같은 책, .p286 [본문으로]
  10. 찰스 킴볼, 같은 책, p.289 [본문으로]
  11. 찰스 킴볼, 같은 책, p.288 [본문으로]
  12. 찰스 킴볼, 같은 책, p.291 [본문으로]
  13. 미르치아 엘리아데, 『영원회귀의 신화』, 심재중 옮김, 이학사, 2003, p.15 [본문으로]
  14. 토니 레인케, 『독서신학』, 김귀탁 옮김, 부흥과 개혁사, 2012, p.40 [본문으로]
  15. A. 쉬바이처, 『예수의 생애연구사』, 허혁 옮김, 대한기독교출판사, 1986, p.188 [본문으로]
  16. 에르네스트 르낭, 『예수의 삶』, 박무호 옮김, UUP, 1999, p.47 [본문으로]
  17. 에르네스트 르낭, 같은 책, p.48 [본문으로]
  18. A. 쉬바이처, 같은 책, p.190 [본문으로]
  19. A. 쉬바이처, 같은 책, pp.188~189 [본문으로]
  20. A. 쉬바이처, 앞의 책, p.196 [본문으로]
  21. 에르네스트 르낭, 앞의 책, p,132 [본문으로]
  22. A. 쉬바이처, 같은 책, p.198 [본문으로]
  23. 에르네스트 르낭, 같은 책, p,420 [본문으로]
  24. 에르네스트 르낭, 같은 책, pp.348~349 [본문으로]
  25. 에르네스트 르낭, 같은 책, p.356 [본문으로]
  26. 에르네스트 르낭, 앞의 책, p.273 [본문으로]
  27.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박홍규 옮김, 교보문고, 1999, pp.256~257 [본문으로]
  28. 에르네스트 르낭, 같은 책, pp.189~190 [본문으로]
  29. 에드워드 사이드, 같은 책, p.264 [본문으로]
  30. 에드워드 사이드, 『문화와 제국주의』, 박홍규 옮김, 문예출판사, 2005, p.229 [본문으로]
  31.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p.268 이와 관련해 르낭의 예수 연구가 인종주의에 오염되어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켈리의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Shawn Kelly, Racializing Jesus, London: Routledge, 2002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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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미국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도날드 트럼프 (Donald Trump)가 대통령 취임식을 할 날도 이제 열흘 남짓 밖엔 남지 않았다. 미국 대선 기간 내내 라인홀드 니버 (Reinhold Niebuhr)의 기독교 사회 윤리가 생각이 났다. 비록 나의 사회 윤리 관점이 니버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며 발전해 왔지만, 니버 만큼 미국 자유주의 신학 전통에서 사회, 정치 문제를 분석한 기독교 학자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니버의 입장에서 트럼프의 미국이 국제 사회에 가져올 불안감을 분석해 보고, 희망의 신학을 생각해 보고 싶다.


    니버가 쓴 많은 저서 중에 가장 유명한 책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미국 역사의 아이러니 (Irony of American History)” 이다. “미국 역사의 아이러니”를 통해, 니버는 비판적으로 미국의 자유주의 기독교 사상을 분석하며, 이 사상이 미국 정치와 경제,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리고 미국의 국제 사회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니버가 이 책을 쓴 1952년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2017년의 미국은 별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트럼프는 니버가 생각하는 최악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니버는 미국이 강대국인 이유가, 기독교 칼빈주의의 입각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만든 자본주의 체제 때문이라기 보다는, 광대한 영토와 자원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 사회에 널리 퍼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부자가 된다는 윤리 사상은 브루조아 계층과 결합한 기독교 사상이지, 미국의 부를 설명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이유는 아니다. 미국은 이미 자연적으로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이 자산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한 것이다. 그러나 이 부가 모든 계층에 공평하게 분배되지는 않았다. 니버는 부의 불평등 만큼이나, 미국 사회에 팽배한 부에 대한 무비판적 시각, 또는 부를 바라보는 순수함 (innocence)이 도덕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미국 사회는 정치적 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억압적인 정부나 거대 정부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고 있는 반면, 경제적 힘에 대해서는 소극적 입장을 취한다.


   이미 60여년전에 니버는 돈이 가지는 힘의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정치 뿐만 아니라, 돈 또한 위험한 권력이며, 돈을 가진 자본계급이 정치권력까지 가질 때, 권력의 집중화로 인해 사회 불평등은 심화되고, 권력의 균형 있는 분배 또한 어려워 진다. 도날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니버가 우려한 것처럼 부의 권력이 가지는 위험성에 대해 무지한 미국 사회의 분위기에 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부유해 진다는 진부한 믿음이 도날드 트럼프처럼, 어찌 보면 일반인이 생각하는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는지도 모른다.


   도날드 트럼프는 미국의 국제 정치에 대한 정책이 별로 없다. 아마도 정책의 부재는 지식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 같다. 니버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강대국이 된 미국이 힘의 정치가 판을 치는 국제 사회에서 조심스러운 행보를 해야한다고 경고했다. 니버에 의하면 미국이 국제 사회에서 피해야할 두 가지 길이 있는데, 고립주의와 제국주의가 그 것들이다. 고립주의는 자국의 이익만 생각하며, 미국이 국제 사회에 가지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고, 제국주의는 국제사회의 반발 만을 불러 일으킬 뿐이다. 니버의 세계관은, 소련을 경계하며, 미국과 동맹국들이 핵전쟁의 위험을 피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17년은 니버의 세계와는 달리, 냉전체제를 벗어났지만, 냉전체제 보다 더 위험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얽히고설킨 국제 정치 판에서 트럼프의 등장은 위험을 더 가중시킬 뿐이다. 니버의 눈으로 본다면, 트럼프의 국제 정치는 보호주의를 표방한 미국 고립주의, 힘을 이용해 다른 나라를 억누르려는 제국주의 밖에 없다.

  
   트럼프의 미국은 한국의 정치, 경제 상황에 상당한 위협을 줄 수 밖에 없다. 트럼프는 대선 운동 기간 내내 주한 미군 방위 분담금을 한국 정부가 더 부담해야 하고, 북핵에 대해서는 강경 대응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거 없이 하는 그의 주장이 대중적 지지를 얻는 이유는, 그것이 미국 대중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전세계 도처에 있는 미군과 미군부대가 세계 평화를 위한 자국의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통틀어 핵폭탄을 실제로 사용한 나라는 미국이 유일 한데도, 이란과 북한과 같은 핵을 계발하는 국가들과 IS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으로만 비춰지고 있다. 미군기지 연구의 전문가인 아메리칸 대학교 (America University)의 데이빗 바인 (David Vine) 교수에 의하면, 비록 미 국방성에서는 686개의 미군기지가 자국 밖에 분포하고 있다고 하지만, 공식,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크고 작은 기지들과 군사작전들을 생각하면, 전 세계에 위치한 미군기지들은 1000여개가 훨씬 넘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만도 공식적으로 밝혀진 기지는 83개이며, 주한 미군은 2009년 현재 2850명에 달한다 (Base Nation: How U.S. Military Bases Abroad Harm America and the World, 2015). 미군 기지들은 해외에 거주하는 50만명 이상의 미국인들의 삶과, 그 기지 주변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의 삶, 주둔국들의 정치, 경제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친다. 바인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골프장, 리조트 시설, 아파트 단지까지 갖춘, 외국에 위치한 하나의 미국 사회인, 미군 기지는 철저히 미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며, 오히려 미국의 국내 정치화 국제 정치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주장한다. 트럼프의 미국은 마초주의에 입각한 힘의 정치, 군사 정치로 국제 문제에 접근한 확률이 높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미군을 생각하면, 국제 질서에 위협이 되는 힘은 실제로 미국이다. 니버는 이미 1952년에 미국이 세계 정치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했다.  


    트럼프의 등장은 오히려 미국의 사회 운동 세력을 규합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힐러리 클린턴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에서도, 대선 후,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도 여러 연설을 통해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사회 변혁을 가져오는 힘은 시민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현재 트럼프의 내각은 위험할 정도로 부유한 백인 남성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다양한 사회 운동 그룹들이 그 내각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러한 시민사회 운동의 힘은 1960년대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 여성 운동, 반전 운동, 소수 인종 인권 운동 등을 통해 다져진 힘이다. 유니온 신학교의 라인홀드 니버 석좌 교수였던, 기독교 사회 윤리학자 래리 라스무센 (Larry Rasmussen)은 이 힘을 “집단적 영성 (collective spirituality)”이라고 불렀다 (Earth-Honoring Faith: Religious Ethics in a New Key, 2013).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으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갈라 놓고, 군사주의가 자본을 보호하려고 들고, 자연이 인간에 종속되는 시대에, 집단적 영성은 인간들로 하여금 모든 생명이 서로에게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민중이 원래 가지고 있는 변화의 힘을 공동선을 위해 사용하도록 이끈다. 한국에서 불타오르는 수많은 촛불들은, 나에게 라스무센이 이야기한 집단적 영성을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트럼프의 미국은 위험하다. 그러나 이것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 나는 집단적 영성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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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과 주체 5]


알랭 바디우와 민중사건


 

허석헌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 박사과정, 조직신학)



근대와 탈근대 사이에서


      근대철학을 넘어서려는 탈근대 철학자들의 문제의식은 대체로 ‘동일성과 차이’, ‘주체와 타자’, ‘진리와 상황’의 양자 대립적인 개념들 안에서 제기되어 왔다. 탈근대의 철학자들은 두 개념들에서 후자를 선택함으로서 근대철학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즉, 동일성의 철학이 아닌 차이의 철학을, 일자로서의 주체의 철학이 아닌 타자의 철학을, 고정불변의 진리의 추구가 아닌 상대적인 상황을 철학의 소재로 전환하는데에서 근대철학은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근대철학으로부터 벗어나 인류진보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앞서 살펴본 철학자들을 간단히 되짚어 보자면, 푸코는 주체를 지식과 권력의 작용의 결과일 뿐이라고 보았고, 라캉은 주체를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서 비롯되는 욕망의 문제로 환원하였고, 들뢰즈는 경험을 인식하는 초월적 주체를 부정하는 대신 경험에서 발생하는 차이의 반복 자체를 존재의 힘으로 규정하였다. 플라톤과 일자의 형이상학에 대한 이들의 비판들은 분명히 다른 서술방식을 가지지만, 이성의 주체에 대한 확신이 전체주의적 세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왜곡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주체와 진리와 같은 근대적 개념들에 유보적이 거나 과감한 포기를 선호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입장을 취한다. 즉, 우리가 마주하는 주체란 왜곡된 존재이며 부정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비판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이다. 근대철학이 주장해온 주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들은 전통 형이상학의 획일성과 전체성의 폐해를 들춰내고 그러부터 탈피하는 데는 기여했다고 볼 수 있으나, 문제는 폐기된 주체가 또다시 변형된 왜곡된 주체, 지배자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반드시 되돌아올 수 있다는데 있다.   

    이 점에서,알랭 바디우는 지금까지 살펴본 철학자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바디우는 근대철학의 주체가 극복되어야 한다는데 동의 하지만, 폐기하지는 않으며, 탈근대적 주체를 지향하지만 거기에 함몰되지 않는다. 반플라톤 정서가 지배적인 프랑스의 맑스주의 철학 진영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바디우의 행보는 분명히 이례적이다.물론, 바디우가 근대적사유에 근거를 둔 주체나 초월적 범주로서 진리의 개념으로 회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바디우는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주체와 진리에 대한 맹신이 초래하는 결과와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이점에서 그는 포스트모던을 지향하는 철학자이다. 그러나 바디우는 그의 존재에 대한 논거를 근대적 성찰의 출발이라고 불리는 데카르트에서부터 전개하기를 거리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반플라톤주의 정서를 거스르고 오히려 플라톤의 재해석으로부터 존재론을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바디우는 합리주의적인 모더니즘을 발판으로 삼고 있는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철학자로 평가된다. 그러면, 왜 바디우는 모두가 폐기시키기에 여념없었던 진리와 주체의 개념들을 다시 주워담는가? 모두가 해체, 다양성, 차이, 타자라는 화두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진보성을 유감없이 과시하는 마당에, 그는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받는 낡은 개념들에 미련을 두는가?


바디우가 주체와 진리를 다시 꺼내든 이유


    바디우가 주체와 진리를 철학이 다뤄야할 주제로 꺼내든 이유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그의 대표작인 ‘존재와 사건(Being and Event)’이 어떤 상황에서 저술되었는지 볼 필요가 있다. 물론, The Concept of Model(1969)과 Theory of Subject(1982)는 ‘한 시대를 닫고 다음 새 세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각주:1] 바디우의 초기 저작들이다. 특히 ‘주체의 이론’은 ‘존재와 사건’의 예고편이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집합이론에 입각한 존재론, 사건과 개입, 일반 집합, 그리고 바디우의 네가지 ‘조건들’ 에대한 예시들, 즉 ‘시’, ‘정신분석’, ‘수학’ 그리고 ‘혁명’에 관한 유사한 주제들이 등장한다.[각주:2] 그렇다면, ‘존재와 사건’은 초기 저작들의 재판일 뿐인가?그렇지 않다면, ‘존재와 사건’은 ‘주체의 이론’이 저술된 초기 바디우와 무엇이 다르고, 어떤 점이 추가되었다는 것일까? 두 저작 사이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은 바디우의 주체에 대한 철학적인 발전의 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존재와 사건’은 앞선 저서들에 무언가가 추가되고 업그레이드 된 것이라기 보다, 오히려 무언가가 제외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존재와 사건’을 기준으로 하여 바디우는 더 이상 역사와 정치를 분석하기 위해 맑스주의의 프레임을 사용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사적유물론,당과 프롤레타리아, 혹은 역사변혁의 변증법적 과정과 같은 맑스주의적인 용어와 거리를 둔다. 이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존재와 사건’이 출간되기 이전부터, 바디우는 맑스주의의 위기와 민주주의 후퇴의 상황에 대해 주목하였다. 동구사회주의권의 몰락과 68년 프랑스학생운동 후 의회민주주의의 후퇴의 상황들 가운데서, 맑스주의를 비롯한 혁명을 위한 거대담론은 해체되었고 철학에서 진리의 문제는 자리를 잃어갔던 것이다. 철학이 미시담론의 소소한 승리안에서 자족해야 했던 현실을 바디우는 위기로 파악했다. 맑스주의자로서 혁명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바디우의 지적인 반발은 맑스주의적 혁명 프로젝트를 위한 이론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그 시도로서 철학에서 밀려난 진리와 주체의 문제를 다시 공론화시키고 제기히야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존재와 사건’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라는 이름하에 벌어지는 철학의 해체와 파편화에 맞서기 위한 바디우의 지적 투쟁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존재와 사건’은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의 근본물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진리와 그것의 가능성으로서 사건, 그리고 사건의 담지자로서 주체에 대해 서술해 나간다. 이제, 바디우의 ‘존재-진리-사건-주체’로 이어지는 도식을 따라 그의 주체가 오늘 인간의 해방의 요구에 어떤 대답을 제시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일자는 없다


    주체의 문제는 존재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바디우 역시 오래된 질문이지만 비켜갈 수 없는 물음,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 존재하는 것은 일자(the one)인가, 아니면 다수(the multiple)인가?’에 대해 먼저 답해야 했다. 그리고, 바디우는 “일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일자성은 항상 하나로 카운트하기(count-as one)의 결과일 뿐”[각주:3]이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일자는 비록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의도적으로 ‘하나로 세기로 한 것’의 결과이지, 실제로 존재가 일자성의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는 존재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로 인정하려는 어떤 작용의 결과물일 뿐이다. 무슨 뜻인가?

    ‘일자는 하나로 셈하기의 결과일뿐, 존재하는 것은 다수이다’라는 사실은 집합의 기초개념에 잘 나타나 있다. 알파벳 a, b, c를 원소로 하는 집합 E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것은 E ={a, b, c} 라고 표시된다. 왼쪽 항의 E는 오른쪽 항의 세개를 원소로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 오른쪽 항의 ‘다수’는 왼쪽의 E집합이라는 ‘하나’로 현시(presentation)된 것이다. ‘현시된’ 집합 E는 a,b,c가 ‘현시되는’ 것으로 만든다. 만약, 집합 E로 카운트되어 지지 않는다면 a,b,c는 불안한 형태로 남게 될 것이고, 존재가 드러나지않을 위험에 빠진다. 그래서 ‘하나로 카운트 하기’는 ‘있는 것들’을 ‘있게 하는’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현시된 것’을 ‘현시되는 것’인 냥 동일시하는 것이다. 집합E를 통해 a,b,c라는 원소들이 드러나긴 했지만, 결국 현시되는 것은 E가 아니라 각 각의 a,b,c라는 원소이다. 즉, 존재하는 것은 왼쪽항의 ‘일자’가 아니라 오른쪽항의 ‘다수’이다 

    이렇게, ‘현시된 것’과 ‘현시되는 것’ 사이의 구별은 하이데거가 존재(being)와 현존재(existence)를 구별하는 형식논리와 같다. 비록 바디우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현존재의 차이에 대한 사유방식을 수용하지만, 현존재를 존재론적 사유의 중심으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하이데거가 존재와 현존재를 정확하게 구별하고 현존재를 사유의 중심대상으로 부상시켰듯이, 바디우는 다수를 ‘일관적인 다수’와 ‘비일관적인 다수’로 다시 구별시켜야 한다는 점을 제기한다는 논리구조는 유사하다. 바디우가 다수면 다수지 ‘일관적인 다수’와 ‘비일관적인 다수’로 구별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는, 존재론은 ‘존재로서 존재(being qua being)’에 관한 이론이라는 정의에 충실해야 하는데, 일정한 상황의 구조적인 작용을 통해 드러난 ‘일관된(consistent)’ 다수는 이미 ‘존재로서 존재’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존재가 아닌게 된다. ‘존재 그 자체로서의 존재’는 하나의 구조나 상황안에서 파악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있음’이 긍정되기 위해서는 그 다수가 어떠한 구조적인 상황 속에 속하지 않았음을 밝혀져야 하는데, 이는 ‘다수’가 상황에 귀속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해야하는 조건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디우가 제시하는 상황의 구조안에서 현시되지 않는 다수를 ‘비일관적인 다수(inconsistent multiple) 혹은, 순수다수(pure multiple)’라고 지칭한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다수’라고 말할 때, 그 다수는 ‘비일관적인 다수’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비일관적인 다수는 어떤 형태로 확인되는가? 다수가 상황안에서 구조의 작용을 받지 않은 채 현시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무(nothing)’ 또는 ‘공백(void)’의 형태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 논리적이다. 왜냐하면, 존재하기 위해서는 상황에서 발생되는 구조의 작용으로부터 예외의 상태로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인데, 이는 ‘없음’, ‘공백’의 형태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비일관적 다수성의 예외적인 조건으로 인해, 바디우는 “존재의 적당한 이름을 ‘공백void’”이라고 부른다.[각주:4] 마침내, ‘존재하는 것은 공백이다!’는 명제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처럼, 바디우의 존재론은 일자로 셈하여진 존재는 물론, 일자에 의해 포섭된 일관적인 형태를 띠는 다수를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존재론이 ‘존재로서의 존재’에 대한 이론과학이라면, 존재의 대상은 오로지 ‘비일관적인 다수’가 되어야 하고, 공백은 존재의 자리가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에 부딪힌다. 비일관적인 다수성은 공백과 무의 형태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음은 어떻게 증명가능한 것인가?술어적인 표현과 설명을 거치는 순간 ‘비일관성’은 ‘일관성’을 가지게 되며, 일자의 규정성안으로 또다시 갇히게 되고 만다. 언어의구조를 통과하지 않고서 존재를 설명해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디우가 수학을 존재의 논리과학으로 대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디우는 존재의 규명에서 인위적인 규정과 간섭이 순수한 논리과정을 통해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는데, 이를 위해 집합이론을 끌어온다. ‘존재와 사건’의 56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상당부분을 수학의 집합이론을 세세하게 증명하는데 할애하는 데에서 바디우의 존재론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할 수있다. 이제, 바디우는공집합의 이론을 통해 본격적으로 존재론이 진리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증명해 나간다. 


러셀의 역설과 공집합


    집합이론은 칸토어(Georg Cantor, 1845)에 의해 체계화 되었다. 그리고 그의 집합론은 다음의 직관적인 집합이론(intuitive set theory)에서 출발한다.


    “x에 의존하는 어떤 명제 p(x)에 대해 p(x)가 참이 되게 하는 x들의 집합은 존재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뻔한 명제이다. 어떤 조건을 달아도 그 조건에 해당하는 집합은 존재한다는 말이다. 현대의 집합론은 이 명제를 기반으로 확고하게 세워졌다. 적어도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이 이의를 제기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러셀은 수학자이자 철학자였고, 무신론적 입장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저술인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로 잘 알려졌다.) 러셀은 오류가 없다고 믿었던 집합론에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를 러셀의 역설이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다.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대상들의 집합을 R이라고 할 때, R이 R에 포함된다면 R의 정의에 위배되므로 R은 R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R이 R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R의 정의에 의해 R은 R에 포함된다.”[각주:5]

    이 러셀의 역설이 문제가되는 것은, 칸토어의 집합이론에 따른다면, X의 집합에는 조건문이 제시하는 대로,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대상들의 집합 R을 만족시키는 원소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러셀의 역설은 예외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예외가 존재하는 한 칸토어의 집합이론은 성립될 수 없는 수학체계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 러셀의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수학자들이 연구하였고, 마침내 새로운 수학의 집합의 공리체계를 아홉가지로 제시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제일 첫번째의 공리는 ‘공집합이 존재한다( )’이다. 공집합이 존재한다는 것은 물론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집합이 존재한다(Axiom of exsistence)’는 기본적인 공리로부터, 바디우의 존재론에서 가장 중요한 집합론의 공식이 되는 “공집합은 모든 집합의 부분 집합이다”[각주:6]가 파생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공집합의 존재와 그 공집합이 모든 집합의 부분집합이라는 사실이 왜 중요한가?  

    공집합이란,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는 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집합을 구성할 수 있는 원소가 없는데, 그 없는 것을 집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어떤 집합이든지 그 안에 있는 원소를 확인하면 공집합은 셈해질 수 없으나, 셈할 수 없는 공집합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말이 된다. 예를 들어서, X={a, b, c}라는집합이 있다고 할 때, X라는 주머니 안에는, a, b, c도 들어있지만, ‘없음’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공집합은 모든 집합의 부분집합이기 때문이다. 이 수학적 논리를 바디우의 존재론으로 대입하면, 집합은 ‘상황’이다. 모든 상황에는 현시되는 다수성의 이름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존재하는 것은 주어진 상황아래에서 안정되게 현시되는 다수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다수는 존재가 아니라 비존재로 남게 된다. 반면, 존재하는 것은 하나로 셈하기를 거부함으로서 구조화 작용안에서 누락되어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공집합 처럼 모든 상황(집합)에 부분으로서 현시불가능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인데, 그것은 다름아닌 ‘공백’인 것이다. 따라서, 구조화된 상황에서 ‘있음’이라고 불리는 것은 ‘없음’이며, ‘없음’이라고 간주되어 것은 오히려 ‘있음’으로 긍정되는 것이다. 언어에 의해 설명되지 않고 구조에 의해서도 포섭되지 않는 현시의 영역 외부에 ‘없음(nothing)’ 혹은 ‘공백(void)’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비일관적인 다수성’이 존재론의 출발점이 된다.

    바디우의 존재론에서 공백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백은 일자에 의해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설명되고 파악될 수 없으며, 경험에 의해 감각되거나 인지될 수도 없는 돌발적인 방식으로만 존재한다. 때문에, 공백은 일관적인 다수의 상황을 위협하는 잠재적인 요소가 된다. 보이지는 않으나 반드시 존재의 사실은 부정할 없기 때문에, 공백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황의 안정성과 통일성의 구조를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결국, 일자의 형이상학에 의해 구조화된 획일적인 세계는 바로 ‘공백’의 존재를 통해 반박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진리, 사건 그리고 주체


    바디우의 존재론에서 공백 혹은 순수다수가 존재규명의 원리로 되는 것은 차이,다양성, 혹은 타자와 같은 테마들을 탈근대의 화두로 제시해왔던 데리다, 레비나스,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들에게 적잖은 도전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들뢰즈에게 존재는 차이에서 발생한다. 차이가 없다면 존재도 없다.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레비나스 역시 존재론과 윤리학의 출발은 타자이다. 주체는 자기의 동일성이 아니라 타자에 의해 구성되는 존재이다. 데리다도 같은 맥락에 있다. 그런데, 근대적 주체를 일자의 영역이 아닌 차이의 영역, 즉 다수의 영역에서 존재의 근거를 발견하려 했던 일련의 시도들에 대해, 바디우는 상황의 구조에 이미 포섭되어 있는 다수는 자기 동일성을 추구하는 주체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디우에게 차이, 상대주의, 다양성, 타자와 같은 테마들은 탈근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근대적 주체를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바디우는 “역사적 문화적 상대주의가 확대되는 것이 결코 오늘의 상황안에서 자유가확대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자본주의시장의 끝없은 욕망의 증상일 뿐이다”[각주:7]라고 지적한바 있다. 타자는 자기 동일적인 주체에 의해 상대화된 또다른 형태의 주체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탈근대를 주창하는 이들이 근대주체를 비판하는 것이나 차이와 타자의 문제를 철학의 화두로 삼는 것이나 사실은 동일한 현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바디우에게 존재는 일자도 다수도 아닌 공백에 있다는 말은 ‘일관된 다수’안에서는 존재에 대한 진리가 발현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구조에 의해 장악된 다수 안에서 벌어지는 차이와 다양성은 존재의 진리를 드러내는 문제와 무관한 것이다. 상대적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존재의 문제에 전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차이라는 이름으로 존재의 보편성이 간과되고 부정되는 현상을 문제삼는 것이다. ‘일자의 진리’는 부정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엄연히 존재하는 보편적인 진리를 차이와 다양성으로 부정하지는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탈근대 혹은 해체의 이름으로 부정되었던 보편적인 진리는 바디우에 의해 다시 복원된다. 그리고 보편적인 진리는 공백이라는 자리를 통해 출현하게 되는 것임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면, 보편적인 진리는 공백이라는 자리를 통해 어떻게 드러나게 되는가? 진리가 드러나는 자리가 공백이라면, 그 방식은 사건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진리가 사건의 형식으로 나타나야 하는 이유는 상황의 구조에 속하지 않고 언어와 사유에 의해 포착되지 않는 상황의 외부로부터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에서 바디우가 헬라의 법과 유대의 법 모두에게 귀속되지 않는 새로운 예외적인 법의 형식을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으로 보았던 이유는 이것이다. 보편적인 진리를 드러내는 상황은 구조와 법에 의해 지배받는 어떠한 것도 조건이 될 수 없으며, 오직 돌발적이고 예측불가능하며 우연적인 계기로만 주어져야 하기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면서 보편진리가 도래할 수 있는 상황이 바로 ‘사건’이다. 따라서 공백은 진리가 나타나는 자리이며 사건은 진리가 드러나는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은 진리를 드러내는 필요조건이지만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진리가 항상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은 그 자체로 진리와 관계하고 개입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 사건이 발생하는 것만으로는 사건은 스스로 상황안에서 관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결정권자가 되지 못한다. 사건이 진리와 관계 맺기위해서는 사건은 사건이 상황에 관계할 수있어야 하고 모든 안정적인 구조를 초과하여 그것에 종속되지 않는 방식을 지속시켜야 한다. 이것을 바디우는 ‘충실성(fidelity)’이라고 하는데, 사건에 대한 충실성은 상황에 속하지만 상황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 공백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대하는 주체의 존재방식을 의미한다.

    바디우에게 주체는 이처럼 ‘상황-공백-진리-사건-충실성’과 치밀하게 얽혀있고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이지, 홀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건을 통해서 드러난 잠재된 진리의 가치에 대해 충실하려는 결단과 실천이 없다면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자면, 사건에 충실하려는 주체만이 진리를 드러낸다. 이렇게 주체는 진리와 사건과 유기적으로 관계하면서 하나로 통합된 안정적인 질서를 지향하려는 지배질서에 균열을 내고 보편적인 대안적 질서를 제시하는 힘으로 출현한다.


사건과 민중


    바디우는 진리, 주체와 같은 메타담론들이 철학의 주제안에서 자리를 잃어가는 한편, 지구적 자본주의라는 거대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은밀한 방식으로 억압적인 착취적인 경제를 가속화시키는 현실로부터 그의 진리철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본주의의 체제 안에서 인간의 보편적 해방의 길은 진리를 추구하는 주체의 사건에 대한 충실성과 실천안에서 발견됨을 보여주고자 했다. 바디우가 말하는 주체가 그리 낯설지 않고 익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한국의 역사안에서 변화발전의 주체로 호명되었던 ‘민중’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한때 민중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체계화시키고 규정함으로서 사회학적인 논리안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할 때에도 민중은 그렇게 쉽게 규정당하지 않았다. 또, 시대의 변화안에서 민중은 더 이상 설자리를 잃었으며 퇴색된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등한시 될 때에도 민중은 그렇게 쉽게 역사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민중을 바디우처럼 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해명해 낸 적은 없었지만, 민중은 쉽게 정의될 수 없고 정의하려고 시도한다면 민중은 민중이 아니게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분별해 냈다. 누가 민중이고 누가 민중이 아닌게 따로 있는게 아니라 주어진 사건이 자신과 어떻게 관계인지를 스스로 결단함으로서 민중의 실체는 드러나게 되고 역사의 주체가 된다는 사실을 혹독한 역사를 통해 통찰할 수 있었다.

    4.19, 5.18. 6월항쟁을 거쳐서 지금 탄핵정국의 뜨거운 촛불의 항쟁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혹자는 이전의 미완의 혁명을 돌아보며 오늘의 항쟁 역시 실패의 역사가 재현될 수 있을 가능성을 논하고 있을 지 모른다. 어찌보면, 군사독재 정권보다 훨씬 더 후진 상황으로 돌아간 것처럼 느낄 때, 민중의 저항, 변혁과 같은 말들이 무색하게 들려지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점에서 바디우의 주체철학은 변혁의 변곡점마다 실패를 거듭해온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한가지 중요한 통찰을 제시해 주고 있다. 바디우에게, 보편적인 진리사건이라는 것은 정의가 승리하고 불의가 패배하는 객관적인 결과로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사건이 드러나는 것은 사건에 충실성을 가지고 달려드는 주체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이다. 질서의 구체적인 변화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보다 앞서는 것은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 즉 주체화의 과정이 한 사회안에서 진실성있게 발현되고 신뢰되어 가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공산주의 혁명이든, 민주주의 혁명이든, 또는 기독교적인 진리의 변화이든 결국 잠재적인 진리사건을 실재화시키는 힘은 주체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건의 의미는 혁명이 성공했는가의 여부에 있지 않다. 사건을 통해 주체가 조직되었는가, 한 사건에 대한 충실성의 경험이 전개될 앞으로의 사건에 대한 높은 수준의 결단과 실천을 제시해 주었는가, 공고하게 보이는 체제에 맞서 보이지 않는 공백의 힘으로서 주체를 신뢰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확실한 태도와 입장을 확립하는 것이 변혁의 승패를 좌우하는 관건임을 바디우는 말하고 있으며, 후퇴하는 듯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져야할 분명한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1. Oliver Feltham, Alain Badiou: Live Theory (Bloomsbury Academic, 2008), 32. [본문으로]
  2. Theroy of Subject, 143. [본문으로]
  3. Being and Event, 24. [본문으로]
  4. Ibid., 55. [본문으로]
  5. 러셀의 역설은 유명한 ‘이발사의 역설’로도 설명할 수 있다. 만약 세비야에 스스로 이발을 하지 않는 모든 이의 이발만을 해주는 이발사가 있다고 하자. 이 이발사는 이발을 스스로 해야 할까? 만약 스스로 이발을 하지 않는다면, 그 전제에 의해 자신이 자신을 이발시켜야 하고, 역으로 스스로 이발을 한다면, 자신이 자신을 이발시켜서는 안 된다. [본문으로]
  6. ‘공집합은 모든 집합의 부분집합이다’에 대한 증명은, 간단히 말하면 ‘공집합의 원소를 x라고 할 때, x는 어떤 집합 A의 부분집합이다’는 명제가 참이라고 한다면, 이후의 모든 명제는 어떤 경우에도 참이된다. 공집합의 원소 x는 이미 잘못된 조건이기 때문에, 조건에 대해 어떤 명제를 붙여도 거짓일 수 없게 된다. [본문으로]
  7. Alain Badiou, Ethics: An Essay on the Understanding of Evil (Verso; Underlining edition, 2001), 2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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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을 생각한다 - +a와 상징의 세계




안호성

(종교심리학 박사과정 수료)


 

   서양의 해석학이 성경 해석을 둘러싸고 나타난 것처럼 나도 사춘기에 성경을 읽으면서 해석이 중대한 문제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어떤 수녀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경 강좌가 있었다. 많은 것을 배우며 많은 것을 의심하였다. 겉으로는 모범생이었지만 속으로는 반골이어서 성경 해석의 자유를 만끽하였다. 축자적인 해석에 만족하지 못했다. 

   당시 처음 니체의 기독교 비판을 읽고는 얼마나 흥분하였던가? 지금도 어려운 그의 사상을 알았을 리 없지만 니체의 기독교 비판에 깊이 공감하였다. 니체의 비판은 기독교를 순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니체의 초인은 결국 예수이지 않겠느냐고 단정하기도 하였다. 불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종교에 대해 더욱 더 다원적으로 되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본격적으로 해석의 문제와 씨름하기 시작하였다. 전공으로 사회학을 택하면서 종교에 대한 나의 사유를 심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다.

   대학 시절에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가운데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있다. 포퍼와 쿤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에 대한 논쟁은 이 시절 나에게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해석은 무한하지 않지만 언제나 다양하다. 쿤의 업적은 자연과학마저도 해석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쉬운 언어로 설명했다는 점에 있다. 자연과학에 대해 무의식적인 열등감을 느끼고 있던 인문(과)학자들이 쿤을 환영했음은 아주 당연하다. 나는 포퍼보다는 쿤을 더 좋아하였다. 과학을 포함하여 형이상학을 전제하지 않는 이론은 없다. 예수의 말을 빌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진리는 오직 허위를 폭로하는 곳에서 드러난다. 비판을 거치지 않은 이론은 언제나 독단과 광기로 흐를 뿐이다.

   그런데 쿤의 논의가 종종 과장되는 경우가 있다. 그의 주장은 정상 과학이 패러다임이라는 논증이 불가능한 기반에 서 있다는 것을 논증할 뿐 무한한 패러다임이 가능하다거나 모든 패러다임이 타당하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소위 패러다임은 우리가 믿고 싶은 만큼 자유롭게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한 시대에는 사람들의 의식을 넘어서는 곳에 각인된 패러다임이 전체 과학을 지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한도 내에서 과학은 보편적이라고 불려도 좋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진화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내게로 왔다. 그때부터 나는 진화라는 아이디어를 버리지 못한다. 그래도 진화론의 도통(道統)을 지키는 일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반골의 자유를 즐긴다. 나에게 있어 종의 다양성은 진화의 역사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 출현하였음을 의미한다. 사람은 (특수한) 원숭이에서 진화했지만 그 원숭이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그 원숭이 +a이다. 이 새로운 원리가 아무리 사소한 것이어도 질적으로 다른 삶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인간 이하의 동물은 필요(need)에 전적으로 지배되지만 인간은 요구(demand)에 매개된 욕망(desire)에 따라 산다. 이 차이를 설명할 때 +a가 요긴하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은 크게 두 가지 필요(본능)에 구속된다. 이 두 가지 본능은 자기 보존의 본능과 번식의 본능이다. 프로이트의 성욕과 공격성은 이 본능과 밀접하게 얽힌다. 성욕은 번식의 본능에서 공격성은 자기 보존의 본능에서 파생된다. 인간의 모든 성생활을 번식 본능의 변형이라고 설명하는 이론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 이론이 일리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따르지 않는다. 인간의 경우에 성생활은 동물의 번식(교미) 본능 +a로 설명될 수 있다. 단순한 해석이 언제나 미덕인 것은 아니다.

   음식을 예로 들어보자. 몸에 필요한 양분을 얻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 그렇지만 음식이 자기 보존과 관련된 양분의 논리를 따르는 것만은 아니다. 음식의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들을 보라. 백화점의 음식코너를 둘러보라. 요즘은 양분이 빈약할수록 고급 음식으로 통한다. 인간의 욕망들이 음식에 짙게 배여 흐른다. 인간에게 +a가 없다면 종교적 구도자들이 금욕하는 것은 오직 환상적이고 자학적인 광기로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아도 그들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a가 있다고 믿으면서 산다. 

   인간의 고유한 특질로 지적되는 욕망은 오랜 진화의 단계에서 +a를 전제할 때에 (보다 잘) 설명될 수 있다. 덜 진화한 종을 설명하는 원리로 더 진화한 종을 설명할 수 없다. 설명할 수는 있지만 언제나 설명의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가령 인간을 몸으로 환원하는 의학은 인간의 삶에 대단한 유익을 주지만 의학적 설명이 인간을 전체로 설명한다고 주장할 때 의학은 독단이 된다.

   사람이 고유하게 가진 +a 때문에 인문(과)학은 자연과학에 비해 매우 복잡한 해석을 요구한다. 인간의 삶은 기호(code)가 아니라 상징(symbol)에 의해 얽힌다. 속담처럼 사람은 ‘아 다르고 어 다른’ 세계를 산다. 기호는 아무리 복잡하여도 오직 제한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가진다. 단순하게 말하면, 궁극적으로는 참과 거짓을 분명하게 나눌 수 있다. 물론 아주 단순한 기호라도 인간의 삶에 연루되면 언제나 애매해진다. 

   자연과학이 쉽사리 정상 과학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대상들이 기호의 세계를 산다는 점과 관련된다. 벌들의 현란한 소통의 방식이나 개미들의 복잡한 구조들은 타고난 본능에 의해 획일적으로 나타난다. 이들의 본능은 상징이 아니라 기호의 세계를 구성한다.

   상징은 지극히 단순한 경우에도 아주 복잡한 해석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상징은 참과 거짓으로 나눌 수 없는 ‘나름대로 일리 있음’의 논리를 따른다. 거의 무한한 ‘나름대로 일리 있음’의 생산과 유통이 사람의 세계를 이루는 근본 사태의 하나이다. 

   경제학을 공부하다 보면 ‘모든 것이 일정하다면’ 이라는 구절을 자주 만난다. 이 구절에서 단순화의 욕망을 읽는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서 일정한 것은 없기에 경제학 이론들은 과학으로 포장되기는 하지만 지배 지식-권력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분과 적분의 현란한 수사로 포장된 경제학의 ‘한계효용의 이론’은 효용이 적어도 정상적인 다수에게 동일하다는 가정을 받아들일 때에만 유효하다. 그러나 종종 나의 쓰레기가 다른 사람에게 보물이 되는 경우가 있지 않는가? 가끔 학자들은 말들이 갖는 의미의 애매함과 풍부함을 견딜 수 없는 ‘빅브라더’처럼 말을 단순화하는 작업에 몰두한다. 전체주의자들은 언제나 상징을 기호로 만들려고 한다.

   인문(과)학이 직면하는 해석의 다양성은 사람이 기호의 세계가 아니라 상징의 세계를 산다는 점과 관련된다. 상징이 인간을 규정하는 특징인 한에 있어서 인문(과)학은 자연과학처럼 쉽게 정상과학이 되지 못한다. 정상과학으로 주장하는 대부분의 인문(과)학은 ‘나름대로 일리 있음’의 세계마저 벗어나서 억압적인 독단론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인문(과)학은 ‘위기상태’ 또는 정상과학의 전(前) 단계 상태를 항구적으로 견디어야 하는 운명을 갖는다. 인문(과)학자들은 정상과학이 주는 안락함을 버리고 독단적으로 되는 학(學)을 거부하면서 영구적인 주변인으로 살아야만 하는 지도 모른다. 인문학자들의 글에 유목이니 유배니 하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통속화된 표현을 빌면, 인문학자는 노마드이다. 그러나 ‘자유부동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반항하는 주변인을 닮았다. 

   해석은 기존하고 있는 해석들에 반대함으로써만 가치를 획득한다. 오랫동안 무시되던 면이 새로 부각되고 그 동안 과장되었던 면들이 마모되면서 텍스트는 새로운 삶을 획득한다. 해석은 ‘나름대로 일리 있는’ 의견을 생산하면서 기호의 세계로 환원되어 버린 텍스트를 다시 상징의 세계로 되살린다. 해석의 과정에서 해석하는 사람은 동물과 구별되는 +a를 소유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과학이 지속을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 시간과 우연과 확률 같은 용어들이 엄밀 과학에 소개된 지도 오래 되었다. 이 새로운 변화는 베르그송의 지속을 참조하는 과학이 될 것인가? 나는 현대 과학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없어서 답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전공하고 있는 또는 깊이 관심을 갖는 측면에서 사람으로-있음의 문제를 거론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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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보이지 않는 혼탁한 삶의 자리에 찾아든 아름다운 

이창동의 <시>




이희승*



  꼭 일년 전, 다르덴 형제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의 리뷰로 2016년 한해를 열었던 것이 마치 어제처럼 가까운데 벌써 2017년 첫번째 영화 읽기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조차 무색할 정도로 모두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소식들이 쏟아지고, 그 절망감 속에서 그간 공동체라는 명제에 냉랭했던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혁명에 가까운 변화들을 체험하는 와중에, 저도 모르게 급물살에 휩쓸리듯 2017년의 출발점에 도착해버리고만 기분입니다. 땅끝 나라에 사는 저 또한 대한민국의 운명을 염려하며 어지러운 뉴스들 속에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영화를 고르려니 쉽지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달아 올랐었나 봅니다. 그래서인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2010)>가 소란스러운 머릿속을 다스려 주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가져 봅니다.


  이창동 감독은 소설가로 등단한 후, <그 섬에 가고 싶다 (1993)> 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 의 시나리오 집필로 영화인생을 시작한 문인 출신의 영화감독입니다. 주변의 적극적인 권유로 만들게 되었다는 그의 감독 데뷰작 <초록 물고기 (1997)>는, 장르와 국적을 가리지 않는 열렬한 영화팬이었지만 역사적인 관점을 담지하면서 공감가는 동시대의 초상을 제대로 그려낸 한국영화에 목말라 있던 저에게 한국영화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준 영화였습니다. 모두가 오래도록 기억하는, 또 기억해야 하는 영화 <박하사탕 (2000)>은 저의 단골 강의 주제이기도 하지요. 숨겨지고 외면당한 현대사의 그늘만을 예리하게 가려내어, 철저히 정제된 영화미학으로 전달하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은 시대를 가열차게 이끈 ‘영웅’보다는 한번도 스스로를 역사의 주체라고 인식하지 못했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인 ‘그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집니다. <오아시스 (2002)>는 장애를 가진 공주(문소리)와 사회부적응자인 종두(설경구)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번영을 앞세우며 내달리는 대한민국이 적극적으로 추방시키고자 했던 사회적 유배자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일부로 복원시키고자 합니다. <밀양 (2007)>은 남편과 아들을 잃고도 처절할 정도로 그 상실을 망각하고 싶어하는 신애(전도연)를 폭압과 독재의 기억과 흔적을 애써 지우려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등치시키죠. 그리고 <시 (2010)>는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잊혀지는 어린 소녀를 기리는 미자(윤정희)의 시작 (詩作)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정의와 화해를 가로막는 자기보호 본능과 이기심을 예술행위를 통해 극복해 보려는 영화적 실험을 시도합니다. 어찌보면 다행스럽게도 2016년 말, 역사는 그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속에 등장한, 출구없이 지리멸렬한 삶에 고통스러워 하는 ‘그들’이 바로,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모아들고 광장으로 향한 ‘우리’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증명해낸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서 이창동 감독이 직접 썼다고 알려진 한 글자 ‘시’ 가 우선 눈에 띱니다. 정성을 다해 완성한 단 세 획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글자. 엄청난 사건을 담아내면서도 그 단아함을 잃지 않는 <시>는 바로 이 글자와 닮아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미자는 예순을 훌쩍 넘긴 노년의 여성입니다. 이혼한 딸이 맡기고 떠난 외손자 종욱(이다윗)을 돌보며 자신의 인생 자체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생의 남은 날들을 가볍게 지워 나가는 미자이기에 치매 초기라는 진단도 마치 가벼운 어깨 통증처럼 별로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 남자들 마음께나 설레게 했던 미모의 흔적이 그나마 그녀에게 남겨진 유일한 삶의 훈장이고, 예쁜 꽃을 좋아하고 처지에 맞지 않는 화사한 옷차림으로 자신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향한 본능을 발산하는 좀 엉뚱한 할머니일뿐이지요. 중풍으로 몸이 불편한 강 노인 (김희라)의 시중을 들며 용돈벌이를 하고, 동네 문화센터의 시짓기 교실에 다니던 그녀의 평온한 일상은 예상치 못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겨우 중학생인 외손자 종욱이 집단 강간 사건의 피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종욱과 그의 친구들이 동급생인 희진(세례명 아네스)을 상습적으로 강간했고 피해자인 희진이 끝내 강물에 투신자살하는 사건은 절망도 희망도 없이 진공관같던 미자의 노년을 송두리째 흔들죠. 시덥지 않게 시작했던 시짓기는 이제 엄청난 고통과 충격을 견디게 하는 절실한 희망이 되고, 미자는 평생 한번도 써보지 않았던 시 한편을 쓰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된 양 매달리며 시를 완성하는 ‘인생의 가장 뜨거운 순간’을 간절히 소망하게 됩니다.


    영화의 전개는 이렇게 둘로 내달리는 평행선을 그리는 듯 합니다. 주인공 미자가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인생의 마지막 장에서 붙잡은 시에 대한 뜬금없는 열정, 그리고 집단 강간 사건을 소리없이 마무리하려는 가해자 소년들의 아버지들과 학교의 후안무치. 하지만 창작의 고통을 통해 세상과 교감하기 시작한 미자는 이 평행선에 의미있는 교차점을 만들고자 혼자 애를 씁니다. 미자의 좌충우돌 시쓰기 프로젝트는, 목소리를 잃은 채 희생자요 망자로써 플롯의 외곽에 존재하던 어린 소녀 희진을 끝내 내러티브의 중심으로 불러 들이죠. 영화는 비아그라의 힘을 빌어서라도 육신의 마지막 불꽃을 사르고자 미자와의 육체적 관계를 요구하는 강 노인, 정작 시쓰기엔 별 관심없는 이들이 모여 앉아 커피와 술과 무게없는 말들을 나누는 시짓기 교실, 그리고 일말의 뉘우침없는 종욱과 그의 친구들 사이를 오가는 미자의 일상을 통과하면서 시쓰기와 생에 대한 윤리적 자세를 찾는 과정을 명백하게 동일시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게 혼탁한 삶 가운데 놓인 미자에게 시짓기 교실 강사이자 시인으로 등장하는 진짜 시인 김용택은 시를 쓰려면 세상을 잘 봐야 한다고 일러 줍니다. 미자는 어린 여학생처럼 순진하게 처음엔 식탁에 놓인 사과를, 집 앞에 선 나무를, 죽은 소녀의 사진을, 희진의 학교 교실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린 소녀가 그 짧은 생을 내던졌던 검은 강물을 진지하게 들여다 보지요. 강가에서 홀로 맞은 굵은 빗방울이 종잇장에 세차게 새겨 넣은 말없는 ‘시’를 받아내는 미자는 이제 시를 쓸 준비를 마친 듯 합니다. 카메라는 미자가 찾아 오지 않는 시상을 기다리며 정한수처럼 받쳐든 노트의 빈 페이지에 뚝뚝 떨어져 박힌 빗물 자국을 한참동안 응시하며, 관객에게도 시인의 자리에 앉아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이창동 감독은 경박하고 의미없고 결코 아름다움을 담아 낼 수 없었던 미자의 삶이 서서히, 잊혀진 자들의 목소리에 자리를 내어 주는 자기희생적인 진혼곡으로 마감하는 모습을 그립다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잊어버린 정감어린 소박한 풍경들 속에 담아 냅니다. 그리고는, 클로즈업으로 드디어 만나는 희진과 눈을 맞추는 것으로 영화를 닫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썼다는 이창동 감독의 ‘아네스의 노래’는, 진실된 예술행위를 통해 볼품없는 인생의 가장 뜨거운 순간을 경험한 미자의 손끝을 통해 곱게 원고지에 옮겨지고, 미자의 시를 통해 비로소 가해자들의 일방적이고 고의적인 망각에서 부활한 희진의 목소리에 실려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게 됩니다. 나누고 싶었던 그 수많은 재잘거림을 뒤로 하고 깊은 바다에서 침묵한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태웠던 광장의 촛불을 먼 타국에서 지켜보면서 문득 이창동의 ‘아네스의 노래’를 떠올렸습니다. 제발 2017년에는 그들이 불렀을 노래를, 그들이 써내려갔을 아름다운 시를 기억하고, 함께 부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탓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니 그래서 2017년 첫 영화읽기는 ‘아네스의 노래’로 맺으려 합니다.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 필자소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강사 및 정신분석가. 동 대학의 미디어 영화학과에서 각색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시안학과에서 한국 영화와 텔레비젼 드라마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호주 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가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 라캉 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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