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광장이 아니다
‘광화문 광장’에 관한 하나의 문제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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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오므리 왕조 말기, 이스라엘은 급속도록 와해되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심한 기근이 일었다. 빈민들은 굶주리고 빚에 쪼들리고 노예로 끌려갔다(「열하」 4,1~4).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속국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특히 모압국의 반란은 이스라엘에 큰 상처를 입혔다(「열하」 3장). 하지만 한때 시리아-팔레스티나를 주도했던 제국은 이 반란을 제압할 군사력이 소진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지역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다마스커스 제국이 쳐들어오자, 이스라엘은 속수무책으로 연패하여 수도 사마리아가 포위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열하」 6,24). 도성은 식량이 바닥났다. 이런 사정인데, 부유층들은 매점매석을 일삼으며 잇속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열하」 6,25). 성민 가운데는 굶주리다 못해 자기 자식을 먹는 일까지 일어났다(「열하」 6,28).

다마스커스 군의 갑작스런 철군으로 최악의 재앙은 면했지만, 강력했던 오므리 왕조 말기에 왕권은 완전히 무력해져 더 이상 통치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가 되었다. 이때 정변이 일어나고, 예후 왕조가 들어섰다.


하지만 국력은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고, 다마스커스 왕조는 끊임없이 북서부 국경을 넘나들며 약탈을 해갔으며, 어떤 때는 남서부 국경부근까지, 그러니까 전 국토를 유린하기까지 하였다(「역하」 12,17~18).

그런데 희망이 찾아왔다. 아닷니라리 3세가 이끄는 아시리아 제국 군대가 다시 서진하였고 소제국인 다마스커스 왕국은 벅찬 전투를 벌이다, 결국에는 막대한 조공을 바치고서야 겨우 망국을 면할 수 있었다. 실은 페니키아의 왕국들과 이스라엘, 블레셋 등 시리아-팔레스티나의 거의 전 왕국들이 아시리아에게 조공을 바쳐야 했다.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본 나라는 회생 불능의 상태에 떨어진 다마스커스였고, 그 덕에 이스라엘은 회생의 기회를 맞을 수 있었다.

예후의 손자인 여호아스(요아스)가 등극하기까지 거의 60년간이나 지속된 재앙의 역사였다. 여호아스는 크게 약화된 다마스커스 왕국을 막아낼 수 있었고, 속국에서 독립하려고 몸부림치던 유다 왕국도 성공적으로 제압해냈다.

이스라엘은 빠른 속도로 국력을 회복했고, 그의 아들 여로보암 2세(기원전 785~745) 때에 와서는 오므리-아합 왕 시대를 능가할 만큼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는 무엇보다도 정복군주로서 북쪽으로는 ‘하맛 어귀’, 그러니까 다마스커스 왕국의 중심부 코앞까지 진격하였고, 남으로는 ‘아라바 바다’까지, 그러니까 사해 앞까지 지배하게 되었다(「열하」 14,25). 이것은 훗날 유다 왕국의 사관에 의한 기록이다. 해서 유다 왕국을 북쪽에서 압박하는 정도였다고 말하는 ‘아라바 바다까지’라는 표현은 그리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된다. 아마도 오므리 왕조 이후 오랜 동안 유다는 이스라엘의 속국이었던 것 같고, 아마지야 왕이 반기를 들었지만 여호아스 왕에게 패배하여 전사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 같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때에 와서 강력한 국가로 다시 태어났다.

[그림1] 여로보암 2세의 이스라엘 영토

그뿐이 아니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 시대를 반영하는 고고학적 발굴물들이나 「호세아서」와 「아모스서」의 묘사를 보면, 부유층의 화려한 소비행각을 어느 정도 유추할 만하다. 적지 않은 사치품이 수입되었고, 화려한 별장들이 여기저기 세워졌다(「아모」 3,15). 한편 정부의 지방 통제력은 현저히 강화되었고, 아울러 지주들의 대중 수탈 또한 심화되었다. 아마도 왕권이 지방 토호들인 지주귀족과 권력연합을 통해 여로보암 2세의 체제가 성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여 이 시대 대중은 삶의 기반을 점점 더 빼앗기고 있고, 지주들은 점점 더 큰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국가는 부강해져 간다. 아모스 예언자는 바로 이런 극악해져가는 빈부격차의 심화 현상에 대해 왕권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다. 아마도 그의 활동기가 매우 짧아 보이는 것은, 여로보암 2세의 체제는 이러한 저항을 결코 관대히 처리하지 않았음을 시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왕족-귀족 중심 체제의 빈부격차의 심화, 그로 인한 사회적 위기의 심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40년이나 되는 긴 그의 치세 기간 동안 체제는 이렇다 할 위협을 겪지 않는다. 우리는 「호세아서」에서 그 유력한 이유의 하나를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열매가 무성한 포도덩굴, 열매가 많이 맺힐수록 제단도 많이 만들고, 토지의 수확이 많아질수록 돌기둥도 많이 깎아 세운다.
― 「호세아서」 9장 3절

내용인즉슨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이스라엘에는 그럴수록 점점 더 많은 제단이 건립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왕립 성소들이 영토 곳곳에 기념비처럼 세워졌다. 고대 군주국시대에 국가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홍보하는 가장 유력한 수단은 건축물이었다.[각주:1] 하지만 건축물은 주로 멀리 바라다보는 대중의 시각을 통해서 권력의 지엄함을 드러낼 뿐이다. 요컨대 그것은 매우 협소한 의미만을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다른 건축물과는 달리 성소는 훨씬 더 강력한 국가 통치의 장소다. 성소 안팎으로 대중이 제의에 참여하게 하며, 성소에서 일하는 하급사제들은 왕의 열렬한 홍보자일 뿐 아니라, 왕에게 충성하는 승군(僧軍)의 역할을 하는 존재였기에, 대중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지대하다.

‘국가가 더 큰 성공을 거두면 거둘수록 제단이 많이 세워진다’는 구절은, 그러므로 종교적 예전이 풍부해졌다는 말이라기보다는 종교 정치적 통제의 장치가 치밀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호세아 예언자는 바로 이것을 간파했던 것이다. 당대의 수준 높은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고통의 체제를 은폐하는 종교 정치적 장치를 폭로하고 비판했던 것이다. 

지난 8월 1일부터 ‘광화문 광장’이 개장되었다. 첫날부터 이십만이나 되는 사람이 왔고, 처음 한 주 동안은 연일 그 정도 숫자의 사람들이 다녀갔다. 분수가 있고, 화단이 있고, 화분처럼 생긴 벤치가 있는 공원에서 많은 사람들은 도심 한복판, 그것도 권력의 핵심 공간이던 세종로 네거리 한복판에서 삶의 여가를 누릴 수 있었다. 서울시 당국은 세종로 네거리를 시민에게 선사하는 기념비를 세운 것에 대하여 큰 자부심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한데 일부 시민, 사회단체들은 개장 직후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서울특별시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안’의 폐지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이었다. 이들에 의하면 이 조례안은 광화문광장에서는 쉼과 오락 이외의 집단적인 정치적 의사표현 행위를 사실상 불허하고 있다고 한다. 단 정치적 의사표현이 가능한 행사가 있다. 서울시나 정부가 주도하는 행사다. 그리고 이것은 경찰이 이 기자회견을 강제 해산시킴으로써 입증되었다.

이 ‘시민의 쉼터’를 위해 서울시는 1년 3개월 동안 길을 막고 공사를 하였고, 무려 445억 원을 사용했다. 서울시 한복판에, 정부청사들이 있고 미국대사관이 있는 권력의 공간 세종로 네거리 한복판에 시민의 쉼터를 만들어주겠다는 시 당국의 ‘노고’ 이면에는 시민의 쉼과 여흥도 국가 통치술로 활용하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깔려있다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마치 고대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가 건축한 숱한 제단들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시민의 편안함은 국가의 통치 정신에 위배되지 않을 때만 누릴 만한 것이고, 그 반대는 허용되지 않는 건조물이 바로 ‘광화문광장’이라는 것이다.

[그림2] 광화문 광장의 화단

그러나 온갖 설치물들로 가득 채워진 공간, 인색하나마 여흥이 있는 공간, 그러나 정치적 의사표현은 제약되는 공간, 시민이 채워갈 ‘어반 보이드’(urban void)가 제거된 공간, 서울시가 얘기하는 광장의 풍경이다. 그러나 이것이 광장인가? 더구나 시민의 .........

MB정부가 출범한 지 아직 2년도 못되었는데, 사회 양극화 문제는 훨씬 악화되고 있다. 용산사태나 쌍용자동차 사태에서 보듯 국가가 기획하는 성장전략은 자본의 편에서 기획되고 있음이 명료해지고 있다. 한국의 민주정부들이 심어놓은 양극화의 썩은 뿌리는 MB정부에 오면서 극대화되고 있다. 또 서울시가 대대적으로 펼쳐 놓은 뉴타운 정책은 매우 빠른 속도로 무주택자의 빈 주머니를 톡톡 털어가고 있다.

그리고 무려 445억 원을 들인 광화문광장은 그러한 자본과 국가의 폭력에 시달린 대중에게 정치성을 거세한 여흥을 준다. 실은 그것마저도 너무 인색하다. 화분을 닮았다고 하는 벤치들은 디자인도 조잡하지만, 앉아 쉬기엔 너무 불편하고, 그늘을 드리워 주겠다던 이파리 모양의 햇빛가리개로 볕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삶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주는 위조된 그늘을 상징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세종로 중앙에 서 있던 29그루의 은행나무를 치우고, 인조미가 펄펄 넘치는 화단을 만들어 놓은 것도 바로 그런 ‘위조된 즐거움’을 시사하는 듯하다. 개천을 복원하겠다고 하면서 인공으로 수돗물을 흘려보내는 프로젝트로 수백억 원을 사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100년이나 된 나무 대신에 인위적인 조성에 의해서만 시민의 눈에 다가올 뿐인 화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삶의 고통스러움을 위로받을 수 있는 체제는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성장전략은 늘 이렇게 고통을 주면서 그것을 은폐함으로써만 실행되는 것일까. 미국이 그랬고 일본이 그랬다고 하는 말들은 이제 설득력을 잃었다. 국민을 위해서 다른 상상을 할줄 모른다면, 왜 우리는 그네들을 통치자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호세아의 독설은, 그런 정부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는 것이다. 점점 그런 독설이 우리의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 웹진 <제3시대>

  1. 케이트 W. 화이트램, 「권력의 상징: 통일왕조 시대 왕의 프로퍼겐더에 대하여」, 『시대와 민중신학』6(2000)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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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 기원에 대한 성서 해석학과 정치학

김진양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에서 구약학 Ph.D. 과정중)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은 과히 지난 20세기 성서 해석학에서 가장 중심된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서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스라엘의 기원에 대한 해석적 담론을 지속적으로 쏟아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였고, 그리고 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이 성서학자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끈 이유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차원에서 이야기 될 수 있다. 첫째, 고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 성서의 자체의 진술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의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 11:16-17) 이스라엘이 가나안 도시를 단번에 완전히 정복하였다는 (all-at-once) 것을 서술하는 반면, 사사기서는 (사사기 1:9) 이스라엘이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도시와 몇몇 영역들을 서술하고 있다. 성서학자들은 이런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서의 모순된 진술에 대한 답을 소위 객관적(?) 증거를 제공하는 고고학에서 찾고자 노력하였다. 둘째, 고대 이스라엘 기원이라는 과거 역사의 재구성은 오늘날 현실 정치에 깊숙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지난 100년동안 성서학자들의 고대 이스라엘 기원에 대한 해석학은 팔레스타인 땅의 권리를 둘러싼 이민자 이스라엘과 토착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이라는 현실 정치의 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에세이에서 성서 해석학과 현실 정치와의 관련성을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이라는 주제를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1996년 키쓰 와이트럼(Keith Whitelam) 이라는 구약 성서학자는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e History (「날조된 고대 이스라엘: 침묵의 팔레스타인의 역사」)라는 도발적인 책을 출판하였고, 그리고 이 책은 성서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와이트럼은 “이스라엘 역사는 근대성에 근거한 성서 해석학의 결과물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지난 20세기 성서해석의 담론을 일축한다. 지난 세기 성서 학자들의 주된 정치적 이념은 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권리를 옹호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권리에는 침묵하였다. 다시 말하면, 성서 학자들의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는 근대 이스라엘 건국의 성서적/이념적/정치적 합법성을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 책은 성서 해석과 현실 정치의 연관성을 날카롭게 보여준 대작임에 틀림없다. 와이트럼은 20세기의 고대 이스라엘 기원에 대한 세가지 전통적인 모델- (1) 평화 이주설, (2) 정복설, 그리고 (3) 민중 봉기설- 을 탈 근대의 담론으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1) 평화 이주설
평화 이주설은 알브레이트 알트(Albrecht Alt)의 1925년 논문 (“Die Landnahme Der Israeliten in Palästina”)에서 출발한다. 이 가설은 고대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으로 (당시 가나안 사람의 땅) 평화롭게 이주한 것이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이라고 것이다. 평화 이주설은 구약성서 사사기서가 서술하는 이스라엘의 기원에 가장 가까운 가설이다. 그러나 와이트럼은 “[평화 이주설]은 조작적 과거의 재구성으로서 1920 년대 급증했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시오니즘을 반영한다”고 비판한다 (와이트럼 1996, 74). 평화 이주설은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유대인들과 매우 유사한 상관관계가 있다. 알트의 논문과 당시 시대적 상황이 1920년대라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와이트럼의 비판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평화 이주설의 핵심적 내용은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은 타자의 소유지를 빼앗은 폭력적 행위가 아니라, “비어있는 땅”(uninhabited land)에 평화롭게 이주하였다는 것이다 (Weippert 1971, 6).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비어있는 땅”의 의미는 무엇인가? 과연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할 때 그 땅의 주인은 없었을까? 성서 어디에도 “비어있는 땅”으로의 이주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비어있는 땅”이라는 해석적 관점과 1930년대의 이스라엘 역사학자들의 팔레스타인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비교하면 더욱 흥미롭다. 이스라엘 역사학자들은 1930년대 팔레스타인 사회는 내부적으로 와해된 국가라는 조직이 불가능한 소위 “비어있는 땅”과도 같다고 여겼다. 따라서 평화 이주설을 주장하는 학자나 이스라엘 역사학자들은 월등한(주체) 이스라엘인이 열등한(타자) 팔레스타인을 대치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2) 정복설
정복설은 윌리암 팍스웰 올브라이트(W. F. Albright)가 처음으로 주장한 가설이다. 올브라이트는 구약성서 여호수아서가 진술하는 고대 이스라엘인의 가나안 도시 정벌이라는 성서의 기록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였다. 올브라이트는 소위 근대정신의 중심된 담론인 성서 기록에 대한 “객관적(?) 사실과 증거”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가 믿었던 객관적(?)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는 어떻게 읽어 내는냐에 따라서 다른 결론을 얻을수 있다는 도전을 받고 있다. 와이트럼은 올브라이트의 정복설을 결국 폭력으로 팔레스타인의 “땅”을 차지한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비판한다.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사실은 올브라이트는 결코 토착민 팔레스타인의 땅에 대한 권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팔레스타인을 멸종의 대상인 “타자”로 규정하였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올브라이트는 유대인들이 중동에서 유럽문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와이트럼은 “정복설은 이주민/상위계층/서구인이 토착인/하위계층/동양인(중동인)을 학살하는데 대한 성서적 혹은 객관적(?) 정당성을 부여하였다”고 비판한다 (와이트럼 1996, 84-85). 와이트럼은 정복설의 정치적 이념은 “[서양의] 기독교가 열등한 [토착] 종교를 대치한 것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3) 민중 봉기설
조지 멘덴홀 (George Mendenhall)은 1962년 “The Hebrew Conquest of Palestine” 이라는 논문에서 고대 이스라엘은 사회 정치적 측면에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문에서 멘덴홀은 고대 이스라엘은 타락한 토착 가나안의 정치/사회적 체계에 대항한 사회적 약자 연대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면, 고대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하부계층과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연대하여 혁명의 (혹은 농민봉기) 결과라는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로서 The Amarna Letters에서 “하비루 (Habiru)”라는 하부계층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민중 봉기설이 초기 시오니즘의 유럽 국가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유대인 민중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미국, 유럽, 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다른 인종들이었지만, 동일한 사회적 억압을 경험한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멘덴홀의 가설을 더욱 발전시킨 갓월드는 (The Tribes of Yahweh, 1979) 자신의 책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을 서술하면서 반 베트남 전쟁을 역설하였다. 갓월드와 멘덴홀은 이스라엘을 단일 인종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고대 이스라엘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배경에서 온 사회계층의 동일한 정치적 경험의 담지자들이 가나안 지배층에 대항 강력한 도전과 봉기가 이스라엘의 기원이라는 가설이다 (Gottwald The Tribes of Yahweh, 215). 갓월드는 민중 봉기설을 주장하면서 베트남 사람들을 옹호하였지만, 그러나 근대 팔레스트인의 “땅”에 대한 권리에는 철저히 침묵하였다.

위의 세 전통적 가설과는 달리 와이트럼은 팔레스타인의 “땅”에 대한 권리를 옹호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이라는 “타자”를 위한 성서 해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잔 콜린스의 지적처럼, 근대 아랍 팔레스타인은 기원 후에 등장한 인종으로서 고대 가나안인과는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인종임을 와이트럼은 간과하고 있다 (Collins 2005, 42).

위에서 살펴본대로, 근대정신에 바탕한 성서 해석학은 현실 정치와 깊숙히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와이트럼이 보여준 비판적 해석처럼 성서를 해석하고 과거를 제구성하는 가치관의 재고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혹자는 종종 이러한 해석적 담론을 “탈 근대주의” 또는 “탈 식민주의”라고 부른다.

아래의 사진은 필자가 지난 2005년 1월 팔레스타인(현 이스라엘)로 Travel Seminar 갔을 때 찍은 예루살렘 장벽 사진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의 테러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세운 단절의 벽이다. 당시 저 무시무시한 벽을 세우는 성서적/정치적 정당성을 성서학자들의 해석적 담론이 제공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름이 끼치는 전율을 느낀 일이 생각난다.


참고문헌

Collins, John J. Encounter with Biblical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5.

Weippert, M. The Settlement of the Israelite Tribes in Palestine. A Critical Survey of Recent Scholarly Debate. London: SCM, 1971.

Whitelam, Keith.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e History. London; New York: Routiedge,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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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故人)을 추억하는 두가지 방식과 한가지 옳은 방식

박찬선
(본 연구소 회원)

죽은 자를 추모하는 방식이 따로 있을까. 슬프면 슬픈 대로, 눈물이 나면 나는 대로. 담담하면 담담한 대로.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2009년 8월 23일. 김대중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던 날. 서울광장은 사람들의 발길로 빼곡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뒤 이곳에 도착할,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발걸음도 기다리는 발걸음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마음은 달라도 기다림의 대상은 모두 같았다. 초조한 눈빛으로 스크린을 응시하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을 실은(어쩌면 태운) 운구차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영웅은 죽은 채로 도착하였다. 일말의 희망을 품었던 사람들은 탄식했을 것이다. 미망인이 대신 인사를 건넸고 잠시 후 운구행렬은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 콘서트장을 빠져나가는 관객처럼 사람들은 지하철로 향했다.

사회자는 벌써부터 울부짖고 있었다. 그는 잔뜩 고조된 목소리로 군중들은 촉구했고, 군중을 대신하여 고인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모인 사람들의 애도 감정을 극대화하라는 비밀 지령을 받은 사람인양 어쩔 줄을 몰라했다. 고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추억해보고자 마음을 모으고 있으면, 여지없이 더 크고 열광적인 감정으로 곧 도착할 영웅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다그쳤다. 나에게 고인은 고(故)인이었으나 그에겐 고인은 생(生)인이었다. 사회자의 감정몰이에, 그 자리에서 고인의 삶을 대면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고인은 특정인의 고인이 된 채 고도감정속에 함몰되어 버렸다.

지난 8월 30일. 한백교회 예배 중 삶의 고백 시간에 안 선생님은 또 다른 죽은 자를 추억하고 있었다. 공무상 만난 39살의 윤성환 씨인데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한강 다리 아래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안 선생님은 타인의(?) 죽음을 얘기하듯 담담하게 고인을 추억했다. 그를 위해 “낯선 이방을 떠도는 가엾은 나그네의 노래”라는 흑인 영가를 불러 바쳤다. 안 선생님이 어떻게 담담할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렇게 친하지 않았는지, 사람들 앞이기에 감정을 절제하였는지, 아니면 그 슬픔이 시간이 흘러 승화되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다.

만일 그가 눈물을 쏟으며 고인을 추억했더라면 어땠을까. 감정을 드러내며 한껏 슬퍼했다면. 이것 또한 고인을 향한 그의 마음이기에 아름다운 것이리라. 그럼에도 만일 그랬다면 글쎄...고인은 적어도 그의 고인으로만 남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나에게도 고인의 죽음이 불편하게 다가왔던 것을 보니 고인은 그에게서 매몰되지 않았나보다.

고인을 사람들 앞에서 추억할 때는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담담하게 얘기하는 것이 좋다라는 방법론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서두에 밝힌 대로 특정한 방식이 어디 있으랴. 슬프면 슬픈 대로, 담담하면 담담한 대로, 그렇게 마음가는 대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결론을 내려야겠다. 사회자는 마음가는 대로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에게 부여된 역할이 그의 감정이 흐르는 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안 선생님은 담담한 마음 그대로 담담하게 고인을 추억했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된 자연스러움 속에 고인의 죽음에 우리 모두 연결될 수 있었다. 영웅의 추모식 사회는 맡지 않고 볼 일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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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소개


『한국 기독교와 권력의 길』

지은이_ 최형묵
펴낸곳_ 로크미디어
펴낸날_ 2009년 6월 30일
쪽수_ 136쪽
크기_ 128×203mm
값_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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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_현대를 읽다 1


『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

지은이_ 최형묵
펴낸곳_ 도서출판 동연
펴낸날_ 2009년 9월 6일
쪽수_ 272쪽
크기_ 148×210mm
장르_ 종교 / 기독교신학 / 구약학
값_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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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전승과 지혜문학』
- 지혜문학의 눈으로 다시 보는 성서

▷ 지은이 : 천사무엘(Smauel Cheon)
▷ 출간일 : 2009년 9월 4일
▷ 장르 : 종교/구약학
▷ 판형 및 제본 : 신국판변형(153×220) / 무선제본
▷ 가격 : 15,000원
▷ 문의전화 : 02-335-2630
▷ 담당자 : 조영균
▷ 도서출판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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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소개


『태극신학과 한국문화』

지은이 : 박신배
펴낸날 : 2009년 9월 10일
분  야 : 기독교/한국문화
판  형 : 신국판
정  가 : 15,000원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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