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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좋은 피’인가
- ‘미누’의 추방을 결정한 체제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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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레오 카락스(Leos Carax) 를 좋아하다 보니 그의 영화 제목이 익숙하다. 얼마 전 레오의 영화를 표절해서 ‘나쁜 피’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좋은 피’를 표제로 잡았다. 연작의 글로 기획된 것이 전혀 아니지만, 굳이 말하자면, 전자가 ‘권력의 의도하지 않은 자기 복제’를 말하고 있다면, 이번에는 ‘박탈의 의도하지 않은 복제’를 말하고 있다. 말한 것처럼 이 두 편은 아무런 관계를 연상하지 않고 쓴 것이지만, 양자 사이에는 아비와 자식 사이의 불온한 연계성이 가정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아비를 증오하거나 거부하고, 혹은 무관심하고자 했는데, 어느새 아비의 길과 자식의 길이 겹치는 비극의 연쇄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글은 서로 연관된다.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순혈주의’에 관한 문제제기다. 순혈주의가 지배담론으로 사회를 뒤덮던 시절, 거기에 이견을 제시하던 한 예언자의 고독한 외침에서, 우리는 예수의 그림자를 보며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한 전형을 읽고자 하는 것이다.

때는 페르시아 제국 식민지가 시작되던 기원전 6세기 말이었다. 황제(고레스)는 과거 바벨로니아에 의해 유배되었던 각 종족에게 귀향을 권장한다. 바야흐로 메소포타미아 세계는 귀향 정국이 찾아왔다. 유다 왕국 출신의 유배민들이 집단거주하고 있던 지역들도 술렁였다. 반백년 전 황무지에 유배되어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그 세월은 그런대로 살만하게 정착한 적지 않은 이들이 생겨났다. 하여 그이들은 다시 먼 길을, 전혀 미래의 보장이 없는 그 길을 되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꿈에 그리던 고국땅으로의 귀향을 선택하였다.  
초기 귀향자들은 다분히 묵시적 열광주의에 젖어 있던 사람들이었다. 스알디엘, 즈루빠벨 같은 구왕족 출신 인사들이 이 초기의 귀향집단들을 이끌었고, 몇몇 예언자들은 열렬히 왕정 복구와 해방의 때가 왔다고 대중을 선동했다.
하지만 그 땅은 너무 혹독했다. 귀향의 공간,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의 현실은 꿈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저 ‘위대한 성전’은 잿더미만 남아있을 뿐이었고, ‘거룩한 도시’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불타거나 부서진 오래된 가옥들뿐이었다. 사람들은 거의 살고 있지 않았고, 농사지어 먹고 살만한 땅도 없었다. 신은 이들 돌아온 이들을 위해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고, 주변의 도적들만이 그들을 반겨주었을 뿐이다. 강간, 약탈, 굶주림, 그리고 죽음. 얼마 안가 지도자들은 사라졌고, 홀로 남겨진 대중은 폐허가 된 땅에서 근근이 연명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귀향 정책은 너무 안이했음이 판명되었다. 바벨로니아 시절 유배된 이민자들 다수가 한때 고국의 지배계층이었으니, 그들이 돌아가면 쉽게 귀향자 정부가 세워질 줄 알았다. 그러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준 제국에게 감사하며 황제에 충성하는 지방 정부들이 세워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기엔 유배된 세월이 너무 길었다. 고향엔 이미 다른 체제가 세워졌거나 다른 체제의 영역에 복속되어 있었고, 그 속에서 나름 안정을 유지하여 왔다. 지배의 변화는 대다수의 원주민에게 불안한 조건일 따름이었다. 게다가 황제의 칙령을 받아 귀향한 사람들 대다수는 유배지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개 하위층 사람들이었다. 오랫동안 누군가를 지배하기보다는 누군가의 지배에 익숙한 이들이었다. 게다가 귀향자 대부분은 유배지에서 태어난 이민 2세들이었으니, 돌아갈 곳은 고향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이방 공간인 셈이었다. 그러니 나라를 재건할 곳은 그네들의 몸에 낯설기만 한 곳이었다.
제국의 유배민 귀향 정책 제2기는, 아마도 제국 황실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 같다. 우리는 기원전 5세기 중반에 와서야 이 새로운 황실 정책의 결실을 발견하게 된다. 황실에서 관료로 봉직했던 이들이 이끄는 새로운, 하여 더 많은 물적 자원과 정치적 수완을 갖춘 귀향민들이 돌아온 것이다. 그들은 꿈을 꾸기보다는 훨씬 현실적이었고, 따라서 정치적이었다. 지역을 순회하는 황실 칙사들의 지원을 받아, 귀향지에 세워진 지방정부들을 압박할 줄 아는 정치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에 의해 예루살렘과 인근 유대 땅에는 또 하나의 정부가 등장하였다. 한데 이 정부는 왕정체제가 아니었다. 제국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황제 직속의 총독국가가 세워졌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즉 세습왕권이 형성된 게 아니라 황제가 파견한 통치자가 수반이 되는 귀족과두정부가 세워진 것이겠다. 그런데 이 귀족체제의 주도권을 쥔 이들이 다름 아닌 ‘사제계 귀족’이었다.
이 사실은 총독령 귀환 정부가 토착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취한 이데올로기가 이른바 ‘순혈주의’였다는 점과 맞물린다. 유대 인근의 기존의 정치세력들, 사마리아, 암몬, 에돔 등은 혈연간 연대를 통해 체제를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이 체제는 과거 아시리아와 바벨로니아에 의해 유배되어 이곳으로 들어온 이들과 토착귀족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지배집단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대 지역에 새로 세워진 귀환 정부가 내세운 순혈주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될 만했다. 총독 정부는 주위로부터 고립된 정치체제였지만, 각처로 흩어진 이민자들에게는 비로소 고국의 정부가 세워졌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축되자 즉각 실효성을 드러내었다. 이민자들의 기부금을 받는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총독 정부의 주요 지배계층이 혈통에 특별한 엄격성을 갖춘 사제집단이었고, 이들이 지배집단으로 부상하는 데 유효한 수단이 인근 정치세력과의 혈통적 차별화였다는 사실은, 순혈주의적 조치들이 이 사회를 얼마나 강력하게 요동하게 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느헤미야기」와 「에즈라기」는 그 일단을 시사해주고 있다. 즉, 타종족과 결혼하여 살고 있는 이들을 배신자로 취급하고, 그들을 강제로 갈라놓는 정책이 폭력적으로 시행된 것이다. 수년 아니 수십년간 혼인관계에 있던 이들을 체제는 강제로 갈라놓으려 했고, 반발하는 이들을 무찰별 처형해 버린 것이다. 외부 족속 사람들은 추방되었다. 남편과 아내가 갈라졌고, 부모와 자식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들은 갑자기 배신자로 낙인 찍혀 온갖 수모와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아마도 순혈주의를 권장하는 각종 조치들이 강도 높게 수반되었겠다. 이런 정책은 흔히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정치인들의 정책이라는 게,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원래는 특별한 정치적 이익을 위해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다지방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매우 오랫동안 비교적 일관성 있게 지속되었고, 점차로 거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타종족의 흔적이 자기들을 오염시킨다는 타부가 자리잡아 갔다.
그것은 이 과정에서 유다의 지배층이 사제귀족 중심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일의 제사를 통해 그러한 순혈주의를 사람들의 인식 속에 심어놓았던 것이다. 이때가 기원전 5세기 이후인데, 그로부터 몇 백년이 지난 기원전 2세기 중반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하는 「마카베오상」에는 마을에 세워진 ‘제단’들이 언급되어 있고, 마을의 제관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시대적 정황이 반영되어 있다. 즉 사제체제는 귀환 정부가 세워진 이래 하스몬 왕조가 세워진 기원전 2세기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고, 촌읍 구석구석까지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점차 성서에 수없이 등장하는 표현, ‘이방인의 역겨운 짓’은 일상이 된다. 하여 순혈주의는 이제 정책이 아니라 인식이 된 것이다.
정책을 넘어서 ‘인식의 순혈주의’가 확산되면, 사회의 어두운 공간에서는 순혈주의에 위배된 조건의 사람들의 생태가 펼쳐진다. 사회의 최말단 영역에는 순혈주의 같은 사회를 오염시키는 타부들이 그들을 규정하는 일반적 평판이 되고, 또 그들은 공공연히 그러한 타부를 실행에 옮기면서 동시에 범죄 같은 문제적 행동을 하곤 한다. 즉 그들이 순혈성을 지니지 못한 부정한 평판의 사람인 것이 먼저인지 아니면 범죄를 저지르는 행태가 먼저인지 알 수 없는, 두 조건이 서로를 악순환에 빠뜨리는 상황이 일상화된다는 것이다. 하여 이른바 ‘나쁜 피’ 이데올로기가 정착하게 되는 것이다.

네팔인 이주노동자 미누를 강제출국시켰다는 보도가 있었다. 알고 있겠지만, 그는 이주노동자일 뿐만 아니라 다국적 밴드 ‘스탑크랙다운’(Stop Crackdown)의 리드보컬로서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을 하는 문화활동가였다. 그는 우리사회의 순혈주의적 배제와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의 상징적 존재였다.
정부는 그를 ‘질서 확립’을 위해 부득이 추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질서 확립’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1992년 관광비자로 입국한 이후 식당, 봉재공장 등에서 노동자로 일했고, 2003년부터 다국적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활동과 다큐제작 등에 참여한 사람이다. 그 18년간 그는 한국사회의 병폐를 낳는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질서확립이라는 명분으로 추방되었다.
그것은 그가 불법체류자라는 법률을 위배했다는 것이고, 그 법은 한국사회의 다문화적 가능성을 제약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 인권단체들로부터 많은 지적을 받아왔던 문제의 법률이다. ‘다문화적 가능성’이라는 말은 한국 내에 체류하는 소주종족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 사회적 인식적 틀을 말한다. 요컨대 이주노동자에 관한 법률적 질서는 그들에게 두 가지 방식의 삶만을 허용한다. 하나는 노예적 주체로 사는 것, 다른 하나는 범죄적 주체로 사는 것. 즉 노예가 아니려면 범법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누는 이 두 가지 방식 모두를 거부하면서 사는 한 사례를 보여준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질서 확립을 위해 추방되어야 했다.

다큐멘터리 <스탑 크랙 다운>에서

순혈주의는 우리의 법제 속에 깊게 새겨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순혈주의는 우리의 의식 속에도 자리잡고 있다. 참여정부 때에, 정부가 다문화주의 정책을 활발히 펼치고 있을 때에도 관료들의 다문화주의가 또 다른 ‘동화주의’였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그것은 정책의 컨셉이 문제가 아니라 의식 속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관습의 문제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많은 시간과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한데 참여정부 5년이 지나고 MB정부가 들어선 지 2년도 안 되어서 다문화적 가능성은 공공연히 억제하는 조치들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의식의 순혈주의는 제도를 통해 자기 생산의 견고한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사야서」 56장 7절을 주목해본다.

내가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겠다. 또한 그들이 내 제단 위에 바친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내가 기꺼이 받을 것이니, ‘나의 집은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귀환 공동체가 제도의 순혈주의를 통해 의식과 순혈주의를 강화하고 있던 때다. 타종족에 대한 폭력적 배타주의가 넘쳐나고 있었고, 굳이 폭력이 아니더라도 은연중에 배타성이 마음 속 깊게 일상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때, 한 익명의 예언자는 그 제도의 온상이 야훼의 제단을 행해 이렇게 외친다. ‘나의 집은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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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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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마가복음 10:17~31

로마와 유대의 문화적 경계에 선 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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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청
(신약학 |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석사과정 수료,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탈식민주의와 주변부 문화의 문제를 탐색한 호미 바바는『문화의 위치』라는 책에서 이주민들의 사회문화적 경험을 ‘어중간한 집’ 혹은 ‘사이에 낀’이라는 사태로 명명하고 더구나 이러한 경험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에서 번역의 미결정이라는 발터 벤야민의 용어를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바바의 이 ‘어중간한 집’ 혹은 ‘사이에 낀’이라는 그래서 번역의 미결정이라는 언표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태어난 곳의 문화와 전혀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지방에서 서울로 왔다는 것뿐인데 이러한 경험은 이주민의 경험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나의 이러한 이해하지 못함 혹은 낯섦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물론 이것은 복음서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역사적 사실로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일 것이다. 어쨌든 여러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이 본문은 바바가 자주 언급한 일종의 문화들 간의 뒤섞임 혹은 교배 같은 텍스트로 다가온다. 

우선, 이 이야기의 처음에서 계명을 잘 지키는 한 사람이 예수를 유대인들에게는 낯선 용어인 ‘선한 선생님’으로 지칭하는 것이 좀 이상하다. 또한 ‘영생을 얻으리이까’에서 ‘얻다’라는 말은 내세의 의미를 뜻하는 용어가 아니라 땅과 관련해 쓰이던 용어였다. 물론 야브로 콜린스는 솔로몬의 시편에서는 이 용어가 내세적 의미의 용어와 함께 쓰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땅에 초점을 두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구약은 유대인들이 내세 개념을 거의 가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나는 영생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이 용어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의 맥락에서 사용되던 용어가 아니었는가 하는 의심을 품고 있다. 이외에도 이 당시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계명을 잘 지키면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했음에도 계명으로 충분치 않아 예수에게 영생에 이르는 길을 구하는 이 사람의 태도는 따라서 유대적인 맥락에서는 약간 괴기하다고 할 수 있다. 랍비 문헌에는 이와 달리 토라의 계명을 잘 지키면 영생을 얻는 데 족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역사적 예수보다는 헬레니즘적 맥락에서 예수를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두 번째로, 재밌는 점은 영생의 조건으로 이 신실한 유대인에게 예수는 십계명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1~4 계명보다는 인간과의 관계를 논하는 5~10 계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십계명의 1계명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유대인의 종교적 정체성에 핵이자 오늘날 과격한 종교다원주의들이 일종의 걸림돌로 간주하는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이 아니던가? 그런데 예수는 유대인의 정체성 문제보다는 이웃 간의 관계 문제를 영생의 핵심조건으로 설파한다. 그래서 로버트 프라이스는 이것을 이미 이방인 그리스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맞는 쪽으로 번역된 마가적 예수의 계명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논의가 이상하게 들리는가? 그러하다면 마가복음 10:19를 사도행전 15:29과 비교해보라.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제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행15:29)

세 번째로, 가족과 관련한 베드로의 말 역시 역사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말해 베드로는 가족을 떠나거나 버린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고린도 전서 9장 5절은 이 점을 확인해 주고 있다.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고전9:5). 또한 마가복음 1장에서는 베드로의 장모를 예수가 고쳐주는 일화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빌레발트 뵈젠은 역사적 예수가 나사렛이 아닌 가버나움의 베드로의 집을 거점으로 삼고 자신이 도모하고자 했던 일을 넓혀간 것으로 판단한다. 게다가 뤼데만이 지적했듯이 아내를 가진 베드로에 대한 고려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눅14:26에는 아내를 미워하라는 예수의 말이 있는 반면 우리가 본 막10:29에는 아내에 대한 말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나의 판단에 따르면 지상적인 혈연 가족이 아니라 신성가족으로 재구성하려는 마가의 욕망이 베드로로 하여금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말하게 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또한 이 때문에 가족에 관한 마가의 다른 말도 내게는 흥미롭게 다가온다. 즉, 나에게는 마가복음 3장의 바알세불 논쟁에서 본 것과 같이 예수를 반대하는 예수 가족에 대한 일화 역시 역사적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낯선 일화로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마가와 달리 마가복음보다 좀 더 빠른 문헌인 Q의 바알세불 논쟁에서는 예수의 가족이 등장하지 않으며 게다가 놀라운 점은 마가복음에서 예수를 반대했던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사도행전에서는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의 수장으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와 관련해 마가의 이야기를 역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정보를 제공하는 문헌으로 간주하는 학자들은 야고보의 이러한 변신에 대해 야고보가 예수 사후에 예수를 믿었고 사도가 되었다는 일종의 궤변(?)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나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의 가족과 관련한 베드로의 말이 역사적 사실이 아닌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따라야 할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범례에 속하듯이 예수의 가족, 특히 야고보에 대한 학자들의 논의 역시 역사적 근거가 불충분한 따라서 마가의 이야기에 근거한 일종의 착시 현상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있다.
 
더구나 나는 대체로 가족에 관한 베드로의 말(막10:28)과 이를 되받아치는 예수의 말(막10:29~30)을 유대사회의 가족개념에 깔린 혈연적 관계를 비판한 결과로 생긴 구성원들의 고통에 대해 마가가 위로를 시도하는 일종의 담론으로 간주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막10:28~30의 이야기를 막3:20~35와 막13:9~13과 함께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막3:20~35는 마가가 혈연에 기초한 유대 가족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막3:20~35에서 마가는 예수의 가족들이 예수를 반대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그리고 이에 대항하기라도 하듯 가족을 혈연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재정의해 버리는 예수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마가 공동체는 유대사회에서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인다. 막13:9~13은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유대를 넘어 결국엔 만국에 전파되어야 하는 복음과 그로 인한 가족에 대한 재정의는 마가 공동체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가족 내에서 불화를 겪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것은 복음이 유대사회를 넘어 이방사회로 흘러들어가야 하는데 지상의 유대적인 가치관 대 만국의 복음이라는 대립구도가 빚어낸 고난이 자칫 마가 공동체 구성원으로 하여금 지상의 유대적인 가치관들에 연연하도록 만들어 버린다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복음은 결국 파국을 겪고 말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도 따르는데 막10:28~30은 예수로 하여금 가족을 버린 자는 현세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가족에 관한 마가의 이야기는 촘촘히 얽혀 있기 때문에 가족과 관련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정보를 확실히 제공해주는 전승이라기보다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러한 위기를 맞이한 마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예수를 통해 위로를 주고자 하는 마가의 이야기들일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다. 또한 이와 관련해 그닐카가 지적했듯이 오는 세상에서 보상이 주어진다는 이 마가의 말이 헬레니즘적인 사고 도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결국 이러한 점을 고려해볼 때 가족과 관련한 막10:28의 베드로의 말과 이를 되받아치는 막10:29~30의 예수의 말을 역사적인 것으로 간주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권위적인 예수의 말로 판정되는 10:21과 10:25에 대한 문제다. 이 말이 예수의 말이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이 판단하는 것처럼 나 역시 이 말을 예수의 진정한 말로 간주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과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이 말이 예수하면 흔히 가난한 자를 떠올리곤 하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검토되지 않은 우리의 상상력을 보증해주는가 하는 점이다. 텍스트의 한 구절은 텍스트 전체를 통해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구조주의 문학비평을 동원하면 우리가 읽은 본문의 이 말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우리의 흔한 역사적 상상력과는 다소 다른 의미를 전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 마가복음 14장의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이야기에 나오는 구절인 막14:5과 14:7은 막10:21과 10:25와 관련한 우리의 상상력을 흔들어 버린다. 이 구절들을 막10:21과 10:25과 비교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보다는 예수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이 막10:21과 10:25의 예수의 말을 더 잘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변증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더욱 놀랍게도 현대의 성서학자들뿐만 아니라 복음서 저자들도 당혹스러웠던지 마가복음보다 후대인 마태복음은 어떤 사람들을 제자들로 그리고 요한복음은 아예 가룟 유다로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마가복음 10:17~31을 꼼꼼하게 읽으면 막10:21과 10:25에서의 예수의 말은 표면적으로는 가난한 자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주지 못한 그래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버린 예수의 제자들도 막10:31에 가서는 일종의 경고를 듣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주지 못한 어떤 신실한 유대인의 주저함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는 식으로만 이해해 버리면 곤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부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부를 버린 예수의 제자들 또한 막10:22의 신실한 유대인의 주저함 못지않게 막10:31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권력을 두고 다투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못하느냐가 단순히 부와 관련된 문제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제자들의 권력 투쟁과 관련해 마가는 그 자신의 예수의 수난 이야기에서 예수를 막10:31의 말처럼 제자들과 달리 유대인들의 지상적인 이해들 중 하나에 속하는 전통적으로 메시야로 이해되는 찬란하고 힘 있는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볼품없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막10:31은 지상적인 것들에 대한 연연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마가의 이야기는 지상적인 것들에 대한 연연이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적인 부나 명예 혹은 권력과 같은 일반적인 것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물론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는 이러한 것들과 관련된 유대적 가치관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본문인 부와 관련한 이야기(막10:24~27)는 이것들 중 하나에 속한다. 사실 막10:24, 26은 제자들의 놀람을 통해 부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유대인의 일상적인 가치관을 뒤흔들어버리는 예수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뒤흔들어버림에 관한 마가의 이야기 전략은 다소 궁색하기 그지없다. 물론 주석서들 역시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인 막10:26에 관한 예수의 대답(막10:27)이 대단히 궁색해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로써 이제 막10:17~31에 깔려 있는 마가의 이야기 전략이 다소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즉,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의 이야기는 지상적인 것들에 대한 연연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즉 영생을 막고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지상적인 것들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앞서 나는 이 지상적인 것들에 대한 연연이 어느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일반적인 것들이 아닌 유대적인 가치관들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막10:17~31에 나오는 이야기는 대체로 유대사회를 넘어 이방사회에 전해져야 하는 복음 혹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말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유대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 특히 부와 가족에 관한 유대적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돌파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는 마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그만 여기서 지금까지 여러분을 골치 아프게 했을 수도 있는 막10:17~31에 관한 나의 분석을 끝맺고자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논의를 잘 따라왔다면 이제 여러분들은 그러면 당신의 이러한 텍스트 분석은 당신이 첫 부분에서 바바를 들먹이면서 말한 이주민의 경험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하는 물음을 내게 던질 때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여러분들 중에 예리한 분들은 지금까지 나의 논의에 내포된 문제의식을 간파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간파한 것처럼 그것은 처음에 말한 이주민들이 자신들과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에 갔을 때 부딪히는 낯섦 혹은 어색함 같은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과 관련된 문제다. 이와 관련해 우선 오늘의 본문을 만약 예수 당시의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이었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를 고려해보자. 지금까지의 나의 논의에 따른다면 앞서 본 마가의 이야기에 대해 그들은 아마 어색해 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이 본문을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마태복음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본문 분석에서 우리가 읽은 본문이 헬레니즘화된 맥락을 갖고 있다고 계속 지적한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면에 디아스포라의 헬레니즘 유대인들이나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친숙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들에게는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처럼 유대적인 가치관은 다소 누그러뜨려져야 하거나 심하게는 극복되어야 하는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점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91년부터 지금까지 마이어 신부는『주변부 유대인 예수』라는 책을 계속해서 출간해 오고 있는데 이 책에서 역사적 예수는 당시의 유대사회에서 주류가 아닌 주변부 유대인으로 그리고 이 때문에 주류 유대사회가 공유했던 유대교와는 다른, 즉 비주류가 가지는 방식으로 유대교를 개혁하고자 했던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물론 마이어의 이러한 역사적 예수에 관한 묘사 밑에는 마가의 이야기가 판본으로 깔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의 형제 야고보를 연구한 아이젠만은 예수를 마이어와는 다른 식으로 묘사한다. 게다가 노벨 평화상에 천거되기도 한 휴고 숀필드나 마코비 같은 학자도 주류 유대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예수를 묘사한다. 이들에게 예수는 나자렌파나 바리새인으로서 정결법을 잘 지키고 로마에 저항한 일종의 투사다. 그리고 최근에『예수왕조』를 쓴 제임스 타보르 역시 이들의 논의에 동조하기도 한다. 

그러면 이처럼 서로 다른 논의들에서 우리는 오늘의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단 나는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두 문화 사이에 있는 사람들 간에 나타나는 사회문화적 갈등 혹은 충돌이 잠재되어 있고 그리고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마가가 예수의 권위에 의존해 자신의 이야기를 신뢰할 만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텍스트로 간주한다. 하지만 1세기에 격렬한 반유대적인 분위기가 꽤 있었음을 고려하면 예수를 유대 주류 사회에서 주변부 유대인으로 설정하고 동시에 헬레니즘화된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으로 묘사하는 마가의 이야기는 마이어가 생각하는 것처럼 주변부 유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당시의 로마 제국의 지구화(?)에 포섭 혹은 동화되어 가는 도상에 있는 마가 공동체의 이야기로 최소한 설정해야 하지 않나 하는 의심도 든다. 그러나 오늘 경계 밖의 아이들이라는 권유미 선생의 주제를 고려해볼 때 여전히 마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느 정도 유의미한 이야기를 던져 준다고 생각한다. 즉, 마가의 이야기가 로마제국의 지구화(?)에 포섭되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한 사람이 다른 문화를 가진 곳으로 이동하려 할 때, 즉 문화들 간에 놓인 경계를 넘고자 할 때는 수많은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고 때로는 바바가 말한 것처럼 뒤섞임이 때로는 적대가 발생하기도 하는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든지 간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략들과 대안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문화들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의 복잡한 사회적·문화적·심리적 갈등과 그로 인한 이들 나름대로의 모색들을 이처럼 한 문장으로 처리해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주해본 경험도 없거니와 너무 복잡한 담론이어서 내가 감히 개입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는 심정이 깔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배적인 주류 유대문화를 벗어나 이방인 문화인 그리스 문화와의 뒤섞임을 경험하고 그래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가는 마가의 이야기는 이들의 복잡한 경험의 한 축은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은 전 세계의 맥도널드화를 의미하는 시대를 말없이 살아내고 있는 이주민들에게 한정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맥도널드화에 저항하고자 하는 이주민들은 이와는 다른 이야기를 써야할 것이며 실제로 쓰고 있을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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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4)
: 누가 ‘주체의 죽음’을 말하는가?

이상철
(시카고 신학교 / 윤리학 박사과정)

누가 ‘주체의 죽음’을 말하는가?

’주체의 죽음’으로 대변되는 현대 철학계의 흐름속에서 주체에 대한 분석은 다양한 스펙트럼상에 존재한다. 주체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디세이처럼 험한 여정을 마감하여 자기 자신에게로 귀환하는, 그래서 자아의 존재를 기어코 발견하고야 마는 가열찬 의지를 지닌 반성적인 주체이고, 또한 주체는 하이데거적인 의미로는 자기 자신에게 현존하는 주체, 그리하여 현실을 완전히 독점하는 주체이며, 이는 또한 세계사를 신의 자기 인식, 자기 생성으로 파악한 헤겔류의 역사철학에 등장하는 무한 진보 신화에 빠져있는 주체이기도 하다.
위에서 거론된 주체는 하나의 개별적 주체가 아니라, 근대성 혹은 근대적 프로그램에 의해 조성되고, 근대(성) 일반이라는 담론의 틀 안에서 주조된 주체라는 성격이 강하다. 이에 반해 ‘주체의 죽음’을 선언하는 후기 구조주의 계열의 학자들은 근대적 프로젝트 일반에 대한 폐기를 선언하면서, 인간의 계몽, 근대적 인식론, 근대적 주체론 등 이른바 근대성의 신화에 입각한 주체에 대한 무효와 해체를 주장한다.
임마누엘 레비나스는 주체의 존재를 절대화한 독일 관념론의 전통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지만, ‘주체의 죽음’을 운운하는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자들과도 선을 긋는다. 주체의 죽음을 선언하는 무리들 역시, 그보다 앞섰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인격성과 타자성, 인간 존재의 윤리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이다.[각주:1]

레비나스의 죽음 이해

레비나스의 죽음에 대한 이해에서 중요한 사실은 (하이데거와는 달리) 죽음이 알 수 없는 실재, 즉 삶의 타자라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레비나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는) 죽음과의 관계가 빛을 통해서 맺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주체가 자신으로부터 유래하지 않는 것과 관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주체가 신비와 관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2] 죽음은 빛의 영역(인식, 경험, 지식) 밖에서 일어나는 경험, 주체가 더 이상 주체가 아닌 관계로부터 도래하는 사건이다: “주체는 이제까지 능동적이었다. 나는 ‘수동성의 경험’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경험은 항상 이미 인식, 빛, 주도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비로서의 죽음은 그렇게 이해된 경험과는 구별된다. 내가 만나는 대상은 파악되고, 간단히 말해서 나를 통해 구성된다. 그런데 죽음은 주체가 그 주인이 될 수 없는 사건, 그것과 관련해서 더 이상 주체가 아닌 그런 사건을 알려준다.”[각주:3] 
하이데거에게 죽음은 내가 주인이 되는, 내가 주도권을 갖고 끝까지 밀어 부치는 그것이었지만, 레비나스에게 있어 죽음은 절대적으로 알려질 수 없는 상황, 다시 말해 빛의 명증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두움이고, 우리를 엄습하고 우리를 사로잡는 그 무엇(타자)이다. 그 상황은 <시간과 타자>를 비롯한 그의 저서들에서 ‘얼굴/미래/여성성/타인과의 만남’등 레비나스 특유의 레토릭으로 전개된다. 특별히 그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전체성과 무한>에서, 레비나스는 소위 ‘얼굴의 현상학’을 전개하면서, 타자는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말한다.[각주:4] 
얼굴은 레비나스에게 있어 현시가 아니다. 얼굴은 물리적 시.공간에 위치를 점하는 감각적인 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얼굴은 우리에게 깊이와 근거를 알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얼굴은 우리를 향해 침투하고 관여한다.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아우성대며 우리의 응답을 촉구한다. 레비나스가 윤리학을 ‘제 1 철학’[각주:5]으로 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타자를 전통적인 인식론적 차원이 아니라, 응답의 차원, 책임의 차원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레비나스가 자살을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도 유용하다. 인간의 주체성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발성이다. 주체란 무엇인가를 자발적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주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도 인간의 자발성의 영역이 아닐까?’라는 물음도 가능하다. 실제로 현대 철학자들 중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몇몇 있는데, 최후의 순간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지켜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이러한 선택에 대해 ‘아니!’라고 답한다. 레비나스에게 있어 인간의 주체성은 자발성과 비자발성에 있지 않다. 책임을 다하는 존재가 주체이다. 죽음은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자기의 책무를 다 했을 때 맞이하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책임의 근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레비나스는 ‘희망’이라 말한다: “주체의 지배가 보장되는 현재에는 희망이 있다. 희망은 일종의 목숨을 건 모험이다”. 계속하여 레비나스는 빅토르 위고의 ‘노틀담의 꼽추’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며 “나는 숨쉰다, 나는 희망한다”라고 선포하는데,[각주:6] 이러한 고백은 전적으로 레비나스의 나치 치하 포로수용소에서의 체험에 기인한다.[각주:7] 

Episode:  아우슈비츠에서 들려온 희망의 근거

필자가 현재 재학중인 시카고 신학교에 올해 나이로 96세인 노학자가 있다. 시카고에 있는 대표적인 진보적 색채의 신학교라 할 수 있는 시카고 신학교와 Northwestern대학 안에 있는 Garrett 신학교에서 유대교를 가르치고 있는 Rabbi Schaalmann 교수이다. 마틴 부버의 제자이고 레비나스와도 교류를 가졌던 분으로 현재 유대교 학자중에는 최고 원로급이며, 그 자체가 교과서인 신화적인 인물이다. 실제로 강의실에 들어가면 text 없이 수업이 진행된다. 학생들이 질문하면 교수님이 대답하는 형식인데, 모든 질문과 어떠한 상상도 허락되는 시간이다. 교수님이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가끔씩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들려주신다;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형제, 자매, 친구들, 가스실, 삶을 차단해 버린 높은 담장과 철조망, 얼굴에 핏기가 없으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되어 끌려가 죽는다. 얼굴에 생기가 있게 비치기 위해 입술을 깨물어 피를 내어 얼굴에 바르는 사람들…
나치는 응징과 공포의 차원에서 몇몇 마음에 안 드는 유대인들을 골라 시범케이스로 교수대 위에 목을 메달아 공개적으로 죽였다고 한다. 그(녀)가 죽을 때까지 나머지 유대인들은 고개를 들고 그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도하면서 교수대 밑을 빙빙 돌아야 한다. 이렇듯 죽음이 선포되고, 집행되고, 확인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우리가 어떻게 신을, 인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라는 피맺힌 절규가 울려 퍼졌다고 Schaalmann 교수는 회고한다. 그때 누군가가 이렇게 외쳤다: “이번에는 우리가 신을 용서할 차례다. 이제 우리의 신을 놓아주자!”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계속 의미를 묻고 질문을 하면서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고 Rabbi Schaalmann은 고백한다. 신을 용서하고, 신을 놓아버리니까 (사실, 그 의미가 정확히 뭔지는 필자는 잘 모르겠다. 96살이 되면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을런지?), 그 전에는 몰랐던 수용소 하늘 만큼의 자유가, 그리고 희망이 여전히 내게 있다는 것이 전해져 왔고, 죽음의 가스실 담벼락을 비집고 난 풀 한 포기 혹은 감방 창살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 아래로 파랗게 낀 이끼들을 보며 여전한 생명에 대한 고귀함과 집착을 느꼈다고 그는 증언한다. 그 힘이 우리를 끝까지 살아남게 했다고 말이다.

레비나스의 책을 읽다 보면 죽음과 자살, 그리고 희망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급격한 비상이 일어나는데, 이는 레비나스를 읽는 독자들에게 난제로 다가오는 대목이다. 이는 다분히 아우슈비츠에 대한 전이해 부족과 유대 신비주의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한 것이라고 Schaalmann교수는 지적한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죽음 경험은 그것을 경험한 대부분의 유대 사상가들에게 그렇듯이, 레비나스에게도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쳐 그가 구사하는 문장 곳곳에 숨어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레비나스는 이런 이유로 “주체의 지배가 보장되는 현재에는 희망이 있다. 희망은 죽음의 언저리에, 죽음의 순간에, 죽어가는 주체에게 주어진다”고 말한 후에 “자살은 모순적 개념”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각주:8] ⓒ 웹진 <제3시대>

  1. 데리다는 자신의 초기 저작인 Writing and Differenc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8) 안에 있는 논문 ‘Violence and Metaphysis: An Essay on the Thought of Emmanuel Levinas’에서 레비나스를 신비적이라고 비판하면서, 레비나스의 타자인식에 대해 분명한 반대입장을 표명한다. 1995년 레비나스가 죽은 후에 데리다는 레비나스를 회상하며 ’아듀! 레비나스’라는 유명한 추모연설을 하는데, 그 내용이 Adieu to Emmanuel Levians(Stand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란 제목으로 책으로 엮어져 출판되었다. 그 대목에서 데리다는 레비나스적 타자 발상을 상당부분 수용한다. 레비나스와 데리다의 타자를 둘러싼 논쟁은 타자 담론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타자를 둘러싼 논쟁사: 레비나스와 데리다를 중심으로(가칭)’라는 주제로 차후에 제3시대 웹진을 통해 발표할 계획을 갖고 있다. [본문으로]
  2. 시간과 타자, 77쪽. [본문으로]
  3. Ibid., 77 쪽 [본문으로]
  4. Levinas, Emmanuel. Totality and Infinity: An Essay on Exteriority. Trans. Alphonso Lingis, Pittsburgh, PA: Duquesne&&#10;University Press, 1969; 레비나스는 ‘전체성과 무한’ 후반부 전체를 ‘얼굴의 현상학’을 테마로 하여 그의 타자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본문으로]
  5. Levinas, Emmanuel. Levinas Reader. Edited by Sean Hand, MA: B. Balckwell, 1989. p.75. [본문으로]
  6. 시간과 타자, 82쪽. [본문으로]
  7. 미국 철학계와 신학계에서 레비나스에 대한 연구는 보통 세 가지 측면에서 전개되고 있다. 하나는 후설-하이데거-레비나스로 이어지는 현상학적인 계보를 따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레비나스에게 영향을 주었던 유대교 전통을 이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레비나스가 직접 경험한 아우슈비츠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영향, 그리고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다. [본문으로]
  8. 시간과 타자, 8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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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교육과 경계 밖 아이들

권유미
(초등학교 교사)

1. 영화의 이야기

화요일 6교시를 마치고 초등학교 3학년 영화(가명)는 4-3반 교실로 간다. 다문화 방과후 교실 수업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영화는 일본인 엄마를 둔 3학년 영신이와 6학년 인중이 오빠, 그리고 얼마 전부터 함께 공부 하게된 중국인 엄마를 둔 효진이를 만난다. 효진이는 지역 복지관에서 영화와 같은 다문화 가정임을 알게 된 아이이다. 효진이의 엄마가 중국인인 것을 알고 영화가 다문화 방과후 교실에 데려온 것이다.

다문화 방과후 교실에서는 선생님께서 중국과 일본의 문화를 알 수 있는 동화책을 읽어 주시고, 엄마 나라 문화와 한국 문화에 대해서 놀이나 이야기를 통해 알려주신다. 배운 내용을 우리가 직접 따라하기도 하고 가끔은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게임할 때가 재미있다. 그래도 가장 좋은 건 맛있는 간식을 항상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엄마와 아빠는 중국 연변의 조선족이다. 중국 연변 출신인 할머니가 한국인 할아버지와 국제결혼을 하면서 할머니와 함께 엄마 아빠는 한국에 왔다. 어릴 적에는 시골에서 엄마와 아빠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고부터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의 얼굴 보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할머니는 한국인 할아버지와 결혼해서 한국인이 되어 살고 있지만 연변 출신인 엄마와 아빠는 한국인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학교를 들어갈 나이가 되고 난 이후에는 할머니가 영화를 친손녀라고 하지 않고 데리고 온 아이 업둥이라고 이야기하며 함께 지낸다. 법적인 자녀로 입양을 하려고 했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연세가 너무 많아 입양을 할 수 없다. 영화는 현재 엄마와 아빠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고아 상태이다. 결국 할아버지가 영화의 후견인으로 함께 살고 있다. 엄마와 아빠가 있지만 이주 노동자의 자녀가 아니라 할머니의 국제결혼가정의 업둥이 손녀로 영화는 다문화가정의 자녀임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게 훨씬 더 안심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지금 연변에 가 있다. 어른들은 엄마가 왜 연변에 가 있는지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6개월 후면 다시 한국에 올꺼라고 하신다. 엄마가 보고 싶다.


2. 학교 안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


가.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

2008년 다문화가정 자녀의 초․ 중등학교 재학생의 수는 2만명을 넘었다. 국제결혼가정 자녀 1만 8700명, 외국인 근로자가정 자녀가 1400명으로 2007년에 비해 각각 39.6%, 15.9% 증가했다. 이중 국제결혼가정 자녀는 2006년 2만5000명에서 2007년에는 4만4000명, 2008년에는 5만8000명으로 증가했다. 2008년의 경우 6세 이하가 57.1%를 차지한다.[각주:1] 현재까지는 국제결혼가정 자녀 중 상당수가 취학 이전 단계에 있으나 앞으로 초중등학교에 다닐 다문화가정 자녀가 계속 늘어날 것임을 예측하게 한다. 국제결혼이 2000년 이후에 급증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학령기 아동은 향후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이주한 여성의 출신국이 점차 다양해지면서 외모나 문화, 교육에 관한 사고 및 지원방식이 한국과는 크게 다른 국가 출신의 결혼 이주자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국제결혼가정 어머니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국제결혼으로 만들어지는 다문화, 다민족 현상은 한국 사회에 또 다른 소외 계층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그로 인해 다양한 사회 문제가 발생되고 있다. 이로 인한 여성 결혼 이민자와 그들의 자녀들은 사회․ 문화적인 편견 속에서 적응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어머니가 자녀교육을 담당하게 됨으로써 자녀양육에서의 문제뿐만 아니라 학교 입학 준비 및 가정교육 지원 부족으로 인한 자녀의 학교생활 부적응 문제를 초래하는 것으로 보고된다.[각주:2]

이는 한국어를 잘하는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 자녀가 그렇지 못한 경우의 자녀에 비해 학교생활에 만족하고 학교 공부를 재미있어 하는 비율이 더 높은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자아정체성, 또래관계와 같은 정의적인 측면에서도 어머니의 언어능력, 가족의 교육적 지지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2007년 자료에 의하면 여성 결혼 이민자는 총 94,966명이며, 국적별로는 한국계 중국인 31,899명, 중국 22,835명, 베트남 20,140명, 일본 5,436명, 필리핀 4,751명이다. 이들의 자녀들은 1997년 국적법 이후 한국 국적을 가지게 되었으며,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취학과 의무교육 등의 교육적 측면에서도 내국인과 동일한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국제결혼 가정 자녀의 취학 현황을 보면, 지역별 학생 수는 경기(24.2%), 서울(11.2%), 전남(9.6%), 전북(8.4%), 경북(7.6%)의 순으로 초 87.1%, 중 9.5%, 고 3.4%로 아직은 초등학생이 대부분인 것을 알 수 있다.[각주:3] 

이들 자녀들이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부분은 학교생활의 언어능력의 부족, 정체성의 혼란, 정서적 충격으로 보여지며, 이는 많은 현황 보고 자료에 의하여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는 국제결혼가정 2세들은 말을 배우는 가정 중요한 시기인 유아기에 한국말이 서투른 외국인 어머니의 교육 하에 성장하기 때문에 언어 발달이 늦고 의사소통에 제한을 받는다. 이에 따른 언어 능력의 부족은 학습 부진을 초래하고 있다. 일상적인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독해와 어휘력, 쓰기, 작문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국제결혼 가정 자녀들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기도 한다. 어느 조선족 어머니는 자녀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조선족은 한국 사람도 중국 사람도 아니거든요. 그 가운데서 이 문화도 저 문화도 아닌 조선족 문화를 가지고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한국문화를 완벽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거든요. 그러니깐 생각이나 사상이 많이 다른 상황이예요.”

그러나 자녀들은 약간 다른 위치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는 비교적 국제결혼가정의 자녀의 상황을 별반 다르게 느끼지 않고 어머니의 문화에 대해서 오히려 더 호감을 가지고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어머니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사실과 정체성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외부의 타자들이 어머니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국제결혼가정 자녀가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나. 외국인 근로자 가정의 자녀

불법체류자를 포함한 등록 외국인 중 취학 연령대인 7세 이상 18세 이하는 17,287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외국인 학교 재학생 7800명을 제외하면 국내학교 유입 가능 인원은 약 9500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국내 학교 재학생은 1574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약 8000명의 불법체류자의 자녀들이 학교 밖에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저개발국의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 가정의 경우에는 거주지의 불안정, 경제적 어려움, 신분노출 우려 등의 이유로 자녀를 정규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료에 의하면 학교에 다니지 않는 이유로 ‘돈을 벌기 위해서’(35%), 한국말을 못해서(20%), 불법체류 아동이기 때문에(15%) 등으로 나타난다.

학교를 다니고 있는 150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 자녀는 학교 적응 양상에 있어서 제시한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언어 능력 부족으로 말미암아 학습부진의 정도가 심각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며, 집단 따돌림 등으로 건강하지 못한 정서적 충격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모국에 대한 긍지를 상실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특히 외모만으로는 외국인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외국인노동자 자녀의 경우 한국 생활에 적응해가면서 자신의 국적을 창피해하며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나이에 맞지 않는 학년 배정의 문제로 있다. 부족한 한국어 실력으로 인해 2~3살 어린 같은 반 한국학생들에게 반말을 듣거나 성적이 낮게 나와 상처를 받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사를 잘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학급 생활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학교를 결석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다. 새터민 가정의 자녀

새터민의 학생의 경우, 낮은 취학율과 높은 중도 탈락률은 자녀 교육의 커다란 문제로 지적된다. 새터민 가정 자녀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85.7%인데 비해, 중학교 취학률은 49.1%, 고등학교 취학률은 6.6%이다. 2004년 자료에 의하면 새터민 가정의 학생의 수는 801명이고 이중 학력이 취학률은 303명으로 37.8%를 보이고 있다. 새터민 학생에게 가장 큰 고민은 ‘학교성적(73.9%)인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중학생이 학교성적에 대한 고민이 크고. 초등학생의 경우 ’말씨가 다른 것(20.6%)이 성적 다음으로 많이 차지한다.

3. 다문화 교육의 정책 현황

자료는 서울대학교 중앙다문화 교육 센터에서 연구된 2007년 박성혁 외의 ‘우리나라 다문화 교육정책 추진현황, 과제 및 성과분석 연구’ 와 조영달(2007)의 ‘다문화 교육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 인식 조사’를 참고하였다. 다문화 정책 전반에 대한 각 시행주체별 교육 정책 빈도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표> 정책사업의 목적과 대상에 따른 다문화정책 사업 빈도분포

교육인적자원부는 2006, 2007년 ‘다문화 가정 자녀 교육지원 대책’을 발표하였고, 각 시도 다문화교육 센터를 설립하여 세부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였다. 또한 2007년 2월 28일 개정 고시된 교육과정에는 이전 교육과정에서 나타난 단일민족주의 관점을 지양하고 교과서에 다문화와 인권 내용을 강화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르면 다문화가정의 자녀 중 상당수가 한국어 능력 부족 및 한국문화 부적응으로 인해 학습 부진과 사회적 편견에 따른 정체성 혼란을 경험하고 있으므로 복지 차원에서 교육 양극화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근거하여 시․도 교육청에서는 실행 방안이 담긴 2008년, 2009년 ‘다문화 가정 학생들의 지원 계획’을 발표하였다.


4. 학교와 교실, 작은 사회 속에 맡겨진 과제

현재 다문화 가정 자녀가 재학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다문화 가정 학생들의 지원 계획’에 따라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행정적 지원을 통해 한국어 교육 및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다문화 담당 교사를 선정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자 하나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방과후 프로그램이 제대로 개발 ․ 보급되어 있지 않아 운영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또한 다문화 가정 자녀들은 개별 가정에 따라 문제를 겪고 있는 정도가 달라 일괄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고, 다문화 가정 학생의 상황에 맞추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해야 한다.

다문화 교육은 학습 부진이나 사회적 편견에 따른 정체성의 혼란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일반 학생들과는 다른 가정적 배경과 환경을 갖고 있으며 교육 문제의 원인 또한 일반 학생들과 다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별도의 교육과정과 프로그램이 연구되고 마련되어야 한다.

학교 안에서 다문화 가정의 자녀를 위한 교육은 학기 초 다문화 가정 조사서를 통해 대상 학생 수를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다문화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정의 자녀가 다문화 가정의 자녀임을 들어내기를 꺼려하는 부모들이 많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라는 이유로 학교생활에 적응에 어려움을 보일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다문화 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한 분리 교육은 그로 인한 낙인감과 같은 두려움을 제거하면서 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학교생활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담임 교사나 학교 구성원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일반 가정과는 다른 문화적 환경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들을 예상하고 배려하는 학교 교육의 차원이 필요한 것이다.

교실은 아이들이 살아가는 작은 사회이다. 각각의 모두 다른 존재들은 저마다의 특별함을 가지고 그 작은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역시 일반 가정의 자녀와는 다른 문화적 배경과 환경을 가진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의 구성원이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어린 시절 사회화의 과정에서 다름에 따른 차별의 시선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받는 경험을 교실 안의 작은 사회 통해 느끼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학교와 교실에게 맡겨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교사에게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역시 돌봄과 가르침을 통해 만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웹진 <제3시대>

  1. 행정안전부(2008), 2008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실태조사. [본문으로]
  2. 이재분(2008), 다문화 자녀 교육 실태 연구:국제결혼가정을 중심으로, 한국교육개발원. [본문으로]
  3. 조영달 외(2007), 다문화교육 정책수립을 위한 기초 인식조사 연구, 교육인적자원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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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
-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대한 한 신학자의 응답

김기석(신부, 성공회대 교수) 지음

판형 : 신국판변형(148*210)
분량 : 256쪽
값 : 13,000원
출판사 : 도서출판 동연
출간일 : 2009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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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 해석학 - 구약성서 안에 있는 <보충기록들>

▷ 지은이 : 크리스토프 레빈(Christoph Levin)
▷ 옮긴이 : 원진희
▷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 출간일 : 2009년 11월 6일
▷ 장르 : 종교/기독교 신학/구약학
▷ 쪽수 : 670쪽
▷ 판형 : 신국판
▷ 가격 : 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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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의 기독교 신학 - 편견을 넘어서 소통으로

지은이_ 장윤재
분야_ 인문/기독교
발행일_ 2009년 10월 6일
쪽수_ 368쪽
값_ 20,000원
펴낸곳_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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