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삽질과 그 대응에 관한 단상

정혁현
(한살림교회 목사 | 본 연구소 운영위원)


이 땅을 흐르는 가장 큰 네 개의 강이 온통 파헤쳐지고 있다. 이른바 ‘4대강 살리기’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공사판 때문이다. 삽질이다. 토건행위로서의 삽질은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독자적인 삶의 환경을 구축해온 인간에게는 앞으로도 일정하게 필수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삽질이 인간의 생물학적 존재 조건 자체를 파괴하는 정도로까지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4대강 살리기’란 강들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강의 죽음, 혹은 심각한 질환이란 무엇인가? 또한 강을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면 대체 강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녹색성장’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진행되는 4대강 사업의 핵심은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강 자체를 관광 생태 사업의 소재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 강의 생명이란 인간에게 필요한 물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강의 능력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물을 대량으로 필요로 하는 산업자본, 나아가 강의 풍광을 상품으로 만들어 낼 관광자본의 요구에 부응하는 강의 능력이다. 강이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여 어서 건강해져서 이러한 인간의 욕망에 부응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좋다. ‘4대강 살리기’가 그간 강이 우리에게 제공해왔던 것을 초과하여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면 왜 공연히 시비를 걸겠는가?

그런데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주체인 MB정부가 정말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지 말이다. 정말 그들은 믿고 있는 것일까? 강의 환경이 좋아져 깨끗한 물이 넉넉하게 흐르게 될지, 그리하여 온 국민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이 몸과 마음의 휴식을 위하여 기꺼이 찾을만한 환경상품이 될지를 말이다. 그들이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할 만한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결정적 증거’는 사업의 졸속성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4대강을 살리는 사업은 좋은 일이다. 정말 그렇다면 시간과 노력만 들인다면 얼마든지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욱이 4대강은 한반도의 생명줄이라고 할 정도로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물론 다양한 생명들에게도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 하더라도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물은 더 깨끗해질지, 이 사업의 결과가 미치는 인간의 삶의 질과 다양한 생명체들의 환경 조건은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따지고 또 따져야 한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수정되고 또 수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바람직한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태도로 보면 그들이 확신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들이 세운 계획이 조금도 수정되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삽질이다. 여기서 삽질이란 허튼 짓, 곧 뻘짓한다는 말이다.

그들의 이 ‘무대뽀’ 확신과 뻘짓거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이러한 판단이 생태적 판단에서도, 산업이나 복지적 판단에서도 심지어 경제적 판단에서도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확신은 오직 정치적 판단에서 온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4대강사업은 MB정권에게 결코 삽질이 아니다. 다시 말해 4대강 사업의 진정한 성격은 MB정권의 성격 그 자체로부터 판단되어야 한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전선의 강화이다. 신자유주의는 투기적 금융자본의 무한자유와 노동자 저항의 분쇄를 통해 자본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노동자 착취동맹이자 축적위기 대응동맹으로서의 정체체제이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4대강사업은 20조가 훨씬 넘는 세금을 건설자본에 이양하는 폭력적 축적과정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이 자금은 다시 부동산을 비롯한 다양한 투기산업으로 넘어가 또 다시 인민의 재산을 손도대지 않고 등쳐내는 효과를 발생시킬 것이다. 투기적인 금융활동이 경제지표를 결정적으로 규정하는 사회, 부가가치의 대부분이 성실한 노동과 열정적인 연구개발에서 오지 않고 투기활동에서 오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남의 육체와 정신 그리고 재산을 후려내는 정신성이야 말로 건강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칭송될 것이다. 즉 4대강 사업은 MB정권과 같은 반민주적 신자유주의 정권의 지속을 위해 가장 적절한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적 조건을 창출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MB정권은 자신들이 내세우는 사업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4대강사업을 되돌릴 수 없도록 저질러 놓으려는 것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자연환경이 아니라 정치환경이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4대강사업은 ‘자연환경파괴’가 아니라 ‘정치환경파괴’ 사업으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사업의 목적은 온 국민의 정치의식을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에 포섭 혹은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 사업의 문화적, 생태적 측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결정적인 문제가 정치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이들의 구호가 온통 환경과 생명의 문제에 집중되어있는 현상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4대강사업 반대 운동의 최전선에 ‘살생금지’를 주요계율로 받아들이는 불교인들을 중심으로 종교인들이 포진해있다는 점은 이를 반증한다. 또한 진보적인 매체들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하기 위해서 취하는 주요 선전 전략은 지금 현재의 4대강이 ‘있는 그대로’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리는 것이다. MB정권은 4대강사업의 진정한 성격을 감추고 있고, 반대세력은 그 정치적 성격을 읽지 못하고 있다. 이래저래 4대강사업의 진정한 성격은 애매모호한 자연과 영성이라는 주제의 한계 속에서 은폐되고 있다. 자연과 영성이라는 이슈의 탈정치적 성격이 결국에는 현실타협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의 아름다움, 즉 강의 의미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할 수 있을까? 생활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강의 아름다움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인간의 환경조건을 결정하는 강은 결코 ‘있는 그대로’ 아름다울 수 없다. 강은 어떤 이에게는 마실 물이며,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의 공장이나 농장에서 활용할 공업 및 농업용수이다. 또 매년 범람을 겪어야 하는 어떤 이에게는 끔찍한 재앙이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경치이자 휴식의 공간이다. 또한 생명 그 자체의 절대적 무의미를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이들에게 강의 의미는 종교적인 것으로 고양되기도 한다. 강의 의미는 다양하며 이 의미들 사이에는 서로 타협할 수 없는 적대성이 가로 놓여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강이 그 영향권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는 정치적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자연으로서의 강은 엄밀하게 말해서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4대강사업은 바로 강이 가지고 있는 이처럼 다양한 의미를 정치적으로 독점하여 배타적으로 활용하는 행위로 파악되어야 한다. 결국 4대강문제는 자연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들에게 전개되어야 할 사회적 정의의 문제이다. 즉 강의 다양한 의미를 일정한 보편성을 갖고 분배하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의 문제라는 것이다.

조금 더 복잡한 문제로 들어가 보자. 4대강사업으로 파헤쳐지는 강과 연안에서 다양한 생명들이 죽어가고 그 곳을 떠나간다. 만일 4대강사업이 정부원안대로 완성된다면 강과 그 주변의 종다양성은 분명 빈곤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생명체들의 생명권을 위해서 이 사업에 반대하는 것인가? 우리는 강을 생명의 어머니, 초월적인 신화적 존재로 모시기 위해서 환경파괴에 반대하는 것인가? 나는 인간의 인권과 생명체들의 생명권을 평등이라는 동일한 지평에서 파악하는 순간부터 인간의 문명은 혼란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며, 바로 이 인간의 혼란이 회복불가능한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문명은 바로 이러한 자연과 문화의 폭력적인 단절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야 말로 프로이트가 『문명과 그 불만』에서 통찰한 바가 아닌가?

물론 나는 다른 생명체들의 생명가치가 인간 생명의 가치에 비해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세계는 의미의 세계인 반면, 자연 그 자체는 인간의 의미의 잣대로 파악 불가능한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은 결코 동일한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이다. 하지만 대개의 인간들은 자연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영화 <아바타>가 보여주듯이 인간과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오인한다. 이런 오인은 물론 인간의 인식조건인 ‘동일시’에서 온다. 그러나 동일시 할 수 있는 능력도 오직 인간에게만 있다. 자연은 결코 인간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자연은 오직 물리화학의 법칙, 그리고 생명 그 자체의 동인에 의해 생존하고 사멸할 뿐이다.

인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물학적 존재로서 생태계의 사슬 안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슬 안에서만 그 생물학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의 의미는 그 생태적 존재에서 파악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초과한다. 만일 우리가 이 초과분이 갖는 의미를 가볍게 여긴다면 시쳇말로 “인생 뭐있어?”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삶의 의미 이것은 인간의 삶에서는 결정적인 문제인 반면 다른 생명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시대의 웰빙 열풍이 이와 같은 인간 삶의 의미가 갖는 독특한 차원에 대한 몰인식 혹은 근원적인 회의에서 오는 일종의 허무주의라고 생각한다. 웰빙이라는 구호의 근원적인 허무주의는 그것의 관심이 인간의 생물학적 생명과 건강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웰빙 열풍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인생 뭐있어? 건강하고 오래 살면 되지.” 물론 자본주의 시대에서 인간의 건강과 장수의 강조는 고급 상품을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주체를 훈육한다는 의미에서 지극히 이데올로기적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인 동시에 이 생물학적 생명을 넘어서는 초과적 삶의 존재라는 이중성 속에서 자연과 관계 맺을 수밖에 없다. 순수하게 인간적인 삶의 의미는 바로 이 초과적인 삶에 있다. 그러나 이 초과적인 삶은 생물학적 존재로서만 가능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로서만 초과적인 삶을 살 수 있음에도, 역설적으로 초과적인 삶이 결코 자신을 생물학적 생명의 법칙에 종속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인간의 이중성 사이의 관계는 결코 평화롭지 못하다. 결정적인 시점에서, 즉 생명의 요구가 초과적인 삶의 포기를 강요할 때, 이 둘의 관계는 적대적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초과적인 삶은 자신의 근거인 생물학적 생명을 배신하거나 파괴하기도 한다. 최근 4대강사업에 반대하여 자신의 몸을 불사른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은 그 단적인 실례가 아닌가?  어떤 생명도 자의로 이렇게 하지 못한다. 물론 인간은 대체로 이 초과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생물학적 존재로서 자연의 풍요로운 존속 가능성에 유의한다. 하지만 다른 생명체들은 자연과 이렇게 관계 맺지 못한다. 그들은 어떤 생명체이든 조건만 허락한다면 다른 생명의 존속 가능성에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종을 파국에 이를 때까지 확장시킬 것이다. 공룡의 멸종은 그 단적인 예가 아닌가? 인간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지구상의 일정 지역에서 탄생하여 자신과 함께 다른 종을 파국에 이르게 한 생명체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조건만 되었다면 말이다.

오늘날의 환경문제는 인간이 바로 이러한 조건을 스스로, 곧 인공적으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더욱 강조되어야 할 점은 생물학적 존재로서, 오로지 종의 존속과 확산에 눈먼 자연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다. 강조되어야 할 점은 인간과 자연의 (불가능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의미를 구성하는, 자연을 초과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자신의 생물학적 생명을 삶의 의미를 향한 기반인 동시에 도구로서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로서의 인간 말이다. 인간은 오직 자연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존재로서만 인간이 만든 생태적인 재앙에 대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필연적으로 자연의 의미를 정의롭게 분배하는 과정으로서의 정치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인간을 자연의 청지기로 자리매김하는 창조신학의 본뜻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창세기의 사유를 ‘인간중심주의적’이라고 매도한다. 이러한 입장은 창조신학에 대한 사유의 빈곤이거나 오늘날 세계가 봉착한 위기의 ‘속죄양’을 찾으려는 책임회피일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자연을 초과하는 존재로서 생태의 폐쇄회로 속에 있는 자연의 의미를 개방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자연은 비로소 전혀 새로운 가능성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배타적인 ‘인간중심주의’ 안에서는 파멸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의 자기 한계를 극복하는 자연의 돌출점이라는 특이성을 갖는다. 인간은 자신의 통합 불가능한 이중성 안에서, 이 이중성을 부정적인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의 터전으로 인식하는데, 하느님은 이와 같은 부정이 긍정으로 변화하는 기적적인 도약의 순간에 관한 이름이기도 하다. 그 역도 가능하다. 하느님은 인간의 ‘자기중심주의적’ 긍정이 무의미의 심연으로의 전락하는 순간, 즉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깨닫는 부정적인 순간에 관한 이름이기도 하다.

파괴적인 4대강 사업은 물론, 인류가 직면한 생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신화적 상상력이나 동일시의 환상에 기초한 자연과의 (불가능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강조되어야 할 것은 동일한 잣대로 측정할 수 없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근원적인 차이이다. 원시 혹은 고대적 사유로는 우리가 직면한 위기에 결코 대응할 수 없다. 그것이 ‘오래된 미래’라는 생각은 치명적인 망상이다. 대량파괴 테크놀로지를 가진 원시 혹은 고대인을 상상해보라. 돌아갈 길은 없다. 이 위기를 낳은 것도 인간의 지성이지만 이 위기를 돌파할 인간적 능력 역시 오직 끝까지 사유하고 행위 하는 지성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환경위기에 관한한 이러한 지성은 정치적인 방식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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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습격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저마다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
―「창세기」 6장 2절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했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은 다섯 개 묵시록의 묶음집인 『에녹1서』의 첫 번째, 「파수꾼의 책」에서 매우 흥미롭게 해석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들’은 ‘타락한 천사’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타락했다는 생각이 역사 속에 등장한 것입니다. 신의 영역은 거룩하며 정의롭고 완전무결(完全無缺)하다는 일반적인 믿음이 붕괴되고, 그곳조차 부패하여 죄로 오염되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왜 그런 생각이 침투하게 된 것일까요. 이 물음은 그 시대에 대한 물음과 함께 해명할 때 보다 설득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여러 견해들 가운데, 제가 주목하는 시기는 헬레니즘 제국 시대,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제국이 팔레스티나를 지배하던 기원전 3세기입니다. 우선 사람의 아들들이 땅의 여자들과 결혼하여 네피림을 낳았는데 그들은 ‘용사들’이었다는 「창세기」 6장 4절은 하나의 단서입니다. 얼핏 보아도 그리스 신화들과의 유사성이 돋보입니다. 신과 영웅 사이의 긴밀한 연계는 지중해 세계에서, 그리스 신화의 두드러진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문화권의 제국인 마케도니아의 통치자가 세계의 지배자가 된 이후, 이러한 그리스적 영웅 숭배는 의례로서 발달하게 됩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제국은 그 전형적 예를 보여줍니다. 이 국가의 창건자는 자기를 ‘소테르’라고 불렀지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자신을 숭배하는 국가의례를 발전시켰음을 시사합니다.

물론 라이벌 국가인 셀류커스 제국도 그런 점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이 나라의 한 통치자는 자신의 이름을 ‘에피파네스’라고 불렀습니다. ‘화육(化育)한 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나는 에피파네스가 팔레스티나를 지배하고 자신에 대한 숭배를 제도화하던 시기인 기원전 2세기 초보다 프톨레마이오스 제국이 팔레스티나를 지배하던 기원전 3세기가 신의 영역에 대한 불신이 생겨난 시기로 봅니다. 그것은 에피파네스의 시대에 제국과 유대 족속 사이에는 군사적 분쟁이 일어났는데, 「파수꾼의 책」은 군사력에 의한 폭력보다는 경제적인 압박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제국 시대 팔레스티나는 평화로웠습니다. 또한 경제적 발전이 두드러졌습니다. 특히 국제무력이 전례 없이 활발해집니다. 이것은 계층분화를 급속화시켰고, 특히 노동에서 자유로운 소자산가층의 범위를 크게 확대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한데 제국 수도에서 시행되던 대대적인 도서관 건립 과정에서 제국 전역에 서기관의 수효가 크게 늘어나고, 소자산가층에서도 문자 전문가인 서기관이 굉장히 많이 배출됩니다.

팔레스티나에서도 이런 현상은 예외가 아니었고, 바로 그 무렵에 지혜문학들이 활발하게 저술됩니다. 그것은 특히 사회를 보다 광역으로 통합하는 지식체계가 체계화가 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지혜운동을 통해 유대적 야훼신앙 사회는 옳고 그름, 아름답고 추함, 현명하고 어리석음 등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한데 동시에 「욥기」나 「전도서」 같은 비판적 지혜들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는 것을 주시하기 바랍니다. 전에 말씀드린 대로, 그것은 일반적인 지혜의 가르침과는 달리,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경건한 이가 재앙을 겪고, 불의한 이가 풍요를 누리는 사회, 그런 일이 너무나 흔하다는 문제의식이 이들 비판적 지혜의 공감대였습니다.

바로 이런 비판적 지혜가 회자되던 시기에, 묵시적 문서들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묵시적 문서들이 그 부조리함을 제기하는 방식의 하나를 천사의 타락에 관한 「파수꾼의 책」의 해석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천사장 아사엘이 ‘신의 비밀’, 특히 야금술을 사람들에게 발설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벌였고, 또 장신구를 만들어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 둘은 서로 맞물리는 현상입니다. 전쟁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향락을 위한 욕망의 산물입니다. 많은 통치자들이 내걸었던 방어적 전쟁 이데올로기는 명분일 뿐입니다. 욕망은 전쟁을 낳고, 전쟁은 더 강한 욕망을 불러 일으킵니다. 전쟁과 욕망의 악순환이 역사를 비극으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신의 비밀을 가지게 된 인간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문명사적 원리가 되었습니다. 네피림, 신이기도 하고 인간이기도 한 중간적 존재인 영웅들이 중심에 있고, 모든 인간이 그 원리의 충실한 수행자입니다. 묵시가는 이 문명사적 원리 아래 모든 이들이 자기 파괴를 향해 치닫고 있음을 직시합니다. 그 욕망의 질주는 자멸의 질주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이는 그것을 종말적 심판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한데 그것에 제동을 걸 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천사 아사엘은 심판을 받지만, 그 종말을 되돌이킬 이는 부재합니다. 어느 인간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천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신조차도 불가능합니다. 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재앙 이후 역사를 다시 시작하는 것뿐입니다. 욕망의 침입은, 그 절정에 이르면 이렇게 환원 불가능한 파멸로 인간을 몰아간다는 것, 이것이 프톨레마이오스 제국 시대, 그 욕망의 질주 시대를 맞아 「파수꾼의 책」을 저술한 한 묵시가의 문명비평적 고언입니다.

‘한나라당의 독주에 제동을 건 시민의 승리.’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많은 이들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저 역시, 대반전의 스팩터클을 통해 드러난 선거 결과에 고무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난무했던 전화여론조사가 퍼뜨린 위장된 여론의 정치가 얼마나 심각한 맹점을 갖고 있는지를 공부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시대의 징후가 있습니다. 천안함의 정치, 과학주의의 형식을 빌려 전 세계를 향해 타전된 북한 테러리즘에 대한 폭로의 정치가 뜻밖에도 한국의 시민사회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이른바 ‘북풍’은 무력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의 해석에 의하면, 정부가 주도한 천안함의 과학주의적 네러티브가 신냉전주의로 귀결되는 것에 시민사회가 주저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데 나는 시민사회가 북풍에 휘둘리지 않은 것이 과연 신냉전주의에 대한 반대로 인간 것인가에 의문을 품습니다. 즉 이데올로기적 견해 차이가 주된 이유라는 해석에 공감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줄곧 민주화 이후 우리의 시민사회가 과하게 시장화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해 왔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소비사회는 역사적으로 민주화와 겹쳐있고, 이는 민주화가 소비사회적 요소들과 분리할 수 없이 얽히면서 제도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소비사회는 우리를 욕망의 존재로 호출합니다. 그리고 욕망은 우리들 개개인의 사적 취향을 극도로 고양시킵니다. 정부는 국민의 이런 고양된 욕망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썼고, 오히려 욕망을 부추기면서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려 했습니다. 그 맥락에서 민주적 제도화의 과정에 자본의 개입은 너무 강했습니다. 자본은 민주화에 의해 거의 제동되지 않은 채 시민의 영혼 속에 들어와 욕망을 마구 부추겨댑니다.

소비는 급속도로 커졌고, 신용카드의 활성화는 욕망을 소비하는 능력을 크게 진작시켰습니다. 부동산의 거품은 신용카드 부채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였고, 동시에 더 엄청난 규모의 채무자의 대열로 우리를 불러 세웁니다.

이때 부채는 개인의 능력으로 해석되었습니다. 근데 이 개인의 능력이 동시에 재앙이기도 하다는 것을 직시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IMF 재앙은 부채의 공포를 직시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시민사회는 욕망 억제의 전략보다는 분출의 전략을 통해 위기 타개의 비전을 갖도록 국가와 시장으로부터 부추김 받습니다.

이렇게 부동산 거품을 통한 욕망 분출의 공식은 이제 거의 모든 ‘우리들’의 삶의 전략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이러한 욕망에 의해 달리는 무한궤도의 열차가 되었습니다. 한 사회학자는 어떤 계산법도 이 질주하는 욕망의 열차에 제동을 걸 수 없다는 비관적 진단을 내립니다. 이제 이 열차에 제동을 걸 사회적 주체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그럴 능력이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재앙 혹은 기적이 있을 뿐......

어쩌면 이번 선거도 그런 해석에서 그다지 벗어나 있지 않다는 해석을 내려야 할지 모릅니다. 시민사회가 선거를 통해 보여준 것은 MB 정부의 토건주의적 행보에 제동을 건 것이 아니라, 신냉전주의적 정치의 호전성이 담고 있는 정치적 불안에 대한 반대인지도 모릅니다. 혹은 정부의 일방적 토건주의 정치가 오히려 더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대인지도 모릅니다.

해서 나는 MB 정부의 토건주의에 대한 우려 못지 않게 우리 자신의 욕망 분출의 전략에 대해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욕망을 절제하는 삶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MB의 토건주의를 좌초시키는 데 성공할지라도 우리는 또 다른 ‘MB’를 불러오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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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 특별기고[각주:1]
: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해체론적 독법 (I)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한국의 천안함 침몰 발표

 

얼마 전  (2010 5 20) 저는 천안함 침몰에 대한 한국정부의 공식 발표를 인터넷을 통해 접했습니다. 천안함 침몰사고 원인을 조사해온 민군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 폭약 250kg 규모의 중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합조단은 북한 어뢰가 분명하다고 주장하며 '북한체 글씨 1'이 새겨진 어뢰 추진부 뒷부분을 결정적 증거물로 제시하더군요. 합조단은 또한 "100m 높이 물기둥 봤다...수병 얼굴에 물 튀었다"라고 하면서 천안함 침몰의 직접원인을 어뢰에 의한 폭발임을 재차 강조하였습니다. 곧이어 청와대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 군 통수권자로서 결연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 응분의 책임을 묻기 위한 단호한 (대북 제재) 조치를 곧 결심할 것이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

 

나는 대표적인 한국의 수구언론이라 알려진 조선일보의 반응이 궁금해졌습니다. 조선일보는 國論 하나로 모아 안보 비상 상황 넘자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사설을 달았습니다: “정부는 오늘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한다. 대한민국은 이 발표 위에 서서 국가적 차원의 비상(非常)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북한이 어뢰로 우리 군함을 두 동강 내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사실상 대한민국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이런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훗날 더 큰 도발을 부를 수 있다.”[각주:2]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발표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일련의 한국정부와 한국사회의 대응을 접하면서 나는 몇 해전에 있었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오버랩되면서 머리끝이 쭈뼛해졌습니다. 2003년 봄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감행하며 내세운 명분은 이라크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숨겨져 있어야만 하는) ‘대량살상무기제거였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를 뒷바침하기 위해 부시는 2003 5월에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합니다: “For those who say we haven’t found the banned manufacturing devices or banned weapons, they’re wrong, we found two trailers. Them being Iraq’s supposed mobile bio weapons labs”[각주:3] (금지된 생산장비나 금지된 무기를 찾지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틀렸습니다. 저희는 2대의 트레일러를 찾아냈습니다. 그것들은 이라크에서 이동화학실험실이라 알려졌던 것을 말합니다)

2006 4 12일자 워싱턴 포스트는[각주:4] 미 정보관리들이 당시 부시의 발표가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전하였습니다. 이 문제에 관여했던 한 정보관리의 증언에 의하면 정보국에서 문제의 2대의 트레일러가 화학무기 제조와 상관이 없는 것임이 밝혀졌다는 보고를 부시에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은 이를 묵살하고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허위 발표를 했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트레일러는 기상관측용 기구에 수소가스를 주입해 띄우는 시설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당시 조사관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 화장실(the biggest sand toilets in the world)’로 불렀던 사실로 미루어 분뇨탱크, 즉 똥차가 아니었을까 재치있게(?) 추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똥차였다면 코메디같은 일이죠. 아니 코메디보다 더 웃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평화 유지를 위한 지구방위대 미국이 이라크에 있는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위해 장엄하고 숭고하게 깃발을 올리고 진군을 하는데 그렇게 고대하던 대량살상무기가 고작 똥차 2대였다니……이건 정말이지 거침없이 지붕뚫고 하이킥보다 더 웃긴 시트콤 아닙니까?

 

물론 당시는 부시가 재임된 이후였고 후세인도 체포된 다음이었습니다. 차기 대선을 위한 공화.민주 양당의 밑그림이 그려질 무렵이었죠. ‘대량살상무기제거라는 이라크 침공에 대한 정당성은 이미 허구였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였으니 새삼 놀랍거나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부시와 그 일당들의 악랄함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던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이 그 엄청난 거짓을 가능케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처벌 내지 문제제기 없이 부시와 그 일당들은 어떻게 무사히 그 시기를 넘어갈 수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미국의 정치가들이 섹스스캔들 혹은 뇌물스캔들로 정치적 생명을 접는 경우가 허다한데, 수 백만명의 생명을 담보로 벌이는 전쟁의 명분을 거짓으로 조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부시는 무사할 수 있었을까?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힘이 있음을 직감케하는 대목입니다. 정녕, 부시를 지지했던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 세력의 영발에 경의를 표해야 하는것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설명해 내야 합니다.

 

지젝에 묻다

 

합조단에서 발표한 어뢰 추진부 뒷부분에서 새겨져 있다는 북한체 글씨 1과 부시가 말하는 대량살상화학 무기를 탑재한 트레일러 2는 한국과 미국 사회에서 동일한 기표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요즘 뜨고 있는 슬라보예 지젝은 이데올로기와 기표 사이에 작동하는 함수관계를 폭로하면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의 초기작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1989)은 바로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각주:5] 지젝에 의하면 기표란 단지 떠돌아 다니는 무엇입니다. 기표들이 풀려있다가 어떤 이데올로기적 매듭에 의해 통일된 장으로 구축된다는 것이죠.[각주:6] 그렇게 고정된 기표들의 세계를 라깡은 큰 타자라 부릅니다. ‘큰 타자는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상징적 질서의 권위가 우뚝 발기되어 있는 그 무엇입니다. 지젝은 그런 것은 없다고 하면서 조소를 날립니다.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아래와 같은 재미있는 예화를 들죠.

 

두 남자가 기차에 앉아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물었다.

저기 짐칸에 있는 꾸러미가 뭡니까?”

, . 그것은 맥거핀(MacGuffin)입니다.”

맥거핀은 뭐죠?”

그건 스코트랜드 고원지대에서 사자 잡을 때 쓰는 연장입니다.”

하지만, 스코트랜드 고원지대에는 사자가 없는걸요.”

그래요, 그럼 그건 맥거핀이 아닌가 보네요. 아님, 말구!”[각주:7]

 

맥거핀 (스코트랜드 고원지대에서 사자 잡을 때 쓰는 연장), 북한체 글씨 1 (천안함을 침몰시킨 북어뢰 추진부 뒷부분에 새겨져 있었다는 문자), 대형 트레일러 2 (대량살상화학 무기를 탑재한 이라크의 테러 및 전쟁을 위한 장비)는 각각 괄호 안의 상징적 질서 안에 묶여 있는 기표들입니다. 실재계(the Real)에서는 존재치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 체제의 이름으로, 이데올로기의 폭압으로, 사회화라는 명목으로 그 기표들은 강력한 영향력을 우리들에게 행사합니다. 서울시청 광장에 모인 해병전우회, 재향군인회, 한기총이 집단으로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열고 미국을 찬양하고 좌파척결을 다짐하는 푸닥거리가 한국사회에 만연한 대표적인 상징계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죠. 지젝은 기표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오직 일련의 효과들 속에서 항상 왜곡되고 빗나간 방향으로만 현존하는 원인[각주:8]의 역할을 한다고 꼬집은 후 상징적 체계의 권위를 지워버립니다. 그렇다면 그 비워진 공간 (탈 중심화된)은 무엇으로 매워야 할까요? 우리의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1. 데리다는 2004년에 세상을 세상을 떴습니다. 이번 달과 다음 달 웹진을 통해 2회에 걸쳐 ‘자크 데리다 특별기고’란 제목으로 글이 연재됩니다. 물론, 졸고는 가상입니다. 데리다의 시선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천안함 침몰 사이에 있는 상동성을 밝히는 것이 이번 달 웹진내용이라면, 다음 호 에서는 실재에 대한, 아니 우리가 실재라고 믿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데리다의 해체론적 독법이 갖는 함의에 대해 다룹니다. [본문으로]
  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19/2010051902551.html [본문으로]
  3. http://www.bushwatch.com/bushlies.htm [본문으로]
  4.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6/04/11/AR2006041101888.html ; &#10;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graphic/2006/04/12/GR2006041200165.html&#10; [본문으로]
  5. 작년도 웹진 9월호(http://minjungtheology.tistory.com/118)에 지젝과 관련하여 신학적으로 의미 있는 책이 미국에서 출판되어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지젝에 관심있는 분을 위해 다시 한번 옮겨 적습니다: “한국에서도 지젝에 대한 열풍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지젝은 미국에서도 광범위한 메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답니다. 지젝의 글쓰기는 가히 인문학의 종합선물세트라 불립니다. 저와 함께 시카고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작년(2009년) 5월에 Ph.D 학위를 받은 Adam Kotsko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가 재 작년에 미국에서 진보적 신학책을 출판하기로 유명한 t&t clark출판사에서 Zizek and theology (2008)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Adam Kotsko는 시카고 신학교를 대표하는 학자라 할 수 있는 Reading Derrida/Thinking Paul (2006)의 저자 Ted Jennings 교수의 제자로서, 작년에 Zizek and theology 출판을 계기로 미국 진보신학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 책은 지젝 사유를 정초했다고 평가받는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1989), The Ticklish Subject (1999) , The Fragile Absolute (2000) 에서부터 신학관련 주제를 논술한 The Puppet and the Dwarf (2003) 까지 지젝이 지닌 사유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신학적 물음과 대답, 그리고 비판을 던지고 있습니다. 물론, 지젝을 이해하려면 많은 총알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칸트와 헤겔을 읽어야 하고, 프로이트와 라깡을 정복해야 하며, 맑스의 기운까지 느끼고 있어야 그때 비로소 지젝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사람들이 겁을 줍니다. Adam Kotsko가 쓴 Zizek and theology는 저와 같이 지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빙빙 지젝 주변을 서성이기만 했던 사람들에게 지젝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재작년 후반기에 이 책의 안내를 받은 후 지젝의 처녀작인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를 읽었습니다. 라깡에 대한 전이해가 있어야 되는 책이었는데, 지젝 사유 전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되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래에 Adam Kotsk가 쓴 Zizek and theology에 대한 책 소개를 링크합니다. http://www.amazon.com/Zizek-Theology-Philosophy-Adam-Kotsko/dp/0567032442 /ref =sr_1 _ 1? ie=UTF8&s=books&qid=1244730560&sr=8-1” [본문으로]
  6. Slavoj. Zizek,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New York: Verso, 1989), 87. [본문으로]
  7. Ibid., 163. [본문으로]
  8. Ibi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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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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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객
    2010.07.12 11: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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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철 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만 님의 지젝 해석과 전유의 방식에 상당한 왜곡과 문제점이 있기에 이 지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지젝은 라캉의 타자 개념을 극단화시켜서, 이 지점에서 이웃을 위한 확고한 사유와 이에 바탕을 둔 폭력의 가능성을 긍정하며, 이에 바탕으로 정통의 지점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고찰합니다.

    지젝의 논리의 틀은 결국 라캉의 상징계와 법의 문제 그리고 법에서 정초되는 타자성의 문제에 천착합니다. 라캉의 정신 분석학을 이어받아서 어떻게 현실의 자본주의적 욕망의 체계에서 어떻게 자꾸 상상계로 퇴행하며 이 지점에서 대타자로 향한 욕망을 끊임없이 유보하며 결국 다양한 소타자들(상품적 물신숭배 혹은 속물적 욕망의 체계들)에 대한 도착 속에 메여있는지를 폭로합니다. 결국 지젝은 라캉의 정신 분석학이 가지는 기술적 지점을, 당위적인 차원으로 가져오려 합니다.이 지점에서 자아가 욕동의 체계에서 해방되어서 진정한 타자를 욕망하며 사랑의 폭력을 강제할 수 있는가를 고려합니다. 지젝에게서 이웃의 얼굴이란, 상징계에 구성된 법의 지점으로서 대타자와, 실재계에서 만나는 구체적 대상과, 상상계에서 애매하게 섞여있는 소타자등이 한데 뒤엉켜서, 환원될 수 없으며 동시에 잉여를 남기는 그러한 존재입니다. 포인트는 결국 이웃을 위한 사랑의 행위에서 어떻게 우리가 도착에서 벗어나서 대타자로서의 법을 욕망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이 지점에서 결국 자아의 숭고화에 기반을 둔 레비나스류의 이웃 사랑은 비판 받습니다.)

    결국 지젝이 이야기하는 바는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소타자들의 욕동을 제공하는 도착의 체계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고 다시 우리가 접하는 이웃에게서 대타자의 지점을 발견하고 이룰 위한 보편적 사랑을 신적 폭력을 통해서 동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젝의 주요 관심입니다. 하기에 남근적 대타자 따위는 없으며 우리의 구체적 물질성에서 해방을 추구하자는 포스트콜로니얼적 퀴어이론(알트하우스 리드 류의) 적인 지젝 해석은 참신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지젝의 사상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습니다. 결국 지젝은 라캉이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유물적 차원을 최소하고 하고 논리적 측면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전통을 따르는, 동시에 헤겔적 변증법을 가져오는 보편성의 철학자 입니다.

    위에 읽으신 글은 지젝의 이데올로기 비판입니다.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으로, 그것은 자아의 대타자를 향한 욕망의 구조를 기생합니다. 지젝의 이데올로기 비판은 이데올로기로서 대타자의 역할을 하는 지점에 대한 소거에 있지요. 하지만 지젝이 라캉의 길을 가는 이상, 자아가 가지는 욕망의 구조- 상징계에 형성된 대타자를 소타자를 통해서- 상상계에서 재구성되고 실재계에서 만나지는- 욕망하는 근본적 욕망의 구조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기에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반이데올로기로서 기독교의 가능성이 지젝에게서 긍정되는 것입니다.

    그럼 왜 구테여 님의 글에 딴지를 거느냐 하면, 바로 남근적 대타자 따위는 없다와, 남근적 대타자가 오염되었다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님은 지젝을 대타자의 부정으로 읽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로서 대타자의 오용과 이에 대한 교정- 하기에 이 지점에서 지젝이 기반을 두고 있는 라캉적 틀에서 완전히 결별해서 지젝을 전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젝의 최근의 시점까지 고려한다면, 대타자는 여전히 거기 있으며, 이 대타자는 이웃사랑을 위해서 전유되어야 하며, 바로 이 지점에서 혁명적 정치학의 정통의 지점과 신적 폭력이 긍정되는 것입니다. 하기에 지젝은 이 지점에서 대타자없는 모든 도착적인 자유주의의 기획에서 결별하고, 레닌적인 혁명적 정통의 전위당과 이에 기반을 둔 폭력 정치를 옹호하는 것입니다. 하기에, 지젝의 사유는 가장 유럽중심적이면서 남근적인 사상이며, 이 지점에서 미놀료 등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은 여전히 서구적 담론의 틀을 가장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저는 민중 신학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고 민중 신학자도 아닙니다. 민중 신학을 논할 때에 애초에 입장권 따위는 박탈당한 인간이지요. 하지만 적어도 한국 신학에서 이어져 내려온 변혁적 관점에 대해서는 상당히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자꾸 물어 뜯고 되도 않는 딴지걸고 꼬장 피우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서구의 담론을 우리의 지점으로 가져올 때, 가장 첨단의 위치에 있는 민중 신학이, 적어도 그 논의의 핵심적 사안들을, 우리의 현장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 시사점을 동시에 고민하면서, 가져오는 것이야 말로, 그것이 식민성에 기댄 권위가 아니라면, 우리 현장을 최대한 존중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중 신학은 그 자체로 진보 담론을 생산한다는 정체성을 가지고, 담론의 영역에서 헤게모니와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특권이 실질적인 해방을 불러오는 헤게모니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제가 보기에는 좀 더 책임있는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상철 님께서 아마도 한국의 민중 신학계를 이끄실 분이고 또 그것을 위해서 체계적인 정도를 받으시는, 어떤 면에서 민중 신학계의 기대주이시기에, 이 지점에서 이상철님의 앞으로의 더 훌륭한 연구의 성과와 지적-신학적 리더쉽을 기대해봅니다.
  2. 과객
    2010.07.12 13:2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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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답변 감사드립니다. 민중 신학의 헤게모니에 대한 발언은 어떤 면에서 오바로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외자인 위치에서 보기에, 민중 신학은 근본주의 기독교에 대한 대항 담론의 위치에서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많은 이론가들을 보유한 영향력 있는 이론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비꼼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하지만, 민중 신학이 스스로가 섹타리안적인 배타적 이론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한 지점은 민중 신학은, 이 지점에서 여전히 그것의 영향력의 확장에 대해서 고민하는 지점을 가질 수 밖에 없겠지요. 단순히 진보 진영에 갇힌 소수의 진보적 이론가들의 장난감으로서 민중신학이 아니라, 단순히 서양의 이론가들의 담론에 의존하는 또다른 수입산 진보 담론이 아니라, 창조적 연구가들의 창조성의 발산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의 현실에서 살아가는 진정한 보통 기독인들의 삶을 뒤흔들, 그러한 토착적이면서 변혁적인 담론을 기대해봅니다. 저기 저 쪽에 있는 덜떨어진 복음주의 형제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그러한 신학 이론 말이죠. 덜떨어진 바보들이고 억압적인 또라이들이라고 손을 뿌리치기 이전에, 어떤 면에서, 근본주의의 그러한 투박한 지점들을 변혁적으로 이끌 방안은 없을까를 고민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히려 현재의 야만적 신자유주의의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투박한 충실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들이 이상철 님 같은 분이 하시면 감사하겠지요.

    저는 많은 지점에서 김재준의 신학 방법론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한국 기독교가 지향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재준이, 세계의 보편교회와의 협력 속에서,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성서적 전통으로 소급해서, 근원적인 신학적 질문들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 한국인의 주체적인 관점에서 신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점에 대해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기독교 장로회는, 한국 교회의 역사를 공부해 볼 수록, 한국 교회의 기독교의 토착적이고 변혁적인 영성을 담지한 창조적 소수여 왔습니다. 아무쪼록 그 재능있는 창조적 소수가, 투박하고 덜떨어진 그리고 부패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저 한국 교회의 다수의 형제들과 그들과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대성을 기억하고, 이 지점에서 민중신학을 함께 재구성하는 그러한 날을 꿈꾸어 봅니다.
  3. 이상철
    2010.07.13 19:0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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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객님께서 밝힌 민중신학이 당면한 과제와 민중신학을 향한 바램을 통해 민중신학의 앞날에 대한 전망을 할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특별히 민중신학이 혹 빠질 수 있는 '배타적 이론 공동체'로서의 가능성을 염려하는 대목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군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한국을 떠나기전(2004)까지 제가 접했던 한국 진보진영의 생리는 외부에 있는 대상에 대한 강력했던 투쟁의 전통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부적 의견수렴과정에서 조차 투쟁적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철저함이 필요했겠지만,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 면도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이점을 과객님께서 걱정하시며 열린 민중신학에 대한 기대를 표명한 것으로 저는 읽었습니다.


    하지만 보통 기독교인들의 삶을 흔들고, 복음주의도 수용하고, 근본주의적 요소들까지 변혁적 방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민중신학에 대한 과객님의 요청은 한편으로는 버릴 수 없는 바램일 수 있으나 너무나 가혹한 황금율이 아닌가 합니다. 민중신학이 애초부터 보통의 기독교인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의 방식을 엿보면서 호박에 줄긋는 방식으로 변신했다면 수박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민중신학은 부단히 세계에 대해 열린 자세로 열려있는 보수진영의 사람들과의 접촉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하여 열린 진보와 열린 보수가 만나는 교량의 역할을 자처할 수도 있겠지요. 이런 이유로 (민중신학을 비판하는 사람 혹은 옹호하는 사람 모두가) 시대가 변했으니 민중신학도 변해야 된다고 아우성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민중신학의 외연을 어떻게 넓힐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지, 민중신학의 담고 있는 체제의 음모에 대한 비타협적 요소에 대한 완화를 의미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이 민중신학 진영의 힘이었고, 그것이 민중신학이 당당하게 민중신학을 말하면서 타인과 대화하는 장으로 자신 있게 나갈 수 있었던 요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김재준 목사님과 기장교회에 대한 과객님의 평가에 대해서는 김재준 목사님을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저로서는 (김재준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저희 교회 원로목사님이셨거든요, 목사님 장례식도 저희 교회에서 치루었고, 당시 어린 저에게는 그냥 인자한 할아버지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나중에 공부하면서 그 분을 알아가면서 소름이 끼쳤던 것 지금도 생생하네요), 그리고 현재 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인 저로서는 우쭐 할 수 있고 자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화려한 훈장이고 죽은 놈 뭐 만지는 격이라 약간 씁쓸합니다. 현재 기장교회는 과객님이 과찬처럼 한국 교회의 창조적 소수로써의 역할을 포기한지 오래이고 한국의 많은 교단 중 하나있는 군소교단으로 전락했습니다. 그것이 다 시대가 변했으니 기장교회도 변해야 한다는 아우성을 따라간 결과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될 수 없듯이, 수박에 있는 줄을 지운다고 수박이 호박이 되지는 않습니다. 기장 교단의 울타리 안에 있는 진보적 유전자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진보란 열려있음을 전제로 변혁을 꿈꾸는 정신성이고 부단히 삶의 자리에서 실행되어야하는 구체성이죠. 과객님의 지적처럼 민중신학과 기장의 전통이 이러한 한국현대사의 전개과정에서 담당했던 대표적 진보진영으로서, 창조적 소수로서의 역할을 회복할 그날을 저 역시도 꿈꿔봅니다.
  4. 이상철
    2010.07.13 19: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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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일단 글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다음 웹진 25호에 이 글의 후속편이 나갑니다. 완성된 텍스트를 접하고 다시 한번 전체적인 맥락에 대한 평을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지젝에 대한 부분은 과객님의 문제제기를 참고하여 제가 따로 조만간 글을 기고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오늘은 과객님이 지적한 민중신학에 대한 부분에 집중하여 답을 하기로 하겠습니다. 과객님의 민중신학을 향한 따뜻한(?) 발언 감사합니다.우선 저는 민중신학의 기대주도 민중신학을 이끌만한 위인도 못됩니다. 민중신학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도 남루하구요. 그 말은 또 민중신학이 무슨 기대주나 이론가들에 의해 지금까지 흘러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아 살짝 마음이 당혹스럽네요.

    제가 갖고 있는 민중신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미천해서인지, 저는 오히려 과객님의 민중신학에 대한 지적에 적잖이 놀라고 있습니다. 님의 민중신학에 대한 언급에 있어 민중신학이 단순히 서구 담론을 이식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이 한국사회에서 담고 있는 시대적 함의를 담아내야 한다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마땅히 그래야 하구요.


    그런데 님께서 말하신 민중신학이 담론의 영역에서 헤게모니와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지적은 제가 잘 이해를 못하겠군요. 그말은 제게 두가지 의미로 들립니다. 하나는 전 시대 민중신학 진영이 지녔던 영향력이 여전히 유효하다거나, 아니면 민중신학은 계속 시대적 요구에 맞춰 진화를 거듭해 왔으므로 여전한 강호의 고수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이 둘다 맞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민중신학은 전시대의 영향력안에 갇혀 있어서도 안되고, 여전히 민중신학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변화되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기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과객님이 갖고 계신 민중신학에 대한 평가는 일정 부분 과장된 표현이고, 민중신학 진영이 처한 고민을 실질적으로 품지 못한 발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바라빠 이야기’ 연구 동향 (1)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모두들 잘 알다시피, 예수가 사형을 선고받는 결정적인 현장에서 예수와 그 운명의 심판대에 잠시나마 함께 서 있었던 인물이 바로 바라빠이다. 오랫동안 교회의 설교 강단에서는 바라빠를 예수의 대속적 죽음의 첫 번째 수혜자이자, 모든 구원받은 죄인들의 실존을 상징하는 존재로 선언해왔다. 바라빠에 관한 최초의 주석이라 할 수 있을 베드로의 성전에서의 설교는 바라빠와 예수 그리스도 간의 아이러니한 운명의 역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러분은 일찍이 그를 넘겨주었고, 빌라도가 그를 놓아 주기로 작정했을 때에도, 여러분은 빌라도 앞에서 그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운 그를 거절하고, 살인자를 놓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증언하는 증인입니다”(행 3:13-15). 악테마이어에 따르면, 이렇게 불의가 버젓이 행해짐으로써 “예수에 대한 최상의 진리가 드러났다. 즉, 비록 죄가 없지만 죄인들이 살 수 있도록 예수는 바라빠와 같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은 것이다.”[각주:1]

그런데 정작 신약학자들, 특히 복음서를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연구자들에게 바라빠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케리그마적 해석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매우 흥미를 끄는 주제였다. 그렇기에 바라빠에 관한 가장 이른 역사적 기록으로 간주되는 마가복음 15장 6-15절 본문은 총괄적인 “빌라도의 재판 이야기”(막 15:1-20) 안에서 구분되어 소위 “바라빠의 석방 이야기”로 불리면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이다. 이 글은 국내에 거의 소개된 바 없는 바라빠 이야기에 관한 서구 학자들의 연구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기 위한 목적에서 쓴 것이다. 부족한 글이나마 복음서의 바라빠 이야기가 갖고 있는 신학적 의미와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래본다. 이번 호의 글에서는 비평적 코멘트는 최대한 배제하고 일단은 정보를 소개하는 데 충실할 것이다. 서구 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결론적인 평가 및 필자의 “바라빠 이야기”론(論)은 다음 호 웹진에 실릴 글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될 것이다.

1. 바라빠, 범죄자인가 혁명가인가?

“바라빠라고 불리는 자”(막 15:7). 그에 대한 기록은 복음서 이외에는 어떠한 자료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각주:2] 바라빠 이야기의 역사성에 관한 연구는 주로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져 왔다. 첫째는 그가 저지른 범죄의 성격과 관련하여 그의 정체를 규명하고. 나아가 이러한 정체에 기초하여 이 이야기의 역사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면서 그의 정체를 연구하고, 나아가 이 이야기의 역사성을 규명하는 것이다.

먼저 그가 저지른 범죄를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살펴보자. 7절의 “동료 반도들과 함께(meta. tw/n stasiastw/n), 그리고 “반란 중에”(evn th/| sta,sei)라는 표현은 바라빠의 정체를 분명하게 시사한다. 먼저 등장하는 남성복수명사 ”쉬스타시아스테스“(sustasiasthv")는 긍정적으로는 혁명가, 부정적으로는 반역자 혹은 폭도의 일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바라빠가 그들 중의 일원으로서, 그 역시 혁명가 내지는 폭도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어 성서에서 ”민란“(개역한글, 개역개정), ”폭동“(표준새번역, 새번역), ”반란“(공동번역) 등으로 제 각기 뉘앙스가 조금씩 다르게 번역되고 있는 ”스타시스“(sta,sij)는 기본적으로는 ‘기립’(stand 혹은 standing)을 의미하고, 영어의 ‘stand’가 그러하듯이 유추적으로는 ‘위치’(‘존재’,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보다 함축적인 의미에서는 정치적인 입장, 특히 대중의 반란적 ‘봉기’, 즉 ‘민란’, ‘폭동’, ‘소요’(행 19:40) 등을 의미한다. 물론 다소 예외적이지만, 의견의 팽팽한 대립, 격렬한 논쟁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행 15:2).

한편, 마가는 바라빠의 명성에 관해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데 비해, 마태는 그를 당시에 잘 알려진 자로 묘사한다. 마태복음 27장 16절의 형용사 에피세모스(evpi,shmoj)는 긍정적으로는 ”유명한“ 혹은 ”괄목할만한“ 존재를 수식하는 표현이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의미에서 ”악명 높은“(notorious)의 뜻을 모두 갖고 있다. 마태는 마가가 소개하는 바라빠가 당시에 유명한 인물이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이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성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라빠가 민란 중에 구체적으로 누구를 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참여한 민란이 로마지배체제에 저항하는 정치적 성격의 집단행동이었으며, 살인이 동반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음은 분명하다.[각주:3]

많은 학자들이 이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성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와 같이 로마 지배체제에 무력으로 도전한 위험한 정치범을―아무리 명절과 관련한 특별한 관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군중들이 원한다고 해서 로마 총독이 쉽게 풀어 주었으리라고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상황은 또한 유대 문헌으로부터 추측되는 빌라도의 초상과도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오스(Roger David Aus)는 강력한 어조로 반대의 논거를 제시한다. ”빌라도는 군중의 변덕에 자신이 놀아나는 것을 허용할만한 인물이 아니었으며, 무엇보다도 거의 폭동에 달할 수 있는 제어 불가능한 반체제 인사를 쉽게 풀어줄 만큼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었다.“[각주:4]

물론 바라빠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신뢰할만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예컨대, 마이어스는 비록 빌라도 시대보다 조금 후대이긴 하지만, 알비누스 총독 시절에 정치범이 사면된 예가 엄연히 있고, 어떤 위험한 인물의 처형에 대한 대중적 저항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 그보다는 덜 위험하면서 동시에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다른 반체제 인사를 사면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과열된 분위기의 맥락에서 상당히 있을 법한 일이라고 주장한다.[각주:5] 그러나 (대제사장들에게라면 몰라도) 빌라도에게 있어 예수가 바라빠 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었다는 주장은 복음서의 진술과 전혀 맞지 않다. 만일 마이어스의 주장대로라면, 바라빠가 그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듯이, 바라빠보다 더 위험한 예수와 그의 지지자들 역시 로마군대에 의해 함께 체포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빌라도는 자신을 찾아와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체포는커녕 그의 부탁을 순순히 들어줄 만큼 정치적 위험인물로서 예수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 그에게는 예수를 반드시 죽일 이유도 그렇다고 반드시 살려줄 이유도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그러나 바라빠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만일 바라빠 이야기만 따로 떼서 놓고 본다면, 빌라도에게로 올라와서 그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이들은 바라빠의 동료 혹은 지지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빌라도가 그들을 전혀 문제 삼지 않고 협상했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믿기 어렵다.

2. 바라빠, 랍비의 아들인가, 압바의 아들인가?

한편, 바라빠라고 하는 인물의 이름에 주목한 연구들 역시 이 이야기의 역사성에 회의적인 쪽으로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 그것은 바라빠라는 이름에서 발견되는 문학적 · 신학적 의미의 특이함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에 따르면, 바라빠라는 인물의 이름상의 독특성, 그리고 바라빠와 예수를 대조시키는 복음서의 문학적 기법 등으로 보건대, 이 이야기만큼은 원래의 역사적 전승(?)에 덧붙여진 것이 확실한 것으로 보고 있다.[각주:6] 왜 그런지 이유를 살펴보자.

지금까지 거의 정설화된 가설대로, 바라빠는 ‘성’이나 ‘개인이름’이 아닌 ‘부계적 이름’(patronymic), 즉 일종의 별칭으로서,[각주:7] 명백히 아람어인 Bar-Rabba(n) 혹은 Bar-abba에서 파생된 음역으로 인정된다.[각주:8] 먼저 ‘Barabbas'가 ’Bar-Rabba(n)'에서 파생된 음역이라고 한다면, 그 의미는 ‘랍비, 즉 선생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며, 결국 ‘저명한 선생의 아들’로서 단순히 ‘선생님’을 존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치 ‘사람의 아들’이 ‘사람’을 의미하듯이, ‘선생의 아들’ 역시 ‘선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대 문헌들을 보면, 히브리어 ‘ben'과 같이, 아람어 ‘bar'는 ’선생‘으로 쉽게 동일시될 수 있었던 표현인 ’선생의 아들‘과 합성되어 다소 느슨하게 종종 사용되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자이틀린(Solomon Zeitlin)이 주장하는 것처럼, ’랍비의 아들‘이라는 용어가 70년 성전의 파괴 이후에야 즉, 랍비(적) 유대교(Rabbinic Judaism)[각주:9]가 성립되기 시작한 후에나 비로소 유행했다는 것, 따라서 제2성전 시대 유대교에 속하는 예수 당대에 그런 직함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각주:10] 코헨(Shaye. J. D. Cohen)에 따르면, 랍비라는 말은 “나의 선생님”이란 뜻이며, 본래(프랑스어의 monsieur처럼) 경의를 표하는 호격의 형태였다. 기원후 1세기 전반에만 해도 이 칭호는 대개 학생이 자신의 선생을 개인적으로 부를 때 사용했다(요 1:38). 그러나 70년 전쟁 이후, 즉 제2성전 시대 유대교 체제의 붕괴 이후에는 이 단어의 의미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차 “선생님” 혹은 권위 있는 자리에 있는 지도자(master)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서서히 2세기에서 6세기에 이르러 이스라엘과 바빌로니아에서 방대하고 독특한 문헌, 특히 미쉬나를 창조해낸 유대계 사회의 일원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로 정착했다. 바로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저명한) 랍비의 아들”이라는 개인 이름 외에도 별도로 쓰이는 호칭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바라빠‘라는 별칭이 예수 시대에는 사용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진다. 설령 사용되었더라고 하더라도, 그 이름은 ’랍비의 아들‘이라는 의미 대신에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각주:11]

이와 관련해, 마태복음에서 그 배후의 마태공동체가 자신들의 시대에 아람어 ‘abba'의 번역어로서 ’랍비‘라는 호칭이 일반화되어 사용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는 본문이 있어 주목된다. 바로 마태복음 23장 8-10절이 그것인데, 이 본문에서 예수는 이미 시대를 앞서(?) ‘랍비’라는 전문화된 칭호가 사용되는 상황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데이비스에 따르면, 이 본문에서 차례로 언급되고 있는 단어들, 즉 8절의 ‘랍비’(r`abbi,,,), '선생‘(dida,skaloj), 9절의 ‘아버지’(pathr), 10절의 ‘지도자’(kaqhghth"), 이 모든 단어가 사실은 아람어 ‘abba'와 그것의 번역어인 ’rabbi'의 대용어로서 예수는 결국 이 중의적인 단어를 통해 그 어떤 누구도 ‘아버지’나 ‘선생, ’지도자’라는 칭호를 얻지 못하도록 했다.

이 전승이 정말로 예수에게서 기원하는 말씀인지 아니면, 마태가 창작해낸 것인지는 규명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마태공동체는 ‘abba' 혹은 ’rabbi'라는 호칭이 일반화되어 무분별하게 적용되는 것을 반대했고, ‘abba'라는 호칭의 특권적 사용을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돌리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데이비스는 이 본문이 랍비적 유대교와 갈등하고 있는 마태공동체의 역사적 상황뿐만 아니라, 랍비적 유대교 성립 이전에 이미 예수가 자신의 시대에 ’bar abba'로 불렸음을 반향하고 있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예수는 하나님을 자신의 시대에 ‘abba'로 개념화했던 매우 독특한 인물이었고, 그래서 그에게는 어쩌면 ’바르 압바‘라고 하는 별명이 붙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후대의 그리스도교에 의해 ’바르 압바‘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Son of God, Jesus)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데이비스는 주장한다.[각주:12] 다소 지나친 상상력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바라빠”를 예수와 보다 긴밀히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데이비스의 논의는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잠시 여기서 ‘바라빠’의 정체를 탐구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참조점이 되는 마태복음 27장 16-17절을 살펴보자. 흥미롭게도 마태복음의 일부 초기 그리스어 사본과 초기의 번역문들에서 16절 바라빠 앞에 ‘예수’라는 단어가 추가되어 있다. 그는 마가복음에서처럼 단순히 ‘바라빠’가 아니라 ‘예수 바라빠’(VIhsou//n Barabba//n)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구절인 27:17에서도 역시 '예수 바라빠‘(VIhsou/n to.n Barabba/n)로 지칭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초기 교회의 변증가 오리겐(Origen)은 이 구절에 대한 주석에서 “많은 사본들은 바라빠가 예수라고 불렸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어쩌면 이러한 생략은 옳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 이유를 그는 성서 어디에서도 죄인을 가리켜 예수라는 고귀한 이름을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예수’라는 이름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흔한 이름이었는지를 전혀 몰랐던 것 같다. 그러나 고대의 사본을 필사했던 이들이 남겨 놓은 방주에 보면 “내가 마주친 다수의 고대 사본에서 바라빠는 ‘예수’라고도 불린다”는 표현이 발견된다. 이러한 표현들은 후대에 사본의 필사과정에서 점차 삭제되었을 것이 확실하다.[각주:13]

더욱이 사본학적 비평의 원리에 따른다면, ‘바라빠 예수’라고 적혀 있는 사본이 더 오래되었고 원본에 가까운 것일 가능성이 높다. 사본학자들은 원문 복원을 위해서 여러 판단 기준들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방법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제1원칙은 “lectio difficilior potior”, 즉 더 어려운 독법(reading)이 우월하다는 판단 기준이다. 이 판단 기준은 사본 필사자들이 어려운 표현들을 쉽게 바꾸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것이다.[각주:14] 그러므로 마가복음의 본문 역시 어쩌면 초기에는 ‘바라빠라 하는 예수가 있었다’로 되어 있었을 것이나, 원시 그리스도인 필사자가 민란을 일으킨 살인자를 감히 예수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예수’라는 단어를 생략해 버렸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의 견해는 충분히 설득력 있다.[각주:15] 어쩌면 마가복음의 15:7의 원래 형태 역시 현재와 같은 “o` lego,menoj Barabba/j””(바라빠라고 불리는 자)가 아니라 “VIhsou/n lego,menoj Barabba/j”(바라빠라고 하는 예수)였을 것이다.

바라빠에 관해 선구적인 연구를 남긴 리그(H. A. Rigg)는 마태복음의 바라빠 예수와 그리스도 예수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있어 ‘lego,menoj’(legomenos)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그리스어 원문에는 마태복음 27장 17절 하반절이 “ÎVIhsou/n to.nÐ Barabba/n h' VIhsou/n to.n lego,menon cristo,nÈ”“(바라빠 예수냐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냐?)로 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의 초기 사본 일부 가운데는 “바라빠라고 불리는 예수냐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냐?”(VIhsou/n to.n lego,menon Barabba/n h' VIhsou/n to.n lego,menon cristo,nÈ)로 되어 있는 사본이 있음을 발견했으며, 이를 통해 ”바라빠라고 불리는 예수“와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 간에 완벽한 대립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말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lego의 수동태 현재분사로서 “레고메노스”(불려지다, 말해지다)는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마 1:16 - VIhsou/j o` lego,menoj cristo,j)에서처럼 직함이나 별명 앞에 붙어 그것을 수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레고메노스가 주로 수식하는 것이 개인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수식하는 것은 이름 대신에 친숙한 비공식적 호칭 내지는 직함(title)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바라빠는 이 죄수의 본명이 아니라, 일종의 별명 혹은 직함 같은 것이었으며, 마태복음의 일부 사본들이 보여주듯이, 어쩌면 그의 본명은 정말 ‘예수’였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나, ‘압바의 아들 예수’라는 이름은 마가복음이 묘사하는 나자렛 예수의 이미지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만일 우리가 마가복음 15장 6-15절의 본문을 알지 못했다면, ‘압바의 아들 예수’를 영락없이 나자렛 예수에 대한 칭호로 이해할 법도 하다. 랍비적 유대교 시대의 문헌에서 종종 발견되는 ‘랍비의 아들’로서 ‘바르 압바’라면 몰라도, 제2성전 시대 유대교 사회에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갖는 ‘바르 압바’라는 별칭을 찾아볼 수도 없는데, 그것이 하필이면 마가복음에, 그것도 그 별칭을 가진 자의 본명이 ‘예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바라빠의 정체에 관한 논란은 더욱 가중된다.

주지하다시피, ‘abba’(압바), 즉 헬라어로 ‘Αββα’라고 신약성서에 등장하고 있는 단어는 예수와 바울이 하느님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했던 말로써, 아람어 ‘אבא’의 음역이다. 마가복음에서 이미 예수는 그의 하느님을 “압바 아버지”로 부른 바 있다(막 14:36).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예수 당시에 이 단어를 주로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한 사실에 주목했다. 예컨대, 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로 풀어 번역한 팔레스타인 탈굼(Palestinian Targums)의 창세기에 어린 이삭이 아브라함을 “압바”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22:6, 10). 예레미아스는 “압바”라는 아람어 단어가 유아들의 언어라고 주장하였다.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압바, 나한테 뭘 줄거야?” 하는 식으로 친밀한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이와 같은 용어를 굳이 개인 이름으로 사용하고, 또 그런 이름을 가진 아버지를 따른 “Bar-abba”라는 부계적 이름 혹은 별칭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바르 압바 예수”는 대체 어디서 나온 인물인가?

3. 바라빠 예수 vs 그리스도 예수

리그(H. A. Rigg), 맥코비(H. Z. Maccoby), 윈터(Paul Winter), 데이비스(Stevan L. Davies), 메리트(Robert L. Merritt), 오스(Roger David Aus)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바라빠‘ 연구들은 마태복음의 일부 사본에서 발견되는 “예수”라는 그의 이름을 중요한 실마리로 삼아, 사복음서 수난사화에 모두 등장하는 바라빠 (예수)라는 인물이 예수의 무죄함과 결백함을 두드러지게 하는 문학적 장치, 즉 대조인물(foil)로 설정되었다는 주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왔다. 이 학자들은 비록 그들 각자의 미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유사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즉, 기본적으로는 유월절 사면 관례 같은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출발하여, 바라빠 이야기는 고도의 신학적 의도를 갖고 생성된 문학적 장치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를 논증하기 위해 마태복음의 평행본문을 주목했다. 그 결과 권위를 인정받는 마태복음의 오래된 사본들과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의 원문 역시 단순히 바라빠를 바라빠로만 표기하지 않았고, “압바의 아들 예수”로 이해될 수 있는 “예수 바르 압바”로 표기되어 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나아가, 역사적으로 확신하건대, 빌라도의 재판은 실제로 있었지만, 그 재판 중에 그가 두 죄수 중 한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무리에게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 따라서, 예수의 재판 당시에 바라빠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별도의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혹 어떤 반란자들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재판과 예수의 재판은 무관하며, 오히려 신약성서에서 ‘압바’라는 하나님에 대한 독특한 칭호의 용례를 보건대, 나자렛 예수가 그의 동시대 사람들에게 “예수 바르 압바”로 알려져 있었을 것이며, 결국 바라빠는 나자렛 예수의 정체성의 또 다른 일부로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와 바라빠로 불리는 예수는 동일인물이며, 초기 그리스도교는 일종의 예수의 ‘도플갱어’(Doppelganger)를 만들어내어 그럴듯한 역사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이 축적될수록 바라빠 이야기가 창작된 역사적 맥락에 관한 가설들도 훨씬 정교해져가고 있다.

바라빠 이야기를 문학적 창작이라고 보는 학자들에 따르면, 마가가 이러한 이야기를 만든 배경에는 로마제국과 유대교 사이에서 정치적 딜레마를 겪고 있던 초기 그리스도교의 삶의 자리가 존재한다. 그들은 로마제국이 예수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것을 변호해주기 위해, 결국 유대인들을 희생양 삼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맥코비(H. Z. Maccoby)는 유월절 사면의 이야기가 상상력에 의한 허구에 불과하며 실제로 그런 일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던 리그와 윈터에 동의하면서, 기본적으로는 이 이야기가 예수와 원시그리스도교를 반(反)유대적인 동시에 친(親)로마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변증적 관심에 의해 채색되었다고 보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윈터가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 이 변증적 이야기가 창작된 역사적 배경을 더욱 세련되게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맥코비는 우선 마가복음의 저자가 군중들을 향해 갖고 있는 모순적인 태도를 주목한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진작부터 예수를 없애 버리고자 했으나, 군중들이 두려워서 그것을 감히 실행하지 못했다. 군중들이 예수를 지지하고 보호했기 때문이다(막 11:18; 11:32; 12:12; 14:2). 그런데 15장 6-15절의 본문에서는 갑작스럽게 군중들의 태도가 돌변하여 예수를 처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맥코비는 이해하기 힘든 이러한 전환의 배후에는 유대인 전체를 정죄하고 저주해온 후대의 그리스도교적 사고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예수 사후의 시대에 그리스도교회는 예수 죽음의 책임을 유대인 지도자들에게만 돌렸을 뿐, 여전히 평범한 유대인들에게 회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유대인들의 저항과 핍박이 거세지면서 점차 십자가 처형의 책임을 유대인 전체에게로 확대해나갔다는 것이다.

맥코비가 그리고 있는 빌라도 법정과 관련된 역사적 진실은 이런 것이다: 예수 당시의 빌라도 법정 바깥에서는 여전히 다수의 유대 군중들이 예수를 지지하고, 그의 사면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법정 안에서는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준 대제사장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예수를 죽이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예수를 지지했던 유대의 평범한 대중들이 예수 사후에는 예수를 잊고 다시 유대교 안으로 돌아가 버렸고,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리스도교회는 동시대의 유대인 전체를 정죄하는 한편, 과거 예수가 빌라도 법정에 섰을 당시 그의 사면을 요청했던 군중들의 역사적 행적을 부정하지 않을 수 있는 묘안을 짜냈는데, 그것이 바로 또 다른 예수, 즉 바라빠 예수라고 하는 가공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 가공의 인물인 바라빠 예수는 마치 그리스도 예수와 구별되는 별도의 인물 같아 보이지만, ‘바라빠’라는 직함(title)의 의미를 잘 풀어보면 결국 (그리스도라는 가장 중요한 직함을 가졌던) 예수와 동일인물인 ‘압바의 아들’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던 그 예수라는 것이다. 결국 맥코비의 논의는 나자렛 예수로부터 분리된 가공의 인물인 바라빠 예수를 통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과거 예수에 대한 유대 군중들의 지지를 역사적으로 왜곡하고, 반(反)유대교적 성향을 더욱 가속화하던 역사적 정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이러한 맥코비의 견해는 메리트와 오스에게서도 그대로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관된 해석의 흐름에서 이탈하여 획기적인 견해를 제출한 이가 바로 맥클린(Jennifer Maclean)이다. 이전의 바라빠 이야기를 연구한 학자들이 주로 그 이야기의 삶의 자리를 초기 그리스도교의 변증적 상황에서 파악했던 반면에, 맥클린은 이를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기존의 성전 제의를 대체하는 속죄양/희생양 제의가 창안되던 맥락에서 해석하는 일대 전환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맥클린의 연구에 관한 보다 상세한 소개와 평가는 다음 호의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 웹진 <제3시대>


  1. Paul J. Achtemeier, <EM>Invitation to Mark: 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Mark with Complete Text from the Jerusalem Bible</EM> (Garden City, New York: Image, 1978), 215. [본문으로]
  2. 막 15:7, 11, 15; 마 27:16, 17, 20, 21, 26; 눅 23:18, 19; 요 18:40. (cf. 행 3:14) [본문으로]
  3. Ben Witherington Ⅲ, <EM>The Gospel of Mark: A Socio-Rhetorical Commentary</EM> (Grand Rapids-Cambridge, UK: Eerdmans, 2001), 391. [본문으로]
  4. Roger David Aus, “The Release of Barabbas Revisited (Mark 15:6–15; Matt 27:15–26; Luke 23:18–25; John 18:39–40),” in <EM>Caught in the Act, Walking on the Sea and the Release of Barabbas Revisited</EM> (Atlanta: Scholars Press, 1998) 139. [본문으로]
  5. Ched Myers, <EM>Binding the Strong Man: A Political Reading of Mark’s Story of Jesus</EM> (Maryknoll, N.Y.: Orbis, 1988), 373-374, 380-382. [본문으로]
  6. 이러한 학자들의 상세한 명단에 관해서는 Brown, <EM>Death of the Messiah </EM>(Vol.1), 819; W. D. Davies and Dale C. Allison, Jr., <EM>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tthew</EM> (Vol.1) (London: T&amp;T Clark, 1997), 583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7. 동일한 방식의 이름 용례로는, 바돌로메(Batholomew, 막 3:18), 바디메오(Bartimeo, 막 10:46), 바요나(Bar-jonah, 마 16:17), 바나바(Barnabas, 행 4:36), 바예수(Bar-jesus, 행 13:6) 등이 신약성서에서 발견되며, 요세푸스의 저작에서 발견되는 시몬 바 기오라(Simon bar Giora) 역시 같은 용법의 이름이다. [본문으로]
  8. Adela Yarbro Collins, <EM>Mark: a commentary</EM> (Hermeneia: a critical and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7), 718. [본문으로]
  9. 랍비적 유대교란 명칭은 코헨(Shaye J. D. Cohen)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코헨은 유대교의 역사에서 “랍비 시대”를 70년 전쟁 이후 6세기까지의 유대교를 랍비적 유대교라 명명한다. 이 시대를 대변하는 ‘랍비’는 미쉬나 및 다른 많은 책들, 특히 팔레스틴 탈무드와 바빌로니아 탈무드를 만들어낸 특별한 사회의 구성원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이다. 보다 자세한 것은 다음의 책을 참조할 것: 샤이 J. D. 코헨/황승일 옮김,『고대 유대교 역사』 (서울: 은성, 1994), 20-21, 315-316. [본문으로]
  10. Solomon Zeitlin, <EM>Studies in the early history of Judaism</EM> (New York: KTAV, 1974), 251. [본문으로]
  11. 브라운 역시 1세기에 ‘선생의 아들’로 해석될 수 있는 ‘바라빠’와 같은 부계의 이름이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아직까진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만일 Barabbas가 Bar-Rabba(n)에서 온 말로서, “랍비의 아들”이라는 뜻이 되려면, Bar와 Rabbas 사이에 ‘r'이 하나 더 있어야 개인 이름이 포함된 부계적 이름(patronymic)이 될 수 있다는 설명까지 덧붙인다. Brown, <EM>The Death of the Messiah</EM> (Vol.1), 799. [본문으로]
  12. Stevan L. Davies, “Who is Called Bar Abbas?,” <EM>NTS</EM> 27 (1981), 261–262. [본문으로]
  13. 브루스 M. 매츠거(Bruce M. Metzger)/장동수 옮김, 『신약 그리스어 본문 주석 (제2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성경원문연구소, 2005), 54. [본문으로]
  14. 신현우,『사본학 이야기』(서울: 웨스트민스터출판부, 2003), 105. [본문으로]
  15. Cranfield, <EM>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rk</EM>, 450; Taylor, <EM>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rk</EM>, 450; Nineham, <EM>Gospel of Saint Mark</EM>, 416. [에반스, 『마가복음 8:27-16:20: WBC 성경주석』, 737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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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경실
    2010.06.21 16: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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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미미한 울림

나상윤
(본 연구소 회원, 목사)


1

석가탄신일 낮에 열리는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아침 전북 익산으로 향하는 하객전용좌석버스에 올라탔다. 비교적 편안한 자리를 확보한 뒤, 눈을 지긋이 감고 바로 잠들고자 애를 썼다. 오고 가는 버스 안에서 가장 유익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은 자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날 일부러 최선을 다해 밤새우고 나서 버스를 탔다. 잠자기에 최적의 몸을 만들어놓은 상태인지라, 수없이 많은 꿈을 꾸며 무척 단 꿀잠을 잤던 것 같다.

한 서너 시간 가량 잤을까. 자는 게 좀 지겨워지고 바깥바람이 슬슬 그리워지기 시작할 즈음, 세상을 향해 눈과 귀를 열어보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버스 안의 하객들이 “어떡해” “어떡하냐” 하며 소란스레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나서야 사람들이 왜 걱정스러워 하는지 파악이 됐다. 길이 차들로 온통 꽉 메워져 있었던 것이다. 차 안에는 각양각색의 탄식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큰일은, 익산의 어느 교회에서 낮 1시에 결혼식을 시작하기로 돼 있는데, 12시 반이 되어도 하객들을 왕창 태운 대형좌석버스는 아직 경기도권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서울에서 출발한 하객들 모두가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말았다. 결혼식이 벌써 끝나버렸다는 현지 특파원의 보도를 듣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서로 심각하게 대책을 논의했다. 오늘 안으로 도착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익산까지 꼭 가야만 하는가? 식도 다 끝난 마당에... 아님 서울로 그냥 돌아갈까? 축의금은 은행계좌로 보내주면 되니까... 그래도 신랑신부 얼굴은 보고 축하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저렇게 좌충우돌하며 여러 얘기가 오간 뒤, 신랑과 통화하여 절충안이 발표됐다. 신랑의 고향인 충남 서천군 장항읍에서 신랑신부를 만나, 다함께 삼계탕을 먹고 단체사진 찍고 곧바로 헤어지기로...

삼계탕을 잘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흥미로운 상념에 잠겼다. 목적지에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만 같은 불안한 위기상황에 직면하여 그것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면서, 이 버스 안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제 시간에 이르지 못할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이들, 앞뒤로 꽉 막힌 상황이 답답해서 죽는 시늉을 하는 이들, 생리적 신호가 오는 걸 감지하고 언제 터질지 모를 불상사를 어떻게든 지연시키고자 가진 애를 다 쓰는 이들, 그리고 이런 저런 소리 듣다 시끄럽고 귀찮으니 그냥 부족한 잠이나 더 채워 자려고 하는 나. 마치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것 같았다.


2

말도 못할 정도로 복장 터지는 일들이 세상 도처에 널려 있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텍스트들이 넘쳐난다. 또 한편으로는,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기억을 둘러싸고 서로 끊임없는 논쟁을 한다. 그렇지만 옳고 그름을 따지는 그 말잔치 안에서 대상화된 타자가 겪은 아픔을 몸으로 느끼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내가 직접 비슷한 일을 겪어보지 않고선,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 무언가를 접하고 마음이 울리는 체험을 할 때가 있다. 나아가 무딘 마음이 그 울림으로 녹아들어가, 급기야 그 무언가에 나 자신이 융화되어, 내 속에서 그것이, 그것 속에 내가 살아가게 되는 체험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나와 너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체험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체험을 함께하고 서로의 삶이 운명적으로 얽혀 있다고 믿는 집단을 ‘공동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의 비극적인 사건에 우리 마음이 울리지 않는 것은, 어쩌면 사건의 당사자와 우리를 공동체로 엮을 수 있는 감정의 끈이 너무도 가늘어져 너무도 미미한 울림 외에는 일어날 수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대중 모두가 좋아서 함께 따라 부르며 서로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노래가 거의 없다는 것도, 우리 주변의 이름 모를 이웃들과 공동체의식을 공유하기 힘든 상황을 반영하는 게 아닌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아무리 많이 반복해서 듣게 된다 한들, 그 말을 귀담아 듣고 이웃의 몸과 내 몸이 공명(共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 가운데 그처럼 진부한 얘기를 계속 들어줄 만큼 마음이 한가한 영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사랑’이란 게 도대체 가능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은 이들의 비극을 접하고, 그것이 우리 사회 전체의 비극임을 통감하며 아파하는 노래들을 듣고 부르다가, 타자의 아픔에 공명하며 함께 울다 간 흔적들, 그 눈물꽃이 피었다 진 자취를 발견하며 감동하게 되는 일이 있다. 나는 특히 김지하의 시에 김민기가 곡을 붙인 <주여, 이제는 여기에>(<금관의 예수>라는 이름으로도 불림)를 부르다 그런 체험을 할 때가 간혹 있는데, 가냘프고 메마른 떨림으로 무겁고 참담한 어조를 내뱉으며 이 노래는 시작된다. <주여, 이제는 여기에> 대한 나의 음악적 인상을 한번 소개해보고 싶다.

<주여, 이제는 여기에>는 가단조 4분의 4박자 곡으로,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그리고 벌스(verse)와 코러스(chorus)의 분위기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벌스는 부르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어둡고 깊게 침잠하면서 체념적인 단조의 정서가 지배적인 데 반해, 코러스는 장조화성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음높이가 점진적으로 상승곡선을 그리며 치고 올라가면서 점점 더 절박한 감정을 격정적으로 쏟아내게 한다. 그러다 후렴구 끝자락에 와서야 급격히 격정을 가라앉히며 노래를 마무리 짓게 한다.

그동안 나는, 이러한 곡 전반부와 후반부의 극명한 대립이 <주여, 이제는 여기에>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 대립이 양쪽 정서를 극대화시키는 데 이바지하면서, 노래하는 이의 감정을 소용돌이치게 만드는 효과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선율이 지닌 울림의 경사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부르다 눈물이 울컥하기 일쑤다. 그렇게 감정이입이 잘 되는 건, <주여, 이제는 여기에>가 아마도 나락에 떨어진 정서로부터 솟구치길 원하는 대중의 갈망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데 최근 <주여, 이제는 여기에>를 부르다, 이 곡이 지닌 흥미로운 비밀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됐다. 바로, <주여, 이제는 여기에>에서 계명 “미”가 지니는 위상이 범상치 않게 다가온 것이다.

우선, <주여, 이제는 여기에>에 쓰인 음 가운데 “미”가 가장 많이 쓰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벌스에서 가단조의 화성이 전개될 때, 으뜸화음인 ‘A minor’ 코드(chord)에서 “미”는 5도 음의 위치를 차지하는 데, 으뜸음인 “라”보다 “미”를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그 정서에 완전히 사로잡히지 않으려는 저항적 의지를 드러내는 듯하다. 그리고 다장조로 전조된 상황의 후렴에서, “미”는 으뜸화음 ‘C’ 코드 가운데 장3도 음으로서, 장3도 음이 지니는 밝지만 불안정한 느낌을 선사한다. 요컨대, 이 곡에서 “미”는 체제의 논리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으려 애쓰는 반항적 주체의 표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미”는 <주여, 이제는 여기에>에서 가장 높은 음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후렴에서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선율이 점차 고조되는 가운데 “주여”를 외칠 때와, “여기에 우리와 함께”를 외칠 때, “미”로 가장 높은 음을 부르게 함으로써, 고음이 지닌 특유의 긴장과 함께 불안정한 떨림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여기서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아가 지금 이곳에 임하기를 기도하는 그 간절함이 하늘을 닿을 듯 절정에 이르며, 이 울림을 통해 혁명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끝으로, <주여, 이제는 여기에>는 “미”(low)로 시작해서, “미”(high)로 가장 높게 치솟아 올랐다가 다시 “미”(low)로 마무리 된다는 점이다. 하늘과 땅이 얼어붙고 태양마저 빛을 잃은 듯, 자연으로부터도 철저히 버림받은 듯한 이들에 대해, 처음에는 비록 “미미”한 떨림으로 응답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작은 울림들이 모이고 모여 큰 울림을 이루고 난 뒤, 다시 미미(微微)한 울림을 낳을 수밖에 없는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드라마적 구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나는 일상 가운데 미미하게 떨려오는 울림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온갖 소리들, 비록 그 소리의 내력을 읽어내려는 노력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무의미한 소음으로 흘려버리기 십상이지만, 그 소리들로 인해 부지불식간 연주하게 되는 내 몸의 떨림, 그 미미한 울림이야말로, 그것과 연루된 수없이 많은 타자와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그런 연대를 통해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권력의 사슬을 끊어버릴 수 있는 혁명의 씨앗인 것이다.

3

전혀 예상치 못한 교통 정체 상황 속에서 우리는 각자 내면의 지옥을 만들고 그 속에서 괴로워한다. 불안하고 답답하기만한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하나 같이 불쾌하게 다가온다. 그러한 개인의 고통을 경감하고 회피하기도 버거운 판에, 남들이 겪는 고통이 어떻게 마음에 와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내어, 내 몸이 끊임없이 연주하는 미미한 소리에 귀기울여 보자. 그 울음소리에 진정으로 공명하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몸을 조율해보자. 그렇게 주파수를 맞추는 가운데 도처에 수없이 많은 울음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 우주와 몸이 어우러져 거대한 울림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 진정 음악이요, 구원체험이 아니겠는가.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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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24 13:5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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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페이지로 보게되어 반갑고. 잘지내지요.
    세상의 소음과 보이는 것으로 인해 우리가 어리둥절하게 되어버리는 때에
    노래에 대해 알게 되는 것같네요. 내용에 대해 잘 모르지만 미미한 음성에
    공감합니다.
  2. 임선이
    2011.03.18 20:5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마음의 여유가 절실하게 그리워지는 지금 동감하고 갑니다



『민중신학, 세계신학과 대화하다』

엮은이 : 이정용
지은이 : 로버트 맥카피 브라운, 존 캅, 조지 오글, 레티 러셀,
            디오티스 로버츠, 하비 콕스, 송천성, 고수케 고야마,
            호세 미구에즈 보니노, 크웨시 딕슨, 헤르빅 바그너,
            안병무 이정용
옮긴이 : 연규홍

펴낸날 : 2010년 6월 15일
분  야 : 종교/기독교/민중신학
판  형 : 신국판
페이지 : 304쪽
정  가 : 15,000원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 책 소개 보러가기

책 소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이 책은 드루 대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96년 타개한 한국인 이정용 박사가 1988년 미국에서 영문으로 출간한 “An Emerging Theology in World Perspective: Commentary on Korean Minjung Theology”(Lee Jung Yong, New London, Twenty Third Pubns)를 번역한 책이다.

“역(易)의 신학자로 알려진 이정용 박사는 1935년 한국에서 태어나 6‧25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대학에서 종교학과 신학을 강의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민중신학을 연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노스 다코다 주 그랜드 포크스라는 시에 있는 미군 공군 기지의 작은 “민중” 교회를 맡아 미군들과 결혼한 가난하고, 약하고, 억압받는 한인여성들을 위한 목회를 하고 있었다. 몇 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그의 목회에 “민중신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그가 의도하는 것은 그가 과거에 받은 신학 교육보다 그가 현재 시점에서 하고 있는 목회와 더 연관이 있다고 술회한다.

이 책의 목적은 민중신학과 이 시대의 중요한 신학적 사상들이 대화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서유럽,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등 세계 여러 지역과 다양한 신학적 관점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먼저 편저자 이정용 박사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Christian Conference of Asia, CCA) 신학위원회가 편집한 “Minjung Theology”(Maryknoll, London, Singapore: Orbis Books, Zed, CCA, 1983)와 그 밖의 민중신학에 대한 영문 자료들을 저자들에게 보낸 후, 그들 고유의 관점에서 민중신학을 읽고 그에 대해 평가해 주기를 부탁했다. 민중신학이 지속적인 발전 과정에 있음을 깨닫고 있던 모든 저자들은 이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의 주제 의식과 관점, 그리고 방법론으로 글을 써 보내주었다. 이 글들을 이정용 박사가 재구성하고 서문에 민중신학에 대한 개관적 글을 덧붙여 이 책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시카고 신학대학의 서보명 교수와 함께 이 책으로 2006년 가을학기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민중신학 세미나를 함께 진행하였던 한신대 연규홍 교수가 번역하여 펴내게 되었다.

세계화가 만들어 놓은 지구촌의 심각한 국가 분쟁, 종교 갈등, 계급 모순을
민중 해방적 관점에서 새롭게 비판하며 대안적 방안을 모색하는 민중신학

오늘 한국 교회에 신학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신학이 있고, 그 신학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으로서의 신학은, 오늘 한국 교회가 무엇을 믿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뜻과 그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를 말해 주어야 한다.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는 금과 은은 없을지라도 나사렛 예수가 있었고, 그에 대한 신앙 고백이 있었다. 그러나 곳곳마다 웅장한 교회 건물을 짓고 십자가를 높이 매단 한국 교회는 금과 은은 풍족할지라도 예수의 복음이 없고 신앙 고백이 없는 교회이다.

민중신학은 1970년대 한국 민중 현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그에 대해 신앙 고백을 한 증언의 신학이며 행동의 신학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은 가난한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눈먼 자 편에 서서 그들의 자유와 정의 그리고 해방을 위해 함께 고난 받으시는 분이시다. 그분을 증언하고 그분을 따라 고난받는 민중과 연대하는 것이 민중신학의 과제이며 사명이었다. 그렇다면 20세기를 지나 새로운 천 년의 첫 세기를 여는 지금 민중신학의 과제와 사명은 무엇인가.

동서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 주도하의 세계 단일 체제 상황에서, 아직도 지구상의 주요 관심사는 여전히 국가 간의 분쟁과 종교 갈등, 그리고 계급 모순의 문제들이다. 민중신학은 한국이란 공간적 상황과 1970년대라는 시간적 한계를 넘어 오늘 지구화 시대에 고난 받는 세계 민중의 삶의 자유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40년 전과는 달리 세계 선진국 대열에 선 한국 사회가 오늘 겪고 있는 남북 간의 분쟁과 종교 간의 갈등, 그리고 심화되는 계급과 계층 모순들은 세계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것은 오늘 자본주의적 제국화를 뒷받침하는 신자유주의 현실에서 채무국으로 전락한 세계 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민중의 고난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민중신학은 세계화가 만들어 놓은 지구촌의 심각한 국가 분쟁, 종교 갈등, 계급 모순을 민중 해방적 관점에서 새롭게 비판하며 대안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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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중신학이다』

지은이 : 강원돈 강응섭 권진관 김영철 김은규 김종길
            김희헌 류장현 박일준 이병학 최형묵 홍주민
펴낸날 : 2010년 6월 5일
분  야 : 종교/기독교/민중신학
판  형 : 신국판
페이지 : 440쪽
정  가 : 15,000원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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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왜 다시 민중신학인가?

세계화의 먹구름이 짙게 깔린 현 세계를 한국의 신학은 어떻게 진단하고 해석하는가? 빈곤과 부채로 인해 질식할 것 같은 현실을 사는 수많은 민중에게 교회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민중신학을 70, 80년대에 한때 유행하던 기독교 사회운동의 전투적 이론으로서, 그저 흘러간 옛 노래나 빛바랜 그제 신문쯤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가?

외국에 신학을 공부하러 가면 그곳의 지도교수에게서 듣는 처음 질문이 “기독교가 전래된 지 200년이 넘는 당신네 한국의 신학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라 한다. 한국에 있을 때 민중신학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공부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 질문으로 인해 민중신학과 토착화신학을 다시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민중신학은 한국의 대표적인 신학으로서 독창적인 체계를 갖춘 제3세계 신학으로 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한국민중신학회(회장: 권진관 성공회대 교수)가 지난 2년 동안의 월례세미나에서 발표한 논문들을 엮어 한권의 책으로 펴내었다. 매월 정기적으로 모여 토론하는 주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세계화와 성서신학적 재해석, 그리고 오늘의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나 이웃 종교, 타 학문과의 연계성 등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민중신학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이 책은 민중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기 위한 모색이라 할 수 있다.

민중신학은 오늘의 세계를 어떻게 담지하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 한국의 대중적 문화와 정신을 들어다보면 더욱 우려할 것들이 보인다. 한국이 갑작스레 잘살게 되며 많은 사람들이 ‘돈맛’을 알게 되어 각박한 세상으로 바뀌었다. 돈과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고 있고, 성공도 돈으로 환산되고 있다. 성공하지 못하면 낙오된 자라는 강박에 매여 있다. 한국민의 정신은 불구가 되고 말았다. 한국의 개신교회를 들어다보면 더욱 불구가 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돈(맘몬)을 중시하고, 재물의 축적과 재산의 확장이 신앙의 축복이라고 확신하는 신앙관이 개신교인들 안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으며, 교회 안에서는 그러한 유형의 신앙관만이 소통되고 있다. 이러한 백성과 이러한 교회가 어떻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일을 제대로 감당해낼 수 있을까?   

민중신학은 한반도에서 새로이 일어나는 정신적인 각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한반도의 죽어 가는 생명의 입장에서 생명과 평화 그리고 정의를 외쳐야 하며, 현재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희생당한 자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선포하는 일이 얼마나 필요하고 귀중한 일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신학적인 흐름이 한국에 별로 없다는 것을 볼 때, 민중신학의 앞으로의 성과와 공헌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민중신학의 유산과 전통을 새롭게 이어가는 것은 귀중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갖는다.

민중신학은 닫힌 이론 체계가 아니라, 열려서 살아 있는 민중의 성서적 지혜를 추구함으로써 오늘의 현실을 설명해내고, 대안적 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예언자적인 신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리하여 한국 교회와 사회를 향해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으로 한국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는 일에 제대로 공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새로운 민중신학은 계속 모색되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민중신학은 언제나 우리를 둘러싼 상황, 특히 민중의 상황에 조응하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충실하게 신학적으로 응답하는 것이라야 한다. 민중신학은 시대마다 시대적인 화두를 발견하고 그 화두를 사회를 향해 던져야 한다. 우리 시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뿌리에서 그 근원을 찾아내고, 그것을 화두로 혹은 담론으로 이 사회와 교회를 향해 던져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오늘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그 뿌리와 깊이에서 분석하고 그것에 대해 신학적인 대답을 감행해야 한다.

이 책은 오늘의 상황에 대한 민중신학적인 응답이다. 이 책을 검토해 보면 오늘날 소장 민중신학자들의 관심과 고민이 무엇인지, 그들의 현실인식이 어떠한지를 살필 수 있다.

-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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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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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의 신학』

지은이 : 김영혜 김창주 박경철 유연희 유윤종 이영미 이영재 천사무엘 한동구
펴낸날 : 2010년 5월 27일
분  야 : 종교/기독교/구약학
판  형 : 신국판
페이지 : 342쪽
정  가 : 16,000원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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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토라의 신학』은
모압 광야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토라를 다시 들려주던 모세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신 6:4)고 명령하면서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생활화할 것을 권고합니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며, 가르치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이지만 동시에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에(딤후 3:15-17) 더욱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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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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