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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과 '이익'의 관점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보는 용기


도홍찬
(중학교 교사)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의 단편소설 <코>에 한 스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코가 너무 길어서 고민이었던 스님은 코를 작게 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서 어떤 각도로 보이면 코가 작게 보이는지 연구를 하기도 하고, 민간요법으로 만든 약을 먹어보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시도를 남몰래 하였지만 결국 코는 작아지지 않습니다. 스승의 말 못하는 고민을 눈치 챈 한 제자가 멀리서 코를 짧게 하는 비법을 배워오자 스님은 처음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가, 넌지시 자신한테 그 비법을 실험하게 합니다. 이 비법이 성공해서 스님의 코는 짧아졌습니다. 스님은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눈치가 이상해졌음을 직감합니다.

코가 길었을 때에도 수군거린다고 느꼈지만, 막상 코가 짧아지자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더 심해졌다고 스님은 생각합니다. 스님은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나름대로 자신만의 설명을 합니다. 곧 사람들은 타인이 불행에 빠지면 동정심을 가지지만, 그 불행을 극복하면 오히려 허전함을 느끼며, 더 나아가 다시 그러한 불행에 빠지기를 원하는 이중적인 심보를 가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스님은 이것을 ‘방관자의 이기주의’라고 명명합니다.

물론 스님의 이러한 해석은 부분적으로만 정당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비웃은 것은 방관자의 이기주의라기보다는 스님의 위선적인 태도 때문일 것입니다. 도를 닦는 사람으로서 외모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면서, 결국 외모 때문에 온갖 해프닝을 일삼는 스님에 대한 야유가 더 큰 이유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님이 느낀 마음의 불편함 또한 이해가 됩니다. 타인의 불행에 동정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과연 그것이 얼마나 그 고통과 공감하는 것일까요. 타인의 고통이 나의 상대적 행복을 확인시켜주는 만큼만 나는 그것에 동정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고통의 해결이 나의 일상의 삶을 흔들지 않을 때라야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만, 내 삶의 어떤 부분이 영향을 받는다면, 더 나아가 내가 그것 때문에 불행해질 수 있다면 그래도 과연 나는 상대가 행복해지기를 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경쟁적인 세상에 살면서 점점 타인의 행/불행을 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나의 이익과 관련하여 평가하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친한 친구가 석연치 않게 교수임용에 탈락하면서, 무엇보다 안타까웠습니다. 너무 힘들게 준비해왔고, 본인과 친구들이 적임자라고 생각했는데 임용이 유보되면서, 모두들 실망하였고 우리들은 진심으로 친구를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마음의 한 귀퉁이에는 그렇게 단 번에 임용되지는 못해, 저 친구가 안 되고 다른 사람이 된다면 혹 그 자리에 내가 갈 수도 있지 않을까 등 애초의 동정심은 사라지고 엄정한 객관주의와 이기심이 나타났습니다. 동정심으로 사회 윤리의 기초를 삼으려는 사람들이 동서양에 있었지만, 분명 동정심이 그렇게 순진한 도덕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 친구의 불행을 단지 친구라는 이유로 동정한다든지, 아니면 나의 이익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모두 사건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친구가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능력을 가졌지만 그것이 공정하게 인정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친구를 제대로 동정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동정심과 공정성을 결합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남을 무조건 동정하다 보면 정의로운 제도를 생각할 수 없고, 기계적 공정성은 구체적 인간의 고통을 잊어버리기 쉬울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고통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 행여 그 고통을 나의 행/불행과 연관 지을 때에는 나의 이기심을 넘어서 정의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나의 동정심 속에 있는 불순함을 바라보고, 경쟁 사회 속에서 나도 모르게 병들어가는 마음을 돌아보게 되기를, 그리하여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고, 불행은 줄어든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체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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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밥’을 먹다
신앙의 원리는 신앙을 잠식한다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시리아 북단의 대도시 안티오키아에서 베드로는 사람들과 한 상에서 식사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안티오키아의 ‘그리스도인들’인데, 놀랍게도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귀화한 이방인들이 다수 포함된 공동체였다. 당시 유대교 회당은 물론이고 1세기 말까지의 예수 공동체에서 이런 풍경은 그리 흔치 않은 것이었다. 그때 예루살렘에서 주의 친형제인 야고보 파 사람들이 방문한다.

십여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이다. 헬라계 회당[각주:1]에서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유대 중심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급진파 헬라주의자들이 반란 모의죄로 처형된 예수를 들먹이며 성전과 민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회당 군중이 그들을 집단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지도자 스테파누스가 돌팔매로 죽임을 당했고, 나머지는 사방으로 도주함으로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이때 도주한 일부 헬라파 유대인들이 안티오키아로 왔고, 이곳에서 다른 예수 추종자들과 연대하여 예수의 공동체가 탄생하였다. 주민들은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

예루살렘에 은거하며 조심스레 모임을 지속해왔던 다른 예수파 집단들은 이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아직 예수의 추종자라는 사실이 정부는 물론이고 적지 않은 시민들에게도 의혹의 대상이던 시절에, 자신의 신앙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 좋을지를 암암리에 모색하던 중에 발생한 일이다. 그러던 차에 헬라계 회당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유대 종족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성전에 대한 비판은 신중한 행보가 아니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졌다.

그때는 각각의 소그룹들이 보다 큰 예수공동체로 네트워크되어 가던 중이었다. 다른 집단들과의 연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일종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하는 리더의 형성과정이기도 하다. 이 네트워크 공동체의 중심에는 주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주의 형제인 야고보 등이 있었다. 하지만 점차로 예수의 친형제인 야고보와 그와 예수의 모친인 마리아가 실질적인 지도자로 부상하였고, 베드로 등은 그 위상이 제2격으로 격하되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막달라 마리아로 대표되는 여성 제자그룹과 기층민중그룹인 오클로스 출신 제자들이 이탈하였다. 필경 헬라파 회당에서 발생한 사건도 이러한 지도력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더 유대주의적이고 더 성전적 믿음에 충실한 이들이 중심에 서게 되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배제된 집단은 이들로부터 이탈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난 뒤, 안티오키아에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불리는 이들이 생겨났다는 소문이 들린다. 과거 예루살렘에서 도주한 급진 헬라파 인사들이 이 일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야고보가 이끄는 예루살렘의 예수공동체는 안티오키아의 이들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대해 종주권을 행사하고자 했다. 무엇보다도 헬라주의자들이 이방인을 함부로 공동체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 더욱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예루살렘의 유대주의자들이 볼 때는 반드시 교정되어야 할 잘못된 관행이었다. 베드로가 이 공동체로 파견된 것에는 바로 이러한 사명도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방인 귀화자들과 한 상에서 식사를 나누고 있다. 유대인인 그가 생래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신앙의 올바름은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인데, 그것은 이방인의 음식을 먹는 것, 심지어는 ‘적의 밥’을 먹는 것에 다름 아니었는데, 그가 마주한 현장에선 함께 식사하는 것이, 먹거리 속에서 마음을 나누고 신앙을 나누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타당한 모습이었다. 몸을 지배하는 관습과 현장의 감각이 모순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그는 그 사이를 매울만한 해석적 자원을 아직 갖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어정쩡하게 비유대인들과 식사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그때 야고보파 인사들이 당도했고, 난처해진 그는 얼른 자리를 피한다. 야고보파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고 싶었고, 예루살렘 공동체의 탄핵이 골치 아팠다. 하지만 이 행동은 이 화기애애한 식사 자리를 싸늘하게 만들어 버렸다. 한 순간에 베드로와 안티오키아의 그리스도인들, 아니 예루살렘의 예수 공동체와 안티오키아의 그리스도 공동체 사이는 좀처럼 매워지지 않는 깊은 골을 드러냈다. 더 나아가 안티오키아 공동체 내부에서도 갈등이 부추겨졌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비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논쟁이 심화된 것이다. 어제까지 형제요 자매요 누이요 오라비였는데, 이젠 그런 관계가 쉽지 않아졌다. 그리고 베드로와 바울은 더 이상 화해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안티오키아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불거져 나온 식사 금기 문제는 초기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그리고 훗날 예수파가 회당에서 축출됨으로써 이 식사 논쟁은 일단락된다. 그리스도교는 유대인들의 전통인 이방인과의 식사 금기에서 자유로워진 것이다. 30년대 말 이후 예루살렘의 예수 공동체가 네트워크되어 가고, 50년대 초 안티오키아에서 식사 논쟁이 벌어지고, 그리고 90년대 즈음 회당에서 예수파가 축출되고, ....,., 어림잡아 족히 두 세대는 되는 갈등의 역사는, 무 자르듯 단언할 수 없는 봉합이건만, 아무튼 이렇게 매듭지어졌다. 그런 갈등을 매울만한 해석이 현장의 갈등을 매개하기보다는 상황의 조건이 갈등을 원천무효시킨 셈이다.
 
이렇게 관습화된 요소가 신앙과 결합되면 견고한 신앙 전통으로 재탄생한다. 그것은 나름의 형성 역사를 가진 것이지만, 마치 본래적인 것인양 보편적 진리를 대변하는 것이 된다.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 그것은 적의 밥을 먹는 것이요 적의 요소가 자신의 몸 내면으로 들어오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형성되는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 당대, 그리고 그 이후 모든 유대인들의 신앙 공식이었고 자명한 진리였다. 하여 그것은 대개 새로운 상황을 해석하는 능력을 억압하고, 새로운 상황이 해석을 강제할 때에야 어정쩡하게 뒷북치듯 따라간다. 이럴 때 신앙은 진취적이기보다는 퇴행적이며 보수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아마도 우리 사회 그리스도교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추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다른 성서 텍스트를 살펴보겠다. 그것은 이방인과의 식사 나눔의 거부 전통이 시작하던 바로 그 시대의 문서다.
다니엘은 왕이 내린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환관장에게 자기를 더럽히지 않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다니엘서」 1장 8절

인용된 「다니엘서」 텍스트의 배후에 놓인 시간은 바로 이러한 신앙 전통이 형성되던 때였다. 이 문서의 줄거리를 보면, 유대를 패망시킨 바빌로니아 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의 환관으로 선별된 네 명의 유대인 청년들은 훈련기간에 황제가 하사한 음식을 먹지 않고, 부정 타지 않은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주장들이 「토비트서」, 「유딧서」 「희년서」, 「마카베오서」 등, 「다니엘서」와 비슷한 시기(헬레니즘 시대인 기원전 3~2세기)에 저작된 책들에서 집중적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이 책들이 헬레니즘 시대의 문서들에서 이방인들의 음식과 유대인의 음식을 나누고 엄격하게 지키는 것을 대단히 중요한 신앙의 덕목으로 얘기하는 전통이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특성을 이러한 신앙 행위와 연계시켜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도대체 헬레니즘 시대는 어떤 특징을 갖는 시기일까? 간력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이 시기는 지중해 사회에서 문자 혁명이 일어난 시기다. 알다시피 우리가 알려져 있는 최초의 공공도서관인, 프톨레마이오스 제국이 수도 알렉산드리아에 건립한 거대한 도서관은 장서가 무려 70만권에 달했다고 한다. 그 이전에 비교적 큰 규모의 개인 도서관들이 세워졌고, 책의 수집에 관한 문화가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국가가 건립한 거대한 도서관이 세워진 것이다. 이 사건은 책을 둘러싼 산업의 활성화를 낳았는데, 무엇보다도 책의 번역과 필사를 담당하는 문자집단, 곧 서기관 집단이 광범위하게 등장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은 비단 알렉산드리아만이 아니라 지중해 연안 도시들 전역에서 활발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서기관이라는 직업집단이 광범위하게 대두하였다는 사실 이상을 의미한다. 그들은 하나의 계층적 세력으로 주체화된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귀족도 아니고 양민도 아닌, 새롭게 부상하던 소자산가 계층 출신으로, 그들이 주도한 대중운동이 많은 지역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또 자신들의 세계관, 인간관, 종교관 등이 활발하게 해석된다. 팔레스티나에서도 지혜문학이나 묵시문학은 바로 이런 계층 출신 서기관들의 활약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또 하시딤, 에세네, 바리사이 등의 종파적 사회운동 집단도 이들과 깊이 관련된다.

한편 이 시기는 지중해 사회에 빈부격차가 크게 심화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전제군주국가들이 한층 강력하고 안정된 체제를 구축하였고, 이 국가들 혹은 제국들의 왕족과 귀족들의 권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하여 그들은 국가 곳곳에서 타인의 땅을 병합하여 자신의 사유지를 넓혀갔다. 또한 도시화가 한층 발전하면서 많은 지주들은 속속 자신의 땅이 아니라 도시로 이주하였다. 하여 시골에는 지주가 부재하는 많은 땅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땅들은 대지주가 위임한 관리인(청지기)들이 대리운영하곤 했다. 이것은 소농들의 광범위한 몰락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촌락에는 토호들이 사라졌고, 그들이 차지하던 마을 사람들의 존경의 질서를 공백에 놓이게 된다. 한데 바로 그 자리를 이들 서기관 계층이 대체한다. 바로 이 시기에 말이다. 요컨대 이들 소자산가 계층은 헬레니즘 시대 대중적 사회 통합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통합의 중요한 매체 역할을 한 것이 종교였음을 의심의 여지없다.

바로 이들이 중심이 되는 종교운동을 반영하는 책들이 앞서 언급했던 「다니엘서」, 「토비트서」, 「희년서」. 「유딧서」, 「마카베오서」 등이다. 그리고 그 책들에 등장하는 공통된 요소의 하나가 음식 금기였다. 이방인의 것을 거부하는 전통을 더 급진화하여 먹거리 같이 일상적인 것까지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다.

적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적의 것을 먹지는 않겠다는 비타협적 태도다. 이러한 비타협적 태도를 먹거리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바로 이 시기에 지중해 지역 일대와 유대사회에는 일상과 그 연장선상에 있는 내면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주목되기 시작한다. 주로 지혜문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제인식이다. 그것은 악이 내면으로 침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악’은, 마치 적이 우리의 강토 안으로 쳐들어와 지배하듯이, 의인화된 존재로 우리 몸 안으로 쳐들어와 지배한다는 상상이다. 바로 ‘악마’가 등장하는 것이다. 악마가 몸 안으로 들어와 존재의 내면을 지배하는 것과 같은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는 바로 음식이다. 몸 안으로 들어와 몸을 부정타게 하는 것, 바로 악마의 몸으로 변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음식 금기를 일상화하는 신앙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제국의 통치자와 대중 사이의 갈등은 단지 토지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몸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몸 자체가 전쟁터가 된 것이다.

이러한 ‘적의 음식’에 대한 금기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적이 준 음식’을 거절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이다. 모두 밖에서 들어온 것이 내면을 장악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다. 문자의 혁명은 문자 계층을 중심으로 하여 이렇게 내면의 문제를 중요한 종교적 요소로 변모시킨다.

이러한 적의 밥에 대한 공포와 저항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신앙의 견고한 틀로 정착하게 된다. 안티오키아에서 일어났던 음식 금기 논쟁은 비유대지역에서도 강력한 유대주의적 신앙의 내용으로 여전히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되었던 것을 보여준다. 그 지역의 사정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원리를 지키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되는 셈이다.

한데 원리에 대한 충실함은 종종 현장을 고려하는 눈을 흐리게 한다. 바울이 베드로를 비난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방인들, 곧 유대 전통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그러한 인식의 틀을 마치 법처럼 내면화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의 현장에서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신격화된 통치자를 기리는 제의 때 배급되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만성화된 영향실조 상황을 조금이라도 면할 수 있다. 실제로 가난한 이들은 많이들 그렇게 했다. 이때 법은 그이들이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굴레로 작동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음식 금기 신앙은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는 신학이기도 했다. 야고보 파가 주도하는 운동에 오클로스 파나 여성 제자들이 이탈한 것은 어쩌면 이러한 탈현장적 원리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반영하는지도 모르겠다.

예수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안에서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장의 사정(밖의 것)을 고려하지 않는 신앙, 원리(안의 것)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신앙은 타인을 옥죄고 괴롭힌다는 점에서 잘못된 아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가 보여준 새로운 문제의식은, 신앙의 원리라는 내면의 주장을 독선적으로 반복하는 것, 그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리버디노(새번역) 혹은 ‘자유인의 회당’(공동번역)은 「사도행전」 6장 9절의 리베르티노스(Λιβερτινος)을 번역한 것인데, 이 회당은 예루살렘에서 바울처럼 헬라말을 쓰는 유대인들을 위한 예배와 생활나눔의 장으로 사용된 회당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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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래하는 여행자
    2010.08.21 20:4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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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갈한 음식을 맛있게 먹은 느낌입니다...물론 시원하기까지 하구요..^&^ 더운 여름 잘 지내시죠?...
  2. 2010.09.10 15:5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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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좋은 즐 잘 읽었습니다. 다음에 만약 그리스도인과 예수 파 사람들과의 관계, 갈등에 대해서 글을 써 줄수가 잇는지요?
    • 2010.09.10 15: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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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알겠습니다. 예수파와그리스도인은 헬라파그리스도인과 유대파그리스도인 등으로 사용된 것을 제가 임의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기존의 용어보다 제가 사용한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제 글에서 어느 정도 다루었으니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조만간에 말씀한 것에 관한 글을 쓰겠습니다.
    • 2010.09.10 16:0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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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무슨 실수가 있었던 듯합니다. 관리자 아이디로 로그인해서 답글을 달았더니 댓글이 공개글로 바뀌고 작성자는 원래 쓰신 분이 사라지고 제3시대로 표시가 되네요. 이 내용에 대해 티스토리 측에 문의하였습니다. 공개글로 바뀌게 된 점 사과 드립니다.
  3. 나훈아
    2010.09.20 11:2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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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이 추석을 맞아 아직도 제사음식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제 어머니와 같은 한국 기독교인이 함께 읽고 생각하면 좋겠네요. 유대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요. 아직도 유대교인들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습니까?


해체론적 성서읽기는 가능한가?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해체론에 대한 농담, 거짓말, 그리고 진실

데리다는 이런 질문에 항상 시달렸다고 한다: “해체 이후에는 무엇이 남는가?”, “해체 이후의 대안이 무엇인가?”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질문을 했을텐데… 정말 짜증났을 것 같다. 해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흔히 파괴를 떠올린다. 그래서 불안한 것이고, 그러기에 불온한 것이다.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 ‘빨갱이’라는 용어만큼이나 심한 주술적 위력을 보이는 개념과 집단을 꼽으라면 해체론과 동성애가 아닐까 싶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빨갱이라는 말에는 워낙 익숙하고 내성이 강해진 터라 해체와 동성애가 현 시점에서는 더 진한 주홍글씨일 수 있겠다.
해체론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이 바로 이러한 해체론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가라앉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데리다에게 있어 해체란 즉물적인 의미에서 무엇인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관념 이면에 묻혀있었던 것을 발굴하여 원래 저자도 의도하지 못했던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는 데리다가 지니고 있었던 문헌학자로서의 특이한 이력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후설, 하이데거, 소쉬르 등의 책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기존의 관점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면밀한 독해를 시도한다.[각주:1]
 
예를 들어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보면 발명의 신 테우스와 타무스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테우스가 문자와 과학을 발명하고는 이것이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 자신하며, 특별히 문자는 사람들의 지혜와 기억력을 높여줄 것이라 장담했다. 하지만 타무스왕은 사람들이 문자에 의존하게 되어 기억력이 쇠퇴하고, 지혜의 실체보다 지혜의 외관에 치중하는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이라 반박했다. 이것이 데리다가 파악한 서구 정신사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 음성언어가 문자언어보다 우위에 있다는 소위 ‘음성중심주의(Logocentrism)’[각주:2]의 기원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는 플라톤이 범하는 오류를 발견한다. 만일 문자가 타무스 왕이 말한 것처럼 해악한 것이라면, 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문자로 기록했는가? 혹 겉으로는 문자언어에 대해 폄하하면서도 속으로는 문자언어에 대한 동경의 마음 있었던 것은 아닌가? 
 
데리다가 플라톤의 저작에 등장하는 데미우르고스의 우주 창조시 물질의 역할을 했던 코라를 재발견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나는 플라톤을 연구하는 매 순간마다 그의 작품 안에 있는 이질성(heterogeneity)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티마이오스(Timaeus)에 등장하는  코라(Khora)가 어떻게 플라톤이 전제하고 있는 체제속에서 양립할 수 없는지 찾으려고 한다. 나는 플라톤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플라톤에 충실히 이해하기 위해 그의 작품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을 공히 분석한다.”[각주:3]
 
위의 인용구에서 보듯이 데리다는 이분법적인 구조에 입각한 위계적인 구조보다는 작품내 등장하는 요소들의 상호의존성에 주목한다. 플라톤에게 있어 코라는 이분법적인 구도속에서 하층부에 있는 억압당하는 물질을 상징한다. 하지만 데리다는 이러한 플라톤의 코라에 대한 이해를 해체하여, 생명을 담지하고 있는 가능성과 잠재태의 영역으로서의 코라를 다시 읽어낸다. 즉 동일성(이데아)의 법칙에 의해 ‘배제된 것’(코라)이 어떻게 실제로는 그 규범(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내부적 요인으로 작용하는가? 이러한 데리다의 플라톤의 코라에 대한 해석은 우리가 어떤 사물의 ‘그것 됨’을 판단할 때 그 사물과 다른 대상과의 표면적 대립(차이)을 통해 그 사물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정설을 뒤엎는, 그 사물 안에 이미 외부적으로 대립해왔던 대상이 들어와 있음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텍스트 분석에 있어 새로운 상상력을 우리에게 제공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데리다의 텍스트 독해방식을 성경읽기에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에서 나는 데리다의 코라에 대한 새로운 읽기 방식을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와 열왕기상에 나오는 솔로몬의 재판에 적용해보고자 한다.
 
 
‘빛나는’ 예수의 족보 안에 스며있는 ‘부정한’ 것들
 
신약성서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은 예수의 족보로 시작된다. 예수의 족보를 살펴보면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 다윗에서 스룹바벨로 상징되는 바벨론시기까지, 바벨론에서 다시 그리스도까지 공히 열네 대씩을 지나 예수에게로 이스라엘 민족의 정통성이 흘러왔다고 밝히고 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윗을 거쳐 예수에게로 깨끗한 선민의 피가 유구한 세월을 거쳐 틀림없이 이어져 왔음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예수의 족보에 흐르는 깨끗한 선민의 피는 이방신을 섬겼던 주변 오랑케의 족보와는 뚜렷한 외면적 차이와 대립을 보이면서 그 정통성을 인정받는다. 그런데 예수의 족보안에 그토록 경멸하고 외부적으로 대립해왔던 이물질이 들어와 살며시 숨어있다면?
 
실제로 예수의 족보에는 시아버지와 정사를 벌인 다말이, 이방인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경멸했던 오랑케였던 모압 여인 룻이, 다윗에게 겁탈당한 유부녀 밧세바가, 그리고 저주받은 땅, 갈릴리 처녀 마리아의 이름이 버젓이 올라있다. 예수의 족보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아브라함-다윗-예수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상층부의 역사를 배반하는 정반대의 부정한 이름들이 예수의 족보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의 족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예수는 분명 ‘아브라함-이삭-야곱-다윗’ 거쳐 내려오는 선민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예수는 또한 라합, 다말, 룻, 밧세바, 마리아로 상징되는 하층민들, 소수자들, 변방에 머물러 있는 타자들까지를 포함하는 그런 인물인 것이다. 이런 해체적 독법을 통하여 예수의 외연은 이스라엘 상층부의 역사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이렇듯 외부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자기 내부에서 발견될 때 그것을 데리다는 ‘차연’이라 불렀고, 해체론은 대상 속에 이미 내재하고 있는 그 차연을 발견하고 폭로하여 사물이 지녔던 본래의 의미에 틈을 내고 주름을 만들어 그것의 체적을 늘리고 연장시킨다.[각주:4]
 
데리다의 해체론은 기본적으로 텍스트에 대한 다시 읽기를 통해 숨겨져 있었던 의미를 발견해내고 그럼으로써 종전의 해석을 전복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해석의 창에 이르게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솔로몬의 재판(왕상 3:16-28)’을 예로 다시 한번 데리다를 따라 가 보기로 하자.
 

칼의 왕, 솔로몬

두 여인이 한 아기를 놓고 저마다 자신이 낳은 아이라고 우기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점점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어 가고 급기야는 솔로몬에게까지 이르게 되는데……자칫 미궁으로 빠질뻔한 이 사건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에 의해 해결이 되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지혜를 이용하여 생모를 구별해냈다는 이 이야기는 솔로몬을 지혜의 왕으로 등극시킨 결정적인 본문이다. 교육열 높기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학원 이름 혹은 학습지 제목을 훑어보면 아마도 하버드만큼이나 솔로몬이란 이름도 많을 것 이다. 이 모두가 ‘솔로몬 = 지혜’라는 잘못된 신화에 기인한 웃지 못할 진풍경이라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성서에 나와있는 솔로몬에 대한 재판을 해석하기에 앞서 피로 점철되었던 솔로몬 가계의 역사와 솔로몬의 권력투쟁에 대해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6명의 아들을 두었고, 이스라엘에서 13명의 아들을 낳았다. 성경에 나오는 굵직한 다윗의 자손은 암논, 압살롬, 다말, 아도니야, 그리고 솔로몬이다. 이중 솔로몬만 예루살렘 세대라 할 수 있고, 나머지 자식들은 헤브론 출신이다. 전체 족보상으로 다윗의 장남은 암논이다. 그런데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겁탈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다말의 친오빠였던 압살롬은 이에 분노하여 암논을 살해하였고, 아버지 다윗에게까지 반란을 일으켰다가 군사령관 요압에게 죽임을 당한다. 솔로몬은 성장면서 이러한 피로 점철되었던 자기 가문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권력의 생리를, 칼의 논리를 온몸으로 체득하며 자라났다.
 
솔로몬 권력투쟁의 절정은 다윗의 노쇠로 인한 레임덕 상황에서 발생하였다. 다윗 구파라고 할 수 있는 요압 장군, 아비아달 제사장의 비호를 받는 아도니야와 예언자 나단과 밧세바가 지원하는 솔로몬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솔로몬은 최후의 승자가 된다. 족보상으로는 솔로몬보다 형인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어야 맞다. 하지만 권력을 향한 야망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그런 족보 같은 것이 뭐 큰 대수이고, 삶의 도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솔로몬은 권력에 오르자마자 자기 형인 아도니야와 자기 아버지의 평생 측근 요압장군을 처형하였고, 제사장 아비아달은 멀리 추방시켰다.  
 
이러한 역사를 종합해보면, 솔로몬은 참 불행한 사람이었다. 아비가 아들을 죽이고, 오라비가 여동생을 강간하고,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모습을 다 지켜봤던 사람이 솔로몬이었고, 급기야는 자기 역시 (그 동안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배운대로) 자기 형을 죽이고 왕이 되었던 인물이 솔로몬이다. 솔로몬의 히브리어 뜻이 ‘평화롭다’라고 하니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일인가? 그렇다면, 평생 평화롭지 못했던 솔로몬에게 있어 지혜란 무엇이었을까? 이제야 비로소 ‘솔로몬의 재판’을 이야기할 시점에 이른 것 같다.
 
 
그 재판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두 여인이 한 아기를 두고 바락바락 우겨대는 사건이 솔로몬 눈앞에서 발생한다. 더군다나 두 여인은 천한 창녀였다. 각각의 변론을 들어보니 죽은 아기는 상대방의 아이이고, 살아있는 아기가 자기 아이란다. 이런 골치 아픈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했었지? 살아오면서 대화와 타협, 화해와 용서의 경험이 없었던 솔로몬이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음모와 배신이, 화해와 용서보다는 처벌과 죽임이 솔로몬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었다. 솔로몬은 두 여인의 변론을 듣고 나서 본능적으로 칼을 갖고 오라고 명한다. 이 대목에서 주석가들은 솔로몬이 지혜를 발휘하여 두 여인의 속마음을 떠보려고 이처럼 말했다고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인생이 솔로몬에게 준 교훈이 무엇이었나? 골치 아픈 일이 발생했을 때,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솔로몬이 그 위기를 벗어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칼이었다. 솔로몬에게 있어 지혜란 언제 누구에게 어느 시점에서 칼을 정확하게 쓸 것인가를 가늠하는 것이다. 그것이 솔로몬의 지금을 있게 했고, 앞으로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솔로몬은 이러한 칼의 논리에 아주 충실했던 사람이었고, 그것에 입각해 칼을 갖고 와서 아이를 잘라 반반씩 나누라고 한 것이라면 너무 불손한 해석인가?
 
극의 반전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왕상 3:26). 성경은 그 아이 어미의 마음이 “아들을 위하여 불붙는 것 같았다”(개역)고 적고 있고, “자기 아들에 대한 모정이 불타올랐다”(표준새번역)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는 진짜 어미가 “살아있는 아기를 저 여인에게 주어 죽이지 말라달라”고 솔로몬에게 애원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게 왠 황당한 시츄에이션? 솔로몬은 놀랐을 것이다. 다른 여인은 상식적으로 칼로 아이를 잘라 반씩 나누자고 말하는데, 그것이 내가 아는 선에서 최선의 선택이고 바른 판단인데, 저 여인의 행동과 말과 표정과 눈물은 무엇이지? 왜 오바하는 거야? 생전 처음 벌어진 칼의 논리가 아닌 다른 해법을 접하고 솔로몬은 당황해 한다. 세상에 뭐 이런 게 있어? 내가 그동안 뭔가를 놓치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
 
그 다음 구절에서 표준 새벽역은 이렇게 적고있다: “그때에 드디어 왕이 명령을 내렸다”(왕상 3:27). 나는 이 구절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그때에 드디어 왕에게 지혜가 임했다”고 말이다. 그리하여 솔로몬은 생의 최초로 칼의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기준으로 판정을 내린다: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 칼과 죽임의 논리에 빠져 있던 솔로몬에게 살림과 생명의 논리가 최초로 선포되는 장면이다.
 
‘저 하늘에 별이 빛나듯 내 마음에는 도덕율이 빛난다’고 칸트가 그랬다지. 자고로 동서고금을 망론하고 지혜는 천상의 영역이었고 선택된 자들만이 닿을 수 있는 영역이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지혜와 진리는 정치학의 기초로 가장 선한 자, 즉 가장 우수한 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했다. 중국에서도 국가 경영의 모델은 언제나 요순시대나 삼황오제 같은 성군들의 차지였다. 이렇듯, 인간의 마음에 있는 지혜와 도덕, 그리고 명석한 판단은 높이 있는 별을 따듯이 높은 양반들만이 그곳으로 올라가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솔로몬을 이러한 원칙에 부합하는 대표적 인물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해체론적인 읽기를 따라 다시 꼼꼼히 본문을 읽어보니 수상한 점이 보인다. 지혜의 출처가 솔로몬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지혜란 생명의 논리이고 사랑의 언어이다. 그런데 그것이 솔로몬이 아니라 한 아이의 어미에게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혜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여인으로부터, 마치 이데아가 코라에 기대어 자기를 실현했던 것처럼, 지혜가 흘러나온다. 솔로몬은 그저 흘러나오는 지혜를 만졌을 뿐이다. 이처럼 해체론적인 읽기는 동일성의 윈칙에서 벗어난 것이 어떻게 실제로는 그 원칙을 성립시키기 위한 내부적 필수요건이 되는가를 보여준다. 그 결과 지혜는 솔로몬으로 상징되는 상층부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 민초들의 영역으로까지 직영을 넓히며 그 외연의 확장을 도모할 수 있었다.
 
 
에필로그: 해체론이 노리는 것
 
글의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해체는 파괴와 동일어도 아니고,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빨갱이라는 말을 대할 때 보이는 공포와 적대감이 되어서도 안된다. 오히려 해체론은 우리 생각에 새로운 창을 내어 인식의 지평을 넓혀 오늘의 우리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또한 해체론은 우리로 하여금 깨어서 (미쳐 돌아가는) 이 시대와의 불화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그전에 그럴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리고 해체론은 해체론이 타켓으로 삼는 대상의 조밀함과 견고함의 정도가 세면 셀수록 더 집요하고 파괴적으로 도전장을 내밀어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과다한 특권과 위압적인 체계를 흔들어 놓는다.
 
결국, 요약하면 해체론은 의미의 폐쇄와 무언가로부터 흘러나오는 억압된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그 무엇은 민족(혹은 국가)일 수도 있고, 체제일 수도 있고, 이념일 수도 있고, 그리고 당연히 종교도 성서도 그 예외는 아니다.


ⓒ 웹진 <제3시대>


  1. “내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독해하고자 했던 방식은 이러한 유산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반복하고 보존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떻게 그들의 사유가 작동하고 있는지 또는 작동하지 않는지를 발견하고자 하는, 그리고 그들이 남긴 언어 자료 안의 긴장, 모순, 이질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그런 하나의 분석이다”- Jacques Derrida, Deconstruction in a Nutshell. Ed. John D. Caputo,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1997), 9. [본문으로]
  2. ‘형이상학이 무엇인가?’ 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두 가지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세계 저편에 완전한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발상이다. 그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론’ 이래로, 칸트에 의하면 ‘물자체’로, 헤겔에 있어서는 ‘절대정신’으로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이 진리(이데아)는 반드시 인간 언어(이성)에 의해 포획될 수 있다는 확신이다. 물론 우리의 공부가 부족해서 지식의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공부가 끝나는 그날 우리는 그 진리들을 몽땅 우리의 언어로 다 말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 그리하여 당당하게 하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이성(언어)에 의해 세계를 모두 이해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음성중심주의’라 부른다. [본문으로]
  3. Jacques Derrida, Deconstruction in a Nutshell. Ed. John D. Caputo,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1997), 9.&#10;: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된 서구철학은 “형상과 질료, 주체와 대상, 주관과 객관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들 둘러싼 철인들의 투쟁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플라톤은 우주의 창조를 설명하면서 형상(이데아)이 어떻게 질료위에 구현되어 사물들이 형성되는지에 관심하였고 그 과정에서 조물주(데미우르고스)가 개입한다고 보았다. 물론 플라톤에게 있어 주된 관심사는 이데아(형상)에 있었다. 현실은 이데아의 모방이고, 현실에서 이러한 이데아가 구현되는 질료, 터, 대지를 ‘코라’라 불렀다. 이데아는 질서(Order)이고 코라는 혼돈(Chaos)를 상징한다. 이데아를 코라에 이식함으로 코라는 혼동을 이겨내고 안정과 질서를 찾을 수 있다. 이렇듯, 플라톤의 우주론에 있어 이데아는 주인공, 코라는 이데아를 떠받이는 조연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데리다는 (플라톤 자신도 인식하지 못했던) 플라톤 텍스트 내에서 코라가 차지하는 비중을 새롭게 발견한다. 즉, 코라가 없이는 이데아가 발현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외부에 있는 다른 문건이나 자료를 통해 찾아낸 것이 아니라, 플라톤의 텍스트내에 이미 그러한 요소가 있더라는 것이다. 코라는 논외의 영역이고, 중요하지 않은 단지 이데아를 빛나게 하는 엑스트라 역할을 하는 것 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꼼꼼히 플라톤을 읽어보니 코라 역시 이데아 못지 않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데리다는 지적해냈던 것이다. [본문으로]
  4. 데리다는 쥴리아 크리스테바와의 대담에서 차이과 텍스트의 관계에 대한 그녀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새로운 글쓰기의 개념을 산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차이(difference)로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차이들의 유희는 실제로 어떤 순간에, 어떤 의미에서도 어떤 단일한 요소가 그 자체로 현전하거나, 스스로만을 참조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종합과 참조를 전제로 합니다. 말해진 담론의 영역이건 씌어진 담론의 영역이건간에 어떤 요소도 그 역시 단순히 현전하지 않는 또 다른 요소를 참조하지 않고서는 기호로서 기능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연쇄적 맞물림은 각 ‘요소가’ 그 자신 속에 체계의 다른 요소들의 흔적에 의거해 구성되게 합니다. 이러한 연쇄적 맞물림의 망의 구조가 텍스트이며 한 텍스트는 또 다른 텍스트의 변형 속에서만 산출됩니다 ………..(중략)………. 차이로서 문자는 그러므로 현전/부재의 대립에 의해 더 이상 사유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차이는 요소들이 서로를 참조하는 차이들, 혹은 차이들의 흔적의 그리고 공간화의 체계적 유희입니다.” - 자크 데리다, 『입장들』, 박성찬 편역 (서울: 솔 , 1992), 49-5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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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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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종철
    2012.02.08 01: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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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진진하게 읽고 갑니다요. 그런데 logocentrism을 음성중심주의라고 번역하는 것은 약간 생소합니다요.. ^^
  2. hur
    2013.12.18 01: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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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큰 Inspiration이었어요. 이제까지 해석학적인 측면에서 놓치고 있던 부분이 너무 많았던것 같아요 님의 천재성에 감탄하면어 퍼갈께요 ㅎㅎ~~

‘바라빠 이야기’ 연구 동향 (2)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1. 속죄제의에서 수난이야기로!

빌라도가 마음이 흔들려서 예수를 놓아주려 하다가 결국 예루살렘의 영향력 있는 엘리트층의 요구를 묵인하는 쪽으로 결정을 했다는 복음서의 묘사는 지속적으로 의문시되어 왔다.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묘사는 예수와 초기 그리스도교를 친(親)로마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변증적 목적에서 생겨났다고 추정한다.[각주:1] 그리고 그런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빠의 이야기도 반(反)유대/친(親)로마적 정황에서 생성된 픽션으로 이해되어왔다.

지난 호의 글에서도 소개했듯이, 바라빠 이야기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를 제출한 학자들은 대체로 그 이야기가 만들어진 역사적인 삶의 자리를 초기 그리스도교의 변증적 상황에서 파악했다. 즉, 아람어 ‘압바의 아들’(아버지의 아들)의 음역인 ‘바라빠’(Barabbas)는 원래 나자렛 예수에 대한 또다른 별칭이었다는 것과, 우리가 갖고 있는 현재의 본문은 예수에 대해 별개의 혐의로 열린 두 개의 분리된 재판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라는 주장이다.[각주:2] 나자렛 예수로부터 분리된 가공의 인물인 바라빠 예수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와 바라빠 예수 사이에 뒤바뀐 운명을 극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예수의 사형에 대한 책임이 로마 권력자들보다는 전체 유대인들에게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 복음서의 의도라는 것이다.

물론 복음서 저자가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고대 세계에서 종종 있었던 특별한 죄수 사면의 예들을 참조사례로 활용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인정되었다. 예컨대 메리트에 따르면, 변증적인 동기를 갖고 있었던 복음서 저자는 예수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 관해서까지 세부적인 이야기를 정교하게 만들어 내려 했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레꼬-로만 세계의 유사한 죄수 특별사면의 예들을 인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B.C.E 561년에 바빌론 왕이 여호야긴을 석방시킨 사건(렘 52:31; 왕하 25:27) 같은 것들이 결정적인 참조사례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스 역시 이러한 견해를 이어받아, 바라빠 이야기를 『에스더서』에 관한 일종의 미드라쉬, 즉 해설적 기술방법의 결과라고 주장한다.[각주:3]

그런데, 2007년에 제니퍼 맥클레인이 발표한 논문은 바라빠 이야기의 문학적 창작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이야기가 창안된 삶의 자리를 전혀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각주:4] 그가 제안하는 비교 자료의 핵심은 바로 그레꼬-로만 세계에 편만했던 ‘치유 퇴출 의식’(Greco-Roman curative exit rites), 특히 그중에서도 그리스의 파르마코스(pharmakos; Φαρμακος) 의례와, 그것의 영향 하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되는 레위기 16장의 아사셀염소 의례이다. 그는 치유 퇴출 의식이라고 하는 그레꼬-로만 세계의 보편적 의례 문화의 맥락에서, 그리스의 파르마코스와 레위기의 아사셀 염소가 이른바 공동체의 정화를 위해 밖으로 추방되었던 속죄염소(scapegoat)의 이종변형(異種變形)이라고 보고 있다.

르네 지라르와 자크 데리다 등에 의해서 잘 알려진 용어인, 파르마코스는 ‘독’이면서 ‘약’이란 뜻을 지녔으며 그리스의 축제 때 뽑힌 인간 희생물을 의미한다. 보통 파르마코스는 그 공동체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서 주로 ‘근친상간’과 ‘아비살해’라는 금기를 어긴 자가 뽑혔다고 한다. 즉 그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질서를 파괴한 자를 희생제의로 제거하고 평화와 질서를 다시 찾으려고 하는 축제가 그리스의 ‘파르마코스 축제’인 것이다.[각주:5]

맥클레인에 따르면, 바로 이 파르마코스의 유대적 변종이 레위기 16장에 나타난 아사셀 염소이다. 레위기 16장은 레위기에서 청정법(淸淨法)과 성결법(聖潔法)을 잇는 본문으로서, 이 본문의 주제는 ‘속죄의 날’(Yom Kippur)이다. 속죄의 날에 아론은 자신과 그 집안을 위한 한 마리의 속죄제 숫소와 한 마리의 번제용 숫양, 또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두 마리의 속죄염소와 한 마리의 번제용 숫양을 준비해야 한다. 이때, 전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속죄제의 예식에서 두 마리의 염소 중 하나는 야웨께 드려지고, 다른 하나는 백성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광야의 ‘아사셀’에게로 보내진다(레 16:9, 15-20a).

살아 있는 그 숫염소의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이 저지른 온갖 악행과 온갖 반역 행위와 온갖 죄를 다 자백하고 나서, 그 모든 죄를 그 숫염소의 머리에 씌운다. 그런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손에 맡겨, 그 숫염소를 빈 들로 내보내야 한다. 그 숫염소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갖 죄를 짊어지고 황무지로 나간다. 이렇게 아론은 그 숫염소를 빈  들로 내보낸다.(레 16: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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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광야로 내보내는 예식(레 16:10, 20b-22)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현대의 일부 비평가들에 따르면, 아사셀염소 예식은 고대 근동의 예식을 차용한 것이며, 레위기 16장은 여러 차례의 개정과 편집과정을 거친 복합적 문학층을 가진 본문이라고 한다.[각주:6]

특히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아사셀의 이름이 정확한 무슨 뜻이냐는 것이다. 히브리성서 안에서도 아사셀이라는 단어는 오직 레위기의 이 본문 안에서만 사용된다. 속죄일에 관한 규정 역시 오경의 레위기와 민수기를 제외하고는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아사셀의 의미를 둘러싼 여러 가지 해석들이 존재하지만,[각주:7] 맥클레인은 아사셀이 광야에 거주하는 악마를 지칭하는 용어라는 해석을 지지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맥클레인도 인용하고 있듯이, 외경 에녹서(에녹 8:1; 9:6; 10:4-8; 13:1-2; 54:5)에서 아사셀은 깃털이 달린 악령의 존재로 나타난다. 더욱이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보내지는 장소가 일반적으로 악령들의 거주지로 인식되던 광야라는 점이나, 첫 번째 염소가 야웨를 위한 것으로서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바쳐진 것이라면, 나머지 한 염소가 그와 대비되는 또다른 초자연적 존재, 즉 악마를 위해 바쳐진 것으로 보는 것이 큰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구약학자들이 대체로 이 아사셀염소 의식의 기원을 히타이트나 메소포타미아와 같은 근동의 제의를 차용한 것으로 보는 데 반해, 맥클레인은 이를 근본적으로 그레꼬-로만 세계의 ‘치유 퇴출 의식’의 영향권 안에서 파악한다는 것이다.

맥클레인에 따르면, 아사셀염소 의식이 공동체의 위기에 대한 대응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예식의 과정을 통해 지위의 변형을 경험한 한 공동체의 구성원의 지명에 응하여 신성한 권력을 집중시키고 지시하는 의례적 행동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적을 향해 공동체로부터 지명된 사람의 퇴출을 수반하는 동시에, 그의 공동체로부터 멀리 떨어져나간 피지명자의 재난을 전환시키는 대리적 행동과 같은 요소들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인간 희생물 제의를 동물 희생 제의로 발전시킨 흔적을 보여준다고 한다.

또한 그는 이러한 해석이 이미 초기 그리스교의 교부중 하나인 오리겐에 의해서 일찍부터 취해졌음을 주목한다. 오리겐에게, 그 속죄염소는 악마의 형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추방 징후는 악마의 운명에 관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의 지지자들에 관한 것이었다. 오리겐은 속죄염소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악마에 대한 전형적 상징으로 이해한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학자라 할 수 있다.

한편, 맥클레인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와 바라빠 예수의 대조적인 운명에 관한 마가복음 15장의 기술이 레위기 16장의 아사셀염소의 의례를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치유 퇴출 의식이라는 맥락에서, 파르마코스-아사셀염소-바라빠는 모두 다 사악한 죄악의 전염이라는 공동체의 위험을 제거하면서 혹은 치유하면서, 사회 내부적 죄악들을 뒤집어쓰고 공동체 밖으로, 즉 광야로 퇴출당하는 의례의 희생제물을 표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나자렛 예수도 아닌, 바라빠 예수가 파르마코스 혹은 아사셀염소로서 속죄제물(Scapegoat)이 될 수 있을까? 맥클레인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속죄제물과 희생제물에 대한 개념적 구분을 숙지해야 한다. 맥클레인은 복음서 수난이야기에서 나자렛 예수는 희생염소(Immolated goat)이지 속죄염소(Scapegoat)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레위기 16장의 두 염소의 경우처럼, 야웨께 바쳐진 한 염소는 성전과 성소의 정화를 위해 죽임당하는 희생양이 되었지만, 아사셀에게 바쳐진 다른 염소는 공동체의 죄 자체를 제거하기 위해 온갖 부정과 죄악을 대신 뒤집어쓰고 학대 끝에 공동체 밖으로 쫓겨난 것이다.

유대-로마 전쟁 이후 성전이 파괴되고, 성전에서 이루어지던 속죄의 날 의례도 당연히 폐지되었다. 바로 그러한 정황 가운데서 초기 그리스도교는 속죄제의를 문학화하여 예수의 수난이야기를 재구성했다는 것이 맥클레인의 주장이다. 성전에서의 속죄제의가 갑작스럽게 중단된 데서 찾아온 혼란을 겪고 있었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속죄제의의 드라마틱한 역사적-신학적 종결의 서사가 필요했고, 바로 그것이 두 ‘예수’의 이야기로 표현된 것이라고 한다. 광야로 추방된 아사셀염소가 야웨께 드려진 희생염소와 동일하게 원래 아론에 의해 준비된 염소들 중 하나였던 것처럼, 바라빠 예수 역시 나자렛 예수 안에서 나온 또다른 예수였기 때문에, 둘은 나란히 속죄제의의 그리스도교적 번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바라빠 예수를 통해 초기 그리스도교는 속죄제의의 역사적-신학적재구성을 도모했다. 예수는 성전 혹은 이스라엘 민족을 정화하는 희생염소였고, 바라빠는 유대인들의 죄를 뒤집어쓰고 제거당한 부정한 속죄염소를 상징하는 것이다.

마가복음은 바라빠가 저지른 죄목을 민란, 즉 정치적 봉기로 묘사하고 있고, 그를 단순히 일반 범죄자가 아닌 일종의 무장 혁명세력(레스타이, λῃσταί)의 일원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런 인물을 유대인들이 풀어달라고 했을 때, 빌라도가 순순히 풀어주는 것이나, 또 그것을 중간에서 부추긴 것이 로마와 결탁한 대제사장들이었다는 것 등, 바라빠 이야기 안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바로 그러한 해석상의 난맥을 맥클레인은 새로운 각도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예컨대, 빌라도에게 바라빠를 풀어달라고 한 대제사장들과 그에 매수된 군중들의 진의는 바라빠를 유대 사회로부터 상징적으로(혹은 의례적으로) 퇴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바라빠를 살리기 위해 석방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손으로 학대하고 추방하기 위해 빌라도를 압박한 것이다. 빌라도는 그런 유대군중들의 의중을 파악했기 때문에, 정치범인 바라빠를 순순히 풀어준 것이다. 마가복음 저자는 이렇게 바라빠 사면을 통해 유대군중들의 반(反)민족주의적이고 반(反)정치적인 측면을 한껏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예수를 자연스럽게 레위기 16장의 맥락에서 속죄제의의 희생염소로 의미부여할 수 있었다.

요컨대, 예수가 이스라엘의 정화를 위해 야웨께 바쳐진 희생제물이라는 신학적 언설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서, 예수 죽음의 상황을 속죄의 날의 맥락과 더욱 유사하게 재구성할 필요성이 있었고, 여기에 아사셀염소 역할을 맡을 누군가가 역시 필요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바라빠 예수라는 가공의 인물이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맥클레인의 논문은 바라빠 이야기가 완벽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문학적/신학적 창작이라는 기존 바라빠 연구자들의 논지를 보다 정교하게 강화하고 있다. 바라빠 이야기의 삶의 자리는 이제 단순한 반(反)유대주의를 넘어, 성전 파괴 이후의 시대에 속죄제의를 완벽히 대체하는 복음서의 수난이야기에서 찾아진 것이다. 맥클레인은 바라빠 이야기의 맥락을 초기 그리스도 내부의 문제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바라빠 연구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2. 바라빠에서 오클로스로?

물론 맥클레인의 논문을 통해서도 여전히 해명되지 않는 것이 남아 있다. 바라빠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들과 그 이야기 안에 등장하는 이들 간의 관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두 회에 걸쳐 살펴본 바라빠 연구자들의 견해는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그 사건, 곧 빌라도 법정에서 일어난 일들의 역사적 실제성을 철저히 제거하는 쪽으로 진행되어왔다.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실이라고는 오로지 예수가 빌라도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고 죽었다는 것뿐이다. 예수와 빌라도를 제외하고, 바라빠와 관련된 여타의 사건과 인물들은 그 창작의 동기와 맥락은 각각 다르게 설명될지라도, 어쨌거나 모두 문학적 상상의 산물이라는 해석은 변함이 없었다.

우리가 살펴본 여러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이러한 결론을 취하는 배경에는 바라빠라는 인물의 이름의 시대착오적 성격 및 그 이름의 진의를 탐구할수록 드러나는 그리스도 예수와의 긴밀한 연관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필경 이 연관성은 우연적인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절묘한 것이어서 모종의 신학적 의도가 반영된 문학적 장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의혹을 집요하게 밀어붙인 끝에 맥클레인은 이상과 같은 획기적인 해석을 제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들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바라빠 이야기가 포함된 빌라도 법정 이야기 안에는 예수와 빌라도, 바라빠, 대제사장들, 그리고 무리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는 그들 중 어느 누구로부터도 전승되지 않았고, 완벽한 시간적 공백을 둔 채, 후대의 복음서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리그부터 맥클레인에 이르는 모든 바라빠 연구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지금까지 바라빠 이야기를 연구해온 모든 서구 학자들은 이 이야기의 역사적 진실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 오로지 바라빠라고 하는 인물에만 집중해왔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결코 바라빠가 아니다. 바라빠와 예수는 이 이야기 안에서 타인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수동적인 객체로 철저히 머물러 있다. 그리고 빌라도와 대제사장들은 주인공의 선택과 요구에 휘둘리는 혹은 그것을 충동질하는 부차적인 조연에 그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 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즉 주체적인 존재로 등장하는 것은 오히려 ‘오클로스’ 즉 ‘무리들’이라는 사실이다. 서구 학자들은 이 이야기의 일차적인 주인공인 오클로스를 통해 마가공동체에까지 이야기가 전승되었을 가능성에 관해서는 어떠한 추론도 해보지 않았다. 

사실 바라빠만을 주목하고 이 이야기를 접근한다면, 당연히 이 이야기는 허구적 성격이 다분하지만, 만일 오클로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허구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측면들이 분명 있다. 바라빠는 마가복음의 서사에서 뜬금없이 갑자기 등장하고 있지만, 오클로스는 그렇지 않을뿐더러, 공관복음이 그 자체로 예수가 무엇을 행하였고 말했는가보다는 예수의 처음 제자들이 그가 무엇을 행하거나 말한 것으로 ‘기억했는가’에 대한 증거를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의 입장[각주:8]을 따른다면, 이 이야기를 순전히 창작의 산물로서 허구라고 확정짓기 전에, 누구에 의해 이 이야기가 기억되고 전달될 수 있었는가를 더욱 치밀하게 물어 들어갈 필요가 있다. 

그래서 다음호 웹진에서는 바라빠 이야기를 오클로스의 기억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필자의 견해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 웹진 <제3시대>


  1. Craig A. Evans/김철 옮김,『마가복음 8:27-16:20: WBC 성경주석』(서울: 솔로몬, 2002) 728. [본문으로]
  2. Rigg, “Barabbas,” 417–456; Stevan L. Davies, “Who is Called Bar Abbas?,” <EM>NTS</EM> 27 (1980–81) 260–262; H. Z. Maccoby, “Jesus and Barabbas,” <EM>NTS</EM> 16 (1969/1970) 55–60. 이러한 학자들의 논의에 관한 보다 자세한 소개는, Brown, <FONT face=Arial><FONT color=#000000><SPAN style="FONT-STYLE: italic">The Death of the Messiah</SPAN> (Vol.1),</FONT> </FONT>811–814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3. Roger David Aus, “The Release of Barabbas (Mark 15:6–15 par.; John 18:39–40), and Judaic Traditions on the Book of Esther,” in <EM>Barabbas and Esther and Other Studies in the Judaic Illumination of Earliest Christianity</EM> (Atlanta: Scholars Press, 1992) 1–27. 이는 마치 마태복음이 예수의 유년설화를 기술하는 과정에서, 베들레헴에서 어린아이가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태복음 저자는 예수를 모세와 같이 위대한 인물, 즉 제2의 모세로 제시하고자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이야기 중 히브리인 가정의 어린아이들이 파라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출 1:15)를 예수의 유년설화를 구성하는 데 전유한 것이다. 따라서 오스에게 있어, 바라빠의 사면 사건이 역사상에서 실제로 발생했는가 아닌가는 애초부터 복음서 이야기의 미드라쉬적 성격을 간과한 잘못된 물음인 것이다. [본문으로]
  4. Jennifer K. Berenson Maclean, “Barabbas, the Scapegoat Ritual, and the Development of the Passion Narrative,” <EM>HTR</EM> 100:3 (2007) 309–334. [본문으로]
  5. Rene Girard/김진식 · 박무호 옮김, 『폭력과 성스러움』(서울: 민음사, 1997) 144-150. [본문으로]
  6. 이상란 · 정중호, “대속죄일과 아사셀,” 『구약논단』3호(1997) 5-6. [본문으로]
  7. 아사셀의 의미에 관한 해석들에 대해서는 이충호, “대속죄일과 아사셀염소: 레위기 16장을 중심으로,” 감신대석사논문 (2009) 73-80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8. James D. G. Dunn/차정식 옮김,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서울: 새물결플러스, 2010) 19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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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변 기행1
- 재래시장, '위생도시'와 '원초성'의 틈새 공간

 

유승태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연변에 도착하고 둘째 날 아침,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모두가 서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출발을 앞두고 현지 진행 담당을 하는 한국 측 목사님과 조선족 가이드가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획에 없던 일정을 갑자기 추가했기 때문인데, 가려는 장소가 연길시의 '재래시장'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조선족 가이드는 "다른 데 갈 데도 많은데 왜 하필 거길 가려는 거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한국에서부터 "시장을 꼭 한번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으레 재래시장에 가겠거니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이드의 반응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짧은 실랑이가 끝나고, 한국 측 목사님의 의견대로 연길시의 재래시장인 '흥안시장'에 가게 됐다. 시장에 도착하기 전 가이드는 재래시장에서만큼은 '아무거나 사먹지 말 것'을 주문했다. 중국에 왔으니 한번 맛은 봐야 한다며 가이드가 사준 '꿔즈'(한국식 한자 발음으로는 '과자'?)를 보니 왜 아무거나 먹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꿔즈는, 모양은 꽈배기 같았지만 오래된 기름에 튀겨서인지 튀김 특유의 고소한 맛이 아닌 새카맣게 탄 맛이 났다. 설탕을 덧입히지 않은 밀가루 튀김 그 '날 것' 혹은 그 밀가루가 수도 없이 들락거린 기름 그 '묵은 것'의 진수를 맛본 느낌이었다.

연변대 앞의 대학서점 울타리에 걸려 있던 긴 현수막

그런데 이 맛은 꿔즈의 맛이면서 흥안시장의 맛이기도 했다. "국가급 위생도시를 건설하자." 연길시의 가는 곳마다 이 선전문구의 여러 버전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흥안시장은 이 선전문구에서 가장 빗겨나 있는 곳이었다.

연변 일대에서의 일정은, 한국 측의 기획의도와 희망 방문지를 반영해 현지에서 구체적인 일정을 기획하고 제안하면, 다시 한국 측에서 이를 확인하고 확정하는 과정을 통해 결정됐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족 가이드의 역할이 매우 컸다. 발전하고 있는 연변, 이를 위해 애쓰고 있는 조선족 지도자와 교육자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가능케 한 한민족의 역사적 흔적들(주로 항일 유적)을 보여주는 것이 가이드의 기획 의도(와 한국 측 의도의 접점)인 듯했다. 그녀의 기획 속에서 '연변'은, '발전'이라는 미래의 목표와 '항일'이라는 과거의 경험이 안정적으로 통합돼 '자긍심'을 갖게 만드는 공간으로서 재현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러한 공간 기억 방식은 '위생도시'를 건설하려는 국가 또는 자치주 차원의 도식계획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것이었을 터이다. 그러니 '날 것' 혹은 '묵은 것'의 느낌을 주는 흥안시장이라는 공간은 그녀의 기억이나 연길 도시계획 어디에도 자기 자리를 안정적으로 마련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재래시장에 가자고 제안했을 때, 조선족 엘리트에 속하는 가이드에게 흥안시장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주최 측이 예측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시장에 가자고 했던 것은 "중국 인민의 생생한 삶을 볼 수 있다" 정도의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의도였을 듯하다. 그러나 조선족 가이드의 반응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가 재래시장을 당연히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날 것' 혹은 '원시성'을 발견함으로써 '인간적인 것' 혹은 '진정한 것'을 보았다고 믿는 식민주의적 감상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반성을 하게 됐달까.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침에 있었던 실랑이는 한 공간의 의미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종의 해석투쟁이었는지도 모른다. 연변을 '발전과 문명'의 가능성 그리고 역사적 자부심을 간직한 '위생도시'로 기억하려는 조선족 엘리트와 자본이나 개발논리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인간의 공간으로 기억하려는 '진보적' 한국인의 해석이 경합하는 곳이 바로 흥안시장이었다.(이 공간해석에서 어느 한쪽이 무조건 옳다 할 근거는 없다. 그리고 꼭 둘 중 하나여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대세는 전자의 편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연변과학기술대학을 방문했을 때 한 교수를 통해 연길시의 도시계획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가까운 미래에 흥안시장은 '대규모 최첨단 농업 물류유통단지'로 조성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통해서도 흥안시장은 타파해야 할 '나쁜 습성'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중국 도시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이 1800위안(한국돈으로 30만원 남짓) 정도라는데, 도심의 백화점에서 옷 한 벌 가격이 400~900위안인 것을 보며 걱정이 앞섰다. 물류유통단지가 완성되는 그때 흥안시장의 재래상인들은 다 어디로 가게 될까. 첨단과 부의 상징인 백화점에서 청소년들이 노동자 월급의 절반에 이르는 의류를 소비하고, 한국에서 돌아온 조선족들이 아파트를 두세 채씩 사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타워크레인이 움직이고 있는 연변. 이곳의 도시화와 발전은 10위안 대의 물가로 거래를 하는 시장상인들에게 어떤 삶의 공간을 만들어내게 될까.

그런데 조선족과 조선족 자치주의 위기론이 1990년대 제기된 이래 최근 들어 광범위한 실체적 위기로 조선족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연변의 도시화로 인해 조선족은 '개발'에 대한 장미빛 꿈을 꾸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조심스럽지만, 나는 이런 추측을 해본다. '조선족 위기론'은 재래시장을 기억에서 지우고자 하는 욕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때문에 조선족의 위기에 대한 사유는 이 욕망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흥안시장 풍경>

1.


연길시의 흥안시장. 

3, 6, 9일에 장이 열린다 하여 '삼육구시장'이라고도 불린다. 장이 서면 사람들이 팔 물건을 들고 하나둘 모여든다. 주로 농산물인데, 농산물만이 아니라 각종 생활용품부터 물고기, 가금류, 심지어 지붕의 뼈대(!)까지 판다. 집터와 기둥은 내가 마련하고, 지붕은 시장에서 산다?!

사진을 찍은 곳부터 가운데 산 아래쪽까지가 모두 시장이다. 시장을 다 둘러보고 반대쪽 끝으로 돌아 나갔을 때 사기꾼 차력사가 불장풍을 쏘는 시범을 하고 있었다. 일행중 한 명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불같이 화를 내는 바람에 언른 사진기를 치웠다. 켕기는 게 있는 듯.. (-_-;;



2.








시장 통로 좌우로 사진과 같이 경계가 그어져 있었다. 여기가 좌판을 벌이는 구역이다.











3.






시장 끝 한 공터에도 상인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4.



할머니 한 분이 경계선 안에 좌판을 벌이고 계셨다. 저 멀리 타워크레인이 보인다. 연길 어디서나 보이는 타워크레인은 왠지 감시탑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타워크레인과 아파트를 보며 나의 욕망이 자본주의적인지 끊임없이 자기검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5.






당나귀가 싣고 가고 있었던 것은??
정답 : 돼지 두 마리.

어쩌다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ㅠㅠ








6.




시장 끝 한쪽에 한 교회가 보였다. 마크로 보나, 한국어 교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나 한국에 뿌리를 둔(?) 교회가 아닌가 싶다. 저 교회를 모독할 생각은 없으나 뒤에 보이는 타워크레인은 저 교회의 꿈과 닿아 있는 듯했다.





7.





이 사진이 그 증거랄까. 교회 마당 한켠에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성전 조망도'가 있었다. 실현되지 못한 꿈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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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보는 성서 뒤집어 읽기』

지은이 : 김진호

펴낸날 : 2010년 7월 14일
페이지 : 286쪽
정  가 : 12,000원
펴낸곳 :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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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김진호 저자가 뒤집어 읽은 성서에는 성적 억압, 가부장주의, 보수적 민족주의, 보복의 정치, 권력과 지배 이데올로기의 야합, 다수성을 용인하지 않는 공동체주의 등이 판을 친다. 이에 저자는 그런 야박한 현실에 짓눌리고, 스러져 간 이름 없는 인물들의 삶을 되살려 낸다.

곧 천상의 복음 아래 은폐된 폭력을 해부하고, 일개 조연으로 또는 무명으로 사라져 간 성서 속 인물들을 복권해, 성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성서를 읽으려는 것이 책의 주제다. 단순한 성서 비판서도 아닌, 그렇다고 교조적인 성서 찬양서도 아닌 <인물로 보는 성서 뒤집어 읽기>는, 성서의 내적 한계를 조망하면서 그 심오한 의미를 재발견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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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행』
- 체 게바라로 난 길, 시사만화가 손문상과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의 좌충우돌 70여 일 남미 여행기

지은이 : 손문상, 박세열

펴낸날 : 2010년 8월 11일
페이지 : 412쪽
정  가 : 18,500원
펴낸곳 : 텍스트

             * 책 소개 보러가기

책 소개

시사만화가 손문상과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의 70일 동안의 남미 여행기. 손문상은 그 여정을 눈물과 가슴으로 그림과 만화를 사진에 담았고 박세열은 땀과 발로 글을 썼다. 손문상은 체 게바라의 추억과 혁명의 추억을 마음 한 구석에 묻어둔 채 살아왔고 박세열은 체 게바라를 동경했다. 그런 두 마음이 모아져 둘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여정을 따라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그리고 쿠바로 이르는 70일 동안의 여정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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