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하느님이라는 쉬운 말 앞에서 머뭇거리다


김강기명
(연구집단 CAIROS 연구원)

 
가끔씩 노약자석 앞에 선 임산부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우리 때는 밭에서 일하다가 애 낳고 다시 일하고 그랬어."같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곤 한다. 자리를 양보하면서도 농담조로 저런 이야기를 보태기도 한다. 아마 그 이야기는 사실일 것이다. , 그렇게 했어도 살아남은 이들에게 말이다. 고된 시집살이를 계속 하면서 애까지 나아 길렀는데도 살아남은 사람들, 밭을 매다가 애를 낳고 다시 일을 했어도 살아남았던 사람들만이,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만이 ''을 할 수 있기에 그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거지만 이 이야기 뒤에는 수많은 은폐된 죽음들이 있다. "우리 때"의 영아사망율, 산모사망율이란 건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것 아니었나.

그러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오늘날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주검으로 돌아갔다. 땅은 그들을 파묻어 버렸다. 벤야민이 이야기한 '신적 폭력'이 우리 앞에 스펙타클로 펼쳐졌다. 피 흘릴 틈도 없이 그들은 땅 속에, 뻘과 건축자재 속에 묻혀버렸다.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번 지진은 우상숭배에 대한 신의 심판이다"라던가, "하느님이 사랑이신데 그럴 리가 없다. 우리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한다."던가 하는 말을 할 수 없다. '의미'는 산 자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전자의 이야기가 분노를 자아낸다면, 후자는 꺼림칙함을 자아낸다. 그래, 하느님이 사랑이라고 하자. 그런데 당신은 그 동안 그 하느님을 인간의 생사화복과 자연만물을 주관하는 분이라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그 하느님의 "주관" 아래에서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지진으로 죽은 자가 말할 수 있다면, 그들은 당신의 말에 항의할 것이다. "하느님이 사랑이시라고?"

"이것은 하느님의 심판이다."가 되었던, "아니다. 하느님은 사랑이다."가 되었든, 그것은 살아남은 자의 발언이며, 신학이다. 어쩌면 모든 구원론이란 구원받은 자의 편에서, 살아남은 자의 편에서만 구성되었던 것 같다. 그들은 살아남았기에 - 그러나 누군가는 죽었기에 - '살아남음'을 해명해야 했다. "나를 살려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에 집중한 자는 사랑의 신학과 구원론을, "하지만 저들은 죽었군요."에 집중한 자는 심판과 징계의 구원론을 각각 열심히 구성했다. 그것을 통해 신은 높여지고, 우리도 신과 함께 높여진다. 그들은 구원론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권리를 누린다. "우는 자와 함께 웁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예수님입니다."라는 사랑의 윤리조차도 살아남은 자들의 권리다.

우리가 죽은 자들의 편에서 구원론을, 혹은 신학을 전개할 수는 있는 걸까?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상상해볼 수 있을 뿐이다. 신의 창조물이 거대한 죽음으로 엄습해올 때 그것은 무엇인가. 그 신은 어떤 신인가?(물론 이 질문은 하느님이 생사화복과 자연만물을 주관한다는 고백을 하는 이들에게 해당할 것이다. 애초에 특수한 개인성이나 개별적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고, 모든 것이 인연 속에서 빚어갈 뿐이라 사유하는 불교도에게는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솔직히 불교가 이러한 죽음 앞에서 섣부른 악담이나 위로가 아닌 '빛나는 초연함'을 보여줄 수 있는 위대한 사유라고 생각한다.) 지진이 신의 심판이나 악마의 놀음이 아니라면, 그 신은 무엇보다도 '무의미'. 지진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은 채 단지 도래할 뿐인 것으로서 도래했다. 그렇게 절대적인 무의미로서, 해석되지 않고, 해석될 수 없는 거대한 폭력으로 신은 임재한다. 죽은 자도 말이 없고, 죽이는 자도 말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 산 자들의 시끄러운 그 구원론들, 그 신학은 바로 이 죽은 자들의 '무의미성의 신학' 위에 서 있는 게 아닐까. 삶이란 죽음 앞에서 삶이므로.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자랑할 때, 거기에는 언제나 그림자로서 절대적인 무의미로서의 그 ''이 따라다니고 있지 않은가. "I am who I am"(3:13) 하느님이 그런 존재라면 그 신은 우리의 신학이 묘사하는 신의 모든 성품 - 심판하는 하느님이라던지, 사랑하시는 하느님 같은 - 을 넘어서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그래서 '무의미'한 존재로서의 하느님이 모든 '의미'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산자들로 하여금 살게 하는 위로이며,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다. "하느님이 사랑이다."라는 말이 그런 위로와 도움을 낳게 한다면 기꺼이 우리는 그 말을 빈번하게, 확신에 차서 외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계속 살기 위해서라도, 죽은 자들의 그 '죽음'을 해명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하느님의 이 무의미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죽음에 빚지고 있고, 우리의 의미들은 무의미에 빚지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빚을 모두 죽음과 무의미가 탕감해 준 것이다. 죽은 자가 빚을 받을 수는 없으므로. 무의미한 신이 우리에게 의미를 요구할 수 없으므로. 그러므로 이 죽음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신앙과 종교체제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자유인이 된 우리를 다시 채무자로 만드는 것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다만 '탕감받은 자'로서 죽음 앞에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아닐까.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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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우
    2011.03.24 21:4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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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타자 III : 욕망 혹은 그것의 좌절과 얽힌 (욕구)불만에 관한 에세이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90년대 초반에 필자는 군생활을 했다. 당시 대한민국 곳곳에 분포되어 있었던 군부대의 역주변, 터미널주변에는 어김없이 유흥가, 윤락가, 도박판이 점점이 분포했다. 내가 군 복무를 했던 지방 소도시 역시 그랬다. 휴가 때 상경을 하려고 역주변을 서성이다 보면 골목마다 짙은 화장의 여인네들이 손짓을 한다. 불법과 음모의 은밀한 냄새가 어디선가 풍겨나고 잠시 길을 잘못 들거나 발을 헛디디면 금방이라도 이상한 나라로 빠져들 것 같은 위태로움, 아니 쾌감을 느끼며 난 그 골목을 걷는다. 그 미로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옷깃을 잡아당기는 손길이 있다. 그리고 속삭인다. 재미있는 세계가 있다고… 그 유혹을 뿌리치고 역(驛)을 향해, 나는 순전히 서울 가는 기차를 타려고 저 역을 향해 가노라고, 그것만이 나의 진실이라고, 날 의심하지 말라며,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변명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절대 그럴 마음이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매번 그 긴 터널을 아무일 없이 빠져 나온 후에는 뭔가 아쉬웠다. 왜 나는 그 손길들을 거부했던 걸까? 그러면서도 나는 왜 그 골목을 다시 욕망하는 걸까? 내 안에 도사린 이 묘한 충동과 그것에 대한 억제는 무엇으로 설명가능한가? 그리고, 남아 있는, 못내 아쉬워하는 내 감정의 저 찌꺼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런 나의 감정의 굴곡은 현재 논의되는 타자론과는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이런 물음들을 갖고 프로이트를, 그리고 라깡을 지금 만나러 간다. 

 


프로이트 길라잡이

 

흔히 19세기가 낳은 3대 천재로 우리는 맑스와 니체와 프로이트를 거론한다.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서구 정신사를 장악했던 지배적인 담론들에 균열을 내어 이후 전개되는 현대 사상계의 지적(知的)지형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앞서 언급했던 니체가 이성중심의 사유체계에 대한 반동을 시도했다면, 맑스는 경제적 하부구조, 즉 노동의 중요성을 이끌어냈다. 프로이트 역시 이전까지 등한시 되어왔던 의식에 반하는 무의식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력을 설득력있게 해명해면서 정신분석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마련하였다.

프로이트 학설은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기는 『꿈의 해석』(1899)을 중심으로 꿈, 증상, 실수 등 정상인들의 일상적 삶 속에서 드러나는 무의식의 존재와 그것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전개하던 시기이다. 무의식 개념은 근대적 사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이성적 합리적 의식적 주체에 대한 정의를 전복시켰으며, 프로이트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인 발화와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의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갖고 있는 자기에 대한 의식의 정체성은 이미 주어진 자명하고 단일한 통일체가 아니라, 기나긴 정신적 발달의 산물이며, 동시에 무의식의 갑작스런 돌출과 분열의 결과물이다. 이를 통해 프로이트는 인간이 가지는 사유의 한계점을 포착하고자 했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근대적 사유가 지닌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믿음과 원리에 대한 폐기 선언으로 이어졌다.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1939)


의식과 무의식의 구조화된 체계의 발견이 프로이트의 전기 작업이었다면,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1920)와 『자아와 이드』 (1923) 발표[각주:1] 후 프로이트는 인성을 욕망의 차원인 이드(Id)와 현실적 차원(ego), 그리고 도덕적 차원인 초자아(superego) 사이의 역학관계로 바라본다. 이드는 인성(Personality)의 가장 원초적이고 일차적인 원리인 ‘쾌락원리(pleasure principle)’를 충족시키는 기능을 한다. 초자아는 이드의 충동을 제압하는 도덕적 양심이다. 에고는 초자아와 이드간 발생하는 극단적인 투쟁사이에서 갈등하고 조정하는 자아, 즉 ‘현실원리(reality principle)’ 의 지배를 받는 자아이다.[각주:2]

그렇다면 필자가 군생활 하던 시기 휴가나 외박 때 역주변을 서성이며 꿈꿨던 나의 욕망과 그 욕망의 좌초는 프로이트식으로 어떻게 설명가능한 것인가? 분명 나의 의식 너머에는 부대 밖에만 나가면 그 환락의 거리가 제공하는 쾌락을 향유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시기의 나는 오직 이드(Id)에 의한 쾌락원칙만을 추구하는 기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또 다른 힘인 슈퍼에고(초자아)에 의해 진압당하고 만다. 매번 아슬아슬하게 나의 이드는 초자아의 벽을 넘지 못했다. 간발의 차이였다. 욱일승천하던 이드의 기운이 한 풀 꺾이고 뒤돌아 나오면서 다음 번에는 ‘기필코!’를 외쳐보지만 그 다음에도 어김없이 결과는 같았다. 오직 쾌락원칙만을 쫓아 질주하던 나의 이드는 왜 그 꿈을 펼치지 못하고 좌초하고 마는 걸까? 이에 대한 해명으로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Oedipus complex)를 이야기한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Oedipus complexs), 그리고 라깡을 향하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테베왕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아버지를 타도하고 어머니와 함께 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을 뜻하며, 약 4세가 되면 어린아이의 쾌락원칙이 남근부위로 옮겨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각주:3] 구순기-항문기-남근기(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이어지는 어린아이의 발달단계 중 남근기 전 단계까지 아이와 엄마 사이는 완벽하게 일체한다. 아이는 자신과 엄마에 대한 구분도 뚜렷하지 않다. 이처럼 자기와 타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는 다른 아이를 때리고도 자기가 맞은 것으로 오인하고 다른 아이가 울면 따라서 울기까지 한다. 라깡은 이 시기를 아기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영상을 발견하는 시기라 하여 ‘거울 단계'[각주:4] 라 부른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거치면서, 라깡식으로 말하면 거울단계를 지나면서 아이와 엄마 사이에 가졌던 완강했던2항 관계는 아버지의 개입으로 3각 관계로 변모한다. 이후 아이는 엄마와 자기 사이에 있었던 은밀했던 근친상간적 욕망이 거대한 타자의 등장으로 폭로되고 위축되는 것을 느끼며 불안해한다. 이때 아이는 자기의 성기가 색정의 원인이므로 아버지가 자신의 남근을 제거할 것이라는 ‘거세위협(castration complex)’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아이는 체념속에서 근친상간적 욕구를 억누르고 자신을 현실원리에 적용시키고 아버지에 복종하면서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나간다.[각주:5] 

결국,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쾌락원리’에서 ‘현실원리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사회전반으로, 자연에서 문화로의 이행을 뜻한다.[각주:6]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아이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상징되는 사회문화적 규범과 가치를 내면화한 초자아를 지니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초자아는 쾌락지향적인 이드를 억압하는 한편, 현실 지향적인 에고를 도덕적으로 규제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위와 같은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군생활 시절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나의 이드, 즉, 역(驛) 주변의 쾌락을 쫓는 본능은 내 욕망의 물결을 타고 거칠고 급하게 내려오다가 오이디푸스 단계를 거치며 형성된 초자아의 벽에 가로막혀 정상적인(?) 에고의 형태로 수정된 채 그 여인들의 손길을 뿌리치는 금욕적인 성자로 나를 변모시켰다는 말인데…

나의 질문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잠시 제압당했던 그 놈이 일정 기간이 흐르고 난 뒤 다시 꿈틀거리며 어김없이 되살아 난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예감한다. 그 충동이 또다시 진압되리란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실패를 예상하면서 이러한 행위를 반복하는가? 이런 나의 욕동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 지점에서부터 라깡의 ‘타자론’이 펼쳐진다.  <다음 호 계속> 

 

 ⓒ 웹진 <제3시대>


  1. 1997년 간행된 프로이트 전집(총 20권) 제14권의 타이틀이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 (박찬부 역, 서울: 열린책들, 1997) 이고, 그 안에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와 ‘자아와 이드’가 포함되어 있다 [본문으로]
  2. 프로이트 사상의 구조를 좀 더 명확히 살펴보고자 한다면 C.Hall, A Primer of Freudian Psychology, 백상창 역, 『프로이트 심리학 』 (서울: 문예출판사, 2000) 중 2장 “퍼스낼리티의 구성”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3. 페미니즘 계열이나 사회과학에서 프로이트를 비판할 때 왕왕 지적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 즉 남근중심의 ‘생물학 주의’와 ‘기원주의’이다. 변혁을 위해 역사성을 강조하며 초역사성을 무시했던 맑스의 작업과 반대로, 프로이트는 역사성을 간과하고 남근중심의 초역사성을 전제로 그의 이론을 전개하였다는 것이다. 라깡은 프로이트에 대한 이같은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페니스가 아닌 팔루스를 말하고 부친살해 사건을 역사적 사건이 아닌 구조적 사건으로 이해한다. [본문으로]
  4. 1936년 발표된 라깡의 논문제목이다. 이 논문에서 라깡은 처음으로 ‘상상계(the imaginary)’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거울상태’의 아이는 타인이 보기에는 양육을 위한 의존상태에, 그리고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불안한 상태에 있지만, ‘거울상태’의 아이가 스스로를 느끼는 이미지는 고정되고 안정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라깡은 이를 1914년 발표된 프로이트 『나르시즘에 대해-입문』과 관련시켜 이야기하고 있다 –Mardan Sarup, Jaques Lacan, (Toronto and Buffal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1992), 101-103 [본문으로]
  5. 프로이트,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 박찬부 역 (서울:열린책들, 1997), 114-130. [본문으로]
  6. 프로이트는 문명발생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관된 ‘토템향연’에 초점을 맞춰 설명한다. 원시사회에서 토템동물은 신성시되고 타부시되며 아버지로 상징된다. 최초의 아버지가 있고 모든 여인들은 원부의 차지다. 자신의 독점적 지위에 위협을 느낀 원부는 아들들을 모두 쫓아낸다. 쫓겨난 아들들은 원부의 여인들을 차지하고자 아버지를 힘을 합쳐 죽인다. 그런 다음 아버지의 살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 원부살해에 대한 죄의식을 느낀 아들들은 1년에 한 번 짐승을 죽이고 그날을 기억하며 축제를 벌인다. 이것의 문명발생의 기원을 설명하는 ‘토템향연’이다- 프로이트,『종교의 기원』,이윤기 역 (서울: 열린책들, 1997) 中 ‘토템과 타부’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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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과 구원을 변주하는 새로운 신학의 내러티브를 위하여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우리가 사는 세계가 점점 재난으로 파괴되어가고 묵시록의 파국적 이미지가 막연한 불안을 넘어 현실적 공포를 자아내고 있는 현재, 수많은 이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자연 일반의 재난 앞에서 이런저런 질문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이 파국적 공포 앞에서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가?” 물론 그 모든 질문들도 정작 재난을 직접적으로 당한 사람들 앞에선 살아남은 자들, 그래서 미래를 염려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자들에게나 해당하는 사치스러운 질문에 불과할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재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 가까운 가족과 이웃과 친구를 방금 막 잃어버린 자들에게서 우리가 듣게 되는 가장 절실한 물음은 바로 ‘왜?’라는 질문이 아닐까. 그런 사건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가를 완벽하게 복기할 수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은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된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일 텐데,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먹고 사는 존재이므로. 그런데 과연 이 ‘왜’라는 질문 앞에서 정직하게 이유를 말할 수 있는 담론이나 학문이 존재할까. 물론 나 역시도 “이유가 없다는 것”. 혹은 “인간사의 불가해한 비극 앞엔 그 어떤 초월적/외부적 원인도 없다는 것”. 그래서 “그 이유 없음, 그 무의미함이 가장 잔혹한 ‘실재’(real)일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니힐(Nihil)한 답변들이 갖고 있는 윤리적 가치에 대해서도 충분히 긍정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리스도인인 이상 왜 인간은 특히 유신론자들은 그와 같은 니힐한 답변에 여전히 만족하지 못할까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러한 니힐리즘적 답변들에선 니힐을 신의 부재로 보든, 타자와의 완벽한 통합의 불가능성 또는 인간 커뮤니티의 완벽한 조화의 불가능성으로 보든, 또는 온전한 만족이나 행복, 인간 존재의 영원이나 불멸의 불가능성 등으로 보든, 결국 그것은 애당초 소유하지 않았던 그 무엇이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계기를 의미한다. 욥이 자신의 고난에 사실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처럼 말이다.

The Patient Job by SEGHERS, Gerard
Oil on canvas, 192 x 242.5 cm, National Gallery, Prague

한데 만일 진실이 그런 것이라면 비극적 사건 앞에서 ‘신의 부재’를 말해온, 더 나아가 ‘신의 부재 가운데 현존’을 주장해온 신학의 전통은 그야말로 우울증적 주체들의 병리적 증상 밖에 되지 않는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우울증적 주체가 어떤 대상을 애도하는 과정에서 범하는 결정적인 오류는 '상실'과 '결핍(결여)'을 혼동하는 데 있다. 우울증은 소유했던 대상의 상실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대상을 결핍하고 있었다는 데서 비롯된다. 결국 우울증은 “마치 결핍된 대상을 과거에 소유했지만 나중에 잃어버리고 만 것처럼” 행하기 때문에 일종의 '기만'인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대상이란 그 자체로서 결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실재'로서 존재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우울증은 대상이 처음부터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상의 출현은 그 대상의 결핍과 함께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대상은 공허/결핍을 긍정하는 것 이외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대상은 결국 그 '자체로' 실존하지 않는 왜상(歪像)적 실체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울증의 패러독스는 결핍이 상실처럼 기만적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마치 대상을 소유했던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데 있다. 그러한 우울증의 패러독스로 인해 “기만적인 스펙터클”이 나타난다고 지젝은 주장한다. 애초부터 결핍된 대상, 우리가 결코 소유하지 않았던 대상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우리가 아직 소유하지 않은 대상을 마치 잃어버렸던 것처럼 행동하는 데 있다. 이처럼, 정상적인 애도 과정의 작동에 저항하는 우울증자는 정반대의 형식을 취한다. 대상을 잃어버리기도 전에 그 대상에 대해 지나치고 과도하게 슬퍼하는 기만적인 스펙터클의 형식 말이다(지젝, 『전체주의가 어쨌다구?』, 220-221쪽).

그런데 정말 이것이 모든 종교인들의 '신 부재' 경험에 그대로 다 적용될 수 있을까? 적어도 난 아니라고 본다. 신의 부재에 관한 경험은 결코 근원적인 결여의 문제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애초부터 없던 것을 나중에 가서야 원래 있었다고 착각하는 '결핍'(lack)이 아니라 오히려 정말로 있음을 경험해온 것을 갑작스럽게 잃어버린 '상실'(loss)이라고 봐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의 부재만큼이나 신의 현존 역시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현재적인 경험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이제는 흔적만 남은 것이라 할지라도 신의 현존은 신의 부재만큼이나 명확한 인간의 경험이다. 우리는 수많은 비극의 사건들 속에서 반드시 신의 부재만을 경험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곳에서 비통한 눈물을 흘리며 희생당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으로 육화하는 신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의 부재 가운데 현존”(God's presence in absence)이라고 하는 신학의 오래된 통찰은 억압된 것의 귀환 같은 것으로서, 현존을 경험해온 신을 상실한 것, 혹은 그의 떠남/죽음에 대한 인간의 애도이자 신의 귀환을 염원하는 존재론적 갈망으로 이해해야 한다. 물론 이 근원적인 부재의 상실감은 신의 현존에 관한 경험만큼이나 역시 원형적인 차원의 것일 테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떤 것이 먼저라고 말하기 힘든 비선형적 시간의 구조 속에 존재한다. 더 정확히 말해서, “현존-부재-상실감-애도”의 순환 고리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역사적(사회적, 자연적) 사건을 경험하며 그 가운데 초월적/원형적 사건에서 무의식적으로 원인을 찾게 마련이다. 그만큼 인간사에서 부딪히게 되는 다양한 차원의 비극적 사건들, 자연재해건 사회적 시스템의 위기에서 초래된 재난이건 인간관계 안에서의 불행한 사건이건 간에 그런 사건들엔 언제나 해석의 잉여 혹은 공백의 지점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고대 이래 전통적으로는 종교나 신화가, 그리고 근대를 거치면서 종교를 제치고 정신분석학이나 문학이 인간이 겪는 문제상황을 정의하고 해석하는 새로운 상징체계로 기능해왔다. 즉 종교/신화/정신분석학/문학이 계속하여 불가해한 사건 앞에서 해석의 공백을 채우려는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에 대해 가장 공감적인 그러나 비합리적인 인과관계의 답변을 제시해왔던 것이다. 이를테면, “일본의 대지진은 우상숭배에 관한 하나님의 징벌이다”, “홀로코스트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의 죄과이다”, “홀로코스트는 지라르가 말한 희생양메커니즘의 세속적 회귀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것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유대-그리스도교 모두의 신이었다”, “남자 유아들의 거세불안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이다”, “전태일이 예수다”, “9ㆍ11은 뉴욕 시민들을 실재의 사막으로 초대한 것이다” 등등. 출처와 맥락은 다를지라도 하나 같이 합리적 인과관계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거칠게 말해서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이, 관념론과 유물론이 한데 뒤섞인 그런 진술들이다.

역사 너머에 있는 원형적/초월적 진실, 그 검증도 반박도 불가능한 사건을 역사적(사회적, 자연적) 사건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 짓는 사고. 그럼으로써 규범화된 역사적 논의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초역사적 설명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은 그런 해석을 여전히 욕망하며 또한 그것을 긍정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종교/신화/정신분석학/문학은 설명 불가능한 사건의 잉여/공백을 둘러싸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초월적 원인과 역사적 원인을 융합하고 때론 둘 간의 인과관계를 구조화한 내러티브를 제시해왔고, 소위 탈주술화된 계몽의 시대를 살고 있는 근대인들조차도 여전히 그것을 계속 수용해온 것이다.

물론 각 내러티브 간에도 윤리적, 이데올로기적 편차가 있기 마련이고, 그 가운데는 아주 폭력적이고 비윤리적 얘기에서부터, 한결 세련되고 정교하게 발전된 얘기도 있다. 예컨대, 지금 일본의 대지진 앞에서 그것이 우상숭배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일부 한국의 개신교 목사들처럼 아주 저열한 해석도 존재한다. 이들의 내러티브가 고통의 당사자들에 대한 일말의 윤리적 책임도 결여하고 있다는 그런 비판은 일단 차치하고라도, 너무나도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게 문제이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구약시대가 아니다. 원형적 비극이 역사를 초월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역사적 개연성은 갖고 있어야 한다. 우상숭배와 그것의 징벌로서 재앙이라고 하는 현실적 비극의 인과관계에 관한 히브리성서적 전망은 그것이 써질 당시의 세계에나 적용 가능한(물론 그것도 이스라엘민족 입장에서나) 논리일 뿐이다.

그렇다면, 초월적 비극과 역사적(혹은 사회적, 자연적 비극) 비극을 혼동하지 않으면서도 양쪽을 모두 감안하는 그런 신앙적 시각을 우린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신학은 이러한 해석의 현상에 관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학문 중 하나일 텐데, 문제는 해석에 관한 해석의 단계에 멈춰야 하는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신학도 초월적/원형적 사건과 역사적 사건 간의 인과관계 혹은 조응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자기만의 해석적 내러티브를 생산할 것인가 하는 것. 역사적 비극의 사건의 경우 초월적 사건을 부재하는 원인으로 설정 할 때 해석의 위험성이 분명 뒤따른다. 예를 들어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비극을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의 죄과라고 하는 그리스도교적 역사론의 맥락에서 표현하려는 내러티브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이 그랬듯 특정 대상의 희생이라는 결론을 처방으로 제시한다. 무언가가 우리로부터 부재한다는 그 상실감의 조건이 특정한 역사적 비극으로 응축되고 치환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특정한 집단이나 인물을 희생양으로 삼는 근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도미니크 라카프라(Dominick LaCapra)식으로 홀로코스트의 불가해성을 나치 이데올로기의 초월적 측면, 즉 전도된 형태의 숭고라는 개념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근대화/세속화와 더불어 억압되었던 제례, 희생, 구원, 폭력, 속죄양, 정화, 숭고 등의 종교적 요소들이 근대국민국가의 합리적 메커니즘으로 재활성화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홀로코스트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성찰을 진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시 문제는 자연적 재해이다. 자연적 차원의 비극을 위와 같은 식으로 초월적 차원과 매개시키는 것이 과연 윤리적/정치적으로 정당한 것인가? 이 물음 앞에선 신학조차도 일단은 침묵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물론 대지진이 일어난 원인이 결국 피해자 자신들에게 있다고 하는 그 어떤 종류의 사이비신학도 우리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당분간은 침묵 가운데 고통의 당사자들을 최대한 애도하고 위로하면서, 고통에 공감하고자 노력하며, 또한 그들의 회복을 위해 연대하고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준비를 조금씩 해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이 땅에서 겪는 현실적 비극에 대해 다양한 종류의 합리적 설명들이 주어지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초월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결코 놓지 않고 있다. 초월적인 것과 매개된 설명이 많은 경우 부정적인 결과를 낳아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고통의 당사자들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그들이 정말 원한다면, 초월적인 것에 대한 물음을 애써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윤리적 정당성을 잃지 않는 선에서 신학적-합리적 설명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인문학으로서 신학이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논리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는 앞으로의 과제겠지만, 설사 성서의 내러티브를 우리가 다 버리고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을 살리는 그런 대안적 해석의 내러티브를 제공할 책임이 신학에겐 있음을 잊지 말자. 각축하고 있는 다양한 해석의 현상들 자체를 해석하고 또 각 해석들을 비평하는 것을 넘어, 신학은 자신의 해석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할 텐데, 대단히 섬세하고 지난한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실마리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무고한 한 사람의 죽음은 온 인류의 죽음과 같다.” 어쩌면 이러한 반(反)신학적 통찰 위에서부터 비극과 구원을 변주(變奏)하는 새로운 신학의 내러티브를 짜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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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죄책감
- 한 여성의 물질을 드리는 기도

 

위희진
(한백교회 교인)

 

저희 부부는 작년 529일에 혼례를 올렸는데 올 해 529일 첫 결혼기념일엔 아기가 태어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는 아직 관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통제와 감시를 있는 그대로 순순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생각도 있었고, 우리가 결혼했다는 것을 왜 국가에 신고해야 하냐 하는 반사회적 심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집 문제가 가장 컸습니다.

저희 부부는 지금 결혼 전 신랑이 신청해서 마련한 스무 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임대아파트에 입주해서 살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있는데, 저희가 혼인신고를 해버리면 가구당 소득이 임대아파트 입주 기준을 초과해버립니다. 박봉이라는 출판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맞벌이를 하다 보니 부부소득으로는 임대아파트 입주 조건을 초과해버리는데, 1인당 가구 소득 기준이나 3인 가구 소득기준이나 같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해서 아기가 태어나서 세 식구가 된다고 하더라도 임대아파트에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습니다. 임대아파트에서 나가 살만한 집을 구할 형편도 안 되고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아기를 낳으려니 임대파트 문제뿐 아니라 이래저래 걸리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아기 출생신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신랑한테 올려야 할지, 저한테 올려야 할지도 어렵습니다. 세상이 조금은 변해서 혼인 신고할 때 앞으로 태어날 아기가 엄마 성을 따를지 아빠 성을 따를지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당연히 남자 성을 따르도록 하고 있으니까요. 갓 태어난 아기에게 어느 가족의 구성원이 되도록 강요하는 ''이라는 것을 부여하는 것이 싫긴 하지만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이름 앞에 성은 있어야 하고, 또 남편의 성을 받아야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전 제가 아기를 낳았다는 어떤 증명도 할 수가 없습니다. 육아휴직도, 국가에서 받을 수 있는 육아휴직수당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이, 여자라는 것이 살면서 억울하고 불리할 때가 한두 번 있는 것이 아니지만, 아기를 가진, 가진 것 없는 여자는 이 사회에서 참 살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런데, 얼마 전 우리가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로 이사 오는 중년 부부를 보게 되었습니다. 1톤 트럭도 텅텅 비어 있을 만큼 별 것 없는 세간, 그나마 그 세간이라는 것도 남들이 보면 버려도 그만일 것 같은 낡디 낡은 것들이었습니다. 부부 얼굴에 행복같은 사치스러움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삶에 찌든 얼굴이었습니다. 그 중년 부부를 보면 제 마음 한구석에선 죄책감이 듭니다. 우리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우리가 과연 여기서 계속 사는 것이 맞을까? 쪼들리고 힘들더라도 단칸방 월세라도 얻어서 나가야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한편으론 화가 납니다. 이 사회는 왜 우리처럼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이런 죄책감까지 가지고 살게 만드는 것일까?

예수님은 가난한 자, 힘없는 여인과 어린 아이들과 함께 하셨다지요. 그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가난한 자는 계속 가난하게 힘없는 여인과 어린 아이들은 계속 힘없이 살아야 하는 걸까요?

우리가 드리는 것들이 예수님처럼 가난한 자, 힘없는 여인과 어린 아이들과 함께 하길 바라지만, 그것이 이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듭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 글 가운데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것은 그들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함께 가난해지고 함께 힘없는 자가 되는 것밖에 없다 하신 것을 읽었습니다.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이 곧 혁명이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 임대아파트에서 계속 살기 위해 이런 저런 궁리를 하는 정도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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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24 14:5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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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을 앞둔 저에게는 참으로 공감되는 글이네요.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근근히 생활할 손바닥 만한 공간을 구하기가 왜이리 골치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소득이 적은 다른 이들은 이 나라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걸까 하는 의구심도 들고요. ㅈㅈ 거창한 인류애도 좋지만 저같은 별볼일 없는 사람은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궁리하며 살 수 밖에 없는 건가보죠. ㅎㅎㅎ 한바탕 웃고 힘냅시다!


대학, 조금 더 들어봅시다
- ‘말함을 돕는’ 인문학을 위하여


김신식
(《당대비평》간사)


# 1 올곧지만 무기력한

<대학의 몰락>은 “이 시대에 적합하고 수용 가능한 대학의 본질과 사명이 무엇인지”(9)를 묻는 책이다. 그리고 그 물음을 위해 저자가 동원하는 것은 역사적 접근이다. 책 속에서 역사적 접근은 대학의 ‘변질’을 고발하는 주요 방식이다. 원래 대학은 이런 모습이었는데, 오늘날의 대학은 이렇게 변하였다는 사고는 ‘대학의 몰락’이라는 제법 묵시록적인 책의 제목을 지탱하는데 필요한 정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석’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본 책에서 저자는 깔끔한 도식을 만들어낸다. 저자가 책 속 도식에서 강조하는 잣대는 ‘세상과의 비판적인 거리라는 조건’(27)인 듯하다. 오늘날 세상은 자본주의의 논리에 침윤되어 있고, 여기서 대학도 무관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대학이 추구하는 학문적 이상이 시장의 아이템으로 절하되고, 이러한 대학은 현실과의 불화를 더 이상 꾀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것. 저자는 시종일관 이 주장을 밀어붙인다.

그러나 저자의 이러한 주장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오늘날 이러한 주장과 그 주장을 위해 쓰이는 저자의 서술 방식이 ‘대학의 위기론’을 진단하는 전략으로서 무기력함을 숨길 수 없었다. 좀 더 나아가자면 이 책은 요즘 횡행하는 ‘~의 인문학’과 같이 ‘인문학’을 ‘생활용 교양’으로 취급하려는 사회적 분위기에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들었다. (조금 맥락에서 벗어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책 뒤에 적힌 네 분의 추천사도 이 책을 ‘정직하게’ 판단하고 쓴 것인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 2 ‘인상 깊은’ 현실이 아닌 ‘인상만’ 남은 책 속 대학

특히 저자가 언급하는 대학 내 현실에 대한 문제점들이 큼직하다보니 그러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언어들도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굳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굳은’ 언어는 그 어떤 문제점들이 닥쳐도 주변 상황에 개의치 않은 채 ‘성스러운 비판적 사유’를 전개하겠다는 ‘옳은 태도’를 보여주는 데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옳은 태도’는 “자본과 시장과 경쟁이라는 이 시대의 대학의 우상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260)는 주장 그 자체의 올곧음만을 도드라지게 하는 데만 그 가치를 다한다고 느껴졌다.

저자는 ‘대학의 기업화’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 사유, 그것을 행할 수 있는 거리(distance)의 힘을 강조하지만, 정작 그 ‘거리의 힘’은 오늘날 대학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대학- 현장’과의 간극을 드러내는 한계로 작용한 듯 보인다. 물론 이것은 대학의 잘못된 현실을 꾸짖는 데 있어 ‘대학의 이상과 목적을 질문하기 위한 사유’라는 실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책이 ‘대학의 몰락’을 걱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이 처한 생활상, 구체적으로 ‘대학생’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들과 관계 맺고 있는 사회상에 관련된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인상이 짙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아쉬웠던 점은 2장 ‘대학의 역사에서’와 3장 ‘대학과 철학’을 위해 할애한 저자의 ‘논리적 에너지’가 결국 대학의 현실을 ‘인상 깊게’ 살피는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인상만’ 살피는 데 동원되었다는 점이다)

# 3 대학, 조금 더 들어보자

저자가 ‘대학의 몰락’을 극복하기 위한 작은 방편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면 그것에 맞는 ‘몰락의 징후’혹은 ‘몰락의 현실’들을 더 듣고 챙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이것은 비단 저자뿐 아니라 근래 ‘20대 담론’과 엮어 ‘대학의 위기’를 논하는 사람들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학점 쌓기? 토익 공부 치중? 경영학의 인기? 취업난? 경쟁? 효율성? (이미 많은 논자들이 제기하였듯이) ‘대학의 위기론’이 하나의 담론적 유형으로 우리 사회에 인식되면서 그러한 위기론을 강조하기 위해 드는 사례 혹은 개념들도 너무나 안이하게 관습적으로 분류, 배치되고 있다. 이러한 분류, 배치를 통해 문제가 되는 것은 ‘대학의 위기는 이 정도 알았으면 되었다’로 섣불리 귀결되어 이후 기계적으로 제시되는 온갖 해결의 언어들이다. 여기서 대학의 위기에 대한 ‘해결어’(특히 ‘20대 담론’과 묶어서)에 대하여 정작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은 다시 한 번 꼬집어 볼 대목이다.

관심 있는 사람은 알다시피, ‘대학의 위기론’은 ‘20대 담론’과 마찬가지로 말하기 신난 사람들만 더욱 신난 구조가 지속 되고 있는 것 같다. 이를 통해 대학을 감싸고 있는 문제들을 더욱 끌어내지 못함으로써 문제점들을 단순하게 유형화시키고, 그 문제점 안에서만 대학의 몰락과 동시에 대학생의 몰락이란 비난 섞인 비판이 온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인기 있는 대화거리가 되었다.(여기서 인기 있는 이유가 ‘재단하기 쉽다’와 유사한 의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대학의 몰락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학에서 힘겹게 ‘생존’하고 있는 자들의 언어를 더 듣고 모으려는 진심어린 노력이라고 본다. 이 정도면 다 들었지 않았는가,라는 오만함을 버리고 대학 내 현장의 언어를 당사자들이 더 말하게 함으로써, 그 말함의 표출을 ‘분노의 힘’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인문학은 너무나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만이 넘친다. 정작 ‘말하도록 돕는’ 인문학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저자가 “인문이라는 학문의 언어는 원래 고백과 증언의 언어였다”(51)라는 언급한 대목을 지나칠 수 없었다. 단, 대학의 문제를 논함 가운데 이런 고백과 증언의 언어가 ‘대학의 위기론’을 설파하는 사람들만이 확보한 제한된 권리로만 행사된다면 유감일 것이다. 이는 정작 ‘인문학’의 길이 아니라 ‘인무(人無)-학’의 길로 빠지는 지름길이 아닐까. ‘대학의 몰락’을 걱정하면서도 ‘대학의 몰락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더불어 걱정해야 함을 깨닫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 느낀 유감이자 이 책에서 얻게 된 어떤 교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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