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難民, Refugee)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J는 탈북자이다. 나이는 25, 신장은 162-3cm 정도로 남자로서는 작은 키이고, 턱뼈가 유달리 발달한 강인하고 초롱초롱한 눈매를 지닌 청년이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3년전이었다. 우리학교(시카고 신학대학원) 한인학생회 주관으로 채플실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초청강사로 그가 왔었다. 북한의 실상과 탈북과정등을 이야기 하면서, 북한 관련 필름을 보여줬는데 많은 미국 친구들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 또한 그랬다. 그 후로 나는 그를 우연찮게 2번 더 만났고, 지금은 내가 몸담고 있는 이민교회 청년부 회원이다.

 

어느 정도 나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지고 난 이후, 그는 지도를 펼쳐놓고 하나씩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13살 때 두만강을 건너 중국을 떠돌아다녔다는 이야기, 그러다가 다시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북한으로 들어가 시간을 보내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 다시 북한을 탈출한 이야기, 중국을 다시 떠돌다가 어느 선교단체를 만나 그곳에서 5년간 기거하면서 주님을 영접했다는 이야기, 후에 중국본토를 종단하여 황하를 건너고, 메콩강을 지나 태국에서 망명신청을 했다는 이야기, 태국에서 한국 or 미국으로 망명지를 정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택했던 이야기등등.

 

학창시절 지리시간이나 역사시간에 배웠던 나진, 선봉, 두만강, 연변, 북간도, 청도, 북경, 황하, 메콩강 등등의 지역을 지도에 새기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J를 보며 나는 무슨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었다. 그는 미국으로 망명에 성공했고, 망명하자마자 미국 영주권을 받았으며, 영주권 취득 후 5년 만인 올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래서 행복하단다.

 

 

미국 시민권자 J가 어느 날 내게 오더니

 

J: 목사님, 중국(연변)에 다녀오려구요

I: ?  

J: 아버지를 보고 오려고 합니다 

I: 어떻게? 

J: 브로커와 연결이 되어 북에 있는 아버지와 8년 만에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가서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I: 어디서 만나겠다는 건데? 

J: 브로커를 통해 아버지가 두만강을 건너 연길로 나오면 제가 기다리고 있다가 만나는 겁니다  

I: 그게 가능하니? 

J: 몇 가지 위험요소가 있지만 가능합니다. 돈이 좀 들지만

I: 잡히면?  

J: 글쎄요~ 미국 시민권자인데

I: “미국이? 너를? 웃기지마!” 

J: 그래도, 이제는 못 참겠습니다

I: 너는 그렇다 치고, 너의 아버지가 잡히면 어떡하니?

J: ……

I: 참아! 가지 마! 

J: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J는 중국으로 갔고, 아버지는 못 만났고, 브로커는 연락이 두절이고, 돈만 날리고 다시 열흘 만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한가지 소득이라면 두만강 건너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며 그곳 사람들을 보고 온 것이 그나마 위안이란다. 그러면서, 내게 작년에 단행된 북한의 화폐개혁 후에 발행된 모든 북한의 지폐와 동전을 모은 화첩을 선물이라고 내밀었다. 두만강변에서 판매하는 것을 사왔다고 했다. 김일성, 천리마동상, 개선문, 김일성생가뭐 그런 그림들 위에 1000, 2000, 5000원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을 갖고 있으면 국가보안법 위반인가? (누구 아는 사람 있으면 알려주시기를) 하마터면 자기가 알고 있는 두만강변 비밀 루트를 통해 북으로 건너갈 뻔했다는 말을 J는 마지막에 덧붙였다.

 

그는 그곳의 뭐가 그리 그리운 것일까? J가 알고 있다는 두만강변 비밀루트는 정말 안전할까? J는 어떻게 자신 안에 있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증오를 동시에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날 들었던 생각이었고, 그 생각들 때문이었는지 그날 밤 나는 두만강변 비밀루트를 건너다 적발되는 악몽에 잠이 깨었다.


 

미국에서 인간을 분류하는 몇 가지 방법에 관하여

 

미국은 알다시피 다양한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너무나 잡스러운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오기에, 그들은 나름대로 국경을 넘어오는 인간들에 대한 검열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 일단, 나 같은 유학생들에게는 F-1 비자를,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H 비자를 제공한다. 전자가 학교에서 외부자의 신분을 보증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회사가 그()의 신원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밖에 종교인들에게는 R비자, 무슨 각종 연구원에게는 J비자, 그리고 여행객들은 여행비자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이보다 나은 신분상태는 영주권자이고, 영주권 취득 5년이 지나면 시민권 신청을 할 수 있다. 미국사회에 정착했다 함은 영주권 이상의 신분 취득을 의미하고, 흔히 그린카드로 불리는 영주권 쟁취를 위한 갖가지 정보와 속임수와 탈법과 묘책이 횡횡하는 사회가 미국사회이다. 엄격히 말하면 영주권, 시민권자는 이민자, 그 외 나머지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행자라고 볼 수 있다. F-1, H, J 비자 모두 미국체류가 만료되는 기간이 명시되어 있기에 그렇다.

 

그리고, 미국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을 언급할 때 빠뜨려서는 안 되는 계층이 불법체류자이다. 이들은 엄연히 존재하나 카운트는 안된 채, 미국 지하경제(3D업종)의 상당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이다. 세계인구의 5-6%밖에 안 되는 미국이 세계 에너지의 35% 이상을 사용하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손길과 쓰레기를 필요로 하겠는가? 보이지 않는 그 허드렛일들은 어김없이 멕시칸, 아시안 불체자들, 그 밖에 세계 곳곳에서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자리이다. 그리고, 이민국은 어느정도 불체자들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그들을 색출하여 추방한다. 데리다는 신자유주의 국가들에서 지하경제의 운용을 위해 암묵적으로 불체자를 허용하고, 선거때가 되면 보수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그들을 내치는 증상을 일컬어 갱신된 인종주의(a renewed racism)’[각주:1]라 불렀다. 그렇다면, J와 같은 난민은 어떻게 분류될까?


우리에게 난민은 누구인가?

 

문득, 톰 행크스가 나왔던 <터미널>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동유럽 크라코지아 출신의 젊은이가 뉴욕 JFK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한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도중에 구데타가 발생하여 조국이 없어진 것이다. 떠나온 곳이 없기에 입국을 거부당하고, 돌아갈 나라도 없기에 미아가 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에게 허락된 장소는 오직 공항 터미널 안이다. 기표가 제거된 인간의 운명을 낭만적이고 로맨틱하게 이 영화는 그리고 있지만, 실제 그 상황은 사회라는 상징계속 질서에 기대어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죽음과도 같다.

 

라깡에 의하면, 나의 나됨은 타자의 시선에 얼마나 충실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타자의 시선에 예민하고 충실하다는 말은 나의 존재는 타자들과의 섞임과 어울림과 차이속에서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난다는 말이다. 나의 기표가 타인들의 행렬에 뒤쳐지지 않고 충실히 따라갈 때, 비로소 타자는 나를 나로 받아들이고, 그때 비로소 나는 나!’라고 외칠 수 있다.  

이렇듯, 현실의 세계는 무수한 기표들의 연쇄와 차이에 의해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이상철 혹은 한국인이라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상철은 철수와 영희가 아닌 이상철이어서, 한국인은 일본사람, 중국사람이 아니라는 차이, 그것이 한국인임을 이상철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톰 행크스와 J는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하여 입증시켜 줄 기표, 즉 크라코지아와 북한이라는 기표가 사라진, 빗금 그어진 주체, 즉 난민이다.  

 

영어로 난민에 해당되는 말이 refugee(:a person who has been forced to leave their country or home, because there is a war or for political, religious or social reasons)이다. 국가의 강제에 의해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이유로 쫓김을 받은 사람, 혹은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자유를 찾아 도망친 사람, 아니면 도망쳐야 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타국을 여행하다 다시 조국으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여행자와도 다르고, 자신이 태어난 조국을 등지고 떠났다는 점에서는 이민자와 비슷하나, 조국의 전복을 꿈꾼다는 점에서는 이민자와 다르다. , 그들 난민은 나라 밖에 산다는 측면에서는 외부인이지만, 조국의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젼을 여전히 대망한다는 측면에서는 내부자이다.

 

 

신자유주의와 난민

 

우리가 흔히 난민하면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사진전이나 신문기사에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보트피플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리는 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 다시는 이런 냉전의 희생물인 난민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예상도 했었다. 하지만, 탈냉전 이후 오히려 난민 발생은 급속하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보스니아와 코소보 사태 등으로 대표되는 각 대륙에서 발생하는 민족분규와 종교 분규, 최근 들어서는 이상 기후와 천재지변으로 인한 환경난민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난민의 이유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으로 인한 부작용이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전지구적으로 전개되는 자본의 세계화 전략은 취향의 평균화, 기호의 표준화, 선택의 획일화를 낳았다. 21세기는 얼핏 개성과 개별을 찬양하는 것 같으나 오히려 개체를 자본의 운영이라는 전체성의 깃발아래로 군집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여기 오리지널 구찌 가방이 있고, 그 주변에 짝퉁 A, 짝퉁 B, 짝퉁 C가 놓여 있다고 가정하자. 오지지널을 살 수 없는 사람은 짝퉁 C에서 짝퉁 B, 그리고 짝퉁 A로 자신의 욕망을 키워나가며 오리저널를 향한 꿈을 키워나간다. 옛날에는 우주표 가방도 있었고, 쓰리세븐 가방도 있었는데, 이제 우리는 오직 명품으로 가방 선택의 기준을 표준화 평균화 획일화 하였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젝은 유물론과 정신분석학을 같은 차원으로 이해하면서 이 물음에 답을 한다. 잉여자본과 잉여쾌락은 같은 원리여서, 자본주의가 자본의 잉여를 계속 산출하면서 작동되는 것처럼, 인간 정신 역시 욕망의 잉여를 계속 흐르게 함으로서 유지된다. 신자유주의는 에 대한 욕망의 매카니즘을 내재화한 변종 바이러스와 같다. 그리하여, 그동안 터부시되어 왔고 은밀했던 에 대한 욕동을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게 한다. 전에는 누군가 까놓고 돈과 물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속물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그런 것을 감추고 숨기는 사람이 솔직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라 평가받는다. 나의 욕망을 끝없이 발현하여 그에 걸맞는 물적토대를 확보하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 최고의 미덕이고 경쟁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공약이나 인물에 대한 검증 없이, 오직 돈벌게 해주겠다!’는 말만 믿고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었다. 원칙과 명분, 소통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또한 신자유주의는 전 시대의 다른 보수적 체제와는 다르게 자신에게 해가 되는 집단과 세력에 대해서도 너그럽다. 아니, 오히려 그 적대자들을 자신들의 뜰 안으로 초대한다.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나꼼수>의 경우가 그렇다. 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실랄한 조롱과 멸시와 욕설들을 통해, <나꼼수>는 대중들로 하여금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냉소적 거리두기를 제공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것이 보수의 진화 혹은, 신자유주의적인 게임의 법칙이라면?

 

우리는 이러한 냉소에 너무나 익숙하다. 이명박이든, 조용기든, 한나라당이든, 조선일보이든, 한기총이든 우리는 그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그들의 몰상식과 파렴치와 무식함에 대해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들을 조롱하며 엿을 먹인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마치 마스터베이션 같다. 지젝은 바로 이점을 경계한다. 신자유주의라는 대타자는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방정식안에는 이미 대중들의 냉소와 그것의 적당한 사정(射精)까지 다 계산되어 있다. <나꼼수> 정도의 냉소주의는 단지 우리에게 체제를 향한 배설의 욕구를 말초적으로 만족시키거나, 체제에 대한 무의식적 편견을 확인시켜줄 뿐,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여전히 신자유주의와 아무런 대립없이 부자가 되기 위해, 자기의 계급을 배반하며 자발적으로 그 체제에 참여하고 있다면 말이다. 그 대립을 진정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의 체제에 대한 냉소는 오히려 그 체제를 작동케하고 강화시키는 기재에 불과하다.[각주:2]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신자유주의를 거론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화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이해관계와 복잡하게 얽히면서, 오히려 냉전시대 때보다 더 확고한 전쟁의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세계화된 시대의 세계시민은 촌스럽게 정의, 평등 같은 전시대의 유물에 연연하지 않고, 통 크게 주판알을 튕길 줄 알아야 한다. 더 이상 무슨 이념이, 신앙이 자본과 욕망의 잉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 결과 자원 확보를 위한 국지전이 일반화되고 이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은 테러가 되며 그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더 큰 군대가 동원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의 정점이 바로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화된 미국의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이고, 그것의 완성이 빈라덴과 후세인의 최후였다. 그리고 그 전쟁의 결과 유일하게 현재 드러나는 증상은 아프카니스탄에서 발생한 200 만명의 난민과 이라크에서 생겨난 150만명의 난민들이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와 난민 사이에서 발생하는 함수이다. 그렇다면, 세계시민들은 현재 이러한 난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대한민국과 난민


OECD 30
개국 회원국 인구 대비 난민 비율은 1000명당 2명이다(2009년 기준). 스웨덴이 인구 1,000명당 8명으로 가장 높은 비율이고, 독일은 1,000명당 7, 영국은 1,000명당 4, 미국은 10,000명당 8, 일본은 100,000명당 1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200,000 명당 1명의 난민을 보호하고 있다. 단연, 최하위다. 독일에는 59 8천명의 난민이, 미국은 27 5천명, 영국은 26 9천명, 스웨덴은 8만 명, 네덜란드 7 6천명, 스위스 4 6천명, 아일랜드 1만명, 룩셈부르크에 3200명의 난민이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268!. 

  

한국은 1992 난민협약 및 의정서 가입한 이래로, 2000년도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HCR) 상임 이사국 선출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아시아에서 드물다는 정치적 민주화 과정과 더불어 경제의 급격한 성장은 대한민국의 선호도와 신용도 상승으로 이어졌고, 2002년 월드컵과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과 반기문 UN 총장 배출 등 어딘가 모르게 우리나라가 외국인들이 보기에 나이스했는지 난민신청 건수가 꾸준히 증가하여 2009년엔 난민 신청자 2491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다 개뿔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2009년 한국의 인구대비 난민 비율은 인구 20만 명당 1명으로 OECD 가입 국가 중 최하위다. 1992년에 난민협약과 의정서에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에서야 겨우 1명의 난민만을 인정했다. 2009년에 이르러 74명의 난민을 인정한 것을 법무부에서 홍보하면서 진정한 호혜평등 어쩌구 저쩌구~”, “떠오르는 아시아의 허브! 미주알 고주알~” 무슨 인천 공항선전도 아니고아니, 어쩌면 그들은 난민을 항공사업과 연계시키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난민센터를 영종도에 짓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정말 기막힌 발상이다.    

 

 

에필로그:  국경의 밤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豆滿江)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外套) 쓴 검은 순사(巡査)

왔다 ―― 갔다 ――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학창시절 배웠던 김동환의 <국경의 밤>이라는 장편 서사시중 첫 장이다. 그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 시에서 두만강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건널 수 없는 강이고, 여전히 건너야 하는 강이라고… 100년 동안 세상이 그토록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두만강은 변함없이 그 모양 그 모습이다. 그래, 세상은,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우리 앞에는 여전히 체제가 가로막아 놓은 강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하고, 그 강을 어떻게 건널지를 놓고 여전히 갈등하며, 그 강 너머의 세계를 꿈꾼다. 블라블라~ 지금 돌이켜보니 참 순진하고 철없던 시절의 생각이었다. 


얼마 전에는 생각을 바꿔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우리가 그 두만강이었고, 외투 쓴 순사였고, 철조망이고, 폭압적인 체제이고 편협한 이념이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를 넘어가는, 혹은 우리에게 넘어오는 그들에게 그토록 가혹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좀 어딘가 오바같다.

 

요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2011년 두만강은 여전히 민족의 비극 내지 원죄의식을 지시하는 주인기표임과 동시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념대결의 상징인 그곳에서 돈이 될만한 것이 뭘까?’를 놓고 고민하는 욕망의 대타자일런지 모른다. 그러기에 얼마 전 바뀐 북한의 새로운 화폐가 국경에서 기념품으로 거래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고, 탈북한 사람들 혹은 탈북을 시도하려는 애달픈 사람들을 놓고 온갖 상품이 뒤에서 거래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아직까지 건재한 이념의 장벽과 새롭게 빠른 속도로 번지는 욕망의 장벽을 뚫고 탈출은 계속되고난민은 이어진다.

ⓒ 웹진 <제3시대>


  1. Jacques Derrida, Ethics, Institutions, and the Right to Philosophy, Trans. Peter Pericles Triphonias.(Maryland:Rowman and Littlefield, 2002), 140. [본문으로]
  2. Slavoj Zizek,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New York: Verso, 1989), 28-30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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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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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들의 모임

송진순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박사과정)

From: Barbara Cloud

Next Mustard Seeds meeting will be 12/2‏
Our next Mustard Seeds meeting will be our Christmas pot luck at Louise and Pattie's on Friday, 12/2.
As usual, we plan to sing lots of Christmas carols.


   일주일 전 바바라에게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이번 “겨자씨들의 모임”은 12월의 첫 금요일, 루이스와 패티의 집에서 크리스마스 포트럭 디너로 열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단문의 메일 뒤로 백발의 볼품없이 마른 바바라가 책상에 구부정하니 앉아 동그랗고 커다란 안경을 주름진 손으로 치켜 올리며 컴퓨터 자판을 한 자, 한 자 두드렸을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원래 겨자씨들의 모임은 격주 토요일에 있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금요일에 열리나 봅니다. 곧 모임의 멤버들이 한 명씩 회신을 보내왔습니다.

   턱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인 퉁퉁한 딕. 넉넉한 웃음만큼이나 후덕한 뱃살 때문에 빛바랜 셔츠 단추들은 늘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일흔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하얗고 고운 피부의 아니타,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왕년 그녀의 변호사 시절을 짐작하게 합니다. 하지만 아니타 모녀의 음식솜씨는 환상에 가까워 멤버들은 그의 집에서 모일 때면 빠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밴더빌트 대학의 직원인 린다와 전업주부인 에드 아저씨는 참 무뚝뚝한 부부입니다. 큰 아들의 간병 때문에 간호사였던 아저씨는 자연스레 가정 일을 돌보게 되셨는데 원예에도 일가견이 있으십니다. 가끔 밭에서 수확한 토마토, 아기 주먹만한 사과를 모임에 가져오시죠. 만년 소녀 같은 루이스 아줌마는 제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70년대 말 한국의 선교사로 계시면서 이화대학에서 잠시 영어를 가르치셨답니다. 이 모임을 제게 소개해준 분이시죠. 아줌마의 막역한 친구이자 동거인인 패티 아줌마는 만나면 무조건 와락 안아주십니다. 티셔츠에서는 알 수 없는 소스냄새가 풍겨나지만, 패티와 같이 있으면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푸근한 할머니거든요. 메일을 보낸 바바라는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는 남편 프레드와 함께 이 모임의 총무입니다. 대학교수였던 프레드는 어김없이 정갈한 양복차림으로 모임에 등장합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하비 아저씨는 심리학과 심신 수양에 관심이 많으신 장발의 이야기꾼입니다. 소시적 아니타와 연인이었다고 누군가 귀띔해주더군요. 시력이 거의 없는 프레드리카는 뒤늦게 아저씨에서 아줌마가 되셨는데 사람들에게 시를 읽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작년 봄 내쉬빌의 엣지힐 교회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들입니다.

   엣지힐 교회는 오래 전 흑인 프로젝트 지역이 시작되는 곳에 세워졌습니다. 미국의 전형적인 교회와는 다르게, 또한 한국의 전형적인 교회와도 다르게, 인종, 직업, 나이, 성적취향, 장애여부에 상관없이 한데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원래 예배가 교회공동체 구성원들 ‘누구나’ 영과 진리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예배는 예배의 본래 의미에 부응하는 것이겠지요. 매 주일 예배 참여자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설교 후에는 모두가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성찬을 나눕니다. 마지막 성찬의 잔과 빵을 거두는 사람은 항상 대여섯 살의 아이들입니다. “겨자씨들의 모임”은 엣지힐 교회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이 만든 모임입니다. 함께 저녁 식사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35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삶의 이야기는 다양합니다. 지적장애 아들이 길을 잃은 일, 산책길에 만난 사람, 이번 주에 읽은 책, 훈훈한 뉴스, 로컬 푸드 이용기, 교회 내 전기 절약, 에너지 문제, 의료 보험의 문제, 정부의 현재 이슈 등등... 하지만 펀드나 재테크, 자기 집값 상승률, 손자들의 대학 진학, 믿음과 직분의 문제는 일 년이 지나도록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순탄하거나 넉넉하기만 한 것은 아닌데도 말입니다. 은퇴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고, 이혼한 딸과 노모를 돌보느라 마음이 힘겹기도 하고, 병원 생활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많은 이들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이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고 환경과 평화의 문제를 놓고 같이 기도합니다. 늘 그렇게 해왔듯이...

   예수의 이야기에 재미가 들린, 그 오래전 갈릴리의 무지렁이들도 먹고 살만하여 예수를 좇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지배 아래 삼중의 세금고에, 흔들리는 성전가의 타락에, 불안하고 흉흉하기만 한 정세에 마음 놓을 곳 없는 그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앞에 두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길까? 무슨 비유로 이야기해볼까?” 예수는 툭하니 질문을 던지고는 흙먼지 이는 척박한 땅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래, 그것은 세상의 어떤 씨보다 작은 겨자씨와 같은데 심고 자라면 풀보다 커져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게 될 것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좁쌀만 한 겨자씨야 한 줌씩 움켜쥐었다 둘레둘레 땅에 뿌려놓으면 금세 자라 뭉게뭉게 퍼지는 풀인데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일 줄이야. 레바논의 백향목은 아니더라도 올리브나무나 포도나무는 되어야 본새도 열매도 하나님 나라와 좀 비길 만했을 터인데,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굳이 겨자씨랍니다. 하기야 겨자는 얼얼하니 콕 쏘는 맛이 입맛을 돋우고 독충에 물렸을 때나 진통 소염제로는 그만한 것이 없으니 이모저모 요긴한 식물이기는 합니다. 길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노란 겨자 꽃들이야말로 그들에게는 거친 땅과 어울리는 익숙한 풍경이었겠지요. 땅 위 한 중심에 커다랗게 터를 잡고 올곧게 오르는 무언가는 아니지만 겨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친근하고 풍성한 푸성귀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너무 멋들어지게 성장해버린 하나님 나라에 우리 무지렁이들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있을까요. 있다손 치더라도 지금처럼 마음 놓고 둘러앉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의견이 분분하다 이내 생각이 바뀝니다. ‘그래, 별 볼일 없는 우리들이 겨자씨들이고 우리들이 율법학자들보다 저 높으신 위정자들보다 더 나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이지. 저 예수의 말처럼.’ 얄궂은 예수의 비유에 적잖은 실망도 잠시. 좋아라 무릎을 탁 치며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땅을 밟고 사는 이들이야말로 감각적 경험의 세계에서 학자들보다 예민한 인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예수의 손에 잡히는 겨자씨 이야기를 충실히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예수가 전하는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인종과 신분의 경계, 성전과 토라로 대변되는 거룩과 정결의 상징, 제국 앞에 선 민족의 위기가 무화되는 또 다른 세계였습니다. 작고 낮은 일상에서 누구나 누릴 수 있고 너무 흔해 지나칠 수도 있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일상으로 들어온 신성 그리고 신성을 지닌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예수의 감각적인,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이야기들은 일상의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기 위한 마중물이었습니다. 예수로 인해 일상에서 세상을 뛰어넘는 환희를 경험한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어려운 사회적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았습니다. 복잡다단한 삶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동경하고 그 나라의 삶을 지속시키고자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땅에서든 잘 자라 한데 어울려 요긴한 푸성귀가 될 겨자씨들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12월 내쉬빌에서는 ‘겨자씨들의 모임’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늘 그렇듯이(As usual) 저녁을 먹고 삶을 나누고 캐럴을 부르며 아기 예수의 오심을 축하할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 나누며 그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이어갈 것입니다. 겨자씨인 저도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고민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일단 마중물은 부어졌으니 새물을 올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리고 공중의 새들도 깃들이려면 겨자풀들이 소보록하니 잘 자라야 그늘을 내어줄 수 있을 듯하니 부지런히, 늘 그러하듯 그 나라를 이루어 가고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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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내 마음의 이중성을 마주하기


도홍찬
(면목고 교사)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에서 화자가 존경하던 ‘선생님’은 평생 은둔의 생활을 하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세상을 믿지 못하고 자기 자신까지 증오하면서 세상을 등지고 살았는데, 이유는 그의 불행한 인생 경험 때문이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큰 걱정 없이 공부를 하였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상황이 바뀐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그의 숙부가 성심껏 그의 뒷바라지를 해준다. 그는 숙부를 아버지처럼 따랐지만, 숙부가 재산에 대한 욕심을 가지면서 그와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대부분의 재산을 잃고 쫓겨나면서 다시는 고향땅을 찾아가지 않게 된다. 배신감에 인간을 믿지 못하던 그의 마음은 동경에서 하숙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한다. 하숙집 안주인의 보살핌에 다시금 가족의 평온함을 느끼기 시작하였고, 무엇보다 하숙집 딸에 대한 사랑이 싹트면서 그의 마음은 다시금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게 된다. 하지만 다시금 비극이 찾아온다. 그의 친한 친구가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지자 하숙집 주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나누어 같이 하숙 생활을 하게 된다. 그보다 더 세상에 대한 벽을 쌓고 살아가던 친구가 어느날 고민을 털어 놓는다. 하숙집 딸을 몰래 연모한다고. 그는 내심 당황한다. 친구에게 자기 마음을 말하지도, 그렇다고 자신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서 있지도 못해 안절부절 한다. 친구와 하숙집 딸의 일상적 관계도 이제 예민하게 바라보게 된 그는 결국 조바심에 친구 모르게 하숙집 여주인에게 딸을 달라고 청혼을 하고 허락을 얻게 된다. 그는 사랑을 얻게 되지만 친구를 잃게 되고 만다. 친구는 이 일의 충격으로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건의 비밀은 오직 그만 알 뿐이기에 하숙집 딸과 결혼을 하였지만, 평생 그는 홀로 죄책감에 시달리며 세상과 절연한 채 살다가 결국 자살하게 된다.  

  타인의 욕망으로 상처를 받지만, 똑같이 타인에게 악한이 되는 우리 마음의 이중성을 나쓰메 소세키는 집요할 정도로 세밀하게 드러내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다른 소설에서도 이렇게 우리의 불편한 내면을 끄집어낸다고 한다. 소세키는 유학의 처절한 경험을 통해서 강자의 논리를 따라서 승리자가 되는 길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서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문학 원리를 체득했다고 한다. 이러한 ‘자기본위’의 삶을 위해서는 우리 안의 허위와 가식을 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자기 응시가 세상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관념적인 자기 결백성에 치중한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지만, 선악이 자명하고 이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저쪽 편이 되는 옹졸한 현실에서 우리가 쉽게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기실 근대의 윤리학은 순수한 인간의 선의지를 믿어 의심치 않았고, 선악이 자명하게 구분될 수 있다는 가정하에 도덕법칙을 수립하고 현실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선악의 대립보다는 양자의 침투와 뒤섞임, 상호 혼종을 경험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느 한 편에 서서 천사나 악마가 된다기보다는 경계선에서 양자를 오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애매모호함’의 윤리적 상황을 위해 필요한 덕목이 바로 자기 응시일 것이다. 선함의 이면에 위선이 숨어있을 수도 있고, 악역 속에 정의가 내재함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대한 악이 일상의 안주에서 출발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변혁 또한 작은 자존심 하나 지켜내는 것에서 촉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도를 한다는 것 역시 마음에서 악을 몰아내고 순수한 선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면에서 선과 악이 고투하는 상태를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자기 정당성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확신에 물음표를 붙이는 과정이 아닐까. 기도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그나마 기도하는 시간이 내 욕망을 확인하는 동어반복의 시간이라면 차라리 기도에서 잠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 평생 상처받고 상처주는 삶이 반복되겠지만, 그리고 그것 때문에 자책하겠지만, 세월을 통해서 최소한의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나와 타인을 응시하는 눈길이 깊어지기를 기원해야 할 것이다. 선한 하느님의 아들이었지만 인간이었기에 고민하였고, 그러한 갈등과 고민으로 이른 새벽 자주 기도를 하였던 예수님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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