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밀월성과 시끄러운 민주주의
- 종교인 과세에 관한 공공성 신학의 두 가지 패러다임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부족동맹체사회였던 이스라엘에서 사울은 최초의 원시국가 형태의 정치권력을 행사한 이로 등장한다. 성서의 스토리에 따르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이 전사한 뒤, 다윗이 새 왕국을 세웠다. 그리고 이 나라는 그의 아들 솔로몬을 이어 왕이 된 르호보암 때에 북쪽 부족들의 대대적인 이탈로 인해 두 개의 나라로 분열되었다고 한다. 이때 분열을 주도한 이가 여로보암이고, 그에 의해 이스라엘국이 창건되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다윗의 나라는 정체가 모호하다. 성서 스토리에 나오는,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의 소제국 유다가 존재했음을 뒷받침할만한 문헌자료나 고고학자료가 없다. 오히려 소제국으로 부상한 것은 유다가 아니라, 북쪽의 이스라엘국, 특히 오므리 왕조 때이다. 더구나 다윗보다는 한 세기 이상 후대다. 그가 건립한 나라가 있었다 하더라도, 너무 미미해서 성서가 말하듯 팔레스티나의 소제국이 아니라 예루살렘 인근 지역의 작은 도시국가 정도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사울 이후 팔레스티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추측컨대 이스라엘은 사울 이후 꽤 발전한 국가에 지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외세의 지배 이후 얼마의 세월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로보암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이스라엘국이 건국되었다.

그는 여러모로 모세와 비슷한 스토리를 가진 인물이다. 압제자의 관리였다가(모세: 파라오의 아들, 여로보암: 부역책임자) 고통당하는 이스라엘을 대변하는 이가 되고, 그 일로 인해 이집트로 망명자가 되었다가 되돌아와서 결국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이가 되었다.

아마도 건국의 시조인 여로보암의 영웅설화가 만들어지면서 전설상의 지도자인 모세 설화를 덧입은 결과겠다. 그럼에도 외세의 압제로 의해 고통당하던 이스라엘이 결속하여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여로보암의 지도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성서가 그에 대해 악평을 퍼붓는 것은, 그 역사적 스토리를 만들어낸 이들이 유다국의 사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역사적 내막은 이러하다. 기원전 586년 이스라엘국이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이 대대적으로 남하하여 히스기야 왕 치하의 유다국에 편입되었다. 왕은 왕국 내에 널려 있는 황무지에 그들을 정착시키고 왕실 사유지로 편입시킴으로써, 그곳에서 산출되는 생산물로 왕실의 부를 크게 늘렸다. 이로 인해 처음으로 유다국은 중앙집권적 국가로서 부상할 수 있었고, 히스기야와 그의 손자 요시아의 왕권 강화에 목적을 둔 정치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이때 유다국의 사관들이 왕실의 역사를 만들어냈는데, 여기에서 이스라엘국은 원래 동족으로 다윗-솔로몬의 유다국에 일원이던 북쪽의 부족들이 왕에 반기를 들어 떨어져 나간 나라로 서술된다. 이런 북쪽 부족들의 반란을 선동한 자가 여로보암이다. 그러니 여로보암은 모든 이스라엘국 왕들이 저지른 죄들의 기원이 되는 자이다.

이러한 유다국의 역사 날조는 성서 속에 고스란히 남겨졌다. 반면 초기부터 시리아-팔레스티나의 최강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였던 이스라엘국은 유다국보다 훨씬 전에 역사를 만들어냈던 것 같고, 왕조 이데올로기를 일찍부터 발전시킨 강대국이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사관들이 만들어낸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건축물 등의 유적들이 적지 아니 발굴되었고, 이 지역을 침공했던 아시리아제국의 황제가 세운 비문 속에 반영된 역사적 정보들은 이스라엘국이 가히 이 지역 최강국이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라의 건국 시조인 여로보암은 얼마 후 구축된 강력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이자 시리아-팔레스티나의 정복국가로서 소제국이 된 나라의 면모와는 상당히 다른 나라를 꿈꾸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는 자신이 2의 모세임을 자임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의 사관들은 그의 영웅설화를 모세영웅설화와 엇비슷하게 만들어냈다. 그 설화의 뼈대가 성서 속에 반영되었는데, 유다국의 사관들이 이스라엘국의 시조설화를 변형시켜 수용한 결과다. 이 설화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가 모세처럼 압제당하는 이들을 규합해서 나라를 만들어냈는데, 그 나라는 왕이 함부로 농민을 압제하고 수탈하지 못하는 나라였다는 점이다. 2의 모세라는 상징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다.

사실 모세설화는 이스라엘 부족동맹사회의 얼을 지탱하는 핵심설화다. 많은 제1성서(구약성서) 역사가들은 이 사회가 왕 없는 사회를 추구한 역사적 구성체였음을 주장한다. 물론 끊임없이 권력을 추구하는 운동들과 인물들이 등장했고, 또한 왕 없는 사회를 지켜내기에는 위험스러울 정도의 불평등화와 권력집중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쨌든, 그 이상만큼이나 잘 구축되지는 않았지만, 2세기 정도 지속된 비왕권제 사회가 이스라엘 부족동맹체다. 바로 이런 사회의 정신을 담고 있는 설화의 핵심에 모세설화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은 하느님이 모세를 통해 압제당하는 이스라엘을 구원시켰으며, 기나긴 유랑을 통해 초과권력에 대한 욕망이 제거된 부족사회를 이뤄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설화에서 모세 자신도 그 새 사회의 시조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일체의 낡은 관습과 기억이 제거된 새로운 사회, 그것이 이스라엘 부족동맹사회의 정신이었다.

모세는 이런 가치를 상징하는 존재다. 한데 여로보암이 그런 모세를 자임했다. 물론 그는 왕이다. 왕이 될 수 없었고, 왕 없는 사회의 위대한 통치자도 될 수 없는 모세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그는 왕이 되었음에도 모세의 정신을 따라 강제부역을 부과하는 압제자가 아님을 자신의 지지셔력인 농민들에게 천명하였다. 그것이 제2의 모세라는 주장의 골격이다. 그런 주장을 여기서는 그가 실시한 종교개혁에서 살펴보자.

먼저는 그는 왕궁과 국가성소를 분리하였다. 가령 유다국의 예루살렘처럼 왕궁 내에 국가성소를 설치하고, 이스라엘국의 오므리 왕조처럼 왕실요새 속에도 국가성소를 두는 것이 왕정사회의 상례인데 반해, 여로보암은 왕궁 밖에 성소들을 세웠다. 그것도 자기가 성소를 새로 세우고 사제들을 임명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주요 성소들을 존치시키고 그곳의 사제들과 예언자들이 그곳에서 사역을 하도록 허용했다. 특히 베델이나 단 같은 일부 오래된 성소를 특화시켰다(열왕기상12,29). 그런 전통 있는 성소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은 걸핏하면 왕에 반대하고 그런 반대 주장 속으로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존재다. 그런 성소를 왕은 존치시키며 존중했다. 이것은 모세와 아론이, 그리고 사울과 사무엘이 서로 견제하며 공존하듯, 예언자와 사제의 독립을 존중했던 이스라엘 전통이 반영된 국가관이 여로보암에 의해 재천명되었음을 뜻한다.

둘째로, 예루살렘에 야훼를 상징하는 법궤가 있다면, 그는 황소상으로 야훼를 상징하고자 했다(열왕기상12,28). 법궤는 실로 성소 전통의 야훼의 상징이었는데, 이것은 주로 전쟁 때에 이스라엘을 돌봐주는 야훼를 표상하고 있었다. 반면 황소(후에 유다국의 역사가가 황소를 송아지로 묘사하여 이스라엘국의 상징을 폄하했다)는 무한한 힘을 시사하고, 또한 풍요를 나타내기도 하는 상징이다. 이것은 군인보다는 농민이 더 중요한 국가의 근간임을 표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예루살렘의 법궤는 성소의 깊은 곳에 감추어져 대중과 분리되어 있다면, 황소상은 대중에게 개방되었다. 호세아서에 묘사된 것처럼 대중은 성소에서 황소상에 입을 맞추곤 했다(13,2). 이것을 여로보암의 종교가 대중이 볼 수 있고, 다가가서 입맞춤 할 수 있을 만큼 개방된 종교, 참여의 종교였음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여로보암이 개축한 국가성소들에서는 시끄러운 축제가 열렸다. 출애굽기326절에는 모세가 십계명이 새겨진 판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이 송아지 상을 만들고 흥청대며 뛰놀았다고 묘사되어 있다.(“이튿날 그들은 일찍 일어나서, 번제를 올리고, 화목제를 드렸다. 그런 다음에, 백성은 앉아서 먹고 마시다가, 일어나서 흥청거리며 뛰놀았다.”) 이것은 유다국의 사관이 이스라엘국에서 행해졌던 예배를 겨냥해서 비난하는 형식으로 텍스트화되어 성서의 문맥 속에 포함되었다. 십계명판은 법궤 속에 안치된 상징물이다. 즉 그것은 유다국의 야훼를 상징한다. 반면 앞서 말한 것처럼 송아지상은 이스라엘국의 야훼의 상징물인 황소를 유다국 사관들이 비하해서 묘사한 것이다. 즉 이 구절에는 유다국 사관들이 보는 이스라엘국 제의에 대한 시선이 들어 있다. 이스라엘국의 야훼제의는 황소상을 둘러싸고 대중들이 흥청대며 제사를 드린다. 반면 유다국에서 벱궤는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안치되었고, 대사제만이 들어가 의례를 행한다.

이렇게 여로보암의 야훼제의는 사람들이 흥청대며 즐기는 축제였다. 물론 그것은 즐거움만 깃들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 여기서는 왕에 반대하는 사제나 예언자들이 대중 앞에서 왕을 비난하며, 반체제의 구호를 외치는 의례가 행해지고 신탁이 설파되는 제의이기도 했다. 여로보암의 개혁이 허용한 것에는 이것도 포함된다. 대중과 사제, 예언자는 왕에 반대할 권리도 있다고.

요약하면 여로보암의 종교개혁은 종교에 대한 두 가지 주장이 함축되어 있다. 첫째는 왕실이 독점할 수 없는 종교, 둘째는 대중의 참여가 보장된 종교라는 것. 하여 여로보암의 종교는 왕실과 종교엘리트의 밀월성의 종교가 아니라, 대중적 공공성의 종교였다. 왕은 그것은 존중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자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모세의 야훼주의를 계승하고자 했다. 물론 그러한 종교제도는 점차 사라지고, 이스라엘에도 왕실이 종교엘리트에게 종교자원의 독점을 허용해주고, 종교엘리트가 왕실에 대중의 지지를 보장해주는 밀월성의 종교제도가 자리잡게 되었다. 아합 왕이 이세벨을 통해 페니키아의 바알주의를 도입하려 했던 것도 여로보암 식의 야훼주의가 아니라, 통치자에게 초과권력을 보장해주는 페니키아식 바알주의, 그런 바알의 내용을 한 야훼주의로의 개혁을 위함이었다. 해서 그는 지방 농민이었던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로보암의 꿈은 그 나라의 왕위를 계승했던 후계자들에게서 전도되어 버렸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실험은 밀월성의 종교를 비판하고 대중의 참여를 주장하는 대중예언자의 운동으로 역사 속에서 환생하곤 했다. 그리고 오늘날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논하는 현대신학에서도 그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

 

최근 우리는 국가와 종교의 관계에 관한 신학적 논의가 필요한 하나의 사건에 직면했다. 과거 군부독재 시대에는 정부에 의한 시민권과 인권의 유린이 국가와 종교에 관한 신학적 논의를 부추겼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종교기관과 종교인 과세 문제가 신학적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주요한 사건적 배후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이 문제가 처음 붉어진 것은 1990년대 초, 토지공개념의 입법화,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 입법 등과 관련이 있다. 법률적 근거에 기초하지 않고 비과세 특혜를 누리고 있던 종교인과 종교기관에 대한 과세 문제가 제기되었고, 조세 정의 차원에서 종교계가 누리고 있는 특혜들의 철회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거세진 것이다. 이에 종교계, 특히 개신교와 불교계가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조세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개혁 입법들이 철회되면서 이 논쟁은 일단락되었고, 종교인과 종교기관에 대한 과세 문제는 흐지부지되었다.

한편 이 조세 분쟁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했던 기독교계 내에서 일부 시민단체들의 주도로 투명성운동이 일어났다. 주로 자발적 납세와 재정공개 형식으로 진행된 이 운동은 민주 개혁적 입법들이 철회되고 사회적 압박이 거의 사라진 1990년대 말의 담론지형에서도 문제제기를 계속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돋보인다.

그러나 목회자들의 무관심으로 그 영향력은 거의 없었고, 신학자들의 무관심으로 이 문제에 대한 신학적 논의 또한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사회는 교회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다양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지만,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민주화 이전 시대에는 국가에 의한 인권과 시민권 유린이 너무나 폭압적이었기에 이에 대한 일부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저항의 기록들이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주요한 소재로서 충분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시대에는 민주화운동 전력만으로 교회의 공공성이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충분한 의의를 논하기에 부족했다. 무엇보다도 불법, 비법적 조세 혜택은 조세 정의에 위배되는 현상, 곧 반민주적 현상임이 명백했기에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이 새로운 논점을 중심으로 기독교의 의심받는 사회적 공공성을 회복하고, 국가와의 관계에서 교회와 기독교인의 의미를 재논의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제였다. 그럼에도 기독교 내의 투명성운동가들의 활동은 메아리 없는 고독한 외침 같았다.

2천 년대 들어서면서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혐오는 급속도로 팽창했다. 민주화 시대의 개혁 기조를 몸에 체화하지 못하고, 과거의 불법, 비법적 특혜 관행을 수호하는 데 급급했던 기독교 엘리트 집단의 경제범죄, 변칙 세습을 통한 종교재산의 독점화, 일부 특권적 목사들의 사치생활이 세간에 회자되면서, 기독교권 외부의 시민사회단체들과 언론들, 그리고 비판적 담론을 개진하였던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들의 폭로와 비판이 점점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이제 개신교는 사회적 공공성에 대한 평가는커녕 공공의 적으로 표상되고 있다.

최근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개신교 목회자들의 자발적 과세 현상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또한 이 문제를 계속 펼쳐왔던 복음주의계열의 투명성 운동기구들 외에도, 그동안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기독교 단체들 또한 이 문제에 새롭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교회의 사회적 공공성의 회복에 주목하면서 종교인 과세 문제를 공론화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에 과세에 관한 공청회를 열고, 각 교단들의 협력을 요청하며, 특정 교단에 편중되지 않고 교단별로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 종교인 과세에 호의적인 목회자들을 규합하여 목회자 과세 운동을 벌이고자 시도 중에 있다. 이와 같이 좀 뒤늦었지만 기독교권 내부의 개혁의 움직임이 활기를 띠면서 성직자의 소득세 납부 논의가 재활성화되고 있다. 또한 이것은 교회와 국가에 대한 신학적 논점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그러던 중 4.11총선을 20여일 앞둔 2012319, 박재환 기획재정부 장관이 성직자의 소득세 부과 방침을 밝혔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문민정부나 참여정부에서 종교인 과세 문제를 제도화하려는 시도는 불발에 그쳤다. 그런데 이제까지 이에 관한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아니 실은 대형교회를 주요 지지세력으로 하고 있는 MB정부가 집권 말기에 갑자기 과세 의지를 표방한 것이다.

뜻밖의 상황이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이러한 태도변화의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MB 정부에 대한 국민적 비판기조가 널리 확산되고 있던 상황에서 치룬, 쉽지 않은 선거 국면에서 이제까지 정부의 든든한 후견세력이던 대형교회 지도자들이 정부를 비판하면서 독자정당을 추진하자, 정부는 교회를 압박하고 표의 이탈을 막으려 했던 것이겠다. 이러한 압박 카드가 이번 선거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이것은 정부가 종교인 과세 문제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전형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안팎의 시민단체나 신학자들이 조세 정의의 관점이나 교회의 사회적 공공성을 진작시키기 위해 이 문제를 제기했다면, MB 정부는 전혀 다른 관심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간략히 정리하면 이것은 종교에 대한 국가의 관리 전략인 것이다.

사실 소득세는 종교인 과세 논의에서 가장 쉽고 미미한 문제다. 세수 총액도 그다지 많지 않고, 성직자들도 실질소득에서 신고소득이 차지하는 비율 또한 그리 많지 않기에 부담이 덜하다. 개신교의 경우 미자립교회의 비율은 전체 교회의 40~50%에 달한다. 그런데 가장 크고 부유한 개신교 교파인 예장통합의 경우 미자립교회는 국가가 정하고 있는 최저생계비 기준보다 20%나 낮은 수준의 경상수입 이하의 교회를 말한다. 경상수입이 지출되는 주요 항목에는 인건비만이 아니라 장소 임대비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비자립교회의 경우 목회자의 수입은 국가가 정한 최저생계비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인 것이다. 개신교 다른 교파의 사정이 그보다 더 나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들은 당연히 비과세대상이다. 필경 개신교 성직자의 비과세대상자 비율은 50~60% 이상일 것이다.

그리고 과세대상인 목회자의 경우, 도서비 등, 일련의 목회비의 비중이 명목상의 소득금액보다 훨씬 많은 경향이 있고, 그 외에 심방비 같은 일종의 촌지나, 결혼식과 장례식 등으로 인한 비공식적 목회수입이 상당수준에 이른다. 그리고 교회가 클수록, 교인들이 부유할수록 이런 소득의 비중은 높아진다. 물론 이런 사정은 천주교의 신부나 불교의 승려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고소득 성직자의 경우 신고소득과 실질소득 간의 차이가 매우 클 것이므로, 신고소득에 대한 소득세 부과가 조세저항을 야기할 만큼 큰 문제는 아닌 것이다.

요컨대 종교인 과세 문제에 가장 날선 반응을 해왔던 개신교의 경우 그다지 반발요인이 강하지 않다. 다분히 그것은 관행으로 인한 습관의 선호 문제이며, 또 자존심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종교인 소득세 부과는 큰 물의를 일으킬 사안이 못된다.

하지만 과거 문민정부처럼 잠시나마 국가가 재산세를 향한 날을 세울 때는 종교권력과 국가권력 사이에는 전면전에 가까운 사생결단의 쟁투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개신교의 경우, 과세 없이 처리되어 온 부동산 운용은 예산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 총선에서 기독교자유민주당이 교회의 은행대출 금리를 2.0%로 내리겠다.’는 슬로건을 내 걸은 것은 교회들이 심각한 부채로 시달리고 있다는 반증이며, 그 주된 요인은 부동산 운용으로 인한 것이다. 요컨대 부동산 운용으로 인한 조세 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작은 교회에서 시작하여 점차로 공간을 확장하고, 예배공간뿐 아니라 다양한 목적의 시설들을 갖추면서 성장한 교회의 경우, 종교시설과 비종교시설의 구분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부동산에 대한 과세가 시행될 경우 그 모호함으로 인한 과세에 대한 저항 명분은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다. 따라서 부동산에 대한 과세는 심각한 조세저항이 일어날 우려가 충분하다.

그럼에도 최근 종교기관과 종교인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확대되고 있고 비과세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가 매우 널리 확산되고 있는 추세는 교회에게 있어 심각한 부담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종교인 과세 방침을 표명하였으니, 교회로서는 딱히 이견을 제시할 사정에 있지 못하다. 하여 이슬람 채권법인 스쿠크법 등 사소한 데까지 교회가 국가 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했던 것과는 달리, 종교인 과세에 관한 정부 발표에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것은 이런 사정을 반영할 것이다.

만약 서투른 반발로 문제가 확대되어, 소득세가 아닌 재산세 문제로 국가와 충돌하게 된다면, 교회나 국가 양자는 서로 심각한 부담을 져야할 것이다. 그러니 정부의 소득세 부과 방침은 최근 현 정부에 대해 다소 삐딱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교회에 대한 정부가 꺼내든 작은 채찍이고, 또한 전면전으로까지 확전해서는 안 된다는 신호일 것이다. 또 교회 지도자들은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 조용히 승복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추론되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조용한 밀월성이다.

한데 시민사회와 종교계 내부의 자기개혁운동 집단은 좀더 시끄럽게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대중의 참여를 자극하고, 정치권력과 종교권력 사이의 밀월성을 공개적으로 경계하고자 함이겠다. 또한 시끄럽게 논의하는 중에 문제는 복잡해지고, 생각은 급진적인 데까지 다양하게 펼쳐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시끄럽게 논의하는 중에 대중은 종교인 과세를 둘러싼 국가와 종교 엘리트간의 담합을 견제하는 참여적 주체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늘 시끄럽게 얻어지게 된다.

정리해보자. 종교인과 종교기관에 대한 과세 문제는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의 조세 정의에 관한 요청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민주화 이후 시대의 교회와 기독교인의 사회적 공공성의 문제와 직결된다.

민주화 이전 시대에는 국가가 불의를 상징적으로 대표했다면, 교회는 정의의 상징적 표상이었다. 하지만 이때 인권과 시민권을 유린하는 국가에 대한 저항을 실행에 옮겼던 교회나 기독교인은 극소수였다. 그런 소수파의 저항이 기독교를 과대표함으로써 교회는 정의의 주체처럼 인식되었다. 이것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신학적 논의를 왜곡할 수 있다. 즉 이러한 공공성에 관한 신학적 논의는 국가에 대한 공공성 담론이 교회의 공공성 논의를 압도한다. 하여 교회의 자기 성찰에 대한 신학담론은 과소화되고, 사회 변혁에 관한 신학담론이 과대화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한데 민주화 이후에 오면, 교회와 기독교인은 정의의 반대편에 있다. 조세 정의의 관점에서 사회적 공공성의 요청은 국가가 교회에게 제기하고 있다. 정의와 불의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주체가 역전되었다. 이러한 상징적 과대표의 역전 현상 역시 공공성에 대한 신학적 논점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즉 국가에 대한 공공성 논의가 신학적으로 후퇴하고, 교회의 공공성에 관한 논의가 무성하게 되는 현상이다. 이것은 민주화 이후 교회의 전반적인 탈정치화의 가능성을 수반한다.

그런데 최근 MB 정부의 박재환 기획재정부 장관이 종교인 과세 논의를 제기하면서 이 문제의 논점이 복잡해졌다. 이 발표를 보면서 국가가 조세정의를 과대표하면서 교회에게 공공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믿는 이는 별로 없다. 오히려 국가는 조세정의를 명분삼아 교회를 관리하고자 하며, 교회는 국가와 무언의 밀실협의에 들어서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국가와 종교 간의 조용한 밀월성의 관계가 조세 정의의 외피를 입고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고대 이스라엘의 두 국가에서 모색되었던 두 개의 국가와 종교의 관계에 관한 논점을 제기하고자 했다. 유다국의 다윗의 길과 이스라엘국의 여보로암의 길이 그것이다. 전자는 밀실의 종교다. 여기서는 국가와 종교가 담론의 주체이고, 대중은 그러한 관계에 승복해야 하는 수동적 주체다. 반면 후자는 시끄러운 종교다. 왕실과 성소가 분리되었고, 성소에서는 시끄러운 제의가 공개적으로 진행되면서 국가에 열렬히 환호하거나 혹은 국가를 저주하는 대중의 여론이 소통된다. 국가는 더 이상 밀실에서 종교를 대할 수 없고, 성소에서 벌어지는 시끄러운 대중의 여론을 경청하고 대중과 협상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행한다.

박재환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 이후, 한국신학계는 성직자의 조세문제에 대해 조용한 밀월성의 정교관계의 위험성에 직면했다. 그리고 시끄러운 긴장과 갈등, 타협의 정교관계를 광장에서 모색하는 것의 중요성에 직면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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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프롤로그 1: 간략한 정세분석

 

지난 4.11 총선이 있기 전 많은 예측들이 있었다. 역시 가장 굵직했던 총선 이슈는 지난 4년간 MB정권의 실정에 대한 심판론이었다. 그 무렵에 터졌던 사정기관에 의한 불법민간인 사찰, 친인척, 측근비리 등 많은 호재들은 야권의 총선승리를 짐작케하였고, 야당 역시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고자 야권연대를 통해 최대한의 표를 흡입하고자 노력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예측과 다르게 야당은 박근혜 혼자 선거를 치루다시피 한 새누리당에게 완패하였다. 수도권에서 승리하였고, 부산.경남에서 득표율면에서 새누리당과 접전을 벌였다는 점,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득표에서 200만 표가 넘는 지지를 받았다는 점등 야권은 몇 가지 긍정적 지표를 들면서 애써 선거결과에 대해 자위를 해 보지만 그 변명은 궁색해 보인다.

반면,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총선의 승리도 고무적인 사실이지만, MB 정권에 대한 심판론과 박근혜의 대세론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총선은 (박근혜 캠프입장에서) 연말 대선으로 나가는데 확실한 토대와 명분이 된 사건이었다. 총선 후 새누리당은 현재 당의 전 조직이 친박계 인사들로 채워졌고, 완성된 박근혜 대세론 앞에서 그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에다 천우신조인지, 통진당의 내분으로 인해 진보세력 전체가 매도당하는 사태가 현재 전개되고 있고, 이를 종북논쟁, 빨갱이 시비 등으로 쌍으로 엮으면 연말대선 때까지 충분히 야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오히려 본 게임보다 ‘표정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새누리당의 입장에서는 더 고민해야 되는 현재 정국이다..

물론, 대한민국 선거의 특성상 대선까지 남은 6개월은 너무나 긴 시간이고, 노무현의 경우에서도 드러났듯이 한 번 바람이 일면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한국정치의 지형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10년 전에 한번 쓰라린 학습효과를 경험했던 새누리당은 다시금 그 악몽을 되새김질 안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10년 전 노무현이라는 극적인 감동드라마를 연출했던 야권은 노무현만한 내러티브를 갖추고 있는 인물이 없어 고민이다. 현재 잠재적 대항마로 하마평에 오르는 안철수는 정확한 실체가 없는 인물이고, 문재인은 노무현의 그림자를 넘지 못한다. 이러한 모든 점을 감안하고 종합해 봤을 때, 현재 스코어 누가 봐도 7회말 투아웃 7:0, 이제 아웃 카운트 하나면 박근혜의 7회 콜드게임승이다. 이것이 솔직한 지금까지 2012년 대선전광판이다.

 

프롤로그 2: 선린상고는 왜 졌을까?

 

서른 살 까지 다녔던 나의 모교회는 동대문운동장에서 한 블록 위 장충동 족발집이 시작되는 초입에 있었다. 덕분에 나는 가끔 교회땡땡이치고 혹은 교회 마치고, 아니면 교회핑계대고 동대문야구장(당시에는 서울야구장이었다)으로 부흥회가는 심정보다 더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옮겼었다. 정말이지 동대문운동장이 우리교회 근처에 있었던 것은 찬송가 가사처럼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동대문운동장 개표소를 지나 구장으로 들어가기 전 긴 복도는 어딘가 구리고, 어둑어둑하고, 퀘퀘하고, 진한 마초성이 느껴지고, 음란했다. 내가 동대문운동장을 더 많이 갈 수 있었는데 안 갔던 이유는 그 복도를 걷는 것이 싫어서였다. 하지만, 눈 질끈감고 판도라상자 같았던 복도를 지나 야구장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통과하면 파란잔디밭과 파란하늘이 펼쳐지는데… 내 생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가장 원초적 감각을 꼽으라면 단연 동대문운동장 복도를 지나 구장으로 통하는 입구에 서서 만났던 그 하늘과 잔디에 대한 기억이 아닐까 싶다. 정말 그렇다. ‘하나님은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 동대문 운동장안에도 있어!’라고 소년 상철은 분연히 소리치지는 않았지만, 나의 음험한 일탈에 난 떳떳했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야구장에서 들려오는 기쁜소식, 복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를 놓고 한동안 전전긍긍 했었다.

지금은 고교야구의 열기가 프로야구의 등장으로 인해 시들해졌지만 내가 어렸을때까지만 해도 고교야구는 가히 국민스포츠라 할만 했다. 필자가 고교야구에 매료되었던 이유는 순전히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등학교)때문이었다. 당시 선린상고는 박노준, 김건우라는 불세출의 스타를 보유하고 있던 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해인가(81년 or 82년) 네 번이나 결승에 올랐지만 네 번 모두 준우승이라는 비운에 울었던 팀이기도 했다. 특히, 경북고와 선린상고와의 청룡기 결승전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세드무비다. 경북고에는 당시 빼어난 좌완투수 성준과 제2의 김재박으로 불리던, 지금 삼성라이온스의 감독이 된 유중일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선린상고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초반부터 선린상고가 원사이드하게 앞서는 상황에서 박노준이 홈으로 쇄도하다가 그만 다리골절로 병원으로 호송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그때부터 김건우도 흔들리고, 잘하던 야수들은 실책을 하고, 결국 그 결승전에서 선린상고는 경북고에 역전패당해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박근혜 대세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첫 꼭지에서 갑자기 필자의 잊혀졌던 동대문운동장과 선린상고에 대한 기억이 뗘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던 선린상고! 하지만, 나는 늘 불안한 마음으로 그들의 게임을 지켜봤고,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도 뭔가 꺼림칙했으며, 패배가 확정이 되면 안타까운데도 불구하고 그 패배가 오히려 안심이 되고 안도가 되는 증상이 발생했었다. 앞서고 있고 이기고 있는 이 상황이 오히려 불안하고 불쾌한… 패배와 죽음이 확정되고 나서야 오히려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이 황당한 시츄에이션!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를 프로이트는 ‘죽음본능(타나토스)’으로 설명하더군. 프로이트를 알지 못했던 나는 선린상고 야구팀에게 뭔가 알 수 없는 액운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다분히 ‘전설의 고향’을 많이 본 탓이겠지만, 분명 그랬다. 선린상고 야구팀에게는 뭔가 설명이 불가능한 유령이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유령이 이제 박근혜에게로 옮겨가고 있다면……흐흐흐(이것은 유령이 움직이는 소리임). 이제야 비로소 데리다로 넘어간다.


데리다가 수입되던 무렵 우리는…

 

1980년대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화려한 내공을 뽐내는 각 정파의 무사들이 강호의 주도권을 놓고 필력을 휘날리던 시절이었다. 흔히 사회구성체논쟁(사구체논쟁)으로부터 시작된 한국사회의 진보논쟁은 민족해방(NL)과 민중민주(PD)로 나뉜 채 치열한 권력투쟁의 양상을 보였고, 물론 그 과정에서 가깝게는 요근래 발생한 통진당 사태에서부터 멀게는 민노당 분당까지 볼썽사나운 광경이 연출되기는 했지만, 진보진영내에서의 논쟁은 분명 한국 사회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동력의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를 거치면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의 붕괴는 20세기 세계체계의 한 축을 담당했던 거대 담론을 한 순식간에 무너뜨림과 동시에 진보논의의 틀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이 몰아닥친 것이다. 그 무렵에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과 자유주의의 최종 승리를 선언하였고, 포스트모던 사상의 원조라고 평가되는 리오타르는 ‘더 이상 거대시사는 없다’고 소리쳤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국도 이러한 세계사적인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아니 가장 순식간에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함몰된 곳이 한국이 아닐까 싶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온갖 진보 사상이 넘쳐나던 한국의 변혁 운동은 1990년대가 되자 일제히 "거대 담론은 없다"면서 미시정치. 미시권력에 집중하는 시민운동의 시대로 전환된다. 김영삼 정권 때 등장한 경실련(초대사무총장: 서경석)과 김대중 정부 때 맹활약한 참여연대(초대사무총장: 박원순)같은 시민 단체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창립되었다. 기한이 만료되고 용도가 폐기된 거대 담론보다는 삶의 작은 변화와 개선에 주력하자는 것이 그들의 모토였고, 이를 계기로 한국의 진보는 점차 전선이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니, 소액주주운동이니, 대안학교/대안교육, 생명/환경 운동, 선거 때 등장했던 시민단체 주도의 낙선운동 등이 우리 귀를 스쳐갔던 이 무렵 등장했던 새로운 운동 형태들이었다. 어느 시인은 이러한 현상에 직면하고는 ‘잔치가 끝났다’며 이제 그만 손 털자고 허탈하게 속삭였고, 가열차고 숭고하게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쳤던 김지하는 도사가 되어 ‘생명, 율려’ 어쩌구 하면서 새로운 문명의 틀을 제안했다. 이 틈을 타서 사노맹사건으로 구속되었던 박노해가 슬그머니 전향을 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과거 혁명의 전사들은 하나씩 본인들의 이상을 현실정치에서 실현하겠다고 큰소리치며 국회로 들어갔다.

너무나 아이러니컬했던 현상은 탈냉전과 탈이념이 선전되어지던 그 시절, 한국 사회는 여전히 너무나도 이념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었다는 사실이다. 1989년에 문익환 목사님과 임수경의 방북이 있었고, 그 후로 한동안 통일에 대한 논의가 우리사회를 지배했었다. 당시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지리산을 종주하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I>을 읽고 남도로 달려갔던 청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루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들먹이며 유연하고 세련되게, 또 하루는 통일과 민족을 이야기하며 뜨겁고 가열차게… 그렇게 그 세대는 개념의 홍수 속에서 붕붕 떠다니면서 배회하고, 배회하다 좌초하고, 그러다가 지쳐갔다.

데리다가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에 알려지고 소개되어지던 때가 바로 그 무렵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쓰나미가 몰아치던 90년대 초, 하지만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인 한국땅에 데리다는 폼나는 포스트포더니즘 아바타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데리다 지도 그리기

 

통상 데리다를 읽다보면 데리다의 전기사상[각주:1]과 후기사상[각주:2]이 극명하게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데리다 전기를 지배했던 키워드들을 살펴보면 dissemination(산종), differance, supplement(대리보충), fold(주름), margin, trace(흔적), writing 등의 어휘들이고, 데리다 후기는 specters, gift(선물), law, hospitality(환대), pardon(애도), the messianic without messianism, justice 등 보다 실천적인 측면으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데리다가 시종일관 문제를 제기했던 부분은 서구 정신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원본(Origin)불변의 법칙’이다. 통상 ‘로고스중심주의(Logocntrism)’라 부르는 이것은 ‘개념이란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고정된 의미를 지닌 채 소통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어떤 단어의 의미는 세상과 소통되기 이전에 우리의 마음속에 현전한다’는 전제에 기초한다. 데리다는 이런 사유를 ‘현전의 형이상학(the metaphysics of presence)’이라 불렀고, 서구 정신은 이 허상위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데리다는 바로 이러한 서구정신의 전통에 대한 해체(deconstruction)를 시도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해체는 서구철학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논리적으로 수미일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그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종종(아니, 매번) 낭패감으로 빠지게 한다.

본디 개념이란 자고로 다른 개념이나 특정 대상을 자신과 구별짓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개념의 힘이고 미덕이다. 이러한 개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의지가 발동이 되고, 운동이 발생하며, 그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세상은 진보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구 정신사에서 나타났던 진리를 향한 온갖 종류의 개념적 정의들은 당대의 시대적 고민과 요청에 대한 치열했던 논리적 추론의 결과물들이며, 가장 적합하게 한 용어 안에 그 개념을 담지하고자 했던 몸부림들이었다는 점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의미의 두께다. 
하지만, 데리다의  ‘해체’는 이러한 기존의 문법을 배반한다. 일차적으로 해체는 해체되어야 할 대상을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개념과 개념을 구획지어 자신을 보호하는 서구철학의 패턴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해체는 그 다음 단계에서 돌연변이한다. 해체는 앞으로 오게 될 또 다른 무언가를 향한 준비 내지 과정을 암시하는 것이지, 기존의 철학전통처럼 도래할 개념에 대한 지목이 없다. 이 부분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해체’를 불안하고 위태롭게 바라보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해체’를 개념이라 부를 수 있는가? 어찌보면,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deconstruction)란 하나의 사유체계가 아니라, 기존 서구철학이 만들어 놓은 토대와 우상에 흠집을 내고 딴지를 거는 하나의 전술적 실천이라 해야 맞지 않을까?
데리다 전기사상은 이러한 전술을 위한 이론적 terminology들이 마련되었던 시기였으며,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차연(differance)’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차연은 ‘다르다’(differ)와 ‘연기하다’(defer)를 동시에 의미하는 데리다의 신조어이다. ‘현존(presence)’과 ‘부재(absence)’라는 서구전통철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차연은 현존하는 것도 부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현존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부재이다. 현존은 ‘다름’을 통해 다가오고, 현존의 생명력은 ‘지연(or 연기)’을 통해 유지된다. 이러한 전술을 통해 데리다는 어떠한 개념도 자기 폐쇄적인 동일성안에 머무르지 못하도록 한다.
이 대목에서 데리다에 대한 일반적 비판이 대두된다. 기원과 로고스에 대한 지위와 권위가 상실하게 되면, 결국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결국, 어디로 가자는 말인가? 데리다가 사람들에게 의심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수적 입장의 사람들은 데리다의 해체로 인해 기존의 삶의 질서와 법칙이 와해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꼈고, 진보적 인사들은 데리다의 입장이 거대담론에 입각한 혁명의 기운을 무화시키고 체제에 대한 전복의지를 감퇴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이유에서 그를 비판한다. 이들의 던지는 비판의 칼날들에 데리다는 어떻게 반응하고, 그것이 데리다 후기철학을 대변하는 ‘유령론’과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리고, 데리다의 ‘유령론’은 박근혜 ‘대세론’의 잡귀가 될 수 있을까? 

<다음 달 웹진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1. 1967년 동시에 출판된 세 권의 책들, Speech and Phenomena(1973) Of Grammatology (1997) Writing and Difference(2003), 1972년에 역시 나란히 출판된 세 권, Positions(1981) Dissemination(1981) Margins of Philosophy(1982)가 데리다의 전기사상을 대표하는 저서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괄호 안의 연도는 미국에서 번역되어 출판된 해임) [본문으로]
  2. 후기 데리다의 윤리학과 정치학, 그리고 메시아성을 다루고 있는 책으로는 Rogues(2005) Specters of Marx(1994) Deconstruction in a Nutshell(1997) 등이 있고, 데리다의 후기 작업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애도, 선물, 환대, 타자성을 담고 있는 책으로는 Acts of Religion(2001) Adieu to Emmanuel Levinas(1999) For What Tomorrow … A Dialogue(2004) Of Hospitality(2000) The Work of Mourning(2001) Given Time(1992) 등이 있다. 데리다가 직접 쓴 책 이외에 데리다 후기사상을 다루는 두 권의 안내서를 소개한다. 한 권은 빛나는 데리다 해설가 John D.Caputo가 쓴 The Prayers and Tears of Jacques Derrida(1997)이다. 이 책은 데리다 철학에 대한 개설서로, 특별히 후기 데리다 철학에 관심하는 연구가들에게 미국내에서 매력적으로 읽히는 책이다. 시카고 신학교 Ted Jennings가 쓴 Reading Derrida/ Thinking Paul(2005)은 데리다와 바울을 연결하는 책으로, 요즘 한창 논의되는 좌파이론가인 아감벤, 바디우, 지젝이 시도하는 정치신학과 맥이 닿아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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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대한민국 고딩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학업역량이 우수하며 관련 분야에 탁월한 성과와 열정이 돋보이는 학생.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과 창의성과 성장 잠재력이 우수한 학생.
역경극복 능력과 희생정신, 리더쉽과 협동심이 뛰어난 학생.
그리고 본 대학에서 학습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은 학생.

뭔가 완벽한 슈퍼맨을 찾는 듯 한 이 내용은 대부분의 대학이 수시 입사관 전형에서 학생을 모집할 때 추천기준 대상을 표현한 문구다.
어느덧 우리 차례가 된 입시 앞에서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며 대학이 원하는 그런 학생이 바로 본인이라고 써야하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딸아이는 난감해 한다.
나 또한 추천 기준을 읽을수록 부아가 치민다.
결국은 공부 잘하는 놈 뽑을 거면서 괜히 역경극복이니 희생정신이니
학교와 학원, 집만 오고간 열여덟 아이 인생에 있지도 않은 스토리를 부풀려야 하는지 ..  엉덩이 붙이고 공부만 하게 했으면서 이제와 창의성이니 리더 쉽이니 여지껏 중등교육에서 외면 하다시피한 모습을 대학 문턱 앞에서는 보여 달라하니 참으로 얄밉다.
대학에서 원하는 항목에 뭐 어떻게든 뚜드려 맞출 수는 있을 거다.
대한민국 고딩들 사정은 뻔하지 않을까!
공부를 잘 했다면 활동이 부족했을 것이고 활동을 잘 했다면 공부가 부족했을 것이다. 둘다 다 갖춘 잘난 녀석들도 많겠지만 정원을 다 채우기는 부족 할 터 남은 공간을 넘볼 수 밖에 ..
대입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태교로부터 시작된 아이 교육의 시간 들을 되돌아보면 그저 딱 우리 부부가 갖고 있는 재량 만큼의 범위 안에서 아이를 키웠던 것 같다.
많이 놀아주고 많이 안아주고 공부 못하면 쥐어 박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터무니없는 교회에 다니게도 하고
틀 밖을 박차고 나갈 엄두는 내지도 않았다.
그건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저 무난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길 바란다.
딸아이의 부모가 무쏘의 뿔을 가진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영혼들이 아니니 한계는 분명한 건지 모르겠다.
그나마 우리 부부의 신앙이 달라지면서 조금 더 개방적인 상식이 아이에게도 전해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딸아이가 말하길 방학때 다녀온 한 대학의 전공 박람회 중 반도체학과라는 곳에서 그 곳 관계자가 학생들에게 S 그룹의 모회장 같은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는 그 대학 그 학과 절대 안 가겠단다.
뿐만아니라 아이가 다니는 과학 학원 선생님이 말하 길 너희들은 S그룹의 로열 패밀리는 될 수 없어도 그 그룹의 “일등 머슴”은 될 수 있으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단다. 아이가 듣기에는 그 말이 왠지 현실적이고 시니컬하게 들려서 한참을 웃었댄다.
어째든 올 입시를 무사히 치르고 교육의 주도권이 이 상상력 없는 부모에서부터 딸아이 스스로 에게로 속히 옮겨지길 간절히 바란다.
또 다시 일등 머슴이 되려고 애쓰는 교육이 될 지, 아이가 꿈꾸는 다른 길을 찾을지 장담할 순 없지만 지혜롭고 안정감 있게 자라준 아이를 보면 아이 스스로가 결정하는 앞날이 훨씬 아름다울 거라 생각된다.

요즘 밤마다 전쟁이다. 11시 야자 끝나고 집에 와서 간식 먹고 그 다음부터 쏟아지는 잠 때문에 깨워도 싸움이되고 안깨워도 원망이 된다.
어쩌겠냐 한 줄 세우기 교육의 정점에 와 있는 걸...
그래도 늦은 밤 학교 안에 주차해 놓고 운동장에서 강아지 안고 딸아이를 맞이하는 것은 쏠쏠한 행복이다.
같은 시간 그 동네 다른 남자 고등학교에서도 야자 끝난 아이들이 교문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저 갇혀 있던 피 끓는 젊음들이 쏟아져 나온다.
왠지 여학생들을 볼 때보다 더 가슴이 짠하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냐..
미안하다 대한민국 고딩~~~!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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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델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붙여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정의와 도덕이 시장과 만날 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안기순 역, 와이즈베리)을 읽는 내내 샌델이 인용하는 수많은 사례들 앞에서 먼저 그의 성실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그 많은 사례들을 수집하고 검토하고 분석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사실 이 책이 제기하는 쟁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샌델의 저작들, 가령 공전의 베스트셀러인 『정의란 무엇인가?』나 『왜 도덕인가?』를 읽은 사람, 혹은 샌델의 하버드 강의 동영상을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 제목만 봐도 샌델이 이 책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다.
 
샌델의 2012년 최신작『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부제는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시종일관 유지되는 중심적인 쟁점은 “시장화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시장화(혹은 상품화)로 인해 인간과 사회에 나타난 폐해는 무엇인가?”로 정리할 수 있다. 그 폐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논의된다. 첫째는 불공정성(또는 불평등성)이고, 둘째는 (가치 또는 도덕적 선의) ‘부패’ 또는 ‘타락’. 샌델이 시장화(상품화)의 폐해를 불공정성과 부패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그의 전작인 『정의란 무엇인가?』와 『왜 도덕인가?』에서 제기된 두 가지 테마, 즉 ‘정의’와 ‘도덕’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이르러 마침내 “시장”, 더 정확히는 “자본”의 문제와 만남으로써 더욱 중요한 정치철학적 논의의 장(場)을 열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라 말하지 않는다면…
 
샌델은 이 책에서 ‘시장지상주의’,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을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어낸 삶의 방식, 그리고 그러한 삶의 방식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도덕적 (판단의) 위기를 전세계에서 수집한 사례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그러나 매번 조금씩 다르게 제시한다. 물론 우리에겐 시장지상주의와 같이 그 의미 전달 방식에 있어 상당히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차라리 훨씬 ‘추상적인’ 어떤(?) 단어가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더 친숙할지 모른다. 시장지상주의라는 협소한(?) 혹은 소박한(?) 표현으론 도저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과 그것이 만들어낸 우리네 삶의 현실을 다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을 모두들 본능적으로 체감하고 있을 터. 그 단어가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명칭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있고, 그래서 그것이 표상하는 현실의 구체적인 삶이 무엇인지, 그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수한 폭력과 야만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언급하기를 꺼려하는 그 이름. 바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이다.
 
그러고 보면 샌델은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이상하리만치 잘 안 쓰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라 말하지 않고, ‘시장화’니 ‘시장지상주의’니 또는 ‘경제화’니 하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선 너무나도 소상하게 밝혀내며, 그 여파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사회적 토론을 제기하지만, 정작 샌델은 그런 시장(지상주의)화가 언제부터 어떻게 누구에 의해 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기제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선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다. 시장화나 경제화 같은 용어들이 아무리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 편리한 용어라 할지라도, 거기엔 자본주의 경제를 작동시키는 법률, 사회적 관습 등을 포함하는 각종 제도나 국가의 정책,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이데올로기적 신념 등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통치성’(governmentality)이라 명명된 분석틀을 가지고 (신)자유주의 분석에 몰두했던 말년의 미셸 푸코와, 그런 그의 작업을 계승해온 일단의 연구자들에 따르자면, 신자유주의는 일련의 경제학적 논리들과 정치-사회적 실천들을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개개인들로 하여금 자본주의적 주체성을 형성하도록 만드는 특정한 주체화의 테크놀로지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사회적 주체성 형성의 관점에서, 즉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출현한 특권적인 권력작동방식이자 주체생산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목도하는 오늘날의 주체성의 다종다기한 형상들이 결국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정치적 합리성(political rationalities) 또는 통치이성(governmental rationality)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각주:1]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샌델의 책에는 사태의 ‘결과 보고’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넘쳐나지만, 사태의 ‘원인 분석’은 단 한 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샌델이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것들, 다시 말해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했을 때 도덕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들(이를테면 우정이나 인간의 장기(臟器), 어린 아이들, 명예, 대학 입학허가 등)에 대해 소개하면서, 시장화에 반대하는 논리의 주된 근거를 공정성과 부패의 문제로 설명하는 것을 살펴보자.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살펴보려면 이 두 가지 논쟁을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정성에 관한 반박에서는 사람들이 불평등한 조건이나 경제적 필요성의 긴박한 정도에 따라 물건을 사고팔 때 생겨날 수 있는 불평등을 지적한다. 이러한 반박에 따르면, 시장 교환은 시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항상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어떤 농부가 굶주리는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자신의 신장이나 각막을 팔겠다고 동의할지 모르나 정말 자발적으로 동의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사실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불공정하게 강요받았을 수도 있다. […] 공정성과 관련한 논거에서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은 동의, 좀 더 정확하게는 공정한 조건하에 이루어지는 동의이다. 시장을 이용한 재화 분배에 찬성하는 주요 논거 중 하나는 시장이 선택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시장은 다양한 재화를 주어진 가격에 팔지 말지를 사람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한다.” (157~158쪽)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표현이다. 대체 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왜 만들어진 것인가? 물론 샌델은 그런 질문을 던지진 않는다. 이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단락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부패에 관한 반박은 다르다. 이는 시장의 가치평가와 교환이 특정 재화와 관행을 변질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반박에 따르면 특정 도덕적 ‧ 시민적 재화는 사고파는 경우에 가치가 감소하거나 변질된다. 부패에 관한 논쟁은 공정한 거래계약 조건이 성립됐다고 해서 충족되지는 않는다. 평등한 조건과 불평등한 조건 아래서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 여기서는 동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가치 평가와 교환 때문에 변질되었다고 여겨지는 재화의 도덕적 중요성에 호소한다. […] 부패 논쟁은 재화 자체의 특성과 재화를 지배하는 규점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공정한 거래 조건을 형성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힘과 부에 불공정한 차이가 없는 사회에서도 여전히 돈으로 사서는 안 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157~159쪽)

샌델은 공정한 또는 평등한 거래계약 조건이라는 것을 가정하고서, 다시금 그 조건 하에서도 여전히 시장화로 인한 도덕적 위기는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샌델의 질문은 시장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까지 나가야 한다. 하지만, 샌델은 공정한 계약조건을 가정하면서, 시장 안에 근본적으로 내속하는 부정의나 불평등성,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착취’와 ‘계급적대’의 문제를 얘기하지 않고, 공정한 계약조건 속에서 재화의 본래적 사용가치가 왜곡되고 부패하는 문제로 건너뛴다. 자본주의 사회가 출현하는 순간부터, 아니 더 정확히는 화폐가 등장하면서부터 모든 물건은 그것의 쓸모(사용가치)가 아닌 시장에서의 교환가능성(교환가치, 즉 상품가치)로 평가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이제 모든 물건의 교환가치는 화폐 속에만, 그리고 그 물건의 사용가치는 상품 속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것은 샌델이 말하는 식으로 시장지상주의사회가 도래하기 전부터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
 
 
‘공정한 계약조건’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공정한 계약조건’이라고 하는 샌델의 전제 자체를 의심하고 싶다. 시장에서 자신의 몸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데 자발적으로 계약한 주체들의 실천이 정말로 실천 그 자체로선 아무 문제가 없는 평등한 조건 하에서 이루어진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일까? 어쩌면 그들은 체제 안에서 자신의 생존 기회를 발견하려는 고투 가운데서, 그런 계약을 자발적으로 그러나 사실은 체제가 규정한 틀 안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즉 생존을 우선시한 전략적 타협의 일환으로 선택을 요구당한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그들의 계약이 체제가 설정한 행동의 범주 밖에서 이루어진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것은 자율성과 타율성이 복잡하게 뒤섞인 체제와의 치열한 협상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치 않을까? 우리가 어떤 선택을 주체의 순수한 자발성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그 선택이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체제 내지는 사회가 구조화하고 있는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경계 자체를 뛰어넘은 차원의 것, 다시 말해 체제의 질서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다소 극단적인 논리임을 인정하지만, 우리가 ‘자발성’이라는 말에 담긴 ‘자유’의 의미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따라서 주체가 그런 자유의 행위(act)를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윤리학 본연의 의미에 입각한 윤리적 주체, 또는 주체의 윤리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체제가 설정한 행동의 경계 자체를 뛰어넘는 윤리적 선택, 그런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로 얻게 되는 체제의 질서 바깥이란 곧 상징적/사회적 ‘죽음’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바꿔 말하면, 윤리적 주체의 탄생은 ‘죽음’ 이후에야 도래한다는 것을. 이를테면 오늘날 널리 회자되는 인적자본(human capital)이라고 하는 개념에서 알 수 있듯이, 개개의 노동자들은 자기계발과 자기향상을 위해 노동 이외의 여가시간까지 모두 희생하여 자신에게 끊임없이 투자하고, 스스로의 비용과 편익을 철저하게 결산하며 삶을 관리해나가는 ‘자기 자신의 기업가’로 살아간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노동자들의 이러한 자기계발은 철저하게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자기계발을 하지 않으면, 인적자본으로서 노동시장 안에서 높은 상품가치를 획득할 수 없다는 체제의 질서를 내면적으로 규범화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이러한 자기계발이 과연 자유로운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체제에 의해 주체의 외부에 설정되어 있던 선택지의 조건을 개개인들이 벗어나는 순간, 그들이 맞이하게 되는 것은 오직 ‘죽음’ 뿐이다. 역설적으로 말해 ‘죽음’이 아니고선 현재로서 이 체제의 질서 바깥으로 완벽하게 탈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체제가 우리의 외부에 배치하고 규정해놓은 질서나 구조를 우리는 한 순간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부자유한 조건 속에서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따라서 탈주=죽음이라고 하는 위험이 뻔히 예측 가능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체제 안에서 개인들의 자발적인 계약이란 순전히 공정한 것도, 완벽하게 평등한 것도 아닌, 차라리 반(半)강제적인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정말로 시장에 대한 도덕적 논쟁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러한 우리의 삶의 조건, 즉 과거에만 해도 비(非)시장적 규범에 지배받던 삶의 영역들에까지 시장원리가 파고든 오늘의 현실이 과연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부터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질문은 앞서 말한 이러한 삶의 조건을 가능하게 만든 구조적 · 제도적 차원의 메커니즘, 즉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자본의 새로운 지배양식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비판과 궤를 같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덕적 분노를 넘어 신자유주의 분석으로
 
샌델은 차마 말하기를 꺼려하고 있는 그 신자유주의를 푸코의 통치성 이론의 관점에서 정리한다면, 그것은 곧 시장의 논리를 사회 전체에 공고히 하기 위해 국가가 법적 개입을 통해 제도적 구조를 형성한다는 국가 개입의 원리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는 그 체제 내의 개인들의 활동을 조정하고 사회를 조직화하는 수단으로서, ‘경쟁’이라고 하는 시장의 제일원리를, 사회에 성공적으로 ‘접합’시킴으로써 탄생한 새로운 방식의 통치양식인 것이다. 요컨대 시장경쟁의 원리를 사회 전면에 강제적으로 도입하면서, 전에 없던 삶의 모든 것들에 대한 상품화가 시작된 것인데, 그러한 사회의 시장화란 결국 자본이 국가를 통해 새롭게 구축한 통치성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굳이 푸코의 논의를 빌리지 않더라도, 샌델의 저작이 갖고 있는 이론적 결핍을 지적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예컨대 독일의 비판이론가 하버마스는 샌델보다 수십 년 앞서 후기자본주의의 구조적 병리성의 본질을 ‘생활세계의 식민화’라는 테제로 요약한 바 있다[물론 푸코도 자신의 신자유주의 통치성 분석을 통해 '경제적인 것'에 의한 '사회적인 것'의 포괄, 즉 정부(통치)에 의한 시장원리의 전면적 증식에 대해 말했지만]. 난해한 푸코의 통치성 분석까지 끌어올 필요도 없이, 하버마스의 저 간명한 테제만 갖고도 샌델이 변죽만 울리고 있는 “시장이 비시장적 영역으로 확대되는 현상”의 원인 분석을 훨씬 구체적으로 해볼 수 있는 것이다. 가령 하버마스에 따르면,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체들 사이의 합리적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 유지되어온 또는 그렇게 유지되어야 할 생활세계는 이제 화폐와 권력을 매개로 하는 체계 논리에 의해 침식되고 있다. 그 결과 문화, 사회, 인격이라고 하는 생활세계의 구성요소들이 파괴되며, 결국 문화적 의미상실, 사회적 규범들의 정당성 훼손, 개인의 인격성 파괴, 사회적 관계들의 물화(物化), 시민에 의한 비시민의 사회적 배제, 배제된 자들의 자기 소외 내지는 타자화 현상들이 나타난다.[각주:2] 물론 이런 현상들은 어느날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라, 서구의 전후 복지국가에서부터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어져온 후기자본주의적 통치성의 필연적인 귀결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하버마스의 생활세계의 식민화 테제가 샌델의 시장지상주의 테제보다 훨씬 분석적으로 가치 있는 이유는 적어도 하버마스는 생활세계를 식민화시켜버린 체계를 말함에 있어, 그 체계의 하위범주에 시장만을 한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생활세계를 식민화시킨 체계는 경제체계와 행정체계,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근대국가의 관료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이중적 체계의 등장과 더불어 사회의 물질적 재생산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인데, 문제는 자본주의적 근대화 과정 속에서 화폐와 권력을 매개로 한 이중적 체계가 생활세계로 침입하여 그것을 식민화하고, 마침내 그 고유한 질서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생활세계의 식민화가 시장의 단독적인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진 국가의 시장정책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란 점이다.
 
샌델의 책이 주는 많은 교훈과 장점들이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만 읽고선 우리 시대의 위기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가늠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건 시장지상주의를 신자유주의로 바꿔 읽기 시작할 때 비로소 가능하리라 본다. 다만, 신자유주의가 언제부터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가, 신자유주의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계약조건의 불공정함이나 도덕적 가치 판단의 부패를 넘어) 우리 삶의 위기의 핵심적 요체가 무엇이고,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등을 탐구하려는 자극과 동기를 제공해준 것만으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그 이상의 가치를 이 책에서 찾는 것은 글쎄…

ⓒ 웹진 <제3시대>

 


  1. Michel Foucault, The Birth of Biopolitics: Lectures at the Collège de France 1978-1979 (London: Palgrave Macmillan, 2010); 사카이 다카시/오하나 역, 『통치성과 자유: 신자유주의 권력의 계보학』(서울: 그린비, 2011). [본문으로]
  2. 위르겐 하버마스/장춘익 역,『의사소통행위이론 2: 기능주의적 이성 비판을 위하여』(서울: 나남, 20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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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기독교의 위기

- 1990년대 이후 홍콩과 한국 기독교의 궤적

 

한국 기독교의 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한국의 교회는 보수주의와 결합되어 급속하게 성장하였는데, 이로 인해 교회를 등지는 신도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고, 교회가 한국 사회 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기독교의 보수화-대형화가 한국에서만이 아닌 급속한 사회변화를 겪은 홍콩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된다는 점이다.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에서 개최하는 본 사회토론회는 기독교 위기의 역사적 배경을 확인하는 작업으로 1990년대를 주목한다. 한국 교회의 경우, 1990년대 이후 급속하게 대형화-보수화 되었고, 홍콩은 1997년 반환 시기를 기점으로 보수화가 눈에 띄게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사회변화와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본 토론은 향후 아시아에서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재정립을 모색하고, 더 나아가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의 첫걸음으로 기획되었다.

일 시 : 72일 월요일 오후 3

장 소 : 성공회대학교 새천년관 7417

공동주관 :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3시대그리스도연구소

후 원 : 성공회대학교,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HK)사업

발 표 : 김진호 목사 (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Law Wing Sang 교수 (홍콩 링난대 문화연구학과 교수)

문의) 02-2610-4720

 

* 발표자 소개

김진호 목사는 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Chief Researcher. The Christian Institute for the 3rd Era)으로있다. 한백교회 담임목사(Pastor. Hanbaik Church), 계간 <당대비평> 편집주간 역임하였고 주요 저작으로는 [시민K, 교회를 나가다],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요한복음]등이 있다.

로윙상교수는 홍콩 링낭대학 문화연구학과 교수로 있다. 홍콩중문대학에서 사회학으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받은 후, 2002년 시드니의 테크놀로지대학에서 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 분야는 식민주의의 역사문화학과 비교사회사로서, 홍콩문화형성과 홍콩영화와 종교사회학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Collaborative Colonial Power], [The Making of the Hong Kong Chinese]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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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문제를 주제로 신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민경석 교수님(미국 클레어몬트대학원 종교학과)을 모시고 강연회를 진행합니다. 이번 강연회는 최근 민경석 교수님의 연구 주제인 세계화로 인한 교회의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위기에 대해 함께 토론해 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 민경석(Anselm K. Min)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클레어몬트 대학원 대학교 종교학과 석좌교수(Dean and Maguire Distinguished Professor)이다.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 포담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2년부터 클레어몬트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헤겔과 아퀴나스, 해방 ․ 종교간 대화 ․ 다원주의 ․ 세계화의 문제, 현대 신학과 아시아 신학 등을 주제로 다양한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다. 현재는 세계화와 관련한 신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자문위원이기도 한 민경석 교수는 평신도 신학자로서 교회쇄신을 위한 연구와 활동도 적극적으로 해왔다. 20대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접하고, 197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도 미국 가톨릭교회와 교포 공동체의 일에 관여했다. 1987년부터 4년 간은 미주 한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으로서 매년 강습회를 열어 사회교리를 전파하는 데 힘썼고, 1992년에는 동료들과 함께 교포 평신도 전국조직인 ‘미주한인가톨릭평신도연합’을 창설하고, 연간지 <만민의 빛 Lumen Gentium>을 출간한 바도 있다. 국내 저서로는 ≪한국교회 2000: 권위주의와 교회중심주의를 넘어서≫(분도출판사, 2000)가 있다.

* 일시 : 2012년 7월 9일(월) 오후 7시~9시
* 장소 : 우리신학연구소(아래 약도 참조)
* 주최 : 우리신학연구소,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 참가비 : 5,000원 (발제자료, 간단한 다과 제공)
* 문의 :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 (02-2672-8344)
* 연구소 찾아오시는 길
(150-042)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2가 32-2 3층 우리신학연구소
☎ 02-2672-8342~4 / FAX 02-2672-8346 / E-mail: woorith@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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