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기념비를 세우라
: 차별금지법 논란에 즈음하여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우리말 성서에서 ‘회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콰할’(qahal)은 칠십인역성서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될 때 ‘에클레시아’(ecclesia)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에클레시아’는 제2성서(신약성서)에 나오는 ‘교회’의 원어다.
한데 「출애굽기」 16,9의 용법에 따르면 ‘콰할’은 모세의 법 앞에 모인 백성을 뜻한다. 이 구절은 형식상 국가 이전 시기 광야의 유랑자들이 야훼가 내린 법을 통해 법공동체가 되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하지만 법공동체는 (떠돌이 사회의 상상이 아니라) 국가형성의 상상이다. 떠돌이 집단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복잡한 사회적 집단이 되었을 때, 이들을 묶어내는 양식이 곧 법의 반포인 것이다. 하여 법의 반포는 그 법이 포괄하는 공동체의 안과 밖을 나눈다. 즉 다양하고 복잡한 전통과 관습과 역사를 가진 이들을 일괄하여 법의 일원으로, 곧 법의 ‘안’이 되게 함으로써, 그들이 그 나라의 백성이라는 자의식을 갖게 하고, 나머지를 ‘밖’으로 배제하여 이방인이 되게 하는 이분화의 형식이 바로 국가에서 법의 효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정치적 집단이 법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그들이 비로소 국가다운 국가가 되었다는 시금석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누가 그 공동체의 일원인가의 문제다. 즉 법은 누구를 ‘안’으로 포함하는가의 문제가 국가 형성의 핵심적 과제가 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유다국의 멸망 이후, 그곳에서 일어난 재건공동체가 국가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누가 법공동체의 일원인가’를 둘러싼 논의를 살피고자 한다. 여기서 유다 재건공동체는 과거 유다국이 바벨로니아 제국에 의해 멸망할 때 유배되어 끌려간 자들의 일부가 반세기 이후부터 돌아오게 되면서 시작된다.
귀환자들이 속속 돌아왔다. 바벨로니아가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 먼 곳에서 오려니 나이든 이들은 엄두를 내지 못했고 혹여 용기를 내어 길을 떠난 이들도 험한 여정에서 쓰러졌다. 하여 기어이 고향 땅 유다로 무사히 돌아온 이들은 대개 청년들이었다. 경험이 많지 않지만 열정은 넘쳐나는 이들이다.
이들은 전에 왕족 혹은 귀족 집안의 자제였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던 이들의 자손이었다. 해서 그들은 꿈꿨다. 그 땅에 무사히 돌아오면 다시 주인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하루아침이 유배민으로 전락하여 고생고생하며 살아가는 종의 신세가 아닌, 땅의 주인이 되는 삶, 인생역전의 꿈이다. 
한데 그들이 당도한 꿈의 땅 예루살렘은 폐허가 된 채 버려진, 아무도 살지 않는 땅, 불에 탄 잿더미와 무너져버린 벽돌, 무수한 잡초만 가득한 ‘죽은 도시’였다. 그들을 환대해주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없었다. 고국 땅에서 주인이 될 줄 알았던 귀환자들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폐허가 된 담벼락을 보수하고 잡초를 치워 가까스로 살 집을 마련했고, 겨우겨우 끼니를 잇는 절박한 생활고에 꿈이 자리잡을 곳은 없었다. 몇 번에 걸쳐 대대적으로 귀향한 사람들, 새 나라에 대한 꿈에 한가득 부풀었던 그들은 번번이 절망하고 말았다.
그중 한 귀환집단이 있었다. 예수아 제사장과 즈루빠벨 총독이 이끄는 귀환자들이다. 이들의 지도자들이 황제가 준 기금을 가지고 와서 그 날이 곧 도래할 거라고 부추겼을 때, 그들과 앞서 귀환했던 이들, 그리고 그 지역의 일부 토착민들은 힘을 내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지었다. 성전이 세워지면 야훼가 보살펴줄 것이라고, 하여 영광의 시간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성전이 세워졌어도 야훼의 영광은 보이지 않았고, 비루한 현실은 여전했다. 게다가 때만 되면 몰려오는 약탈자들은 성전이 세워진 뒤 더 기승을 부렸다.
그렇게 한 세기가 지났다. 다시 큰 규모의 귀환자들이 돌아왔다. 지도자는 느헤미야 총독, 페르시아 황제의 관리였다는 자다. 그는 황제가 준 기금과 유배민 공동체에서 수거한 기금, 그리고 귀환민들로부터 징수한 기금을 모아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가까스로 성벽이 세워지니 이제 더 이상 약탈자들에게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성벽은 그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이곳이 다름 아닌 예루살렘이었기 때문이다. 성전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멀리 디아스포라 공동체들에서 보내온 기부금과 기부물품이 쌓이기 시작했고, 성전 제사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으며, 제사장들의 권위는 다른 성소들의 권위를 압도하게 되었다.
식민지가 된 이후 유다 지역에서 가장 유력한 성읍이 되었던 미스바(예루살렘 북족의 13킬로의 성읍)도 예루살렘에 밀리게 되었고, 남쪽으로 30킬로 떨어진 성읍 벧수르도 예루살렘에 복속되었다. 하여 느헤미야는 이제 영토다운 영토를 다스리는 총독이 되었다. 그 주(州)의 이름은 ‘예후드’였다.
예후드 주에서 느헤미야 총독은 강력한 분리주의 정책을 취했다. 식민지 이후 이 지역은 한동안 사마리아에 복속된 하위의 정치단위였었다. 또 사마리아 못지않은 강력한 정치세력이던 암몬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하여 느헤미야는 분리주의 정책을 통해 사마리아와 암몬으로부터 실제적으로 독립된 자치구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얼마 후 에스라 제사장이 황제의 재가를 받아 이곳으로 파송되었다. 그는 예후드 주의 백성을 결속시키는 법을 반포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법은 ‘성전에 계신 야훼께서 주신 율법’이라는 것이다. 이제 느헤미야의 분리주의는 하느님의 법의 이름으로 실행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율법이 최초로 백성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통합시키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전 제사도 비슷한 통합의 기능을 하지만, 그것은 제사 드리는 그 순간에야 효력을 미친다. 한데 예후다 영토가 넓어지자 모든 이가 제사에 참여할 수 없게 된 데다, 제사는 연중 불과 몇 회만 시행될 뿐이다.
반면 율법은 성전까지 오지 않아도 백성이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자의식에 매어 있게 할 수 있다. 마을마다 율법을 가르치고 예배하는 공간이 생겼다. 그리고 이 예배와 교육은 매 안식일마다 시행되었다. 법은 이렇게 제사보다도 예후다의 백성을 더 촘촘하게 결속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안식일마다 마을에서 천명되는 율법에서 핵심은 ‘누가 예루살렘 성전공동체 예후다의 백성인가’라는 문제에 있다. 이때 에스라의 율법은 백성이 아닌 이를 규정함으로써 백성인 이들을 포용하는 형식을 지녔다.
누가 법의 백성이 아닌가 하면, 첫째로 이방인이 그렇다. 심지어는 이방인과 결혼하는 이도, 그이들의 자제들도 이방인이다. 강력한 배타주의다. 이방인과 결혼 중인 이들까지 강제로 이혼시키고 한 편을 국외로 추방하는 조치가 내려질 정도로 고강도의 폐쇄주의다.
둘째는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고자’는 배제의 대상이다. 왜 하필 ‘고자’라고 표현했을까? 추측컨대 ‘생산을 할 수 없는 성(性)’이라는 점이 고자 속에 담긴 핵심 논지였을 듯싶다. 왜냐면 이방인과의 결혼 금지가 혼혈의 위험으로부터 피를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것이라면, 고자 배제의 원리는 깨끗한 피의 백성이 번성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고자 배제’ 원리 속에 함축된 것은 ‘생산하는 성’만이 진정한 ‘법의 내부’라는 주장을 천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생산 없는 성’을 왜 하필 ‘고자’라고 했을까? 아마도 남성 중심사회에서 불임 여성을 거론하는 것보다는 불임의 남성을 얘기하기 위해, 불임 남성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고자’가 배제의 대표집단으로 거명된 것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느헤미야-에스라 식의 이러한 분리주의와 순혈주의는 유대주의적 성전공동체를 하나의 독자적인 정치적 세력으로 부상하게 했고, 하나의 사회적, 종족적 정체성을 가진 집단으로 주체화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한데 문제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이 체제는 누군가를 강하게 차별하는 배제주의적 사회를 만들어냈다. 하여 이 체제를 실행하기 위해 이웃 족속과 결혼했던 이들을 강제로 갈라놓았고, 생산하지 못하는 성에 대한 사회적 처벌을 제도화했다. 결국 소수자에 대한 배제를 제도화함으로써 그 사회는 성립했던 것이다.
이제 오늘 우리 시대 얘기를 해보자. 최근 다시 차별금지법안이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상정되었다. 북한 미사일 사태에 시민사회가 정신이 온통 쏠려 있는 중에 이 차별금지법 문제는 개신교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있다. 기독교계 매체들 가운데 몇 개 빼고는 거의 전부가 차별금지법에 대해 일방적 비난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해서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한 지금까지 표출된 여론은 반대 일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다시 해묵은 물음이 제기된다. 왜 개신교계는 그토록 차별금지법 반대에 열을 올리는가? 말할 것도 없이 반대의 핵심은 동성애나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 문제에 있다. 수많은 반대 주장에 들어 있는 공통된 불만은, 이 법이 제정되면 동성애나 트랜스젠더를 죄라고 하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니 이게 가당한가라는 주장이다. 적어도 그들에게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인 이들은 반성서적이고 반자연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성서적이라 함은 성서가 동성애자를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반자연적이라 함은 생식 없는 성은 부자연스런 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억지다. 성서가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텍스트가 단지 몇 개 있기는 하지만, 그 텍스트가 동성애와 무관한 것이라고 해석할 여지 또한 있으므로 그것으로 성서가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주장은 자명하자 않다. 설사 반대한다는 해석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성서의 모든 주장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니, 불과 몇 개 텍스트에 불과한 것을 성서의 가르침이라고 일반화하는 것은 지나치다. 가령 성서가 월경하는 여자를 불경하다고 하고, 그 기간에 그녀가 눕는 자리, 앉았던 자리에 닿는 것까지도 주변의 모든 사람을 부정타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어느 교회도, 어느 목사도 그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또 고기를 먹을 때 피까지 먹어서는 안 된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반복하는 교회는 없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선 주일 점심 식사로 선지국이 나오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개신교 신자들은 동성애 같은 몇 개 요소만은 성서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나마 그런 성서 문구조차도 동성애 반대 논지가 불명확하니, 억지 부린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반자연적이라는 주장도 그렇다. 자연적이라는 것을 다수자의 선택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단지 다수자에 속하는 이들이 낯설게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는 것은 종종 다수자의 폭력으로 드러나곤 하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소수자든 다수자든 그 선택이 주변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차별금지법은 인권법이다. 인권법은 소수자라 하여 차별받지 않는 권리에 관한 법이다. 소수자든 다수자든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한, 그 선택은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한데 소수자의 선택이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낀다는 이유 때문에 어떤 소수자들은 차별대우를 받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 그런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바로 차별금지법인 것이다.
하여 차별금지법 같은 인권법은 다수의 동의를 요하기보다는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인권 개념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법제화되는 것이다. 즉 차별금지법은 그 사회가 국제적 인권의 관점에서 얼마나 성숙한 인격을 갖추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차별금지법 논란은, 우리 사회가 누구를 법공동체의 일원으로 삼을 것인가를 둘러싸고 국제적으로 격조 있는 사회가 될 것인가 아닌가의 기로에 선 논란이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 지도자들은 한국사회를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국제적 인격을 결여한 사회가 되게 하려는 일에 앞장섰다.
다시 성서 얘기로 돌아가 보자. 「이사야서」 56,4~7는 느헤미야-에스라가 주장하는 법공동체의 폐쇄적 개념에 대항하고 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록 고자라 하더라도, 나의 안식일을 지키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면, 그들의 이름이 나의 성전과 나의 성벽 안에서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 ......”
주님을 섬기려고 하는 이방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여 주님의 종이 되어라.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는 이방 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겠다. ......”

주장인즉슨, 이방인이나 고자라는 이유로 하느님의 공동체에서 추방하는 것은 안 된다는 얘기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 그 사회의 질서를 반하는 행동이라고 한다면, 안식일을 지키는 이방인과 성소수자는 그 사회로부터 차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 구절은 당시 예후다 지역의 지배적 법률인 에스라의 법의 배제주의에 대항해서 제기된 하느님의 차별금지법인 셈이다.
이 성서 구절에서 “그들의 이름이 나의 성전과 성벽 안에서(곧 야훼의 법 공동체 안에서)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는 표현이 주목된다. 누가 우리 사회, 우리의 법공동체의 일원인가?를 둘러싼 논의에서 차별당하는 소수자의 기념비를 세우는 일이 야훼의 가르침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부활에 관해 상상해본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부활은 몸이 난도질당한채 죽임당한 이들이 그 마지막 때에 하느님나라의 백성이 되어 일어서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몸의 부활 모티브는 그 살해당한 이들이 고문당하고 처형당하는 과정에서 신체가 심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부활은 몸의 복원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하여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부활은 그들, 곧 소수자이기에 차별받았던 이들이 하느님나라의 백성이 되는 사건이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차별당하고 죽임당한 소수자들의 기념비를 세우는 일을 벌인다. 그것이 바울 사역의 핵심이기도 하다. 곧 그것은 하느님의 차별금지법의 바울식 실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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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31 22: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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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감합니다^^ 멋지십니다 ㅎㅎ
  2. 참된 목자를 찾으며
    2013.06.05 06:4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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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분 목사님 맞나요??
    성서적으로 동성애가 죄라고 딱 집어 얘기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셨는데 디모데전서 1장에 보면 '법이란 불법한 자.. 죄인.. 을 위해 있다 하고 '아비를 치는 자.. 살인한 자.. 음행하는 자 남색하는 자..' 라고 해서 동성애를 죄라 하고 있거든요. 내가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가 동성애자를 죄인 취급하거나 혐오한다는 뜻이 아니라 글 쓰신 분이 성경을 들먹이시기에 나도 인용을 해본 것 뿐이구요. 개인적으로 동성애자로서 어려움을 겪다가 빠져나와 참된 행복을 맛보고 있는 사람들을 알기에 다른 동성애자분들도 이들과 같이 되면 좋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이 것도 행복의 기준에 대한 차별로 느껴진다면 죄송하구요.
    본론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전공도 정확히 모르는 분이 '법'에 대해서는 알고나 계실까 싶고 이렇게 분석과 해석력이 부족하신 분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제대로 이해는 하신 걸까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동성애자'를 정죄하고 차별-배척하자는게 아니라 '동성애 합법'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문제점 그리고 '차별금지법'에 따른 역차별과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는 것.
    즉 '사람'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법'의 부실에 대한 반대인데, 마치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배척하는 국제적 품격에 못 미치는 사람인 양 표현하신 것이 목사님으로서의 품격과 자질에 의심이 가네요..
  3. 위의 분
    2013.06.19 00: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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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개신교 신자들은 동성애 같은 몇 개 요소만은 성서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나마 그런 성서 문구조차도 동성애 반대 논지가 불명확하니, 억지 부린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라고 본문이 말하는 게 뭔 말인지 모르시나 보군요.

    법의 부실을 논하기 전에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편견'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는 성찰의 능력부터 키워 보시길 권합니다.

어느 늙은 민중신학자의 편지(III)[각주:1]

: 민중신학이 윤리를 말할 때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1

형! 오늘은 <민중신학이 윤리를 말할 때…>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편지를 띄웁니다. 倫理의 한자를 풀이하면, 理는 ‘도리, 이치, 사리, 다스리다’를 뜻하고, 倫은 ‘차례, 순차, 나무결, 동류, 동등’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윤리란 사물의 이치를 마치 나무 결이 배열되어 있는 것처럼 차례로, 순차적으로 정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해진 이치를 차례대로 잘 다스리고 지키는 것이 윤리의 동양적 의미인 셈입니다.
서양 윤리학의 전통에서 보자면, 애초에 플라톤이 말했던 덕(arête)은 선함이 아니라 무엇보다 우수함이었고,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윤리학의 궁극적 관심이 포괄적인 의미의 좋음, 즉 행복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런 전통을 목적론적 윤리학이라고 하죠. 에피쿠르스, 영국의 경험주의, 공리주의, 실용주의, 그리고 80년대 이후 미국을 지배하는 공동체주의가 크게 이 흐름 속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각주:2] 어찌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선함’과 ‘좋음’은 동류항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양자 사이에 별다른 구별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서양인들은 칸트에 이르러 비로소 그것을 구분해냅니다. 즉, ‘어떤 목적을 위해 좋은 것’과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을 칸트는 갈라냈고, 후자를 윤리학의 새로운 영역으로 선언하였죠. 목적론적 윤리학과 더불어 서양윤리학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는 의무론적 윤리학은 이렇게 탄생하였습니다.
하지만, 목적론적 윤리학이나 의무론적 윤리학이 각자가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할 지라도, 윤리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행위에 방점이 있는 학문인지라 나름 현실에서의 실천 강령을 필요로 하였는데, 그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 칸트는 ‘정언명법’이라 불렀습니다. 현실세계에서 살아갈 법도와 순서를 규정한 것입니다.
이렇듯 동.서양 전통에서 윤리란 공히 삶의 이치와 그에 따르는 법도를 세우는 것이었고, 그 원리와 룰을 잘 지키는 사람을 윤리적 인간, 혹은 도덕적 인간이라 불렀습니다. 흔히 어른들이 ‘상철이가 군대갔다 오더니 사람되었네!’ ‘희선이가 시집가서 애를 낳더니 사람되었네’라고 말할 때, 한국 사회에서 남자 인간은 군대를 다녀와야, 여자 인간은 시집가서 애를 낳아야 비로소 사람대접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사회는 남자 인간을 처음 만났을 때 ‘군대 갔다 왔어?’를 묻는 것이고, 여자 인간에게는 ‘애가 몇 이야?’를 묻습니다. 군대라는 전체주의를 통과한 그 인간, 가정이라는 가부장제를 통과한 그 인간이 비로소 사람대접 받는 그 나라, 그곳이 바로 대한민국인 셈이죠.

2

지난 52호 웹진에서 저는 ‘민중신학의 위기론에 부쳐’라는 글에서 부정성에 입각한 민중신학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제가 민중신학의 부정성을 언급했던 이유는 어떤 보편적 입법에 의해 소외되는 개별자(singularity)들의 차이와 다름이 존중되고 각광받는 사회를 향한 비평적 무기를 확보한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 보다는 거대서사의 논리에 입각한 민중신학의 내러티브가 오히려 시대착오적이지 않나? 라는 의심에서 기인합니다.
형, 솔직히 민중신학만큼 거대한 이야기가 어디 있나요? 지금도 민중신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 나이에도 가슴이 짠하고 뭉클하면서 눈물이 고이는 이 숭고함을 어찌 설명해야 할런지? 원래 미학이론에서 말하는 숭고함이란 우리 앞에 펼쳐진 거대한 광경, 장면, 사건 앞에서 미적 주체가 느끼는 황홀경 일반을 지칭하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적 대상의 거대함 앞에서 미적 주체는 한 없이 작아져 그 거대함을 어찌 표현할 줄 몰라, 결국에는 추상의 형태로 밖에는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위대함과 거대함 앞에서 침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 충격과 전율을 그냥 감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 시대의 운동 논리였고, 그 원리는 상당기간 절대적 강령이었으며, 지금도 어느 정도 그것은 유효합니다.     
우리가 자유와 민주와 정의와 통일이라는 말 앞에서 느끼는 숭고함은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그것과 사실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들 역시 그 나이에 조국 근대화, 반공, 잘 살아보세!, 경제강국이라는 거대함과 위대함 앞에서 눈물을 주루룩 흘립니다. 어쩌면 한국사회는 이 두 가지 포획되지 않는 숭고함의 에너르기가 공존하는 리비도의 각축장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형과 내가 공히 좋아했던 니체가 그랬던가요?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 될 것이다” 고 말입니다. 나는 이 문장을 접하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 듯한 착각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우리의 치부를 들켜버린 부끄러움이랄까요. 민중신학 진영 역시 전선 저편의 그들처럼 진영의 논리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다 보니, 무언가를 받아 들이는 감각에 있어 더디고, 그 과정에서도 ‘의심의 해석함’에만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그것이 마치 우리의 미덕인양 자위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난 시절이 워낙 혹독하였던 지라 우리의 의식과 영혼 역시 그 잔혹함에 맞서 싸우느라 그들처럼 우리의 영혼도 차갑게 식어간것은 아닌지? 천재 시인 이상은 이런 우리의 현실을 그의 시 <거울>에서 짧지만 아주 섬뜩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꽤 닮았소

 

3

이런 까닭에 부정성을 인간 행위의 근거로 내세우는 새로운 윤리적 제안은 진영의 논리안에서 긍정의 윤리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들을 혼란과 불안가운데 빠지게 합니다.  하지만, 한 꺼플 벗겨보면, 긍정의 윤리는 보편자(이치, 중용, 정언명법…)안으로 개별자를 일방적으로 줄 세우는 상징계의 원칙이고, 전체성의 논리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본질과 토대를 상징하는 이데아를 상정한 후, 그 절대자의 음성에 따라 모든 개별자들에게 일사분란한 선택과 행위를 강요하는, 니체의 말대로라면 노예의 도덕인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웹진에서 언급한 부정성에 기반한 민중신학이 윤리와 만나게 되면 윤리 본연의 뜻은 역전됩니다. 오히려 개별자가 자기의 윤리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동시에 보편자가 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입증하고, 설득하고, 투쟁하고, 관철하는 이 모든 일련의 행위들이 새로운 윤리적 준칙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정해진 이치를 뒤집어 보는 것,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고 의심하는 것이 윤리적 태도의 첫 걸음이 되는 셈이죠. 푸코는 죽기 바로 직전 이를 가리켜 ‘자기에의 배려’(The Care of the Self)라 칭하였고, 그것이 <성의 역사III>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민중신학 역시 이제는 ‘거대서사의 윤리’가 아닌, ‘자기배려의 윤리’로의 전환을 이루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지워야 할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주 안 좋은 습관이 있죠. 진리와 정의를 동류함으로 보는 것이 그것입니다. 진리를 둘러싼 담론이 반드시 정의로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정의란 차이와 다름으로 인한 충돌이 지속가능한 상태이고, 그 충돌이 소모적이라는 이유로, 국민 화합에 저해가 된다는 이유로, 국가기강을 해이하게 한다는 이유로, 북한의 개입이라는 이유로 진압이 되지 않는 상황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한국적 상황에서는 그렇습니다. 이 논의는 예전에 한동안 유행했던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둘러싼 논쟁의 화두이기도 했습니다.

 

4

일찍이 포스트모던 논쟁을 주도했던 리오타르가 거대서사의 붕괴, 작은 이야기들의 발굴을 이야기 하였고, 이에 대한 하버마스로 대표되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게 등장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90년대 초. 중반이 그랬죠. 당시 형이랑 불꽃 튀기며 ‘포스트모더니즘’을 놓고 갑론을박했던 날들이 기억나는 군요. 물론, 한국사회에서 그 논쟁들은 얼마 가지 않아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저는 지금도 리오타르의 의견에 여전히 심정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실 포스트모던 논쟁은 ‘이성의 합리성’과 ‘이성의 광기’를 둘러싼 서로 다른 입장과 해석의 차이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양자의 대결은 ‘세상에는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 있는가?’라는 말로 유명한 파르메니데스와 ‘만물은 변한다’라고 반박한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 시작된 고대 그리스의 일자와 다자 논쟁, 중세의 실재론과 유명론 논쟁, 근대의 이성과 실존의 문제 등으로 이어져왔던 오랜 서구철학 논쟁사의 끝자락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이러한 논쟁이 신비화되고 탈역사화 되었을 경우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과 역사속에서 어떤 함의로 다가오는지 묻지 않는다면 울리는 징과 같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하버마스와 리오타르만을 따지고 보자면, 전자의 경우 인간은 사회적, 역사적 망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고, 그 규범성이 인간됨의 조건임을 전제합니다. 후자는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구요. 즉, 하버마스에게 있어 규범은 인간의 삶의 조건인 반면, 리오타르는 그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이 인간 삶의 조건인 셈입니다.
자신들의 사상적 준거점을 확보하고 나서 양자는 서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격을 가합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규범은 자칫 악용되면 전 시대와 같은 전체주의로 변모될 수 있음이, 후자를 향해서는 허무주의로 변하여 비역사성 내지 비사회성을 초래할 수도 있음이 지적됩니다. 물론, 그에 대한 반론 역시 양자는 많은 논쟁을 거치면서 마련하였답니다. 하버마스는 유명한 대화적 이성에 입각한 의사소통 행위를 내세웠고, 반대편에서도 비역사성, 비사회성에 대한 지적에 맞서 타자성을 내세웁니다. 데리다, 레비나스 등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런 계보학적인 흐름에서 볼 때, 하버마스가 내세우는 제안은 이성의 자기발전, 자기변명이라는 측면에서 도구적 이성의 질주를 제재할 만한 좋은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칫 이상적 의사소통 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합리적 주체들만의 잔치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타자성을 테마로 내세우는 윤리적 전략이 요즘 주목을 받는 이유일 것입니다.

 

5

제가 기대하는 민중신학의 윤리적 함의 역시 이러한 타자성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민중신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적당히 버무리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하여 저지르기 쉬운 대표적인 실수 중 하나가 포스트모니즘 일반을 범박한 타자성으로 덧칠해버리는 경우입니다.
<The Weakness of God>(2006)의 저자이자 미국학계에서 아주 충실한 데리다 전달자이자 해석자인 존 카푸토(John D. Caputo)는 포스트모던 논쟁이 한창이던 1993년에 <Against Ethics>(1993)이라는 책을 출판한 바 있습니다. 그 책에서 카푸토는 포스트모던 사상의 일반적 특징을 heterology라 명하였고, 더 조밀하게는 heteromorophism과 heteronomism으로 나눕니다.
전자는 니체로부터 기인하여 들뢰즈, 푸코로 이어지는 라인이고, 후자는 굳이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키에르케고르로부터 시작하여 레비나스와 데리다로 이어지는 진영입니다. 니체가 그랬듯이 전자가 디오니소스적인 축제를 찬양하고 자기에 대한 긍정과 삶에 대한 환희를 내세우는 유쾌한(?)한 세계관이라면, 후자에는 존재 일반이 지닌 무한성으로부터 비롯되는 불안, 공포, 책임, 신비 등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을 거론할 때 니체로부터 이어지는 계보를 먼저 떠올리기 쉬운데, 근래에는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별도로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아 더 조밀해지고 파편화 된 채 착취당하며 사라져가는 다양한 타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 차원에서 레비나스와 데리다의 타자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민중신학과 관련하여 제가 관심하는 부분입니다.
민중신학은 이제 거대하고 묵직했던 실천이론보다는 작은 진실들, 즉 혁명의 시대를 살아내느라 미처 챙기지 못했던 소소한 일상의 것들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는 시선의 확보를 통해 ‘민중신학의 위기’를 관통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레비나스와 데리다불러들여 민중신학과의 비판적 우호적 대화를 통해 하나씩 풀어가려 합니다. 그 과정을 지나면서 민중신학의 과거에 대한 회고와 현재에 대한 진단,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가 다 아우러지기를 기대합니다. 제가 너무 큰 욕심을 내는 걸까요? 

형. 그동안 저의 넋두리를 듣느라 수고 했수다. 함께 있었더라면 저의 발언을 향해 예의 그 꼬장꼬장한 시선과 말투로 한바탕 퍼부었을텐데……형의 그 일성이 그립구려. 논문 쓰다가 답답한 부분, 풀리지 않는 매듭이 등장하면 다시 편지를 띄우겠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평안을…

ⓒ 웹진 <제3시대>

 

  1. 졸고는 현재 진행중인 필자의 학위 논문 [The Turn to the Other: Minjung Theology in a Dialogue with Levinasian Ethics and Derrida’s Deconstruction Ethics]중 서론의 일부를 번역 각색한 원고입니다. 글의 제목으로 사용된 ‘어느 늙은 민중신학자’는 특정인이 아니라, 논문을 웹진 원고로 번역 각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작중화자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졸고의 내용은 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입장과는 무관함을 아울러 명시합니다. [본문으로]
  2. 공동체주의: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마이클 샌델, 맥킨타이어, 찰슨테일러 등이 공동체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들이다. 서구 근대를 규정하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봉건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개인의 발견이 아닐까 싶다. 그 개인을 이 전 시대 개인과 구분하여 자율적 개인이라 부르고, 그 개인은 막 형성되고 발전하기 시작한 자본주의 시대에서 그동안 억압되었던 이드를 마음껏 분출하기 시작한다. 이 욕망은 급기야 개인의 차원을 벗어나 공동체의 차원으로 확대되어 제국주의화 된다. 이러한 욕망의 파국이 바로 1.2차 대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후 세계는 나치즘과 파시즘 같은 극단적 공동체주의에 대한 경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냉전이 종식되고 전세계가 자본주의 시장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새로운 공동체주의가 등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현재 일고 있는 공동체주의에 대한 간략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자유주의가 지나치게 개인의 자율성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인간의 삶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공동체가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홀로 독립된 섬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안에서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비로소 자아를 완성하는 과정적 존재이다. 결국,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표류하는 개인을 공동체 안으로 복귀시킴으로 사회전체의 행복의 총량에 관심한다는 점에서 공리주의의 연장선에 있다고 하겠다. 공동체주의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은데, 이는 다음에 기회를 봐서 몇 회에 걸쳐 연재하기로 하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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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지젝을 아느냐? (IV)
: 쫄지마, 이데올로기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다소 긴 프롤로그

독자들은 이데올로기라는 말을 접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난 솔직히 숨이 막힌다. 답답해서… 인간과 사회, 인간과 자연, 인간과 세계 사이의 역학 속에서 인간이 품는 현실적이며 이념적인 의식 형태를 이데올로기라 부른다고 사전에는 정의되어 있다. 아울러, 이런 설명들도 추가된다. 이데올로기는 인간 존재의 기반이 되는 가치 체계, 혹은 사회적인 조건에 대한 판단의 선택 체계 등등… 이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한, 김빠진 콜라 같은 말들인가?
이렇게 밍밍한 콜라를 마시고 있던 우리에게 청량하고 자극적인 신상품이 하나 출시되었다. 그가 바로 지젝이다. 감사하게도 지젝의 이데올로기 논의는 21세기 사상계의 전체 지형에서 볼 때 진정 김빠진 콜라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데올로기 비판을 다시 메뉴판에 당당히 입적시켜 우리로 하여금 간만에 이데올로기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물론, 지젝이 일으키는 요란함으로 인해 간혹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젝이 일으키는 이 소동이 좋다.
우선, 온갖 것에 시비를 걸어대는 싸움닭 같은 그의 태도가 나를 매료시킨다. 복서로 따지면 전형적인 인파이터다. 나는 지젝을 읽을 때 마다, 80년대 웰터급의 왕좌를 놓고 토마스 헌즈와 세기의 대결을 연출했던 슈거레이 레너드를 떠올린다. 토마스 헌즈가 큰 키와 긴 리치를 이용하여 날카로운 잽과 강력한 스트레이트를 바탕으로 링 주의를 돌면서 우아한 아웃복싱을 전개했다면, 슈거레이 레너드는 쉴새없이 헌즈를 파고든다. 물론, 레너드의 펀치는 헤비급의 조지포먼 만큼 강력하지도, 미들급 세계챔피언 마빈 헤글러같이 묵직하지도 않았지만, 그 빈도와 펀치가 나가는 다양한 각도만큼은 당대 최고였다. 결국, 학같이 우아했던 헌즈는 레너드의 집요함 앞에 무릅을 꿇고 만다. 지젝의 발언들을 지켜보면서 왜 나는 80년대 전설의 복서였던 슈거레이 레너드가 생각나는 걸까?
내가 지젝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지젝 증후군’으로 나타나는 그가 일으키는 후폭풍이다. 지젝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지젝의 이론에서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실천적 측면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꼬집는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지젝을 오독한 것이다. 자본의 전 지구적 재편이 완료된, 미국식 세계 자본주의가 세계를 덥고 있는 현 시점에서 혁명이 요원하다는 사실을 이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또한 지젝이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이러한 현실의 이 엄연함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지젝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똘아이처럼 지젝은 마치 이 모든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혁명을 연기한다.
이런 지젝을 지난 시대가 지녔던 혁명의 프레임 안에 집어넣어 바라본다면 불편해진다. 지젝은 혁명 그 자체를 말하려는 것보다는 우리에게 현시대 이념적 지형과 그로부터 야기되는 폭력적 증상과 징후들을 하나씩 보여주고, 거기에 적합한 혁명의 조건들을 맛나게 나열한 후에, 최종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이 엄연한 현실속에서 다시금 혁명에 대한 발칙한 상상을 도발케한다. 이러한 ‘지젝 현상’이 지금 시대를 돌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런지 아직 실험 중이지만, 그것만으로 나는 지젝이 충분히 본인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본다.
사상적으로 지젝이 지닌 특이점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혁명과 정신분석을 결합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프로이트로 대변되는 정신분석학은 혁명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었다. 지젝은 바로 그 정신분석을 혁명을 이해하는 도구로 끌어들인다. 이 말은 지젝이 혁명을 그 전 인물들과 다르게 해석한다는 말이다. 지젝에게 있어 혁명은 단순히 인민을 굴종시키는 오래된 억압과 착취의 물리적 체제를 전복시키는 행위가 아니다. 전통적 혁명론이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모토 하에, 주체의 투철한 의지와 인식론적인 앎이 조화를 이루는 철인의 혁명론이라면, 지젝의 혁명론은 그 주체의 꿈꾸는 방식에 주목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이라 자부하는 우리는 무슨 공청회장에서는 아이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켜야 된다고, 전인적인 인성교육이 절실하다고 열변을 토하다가도, 정작 집으로 돌아와서는 한글도 모르는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아이들을 특목고 대비반에 몰아넣는 속물적인 우리들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자신의 잘못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행동은 계속되는 것인가? 지젝이 혁명을 이야기하면서 정신분석학과 공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시대의 혁명은 단지 국가를 전복시키는 행위가 아니다. 우리 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는 자본의 욕망을 건드리지 못하고 그 욕망이 꿈꾸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혁명이 요원하다는 사실을 지젝은 알아차렸던 것이다.
지젝은 이러한 본인 사상의 밑그림을 선보이면서, 그것의 첫 단추를 이데올로기 비판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지젝을 읽는 것은 우선, 지젝식 이데올로기 비판의 화법을 따라 가는 것이다. 그 순서를 거치면서 우리는 지젝이 말하는 실재와 실재의 윤리와 유물론적 믿음과 만난다. 지젝의 발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외치게 하고,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는지는 물론 좀 더 지켜봐야 할 성질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젝을 통해 우리는 사상사를 수놓았던 (지젝을 통과한) 철인들을 다시 만나고, 그들이 고민했던 문제와 대안을 벗삼아 오늘의 문제를 다시 다각도에서 반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혁명을 이야기 할 수 있다면……그래서, 나는 지젝이 일으키고 이 소동이 유쾌하고 흥미롭다. 이제야 비로소 지젝의 이데올로기 비판으로 넘어갑니다. Are you 뤠디?


고전적 이데올로기 비판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이데올로기 비판의 세 가지 차원을 언급하고 있다.
우선, 고전적 의미의 이데올로기 비판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맑스의 이데올로기 비판이 아닐까 싶다.[각주:1] 맑스에 의하면, 역사란 이데올로기의 오류인식과정이고, 이데올로기는 계급에 의해 결정되며, 그런 의미에서 다분히 당파적이다. 계급과 당파는 ‘쭉~’ 계속 보편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변하고 뒤틀리고 역전된다. 그러므로 맑스에게 있어 이데올로기 비판이란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관계와 그 역학을 밝히고, 그 과정에서 작동하는 허위의식과 순진함을 까발리는 일이다. 즉, 체제의 의해 왜곡된 현실과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민의 순진함을 해부해 보이는 것이 고전적 이데올로기 비판의 주된 임무였다.
지젝은 이 대목에서 냉소주의를 거론하며 고전적 이데올로기 비판이 지니는 나이브함을 역으로 고발한다. 오늘날의 우리는 체제에 의해 자행되는 현실에 대한 왜곡과 모순의 매카니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체제는 더 이상 우리를 속이지 못한다. 우리의 집요한 네티즌들과 인터넷 논객들이 그것을 가만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현실을 거부하지 못하고 오히려 전 시대보다 체제에 편입하고자 더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인가?[각주:2]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결국 지젝의 욕망과 환상에 대한 이론일텐데, 연재를 거듭하면서 이 부분은 계속 보충되고 증액될 것이다.)


다시, 알튀세를 위하여...

고전적 이데올로기 비판이 지배자와 피지배라는 구조를 전제로 한다면, 이보다 좀 더 진화한이데올로기 비판은 이데올로기가 특정 집단에 의해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제도를 통해 작동된다는 원리다. 이것의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지난 <웹진 51호>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알튀세의 호명이론이 아닐까 싶다. 
맑시즘과 정신분석학은 각각 걸어온 길이 다르고, 방법론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오류인식을 본인들 사상의 발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를 닮았다. 맑스에게 있어서는 역사가 이데올로기의 오류인식이었고, 프로이트에게는 근대적 이성에 기반하고 중심이 꽉 차 있었다고 믿어왔던 주체가 이데올로기의 오류인식이었다. 왜냐하면 프로이트에게 있어 주체란 명료한 의식이 아닌 불확실한 무의식에 기반한 주체이고, 꽉 차있는 중심이 아닌, 비어있는 중심을 기반으로 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각주:3]
알튀세는 바로 이러한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공통점을 알아차리고,[각주:4] 양자의 결합을 시도하여, 맑스주의에는 없는 무의식(타자)의 개념을 정신분석학(라깡)에서 끌어온다. 라깡이 무의식의 영역인 상상계와 상징계를 거치면서 어떻게 개인이 주체로 되어가는지를 분석하듯,[각주:5] 알튀세 역시 무의식과도 같은 이데올로기(대중적 표상체계로서의) 속에서 개개인이 어떻게 주체로 만들어지는지에 주목한다. 
근대적 주체는 타자의 영역을 지우고, 그 타자의 영토에 깃발을 휘날리면서 자신의 주인됨을 입증하려 했던 존재였고, 그런 의미에서 타자란 정복과 제거의 대상이지, 성찰과 관조와 대화의 대상이 아니었다. 맑스주의는 이런 근대적 주체론의 결정판이었고…그런데 맑스주의자 알튀세가 우리안의 타자, 즉 무의식을 맑스주의안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알튀세는 맑스주의 논쟁사에서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중요한 인물이 된다.


대타자의 호명 앞으로!

알튀세에 의하면, 이데올로기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허위의식과 순진함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같이 구조화되고 내재화된 이데올로기 장치(ex: 국가)를 통해 작동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길을 가는데 전경이 내 뒤통수에 대고 “어이~, 학생, 가방 좀 봅시다”라고 하면서 나를 불러 세운다. 이때, 내가 뒤를 돌아보면서 “저요? 저 아무짓도 안 했는데요...”라고 반응한다면? 나는 아주 충실한 이데올로기적인 주체로 호명당하는 그 주체이다. 내가 전경에게 급 쫄아서 보인 반응은 사고하고 의식하고 학습해서 보인 반응이 아니다. 사고하고 의식했다면 개겼어야 맞다. 이 말은 우리의 의식보다 먼저 작동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영어로 representation, 번역하면 표상 혹은 재현체계, 즉 구조이다.
본디 의식이란 칸트 이래 인식론적인 전통에서 보면 무엇 무엇에 대한 의식이고, 그 의식은 반드시 표상체계 안에서 일어나는 의식이었다. 그것이 칸트에게는 ‘범주’로, 후설에게는 ‘선험적 의식’으로, 가다머에게는 ‘지평’으로 표현되는데, 이 말들에는 공히 우리의 의식에 앞서 어떤 재현체계가 먼저 선행됨이 깔려있다. 그 ‘선행한다!’는 말의 의미를 달리 표현해 ‘무의식적!’이라 불러도 어느 정도 무방하리라.
이를 종합하여 내가 전경에게 보인 반응을 판단하면, 나의 국가를 향한 말과 태도는 대한민국(이데올로기 장치)이라는 거대한 표상체계 안에서 드러나는 나의 무의식적 반응이라는 말인데. 결국, 알튀세에게 있어 인간 주체란 무의식적 체계를 통과한 이데올로기적 존재이고, 그 이데올로기는 신념과 지식의 차원이 아닌, 재현의 차원, 즉 구조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적인 비판이란 체계와 구조에 의해 자행되는 이데올로기적 신화화에 대한 비신화화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겠다. 
지젝 역시 라깡을 정치적으로 전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알튀세 계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젝은 알튀세를 넘어간다. 알튀세가 라깡의 초기이론 의지했다면, 지젝은 라깡의 후기이론을 차용하여 본인의 이데올로기론으로 나아간다. (이 부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다음 웹진부터 전개될 것이다) 

예고편: 지젝이 나를 아프게 하는 이유

살짝 짧게 다음 웹진 원고의 시놉시스를 공개한다. (내가) 헛소리 하지 않도록.
지젝에 있어 이데올로기 비판이란 맑스가 말하는 기만적인 허위의식에 대한 비판도 아니고, 알튀세가 지적하는 무의식의 구조화도 아니다. 이 말은 이데올로기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앎의 차원(인식론적 차원)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녕 이데올로기가 겨냥하는 것은 우리의 행위다. 우리는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왜, 우리는 다 알면서 그렇게 행위하지 않는가? 우리의 행위를 지배하는 그 매커니즘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SNS를 통하여, 페이스북 담벼락에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글을 몇 자 끄적이고, 또 다른 그런 류의 글들에 like 버튼을 힘껏 누르는 것으로 우리는 양심적 진보적 개혁적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명박과 박근혜식 논리와 정책을 허락하고 그들에게 한 표를 던진 우리들의 무의식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빛나는 계몽이성을 바탕으로 부단히 학습하고 갈고 닦고 조이면 밝혀질 것 같았던 이데올로기의 정체는 기실 우리의 무의식적 환상 너머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었고, 그것을 추동케하는 원리가 바로 욕망이며, 그 욕망에 맞춰 우리는 미친X 널뛰듯 춤을 추고 있다. 그 춤에 대한 연구가, 그 춤을 추게 하는 바람에 대한 연구가 바로 지젝식 이데올로기 비판인 셈이고, 그 비판을 통해 우리는 내 안에 도사린 무의식적 욕망과 섬뜩하게 대면한다. 하여 지젝을 읽는 것은 때때로 불편하고, 그래서 가끔은 아프다.  (다음 호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1. “The most elementary definition of ideology is probably the well-known phrase from Marx’s Capital: ‘Sie wissen das nicht, aber sie tun es’ – ‘they do not know it, but they are doing it’. The very concept of ideology implies a kind of basic, constitutive naivete.” – Zizek, Slavoj.,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New York: Verso, 1989), 28. [본문으로]
  2. “one knows the falsehood very well, one is well aware of a particular interest hidden behind an ideological universality, but still one does not renounce it.”-Ibid., 29 [본문으로]
  3. 익히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근대적 인간이란 의지적으로나 이성적으로 꽉 차있는 주체이고, 근대사회는 그 주체가 담지하고 있는 신념과 믿음에 대한 전적 신뢰와 희망에 의지했던 사회였다. 그렇다고 볼 때, 근대적 주체에 대한 딴지와 그 주체가 그려내는 사회와 역사에 대해 조소를 날렸던 맑스와 프로이트는 포스트모던을 열어젖힌 선구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실례로 20세 중반 이후 거세게 몰아친 포스트모던 백가쟁명이 거의 예외없이 맑스와 프로이트로부터 지적 세례를 받은 후예들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만 하다. 현대사상에서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간의 통섭과 간섭, 그리고 교차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문으로]
  4. Louis Althusser,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 trans. Ben Brewster,(New Yoor: Monthly Review, 1971), 218-219. [본문으로]
  5. 알튀세는 라깡의 초기이론(무의식의 구조화)을 받아들여 이데올로기를 무의식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그 무엇으로 보았다. 라깡의 초기 이론은 크게 거울단계와 상징계로 요약할 수 있다. 거울단계는 아이와 엄마 사이 형성되는 완벽한 2항 관계를 일컫는 말로, 아버지의 존재를 인식하기 전까지 지속된다. 이때 아이의 자기 동일성은 상상적 오인에 의존하고 있다. 상상계(거울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아이는 언어를 습득하면서 상징계로 진입하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의 사회화 과정을 의미한다. 아이는 상징계의 질서로 진입하면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대타자의 법과 규율과 관습을 받아들이고, 대타자가 제시하는 기표를 따라 살면서 드디어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렇게 성장한 주체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상징되는 큰 주체의 부름에 “예”라고 화답하는, 즉 대타자의 호명에 응답하는 주체인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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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밖의 정의

바울의 메시아적 정치론에 대한 짧은 소개서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몇 년 전 하바드 대학의 한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을 펴들고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무장해제되어 정의가 가지는 복잡함에 주눅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저자가 슬쩍 끼워 놓은 답안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공동체주의라는 살짝 매력적인 단어를 꺼내놓고 결국 정의의 실현을 국가 정치의 장으로 제한하고, 열린 토론에서 최선이나 차선의 선택이 바로 정의라고 하는 결론에 쉽게 수긍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저자는 그것이 자신의 완전하지 않은 의견이라고 밝히기는 하였다.)

물론 내용 중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었다. 종교적 가치가 정치정의를 논함에 분리되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하지만 종교적 가치가 갖는 편향성을 말하며 이내 화들짝 물러선다. ‘정의를 말함에 종교가 빠질 수 없다고는 하지만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말일까? 오히려 필자에게는 정의를 말함에 있어서 서양 종교의 뿌리가 된 유대교와 기독교를 논하지 않고는 서구 정치에서 정의를 말하기는 힘들다는 주장으로 들렸다. 근대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추구되어 오던 정교분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한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과연 종교, 또는 기독교가 우월한 인종주의나 전투적인 선교주의에 목숨을 거는 공동체만이 아니라 현대 정치사회에 대안이 되는 정치론이나 정의론을 생산할 수 있을까?

철학과 종교, 그리고 정치에 관한 담론들이 분리되기 이전에, 로마제국의 엄청난 패도 앞에 유대교의 한 지식인이 제국의 정의에 대항하여 새로운 정의를 외치며 나타났고, 그가 쓴 글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우리가 신약성서라고 부르고, 또한 그 안에 로마서라고 부르는, 바울이라는 쓴 사람이 쓴 서신. 바로 그 서신이 진정한 정의를 말하는 책이라고 테오도르 제닝스(Theodore W. Jennings Jr.) 교수는 말한다. 바로 이 글이 소개할 책, Outlaw Justice: The Messianic Politics of Paul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3)의 저자인 제닝스는 바울의 편지 중 하나인 로마서가 정의란 무엇이며 어떻게 구현해 낼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제닝스 교수는 바울 텍스트의 다양한 해석의 층위를 인정하면서도 정의론적 관점에서 읽는 것이 로마서를 바르게 접근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흔히 이신칭의(以信稱儀, justification by faith)라고 말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를 설파하는 교리적 근거로 사용되는 로마서가 제닝스 교수의 손에서 메시아에 대한 충성으로 구현하는 정의로 탈바꿈 되는 것이다.

바울 서신을 정치적 관점에서 읽는 것은 철학과 성서신학 내에 소위 트랜드를 형성하고 있다. 지젝, 바디우, 아감벤 등이 바울의 서신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고 있고, 탈식민주의나 맑스주의 성서신학자들도 새롭게 바울을 읽는다. 그 핵심에 메시아 정치학에 대한 담론이 있다. 서구 지식인들과 신학자들에게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바울 새롭게 읽기는 크게 두 가지 즉, 기독교신학 외적인 흐름과 신학 내적인 흐름이 있고, 제닝스 교수는 정확히 그 두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 책을 썼다. 그 두 흐름을 살펴보자.

기독교 내에서 오랜 세월동안 루터와 칼빈 식의 바울 서신 읽기는 개신교신학의 근거로서 받아들여졌고, 이후의 바울 신학의 역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칭함을 받는 사실성에 대한 연구와 논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과연 믿음으로 구원이 끝나는 것인가, 행함은 의미가 없는가, 율법적인 신앙은 의미가 없는가 등의 기독교가 인간 구원에 대한 단 하나의 유일한 대책이라는 식의 기독교 우월론을 생산하는 데 중요한 해석의 근거가 되어온 것이 바울 서신이었다. 정작 예수는 반()율법주의를 주장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이러한 해석은 필연적으로 반유대주의적 신학을 기독교에 불어 넣었다. 기독교는 율법적인 유대교를 뛰어넘는 고등종교이고 유교, 이슬람교, 불교 등도 이에 다르지 않다는, 그래서 오직 예수로만 구원받는다는 말이 바울에게서 힘을 얻게 된 것이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해석들을 극복하는 흐름들이 성서신학계에서 일어났다. 물론 아시아신학이나 민중신학에서 이미 있었던 흐름들이지만 서구사회는 2차 세계대전의 유대인들에 대한 대학살로부터 정신을 차린 이후에야 반유대주의적이고 종교우월주의적 해석에서 벗어나 바울 서신을 다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도출된 성과들은 다음과 같다. 바울은 유대교적 전통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 아니다. , 바울은 반유대적인 가치로 기독교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그토록 혹독하게 비판하는 율법적 신앙 또는 율법적 정의는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최근에 이르러서야 바울이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유대교가 아니라 로마제국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바울이 말하는 율법이라는 것은 모세의 율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법도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예수의 부활을 보고 이를 새로운 시대의 시작으로 보았고 그의 유대교적 전통에서 이를 새롭게 해석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는 작금의 경제 제국이 등장하는 시대에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신학 외적인 흐름에서 바울의 서신이 중요해진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자본주의의 끝도 없는 질주를 민주정치체제가 막아낼 수 없으리라는 의심이 확신이 되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레닌주의의 재조명이 이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자본주의 안에 살면서 자본의 힘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 어려운 질문에 레닌은 형식(form)이 내용(content)에 선행한다는, 당이 당의 정신과 목표보다 먼저라는, 다른 의미로 말하면, 새로운 비전이 먼저가 아니라 희망을 생산할 수 있는 형식(form), 집단, 또는 공동체의 창설이 먼저라는 해답을 내어 놓았다. 이에 착안해 루카치와 지젝은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하나의 당의 형태로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고 보았다. , 바울이 제국에 대한 대안적 정치학으로 새 정치를 생산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필생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것이 바로 에클레시아, 소위 현재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는 집단이었다.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만이 제국의 정치학을 벗어난 형태의 정치적 비전, 정의에 대한 인식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바울의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엥겔스와 맑스가 바울의 서신을 읽으면서 초기 공산당의 조직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바디우와 아감벤이 국민의 삶 자체를 통제하는 국가 형태에 유일한 탈출구를 바울에게서 찾는 것은 그래서 공감할 만하다.

이러한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제닝스 교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어거스틴부터 근대의 바르트, 현대의 지젝과 같은 철학자들과 브리짓드 칼과 같은 성서신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소개하며 로마서를 새롭게 읽어야 함을 제안한다. 아마 독자들은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예수를 여호수아로, (righteousness)를 정의(justice)로 읽는 독해에 놀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희랍어 번역이고, 예수는 아람어로써 히브리식 이름인 여호수아를 말하는 것으로, 약속의 땅으로 신민들을 이끌 지도자를 의미한다. 또한, ‘라는 표현은 영어식 번역의 오류이며 이보다는 정의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에 익숙해지면, 로마서야 말로 바울의 새로운 정의론이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론에서 제닝스는 바울의 시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바울해석의 역사와 정치론적 해석의 역사를 쉽고도 깊게 서술한다. 간단한 서론이 끝나면, 그야말로 로마서11절로부터 마지막까지 독자에게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며, 과연 새로운 정의와 그 정의에 기반을 둔 공동체가 어떤 것인가를 생생한 바울의 증언으로 들려준다. 제닝스의 글의 장점은 쉽다는 것인데, 그가 사용하는 일차자료들의 고급정보에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제닝스의 설명과 함께 새로운 정의의 공동체에 대한 바울의 신념을 듣다보면 로마서가 현대의 새 정치를 갈구하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외침임을 알게 된다.

그럼 도대체 정의가 무엇이냐고? 친절하게도 제닝스는 책의 제목에 이미 그 결론을 주고 있다. 첫째는 밖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으로, 또는 법치정치로 의롭다함을 받지 않는다는 뜻의 진의이다. 이른바 Law and Order, 법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만드는 질서의 정치는 결코 정의를 생산할 수 없다. 정치적 최선차선이 결코 정의라고 표현될 수 없는 이유다. 둘째로, ‘정의는 설명할 수 있고, 선택하는 무엇인가가 아니다. 그것은 정의를 살아내는 공동체가, 즉 메시아적 공동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그 공동체의 살아 숨쉼이 바로 정의이다. 이 공동체는 초법적인 기관이 아니다. 끊임없이 법과 인간의 정치로부터 소외되고 핍박받는 공동체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정의를 구현하는 공동체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공동체를 만들고, 이끌어가야 할까? 이 질문에 관심이 생긴다면 다시 한 번 로마서를 읽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바울이 일생을 통하여 하려고 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evangelism)이라기보다는 정의을 구현하는 공동체(planting the assembly embodying Justice)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예루살렘 교회와의 끝없는 불화 속에서도 곳곳에서 쏟아지는 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에서도 끊임없이 서신을 보내며 자신의 생각을 전하려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메시지를 듣는 오늘날의 교회들은 어떤 식으로 응답해야 할까? 이모든 해석의 가능성에 대한 눈뜨임이 제닝스의 법밖의 정의를 통해 한국에서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웹진 <제3시대>

* 편집자에 의해 원글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글이 다소 수정됐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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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살림이스트
    2013.06.02 20:0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매우 관심이 가고 유익한 강의가 있었군요.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 아쉽네요. 혹시 강의 영상이나 자료를 구할 수 있을런지요...

 

최근 차별금지법안이 다시 국회에 제출되자 한기총을 위시한 개신교 우파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대 운동이 전개되었고, 결국 야당 의원들이 법안 발의를 철회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개신교 우파의 차별금지법안 반대운동의중심에는 종교 및 동성애 항목이 차별금지법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존재합니다. 본 연구소의 이번 제162차 월례포럼은 한국 개신교 우파의 동성애자 반대 운동이 갖는 성(性) 정치학적 의미를 살피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포럼 취지_

'후기-과대남성적 개발주의'(post-hypermasculine developmentalism) 시대의 도래와 1990년대 말 경제 악화는 '헤게모닉 남성성' (hegemonic masculinity)에 대한 다양한 반응과 저항을 생산해냈다. 동성애자는 이러한 헤게모닉 남성성을 위기에 빠뜨리는 하나의 상징적인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개신교 우파가 그토록 동성애자에 대해 증오하고 공격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러한 헤게모닉 남성성의 도전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만약 헤게모닉 남성성이 위기에 빠지게 된다면, 한국 개신교의 신앙적 기조의 하나인 성별(gender) 위계질서가 바닥부터 흔들릴 수 있고, 나아가 이것은 성(性)을 통제함으로써 구축되었던 한국 개신교 체제 전체를 내파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포럼은 바로 이와 같이 한국 개신교 우파의 동성애 반대 운동에 담겨 있는 성 정치학적 의미를 다루고자 한다.   
 

발표자_김나미(미국 스펠만대학교 교수. 철학/종교학)

일시_2013.5.27.(월) 오후 7:30~9:30

장소_ 안병무홀(한백교회당)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1번과 2번 출구. 두 출구 사이 골목 50미터, 좌측 건물의 1층)
문의_ 02-363-9190, 010-4944-2019(정용택 연구원), 010-3043-5058(유승태 연구원), 3era@daum.net

참가비_ 3천원(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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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취지_

18대 대선 이전의 박근혜는 ‘스타 정치인’, ‘선거의 여왕’, ‘독보적인 대통령 후보’라는 타이틀을 교체해 온 노련한 정치인이다. 여성정치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정치적 기반을 넓게 구축한 그는, 여성정치를 기획하는 여성엘리트들에게는, 여성정치세력화의 디딤돌이 될지 걸림돌이 될지 늘 의문거리였다. 설령 여성에게 디딤돌이 된다 할지라도 그와 연대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성엘리트 진영 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의 과거사 이력 때문이다. 박근혜에게 ‘박정희의 딸’ 혹은 ‘유신의 조력자’라는 표상은 그의 정치 입문(1998)을 도운 ‘날개’였지만, 대선(2012)에 도전하는 그에게는 절대 풀릴 것 같지 않은 ‘족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족쇄에서 빠져나와 그는 ‘여성’대통령이라는 날개를 달았다.
누가 그에게 여성대표성의 날개를 달아주었는가? 이 글은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이 물음은 여성정치세력화를 추진하던 여성들이 지난 10년 동안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지지여부를 두고 벌인 논쟁을 규명하는 작업과 맞닿아있다.
-2002년에 느닷없이 시작된 박근혜 지지론과 박근혜 불가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형성된 박근혜의 이미지와 이 논쟁이 한국의 여성정치 담론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를 다룬다.
- 18대 대선 당시 보수와 진보 진영의 논객들이 어떠한 논리로 박근혜에게 여성대표라는 날개를 달아주었는지를 밝힌다. 특히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슬로건과 박근혜의 여성기호를 둘러싼 성(sex/gender)논쟁을 조망하면서 정권획득을 욕망하는 남성들과 여성정치를 기획하는 여성엘리트들이 박근혜의 여성기표를 각각 어떤 방식으로 담론화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논쟁이 여성정치 담론의 공간에 미친 효과는 무엇인지를 규명할 것이다.
- 여성대통령 시대의 여성정치세력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하며, 여성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한국교회의 여성주의 리더십과 관련하여 살펴본다.  
 

발표자_ 이숙진 (성공회대 연구교수)

일시_2013.5.1 (수) 오후 7:30~9:30

장소_ 안병무홀(한백교회당)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1번과 2번 출구. 두 출구 사이 골목 50미터, 좌측 건물의 1층)
문의_ 02-363-9190, 010-4944-2019(정용택 연구원), 010-3043-5058(유승태 연구원), 3era@daum.net
참가비_ 3천원(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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