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의 질병’과 한국교회

- 교회세습 현상을 중심으로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현상―교회세습방지법안 파동

지난 9월 12일, 한국 개신교 최대교단의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예장통합) 교단총회에서 교회세습방지법안(방지법안)이 통과되었다. 지난해에는 세 번째로 큰 교단인 감리교단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었고,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파(예장고신)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도 올해 교단총회에서 통과될 것이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올해 안에 개신교의 4개 주요 교단에서 교회세습을 방지하는 교단법이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가 7월 3일에 발표한 한국 개신교의 교회세습 현황 조사에 따르면, 62개 교회가 교회세습을 실행에 옮겼고, 22개 교회가 추진 중에 있다. 한데 위의 네 교단 모두 교회세습을 실행한/할 교회가 있다. 특히 감리교단의 경우 국내의 모든 교단들 가운데 세습이 가장 심각한 교단이며,[각주:1] 예장통합 교단에서도 많은 교회들이 세습을 단행했다. 그러니 4개 교단에서 방지법안을 통과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대형교회들의 교회세습 비율이 중소형 교회들보다 훨씬 많았다. 대형교회(mega-church)란 일요일 대예배에 참석한 성인교인의 수가 2천 명 이상인 교회를 가리킨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부설 교회성장연구소가 2008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에서 대형교회는 전체 교회의 1.7%에 이른다.[각주:2] 한데 세습을 단행했거나 추진 중인 84개 교회 중 대형교회의 비율은 대략 20%나 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교회세습 현상은 대형교회에서 훨씬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습교회을 단행한 62개 교회의 담임목사 중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이가 4명, 교단총회장 출신이 14명, 감리교단 감독 출신이 10명이다. 물론 이들이 시무하는 교회들은 대개 대형교회다. 요컨대 교회세습을 단행한 대형교회 담임목사들은 교회의 크기를 무기로 해서 교단정치나 교단간 정치에 적극 관여했고,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들임을 의미한다.
그러니 대형교회는 법안 표결에서 단지 한 표의 효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교단 재정의 상당부분을 맡고 있는데다, 많은 교단행사의 주요 스폰서가 되고 있으며, 무수한 중소형 교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교회이고 실제로 많은 교회들과 교단신학교의 직접적인 후원자이기도 하다. 또 규모를 중요시해온 한국 개신교 풍토에서 대형교회는 그 교단의 자부심이자 얼굴이기도 하다. 만약 일부 대형교회가 교회세습방지법안으로 인해 그 교단을 탈퇴하고 다른 교단으로 가버린다면 이는 그 교단으로선 그야말로 대형사건이다.
하여 위의 4개 교단에서 몇몇 대형교회들이 실행에 옮기고 있는 교회세습에 반대결의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들 교단들이 교단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는 위험스런 법안을 상정하고 통과시키게 된/될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교회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탓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개신교 교세는 감소세에 들어섰고 2020년에는 현재의 절반수준으로 줄어들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절대 다수의 총회 대의원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겠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교단들은 방지법안을 상정도 못하고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은 무엇보다도 대형교회들 때문이다. 교회세습을 단행했거나 추진 중에 있는 교회들의 수인 84개는 전체 교회의 0.1%에 지나지 않는다. 그중 대형교회는 전체의 0.025%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0.025%가 4개 교단을 제외한 대다수 교단들에서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의 90% 가까운 지지를 받는 방지법안을 상정조차도 못하게 하는 현상, 이것이 오늘 한국 개신교의 자화상이다.

 

진단―포스트 근대화를 둘러싼 갈등

그렇다면 우리는 대형교회 자체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한 가지 주지할 것은 목사들이 자식이나 사위에게 교회세습을 할 의도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현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생각을 관철시킬 능력이 받쳐주어야 가능하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성서의 뒷받침을 받을 수도 없고 외국의 사례들도 없는 세습을 실행에 옮길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럴 권력도 갖고 있지도 못하다.
반면 대형교회들은 사정이 다르다. 대형교회 현상은 최근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1960년대 이후 미국과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미국에는 현재 1,200~1,500개 정도가 있고, 한국에도 1,000개에 육박하는 대형교회들이 있다. 한데 한국과 미국에서, 그리고 최근 여러 나라들에서 출현한 대형교회들의 공통된 특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카리스마적 목회자의 존재다. 그이는 교회의 모든 권력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일종의 독재자형 지도자다. 한데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지속시간은 대개 짧은 편인데, 예외적으로 이들 목회자들은 20년 이상 한 교회에서 카리스마적 권력을 지속시켰다. 하여 그이들이 자신의 카리스마적 능력으로 교인들 전체를 교회 성장에 몰두하도로 장기간 이끈 결과 대형교회를 탄생시킨 것이다.
한데 한국만의 특기할 현상은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왔던 독재자형 목회자들이 은퇴 시기가 되었을 때 권력의 세습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그 은퇴의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해서 요즘 교회세습이 특히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런 권력세습 양상은 한국 근대화의 특징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한국 근대화의 독특한 점은 성장이 빠르게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성장이 불꽃을 일으켰던 중심 영역들에는 강력한 카리스마적 통치자가 존재했다. 그이가 모든 권력 자원을 자신에게 집중시킴으로써, 그이는 모든 구성원들 위에 군림하여 그들로 하여금 성장에 매진하도록 이끈 장본인이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박정희다. 그는 세계 최빈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초고속 상승하는 국가성장의 상징이다. 또한 기업도 같은 시기에 같은 양식으로 압축적 성장을 이룩했다. 한데 재벌이라는 독특한 기업구조가 기업 성장의 중심에 있으며, 그것은 1인의 전제적 독재자에 의해 통제되는 기업군을 의미한다. 물론 교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의 상징적 존재들은 장기간 권력의 독점자들로 군림했다. 그들은, 설득의 리더십이 아닌, 일방 선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보였다. 한데 그들이 도모했던 장기간 계속된 권력집중의 욕구는 정치영역에서는 민주화로 해체되는 듯했다. 하지만 1997년을 계기로 박정희는 담론의 장으로 재림했다.[각주:3] 그리고 재림한 박정희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권력을 세습했다. 이것은 매우 기독교적 신화를 닮았다. 정통주의적 기독교 신학에서 신격화된, 하여 독재자처럼 군림하는 예수가 ‘영’의 형식, 곧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권력의 화신(化神)으로 존속하다가 오늘의 독재자형 목사들의 머리 위에 덧입혀짐으로써 독재자형 권력이 물리적 세계의 공간으로 육화(肉化)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여 정치 영역에서 한국 근대 특유의 권력 독점화, 전제적 독재체제의 양식은 해체되지 않고 다시 재현되었다. 그 사이에 권력세습 현상이 있다. 한편 재벌의 경우는 권력세습이 거의 안정화된 듯이 보인다. TV 드라마 같은 데서조차 자본세습은 당연한 것처럼 다뤄지기까지 한다. 이미 사람들은 일상에서 별다른 거부감 없이 재벌들의 권력세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데 한국 근대화의 대표적 승자들 가운데 교회, 특히 대형교회는 세습이 난관에 봉착하였다. 왜 유독 교회가 그런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을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회가 교회 외부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 탓이다. 즉 배타성으로 인해 이웃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사람들이 더 이상 교회의 적대적 언행을 좌시하지 않게 되었고, 그런 참에 교회세습이라는 권력세습에 비난의 화살을 퍼붓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압축 성장과 동일시되어 인식되던 근대화가 성장이 거의 멈추게 되면서 새로운 제도를 추구하려는 일련의 갈등 과정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곧 근대화 이후, 포스트근대를 어떻게 제도화할지를 두고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는 가운데, 국가는 권력독점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재권위주의화하고 있고, 재벌기업은 그런 권위주의의 영속화 과정에 있다면, 교회는 권위주의의 부정적 요소가 폭발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중에, 교회세습방지법안을 둘러싼 갈등 정국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안―작은교회를 꿈꾸다

그렇다면 교회세습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교회가 한국 근대화의 권위주의를 둘러싼 청산 논쟁의 한 단면이다. 한데 대형교회가 더 권력 집중적 신앙제도이며, 그런 점에서 교회세습의 욕망에 더 쉽게 사로잡힐 수 있고 그렇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한국 근대성의 문제점, 그 근대성이 낳은 질병들의 청산을 상상하는 지금 대형교회는 그 자체가 반동적 역사의 실체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대형교회가 대안을 상상하는 데 장애물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무수한 중소형교회들이 그런 대형교회를 꿈꾸는 한, 그런 교회들도 근대의 질병을 극복하는 포스트근대의 가능성을 열어주지 못한다.
한데 최근 ‘작은교회’ 담론이 개신교 일각에서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때 ‘작은교회’는 성장지상주의를 청산하는 교회를 말한다. 거기에는 대형교회가 출현하고 전개되는 과정에서 수반되었던 카리스마적이고 전제적인 목사의 권력중심주의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고, 그러한 마초적 남성중심주의를 지양하는, 대화적이고 공감 지향적인 교회에 대한 비전도 담겨 있다. 이런 작은교회 담론에 기반을 두고, 오는 10월 19일 ‘작은교회의 박람회’가 개최될 예정에 있다. 이 행사의 다음 모토는 이러한 문제의식과 비전을 잘 담아내고 있다. 즉 ‘탈성장, 탈성직, 탈성별’, 이것이 작은교회가 꿈꾸는 교회상이다. 아마도 한국 근대화의 과정에서 교회가 급성장하면서 내포했던 근대성의 질병인 ‘독재적 권력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교회에 아직 남아 있다면, 그 주역은 대형교회가 아니라 ‘작은교회’일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예장통합과 함께 국내 최대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예장합동)과 감리교단에는 각각 17개 교회가 세습을 이미 실행에 옮겼다. 하여 교회세습을 이미 단행한 62개 교회 중 이 두 교단에 속한 교회의 비율이 55%에 이른다. 한데 이중 예장합동은 교회세습방지법안이 상정되지도 않았다. [본문으로]
  2. 같은 해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개신교 교회 총수는 58,612개다. 그렇다면 약 996개가 대형교회라는 추산치가 나온다. [본문으로]
  3. 이에 대하여는 나의 글 「메시아주의, 한국 정치의 어떤 열망」, 김상봉, 이택광 외, 『당신들의 대통령. 선출된 왕과 민주주의, 그 이후』 (문주, 2012)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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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4]

바울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바울신학의 새관점 - 제임스 던(James Dunn)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E. P. 샌더스, 제임스 던, 그리고 바울신학의 새관점

    지난번 글에서 E. P. 샌더스 (E. P. Sanders)를 다룸으로써 이른바 뉴퍼스팩티브를 논하기 위한 대략적인 밑그림이 그려졌다. 이번 글에서는 뉴 퍼스팩티브(The New Perspective)라는 신조어를 만들었고, 샌더스의 연구결과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바울신학을 새로쓴 제임스 던(James Dunn)의 주장에 대해 살펴보면서 그의 연구가 바울 신학계에 의미하는 바를 이야기해 볼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계약적 율법주의’(언약적 율법주의)와 ‘뉴 퍼스펙티브’라는 두 용어를 정의해야 한다. 뉴 퍼스펙티브란 ‘새 관점’이란 뜻이다. 던이 자신의 바울에 대한 연구를 새 관점이라고 명명하고, 그 이전의 연구를 ‘올드 퍼스펙티브’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연구를 그 이전과 구분하였는데, 여기에서 ‘새관점’이란 던의 의도를 담은 하나의 표현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던이 샌더스의 연구 결과에서부터 바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에 계약적 율법주의는 바울 신학의 새관점과 연관을 맺게 되는데, 쉽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던은 샌더스가 제2성전기 유대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고 말한다.[각주:1] 이는 계약적 율법주의란 것으로 요약될 것이다. 던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샌더스 이전까지 바울은 유대주의의 율법의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율법주의가 예수를 통한 복음에 배치된다고 생각했고, 유대주의와 등을 지고 기독교의 시대를 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자체가 그 당시 유대주의의 율법관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도대체 바울이 예수의 복음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샌더스의 바울에 대한 결론은 간단하다. 그냥 다르다는 것이다. 바울의 하나님이 유대교의 하나님인 것은 맞으나, 바울은 예수를 만난 후 새로운 구원론, 즉 새로운 종교적 가능성에 눈을 떳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바울에게 율법은 큰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이미 ‘다른 세계’로 들어갔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율법은 더이상 큰 의미가 없어졌고, 어쩌면 새로운 구원의 가능성을 위해 던져버려야만 하는 것이었을 것이라 샌더스는 생각했다. 던은 자신이 샌더스의 대답에 만족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각주:2] 필자도 샌더스가 종횡무진 당시의 고수들을 누르면서 논리를 전개할 때에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가 마지막 바울의 장에서 ‘그저 바울과 유대주의는 구원에 있어서 다른 생각일 뿐’ 이라고 했을 때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던은 자신만의 대답을 찾아보기로 한다.[각주:3] 그 연구의 결론에  ‘뉴 퍼스펙티브 온 바울’(New Perspective on Paul)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계약적 율법주의와 바울에 대한 새관점은 같은 말이 아니다. 계약적 율법주의로 대표되는 제2성전기 유대주의의 관점에서 탄생한 바울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바로 “뉴퍼스펙티브 온 바울”이며 첫 시작은 제임슨 던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와 비슷한 관점을 유지하면서 파생된 여러 학자들의 담론들을 이후에 묶어 NPP, 바울의 대한 새관점(The New Perspective on Paul)이라 하고 학계에 통용되게 된 것이다.

    바울 신학에 대한 새관점

    그럼 던의 생각은 무엇일까? 효과적으로 던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바울 연구에서 기본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을 살펴보면서 던의 입장을 정리해 보도록 하자. 미리 말한다면 던의 입장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아니, 바울학자들의 관점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들의 연구는 엄청 복잡하기도 한데, 그 이유는 바울의 서신들에 나타나는 양립불가능해 보이는 바울의 언술들이 자신들의 결론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석적 작업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 대부분 그들의 저서들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결론들을 가지고 같은 문서를 읽으며 자신들이 맞다는 것을 서로 논증하니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필자는 여기서 그러한 논증의 흐름을 소개할 생각은 없다. ‘바울의 율법관’을 알기 위해 그에 대한 책을 수십권(정말로 읽어야 할 책은 수백권이 넘는다.)을 읽으며 정신줄을 놓기보다는 먼저 텍스트를 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당시의 배경자료를 습득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 다음 학자들의 저서들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던의 연구 또한 그 결론은 복잡하지 않다. 던의 여러 저서들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자신의 결론을 바울의 서신을 통해 증명하기 위해 쓰여졌다. 이제 바울연구의 기본적 이슈들로부터 시작하여 던의 생각을 알아보자.

    바울은 누구였는가?[각주:4]
    바울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면, 당연히 바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성경을 통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운이 좋게도 우리에겐 바울이 직접 기록했다고 믿어지는 7편의 편지(데살로니가 전서, 갈라디아서, 빌레몬서, 빌립보서, 로마서, 고린도 전후서)가 있다. 게다가 사도행전에서도 바울에 대한 기록들이 있다. 이를 통해 바울에 접근해 가다보면 사도행전의 바울의 모습과 바울이 쓴 서신들의 모습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먼저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7장의 스테반의 순교장면에 등장했다가, 9장에서 예수의 제자들을 죽이기 위해 다메섹을 향하다 거꾸러진다(보통은 바울의 개종으로 소개되는 장면).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바나바의 중재를 통해 예수를 만났음을 알리고 예수의 제자들과 함께 지내며 복음을 선포하다가 다소로 간다. 11장에서 안디옥에 생긴 교회로 바나바가 가게 되고 안디옥 교회를 돕기 위해 다소로 가 바울을 찾아서 안디옥으로 가게 된다. 13장으로 넘어가면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예언자이자 선생으로 소개된다. 비로서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에 의해서 함께 복음전도자로 파송받게 된다. 누가복음의 속편인 사도행전의 바울의 모습을 보면 ‘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땅(로마)’을 향해 전진하는 사도들의 행진에서 바울이 로마로 복음을 가져가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비록 사도라는 칭호로 바울을 불러주지는 않지만). 바울은 예수를 만난 이후 예루살렘 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그들에게서 배우고 훈련받고, 마치 신학교의 신학생처럼, 전도자로 파송된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직접 말하는 그의 이야기는 이와는 매우 다르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급작스럽게 ‘다른 복음’에 정신이 팔린 교회에 사자후를 토하면서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받은 복음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한 것이며 누구를 통해 얻은 것도 아니라고 강조한다(갈 1:11). 자신이 과거에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지만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자신(안에 또는 에게 - 헬라어 ‘엔’의 뜻이다.) 나타내 보이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울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예수의 제자들)에게 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간다. 아라비아에서 무엇을 하였는지 알 수 있는 아무런 단서도 없다. 그곳에 얼마나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바울은 다메섹으로 왔다가 3년 후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만나 15일을 지낸다. 바울은 이때 베드로 이외에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갈 1:19). 그 후, 바울은 전도여행을 떠난다.
    이 완전히 다르다면 다른 두 가지 바울의 전도여행 이전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부분의 바울 학자들은 바울이 직접 기록한 부분에 신빙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두가지 질문이 생긴다. 왜 사도행전 기자는 예루살렘교회에 충실한 바울의 모습을, 그것이 실제와 다르며 바울의 서신에도 나와있는 바울의 기록과는 다르게, 그려내고 있을까? 이 질문에 있어서 바울에 대한 새관점이든 그 이전이든 학자들간에 동의가 있는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적 기독교와 헬라세계를 중심으로 한 헬라적 기독교가 서로 어느 정도 긴장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각주:5] 그렇게 본다면 이후 헬라적 기독교의 중심 인물이 된 바울(신약성서의 반 정도에 바울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바울의 교회가 그의 사후 예루살렘 교회와 대등한 주도권을 가지게 된 것을 알 수 있다.)을 어떤 형식으로든 교회의 연속적인 역사에 맞추어 기록할 필요가 사도행전의 저자에게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도행전의 모습에서 벗어나 갈라디아서의 바울을 보면 그야말로 겁없는 한 사람을 볼 수 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는 실제 생전의 예수와 함께 생활했고 그의 육성을 들은 예수의 실제 형제(주의 형제 야고보)와 직계 제자(이후 사도로 명명됨)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아라비아로 발 길을 돌리는,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는 한 남자의 모습이 있다. 어떤 결론을 얻었는지는 바울이 남긴 편지들을 보고 유추할 수 있을 뿐이나, 아라비아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간 바울은 베드로를 만나 15일간의 길고긴 만남을 갖는다. 그리고 홀연히 여행을 떠난다. 이방인, 또는 헬라인들에게, 또는 유대인이라 불리우는 사람들 이외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리고 14년 후, 예루살렘에 다시 바울은 모습을 나타낸다(갈 2:1). 이번에는 우에는 바나바, 좌에는 디도를 끼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담판을 짓기 위해서이다. 바로 그의 이방인 전도를 정식으로 승인받기 위해서였다(갈 2:2). 할례를 받지 않은 디도를 데리고 바울은 예루살렘의 기둥들(주의 형제 야고보, 베드로, 그리고 요한)에게 예수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유효함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오로지 하나의 조건을 걸고,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자유로이 전할 것을 약속한다 (갈 2:9). 그 조건은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보내는 것으로 약속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예수의 복음에 대한 단 하나의 조건, 잊어버리면 복음이 아닌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해서는 이 연재의 마지막 부분쯤이 될 것이다.)
    급박한 협정이 끝나고 긴장이 사라져갈 무렵, 예루살렘과 바울사이에 파국을 일으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안디옥으로 바울을 만나러 온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당도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 황급히 식사를 내려놓고 물러선 것이다(유대인들은 음식에 대한 엄격한 규율이 있기 때문에 이를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과 식사하는 것은 부정해지는 것을 뜻한다.) 갈라디아서 2장 11-14절을 보면 바울이 베드로를 앞에 두고 꾸짖었고, 격렬한 논쟁 끝에 바울과 함께 있던 바나바까지 베드로의 편을 들어주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바울이 그들에게 보내는 언사는 간단하다. “이 위선자들아!” 그리고 바울은 그 유명한 갈라디어서 2장 하반부에서 ‘이신칭의’, 즉 믿음으로 얻는 의에 대해 말하면서 율법의 행함(The works of Law)를 통렬히 비판한다. 던이 그의 바울신학의 닻을 힘차게 내린 지점이 바로 루터가 발견했던 갈라디아서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던은 그 이전에 바울에게 일어났던 일을 이신칭의의 콘텍스트로 봄으로 루터와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율법의 행함 - 유대인들의 아이덴티티 마커
    던은 샌더스의 계약적 율법주의를 받아들임으로 공로를 통해 얻는 구원관의 입장이 당시 유대주의의 생각이 아니었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주의를 비판하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무엇이 바울에게 이른바 ‘율법주의’ 또는 ‘공로주의’를 떠올리게 하였을까? 던은 바로 갈라디아서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고 생각했다. 바울에게 오로지 하나의 조건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라’라는 조건만을 걸었던 사도들이 펄쩍 뛰었고, 바울과 그 옛날 15일을 함께 지내며 이 후 바울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었던 베드로까지 물러나게 만든 것. 유대인들의 정결법전, 바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표식: 할례, 음식법, 안식일에 대한 준수에 대해서는 끝내 양보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울은 바로 여기에 복음의 정체성을 걸어 버린다. “만약에 의가 율법을 통하여 온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된 것입니다!” (갈 2:21) 무엇이 바울에게 할례를 받는 것은 의롭게 됨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더 나아가 할례를 받는 순간 그리스도를 헛되게 하는 것이라고 (갈 5) 말하게 할까? 던은 바울 당시의 유대사회와 바울서신의 긴밀한 읽기를 통해 당시 유대사회에는 유대인들과 타민족들을 나누는 아이덴티티 마커라는 것이 존재했었다고 말한다.[각주:6] 당시의 헬레니즘 사회에 살았던 헬레닉 유대인들은 본토 유대인들보다 율법에 대한 이해가 휠씬 느슨했으며 점점 헬라제국과 로마제국의 영향아래 흡수되어 가는 유대민족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기 위해 세가지 표식들이 유행했는데 이것이 타민족들에게도 유대인임을 알게 하는 눈의 띄는 하나의 표식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식은 자연스럽게 유대인들의 종교적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것이 되었고, 그들의 신앙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유대사회를 지배했다는 것이다. 던은 이를 마카비서등의 성서 외적 자료들과 신약성서내의 증거들을 통해 재구성해 내었다. 샌더스가 ‘계약적 율법주의’를 말했다면, 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유대인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아이덴티티 마커로서 세가지의 율법을 행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유대종교를 자신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여러 이방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에게서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아이덴티티 마커’를 가지는 것이 유행하였는데, 할례를 받고, 음식법을 지키고,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으로 그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로마의 다신교 사회 안에서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덴티티 마커가 당시 바울의 복음을 받은 이방인들에게도 예루살렘 교회나 다른 유대 전도자들을 통해 들어왔으며 바울은 이에 격렬하게 응대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던의 생각이다.
    아이덴티티 마커가 나쁜 것이 아니다.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니다. 아이덴티티 마커를 받아들이고 행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복음의 의미를 없애버린다는 것이 바울의 결론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커들을 행함을 강조하는 것은 복음에 대치되며 필연적으로 복음의 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던이 보기에는 바울이 그토록 눈을 부릅뜨고 반응했던 것은 유대교의 율법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아이덴티티 마커 (할례, 음식법, 안식일)를 통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가지고 있었던 ‘민족적 우월감’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에게 오로지 예수를 통해 드러나 완전한 하나님의 의에 대한 신념을 바울은 굽히지 않았고 ‘율법의 행함’에 대한 바울의 공격은 민족적 우월의식이 가지는 종교적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인 공동체로 나가기 위해 바울이 해야만 했던 것이었다.
    던의 이러한 시각으로 모든 바울 서신에 나오는 바울의 입장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의 바울이 가진 율법에 대한 입장이 다르고, 그것은 다른 서신들도 마찬가지므로, 던은 이후 연구를 통해 끊임없이 보충하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입장이 바울의 가장 기본적인 시각이었음을 역설하였다. 이는 이후 새관점 진영에서도 여러 다른 의견들이 나오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나 샌더스의 연구를 더욱 끌고가서 바울의 서신을 읽음으로 이전에 발견할 수 없었던 바울의 모습과 더 나아가 바울의 복음을 새로운 지평을 볼 수 있었다는 것에 있어서 던의 연구는 바울학계에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다.

    끝없는 논쟁속에서

    필자가 느낀 미국의 성서학의 분위기는 워낙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기는 하지만, 보수와 진보간에, 또는 복음주의와 진보적 성서학간에 암묵적인 동의가 존재한다. 그들은 정말 필요하지 않는한 서로를 논쟁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특정한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경우는 있지만 서로의 학문적 분야에 대해서는 거리를 둔다. 그런면에서 던만큼 보수 복음주의적 성서학자들의 포격대상이 된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던의 바울의 새관점에 대한 저작들과 로마서 주석들이 나온이후로 던의 생각이 수많은 비판과 논쟁의 대상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필자가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바울학자들간의 거대한 동의가- 하등한 율법주의를 넘어서는 보편적 구원으로서의 기독교- 샌더스의 연구를 통해 금이 가기 시작하여 던에 와서 바울이 공격하는 율법주의를 바울의 콘텍스트에서 읽음으로 걷잡을 수 없이 균열이 가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복음주의진영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필자는, 던 자신 또한 강조했듯이, 바울의 보편적인 구원관의 가능성을 던이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던이 강조하고자 한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유대주의의 율법주의가 아니라 민족적 우월주의 또는 분리주의에 대한 바울의 적대감이 바울을 때로는 반율법주의 또는 반유대주의로 보여지게 만든 이유였으며 이러한 새로운 시각을 통해 우리는 바울의 복음이 현세계에 말하고자 하는 긴박한 목소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세계의 여러 민족간에, 문화간에, 또는 어떠한 고정된 신념체계간에 갈등에 대해 바울이 내고 있는 복음의 메시지는 일견 분명한 것인데, 그 어떤 분리나 분파적인 성향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복음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참여와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다시 태어남만이 중요하고, 그 안에서 그 어떤 위계질서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각주:7]
    그러나 한편으로 던의 한계 또한 분명한데, 첫째는 아이덴티티 마커에 대한 유대기독교의 입장에 대한 바울의 비판을 명확하게 감지해 내면서도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 되풀이 되는 기독교 자신의 아이덴티티 마커 쌓기에 대한 이렇다할 비판을 바울을 통해 찾아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그러다보니 오히려 바울의 서신에 나오는 세례등의 예식이 아이덴티티 마커를 뛰어넘는 혁명적인 것임을 당시에 유대교와의 콘텍스트에서 만이 아니라 현재에서도 논증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어쩌면 바울이 비판한 입장에서 다시 시작하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던이 이러한 성향을 가지게 된 이유는 필자가 보기에는, 첫번째로 그가 기독교 성서학자로서의 종래의 한계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고 (새관점을 제외하고는 그의 성서에 대한 입장이나 신학적 입장은 그리 새롭지 않다.) 두번째, 계속되는 논쟁속에서 그의 관점을 계속 설득력있게 주장하는데만 지나친 시간을 할해 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신학계에서 던의 위치는 샌더스와 함께 참으로 중요하다 할 것이다.

 

    바울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불트만을 통해 신약성서신학이 실존주의신학과 기막힌 하모니를 이루면서 인문학적 담론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시대가 가고 난 이후, 성서학은 분과학문의 위치를 넘지 못하고 여러 신학적 담론을 지지하는 구절들을 생산하거나, 역사비평학을 통해 종교적 정체성을 제공하거나, 현대교회의 여러 운동들에 대한 신학적 증거를 제공하거나, 교회의 신앙 체계에 대한 이슈들의 논쟁들로 점철되어 왔다. 그러는 와중에 한국의 민중신학이나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계에서는 자신들의 신학적 중심으로 성서의 위치를 자리매김하면서 성서의 힘을 다시금 보여주었고, 다양한 콘텍스트 안에서 성서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해석으로 나타나는지 증명해 주었다. 어찌 보면 바울신학 조차도 현실의 콘텍스트와 동떨어져 흘러온 적이 없었다. 길고긴 위정자들을 위한 나팔수였던 전통적 성서학이후에 독일의 관념론을 통한 기독교 우월주의의 교과서에서 구조주의의 영향아래 샌더스를 통해 유대주의와 바울서신이 분리되고, 민족적 갈등과 종교적 갈등이 극에 달한 시대에 던에 의해 분리와 분파주의를 깨치고 헤쳐 모이는 선포의 목소리가 된것은 우연한 결과가 아닐 것이다. 던 또한 가장 충실한 주석학자였으나, 어떻게 역사의 흐름과 세계의 콘텍스트가 바울신학의 주요주제가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바울서신이 루터 신학에 경도된 감옥에서 (루터가 틀렸다는 것을 강조함이 아니라 복음서와는 달리 너무 오랫동안 바울서신을 하나의 목소리에 가두어 둔것을 말함) 벗어났을 때, 여성차별론자, 기독교 우월론자, 독재자, 정치적 순응주의자 (롬 13)인 바울이 상상치 못한 방법으로 현재의 우리 삶에 적용될 수 있는지 보여준 예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필자는 이후의 필자의 바울신학에 대한 글이 바울의 율법관이나 구원관에 대한 글이 아니라 바울신학이 현재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관한 것임을 밝히고 싶다. 바울의 새관점은 그 학문적 결과물을 차지하고서라도 바울을 묶고 있던 사슬을 끊어내고 바울 서신이 스스로 현재에서 울러퍼질 수 있게 한 좋은 하나의 예이자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 웹진 <제3시대>

 

 

  1. James D. G Dunn, The New Perspective on Paul (Grand Rapid, Mich.: W.B. Eerdmans Pub. Co., 2008), 5. [본문으로]
  2. Ibid., 7. 던은 샌더스의 바울이해가 결국 종래의 프로테스탄트적 바울이해와 그리 다르지 않음을 지적한다. 샌더스는 유대주의에 대해서는 새관점을 제공했지만 바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3. The Cambridge Companion to St. Paul (Princeton, N.J.: Recording for the Blind & Dyslexic, 2004), 10. 던은 그의 여러 저서에서 그의 연구의 출발점이 바울이 타겟으로 삼고 있는 공격대상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본문으로]
  4. James D. G Dunn, 김철, and 채천석, 로마서 (상) (서울시: 솔로몬, 2003), 49–56. 제임스 던의 저서중 새관점에 대한 필자가 사용하는 저서들은 한국에 번역본으로 나와있다. 간단한 바울에 대한 소개로 WBC 주석 시리즈의 로마서(상)의 부분을 참조하라. 필자는 바울의 서신을 바탕으로 제임스의 던의 생각을 재구성해보았다. [본문으로]
  5. 필자는 이 두 교회를 명확하게 나누고 연구를 진행하는 것에는 이견을 가지고 있다. 이 후 이러한 구분은 유대적 기독교, 유대적 배경의 헬라적 기독교, 헬라적 배경의 유대 기독교등으로 복합하게 나누어지게 된다. 마치 코리언 어메리컨 한 명을 데려와 어디까지가 어메리컨이고 어디까지가 코리언인지를 논쟁하는 것 만큼 어렵고도 애매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초대 교회를 이런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있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6. Dunn, The New Perspective on Paul, 9–10. [본문으로]
  7. Ibid., 35–36. 던은 그의 저서에서 그의 바울읽기가 바울의 콘텍스트에서 그의 서신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 상황안에서 바울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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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촘촘하게 사로잡힌 한 해 동안의 여정에서도 일상은 계속되어야 한다. 사내아이들의 투박한 놀이와 연인의 다정한 손길, 누군가의 유머로서 삶은 지속된다, 되어야 한다.

 

 

3

 

비계를 만들기 위해서 두 인부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허공에 매달려서 손발을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이 아래에서는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내딛는 보폭이 있기에 작업은 진행된다. 리노베이션은 무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엇인가가 지지해주고 받쳐주어야 한다. 건물이 비계를 필요로 하듯, 청춘의 길 또한 이끌고 받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에는 스스로 해체되어야 건물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듯, 자신을 무화(無化)시킬 수 있는 청춘의 비계를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도홍찬 作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 [사진에세이]는 한백교회 사진동아리 '눈숨' 회원들의 작품을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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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입은 광인[각주:1]

유승태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그들은 예수에게 와서, 귀신 들린 사람 곧 군대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 「마가복음」 5장 15절 中 

 

오늘의 본문(막5:1~20)은 ‘거라사 광인’ 일화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복음서들에 소개된 예수의 이적기사 중 단일한 사건이 이 본문처럼 길게 서술된 다른 예는 없습니다. 그런데 서술 분량이 많다고 해서 의문의 여지가 없을 만큼 설명이 충분히 돼 있는 본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분량이 많은 만큼 의문도 많아지고 문제가 복잡해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 의문들 중에서 저는 성서기자가 15절에서 전하는 광인의 최종상태, 즉 “제정신이 든” 상태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에 집중해 오늘의 이야기를 펼쳐볼까 합니다.
흔히 우리는 이 일화를 군대 귀신이 들려 광인이 됐던 한 남성이 예수의 축귀를 통해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됐다는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그 과정에서 군대 귀신이 옮아 붙은 2천 마리의 돼지 떼가 갈릴리 호수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놀라운 이야기와 함께 말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과 관련된 설교들을 찾아보면, 주로 ‘끔찍한 상태에 있던 광인이 예수를 만나 삶이 바뀌었다’, ‘마을사람들은 돼지라는 재산을 잃은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예수(영생)를 거절했다’, ‘거라사 광인인 단순히 정신병자가 아니라 귀신 들린 것이다. 악마는 실재한다’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러한 일반적 이해방식들은, 성서가 묘사하고 있는 광인의 변화, 즉 “아무도 휘어잡을 수 없는” 광인의 상태(4절)에서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든” 상태(15절)로 변화한 것에 그다지 주목하고 있지 않으며, 때문에 이 일화가 우리 삶의 현장과 긴밀한 연관 속에서 해석될 가능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일반적 해석은 성서기자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기자는 이 일화 속에서 주요 인물들의 대립을 통해 주제의식을 드려내려 하고 있습니다. 주제의식이라는 것은, 예수가 악마까지 다스리는 권능자라는 것과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대립은 예수와 광인, 다음 단계에서는 예수와 마을사람들의 대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3~5절을 통해 예수와 광인의 대립 전에 광인과 마을사람들의 대립이 먼저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서기자가 광인의 상태를 묘사하는 이 부분에서 마을사람들의 시점만을 대변하는 편파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서기자는 광인을 가리켜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휘어잡다는 표현에 대응하는 헬라어는 ‘다마조(δαμάζω)’인데 의미는 ‘통제하다, 길들이다’에 가깝습니다. 바꿔 말하면, 마을사람들은, 길들이려는 목적으로 가축을 결박하듯이 그를 묶어두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광인’이나 ‘귀신들린 사람’과 같은 호칭은 모두 스스로 자신에게 붙인 이름은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가 그 세계 안으로 포섭되지 않는 대상을 언어화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세계는 그를 광인이라 불렀고 그를 가축처럼 결박해 길들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니 그를 부르는 이름 속에, 그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이미 그에 대한 평가절하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일반적인 해석들에서도 이러한 평가절하는 그대로 답습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쇠사슬을 끊고 쇠고랑을 부순 그의 행동은, 세계가 자신에게 행하는 길들이기 시도와 평가절하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물론 이때 저항이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치적 대의를 따르는 행동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저항자의 ‘자의식’입니다.) 이러한 해석이 억측이기만 하지 않은 것은, 고대인들이 생각한 ‘귀신들린 사람’은 현대인들이라면 서로 다른 범주라고 생각할 것들을 모두 지칭하는 대상이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자아개념이 형성되지 않았던 고대에는 정신병과 (그 사회의 통념과 상식을 거스른다는 의미에서의) 반사회적 행동을 구분하는 세밀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대인들이 생각하는 귀신들린 사람의 행동 범주 안에는 정신병 증상과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행동이 구분되지 않고 함께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점을 염두에 두고 오늘의 본문을 다시 보면, 거라사 광인은 단순히 귀신의 조종을 받는 ‘사탄의 인형’인 것이 아니라, 그를 휘어잡아 길들이고자 하는 주변 세계에 대항해 사투를 벌이며 탈주를 꿈꿨던 인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거라사 광인은 자신의 이상행동들, 세계화 불화하는 행동들을 설명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서는 그가 예수를 만난 후 “제 정신이 들었다”(15절)고 기술함으로써 그의 행동이 갖는 다른 의미의 가능성을 일축해버립니다. 그저 이전의 행동은 미친 짓들에 불과했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광인을 바라보고 통제하고자 하는 이들의 시각이지 광인 자신의 시각은 아닙니다. 이처럼 성서가 그를 묘사할 때 사용한 ‘편파적’ 언어 때문에 우리는 광인의 행동이나 말을 충분히 공감하거나 이해하기보다는 우선 대상화하고 표면적으로만 바라볼 위험이 큽니다. 또한 “제정신이 들었다”는 표현의 의미는 마을사람들이 시도했던 ‘길들이기’와 무엇이 다른지(혹은 같은지) 묻지 않고 넘어갈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광인을 길들이려는 마을사람들의 태도나 그 태도에 동조하는 성서기자의 편파적 시각으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동시에 광인의 눈으로 본 세계는 어땠을지 묻는 것이 그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겪은 광인은 어떤 자기이해를 가지게 됐을지 물어야 성서가 말하는 “제정신이 든” 상태란 무얼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마가복음의 ‘거라사의 광인’ 에피소드(5:1~20)와 루쉰의 「광인일기」라는 소설의 교차읽기를 통해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보려 합니다.
중국의 작가 루쉰은 1918년 5월 「광인일기」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합니다.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고골이 쓴 동명의 소설에서 제목, 주인공의 수기라는 형식, 그리고 그 수기를 쓴 주인공이 ‘광인’이었다는 설정 등 여러 문학적 장치를 빌려온 루쉰은 이 소설을 통해 중국 신문학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설의 제목이 뭔가 껄끄러운 느낌을 줍니다. 자신의 일기장 표지에 ‘미친놈의 일기’라고 제목을 적는 사람을 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내밀한 자기고백을 담는 기록형식인 일기 앞에 ‘광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소설의 서장에서 광인일기를 소개하는 역할을 맡은 서술자(광인의 중학교 시절 친구)는 “책명은 본인이 완쾌된 후에 붙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기를 쓴 사람과 일기의 제목을 붙인 사람은 동일인물입니다. 그러나 일기를 쓴 것과 일기의 제목을 붙인 것 사이에는 단순히 시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존재합니다. 즉, 일기의 제목을 붙일 당시의 주인공이 스스로 과거의 자신을 광인이라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완쾌된” 현재의 주인공은 자신을 미치광이 취급하던 사람들의 시선을 수용해 과거의 자신을 바라봅니다.
때문에 광인일기라는 제목은 주인공이 주변 세계와의 갈등에서 결국 패배하고 말 운명임을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연하면, 마을사람들과 자신의 가족들, 나아가 중화 문명 속에서 4천년 이상 이어져온 야만(식인)의 그림자를 발견합니다. 그 순간 주인공은 더 이상 주변 세계와 우호적 관계를 맺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근거로 사람들을 계몽하고자 애씁니다. 그러나 ‘식인풍습’을 혁파하려는 그의 목소리는 주변사람들에게는 광인의 헛소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세계를 뒤집어엎을 힘이 없던 주인공은 방에 감금당한 채 자신도 사람들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아직 사람을 잡아먹지 않은 아이들을 구해내야 한다는 다짐으로 일기를 마무리합니다.
그러나 그 후 그는 자신의 소신과 다짐대로 산 것이 아니라, 현실의 질서에 순응해 자신의 과거를 ‘광인’의 상태로 규정하고 관직 후보가 돼 마을을 떠났습니다. 주인공과 주변 세계의 갈등상황에서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주변 세계가 붙인 꼬리표인 광인이라는 호칭을 주인공이 스스로 수용한다는 것은 자아와 세계의 갈등에서 자아의 패배, 세계질서의 일방적 수용을 의미합니다. 또한 관직 후보가 됐다는 것은 자신이 식인의 체제라고 규정하던 기존 질서에 편입되기를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완쾌됐다는 것은 그의 위치가 ‘광인’에서 ‘식인’으로 바뀐 것을 뜻할 뿐입니다.
다시 거라사 광인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오늘의 본문 역시 광인일기의 내용과 유사하게 읽힐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광인일기의 주인공이 자신을 식인의 문명과 맞서 싸우는 계몽가로 생각할 때 그는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피해망상증을 앓는 광인에 불과합니다. 거라사 광인도 (그것이 망상에 근거한 것일지언정) 자신을 “군대”라고 정의하는 명확한 자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때 그가 말한 군대란, ‘레기온(λεγιών)’ 즉 로마의 군단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6000명의 거대한 군단을 이끄는 장군으로 여기고 세상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을사람들에게 그는 그저 자신의 에너지를 주체 못하는 과대망상증 환자였지만, 광인은 (사실은 자해의 흔적이었지만) 자신의 몸에 난 상처들이 치열한 전투의 흔적들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만나 제정신이 든 광인을 묘사하기 위해 성서기자가 사용한 표현은 그가 “옷을 입었고 ... 앉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묘사들을 보면 그는 꼭 문명의 질서에 길들여진 것 같습니다. 마치 제정신이 된 모습은 세계와의 갈등이 없는 상태, 그 갈등을 없애기 위해 사회적 통념에 투항한 듯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거라사 광인 이야기는 ‘저항(주인공)-억압(세계)’의 서사가 ‘굴복(주인공)-훈육(세계)’의 서사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광인일기의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광인이라고 규정함으로써 그 체제에 먹혀버렸던 것처럼, 거라사의 광인도 사회적 통념에 부합하는 예의를 갖춤으로써 스스로 그 사회에 길들여지고 평가절하 받는 길을 택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성서 읽기 방식은 성서 안에서 윤리적 정당화 방식, 본받을 대상, 동일시할 대상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라사 광인의 이야기에서는 그런 대상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거라사 광인 이야기에서 어떤 윤리적 함의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 과연 윤리적 함의라는 것이 그 이야기 안에 있기는 한 것일까요? 저는 거라사 광인 이야기와 광인일기의 의미가 이야기 ‘내부’에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이 두 이야기의 미덕은 이야기 내부에 우리가 쉽게 ‘동일시’하고픈 주인공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두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반면교사’(윤리적 주인공의 뒤집힌 거울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쉽게 단정 지을 수도 없습니다. 이 두 서사는 등장인물 중 어느 한쪽에도 쉽사리 동조할 수 없는 심리적 상태를 초래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앞에 놓인 두 이야기가 우리를 윤리적 주체로 만드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요? 윤리적 동일시의 대상을 쉽게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통념화된 윤리관의 정지, 이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던 윤리적 사고의 토대에 대해 회의를 갖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고, 그 계기를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윤리적 사고가 시작될 단초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윤리적 성찰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손쉬운 동일시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지 묻는 태도인 것은 아닐까, 묻게 됩니다. 옷을 입은 광인은 우리에게 자기와 쉽게 화해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눈빛으로, 그렇게 성서가 우리에게 주는 윤리적 성찰의 지점 또는 기독교 윤리의 출발점으로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2013.11.10. 한백교회 하늘뜻 나누기(1562차 예배) 본문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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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취지_

반공주의를 상품으로 활용한 공포마케팅이 한창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사회를 다시 권위주의적 체제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공안 세력들의 정치적 기획으로 수렴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국민들에게 성장지상주의가 자신의 성공 욕구와 행복하게 만났던 시절의 기억을 회고하게 한다. 그런 맥락에서 성공지상주의적 권위주의를 의미하는 신권위주의 체제가 공안세력의 포스트민주화 시대의 정치적 기획으로 소환되고 있다.
개신교 영역은 이러한 정치적 기획이 실행되는 대표적 장소의 하나다. 실제로 최근 교회에서 해방정국과 제1공화국 시절의 파괴적 반공주의가 다시 부활하고 있는 징후가 뚜렷하게 포착된다.
이번 포럼은 개신교의 반공주의가 형성되고 전개되는 과정을 다루고, 특히 최근 나타나는 개신교의 파괴적 반공주의의 부활 양상과 그 맥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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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부팅 바울 - 권리없는 자들의 신학을 위하여

지은이 : 김진호

펴낸날 : 2013년 8월 16일
페이지 : 240쪽
정  가 : 14,000원
펴낸곳 :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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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낯선 바울’ 읽기, 바울을 리부팅하다

가톨릭의 아우구스티누스, 프로테스탄트의 마르틴 루터,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 칼 바르트, 그리스도교 신학의 제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세 사람의 신학은 바울 해석을 토대로 하고 있다. 성서 자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제2성서(신약성서) 27개 텍스트 가운데 13개가 바울의 이름으로 된 문서다. 이는 1세기 말경에 이미 그리스도의 공동체들 사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서는 다름 아닌 바울의 문서였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고대에서 현대까지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바울의 시선에 의해 규율된 역사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역사적 그리스도교에 비판적 문제를 제기했던 많은 이들은 대개 바울을 비판했다. 니체는 바울이 예수를 교회의 도그마로 왜곡, 전락시킨 장본인으로 보았고, 자유주의 신학자 아돌프 폰 하르낙은 바울이 기독교 신앙을 왜곡한 정통주의의 원흉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신학자 루이제 쇼트로프는 바울을 남성 쇼비니스트라고 비판했으며, 민중신학자 안병무도 김창락의 바울 연구를 접하기 전, 바울에 대해 강한 비판을 가했다.
하지만 역사적 그리스도교에 대해 비판적임에도 바울을 다시 주목하려는 시도들도 있다. 그런 시선들은 역사적 그리스도교에 의해 바울이 왜곡되었음을 문제제기하고 바울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비판적 성서학 연구자의 하나인 도미니크 크로산도 그중 하나고, 대표적 급진주의 성서학자들인 리처드 호슬리나 닐 엘리엇, 그리고 퀴어신학의 개척자이자 이론신학의 대가인 테드 제닝스 등도 그런 예에 속한다. 그밖에도 무수한 비판적 신학자들이 교회에 의해 왜곡된 바울과는 ‘다른 바울’을 얘기한다. 그들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좌파 사상가들인 알랭 바디우, 조르지오 아감벤, 슬라보예 지젝 등도 바울을 재해석하였다.
한편 민중신학도 바울에 대한 재해석의 대열에 가담했는데, 그 대표적 학자는 김창락이다. 바울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안병무도 제자인 김창락의 연구에 영향을 받아 바울을 재평가하였다. 하지만 김창락의 연구는 신학계와 교회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함으로써 그 가치가 간과되었다.
지은이 김진호는 김창락의 바울 재해석을 계승하고 있는데, 그는 김창락의 바울 재해석이 기존의 주류 그리스도교의 바울 이해나, 그리스도교 비판가들의 바울 비판, 그리고 바울을 재해석하고자 했던 여러 논의들을 ‘리부팅’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김창락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바울의 현장신학적 관점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바울에 대한 대개의 재해석들은 바울을 로마제국 전체와의 대결구도 속에서 보고자 했다. 그것은 고전적인 바울 연구들이 바울을 유대교와의 대립구도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른 관점이다. 한데 이런 논쟁은 모두 바울의 서신들이 담고 있는 투쟁 현장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다. 반면 김창락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부의 기득권자들인 유대인들에 대해 비기득권자들인 이방인을 옹호하려는 것이 바울의 투쟁 현장임을 밝혀낸 것이다.
김진호는 김창락을 계승하면서도 그가 입증하는 데 실패한 현장의 사회사적 맥락을 밝힌다. 그리고 그런 논의의 연장에서 김창락의 관점을 수정한다. 바울의 현장은 지중해 지역의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부가 아니라 이스라엘계 디아스포라 사회이며, 그 안에서 비기득권자인 이방인은 주로 개종해 들어온 해방노예들임을 주장한다. 이들은 고대적 세계화가 한창 진행되던 1세기 지중해 지역의 독특한 사회사적 상황에서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아 이리저리 떠도는 유민이 된 자들이다. 한데 도시의 지배층과 시민층, 그리고 서민들은 이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 심지어는 증오를 쏟아냈다.
이스라엘 교포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그곳에서 순혈주의적이고 배제주의적인 근본주의적 이스라엘 종파인 유대주의가 거세게 물결쳤다. 한데 바울은 그런 현장 한 가운데서 이들을 옹호하고, 이들에 대한 배제의 논리를 공박하였다. 김진호가 재해석한 바울의 현장과 그의 담론투쟁은 이랬다.
이렇게 김진호는 고전적인 바울 해석과 최근의 바울 재해석을 리부팅하는 김창락의 견해를 계승 보완하면서, 1세기 지중해 지역 대도시들 한 가운데서 활동했던 바울이라는 인물을 읽는다. 이는 지금까지의 연구사에서 다뤄지지 않은 ‘낯선 바울’의 이야기이다.

고대사회의 인권선언, 바울의 의인론 / 고대의 급진적 인권운동가, 바울

김진호는 이 책에서 바울과 기독교를 동일시하도록 전개되었던 기독교의 바울 수용사를 접고, ‘기독교 이전’의 바울, 곧 기독교가 아직 세상에 존재하기 전에 실존했던 인물 바울의 활동을 현장신학적 관점에서 들여다봤다. 바울의 현장 이해에 핵심적인 논점은 ‘유대주의’ 문제다. 바울은 거의 모든 곳에서 유대주의자들과 심각한 갈등을 벌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모든 연구는 이스라엘계 디아스포라의 신앙을 ‘유대교’라고 명명했다. 김진호는 이를 현대 시오니즘의 유대 중심적 관점에 의해 과거의 역사가 만들어진 결과라고 보았고, 이를 바로잡아 ‘이스라엘 종교’라고 썼다. 그리고 다양한 이스라엘 종교 현상과 운동들이 공존하는 이스라엘계 디아스포라 사회에서, 안식일과 절기의 준수, 할례 등을 주장함으로써 순혈주의적이고 남성 중심주의적인 방식으로 이스라엘 종교를 재해석하려는 집단을 ‘유대주의자’라고 불렀다.
이들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에 의하면) 회당 사회 주변부 대중, 곧 대개가 개종자들인, 특히 버림받은 노예들인 민중에 대해 배타적이다. 이러한 유대주의자의 담론의 효과를 잘 이해하지 못한 많은 이들, 심지어 베드로나 야고보같이 예루살렘계 그리스도파의 유력한 지도자들조차 이러한 운동에 동조하곤 했다. 바울의 전향은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의 개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스라엘 신앙에 속한 사람으로 유대주의자의 일원이었다가 그 반대편의 지형으로 생각과 실천의 축을 옮겨간 정치적인 전선의 이동을 뜻한다. 이런 맥락에서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의 담론에 대항하면서 성적, 인종적, 계급적 민중담론을 폈다. 바울의 의인론은 바로 이런 투쟁의 무기로 제기된 신학적 언술이다. 다음은 투쟁교설로서의 의인론의 사회사적 해석이다.
바울이 활동하던 기원후 1세기 중반은 해안지역 노동자의 30퍼센트에 달하던 노예경제가 붕괴되고 무수한 노예들이 속속 방출되던 시기였다. 신분은 노예인데 소유주가 없는 이러한 방출 노예들은 마치 유기견과 같은 존재가 되어 생존의 정글 속에 내던져진 ‘말하는 짐승’에 다름 아니었다. 이들 방출 노예들은 도시의 하층 노동시장을 크게 교란시켰고, 이는 방출 노예들에 대한 사회적 증오와 적대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혈통으로도 피부색으로도 언어로도 어느 하나 동질감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로 들끓는 도시, 이곳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을 보호해줄 사적 연줄을 만들었고, 해방노예나 난민 등 하층민들은 그 연줄망의 변두리에라도 속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이런 맥락에서 로마제국 내에서 사법권, 제의 준수권, 조세 징수권 등 특권을 누리는 격조 있는 결사체, 즉 도시 사회 속의 또 하나의 사회로 기능하는 이스라엘계 디아스포라 결사체에 속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렇게 이스라엘 자치 결사체에 편입된 비이스라엘계 사람들에는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테오세비오스, 즉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부류는 개종자다. 비록 할례를 받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자치결사체를 위해 많은 기부금을 내고 지역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여 이스라엘 교포사회를 보호하였던 이들인 테오세비오스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교포 사회에서 별 반감이 없었다. 그러나 기부금을 낼 처지도 못 되고 품격도 갖추지 못한 개종자는 순혈주의적이고 배타성이 강한 유대주의자들에 의해 ‘이방인’ 또는 ‘헬라인’으로 불리며 하위주체로 대상화되었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계 디아스포라 회당에서 의인론을 편다. 사람이 의로워지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은혜에 의해서라고 하며, 그 은혜의 대상에 대해서 “이스라엘인뿐 아니라 헬라인(이방인)도,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자유인뿐 아니라 노예도 ‘차별이 없이’ 의롭다고 인정해준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것은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주권이 박탈된 하위주체 모두를 은혜의 공간으로 호출하는 선언이다. 그리하여 권력 없고 소외받던 이들을 재주체화하는 신학담론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바울의 의인론은 권리 없는 자들을 위한 신학, 즉 ‘인권으로서의 신학’이다.

2013년 서울, 바울을 호출하다

지구화 시대 세계는 무수한 유민과 난민들로 들끓고 있다. 그들 가운데 대다수는 최소한의 특권도 갖지 못한 쓰레기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다. 사회는 그들을 더러운 자, 처분해 버려야 할 자들로 간주한다. 하여 그들은 배제와 차별, 증오가 혐오의 대상이 된 자들이다.
1세기 지중해 연안의 바울의 세계들도 그랬다. 기원전 3세기 이후 국제무역이 전례 없이 활발해졌고, 지중해 전역을 차지하려는 제국들의 전쟁이 잇따랐다. 그 과정에서 종족국가 단위를 훌쩍 넘어 지중해 전역을 단위로 하는 문화적, 종교적, 인구적 혼합 현상이 극심해졌다. 무엇보다도 유민과 난민의 행렬은 지중해 지역 대도시들을 혼융성(하이브리디티)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한데 지중해의 기원후 1세기는 고대적 지구화의 양상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아우구스투스의 팍스로마나 선언 이후 해안 지역 노동인구의 30퍼센트를 차지하던 노예경제가 빠른 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는 무수한 노예들이 방출되었음을 의미한다. 유기견과 같은 존재인 이들이 결국 몰려든 곳은 해안도시들이었다. 이곳에서 이들 부유하는 방출노예들은 가장 심각한 차별과 배제의 대상,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하여 김진호는 1세기 활동가인 바울을 21세기 서울로 불러내 읽는다. 바울이 활동한 도시들, 특히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등과 21세기 도시 서울은 많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중 혐오적 양상에 있어서도 양자는 닮은꼴이다. 도시국가 서울이 ‘21세기적’으로 지구화하고 있는 세계의 ‘주변부 메트로폴리탄’이라면 바울의 도시들은 ‘1세기적’으로 지구화하던 세계의 ‘주변부 메트로폴리탄’이었다. 돌진적 근대화로 치닫던 1970~1980년대 한국의 도시와 농촌의 개념과는 달리, 농촌의 독자성이 거의 괴멸되어가는, 서울에 귀속된 부속도시들과 촌락들로 이루어진 도시국가 서울, 여기가 지은이가 바울을 묻는 시공간이 된다.
교회 안에서 교회를 개혁하고, 교회 밖에서 배척된 이들을 이웃으로 삼는 일에 몸 사리지 않는 ‘서울의 바울’을 찾아내고 그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지은이가 이 책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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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민중신학 - 세계 신학자들, 안병무를 말하다

엮은이 : 김진호, 김영석 공편

펴낸날 : 2013년 10월 24일
페이지 : 416쪽
정  가 : 18,000원
펴낸곳 :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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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안병무를 말하다, 안병무가 말하다, 안병무를 통해 말하다

이 책은 안병무의 민중신학을 외국 (영어권) 독자들에게 알리고, 외국의 저명 신학자들로 하여금 안병무의 글을 읽게 하여 상호 대화를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김진호, 김영석이 기획하고 편저자 역할을 해 미국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김진호는 안병무의 민중신학에 관한 모든 자료를 제공하고 본서에 수록될 안병무의 원고를 선별하는 작업에 책임을 맡았다. 또한 안병무의 ‘사랑받는 제자’로서, 그는 안병무 신학의 기원과 발전, 시기 구분에 따른 전환의 과정을 명료하게 설명해주는 안병무의 삶과 유산에 관해 시론적 논문(「안병무 해석학 시론」)을 집필했다. 김영석은 본서에 참여할 국제적인 학자들 및 기고자들을 확인하고 조직하면서, 출판사와 교신하는 일을 포함해, 국제 저자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작품을 감수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는 ‘안병무의 민중신학에 대한 소개’이고, 제2부는 ‘선별된 안병무의 글들’이며, 제3부는 ‘안병무의 민중신학에 대한 비판적 응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서의 공동 편집자인 김진호는 제1부에서 안병무의 민중신학을 소개한다(「안병무 해석학 시론: ‘내면성의 발견’과 ‘민중적 타자성’ 개념을 중심으로」). 그는 이 논문에서 안병무의 민중신학의 탄생부터 완성에 이르는, 즉 민족적 민중의 개념에서 지구적 차원의 고난 받는 민중 개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타자성(otherness)의 발견을 통한 실존적 투쟁에서 성찰적 투쟁으로의 전환에 이르게 되는 그 모든 발전의 궤적을 쫒고 있다.

제2부에는 안병무의 글 가운데 선별해(「예수 사건의 전승 모체」, 「예수와 민중-마가복음을 중심으로」, 「민중신학-마가복음을 중심으로」, 「민족, 민중, 교회」) 수록했다. 이 글들은 모두 다른 목적을 가지고 각기 다른 시기에 작성되었다. 첫 번째 글인 「예수사건의 전승모체」에서 안병무는 이른바 “예수사건 전승의 전달자들”이라고 하는 독창적인 이론을 개척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오클로스 또는 민중에 의해 예수 사건의 진정한 이야기가 전달되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글인 「예수와 민중-마가복음을 중심으로」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특히 마가복음에서 오클로스를 위한 예수의 사역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안병무에게 민중은 오클로스였고, 오클로스는 민중이었다. 세 번째 글로 선정된 「민중신학-마가복음을 중심으로」는 민중(오클로스)의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마가복음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네 번째 글인 「민족, 민중, 교회」는 민중이라는 개념, 즉 한국의 역사 속에서 소외되어왔던 고난의 담지자들을 다루면서, 민중을 국민이라는 정치적 개념에 가까운 민족과 구별하고 있다. 이 글들을 통하여 우리는 안병무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 그리고 어떠한 이유로 그런 글들을 쓰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신학자들, 안병무를 말하다

제3부에는 본서의 기고자들이 집필한 글 여덟 편이 수록되었다. 이 책은 오늘의 세계 속에서 안병무의 민중신학에 비판적으로 관여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편저자는 본서의 필자들을 위한 일련의 질문 지침을 마련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누가 오늘날의 오클로스(민중)인가?” “민중이 겪고 있는 다양한 측면의 고통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민중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공동체 내지는 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제1장 「민중, 흑인 대중, 전 지구적 명령: 누가복음 구원론의 해석학적 순환에 대한 흑인여성신학적 읽기」에서 미치 스미스(Mitzi Smith)는 한국 민중들의 경험 및 민중신학을 미국 흑인들의 경험 및 흑인신학과 비교하면서, 정의로운 공동체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진정으로 해방될 수 있고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고 있다. 그리하여, 안병무가 오클로스의 관점에서 마가복음을 해석한 것처럼, 스미스는 흑인 여성의 경험을 통해 누가복음을 독해하는 것이다. 스미스의 독특한 해석은 “구원론적 해석의 순환”(soteriological hermeneutical circle)이라는 말로 특징지어지는데, 이는 그녀가 “개인의 구원은 민중이나 사회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우리는 정의와 회복, 완전함을 위한 투쟁에서 민중과 연대하며 하느님과 일치하는 태도를 취하기를 요구받고 있다. 나는 민중이다. 민중은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제2장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땅 위에 사는 사람들”: 제국적 상황 속의 평범한 사람들」에서 그렉 캐리(Greg Carey)는 신약성서의 유일한 묵시문학인 요한계시록이 어떤 방식으로 “예수에 대한 증언과 로마의 제국 종교에 대한 충성 사이의 갈등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탐구한다. 안병무의 연구에서 민중이 예수 사건의 참여 주체이자 조건 없이 예수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대상이었던 것에 반해, 캐리의 연구는 군중들(요한계시록의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로마제국 치하에서 압박당하고 있었으며, 국가권력의 후원 아래 생존하고 성장해야 했기 때문에, 그 짐승의 행위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캐리는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배로 얼룩진 상황 속에서 민중은 균질한 집단으로 범주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요한계시록이 드러내주듯이 억압적인 상황이 평범한 사람들을 서로 대적하게끔 분열시킨다.”

제3장 「양가성, 모방, 그리고 마가복음의 오클로스 : 안병무의 민중신학에 대한 탈식민주의적 비평」에서 데이비드 아더 산체스(David Arthur Sanchez)는 포스트식민주의 비평의 관점에서 안병무의 민중신학을 독해한다. 한편에서 산체스는 날카로운 분석과 마가복음의 오클로스에 대한 재상황화(recontextualization)의 측면에서 동시대의 해방신학에 대한 안병무의 독창적인 기여를 높이 평가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포스트식민주의 비평에서 종종 사용되는 개념인 모방과 양가성의 렌즈를 통해 안병무의 오클로스 해석을 보완한다. 안병무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오클로스들(갈릴리의 오클로스와 예루살렘의 오클로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예수에게 등을 돌린 예루살렘의 군중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데 비해, 산체스는 갈릴리와 예루살렘의 오클로스가 서로 다른 두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적절하게 추론하고 있다. 즉, 갈릴리의 군중들이 예루살렘의 군중들로 전환된 것이며, 그래서 지금은 제국의 중심적인 도시, 즉 권력과 사람과 정치가 섞이면서 재조정되는 예루살렘에서 마치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산체스는 어떠한 신학적 담론도 군중의 변덕스러운 본성을 좀처럼 부인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신학의 과업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어떤 한 종류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 및 정치와의 부단한 협상과 관련된 ‘정치적’ 인간성의 그 양가적 본질, 바로 그것과 계속해서 대결하는 것임을 강하게 환기시키고 있다.

제4장 「정의로운 평화의 자유 : 현재의 에큐메니컬 담론을 위한, 민중신학 다시 보기」에서 페르난도 엔스(Fernando Enns)는 독일 교회의 맥락에서 안병무의 오클로스?민중신학이 여전히 유용하다는 점을 다룬다. 평화와 정의를 위한 교회일치운동의 전 세계적인 협력 활동에 깊이 관여해온 엔스는 마가복음 안에서 오클로스의 착상에 관한 안병무의 놀라운 통찰을 받아들이고, 오클로스라고 하는 동일한 개념을 독일의 상황과 그 외의 다른 곳에까지 적용한다. 그는 하느님 나라 안에서의 평화와 정의를 여전히 필요로 하는 오클로스를 위하여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노력해줄 것을 간청한다. 엔스 역시 민중의 목소리를 강조한다. 민중은 역사의 주체이자, 자유와 정의를 위한 운동의 적극적인 참가자들이다. 그는 또한 예수가 설교했던 복음의 관점에서, 그저 단순히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을 위하여 민중으로서 죽은 예수처럼 교회가 소외된 이들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민중의 투쟁에서 교회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한 가지 조건은 그 교회들이 가장 무능한 이들과 같이 소외된, 그럼에도 여전히 인민들의 투쟁을 포용하면서 에큐메니컬의 공간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민중 교회들이라는 사실인 것 같다.”

제5장 「민중신학과 세계 평화 만들기 : 갈릴리에서 한국의 기지촌까지」에서 배근주(Keun-joo Christine Pae)는 한국과 여러 다른 나라들에 존재하는 미군기지 주변의 기지촌 여성들(소위 ‘양공주들’)을 위하여 민중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탐구한다. 배근주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기지촌 여성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함께 “군사화된 미 제국주의”의 문제를 지적한다. 배근주에 따르면, “기지촌은 이러한 분노가 가장 첨예하게 가시화된 곳으로, 미군과 지역민 간의 갈등이 폭력으로 불거지기도 한다. 동시에 기지촌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 임의로 설정된 경계 지대이기도 하다. 이곳은 제3의 공간 혹은 혼종 공간으로, 미군의 제국주의와 한국의 민족주의 양자에 의해 억압적인 구조가 유지되는 곳이다.” 배근주는 이렇게 폭력에 노출된, 가장 소외된 여성들을 대변하고, 나아가 군사주의가 아닌 이 모든 억압적 권력들에 맞서는 비폭력 저항을 통해 지구적 차원의 평화를 추구한다.

제6장 「“만일 우리가 지옥에 떨어진다면 예수님이 구해주시겠지”: 민중신학과 이반 운동」에서 조민아(Minah Cho)는 한국의 성적 소수자들, 이른바 LGBQT(Lesbian, Gay, Bisexual, Queer, Transgender/Transsexual) 공동체에 관한 쟁점을 다루면서, 반(反)동성애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 도전하는 성적 소수자들의 운동으로 이해되는 이반 운동과 민중신학이 소외된 이들을 위한 자유와 정의의 투쟁에서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다. 조민아는 “이반들에 관한 유언비어에 의해 창조된 담론의 공간”을 검토하면서, 어떻게 “잘못된 유언비어들이 근본주의자들의 수사에 감추어진 균열과 간극을 드러내며, 그럼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다른 방법으로 대항?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지”를 제시한다. “다양한 견해들과 경험들이 융합되고 동화되는 가운데 진리가 해체 및 재구성되고 있는 그러한 과정을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는 유언비어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조민아는 한국의 지배적인 동성애혐오의 유언비어를 폭로한다.

제7장 「오클로스와 ‘비참의 현상학’-오늘의 오클로스를 묻다」에서 김진호는 안병무의 민중신학에 나타난 오클로스―한국과 그 밖의 다른 곳에 사는 무력한 사람들의 무리―와 관련되어 있는 고통의 개념을 주목한다. 오클로스에 관한 김진호의 독해는 안병무의 오클로스론보다 훨씬 파악하기 어려운 것인데, 김진호가 주장하고 있듯이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복잡한 고통의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그가 고통보다는 ‘비참’(wretchedness)이란 표현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이 부분이 김진호가 서남동의 한(恨)의 신학에서 중대한 가치를 발견한 지점인데, 그것은 바로 고통 또는 한이라고 하는 것이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강조한다. 서남동에 따르면, 한은 “하늘에 호소하는 억울함의 소리, 무명(無名)의, 무고(無告)의 소리”를 의미하는 한국적 용어이다. 따라서 김진호는 한의 개념이 오클로스 또는 민중의 투쟁 속에서 명백해질 수 있기 때문에, 오클로스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안병무의 민중신학은 한에 기초한 서남동의 민중신학과 더불어 가장 잘 이해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제8장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이다”: 민중신학적 관점의 주체성 탐구」에서 황용연은 한국에서의 민중신학의 역사를 다루고, 나아가 민중이 변혁의 행위주체로서 할 수 있는 것과 민중신학자들이 계속 발전 중인 복잡한 사회―1960~1970년대와 비교했을 때 외관상 매우 다른 환경으로 보이는―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민중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있긴 하지만, 황용연은 민중이 변혁의 ‘행위주체’(agent)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민중이 무력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강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인 진술이지만, 시사점은 자유와 정의의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그들의 경험으로 인해 민중이 억압적인 권력에 굴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고통 때문에, 민중은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즉, 그들의 한 맺힌 고통이 민중을 위한 변혁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진호가 그의 글에서 고통의 현상학에 관해 유사하게 진술한 것처럼, 황용연 역시 민중신학자의 과제는 민중을 규정하거나 지도하는 것이라기보다 그들의 투쟁과 고통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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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 길』

지은이 : 최형묵

펴낸날 : 2013년 5월 31일
페이지 : 220쪽
정  가 : 12,000원
펴낸곳 : 이야기쟁이낙타


             * 책 소개 보러가기

책 소개

권력의 중심에서 이익 집단처럼 행동하는 주류 한국 기독교에
진정한 기독교와 교회의 길을 묻다.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지금까지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말씀 아래 민중의 아픔을 함께 나누어 왔으며, 권력의 횡포가 극에 달했을 때에는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참여하여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권력에 영합한 주류 기독교는 주 5일 근무제, 양심적 병역 거부, 사립학교법, 차별금지법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쟁점마다 스스로의 기준을 절대적 기준인 양 내세우며, 자기 이해에 민감한 태도를 보여 왔다. 이와 같은 교회와 기독교의 폐쇄적인 태도는 일반 대중에게 기독교가 종교보다는 이익 집단에 가까운 모습으로 비춰졌고, 이러한 한국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롭게 개정 출간된 <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 길>은 현재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한국 기독교의 상황을 진단하고, 우리 기독교와 교회가 앞으로 걸어갈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근대화의 역사적 흐름 속에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한국 기독교

 기독교는 이미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하나의 열쇠가 되었다. 따라서 오늘 한국 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한국 기독교를 이해하는 것은 특정한 종교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깊이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 길>은 한국의 근대화와 대부흥 운동, 광주 민주화 항쟁, 17대 대선 등으로 이어지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 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급성장한 주류 한국 기독교가 지니게 된 여러 문제점들을 살피고 있으며,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주류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안을 추구하는 또 다른 기독교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한국 기독교와 그 변화에 얽힌 한국 사회의 단면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내부로부터의 뼈아픈 성찰과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걷는 진정한 길 찾기

지금까지 한국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비판은 주로 외부의 시선으로 제기되어 왔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는 있었지만, 아쉽게도 기독교와 교회 내부의 사정까지 자세히 다루기는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 길>은 기독교인으로서 수십 년간 기독교의 올바른 길에 대해 고민해 온 저자가 안에서 겪고 바라본 교회와 기독교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비판보다 생생하게 와 닿는다.
저자의 우리 기독교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끊임없이 바른 길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은 ‘타자를 위한 개방성으로서의 신앙과 윤리’, ‘사회 문제를 회피하는 장소가 아니라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장소로써의 교회’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삶의 기쁨을 향유하는 신앙’으로 책 속에 잘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은 저자의 시도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진정한 신앙의 길을, 비기독교인들에게는 새로운 기독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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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향-2013가을강좌(김진호).gif 

* 강좌 취지

_최근 진보적 혹은 급진적 신학자들에게 바울은 그리스도교 개혁/갱신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또 현대 철학에서 바울은 새로운 화두의 하나가 되었다. 한때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예수를 왜곡한, 혹은 기독교를 타락시킨 장본인으로 바울이 지목되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왜 바울이 다시 주목의 대상인가. 이 강좌는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를 탐문하고자 한다. 특히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낡은 바울을, 그에 관한 담론들을 리부팅하고, 새로운 바울, ‘낯선 바울’이 제기되는 역사적 맥락을 살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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