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특별법 제정, 생존권투쟁과 인정투쟁 사이에서


조민아

(세인트캐서린 대학 조교수)

 

긴 싸움을 헤쳐 나가야 하리라던 불길한 예측은 이미 사실이 되었다. 더 이상 망가질 것도 없다고 생각했을 만큼 참사를 지켜보던 고통이 처참했지만, 싸움이 길어지며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인간성들을 목도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끔찍하게 괴롭다. 딸이 죽은 이유를 밝혀 달라며 46일 단식을 한 아빠의 신상을 털고 차라리 죽으라고 막말을 한다. 단식장에 몰려와 닭다리를 뜯고 짜장면을 먹고 폭식 캠페인을 벌이며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과, 함께 울줄 아는 이들의 진정성을 조롱한다. 단식을 하고 있는 사제들과 수도자들 앞에 짝퉁 천주교신자까지 등장해 “특별법 제정 반대”를 위해 묵주기도를 한다(하는 척 한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나온 것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옳다고 믿고 있으며 그 확신 대로 행동하고 있다. 게다가 점점 자신감을 얻어 대담해지고 있다. 돌발 행동이라고 넘겨 버리기엔 그 숫자가 많고 질기다. 그렇다고 이들의 행동을 바라보며 그저 한숨만 쉬고 있을 수도 없다. 상식도 없고 일관성도 없어 보이는 이 엽기적인 행동들이 “세월호 정국”의 국면이 재조정되는 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퍼포먼스는 4월 16일 이전으로 세상을 되돌리려는 자들의 계산된 구호—“일상으로 돌아가자”, “민생을 돌보자”—와 맞물려 세월호 특별법 제정운동을 ‘생존권투쟁’이 아니라 ‘인정투쟁’으로 몰아가는 데 일조하고 있다. 


특별법 제정은 생존권투쟁이다

우선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수사권, 기소권이 보장되는 4.16 특별법 제정을 위한 투쟁은 인정투쟁이 아니라 생존권투쟁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 권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전제하더라도 인정투쟁과 생존권투쟁은 다르다. 악셀 호네트(Axel Honneth)가 그의 책 <인정투쟁>에서 말하고 있는 “인정”은 인간이 긍정적인 자기 의식을 얻게 되는 심리적 조건이자,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다. 인간은 타인이 인정해 줄 때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형성하고 자기 실현을 이루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정 투쟁의 목표는 사회적 투쟁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또한 인정투쟁의 쟁점은 개인이나 집단을 무시하는 행위를 거부하는 것이며, 무시를 고착화하는 상태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즉, 인정투쟁은 자긍심이 훼손되었을 때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생존권투쟁은 살 권리를 위한 투쟁이다. 절벽 끝에서 벌이는 사투이다. 목숨을 위협 받았을 때 바로 그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자식이 백주 대낮에 수장당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 광화문에서, 청운동에서 곡기를 끊고 노숙을 청하는 부모들의 투쟁은 생존권투쟁이다. 그리도 허망하게 피붙이 살붙이를 떠나 보내고 남은 평생을 살아야 하는 부모들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싸움이다. 이 싸움은, “내 자식들이 왜 그렇게 무참하게 죽어가야 했는가?”라는 지극히 당연한 질문을 외면하는 집권 세력들에게 인정을 받거나 명예 회복을 요구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권력을 획득하겠다는 옥쇄투쟁은 더더욱 아니다. 명백하게 부당한 공권력에 대한 저항이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살기 위한 고투이다. 

이 부모들을 살려야 한다. 반드시 수사권 기소권이 보장되는 특별법을 제정하여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이유다. 광화문과 청운동 현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그 현장은 제정이 실현될 때까지 생존권투쟁의 장으로 공고하게 남아야 한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의 본질이 생존권투쟁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려내는 것과 따로 또 같이 우리에게는 원하지 않았던 싸움의 장이 열렸다. 인정투쟁의 장이다. 피할 수 없기에 좀더 섬세한 관찰이 필요할 듯하다. 


인정투쟁의 장, 일상

유가족들의 요구를 인정투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세월호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잃어 버린 목숨에 대한 “보상”과 “명예 수호”에 있다고 이해한다. 가족들이 원하지도 않는 각종 특혜 (보상)와 의사자 지정 (명예수호)이 줄기차게 언급되고, 또 그것들을 둘러싼 흑색선전이 대중에게 쉽게 파고드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듯하다. 이들의 시각은 의식적 혹은 잠재의식적으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가능한 완화하고 개인의 권리를 극대화하는 사회가 정의롭고 합리적인 사회라 생각하기에, 보상과 복권이 제시되는 것을 확인한다면 그 이외의 것은 불필요하다. 따라서, 304명의 목숨이 바다에 묻혔다는 사실 자체는 그들에게 거대한 위협이었을지 모르나,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유가족들이—그들이 판단하기에—일종의 “세력”으로 형성되는 것을 지켜 보는 것은 거북하다. 

이들은 세월호 문제를 생존의 문제로 바라보는 이들과 시각 자체를 달리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다를 수 밖에 없다. 백일을 채 넘기기도 전에 드러나기 시작한, “피로감”이라고 표현되는 대중의 침묵과 짜증에는 모종의 불편함과 불안함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도 사건 초기에는 연민과 공감이 혼재된 감정상태를 겪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후 국면에서, 생존의 프레임으로 세월호 문제를 보는 이들의 행동이 유가족들과의 “연대”로 나아갔다면, 인정의 프레임으로 보는 이들의 입장은 유가족들을 위한 “배려”로 신속하게 정리되었다. 그들은 “참아주었던”것이지, 실제 가족들의 입장이 되어 공감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유가족들이 “집단”이 되어 자신의 일상을 위협하며 민생을 흔들고 있다고 생각하자, 배려는 불필요한 덕목이 되어버렸다. 대신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정부여당이 주장하고 요구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행사할 공권력을 갖고 있지 않은 이 흩어진 개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덕적 우위를 선점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옳아야 하고,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적극적 인정투쟁의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인정투쟁에 나서는 이들은 유가족들이 단지 “함께” 움직인다는 이유, 사회질서 유지의 근간이 되어야 할 법체계에 대해 현행과 “다른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는 이유, 집권세력이 “만나주고” 있다는 이유로 유가족들을 “강자”혹은 “권력집단”으로 설정한다. 유가족들과는 달리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관심”도 별로 받지 못하고, 동조해 줄 “배후세력”도 없으며, 크고 작은 피해를 받은 기억은 있지만 “대항”하지 못했던 자신들은 “약자”요, “소수자”다. 단지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듯 하다. 유가족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는 권력구조의 역학이나 언론의 영향력 따위는 이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들의 이러한 착각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가치 체계의 혼란과 폭력적이고 위해한 언어, 개념들의 양산이다. 

광화문에 나와 기이한 행각을 벌이는 형태의 인정투쟁은 극단적으로 표출된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최전방 부대는 유가족들이 벌이고 있는 생존투쟁의 절박함과 숭고함을 비틀고 조롱하는 동시에 자신들 또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나름의 역할을 장렬하게 수행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들의 행각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실 겉보기에 소극적인 태도로, “중립적” 가치를 내세우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진행되고 있는 “온건한” 형태의 후방 인정투쟁이다. 이들은 말초신경이나 자극하고 의도적으로 분노를 일으켜 주목을 끄는 일차원적 방법을 지양하며 매우 세련되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설득해 나가고 있다. 

최근 스스로를 “겁쟁이”라 명명하며 “작은 용기 캠페인”을 시작한 연세대학교 김정호 교수의 인정투쟁이 이 후방 부대의 성장과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장기화하고 있는 세월호 정국의 책임을 전적으로 유가족들에게 돌리며, 현상황을 “싸움꾼들의 독재가 판치는 세상”이라 명명한다. 반대로 자신과 같이 “힘없고” 단식을 하기도 주저스러운 이들은 “겁쟁이”이지만 “대한민국이 정상화될 날을” 원하는 “정상인”들이다. 이런 다수의 “겁쟁이”들이 연대하여 “싸움꾼” 유가족들에게 맞서자는 주장이다 (“저는 겁쟁이입니다,” 조선닷컴 토론 마당 2014년 8월 31일 참조).

김정호 교수의 예에서 보여지듯, 이들 후방 부대는 “민주주의,” “정의,” “발언의 자유,” “소수자 권익,” “작고 연약한 이들의 연대,” “일상의 가치” 등, 과거 피억압 민중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사용되던 개념과 표현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염수정 추기경과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가세한다. 이 분들은 “중립”을 선호하신다지만 실은 집권세력의 눈치를 보며 줄타기를 즐기신다. 주로 하시는 일은 종교적인 가르침을 탈색시켜 보수 언론과 정부 여당이 사용하기 좋은 요릿감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유가족들과 “공감한다”하고 “같이 아프다” 하는데 뭘 공감하고 뭘 같이 아파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게 후방의 인정투쟁은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해 왔던 단어들이 간직하고 있던 역사성과 본의를 사상 시키며 세월호 정국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생존권투쟁과 인정 투쟁, 양쪽 모두 포기할 수 없다

생존권투쟁과 인정투쟁의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파급력과 무게는 우리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인정투쟁의 양상이 이전과 많이 다르리라는 것을 예감하게 한다. 아니, 그보다는 이전부터 진행되어 왔던 다양한 가치 체계의 전도가 세월호 참사를 기해 전면에 드러나 서로 서로 정당성을 주장하고 인정을 요구하며 압박해 올 것이라 하는 것이 옳겠다. 누구나 알 수 있고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정의, 민주의 개념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인정투쟁은 스스로 공부하고 이웃을 설득해야 하는 긴 호흡이 필요한 싸움이다. 단지 투쟁해야 할 뿐 아니라 투쟁해야 하는 이유와 도덕적 근거를 스스로 이해하고 이웃에게 설명해야 한다. 권력의 부당함이나 경제적 불평등을 갈등의 원인이라 간주하고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뿐 아니라, 당장 내 옆에 있는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이 마음을 열고 그 갈등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분노를 자신을 움직이는 에너지로 사용하되, 그 표출은 자제해야 한다. 분노는 투쟁을 촉발하는 원인이지, 투쟁의 도덕적 기초를 제공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인정투쟁의 장에서조차 우리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고지에 서 있다. 혼자 잘 사는 것을 부추기는 전방위적인 가치체계에 맞서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 남는 가치체계의 매력을 설득해 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돈과 권력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세상보다 사람이 돈과 권력을 제재하는 세상이 이롭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막연한 싸움이다. 

인정투쟁의 장은 일상의 전 영역이다. 이 싸움은 정치인들이나 전문가들, 혹은 조직에게 맡길 수 없는 각자의 싸움이다. 집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또 본당에서, 내가 몸 담고 있는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있는가가 내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싸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희망, 변화의 가능성은 한 두 사람의 정치적 지도자나 영웅이 제시하고 그 나머지인 우리들은 그저 수혜자가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지분이 모여야만 조금씩, 그것도 아주 더디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나 일상적으로 소통하느냐, 어떻게 인간 회복을 실현하는 작은 공간들을 많이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이다.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로부터 우리가 잃어 버린 무엇을 되찾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나누고 고민한 것들을 우리 자신의 삶으로 체화해야 한다. 이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결국 우리들 개개인이 우리가 가진 얼마만큼을 자신의 삶으로, 또 이웃의 삶으로 되돌릴 수 있느냐일 것이다.

저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부분적으로 옳다. 일상 또한 이미 싸움의 장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싸움 또한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일상은 생존권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광화문과 청운동의 현장과 분리 될 수 없다. 현장과 일상을 부단히 오가는 긴 싸움을 우리는 당분간 계속해야 한다. 아니, 그 싸움을 살아내야 한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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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에 반대하라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이렇게 일러주어도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고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왕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도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그 왕이 우리를 이끌고 나가서, 전쟁에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사무엘기상」 8,19~20

 

2014년 4월 28일자 《한겨레21》의 표지 그림은 아마도 올해 한국인의 가슴에 가장 뚜렷하게 새겨진 슬픈 장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완전히 뒤집어진 배는 기형적이게도 선수 바닥만 물 위로 치솟아 있습니다. 칠흑 같은 밤바다, 어떤 도움으로부터도 철저히 차단된, 아직은 죽지 않은, 아니 거의 죽어가는 생명들의 가녀린 숨결처럼, 외롭게 날아오르다 추락하는 조명탄 하나가 가늘게 빛을 비추다 사라져갑니다. 

그리고 바로 그 그림에 덧씌워진 크고 강렬한 글자들이 그림에 담긴 모든 비극적 이미지들이 내포하고 있는 함의를 간명하게 지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올해 가장 중요한 화두이자 향후 오랫동안 우리를 불안하게도 하고 화나게도 하며 절망하게도 할 바로 그 말은 “이것이 국가인가”입니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결코 볼 수 없는 배의 밑바닥이 하늘로 치솟은 것처럼 국가는 거의 전복된 듯, 철저히 무능하면서도 철저히 폭력적인 야만의 맨얼굴을, 여간해서는 보여서는 안 될 흉물스런 악마성을 드러내고 만 것입니다. 있으나마나 한 빛, 그 무의미한 조명으로는 아무것도 속일 수 없음을 저들은 모르는 듯, 그 칠흑 속에 연거푸 조명탄을 쏘아대지만 이미 무수한 이들의 생명의 신호는 짙은 바다 속에서 거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팬티바람으로 서둘러 자기들만 빠져나온, 비정규직인 선장과 일부 선원들, 그 철저한 몰염치함과 무책임 덕에 그들은 ‘구조된 자’의 명단에 들어가는 소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모순투성이의 항해였지만 그나마 침몰되는 사태에 이르기 전까지는 숨겨졌던 비열한 얼굴들이 사고의 순간에 가장 원초적인 형식으로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문제제기 앞에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진 국가는 재앙에 노출되는 순간 무수한 이들을 희생시키고, 더 많은 이들을 간접희생자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이들 간접희생자들은 희생자들로 인해 슬픈 기억과 고통을 안고 살게 되고 그것으로 인한 감정의 상처로 스스로 괴로워하며 또 타인을 할퀴고 가족과 이웃의 마음의 염증을 일으키게 하곤 합니다. 그리고 비열한 협잡꾼들, 남의 소중한 것을 짓밟고 불의한 권력자들의 악독함을 대리하는 자들은 그런 침몰하고 있는 국가라는 배에서 생존하는 소수에 속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잡지의 커버스토리 문구는 프리모 레비의 저서 이것이 인간인가를 연상케 합니다. 유태계 이탈리아인 화학도였던 그는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지하운동을 벌이다 1943년 12월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10개월 만에 극적으로 살아남아, 자신의 수용소 경험을 증언하는 저작을 1947년에 펴냈는데, 그것이 바로 그의 첫 번째 저서인 이것이 인간인가입니다. 

한데 이 책은 1960년대에 엄청난 논란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것은 이 책에 수록된 한 장 때문입니다. 그 장의 제목은 놀랍게도,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입니다. 레비는 1987년 자살함으로써 생을 마감하는데, 그의 마지막 저서(1986년)의 제목도 바로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한글 번역본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였으니,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이 장의 내용은 그가 평생에 걸쳐 증언하고자 했던 것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히틀러 체제를 낳은 유럽과 독일의 모순이 국가를 흉물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맨얼굴로 드러나게 했고, 그 흉물스러움이 가장 극한적인 야만과 폭력으로 응축된 것이 바로 아우슈비츠라고 보면서, 이 수용소의 적나라한 모습을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수용소(평균 구금 기간은 3개월 정도)에서 학살당한 이들은 무려 110~150만 명에 이르고 살아남은 이들은 고작 7천 명 정도입니다. 여기서 학살당한 자를 레비는 ‘익사한 자’로, 생존자를 ‘구조된 자’로 묘사한 것이지요. 한데 중요한 것은 ‘살아남은 자’는 대개 비열하고 야비한 자인 반면, ‘익사한 자’는 대개 아직은 인간성을 간직한 이들이었다는 점입니다. 해서 그는 저 구조된 자들을, 그런 이들이 주도하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체제를 향해 ‘이것이 인간인가’라고 항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엔, 《한겨레21》의 편집진은 레비를 호출하여 세월호 사건에 직면한 우리사회의 ‘국가의 몰락’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아마도 1993년, 세계화 정책부터일 것입니다. 레이건과 대처가 세계화에 보수적 자본주의의 세례를 베푼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맞이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서 길을 닦는 제도화를 시작한 것이지요. 그것이 1997년 외환위기로 이어졌고, 이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급박하게 신자유주의로의 길로 들어서게 된 나라의 하나가 되었지요. 

외환위기 이후 자리잡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핵심은 외주화(아웃소싱)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기업이 그렇게 했고, 심지어 공공적 성격을 지니는 기관들, 가령 학교나 정부도 그랬습니다. 나아가 정부는 공기업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민영화하여, 국가의 많은 기능들을 외주화하는 방식을 취했지요. 하여 천해진은 심지어 선장과 항해사까지 외주화했고, 해경은 생명구조의 기능을 사기업인 언딘에게 외주화했지요.

그 결과 국가의 공공적 성격은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오늘 ‘정의’니 ‘공공성’이니 하는 의제가 제기된 것은 바로 이런 국가의 공공성 약화가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우려가 세월호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익사한 자들과 구조된 자들의 극적인 양분화는 바로 민주주의적인 공공적 가치를 포기한 결과 국가의 야만적 폭력성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양상을 띠게 된 것이지요. 

하여 공공적인 것은 누군가의 독점물이 되었고, 사회적 경쟁은 독점을 향한 경쟁이 되었으며, 국가는 그러한 독점의 체계를 보호하는 데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사고로 희생자들이 생기면 국가는 그들을 구조하기보다는 그 사고가 발생시키는 이윤과 손실의 법칙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도전적인 슬로건은 바로 이런 현상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인 것이지요.

그런데 레비가 문제제기했던 히틀러 체제는 바로 대중의 열렬한 지지와 함께 대두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사회의 신자유주의화도 바로 물욕의 화신이 되어버린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동반하면서 급물결을 타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성서 구절은 고대이스라엘 사회에서 제기된 ‘국가화’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고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 부족동맹 시대 말기입니다. 평등이상을 지향했던, 그 누구의 권력 독점도 허용하지 않았던 부족동맹의 가치가 어느덧 심각하게 와해되고 있던 때입니다. 

그때 지도자는 사무엘이었습니다. 그는 에브라엠 부족의 지도자인 동시에 부족동맹 전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였지요. 그런데 그가 권력을 세습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두 아들의 배임과 비리, 불공정이 대중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여 대중은 사무엘에게 대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중이 요구한 것은 사무엘을 잇는 지도자가 아니라 군주입니다. 권력을 독점하고 세습하는 자요, 대중의 자원을 빼앗는 자입니다. 사무엘도 이미 그런 권력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아직 군주의 직책으로 대중을 이끌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전통적인 지도자인 ‘사사’의 직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한데 대중은 사무엘이 아니라 다른 이를, 그것도 군주로 떠받들겠다고 합니다. 

이유인즉슨 다른 나라들처럼 군주제를 도입하여 그이가 이웃나라들을 정복하고 그 자원을 배분함으로써 그 풍요를 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부족동맹은 정복전쟁을 치루지 않았습니다. 적이 쳐들어오면 지도자를 세워 방어전쟁만을 수행했지요. 한데 군주가 이끄는 나라는 나른 나라를 정복해서 그곳을 수탈하여 자기 백성에게 나누어준다고 대중은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데 사무엘은 군주는 나누어주는 자가 아니라 빼앗는 자라고 주장합니다. 사무엘은 평등이상이 무너지고 있는 사회에서 독점화되는 권력을 거머쥔 인물이었지만, 그럼에도 군주제로의 이행에는 반대하는 이였습니다. 그가 속한 에브라임 부족은 그런 이상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었지요. 

하지만 대중의 강력한 요구에 사무엘은 굴복하였고, 군주제에 보다 적극적이던 부족인 베냐민 지파의 사울이 왕으로 추대됩니다. 이스라엘 부족동맹이 와해되고 군주국 이스라엘이 등장한 것입니다. 물론 사울은 대중이 기대한 정복군주도, 사무엘이 우려한 독재자도 되지 못했지만, 얼마 후 이스라엘은 다른 군주국이 등장하여 사무엘의 예언대로 되었습니다. 

부족동맹이라는 정치체제와는 달리 군주국은 공공성을 개인에게 이양하는 체제입니다. 해서 무수한 이들의 자원과 심지어 생명을 경시하고, 독점 권력의 이익에만 민감한 고대적 국가 체제입니다. 그런데 그런 체제의 등장을 대중이 욕망했다는 것, 그것을 이 성서 본문은 적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대중은 희생자가 된 대다수 백성들과 성공한 소수의 협잡꾼들로 나뉘게 됩니다. 하여 이 본문은 ‘이것이 (당신들이 갈망하는) 국가인가’라고 되묻고 있는 것입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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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10]

 바울과 종말론

바울과 신비주의 II (슈바이처의 바울신학)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았나?

    지난 웹진에서 바울의 구원론(또는 칭의론)을 논함에 있어서 종말론적 긴장을 빼고서는 또는 바울의 종말론적 신비신학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개신교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칭의론(Justification by Faith)과 바울의 율법론을 논할 것이다. 슈바이처는 종말론적 그리스도 신비주의를 중심으로 현대 바울의 구원론을 수정하고 있다. 

    주기도문을 살펴보면, 분명하게 나타나있는 선택받은 자의 구할 것들이 있다. 일용할 양식(주의 만찬과 연관), 죄를 사함(세례, 구속), 유혹에서 벗어남(환난을 피함), 악에서 구원(종말론적 구원) 등이 그것이다. 여기 짧은 주기도문 안에 구원에 관한 4가지의 요소들이 함께 나옴을 볼 수 있다.[각주:1] 전통적인 묵시문학의 눈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으려면 적어도 두 가지는 필수적인데, 하나는 예수가 선택 받은 자들의 죄를 속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새로운 시대를 지배할 메시아여야 한다. 원래 묵시문학에는 속죄적 능력은 메시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보다는 선택 받은 자들의 믿음에 달려 있었다. 이는 제사전통과 예언전통 (특히 이사야서)의 대속적 제사장으로서의 모습에 메시아를 종합할 때 가능한 것이었고, 바울은 이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각주:2] 문제는 임박한 종말의 시대가 지연됨에 따라 원래는 “한 쌍이었던 속죄적 죽음과 메시아 왕국의 도래를 위한 죽음의 의미가 갈라지게 된 것이다.”(62) 

    그러므로 바울에게 속죄적 죽음에 대한 전승과 메시아니즘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속죄적 죽음은 이후 칭의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메시아니즘 또한 케노시스(자기비하: 자기를 비움)기독론 등으로 구체적인 윤리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각주:3] 하지만 속죄적 죽음의 기본적인 배경에는 종말사상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종말의 시대가 오면 하나님은 심부름꾼들에게 맡긴 세계의 종말을 선언한다. 그 종말의 선언에는 유대의 율법 또한 포함되어 있다.(갈 4:1-11) 그러므로 율법에 복종하는 것이 신앙의 중심이 된다는 뜻은 이미 끝나버린 세계의 군주에게 복종한다는 뜻이 된다. 즉, 예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바울이 율법을 반대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슈바이처는 주장한다. 여기에서 슈바이처는 그 이후에 칭의론 논쟁을 낳았던 바울의 율법폐기론이나 새관점 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간다. E.P. 샌더스, 제임스 던, 톰 라이트가 바울의 율법관이 율법적 공로주의가 아니라 계약적 율법주의라 보고 바울이 공격한 것이 유대 민족의 민족적 우월감이라거나, 선교적 전략이라거나, 전혀 다른 종교적 운동이라 함과는 달리 슈바이처는 바울신학의 종말론적 긴장에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결론이라고 본다. 율법의 시대는 선택 받은 자들에게는 끝이 났다. 그러나 그 효과는 지속된다. 왜냐하면 아직 예수의 메시아 등극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울이 때로는 율법을 호되게 비판하고, 때로는 그 유용성을 인정하고,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는 이유도 율법이 가지는 종말론적 긴장 때문인 것이다. 예수의 재림이 있기 전에는 율법은 죽었으나 죽은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율법폐기론의 의미는 율법의 완전한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보다 더 강한 자 곧 예수 앞에서 율법의 지배는 힘을 잃어 버림을 뜻한다. 그러므로 여전히 율법아래 있는 인간이 있고, 그보다 더 강한 자의 권세아래 있는 자가 있다. (막 3:27) 하지만 이 종말론적 긴장을 엿가락처럼 늘여버리면 율법은 마치 좀비처럼 남아서 움직이는 죽은 자로써 남게 되고, 재림하지 않는 메시아의 자리를 하나님이 직접 채우게 되는 상황이 일어난다. 슈바이처는 이러한 바울의 율법관이 헬라의 이원론적 영지주의가 들어오게 되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말한다.[각주:4] 연약한 인간은 늘어진 종말론적 긴장 속에서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것을 선택하기 보다는 달콤한 지혜의 열매를 먹고 육체가 없고 영만이 숨쉬는 삶을 살수 있다고 믿게 된다. 

    율법을 벗어버린 상태에서 구원의 가능성은 더 강한 자 메시아에게 가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다. 진정한 구원은 오로지 메시아의 재림에만 이루어지게 된다. 그럼 그 빈 공간을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어떻게 인간은 자신이 메시아 재림 시에 구원받을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율법없이, 유대교라는 테두리 없이. 슈바이처의 결론만 미리 말하자면 오직 하나다. Being-in-Christ. 이전 웹진을 기억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삶을 사는 것이 메시아 왕국으로 나아가는 대열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세례로부터이다. 세례를 통하여 예수 안에 (Being-in-Christ) 거하게 되는데 이는 율법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문제는 바울이 이를 설명함에 있어서 그 어떤 율법적인 언사도 쓸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율법은 필연적으로 행위(doing)에 그 초점을 맞추게 된다. 율법은 이러 저러 하게 하라는 법률을 통하여 공동체를 몸과 삶으로 느끼게 한다. 종말론적 공동체는 옛 시대 속에 불현듯 나타난 새로운 시대를 보는 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합일의 신비이다. 그래서 바울은 행함(Doing)의 반대말인 믿음(believ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된다.[각주:5] 가장 큰 이유는 히브리 성서(구약성서)에 이미 그 예가 나왔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창 15, 하박국 2장 4절- 의인은 믿음으로 인해 살리라.) 문제는 여기서 믿음(faith)이 의(righteousness)를 얻는 길로써 오해되므로 구원이 마치 하나님, 그리스도, 그리고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개인의 사건으로 오해될 때 일어난다. (219)

   어린 시절 주일학교로부터 우리는  ‘구원은 하나님의 것’이라든가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의를 얻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 의를 얻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면 흔히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토록 혼동되는 ‘믿음’이라는 표현, 과연 이것은 또 다른 하나의 공로주의인가? 아니면 행위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순수한 의식적 상태일까? 슈바이처는 이를 단지 바울이 율법적 표현을 피하기 위해 쓴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각주:6] 종말론적 입장에서 본다면 예수는 메시아로써 세상에 왔다. 메시아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가 불현듯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부활한다. 바울은 부활의 시점으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의 의미를 고찰한다. 바로 예수의 죽음은 대속적 죽음이므로 속죄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고 죽음과 부활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그리스도 공동체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구원의 영광을 누릴 것이다. 부활이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근본적인 속죄와 칭의가 예수가 새로운 육체로 부활했음에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육체는 죄와 사망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고 새로운 생명의 법의 영역에 속하여 있으므로 진정한 의로움과 구원의 가능성이 예수의 부활에 의하여 명확해졌다. 그 영역에 참여하는 것이 바로 바울이 목표로 한 것이다.[각주:7] 슈바이처가 바울에게 예수의 죽음의 속죄적 효과를 믿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 곧 구원이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울이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강조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그의 공동체가 예수가 걸었던 희생을 내면화하기 위해 사랑과 희생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 믿음이 행위로 구현되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라 슈바이처는 말한다.[각주:8] 그러나 이러한 칭의론은 바울의 신비주의를 설명하기 위한 부분일 뿐 그 뿌리가 되지는 못한다. 결국 바울에게 칭의론은 그의 종말론적 신비주의의 지지 논리 (Support Statements)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각주:9] 필자는 이에 동의하는데, 제임스 던이나 톰 라이트 등도 바울의 칭의론이 바울의 서신에서 율법적 칭의를 반박하는 데에 사용될 뿐, 그의 신학의 중심이라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바울의 칭의에 대한 슈바이처의 결론을 말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바울은 유대주의 전통에 따라 예수의 죽음이 대속의 효과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은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으로 육의 지배를 벗어나 영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야 말로 의롭게 되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므로 믿음이 아니라 Being-In-Christ가 바로 구원과 칭의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육의 지배를 벗어나는 것은 율법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데에 있다. 거룩한 율법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동시에 유대주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방법이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으로 이미 율법이전에 존재하면서 율법 안에 숨겨져 있는 단어인 ‘믿음’이라는 표현을 이용하여 이른바 율법주의적 종교를 비판적으로 수용/극복했다는 것이다.[각주:10] 슈바이처는 바울이 논리적 구원론을 쓰려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그의 신학의 정수가 종말론과 신비주의인데 이를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에게 ‘믿음’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신앙의 자세 정도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각주:11] 비극은 바울의 믿음을 개인적이고도 독립적인 것으로 바꾸어 칭의론을 구성한 데서 시작된다. 여기에서 구원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한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주고받는 거래처럼 그려진다. 이 세계와는 동떨어진 순수한 영적 거래와 같은 논리가 오히려 공동체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바울의 신학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슈바이처는 비판한다.[각주:12]

   

바울신학의 쟁점과 현대적 의미

  1) 성례전

    바울의 종말론적 신비주의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전 장에서 개신교의 핵심으로 부상했던 칭의론이나 성령론 등이 종말론적 긴장 속에서 다루어져야 함을 보았고 정작 바울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어떻게 개인이 구원을 받느냐가 아니라 옛 것이 지나고 새것이 시작된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이냐였다. 그렇기에 슈바이처는 바울 신학의 핵심은 칭의론이 아니라 성례전과 윤리학이라고 말하는듯하다. 슈바이처는 바울의 종말론적 신비주의를 설명하고, 칭의론이 바울의 그리스도 신비주의에 지지담론임을 밝힌 다음, 그의 저서의 마지막 두 장을 할애하여 성례전과 윤리에 대하여 논한다. 이제는 신약신학의 주변담론이 되어버린 성례전과 윤리를 다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성례전이라 하면 카톨릭교회에서 활발히 연구되었던 주제였다. 개인의 결단과 신앙을 강조하는 개신교 전통 이전의 카톨릭 교회는 사제가 행하는 성례전 (세례식, 성찬식 등)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례는 더 이상 개인의 믿음에 의지하지 않으므로 유아세례라는 방식까지 허용되게 되었다. (복잡한 이유로 현재의 개신교회도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인정한다.) 슈바이처 당시의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유대주의 전통에는 성례전이 없다는 것이었다.[각주:13] 그도 그럴 것이 성례전에는 신비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유대주의에 카발라라는 독특한 신비주의 전통이 있지만 율법적 공통체라 할 수 있는 유대교에게 보통의 고등종교가 가지고 있는 신과의 교통을 뜻하는 성례전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과의 합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불경이다. 결국 많은 학자들이 성례전적 전통은 헬라니즘에서 시작되어 기독교에 흡수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거스틴이후로 신학적 담론이 헬라적 우주론으로 재편되면서 성례전은 신과 교통하는 신비주의적 심볼(Symbol)의 의미를 띄게 된다.(필자의 공부가 부족하여 슈바이처가 말하는 심볼리즘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폴 틸리히가 말한 심볼리즘의 의미에서 본다면 어떤 기호, 언어, 모양, 형태도 심볼이 될 수 있는데, 심볼이 하는 일은 바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신의 뜻을 구현하는 것이다. 심볼에는 죽음 심볼과 살아있는 심볼들이 있는데 로마의 신전의 신들의 동상이 죽음 심볼에 해당할 것이다.) 

    슈바이처는 전통적인 성례전 이해에 반기를 들고 유대주의적 배경에서 성례전을 이해하고자 한다. 비록 고고학적 연구의 한계가 있지만, 세례 요한의 세례나 쿰란 공동체의 공동체에 입회하기 위한 목욕의식 등은 종말론적 공동체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성례전적 행위를 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슈바이처는 바울이 이러한 유대 전통의 몸 씻음과 주의만찬을 바울이 받아들여 그의 신비주의에 통합시켰다고 말한다.[각주:14]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만찬의 전통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중세에 와서 화체설이다. 아니다 여러 논쟁이 있었고, 보통 루터와 칼빈의 성만찬 이해 등이 성례전 연구에 중요한 분량을 차지 하지만, 슈바이처의 질문은 간단하다. 어떻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주의 만찬이 계속될 수 있었을까? 그 당시에 예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에 대한 신비적 유비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대답은 간단하고도 단순하다. 예수의 부활을 체험한 공동체가 그의 재림을 기다리며 식탁 공동체를 발전시켰다면 그 이유는 메시아적 축제 (Messianic Feast)를 반복하는 것이야 말로 예수를 기다리며 그의 부활을 축하하며 그의 영광에 참여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주의 만찬이 다른 종교전통에서 옮겨운 것이 아니라 바로 유대의 종말론적 전통의 결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각주:15] 그러므로 예수의 몸과 피를 나누는 것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고 참여하는 만찬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그의 죽음과 부활 속에 현존하게 되는 것이다.[각주:16] 종말의 시대에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되새기며 살아가는 방법, 그것이 바로 바울이 이야기하는 세례와 주의만찬이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바울의 그리스도 신비주의의 핵심이다. 

  2) 윤리

    흔희들 윤리나 윤리학이라고 하면, 착하게 사는 또는 올바르게 사는 방법 정도로 생각하거나 정의가 무엇이고 선(The Good)이 무엇인지 묻는 학문으로 본다. 만약에 바울의 윤리를 바울이 생각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법이라고 한다면 슈바이처는 이것이야말로 바울 신학의 결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보통의 칭의론이나 구원론에서 시작한다면 윤리학의 시작은 회개로 시작해서 회개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구원에 대한 개인의 확신과 변화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자연히 관심은 ‘회개’라는 특정한 변화에 쏠리게 된다. 그러나 칭의론의 생산자인 바울은 좀처럼 ‘회개’란 말을 쓰지 않는다. 공동체와 삶 자체에 관심을 가지면 삶 자체가 윤리를 포괄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의 신비주의 (Being-in-Christ)에 비추어 보면 윤리란 그리스도의 영의 역사함 자체이다. 바울의 윤리는 회개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 자체가 아니었던가 (갈 5:22).[각주:17] 

    슈바이처는 바울이 관심 없었던 주제가 하나 있었다고 한다. 바로 바울이 칭의론의 구원과 그의 윤리론을 연결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 둘을 그의 그리스도 신비주의에 대한 이해 없이 연결시켜 버리면 바울의 윤리론은 율법주의가 되어버린다. 바로 이러한 우를 범했던 것이 복음주의적 개신교회가 아닐까? 바울의 그리스도 신비주의에서는 윤리가 바로 구원의 자연스러운 결말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며 그와 함께 살아가는 성도가 어찌 완전을 추구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바울의 윤리가 그의 구원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완전한 새시대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각주:18] 온전한 하나님의 시대가 시작되지 않았기에 바울은 그의 신학에서 세가지 요소를 앞에 둔다.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 사랑이 가장 최고의 덕목이 되고 그의 윤리의 핵심이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믿음과 소망은 온전함이 오면 사라질 것들이다.[각주:19] 오직 사랑만이, 아직은 희미하여 잘 보이지 않으나 언젠가 마지막 나라에는 완전해 지는것,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 그 사랑은 이미 예수의 산상설교에 나타나 있는 것이며 그 완전한 형상은 오직 그리스도와 하나 될 때만 우리 앞에 나타난다. 이쯤 되면 왜 저명한 신학자이자, 음악가이자, 의사인 슈바이처가 모든 것을 버리고 아프리카로 갔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영원한 것, 바울이 말한 사랑을 담고 살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슈바이처는 바울의 가장 큰 업적은 윤리적 삶이야 말로 성령과 연합하는 삶임을 정의하고 사랑이야 말로 성령의 가장 높은 현전의 상태라고 본 것이다.[각주:20] 지금이야 당연한 것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윤리-성령-사랑을 연결시키는 것은 엄청난 신학적 상상력과 세계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사랑이 최고라면 타종교나 철학에도 그러한 가르침이 있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슈바이처는 친절하게도 이에 직접 답한다. 바울의 윤리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그의 윤리가 종말론적 기대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사랑의 윤리가 필연적으로 메시아 그리스도의 삶과 영에 연합될 때 구체화 됨을 뜻한다. 이러한 보편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특이성(Singularity)을 불어넣음으로써 종말의 시대에 완전함으로 달려가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영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런 바울의 사랑을 보편적 의미로 바꾸려 하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적어도 바울신학에게는 그렇다. 또한 바울이 사랑이 의미하는 종말론적 긴장을 제거하고 구원의 특이성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실수이다.  다원화 시대의 종교다원주의적 담론이나 칭의론에 치우친 복음주의적 담론이 바울의 종말론을 잊어버리면 범하는 우를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울 신비주의의 헬레니즘화

    헬레니즘은 원시 기독교 공동체와 신학에 여러 자취를 남겼고 이에 대해서는 끝없는 역사적 해석이 있을 것이다. 슈바이처에게는 아마 헬레니즘적 영향이 반갑지 않았을 것인데, 헬레니즘은 종말론적 긴장이 느슨해진 틈을 타고 기독교안으로 들어와서 바울의 종말론적 긴장과 신비주의를 헬레니즘적 이원론이나 영지주의적 구원론으로 덧칠했기 때문이다. 슈바이처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 바울의 그리스도적 신비주의는 종말론적 메시아주의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는데, 종말론적 긴장이 사라지면서 예수의 인격자체에 구원의 확실성을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각주:21] 곧 새 시대와 완전한 사랑을 믿는 신앙이 예수라는 개인을 믿는 신앙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원래 예수의 중요성은 종말론적 신앙의 효용성에 의지하고 있었던 것인데 말이다.[각주:22] 이미 헬레니즘의 유입을 슈바이처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삶의 개념을 포기한 헬라화된 신비주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의미하는 삶의 의미를 집어던지게 되었고, 이후 헬라화된 기독교가 윤리적 가치와 영적 의미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각주:23]


ⓒ 웹진 <제3시대>



  1. Albert Schweitzer, The Mysticism of Paul the Apostle (Baltimore, Md: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8), 60–61. [본문으로]
  2. Ibid., 63. [본문으로]
  3. Ibid., 64. [본문으로]
  4. Ibid., 73. [본문으로]
  5. Ibid., 207. [본문으로]
  6. Ibid. [본문으로]
  7. Ibid., 222. [본문으로]
  8. Ibid., 218. [본문으로]
  9. Ibid., 220–221. [본문으로]
  10. Ibid., 225. [본문으로]
  11. 여기에서 필자는 시카고신학교의 테오도르 제닝스 교수의 생각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피스티스라는 헬라어 단어를 ‘믿음’이라고 번역하는 것을 거부하고 ‘loyalty’라고 번역한다. 또한 의를 ‘righteousness’가 아니라 ‘justice’라고 번역한다. [본문으로]
  12. Schweitzer, The Mysticism of Paul the Apostle, 220. [본문으로]
  13. Ibid., 227. [본문으로]
  14. Ibid. [본문으로]
  15. Ibid., 248. [본문으로]
  16. Ibid., 271. [본문으로]
  17. Ibid., 294. [본문으로]
  18. Ibid., 301. [본문으로]
  19. Ibid., 306. [본문으로]
  20. Ibid., 309. [본문으로]
  21. Ibid., 335. [본문으로]
  22. Ibid. [본문으로]
  23. Ibid., 37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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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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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7.26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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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ateral Damage: 부수적 피해

‘부수적 피해’가 ‘부수적’이지 않은 이유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Collateral Damage는 군사용어입니다. 보통 한국어로는 ‘부수적 피해’라고 번역이 됩니다. 한국어로 쓴 ‘부수적 피해’는 Collateral Damage의 아이러니를 너무나도 잘 표현해 줍니다. 왜냐하면 ‘부수적’이라는 용어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 중 일어나는 민간인의 죽음과 사회 기관 시설 파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군사용어로써 Collateral Damage는 전쟁 중 일어나는 ‘의도’하지 않은 피해로써, 주로 적군의 주요 군사 시설을 파괴하거나 적군을 공격할 때 일어난 민간인 피해를 일컫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 중 일어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남성) 군인을 상대하는 전시 매춘업, 또는 강요된 매춘 등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Collateral Damage는 그 범위가 넓고, 피해 양상 또한 다양합니다. 또한 ‘의도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군사 작전의 목표물이 아니었다는 것이지, 실제적으로 민간인들 시설에 대해 공격 ‘의도’가 있었느냐를 판단하기는 힘듭니다.  

            Collateral Damage의 아이러니는 현대전에서 민간인의 피해가 전쟁 피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전쟁 중 사망하는 민간인의 수가 군인 전사자의 수를 넘기 일쑤이고, 1990년대 이 후 일어난 대부분의 전쟁에서 수많은 민간인 여성들이 성폭력을 경험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보면서, 다시 한 번 Collateral Damage란 표현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반기독교적이며, 심지어 무책임한가를 생각해 봅니다. 

            CNN에 의하면2014년 8월 6일 현재,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800명을 넘어섰으며, 부상자들 또한 10,000여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이 국제 사회에서 지탄을 받는 이유는, 사상자들의 대부분이 민간인들이고, 이 민간인들의 대부분이 집 안이나 학교에 있던 여성들과 어린이들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테러집단으로 규정된 하마스(Hamas)의 주요 군사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서 군사 공격을 한 것이며, 이 군사 시설들이 민간인 집단 거주 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민간인 피해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고 항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 가지 윤리적 질문에 맞닿게 됩니다. 하마스의 군사 시설과 땅굴을 공격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민간인 사살을 정당화하는 이스라엘과 민간인 거주 지역에 군사 시설을 설치한 하마스. 둘 중 어느 집단이 윤리적으로 더 지탄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이 민간인들을 공격을 할 때마다, 어린이들의 시체를 언론에 공개하는 하마스의 행동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 정책과 팔레스타인 점령이 하마스와 같은 무력 저항 단체를 만든 원인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로켓 공격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요? 군인들의 죽음과 부상은 민간인들의 피해와 비교해 볼 때, 윤리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를 정당화할 수 있다면 그 윤리적 근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이러한 질문들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전쟁의 장기화를 피하기 위해서 대량 살상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대량 살상 무기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사용한 원자 폭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필연적으로 ‘부수적 피해’를 야기합니다. 원자 폭탄 투하로 미국은 일본의 항복에 마르지 않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지만, 사상자들의 대부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시민들이였고, 원자 폭탄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를 이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전쟁을 단기 간에 끝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일어난 파괴 행위는 모두 ‘부수적인 피해’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 또한 아이언 돔의 사용을 정당화 하였으며, 최근 미국에서 탄력을 받고 있는 드론으로 알려진 무인 폭격기와 정찰기 사용 또한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피해를 ‘부수적 피해’로 용인할 수 있는가에 대한 윤리적 가이드 라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네바 협정이나 현대화된 ‘정의로운 전쟁’이론,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 입장은 전쟁 중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의 살상을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전은 안타깝게도 무장 군인과 민간인의 구별조차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더구나 게릴라전과 민간인을 동원한 폭탄 테러는 적국의 민간인을 모두 불시에 공격가능한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모든 민간인 피해를 ‘부수적 피해’로 규정하거나, 비윤리적 행위로 지탄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Collateral Damage를 최선을 다해서 줄여야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당연한 과제입니다. 결국 전쟁은 ‘죽임’의 행위입니다.  승전은 살육을 정당화하는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합니다. 적국에 속한 군인 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명제가 암암리에 전쟁 논리에 숨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이야기할 때, ‘죽음’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보도하는 대다수의 미디어에서도 민간인의 피해를 이야기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습니다. 전쟁 중 죽고 다치는 사람들과 어린이들의 사진을 보기는 하지만 죽음의 잔인성과 고통, 전쟁의 실제를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혹자는 아무리 잔인한 전쟁 영화도 전쟁의 맨 얼굴을 보여줄 수 없다고 합니다. 시체 썩는 냄새, 조각나서 여기저기 흩어진 몸. 불에 탄 시체의 냄새는 어떠한 영화나 사진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수적 피해’는 타인의 (고통스러운) 죽음과 남은 자들이 평생 짊어져야 할 고통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죽음은 결코 ‘부수적’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부수적’인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전쟁 윤리 중 가장 오랜 전통의 하나인 비폭력 평화주의 (pacifism)은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라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모든 인간들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은 그 근본이 거룩합니다. 우리 안에 내재한 거룩함은 다른 생명을 사랑하는 힘, 고통받는 생명을 자비로 끌어 안을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도로테 죌레는 기독교 영성 전통 중에 하나로 ‘타생명이 겪는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죌레에 의하면 예수의 고통을 신격화하고 우상화하여 인간의 고통과 분리시키고, 고통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 하도록 하는 기독교는 오히려 폭력을 묵인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격화된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몸이 폭력에 의해 야기되는 고통을 인간의 역사에서 분리시킴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 형벌을 가능케 한 조직적인 폭력을 보지 못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고통, 특히 전쟁 중 겪는 고통을 끌어 안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전쟁을 조장하고, 약자의 고통을 묵인하는 사회 구조에 대해 ‘NO’라고 저항할 수 있는 용기, Collateral Damage를 간과하지 않는 용기 말입니다. 수도원 전통에 기초한 영성 운동은, 고통에 감상적으로 접근하여 벗어나려는 행위가 아니라, 고통의 근원에 직면하고, 사회 부조리에 저항하기 위한 용기를 내재화 하는 행위입니다. ‘부수적 피해’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독교 영성 운동이 필요합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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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종달리 이야기

-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窓

이상철
(한신대 외래교수)

 

Intro: 내게 있어 제주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곳은 제주다. 내 인생의 처음 10년을 이 섬에서 지내고 나는 10살이 되던 해에 서울로 이주했다. 그 10년으로부터도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제주는 내 의식 속 심연, 라깡적으로 말하면 상상계(the imaginary)와도 같은 곳이다. 온갖 상징적 질서가 지배하는 서울을 피해 부모님이 살고 계신 이 곳 제주에 오면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할 때 느꼈을 상실과 소외가 역으로 잠시나마 회복되는 것을 점점 강하게 느낀다. 하지만, 나는 제주에 대한 선명한 자기의식이 없다. 상상계속 희뿌연 신기루 같은 기억의 조각들뿐, 그 어느 것 하나 나는 제주에 대해 명확히 설명할 자신이 없다. 그러던 차에 이번 제주 방문에서 7년째 제주 종달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내 신학교 동기 이재송 목사가 쓴  『종달 人, 종달 In 제주동네여행』을 선물로 받았다. 그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내 상상속 무의식의 영역에 존재했던 제주에 대한 해무가 걷히기 시작했고, 이 글은 그것에 대한 수줍은 고해성사다. 


Book Review: 『종달 人, 종달 In 제주동네여행』 (글+사진 이재송. 주훈/ 너의 오월, 2014)[각주:1]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분야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단어가 지역학(Area Studies)이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내부적으로는 90년대 이후 다시 시행되고 있는 지자제 선거와 외부적으로는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저물며 몰아닥친 세계화 영향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큰 틀에서 여러가지 지역학의 연구주제들이 있어왔고, 그것은 결국 궁극적으로는 공간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해야 할텐데, 하지만 애석하게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공간이란 삶의 터전이 아니라 돈벌이를 위한 토대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다. 용산, 밀양, 강정은 말할 것도 없고, 뉴타운 정책, 4대강 사업 등을 통해 우리는 익히 이를 혹독하게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진정한 대안적 공간은 가능한가?’ 라는 고민과 갈등이 언제부터 우리의 화두가 되어왔지만 그 성과는 그리 높지 않았다. 아마도 이론적 논의에 걸맞는 실제적 성과가 미흡했던 탓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나와있는 종달리 사람들의 ‘종달리 살기’는 삶-공간에 대한 숙고를 도모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모멘텀을 제공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진정한 유토피아가 실현되는 새로운 희망의 공간을 창출하자고 목에 핏대를 올리는 것은 아니다. 그냥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는 동안 가만히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꿈을 꾸게 하고, 책을 덥고 나서는 종달리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실현되는 ‘삶-공간’에 대한 기대와 응원과 희망의 마음을 갖게끔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최대 미덕이 아닐까 싶다. 


종달리를 아시나요? 

이 책의 저자 이재송은 제주 종달리를 갈릴리에 비유한다. 성전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예루살렘에서도 가장 먼 지역에 위치하였던 땅 갈릴리! 그 곳은 온갖 이주민들이 얽히고 설켜 복잡한 인적 지형을 이루고 있었던 공간이었고, 오랜 세월 동안 침략과 수탈로 인한 상흔을 깊게 간직하고 있었던 공간이다. 그 탄식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메시아에 대한 강력한 열망을 낳았고 그 에너지가 예수라는 한 사내에게 응축되다 빅뱅을 일으켰던 땅이 바로 갈릴리다. 

갈릴리가 이스라엘 맨 끝에 위치해 있었던 것처럼, 종달리 역시 제주 동편 끝에 위치한다. ‘종달(終達: 통달함을 마쳤다)’은 말 그대로 맨 끝에 있는 땅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때 제주목사가 부임하면 섬 전체를 순시하고 마지막으로 당도하는 지역이 종달리였다고 한다. 거리상으로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그보다는 심리적으로 인격적으로 제주중심에 살던 사람들이 종달리 사람들을 향해 느끼는 거리감에 대한 표현이 ‘종달’이라는 마을이름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지 않나 싶다.  

실제로 이재송 목사에 의하면 종달리는 관광객은 물론이고 제주 사람들에게 조차 흐릿한 지역이라 한다. 근처 성산 일출봉, 우도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종달리를 아세요?’ 라고 물으면 선뜻 자신있게 대답하는 제주사람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이렇듯 종달리는 그동안 철저히 묻혀 있었던, 책의 표현대로 라면 ‘제주의 속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지역이다. 그런 종달리로 지금 이주민들이 하나 둘씩 들어와 정착하면서 새로운 마을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종달리 사람들의 분포는 다양하다. 넓게는 원주민과 이주민으로 분류할 수 있겠는데 둘은 공히 종달리가 천박한 자본의 논리에 희생당하지 않은 채, 자연과 환경이 잘 어우러진 지금 현재 본래 모습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염원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를 닮았다. 


종달리 사람, 사람들…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되고 세계 10대 무역대국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 사회가 왜 이토록 이제는 손을 댈 수도 없는 총체적 위기에 시달리는 것일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이유가 근본적으로 마을의 상실, 마을의 상실로 인한 함께 사는 공동체의 상실에 원인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점은 책의 첫 장부터 강조되고 있다. 제주 올레길 종달리 부근을 걷다 만난 남자와 여자는 나중에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을 하였고, 후에 종달리로 내려와 ‘동네’라는 카페를 열었다. 그들은 말한다. “동네라는 공간이 그 사람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39). 동네가 더 이상 사람의 냄새가 나는 공간이 아니라 투기의 대상이 되어버린 일상에서 종달리에 정착한 이 신혼부부의 한마디는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의 지난날을 환기시면서 이후 전개될 내용들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을 부추긴다.

제주도에 있는 카페하면 바다를 연상시킬텐데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 카페를 짓고 “바다는 안보여”라는 제목을 부친 기이한 사람이 있다.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 읍내 다방의 업그레이드 버젼이랄까. 서울 생활의 고단함을 멀리하고 제주로 내려와 2014년 올 3월 1일 카페를 연 그이는 “(카페)’바다는 안보여’가 정말로 바다는 안 보이지만 충분히 쉴만한, 가치있는 공간이지요. 제주에 카페가 있다면 바다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고정관념이죠. 꼭 바다가 보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50) 그러면서 자발적 가난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서울살이에서는 조직사회 속에서의 압박과 심리적 부담감이 컸습니다. 그렇지만 제주로 온 이후 수입은 줄었지만 스트레스도 함께 줄었거든요. 물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있지만 버릴 것은 버리고 현재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56)

종달리, 아니 제주 동부에서도 유일한 서점이 종달리에 있다. 그 이름은 “소심한 책방”이다. 1인 출판사 ‘밑줄’의 대표인 서점 사장님 미라씨는 본래 섬진강에서 주막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녀가 제주여행중인 남편을 만나러 왔다가 종달리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그 후 이곳에 살면서 종달리에 없는 것을 한 번 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 서점 “소심한 책방”이다. 서점에 진열된 책들은 교보, 영풍의 베스트셀러 목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순전히 책방 주인이 추천하는 책들이다. 특별히 문단 등단에 실패한 사람들이 직접 차린, 대표적 문단권력이라 할 수 있는 ‘문학과지성사’를 패러디한, ‘문학과죄송사’의 책들이 이채롭다.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종달리와 어울리는 종달리스러운 서점이다. 책방 주인장의 바램이 있다면, “제주 그리고 종달리에서 가장 오래된 가장 작은 서점이 되는 것”(72)이란다.  

마을 한가운데서 ‘도예시선’이라는 도자기 공방을 운영하는 이주민 미현씨는 대중과 동떨어진 예술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머그컵도 굽고, 접시도 굽는다. 작업실 겸 카페인 공간에서 도자기 굽다 커피도 마시고, 사람들에게 도자기 굽는 강습도 하면서 그이는 그저 자기와 대화 할 친구 한두 명의 소중함에 대해 터득해 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종달리에 정착하고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94)는 신앙고백을 한다. 

아프리카에서 10년간 구호기관 활동가로 생활하다 2013년에 귀국한 하은이네는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물이 좋은 자연환경과 공동체성이 강한 마을에서 살게 해주는 것이라 믿는다. 이런 확신 속에서 종달리를 택한 하은이네는 “집은 미래를 위한 투자의 수단이 아닌, 나와 내 가족이 삶을 사는 곳”(122)이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이해 안 되는 이 순진한 전직 아프리카 거주민은 제주도가 아프리카와 많이 닮았다고 결론짓는다. “제주도는 아프리카와 많이 닮아서 좋아요. 아프리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어요. 예를 들면 ‘느림의 미학’ 같은 거?”(130) 어쩌면 종달리는 미쳐 분주히 돌아가는 세상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본래 우주의 속도, 우주의 운행을 다시 느끼고 회복하게 만드는 블랙홀 같은 곳일지도 모르겠다.  

종달리의 또 다른 명물 ‘로로하우스’! 헤어스타일리스트 남편과 연극배우 아내가 두 아들, ‘서로’와 ‘나로’를 데리고 종달리로 들어와 두 아들의 돌림자를 따서 ‘로로하우스’를 오픈하였다. ‘로로네 집’은 의자가 하나 밖에 없어 예약제로 단 한 사람의 손님밖에 받을 수 없는 헤어숍과 역시 단 한 명, 한 가족만 받을 수 있는 빈티지 독채 민박을 고수하는 게스트하우스가 함께 있는 공간이다. 그 부부는 종달리에서 느끼는 삶의 보람을 다음과 같이 적는다: “한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고 기쁨을 주는 데서 오는 것 같아요. 많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을 상대해서 일한다면 돈이야 많이 벌겠지만, 그런 보람을 얻기 어렵고요. 결국, 행복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 하는 가치관의 문제겠지요.”(140) 효용과 효율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단 한 사람의 가치를 우선 소중히 여기겠다는 이 당찬 부부도 흥미롭지만, 이 범상치 않은 사람들을 넉넉히 품고 있는 종달리의 지력(地力) 또한 만만치 않다. 

이 책에는 이주민들의 종달리 정착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토착민들이 이주민을 바라보는 마음, 그리고 종달리의 미래에 대한 염려와 희망의 메시지 또한 마련되어 있다. 제주로 시집와 40년째 살고 있는 본인 스스로를 ‘제주사람이 된 육지사람’이라 소개하는 ‘순희밥상’을 운영하는 순희씨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주민들이 잘 정착할까?’ 안스럽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마음이 늘 짠하단다. 그 따뜻한 마음이 ‘순희밥상’의 식탁에 고스란히 전해져 종달리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나 여행객들로 하여금 집 밥의 그리움을 잠시나마 잊게한다. 오늘도 종달리에는 순희밥상의 밥짓는 냄새가 자욱하다.    

종달리에서 감귤농사를 하는 토박이 농삿꾼 재민씨는 제주 곳곳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헤쳐져 본연의 모습이 파괴되는 것에 대해 안타까와한다: “개발이냐, 보존이냐 하는 문제로 세대 간 혹은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이 생겨납니다. 제주 전체가 앓고 있는 난개발에 따른 문제들이 종달리에서 만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예요”(109) 제주 원주민으로 지난 제주 역사에서 육지 것들에 의해 자행된 수탈과 만행의 역사를 알고 있는 재민씨로서는 이런 염려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재민씨가 마지막에 던진 투박하고 담백한 말 한마디에서 앞서 언급한 종달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접한다: “종달리가 가진 우리라는 개념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112) 


다시, 공간을, 그리고 사람을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공간이라고 할 때 그것은 마치 물건을 담는 콘테이너처럼 무엇인가 채워져있는 혹은 무언인가를 채워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공간이란 콘테이너에서 화물을 하적하고 남는 텅 빈 공간도 아니고, ‘화물을 꽉 채우고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다’라고 했을 때의 그 꽉 찬 공간도 아니다. 즉 공간이란 물건이 차면 사라지고, 물건을 비워버리면 남게 되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공간은 항상 사람과 사건과 함께 하는, 사람과 사건이 자아내는 관계에 의해 재구성되는 공간이어야 옳다. 그 관계가 무르익으면 사건이 되고, 그 사건이 쌓이면서 역사는 발전해왔다. 그리고 그 사건과 역사는 기억의 형태로 보전되고 유전된다. 다시 말해, 공간과 인간은 각각 주어진 실체가 아니라, 상호 관련성 속에 형성된다는 것이고, 이는 공간이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을 통해 재구성됨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과정과 공간적 형태는 긴밀히 연결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이런 이론적인 안내들을 접하면서 느꼈던 감흥보다 종달리 이야기를 한 장씩 넘기며 받은 감동이 더 크다. 이론적 현란함보다 실천하는 우직함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종달리 사람들로 인해, 그 사람들의 사연과 행위와 연대를 통해, 제주 동편 끝자락에 위치했던 물리적 공간이었던 종달리가 가장 제주다운 공간으로, 가장 창조적이고 유니크하고 자유로운 삶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상황을 종달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공간과 인간의 현상학’이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 사건의 중심에 교회가 있다.  


다시, 교회를 향해 헛된 희망을 품다

10년 만에 귀국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현재 한국사회에서 교회라는 말처럼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단어가 또 있을까?”였다. 그 원인과 이유에 대해서는 나보다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더 잘 아시리라 믿어 생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로서 신학자로서 교회에 대한 성찰과 대안적 모델을 놓고 고민하고 있던 내게 책을 통해, 그리고 직접 찾아가 본 종달교회는 이 시대에 교회가 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 Chapter는 ‘이주민과 원주민의 교차로 종달교회’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종달리로 처음 접어들어 마주하는 건물이 바로 종달리에 하나뿐인 교회인 ‘종달교회’다. 이 교회를 목회하는 이재송목사는 부임 7년 차의 어엿한 종달리 이주민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예전 교회와 지금 교회의 차이점을 굳이 말하자면 ‘개방성의 차이’인 듯싶습니다. 교회가 위치한 곳은 변하지 않았지만, 예전의 교회는 사람 키만큼 높은 담과 그 위로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져 있어서 도로변에서 교회가 잘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교회 담을 허물고 어디에서나 훤히 보이게 되었죠. 그래서 이제는 종달교회가 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178)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리고, 자기들만의 성을 쌓고 세상과 단절된 기존의 한국교회와 달리, 종달교회는 막힌 담을 허물고 세상과 화해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 본연의 모습으로 회귀하면서 저들만의 교회가 아닌 우리의 교회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이재송 목사는 이 지역에서 ‘가제트 목사’로 통한다. 옛날 어렸을 때 자주 불렀던 만화영화 ‘천하무적 짱가’의 주제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짜 짱가 엄청난 그 힘이 틀림없이 틀림없이 생겨난다~”처럼, 이재송 목사는 종달리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곳으로 달려간다.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의 이주로 인한 고민들, 그리고 실질적인 어려움들을 함께 나누고 해결하는 일, 이주민들을 향한 토착민들의 경계의 마음을 풀어주고 환대케 하는 일등 교회를 통해 토착민과 이주민들이 하나가 되게 하는 이벤트를 구상하느라 여념이 없다.[각주:2]

이러한 그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었을까? 최근 종달교회에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고 이재송 목사는 들떠있다: “그 바람은 여러 가지 꿈들을 품고 이주하신 분들이 저희 종달교회의 가족이 되신 겁니다. 시골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꼬마가 있고,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백발이 성성한 노인분들만 지키는 시골교회와는 다른 분위기가 펼쳐지게 된 것이지요. 그야말로 남녀노소 모든 세대가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신앙공동체가 되어가는 중입니다.”(184) 


종달리 하늘을 향해 다가오는 잿빛구름

이렇게 상기된 채 종달리 이야기를 하는 이재송 목사 앞에서 나는 아무런 말을 못했다. 종달리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대한 환희 못지 않게 앞으로 불어 닥칠 미래에 대한 염려도 함께 보았기 때문이다: “제일 큰 건 역시 땅값이 오르고 있는 점이에요. 개발에 대한 부정적인 면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마을을 떠나려는 마음이 아니라면 자기생활 터전만 지키며 살고 있는 원주민들에게는 땅값이 오르는 것은 꼭 좋은 면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어차피 여기 땅을 팔고 다른 데 가서 살려고 해도 그쪽 땅 값도 많이 올랐을 테니 땅값이 오른다고 해도 돈을 벌 수 없는데, 괜히 마음만 들쑤셔 놓는 거죠.”(111-112) 오랫동안 제주에서 그 땅을 일구며 살았던 토박이 농삿꾼 재민씨의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원리, 곧 자본축적의 논리에 의해 재구성된다. 자본주의의 과거는 생산과 소비를 공간적으로 분리시키고, 자본의 축적과정에서 공간을 끝없이 분할하고 확장시켜왔던 역사였다. 문제는 이를 통해 축적된 부가 일부 계층, 일부 지역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내부 모순을 은폐하고자 현대의 자본은 도로, 항만, 주택 등 대단위 건설투자를 확대하고, 이 공간들에 대한 투자를 통해 자본은 땅 값 상승 또는 은행 대출을 통한 돈놀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은 이윤의 창출을 이러한 금융자본의 논리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의 발전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패턴을 가장 단기간 동안 가장 농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었다. 

제주는 이러한 한국자본주의 운행과정에서 소외지역에 있었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제주특별법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발효된 이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 진 까닭에 년 천 만 명에 이르는 국 내외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고, 중국 투기 자본이 걷잡을 수 없이 제주로 유입되면서 임야, 대지, 건물 등을 무차별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마치 암세포가 온 몸에 퍼지듯 흉악한 자본의 법칙이 서서히 번져나가는 제주 땅에서 이 책에 기록된 종달리 사람들은 지금의 일상을 계속 누릴 수 있을까?  

 

에필로그: 쫄지마, 종달리!

순희씨는 본인의 말대로 5년 후인 70세까지 ‘순희밥상’을 잘 운영해야 할텐데. ‘로로하우스’내에 있는 1인 미용실에서 머리를 야하게 짜르고, 바다가 보이지 않는 카페 ‘바다는 안보여요’에 앉아 바다 바람을 쐬다 스르르 잠에 들면 얼마나 꿀맛일까. ‘소심한 책방’에서 방금 구입한 ‘문학과죄송사’에서 나온 책들을 낄낄거리며 읽고도 싶고, 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은 ‘도예시선’에서 ‘사랑과 영혼’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도자기도 굽고 싶다. 그렇게 마을에서 놀다가 주일이 되면 ‘종달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 이십 여명이 넘는다는 주일학교에서 오래간만에 아이들을 상대로 설교도 해봤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부디 종달리가 이 더럽고 매정한 세상속에서 끝까지 살아남기를. 그리하여 이 깡패와도 같은 신자유주의에 지친 영혼들에게 마지막 남은 비상구와도 같은 공간이 되기를 응원한다. 전략이 필요한 순간이고 기도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쫄지마, 종달리!


ⓒ 웹진 <제3시대>



  1. 알라딘 책안내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185467181 [본문으로]
  2. 종달리를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마지막까지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전하는 이재송 목사는 예수가 갈릴리 목수였듯이 종달리 목수로 통한다. 갈릴리 목수였던 예수를 따르는 이재송 목사의 삶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어깨너머로 배운 목수 기술로 헌 집을 리모델링 해드린다든지(하은이네), 집집마다 방치되어 있는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여 작은 가게를 개업하도록 돕는다든지(순희밥상), 이주하여 사업을 시작하는 분들과 공간적인 변화를 기획하고 시공한다든지(수상한 소금밭의 다락방) 등의 여러 도움을 드렸습니다. 참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했구요 … 그래서 때로는 주변 분들이 본업은 목사, 부업은 목수라 말씀하셔도 이젠 그냥 ‘그런가보다’ 합니다.” (182-18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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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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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주나그네
    2015.09.30 16:0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종달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펌 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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