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상상, 그리고 믿음[각주:1]

: <십계>와 <이집트왕자>를 경유하여,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의 신학적 관점


이상철
(한신대 외래교수)
 



  성경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때 가장 빈번하게 다루어지는 내용은 무엇일까? 예수를 소재로 하는 작품을 제외하고 그 다음 순위를 차지하는 것을 고르라면 단연 모세의 출애굽관련 내용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출애굽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그간 심심치 않게 제작되었다. 찰톤 헤스톤이 주인공 모세로 나왔던 <십계>(1956),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톤이 함께 부른 OST ‘When you believe’로 유명한 에니메이션 영화 <이집트왕자>(1998) 역시 출애굽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번에 개봉한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2014)는 구약성서 속 ‘출애굽기’를 뜻하는 영어 <엑소더스, Exodus>를 그대로 영화제목으로 사용한 케이스다. 구약성서는 세 종교, 즉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이슬람이 공히 받드는 경전인데, 순서상 제일 먼저 창세기가 나오고, 그 다음으로 등장하는 책이 바로 출애굽기[出埃及記, Exodus]다. ‘애굽’이 한자어로 이집트를 뜻하는 말이니, ‘출애굽기’는 풀이하면 ‘이집트를 탈출한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왜, 허리우드는 주기적으로 반복하여 모세를 소환하여 다시 무대로 올리는 것일까?




  왜, 다시 모세인가? 

  ‘엑소더스’라는 말에는 일종의 주술적 의미가 깃들어있다. 서구인들의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던 그 무엇을 의식의 차원으로 호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것은 바로 자유(Freedom)다. 프랑스 혁명의 구호들(자유, 평등, 박애)로 요약되는 근대적 가치들 중에서 자유는 더 이상 초월적 실재에 의해 포획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근대적 주체가 지녀야하는 덕목이었다. 자유를 쟁취하고 난 다음에서야 주체는 비로소 세계와 현실을 자신의 시선과 해석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오죽하면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말이 생겼겠는가? ‘엑소더스’는 ‘자유’에 대한 이러한 서구인들의 집단무의식을 기억하게하고 재생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자유와 해방의 원형과도 같은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류의 모든 숭고한 소재들이 그것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엑소더스’처럼 주기적으로 영화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상대적으로 다른 것들에 비해 성서 속 출애굽기 안에는 영화 흥행의 필수요소들이 배치되어 있다는 말인데, 예를 들면, 출생의 비밀, 스펙타클, 증오와 복수 같은 요즘 유행하는 극영화의 기본문법들이 그것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 모든 요소들을 하나로 엮는 강력한 네러티브가 없었다면 성서 속 모세이야기는 사장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대서사의 논리에 입각한 영웅담’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엑소더스’ 안에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한 인간이 신과의 접신을 통해 슈퍼맨으로 변신하여 결국에는 기적과 같은 역사를 이루었다’는 강력한 환타지가 있다. 허리우드는 이런 모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매 시대마다 당대와 관련된 강력한 서사와 대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찾아왔고, 이번에 개봉한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역시 그 법칙에 충실하다.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  

  성서에 나오는 출애굽기에 관해서는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는지?’에 대한 의심에서부터 출애굽 시기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홍해가 어디였는지?’ 에 대한 호기심까지 실로 다양한 영역에 걸쳐 문제가 제기되어왔다. 출애굽의 주체인 히브리인들에 대한 해석도 혈통적 의미의 유대인이 아니라, 당시 이집트 및 근동 지역에서 체제로부터 배제되어 떠돌아다니던 민중을 일컫는 ‘하피루(hapiru)’라는 말에서 ‘히브리’가 유래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출애굽 사건은 인류역사에서 최초의 집단적 민중봉기 사건으로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출애굽의 방식도 영화에서와 같이 60만 명이 한꺼번에 이집트에서 나왔다는 주장에서부터 몇 차례로 나누어 점진적으로 출애굽을 했다는 설까지 다양하다. 

  이렇듯 출애굽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출애굽 사건을 뒷받침할 정확한 역사적 기록이나 그에 걸맞는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성서에 나오는 출애굽 관련 내용과 영화상에서 드러나는 그것과의 차이를 비교하고 분석하는 것은 필자가 보기에는 별의미가 없어 보인다. 환원주의적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이 분야 문외한인 필자로서는 할 말이 없다. 아마도 그 분야 전문가들이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영화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이미 친절하게 해설해놨으리라 기대한다. 

  그렇다면, 신학을 전공한, 그리고 성서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도모하고자 하는 나는 2014년 헐리우드의 극영화 <엑소더스>를, 그리고 그 안에 배치되어 있는 21세기 모세를 어떤 시각으로 관전해야 하는 걸까? 이러한 물음을 갖고 얼마간 고민을 하다가 나는, <엑소더스>에 나오는 모세의  캐릭터를 다른 모세관련 영화와 비교하면서 시대마다 달리했던 모세의 초상을 추적하기로 했다. 그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각 시대에 대한 징후적 독해도 가능할 것이고, 모세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말이다.  

  

  모세에 대한 초상(肖像)들  

  뭐니뭐니 해도 성서 속 출애굽사건을 영화한 것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찰톤 헤스톤이 모세로 나왔던 영화 <십계>다. 학창 시절에 단체관람가서 그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는데, 홍해가 갈라지던 장면에서 보였던 모세의 카리스마가 압권이었다. 영화 <십계>는 1956년 헝가리의 소련에 대한 항거가 진압되던 해에 만들어졌다. 2차 대전 이후 미.소의 냉전체제가 확립되고, (미국 입장에서) 소련의 패권주의가 확인되던 그 무렵이었다. 

  반면, 에니메이션 영화 <이집트왕자>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98년에 개봉되었다. 1998년은 소련으로 대표되는 현실 사회주의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지 거의 10년이 되어가던 해였고, 신자유주의 체제속에서 자본에 의한 전 지구적 재편이 비록 많은 갈등과 저항들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그림을 하나씩 완성해 가던 무렵이었다. 이렇듯 두 영화 사이에는 시대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물심양면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그 차이에 대해 사람들은 이데올로기 시대에서 탈이데올로기시대로, 거대서사의 시대에서 작은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시대로,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세상이 바뀌었다고 저마다 논평을 한다. 

  허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출애굽관련 영화 속 주인공 모세는 이러한 시대상의 투영이라 할 만하다. 특별히 <십계>에서 모세역을 담당했던 찰톤 헤스턴은 람보, 코만도, 록키 등 냉전시대 허리우드 근육질 영웅들의 조상쯤 되지 않을까 싶다. 강철과 같은 의지과 불같은 추진력으로 악의 무리를 때려부수는 불패의 영웅말이다. 

  한편, <이집트왕자>에 등장하는 모세는 외형적 조건에서부터 찰톤 헤스턴과 대조적이다. 야리한 체격과 촉촉한 눈망울하며 어느 모습하나 혁명을 완수할 전사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1956년판 모세는 출생의 비밀을 안 다음부터 자신의 운명을 자각하고 변신하기 시작했지만, 1998년판 모세는 출생의 비밀을 알자 도망을 갔고 신탁을 받고도 주저하는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실제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묘사된 신탁관련 기사-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라는-를 보면 모세가 신탁이 내려진 이후 갈등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모세와 람세스와의 역학관계를 그리는 대목에서도 <십계>와 <이집트 왕자> 속 서로 다른 모세의 차이는 분명히 드러난다. <십계>에서 모세의 상대역 람세스 역할을 맡았던 배우는 대머리 배우로 유명했던 율 브린너였다. 찰턴 헤스턴과 율 브린너의 관계는 처음부터 팽팽했고 대화의 상대가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마치 1956년 당시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관계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집트왕자> 속 모세와 람세스의 관계는 함께 궁궐에서 자라면서 유년기 추억을 공유하면서 형성된 일종의 형제애 내지 우정같은 것이 깔려 있다. 아(我)와 피아(彼我)간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여러 갈등이 등장하지만 단선적인 해석의 잣대로 해명되지 않는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관계법칙이 1998년에 제작된 <이집트왕자>에는 깔려있는 셈이다. 

  

    홍해와 요단사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장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는 장면이었다. 백성들을 이끌고 바다에 이르렀을 때 모세가 신을 향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낙담하는 장면이 나온다. 반면, <십계>에서는 찰톤 헤스톤이 성경에 적혀있는 것처럼 모세가 되어 바다 위로 팔을 내밀자 바닥이 말라서 드러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 가운데로 난 마른땅을 밟고 지나갔다. 하지만, 영화 <엑소더스>에서는 모세가 팔을 바다 위로 내밀지도 않았고, 마른 땅이 드러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흐르는 물을 향해 발을 내 딛는다. 

    출애굽 과정에서 성서에 보면 크게 두 군데에서 물을 건너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는 홍해를 건너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홍해를 건너는 장면은 출애굽기 14장에 나오고,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은 여호수아 3장에 나온다.홍해를 건널때의 주역은 모세이고, 요단강을 건널때는 모세는 사라지고 모세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입성의 주역이다.    

    홍해를 건너는 장면을 다시한번 회상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이 갈라진 것을 보고 강을 건넌다. 반면, 광야 생활 40년 후 요단강을 건널때는 사람들이 물이 갈라지지 않았는데도 먼저 흐르는 물을 향해 사람들이 몸을 맡긴다. 전자는 어떤 표징이 먼저 있고 난 다음에 행위가 있는 것이고, 후자는 어떤 기적이나 징표를 보고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위 먼저 있었고, 물이 말라 기적적으로 땅이 갈라지는 현상은 그 행위 다음에 나타납니다. 

    홍해를 건너는 사건과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 사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인식론적인 전환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종교적 진화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우리에게 이제는, 신의 표상 따위는, 신의 감언이설 따위는, 신의 유혹과 협박 따위는, 우리에게 이제는 신의 권위 따위는 필요없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그런 표피적인 것이 없어도 우리의 신앙은, 그런 즉물적인 것이 없어도 우리의 신을 향한 확신은 변함이 없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보고 싶다. 

    영화 <엑소더스>에서는 홍해를 건널 때 성서에 나오는 출애굽 장면을 재현하지 않고, 여호수아기에서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을 홍해를 건너는 장면과 겹치게 만들었다. 성서적으로는 맞지 않다. 물이 갈라지고 난 이후에 물을 건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흐르는 물을 향해 먼저 들어가고 난 다음에 물이 갈라지게 한 것입니다. 아직 마른 땅이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퍼런 바다가 우리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현실의 문제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이 아무런 신호를 우리에게 보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흐르는 시퍼런 바다를 향해 몸을 맡긴다. 그러면서 그들은 새 역사를 스스로 창조해 갔고,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신을 마침내 쟁취해낸다.  


  에필로그: 신을 만나는 자리, 혹은 신이 오는 자리

  영화 <엑소더스> 속 람세스는 바다를 향해 도망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적하는 도중에 맞닥뜨린 갈림길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묻는 부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확신한다! 이쪽이다.” 람세스의 대사를 듣는 순간, 나는 갑자기 같은 시각 모세가 앞을 가로 막는 바다를 바라보며 불안한 눈빛으로 “나는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절규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모르겠습니다”와 “나는 확신합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종교적인 언어일까? 우리는 흔히 선(善)의 반대말을 악(惡)이라 말하지만, 악을 현실에서 구분해 내기란 만만치 않다. 어쩌면 악은 우리의 현실에서 ‘절대’라는 이름으로 살아있지 않나 싶다. 그것이 종교적 확실성이든, 이념적 맹목성이든 간에 인류가 저질렀던 모든 만행과 학살과 광기는 영화 속 람세스가 했던 “나는 확신합니다!”라는 절대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것 아닐까?

  이제 글의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이다. 곰곰이 생각하다 에필로그 제목을 ‘신을 만나는 자리, 혹은 신이 오는 자리’라 이름 붙였다. 문득, 이 대목에서 영화 속 모세가 산에서 신을 만나는 장면이 떠오른다. 성경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있는 야훼를 만났다고 적고 있다. 영화 <십계> 속 찰톤 헤스톤은 불굴의 의지를 갖고 신을 만나겠노라고 하면서 산으로 오르지만, 2014년 모세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 산을 헤매다가 얼떨결에 신을 만난다. 일상의 고된 노동의 현장 속에서 가뿐 숨을 몰아쉬다가 신을 만났다는 이야기다.  누군가는 그것초자 신의 섭리라고 말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현실에 뿌리박은 자신의 남루한 삶을 거역하지 않고 배반하지 않았던 모세가 그 삶속에서 신적원리를 발견한 것이라 말하고 싶다. 

  즉, 하늘의 음성이 들리는 자리는, 신을 만날 수 있는 자리는 내가 그 음성을 듣겠다고, 내가 그 신을 보겠다고 해서 찾아지거나 획득되는 자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람세스가 한 “나는 확신합니다”라는 발언은 신이 오는 통로를 가로막는 바리케이트와 같다. 신을 만나는 자리는, 혹은 신이 오는 자리는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실존적인 고민을 갖고 몸부림치는 여린 영혼이 위치한 그곳이고, 고통스러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단한 현실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은 채 묵묵히 이 땅을 살아가는 민초들이 서 있는 자리이어야 하지 않을까? 바로 그곳이 신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이고, 바로 그곳으로 신은 찾아온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은데... <끝>


추신> 이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원고 넘기기 전에 첨부한다. 나만의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영화 <엑소더스>에서 모세 역을 맡았던 크리스챤 베일의 모습이 점점 후반부로 갈수록 <십계>의 찰톤 헤스톤 모습과 닮아가는 것이었다. ‘혹, 이 영화가 냉전시대의 영웅을 그리워하는, 전 지구적으로 수퍼파워를 행사하고 싶어하는 미국의 집단무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영화 보고 나서 집으로 오면서 살짝 불쾌했다. (참고로 나는 미국에서 10년 살다가 2014년 7월에 귀국했다. 미국은 능히 그럴 수 있는 나라다!)    


ⓒ 웹진 <제3시대>



  1. 본원고는 ‘씨네21’(NO.983,2014.12.9.-12.16/52-53쪽;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8721)에 실렸던 기사의 작가판 원고다. 집필 과정에서 필자가 원고지 매수를 잘 못 계산해 분량을 초과하고 말았다. 게재된 ‘씨네 21’ 기사는 오리지널 원고에서 1/3을 빼고 다시 편집한 기사다. 본 웹진 원고는 편집 전 오리지널 Version임을 밝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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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몸짓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보는 내내 그 흔한 인생 이야기를 조용히, 영화적으로 풀어내는 감각에 부러움을 금치 못했던 영화. 관객이 이 영화 주인공의 살아가는 모습과 닮았느냐 안 닮았느냐 와는 

상관없이 또는 주인공이 살아가는 인생 여정에 동의 하느냐 마느냐 와는 상관없이 

영화 속 인물이 어느새 인생의 한 꼭지를 넘겨가는 모습에서 

수 만개의 또 다른 삶의 문턱에도 투영시켜 볼 수 있는 영화.

그래서 특별나게 화려한 인생일지도 모르는 한 유명 여배우의 삶을

내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도 무리 없이 유비 시켜 볼 수 있고 시간의 잔혹함 까지도 생각해보게 하는 꽤 괜찮은 영화이다.



주인공 '마리아 앤더스' ( 줄리엣 비노쉬 )는 '빌렘' 감독 대신 상을 받으러 스위스 실스마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빌렘 감독의 부고를 듣는다.

그녀는 20년전 빌렘 감독의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란 작품 속 '시그리드'라는 젊고 아름다운 악녀 역할을 맡아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이다.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실력 있는 젊은 다른 감독에 의해 시도 되는 

'말로야 스네이크'의 리메이크 작품에서

이번에는 젊은 '시그리드'의 동성애적 상대역으로, 시그리드에 의해 이용당하고 

버림받아 결국 자살하고 마는 나이 많은 직장 상사 '헬레나'역을 제의 받게 되고

작고한 빌렘 감독 부인의 배려로 감독의 스위스 자택에서 그녀의 비서 '발렌틴' ( 크리스틴 스튜어트 )과 대본 연습을 하게 된다. 

마지못해 제의 받은 ‘헬레나’ 역 앞에서 주인공 마리아가 보여주는 혼란과 갈등이 

이 영화의 창문 역할을 한다.

여태껏 그녀가 그녀 자신과 동일시하던 젊고 패기 발랄한 ‘시그리드’를 버리고 그녀와 상관  없다고 느꼈던, 항상 건너편 타자일 것만 같았던 나이 많고 버림받은 ‘헬레나’ 역을,

늘 시그리드로 살았고 늘 시그리드 여야만하는, 시그리드란 기표아래 살고자한 마리아는

헬레나란 압박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헬레나 적인 삶은 그녀에게 어떤 것인가.

아니, 좀 더 루즈하게 범위를 넓히자면 헬레나란 캐릭터에 한정할 것 없이 

삶의 진행에서 너는 언제나 시그리드이길 원하는가?

그것을 고집한다는 건 무엇인가? 또는 인생의 흐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지는가? 기꺼이? 천천히? 불현듯? 마지못해?...

영화가 던지는 그런 단답 불가능한 질문들을 풀어가는 단초는 대사 몇 마디가 아닌, 역시나 

영화다운 방법으로 풀어간다.



마리아의 비서 발렌틴은 마리아가 자신과 동일시하는 시그리드의 나이 또래이다.

마라아와 발렌틴이 '말로야 스네이크' 속 시그리드와 헬레나 역을 연습하는 장면은

사실상 가상과 실재가 불분명한, 그래서 현실의 두 여인의 관계와 갈등을 수면위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마리아에 비해 확실히 발렌틴은 대본을 해석하는 발랄함이 있고

헬레나란 역을 대하는 선입감도 없이 자유롭다. 그래서 매번 둘은 부딪히고 

역할 자체에 거부감을 안고 있는 마리아는 어느새 고리타분한 느낌을 풍긴다.

더욱이 발렌틴의 연애 생활과 젊음을 시기하는 듯한 그녀의 행동은 

동성애적 긴장감 속에 둘의 권력관계가 역전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즉 '말로야 스네이크' 속 두 여인의 관계와 어느새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연기 연습인지 현실 속 대화인지 모호한 얼마간의 시간 동안 

마리아의 연기는 연기라기보다 그녀 자신이다. 그녀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대척점과 같았던 어느 인생의 위치에 그녀 자신이 이미 스며들어있다.

둘의 관계는 확실히 마리아가 열세다. 그 이유는 발렌틴이 젊고 마리아가 젊음을 흠모 한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건 ‘시그리드’라는 이미 상징 기표화한 모습을 고집하고 동일시 세계에 갇혀 있는 마리아의 멈춰버린 운동력 때문일 거다.

이 불균형 관계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은 비서 발렌틴과 마리아가 산행을 하는 도중

발렌틴이 아무 말 없이 그냥 아웃되듯 사라지는 장면에서이다.

발렌틴과 발렌틴을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던 간에, 발렌틴을 떠나보낼 준비가 

됐던 안됐던 간에 그냥 사라져 버린다. 순식간에. 

이때 마리아는 수동성의 극치다.

하지만 마리아 자신은 그것을 알고 있을까.



또 한 번 영화가 보여주는 단초는 새로운 시그리드역을 맡은 조앤(클로이 모레츠)과의 관계에 의해서다. 그녀 역시 20년전 마리아가 그 역을 맡을 당시의 당찬 젊음을

소유하고 있다. 실제로 헐리우드 트러블 메이커인 린지 로한을 연상시키는 조앤은

유부남과의 스캔들을 일으키며 애정 행각에서 뿐만 아니라 연기에서도 신세대다운

거침없는 매력을 발산한다.

그리고 우여 곡절 끝에 연극이 상영되기 직전 무대 뒤에서 

마리아는 조앤에게 극중 시그리드가 헬레나를 버리고 떠나는 장면에서 

마지막인 헬레나를 위해 잠시 침묵의 시간을 준 후에 무대 밖으로 퇴장할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조앤은 차갑게 거절한다. 이미 끝난 헬레나에게 그럴 필요가 있냐고...

바로 그 거절의 장면, 이 영화 <크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 존재하는 클라이맥스 같지 않은 클라이맥스가 아닐까. 마리아는 헬레나 역을 위한 시간적 말미를 조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조앤의 거절에 예상 밖으로 순순히 수긍한다. 그리곤 준비된 무대 세트에 

걸어 들어가며 뭔가 좀 더 여유로운 모습으로 무대가 열리길 준비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정말로 순식간에 일어나는 이 꺾임의 클라이맥스는 사실 이 순간이 있기 전 내내 세련되게 유도한, 마리아와 비서 발렌틴과의 얽힌 에피소드와 새로운 시그리드역의 조앤과의 만남에서 깔아 놓았던 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한 순간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번 역시 마리아는 조앤과의 관계에서 열세였고 시그리드 역을 내어준 패배의 지점,

혹은 부탁을 거절당한 수동성이다.

그러나 비서 발렌틴과의 마지막 이별에서 보여주던, 사라진 발렌틴의 이름을 부르며 

헤매는 뒷모습을 보이던 준비 안 된 마리아의 모습은 아니다.

무대 위 자신이 있어야할 곳에서 자신이 연기해야 할 순간을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은 

안정되고 응축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런 걸 성숙이라고 말해야 하나? 아님 학습 효과라 해야 하나?

하지만 에누리 없이 말한다면 늙은 마리아는 두 번이나 젊음에게 보기 좋게 까인 거다.

얼레벌레한 상태서 까였건 학습된 상태서 재빠르게 수긍했건 

까인 건 까인 거다. 두 에피소드 중 무엇 하나 늙은 마리아가 우세인 적은 없었던 거다.

그러나 이 영화를 늙어가는 여배우의 성장담으로만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시간은 흐르고야 마는 것 그러니 이제 그만 시그리드를 놓아 주렴” 이런 타이름이 영화에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것 뿐이라면 영화도 인생도 너무 메마른 스토리에 한정된 게 아닐까.



그래서 영화 상영 중간 중간 보여 주었던 스위스의 자연과 

결정적으로 ‘말로야 스네이크’라는 구름이 마지막 단초가 되어 메마름을 적신다.

‘말로야 스네이크’는 스위스의 실스마리아 지역 말로야란 계곡서 보여 지는 구름 현상을 말한다. 구름이 계곡을 아우르며 감싸듯 흐르는 모습이 뱀과 닮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시 영화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 하자면 그 구름이 발생하는 곳은 ‘빌렘’이란 감독이 죽음을 맞이한 곳이기도 하다. 사실은 심장마비가 아니라 오랜 지병 끝에 

자살을 택한 장소이다. 빌렘은 말로야 스네이크를 보며 자살한 것일까?

또한 그 곳은 비서 발렌틴이 소리 없이 마리아와 이별을 감행한 곳이 기도하다.

사라진 발렌틴을 허둥지둥 찾는 마리아의 모습 다음 씬으로 스멀스멀 뱀 같은 구름이

그제야 몰려온다. 그 순간 마리아는 뱀을 본 것인가? 

영화상으로는 빌렘 감독도 마리아도 말로야 스네이크를 봤는지 못 봤는지 알 수가 없다.


바로 그것,  언제 산 너머서 밀려올지 알 수 없는 뱀의 움직임과도 같은 아름다운 구름, 어느 순간 감싸지고 밀려오고, 구름 생성의 기승전결을 확언할 수 없는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이 오히려 운명 순응의 잔혹함을 어루만져 주고 있다. 

뱀 같이 은밀한 구름의 움직임은 우리 삶의 엄폐물 속에 무엇이 숨겨져 불현듯 발현하며

우리를 열뜨게 할지, 아님 아무도 표현 못 할 삶의 끝에 이르게 할지

알 수 없는 또 다른 신비 공간을 제시한다.

그래서 영화 속 인물들이 구름을 봤는지 확언할 수 없는 것처럼

말로야 스네이크는 인생의 확언과 주인공 마리아가 겪었던 시간 앞에 어쩔 수 없던 잔인한 수동성을 지우는 은밀한 단초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시그리드’에서 ‘헬레나’로 주인공의 페르조나를 바꾸는 확연한 모습과 대조적으로 

‘말로야 스네이크’의 은밀한 아름다움은 영화 속에 함께 섞여져 확실한 것이 불확실한 것을, 불확실한 것이 확실한 것을 더 깊이 있게 만드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무대 위 마리아의 모습은 완숙하게 아름답다. ‘헬레나’를 받아 들였기 때문일까?

아님 ‘시그리드’ 뿐만 아니라 이제는 ‘헬레나’까지도 그녀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시기가 되어서 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까?

무엇으로 시간을 표현하든 그 것은 비가역적이고 잔인하다.

어떤 위로도 어떤 깨달음도 이 잔혹함을 누르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오는 내내 마리아의 마지막 당당함 보다는 

영화 속에서 잠시 보여준 산악 영화 <말로야의 구름 현상>이라는 

옛 흑백 영상이 내 머리서 맴 돌았다.

아마도 내 머리가 시간의 잔혹함에 대응한 자가 치료를 했었나 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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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02 13: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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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고 패기 발랄함이 시간과 함께.. 내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아도 가버리고, 그냥 우연히 길거리를 지나다 마주한 거울에 흠칮놀람..늙고 추레한 중년아줌마! ~ㅎㅎ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2. 2015.02.02 13: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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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고 패기 발랄함이 시간과 함께.. 내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아도 가버리고, 그냥 우연히 길거리를 지나다 마주한 거울에 흠칮놀람..늙고 추레한 중년아줌마! ~ㅎㅎ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영원한 일요일’, 우리 예배는 가능한가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책의 숭배자


나는 한 때 책에 대한 열렬한 숭배자였다. 책 읽기는 즐겁기도 했거니와 세상에 관한 온갖 비밀을 담고 있는 ‘지혜의 창’이기도 했다. 일상의 스케줄 잡기에서 항상 제일 첫 번째 관심은 ‘무엇을 읽을 것인가’에 있었다. 틈만 나면 도서관과 서점을 뒤졌고, 국내외 전문지들을 훑으며 출판동향을 파악하려 애썼다.

둘째는 책 읽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일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이런 저런 일에 많이 분주했던 시절이라 독서 시간은 늘 부족했다. 해서 밥 먹을 때도 책을 보았고, 화장실에서도 책을 놓지 못했다.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일하던 시절, 시골 산속에서 건물도 없이 가건물에서 업무를 보던 때다. 화장실도 없어서 바깥에 재래식 변소를 만들어 임시로 사용하던 때 나는 매일 변소에서 한 시간 이상을 죽치고 앉아 책을 읽었다. 훗날 연구소 건물이 지어진 뒤 동료들은 그 사라진 화장실을 ‘김진호기념관 터’라고 농했다. 그 몇 년 전 신학대학원 다닐 때 나는 늘 지하철을 이용했다. 환승시스템이 없던 시절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려면 왕복 16정류장을 걸어 다녀야 했지만, 아무 때고 밝게 조명이 맞추어져 있고 흔들림도 덜한 1시간의 여정은 독서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책읽기 강박증은 목욕이나 샤워할 때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했다. 내 서가에는 물속에 빠진 탓에 쭈글쭈글한 몰골을 한 책들이 있다. 목욕하다 물속에 빠뜨린 것이다. 흠뻑 젖은 책을 선풍기에 말리고 다림질까지 했지만 그 흔적을 다 지울 수는 없었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 결과 ‘올빼미’의 삶이 시작되었다.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3년 반 동안, 동네 산책을 한 것이 단 두 번에 지나지 않았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로딩되는 동안 손발을 씻고 밥을 차리고, 밥 먹으면서 모디터를 바라보며 일했고, 심지어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 그 3년 반 동안 누워 잠 잔 날이 거의 없다. 그렇게 잠 안 자고 한 것이 주로 독서였다.

독서광은 늘 자기 한계보다 넘치는 책을 갖고 싶어 한다. 책의 숭배자는 책의 수집광이기도 하다. 나의 책꽂이에는 먼지만 수북이 뒤집어 쓴 책들이 수없이 많다. 이미 있는지 모르고 또 다시 구입한 것도 여러 권이다. 

이런 내게 책은 세상이다. 혹여 그 책이 내가 사는 세상을 다룬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나는 책 속에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의 비밀을 읽어내려 했고 그렇게 얻은 지식이 곧 세상이라고 믿었다. 즉 책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 그 자체이고, 또 그 이상이다. 그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의 질서가 담겨 있을 뿐 아니라, 그 세상의 부조리함이 교정된 유토피아적 세계를 향한 예언이 들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데 책의 숭배자가 되기 이전에도 나는 ‘책’의 숭배자였다. 여기서 작은 따음표를 붙여 말한 ‘책’은 성서다. 그때는 ‘성경’이라고 불렀다. 즉 ‘정전’(正典, 정통경전)으로서의 유일무이의 책이다. 

여기서 주지할 것은 정전이라는 말에는 ‘유일한 책’이라는 의미도 있고 ‘완전한 책’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근본주의적 그리스도교 전통은 이 ‘책’의 유일성과 완전성을 ‘축자영감론’과 ‘성서무오론’으로 주장한다. 그런데 이 주장의 이면에는 ‘해석불가’라는 억견(dogma)이 뗄 수 없이 들러붙어 있다. 억견을 뜻하는 그리스어인 ‘독싸’(δοχα)는 근거를 전제하지 않고 강하게 제기하는 의견 같은 것을 뜻한다. 즉 성경은 이미 의미가 완벽하게 구축된 책이므로 누구도 임의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알다시피, 현실에서 이 말은 성서 해석권을 독점하는 존재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아무튼 성경의 숭배자였던 나에게서 이 책은 세상의 비밀을 담고 있으며 나아가 세상의 부조리함이 청산되는 새로운 세상에 관한 예언이 담긴 유일무이의 완전한 책이었다. 하여 고유명사로서의 ‘책’이든 집합명사로서의 ‘책들’이든, 그것들의 숭배자였던 때의 나에게는 동일한 인식이 두 시기를 꿰뚫고 있다. 책의 세계가 진정한 세계이며, 책 밖의 세계는 불완전하고 심지어 불온한 것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해서 세상을 알기 위해 반드시 책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1950년대, 두 명의 책의 숭배자 


그런데 나보다 더 열렬한 책의 숭배자였던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1950년대 한국 개신교의 절대적 존재로 부상했던 한경직 목사이고 다른 사람은 1956년 30세로 요절하기까지 슬픔과 참혹함과 아름다움이 뒤얽힌 한국적 아방가르드 문학을 이끈 시인 박인환이다. 요즘 내가 한참 1950년대 한국사회를 공부하고 있는 중에 만난 두 사람이었다. 

한경직 목사는 1945년 10월 남하한 직후부터 월남자 개신교 집단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 1950년대에 그는 남한의 개신교 사회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1953년, 한국교회사에서 뼈아픈 사건이 발생했다. 한경직의 프린스톤 신학대학 동창이자 그와 함께 한국 개신교의 중요한 지도자였고, 신학자이자 교육자로서 높은 존경을 받고 있던 김재준을 한국장로교회가 파문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 사건은 김재준 개인의 축출 사건을 넘어 그를 둘러싼 찬반 양 세력이 분열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대한예수교장로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 탄생의 슬픈 내력은 이랬다. 이때 김재준을 축출한 집단의 최고 지도자가 바로 한경직이었다. 

이 분열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월남자 기독교 세력을 축으로 하는 장로교의 주류집단이 신학생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던 김재준의 신학을 용납할 수 없었던 데 있었다. 특히 그의 성서관이 문제시되었다. 그것은, 간략히 말하면, 성서를 해석의 책으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한경직 목사는 김재준 목사 파문 사건이 발생한 지 20여일만인 1953년 5월 17일 영락교회 청년회의 헌신예배 때 성서무오론과 축자영감설을 지지하는 듯한 설교를 하였다. 요컨대 그는 현대신학의 흐름과는 달리 성경이라는 단 한 권의 ‘책’의 숭배자임을 명백히 하였다. 결국 그것은 해석될 수 없는 완전한 것이라고...... 

당시 그의 설교들을 보면 그가 보는 세계는 매우 단순, 명료하다. 세계는 선과 악으로 명확하게 구획되어 있었고, 선한 편의 사람들이 악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 사역자로서 그의 설교의 주요 목적이었다. 이때 저 명백한 악의 편에는 공산주의자들, 이단종파들, 나아가 자유주의 신학 진영, 그리고 미국과 서양의 소비문화 등이 있었다.

1955년 5월 22일 영락교회 주일예배의 설교 제목은 ‘너희도 온전하라’였고, 성서 본문은 〈마태복음〉 5,48이었다. 이 구절은 이렇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여기서 그는 교인들에게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높은 도덕성과 경건함을 요청하고 있다. 하느님이 하느님답게 완전한 것처럼, 사람은 사람답게 완전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신자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시인 박인환은 195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아방가르드적 모더니즘 작가였다. 그를 포함한 일단의 모더니즘 작가들은 대동아전쟁, 해방, 내전, 한국전쟁, 그리고 그 ‘전후’에 이르는, 하나하나의 무게도 감당할 수 없지만 그것이 짧은 시간 동안 첩첩이 쌓인 격동의 시간을 고스란히 겪으면서 청년이 된 이들이었다. 그들은 시대의 이야기꾼들이었다. 일단의 선배들이 그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고 과거 시간의 아름다움에 탐닉한 것과는 달리, 그이들은 자신들의 그 혹독한 시간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그것을, 그 체험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런데 글쟁이로서 그들이 직면한 딜레마는 자신이 겪고 있는 그 절박한 현실을 표현할 언어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웠던 언어인 일본어는 해방 이후 퇴출당한 언어였고, 한글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철저하게 붕괴되었다. 한글로 세계를 읽어낸 책도 없거니와, 그런 전대미문의 고통을 담아내고 개념화할만한 어휘도 없었다. 바로 이때 그들에게 시대의 이야기꾼이 될 수 있도록 어휘와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바로 책이었다. 특히 영어로 된 책들이었으며, 그것을 번역한 일본어 책들이었다.  

그때는 한국전쟁 직후, 그러니까 서양의 구호품들과 함께 그이들의 문화와 학문이 함께 휘몰아치듯 유입되던 시기였다. 박인환을 포함한 작가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과 그 너머의 질서를 묘사할 글과 그 사상의 결핍에 직면해서 서양의 책들에 빠져든다. 그들에게는 그 속에 세계가, 세계의 표면 뒤의 비밀들이 들어 있었고 그 비밀이 내포한 세계의 위기를 넘어서는 비전들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보았다.


강원도 인제의 박인환문학관에 재현된 마리서사. 그 앞에 박인환이 그려진 입간판이 서 있다.


박인환은 그런 비판적 모더니즘 작가들 가운데 책에 대한 가장 열렬한 숭배자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45년 조선이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그 해말 19세가 된 박인환이 성인으로서 했던 첫 번째 공적인 활동이 종로 낙원동에 ‘마리서사’(茉莉書舍)라는 20평 남짓한 서점을 구입한 것이다. 

이 서점에는 일본어와 영어로 된 세계문학전집이나 세계적 문인들의 시집과 소설, 화집 등이 꽂혀 있었다. 하여 이곳은 그가 세계를 읽는 지식의 창고가 되었고, 나아가 당대의 문인들을 비롯한 다양한 지식인들을 만나 한국사회의 현실과 비전을 이야기하는 담론의 장이 되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들이 공히 갖고 있던 어려움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담아낼 언어의 결핍이었는데, 이 서점에 비치된 서양 사상들을 담은 책들은 그이들에게 그런 결핍을 채워주는 생수가 되었다. 

그러나 3년 만에 마리서사는 경영난으로 폐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새로운 정보 습득의 기회가 되었다. 신문사 기자로 일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어에도 능통했던 그는 새로운 일터에서 당대의 최신 사상에 관한 정보들을 접하였고, 이런 외래사상들에 의존하면서, 책 밖의 세계를 책을 통해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책의 전령관이 되어갔다. 

하여 그의 시는 외래어들과 외국어들, 서양 사상의 관념적인 어휘들이 때로는 그것을 음역한 말로, 또 때로는 일본식 번역어들로 남발되어 있었다. 동시대의 또 다른 책벌레였지만 외래사상과 한국 현실 간의 긴장의 간극을 놓지 않으려 했던 동료 김수행은 이러한 박인환과 박인환 류의 시를 향해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일종의 ‘코스츔’에 지나지 않으며, 현실을 읽는 자기 사상의 성숙함을 담고 있지 못한 관념적인 유희에 지나지 않다고 혹평한다.


1955년의 일요일, 두 사람의 다른 시선


한데 한경직 목사가 ‘너희도 온전하라’라는 제목의 주일예배 설교를 했던 1955년, 그 해에 박인환이 발표한 시 〈영원한 일요일〉은 낯선 서구의 관념적 어휘들 대신 그의 시들에서 별로 볼 수 없었던 현장의 풍경이 언어로 고스란히 묘사되어 있는 것 같다. 현장을 묘사하기 위해 낯선 관념적 서양언어들을 화선지와 물감으로 삼아 그려내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그 현장에 관한 직설적 묘사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아마도 책의 관념적 어휘들 속에 함축된 서양의 일요일에 대한 풍경을 회상하기보다는 현장의 날선 관찰에 압도된, 그것을 직설하는 예언자의 시 같기도 하다. 

아래는 그의 〈영원한 일요일〉 전문이다. 


날개 없는 여신이 죽어버린 아침 / 나는 폭풍에 싸여 / 주검의 일요일을 올라간다. //

파란 의상을 감은 목사와 / 죽어가는 놈의 / 숨 가쁜 울음을 따라 / 비탈에서 절름거리며 오는 / 나의 형제들. //

절망과 자유로운 / 모든 것을 ......... //

싸늘한 교외의 사구(砂丘)[각주:1]에서 / 모진 소낙비에 으끄러지며 / 자라지 못하는 유용식물(有用植物). //

낡은 회귀의 공포와 함께 / 예절처럼 떠나 버리는 태양. //

수인(囚人)이여 / 지금은 희미한 철형(凸形)의 시간[각주:2] / 오늘은 일요일 / 너희들은 다행하게도 / 다음 날에의 / 비밀을 갖지 못했다. //

절름거리면 교회에 모인 사람과 / 수족이 완전함에도 불구하고 / 복음도 기도도 없이 / 떠나가는 사람과 //

상풍(傷風)[각주:3]된 사람들이여 / 영원한 일요일이여


이 시는 전쟁이 끝난 이후의 어느 일요일(어느 특정 일요일이라기보다는 전후, 그 무렵의 일요일들)의 삭막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시는 “날개 없는 여신이 죽어버린 아침”으로 시작한다.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처럼 ‘날개 없는 여신’은 구원할 능력을 상실한 역사, 진보, 계몽, 이상, 복음 등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전후 어느 일요일의 아침은 그런 아침이었고, 그 일요일 아침에 그는 폭풍에 싸여 “일요일을 올라간다.” 여기에는 아마도 일요일 교회의 예배당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화자의 풍경이 연상된다. 한국문학 비평가인 고미숙이 한국 근대화의 형성기에 근대화의 세 성소가 목욕탕, 병원, 그리고 교회였다는 말처럼, 박인환에게도 교회는 구원의 성소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 계단을 오르는 그에게 일요일의 교회는 구원의 장소가 아니라 ‘주검의 일요일’이다. 산자들의 일요일, 살림의 일요일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일요일, 살림에 실패한 일요일이다.  

전쟁으로 몸과 정신에 깊은 상처를 입은 무수한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고 있지만, 한경직 목사가 ‘목자 없는 양’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열거한 바 “38선으로 찢기고 6.25사변으로 쓰러진 한국의 대중들, 듣는 대로 10만 명의 고아, 30만의 찢긴 과부, 수없이 많은 눈 팔 다리가 없어진 상이군인들과 동포들, 가족은 분산되고 형제, 처자는 이산되고 올바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이 무리들”이, 전쟁의 태풍에 의해 ‘상풍 걸린’ 사람들이 구원의 장소 교회로 몰려오지만, 시인의 눈에 그들의 일요일은 주검의 일요일이다. 몸과 정신이 기억과 고통의 질병에 갇혀 버린 수인들은 일요일 교회에서 “다음 날에의 비밀을 갖지 못했다.” 여신이 죽어버린 아침에, 교회는 어떤 미래도 약속하지 못하는 주검의 일요일이다. 하여 아픈 이들뿐 아니라 아프지 않은 이들도 그 일요일에 “복음도 기도도 없이” 교회를 나와야 했다. ‘영원한 일요일’이라고, 한경직 같은 이가 소리 높여 주장하는 그 날에 말이다.

같은 해 독서광인 두 사람, 한경직 목사와 박인환 시인의 눈에 비추인 교회는 이렇게 달랐다. 한 사람은 교회가 구원의 장소라는 확신에 차서 교회 밖의 사람들, 목자 잃은 양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신념에 차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전쟁의 외상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교회를 직시하고 있다.

한데 성경의 숭배자인 사람은, 앞에서 본 것처럼, 책(성경)이 말하는 진리, 유일하고 완벽한 그것에 대한 자의식에 넘쳐 있다. 하여 그 진리에 배치된다고 그가 판단한 다른 성서 해석들을 배제한다. 그에게 배제된 성서 해석의 하나는 이른바 자유주의적 성서해석이다. 이것은 서양 근대주의의 시각에서 보는 성서다. 이 해석을 대표하는 김재준은 성서에서 유일하고 완전한 책의 과신에 저항했다. 

한편 그가 배제한 또 다른 성서 해석은 이른바 이단들이다. 이때 그가 염두에 둔 것은 당시 불일 듯 일고 있는 은사집회 현상이었다. 차분히 성서를 낭송하는 사경회가 아니라 “손뼉을 친다든지 책상을 친다든지 발을 구른다든지” 하는 감정이 분출하는 집회들이다.(1955. 06. 19 설교. 제목 ‘신앙의 正路) 그런데 이런 집회의 하이라이트는 질병치유다. 이에 대해 같은 설교에서 그는 말한다. “믿음으로 병 고치기 위해서 건강의 법칙과 모든 의약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건강의 법칙도 하나님이 내신 것이고 의약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일부러 기도로만 병을 고치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억지입니다.” 하여 그는 말한다. “안수하고 안수받는 이도 성경대로” 해야 올바르다고. 


1955년의 한강백사장에서 열린 천부교 박태선의 집회. 이런 은사주의 집회는 당시 전국곳곳에서 열렸다.


무엇이 그가 말한 성경대로일까. 한경직에 따르면 성경을 해석하는 근본 원칙은 성경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필경, 천부교의 박태선 같은, 자신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고 주장했던 것을 염두에 둔 말 같지만, 그렇다고 은사집회 전체가 이 말로 부적절함이 입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감정이 분출하는 집회를 통해 질병의 치유가 일어나는 것은 성경에 맞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물론 그는 병원을 짓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많은 외국의 지원을 받아낸 것이 사실이다. 해서 병원이 지어지고 약을 투약할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의 은사라고 해석하는 것이 그에겐 마땅한 일이다. 문제는 박인환의 시처럼, 일요일에 무수한 사람들이 교회를 향하지만 치료받을 수 있는 은사의 기회를 누리는 이는 절대소수에 지나지 않다. 그들에게 교회 예배는 주검의 일요일에 지나지 않다.

그때 무수한 은사집회가 전국 도처에서 일어났고, 구마사들이 열광적 집회를 통해 적지 않은 이들을 치유했다. 그 집회에는 전쟁으로 보건의료체계가 거의 무력화된 상황에서, 그나마 새롭게 건설된 의료시설을 이용할 기회를 못 누린 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대개 일자무식이었고, 정보에서도 철저히 소외된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구마사들이 다가가 치유의 손길을 펼쳤는데, 그들 중 다수가 기독교계 구마사들이었다. 

하지만 주류교회는 1950년대 중반경, 이런 이들을 정죄하기 시작했다. 특히 대표적인 구마사인 천부교의 박태선과 용문산 기도원의 나운몽이 개신교 교단 총회로부터 이단으로 지목되기 시작한 해가 바로 한경직이 이런 설교를 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이 되었으며, 박인환이 〈영원한 일요일〉을 쓴 1955년이었다. 

어쩌면 한경직은 그가 ‘목자 없는 양’과 같다고 묘사한 대중의 고통을 바라볼 때, 그의 눈에는 유일하고 완전한 책인 성경이 먼저 보였는지 모른다. 한데 그가 본 성경은 다른 해석들, 그 가능성들을 배제한 성경이다. 오직 자신의 생각이 투영된 성경만이 유일한 진리인 책이다. 해서 그는 고통의 해결책도 자신이 제시한 것 외에는 수용할 수 없었다. 결국 그가 생각한 해결책은 모든 이들이 교회로 몰려오는 것이다.

그런데 박인환은 그렇게 몰려드는 교회의 일요일을 ‘주검의 일요일’이라고 말한다. 그 날에는 복음도 없고 기도도 없다. 영원한 일요일을 주장하는 이들의 ‘영혼 없는 찬양’만 있을 뿐이다.


2014년의 12월의 일요일, 우리의 예배는 가능한가


안산, 안성, 강정, 성소수자들, 쪽방주민들, ......,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장소, 많은 사람들이 신음 소리를 발하는 2014년의 한국. 교회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일요일마다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찬송이 끊이질 않는다. 하늘에 영광, 땅에는 평화를 선포하는 주님 오심의 메시지가 세상을 구원할 것처럼 말이다. 한데 박인환의 〈영원한 일요일〉은 여전히 그날 교회를 향해 올라가는 길에 작은 돌이 되어 우리의 발길을 불편하게 한다. 


ⓒ 웹진 <제3시대>




  1. 사막에서 거센 모래바람으로 만들어진 작은 구릉을 말하는 것으로, 두 번째 연의 문맥에서 전쟁으로 모래언덕 같은 강토가 모조리 으스러져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불모의 땅이 되어버린 현실을 시사하고 있는 것 같다. [본문으로]
  2. 볼록한 모양을 가리키는 일본어로, 평탄치 않은 고통의 시간을 뜻한다. [본문으로]
  3. 바람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질환을 가리키는 한의학 용어로, 전쟁으로 인해 상처입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 같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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