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기다림: 변화와 희망의 정치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실업과 불황에 허덕이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다. 나라의 살림이나 정치가 그렇고, 세계정세 또한 다르지 않다. 불안과 공포와 절망은 오늘 우리 시대 우리 사회를 대변하는 정서다. 문제나 갈등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 사회가 절망 가운데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불안과 공포와 절망의 근원은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희망 혹은 전망을 찾을 수 없다는 느낌에 있다. 이처럼 전망부재의 불안과 공포와 절망의 현실 가운데서, 우리는 어떻게 성탄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 했는데, 어떻게 평화의 새 시대를 향한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라 하였다. 지금까지 지켜 온 삶의 방식이 극에 달하여, 한 사회의 살림이 정체되고, 정치가 소통불능의 상태에 도달하고, 더 이상 미래의 희망을 말할 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 도달하면, 이제 그 삶의 방식을 전적으로 변화시켜 내야 하고, 그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신뢰와 소통의 길을 만들고, 더불어 함께 새날의 꿈으로 살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이 시대 우리 사회는 막다른 골목에 서서 길을 잃는 사람처럼 서 있다. 그 차갑고 어두운 길의 끝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주저 앉아 있다. 분명 막다른 길임을 아는데, 이대로는 삶이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데, 다시 원점으로 서둘러 돌아가 새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 뒤돌아 설 줄 모르고 여전히 앞을 향해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응시할 뿐이다.  

         정치란 통치권력을 세우는 문제이기 이전에 새로운 삶을 향한 변화의 의지요 결단이어야 할 것이다. 세겜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았을 때 요담이 했던 경고(판관기 9:7-15), 왕을 세워달라는 백성들의 요구에 대한 사무엘의 응답(사무엘 상 8장),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자 자신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달려드는 사람들의 요구를 뿌리치는 예수의 말씀은, 정치가 권력을 세우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라고 보았던 한나 아렌트의 통찰을 예상하고 있다. 참된 평화의 길을 향해 새로운 삶의 길을 함께 결단하는 일, 그것이 바로 정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의 정치는 막다른 길에서 사람들을 서성이게 하고 있다. 분명 이대로는 갈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정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외면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과 가치관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며, 결국 닥쳐 올 모든 문제들을 다 극복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래서 현재의 삶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거짓된 믿음을 부추기는 정치, 그 거짓된 믿음 위에 기생하는 정치가 지배하고 있다. 결코 끝이 아니다. 파국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변화는 필요 없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닿았다고 말하는 세례자 요한은 과대망상일 뿐이고, 예수가 다시 오셔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이 때가 되면 누구나 한 번쯤 떠 올리는 익숙한 그림들이 있다. 차가운 겨울 달빛 아래, 그 추위와 밤을 견디고 있는 겨울 나무와, 혹한을 견디며 단련한 맑고 투명한 정신을 말하는 듯한, 하지만 계절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붉은 과일하나. 또 열매와 잎을 모두 벗어버린 맨몸으로 휘몰아치는 북풍한설을 정면으로 응대하며 겨울 들판을 지키고 선 나무들. 이 겨울 그림들을 통해 우리는 고난과 절망의 한 복판에서 희망을 일구어내는 삶의 길을 상상한다. 그 그림 속에는 막다른 길에 선 자의 변화를 향한 강렬한 희망과 과감한 실천이 있다. 우리를 가두고 길들여 온 가치와 질서에 대한 깊은 반성이 있고, 삶의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는 용기와 겸손함이 있다. 모든 거짓과 허위를 벗어버리고 삶의 근본을 붙드는 힘, 곧 사회와 인간이 자신의 진정한 뿌리를 되찾는 모습이 그 안에 있다. 나는 이것이 막다른 길에 선 사회와 인간이 실천해야 할 정치의 참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도끼가 나무 뿌리에 닿았다는 종말과 파국과 변화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성탄의 희망이 들어설 자리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살든지 창조 직전의 마지막 순간에 있는 것처럼 살라고 했던 에른스트 블로허의 가르침을 생각한다. 마지막 순간을 창조의 순간으로 아는 사람들, 지금 여기를 마지막 순간으로 알고 삶의 근본적인 변화와 창조의 새 날을 향한 희망의 정치를 세우는 사람들, 그들에게 성탄은 하늘이 그들과 함께하고 있음에 알리는 은총의 메시지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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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즘과 반이슬람주의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지난 11월 13일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공격. 그리고 12월 2일 열네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 버나디노에서 있었던 총격 사건.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전세계적인 인도주의 목소리가 이 두 사건으로 묻혀 버린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2001년 9월 11일,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공격한 테러 사건 이후로, 지난 십여년 동안 세계 뉴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것이,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민간인들을 상대로 행한 테러 공격이다. 파리와 샌 버나디노 사건이 서구 미디어들에 의해 재생산되고, 은연 중에 반이슬람 메세지를 퍼트리는 이유는, 이 사건들이 소위 말하는 이슬람 세계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서구 사회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반이슬람 정서가 뿌리 깊은 서구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종교적 관용이나 다양성에 대한 관용 정신은, 이슬람이란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던 테러리스트들, 총기 난사범들로 인해 사라졌다. 그나마 이슬람에 대해 조금이라도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미디어들 조차도, “모든 무슬림들이 테러리스트들은 아니지만, 모든 테러리스트들은 무슬림이다”라고 말한다. 이 주장은 상당한 헛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샌 버나디노 총기 난사 사건을 대하는 FBI의 태도에서 보듯이, 총기 난사 사건이나,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가 일어났을 때, 가해자가 백인이거나, 비무슬림인 경우에는 주로 가해자의 정신 상태에 대해 먼저 감정을 한다. 즉 사회 부적응자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 외톨이들이 자신들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 하고, 불특정 다수들, 주로 약자들을 대상으로 분풀이를 한다는 논리로 접근한다. 이러한 접근 방법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썩은 사과 이론’이다. 사회는 별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는데, 몇몇의 썩은 사과들이 사회 질서를 위협하므로, 이 썩은 사과들을 벌하고 골라냄으로써 공공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반면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폭력을 사용한 가해자가 무슬림이거나 이슬람과 연관이 있는 경우에는, 논리가 달라진다. 즉 이들의 정신 상태나 통제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분노가 문제가 아니라, 이슬람이란 제도화된 종교가 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문제이다. 이슬람이 폭력을 조장하는 비윤리적인 종교이기 때문에, 이 종교에 심취한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들이거나, 잠재적 테러리스트들이다. 더 나아가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다른 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 보다 높다고 본다. 이러한 논리는 반이슬람 정서를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슬람이 테러리스트의 종교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이슬람이 테러리스트의 종교라면, 기독교, 불교, 유교, 힌두교, 등등 세상의 모든 종교들이 테러리스트들의 종교가 될 수 있다. 같은 논리로, 비종교인들도 충분히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테러리스트는 종교 논리 보다는, 정치, 사회, 문화 환경 때문에 생겨나는 경우가 더 많고, 인간들의 본질적인 폭력성이 해결되지 않는한, 테러는 항상 일어날 수 있다. 더구나 극단주의적 이슬람 교도들이 (또는 극단적인 기독교, 유대교, 불교 등등의 신봉자들) 테러리스트가 될 확률이 높다고 주장하기 전에, 이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 또는 정신 상태, 가족과 친구들의 관계 등등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테러리스트들을 행동화시키는 여러 가지 요인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인권 운동가이자, 팔레스타인 해방 신학센터인 사빌 (Sabeel)을 만든, 성공회 신부 나임 아틱 (Naim Ateek)은,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의 자살 폭탄 테러를 신학적으로 고찰하면서, “아랍인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덜 폭력적이지도, 더 폭력적이지도 않다”고 이야기 한다 (A Palestinian Christian Cry for Reconciliation, 2008). 그렇다고 아틱 신부가 테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테러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더 강화하고, 더 큰 폭력을 불러오기 때문에 반대한다. 그러나 테러가 왜 일어나는지 그 뿌리를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의 조직화된 테러 공격을 막기 위해 필수적인다. 팔레스타인의 상황에서 보면, 테러리스트가 되는 팔레스타인의 젊은이들은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모욕을 당해서, 친구나 친척이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살해되거나 상해를 당한 복수심 때문에, 억압적인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인한 억울함으로, 직업도 구할 수 없고 점령지에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 대한 울분으로, 고문을 당하거나 수감되었던 것에 대한 억울함, 희망없는 삶과 인종차별 등에서 생겨난 삶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로 자살 폭탄 테러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국 이스라엘의 억압적인 팔레스타인 점령이 테러리스트를 양산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군사화된 이스라엘의 폭력이 강해질수록, 팔레스타인의 폭력적 대항과 자살 폭탄 테러는 더욱더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서구 미디어나 일반 대중들은 국가나 공권력이 행하는 조직화된 폭력과 민간인 학살 보다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더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대는 것 같다.  


         다른 종교적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이슬람도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르침들이 있다. 이렇게 사용된 종교적 해석은 사회적으로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이슬람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통해 다른 무슬림들이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들을 순교자들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테러의 목적이 적을 교란시키고, 적에게 공포감을 안겨주기 위한 것이지만, 이슬람의 가르침에서 본다면, 적을 죽이는 것이 테러의 목적이 아니라, 무슬림 형제 자매들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다. 이러한 순교자들은 ‘거룩한 전쟁’으로 번역되는 지하드 (jihad)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하여, 신의 뜻인 정의를 세우고, 남은 형제와 자매들이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권위있는 이슬람 학자들은, 민간인을 상대로 한 테러는 이슬람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지하드는 육체적 전쟁과 영적 전쟁으로 나뉘어 지는데, 영적 전쟁인 지하드를 더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본다. 영적 지하드는 일상의 삶 속에서,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께 철저히 복종하기 위해 치르는 전쟁이다. 그렇기에 이슬람에서 ‘다섯개의 기둥’이라 알려진 종교적 의식이 중요한다. 이 기둥들은 유일신인 하느님과 (알라 Allah는 유일한 하느님이란 뜻의 아랍어) 선지자 모하메드가 그의 메신저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하느님께 드리는 다섯번의 기도, 라마단 기간 동안 하는 낮동안의 금식,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 메카로의 성지 순례이다. 이들 다섯 가지는 모두 무슬림들이 영적인 지하드에서 승리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것들이다.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또한 살인을 금하고 있으며, 순교 행위 또한 살생이나 종교 시설을 파괴하는 행위를 포함하면 안 된다. 굳이 이야기 하자면,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다. 무슬림들의 인사가 서로의 평화와 안녕을 비는 인사이듯이. 내가 지금까지 만난 무슬림들은 모두들 하느님을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친절하고, 여성들을 존중한다. 이들 중엔 소말리아 난민 출신도 있고,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 보스니아 난민 출신도 있다. 이들이 기꺼이 난민의 대열에 합류하여 미국에 정착한 이유는 폭력과 테러리즘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만약 서구 사회에 정착한 난민들 중에, 또는 그들의 자녀들 중에 자발적으로 테러리스트가 되는 경우가 있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서구사회에 뿌리 깊은 인종 차별과 난민들에 대한 편견, 반이슬람주의,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 등의 사회 부조리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고, 이러한 부정의한 구조들을 고쳐 나가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 구조를 건설하는 것, 과거에 대한 용서와 화해의 장을 만드는 것,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정치 구조, 정의로운 경제 구조, 존중과 관용, 배려에 바탕을 둔 다문화주의 등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구조를 만들려는 사회 전체의 노력이 있어야, 테러를 막을 수 있다. 국제 사회는 IS, 탈레반, 알카에다, 보코하람, 남미의 마약 군주 등등의 테러조직들을 벌하고 응징하는데에만 급급하지 말고, 국제 사회 전체가 힘을 합쳐 어떻게 평화를 이룰 것인지, 어떻게 분쟁 지역에 무너진 사회 구조를 인류애 차원에서 재건설할 것인지, 국가 권력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된 안보와 평화를 이루어나갈 것인지를 함께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후로, 중동지역은 정치적으로 더 혼탁해졌고, 군사적으로는 더 폭력적이 되었다. 아랍의 봄이 실제 안정적인 평화 구조로 귀결되지 못 하고 있는 이유도,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반이슬람주의가 계속 힘을 얻어 가고 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고 있고, 무엇보다 권력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또는 오만한 우월주의와 엘리트 의식에 빠져, 민중을 먼저 생각하는 평화 협상은 하려고 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슬람이란 종교를 악의 근원으로 보는 것은, 평화를 위한 해법이 되기 보다는 위협이 된다.

  
          테러를 대다수의 신학자들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과 윤리학자들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갈등이나 전쟁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일반인들이 테러의 피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풀면, 전쟁에서 군인들은 무장한 적군을 죽일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고, 무장을 한다. 그러므로 무기를 소유하지 않은 일반 시민을 죽이거나 해를 가하는 것은 제네바 협정을 위반한 인류에 가한 범죄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현대전에서는 일반인과 무장을 한 테러리스트들을 구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무장 군인들을 상대로 한 테러, 군수 물자를 수송하는 일반인들에 대한 테러 또한 증가하고 있어서, 누가 (총기 난사범이 아닌) 테러리스트이고, 어떤 행위가 테러인지 구별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쟁은 공포심을 먹고 살며, 정치 지도자들은 어떻게 공포심을 조장하여 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문구에 속아서, 국가와 공권력이 행하는 전쟁과 폭력을 간과하거나, 종교를 테러의 정신적 기반으로 몰아가는 일에 동조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종교는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나약함을 먹고 공포스러운 괴물로 변질되기가 쉽다. 우리는 기독교의 역사가 피와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역사는 하느님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 놓은 권력과 폭력, 사회 구조, 그리고 타인을 두려워 할 때 반복되어 왔다. 10여년 전까지 계속된 내전으로 사회 기반이 무너진 스리랑카에서는 평화의 종교로 알려진 불교가 군사 폭력에 앞장 섰고, 일본 불교는 오랜 동안 군국주의와 전쟁을 지지하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인도에서는 힌두 급진주의자들이 국가주의와 결탁하여, 무슬림들을 살해하는 일이 최근까지 계속 되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를 버려야 할까? 무신론자들이 덜 폭력적이란 근거 또한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상황에 따라 어느 누구나 테러리스트가 되거나, 테러리스트로 불려질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이고, 이러한 현실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끊임없이 기도하고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인 베들레헴에서 아랍인의 얼굴을 하고 태어났을 예수. 예수께서 만약 지금 똑같은 모습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면, 그의 사진이 한국의 다음이나 네이버 뉴스에 뜬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댓글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불쌍한 아기. 너도 자라서 테러리스트가 되겠네.” 이 세상에 테러리스트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아기들은 없다. 그리고 테러를 지지하는 종교도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아기들은 아기 예수이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한 때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든 이들에게 증오 받는 테러리스트들도 한 때는 평화주의자로 자랄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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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에 관한 공개토론을 기대하며



 

백승덕*


 

          지난 9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400명 가까운 지식인들의 명의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검찰이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를 기소한 것과 관련하여 이 문제를 공개토론을 통해 풀자고 제안했다. ‘학문의 자유’의 상징이 돼버린 이 책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학계의 자율성을 지켜내고자 하는 고민들이 모여 만들어낸 자리였다. 국가권력이 법이라는 앙상한 잣대를 들고 학계에 개입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느껴지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들의 공개토론 제안은 학계가 법정을 대신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충분히 대변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했다. 어쩌면 학계가 이 사태와 관련하여 내놓을 수 있을 가장 적절한 대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자리에 참석했던 ‘위안부’ 생존자 유희남씨는 그러한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다. “지식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함부로 말해도 되냐?”  

          그의 질문은 ‘위안부’에 대해 말하고 있는 학자란 무엇이며, 대체 무엇이기에 그처럼 자유롭게 이야기할 권리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질문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여태껏 이어졌던 질문의 방향을 정반대로 돌려세웠다. 즉, 지금까지 학자들이 ‘위안부’가 무엇인지 물어왔다면, 유희남씨는 ‘위안부’ 생존자로서 ‘위안부’에 대해 말하는 학계가 무엇인지 되물은 것이다.  


학문의 경계


         학계의 존재 자체가 의심받는 사건들은 비단 <제국의 위안부> 사태뿐만 아니라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2015년 한 해 동안 역사학계에는 전문성에 대한 공격이 집중됐다. 그간은 역사인식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첨예하게 벌어져도 ‘역사는 전문가들에게 맡기자’라는 식으로 대충 마무리되곤 했다. 그러나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발표라는 초대형 스캔들이 터진 뒤부터는 사정이 완전히 변했다.

         2015년 10월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를 검인정 체제 대신 국정화하겠다고 결정했는데, 학계는 이 사태에서 애초부터 전문성을 부정당했다. 정부와 여당에서 “국사학자 90%가 좌파”라는 색깔론을 공개적으로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국사학자들이 교과서 시장에서 밥그릇을 지키려고 한다는 공격도 더해졌다. 색깔론에 밥그릇론까지, 국가가 나서서 학자들을 좌파·이익집단으로 몰아세웠으니 이야기가 더 진행되기 어려워졌다. 역사인식을 둘러싼 논란은 결국 학계 전체가 국가에 찍혀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게 된 사태까지 치닫게 됐다.

         역사학계는 정부의 국정화 방침에 ‘역사의 다양성’을 내세워 맞섰다. 국정교과서가 역사를 획일화하여 죽인 역사만을 가르치는 독재적 발상이라는 것이었다. 학계는 정부의 국정화 방침이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가가 역사해석에 개입한다면 역사가 획일화되어 학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해친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실제로 자국의 역사를 국정교과서로 가르치는 국가는 북한, 몽골, 스리랑카 같은 극소수 독재국가 밖에 없다는 사실도 학계의 비판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역사학계가 ‘역사의 다양성’을 한없이 세게 이야기하기는 곤란했다. 역사는 정말 다양한가? 학계는 앞서 검인정 체제에서 뉴라이트 성향의 교학사교과서에 대한 인정을 반대했던 적이 있다. 이 교과서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자료들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연도표기를 잘못하는 등 수준미달의 모습도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학계가 교학사교과서에 반대한 결정적인 이유는 이 교과서가 ‘바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교학사 교과서는 ‘친일 독재 미화’라는 비판에 부딪히며 전국 2천300여개 고등학교 중 3개 학교에서만 채택되고 말았다. 보수 정권이 집권하여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음에도 사실상 채택율이 0%를 기록했으니 참패였다. 이처럼 학계 역시 ‘역사의 다양성’을 무작정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다양성의 기준이다. 어디까지를 학문의 자유로 인정할 것이며, 누가 역사와 역사 아닌 것의 범위를 판단할 것인가? 역사는 다양한 것이므로 공공연히 친일을 미화하는 역사교과서도 얼마든 가능한 것일까? 반대로, 북한 정권이 발행한 교과서를 다양성을 내세워 남한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까?

         학계에서는 친일이나 북한 정권을 무작정 찬양하는 교과서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식민지배나 남북대치가 지금도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러한 교과서를 인정하면 학계의 객관성이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를 다뤘다고 어떤 이야기든 역사로 받아들인다면, 박사논문 한편을 쓰기 위해 한 청춘을 연구실에서 보내며 어렵게 훈련 받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학계에서 위서(僞書) 취급을 받는 『환단고기』 식의 역사관을 교과서에 싣는 일도 문제 삼을 방법이 사라진다.

          그러니 학계는 역사와 역사가 아닌 것을 분명히 구분하고자 애쓴다. 문제는 학계가 사회적으로 권위가 있을 때에만 이러한 구분 역시 실질적인 효력을 얻는다는 점이다. 반대로 학계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면 어떤 주장이든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그만큼 커진다. 이러한 경우에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권위가 더더욱 약해지기 때문에 역사와 역사가 아닌 것 사이의 구분이 더욱 모호해지기 십상이다. 이런 공간에서는 소수자들의 역사처럼 그간 억눌렸던 기억들이 새로 조명을 받기도 하지만 홀로코스트와 같은 학살의 역사를 부정하는 반동이 힘을 받을 위험도 크다. 한국의 넷우익들 역시 역사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광주항쟁이 북한의 사주로 일어났다는 주장을 하며 ‘팩트’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역사학의 세기가 저물고 있다


         그런데 조금 넓게 보면 학계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생산/인정해온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세기 초 독일에서 역사학이 전문 분과로 등장했으니 이제 200년 정도 지속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경우에 따라 조선 후기의 실학사서까지 소급해서 올라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30년대에 들어서 청구학회(1930년), 진단학회(1934년) 등이 결성되고서야 비로소 학회 중심의 학계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근대 역사학계는 자연과학이 과학적 사실을 생산해내는 방식을 모방하여 학회를 중심으로 태동했다. 16~17세기 무렵부터 과학자들은 동료들을 초대하여 실험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자신이 발견한 과학적 사실을 공증 받았다. 진실은 과학자 사회의 인정으로만 효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학회(society)는 진실을 공증하는 공신력 있는 과학자 사회로서 자리매김했다. 19세기에 들어 역사학계 또한 자연과학의 체계를 뒤따라 학회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을 공증하기 시작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역사적 사실은 이러한 체계를 통해 생산되었다. 이 시대에는 어느 누구도 단독으로 역사적 사실을 발견했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역사적 사실은 오직 동료 역사학자들의 공증을 통해서만 학문적 진실로 인정되었을 뿐이다. 학회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학계가 그러한 공증을 담당했다. 학회지에 논문이 투고되면 보통 2~3인 정도의 심사자들이 이를 검토하여 통과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현재까지 가장 보편화된 절차다.

         근대에 들어 역사학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는데, 한국에서는 자국의 역사를 다른 지역의 역사와 구분하여 ‘국사(國史)’라고 부르며 특별히 다뤄왔다. 국사는 과학의 이름으로 국가와 민족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힘이 있었다. 국가의 관점에서 한국사는 더 이상 세계사의 하위 범주가 아니었다. 세계사는 다만 한국사가 다루지 않는 여분의 세계에 관한 것일 뿐이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국적 있는 교육’을 내세워 국사교육을 강화했다. 중등교육에서 국사교과가 독립되고, 모든 대학에서 국사가 필수교양이 됐다. 국가권력과 학계가 국사를 매개로 밀월관계를 맺었던 시기가 반세기 조금 못 미치게 이어졌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새에 사정이 바뀌었다. 국가가 역사학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던 시대가 급격히 저문 것이다. 현실 공산주의 국가들이 무너지고 냉전이 끝나자 어느 보수적인 지식인의 선언처럼 역사가 끝난 듯이 보였다. 세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영원히 머물 것만 같이 보였다. 역사가 끝났으니 역사학에 지원을 해야 할 이유도 급격히 줄었다. 북한이 세계의 섬처럼 고립된 상황이라 한국 정부가 이전처럼 국사에 지원할 필요도 사라졌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소수의 학자들만 있으면 충분할 뿐이다. 국가의 취향만 변한 것이 아니다. 역사학을 포함해서 대학 인문학 역시 소수 엘리트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면 그만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학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공공연히 알려진 비밀이다. 학술지 논문은 저자와 심사자 정도만 읽을 정도로 끼리끼리만 돌려보고 말 뿐이다 보니 국가지원이 없다면 연구를 지속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연구비를 받기 위해 국가의 입맛에 맞춰 연구계획을 짜는 일이 관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국가에 대한 의존도도 너무 높아졌다. 자립도가 상당히 취약해진 것이다. 이 상황에서 국가가 학계를 공공연히 ‘왕따’시키겠다고 나선 이상 국가재정에 기대던 학계의 기존 습속은 더 이상 유지되기가 어렵다.

          학계가 직면한 위기는 돈 문제만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학계가 자기점검을 해볼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계가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하려면 독립적인 재정도 확보해야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구성원들이 역사학의 인식론이나 방법론과 같은 ‘게임의 룰’을 공유하고 있어야 학계라는 공론장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오직 양으로 평가되는 개인의 학술 업적 기준을 채우기 위해 논문을 생산해온 학자들에겐 학계를 돌아볼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역사는 학계에 맡기자’라고 주장하기도 참 머쓱해졌다. 학자 개개인이 개인사업자처럼 생존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첨예한 역사 관련 논란들을 깊이 있게 다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학계에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해방직후 좌우대립과 한국전쟁의 와중에 학계에 대한 지원은 늘 부족했고, 그 뒤엔 오랜 군사독재 치하에 놓였다. 이런 역사 속에서 학문의 자유는 항상 위험에 노출됐다. 학자들은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공안 당국에 끌려가 험한 꼴을 당할 수 있었다. 식민지 시기의 독립운동을 연구해도 사회주의 계열을 ‘잘못’ 다루면 공안사범이 될 판이었다. 해방 직후의 좌우대립이나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는 말할 것도 없었다. 민주화 이후에 잠시 숨통이 트인다 했더니 곧이어 잔인한 생존경쟁이 학계를 위협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교수든 학생이든 누구나 1인 기업처럼 자기 스스로를 경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그러니 학계가 언제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냐고 반문할 법하다.


'학문의 자유'는 최소한의 보호장치


         그러나 역사학계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보다 근본적이다. 학계가 사회적으로 존재 자체를 의심받으며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학계는 <제국의 위안부> 사태와 같은 갈등을 다룰만한 사회적 권위를 회복할 수 있을까? 학계가 이러한 논란을 다룰 수 있을 건강한 공론장인가? 회의적이다. 앞서 말했듯 학술지 논문은 저자와 심사자들 정도나 읽고, 대중서는 논란이 되면 산발적으로 발표회를 열고 마는 현실이다. 익명의 심사자들은 심사평으로 “역겹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발표회에서는 나이 어린 학자의 비판을 “예의가 없다”고 정리해버리기 일쑤다. 이처럼 학문의 공론장이란 게 과연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희남씨의 질문은 뼈아프다. “지식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함부로 말해도 되냐?”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솔직한 답은 아마도 ‘그러한 자유는 없다’가 될 것이다. 기존 학계에 머물면서 학계 바깥으로부터 자신의 영역을 보호하고자 내세우는 ‘학문의 자유’는 환영에 불과하다. 가뜩이나 학문의 공론장이란 것의 실체도 의심스러운데, 단순히 교수가 낸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호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문의 자유’는 학자라는 신분에 따라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라 새로운 공론장을 함께 열어가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보호장비에 불과하다.

         그간 법정과 학계라는 이분법으로 이야기하는 동안 정작 학문적 공론장은 썩은 도끼자루가 돼버렸다. 이러한 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에 깊게 공감한다는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박유하 교수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공개토론을 제안한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대학 안팎에 걸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만큼 이들이 열어갈 공론장은 기존 학계로 수렴되지 않는 새로운 무언가일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공론장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 개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면서도 그러한 존엄성을 위협했던 권력과 폭력의 구조를 드러낼 수 있을 말들이 조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필자소개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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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Sex & Sexuality – "그들도 우리처럼"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3. 고대 이집트의 Sex & Sexuality – "그들도 우리처럼"

  

       “너는 발기를 못할 것이야, 널 고자로 만들어 버리겠어, 오 아포피스여, 태양신 레의 적!” – 이집트 사자의 서


      여태껏 살펴본 그리스와 로마와는 전혀 다른 세계, 고대 이집트에 도착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각 사회계층의 Sex & Sexuality가 달라졌다면, 이집트에서는 신분이나 계층에 따른 변화를 찾기 어렵습니다. 굳이 찾자면, 파라오를 비롯한 왕족 일가에 한한 근친혼의 풍습 정도 들 수 있겠습니다. 이 땅에서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던 이집트의 왕족들이 신들을 모방하여 근친혼을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태양신 라의 손주인 땅의 신 게브와 밤하늘의 여신 누트처럼, 여동생 네프티스와 결혼한 세트, 그리고 그를 질투한 오시리스처럼, 이집트 왕실의 계보 역시 복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집트 18왕조 아흐모세 1세는 그의 누이 아흐모세 네페르티리와 결혼해 아이들을 낳았고, 여자 파라오인 하셉수트는 이복형제 투트모세 2세와 혼인하였습니다. 아멘호텝 3세와 그의 아들 아케나텐(아멘호텝 4세)은 둘 다 자신들의 딸들과 결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근친혼에 대한 금지나 비판이 이집트 문헌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근친혼이 이집트 전체에 널리 퍼져있던 풍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일단 이집트 왕실에서 근친혼이 신화 속에서처럼 실제로 자주 일어난 일이 아니었고, 게다가 이집트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 서구학자들의 무지가 사태를 더 악화시킨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집트어의 “자매”라는 말은 반드시 같은 부모 밑에 태어난 여자형제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아내나 애인을 부르는 호칭 역시 “자매”이고, 심지어 이모나 조카한테도 같은 호칭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라는 호칭 역시, 생물학적 부모 외에도 조부모나 그 위의 조상들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남편을 포함해 연상의 남자들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 음식점 종업원을 이모라고 부르는 것처럼,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에서도 형, 동생, 누나, 언니, 아저씨, 아줌마라 부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가족의 언어”로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동양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근대 서구학자들이 이러한 상징적인 가족의 언어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 근친혼이 이집트 왕실 혼례의 규범인 듯한 오해가 생겼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한 가지 더 고려해야할 것은 이집트 왕실에서 “결혼”의 의미는 남녀가 혼인하여 자녀를 낳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딸과 결혼한 파라오들의 경우, 아버지와 딸이 실제 부부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딸들에게 “신의 아내”라는 호칭, 그리고 그 호칭에 걸맞는 대우를 내리기 위한 “정치적 행위”로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Mummy with a pennis>


    그러면, 고대 그리스나 로마, 다른 고대근동지역의 문화와는 다른 이집트만의 독특한 Sex & Sexuality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우선 죽은 사람들의 성생활까지 염려하던 고대 이집트인의 내세관을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죽은 후에 현세의 삶과 비슷한 삶이 내세에도 계속된다는 믿음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나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근동 전역에서 발견됩니다. 제사 때 조상들에게 바치는 먹거리들은 내세에서도 사람들이 먹고 마셔야 한다는 믿음을 반영하죠. 하지만 죽은 후에도 성생활까지 계속된다는 내세관은, 제가 아는 한 이집트가 유일합니다. 이집트인들은 죽은 사람들을 장사지낼 때 이 부분까지 아주 세심하게 배려했습니다. 남성의 성기 모양이나 여성의 가슴 모양을 흉내낸 부속물을 미이라에 부착시키기도 했고, 무덤 안에 요즘의 섹스토이 같은 다산의 상징물들을 넣어놓기도 했습니다. 


<Egyptian Fertility doll>


    이렇게 “노골적인” 상징들 말고도 이집트의 무덤에서는 다양한 성적 상징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덤에서 발견되는 가장 흔한 그림은 갈대로 뒤덮힌 늪에서 사냥하는 것이나 혹은 잔치상을 벌이는 장면입니다. 이런 그림들은 아마도 “(막대기를) 던지다”라는 이집트어 동사가 “창조하다, 자손을 낳다”라는 의미가 있고, “창을 던지다"라는 동사는 “사정하다, 임신시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언어유희일 것입니다. 또한 이집트어에서 “갈대 숲을 거닐다”라는 말은 우리나라의 “물레방앗간”에 담긴 성적 상상력과 맥이 닿는, 남녀상열지사를 뜻합니다. 잔치상이 묘사된 무덤 그림에서는 주로 다산의 상징인 거위나 오리, 푸른 수련 등의 그림이 그려져있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거나 나체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렇듯 “그들도 우리처럼” 죽어서도 성행위를 하며 자손을 낳는다는 믿음은 이집트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이집트만의 독특한 발상입니다.


    또한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생명이 잉태된다는 의학적 지식이 없었던 이집트인들은 생명의 탄생에는 남성의 정자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인 창조신 아툼(아텐)은 자위행위를 통해 쌍둥이 자녀를 얻습니다.


    “오 아툼이여, 그는 온(헬리오폴리스)에서 자위행위를 하였다. 자신의 성기를 움켜쥐고서 절정을 맞이하였다. 그리하여 쌍둥이 슈와 테프누트가 탄생하였다.” 

(피라미드 텍스트 1248-1249)[각주:1]


    생명을 창조하는 힘이 정액에 있다고 믿는 고대 이집트에서는 따라서 남성의 성적 능력이 특히 강조됩니다. 기원전 4천년대부터 존재했던 가장 오래된 신들 중의 하나인 창조신 “민”의 상징은 거대한 남근입니다. 보통 이렇게 오래된 신들은 신화 속에서 사라지거나 이름만 남아 그야말로 유명무실하게 되는데 반해, 이 신은 다른 젊은 신들과 계속 융합하여 헬레니즘 시대까지 그 놀라운 생명력을 유지합니다.[각주:2] 이렇게 남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는 발기불능이야말로 가장 큰 저주이겠습니다. 사후세계의 안내서인 이집트 사자의 서에 따르면, 죽은 자들은 이집트 버전의 지옥의 신인 아포피스(아펩, 혹은 아페피)를 만나면 그를 발기불능으로 만드는 주문을 외워야 합니다.[각주:3] 




<Egyptian deity Min>


    마찬가지로 여성들 역시 임신, 출산, 다산이 강조됩니다. 지혜와 용기로 죽은 아들 호루스를 살린 어머니 여신 이시스야말로 고대 이집트 여성들의 롤모델이었습니다. 반면 이시스의 자매이자 전쟁의 신 세트의 아내인 네프티스(네베트-헷)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이시스가 생명과 재생의 여신이라면 네프티스는 죽음과 사막의 여신이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많이 등장하는 장면들처럼, 이집트 사회에서도 자녀가 많은 여자들이 복받은 여성으로 여겨졌습니다.


    남성의 생산능력과 여성의 출산능력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혼외정사는 당연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두 형제의 이야기”라는 문헌을 보면, 간통을 저지르다 발각된 여인이 살해당하여 그 시체가 개에게 던져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자기 일생을 뒤돌아보며 적은 “고백문”들에는 “나는 혼인한 여성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라는 대사들이 나오기도 하죠.[각주:4] 이 고백문들은 “부정적 고백(Negative Confessions)”라 불리는데, 그 내용이 “나는 무엇 무엇을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둑질, 살인, 간통, 신성모독 등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내세에서 더 나은 삶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이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고백도 나오는 것을 보면, 고백자들이 반드시 사실대로 고백한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대 이집트 문헌에서 혼외정사를 법적인 차원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혼인예식이나 결혼생활 전반에 관한 법률적 문헌이 발견되지 않은 것을 보면, 이집트에서 결혼이란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문제로 보여집니다. 결혼이란 두 남녀가 한 집에 같이 살게 되면서 시작되고, 둘 중 하나가 집을 떠나면 그 관계는 종료됩니다.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법적인 문제가 아니므로, 혼외정사 역시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후대의 신왕국 시대에 오면 혼외관계에 관한 법률적 문제를 다루는 파피루스들이 발견되긴 합니다만, 대부분 강간이라든가 강도 등 법률적 문제들과 연관된 경우들입니다.[각주:5]


    그렇다면 생산-출산과 관련이 없는 동성 간의 성적 관계는 어땠을까요? 사실 이집트 문헌에서 이 부분에 관한 자료는 극히 적습니다. 일단 신화에서는 세트와 호루스의 일화가 유명한데요, 세트의 꾀임에 빠져 세트와 호루스 두 남신들 간에 성관계를 갖게 되는데, 이 때 호루스의 기지로 세트는 자신의 정액을 먹게 되어 임신하게 됩니다. 정액만으로 임신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계로 내려오면, 중왕국 시대의 문헌 “네페르카레와 사세네트 이야기”에서 네페르카레 왕은 그의 장군들 중 한명과 밤에 몰래 성적 관계를 갖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 사건을 엄청난 스캔들로 여긴 것을 보면 이 시대에 동성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 언급한 “부정적 고백문”에서도 “나는 다른 남자와 성적 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여성들 간의 동성 관계에 관한 이집트 문헌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 유일한 문헌이라 할 수 있는 P.Carlsberg XIII는 꿈 해몽에 관한 텍스트인데, 여성이 다른 여성과 잠자리를 갖는 꿈은 불길한 징조라고 되어있습니다. 이렇듯 이집트 사회에서 동성 간의 성적 관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 역시 법적 처벌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의 Sex & Sexuality는 법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이불 속의 일을 국가가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로 21세기나 되어서야 간통죄를 폐지한 대한민국에 비한다면, 반 만년 이상 고대 이집트가 앞서 있는 듯 보입니다.


<Niankhnum>


    고대 이집트의 동성애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두 사람이 바로 니앙크눔과 크문호텝입니다. 사카라에서 이 두 남자의 합동묘를 처음 발견한 고고학자들은 이 두 남성이 마치 부부처럼 묘사된 그림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곧 이 둘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 둘이 형제다, 쌍둥이다 등등 호모포빅한 해석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둘은 이집트 왕실의 매니큐어 담당자들이었는데, 파라오의 손톱을 직접 손질하는 꽤나 고위직 공무원이었습니다. 이 무덤에 그려진 그림들과 상형문자들을 통해 이 둘 모두 각기 아내와 자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둘의 관계가 정말 무엇이었냐 하는 것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무덤까지 함께 쓰는 두 동성의 친밀함을 묘사하는 것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Turin Erotic Papyrus>


    이렇듯 고대 이집트는 신화나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성적인 표현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바로 튜린 파피루스라 불리는 파피루스 55001입니다. 기원전 12세기 람세스 시절에 만들어진 이 파피루스에는 각종 다양한 체위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렇게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노골적일 리가 없다고 믿었던 초기 이집트 학자들은 이 그림을 인간이 아닌 괴물들의 묘사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의 오랜 노력 끝에 복원된 그림을 보면 아주 선명하게 남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과 성, 죽음과 내세를 아주 자연스런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 고대 이집트인들이 문화적으로는 현대인들보다 훨씬 앞서 있던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 웹진 <제3시대>

  1. 출처: Ancient Egyptian Worldview Expressions: http://web.archive.org/web/20131116121410/http://www.albany.edu/faculty/lr618/we4.html [본문으로]
  2. 이집트 중왕기 때는 호루스와 융합하여 민-호루스가 되고, 신왕국 때는 아문과 융합합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리스신화의 목동의 신 판과 동일시되어 살아남게 됩니다. [본문으로]
  3. R. O. Faulker and O. Goelet (1994),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 104. [본문으로]
  4. 이 부정적 고백문들의 예들을 보시려면, http://www.touregypt.net/negativeconfessions.htm. [본문으로]
  5. C. J. Eyre (1984), “Crime and Adultery in Ancient Egypt,” Journal of Egyptian Archaeology 70, 9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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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이의 저주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좌우의 날선 검


  “그래도 우리는 분단국가잖아” 

  나와 찰떡궁합인 내 친구는 다른 것은 다 개방적이고 감각적이면서 어느 틈엔가 그 놈의 반공 프레임에 꼼짝없이 걸려들었다. 

  “아이고 친구야 그건 썩은 위정자들의 더러운 통치술이야” 

  내가 파르르 떨기도 하고 눈높이에 맞춰 얼러보기도 하면 조금씩 뭔가 통 할 뻔하다가도 결국 친구가 내리는 시사평론은 

   “종북세력 땜에 안 돼!” 


    아마도,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이고 북한이라는 주적이 상존하는 한 온전한 자유를 얼만큼은 저당 잡히는 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판단이 내 지인 만의 생각은 아닐 게다. 해방이후 70여 년간 반공은 이 나라의 종교, 이 나라의 국교 아닌 국교였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세포 깊숙이 반공이 각인 되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내가 기억하는 내 어린 시절 동네 골목의 빛바랜 기억 속 영상에는 항상 구멍가게 원통모양 아스케키 통과 푸세식 변소 오물을 밖에서 수거하기 좋게끔 뚫어 놓은 구멍, 그런 구멍이 즐비한 똥내 나는 골목길 등 늘상 먹고 싸는 아비규한의 모습과 함께 어린 나에게 언제나 어려운 기호로 여겨지는 것이 있었으니 전봇대마다 붙어 있던 ‘반공 방첩’과 좀 더 으슥한 골목의 전봇대에 종이 삐라처럼 붙여있던 ‘조루증’이란 단어였다. 조루증의 뜻을 알게 되기까지는 스무 살을 넘기도록 세월을 보내야 했지만 반공 방첩의 뜻은 초등학교 학년이 올라가고 든든한 유신의 어린이로 훈육되어지면서 이내 알게 되었다. 푸세식 변소와 아스케키 통처럼 ‘반공’은 글자 통째로 그 시절의 내 영상 백그라운드인거다. 

    황해도 출신 월남자인 아버지는 박정희를 싫어하셨다. ‘빨갱이가 싫어서 전쟁터서 죽어라 싸우고 고향 떠나 왔건만 남한 땅에서 박정희가 빨갱이 짓 한다고 우리식 민주주의라니 이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냐’고 날이면 날마다 욕을 해대셨고 나는 그 욕에 진이 빠졌고 넌덜머리가 났고 ‘우리식 민주주의가 뭐가 어떠냐’고 아버지한테 쏘아붙였고... 그리곤 아버지가 내게 뭐라고 쥐어 박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암튼 그건 내가 중2병 걸렸을 때의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아버지는 빨갱이를 혐오하면서 박정희도 혐오하는, 그리 나쁘지 않은 우파였던 것 같다.  

    하긴 대통령이 군복 입은 자였을 때, 대통령에게 총칼의 폭력성이 배어 있었을 때, 대학교 정문에 탱크가 세워져 있었을 때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진짜 적을 구분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박정희 시절 전두환 시절을 보내고 ‘군부’라는 단단한 표지석이 사라진 이후 사람들은, 옷 갈아입고 이름 바꾸고 등장한 그때 그 적을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다. 문제는 적만 놓친 게 아니라 그만 자기 자신, 주체도 놓쳐 버렸다. 그래서 옷 갈아입고 이름 바꾸고 얼굴에 점 하나 찍은 진격의 괴물들이 자기들 앞에서 똥 싸고 썩은 내 풍기고 난리굿을 치러도 유순하게, 아주 유순하게 잘 안 보인 댄다. 

    그리고 잃어버린 자기 자신은, 종북으로 이름 바꾼 ‘반공 프레임’안에서 발견하고야 만다. 거기서 드디어 자기보다 더한 ‘약자’라는 ‘적’도 발견한다. 그러고는 안정감을 느낀다. 적을 놓친 공포감과 자기 자신을 잃은 불안감을 종북에서 해결하고야 만다. 적이 있어야 비로소 나를 가늠하게 했던, 공산주의가 있어야 비로소 자유대한이 굳건했던 군부 독재의 불구적인 정체성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거다. 

     인지언어 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에서 “프레임은 슬로건이 아니라 생각이며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했다.

     지구상에 공산주의가 전멸한 판에 반공이란 슬로건은 한물 지난 거고 그래서 부일 협력 세력과 그 후손들은 그들이 해방초기부터 만들어 재미를 보았던 ‘좌우 프레임’을 지금 시대에 이르기 까지 뻔뻔하게 소환하였고 신자유주의와 함께 이 땅을 기만하는 양대 산맥으로 만들어 놓고야 말았다.

     조지 레이코프의 말대로 좌우 프레임은 대한민국 국민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자 이 나라의 정신적 구조물이다. 좌우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비 실체를 형상으로 도식화하여 세월호도 잡아 쓸어 넣고 교과서도 잡아 쓸어 넣고 노동법도 잡아 쓸어 넣고 좌우의 날선 검 하나로 무엇이든 좌우 동강 내어서 가르강튀아 블랙홀에 털어 놓고 있다.


사토리의 공포


    오늘도 종편 TV, 아니 종편 포르노가 하루 종일 나불댄다. 그리고 오늘도 동네 상점엔 하루 종일 종편 포르노가 ON AIR다. 사람들은 권력에 대해 얼마나 유순한지 ‘저 정도면 잘하는 거’라고 ‘각자의 위치를 지키면 되는 거’라고 한다. 

    포르노가 사람들을 득도 시키나 보다. 이건 실질적인 공포다. 이 사토리 세대들을 누가 흔들어 분노하게 할 수 있을까. 언론은 권력의 마름이 되었고 지식인도 포섭된지 오래고 젊은이들은 깜깜한 제 앞길 더듬거리기 바쁜데, 빨갱이 싫다고 파시즘을 살뜰히 키우고 선거 때 마다 계급 배반 투표를 거행하는 이 사토리 세대들을 어찌해야 할까. TV속 큰 무당과 작은 무당들이 벌이는 난리굿과 개콘을 시청 중인 사토리 세대들은 다음 총선에도 죽음의 카니발을 벌리려나.  


중식이의 저주


    얼마 전 인터넷서 회자된 C일보의 <간장 두 종지>란 제목의 칼럼이 큰 웃음을 준 적이 있다. 내 생전 신문 칼럼보고 그렇게 웃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칼럼의 내용인 즉 

    C일보 근처 중식당서 칼럼 작성자와 동료 합해서 네 명이 탕수육을 시켰는데 간장이 두 종지만 나와서 사람 수 대로 달라했더니 식당 측에선 두 명 당 한 종지가 나가는 거라며 요구한 간장을 주지 않았고 그래서 그 C일보 기자는 분노했고 자괴감이 들었고 이왕 분노한 김에, 내 돈 주고 내가 밥 사먹으면서 음식 나왔다고 종업원에게 ‘고맙습니다’ 인사치레해야 하는 이 부조리한 사회에 환멸 또한 느꼈고 이렇게 하여 ‘을’이 ‘갑’을 만드는 이 사회의 메카니즘을 깨달았고 그리하여 맘 속 깊숙한 울분의 에너지를 끌어 모아 간장 종지 대가리 숫자대로 주지 않은 그 식당이 망하기를, 간장 종지 두 개만 준 그 망할 식당의 이름은 A나 B나 C는 아니라고 목 놓아 목 놓아 외치는 내용이었다. 

    백만 부 이상이나 발행한다는 메이저 신문 칼럼으로 말이다. 그 중식당이 뭔 저주를 퍼 부 었 길래 을이 갑을 만들고 서빙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상식적인 인사말에도 부조리를 느끼고야 말았을까.


    ‘파시즘이 출현한 역사 속에서는 희극이 비극보다 선행하며 궁극의 공포는 처음에는 오페레타 같은 희극으로 나타난다’ (허버트 마르쿠제) 더니 정말로 공포스럽게 위에서 아래에서 큰 놈에서 작은 놈에서 코메디가 횡행하고 있다. 


    중식당 칼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진짜 중식이 저주 좀 불러 볼까. 슈퍼스타 케이에서 나왔던 촌스락 중식이 밴드의 노래인 즉 

    피 고용자 중식이는 자기를 업신여기는 고용자에게 저주를 내린다. 

    “죽어버려라, 죽어버려라, 죽어버려라” 

    월세 때문에 밥값 때문에 모멸감을 참으며 일하러 나가야 하는 중식이에게 입 안에서 우물거리는 그 저주는 오히려 자신의 심성이 폭력으로 물들지 않게 하는 타협점이다. 

     나도 중식이처럼 저주하지 않으면 당장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다. 중식이 처럼 그렇게 하고 싶은 말...  




     내 양심의 가슴에 빨간 비즈 붙이고 녹슨 더듬이로 저주하노니 

     포르노 희극 판을 벌이는 자들아 

     죽어 버려라, 죽어 버려라, 죽어 버려라 !!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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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카데믹하지 않아서 더욱 아카데믹한 단상

처음. <내 몸을 좀먹는 너의 이름은 '진리'>




 김정원*


 

뜨뜻한 물이 샤워기를 통해 샤-하고 쏟아져 내린다. 긴 머리칼을 후다닥 적시고는, 500원 동전크기만큼의 샴푸를 손바닥에 짠다. 채 일지 않은 거품으로 참으로 대충 머리를 감는다. 헹굼질을 잠시 멈추고는, 샤-하고 쏟아지는 뜨뜻한 물에 가만 서 있다. 이제 좀 노곤 노곤 해진다 싶지만, 여유가 없다. 뻣뻣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채 일지 않은 거품으로 역시나 대충 몸을 닦아낸다. 깊숙한 이곳 저곳을 조금 더 샤-하고 싶지만, 정말 여유가 없다. 여유를 부리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14분의 시간이 지났다. ‘미안해, 북극곰아……’   

공기밥은 200, 바나나는 100, 피자 2쪽은 380, 아메리카노는 0. 스물 예닐곱부터 시작된 철저한 칼로리 계산은 여느 수학자보다 날카롭다. 분명 스물 예닐곱엔 ‘내 안의 여신’을 발견하는 작업 또한 시작되었고, ‘결국엔 아름다움이 나를 구원할 것’이라는 진지한 고백이 있었다.[각주:1] 그런데, 오늘 낮에 먹은 478 칼로리의 머핀이 영 거슬린다.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을 서성이며, 있지도 않은 살을 요리보고 저리 보다가, 저녁은 굶기를 작정한다. ‘미안해, 페미니즘아…….’  


         학문을 하는 것은 맘 편히 살지 못함을 말한다. 맘이 편치 못하다는 것은 몸이 편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를 태워가며 썼던 논문이 고스란히 몸의 수고와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나 개인의 ‘존재론적 방법론’이며, 이는 ‘맘이 곧 몸’ 이라는 주장에 대한 간증이 된다. ‘애를 태우다’ 에서의‘ ‘애’가 창자를 뜻하는 ‘腸’에서 기원한 것을 보면, 애초부터 애태운 것은 실은 마음이 아니라, 몸이었나 보다.

         생태학과 관련된 논문을 쓴 뒤로, 하루 걸러 맘이 즉, 몸이 편치 못하다. 뜨끈한 물로 길게 샤워 좀 할라치면 먹이를 찾아 얼음 기슭을 어슬렁거리는 북극곰이 떠올라 이내 관두고 만다. 생태학은 나의 일상을 갉아먹으며 내 안에 서식한다. 구멍 난 양말은 그 구멍이 그 양말의 정체성이 돼 버리듯, 생태학으로 갉아 먹인 내 일상은 결국 더욱 또렷해진 생태학이다.

         고기를 먹는 순간, 전기장판을 트는 순간, 에어컨 아래 있는 순간, 테이크아웃을 하는 순간…. 매 순간 순간이 죄책감으로 물들여진다. 나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토끼처럼 먹으려 노력하고, 추위를 참느라 이를 닥닥 거리기도 하며,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기로 평생을 작정한다. 생태학은 이처럼 나의 몸뚱이를 고생시켜가며 나의 일상에 역사한다.

         약간 되바라진 어린 여성 목사에게 페미니즘이란, 저항 담론임과 동시에, 그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존재론적 물음 그득한, ‘my story book’과 같은 개념이다. 그런데, 사회정치적 관계에서 수집 되어진 숱한 정체성을 너머, 그저 ‘나’로서 살아간다는 말은 신경증적 예민함을 장상 끼고 산다는 것을 의미하며, 무리에서는 쌈닭 같은 존재로 ‘전향’된다는 것을 말한다. 바울만치는 아니어도, 나름의 ‘충실성’(fidelity)[각주:2]을 간직한 페미니즘적 주체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남는 문제가 있다. 바로 ‘살’.

         ‘먹어도 돼’와 ‘먹으면 안돼’라는 두 사유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페미니즘은 이 사유의 거리를 천 자(千 秭)나 늘려놓는다. ‘먹음’은 페미니즘을 향한 ‘충실성’의 긍정적 작동이다. 반대로, ‘안 먹음’은 ‘내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에 대한 거부이며, 실패다. 즉, 가짜 페미니즘에로 나가 떨어지는 순간이다. 먹음과 안 먹음의 간극은 ‘먹음’ 으로서만 채울 수 있다. 이 사유의 전개는 코기토와 구조를 같이하나 꽤나 부끄럽다. ‘나는 먹는다’ 고로 ‘나는 살찐다’. 또는, ‘나는 살찐다’ 고로 ‘나는 아름답지 않다.’. 보다 반성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날씬한 여자로 살고 싶다’ 고로 ‘나는 가짜 페미니스트이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먹을 땐- 살이 찔 염려로 인해 위염을 앓고, 안 먹을 땐- 가짜가 된듯한 패배감에 장염을 앓는다. 페미니즘은 나의 위장을 좀먹으며 내 안에 머문다. 위장의 망가짐으로 못 먹기도, 안 먹기도 하는 일의 반복은 ‘날씬한 여자’를 만들어내지만, 이제는 ‘날씬함’ 이란 언사에서 죄책감을 발견하고는 망연해진다.

         부끄럽게도 전통과 사회의 지배 아래 존재하지 않기 위한 의식투쟁은 ‘살’ 앞에 종결된다. 그저 퇴락한 ‘익명의 세상 사람(das Man)’[각주:3]으로 살지 않겠다던 다짐은 하이데거의 기억과 함께 소멸된다. ‘본래적 자기’를 찾고자 애를 쓰던 존재투쟁이 겨우 ‘칼로리’ 앞에 힘을 잃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은 읽고 쓰는 행위로 시작 될 때가 다반사이지만, 책상에서 시작 된 사유 노동은 나의 온 존재를 간섭하고 일상을 감찰한다. 엘리베이터를 맘 편히 못 타니, 하이힐을 신고서 계단을 오른다. 이러한 몸의 불편함으로 생태학을 향한 ‘진정성’이 획득된다. 바꿔 말하면, 생태학적 사유정지로 인해 얻어진 ‘편안함’은 죄책감을 몰고 온다는 것이다. 그 ‘진정성’을 얻기 위해서는 ‘날씬함’보다는 ‘건강함’을 선택해야 하다니, 생각만으로도 위경련이 올 것만 같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선포가 나의 피곤하고도 왜곡된 실존에 ‘틈과 균열’을 가지고 올는지는 여적 모를 일이다.


         다만 ‘오늘의 나’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를 더 ‘안다’라는 것이 몸이 한 번 더 ‘고생’스러울 것의 전조라는 것이다. 앎이 곧, 고생이다. 즉, 사유는 이러한 고생을 작정하는 일인 셈이다. 사유의 시작은 몸의 불편함을 조장하고, 이러한 몸의 불편함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죄책감에서 해방시킨다. 위장이 탈이 나서 꺼억꺼억 하는 순간에도, 나의 존재가 ‘진짜 진짜 존재자(Dasein)’[각주:4]로 거듭나는 ‘과정’ 속에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편한 것을 편한 것으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그 동안의 ‘진리 사유’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똑똑한 ‘몸’이 현재의 ‘비진리’ 안에 머물고 있는 ‘나’를 거부하는 데에 있으리라. 즉, ‘나’라는 존재자가 ‘비진리’로 인해 ‘은폐’되거나 혹은 ‘위장’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각주:5] 가벼워진 죄책감과 진리로의 방향전환은 몸부림이 주는 짭짤한 선물이다.


         장자는 말한다.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꼭 맞기 때문이고, 허리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꼭 맞기 때문이고, 마음이 시비를 잊는 것은 마음이 꼭 맞기 때문이다."[각주:6]


         내 발에 생태학이 어찌나 안 맞는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토록 안 맞으니 생태학을 잊지 못하다 못해 노상 시달리기까지 한다. 내 허리에 페미니즘이 어찌나 안 맞는지 또한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얼마나 안 맞으면 식욕을 거세하려 할까.

         장자의 말은 진리가 ‘나’를 자유하게 할 것이라는 말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나의 사유노동의 계속됨은 필연적으로 ‘발’과 ‘허리’를 인식하게 만들 것이다. 이는, 고통의 몸부림도 쉬 그치지 않을 것을 예고한다. 즉, 존재자와 죄책감과의 대결을 바탕으로 하는 진리투쟁의 계속됨을 의미하며, 위장 장애로 인한 구토와 곽란 또한 그러할 것이라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말이다. 어쩌면 ‘진짜 진짜 존재자(Dasein)’를 꿈꾸는 자에게 자유는 ‘옆 집 개 이름’ 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마르키 드 사드의 소설이 일러 준 것- 인간의 육체적 고통이 가장 높은 순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면,[각주:7] 몸의 고생스러움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존재론적 방법론일 것이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나의 행위들은 일상을 침탈하고, ‘자유케’ 되기는커녕 고통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씁쓸하고도 불행한 존재론적 사유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진리 한 줌’을 얻게 되는 것에서 오는 위안 때문일 것이다.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공부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1. 참고: 현경, <결국엔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거야 1, 2> [본문으로]
  2. 참고: 알랭 바디우 <사도 바울> [본문으로]
  3. 참고: 마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본문으로]
  4. 참고: 마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본문으로]
  5. 참고: 마틴 하이데거 <예술 작품의 근원에 관하여> [본문으로]
  6. 장자 <달생(達生>, 19 : 13 [본문으로]
  7. 참고: 마르키 드 사드 <소돔 120일>, <규방 철학> 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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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야기 - On going, 2015











4.3사건의 현장을 답사하던 2월, 제주도 어디서건 나의 시야에 한라산이 들어왔다. 

한라산은 그때의 그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 또한 한라산을 보며 원망과 염원을 했으리라! 


나는 사건현장 답사 내내 한라산을 원망 했다. 


답사 1달 후 3월, 다시 찾은 제주도! 

육지인과 중국 관광객들은 제주 바람이 빰을 때려도 뭐가 그리 좋은지! 

각질 제거를 위해 팔고 있는 붉은 현무암은 마치 천지가 피로 덮혔던 그때 물들은듯 하다. 


오늘도 내일도 그 상처가 아물기는 글렀다. 

아물지 못한 생채기를 방치하면 곪아 버릴덴데... 


한라산을 배경으로 제주도를 촬영했다. 

한라산이 보는 앞에서 그들이 격은 그 아픔을 따라 걸으며 4.3사건의 아픔을 아름다운 관광지 제주에 오보랩 시켰다. 


 


 

박준식 作 (사진작가)


- 작가소개

독일 베를린 조형예술 대학교(U.d.K) 마이스터 졸업, 현재 성신여대에 출강하면서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을 치루었는데, 근래 비무장지대(DMZ)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2012년 DMZ 대성동 자유마을에서 '경계를 넘어서'라는 작품전을 기획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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