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과부와 정치적 시민, 그리고 애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룻이 시어머니에게 대답하였다.
“어머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룻기」 3장 5절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장례식은, 적어도 우리 시대에는, 더는 없을 거야”라고 했다. 그는 이 시대의 마지막 영웅이었고, 죽음으로 사회적 통합을 가져올 마지막 사람이라는 얘기다. 이제는 그 누구도 시민사회 전체의 애도의 대상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불과 3개월여 만에 우리는 또 한 번의 대대적인 사회적 애도의 의례를 치루게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고가 전해지기 직전까지도 그의 존재는 한국 민주주의의 좌절과 수치스러움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 즈음 내가 요청받은 원고의 주제는 ‘한국사회와 돈’이었다.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하여 참여정부 핵심층의 부패에 관한 검찰의 브리핑을 염두에 둔 기획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겠다.

지난 주 토요일 아침, 마침 내가 몸담고 있는 연구소가 이사하게 되던 날,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뉴스를 들으면서 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전임 대통령의 자살. 어느 일간지는 이것을 ‘시스템 살인’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자신 이외에 누구도 그의 목숨을 강제로 회수한 이는 없지만, ‘정치적 타살’이라고 할 만큼 마지막 숨구멍까지 압박하며 죄어오는 권력의 조임을 당해야 했다. 또한 일사불란한 명령 계통이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기득권 집단이 제각기 권력을 십분 활용하여 한 치의 가릴 것도 없이 발가벗겨 짓밟아 버렸던 것이다.

서거 후 그는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대통령으로 태어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겨레 그림판 (2006.6.6)


한데 삶에서 죽음으로의 극적인 경계 이동만큼이나 수치스러움에서 자랑스러움으로의 생각의 이동은 너무나 극적이었다. 그의 죽음은 모든 것은 반전시켰고,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대적인 국민장이 거행되었다. 공중파 방송 3사가 장례식과 노제를 생중계하고,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특집 다큐를 제작 방영했으며, 화장장에서 49제 때까지 유골을 안장하기로 한 사찰 장면까지 생중계되었다.

티비의 오락프로는 애도기간 동안 방영이 중지되었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은 초기 화면에 흑백 톤의 애도 디자인을 넣었다. 전국 수백 곳에 시민들에 의해 분향소가 가설되었으며, 무려 오백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참배를 했다. 대학교 강의실마다 선생들은 견해를 묻는 질문에 답을 해야 했고, 전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타살의 책임을 물어 현 대통령의 탄핵 서명이 인터넷 공간에서 전개되어 백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하여 어떤 이는 한국에도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생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국민의 다수가 그의 서거에 애통함을 표했고, 나 역시, 비록 몇 가지 주요 사안에 있어서 결코 동의할 수 없어 정치적으로 그의 반대자에 가까웠음에도, 애통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가장 깊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권양숙 님[각주:1]일 것이다. 시신을 확인하면서 실신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장례식 때에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나타났다. 필경 그녀가 겪고 있는 자기 존재 파괴의 상태는 비교불가의 절대고통 바로 그것이었겠다.

정치적 타살을 체험한 다른 사례들에 관한 자료를 참조하면, 배우자를 잃은 아내들은 종종 상황에 부적절한 말을 내뱉는 언어 붕괴 현상을 겪게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주던 기억의 교란을 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타살자의 아내들은 그러한 자기 파괴적 비탄 상황에 지속적으로 놓일 수만은 없다. 그녀는 죽은/임당한 남편의 입이 되고 목소리가 되고 몸이 되어야 한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무너져버린 ‘사적인 아내’가 아닌, 그 불의한 죽음을 당한 남편을 대신해서 증언하는 ‘공적인 아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을 그렇게 해석하며, 그렇게 하도록 요구한다. 

죽은 자, 아니 죽임당한 자는 말하지 못한다. 그 시신의 고요함은 자기 증언의 부재를 의미한다. 바로 이 증언 부재의 침묵에 소리를 부여해주는 이가 바로 배우자 여성인 것이다. 그녀의 눈물, 그녀의 신음, 그녀의 비틀거림이 바로 그러한 증언의 형식이다. 하여 이러한 배우자 여성이 몸으로 하는 증언 행위, 그것은 죽임당한 자의 의례에서 핵심을 이룬다.[각주:2]

이렇게 배우자 여성은 비탄 상황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것에서 증언자가 되어 죽은/임당한 남편의 소리를 대언하는 자로 역할 전이를 일으키게 된다. 아니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는 사회적, 문화적 요청에 직면하게 된다. 곧 정치적 타살자의 아내들은 ‘과부’에서 ‘정치적 과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 권양숙 님은 남편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한다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표했다고 전해진다. 정치적 살해자와 장례를 공유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이 컸던 탓이겠다. 그러나 곧 그녀는 받아들인다. 그것은 그녀의 ‘정치적 과부되기’가 국민장의 의전 형식에 의거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의전 형식의 핵심은 ‘영부인되기’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서거한 이가 대통령임이 그녀를 통해 만천하에 대언되는 것이다.

「룻기」 3장 5절에서, 시어미인 나오미가 기획한 몰락한 가문의 회복을 위한 프로젝트에 며느리 룻은 “일러주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듯이, 죽은 남편의 침묵을 대언하는 씨족의 관습에 의거한 과부의 행동, 그것은 단적으로 정치적 과부되기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주체와 욕망을 지배적인 문화적 코드에 맞추고 그러한 의미망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정치화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일러주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라는 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처럼 권양숙 님 역시 국민장을 수용함과 동시에 국민장의 의전 양식에 맞춘 영부인되기를, 일러준 대로 다 수행한 셈이 되는 것이다.

한편 시민 대다수도 이러한 의전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국가의례로 진행된 장례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대대적인 시민의 참여를 동반한 것은 유례가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국민장이 된 것이다.

하여 시민도 국민장의 의전 양식에 걸맞는 ‘정치적 시민되기’에 참여하였다. 노제가 거행되던 시청 광장과 그 주변지역에 즐비하게 붙어 있는 현 정권에 대한 극단의 증오감을 담은 벽보들에도 불구하고, 결코 국가의례의 일부로 환치될 수 없는 담론의 주역들, 국민장의 시민되기에 동참한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일부인 그들은, 그날 밤 국민장의 시민되기에 동의한 이들답게 ‘얌전한 항의자’였다.

나는 여기서 혼란을 느낀다. 모 신문이 시스템 살해라고 규정했고, 많은 이들이 정부에 의한 타살로 해석하고 있음에도, 왜 그 많은 이들 가운데 다수는 국민장이라는 것에 대해 순순히 동의하고 있는 것일까, 왜 스스로 국민장에 걸맞는 정치적 시민되기를 순순히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전임 대통령의 서거이니 만큼 결과적으로 장례가 국민장으로 치러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에 저항하는 격렬한 비판과 논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왜 그토록 ‘조용한 합의’에 이르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죽은 이의 침묵을 대언하는 일이 단순한 합의인가 하는 문제의식이 들었던 것이다.

또 하나,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에 있어 나를 당혹하게 했던 것은, 한 후배의 고백에서 비롯된다. 그는 얼마 전까지 한・미 FTA를 추진하던 참여정부를 격렬히 비판하던 지식인이었다. 근데 며칠 전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반대를 후회하면서 ‘대통령님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울먹였다. 나는 적지 않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이런 방식으로 애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는다. 위에서 말한 그 ‘조용한 합의’는,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 하나의 징후다. 국민장을 받아들여서는 안 될 법한 주장을 펴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는 듯이 국민장을 받아들이는 이율배반과 상응한다는 얘기다.

그에게 묻지는 않았지만, 필경 그는 한・미 FTA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철회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 참여정부의 한・미 FTA는 잘못 추진된 발전기획임이 여전히 타당하다. 하지만 그는 전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자기 신념을 철회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통령님을 지키기 위해서’다.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생각을 철회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가 우리 정치사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실행력을 지니면서 통용되고 있다. 그것은 ‘가신’이라는 용어다. 하여 국민장에 즈음한 그의 ‘정치적 시민되기’는 보다 정확히 말하면 ‘가신적 정체성’으로 스스로를 재규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는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본래의 생각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럼에도 그가 일시적으로나마 가신적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비통함 때문일 것이다. 압도적인 슬픔이 그로 하여금 이러한 모순을 감내하게 했을 것이다. 그 순간의 비통함 탓에 생각의 균형이 무너지고, 세상을 ‘노무현 대 반(反) 노무현’이라는 단순 이분도식으로 생각한 결과일 것이라는 얘기다.

한데 과연 그럴까? 다시 원상복귀되는 것일까? 그가 한・미 FTA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으로 다시 돌아서게 된다는 것이 원상복귀일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필경 이후에도 여전히 자기가 모순에 빠져 있다는 것을 별로 심각하게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한 사람의 정치적 죽음으로 인한 애도의 정치가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때, 애도의 행렬은 세상에 그 죽임당한 이의 목소리를 다시금 울려 퍼지게 한다. 애도하는 이는 그러한 소리의 중개자가 됨으로써 정치적 시민이 된다. 한데 내가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애도의 정치는 종종 정치적 시민되기를 퇴행적으로 만들곤 한다는 것이다. 시도때도 없이 광장에서 통합만을 부르짖는 자기 서사는 이러한 퇴행성의 단적인 사례다. 해서 진보적인 한 일간지 사설은 ‘한・미 FTA나 이라크 파병은 노무현/참여정부의 한계가 아니라 ‘국가의 한계’였다'고 말한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이 그를 무조건 지지하는 ‘가신되기’이며, 가신적 정체성으로 통합되지 않는 모든 비판적 논의를, ‘국가의 한계’와 정부의 한계를 혼돈한 비현실적 몽상가의 의견으로 폄하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애도의 방식에 좀처럼 공감할 수 없었고, 헌화하는 것을 주저해야 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시청 광장을 돌아다니면서 그 한 구석에 설치된 작은 분향소를 보았다. 거기에는 근래에 죽임당한 정치적 피살자들의 명단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죽었구나 하는 새삼스런 각성에 도달했다. 한 사람의 죽음에서 죽임당한 많은 이들을 기억해내는 것, 내가 생각하기에 이번에 광장에서 목격한 가장 빛나는 애도를 나는 여기서 봤다. ⓒ 웹진 <제3시대>

  1. 그녀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칭호는 물론 ‘영부인’이다. 하지만 그녀를 영부인으로 부르는 것은 그녀가 다양하게 주체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단지 하나의 요소로만 환원시키는 것이기에 여기서는 중립적이고 모호한 함의를 지닌 ‘님’이라는 칭호로 부르겠다. [본문으로]
  2. 정치적 타살의 대상이 여성이고 그의 증언자가 남성 배우자 혹은 가족인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남성 배우자/가족의 경우는 정치적 과부와는 다른 방식의 정치적 임무에 대한 요청에 직면한다. 그런데 여성보다 남성의 경우는 그 역할이 훨씬 미미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수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한다. [본문으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안식년과 네팔 이야기 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

안식년에 관한 소고

향린교회가 정한 안식년 규정(혜택)에 따라 2009년 2월부터 4월까지 3개월의 기간을 가졌다. 6년 시무 후 주어지는 안식년 기간은 1년인데, 3개월은 재임 기간 중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참여하는 일과 기장 총회가 주관한 유럽평화기행 여행으로 이미 썼고, 남은 6개월은 임보라 목사가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오면 내년 가을에 가질 예정이다.

안식년(Sabbatical year)은 제1성서에서 나온 말인데, 하느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서 7일째 하루를 쉬셨다는 안식일 개념이 년(年)으로 확대된 말이다. 성서는 7년째가 되는 안식년에는 땅을 쉬도록 명하고 있다. 땅이 쉬어야 한다면 노예들과 짐승들도 당연히 쉰다. 그리고 이 안식년이 7번이 지나 50년째가 되는 해를 희년(Jubilee year)이라고 하여 단지 땅을 쉬게 할 뿐만 아니라, 땅을 본래의 주인(지파로 대변되는 집안)에게로 돌려주도록 명하고 있다. 땅뿐만이 아니라 모든 빚을 탕감하고 노예를 해방하도록 명하고 있다. 결국 크게 보면 안식년이란 쉼과 휴식의 의미를 넘어 평등, 자유, 해방이라는 야훼 하느님의 창조의 본래됨을 회복하는 해인 것이다. 

현재 안식년은 대학의 교수들과 일부 목사들에게만 행하여지고 있고,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기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이 안식년 제도를 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쉽게 말하면 봉급의 7분지 일을 회사 혹은 노조가 적금 형식으로 보관하였다가 안식년 기간에 이를 되돌려 주는 형식이다. 드문 경우이지만 남한에서도 이런 안식년 제도를 시행하는 연구센터가 있다고 들었다. 일부 회사에서 5일 근무 중 하루를 재교육의 배움의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렇게 하니까 제품의 완성도가 더 높아지고 일의 실적이 더 좋아졌다고 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생각의 패러다임만 바꾼다면 전연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근 30년 전 뉴욕에 살 때, 가장 흔한 업소인 세탁소나 과일가게의 주인들(당시는 대부분이 서양사람)이 여름 한 달동안 휴가를 갔다고 문에다 붙여놓은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심지어는 구두 수선을 하는 가게에도 이런 표지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이후 주로 동양 사람들이 이런 가게들을 인수하면서 이런 일들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다만, 어떤 한국인 부부가 조그마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데, 여러 해를 이렇게 한달동안 여름 휴가를 다녀오는 경우를 보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본다. 많은 경우 한국 사람들은 서양 고객들로부터 ‘너는 여름 휴가도 가지 않느냐?’는 약간은 조롱조의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 조그마한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던 우리 집도 이런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가진 것은 적고 내야 할 비용은 많고 생존 자체에 허덕이는 동양인 이민자에게 휴가는 실상 그림의 떡이었다. 당시로는 전연 불가능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우리 집은 잘못된 가게 선택으로 인해 파산을 하고 말았다. 그래 몇 년에 걸쳐 온 가족이 밤낮으로 일궈온 모든 재산을 다 잃고 말았다(집과 차는 물론이요 심지어는 오래된 TV까지도). 그럴 줄 알았으면 여름휴가나 열심히 다녔을 텐데, 그 누가 알았으랴!  귀 있는 자는 들으시라. 

나의 본래 3개월 안식년 기간은 일본과 네팔에서의 3주간 여행을 마친 후에는 미국으로 가서 2-3주간의 공동체 경험 그리고 약 한달 동안의 모교인 뉴욕 유니온신학대학과 하바드신학대학에 머물면서 공부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네팔에서 두 달을 머물렀고, 그중 한 달은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게 되었다.

네팔을 가게 된 동기

중고등학교에서 같은 클럽 활동을 하던 김두현이란 친구가 부모님을 따라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어려운 독학의 과정을 거쳐 40년 가까이 동경에서 살며 지금은 이름 있는 화가가 되었다. 물론 아직도 돈하고는 관계가 없지만... 창의적인 필치로 독자적인 그림 세계를 갖고 있고, 일본 기독교단이 발행하는 신앙의 벗이라는 잡지에 20년 동안 교회 건물을 중심으로 한 표지 그림을 담당하여 왔고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을 여러 권 내었다. 그 중 말기 암에 걸린 어린이들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단체와 함께 일을 하여 그림책을 내고 싶어 하는 10살 어린이의 이야기를 함께 그림으로 그리는 과정을 일본 NHK 방송이 취재하여 여러 번 방송에도 나왔다. 불행하게도 이 어린이는 이 책이 발간되기 하루 전에 죽었다. 오히려 이 얘기가 화제가 되어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익금은 전부 이 단체가 갖는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오고 있다. 몇 년 전 그는 일본인으로 시인이기도 했던 첫 번째 아내를 암으로 잃었다. 매년 연하장을 보내왔는데, 엽서의 표지는 그가 그린 그림으로 뒷면에는 아내가 쓴 일본 시가 실려 있었다. 둘이서 시화전도 여러 번 했다. 죽은 아내는 단순히 인생의 짝이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의 세계에 있어서도 진정한 반려자였다. 40대 중반에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 또한 작년에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되어 지금은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건강을 되찾았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 또한 초기 유방암이 발견되어 치료를 받고 있다.

지금의 아내는 죽은 아내의 친구이자 같은 교회를 다녔기에 잘 알고 있는 사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없던 그 딸을 어려서부터 교회학교에서 가르쳐온 선생으로 가끔 인생 상담도 하면서 아버지 노릇을 함께 해 왔다는데 정말 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난 이 아내의 집안은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오빠가 모두 기독교 목사이고 일제 시대 때 아버지는 북한 땅 압록강 근처에서 일본인 교회의 목사로 있으면서 일본 군부의 침략을 비판하다 한때 옥고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게다가 패전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은 어린 두 딸을 조선 땅에다 묻고 온 아픔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내 친구가 네팔과 관계를 갖게 된 연유 또한 두 번째 만난 아내의 언니가 여러 해 네팔에서 여성 직업 훈련소의 선생으로 있으면서 옷 만드는 일을 가르쳐주고 또 여기서 만들어진 옷을 일본 교회를 통해 파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이곳 네팔에 온 이유는 이 친구가 3년째 진행하고 있는 네팔 오지의 초등학교 두 곳에서 한주동안 진행되는 그림그리기 여행에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여행 참가자를  모으기 위해 교회 잡지를 통해 전국에 광고를 내었다. 이번 참가자의 반은 교회에 다니고 반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물론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하더라도 배우자가 교회를 다니는 등 이렇게 저렇게 교회 인연은 있다. 참가비용은 보통 비용보다 두 배 이상이 든다. 왜냐하면 워낙 오직이기에 헬리콥터를 이용해야 하고 그림그리기에 필요한 도구 비용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은 어느 누구도 여기에 선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일이 남한에서 진행된다면 당연히 선교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모두 20명이고 우리 부부와 친구를 빼면 일본인은 17명이다. 이중 아주 간단한 영어로나마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한두명에 불과했다. 그러니 참가하는 한 주간 대부분은 친구가 통역을 해주지 않는 한 우리는 거의 꿀 먹은 벙어리 신세였다. 나이는 대부분이 70대에 가까운 은퇴자들이고 우리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5명뿐이었다. 이런 일을 남한에서 계획한다면 참가자는 대부분이 2, 30대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 일본인 참석자는 반 이상이 60대 이상이다. 그리고 3분지 1은 이미 이 그림그리기 여행을 두 번 혹은 세 번째 참가하고 있다.

수도 카트만두

처음 나리따 공항에서 20명이 만나 방콕에서 하루 밤을 자고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도착했다. 공항의 수속은 지루하며 소란스러웠다. 밖으로 나오자 마치 혼란스러운 시골의 장터를 빠져나온 기분이다. 그러나 날씨는 마치 초여름과 같이 약간은 후덥지근했다. 거리는 신호등은 물론 제대로의 차선도 없어 사람의 행렬과 자전거와 인력거와 택시와 버스 트럭 등이 도로에서 혼잡을 이루고 있었고, 때로는 교차로에서 먼저 가려다가 오히려 뒤섞여 엉켜버린 경우도 많았다. 여기에 때로 이곳에서 신으로 인정받고 있는 소가 걸어간다고 생각해 보라. 이곳 카트만두의 대기 오염도는 세계에서 제일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주 후에 다시 카트만두에 돌아왔을 때에는 이틀 만에 목이 심하게 붓는 편도염이 생겨 마이신을 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다. 대기 오염도가 심한 이유는 차들이 너무나 오래되어 매연이 심하고, 도시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되어 있는데다, 건기에는 수개월째 비가 오지 않아 바람만 불어도 모래 먼지가 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데나 버린 쓰레기는 곳곳마다 악취를 풍기고 있었고 심한 경우는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아파트 앞마당이 그냥 수 년 동안 방치된 쓰레기들로 썩어가고 있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네팔의 현실이 그러하다.

국민소득이 하루 일인당 2불정도로 낮고 빈부의 격차가 워낙 심하고,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가 여전히 살아 있어 대부분의 가난한 문맹인 민중들은 주어진 상황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1년 내내 높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빙하 물이 곳곳에 넘치고 있지만, 네팔은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수도라 해도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씩 하루 여덟 시간만 전력이 공급되고 있고, 수돗물은 더 열악하여 하루 2시간만 주고 있다. 이나마도 없어 식수만 차로 공급하고 있는 지역도 많다. 교회 앞 골목에서 네팔티벳 식당(여주인은 향린교인)을 운영하는 네팔 출신 주인 말에 의하면 네팔 정부는 전력을 인도에 팔고 더 비싼 값에 인도에서 전력을 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무슨 사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도정부의 영향력이 있다는 것과 네팔 정부 관료들의 부패상을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한다.

여행자들로부터 한 20불씩 환경비 명목으로 더 받아내어 이를 청소하는 일을 하였으면 어떨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갖지만, 자기 몫을 챙기는 일에만 열중하는 관료들이라 이런 일에는 관심이 없다. 첫날 비행장 주차장에서 가방에서 두터운 서류 종이를 꺼내어 읽던 한 여행 가이드가 이를 그냥 찢어서 길에다 버리던 너무나도 자연스런 모습이 떠올랐다.

고방에서의 첫날

카트만두에서 첫날을 자고 이튿날 경비행기로 한 시간 가량 걸려 포카라로 이동을 하고 나서 바로 비행장에서 헬리콥터로 목적지 고방의 나우리꼿이라는 오지 동네로 이동을 했다. 이곳은 8100미터가 넘는 다울리아기리라는 산이 바로 정면에 보이는 곳이다. 아래 흐르는 강물이 2,100미터이니까 골짜기 깊이가 무려 6천미터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가 있는 동네이다. 이곳에 일본인 아내를 둔 한 네팔 호텔업자가 아주 훌륭한 호텔(2층 건물에 방이 8개밖에 안되니까 우리 식의 호텔은 아니지만)을 지어놓았다. 하루 방값이 미화 50불(7만원)이 넘으니까 내가 트레킹을 하면서 머물었던 롯지의 50배가 되는 거액이었다.) 모두가 저녁을 먹고 자기 소개의 시간을 가진 다음날 초등학교에서 진행할 노래를 위한 연습과 몇 반으로 나누어 미술 과제물을 준비했다. 하모니카와 입으로 부는 아코디온과 피리로 반주를 하면서 사운드오브 뮤직의 주제가인 ‘도레미송’과 ‘우리 모두 다함께 손뼉을’ 두곡을 율동을 곁들여 연습하였는데, 얼마나 흥겹게 하는지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더구나 이들 대부분이 60세가 넘었고 몇 명은 70대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주뻘에 해당하는 네팔 어린이들 앞에서 보여줄 율동과 노래를 준비하였다. 그 다음날 그들은 정말 온 마을 사람들이 둘러싼 가운데(그래봐야 백 명도 안되었지만) 약 50여명의 초등학교 아이들 앞에서 정말 재롱을 떨었다. 나도 미국에 있으면서 여러 번 멕시코 원주민 선교를 다녀보았고 한때는 백 명도 넘는 한국인 그룹을 인도하기도 하였지만, 할아버지 할머님들의 재롱을 보지는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보기는 힘들 것이다. 조용하고 예절바르고 엄숙하기만 한 일본 사람들의 다른 면을 보았다.

안식년 서신에도 밝혀 놓았지만, 아내는 첫날 연습을 시작한 당시에는 괜찮았는데, 조금 있다가 머리가 아프다고 먼저 자리에 눕더니 급기야는 새벽에 고산병이 시작되었다. 약을 먹으면서 참고 견디다가 너무 심해져서 오후 늦게 급히 하산을 하여 한 시간 이상 떨어진 작은 병원으로 긴급 수송을 해야 했다.(헬기를 이용하려고 보험회사에 알아보니 했는데, 한번 사용에 수천불이 들기에 보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서 밤을 보내고 포카라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나도 일본인들과의 그림 그리기 여행은 여기서 끝나고 말았다. 사실 우리가 머물었던 지역은 2600미터밖에 안 되었지만, 헬리콥터로 갑작스레 이동을 하였기에 고산병이 왔던 것이다.(아내는 얼마 전 의사로부터 초기 고혈압 진단을 받았는데, 이것이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후의 경험에 의하면 고산병은 반드시 체력과 일치하는 것 같지는 않다. 5천미터 롯지에서 만난 한 가냘픈 서양 여성은 아무렇지도 않았고, 건강한 일본인 남성 청년은 내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어른들은 괜찮은데, 젊은 청년들이 힘들어 하는 경우도 보았다. 물론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더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 네팔에서의 본래 여행 목적을 다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던지라, 혼자서 트레킹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본래는 한 코스만 하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세 코스를 하게 되면서 트레킹의 ‘트’짜도 모르던 사람이 트레킹의 ‘도사’가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멋지네용
    2016.02.17 17:0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조헌정목사님이야 말로 이시대의 진정한 진보개신교 목사님~!!!!! *^^********

근대와 탈근대 사이에서
- 시간과 공간에 관한 아주 짧은 에세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Ethics Ph.D 과정)

     얼마 전 보도에서 서울대 철학과 백종현 선생이 <판단력 비판> 번역을 끝으로 칸트의 3대 비판서 번역을 완료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80년대 말, 혁명의 기운이 잦아들던 그 시기에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최재희 선생이 번역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임석진 선생이 번역한 헤겔의 <정신현상학>, 김수행 선생이 번역한 맑스의 <자본론>을 어깨너머로 읽으며 비장하게 (혹은 우울하게) 칸트와 헤겔과 맑스를 접했던 세대로서 칸트가 새롭게 번역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궁금해진다.  
     그 당시는 한자로 쓰여져 있었던 책 제목과 번역자들의 이름이 우선 나를 짓눌렀고, 온갖 암호와 같은 불친절한 개념어들이 주는 압박이 나로 하여금 칸트와 헤겔을, 그리고 맑스를 허공에 떠있게 만들었다. 사실 돌이켜보건데 그때는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무엇인지도 모르고 누구인지도 모른 채 쫓아만 다녔던 시절이기도 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칸트의 비판서들이 새롭게 번역된 것을 계기로 경쾌하고 발랄하게 칸트가 한국의 청년 학도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라고, 아울러 헤겔과 맑스도 새롭게 번역되어 다시 읽혀지기를 바래본다.
    
     임마누엘 칸트는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탈근대 논의를 접할 때 우리가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인물이다. 물론 근대가 무엇인가? 에 대한 많은 규정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인식론적인 맥락에서는 ‘선험적 주체의 탄생’을 근대의 출발점이라 말할 수 있고, 경제학적으로는 ‘자본주의와 그에 반하는 사회주의의 탄생’을 또 다른 근대의 한 축으로 상정하기도 한다. 정치적으로는 ‘민족국가와 제국주의의 등장’, 지리학적으로는 ‘지리상의 발견(노출)에 따른 공간의 확장(수탈)’, 물리학적으로는 ‘뉴우튼의 고전 물리학 이론’등......이렇듯 근대를 규정하는 편차가 다양한 까닭에 근대와 탈근대를 둘러싼 논의들은 상당 경우 사전 논의 과정에서 일정의 조율이 필요하다.
      칸트는 근대적 주체를 정의하면서 ‘선험적 주체’를 이야기 한다. 선험적이라는 말은 ‘경험을 초월한다’는 의미로 영어로는 trancendental이라 쓴다. 인간의 인식은 다분히 경험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칸트는 인간의 인식이 잡다한 경험의 다발이 아니라, 그 경험을 가능케하는 ‘선험적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서 <순수이성 비판> 초반부 ‘선험적 감성론’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근대적 주체의 첫 단추를 열어나간다. 즉 시간과 공간에 대한 설정과 이해와 정복이 근대적 인간의 첫 출발점인 셈이다.
     
     근대적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는 다른 각도에서도 충분히 하나의 맥으로 엮을 수 있다. 뉴우튼의 고전물리학에 등장하는 가속도의 법칙, 힘의 법칙에서 시간은 절대적 위치를 부여받는다. 시간에 대한 절대성이 근대적 패러다임의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지리상의 발견에서 비롯된 서구 세계 공간의 확장 (or 서구가 아닌 세계의 공간적 노출)은 결론적으로 치열한 식민지 경쟁(비서구의 착취과정)을 통해 서구 유럽의 막대한 부의 축적을 야기시겼고, 이를 계기로 서구사회는 급속도로 민족국가화, 제국주의화 되어간다. 이는 자본주의의 등장과 발전, 그에 반하는 사회주의와의 대결로 이어지면서 20세기 말까지 지속되게 되는데, 이 모두가 근대적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와 정복의 신화를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나의 표상이 너희의 진리다.” 히틀러의 말이다. 이 말은 이렇게 바꿔 쓸 수 있다. “나의 공간과 나의 시간이 너희의 절대적 표준이다.” 이런 확신은 비단 히틀러만의 화법은 아닐것이다. 근대적 인간 일반이 지닐 수 있는 미덕(?)이고 특징이다. 임마누엘 레비나스는 이러한 절대성에 대해 Totality (전체성)라 비난하면서 ‘Face of the Other'(타자의 얼굴)을 이야기하고, 데리다는 그러한 서구 인식론의 Deconstruction(해체)를 주장하며, 푸코는 이 가열참을 ’광기의 역사‘라 쏘아붙인다.. (탈근대 사상가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필자가 공부하는 시카고에는 몇몇 특색있는 신학교들이 있다. 특별히 ‘Religion & Science' 분야의 최고 연구기관이자 정기적으로 기관지를 발행하는 ‘Zygon Center for Religion and Science’(줄여서 그냥 Zygon이라 부름)이 시카고 루터란 신학교 내에 있다. Zygon의 운영자이자 미국내 '종교와 과학' 분야의 대부가 바로 Philip Hefner이다. 시카고에서 석사과정 수학하면서  훼프너 교수가 개설하는 'Religion & Science'와 ‘Ethics & Science' 두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천문학자, 물리학자, 분자생물학자, 진화생물학자등 시카고에 있는 과학분야의 교수들을 초빙하여, 이야기를 듣고 신학적 질문과 대답을 듣는 시간이었는데, 사실 내용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과학 용어와 과학적 상식의 부족이 나로 하여금 수업으로의 몰입과 집중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종강이 얼마 남지 않았던 시간이었는데, 그날 주제가 양자물리학중에서, 뉴우튼의 고전물리학에 타격을 주었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한 부분이었다. 전자 현미경 상에서 원자의 속도를 재려고 빛을 취하는 순간 빛을 비추는 조작 때문에 원자의 위치가 불안정해진다는 것, 즉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원자의 위치가 사실은 그 위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빛을 취하는 순간 원자의 속도와 위치에 왜곡이 가해진다는 것이다 (내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전자현미경 상에서 어떤 원자의 시간(속도)과 공간(위치)을 동시에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정복을 자신했던 근대적 주체에게 ‘불확정의 원리’는 많은 것을 시사하면서, 곧바로 근대적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에 입각한 우리 인식과 삶에 의혹을 제기한다. 
     혹 우리 삶의 속도, 우리 욕망의 속도가 우리가 거하는 물적, 정신적 공간에로의 정확한 안내를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레비나스는 이 절대성에 기인한 사고와 행위에 다음과 같은 판정을 내린다: “우리는 단일성으로 통합되지 않는 다원주의의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감행할 수만 있다면 파르메니데스와 결별하고자 한다.” 데리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절대성에 기반한 서구정신을 ‘빛의 폭력’이라 규정하며 다음과 같은 사망선고를 내린다: “우리를 여전히 자신의 법으로 속박하는 그리스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고 말이다.
   
      어쩌면 ‘선’의 반대말은 ‘악’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악은 우리의 구체적 현실에서 ‘절대’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종교(Religion)적 절대성이든, 이념(Ideology)적 절대성이든, 인종(Race)적 절대성이든, 아니면 요즘 Queer이론에서 문제 삼는 성(Sexuality)에 대한 절대성이든......인류가 저질렀던 모든 학살과 전쟁과 광기는 이런 절대성들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유전되어 지금도 작동된다. 그렇다면 ‘선’은?  ⓒ 웹진 <제3시대>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2009.06.03 03:1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근대의 시간과 공간"을 철학적, 정치적, 경제적, 지리학적인 차원에서 논리정연하게 정의한 좋은 글이군요. "시간과 공간을 끊임없이 정복한 역사가 근대이고, 그 출발은 칸트다"라는 필자의 주장은 탈근대성이라는 철학적 담론의 주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네요. 좋은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에서 다룰 탈근대 사상가들의 철학적 담론을 기대합니다.
  2. 박재형
    2009.06.03 20:3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형...좋은 글 잘 읽었어요. 형의 글에서 보듯이 근대는 인간에 대한 재발견으로부터 시작되었네요.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의 소외는 다시 새로운 인간의 발견을 특별이 인간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가치 평가와 자리매김이 필요한거 같아요. 저도 여기서 열심히 해야 겠네요. 요즘 같아서는 그냥 한국으로 들어가 함께하고 싶은 마음 아마 형의 마음과 같을거 같네요. 형도 힘내시고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 기대할께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보고싶어요.
  3. 2009.06.05 01:4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근대성과 탈근대성을 선명하게 구별하신 좋은 글입니다. 한국 정치와 교회가 여전히 근대적 패러다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 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기점으로 한국 정치와 교회에 탈근대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합니다. 그 몫은 우리들이 짊어져야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음 글을 기대합니다. ^^
  4. 노언철
    2009.06.05 11:3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오호!! 위에처럼 저런 글 써야 하는건가? 죽겠네.ㅋㅋ 우리 모두 홧팅!!
  5. 이상철
    2009.06.05 21:3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관리자님께 부탁드립니다. 독자 한분이 제게 메일을 보내왔네요. 글을 읽다가 오타를 발견했다고... 후반부 영문 스펠중 ideology가 idology로 잘못 기재되어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ideology로 수정바랍니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
    • 2009.06.06 09:3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꼼꼼하게 읽고 교정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ideology로 고쳤습니다.
  6. 봉.
    2009.06.12 14:4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목사님 화이3333!! 쵝오 ;)
  7. 2009.07.06 05:4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 에세이 잘 읽었습니다.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의미있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절대가 악이라는 말씀에 적극 동의하며, 그 '절대'를 삶의 근거로 놓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많은 기독교인들의 영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똘아이 중 종교적 신념으로 뭉쳐진 똘아이가 가장 상_똘아이겠죠. 정말 어렵습니다.

지난달 23일(토) 연구소 사무실 및 연구공간을 이전했습니다.

변경된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3가 32-51번지 102호 

그리고 연락처도 일부 변경됐습니다.

전에는 대표전화와 팩스 번호를 동일하게 사용했으나,

이번 이사를 계기로 번호를 분리하기로 했습니다.

아래의 번호를 참고하세요.

Tel. 02-363-9190 / Fax. 02-363-9196

급하게 이사를 하다보니 많은 분들께 두루 알리지 못했습니다.

(혹시 지난 한 주 사이에 이전 연구소를 방문하신 분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사과 드립니다.)

이사간 연구소 공간은 전보다 규모는 작아졌지만, 더 아늑하고 조용해

연구를 하기에도, 손님을 맞기에도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회원 여러분과 연구소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연구소를 방문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책 소개


『위기 속에서 대안을 찾다』
- 포로기와 그 이후 예언자,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읽는 성서 4

김경호 지음
평화나무 펴냄

출간일 : 2009-04-20
정   가 : 12,000원


* 알라딘 책 소개 보러가기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책 소개


『세계 속에 있는 하나님』
-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공적인 신학의 정립을 지향하며


위르겐 몰트만 지음
곽미숙 옮김
도서출판 동연 펴냄

출간일 : 2009-05-12
정   가 : 18,000원


* 알라딘 책 소개 보러가기

<차례>

한국어 번역에 부치는 글 ❚ 7
머리말 ❚ 9

제1부 현실정치와 기독교 신학

제1장 근대세계의 기독교 신학 ❚ 19
1. 근대세계의 탄생 -메시아적 희망의 영에서유래하는 / 21
2. 상층부 근대세계와 하층부 근대세계 / 28
3. 근대세계의 재탄생 -생명의 영에서 유래하는 / 36

제2장 계약인가, 아니면 레비아탄인가: 근대시대의 시작점에 서 있는 정치신학 ❚ 45
1. 현재 당면한 문제 / 45
2. 계약의 신학과 저항권 / 48
3. 레비아탄: 사멸하는 신과 그의 절대적 주권 / 55
4. 계약 대 레비아탄 / 64
5. 칼 슈미트의 레비아탄에 대한 예찬과 이교화 / 65
6. 새로운 정치신학과 민주주의 / 70

제3장 정치신학과 해방신학 ❚ 75
1. 두 신학의 기원과 시작 / 76
2. 유럽에서의 정치신학의 발전 / 82
a. 사회주의적 신학 / 82
b. 평화의 신학 / 84
c. 생태신학 / 85
d. 인권의 신학 / 87
e. 여성신학 / 88
3.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 89
4. 새로운 상황 / 93
5. 해방신학의 미래 / 96
6. 우리의 해방신학 / 102
a. 제3세계의 글로벌화 / 102
b. 서로 공동으로 생명을 지향하는 신학의 도상에서 / 104


제2부 현대세계의 가치와 신학

제1장 현대세계의 가치들에 대한 재평가 속에 있는 기독교 신앙 ❚ 111
1. 성서의 하나님과 역사의 경험 / 113
2. 인간 존재: 자연의 일부인가, 아니면 인격인가? / 118
3.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신뢰 사이의 인격 / 127
4. 현대인들의 시간 부족과 ‘느림의 발견’ / 131

제2장 이 땅의 파괴와 해방: 생태신학의 정립을 위하여 ❚ 137
1. 제1세계와 제3세계를 통한 이 땅의 파괴 / 137
2. 현대세계의 종교적 위기 / 141
3. 이 땅의 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기독교적 전망 / 148
a. 우주적 영성 / 148
b. 이 땅에 대한 새로운 학문: 가이아-가설 / 156
c. 하나님의 계약 속에 있는 인간과 자연 / 160
4. 이 땅의 안식일: 신적인 생태학 / 165

제3장 인권과 인류의 권리, 그리고 이 땅의 권리 ❚ 170
1. 인권의 존립 / 170
2.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인권 / 176
3. 인권과 인류의 권리 / 179
4. 경제적 인권과 생태학적 의무 / 183
5. 이 땅의 권리와 생명 공동체의 존엄성 / 185
6. 인권에 대한 포럼 속에서의 세계 종교 / 190

제4장 타자에 대한 인식과 서로 상이한 이들의 친교 ❚ 192
1. 평등과 불평등의 문제 / 192
2. 동일한 것과 동일하게 만드는 것의 친교로 인도하는 인식 속에서의 상응 / 195
3. 상이성 안에서 친교로 인도하는 타자에 대한 인식 / 204
4. 경탄 속에 내재된 하나님 인식의 원천 / 213

제5장 시장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 ❚ 217
1. 현대세계를 위협하는 이중의 위험 - 글로벌화와 개인주의 / 217
2. 인간의 자유의 세 가지 차원 / 220
3. 시장은 모든 사물의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인가? / 229


제3부 타종교와 기독교 신학

제1장 구덩이 -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아우슈비츠 이후의 유대교와 기독교 신학 ❚ 239
1. 아직도 남아있는 경악스러운 충격 / 240
2. 고난 속에서의 하나님에 대한 질문과 죄악 이후에 하나님에 대한 질문 / 243
3. ‘아우슈비츠 이후’의 유대교 신학: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역사의 주님’이신가? / 246
4. ‘아우슈비츠 이후’의 기독교 신학: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전능자’이신가? / 255
5. 하나님의 질문: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 263

제2장 개신교 - ‘자유의 종교’ ❚ 269
1. 오직 신앙에서 유래하는 의, 종교개혁 / 271
2. 자유의 종교, 개신교 / 279
3. 공동체의 종교: 에큐메니칼 시대 / 285
a. 에큐메니칼적인 삶 / 285
b. 에큐메니칼적인 사고 / 287

제3장 현대세계의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 293
1. 현대세계의 원칙과 가치 / 296
2. 기독교적 현대주의 / 300
3. 기독교적 근본주의 / 302
4. 현대주의와 근본주의를 넘어서 / 308

제4장 대화인가, 아니면 선교인가: 위기의 세계 속에서 기독교와 타종교의 사명 ❚ 316
1. 기독교와 타종교 사이의 대화에 대한 고찰 / 320
2. 생명에로 초대 - 기독교 선교 / 334

제5장 현대세계의 대학 안에서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신학 ❚ 343
1. 교파적으로 통일된 신앙 국가에서 다종교적인 사회로의 변천 / 343
2. 하나님-나라의-신학 / 351
3. 신학부와 공공복리 / 355

역자의 말 ❚ 361
다루어진 테마들에 대해 이전에 출판된 논문 목록 ❚ 373
주석 ❚ 376

부록

부록1 주께서 나의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나이다 - 삶을 위한 신학, 신학을 위한 삶❚ 401
부록2 하나님의 이름은 정의이다 - 악의 희생자와 가해자를 위한 하나님의 정의❚ 417
부록3 종말론, 지구촌화, 그리고 테러리즘 ❚ 435
부록4 1975년 이래로 한국에서 맺은 나의 인연과 경험 ❚ 453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by 제3시대

공지사항

카테고리

웹진 <제3시대> (835)
특집 (8)
시평 (96)
목회 마당 (61)
신학 정보 (139)
사진에세이 (41)
비평의 눈 (59)
페미&퀴어 (25)
시선의 힘 (139)
소식 (154)
영화 읽기 (34)
신앙과 과학 (14)
팟캐스트 제삼시대 (12)
연구소의 책 (15)
새책 소개 (38)
Total : 381,954
Today : 56 Yesterday :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