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누구를 위한 가정인가?





김나미

(미국 Spelman College 교수, 종교학)




     5월에는 기념하고 챙겨야 할 날들이 많다. 근로자의 날로 시작하여,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로 이어진다. 이와 더불어, 입양의 날, 성년의 날, 세계인의 날, 발명의 날, 식품 안전의 날, 부부의 날, 세계인의 날, 가정위탁의 날, 생물종 보존의 날, 방재의 날, 실종 아동의 날, 바다의 날, 세계 금연의 날 등 참으로 다양한 날들이 여러가지 명목으로 기념되고 있다. 바다도 기념되고, 생물종들의 보존과 식품의 안전도 챙겨지는 5월은 무엇보다 ‘가정의 달’로 불린다.


    형식적이고 의무처럼 되어버린 선물과 꽃다발을 가족들에게 안겨주고, 고도로 발전된 소비문화에 참여하는 것으로 ‘가정의 달’을 맞이하는 동안 간과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가정의 달’에 가장 많이 듣는 설교주제가 ‘행복한 가정’이기도 한데, 누구의, 누구를 위한 가정이고, 왜 특정한 한 달을 정해서 굳이 가정의 ‘행복함’이나 ‘소중함’을 되새겨야 하는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가정’은 “한 가족이 생활하는 집,”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 공동체”를 의미하고, ‘가족’의 뜻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로 정의되고 있다. 증가하는 1인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 대안가족을 고려한다면 사전적 의미의 ‘가정’이나 ‘가족’에도 곧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행복’한 생활 공동체일 것이라는 기대나, 개개인에게 가장 안전한 삶의 울타리나 보호망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 또는 통념과는 달리 어떤 누군가에게는 가정이 그 어떤 ‘공동체’ 보다 위험하고 두려운 곳일 수 있다. 가정을 위험한 곳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중 하나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위협이나 압력이 아닌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다. 한때 ‘아내 폭력’, ‘배우자 폭력’등으로 불리기도 했던 ‘가정폭력’의 형태는 다양하다. 배우자와 자녀들, 노부모들을 상대로 가해지는 신체적 폭력, 정신적 폭력, 언어 폭력, 성폭력, 경제적 강압이 있고, 반려동물에 대한 폭력과 가정의 기물파괴를 통해 공포심을 조장하는 폭력도 가정폭력의 한 형태이다.  


    가정폭력은 물론 가정내에서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수치로 볼때 여성 3명중 1명이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다.[각주:1] 전세계적으로 여성살해의 약 38% 정도가 파트너 (배우자, 동거자, 연인)에 의해 저질러 진다고 한다.[각주:2] 여성들과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요인중 하나가 바로 가정폭력인 것이다. 여러가지 통계수치를 통해서 가정폭력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하지 가늠할 수는 있지만, 가정폭력의 특성상 그 심각성의 정도를 ‘수치’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신고 되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고, 신고가 된다고 해도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폭력의 정도와 피해 상황은 보도 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수가 있다. 


    미국에서 가정폭력 또는 배우자 폭력은 “여성에 대한 전쟁”이라고도 불리는데, 가정폭력예방과 해결을 위해 일하는 한 활동가가 말하는 예를 보면 왜 그런지 이해가 될것이다. 베트남 전쟁중에 사망한 미국 병사들의 숫자가 약 58,000 명이었는데, 같은 기간동안 미국에서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여성들의 숫자는 51,000명이었다고 한다.[각주:3] 가정폭력의 피해가 국가간에 치루는 ‘전쟁’에서 발생하는 인명피해 (‘아군’의 피해)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숫자는 가정폭력으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부상을 입은 피해자들은 포함하지 않고 있다. 


    어느 정도의 교육과 미디어를 통해서 그 심각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듣고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가정폭력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폭력으로 존재한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집으로 부터 도망친 뒤에 노숙자가 되는 경우, 가정폭력에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다가 집을 나간뒤에 소위 가출 청소년으로 낙인이 찍히는 경우, 피해자들의 자기방어가 가해자에 대한 폭력행사로 간주되어 오히려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경우 등등 가정폭력의 피해정도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순간에 피해자들이 받는 정신적, 육체적인 상처와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폭력의 후유증도 심각하게 삶을 위협한다. 모든 전쟁의 정신적 외상 (trauma)이 몇 세대에 걸쳐서 영향을 미치듯이, 가정폭력의 정신적 외상도 세대간에 걸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문제이다.  


    그런데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가정폭력이 꼭 신체적 폭력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신체적 폭력에 앞서서 배우자나 자녀들을 고유한 이름으로 부르는 대신에 욕이나 막말로 지칭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가족 개별인을 고유한 사람으로 보고 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화 (objectifying)시키면서 마치 물건을 대하듯이 하는 것에서 폭력이 시작되는 것이다. 철학자 마틴 부버 (Martin Buber)는 “나와 너” (I-thou)의 관계가 “나와 그것” (I-it)의 관계로 변하는 때가 폭력이 일어나는 시점이라고 했다. 즉, “인간 관계성”이 지워지면서 상대를 “대상화” 할 때 그 사람에 대한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각주:4] 폭력의 상대를 “관계성”을 맺는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행사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대상’으로 보기에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가정폭력이 ‘저질러’ 지는 것이 아니다. 가정폭력은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술에 취했거나,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누가 ‘맞을 짓’을 해서가 아니라 할 수 있기 때문에 행사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배우자와 자녀, 또는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할 수 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나 요소가 있어서가 아니다. 폭력의 대상자가 나보다 약하고 내게 종속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폭력을 행사해도 결과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임을 알기에 가해자가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에 의하면, 현행 가족폭력처벌법에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의 핵심은 그 법의 목적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즉, 현행 목적조항에서는 가정의 보존이 피해자의 인권보다 우선시 된다는 것이다.[각주:5] 가정의 보존, 아주 그럴 듯 하다. 그런데 그렇게 보존된 가정은 누구의, 누구를 위한 가정인가? 폭력가정의 보존이 우선시 된다는 것은 결국 가해자를 우선시하겠다는 뜻이다. 가장 우선시 되어야할 피해자의 안전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가해자의 처벌도 어려워 진다. 가해자를 보호함으로써 ‘보존’되어진 ‘가정’이란 곳은 피해자들에는 계속해서 위험하고 두려운 곳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렇듯 현행법의 목적조항의 문제를 지적 하면서 가정폭력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목적조항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5월을 굳이 ‘가정의 달’로 기념하고 싶다면 ‘행복한 가정’이라는 빈 껍질 같은 말 대신에 많은 사람들, 특별히 여성들과 아이들이 가정폭력으로 인해서 얼마나 참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에 대한 의식과 실질적인 해결방책을 생각해보고, 이와 병행해서 그 누군가를 폭행해도 된다는 생각, 즉 사람을 ‘대상’으로 여겨도 된다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전념하는 달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 어디에도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 웹진 <제3시대>



  1. World Health Organization, “Violence against women: Intimate partner and sexual violence against women” (Updated January 2016). Available at http://www.who.int/mediacentre/factsheets/fs239/en/ (accessed March 25, 2016). 가정폭력의 피해자중에 당연히 남성들도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피해자들이 여성과 아동임음 감안하여 이 글에서는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가정폭력에 중점을 둔다. [본문으로]
  2. Ibid. [본문으로]
  3. http://psychcentral.com/lib/understanding-domestic-violence/ [본문으로]
  4. Pamela Cooper-White, The Cry of Tamar: Violence Against Women and the Church’s Response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2, Second Edition), 41. [본문으로]
  5. 한국여성의전화. http://hotline25.tistory.com/325.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한국사회와 개신교 극우주의 1 : 서론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극우주의? 


    극우주의는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권위주의와 독재 정치를 추구하며, 약한 타자를 향한 증오와 공격적 행위를 조장하는 대중정치 현상이다. 이러한 대중정치 현상이 불타오르는 출발점에는 대중의 집단적인 ‘절망과 좌절의 상황’이 있다. 하지만 절망과 좌절에 빠진 모든 대중이 언제나 극우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으로 하여금 절망과 좌절을 ‘공포’로 해석하게 하고 그것을 다시 누군가를 ‘증오’하고 ‘공격’하도록 선동하는 자를 통해 대중은 극우주의자들이 된다. 이때 증오와 공격의 대상은 근원적으로는 외부에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내부에서 색출된다. 그리고 색출된 ‘내부의 적’은 ‘외부의 더 큰 적’에 연계된 자라고 지목된 자들이다.

   

    한데 대중의 이러한 해석에는 굉장한 비약이 있다. 일종의 집단적 환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그런 비약이다. 여기서 이러한 집단적 환각의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종교적 열광주의’에서 본다. 이는 양자를 동일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종교적 열광주의는 대중의 집단적 환각작용을 가능하게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극우주의를 해석하는 데 종교정치학적 분석이 유용하다는 뜻이다. 

    아무튼 종교적 열광주의는 ‘예언자’ 또는 ‘메시아’를 필요로 한다. 예언자는 집단적 해석을 촉발시키는 자라는 점을 강조한 표현이고, 공포에 사로잡힌 이들의 구원 감정을 주목할 때는 메시아가 적합하다. (이에 대하여는 이 연재의 뒷 부분에서 좀 더 상세히 다룰 것이다.)  



    한데 대중이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과 좌절 상황에 있고 예언자 혹은 메시아가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구원을 선포한다고 해도, 대중이 그것에 휩쓸린다는 보장은 없다. 다른 요소들이 필요하다. 하나의 요소는 메시아로 인한 구원의 기억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래된 것이든 비교적 최근의 것이든 상관없다. 가령 한국에서 1997년 이인화, 조갑제, 김정렴 같은 천재적인 해석자들이 박정희에 대한 기억을 구원에 관한 메시아적 기억으로 재해석하고, 그것이 그 해 대선국면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래 박정희 메시아니즘은 이후의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변수로서 자리잡았다.(이에 대하여는 이 연재의 뒷 부분에서 좀 더 상세히 다룰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예언자 혹은 메시아의 해석과 구원론을 열렬히 전달하고 다른 주장들을 왜곡 변조시켜 어떤 다른 가능성도 무의미한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담론의 장치들이다. 이러한 담론의 장치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회자되고 소통되는 과정에서 대중은 정치적 주체가 되곤 한다. 이렇게 대중을 극우정치적 주체로 만들어내는 장소를 나는 ‘극우적 대중정치의 장소’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에 대하여는 이 연재 곳곳에서 좀 더 상세히 다룰 것이다.)




세계의 극우주의, 그리고 한국의 극우주의


    최근 이러한 극우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욱이 그 현상이 두드러진 곳은 다름 아닌 유럽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을 경유하면서 나치즘과 파시즘이라는 극우주의 현상의 가공할 파괴력에 질려버린 유럽에서 극우주의는 발도 들여놓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한데 1990년대 이후 유럽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지고 있다. 특히 2천년대 이후에는 극우주의의 약진이 유럽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2014년, 28개국의 3억 8,200만 명의 유권자가 참여하는 5년 주기의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 노르웨이, 핀란드,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헝가리, 덴마크, 영국, 체코 등 많은 나라들에서 극우주의 세력이 선전함으로써 유럽연합(EU)이 생기고 처음으로 극우주의 정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되었다. 한편 미국 대선국면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트럼프(Donald Trump) 열풍은 미국에서도 극우주의의 망동이 위험 수위를 향해 치닫고 있음을 시사한다.

    유럽과 미국의 여러 매스미디어들은 이런 현상에 우려하면서,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던 1930년대와의 유사성을 지적하곤 했다. 이렇게 극우주의가 약진했다는 것 자체가 우려스러운 것은 비단 광기어린 지도자의 존재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심각한 것은 그것이 대중현상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극우주의적 대중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위기와 공포심을 타자에 대한 증오와 공격성으로 표현한다. 1930년대와 지금의 위기는 근원적으로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야만적 광풍이 불러일으킨 것이지만, 1930년대 극우주의자들은 유태인을 향해 증오심을 표출했고 오늘 유럽과 미국의 극우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무슬림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1930년대 대중적 증오의 정치는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모두를 공멸하게 하는 대재앙으로 귀결되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의 극우주의는 어떤 재앙을 초래할지 걱정이다. 바로 그러한 재앙을 예방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극우주의를 문제제기하는 이유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폭력성에 괴로워하는 이들은 유럽인과 미국인들만이 아니다. 그리고 고통당하는 대중이 극우주의에 동화되는 현상은 다른 많은 곳에서도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그중 한국과 일본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아시아의 소제국들은 극우주의 세력이 약진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집권 세력이 되었다. 반파시즘 기조의 시민적 합의가 견고했던 서구와는 달리 한국과 일본은 극우적 세력들이 정계, 군부, 법조계, 학계, 그리고 시민사회 내에 두루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면서 오랜 기간 존속해 왔는데, 최근 이들이 결속하여 권력연합을 형성함으로써 집권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에서 대중의 극우화는 막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극우적 엘리트들이 결속함으로써 일으키고 있는 저 극우주의적 소용돌이에 대중이 휘말려든 측면이 강하다.


위기의 대중→극우적 대중정치→극우주의


    이렇게 대중으로 하여금 극우적 정치의 열광에 빠져들게 하는 장소들을 나는 앞에서 ‘극우적 대중정치의 장소들’이라고 불렀다. 여기서는 ‘적’(敵)’에 대한 공포와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담론들이 춤을 춘다. ‘우리’를 둘러싸고 점점 죄어오는 적들의 압박을 막아내기 위해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들어와 암약하는 적들을 색출하고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가 몰락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이런 극우적 담론들이 생성되고 유통되며 확산되는 대표적 장소들로는 대다수 종편 방송들과 극우신문들이 있다. 또 한국자유총연맹이나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한국자유연합 등 극우적 시민단체들이 있으며, ‘일베저장소’ 같은 극우화된 인터넷커뮤니티 등도 최근 급부상한 극우주의 담론의 장소다. 하지만 다른 어느 곳보다도 한국을 대표하는 극우적 대중정치의 장소는 상당수의 극우성향의 개신교 교회들과, 한국기독교총연맹(한기총)을 필두로 하는 개신교 교회연합체들, 그리고 에스더기도운동본부나 선민네트워크 같은 개신교계 극우 시민단체들이다. 이들 극우적 대중정치의 장소들의 공통점은 극우주의의 ‘적’을 공산주의로 지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최근 유럽의 극우주의가 이슬라모포비아를 축으로 한다면, 한국의 극우주의는 반공주의를 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여기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심을 생산하고 ‘종북세력’에 대한 적개심을 확산시키며 그것이 행동으로 표출되도록 부추기는 담론들이 난무한다. 물론 동성애자나 무슬림에 대한 공포와 증오가 곁들여지곤 하는데 이 경우 저들은 ‘변종의 종북세력’(‘종북게이’ 같은 터무니없는 비난이 그 예다.)으로 해석된다. 즉 ‘빨갱이’가 독립변수로서의 ‘적’이라면, 동성애자나 무슬림 등은 종속변수로서의 ‘적’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대중을 극우화하는 전제조건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대중의 ‘심각한 위기의식’이다. 평상시의 정치행위로는 도무지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위기감이 극화될 무렵 대중 사이에서 극우주의가 싹트곤 한다. 여기서 주지할 것은 이런 위기의 대중이 다른 방식으로 주체화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가령 위기의 대중이 들고 일어나 성난 물결처럼 지배체제의 방파제를 향해 돌진하는 경우다. 이때는 ‘해방적 대중정치’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반면 ‘해방적 대중정치’가 활기 있게 작동하는 대신 ‘극우적 대중정치’가 더 활기를 띠어서 극우적 담론들을 활기 있게 생산하고 증폭시키는 순간이 오면 성난 대중은 지배체제가 아닌, 극우적 담론들이 지목하는 ‘적’을 향해 분노를 뿜는다. 1930년대 유태인이 그런 대상이라면 오늘 한국에서는 이른바 종북세력이 극우주의적 대중정치에 의해 적으로 지목된 실체다. 요컨대 극우적 대중정치는 대중의 극대화된 위기의식을 극우주의로 표출되게 하는 경로를 지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산당들'을 폐하라


    이 글은 이러한 극우적 대중정치가 작동하는 장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개신교의 로컬처치(local-church)들과 파라처치(para-church)들에 주목한다. 나는 얼마 전 출간한 책에서 이와 같은 대중적인 극우정치의 장소들에 대항하는 성서 속의 투쟁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고대 유다국 요시야 왕정 때에 ‘산당’을 둘러싼 싸움이 바로 그것이다. 

    요시야 정부는 증조부인 아하스 왕 이후 유다국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던 양극화 현상을 억제하고 몰락한 소농을 복원하려는 대중적 개혁정책을 드라이브했다.



    그 무렵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한 이스라엘국 유민들이 대대적으로 남하하여 유다국의 수도 예루살렘 인근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불가피하게 당시 예속농으로 추락하고 있던 유다의 농민들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자들이 되었다. 하여 유다의 많은 토착 농민들 사이에서 이들 이민자들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그러나 유다 농민 대중의 증오감의 근저에는 속속 몰락하고 있던 소농의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고대국가로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지주세력들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던 권력을 남용하여 소농의 땅을 빼앗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요시야 왕실은 그렇게 해석했다. 하여 아하스 왕 이후 유다국의 성장지상주의가 초래한 사회 양극화를 중단시키지 않으면 사회의 몰락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본 요시야 정권은 소농을 보호하고 몰락농민의 복원 정책을 추진했다. 〈신명기〉는 바로 그러한 사회정책을 담은 왕실의 법률적 문서였다. 그리고 그런 기조의 선사 및 역사 문헌들을 편찬했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1성서(구약성서) 최초형태의 문서군은 이렇게 탄생했다.

    특기할 것은 이 법률적, 선사・역사적 문서들 속에는 이스라엘의 유민들에 대한 적극적인 포용정책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여 요시야 왕실이 편찬한 문헌들 속에는 유다국 부족들의 조상인 이삭과 이스라엘 부족들의 조상인 야곱이 부자관계로 엮이어 있다. 즉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대중은 이삭의 후손인 유다족속들의 자녀뻘 되는 혈연관계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유다국이, 멸망한 이스라엘의 대중을 포용하는 것은 부모국으로서 의당 해야 할 당연지사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그것은, 유민들의 포용만이 아니라, 멸망한 뒤 무주공산이 된 이스라엘국 영토의 병합까지를 염두에 둔 정책이다.

    한데 문제는 많은 유다의 농민들이 소농친화적인 요시야 정부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것은 지방의 농민들이 왕실의 친서민정책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농민에게 전달된 정보는 왕실의 메시지가 아니라 왕실에 대해 비판적인 메시지였던 것이다. 그것은 대중이 중앙의 정치에 다가갈 수 있는 주된 소통의 장이 바로 ‘산당’이었기 때문이다. 산당에서는 제사장들이 제사 예전을 수행하면서 하느님의 신탁을 전달하였는데, 그들은 지역 대지주들인 토호들의 비호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산당’에서는 대중으로 하여금 대지주들의 편에 가담하여 요시야 왕의 편에 편입된 이스라엘계 유민들을 향해 증오를 쏟아 붓게 하는 담론이 생산 유포되었다. 이것이 요시야 정부가 ‘산당의 철폐’를 위한 싸움에 적극 나선 이유였다. 이렇게 제1성서 속의 산당 철폐론의 배후에는 지주친화적인 세력에 대항하는 소농친화적인 세력의 투쟁이 담겨 있다.


바알세불의 힘을 빌리다?


    제2성서(신약성서)에도 극우적 대중정치로 인한 기억의 왜곡과 편견 현상을 읽어낼 수 있는 텍스트들이 있다. 이 점에서 특히 〈누가복음〉 11,14~23이 눈에 띈다. 흔히 ‘예수와 바알세불’이라는 소제목으로 알려진 이 텍스트에서 예수가 귀신들린 이를 치유한 것을 두고 적대자들은 예수를 “바알세불(baalzeboul)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내쫓는” 자라고 비난한다. 예수를 공격하는 이러한 어법은 병행하는 텍스트들인 〈마가복음〉 3,20~27과 〈마태복음〉 12,22~30에서도 똑 같이 나온다. 그리고 이 세 텍스트들은 바알세불을 “악령들의 우두머리”(archōn tōn daimoniōn)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즉 신적 존재이지만 악령들의 최고신이라는 뜻이다.

    이 신이 이스라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래 전이다. 아마도 기원전 12~11세기 경, 이스라엘이 부족동맹체였던 시절, 이스라엘의 가장 위협적인 적인 블레셋 부족동맹체 중 에크론 족의 수호신이었다. 〈열왕기하〉 1,2은 그 신의 이름을 ‘바알세붑’(Baal-zebub)이라는 히브리어로 표기하고 있다. 물론 에크론 족의 신명이 바알세붑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슷한 발음이었겠지만 이스라엘인들은 그 신에 대해서 조롱조의 말장난을 하여 ‘바알세붑’이라고 변형시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변형된 조롱조의 신명의 뜻은 ‘파리떼의 바알’이다. 죽은 시신이 있는 곳에 들끓는 파리떼를 적의 신과 동일시한 것이다. 해서 〈열왕기하〉 1,2에는 이스라엘국 군주인 아하시야(아합의 아들)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을 때 야훼가 아닌 에크론의 신에 의지하여 몸의 회복을 꾀하다 죽었다는 얘기를 담고 있다. 즉 그 신은 ‘죽게 하는 신’이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그런데 이 바알세붑의 헬라어 번역어가 바로 바알세불이다. 그러니까 예수를 비난하는 이들은 예수가 살림의 신인 야훼가 아니라 죽음의 신 바알세불에 의지해서 병자의 악령을 쫓아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세 복음서에서 예수의 적대자들은 병자를 고친 예수를 살림의 신이 아니라 죽임의 신이라고 폄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예수를 비난한 자들은 누구였는가? 〈누가복음〉에는 ‘시골마을의 대중’이 그들이다. 반면 〈마태복음〉에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이고, 이 두 텍스트의 원본으로 알려진 〈마가복음〉에서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예루살렘 중앙성전 만이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율법 전문가들로, 중앙성전 이데올로기에 기초하지 않은 모든 종교행위, 특히 악령 들린 이들에 대한 구마행위를 죽음의 신의 파멸적 치유에 다름 아니라고 보았다. 여기에는 ‘예루살렘 성전 이데올로기를 지탱하는 야훼 대 죽음의 신 바알세불’이라는 이분법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바리새파 사람들’은 갈릴리 촌읍의 질서를 대변하는 마을 유지격되는 사람들로 예루살렘과 시골마을을 매개하는 존재들이었다. 즉 한편에서는 시골마을을 대변하는 자인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중앙의 율법해석을 번안해서 시골마을에서 실행에 옮기는 자였다. 그런 점에서 이들 시골마을의 대표자들이 예수를 적대하는 태도를 취하였다는 것은 예루살렘 중심 이데올로기가 갈릴리 촌락회당의 수호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시골의 ‘대중’이다. 모든 복음서들에는 공히 예수 주위엔 시골의 대중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예수는 그들과 더불어 먹고 마셨으며 그들에게 숱한 치유의 은사를 베풀었고 축복을 선포했다. 예수는 분명 편파적으로 시골 대중의 편에 선 예언자였으며 많은 대중은 그런 예수를 따랐다. 그럼에도 모든 대중이 예수를 따른 것은 아니다. 특히 〈누가복음〉의 텍스트는 어느 시골 마을에서 예수가 말 못하는 이를 치유했을 때 대중이 그이를 적대하였다고 전한다. 요컨대 그런 이분법의 생각을 하는 이들이 율법학자나 바리새파 사람만이 아니라 평범한 대중도 그랬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예루살렘 이데올로기의 수호자들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무지렁이 대중까지도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 〈누가복음〉에는 전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분법적 논리에 기반을 둔 비판에 대해 예수는 그 논리의 허점을 들추어낸다. 그 논리는 단지 이념을 위해 존재하는 세계를 대변할 뿐이다. 그 이분법적 세계 속에서 보지 못하고 말 못하는 대중의 고통은 묵살된다. 종말의 때에야 치유될 것이라는 허망한 약속 아래 끊임없이 구원은 유예되고 있다. 이에 예수는 그이에게 구원을 선사한다. 그 현실의 고통에서 탈출하는 구원이다. 즉 예수가 주목하는 것은 대중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고통이다.


극우주의를 넘어서


    이 연재에서 나는 박근혜 정권에 이르는 한국사회의 극우주의적 현상의 배후를 살피려 한다. 특히 내가 주목하는 것은 한국개신교다. 그것은 오늘 한국사회가 극우주의 드라이브를 하게 되는 것, 그것의 배후에는 지속적이고 강한 영향력을 지닌 사회적 단위로 한국개신교가 견고히 자리잡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개신교 서북주의’의 등장 및 헤게모니화의 문제다. 개신교 서북주의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개신교운동이 하나의 신앙적, 사회적 주체로 부상한 것을 가리키는데, 다음 장에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평안도-황해도의 근본주의적 장로교 신앙이 반공주의와 결합되고, 특히 이 이데올로기적 적개심이 공격적 행동주의로 재조직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나타난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 나의 용어다. 이러한 ‘개신교 근본주의 신앙 + 행동주의적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형성은 한반도의 분단국가 형성 과정과 밀접히 연관된다. 즉 개신교 서북주의의 탄생 및 헤게모니화는 한국의 분단국가화와 얽히면서 서로를 강화하는 요소였다.

    그런데 1960년대 이후 분단국가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개신교 서북주의의 헤게모니는 크게 약화되었다. 개신교 근본주의는 여전히 반공주의적 성향을 지녔지만 공격적 행동주의는 더 이상 신앙의 핵심적 요소로서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이 연재를 쓰게 된 주된 동기는 최근 개신교 서북주의의 부활 및 재헤게모니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MB 정권의 탄생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이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들이며, 이 세력은 동시에 MB 정부의 정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이는 극우주의 정부인 박근혜 정부의 등장과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MB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에 이르는 일련의 개신교 극우주의에 대한 이해는 최근 한국사회의 극우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하여 이 연재는 한국개신교 서북주의의 전개를 따라 한국사회의 극우주의적 전개를 살펴봄으로써 극우주의가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특히 그 폐해는 어떠할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극우주의의 폐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를 ‘우리’와 ‘적’으로 양분하고 그 간격을 극대화하여 ‘적’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대중적인 이념의 프레임이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권위주의와 친화적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파시즘으로 귀결되곤 한다. 현 한국정부는 파시즘적 정권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분명 극우적인 권위주의 정부다. 하여 집권 기간 내내 종북마케팅이라고 정리할 수 있는 공포와 증오의 정치를 통해 정권을 유지했으며 끊임없이 우리와 적이라는 이분법의 정치를 펴고 있다. 지난 2016년 4.13총선에서 활용된 ‘진실한 사람’ 마케팅도 그런 ‘우리 대 적’의 이분법의 일상화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극우주의적 정치는 대중의 안전이나 대중의 행복에 별로 관심이 없다. ‘적’의 색출에 초점을 둔 정치는 안전이나 행복보다는 증오나 척결 등과 연계된 정치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사회의 극우주의 정권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이 연재의 후반부에서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권력연합의 이율배반적 성격이 그렇다. 하지만 극우주의 정부의 집권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기고 사라져갈지 우려된다. 하여 조금이라도 그 상처에 대한 사회의 자가 .치유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극우주의에 대한 더 높은 경각심과 비판의식이 필요하다.

    또한 극우주의 정부는 끝나더라도 극우주의적 대중정치의 장소들은 더 오래 동안 우리의 일상에서 증오와 공격성을 부추기는 담론의 도가니로서 작동할 것이기에, 그러한 극우주의로부터 사회를 지켜내는 일 또한 오늘 우리가 짊어져야 할 주요 과제의 하나다. 이 연재는 그러한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작은 문제제기다.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제임스강
    2016.05.31 16:0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생각을 갖게 하는 글이 되겠네요..^^ ... 앗시리아와 이집트, 바빌론과 이집트 .. 두 강대국들 틈바구니 속에서 양쪽을 잘 넘나들며 약소국 남쪽 유대를 무려 56년간 지켜냈던, 므낫세 왕, 이런 사람이 외교술의 명수가 아니겠는가? .... 한국에도 이런 술책을 주무르는 배짱 두둑한 선구자적 인물이 나와야 함!!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703379559920391&set=p.1703379559920391&type=3
  2. 개독교도
    2016.06.13 09:1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한국의 대표극우단체인 연세중앙교회에선 얼마전 김무성 에스더운동본부등 총동원되어 이슬람이나 동성애자퇴출운동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갈등을 부추기면서 결집을 하는 개신교 단체들은 종교의 세금 징수면제 법에의해 공짜로 돈벌이하면서 이미 거대한 세력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자잘한 사회일탈횅위들을 일삼는 개신교들 이모두가 종교와는 상관업없는 정치장악의도행위들이죠.
    예를들어 미스바 구국기도운동이란걸 하면서 청년들에게 위기의식을 고양시키고 진주만 폭격 그영화의 가미가제 그부분만을 편집해서 집중 보여주면서 충성을 맹세하는짓도 있었습니다.
    그명령의중심엔 윤석전이란 개신교 종교지도자가있습니다.
    정말 정치권에서 손을 보지않는다면 국가가 저런 일개종교단체에의해 통제하기 힘든 지경이 올수가있습니다.
    종교의 정치계장악은 절대로 있으면 안되겠습니다.


예언자, 그들은 누구인가?





김진양

(Ph.D. The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the Old Testament))




    예언서를 연구한다는 것은 주로 예언자들의 역사적/사회적 상황에 빗대어 그들의 메시지를 분석함을 의미한다. 그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사회정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만 정작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은 없다. 예언자를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로만 연구하고 책으로만 만났으니 역사 한가운데서 하늘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몸부림쳤던 치열한 삶을 살았던 예언자를 볼 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조용히 잠든 세상을 마구 흔들어 깨워 요동치게 만든 예언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로 하여금 역사 앞에 자신의 몸을 과감히 내던지게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인가? 


    아브라함 여호수아 헤셸 랍비는 1962년 『예언자』라는 책을 출판했고, 그의 책은 20세기 성서학의 걸작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예언자 연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각주:1] 헤셸 랍비는 “신의 파토스”(Divine Pathos)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구약성서의 예언자와 예언서를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파토스의 신이라는 것이고 예언자는 신의 파토스를 몸으로 느끼고 전달하는 사람이다. 예언자는 단순히 신의 말을 전단하는 메신저나 또는 장래를 내다보는 선견자가 아니라 인간을 향한 신의 연민을 증언하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언자는 착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도덕 선생도 아니고 이성을 잃은 광분자도 아니다.


   예언자의 글은 신의 파토스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신의 파토스란 인간을 향한 신의 사랑의 표현으로서 자비와 사랑 때로는 실망과 분노와 같은 감정으로 표출된다. 예언자들이 열변을 토했던 것이 바로 신의 파토스다. 예언자는 세상의 불의를 보고 고함을 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예언자에 대한 단순한 접근일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신의 파토스는 역사적/사회 비평 같은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말이 신의 파토스를 전달하는 예언자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님의 진노가 내 속에서 부글부글 끊고 있어서, 내가 더 이상 주님의 진노를 품고 있을 수 없다”(렘 6:11).[각주:2]


   신의 파토스를 가장 잘 전달해주는 언어가 바로 시다. 구약성서의 예언의 독특한 점 하나가 바로 대부분의 예언이 시로 적혀 있다는 것이다. 헤셸 랍비는 예언자는 시인이라고 했다. 예언자라는 사람의 경험은 시인이라면 익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이 시적 영감으로 여기는 것을 예언자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부른다. 예언자는 시인과 마찬가지로 감수성, 정열, 상상력을 부여받았다. 


    중세기 저명한 모세 이반 에즈라(Moses ben Jacob ibn Ezra) 랍비는 “히브리어로 시인은 예언자로 불린다”고 주장했다.[각주:3] 실제로 에스겔은 자신의 예언을 당시 사람들이 시가로 받아들이는데 불평을 토로했다: “그들은 너를, 악기를 잘 다루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쯤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네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할 뿐, 그 말에 복종하지는 않는다”(겔 33:32).


    하지만 예언이 시라는 정의는 일리 있는 말이다.[각주:4] 구약성서 예언자의 입에서 나오는 신의 파토스는 시라는 문학형식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따라서 예언은 시적 상상의 소산이다. 시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시 안에서는 나무들이 생일을 축하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아모스는 번영과 향락을 일삼으며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여인들을 바산에서 풀을 뜯는 암소로 비아냥거리면서 하나님의 분노(신의 파토스)의 말씀을 이렇게 전했다: 


   사마리아 언덕에 사는 

   너희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어라.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빈궁한 사람들을 짓밟는 자들아, 

   저희 남편들에게 마실 술을 가져 오라고 조리는 자들아, 

   주 하나님이 당신의 거룩하심을 두고 맹세하신다. 

   두고 보아라. 너희에게 때가 온다. 

   사람들이 너희를 갈고리로 꿰어 끌고 갈 날, 

   너희 남은 사람들까지도 낚시로 꿰어 잡아갈 때가 온다. (암 4:1-3, 새번역). 


 이사야는 포로귀환의 은혜와 축복을 값없이 주어진 포도주와 젖에 비교하면서 하나님의 자비(신의 파토스)의 말씀을 이렇게 전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사 55:1, 새번역).



 예언자는 시인일 뿐 아니라 설교자요 사회 변혁가다. 그들은 설교를 통해 역사의 한 가운데서 신의 파토스를 전달하는 사람들이다. 예언자는 화산처럼 폭발하는 격정 속에서도 얼음같이 차고 맑은 냉철한 마음과 눈이 있다. 문익환 목사는 예언자의 이런 모습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설상 나는 죽었습니다.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직 숨쉬고 있습니다. 

   내 속에서 숨쉬는 건 누구입니까? 

   아아아아 그것은 흐느끼며 휘몰아치는 

   바람입니다. 높아만 가는 

   겨레의 숨소리입니다. 

   벗들이여 

   그 속에서 불꽃 튕기는 눈망울 하나 불쑥 나타나 

   얼음같이 찬 눈물을 

   뚝뚝 떨구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각주:5]  


 예언자들의 마음을 역사 현장에 있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신의 파토스다. 따라서 헤셸 랍비는 예언자는 지금 역사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1965년 셀마 몽고메리 행진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정점이었다. 셀마 몽고메리 행진 50주년을 기념하여 영화로도 나왔다. 20세기의 예언자로 불리는 헤셸 랍비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셀마 몽고메리 행진을 주도했다. 예언자들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가 아니라 신의 파토스에 이끌려 정의를 실천하도록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점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신의 파토스에 이끌려 예언자의 삶을 사신 또 다른 두 분이 있다. 바로 문익환 목사와 장준하 선생이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장준하 선생의 셋째 아들 장호준 목사가 “역사 바로잡기”라는 내용으로 강의하기 위해 시카고에 왔다. 장 목사의 강의를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장준하 선생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장준하를 “선생”으로 부르지만, 강연을 들은 이후 그분을 “우리 시대의 예언자”라고 부르기로 다짐했다. 해방의 신 야훼가 아니라 가나안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출애굽 해방의 역사적 경험으로 초대하는 예언자의 목소리를 그분을 통해 들었던 것이다. 일본제국 시절 부와 영예를 누릴 수 있는 일본군 장교가 아니라 광복군으로, 한국전쟁 당시 부산 피난시절 그분은 돈을 벌수 있는 많은 길이 있었지만 사상계를 출간하여 돈이 아니라 “생각해야 산다!”는 예언자의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들려주었고, 돈 벌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베트남 파병도 반대하셨다. 그분은 파라오의 진수성찬이나(출애굽기 5장) 금 신상으로 표현되는 우상숭배 (출애굽기 32; 열왕기상 12장), 바알숭배에서 드러나는 풍요와 싸우셨던 것이다.  


 지난 2016년 4월 총선이 끝난 후 장호준 목사가 다시 시카고를 찾았다. 이번에는 “장준하 선생의 아들 장호준 목사와 문익환 목사의 아들 문성근 선생의 토크 콘서트”라는 대담의 형식으로 문성근 선생과 동행했다. 특별히 이번 대담은 문익환 목사를 예언자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분은 과히 신의 파토스에 따라 자신의 삶을 던진 이 시대의 예언자임에 틀림없다. 시인이면서 목사요 성서학자요 운동가로서 문익환 목사는 구약성서의 예언을 “예언운동”이라고 규정했다.[각주:6] 문 목사는 “예언운동은 해방을 열망하는 억눌린 민중의 힘이 터져 나오는데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였다.[각주:7] 문 목사의 예언 운동은 바로 헤셸 랍비가 말하는 신의 파토스라고 생각한다.  


 헤셸 랍비는 “예언자들을 자세히 보면 결국 예언자들과 사귀게 된다”고 했다.[각주:8]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예언자가 되게 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신의 파토스다. 우리는 바로 이 신의 파토스의 영감을 받고 그것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예언자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역사 한 가운데서 하늘의 파토스를 전하고자 몸부림치는 예언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 필자소개

    현재 미 연합감리교회 북 일리노이 연회에서 목회,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에서 구약학 전공(Ph.D.), Wartburg College에서 강의


ⓒ 웹진 <제3시대>

  1. 아브라함 여호수아 헤셸, 『예언자들』, 이현주 옮김 (서울: 종로서적, 1996). [본문으로]
  2. 헤셸의 신의 파토스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Eliezer Berkovits, "Dr. A.J. Herchel's Theology of Pathos," Tradition 6 no. 2 Spr.-Sum. (1964): pp. 67-104. [본문으로]
  3. Shirath Israel (Berlin, 1924), p. 45. [본문으로]
  4. 헤셸, 172 쪽. [본문으로]
  5. 문익환, 『히브리 민중사』 (서울: 삼민사, 1990), 146쪽. [본문으로]
  6. 문익환, 『히브리 민중사』 (서울: 삼민사, 1990). [본문으로]
  7. 문익환, 136쪽. [본문으로]
  8. 헤셸, 머리말, x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절기 지키기에 대한 단상 

: 삶의 의미 부여 아니면 힘의 기제?





 

김혜란
(캐나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 실천신학 교수)


 


    생명을 가진 모든 삶에는 주기가 있다. 태어나고, 자라고, 시들고, 죽고, 또 태어나고 자라고, 시들고, 죽고.. 돌고 도는 그 시간의 주기엔 의미가 있다. 아니, 우리 인간은 그 반복되는 주기,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기에 반복되지만, 그 반복이 식상하지 않다. 

    종교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주기는 더욱 의미가 있다. 이렇게 반복되는 주기를 우리는 절기라 부른다. 유대교인들에겐 유월절이 그 절기의 정점이고, 이슬람교인들에겐 라마단과 이드가 그 절기의 절정이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님의 태어남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그 시작이자, 성탄절, 주현절 이어, 사순절, 부활절로 그 절정을 맞이하고, 교회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령강림절 기간으로 절기를 마친다. 매해 반복되는 절기지만, 그 기다림, 탄생, 고난, 죽음, 부활을 상기하는 그 의미는 다르고, 같지만 다르기에 더 의미가 있다.  

    이런 기독교 절기를 교회력(church calendar)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달력을 두 개 걸고 사는 셈이다. 아니, 음력과 양력을 동시에 지키는 한국인 기독교인들에겐 교회력까지 포함하면 세개의 달력을 보면서 다사다난한 절기를 지키면서 살아간다. 반복되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절기가 우리 인간, 종교적 삶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특정 날을 지정해서 예를 올리고, 의식을 행하고, 그 날을 축하하고 그 일정기간을 기념하는 일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지루하고 무의미할 것이다. 절기는 더 나아가 무의식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일상사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분별있는 삶을 살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절기, 반복되는 생명의 순환을 경험하면서 우주의 섭리, 하나님의 섭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우리 몸과 영의 소리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런 절기를 지키는 것이 무조건 다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즉, 절기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절기가 지닌 정치적 의미를 살필 필요가 있다. 절기가 인간의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절기는 힘을 갖고 있다.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는 한, 절기는 권력의 한 기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즉, 누구에 의해서 절기가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절기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이들에겐 절기가 부정적인 또는 불편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잠시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려 한다. 내게 절기에 대한 이런 비판적 가르침은 1998년 세계교회협의회 (WCC) 짐바브웨 하라레 총회 때 시작되었다. 총회는 11월 말에서 12월 초까지 행해졌다. 대림절 기간이었다. 일반적으로 대림절의 상징은 어두움속에서 빛으로 예수님이다. 그래서 그 절기동안 대림절 화환(Advent Wreath)을 둥그렇게 만들어 그 틀 안에 초 4개를 넣고 매 주 켠다. 한 주 한 주 1달동안 초를 켤 때마다 소망, 평화, 기쁨, 그리고 사랑으로 의미부여를 하면서 예수님탄생을 맞을 준비를 한다. 내가 살았던 한국이나 지금 살고 있는 카나다 두지역이 지구 북반구에 속해있기에, 대림절은 한 해 중에 가장 어두운 겨울절기이다. 그래서 추운 겨울 어두움을 뚫고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정말 의미심장하다. 깜깜한 추위를 가르고 은은하게 비치는 대림절 기간 촛불은 우리의 감성을 흔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짐바브웨에서 대림절의 경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저녁시간인데도 해가 지지 않아 여전히 밝았다. 춥기는 커녕 날씨는 따뜻했고 온갖 종류의 꽃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생명이 잠을 자는 겨울이 아니라, 만물이 생동하고 수확을 하는 가을로 접어드는 여름이었다. 그런데, 그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추운 겨울 어두움을 뚫고 오는 예수님의 탄생을 고백하고 찬양하고 있었다. 자신의 삶, 그곳의 날씨와 맞지 않는 이질적인 경험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럴까? 식민주의 선교를 통해 유럽에 속한 북반구 기독교인들에 의해 소개된 절기가 일방적으로 주입되어 아프리카에 사는 기독교인들이 지켜야 하는 규범으로 작동한 것이다. 마치 스리랑카 기독교인들에게 성찬예식으로 사용되는 밀가루 빵과 포도주가 낯설고 구하기 어렵지만 서구 선교사들이 그렇게 가르쳐 규범이 되어졌기에 불편해도 어울리지 않아도 지켜야 하는 하나의 정통예식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예배학자 러셀이는 이 점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문제제기를 한다. 만약 예수님이 스리랑카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신다면, 보라색 인공색소를 넣은 소다를 원하실까 아니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신선하게 생산된 그 지역차를 나누실까?[각주:1]  

    1998년 경험 이후 난 지구 북반구 서구 유럽 기독교의 절기가 온 세계 규범이 되어 일방적으로 (심지어 억압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동시에 규범화된 절기는 곧 힘의 기제, 즉 헤게모니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런 규범을 만든 그룹이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기에 힘을 지니지 못한 약자, 소외그룹, 그리고 피식민주의자들에겐 이 절기가 이질적이어도 불편해도 지켜야하는 정통 규범 (orthodox norm)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주 출신 가톨릭 예배학자 클래어 존슨은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지구 남반부에 있는 자들에겐 대림절은 어둠과 추위가 아니라, 여름의 절정이며, 부활절은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봄이 아니라, 반대로 동면을 취해야하는 겨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반부 교회에서 제정된 교회력, 교회력이 담고있는 신학과 가르침이 지구 남반부에 사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이질적이지만 그렇게 믿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력은 지키기 힘든 달력을 넘어서서 그들의 정체성 형성에 혼돈을 주는 이질감의 상징이라고 설명한다. 더 나아가, 교회력은 단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공간의 문제라고 주장한다.[각주:2]   

    이 점은 단지 기독교만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옆집에 사는 이웃은 방글라데시출신 카나다인이고 독실한 이슬람교인들인데, 라마단 (금식)절기를 카나다에서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호소한 적이 있다. 올해 라마단은 6월 6일부터 7월 5일까지이다. 이는 하지기간이다. 북반구에 속한 카나다에서 이 기간동안 해가 새벽5시에 뜨고, 저녁 9시에 진다. 그만큼 더 오래 금식을 해야하는 것이다. 우리 무슬림 이웃에게 절기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공간의 문제는 존슨의 주장이 타당하다.  

    이런 존슨의 주장은 탈식민주의 이론에서 주장하는 인식론과 상통한다. 우리가 어떤 사건 어떤 지식을 획득할 때, 그걸 어떻게 아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인식론이다. 그 인식론은 결국 지식의 문제이며, 동시에 그 지식을 획득하는 자의 정체성, 힘의 문제이다. 탈식민주의이론에서 인식론은 어떻게 역사를 이해하고 규정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본다. 그래서 탈식민주의는 식민주의 역사에 관심하는데 역사는 직선적 시간 (linear time)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 공간적 다원성 (spatial plurality)에 의해 규정된다고 본다.[각주:3] 이미 내가 쓴 책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식민주의의 대표적 예를 노예제도라고 본다면, 탈식민주의에서는 “xx가, 아니 xx의 조상이 xx 세기에 노예였다”라는 “시간” 중심의 식민주의적 역사인식론을 반박한다. 대신 “xx가, 아니 노예였던 xx의 조상이 이 공간에서 다양한 다른 그룹 (원주민, 이민자)들과 함께 살았고, 특히 지배자였던 백인과 공존, 충돌, 저항하면서 살았다” 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공존하는 그 “장소”에 관심을 한다.[각주:4] 그 장소에 관심을 두는 순간, 그렇게 역사를 보는 순간, 그 곳에서 복잡다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특히, 소외받고 억압받는 이들의 모습을 드러난다.   

    이렇게 역사관을 바꾸면 마치 중립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시간이, 그 시간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절기가 실제로는 전혀 중립적이지 않고 부자연스럽다는 걸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절기의 문제는 헤게모니의 문제라는 것도 드러난다. 즉, 누가 왜 그 절기를 만들었는지, 이 절기를 통해 누가 소외되고, 누가 다수로, 규범으로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고찰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전 4월 16일 세월호 2주기를 기념했다. 5월 5일 어린이날도, 5월 8일 어버이날도 축하했다. 곧 5.18 광주항쟁과 6.10 민주항쟁을 기념할 것이다. 6월 6일 현충일도 있고, 6.25 한국전쟁도 기념할 것이다. 그 기간 단오절도 들어있다. 교회력으로는 부활절을 마쳤고, 성령강림절 기간으로 절기가 바뀌었다.  

    이 많은 절기 어떻게, 무슨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어떻게 축하하고, 기념하고, 실천할 것인가?   

    이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 또 독자가 속한 다양한 공동체에 달려있다. 다만, 나의 소견은 이렇다. 의미를 부여하자. 축하하자, 기억하고 애도하자. 그네도 뛰고 풍년을 기원하자.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새단장도 하자. 이 모든 걸 하면서, 이런 절기가 우리 이웃들에게, 타자들에게 억압이 되는지, 이질감을 줄 수 있는지도 곰곰이 살피자.  



ⓒ 웹진 <제3시대>

  1. Russell Yee, Worship on the Way: Exploring Asian North American Christian Experience (Valley Forge: Judson Press, 2012), 135. [본문으로]
  2. Clare V. Johnson, “Relating Liturgical Time to ‘Place-Time:’ The Spatiotemporal Dislocation of the Liturgical Year in Australia,” in Christian Worship in Australia: Inculturating Liturgical Tradition, Stephen Burns and Anita Monro, eds. (Strathfield, N.S.W. : St Pauls Publications, 2009), 33-45. [본문으로]
  3. Bill Ashcroft, Gareth Griffiths, and Helen Tiffin, The Empire Writes Back: Theory and Practice in Post-colonial Literatures (London/New York: Routledge, 1989), 36-37. [본문으로]
  4. HyeRan Kim-Cragg, Story and Song: A Postcolonial Interplay between Christian Education and Worship (New York: Peter Lang, 2012), 32.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미국의 묵시록 5 : 국기(國旗)와 국가(國歌)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몇 달 전 우연히 인터넷 CNN뉴스에서 54년 만에 쿠바의 아바나에서 미국의 성조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보았다. 카스트로의 혁명으로 쫓기듯 국기를 내리고 대사관을 철수했던 미국이 쿠바와 수교를 맺은 후, 아바나에 대사관을 다시 여는 첫날 국기계양식의 모습이었다. 1961년 미국 대사관에서 마지막으로 성조기를 내렸다는 3명의 해병도 노인이 되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성조기가 쿠바에서 다시 휘날리는 감동의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1961년 쿠바에서 그리고 1975년 베트남에서 자랑스러운 성조기가 강제로 내려지는 모습을 많은 미국인들은 ‘치욕’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들에게 쿠바에 다시 꽂은 성조기는 미국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쿠바에 가해진 보복의 테러에 대한 사과나 반성은 찾을 수 없었다. 굴하지 않는 의지와 멈출 수 없는 자유의 행진을 뜻하는 성조기 앞에 사과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기라는 깃발이 갖는 의미는 대부분 미국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국가와 애국심, 전쟁과 희생, 자유와 영광 등의 이념을 깃발 하나로 엮어낸 원조가 바로 미국이다.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도 미국이 만들어낸 것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 맹세, 다짐, 경외심, 바른 자세는 미국이 완성해낸 국가라는 종교의 성례전에 속한다. 그 대가는 초월적인 위안과 더 큰 실제인 국가와의 합일을 체험하는 것이다. 국기는 종교적 감성을 유발하지만 그에 따르는 규범은 언제나 군사적이다. 미국의 국기는 애초 독립전쟁 때 제정된 군기였다. 지금도 군사적 정신을 함양하고 희생과 복종의 정신을 요구하는 도구로 쓰인다.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의식을 제공하고, 안과 밖,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게 만든다. 따라서 국기는 군사문화를 상징하는 군기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세상 나라들의 국기는 모두 비슷한 역할을 한다.  


    미국의 자유란 개념이 군사주의를 연상시키지 않고, 미국의 문화가 군사적이라는 판단도 흔치 않다. 그러나 군사주의의 문화는 미국의 국민의식 저변에 깔려있다. 군사용으로 개발된 기술이 현대적인 삶의 필수적인 일부가 된 예가 많다는 사실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인터넷은 초기에 군사기술로 개발되었고, 군사주의가 지향하는 세상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세상은 감시와 통제와 검열에 익숙하고, 삶이 통계와 데이터의 가치로 평가되는데 익숙해 있다. 미국 정서의 무의식 속에는 명령과 복종, 법과 질서, 심판과 처벌이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군사문화는 전쟁으로 형성되고, 미국은 언제나 전쟁 중이다. 그러나 18세기 독립전쟁에서 21세기 이락과의 전쟁까지 미국의 모든 전쟁은 자유를 위한 전쟁이었다. 자유는 전쟁에 초월적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자유와 전쟁의 이념적 간극을 메워 근접할 수 없는 숭고한 신앙의 영역으로 만드는 역할을 성조기가 한다. 이를 초월적 신앙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투쟁의 영역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은 ‘총’이다. 미국의 많은 백인들에게 총은 성조기와 더불어 자유의 절대적 상징이다. 자유의 끝은 총으로 지켜야 하고, 그들이 믿는 성조기의 모든 것은 이를 증언한다고 믿는다. 미국처럼 일상에서 국기를 많이 접하게 되는 나라가 있을까. 고속도로를 차로 달리다 백인남자들이 선호하는 픽업트럭에 성조기가 차창에 부착돼 있는 모습을 가끔 본다. 불필요하고, 위협적이고, 기름 많이 먹는 트럭을 몰고 다니는 이유는 언젠가 긴요히 쓸 때가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내가 소유하는 모든 걸 싣고 떠나야 할 마지막 날을 위한 준비는 아닐까). 그런 트럭에 부착된 성조기에서 내가 읽는 의미는 ‘이 트럭 안에 총이 있을지도 모르니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의 전근대적인 총기사랑은 자유란 이념이 허용하는 군사문화와 병행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부분은 <총의 묵시록>이란 제목으로 차후에 다룰 생각이다). 


    미국의 군사문화를 내부에서 유지시키는 기능은 스포츠가 한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상처는 운동경기에서 되풀이 되는 전쟁의 본질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미국의 남자아이들은 야구와 풋볼 또 최근에는 축구를 통해 승리의 영광을 체득하고, 이를 위한 자기희생을 강요받으면서 싸움터의 가치를 내면화 한다. 모든 공식 스포츠 경기에서 부르는 미국의 국가는 이 문화를 초월적인 공동체의 가치로 수용하게 만든다. 미국의 대학 스포츠 중 특히 풋볼은 19세기 후반 이후 미국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그 문화는 명령과 복종과 승리를 절대가치로 그리고 패배를 치욕으로 받아들이는 군사문화의 규율이 만들어낸 것이다. 운동경기에서의 승리는 이기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전쟁에서의 승리는 진실이 승리했다는 주장을 낳는다. 미국만큼 자신의 전쟁이 진리와 정의를 위한 전쟁이라 믿는 나라는 없다. 베트남 전쟁과 같이 반대가 심한 전쟁도 있었지만, 미국은 싸워서라도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도그마에 다수가 동의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여기서 미국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자유론’은 신앙의 영역에 속한다. 독립전쟁에서 남북전쟁, 세계대전에서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까지의 분쟁은 모두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다. 자유는 청교도 시대부터 부여받은 미국의 사명이자 운명이었고, 이 자유를 이 세상에서 완성시키는 사명은 종말론적 사명이었다. 역사를 종결시키는 종말의 사명 앞에 후퇴나 타협은 있을 수 없다. 핵무기 선제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거부했던 냉전시대의 전략과 이 시대 미국 밖의 다른 패권적 국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전략은 이런 종말의 사명을 배제하고 제대로 설명될 수 없다. 


    미국의 국가(國歌)는 국기(國旗)인 ‘성조기’를 노래하는 군가다. 가사는 밤새 적의 포탄 공격을 받고도 새벽녘에 변함없이 휘날리고 있는 성조기의 위상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1931년 의회에서 국가로 공인되기 이전에도 100년 넘게 군대의 행사나 국기를 게양할 때 연주되던 곡이었다. 미국의 군사문화는 성조기의 물신(物神)화로 유지된다. 그 문화를 일상의 일부로 만드는 건 성조기를 바라보면서 국가를 불러야만 시작하는 스포츠 경기다. 오래 전 기독교 평화주의 전통을 이어온 메노나이트 (Mennonite) 종파의 교인들이 세운 인디아나주에 있는 고션대학(Goshen College)에서 앞으로 운동경기 전에 미국국가를 부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각종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대학이 국기의 우상화와 군사문화에 참여하지 할 수 없겠다는 용기와 결단이 당시에도 놀라웠다. 미국의 국가만큼이나 성조기의 우상화와 군사문화의 고착에 역할을 한 것은 ‘국기에 대한 맹세’(Pledge of Allegiance)다. 최근에는 학생들에게 강제로 국기를 바라보며 가슴에 손을 얹고 충성을 맹세하도록 만드는 게 위헌이라는 논란이 많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허용하는 주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맹세는 지금도 일반적으로 미국의 초. 중. 고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규범이다. 최근에 이 맹세를 거부하는 운동이 ‘강제’와 ‘강요’를 문제 삼았다면, 예전에는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국기에 대한 맹세가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거부하곤 했었다. 


    미국의 국가만큼이나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미국의 혼을 잘 대변한다는 “Battle Hymn of the Republic”이라는 노래가 있다. 한국의 찬송가에도 ‘마귀들과 싸울지라.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가사는 좀 달라도 “Glory, Glory, Hallelujah” (영광, 영광, 할렐루야)라는 유명한 후렴은 동일하다. 미국에선 독립기념일이나 현충일과 같은 날엔 빠지지 않고 불리는 감동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곡이다. 그 가사와 작사가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 그 곡의 묵시적인 내용을 알게 된 후 노래를 들으면서 관찰은 했어도 따라서 불러본 적은 없다. 군인이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신의 진리를 이루기 위해 적을 짓밟겠다는 가사는 전쟁을 국가 간의 대립과 분쟁이 아니라 선악의 싸움으로 이해하고 마치 십자군의 성전을 연상케 만든다. 가사는 영광 속의 재림한 예수가 분노하여 적을 짓밟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그의 진리가 행진하는 병사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재림 예수의 진리를 위해 행진하는 군대는 마지막 심판과 최후의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다. 계시록의 언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가사에서 종말론적 사명을 전쟁터에서 이뤄내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가사를 쓴 줄리아 하우(Julia Howe(1819-1910)는 원래 묵시록의 언어보다는 에머슨과 소로우의 초월주의 언어에 더 익숙했던 사람이었다. 당시로선 진보적인 시인이었고 여성운동을 펼친 작가였다. 칼빈주의의 억압적인 세계관을 포기하고 유니테리언교로 개종하기도 했다. 청교도 세계관의 묵시적 종말의식에서 벗어나 자연과 동화하고 자유를 노래하고자 했다. 하지만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행진을 목격하고, 북군의 승리를 기원하는 노랫말을 쓸 때 그가 의존했던 것은 예언의 언어였고 묵시록의 세계관이었다. 그가 쓰고 남긴 것은 군가였고 동시에 적을 멸하는 신을 찬양하는 찬송가였다. 북군은 재림예수의 군대였고, 신의 분노를 사탄에게 드러낼 병사들이었다. 전쟁과 군대를 묵시록의 언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건 미국이란 나라의 정서적 무의식의 한계일까. 미국이 구원의 사명을 받았고 이를 실천하고 위해 강해야 한다는 인식은 현대 미국에서도 유효한 신념이다. 하우가 곡의 가사를 쓰게 되는 과정도 예사롭지 않다. 하우는 그날 새벽에 잠에서 깼다. 다시 잠들기 전에 가사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고 어둠 속에서 펜을 찾아 써내려갔다고 한다. 마치 예언을 기록하듯 쓴 것이다. 그 내용이 계시록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1871년 신미양요와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조약 체결의 빌미를 제공한 운양호 사건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기에 관한 것이다. 조선군의 선제 대포공격을 받은 미군은 이를 미국 국기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했다. 성조기가 해를 입지 않았지만 이를 미국 국기의 명예가 실추된 중대한 사건으로 규정짓고, 이에 상응하는 사과와 보상을 조선에 요구했다. 놀랄만한 논리의 비약이지만 이는 당시 미군 함대의 지휘관 Rodgers의 보고서에서도 등장하고, 전투에 참전했던 장교 Schley의 훗날 회고록에서도 같은 얘기를 한다. 이들은 조선군의 진지를 공격해 큰 인명피해를 입힌 것을 성조기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설명했다. (당시 미군함대의 병력은 최첨단의 무기로 무장했고, 남북전쟁에 참전해 실전경험을 쌓았던 병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조선군의 구식무기로 당해낼 수는 없었다). 여기서 성조기는 단지 미국을 상징하는 깃발이 아니다. 그 자체로 어떤 주권을 행사하는 실제라 할 수 있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그 실제는 피와 제물의 제사를 통해서만 만족될 수 있는 신적인 존재, 아니 우상 또는 물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국기에 대한 신격화를 일본이 배운 것일까. 일본은 조선군의 포격이 운양호에 위협이 되지 못했지만 이를 일본국기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했다. 곧 보복 공격을 가해졌고 많은 조선 수비대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일본의 국기가 법으로 제정된 지 몇 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와 같은 국기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다. 


    신미양요와 운양호 사건에서 국기와 관련된 주권의 전이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을까. 미국만을 보자면 시민에서 국기로의 전이, 즉 미국 내부의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시민의 주권에서 팽창주의를 전제하는 국기로의 전이를 말할 수 있다. 국기는 시민과 달리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의미는 이미 자유로 규정된 미국의 운명으로 드러나 있다. 미국의 운명이 자유이고 그 자유의 주권을 국기가 간직하고 있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실제의 주권으로 국기는 섬김을 요구하고, 국기 앞에서 갖추어야 하는 모든 예의나 국기를 다룰 때 지켜야 하는 규칙은 모두 그런 행위에 속한다. 전쟁에서 싸우다 죽은 미군은 모두 자유를 위해 죽었다는 칭송을 듣는다. 주검이 실린 관은 성조기로 감싸 헛되지 않는 죽음을 위로한다. 한국에서 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는 ‘태극기 앞에서’의 맹세를 말하지만, 미국의 맹세에선 ‘성조기에게’ 충성과 맹세를 요구한다. 태극기는 맹세의 증인 역할을 하지만 성조기는 그 대상이 된다. 두 사건 일어나던 강화도에는 성조기와 일장기가 꽂혔다. 땅에 국기를 꽂는 것은 그 땅을 차지했음을 선언하는 행위다. 달에 꽂힌 성조기 사진이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달이라는 상징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이 그곳까지 자유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주권의식을 포기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태극기가 처음 제작된 것은 1882년 미국과의 통상조약을 준비할 때였다. 미국은 주권 국가들 사이의 조약에 국기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남북전쟁 이후 성조기라는 깃발을 중심으로 미국을 하나의 민족으로 만들고 제국주의의 꿈을 펼쳐나갈 때, 모든 국가가 그런 깃발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건 무리가 아니었고, 실제로 많은 국가들의 국기는 19세기 후반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특이한 것은 미국의 통상압력과 미국의 군사적 상징인 성조기에 맛서 내놓은 깃발이 도교의 우주관을 설명하는 태극기였다는 사실이다. 왕조시대 왕의 어기를 개조해 착안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의 군사적 팽창주의에 맛서 동양의 철학을 내세웠다는 상징적 저항을 읽을 수는 없을까. 미국의 각 주를 상징하는 하늘의 별이 새겨있고, 용맹과 순수를 나타내는 색깔이 장식된 성조기는 처음부터 군기로 제작되었고 지금까지 군사문화의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군사적 의례가 가능하다. 하지만 군사문화의 상징이 아닌 동양의 우주관이 담긴 깃발 앞에서 그런 경례와 맹세는 어색할 수밖에 없다. 국기계양식의 예를 지키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게 했던 군사정권은 태극기를 애국주의의 군기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1882년 조미통상수교에 미국을 대표해 서명을 했던 미 해군 장성 로버트 슈펠트(Shufeldt)는 1886년 선교사 아펜젤러를 일본에서 만나 그로부터 조선이 서구세계에 처음 문호를 개방할 당시의 정황을 글로 기록해 줄 것을 부탁 받는다. Korean Repository(1892)에 실린 슈펠트의 기록 마지막 문단에 흥미로운 정황이 묘사되어 있다. 슈펠트와 함께 배에서 내린 부하 병사들은 조약식을 위해 설치된 텐트 옆에 성조기를 ‘평화롭게’(Peacefully) 꽂았고, 조약식이 거행될 땐 Yankee Doodle이란 곡을 연주했다. 평화롭게 성조기를 꽂았다는 말은 성조기를 남의 나라에 꽂는 상황이 주로 평화적이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당시는 미국의 국가가 공식적으로 제정되기 전이었다. 1882년 미군이 제물포에서 연주한 Yankee Doodle이란 곡은 국가로 인정받지는 못했어도 비공식적인 국가란 얘기를 들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었다. 당연히 군가였다. 독립전쟁에서 남북전쟁 그리고 조선에서까지 적을 조롱하고 아군의 사기를 높이는 곡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군가라기보다는 동요와 민요로 일상의 의식 속에 남아있다. 미국의 국가나 Battle Hymn of the Republic이란 곡도 미국의 정신과 혼을 노래하는 곡일 뿐 군사주의를 찬양하는 군가로 보지 않는다. 이유는 미국정신의 발현은 늘 군사주의를 동반해 왔기 때문이다. 군사문화의 완성은 ‘군사’는 망각되고 ‘문화’만 기억되는 상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슈펠트에게 조선과의 조약은 서구문명의 영향 밖에 있던 마지막 국가, 즉 은자(Hermit)의 나라를 그 안으로 불러들이는 행위였다. 그는 이를 ‘콜럼버스의 달걀’만큼이나 쉬웠던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달걀은 인위적으로 깨져야만 누군가의 보편적 진리를 증명할 수 있다. 그날 제물포 텐트 옆 성조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평화롭다고 본 사람은 슈펠트 혼자였을 것이다. 


    미국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성조기 사진은 아마도 1945년 2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영토였던 이오지마 섬에서 성조기를 매단 깃대를 세워 올리는 병사들의 사진일 것이다. 사진가 조셉 로즌솔(Joseph Rosenthal)은 뷰파인더를 들여다볼 시간도 없이 급하게 셔터를 눌러 역사에 남을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은 곧 성조기의 본질을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로즌솔은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그 사진은 몇 개월 후 우표에도 실리게 될 정도로 빠르게 명성을 쌓아갔다. 사진 속에서 깃대를 세우던 6명의 병사 중 3명이 그 후 전사했다는 사실은 죽음으로 지킨 성조기, 목숨과 바꾼 성조기의 신화적 의미를 그 사진에 부여했다. 로즌솔의 사진이 성조기의 어떤 본질을 담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조기의 상징과 실제가 군대의 병사들에 의해 세워진 성조기 그리고 그들의 희생과 죽음이라는 현실 속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마치 빼앗은 땅에 꽂은 성조기가 전쟁의 상처가 남은 자리를 성스러운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처럼. 마치 그 성조기가 죄를 씻는 영세의 징표 또는 은혜의 징표인 것처럼. 그 사진을 처음 받아 본 미국연합통신의 편집인 John Bodkin은 “Here's one for all time!"(영원할 사진)이라고 외쳤다. 사진을 직업적으로 다루는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알아본 건 아니었다. 미국정부는 살아남은 병사 3명을 영웅으로 만들어 군사주의와 성조기를 동일화 시키는 군사문화의 확산에 앞장섰다. 




ⓒ 웹진 <제3시대>



    (참고) 


    아펜젤러가 자신의 이름으로 실은 슈펠트의 기록은 "The Opening of Korea: Admiral Shufeldt's Account of It"이라 제목으로 The Korean Repository (1892)에 실렸다. 신미양요에 참전했던 Winfield Schley의 회고록은 Forty-Five Years Under the Flag이었다. 모두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하다. 

    미국의 국기에 대한 맹세(The Pledge of Allegiance) 전문: 

    "I pledge allegiance to the flag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o the republic for which it stands, one nation under God, indivisible, with liberty and justice for all." 의 1절 가사는 다음과 같다. 

    "Mine eyes have seen the glory of the coming of the Lord; 

    He is trampling out the vintage where the grapes of wrath are stored; 

    He hath loosed the fateful lightning of His terrible swift sword: 

    His truth is marching on. 

    Glory, glory, hallelujah! 

    Glory, glory, hallelujah! 

    Glory, glory, hallelujah! 

    His truth is marching on."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행복한 삶의 비결[각주:1]


 

권오윤[각주:2]



       가족 중 누군가를 병으로 잃는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투병 기간 중 제일 힘든 것은 물론 환자 본인이겠지만, 그와 함께 하는 가족이 받는 스트레스 또한 어마어마합니다. 그렇게 고생한 환자를 결국 떠나 보내야만 할 때의 상실감은 또 어떻고요. 살아서 함께 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제대로 깨닫게 되는 것은 영원히 떠나 보낸 다음의 일입니다.  

       이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의 주인공 치에는 남자친구 싱고와의 결혼을 앞두고 유방암 선고를 받습니다. 치에가 수술을 받은 후에도 두 사람의 마음은 굳건합니다. 원래 계획대로 결혼을 하고, 재발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를 낳아 기르며 꿋꿋이 8년간의 투병 생활을 이어가지요. 병세가 깊어지자, 치에는 다섯 살 난 딸 하나에게 현미밥과 미소된장국 만드는 법을 가르치며 차분히 이별을 준비합니다. 

       알려져 있듯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야스타케 치에가 자신의 일상을 블로그에 연재하고 그것이 유명해지자,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그녀를 취재하게 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죠. 이미 일본에서는 TV 다큐와 스페셜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안타까운 소재를 마냥 차분하고 슬프게만 풀어가는 영화는 아닙니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치에 가족의 생활도 배꼽 잡게 웃기는 때가 있는가 하면 무덤덤하게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들도 있고, 가슴을 후벼파는 아픔과 찡한 감동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주인공 치에 역을 맡은 히로스에 료코의 연기는 훌륭합니다. 병색이 진하게 묻어나는 분장도 마다하지 않고 치에의 삶을 재현하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모습이 돋보이죠. 약 1천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하나 역할로 캐스팅된 아카마츠 에미나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귀엽다는 탄성을 자아내면서도 애잔한 울림이 있습니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영화의 주제가 <만텐호시(満点星: 만점 별)>에도 사연이 있지요. 이 노래는 대만 출신의 배우 겸 가수인 히토토 요우가 가사를 붙이고 직접 불렀는데, 야스타케 치에가 실제로 가장 좋아했던 노래가 그녀의 대표곡 <모라이나키(もらい泣き)>였기 때문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히토토 요우는 극중에서 주인공의 언니 역할로 직접 출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편집입니다. 장면들 자체만 놓고 보면 괜찮습니다. 관객의 감정을 제대로 건드려서 폭소와 눈물 바람을 오가게 하니까요. 문제는 그것들이 모두 느슨하게 이어 붙여져 있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잘 짜여진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템포도 일정하게 느린 편이어서 리듬감이 부족하죠. 따라서 영화를 보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마치 훌륭한 에피소드들이 가득한 블로그를 읽고 있는 기분이 드는 쪽입니다. 

       또한, 실화라고는 하지만 몇몇 설정도 거슬립니다. 집안일에 거의 신경쓰지 않는 싱고를 통해 볼 수 있는 가정 내 남녀 성역할 구분 문제, 아이 낳는 문제를 거의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장면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린 아이에게 밥하고 된장국 끓이는 걸 저렇게까지 해서 가르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는 점 등이 그렇지요. 일본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맥락을 고려하면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의 삶이 언제 어떻게 끝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멀쩡하게 잘 살아 있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에 예기치 못한 운명의 장난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런 사실 때문에 자포자기 해서, ‘어차피 끝날 건데 뭐하러 열심히 사느냐’고 되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질문을 조금만 바꿔 주면, ‘어차피 끝날 건데 조금이라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 가는 게 어떠냐’는 권유 섞인 물음이 되지요. 좀 더 나은 하루하루를 위해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을 사용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일은 세상 어떤 일보다 행복감을 높여줍니다.

       이 영화 속 치에의 짧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바로 그런 인생의 진실을 나직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데서 나온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5월 3일자 기사 <딸을 두고 떠나야 하는 엄마, 그녀의 마지막 된장찌개>(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206310)로 게재된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2. <발레교습소> <삼거리극장> <화차> 등의 영화에서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현재 연출 데뷔작을 준비 중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물 [권오윤의 더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RMP_b 멀미를 회복하다. 

미디어 발전과 주체성에 관하여





RMP-b_나무바퀴 자전거와 영상_ 가변크기_15분_2008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설렘과 기대를 갖게 하지만 항상 불안도 공존해왔다. 도구의 발전과 불안에 관한 극적인 알레고리는 스텐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잘 표현 되어있다. 한 유인원이 뼛조각을 휘둘러 자신보다 강한 적을 제압한다. 흥분한 유인원이 뼛조각을 하늘 높이 던져 올리자 그 뼛조각은 우주로 날아가 우주 탐사선으로 변한다. 자연을 제압한 도구는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같은 영화에서, 인공지능 HAL은 우주 탐사선에 있는 승무원을 살해한다. 인간에 의해 발전한 도구가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는 순간이다.   


   도구와 인간의 역전은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수로 인간 대표를 물리치는 인공지능 알파고의 등장은 그야말로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생경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친숙한 미디어 환경일 지도 모른다.  


   요즘은 보통 여가시간이나 지하철, 심지어 대화 중에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눈이 아프고 머리가 멍해질 때까지 tv를 보다가 잠자리에 들기도 다반사다. 디지털 미디어는 이제 그 자체로 우리 삶의 환경이며,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미디어와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서 얻은 체험은 신체활동과 무관하다. 눈과 귀만 인터넷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있는 셈이다. 발 없는 “눈귀(鬼)”는 시공간을 초월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반면 몸뚱이는 별로 할 일이 없다. 가끔 버튼을 누를 뿐. 이런 현상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1888년 코닥 사진기 최초의 광고 문구가 "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신체활동 심지어 사고의 영역까지 디지털 미디어에 내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사용자가 미디어로부터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몰입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고도화된 미디어 장치가 요구하는 몰입을 거부하고 온몸으로 세계와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RMP는 ‘탈 수 있는 멀티미디어 플레이어(ridable multimedia player)'의 약자로 미디어의 기능을 조작해 메스미디어의 압도적인 발전으로부터 자아감을 지키기 위한 대안미디어다. RMP는 바퀴와 안장이 나무와 철로 되어있어서 주행 충격이 고스란히 온몸에 전달된다. 자전거에 올라타서 페달을 밟는 순간 변화무쌍한 땅의 변화들이 온몸으로 감지된다. RMP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엉덩이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린다. 반성과 실천에 있어서 신체적 고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고통과 멀미작용이 미디어에 정신이 팔리는 것을 방지한다. 미디어로부터 비평적 거리를 확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RMP의 핵심작용이다.

   보편적인 환경이 되어버린 미디어를 거부하고 온몸으로 세계와 대응하는 것은 언제나 주체성을 회복하는 실천운동이었다. RMP 시리즈가 비록 상징적인 대안 미디어 장치이지만 기술 진보를 반성하고 미디어와 인간이 어떻게 건강한 조화를 이루며 주체적으로 살아갈지 깊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 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개인전 를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 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by 제3시대

공지사항

카테고리

웹진 <제3시대> (804)
특집 (8)
시평 (92)
목회 마당 (58)
신학 정보 (131)
사진에세이 (38)
비평의 눈 (65)
페미&퀴어 (22)
시선의 힘 (131)
소식 (152)
영화 읽기 (30)
신앙과 과학 (14)
팟캐스트 제삼시대 (12)
연구소의 책 (13)
새책 소개 (38)
Total : 328,417
Today : 61 Yesterday : 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