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결단식 앞에서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4.16 세월호 유가족 협의회가 지금 광화문에서 “사생결단식”을 하고 있다. 사생결단(死生決斷)이라는 말과 단식(斷食)이라는 말이 합쳐 사생결단식이라 했으니, 살든지 죽든지 끝까지 가서 결말을 보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단식하겠다는 뜻이다. 왜 세월호 유가족들은 "사생결단식"이라는 엄청난 표현을 써가며 단식해야 할까? 효과적인 단식이 되려면, 희생자들을 포함한 많은 보통 사람들의 공감의 바탕 위에서, 그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권력자들이나 억압자들을 향해서 호소하고 저항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단식의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진실을 향한 공통의 인식이 얻어지고, 끝내 화해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출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하는 것이 단식이다. 하지만 "사생결단식"이라는 타이틀을 만나면서 드는 생각은 희망보다는 염려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가슴 속에 자신들이 공감을 얻고 있다는 확신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실을 볼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끝내 소통하고 화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마저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사생결단식이라는 이 무거운 이름을 내걸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단식을 시작하면서 페이스북에 올린, <사생결단식을 시작하며>라는 글을 몇 번이고 읽었다. 사생결단식을 감행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배후가 하나 둘 그려진다. 온갖 방법으로 진실을 감추려고 하고, 진실을 찾으려는 모든 노력을 집요하게 방해하는 이 시대의 권력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진실보다는 권력이 중요하고 백성을 진실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것을 원할 뿐이라는 민중 개돼지론도 버젓이 활개치고 있다. 더 나아가 진실로부터 힘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힘과 권력으로부터 진실이 나온다고 강변하면서, 먼저 권력을 잡고 난 이후에 진실을 문제 삼겠다는, 그래서 먼저 권력을 달라고 외치는 소위 국민이 뽑은 대표들도 있다. 그리고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 진실이 뭐 그리 중요하냐며 말없이 힐난하는 눈빛들이 그 성명서의 배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의 확산을 애써 가로막고 서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찌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뿐이겠는가? 노동현장 곳곳에서, 내가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우리 서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이야기 해보자는 외침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공감과 메아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적다.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가 들어주지 않고 공감하지 않는 문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치와 언론의 관심은 점점 멀어지고, 바라보고 듣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치 인정 받지 못하는 증언이나 순교처럼,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나 대가처럼, 메아리도 없이 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도록 철저히 차단되어 있다. 


    자신의 인간됨을 주장하면서 그리고 사람 대 사람의 진정한 만남과 대화를 요청하면서, 지금 거리에 서 있는 저 사람들이 이 무관심과 무공감의 시간을 얼마나 오래 견뎌야 하는 것일까? 참으로 호된 시련이다. 그들이 우리를 향해 묻고 있다. 정말로 이 세상이 인간이 살만한 세상이라 할 수 있는가? 아니 이런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당신들이 정말로 인간일 수 있느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관심과 공감의 능력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무기력 앞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속으로 까맣게 타 들어간 이들의 분노가 지금 절망으로 기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생결단의 단식에 몸을 던지는 저들이 세계와 공동체와 인간 삶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진실을 향한 염원에 연대하는 길뿐이다. 하지만 이 공감과 연대의 길은 우리 자신이 지금 맺고 사는 모든 관계들의 변혁을 통해서 가는 길이다. 지금 우리는 모래 알처럼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그렇게 고립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기 위해서 수 많은 연결 다리를 놓고 있다. 하지만 그래 보아도 잠시 스치듯 만날 뿐, 결코 서로를 향해 인격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매우 간접적이고 사물화된 접촉이 있을 뿐이다. 그처럼 간접화되고 사물화된 관계를 넘어, 직접적이고도 긴밀한 인격적인 만남의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개방하지 않고서는, 서로 간에 진정한 공감과 연대를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변명 같이 들리겠지만, 공감과 연대를 가로막는 엄청난 힘들 앞에서 우리는 지금 허우적거리고 있다. 나찌즘, 피시즘, 종교와 같은 신념의 체계들은 그 신념이 만들어 내는 불타는 증오심으로 수 백만을 살해했지만, 자본주의는 그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지금도 살해하고 있다고 보는 유발 하라리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부와 권력으로 일컬어지는 사물을 향한 탐욕은 우리를 눈 멀게 하고 귀 멀게 하고 우리의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고 왜곡한다. 만물을 생명과 인격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사물로 바라보게 하고, 공약 가능한 수나 양으로 바라 보게 만든다. 그래서 김포 공항 청소 노동자들은 온갖 수모와 착취를 견디다 못해 그저 "인간대접을 받고 싶다"라고 하였다. 임금 얼마에 모든 것을 포기한 노동기계가 아니라, 사람으로 보아 달라고 하였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며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을 뿐이다. 


    사물에 대한 욕망이, 우리들로부터 관심하는 능력과 공감하는 능력을 빼앗아 버린 그 결과를 나향욱 기획관은 숨김없이 증언하였다. 그는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가 어떻게 자기 자식처럼 생각될 수 있냐고 반문하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위선이라 하였다. 그에게 관심과 공감은 위선이다. 그에게는 사람과 사람이, 인격과 인격이 모든 장벽을 뚫고 서로 간절하고도 긴밀하게 만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생명과 생명이 만나서, 새로운 삶의 공동체, 곧 우리가 이야기하는 코이노니아나 코뮤니온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자본주의 질서 하에서 우리들의 마비된 관심능력과 공감능력의 실상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생명들과 함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공감능력을 마비시키는 또 하나의 질서가 오랜 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인간의 유한함, 불완전함, 혹은 다 알지 못함이 가져다 주는 불안과 두려움은 그 자체로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고, 언제나 인간의 삶을 억압하고 왜곡하는 것도 아니다. 그와 같은 두려움과 불안은 오히려 보다 높은 의미와 지혜를 추구할 가능성, 서로간에 보다 긴밀한 만남과 협력을 이루어낼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코이노니아, 코뮤니온, 페리코레시스 등과 같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관계나 공동체에 대한 이상들은 바로 그와 같은 유한함의 두려움과 불안이 만들어내는 건강하고도 창조적인 생산물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억압적인 권력이 조장하는 두려움과 공포는 그 백성들을 끊임없이 노예로 만든다. 그리고 그 노예들 사이에 인격적 공감과 연대가 자라 날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한다. 전제정치 이데올로기나 분단체제의 이대올로기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지배를 벗어나면 곧 죽음이 있을 뿐이라는 협박이 만들어내는 공포와 두려움이 지배하는 체제다. 분단의 적대관계는 우리들의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 시킬 뿐만 아니라, 때로는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도 포기하도록 만들어 왔다. 사드 배치가 전쟁을 막는 수단인지 전쟁위험을 높이는 수단인지,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애국이다. 더 나아가 그것이 한반도를 살아가는 인간과 생명들을 위해서 무슨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가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반도는 사람이 사는 땅이 아니라, 국제적 헤게모니 쟁탈전을 위해서 언제든지 전쟁터로 만들 수 있는 땅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자본주의 시장의 물신주의와, 분단체제의 적대주의가 서로 돕는 가운데서, 우리는 사람을 사람으로 생명을 생명으로 볼 수 있는 힘을 점점 잃어 왔던 것이리라. 이데올로기적 강제와 무절제한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자폐적 각자도생의 길을 있는 힘을 다해 찾아야 했고, 그러는 사이에 사회적 책임, 공감, 죄책감등을 때때로 표현하기는 했어도, 그것들이 본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고 자신을 은밀하게 세뇌하였다. 그래서 도덕적 윤리적 책임의식에 구애되지 않고, 모든 사람과 사물과 사태를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발전시켜왔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과대망상으로 치달아, 어떤 공감능력도 없이 세상을 자기 멋대로 심판하는 사이코패스적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이미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세상이고 삶이라면, 사생결단식이라는 말이 오히려 위태롭고 불안하게 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현재의 상황을 참으로 위태롭다고 느끼는 내가 어쩌면 과도한 상상에 사로잡힌 것인지도 모르겠다. 민중들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그것으로부터 오는 분노는 자기 파괴적 폭발의 가능성과 자신과 세상의 삶을 변혁하는 새로운 힘으로 솟아 오를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배웠다. 사실 민중은 자기파괴적인 폭발의 가능성을 억제하여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지금도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들을 사람으로 대접해 달라고 외치는 그분들과, 사생결단의 단식을 하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이미 그와 같이 자신의 고통을 뜬 눈으로 직시하면서, 지금의 고난을 새 희망의 밑거름으로 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나찌의 억압하에서 아무도 들어주지도 공감해 주지도 않는 유대인들의 고통과 분노를 바라보면서, 마르틴 부버는 억압의 반대는 자유가 아니라 코뮤니온이라고 하였다. 억압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각자도생의 삶으로 도피하는 길이 아니라, 끝내 사람과 사람 생명과 생명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이루어 내는 길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미 민중은 그 길을 가고 있다. 각자 도생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향하여 우리를 부르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진정으로 공감하고 연대하며, 진실을 향해 가는 길을 향해 우리를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이제 응답해야 할 우리다. 이미 길들여진 무관심과 무공감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적극적으로 함께 공감하고 연대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초대의 환대와 방문의 환대

 


김혜령[각주:1]
(이화여대)


 

          얼마 전 우연히 EBS <다문화 고부열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캄보디아에서 시집온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는 한 시어머니의 곤란한 이야기를 보았다. 며느리의 아버지인 사돈어른이 한국에 일을 찾아오게 되었는데, 몇 달 되지 않아 공장이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오갈 데가 없는 신세가 된 사돈어른을 아들과 며느리, 손주와 함께 사는 자기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호의를 베풀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마음에 사돈어른의 동거를 허락한 첫 마음은 날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불편한 마음으로 변하게 되었다. 더운 기후를 갖고 있는 캄보디아 문화를 따라 사돈어른이 유난히도 더운 올 여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웃통을 훌러덩 벗어버리고 거실 한가운데를 떡 하니 차지한 채 TV 삼매경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집주인 시어머니는 아들 며느리 모두 일하러간 낮이면 웃통 벗은 사돈어른이 민망하여 자기 방에서 나오지도 못한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속앓이를 하게 되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사돈어른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 불편했던 시어머니의 20대 딸은 아예 견디지 못하고 당분간 친구 집에서 지내겠다며 짐까지 싸서 나가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 마음이 끌린 것은 눈치 없이 거실 한 가운데에서 웃통을 벗도 TV를 보는 캄보디아 사돈어른을 보며 나도 모르게 ‘뻔뻔함’이라는 느낌과 ‘못마땅함’이라고 불러야 하는 감정이 본능처럼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평소 스스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졌다 자부했던 윤리적 자만 때문이었을까?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는 거친 마음결을 다시금 확인하며 여전히 내 자신이 진보 코스프레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 고아, 과부, 외국인 등 약자라 불릴 만한 이들에게 따뜻한 호의와 나눔을 베풀라는 사랑의 명령이 그리스도인 모두를 향한 예수의 명령임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신약학자 바이런은 이러한 사랑의 명령이야 말로 사회적 기피대상으로 취급받던 약자들에 대한 예수의 ‘환대 선교’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는 이방인과 약자들을 공동체의 울타리 밖으로 내치고 그들과 더불어 살기를 거부하는 반(反)환대주의자인 것이다.  

         낯선 이방인, 과부, 어린이, 병자, 몸 파는 여인 등 다양한 이유에서 사회적으로 주류 공동체의 외부에 있을 수밖에 없는 약자들에 대한 무한 ‘환대’가 예수 선교의 중요한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 사돈어른의 예에서처럼 우리는 예수를 따라 현실에서 타자를 환대하는 일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열매 맺지 못한다는 것을 종종 경험하고는 당혹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호의를 베풀었으나 자신에게 제공된 은혜를 당연한 것처럼 누리는 이들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결을 거칠게 만드는 못된 감정들의 발생원인을 금세 ‘배은망덕’이라는 사자성어로 아주 자연스럽게 합리화한다. 

          선한 마음을 그릇이라고 비유한다면, 우리의 선한 마음은 바닥이 그리 깊지 못한 그릇인가보다. 시원한 물을 퍼주다가도, 계속 상대방이 요청을 하게 되면, 금세 아... 이거 내가 먹을 물까지 다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기게 되고, 눈치 없이 물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상대방이 야속해 지기도 한다. 선한 마음으로 분명히 다가간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이가 요청을 계속해서 더 하거나, 고마운 마음을 내가 충분히 만족할 만큼 표하지 않을 때, 어느새 우리는 그를 환대한 것에, 그에게 나의 것을 나누어 준 것에 후회를 하게 되고 만다.  

          이러한 현실적 경험들이 쌓이게 되면 사람들은 아무나 환대하기를 바라지 않게 된다. 우리가 환대하면 그 환대에 예의바르게 반응할 사람, 또 우리가 환대한 만큼 자신을 변화시켜서 가난이나 어려움에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성실한 사람, 우리의 환대에 진심으로 고마워 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을 우리는 환대하기를 원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의 술 취한 노숙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는 것은, 그들이 우리의 ‘선한’ 환대를 마땅히 받을 수 있는 요건에 부합하지 않은 사람들, 보다 야박하게 말해서 그러한 환대를 받을 가치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이러한 현실적 환대의 아이러니를 정치적 영역으로까지 확대하며 설득력 있는 분석을 보여준다. 그는 앞의 예와 같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환대받을 만한 사람을 환대하는 것을 ‘초대의 환대’라 부른다. 즉 환대받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조건을 따져서 선별적으로 환대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선택된 환대, 즉 ‘초대의 환대’라는 것이다. 데리다는 한 공동체에서 누구를 선택하여 초대의 호의를 베풀 것인가라는 문제는 ‘우리 공동체에 이익이 될 것인가, 안될 것인가’를 따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결국 정치적 문제이고, 환대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구별한 법적 절차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들을 환대할 만한 공간적, 물리적, 경제적 여유가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초대의 환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유럽의 난민 유입과정에 있어서, 난민으로 수용될 수 있는 사람들의 자격을 따지는 것도 사실을 ‘초대의 환대’의 대표적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난민을 수용하되, 우리 공동체의 해가 되지 않는 이들만 수용할 것! 고마워 할 줄 아는 이들만 받아들일 것! 우리 공동체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수용할 것! 테러와 같은 위험 요소를 가진 이들은 철저하게 배제할 것! 이 모든 것이 결국 조건을 따져서 선택적으로 환대하는 ‘초대의 환대’의 정치적이고 법적인 조건인 것이다.  

          물론 데리다는 이렇게 초대의 환대라도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매우 고무적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실제로 난민 수용을 거의하지 않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자면, 까다로운 조건이나마 따져서 난민 수용을 할 수 있는 만큼 최대치로 하려는 일부 서유럽 국가들의 난민정책은 인류의 역사상 가장 진보한 것들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데리다는 환대가 이렇게 ‘초대의 환대’에만 머물게 될 때의 위험도 잘 짚어낸다. 초대의 환대는 결국 선택된 이방인이나 약자가 환대를 베푸는 사람이나 공동체의 규칙과 문화를 침해하지 않고, 그것을 아주 잘 따르겠다는 암묵적이고 심지어 법적인 동의 아래에서만 이루어지기에, 그 선택을 받는 이의 입장에서는 – 당장은 고마운 일일 수 있으나 – 결국 자신을 이제까지 구성하였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존재방식을 일정부분 혹은 전체를 포기해야하는 것의 다름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선택적 환대는 정확히 말해 환대를 받는 이의 모든 다름을 인정하고 그가 내 집이나, 우리 공동체에서 완전히 동등하게 활동하게 하는 권리까진 주진 않는다. 그래서 데리다는 이러한 ‘초대의 환대’가 약자에 대한 강자의 ‘관용’(tolerance)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 속에서 누구를 환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벌일 때, 성서와 예수의 복음은 우리의 논쟁을 근본부터 흔들어 놓는다. 레위기 19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외국인을 환대하라고 하시는데, 여기에는 어떠한 조건이 달려 있지 않다. 어떠한 종교를 가진 외국인인지, 어떠한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인지, 어떠한 신분의 외국인인지 그 단서가 달려 있지 않다. 유일한 환대의 단서가 있다면, 그것은 환대받는 자에게 있지 않고 환대하는 자에게 있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외국인으로 떠돌아 다녔던 경험이 환대의 단서가 될 뿐이다. 예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헐벗은 자, 굶주린 자들을 환대하던 자들이 최후에 날에 복을 받을 것이라 말했다. 여기서 예수는 그들이 굶주리는 이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이 게을러서이건, 병들어서이건, 부모를 잘못 만나서이건, 노력하지 않아서이건 가난의 이유가 언급되지 않았다. 그들이 헐벗고 굶주린다는 사실 하나만이 환대의 충분조건을 갖춘 것이다.  

          오직 도움이 필요하다는 상황만이 환대의 조건이 되는 ‘무조건적 환대’에는 주도권이 환대받는 이에게 있다. 낯선 피부색과 언어를 사용하며 다가오는 이, 굶주림에 배를 움켜잡고 손을 내미는 이. 그들 자신이 우리에게 자신을 환대하라고 요청하고 명령한다. 그들이 우리의 호의에 배신하지 않고 우리 공동체에 이익을 줄 것인지, 배은망덕하지 않고 충분하게 우리에게 고마워 할 것인지 먼저 선별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고, 우리는 그 요청에 조건 없이 환대하고 도와야 하는 명령만이 있을 뿐이다. 데리다는 이러한 무조건적 환대를 초대의 환대와 구별하여 ‘방문의 환대’라는 다른 이름을 붙여준다. 초대와 달리, 방문은 예기치 않게 다가올 때가 많다. 방문의 환대는 그들의 갑작스런 방문에 문고리를 쥐고 방범구멍으로 그 얼굴을 탐색하지 않는다. 방문의 환대는 조건 없이 문을 여는 것이다.  

          그러나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조건 없이 문을 열어 우리의 공간 안에 받아들이는 호의는 환대받는 자의 태도를 예상할 수 없기에 큰 두려움을 동반한다. 실제로 캄보디아 사돈어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 아니 이러한 예 정도는 아직은 감당할 정도일지 모른다 -, 혹은 유럽에서 테러를 일으키는 소수의 이민자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방문의 환대는 우리의 공간과 삶, 심지어 생명의 손해까지 감수해야하는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데리다는 ‘방문의 환대’는 현실적이라기보다 ‘이념의 환대’에 불과하며, 법적으로도 명시화 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방문의 환대’는 ‘이념의 환대’일 뿐이라는 데리다의 선언은 자칫 무조건적 환대의 전면적 포기로 보일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무조건적 환대의 현실적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환대를 끊임없이 이념적으로 생각하고 추구하는 인간의 무한한 윤리성에 매우 큰 의미를 둔다. 인간이 무조건적 환대의 현실적 어려움에 더 이상 그러한 환대를 논하고 생각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는 ‘초대의 환대’의 대상과 범위마저 야박해지기 십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방인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굶주림이라는 단 한가지의 사실만으로도 그를 환대해야 한다는 성서의 명령을 하늘나라에서나 통하는 예외적 법쯤으로 외면할 때, 우리는 우리가 하는 야박하고 소심한 선택적 환대 행위에 스스로 만족하고 안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 최선이라고 자위하게 될 것이란 말이다.  

          어쩌면 환대받는 이의 배신이나 배은망덕은 우리가 타인에게 선택적으로 베풀고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호의이자 최고의 환대라는 우리의 윤리적 자만이자 자아도취에 기인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우리의 호의와 친절에 더 큰 호의와 친절을 요구하고 감사한 마음을 충분히 표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도움을 받는 이가 사실은 그 나름의 존재 방식을 가지고 있는 ‘자유인’임을 증명하는 것일 수 있다. 친절한 환대에 대해 감사해야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지만, 그래도 그러한 도리가 의무로 강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 구속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감사가 신앙의 자유에서 기인할 때에만 참된 의미가 있음을 유비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초대의 환대’와 ‘방문의 환대’, 다시 말해 ‘선택적 환대’와 ‘무조건적 환대’의 아이러니를 앞에, 우리는 ‘나는 베풀고 너는 고마워해야만 한다’ 식의 태도, 요즘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져있고, 너는 대답만 하라는 뜻의 줄임말)의 태도가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번 쯤 신중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 웹진 <제3시대>

  1. 이화여대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신학박사(윤리)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서울 향연감리교회에서 점심봉사를 하며 가끔 설교를 맡기도 한다.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전승, 역사 그리고 텍스트 I : 전승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1. 전승 : 집단 대 개인


     신약학에서 흔히 사용되는 전승사 비평이란 “성서 본문의 최종적인 형태가 이루어지기까지 문서와 구전(口傳)자료로 전승되어온 경로 즉, 성서본문이 단계별로 이뤄진 전승과정에 비추어 그 문헌을 분석하는 방법을 가리키는 용어”다. 또한, “역사적 정확성을 추구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본문 속에 왜 그런 설화가 기억되었고, 왜 그것이 변화되었으며, 그 변화에 어떤 요인이 반영되었는지를 살피는 데 관심을 갖는다.” 다시 말해, “역사성을 발굴해내는 것이 아니라 전승사에 나타난 다양한 관계를 확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어떤 이들에겐 맥이 빠질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전승사비평을 통해 전승을 처음 전해준 사람들과 그들이 전해준 전승의 최초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전승의 형태, 예를 들어 마가복음서와 같은 최초의 형태가 취해진 것은 예수의 죽음 이후 40여년이 지난 후라는 점을 기억하면 그리 실망할 일도 아니다. 게다가 이 복음서가 전승의 최초의 형태라고 감히 확신할 수도 없다. 이미 불트만은 “마가와 같은 시대 혹은 그 전에 복음서라고 불리워질 만한 작품을 썼지만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작품의 저자가 전혀 없으리라고는 물론 단정할 수 없다.”[각주:1]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전승의 최초의 형태를 넘어 역사적 예수에게로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추가한다면 수많은 난관이 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알다시피, 복음서의 단화들을 추적한 결과 이 단화들 뒤에는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교회가 놓여 있음을 양식비평은 설득력 있게 잘 보여주었다. “전승자료의 수집은 팔레스틴 초대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변호와 논박은 아포프테그마적 부분의 수집과 작성을 유도했다. 교화의 필요성과 교회 안에서의 예언자적 영의 활력에 의해 예언자적, 묵시문학적 주의 말들을 전하는 일과 작성하고 수집하는 일이 생겼다. 주의 말들의 좀 더 계속된 수집은 생활 계율과 교회 규율의 필요성에 의해 생겼다.”[각주:2] 이처럼 이미 단화들은 집단으로서의 익명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양식비평의 이러한 논제를 깨고 최근 보컴은 '목격자의 증언'이라는 대담한 가설을 들고 나왔다. 그는 양식비평이 전제하고 있는 전승의 익명성이라는 테제를 목격자로 대체하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그는 복음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개별적인 이름들을 하나하나 추적하고선 서슴지 않고 이들을 목격자라고 부른다. 더욱 놀라운 점은 파피아스가 전한 말이 과장이거나 일종의 변증이라는 학자들의 비판적인 견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역사적으로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파피아스가 말하는 내용이 가장 중요하게 암시하는 것, 곧 예수의 말씀과 행위를 전하는 구전들이 이름이 밝혀진 특정한 목격자들과 단단히 결합해 있었음을 믿을 수 있다.”[각주:3] 결국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다.[각주:4] 


내가 이 책을 쓴 의도 중 하나는 복음서가 기록되기까지 예수 전승이 전달되었던 기간 내내 예수전승과 특별한 전승 전달자들 사이의 인간적 연결고리가 그 존재를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확실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적어도 역사적으로 이런 연결 고리가 존재했을 개연성이 아주 높았음을 증명할 증거를 제시하고 싶다. 


     하지만 보컴의 이러한 주장은 별로 신뢰할만하지 않다. 어만이라면 "마가복음에 대한 증언은 서너 다리를 건넌 정보이다. 여기에서도 그가 유난히 강조하는 이야기, 즉 마가의 주된 목적 중 하나가 베드로에게 들은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것이란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마가복음은 큰 소리로 읽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한 양이다.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수개월 어쩌면 수년을 지냈다. 어떻게 마가가 들은 이야기 전부가 두 시간이면 읽어낼 수 있는 양에 불과하겠는가?"[각주:5]라고 비판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또한, 파피아스의 이야기를 수용하여 전승이 목격담일 수 있는 이유로 음성을 거론하는 그의 논지는 치명적 결함일 수도 있다. “파피아스가 살아서 남아 있는 음성을 이야기할 때 많은 학자들이 추정하는 것과 달리 구전에 대한 은유로서 음성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리어 이 음성은 문자 그대로 정보 제공자의 음성을 말한다. 실제로 파피아스가 당대의 역사기록관습을 자세히 언급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앞에서 말한 음성의 의미는 그가 말하려는 의미임이 틀림없다.”[각주:6] 분명 데리다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각주:7] 


자연적 문자 언어는 목소리와 숨결에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것의 본성은 문자학적이지 않고 영기학적이다. 그것은 성직자의 것이고 신앙 고백의 내적인 성스러운 목소리와 아주 가깝고, 우리가 자신 안으로 되돌아가면서 듣는 그 목소리와 아주 가까운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적 감정에 신의 목소리가 충만되고 진실하게 존재하는 현전이다. 


     그러나 좀 더 날카로운 비판은 롤랑 바르트일 것이다. “그 누구의 목소리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 천만에! 정확하게는 언제나 그 누군가의 목소리가 문제된다. 나는 찾아낼 수 없다. 문화가 내게 생각나게 하는 단어들과 내 귀에 불현듯 생각나는 그 기묘한 존재(그것이 단지 소리에만 연관될까?)와의 단절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재현에의 노력이 무기력하다는 것은 반드시 다음과 같은 사정에 의한 것이리라. 목소리라고 하는 것은 늘 벌써 죽어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절망적인 부정을 통하여 겨우 그것을 살아있다고 부르는 것이다.” [각주:8]다시 말해, 어떤 목소리를 들은 이가 그 목소리를 재현하고자 할 때는 필연적으로 일종의 소음인 문화가 개입한다는 점이다. 또한, 그 목소리를 재현하는 언어 자체도 문화의 힘을 입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잘 알다시피, 전해들은 목소리와 그 목소리의 재현 사이에는 그것이 문화이든 무엇이든 간에 일종의 소음이 발생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소음으로 인해 재현된 목소리는 이전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의미와 효과를 산출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보컴은 음성과 언어가 어떠한 관계를 갖는지, 그리고 그 관계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튼, 이쯤에서 어만의 말로 정리해보도록 하자. 조금 길더라도 말이다. 


기독교는 이런 식으로 전파됐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난 후에는 누군가 예수의 이야기를 글로 썼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건네지고 또 건네진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목격자가 공평무사한 관점에서 증언한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개종시킬 목적의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가 과연 애초의 이야기와 같았을까? 아이들이 생일날에 전화 연결 놀이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동그랗게 둘러앉은 채, 한 아이가 옆에 앉은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하면 그 아이가 다시 옆 아이에게 연결하는 것이다. 그 아이가 전달받은 말은 처음의 말과 사뭇 다르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화 연결 놀이의 의미가 없다. 똑같은 환경과 학교, 언어, 연령을 가진 동일한 사회 집단에서가 아니라 다른 지역과 환경과 언어를 가진 집단에서 40년 이상 전화 연결 놀이를 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럼 첫 이야기가 어떻게 되겠는가? 엄청나게 달라질 게 뻔하다. 복음서 저자들 역시 이야기를 자신의 관점에 따라 바꿔놓은 게 분명하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예수에 대한 마가복음의 이야기를 누가복음 저자는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한 작가에서 다음 작가로 넘어갈 때도 이렇게 바뀌는데 구전될 때는 얼마나 많이 바뀌겠는가! 


     그러므로 예수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다시 말해 독특한 한 주체와의 만남을 통해 얻어진 개인적 체험은 시대와 문화에도 흔들림 없이 변질되지 않고 그대로 재현된다는 신념은 정정될 필요가 있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에 나오는 「돈키호테의 저자 피에르 메나르」라는 단편이라면, 이와 같은 신념은 일종의 망상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라는 책을 단어 하나하나 줄 하나하나 다르지 않게 베낀다하더라도, 베껴진 이야기는 베끼기 이전의 원래 이야기와 전혀 다른 의미를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화자(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 삶의 우연들에 내맡기는 약간 자율적인 인간이고 그의 이야기만이 자율적인 데 반해, 모방하는 작가는 자기 삶을 창조적으로 이용한다. 두 번째 작가는 이야기를 규칙에 따라 구성하며, 그것을 위해서 자기 삶을 투신한다. 그는 자기 삶이 그 이야기에 의해, 적어도 간접적으로, 이끌어지게끔 조직한다. 그것은 조율되고 도구화된 삶이다.”[각주:9] 그렇다면, 진정성의 기준을 인내심을 갖고 적용하다보면 복음서 전승의 거의 모든 부분이 진정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블롬버그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의 말을 설령 받아들인다할지라도, 이미 보았듯이 보존된 목소가 누군가에 의해 재현될 때는 보존된 목소리와 전혀 다른 의미의 궤적을 그린다면, 보존되었다는 점만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양식비평의 관찰, 즉 전승에서 어떠한 말들은 그 맥락을 잃어버려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주장은 이에 대한 좋은 예일 것이다. 때문에 “복음서 저자가 수집하고 기록한 정보가 상당 부분 사실과 허구, 역사와 전설,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와 상상력을 동원한 각색 등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것”[각주:10]이라는 양식비평의 견해를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 

     한데 전승 과정에서 교회 공동체라는 집단이 일정정도 역할을 수행했다는 양식비평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는 하나의 독특한 역사적 개별주체가 아니라 이미 집단적으로 투사된 혹은 치환된 범례적 주체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해가 선뜻 되지 않는다면 엘리아데의 이야기를 일단 들어보도록 하자. [각주:11]


아주 드물긴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신화로 변형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루마니아의 민속학자인 콘스탄틴 브라일로이우는 마라무레쉬라는 마을에서 아름다운 민요 하나를 채집할 수 있었다. 비극적인 사랑이 그 내용이었다. ……노랫말은 신화적인 암시들로 가득한,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제례용 가사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래의 변이형들을 채집하면서 동시에 브라일로이우는 그런 비극이 일어난 때가 언제였는지도 조사하였다. 사람들은 오래 전에 일어난 오랜 옛날의 이야기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조사를 계속해나가면서 그는 사건이 겨우 40년 전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여주인공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 핵심증인이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진실성을 완전히 박탈해버리고 사건을 전설적인 이야기로 변형시키는 데에는 불과 몇 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 자체는 만족시키지 못했다. 결혼 전날에 죽은 한 남자의 비극적인 죽음은 단순한 사고사 이상의 어떤 것이었다. 그 죽음에는 신화적인 범주 안으로 통합되었을 때에만 드러나는 어떤 비의가 담겨 있었다. …… 진실을 말하는 것은 신화였고, 실제 역사는 이미 거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민중의 기억은 한 영웅의 생애에서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요소들은 보존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고차적인 신비경험들 속에서도 인격신은 궁극적으로 초인격적인 신으로 고양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많은 전통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영혼은 기억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소위 그들의 역사적 개별성은 상실된다."[각주:12]고 지적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노먼 페린 역시 “만일 신화가 역사를 해석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말해 만일 설화가 사건을 해석한다면 우리는 신약성서에서 이야기된 역사는 해석된 역사라는 것을, 그리고 더 나아가 해석된 역사는 필연적으로 사실적인 역사와 신화에 의해서 해석된 역사를 포함하며, 마지막으로 사실적인 것으로서의 역사 그 자체도 신화로 작용하게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각주:13]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진실을 말하는 것은 신화였고 실제 역사는 거짓에 불과하다는 엘리아데의 주장은 “관심을 갖는 시간은 신성한 시간이 되었다. 이야기된 사건들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존재의 실재를 보게 했고, 역사 자체는 신화된 것이다.”라는 페린의 말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신성한 이야기들은 대체로 집단의 가치관이나 믿음을 대변하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들이 아니던가. 따라서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 역시 일반적인 민담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집단을 상징하는 범례적 주체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 범례적 주체는 문화에 의해 변용된 상호텍스트적 주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에 관한 논의는 잠시 뒤로 미루도록 하고 역사가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 웹진 <제3시대>




  1. 루돌프 불트만,『共觀福音書傳承史』, 허혁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2, p.456 [본문으로]
  2. 루돌프 불트만, 같은 책, p.455 [본문으로]
  3. 리처드 보컴,『예수와 그 목격자들』, 박규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5, p.52 [본문으로]
  4. 리처드 보컴, 같은 책, p.30 [본문으로]
  5. 바트 어만, 『예수왜곡의 역사』, 강주헌 옮김, 청림출판, 2010, pp.160~161 [본문으로]
  6. 리처드 보컴, 같은 책, p.63 [본문으로]
  7.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4, p.39 [본문으로]
  8.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이상빈 옮김, 강, 2002, p.94 [본문으로]
  9. 군터 게바우어․ 크리스토프 볼프, 『미메시스』, 최성만 옮김, 글항아리, 2015, p.165 [본문으로]
  10. 크레이그 블롬버그,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 안재형 옮김, 솔로몬, 2007, p.59 [본문으로]
  11. 미르치아 엘리아데,『영원회귀의 신화』, 심재중옮김, 이학사, 2003, pp.57~58 [본문으로]
  12. 미르치아 엘리아데, 앞의 책, p.59 [본문으로]
  13. 노먼 페린,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상)』, 박익수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2004, p.110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생명의 기원과 하나님의 행위 (Divine Action):


엠페도클레스와 고대 원자론자들의 급진적 자연발생설(Spontaneous Generation)


정대경

(GTU Ph.D Candidate)


 



   현대 우주론이 밝혀주듯이 우리 우주는 특이점의 폭발, 곧 빅뱅으로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는 4차원의 시공간이다. 약 137억년 간의 팽창 역사 가운데서 무수한 별들이 생성 되고 소멸 되기를 반복 하였다. 그 역사 안에서 약 45억년전쯤 우리가 사는 행성 지구가 탄생했고, 그로부터 수많은 생명체들이 생겨나고 소멸하기를 반복했고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자연계가 형성되었다.  

   생명이 출현했던 환경적 배경에 관해서는 의견들이 아직도 분분하지만 아마도 위의 그림이 부여주는 용광로와도 같았을지 모른다. 행성 자체가 생성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 내부에서 발생하는 극심한 지진과 화산 활동들로부터 용암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을 것이며, 동시에 태양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던 미행성체 디스크 파편 물질들이 지구 원시 대기를 뚫고 무수한 폭격을 가하고 있었을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우주 안에는 전방위적으로 무질서를 창출해내는 사용이 불가능한 에너지인 엔트로피 증가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혹은 열역학 제2법칙) 지속적으로 일어나는데, 지구에서 발생한 생명의 출현과 진화는 마치 이러한 경향성을 위배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원시 지구 환경에서, 그것도 모자라 전 우주적인 무질서로의 경향성 아래에서 어떻게 생명이 출현했을 수 있을까?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이 작동한 것일까? 아니면 용광로와도 같은 원시 지구 환경과 열역학2법칙 자체에 생명을 출현시킬만한 무슨 특별함이 있는 것일까? 

   혹시 초자연적인 존재이신 하나님의 능력이 이 모든 것들을 상쇄하고도 원시 생명체를 이 지구에 생겨나게 하신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주 안에 작동하도록 만들어 놓으신 자연법칙을 스스로 위배하고 행위하시는 분인 것일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이 세상에서 활동하시고 또 생명체를 생겨나게 하셨던 것일까? 

    필자는 몇 회에 걸쳐서 위의 질문들과 유사한 고민들을 가지고 씨름 했던 고대, 중세, 근대, 현대 철학자들, 신학자들, 과학자들을 소개하고 다루어 보면서, 현대 과학이 밝혀주는 생명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이론 (e.g. 화학적 진화)과 기독교 교리 중의 하나인 창조 교리 사이의 대화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 그 시작으로 본 글은 현대 환원적 물리주의 (reductive physicalism)의 출발점인 고대 원자론과 그 지지자들이 생명의 출현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생명체 화석은 약 34억년 전의 것이다. 다소 논쟁의 여지는 아직 남아 있지만 일각에서는 그린랜드에서 발견된 퇴적층이 약 38억년전 존재했던 생명체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며, 또 다른 학자들은 작년인 2015년 생명의 기원이 약 41억년 전쯤 발생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최초의 생명체가 지구의 형성 직후 운석과 혜성들로 인한 대폭발기를 지나자마자, 혹은 그 기간 내에 대폭발의 충격이 다소 완화 되었던 장소에서 (e.g. 해저 열수공) 이른 시기에 생겨 났을지 모른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최초의 생명체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고대인들 또한 위와 같은 질문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듯 하다. 그 당시에는 급진적 자연발생설 (Spontaneous Generation Theory)이 생명의 기원과 관련된 주된 이론이었던 듯 보인다. 급진적 자연발생이라는 것은 생명체들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던 기본 물질들과 그것들 사이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자연스레 출현했다는 이론이다. 언뜻보면 당연한 듯한 소리이지만, 그 당시 고대인들은 이러한 급진적 자연발생이 단순히 생명체들의 머나먼 기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생명체들의 출현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개구리와 같은 몇몇 종들은 교배나 교미가 아닌 세상의 기본 물질들로부터 ‘곧바로’ 생겨난다고 생각했는데, 이 맥락에서 고대 철학자들과 일군의 신학자들은 성적인 결합과 더불어 급진적 자연발생을 생명체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매커니즘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 (Empedocles, ca. 495-435 BCE)는 생명체들을 포함하는 세계와 그 안의 존재들은 모두 네가지의 기본 물질들 (불, 공기, 물, 흙)과 그것들을 상호연관 시키는 두 가지의 기본 물리력 (사랑과 증오)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사랑은 기본 물질들을 연합하게 하는 창조적인 에너지로, 증오는 그 물질들을 흩어버리는 파괴적인 힘으로 인식되었는데, 그 두 가지 기본 물리력들 사이의 조화로 인해 보통의 경우에는 정상적인 생명체들이 생겨나지만, 그 둘 사이의 균형이 깨져 파괴의 물리력인 증오가 지배적인 때에는 미노타우로스와 유사한 “소의 머리를 한 인간의 자손 (ox-headed offspring of man)”과 같은 기이한 생명체들이 출현한다고 믿었다.


   반면에 레우키포스 (Leucippus, ca. 5th century BCE), 데모크리토스 (Demokritos, ca. 460-380 BCE), 에피쿠로스 (Epicurus, ca. 341-270 BCE)와 같은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자들은 엠페도클레스의 두 가지 기본 물리력을 배제하고 자연현상을 기술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비가시적인 원자들 (invisible atoms)”을 근본 물질과 힘으로 이해했다. 원자들은 그 자체로 모든 방향으로 무질서하게 뻗어 나가려는 운동력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운동 때문에 원자들 상호 간의 충돌과 연합이 가능했으며, 원자들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생명체들을 비롯한 모든 존재자들이 생겨났다고 주장하였다. 레우키포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원자들은) 끊임없이 운동하며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극히 작은 크기 때문에 비가시적이며 그것 자체로 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있는 것들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물질이다. 원자들은 심연 (the void), 비존재적 공간 안을 끊임 없이 돌아다니다가 상호 간에 충돌과 연합을 거쳐 모든 물질들을 생겨나게 하였다. 그 원자들이 흩어지고 해체되는 순간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

   이미 엠페도클레스에게도 전제되어 있었지만 고대 원자론자들은 생명체들의 기원과 형성이 비생명체들의 기원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은 바 생명체와 비생명체 사이에는 어떠한 근본적인 차이도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원자론자들에게는 모든 개별자들은 그것의 크기와 형태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으로는 어떠한 차이도 없고, 그러한 맥락에서 생명체들은 비생명체들과 비교하여 조금 더 복잡한 존재자들일 뿐이었다. 원자론자들은 생명의 출현과 관련하여 모든 종류의 목적론이나 신적인 개입들을 거부 하였을 뿐만 아니라 생명 현상은 순전히 물질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지적하였다.

   에피쿠로스주의자이자 로마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루크레티우스 (T. Lucretius, ca. ??-50 BCE)는 원자론자들의 주장을 적극 받아들여 인격적 신이나 신적 존재의 목적과 섭리 등을 거부하고, 원자들 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장, 곧 생명의 기원이 일어나는 근본 장 (field)을 “the Mother-Earth”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비록 그의 단어 선택이 범신론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적어도 루크레티우스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것, 곧 모든 것들의 기원이 벌어지는 장으로 인식했을 뿐, 어떠한 종교적 혹은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함의를 드러낼 목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원자론자들과 같이 루크레티우스에게는 생명의 기원은 단순히 우연히 발생한 또 다른 종류의 원자들 간의 조합물이었다.  

   엠페도클레스, 루크레티우스와 더불어 고대 원자론자들의 주장은 합리적이지만 다소 우리의 직관, 곧 ‘생명현상은 비생명현상과 어떠한 이유로든 구별된다,’ 과는 반대되는듯 보인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일부는 앞서 밝힌 바 있는 환원론적 물리주의 (reductive physicalism)의 입장에서 고대 원자론자들의 주장에 불편함이나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나 어거스틴과 같은 고대 기독교 신학자들은 원자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생명현상은 비생명현상으로부터 뚜렷이 구별되는 것 이었고, 더 나아가 생명의 기원에는 초월적인 존재와 힘이 작용 하였다고 그들은 주장하였다. 다음 글에서는 고대 원자론자들과 급진적 자연발생설을 공유 하기는 했지만 그들과는 사뭇 다른 생명 현상과 기원에 대한 이해를 가졌던 아리스토텔레스와 고대 기독교 신학자들의 주장들을 살펴 볼 것이다.


참고문헌 


  Alexander I. Oparin. Origin of Life. Translated by Sergius Margulis. New York: Dover Publications, 1965. 


  Elizabeth A. Bell, Patrick Boehnke, T. Mark Harrison, and Wendy L. Mao. “Potentially Biogenic Carbon Preserved in a 4.1 Billion-Year-Old Zirc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2, no. 47 (2015): 14518-14521 


  Ernst Mayr. The Growth of Biological Thought: Diversity, Evolution, and Inheritance. Cambridge: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1982. 


  Ernest L. Abel. Ancient Views on the Origins of Life. Cranbury: Fairleigh Dickinson University Press, 1973. 


  Iris Fry. Emergence of Life on Earth: A Historical and Scientific Overview. New Jersey: Rutgers University Press, 2000. 


  J. William Schopf. “Fossil Evidence of Archaean Life.”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Biological Science 361 (2006): 869-885. 


  Jonathan Barnes.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2nd ed. Boston: Routledge & Kegan Paul, 1982. Malcolm Schofield. “The Presocratics.”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Greek and Roman Philosophy, ed. David Sedley.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Stephen Toulmin and June Goodfield. The Architecture of Matter. New York: Hutchinson & CO, 1966. 


  Yoko Ohtomo, Takeshi Kakegawa, Akizumi Ishida, Toshiro Nagase and Minik T. Rosing. “Evidence for Biogenic Graphite in Early Archaean Isua Metasedimentary Rocks.” Nature Geoscience 7 (2014): 25-28.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웰빙-우파'와 대형교회, 두 번째[각주:1]


대형교회는 왜 보수주의적인가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지난 글에서 나는 대형교회들에 관한 학계의 분류법들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어느 분류법으로 보든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거의 모두 ‘보수주의적’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이 단언은 이 연재를 꿰뚫는 핵심적 문제제기인 ‘1990년 어간 이후 한국사회에서 웰빙-우파가 형성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장소로서 대형교회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의 기저에 깔린 전제다.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대형교회는 ‘보수주의적’이라는 전제에 대해 좀더 이야기해보자.


서북주의와 보수주의


대형교회들은, 범주를 어떻게 나누든, 거의 예외 없이 보수주의적이다. 그것은 한국개신교의 성장 과정에서 근본주의와 반공주의가 거의 모든 교회들의 신앙의 모태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 ‘대형교회의 보수주의’에 대하여 나는 이렇게 썼다. 얼핏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근본주의와 반공주의는 당연히 보수주의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개신교의 성장 과정에서”라는 말에 있다. 역사적 과정에서 이러한 조합이 타당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형교회와 보수주의


    한국의 개신교 전례과정을 살피면 초기 개신교는 오늘의 한국교회처럼 근본주의 일색은 아니었다. 물론 반공주의도 그리 강한 신앙적 기조가 아니었다. 그런데 20세기 전반기를 거치면서 개신교는 근본주의를 모태로 하는 종교로 빠르게 탈바꿈하기 시작했고, 한국전쟁을 전후로 하는 10여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근본주의는 반공주의와 뗄 수 없이 결합되어 한국개신교 신앙의 모태가 되었다. 즉 오늘 우리가 ‘한국교회는 본래부터 당연히 그랬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1940~50년대에 조성된 ‘만들어진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는 얘기다.

   근본주의와 관련해서는 서북지역의 개신교가 그 뿌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서북(혹은 관서) 지역이라 함은, 조선시대 지역명칭에 따르면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전역을 포함한다. 한데 1893년 이후 서양의 개신교 선교부들 간에 맺은 수차례에 걸친 ‘한반도 선교지 분할협정’에서 평안도와 황해도가 미국 북장로회의 배타적 선교영역이 되고, 함경도는 간도지역을 할당받은 캐나다 연합교회의 영역에 포함되었다. 이후, 함경도 지역은 간도를 가리키는 명칭이던 동북 혹은 관북 지방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이런 개신교적인 표현이 월남자 지식인들이 대종을 이루던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 개신교도들에 의해 일상화되면서 서북지역은 이 두 지방을 한정해서 가리키는 명칭된 것으로 보인다.

   한데 서북지역 개신교도들이 처음부터 근본주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니 실은 이곳의 개신교도들 가운데는 한반도 전체에서 가장 진취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잘 알다시피 애국계몽운동은 서북지역의 개신교도들이 중심이 된 운동이었다. 특히 이승훈의 오산학교, 안창호의 대성학교 등으로 대표되는 교육운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반면 서북지역의 미국 북장로회 출신 선교사들은 이와는 매우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반도는 물론이고 당대 전 세계에서 가장 강성의 근본주의자들이었다. 물론 미국 북장로회가 근본주의 일색의 교파는 아니었다. 단지 한반도의 선교사로 파송된 이들이 그랬다. 

    그런데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 이들의 서북지역에서의 입지를 크게 강화시켰을 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주도하게 했다. 이 부흥운동의 효과로 북한지역 개신교 신자의 80%에 가까운 이들이 미국 북장로회의 영향권 아래 있는 장로교도가 되었고 한반도 전체 개신교도의 40% 이상이 이들 서북계 장로교도였다. 


    서북계 선교사들의 근본주의 신앙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화, 종교적 배타주의에 가까웠다. 한데 해방 이후 북한의 개신교도들이 대거 남하하면서 서북계 개신교도들의 근본주의는 극우 반공주의라는 공격적 정치와 결합되었다. 일종의 정치적 망명자로서 남한으로 이주한 이들 중 다수는 막막한 이민자의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회의 하나를 발견했는데, 반공투쟁을 벌이던 이들에게 고용되는 것이다. 당시 남한의 자산가들과 미군에 고용된 고위층 경찰관리, 그리고 미군 정보당국 등이 그들을 고용한 자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서북계 개신교의 근본주의 신앙과 공격적 극우반공주의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논리처럼 결합되었다. 나는 다른 글에서 이러한 정치화된 극우주의적 신앙을 ‘서북주의’라고 부른 바 있다. 서북주의는 이렇게 해방정국 남한의 월남자들 사이에서 탄생했다.

    그런데 이들이 깊이 개입한 이념갈등은 반공국가로서의 남한 단독정부의 탄생, 그리고 이념과잉의 전면전으로서의 한국전쟁을 야기했다. 이것은 민족에게는 대재앙이었지만 서북주의적 개신교에게는 엄청난 기회였다. 이 개신교 분파는 한국개신교의 주도세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에서 가장 막강한 자원을 가진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렇게 서북주의적 신앙, 곧 근본주의와 극우반공주의가 결합된 신앙은 한국개신교 신앙의 모태가 되었다. 그리고 이상에서 본 것처럼 서북주의 신앙의 생성과 발전 과정은 반공국가로서의 남한정부, 그리고 반공규율체제로서의 남한사회가 구축되는 과정과 밀접히 연관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한국개신교는 반공주의적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보수주의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성장지상주의와 보수주의


    서북주의의 정치적 헤게모니는 1960년대 이후 약화되고, 새로운 세대가 교회를 주도한다. 한국 최초의 대형교회인 영락교회가 서북주의적 신앙의 주축이었다면, 1960~1990년 사이, 그러니까 개신교 대부흥시대를 이끈 주역은 서북주의와 거의 연관이 없는 조용기와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필두로 하는 성장주의적 개신교 부흥사들이었다. 이때 한국개신교에는 새로운 신앙의 기조가 형성된다. 

    이른바 ‘성장지상주의’다. 디테일하게 이야기하면 성장지상주의와 서북주의는 서로 모순적이다. 전자는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도구화하는 신앙이라면, 후자는 결코 도구화될 수 없는 이념이라는 근본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양자는 서로 긴밀히 결합되었다. 

    이는 반공국가로서의 제1공화국과 성장지상주의적 발전국가체제로서의 유신체제 사이의 순접관계와 유사하다. 반공국가가 추구하는 체제는 공산주의라는 적에 대한 ‘증오’를 통해 사회를 통합하는 것이었다. 한데 성장지상주의적 발전국가체제는 그 적에 대한 증오를 ‘성장에 대한 동력’으로 재활용했다. 적을 압도하기 위해서는 적보다 더 발전해야만 하며, 그것을 위해 전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성장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장지상주의적 개신교는 절대적 이단인 공산주의를 무찌르기 위해 복음화가 절대적이라고 주장했다. 그 적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고, 이 지긋지긋한 가난의 질곡을 만들어 놓았기에, 적과의 싸움은 물리적인 것인 동시에 영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개신교 성장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복음화의 내용이다.

    여기에 하나 더 이야기하면, 이렇게 서북주의와 성장지상주의가 신앙을 물리적이고 영적인 전쟁으로 해석하였기에, 그러한 전쟁의 신앙을 구현하는 신앙제도는 ‘비상한 체제’여야 했다. 그것은 바로 절대적 1인의 카리스마적 지배를 통한 교회제도로 나타났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한국개신교회에서 대형교회는 예외 없이 1인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관철되었다는 사실이다. 반면 중소형교회는 카리스마적 1인의 지배가 구현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문제는 거의 모든 한국의 개신교회들을 지배하는 신앙담론은 1인의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한 교회적 권위주의를 지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즉 권위주의를 구현하지 못한 교회는 스스로를 실패한 혹은 아직 성공하지 못한 교회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제1공화국에서 민주화 이전까지 한국사회의 지배적 체제 논리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개신교, 특히 대형교회적 신앙은 이런 권위주의 체제를 향한 보수주의와 친화적이다.


탈성장시대의 대형교회와 보수주의


    여기서 다시 앞의 글에서 대형교회에 관한 대목을 상기해보자. 나는 대형교회를 두 범주로 나누었다. 국가와 교회가 공히 성장일로에 있던 시기인 1980년대까지 대형교회로 부상한 교회들(A)과 저성장 혹은 역성장 시기인 1990년 어간 이후의 교회들(B)이 그것이다. 한데 서북주의적 신앙이나 성장지상주의적 신앙은 A 범주의 대형교회들에서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난다.

    1990년대, 특히 2천 년대에 오면 대형교회를 이룩했던 카리스마적 1인은 은퇴하거나 사망하는 일이 잦아졌다. 세대교체국면이 된 것이다. 문제는 시대가 달라졌다는 데 있다. 1990년 어간에는 알다시피 한국사회에서 권위주의가 점차 쇠락하게 되었다. 하여 그 속도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대개 제도는 좀더 느린 데 반해, 대중의 인식은 좀 더 빠른 변화를 추구한다. 세대교체국면에 진입한 대형교회들도 예외가 아니다.

    A 범주의 교회들은 권위주의 시대에 성공을 이룩한 교회이니 만큼 제도나 인식에서 더 권위주의적이다. 하지만 이 범주의 많은 교회들에서 거의 모든 가용자원을 독점한 카리스마적 1인은 실재하지 않는다. 창립자는 사망했거나 은퇴목사가 되었다. 하여 이 범주의 교회들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심지어는 시대착오적인 행보들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의 대상으로 전락하곤 한다.

    B 범주의 경우는 좀더 복잡하다. 세대교체가 성장지상주의로 회귀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사랑의교회) 그런 경우 교회는 더 권력화되면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성장 잠재력이 소진되어 버린다. 또 세대교체가 개혁을 둘러싼 극심한 갈등을 야기하게 될 수도 있다.(소망교회) 하지만 권위주의의 후퇴로 인한 갈등을 덜 경험하면서 퇴행성을 덜 드러내기도 한다.(온누리교회) 한편 이 범주의 교회들에는 아직 은퇴하지 않은 이들이 많은데, 그들 중에는 권위주의적 제도에도 불구하고 강한 독재자이기보다는 부드러운 독재를 통해 계몽적 리더십을 구현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강한 시대적응력과 함께 성장 잠재력을 유지한다.

    하지만 B 범주의 교회들도 기본적으로 제도나 담론에서 권위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계몽군주인지 독재자인지, 부드러운 독재인지 완고한 독재인지만 다를 뿐이다. 수천 혹은 수만의 교인들을 결속시키는 장치는 빈약한데, 대개의 교회들이 그런 것처럼 높은 수준의 통합을 유지하려면 권위주의가 제일 적합하다. 한데 그러려면 담임목사나 소수 특권적 장로 외에는 권리가 극도로 제약되어야 한다. 즉 대형교회의 신앙제도는 교인들의 주권의식을 제약함으로써만 존립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적 개혁은 근원적으로 어렵고, 보수주의적 제도와 담론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첫번째 글로, [주간경향]에는 <대형교회는 강력한 웰빙 문화공간이다>(1183호. 2016. 07. 05)로 게재되었습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포스트모더니즘과 주체 4]


들뢰즈의 주체의 재구성


 

허석헌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 박사과정, 조직신학)


들뢰즈의 ‘다시쓰는 서양철학사’ 


      서구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뒤흔들기 위한 탈근대주의 철학자들의 프로젝트는 다양한 진영에서 산발적으로 전개되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때로는 푸코와 같이 지식과 담론의 계보학을 통해서, 때로는 무의식과 욕망의 정신분석학을 통해 서구 존재론적 관념주의 철학에 대한 도전은 이어졌고, 그 결과 서구의 장구한 역사 안에서 존재론적인 형이상학을 떠받치던 개념의 파편들은 해체되어 산산이 흩어지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분해된 파편들의 흔적들을 바라보는 동안 얼마동안의 승리감에 도취될 여유는 주어졌지만, 이제는 잔해물 더미위에 올라서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졌다. 결국 남겨진 문제는 관념론적 형이상학에 의해 구조된 세계를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질 들뢰즈는 해체론에 의해 파괴된 전통적 개념들의 장치들을 재구성하기 위한 기획을 매우 종합적으로, 또한 정교하게 구현한 철학자로 평가된다. 그러나, 들뢰즈의 철학적 작업이 곧 탈형이상학을 급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정신의 발견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들뢰즈는 오히려 고전적 형이상학으로의 회귀와 재해석으로 본질주의적 형이상학의 전통의 그늘 아래에서 조명되지 못했던 비주류에 속하는 형이상학의 전통을 발굴해 내는 데로 시선을 돌린다. 말하자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늘에서 주목받지 못한 에피쿠로스와 스토아학파를,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 대신 둔스 스코투스를, 데카르트 대신 스피노자를, 칸트와 헤겔 대신 니체와 베르그송을, 무너진 형이상학적 토대를 새로운 방식으로 구축하기 위해, 시대의 전면에 재등장 시킨다. 이러한 들뢰즈의 철학적 작업을 ‘초월론적 경험론’이라고 부른다. 초월적 경험론의 이름하에 그가 내세운 철학사의 재구성 전략은 매우 획기적이다. 그는 초월적 주체라는 형이상학적 건물을 허물고 다시 세우는 데에 힘을 소진하는 대신 초월적인 주체는 다름 아닌 경험이라는 내재성이었다고 선언한다. 물론, 지금까지 경험 역시 경험을 인식하게 하는 또 다른 주체를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들뢰즈는 세계를 능동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같이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인 경험의 차이와 반복들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들뢰즈는 경험을 관찰자나 주체에게 귀속시키지 않고, 그 자체를 바로 초월적 원리로 간주하자는 전략인 것이다. 즉, 경험을 초월적 주체를 대신할 개념으로 대체한다는 점에서, 그의 철학은 초월적 경험론이 된다. 이렇게 들뢰즈는 형이상학의 기본 골격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존재론적 형이상학에서 배제된 전통들을 재구성하여. 니체로부터 시작되어 해체론에 이르기까지 탈/반플라톤적인 철학을 완성하고자 한 것이다.


차이와 반복

  

    그렇다면, 이 시리즈가 애초에 던졌던 물음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렇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들뢰즈에게서 탈플라톤적인 철학체계를 향한 전복적인 시도는 주체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새롭게 만들었는가? 들뢰즈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시대 안에서 어떤 주체의 가능성을 말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복잡한 그의 철학체계를 모조리 경유하는 어려운 길을 택하기 보다는, 들뢰즈의 철학을 대표하는 핵심 개념인 ‘차이’라는 개념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나가는 편이 수월하겠다.

    초월적 경험론으로 요약되는 들뢰즈의 사상의 전모가 드러나는 대표적인 텍스트는 ‘차이와 반복(Difference and Repetition, 1968)’이다. ‘차이와 반복’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듯이, 들뢰즈가 겨냥하는 문제의식은 플라톤적인 이원론적 사유의 정점에 있는 ‘재현representation’의 개념이다. 들뢰즈는 이 책에서 차이와 반복이라는 핵심적인 개념을 통해, 재현의 방식으로 세계를 차등적으로 서열화시켜온 플라톤적 사유체계를 전복시키려는 의도를 구체화시킨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플라톤에게서 이데아는 영원불변하고 자기 동일적인 최고의 존재이며 모든 것의 원형이 된다. 이데아는 존재하는 가시적인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준거점이다. 즉, 모든 존재하는 것의 원본으로서 이데아를 상정할 때에, 모든 자연과 사물을 이데아라는 원형의 모사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세계는 이데아의 재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재현된 세계는 또 다시 원형과의 유사성에 따라 고급과 저급으로 분류된다. 인간이 동물보다, 남자가 여자, 백인이 유색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식의 차별적인 가치평가를 정당화하는 사상적 근거가 된 것이다. 결국 원본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문제의 해결은 따라서 간단하다. 원본을 거부하는 것이다. 아니면, 애초부터 원본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면 재현으로 표상되는 세계의 질서도 동시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를 위해, 들뢰즈는 재현에 상응하는 대응개념으로서 ‘차이’를 제시한다. 차이가 함축하는 의미는 세상은 원본에서 파생된 모사가 아니라, 모든 존재는 동일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존재의 근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곧 ‘차이’이다. 동일성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차이가 아니라, 동일성의 근거를 와해시키는 차이를 의미한다. 마치 실존철학에서 실존이 존재에 우선한다는 형식논리와 같다. 동일성이 차이에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동일성에 우선하며 이것은 사실상 동일성의 부정을 의미한다. 들뢰즈의 ‘차이’ 개념의 발견은 존재론적 철학의 사유구조를 역전시키는 효과를 일으켰다. 사물의 존재는 원본을 통해서만 확인되었지만, 차이로서 존재하는 사물은 그 사물자체 안에 있음의 잠재성이 내재하게 되었다. 즉 이전까지 재현으로만 존재하는 세계내 사물은 ‘있다(현실)-없다(부정)’의 문제로 이분화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존재가 ‘드러났느냐(실재)-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냐(잠재)’의 문제로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차이로서 드러나는 사물은 그 자체로 존재의 힘을 생성하는 개체로 인정받는다. 시뮬라르크에 지나지 않은 사물의 세계는 이로서 차이가 생성하는 힘의 무대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러한 차이의 생성원리를 무인도의 비유를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무인도의 원인과 이유’에서 들뢰즈가 던지는 수수께끼는 이것이다. 즉, “어떤 섬이 무인도가 아닌 것이 되기 위해서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가?” 그리고는 무인도에 우연히 표류하다 들어온 사람이 있다고 가정할 때, 입도의 순간에 그 무인도가 유인도가 될 수 있는지 묻는다. 비록 무인도에 최초로 사람이 발을 딛게 되었지만, 누구도 그 무인도를 유인도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 들뢰즈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조차 무인도라는 관념 안에 동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유인도가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어떤 한 사람이 섬에 있다는 사실을 복수의 형태로 경험하는 타자가 존재해야 한다.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 섬은 여전히 무인도일 뿐이다. 이 비유가 말하려는 사실은, 존재한다는 것은 나의 경험과는 다른 방식으로 경험되는 차이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와 타자와의 차이는 고정불변한 것으로 여겨진 무인도라는 이름을 사실상 생성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타자를 통한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 한, 나는 지각의 주체 혹은 경험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이 점에서, 데카르트식의 초월적 주체는 자기의 스스로의 부정할 수 없는 인식의 주체를 발견하는 데서 가능하다는 주장을 뒤집는다.



    앤디 워홀의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림에서 보듯이, 같은 마릴린 먼로이지만 다른 색상으로 채색되었다. 감상 포인트는 이 네 그림 중 어느 것이 진짜 먼로에 가까운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것도 사실 먼로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이 네 초상은 먼로라는 인물의 원형이 빚어낸 시뮬라르크가 아니므로 부정되어야할 모조가 아니라, 시뮬라르크의 차이 그 자체가 먼로라는 캐릭터를 주조해 내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즉, 차이는 부정되어야하고 동일성으로 동화되어야할 대상이 아니라, 차이와 차이의 반복은 그 자체가 존재를 생성하는 역능이며 힘의 의지로 인정된다.

    따라서, 생성하는 힘인 차이의 반복은 동일성의 조명 아래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시뮬라르크의 재현과 전혀 다른 정치적 의미를 발생시킨다. 플라톤 이래 동일성의 철학은 세계의 사물을 유사성으로 배열시켜 놓고 유사성들이 공통으로 지시하는 하나의 일의성만이 존재한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들뢰즈가 주목한 것은 영토 안에 배열된 사물들의 집합을 연결시켜 주는 코드화된 규칙성이다. 마치 푸코가 파놉티콘의 감옥이나 군대 학교 병원의 개별적 구조가 감시와 자기검열의 권력효과를 발생시키듯이 사물이 영토를 이룰 때에 거기에는 반드시 사물간의 관계를 지배하는 힘이 발생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를 코드화라고 부르며, 보이지 않는 관계방식은 결국 억압의 구조를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들뢰즈가 관심하는 것은 배치의 문제이다. 영토성과 코드가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느냐를 철학의 기본문제로 돌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때, 들뢰즈가 주장하는 것처럼, 사물의 차이에 대한 긍정이 존재의 초월성으로 인정된다면, 서구철학의 주류전통이 동일성의 원리에 입각하여 구축해온 층화(stratification)된 세계의 경계는 무너지고 뒤섞이게 되고 만다. 그리고 층을 형성하여 일종의 아성과 같이 분리된 독자적 영토를 형성하는 것을 당위적으로 받아들여 온 세계관은 일시에 정당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고정된 배치에는 일정한 변화의 길이 열리게 된다. 들뢰즈는 이것을 탈층화 또는 탈영토화라고 명명한다. 


들뢰즈의 주체는 어떻게 새로운가?


    재현을 부정하는 차이의 생성하는 힘에 근거한 들뢰즈의 사유는 동일성의 원리에서 발생하는 권력으로부터 탈주를 꾀하는 리좀(rhzome)적 주체, 혹은 노마딕(nomadic) 주체로 연결된다. 두 개념이 지시하는 바는 동일하다. 리좀은 뿌리는 땅에 있어야 하고 줄기는 뿌리로부터 땅위로 솟아 나와 있어야 한다는 식의 경직된 각 기관 사이의 획일적인 관계방식을 벗어나 자유롭게 제약 없이 뒤섞이는 방식으로 사물 사이의 관계를 창조적으로 재결합시키려는 사유방식이다. 리좀적 주체는 위계적인 지배와 피지배라는 현실의 영토화된 구조로부터 탈주하여 탈영토화하는 정치적 행동의 주체를 가능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들뢰즈가 파악하는 인간의 욕망이 플라톤과 그것과 대척점에 서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인간의 욕망이란 이데아에 비추어 결핍된 것으로서 배제되어야할 부정적 대상이다. 헤겔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욕망은 자기의식의 절대정신이라는 목적을 위해 반드시 지양되어야하는 미성숙에 불과하다. 욕망은 결국 이성에 이해 지배되고 통제되어야 할 것으로서 다뤄져왔을 뿐이다. 부정적인 방식으로 통제되어야 했던 욕망의 담론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시대 안에서 자본의 질서에 포획된 욕망을 욕망하게 하는 지배구조 아래에 놓이게 만들었다. 욕망이 인간을 지배하는 효과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종속된 것이다.   

    들뢰즈가 보는 욕망에 대한 플라톤에 대한 비판지점은 욕망은 플라톤식으로 결핍이 아니라 생산적인 욕망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욕망을 도리어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보유한 원인으로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가라리와 함께 들뢰즈가 ‘안티 오이디푸스(1972)’에서 들고나온 ‘생산하는 욕망’의 개념이다. 욕망은 영토화되고 코드화를 고착시키는 분절선들을 뚫고 나와 탈주하는 에너지의 원천이고 역량이다. 따라서 욕망은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직접적인 변혁의 분출시키는 모든 사회의 부분속에 편재되어 있는 힘이며 창조의 자유로운 힘으로 이해된다. 차이와 반복으로 귀결되는 리좀적 주체는 생산하는 욕망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들뢰즈는 사회 안에서 주체의 의미를 해명하는데 기여해 온 프로이드 정신분석학의 기능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다소 회의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 들뢰즈는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는 획기적인 대발견의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욕망을 너무나 쉽사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고정된 관념 안에 가둬버렸다고 비판한다. 억압된 욕망으로부터 인간의 주체는 왜곡된 채 항상 다다를 수 없는 환상을 향해 길들여지는 존재로 묘사될 때 욕망하는 주체는 욕망을 통제하는 자본주의의 억압적 시스템을 묵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들뢰즈가 라캉과 갈라서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라캉에게서 주체는 ‘욕망하는 주체’이다. 주체는 결핍을 메우기 위한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만들어진다. 욕망과 주체 사이에는 원인과 결과의 나눌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들뢰즈는 ‘욕망하는 주체’가 아닌 ‘욕망하는 기계’라는 개념을 통해, 주체는 욕망하는 주체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 도리어 욕망이란 사물들의 관계와 접속을 통한 생산적 활동안에서 이뤄지는 순수한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마치 공장의 기계가 어느 특정 부품이 상품을 찍어낼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계의 개별적 관계의 활동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과 같이 ‘욕망의 주체’라는 이름은 특정 사물이나 개체에 특권적으로 주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들뢰즈의 주체에 대한 이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성의 철학을 배제하고 현실세계를 동일자에 환원시켜 해석하는 플라톤주의에 대한 거부로 일관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사물의 관계 안에 내재한 탈주본능으로부터 자본주의의 억압적 시스템은 극복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들뢰즈의 ‘철학 다시쓰기’는 자본주의 시대 안에 어떠한 주체의 상을 남겨놓았을까? 그의 전략은 어떤 유의미한 돌파구를 열어주었는가? 이러한 물음으로 돌아갈 때, 누구나 떠올리게 되는 영화 한편이 있는데, 다름 아닌 ‘아바타’이다. 부족한 지구자원을 채석하기 위해서 지구와 닮은 또 다른 행성 판도라를 식민지로 개척하려는 지구의 다국적 기업과 행성의 원주민인 나비족과의 싸움을 그리는 판타지 영화이다. 이미 유명한 영화이기에 긴 설명은 필요 없을 듯 하다. 들뢰즈의 주체를 말하면서 이 영화를 떠올리는 이유은, 나비족이 지구의 다국적 기업의 총공세로 열세에 몰릴 때, 이 행성을 구원하는 주인공이 여타 영웅소재의 영화처럼 혜성처럼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다만, 아바타를 조종하는 제이크 설리는 나비족처럼 판도라 행성의 자연의 얽혀있는 그물망에 촉수를 통해 연결하여 교감을 이루는데 성공하고 그들과 일체가 되어 지구인의 폭격을 막아내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들뢰즈가 말하려는 리좀적이고 노마딕한 주체의 모습은 아마도 아바타가 행성의 모든 자연의 개체들과 촉수를 통해 교감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단지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서 자연의 모든 차이는 생성의 힘을 발휘된다. 마침내 자본주의의 욕망을 꺾어버리는 변혁의 주체는 어디에선가 메시아처럼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 안에 이미 잠재되어 있는 존재의 힘을 믿고 획일화되기를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에 맞서 때로는 ‘동물이 되고’ 때로는 ‘식물이 되기’도 하는 자유롭고 탈주하는 변칙적 삶 안에서 해방은 도래한다는 것을 이 영화는 들뢰즈를 대신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들뢰즈가 재현으로 굳어져온 사물의 표상을 차이와 반복으로 대체하고, 개체 각각이 지닌 생성하는 힘에 주목하여 마침내 생산하는 욕망을 자본주의의 대항할 주체의 탈주본능으로 규명한 것은 대단한 그의 통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탈주가 항상 해방지향적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이런 문제점을 들뢰즈도 간과하지는 않는다. 들뢰즈는 리좀적이고 노마딕한 주체의 유동성은 동시에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고 인정한다. 자유로운 탈영토화와 탈주는 광기의 위험과 죽음의 위험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들뢰즈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탈주를 위한 재영토화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탈주선이라는 개념은 삶의 새로운 양식과 창조하는 전복적 흐름이다. 억압적 코드의 관성적인 운동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클리나멘을 통한 새로운 창조라는 차원에서 탈주이며 탈영토화이다. 그러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탈주를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호하다. 혹여, 탈주의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선험적 관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점에서, 플라톤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그의 ‘다시쓰는 철학사‘의 전략이 성공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으로 남는다.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모병제가 사고를 막아준다고?



 

백승덕*


 

   “2025년이면 인구절벽이 온다!” 남경필 경기도 지사가 모병제를 추진하자고 나서면서 내놓은 이유다. 군 병력을 30만 명으로 줄이면 사병월급을 200만원씩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안희정 충남지사가 대권도전 선언을 했던 것이 영향을 줬다는 평가도 있지만 사뭇 합리적인 계산이기는 하다. 인구는 줄고 병영사고는 끊이지 않는데, 언제까지 지금처럼 관성적으로 징병제를 유지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모병제가 훨씬 합리적이라는 셈법은 이제 웬만큼은 상식이 된 모양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모병제 이행 공약을 내놓았다가 아슬아슬하게 낙선했다. 정의당은 아예 ‘한국형 모병제’를 대표적인 공약으로 내놓고 있다. 이쪽 모병제론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던 김종대 의원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형 모병제’는 2025년까지 병력수를 40만 명으로 줄이고 6개월 의무복무를 유지하되 병력의 대다수는 직업군인으로 채우는 식의 구상이다. 참여정부에서 내놓았던 국방개혁안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남경필이든 김종대든, 한국 정치권에서 모병제를 주장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인구수가 갈수록 주는데 현재 병력수를 고수한다면 현역복무에 부적합한 병사들이 군대에 더 많이 유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총기사고나 자살 등 끔찍한 병영사고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병력수를 획기적으로 줄여서 ‘가고 싶은 사람들만 가는 군대’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실제로 징병검사 결과 현역대상자로 판정받는 비율은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징병검사 대상자의 50% 가량만이 현역 판정을 받았다. 1990년대에는 이 비율이 80%대로 증가했다가 현재는 징병검사 대상자 중 90%가 넘는 인원이 현역 판정을 받고 있다. 모병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현역 판정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서 심리나 인성에 문제가 있는 자들이 군대에 유입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모병제를 운영하는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이들의 주장을 마냥 좇을 수는 없다. 모병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미군의 경우를 살펴보자. 미군의 경우 현역 군인들 중 10만 명 당 17~1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미국인 평균 자살률이 10만 명 당 13명인 것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연합뉴스, 2015년 4월 2일) 게다가 미군주둔지에서 미군에 의해 민간인 성폭행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 기지가 있는 오키나와에서는 올해 들어서 성폭행 및 살해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주민들이 기지철수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가고 싶은 사람들만 가는 군대’가 과연 답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동부전선 GOP총기사고 사건,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사망 등 심각한 병영사고가 연달아 터지면서 ‘정신이상자’를 관리하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지만 이 또한 비현실적인 주문이다. 지금 한국의 병영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이 ‘정신이상자’들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는 믿음은 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정신이상자’를 걸러내자!”


   1968년 5월 18일 밤 10시, 안동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던 문화극장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주말을 앞두고 영화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많아서 극장은 만원이었다. 영화관 문을 나오던 사람들은 대체로 연인들이었고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갑자기 군인 한 사람이 그 앞을 가로막고 서더니 군중 사이로 수류탄을 집어 던졌다. 당시 상황을 취재한 신문기사는 현장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날 문화극장의 마지막 프로, 영화 「복수」가 끝난 것은 밤 10시 19분쯤이었다. 4백여 명의 관객이 앞을 다투어 막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8미터 맞은편 사창가 임재순씨(36) 집에서 뛰어 나온 신하사가 앞서나오던 관객 약70명을 향해 수류탄 1개를 내던졌다.

귀가 찢어질 듯한 폭음과 초연 속에 『사람살리라』고 관객들이 아우성치는 사이에 또 수류탄 1발이 터졌다. 연거푸 떨어지는 폭음에 놀란 관객들은 짓밟고 밟히며 도로 극장 안으로 몰려 들어가고 더러는 문을 빠져나가 어둠속으로 도망쳐가기도 했다. (중략)

극장 안 시멘트벽에는 군데군데 파편자국이 할퀴고 극장 문 앞 에는 피범벅이 된 남녀 어린이 고무신 대여섯 켤레가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바로 그 옆에는 주인 잃은 시계 하나가 10시20분을 가리킨 채 멈춰있었다. 19일 낮까지도 핏자국이 낭자한 극장주변 길에는 헌병들이 새끼줄을 치고 통행을 막고 있었다.” (중앙일보 1968년 5월 20일) 


   5명이 사고 현장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심각하게 다친 사람들도 40여 명이나 됐다. ‘안동 수류탄 사건’은 당시 가장 심각한 뉴스로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1968년에는 1월부터 청와대기습 미수사건을 비롯해서 무장공비사건이 이어지면서 박정희 정권이 국가안보를 강조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250만 명을 동원하는 향토예비군 창설을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였다. 당시 야당은 지역마다 향토예비군을 위한 무기를 가져다 놓으면 사고가 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안보가 위협받고 있다고 대꾸할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현역 군인이 휴가 중에 민간인들에게 수류탄을 집어던진 것이다. 그것도 두 개를 연달아서. 

   당연히 난리가 났다. 사건의 전말이 공개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신 하사는 휴가 중에 자기 부대로 찾아가서 후임병에게 수류탄을 얻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보고체계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가 국민들에게는 북한이 쳐들어오고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 정신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던 때에 정작 현역 군인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이도록 방치할 수 있었던 것인가. 야당과 여론은 당연히 정권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군에서 진행된 수사는 해당 하사의 가해 동기에 초점을 맞춰졌다. 수사를 통해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신 하사는 애인이 변심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복수심에 불타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증언했다. 처음에는 애인을 살해하기 위해서 부대를 떠나왔지만 영화관에서 나오던 일반인들이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고 사회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이 사건을 심리이상자의 일탈로 발표했다. 당시 여론 역시 당국의 발표에 따라서 정신질환자 관리를 요구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 과정에서 신 하사의 개인사가 공개됐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가출을 해서 성매매집결지에서 일을 하고 구두닦이를 하는 등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사건의 원인은 이제 분명해졌다. ‘안동 수류탄 사건’은 현역 사병 및 간부들의 ‘심리’가 문제로 대두되게 만든 계기였다.


장병인권개선에서 정신의학적 처방으로


   사실 병영사고는 그 이전에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폭력사고로 인한 사망사건이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국방 당국은 곤혹스러워했다. 그때마다 군대 내에서 상급자에 의한 불합리한 명령이나 사적 제재가 원인으로 지적됐다. 병영에서 일상적으로 이어지던 ‘기합’ 문화를 일제 잔재로 지목하여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도 크게 힘을 받고 있었다. 예를 들면 1959년 12월에 1군단에서는 군대 내 폭력사고가 잇따르자 ‘장병인권옹호운동’을 전개했다. 일선부대에서 부하를 때려 숨지게 하거나 품팔이를 시킨 상관들이 처벌됨에 따라서 군단 차원에서 기합을 폐지하고 군 재판을 개혁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인 것이다. 1961년 군사쿠데타 이후에도 이러한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1963년 4월 김종오 육군참모총장이 전방 훈시 중 ‘말단사병일지라도 인권을 존중하라’고 말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권유린과 사적제재가 군의 단결력을 파괴하고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후에 인권개선 등 뚜렷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군 당국에서도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고 보는 것이 적확할 것이다. 1965년 8월에도 부산 모 경비중대에서 야간 보초 중이던 일병이 내무반에 들어가서 직속상관인 상병과 병장을 불러내어 칼빈 소총을 약 30발을 난사한 사건이 벌어졌다. 군 당국은 이 사건 역시 기합 사적제재 때문에 발생한 하극상이라고 판단했다. 해당 병장이 3명의 상병을 내무반에 데려다놓고 군기문란을 지적하면서 야전용 곡괭이 자루로 무수히 구타하자, 이번엔 기합을 받은 상병 중 한 명이 후임들을 모아놓고 모진 기합을 준 데 원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일선 부대에서 후임병이 폭행을 당해 사망하거나 반대로 선임병이 폭행에 대한 보복으로 총격을 받는 일이 빈번하게 이어졌다.

   군 당국은 이러한 사건들에 대처하기 위해서 1966년 9월 육군에 인간관계개선연구위원회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발생하던 병영사고의 이유로 지적된 사적 제재 등 불합리한 병영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대처였다. 그러나 당시 언론은 군 당국의 홍보에 비해서 뚜렷한 개선 성과를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와중에 ‘안동 수류탄 사건’이 터진 것이다.

   군 당국은 더 이상 인권개선처럼 복잡하고 추상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 국방부는 ‘안동 수류탄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 인간관계개선연구위원회를 대신해서 선병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장병인권옹호나 인간관계개선연구가 아니라 문제사병만 골라서 걸러내는 선병(選兵)을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에 따라 병무행정에서도 정신의학적 처방이 적극적으로 도입됐다. 선병위원회에서는 MMPI와 같은 인성검사를 변형해서 자체 검사지를 만들거나 Rorschach 검사 등을 도입했다. 그러나 학술적 타당성과 검사의 신뢰성이 희박하다는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현재까지도 심리‧인성검사를 개발하는 연구가 군 당국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정신의학적 필터링 제도를 일찍부터 도입한 미국의 심리학계에서는 인성검사로 문제사병을 골라내는 데에 한계가 크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뒤늦게 유럽 전선에 참전하게 되면서 프랑스나 영국군에서 발생한 정신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신의학적 필터링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미 국방당국은 정신의학적 필터링을 의심하게 됐다. 전후 육군성 기술 기관지 "War Department Technical Bulletin"에 보고된 한 논문은 인성검사로 인해 신경정신질환자로 판명되는 수가 실제 부적응자에 비해 과하기 때문에 이상 징후가 매우 현저하게 나타나지 않는 한 제대처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E Jones et al., 2003)

   전후 미국 심리학계에서 나온 연구들은 검사를 통해 경계선에 서있는 병사들에 대한 이상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성검사를 통해 신경정신질환을 일으킬 것으로 예측했던 병사들 중 상당수가 군 생활을 문제없이 해낸 사례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들 연구의 결론은 현역복무부적합 판정율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지만, 반대로 보자면 인성검사를 통해서 군 복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심리적 원인을 예측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오히려 정신질환으로 제대하는 경우, 개인적 성향보다는 전투의 강도나 병영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이들의 결론이다. 현재까지도 심리 및 인성검사는 현재 현저하게 증상이 드러나고 있는 지능문제나 정신질환 등의 사례에서만 타당성을 제한적으로 인정받고 있을 뿐이다. 스트레스를 유발시키는 환경 하에서 반응이나 리더십, 윤리성 등과 관련한 심리적 취약함을 예측하는 검사는 아직까지 없다.(Siow-Ann Chong et al., 2007)


우리에겐 다른 길이 필요하다.


   미국의 사례는 정신의학적 처방의 한계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미국이 모병제로 전환하여 ‘가고 싶은 사람들만 가는 군대’를 운영한 지 이미 40년가량 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에서 최근 일고 있는 모병제 주장을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들어 사병들의 자살뿐만 아니라 전역군인들이 겪고 있는 외상후스트레스(PTSD)로 인해 끔찍한 사고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현역 사병들이 민간인 마을에서 총기를 들고 시위하듯 다닌다거나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사건들이 있었는가 하면 7세 밖에 되지 않은 딸이 알파벳을 모른다고 아내에게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2025년이면 분명히 인구절벽이 온다.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관성적으로 징병제를 유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일 그 대안이 ‘정신이상자’들을 걸러내자는 것이라면 한국군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관성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이 설사 모병제라 할지라도 말이다. 일찍부터 정신의학적 처방을 개발하고 모병제로까지 전환한 미군이 겪고 있는 저 사태가 우리의 희망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에겐 다른 길이 필요하다. 


* 필자소개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Steve
    2016.09.08 18:4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다른 시각으로 보시면 좋을듯 합니다
    돈을 주고 모병제를 해도 이런 일이 발생하는 돈 안주고 징병제를 한다면 억울한 자들의 눈물과 조국이 싫다고 떠나는 자들...
    국가는 충성을 강요하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머물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뭔가 국가충성만 강요한다면 분명히 한계가 곧 들어날것입니다

공간 접기


éspace plié(atelier à dijon, france)_작업실 모서리에 테이프 드로잉_2007


십여 년 동안의 유학생활 내내 프랑스식의 옛 건물들은 이질적이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었으며, 의식적으로든지 무의식적으로든지 내가 에트랑제 (étranger; 외국인)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했다. 왜냐면 어렸을 때부터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고, 도시의 획일화된 생활공간에서 자라왔기 때문이었다. 


 이사를 할 때면 점점 한국식 아파트와 비슷한 네모 반듯한 거주지를 찾았는데, 접혀진 공간에 관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렇게 프랑스에서 이방인으로서 잦은 거주지 이동을 경험하면서 부터이다. 

그러면서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든지 옮겨 다니며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곳들이 모두 내 집 이라는 경험은 집에 대한 나의 인식을 중간자적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하였다. 한곳에 터전을 잡고, 가족의 규율에 얽혀있는 ‘한국의 집’에 대한 인식이 점점 가벼워 지면서 종이처럼 가벼운 공간에 대한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은 먼저 공간의 축소 도면을 그려 모형을 제작하는데 이 축소 도면은 일반적인 건축의 도면 제작 순서와는 반대로 제작된다.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구성된 건축공간의 실물 사이즈를 줄여서 종이면 위에 펼쳐놓는데(드로잉 하는데), 이는 건축공간을 종이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일종의 해체 작업이다. 다음으로 실재 공간의 모서리에 종이접기의 선들(안 접기, 바깥 접기의 선들)을 구분하여 테이프로 드로잉 하여 ‘접혀진 공간‘은 완성된다. 


 이렇게 물리적인 건축공간을 상상의 종이공간으로 탈바꿈 시키는 이유는 마치 종이박스에 이삿짐을 넣어 여기저기 옮길 수 있는 것처럼, 종이박스처럼 가벼운 집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리 저리 쉽게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함이다. 


éspace plié́(residence st-bonnet, bourges, france)_거주공간 모서리에 테이프 드로잉_2010


접혀진 공간(경기창작센터c203)_작업실 모서리에 테이프 드로잉_2014



 


 

  

정승원 作 (설치작가)


- 작가소개

프랑스 부르주 국립 고등 미술학교 졸업, 경기창작센타 입주작가 

개인전 | 2014 해석의 재해석, 경기창작센터 

           2011 PLI, Eapace PRIVAT, 디종, 프랑스 

그룹전 | 2015 알 수 없는 그 무엇? 하하하, 전라남도 도립 옥과미술관 

           2014 루와얄 섬 레지던시 보고전2 금천예술공장 

프로젝트 | 2015 프롬나드(황금산프로젝트), 아르코, 경기문화재단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아직도 삶이, 예술이 그리고 영화가 유의한가요?  

키아로스타미의 <체리향기>




이희승*



  제가 일하고 있는 대학에서도 구조조정이 한참입니다. 인적 자원의 효율적 관리와 무한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한 생존전략을 마련해 내놓으라고 연일 격려와 독촉의 이메일들이 날아 듭니다. 소위 실용학문을 하는 타 단과대학도 머리를 싸매게 하는 이 상황은 르네상스의 미학을 연구하고, 세익스피어 시대를 읽고, 고대 중국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데 평생을 바쳐 오신 인문학 교수님들에게는 참 난감하기 그지없는 요구네요. 특히, 대학 경영진이 보낸 이메일에 이런 쓸모없는 ‘Hobby course (취미 과목)’ 들을 정리해 내라는 모욕적인 표현이 부끄러움 없이 등장하기 시작하자, 인문학부에서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새내기 시간강사로써 분노와 함께 좌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의 삶이란 자원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자본으로 전환하기 위한 여정일까요?


  춘추전국시대를 능가하는 이런 난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지난달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돈과 유명세를 얻기 위해서, 무슨 사상과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 어떤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등등의 실용적인 이유에 기대지 않고도, 영화를 만들고 보는 것만으로도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그런 영화들을 말입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빛나는 카메라는 소박하지만 천박하지 않게, 어눌하지만 가식적이지 않게 사는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습니다. 실수로 집에 가져온 친구의 공책을 돌려 주려고 낯선 이웃마을을 헤메는 어린 소년의 오후를 그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1987)>의 마지막 컷에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는 말린 들꽃 책갈피, <올리브 나무 사이로 (1994)>의 엔딩에서 언덕 아래로 소멸하는 하얀 점 두개로 변한 젊은 연인들 사이의 대화를 대신하던 올리브 나무 사이를 지나는 잔잔한 바람소리 등은, 영화 보기를 밥먹듯 해야하는 저같은 사람에게조차도 신산한 마음과 고단한 삶을 든든히 지탱해 주는 기둥같은 순간들입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1997년 수작 <체리향기>는 특히나 그렇습니다. 삼십년 넘게 불패의 경제 성장을 이루던 대한민국이 IMF라는 경제 위기에 직면해 휘청거리던 그 때, 요동치는 환율로 영국유학을 접고 서울에 돌아와 있던 저에게 세상 저편에서 기적같이 도착한 편지 한 통처럼 다가왔던 영화지요. 1998년 대한민국 자살율이 그 전 해보다 40%이상 급증했던 그 암울한 시절,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저 먼 땅 이란에서 그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영화는 상큼하게 입맛을 돋우는 그 제목과는 달리, 당시 대한민국에 느닷없이 드리운 죽음의 향기를 진하게 풍기며 시작합니다. 밑도끝도 없이 인생을 결말짓고 싶은 중년의 남자가 자신이 스스로 판 무덤에 누워 수면제를 먹고 죽음을 맞이한 아침, 시체가 되어 누워 있을 자신을 위해 흙 몇 삽을 뿌려 덮어 줄 누군가를 찾아 헤메는 이야기이니까요.    


    1990년에 국토를 강타한 어마어마한 대지진의 폐허에서 회복 중인 이란의 근교는 보기에도 처참하리 만큼 황량하고, 민망하게 헐벗은 신작로와 벌거숭이 언덕을 분주하게 누비며 주인공 남자는 자신의 무덤에 흙 덮어 줄 누군가를 찾아 헤맵니다. 돈은 좀 있는 듯 보이는 미스터 버디는 길에서 마주친 선량하지만 경제적으로 곤궁한 사람들에게 거부하기 어려운 큰 돈을 제안합니다. 하나같이 순박한 이들은 주인공이 제시하는 큰 돈도 마다하고 이 남자를 절망과 죽음에서 구해 내려고 애를 쓰지요. 미스터 버디와 일련의 인물들은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삶의 유의함에 대해 나름 진지한 대화를 이어갑니다. 시멘트와 모래가 풀풀 날리는 건설현장의 주변에서 근근히 삶을 이어가는 주변인들은 어찌보면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을 진심으로 걱정해 줍니다. 허나, 죽음의 논리를 오랫동안 준비해온 이 남자를 설득하기는 역부족입니다. 무슨 연유인지 완전히 증발해 버린 삶의 향기로 인해 죽음에 가까이 닿은 미스터 버디를 진심으로 이해하기에는, 그의 죽음을 향한 행진에 잠시 동행하는 이들은 모두 비루하지만 그래도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삶을 긍정하는 사람좋은 이웃들이지요. 신기하게도 영화가 중반부를 넘어 가면서 관객들은 모두 저마다 삶의 시름이나 걱정을 내려 놓고 이 남자가 죽지 않기를, 이 남자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돌려 놓을 입심좋은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게 되죠. 혹은 누군가 나타나 관객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도 자리잡고 있는 이 끈질긴 죽음에의 유혹을 이겨 주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도 같습니다.  


    그때, 혜성처럼 –이라고 하기엔 행색이 너무 초라한 – 장년의 박제사가 주인공의 차에 동승합니다. 자기 이야기를 다 듣고도 꼭 죽어야 겠다면 그때가서 흙 덮는 일을 해주리라 약속하고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죠. 엄청나게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득을 기대했다면 다분히 실망스러울 수 있는 그저 그런 보통 사람의 삶인데, 유독 한 장면이 이 간절히 죽고 싶은 남자의 마음을 흔들게 됩니다. 노인의 젊은 시절, 좌절감에 목을 매 죽으려고 올라간 뽕나무에서 해돋이를 망연히 쳐다 보며 따먹은 뽕나무 열매 맛을 잊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더욱 재미있는 것은 노인이 목을 맬 밭줄을 묶으려고 올라간 뽕나무 위에 앉아, 나무 밑을 지나서 학교로 향하던 아이들에게 나뭇가지를 흔들어 뽕나무 열매를 떨궈주고는 자신도 그 맛난 열매를 한줌 집어서 집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던 아내에게 가져다 주었다는 대목입니다. 자신이 회복한 삶의 향기를 혼자만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나눔으로써 진정 죽음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노인의 진실한 체험이 과거의 이야기에서 현재의 장면으로 자연스레 넘어 오면서, 죽지 못해 안달이 난 이 중년의 남자에게도 ‘삶 아니면 죽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초월하는 새로운 삶의 지경을 은근히 보여 주는 것만 같습니다.  


  노인은 이야기 중간중간 길 안내를 하며, 나무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고 연한 색깔의 잎사귀와 꽃들이 비치기 시작한 언덕 저편으로 차를 몰게 합니다. 천하 절경은 아니지만, 심오한 지혜의 한마디는 아니지만 어쩐지 이렇게 그냥 죽기는 좀 억울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이 영화의 후반부 장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야만 하는 낮은 곳에서나 가능한 그런 힘을 가진 듯 합니다. 미스터 버디는 끝내 죽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지만, 자신의 무덤을 봉해 달라는 다짐을 받아내고 헤어져 돌아 가는 길에 다시 노인이 일하는 박물관으로 미친 듯이 달려 갑니다. 그리고는 노인에게 아침에 무덤가에 와서 자신을 세번 정도 아주 세게 흔들어 깨워서 그냥 잠이 든 것이 아닌지 확인을 해 보고, 그래도 죽은 것 같으면 흙을 덮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지요. 이유를 딱히 설명할 수 없지만, 제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장면입니다. ‘그래, 딱 저만큼만 삶에 대한 희망이 있어도 살 수 있어!’ 라는 깨달음에 맥이 탁 풀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물기 많은 체리를 꼭 내 입에다 넣고 씹지 않더라도, 피처럼 붉은 체리가 풍기는 그 흐드러진 향기를 생각하기만 해도 우리는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참 겸손한 생각을 나누는 이런 영화가 있기 때문에, 예술과 사상이 인류에게 ‘취미’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확신을 다잡아 봅니다. 


* 필자소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강사 및 정신분석가. 동 대학의 미디어 영화학과에서 각색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시안학과에서 한국 영화와 텔레비젼 드라마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호주 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가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 라캉 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by 제3시대

공지사항

카테고리

웹진 <제3시대> (804)
특집 (8)
시평 (92)
목회 마당 (58)
신학 정보 (131)
사진에세이 (38)
비평의 눈 (65)
페미&퀴어 (22)
시선의 힘 (131)
소식 (152)
영화 읽기 (30)
신앙과 과학 (14)
팟캐스트 제삼시대 (12)
연구소의 책 (13)
새책 소개 (38)
Total : 328,236
Today : 56 Yesterday : 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