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사회적 분열과 "비시민"의 출현에 대한 고찰(3)


- 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의 결합을 통하여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과정,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서론


    2. 한국 전쟁 이후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라는 사회적 합의의 형성과 붕괴

     (1)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의 형성

     (2) 남한 국가의 형성과 근대화에 미친 미국의 영향 

     (3) 남한 사회의 사회적 균열의 시작 – ‘민중’의 출현

     (4) 남한 사회의 내부합의의 동요와 붕괴

     (5) 남한 민족주의의 분화와 분열


    3. 남한 사회에서의 ‘무능력자’와 ‘무자격자’ 형성의 구조

     (1) 민주화 시대 ‘시민’의 출현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성취되기 이전에는, 남한 사람들 대다수는 자신들을 ‘국민’이라고 정의했다. 이 말은 이따금 민주화운동을 정당화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했으나, 대체로 국가에 대한 복종의 함의를 갖고 있는 말이었다. 그 경우, 국민은 개인의 집합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단일한 실체로 이해되었다.  

   1987년 민주화 성공 이후에는 ‘시민’이란 용어가 출현하여 ‘국민’과 공존하게 되었다. ‘시민’의 출현은 민주화과정을 통해 시민사회의 제도적 기능이 정상화되었다는 한 증거이다. 김진호에 따르면, 그러한 정상화로 인하여, 남한 ‘시민’은 이제 각자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와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각주:1] 이 ‘시민’은 일반적으로 ‘국민’과는 다르게, 개인 각자의 혹은 개인들의 집합을 통해 형성된 것으로 이해된다. ‘민중’이 일반적으로 하층 계급 사람들이란 의미를 담고 있으며, 사회운동의 지평에는 종종 반자본주의적 성향을 담지하는 것으로 이해된 반면, ‘시민’은 국민국가 내부의 자유민주주의의 주체로 이해된다. 민주화의 진전과 사회주의 붕괴가 겹치면서, 남한 사회에서 ‘시민운동’은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류가 되었다. 

   남한 사회에서 ‘시민’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부터,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은 분리불가능한 상태로 사회적 정당성을 담지하는 명분이 되었다. 이 두 명분 중에 어느 쪽에 중점을 둘 지를 놓고 보수주의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 간에 심각한 논쟁이 있긴 하지만, 이 두 명분을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민주화 이후 남한 국가의 기본 합의 중 하나가 되었다. ‘한국병 치료’와 ‘문민정부’를 함께 내걸었던 김영삼 정부의 슬로건은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의 두 명분이 공존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의 슬로건을 앞세워 경제개혁을 시도했다가 심각한 실패를 겪었고, 민주주의를 추구하던 정책들이 경제정책에 의해 제어당하면서 시민사회의 저항을 불러와, 민주주의에 대한 헤게모니를 상실했다.[각주:2] 김영삼 정부가 IMF 구제금융과 함께 마감되면서, 그 이후 정부들의 목표는 경제개혁과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경제에 의해 민주주의가 제어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앞에서 논의한 대로, IMF 구제금융 이후 한국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가속화시킨 것은 자유주의적 입장을 가진 정부들이었다. 금융/산업/노동 영역의 구조조정의 결과로 상당수의 기업과 은행이 사라졌고, 정리해고와 파견 노동 등이 일반화되는 신자유주의적 노동개혁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대우나 현대 등의 일부 재벌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LG 등의 대재벌, 특히 삼성은 IMF 이전보다 더 강력한 경제적/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은행이 산업 자본의 이해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실물 경제 바깥에서 자립하는 금융자본으로 자신을 재구축하게 되었다.[각주:3]  

   이런 모든 변화로 인해, 남한 사람들의 고용은 불안정해지고, 종신고용 시스템에 기반을 둔 라이프스타일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 1990년 초부터 시작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화는 계속 가속화되어, 비정규직 노동이 고용의 주류가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대부분의 청년 노동자들이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청년빈곤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중년 노동자들은 상당수 정리해고되거나, 정리해고를 모면한 경우라도 그들의 고용주들이 과거와 같은 이윤이 나오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정리해고를 단행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게 되었다. 국가 경제 지표가 향상되고, 김대중 정부가 예상보다 일찍 IMF 구제금융을 상환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경제적 양극화 상황은 심화되고 노동계급의 삶은 더 불안정해졌다. 

   IMF 구제금융 이후의 남한의 자유주의 정부들은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초래된 대중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 복지 시스템과 경제 구조의 동시 개혁을 시도했다. 이 정부들의 사회복지 개혁의 노선은 ‘생산적 복지’였는데, 이는 복지 수혜자들이 구직활동에 적극적일 것을 요구하는 등의 ‘생산적 태도’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 노선이었다. 한편, 이 정부들은 신자유주의적인 외부의 충격을 경제 구조 개혁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정책을 폈다. 

   외부 충격을 경제 구조 개혁의 지렛대로 활용한 예로 노무현 정부가 시도한 한미 FTA를 들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선진통상국가’가 되겠다는 기조 하에, 이를 동시다발적인 FTA 체결로 성취하려 했다.[각주:4] 한미 FTA는 중국의 빠른 산업화에 대응하여 경제 구조를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명분 하에, 원래 계획되었던 시기보다 당겨서 추진되었다.[각주:5] 이 때 정부의 논리는, 가장 발달된 서비스 산업을 구축한 나라인 미국과 FTA를 체결함으로써 그에 따른 외부 충격이 남한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가속화한다는 것이었다.[각주:6] 자신을 ‘실용적 진보주의’의 추구자라고 정의했던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가 담지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의 적용이라는 외부 충격을 활용하여 재벌과 노동계급의 저항을 극복하고 재벌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특권(물론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는 노무현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을 제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각주:7] 하지만 삼성과 같은 대재벌들 역시, 한미 FTA가 초래할 영미적 자본주의 노선으로의 격변 속에서 일어날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잡고자 하는 의도 속에 FTA 체결을 지지했으며, 심지어 삼성의 경우, 노무현 정부의 일부 관료들이 증언한 대로, 한미 FTA 체결을 앞장서 제안하기까지 했다.[각주:8] 

   한미 FTA에 대한 수많은 찬반 논란은 대체로 민족주의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졌다. 한미 FTA 반대 담론의 대부분은 협상 결과의 대부분이 미국의 이익을 확보하는 쪽으로 편향되었다는 주장을 근거로, 한미 FTA가 ‘미국의 경제 침략’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단정했는데, 이는 이 반대 담론들이 남한 사회운동의 전통적인 반미 경향 속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 준다. 반면, 한미 FTA 찬성 담론의 대부분은 한미 FTA가 “1조 7천억불 상당의 미국 시장”에 “한국의 경제 영토를 확장”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 만들었던 한미 FTA 추진 관련 광고를 보면, 한국 기업을 상징하는 기마부대들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 영토를 행진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 장면들은 한미 FTA를 추진하는 정부 지도자들의 민족주의적 욕망을 보여 줌과 동시에, 남한 대중들의 민족주의적 욕망을 한미 FTA 추진에 동원하려는 의도를 보여 준다. 그리고 이렇게 동원된 민족주의적 욕망이 제국주의적 욕망으로까지 나아간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 때 그 욕망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제시되는 것은 한미FTA를 비롯한 갖가지 FTA를 통해 자본주의의 세계화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장면들은 미국에 대한 식민주의적 선망을 통해 내면화된 남한의 “제국의 눈”[각주:9]을 보여 주며, 이는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협력하는 하나의 양상을 보여 준다. 이 지점에서, 이 한미 FTA를 추진한 노무현 정부가 사회운동 일각의 지지와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리버럴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자신을 위에서 언급한 대로 ‘실용적 진보주의’의 추구자로 정의했음을 짚어 본다면, 이는 민주화운동 지지의 입장에 선 리버럴들의 대다수도 제국주의적 욕망을 공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겠다. 

   2007년 보수주의 정부가 재집권하면서, 이명박과 박근혜가 이끈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이끈 10년 동안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했다. 이 정부들은 이전 자유주의 정부들의 경제개혁 정책을 전면적으로 이어받지는 않았지만, 신자유주의적 경제 시스템 변화를 지속하고, 4대강 등의 대규모 토목 공사를 통해 내수 경제를 진작하려는 정책을 폈다. 하지만 이 정부들은 이전 자유주의 정부 이상의 경제 지표 향상을 이루어내지 못했고, 경제적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수립에 참여한 일부 보수주의적 지식인들이 ‘선진화’[각주:10] 등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리버럴들을 포섭하려 시도하기도 했으나, 2008년 촛불 시위 이후에는, 보수주의 정부는 반정부적 입장의 대중들에 대한 설득을 포기하고, 그들을 불순하다고, 더 심하게는 ‘종북’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서는 시민들과의 소통을 포기했다는 반대쪽의 비난이 뒤따랐다.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이러한 소통 불가능성과 경제적 양극화 등으로 인해, 지금의 남한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 웹진 <제3시대>



  1. 김진호, “시민, 민주화-시장화 사이에서 ‘자기분열’”, 2010년 4월 14일자,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16128.html. [본문으로]
  2. 그 한 가지 예로, 김영삼 정부는 1996년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노동법 개정을 시도했다가 노조의 총파업과 야당의 반대에 부딪쳐 개정을 연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김영삼 정부가 헤게모니를 상실하는 결정적 지점이 되었다. [본문으로]
  3.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서울: 책세상, 2011), 276 [본문으로]
  4. 앞의 책, 398 [본문으로]
  5. 앞의 책, 400 [본문으로]
  6. 앞의 책, 403 [본문으로]
  7. 앞의 책, 400 [본문으로]
  8. 앞의 책, 400 [본문으로]
  9. Chen, Kuan-Hsing, Asia as Method: Toward Deimperialization. Durham and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2010, 17 [본문으로]
  10. 박세일.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 서울: 북21, 20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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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만찬 : 신앙과 과학의 랑데부!



 

민기욱
(GTU 조직신학 박사과정)


 


       1. “과학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란 무엇일까? 현대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상이 변했다는데 그리스도인의 믿음에도 어떤 변화가 생기는 걸까?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우리의 믿음이 시대가 변함에 따라 바뀌기라도 한다는 건가? 

       2. 우리는 날마다 “과학”과 “기술”이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변화가 너무 빨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누구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됐지만 예전에 퍼스널 컴퓨터의 사용이 쉽지 않아 아예 포기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는데 훗날 필자도 언젠가 그렇게 될까봐 다소 두렵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3. 7월이 되면 생각나는게 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위치한 로고스 교회에서 “신앙과 과학” 연속 특강에서 소개한 바 있다. 닐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 버즈 올드린 등의 우주비행사들이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를 발사해 7월 20일 달에 처음 착륙한 이후 2년이 지난 1971년 7월 30일 아폴로 15호가 다시 달에 착륙했는데 이 때 한 실험 중 “해머와 깃털의 낙하 실험”이란게 있다. 일명, “갈릴레이 실험”의 확증이었는데 이는 “등가원리”를 증명해보이려는 것이었다. 실험의 이름 그대로 지구에서는 해머와 깃털을 떨어뜨리면 당연히 해머가 먼저 땅에 떨어진다. 왜? 그것은 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갈릴레이는 중력에 의한 질량의 가속도 실험으로 물체가 가속되는 양은 질량과는 상관없음을 최초로 보였다. 그러나 갈릴레이 당시에 실험이 쉬웠을리가 없다. 이에 아폴로 유인우주선이 가져다 준 선물은 달 표면이었고 그곳은 공기가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갈릴레이의 낙하 실험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4. 여기서 잠깐! 등가원리(equivalence principle)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자. 등가원리란 일반상대성이론의 기본 원리로서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이 같음을 다룬다. 중력 질량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힘을 작용하는 양이고, 관성 질량은 운동 제2법칙에 의해 정의되는 가속에 대한 저항이다. 이 둘이 선험적으로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들이 놀랍게도 아주 똑같은 값을 갖는다.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이 둘을 완전히 같은 물리적 개념이라는 논리로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큰 산을 넘어보려는 갈릴레이의 노력이 결국 몇 세기를 너머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졌고 1907년 등가원리라는 이름으로 확립되었으며, 관성 질량과 중력 질량이 같다는 중력 이론을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 과학적 증명을 아폴로 15호의 데이빗 스캇이 다시 재현했던 것이다.[각주:1] 그런데, 이와 같은 때는 아니었지만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의 그 촌각을 다루는 엄밀한 과학기술의 홍수 속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5.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 중 한 사람인 올드린이 혼자서 성찬식을 달 표면에서 했던 것이다! 그 당시 NASA는 그리스도인인 우주비행사가 아폴로 8호로 달의 궤도를 돌고 있을 때 “창세기”를 낭독했던 것으로 인해 무신론자로부터 고소를 당한 상태였다. 즉, 우주에 있는 동안 우주비행사는 종교 활동을 금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올드린은 달에서 성찬식을 한다는 자신의 계획을 아내한테도 미리 말하지 않았고, 나중에 지구로 귀환한 후에도 당분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나중에 올드린에게 성찬도구를 제공했던 휴스턴의 장로교회는 그 때 사용한 잔을 그로부터 받아서 매년 7월 20일에 가장 가까운 일요일을 '달의 만찬의 날'로서 기념하게 되었다. 성찬식 장면을 지구로 송출하려는 원래의 계획을 포기했지만, “라디오 방송이 끊어진 상태에서 빵과 포도주가 들어 있는 조그만 플라스틱 꾸러미를 개봉했다. 나는 교회에서 준 성배에 포도주를 부었다. 중력이 지구의 1/6밖에 안 되는 달에서 포도주는 느리게 물결 치면서 컵의 가장자리를 타고 올라왔다. 이어서 나는 성경 구절을 읽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라고 올드린은 1970년 가이드포스트 잡지에 기고했으며 NASA는 그 날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http://history.nasa.gov/SP-350/ch-8-4.html (NASA)  

       6.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과학 시대” 속에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기독교 윤리학자인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말했던가? "기독교인의 삶은 답 없이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물론 유명 학술 저널이나 논문을 쓸 때야 논리와 논증 등의 치밀한 학문적 전개와 설득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쩌면 올드린의 행동처럼 누가 보기에 따라 무모할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7. 필자는 유학생이자 목회자로서 작은 교회에서 꽤 긴 시간동안 목회한 적이 있다. 교회를 개척하고 10여년 목회했던 선배 목회자를 존중하고 교회의 전통을 지키고자 애쓰는 교우들을 배려해서 예배 예전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며 7-8년 동안 사임할 때까지 지켜낸 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학위 과정 중이라 한 주에도 수없이 많은 논문과 책과 씨름하면서도 교회에 가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묵묵히 매주 성만찬을 집례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차갑고도 냉철한 학문의 세계 속에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뜨거운 살과 피를 교우들과 서로 나눌 때 나 스스로에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다시금 일깨우는 작업을 했던 것이리라. 그렇다고 이중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8. 버즈 올드린의 신앙이 어떠했는지 솔직히 잘 모른다. 텍사스 휴스턴의 장로교회의 장로로서, 그는 MIT에서 궤도상 랑데부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NASA 우주비행사로 뽑힌 수재였다. 또한 당시 그가 쓴 궤도역학 논문이 이후 궤도상 랑데부 연구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주비행사뿐만 아니라 우주개발사에 남긴 영향이 큰 것 또한 사실이다. 다시 말해, 과학자로서 꽤 영향력있는 사람인건 분명하다. 그런데, 그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착륙해서 한 일이 “성만찬”이었다는 사실은 필자에게 매우 고무적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서 혹시 이 역사적인 순간의 일을 처음 접하셨다면 이 일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이라 생각한다. 유명한 과학자가 특별한 역사적 순간에 한 엉뚱하고도 위대한 일! 성만찬! 이보다 더 멋진 “신앙과 과학”의 랑데부가 또 어디 있을까? 



ⓒ 웹진 <제3시대>

  1. http://web.hallym.ac.kr/~physics/course/grcm/pisa.htm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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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네 번째[각주:1]


주권교인과 캐릭터 교회들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주권교인'과 교회의 캐릭터화


    지난 글에서 ‘주의 종’들의 천민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 ‘주의 종’이란 성직자를 지칭하는 한국 개신교의 독특한 용어다. 이 표현 속에는 역설적으로 대중에게는 주(主)를 대리하는 자라는 함의가 담겨 있다. 특히 설교는 ‘주님’을 대언하는 행위로서 여겨졌다. 한데 ‘주의 종’들의 학력 저하와 교회 대중의 학력 상승이라는 지적 비대칭성의 심화는 설교에 대한 교회 대중의 불신을 초래했다.

    실제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던 1990년대는 대학생 수가 가파르게 상승했고 출판 시장도 정점에 도달한 시기였다. 신학교에서 현대신학의 논의들을 외면하는 가운데, 신학적 고급 정보가 담긴 교양서들이 속속 출간되었고, 심지어 교양서적 시장에서 반기독교적 과학서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합리성과 과학성에 대한 낙관적 태도가 절정에 이른 1990년대에 이러한 대중적 지식의 고급화의 대열에 고학력자가 많은 개신교의 신자들이 대거 참여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반면 그 얼마 전까지도 교회 성장의 한 축을 이루었던 부흥회가 도시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고, 폐업하는 산기도원의 수가 급격히 늘었다. 즉 1990년대의 교회 대중은 목사와 그의 신학적 주도권에 깊은 의심을 품고 있었다.

    한편 이 시기는 민주주의적 제도화를 향한 열망이 거센 풍랑처럼 밀려들던 때였다. 낡은 권위주의를 청산하려는 거대한 파도가 그 선두에서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회는 낡은 권위주의를 대표하는 구지배적 질서의 표상이었다. 시민사회는 교회를 향하여 따가운 눈길을 던졌고, 매스미디어는 교회에 얽힌 추문들을 앞 다투어 들춰내고 있었다. ‘주의 종’들의 부패와 비리, ‘나쁜’ 종교적 행동들, 성적 추행 등이 연일 세간에 폭로되었다.

   많은 교회 대중은 ‘주의 종’들이 허술한 설교자들일 뿐 아니라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인들일 수 있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에 대한 교인들의 가장 소극적인 저항은 설교를 경청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교회 활동에 적극적인 교인들 몇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놀랐던 것은, 과거에는 메모하면서 설교를 경청했던 이들이 바로 며칠 전 목사의 설교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행동들도 많았다. 여러 교회의 설교들을 비교하면서 비평적 평가를 서로 나누는 이들도 많아졌다. 2천 년대 초 기독교 잡지 기획자 한종호와 신학자 정용섭이 합작하여 만든 ‘설교비평’ 프로젝트가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설교비평 붐을 일으킨 것은 이러한 현상의 직접적 여파였다. 

   이렇게 각기 설교비평가들이 된 이들이 더 나은 설교를 찾아 교회를 옮겨 다녔다. 지난 글에서 명명했던 ‘주권교인’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주권교인’들이 교회를 선택하는 첫 번째 기준은 설교였지만, 그것이 유일하거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이들 까다로운 교인들,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니면서 적극적 비평가가 된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교회들은, 설교의 내용과 설교자의 테크닉에만 의존하지 않고, 예배 형식, 예배음악, 예배당의 공간 배치, 음향・조명・시각효과 등을 캐릭터화하는 데 큰 힘을 기울였다. 나아가 교인 프로그램이나 교회건축물에서도 그 교회만의 개성을 추구했다. 바야흐로 이 시기에 성공한 교회가 되려면 자기만의 캐릭터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1990년대 이성적 기획과 감성적 기획의 시대에 성공한 교회들


    1990년대 중반, 교세가 정체 혹은 감소하고 있던 시절, 하여 개신교 교계에서 위기론이 솔솔 번져나가던 시절, 교인들 사이에서 두 교회에 관한 입소문이 널리 퍼져가고 있었다. 이사를 하든, 귀국을 하든, 진학을 하든, 기독교인이 서울로 오게 되면 어느 교회를 방문할까? 이때 추천 1순위의 교회가 바로 사랑의교회와 온누리교회다.

   1940~50년대 한국개신교를 대표하는 교회라면 영락교회였고, 1970~1980년대를 상징하는 교회가 (여의도)순복음교회(1958년 대조동 산동네에서 시작해서, 1961년 서대문로터리로, 그리고 1971년에 여의도로 교회당을 옮겼다)라면, 이 두 교회는 1990년대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락교회는 월남이주자들에서 시작해서, 군선교와 도시 중상위층 선교의 성과로 이룩된 교회였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농이주자들의 신자화에서 시작해서 도시 중상위층의 신자화로 이어지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교회다. 특히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신자 규모를 가진 교회다. 하지만 내부 갈등과 사회적 지탄이 겹치면서 이 슈퍼울트라급 초대형교회의 성장세도 꺾이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 빠르게 성장세를 탔을 뿐 아니라, 무수히 많은 교회들에 영향을 미친 새로운 주역이 등장한 것이다. 우선 이 두 교회의 성장은 새신자의 유입보다는 여러 교회들을 순방하던 ‘주권교인’들을 정착시킴으로써 이룩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도대체 무엇이 까다로운 ‘주권교인’들의 마음에 든 것일까? 나는 앞에서 이 시대 성공한 교회들은 캐릭터화의 성공과 맞물린다고 보았는데, 바로 이러한 성공을 대표하는 교회가 이 두 교회였다. 단순화하여 말하면 사랑의교회는 ‘제자훈련’이라는 캐릭터로서, 그리고 온누리교회는 ‘귀족영성’이라는 캐릭터로서 ‘주권교인’을 사로잡았다. 전자는 이성의 기획으로, 후자는 감성의 기획으로 1990년대 교회 대중으로부터 열광을 받았다.

   이 얘기를 하려면 1990년대 한국사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 시기에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식 인프라가 급성장했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민주주의가 사회적 제도화의 중심논리로 부상한 시기이기도 했다. 또한 국민의 시민적 주권의식이 급상승했다. 게다가 소비사회로의 급속한 이행기를 맞아 시민 각자의 취향에 대한 권리의식도 크게 신장했다. 이 시기에 사회에는 이성의 기획들이 난무했고, 이는 민주주의적 사회설계를 둘러싼 논쟁들이었다. 물론 1980년대에도 이러한 논쟁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논쟁은 진보적 사회운동의 공론장에 한정된 것이었다. 한데 1990년대 이후 이 논쟁은 범사회적인 공론의 장에서 진행되었다. 한편 이러한 정치적 사회설계를 둘러싼 공론장의 양성화는 논쟁 주체의 전문가화를 촉진했다. 동시에 많은 대중은 지적 관객이 되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전문가화’ 현상, 이것은 정치적 사회설계 논쟁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 전 부문에서 전문가화 현상이 빠르게 확산되었고, 그만큼 시민들은 각기 전문적 기능들을 보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제 학생들은 거리에서 시위자가 되기보다는 도서관으로 몰려들었고, 시민들의 재교육 붐이 활성화되었다. 부모들의 자녀들에 대한 사교육 열기도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전례 없이 전 사회적 기조로 치솟게 된 이성의 기획은 전문가로 살아남기 위한 전사회적 경쟁과 맞물리게 된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이성주의의 강화와 경쟁 시스템으로의 빠른 전환 속에서 사람들은 감성적인 위로를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되었다. 특히 사회적 낙오자만이 아니라 상승 가능성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라는 감성의 기획이 요청된 것이다. 이렇게 이 시기의 이성의 기획과 감성의 기획은 사회 엘리트층이라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신앙의 이성적 기획으로서의 '제자훈련'과 1990년대




    그런데 사랑의교회와 온누리교회는, 이 교회들의 각기 다른 캐릭터는 이 두 기획에서 굉장한 성과를 이룩하였다. 먼저 제자훈련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제자훈련’은 일종의 신앙에 대한 이성적 훈련 프로그램을 표상하는 용어다. 그 기원은 딕 요크(Dick York)라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독립선교사에게서 유래한다.

    그는 1960년 대구에서 선교학교를 열었는데, 거기서 10여명의 제자들을 훈육한 훈련 아이템은 성서 읽기와 전도로 요약된다. 성서 읽기 훈련이란 ‘묵독’하고 그 의미를 깊게 되새기는 신앙훈련이다. 그때까지 한국에선 음률에 따라 흥얼거리며 낭송하는, 일종의 전근대 구술사회 선비들의 책읽기 같은, 성서 읽기가 일반적이었는데, 딕 요크의 제자들은 근대적인 문자사회적 읽기 특징인 ‘묵독’의 훈련을 받은 것이다. 낭송이 발성되는 소리의 외면적 효과가 의미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독서법이라면, 묵독은 내면화를 통한 의미 형성이 강화되는 독서법이다. 4-4조니 7-5조니 하는 외면 사회의 관행적인 음률에 따라 낭송되는 글의 호흡과 리듬이 글의 느낌을 만들어내고 그 의미의 기조에 영향을 미친다면, 묵독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었던 개인적 기억들이 내면에서 글과 어우러지면서 의미를 만들어내게 하는 것이다. 이런 묵독의 훈련은 당시 지적인 성향의 청년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1980년대 대학가에서 널리 확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흥회식 감성 폭발을 강조하던 교회에선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낯선 신앙 양식으로 취급되었다.  

    한편 딕 요크의 전도 훈련은, 부흥회처럼 감성이 분출하는 이벤트 전도와는 달리, 구원의 교리로 설득하는 방식의 포교법을 수련하는 것이다. 이는 성서 묵독과 맞물린다. 즉 묵독하는 이는 내면의 상처와 사투를 벌이면서 그 상흔을 극복하게 했던 구원의 논리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 논리를 타인에게 전하는 것이 전도였다. 당연히 그이는 확신에 차서 매우 논리적 어법으로 타인을 설득하는 방식의 전도를 수행한다. 한데 당시 한국교회는 이런 낯선 전도 방식의 수행자들을 가리켜 구원파라고 비아냥댔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 중 몇이 스스로를 ‘구원파’라고 주체화하면서 신앙분파들을 만들었다. 지난 2014년 침몰한 세월호를 소유한 회사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커다란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유병언을 교주로 하는 기독교복음침례회도 이런 ‘구원파’의 일파였다.

    그리고 다른 일부는 선교전문의 신앙단체들을 만들었다. 이 선교전문 신앙단체들에서 딕 요크 방식의 성서 읽기와 전도 훈련을 ‘제자훈련’이라고 명명했다. 이러한 이성적인 지적 신앙양식은 1980년대까지는 아직 일부 소수의 지식층 사이에서만 활성화될 뿐이었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이 1990년대에 이성적 기획이 주도하는 시대와 맞물리면서 제자훈련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다.

    그것을 주도한 것이 바로 사랑의교회였다. ‘구원파’로 낙인찍힌 이단화된 집단들과 선교전문 신앙단체들의 훈련 프로그램으로 일부 지식인 신앙대중에 국한된 현상이었던 것이, 사랑의교회와 더불어 교회의 캐릭터로 부상했고, 보다 폭넓은 교회 대중, 특히 교회들을 떠돌던 주권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음 글에서는 ‘신앙의 감성적 기획으로서의 귀족영성과 1990년대’를 온누리교회 현상과 관련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첫번째 글로, [주간경향]에는 <대형교회는 강력한 웰빙 문화공간이다>(1183호. 2016. 07. 05)로 게재되었습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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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젠더다 1 : 연재를 시작하며



(평범한 워킹맘, 페미니스트, 간간이 글쟁이로 변신)


    “한국에는 세 가지 성이 있다. 남성, 여성, 아줌마.” 


   이건 아주 오래된 농담이지만 여전히 널리 사용된다. 지하철 빈 자리에 가방을 던져 뛰어가 앉거나, 마트 할인 매장에서 사람들을 제치고 물건을 집어 드는 중년 여성들을 우스갯 거리 삼을 때 주로 이런 말을 입에 올린다. 성적 매력이 없다는 의미로 ‘아줌마'를 남성/여성으로부터 분리하면서도 그들을 다시 제3의 성으로 호출해 내는 이 농담의 작동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그렇게 제 3의 성으로 분류된 ‘아줌마'의 섹슈얼리티는 아마도 (안하무인의) 생존력일 것이다.  


   <이 악질적인 농담에도 유효한 지점은 있다. 이 농담이 은연 중에 적시하고 있는 것처럼 아줌마는 남성이나 여성과는 다른 ‘성적 주체’이다. 이들의 섹슈얼리티는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을 다루는 방식과는 다르게 다루어진다. 말하자면 ‘아줌마'를 제 3의 성으로 일컫는 이 농담 속에서 ‘아줌마'를 하나의 젠더 문제라고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아줌마의 섹슈얼리티는 가부장적 가치관에 억압되거나 배제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공공화된 것이다. 그녀들의 성은 가족 구성원들에 의해 전유되고, 재구성된다. 이 과정에는 ‘육아'와 ‘엄마'라는 또 다른 단어들이 개재되어 있다. ‘엄마'라는 이름은 아줌마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그다지 다르지도 않다. 단지 ‘아줌마'로 향하는 과정적인 이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기를 임신했을 때, 우연히 길을 가다 한 모녀를 본 적이 있다. 3-4살 정도로 추정되는 딸아이는 레이스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머리까지 예쁘게 땋고서 유모차 안에 앉아 있었는데, 그 엄마는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짝이 맞지 않는 츄리닝을 입고 다크서클이 깊게 패여 흡사 환자 같은 얼굴로 유모차를 밀고 있었다. 아이에게 맞추느라 자신은 돌보지 못했을 그녀의 일상을 상상하면서, 어쩐지 앞으로의 내 삶이 두려워지기까지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해도 나는 그녀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속 나를 보살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육아의 과정을 겪어내며 이 생각은 송두리째 달라졌다. 그 전까지 내 질문이 ‘어떤 사람이 아줌마가 되는가.’였다면, 이제 내 물음은 ‘어떤 과정을 통해 아줌마라는 제 3의 성이 탄생하게 되는가.’이다. 


   개인적인 의지만으로는 ‘아줌마'로 가는 길에서 탈출할 수 없다. 운 좋게 성평등 관념이 투철한 남편을 만나 가부장제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병원 시스템이나 SNS, 육아 시장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적으로 요구되는 ‘아줌마'의 역할에서 빠져나오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사회의 부름에 따라 아기를 가진 그 순간부터(즉 ‘엄마’라는 역할을 부여받는 순간부터) 여자는 ‘아줌마’가 되어야 한다. 


   웹진 <제3시대>에서 소중한 지면을 허락해주신 덕택에, 이제부터 나는 ‘누가 아줌마를 요청하는가.’라는 주제를 탐구하려 한다. 글의 초반부에서는 임신-육아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내가 아줌마로 이행하게 된 과정’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그리고 중후반부에서는 다른 여성들의 엄마-되기를 인터뷰로 풀어내려 한다. 엄마가 된다는 과정 가운데 자아를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하고, 저항하며 때로는 타협하는 삶을 듣고, 그 가운데에서 어떤 때에 스스로를 아줌마로 느끼게 되는지, 사회가 요청하고 과거의 내가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아줌마’에 대해 관찰하려고 한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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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일그러진 인문학



심범섭



   최근에 우연한 계기로 대중 인문학 서적인 윤소정의 <인문학 습관>(다산호당, 2015)과 박웅현의 <다시, 책은 도끼다>(북하우스, 2016)를 읽게 되었다. 윤소정은 “나의 잠재력을 깨워 본인의 길을 만들어가는 교육”을 지향하는 교육기업 인큐의 대표이며, 박웅현은 광고인으로서 TBWA KOREA 크리에이티브의 대표이다. 윤소정은 책에서 고전을 읽는 인문학에서 벗어나 자신의 물음을 자신의 삶 속에서 주체적으로 답하면서 성장하는 “실용 인문학”을 하라고 권유한다 (p.51). 이 책은 이런 목적을 위해 어떤 구체적인 습관을 어떻게 형성해야할 지를 이야기하는데, 앞 표지에 씌여 있는 “나만의 업을 만들어가는 인문학 트레이닝북”이라는 표현이 이런 성격을 간명하게 전달한다. 박웅현의 책은 “박웅현 인문학 강독회”에서 그가 책읽기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글로 옮긴 것인데, 자신이 감명깊게 인문서적의 장점과 의미있게 다가왔던 이런저런 구절들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책의 주제는 책은 “풍요로운 삶”을 위해 읽는 것이고 “천천히” 읽어야한다로 요약된다고 말한다 (p.5).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많은 젊은이에게 인문학 멘토로 인식되고 있는 두 사람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답답함과 우려를 느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제시하는 인문학의 모습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해서였다. 이 글에서는 이 두 책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사회의 대중 인문학 담론을 좀더 비판적으로 살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비록 이 글이 오늘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중 인문교양서가 보이는 전체적인 경향을 다루지는 못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는 인문학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할 때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를 환기하는 기능은 할 수 있다고 본다.    

   먼저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는 ‘사람의 무늬를 배움’이요, 지식의 분야로는 ‘문학, 역사, 철학’ 세 분야라고도 하고, 여기에 ‘언어, 예술, 종교’를 덧붙여 여섯 분야라고도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 근본에서부터 이해하려는 공부’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열 여덟 살 때 형 미하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썼다는 다음 구절을 우리는 인문학 선언이라고 이름할 수도 있다.


인간은 불가사의이다. 만일 그대가 이 수수께끼를 풀면서 일생을 다 보내버렸다고 해도 시간을 낭비했다고는 말하지 말라. 이제 나는 이 불가사의에 나를 바치겠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윤소정은 그의 책에서 인문학을 여러 번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정의하는데 “인생에 대한 물음과 해답을 찾는 과정”이라는 표현이 그 모두를 포괄할 수 있다 (p.29). 박웅현은 그의 책에서 인문학을 명시적으로 정의하지는 않지만 책의 내용을 고려할 때 그가 생각하는 인문학이 위의 일반적 정의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두 저자가 인문학을 정의하는 방식에 이미 어떤 파격적이거나 문제되는 요소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윤소정과 박웅현의 책에 공통된 문제점으로는 적어도 두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인문학의 목표와 이상을 온전히 논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문학의 이상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해 자아실현과 세계개선이라고 생각한다. 곧 내 잠재력을 발휘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과 이 세상을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바꾸는 것이다. 세계를 개선한다는 것은 달리 말해 우리 후손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는 것을 뜻하고, 우리 시대에는 이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 자연환경과 인간 아닌 생명체에 대한 배려도 첨예하게 요구된다. 윤소정와 박웅현의 책은 세계개선의 이상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들의 인문학은 자아실현의 인문학에 머물고 만다.  

    세계개선이라는 거시적이고 범인류적인 지향이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김구 선생이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서 하신 말씀이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김용옥이 그의 책 <중용, 인간의 맛>에서 동양철학의 ‘우환’ 개념을 정의하는 대목이다. 대인이 우환하는 다섯 가지 중 마지막 두 가지가 세계개선에 관련된다고 본다.  


입에 풀칠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이쁜 새악씨 못 얻을까 걱정하고, 벼슬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가계에 명예로운 이름을 남기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 . . 이런 걱정은 “우환”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소인의 근심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환이란 무엇인가? 우환이란 반드시 대인의 우환이다! 대인의 우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성인이 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요, 배우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요, 덕을 닦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요, 천지가 바르게 자리잡지 못할 것을 우려하는 것이요, 만물이 잘 자라나지 못할 것을 우환하는 것이다. (p.124)  


    흥미로운 사실은 윤소정과 박웅현의 책에 이러한 인문학의 이상에 해당하는 내용이 한번씩, 그리고 두 경우 모두 교육과 관련하여 등장한다는 점이다. <인문학 습관>에서 윤소정은 자신이 운영하는 교육기업에서 일하는 교사들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큐는 ‘진짜 선생’이 되고 싶다며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는 이들이 모여서 만들어가고 있답니다. ‘교육만이 나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일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선생님들이시죠. (p.169)  


    박웅현도 자신의 교육관을 피력하면서 본질적으로 같은 생각을 말한다.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살 수 있고,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균형 잡힌 사람을 만드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p.199). 이 두 인용문에 나타난 교육 철학에는세계개선이라는 인문학의 한 이상과 본질적으로 같은 목표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윤소정과 박웅현의 책에서 한 고립된 언술로만 존재하지 책 전체의 큰 의미축에 포섭되지 못한다.  

    이때 이런 이의 제기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인문학의 이상에 세계개선이 포함되어야만 하는가? 이를 포함시키는 것은 당신의 주관적 견해가 아닌가? 이 중요한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인문학의 이상은 그 성격이 종교와 교육의 이상과 같다. 인문학은 인간과 세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종교와 같고, 가르치고 배우는 ‘학’이라는 점에서 (역시 종교 그리고) 교육과 연결된다. 그리고 종교와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인류 사회에서 이미 상당히 객관적인 대답이 확보되어 있다고 본다. 그것은 철학자 안병욱 선생이 종교의 목표를 규정하면서 쓴 표현을 빌리면 “자아완성과 인류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의 영성계발만을 강조하거나 나 한 사람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일부 기독교의 흐름을 비판한다. 그리고 위에서 인큐 교사들과 박웅현의 교육철학이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것도 우연이라기보다는 교육의 이상에 객관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책이 공유하는 또 다른 문제점은 인문학의 고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저자는 인문학을 함으로써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새로운 기쁨과 만족을 알게되는 것만 말하지 새로운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윤소정의 경우 새로운 습관을 통해 자신을 바꾸는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이야기하지만 이 고통은 내가 말하는 고통과는 그 종류가 다르다.) 두 책에서 인문학의 긍정적 효과는 일상, 곧 평범하고 익숙한 세계를 주체적으로 세밀하게 탐구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박웅현은 이런 과정에서 몰랐던 기쁨을 느끼리라고 말하고, 윤소정은 이런 실천이 새로운 평안과 활력을 가져오며 더불어 이 시대의 훌륭한 “인재”가 되는데 유효하다고 말한다 (p.10). 그러나 박웅현의 말대로 “늘 거기 있는 것을 주목해보”면 “또 하나 삶의 즐거움”만이 얻어지는 것일까? (p.48)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정말로 이 세상을 잘 들여다볼 때 우리는 몰랐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몰랐던 추함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쁨뿐만 아니라 새로운 슬픔과 분노와 억울함과 역겨움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폭력과 모순과 마비가 편만하기 때문이다. 

    당장 지금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늘상 쓰는 치약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 우리는 불편해지고 또 두려움을 느끼게 되지 않는가? 이보다 더 심각한 차원의 문제로서 미국의 윤리학자 제임스 레이철스(James Rachels)가 쓴 <도덕 철학의 요소(The Elements of Moral Philosophy)>(McGraw-Hill, 2003)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을 예로 들고자 한다. 지금 우리는 몇 백 년 전에 노예제도가 있었음에 대해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놀라와한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몇 백 년 후 후손들은 우리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그때에는 온 인류가 다 먹고 남을 만큼 식량이 있었는데 어떻게 다른 대륙에서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었단 말인가!’하고 놀라와할 지도 모른다. 레이철스의 이런 지적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슬프게 한다. 우리 현재를 성찰할 때 이런 괴로움도 같이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이 온전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박웅현의 책 제목에 나오는 ‘책은 도끼다’라는 표현은 카프카의 말 “책이라는 것은 내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만 한다”에서 유래한다. 윤소정도 그의 책에서 이 말을 언급하며 “이 문장이 너무나 좋은 나머지 늘 영어 문장까지 달달 외우고 다닌”다고 말한다 (p.23).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이 비유 자체의 논리 안에 ‘깨어지는 아픔’이 있음을 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할까? 독서 차원에서 이 깨어지는 아픔을 정확히 포착한 예를 우리는 이상민의 <나이 서른에 책 3,000권을 읽어봤더니>(대림북스, 2015)에서 만난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듯, 좋은 책은 큰 충격과 혼란을 준다. . . . 좋은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내가 모르고 있던, 잘못 알고 있던 것들이 바로 잡히기 때문에 당연히 명현 현상이 올 수 밖에 없다

. . . .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하고 괴롭지 않다면 어쩌면 제대로 된 독서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근본적으로 문제가 많은 세상과 그 속에 있는 수많은 모순과 부조리라는 진실과 맞닥뜨려 보면 생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9-30) 


    우리가 인문학을 제대로 실천한다면 책읽기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이상민이 말하는 명현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윤소정과 박웅현의 책이 인문학의 위로와 기쁨만을 말하고 아픔과 고통에는 침묵한다는 비판에 대해 이러한 변론도 가능할 것 같다. ‘이 두 저자도 이러한 부정적인 현상이 가능함을 알지만 고통이 결국에는 기쁨으로 귀결되거나 고통의 기저에 기쁨과 평안이 깔려있다고 생각해서 굳이 고통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누구든 기쁨과 고통 사이에 이렇게 어떤 연관을 설정하여 결국 중요한 것은 기쁨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고통 자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반드시 언급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고통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삶에서 실천하는 인문학의 고통이 특히 가치있게 되는 것은 그것이 세계개선의 노력을 낳을 때이다. 세상의 추하고 어두운 면을 발견하고 이에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은 이를 없애려는 결심과 실천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런 실천은 많은 경우 고독하고 위험한 가시밭길이다. 이렇게 인문학 하는 사람은 때로 따돌림 당하고 때로 박해 받고 때로는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예수가 그랬고 디트리히 본회퍼가 그랬고 마틴 루서 킹이 그랬다. 인문학을 제대로 하는 것은 때로 목숨을 거는 용기와 결단을 요구한다. 예수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진실을 말한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마태복음 10:34-39) 


    윤소정과 박웅현은 인문학의 고통을 이야기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이러한 위험 또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저자들이 인문학의 고통과 위험을 외면하는 것은 그들이 애초부터 세계개선의 지향을 외면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윤소정과 박웅현의 책에서 이렇게 두 가지 공통점이 발견되지만 동시에 두 책은 인문학의 역할에 대한 관점에서 중요한 차이를 보인다. 윤소정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주창하는 실용 인문학을 습득하면 세속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유비로써 말하자면 윤소정은 이른 바 ‘번영 복음(prosperity gospel)’을 설파하는 기독교 목사와도 같다. 그의 책에서 윤소정은 유용한 습관을 제시할 때 거의 언제나 이 습관을 실천한 사람이 성공한 사례를 언급한다. 이 예로 등장하는 사람은 소박하게는 원하는 기업에 들어가 인정받는 청년이지만 많은 경우 한국적인 또는 세계적인 거물이다. 그리고 “배움의 주체가 비로소 내가 되었을 때, 우리는 모두 이 시대가 원하는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다고 (p.249) 믿는 사람으로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과 같은 문장을 쓰기도 한다. 


사실 잘된 사람들을 보면 출중한 능력이나 뛰어난 성적 때문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단련’되었기 때문에 성공을 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p.241) 

저의 또 다른 선생님은 노력하면 바로 성과가 나온다는 말은 뻥이라고 말씀하시며 ‘끓는점의 원리’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똑똑한 친구들이 성공을 못하는 이유, 바보 같은 친구들이 목표를 결국 이루는 이유 또한 이 원리 때문이랍니다. (p.332) 

앞서 말한 유석환 대표님은 어느 날 제 어깨를 두들기며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윤 대표, 힘들지? 그래도 그냥 무식하게 끝까지 해야 해. 끓는점에 도달할 때까지. 결국 성공은 똑똑한 놈들이 하는 게 아니라, 우리처럼 무식한 사람들이 하는 거라니까. 절대 포기하지 마.” (p.333) 


    이런 예들과는 달리 겉으로 금방 드러나지는 않으면서 윤소정의 성공주의 인문학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도 있다. 책의 3부 “인문학은 해석이다”의 7장 “나를 타인에게 각인시킨다”에서 저자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특정한 이미지로 계속 인식시키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달리 말해 그는 퍼스널 브랜딩이라고 하는 분야에서 쓰는, 개인 마케팅의 한 기법에 불과한 것을 인문학 습관으로 제시한다 (pp.220-32). 이 둘이 다름은 호박과 오이가 다름과 마찬가지인데 윤소정은 이 차이를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인문학 습관이란 사회에서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아 성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박웅현은 이러한 성공주의에서 자유롭다. 그가 독서로써 지향하는 “풍요로운 삶”은 삶과 인간과 세계를 더 이해하면서 더 위로와 기쁨과 감사함을 느끼는 삶이다. 아래 인용문이 그의 이러한 철학을 대변한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 . . 가족이나 친구처럼 생각해보면 내 삶의 전부인 사람들, 아침밥, 새소리, 햇살, 늘 거기 있지만 즐거움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들, 그런 것들이 즐거움의 대상이 되면 행복하겠구나. (49) 

별 볼 일 없는 풍경, 그것을 주목하는 힘. 그게 삶의 지혜이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이자 . . . (54) 

현재를 돌아보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고,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보내려는 태도가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하는 삶의 자세라는 말입니다. (88) 


    종교적 인물로 유비하자면 박웅현은 느긋한 마음으로 모든 순간의 충일함을 깨달으라고 권하는 뉴에이지 신비주의 구루 같다고 할까? 박웅현 인문학의 이런 특성을 인상적으로 알려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수 년 전 박웅현이 어떤 라디오 방송에서 인문학의 필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서 청취자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한 사람이 좀 삐딱하게 이렇게 물었다. “인문학을 하면 밥이 나옵니까?” 박웅현은 이렇게 대답했다. “밥이 나오지는 않지만 밥맛이 좋아집니다.” 인문학이 밥맛을 더 좋게 한다는 말을 그는 2011년에 출간된 베스트셀러 <책은 도끼다>에서도 언급했고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도 다음과 같이 인유한다. 


오늘 소개해드린 두 권의 책 어떠셨는지요? 다시 한 번 제대로 읽어보시고 그 안에서 새로운 시선을 만나고, 지혜를 얻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시면 다른 건 몰라도 밥이 정말 맛있어질 겁니다. (p.43) 


    우리가 이 밥 비유의 의미 구조 안에 들어가 말한다면 윤소정은 “인문학을 하면 밥이 나온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윤소정과 박웅현 두 사람을 놓고 비교하자면 박웅현 인문학이 한 차원 더 높다고 하겠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 틀렸다. 인문학을 하면 때로는 밥맛이 좋아지지만 때로는 밥맛이 떨어지고 때로는 아예 밥숟갈을 놓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사실 이 두 저자가 인문학을 표방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들의 책에 불만이 없었을 것이다. 윤소정이 자기 책을 성공학 습관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고 박웅현이 자기 책을 독서법 강독이라고 했더라면 내가 이렇게 따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책을 인문학 책으로 규정하므로 나는 인문학의 좋은 이름을 지키고 싶어 이렇게 수다스러워졌다. 

    사실 이 두 사람의 책 <인문학 습관>과 <다시, 책은 도끼다>에는 삶에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가르침이 많이 있다. 나 자신 이 두 책을 읽으면서 새롭고 소중한 통찰을 많이 배웠다. 그러나 근본 인식의 틀을 볼 때 이 책들에는 인문학 하는 삶의 고통과 위험, 그리고 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세계개선의 이상에 대한 고찰이 결여되어 있다. 그런데도 왜 이 책들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서 그렇게 높은 인기를 누릴까?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 필자소개  

영어강사. Rice Univ 언어학 박사(Ph.D) 후에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과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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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음'과 '불편함'에 대하여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아이를 대할 때 매번 웃는 낯으로 대할 수 없다. 천사표 엄마의 유통기한은 고작해야 2-3년, 아이는 날이 갈수록 부모의 뜻과 통제를 벗어난 행동들을 시전함으로써 부모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기 마련이다. 4세, 6세 형제를 키우는 요즘은 엄마도 희노애락을 가진 인간임을, 특히 격노할 수 있는 미약한 존재임을 아이에게 날마다 각인시키며 지낸다. 그 때마다 “정말 싫어! 하지마!”라고 감정을 쏟아놓곤 했는데, 매번 뒤끝이 남는 게 영 찝찝하고 ‘내가 정말 싫었을까? 그건 아닌데...’싶다.  

        지난 6개월 동안 아이를 함께 키우는 공동체 생활을 하며 익숙해진 표현을 소개할까한다. 이곳에서는 아이든 어른이든 ‘싫다’는 표현을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대신 ‘불편하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네다섯 살 아이들이 투닥거리며 “니가 공을 가져가니깐 불편하잖아!”라고 이야기하고, 울며 격분한 아이가 선생님 앞에서 “으앙~ ○○이가 자꾸 놀리니깐 불편했단 말이야!”라고 하소연한다. 어른이 아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하는 공간에서 큰소리로 떠드는 건 나도 불편하고 다른 친구들도 불편할거 같아”라고 아이를 타이른다. 아이와의 대화에서 ‘싫다’라는 말을 대신 할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 한 나로서는 ‘불편하다’라는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눈물콧물 범벅이 되도록 흥분한 아이가 뚜렷이 발음하는 ‘불편하다’라는 고급진 단어는 생경하기까지 했다.   

      유아기의 언어발달 과정에 대한 학술적 견해는 잘 모르겠으나, 두 아이를 키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두세 돌이 갓 지난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때 ‘불편하다’는 어휘를 쓴다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 이 시기의 아이는 보통 ‘싫다’는 표현으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물론 상황을 지켜보는 부모는 ‘싫다’고 외치는 아이의 말 외에도 몸짓이나 표정의 언어를 통해 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선을 읽겠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하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4세부터 7세까지 아이들이 함께 하는 이 공동체에서 누구나 ‘불편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목표가 뚜렷한 훈련인 듯하다.   

       ‘싫음’과 ‘불편함’에 대해 한동안 생각해봤다. ‘싫다’는 매우 단정적인 표현이다. 면전에 대고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일단 피하고 싶다. 선뜻 그 앞에 머물기가 민망해진다. 상대가 개입할 여지없이 관계를 단절해버리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가 담긴 말이다. 대신 ‘불편하다’는 말은 부연이 필요하다. 꾸역꾸역이라도 뒤에 이어갈 말을 찾아야한다. 상대가 “왜?”라고 받아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완곡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억울함, 짜증, 분노 등 참을 수 없이 앞서가는 감정을 추스르고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주겠다는 화자의 의지이며, 상대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유지하려는 배려와 정성이다. 

        아이들은 ‘불편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상대를 배려하며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고 세밀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훈련한다. 어른 역시 같은 방법으로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아이의 언어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법을 배운다. 물론 현실은 따박따박 말대답하는 아들 두 마리와 포효하는 한 마리 짐승으로 밖에 묘사할 수 없는 못난 어미가 싸우는 정글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솔직한 감정을 인간의 언어로 주고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이에게 규율이나 규칙으로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보다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 배려할 수 있는 언어를 훈련시키는 것이 동물의 세계보다 더 무섭고 끔찍한 혐오가 넘쳐나는 이 세상에 더욱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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