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의 근본원인은 아직도 얼굴을 감추고 있다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뉴스가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막장드라마와 리얼리즘의 간격이 일순간 무너진다. 한 두 번만 보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고, 또 마지막 결론까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고, 대개는 그 짐작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예측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다음 회를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 막장 드라마다. 뉴스를 보는 것인지 막장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인지, 이미 막장 드라마 같은 뉴스에 충분히 중독되어 버린듯하다.  


    그리고 깊은 의심이 생긴다. 막장드라마 같은 뉴스가 사실로 드러날 때 마다, 오히려 그렇게까지 된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막장드라마를 이해하는 상식이면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것인데, 우리는 왜 몰랐던 것인가? 왜 묻지도 의심하지도 않았을까? 막장드라마가 리얼리즘이 되는 이 상황이 못내 의심스럽다. 최대한 앵글을 좁혀 최순실이라는 막장드라마적으로 과장된 캐릭터에 초점을 맞춘다거나, 아니면 최태민을 연결고리로 해서 박근혜와 최순실이 맺고 있는 관계구도에 모든 원인이 있는 것처럼 만든다거나, 그와 같은 초점의 집중과 시계의 한정을 위해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이번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까마득히 몰랐던 것처럼 화들짝 놀란 표정과 목소리와 행동을 나타낼 수 있도록 상황을 구성하고 있는 그 모습이 정말 의심스럽다. 


    어쩌면 “집단 유체이탈 국가”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박근혜-최순실 커넥션이 국정농단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아니 그들의 국정 농단에 충분히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 당연히 있을 것인데, 아무도 말이 없다. 박근혜와 최순실을 비호하기 위해서 온몸을 던졌던 정치인들, 박근혜 개인에게 권위의 휘광을 둘러 보수와 애국민족정신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온 언론인들, 감시와 사정의 책임을 버리고 박근혜 권력과 재벌의 시녀가 되어 온 판.검사들, 자존심도 책임감도 없는 관료들, 이들 모두가 마치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다. 문제가 되었던 두 재단에 돈을 기부한 기업관계자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매우 억울하다는 듯이, 자신들은 어둔 밤 길가다가 강도를 당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복음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여기며 노골적으로 이념과 색깔 놀이의 적극적인 주체가 되어 온 기독교 교계가 이제 와서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가짜 목사라고 하면서 일종의 선 긋기를 하고, 자신의 흑역사를 감추는데 급급하고 있다. 사실은 이들,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관료, 종교인, 재벌들은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의 엄청난 혜택을 입은 자들이 아닌가? 아마도 최순실 자신보다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취한 개인이나 기업이나 집단도 분명히 있을 것인데, 전혀 몰랐다는 표정이다. 


    이 의심스러운 상황전개는 이미 예정된 어떤 결말을 향해서 작동중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사관이 원하는 완벽한 범죄 서사를 다 구성해 주고, 또 범인에 대한 분명한 논리적.서사적 근거를 다 제공해 주고, 유유히 경찰서를 빠져 나와 사라지는 진짜 범인. 대표적인 반전영화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1995년작 “유주얼 서스펙트”의 이야기다. 우리들에게 그럴듯한 원인과 결과의 서사를 제공하고, 그래서 처벌하거나 응징해야 할 범인을 정해 주고는, 진짜 원인은 슬그머니 얼굴을 감춰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아니 진짜 원인을 교묘히 가리는 정도가 아니라, 박근혜-최순실 커넥션을 가능하게 한 그 프레임 안으로 우리를 돌려 놓으려고 할 것이다. 만약 우리들의 분노가 아직도 박근혜-최순실의 관계구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향한 깊은 탐색이 진행되지 못하고, 문제를 벗어나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 매달린다면, 새로운 비젼 혹은 새로운 대안의 형성은 불가능하다. 결국 분노가 창조적 저항이 되지 못하고,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향한 희망을 만들지 못한다면 시민사회와 대중은 다시 현실과 타협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지금 여기서 현실이 되고 있고, 미래가 될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도 마찬가지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에 그 사태의 뿌리가 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우리가 청산하지 못하면 또 다시 미래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87년 이후 어느 정도 형식적 민주주의를 진전시켰다는 성취감을 얻었을지는 몰라도, 사람과 사회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비젼을 만들어 내는 일에서는 턱없이 부족했고, 오히려 기성의 보수적 가치와 타협하고 말았다. 그것이 결국 박정희 신화에 기초한 보수정권 재창출의 명분을 제공했고, 박근혜-최순실 커넥션은 그 박정희 신화 혹은 신드롬 안에서 풍부하게 양분을 섭취하며 자라난 괴물이다. 


    박정희 신드롬은 주린 배를 채워주었고 앞으로도 배불리 먹여줄 것이라는 신화다. 배불리 먹여주기 위해서 한 일이기에 유신체제도 정당했다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신화다. 말하자면 배를 채우고 채워주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신화다.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권력자에게 기본적인 인권마저도 포기하거나 양도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신화다. 하지만 예수는 정반대였다. 예수는 배불리 먹여주었다고 해서 자신을 왕으로 세우겠다는 무리를 냉정히 뿌리치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셨다. 가난하고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한 순간 특정한 사람들만 배불리 먹여주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어떻게 먹느냐에 딸린 문제, 곧 새로운 가치와 질서의 문제다. 예수는 먹여주는 것을 담보로 자신에게 권력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과는 다른 미래, 곧 먹고 사는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도록 요구하셨다. 


    아마도 눈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박정희 신드롬의 흉측한 속내는 박근혜 정권이 충분히 보여주었고 지금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과 함께 박정희 신드롬도 명운을 다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언제 또 어떤 옷을 입고 다시 등장할지 모를 일이다. 아니 지금도 겉옷만 바꾸고 다시 등장하기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이라면 박근혜 같이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박정희 신드롬을 지키기 위해서 박근혜를 버리는 수순에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같은 방어 프레임에 걸려 다시 청산하지 못한 과거를 만들지 않으려면, 박근혜-최순실 사태의 근본뿌리를 직시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자세와 지혜가 정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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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시국연석회의 시국선언문


오세요



너는 네 자식들을 몰렉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면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게 하는 일이다. 나는 주다. (레위기 18장 21절)



    1세기의 일이다.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서 루디아를 만나던 그때 귀신들려 영험한 능력으로 점을 치는 여종을 마주친 일이 있었다. 그녀는 바울의 일행을 따라오면서 큰 소리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인데,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 하고 외쳤다. 이 일이 며칠 내내 계속 이어지자 바울은 귀찮은 나머지 그 여자에게 붙어있던 귀신을 간단하게 쫓아내 버린다. 문제는 이다음부터 시작된다. 여자에게 붙어있던 귀신이 사라지자 돈벌이 수단이 사라져 화가 난 여종의 소유자들과 주민들이 바울과 실라를 매질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바울과 실라는 결국 정당하게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이 난다. 하지만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유독 겸손을 강조하는 데엔 이 일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귀신들린 여종을 통해 돈을 버는 사회를 바라보지 않고 그 귀신만 쫓아내면 된다는 오만했던 과거 말이다.


    2016년의 일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선출한 헌법기관의 결정이 사실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의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박근혜를 대의(代議) 권력으로 선출하였더니 최순실이라는 대의(襨毉) 권력이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정말 분노하는 사람을 찾기 힘든듯하다. 특검이니 탄핵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최순실이라는 귀신만 제거하면 박근혜라는 여종이 다시 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체제 자체에 귀신이 들려있다는 사실 말이다.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 씨는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의 출연을 받아 자신의 재단을 세웠다고 한다. 서민 대중에겐 천문학적으로만 보이는 이 금액은 대기업들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기도 응답이 빠른 헌금이었다. 대기업들은 헌금의 응답으로 세제 혜택, 규제 완화와 같은 축복을 받았다. 같은 시간 어떤 국민들은 물에 빠져 죽고, 어떤 국민은 물대포를 맞고 죽었다. 어느 한쪽이 헌금으로 인한 축복을 누리는 동안 어느 한쪽이 죽임을 당하는 체제를 우리는 인신공양의 사교라고 부른다. 


    공화국은 이미 끝났다. 이제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인신공양 사교의 무당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고 신전을 폐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하나님의 선교로의 참여이다. 따라서 우리 신학생들은 불의한 정권과 불의한 체제에 대하여 맞서고자 한다. 이것이 우리의 프락시스이다. 우리의 선언이 말뿐이 아닌 실천이 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자매, 형제들이여 용기를 내자.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겼다. 사랑하는 자매, 형제들이여, 공중권세 잡은 저들은 강해 보이고 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이 초라하다. 하지만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자.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우리의 주,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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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권력에 대해

: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를 생각하며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기독교 사회 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버 ( Reinhold Niebuhr)는 중앙으로 집중된 힘은 쉽게 타락하기 때문에, 반드시 정치 권력은 다양한 이익 집단들 사이에서 균등하게 분배되어야 하며, 사회는 윤리적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정치적 이익 집단들이 사용하는 힘을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니버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소련의 중앙통제식 공산주의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최소한 삼권분립의 시스템을 가지고 운영되며, 대통령이나 어느 이익집단이 정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없도록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덧붙여, 미국의 실용주의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고용주들과 임금 협상, 자신들의 권리 등을 논의할 수 있는 힘을 가능하게 하였다.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자본가들에게 힘이 집중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이다. 


    이에 반해, 니버에 의하면, 소련의 공산주의는, 정치와 경제 권력이 공산당에 집중되어 있고, 이 힘을 견제할 제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권력 남용이 쉽게 이루어진다. 중앙정부가 권력을 남용할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집단은 두말 할 것 없이 일반 민중들이다. 그러므로 니버가 주장하는 기독교 현실주의 (Christian Realism) 관점에서 보면, 인간 사회에서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익 집단 간의 힘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니버의 기독교 현실주의는, 강대국들 또는 거대 사회집단들 사이의 힘의 균형보다는 민중들이 힘을 되찾아 새로운 정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해방신학자들과 제3세계 중심으로 국제 정치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탈식민주의 신학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앙권력형 정치구조가 억압과 고통을 재생산하는 반민주적이란 니버의 주장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에 덧붙여, 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약자의 폭력은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니버의 주장은 어떻게 보면 현대 사회에서도 수용하기 힘든 급진적인 생각이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세계 곳곳의 정치적 사건들을 보면서, 20세기 중반의 기독교 윤리학자 니버를 떠올리게 되었다. 니버가 활동하던 1930~50년대는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와 많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세계 대공항과 두번의 세계 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의 죄성을 뼈져리게 느끼고, 노동 운동 등을 통해 새로운 미국을 건설하려고 노력한 당시의 노동자들과 일반 민중들의 힘은, 고도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21세기 노동자들와 민중의 힘보다 더 강하게 느껴진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날드 트럼프가 주장하는대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면, 자본가들과 정치 엘리트들에게 집중된 권력을 노동자들와 일반 시민들에게 분산시켜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가 생각하는 위대한 미국은 라인홀드 니버가 끔찍해한 자본가들을 위한 미국, 책임을 회피하는 미국 고립주의, 그리고 미국 패권주의다.

  
   트럼프가 구상하는 미국의 모습도 문제지만, 현재 한국에서 밝혀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는 니버의 입장에서 보면 최악이다. 니버는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이 정치 권력이 한 개인과 정당에 집중되는 것은 견제하고 두려워 하면서, ‘자본’은 정치권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점이 아이러니라고 보았다. 자본은 정치 권력을 쉽게 장악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권력형 비리는 자신들이 가진 정치 권력을 이용하여, 부를 축재하고, 그 부를 사용하여 다시 정치 권력을 장악하는 전형적인 부정부패의 모습을 띄고 있다. 한국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반 민중들의 시국 선언과 광화문 광장을 밝히는 시민들의 촛불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사유화한 권력이 실제로는 한국 민중들의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지금의 대중 시위는 니버가 이야기 한 힘의 균형이 아니라, 민중들이 원래 자신들의 것이였던 힘을 되찾아 와서, 새로운 정치 구조를 만들어 가려는 혁명의 몸짓이다.


    니버의 기독교 현실주의는 그가 생각한 인간의 죄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서구의 자유주의 전통에서, 니버는 인간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자기 이익 추구는 결코 윤리적 중립 상태로 존재할 수 가 없다. 이익 추구가 극대화 되면, 인간은 쉽게 이기적이 되며,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게 된다. 그러나 개인은 도덕적 양심이 있어서, 자비심, 동정심, 이해심 등의 감정을 통해,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공동선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때도 있다. 그러나 사회 집단이나 국가는 집단화된 개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이타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현실 가능한 방법은 힘의 균형을 통하여, 한 집단 또는 한 국가가 이익 추구를 위하여 다른 집단이나 다른 국가를 억압하거나 폭력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니버의 이러한 생각은 많은 여성 신학자들과 사회 운동가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우선 여성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 (특히 여성)은 자기 이익을 먼저 챙기는 이기적인 존재이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돌봄과 사랑을 실천하는 존재이다. 또한 이런 관계성을 통해서 삶의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인간이 이기적이며 권력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주장은 인간이란 존재 전체를 규정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한 집단 또는 국가가 그 집단과 국가 전체 구성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 국가의 이익이 국가 구성원들의 이익과 동일시 되는 것은 위험한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국가의 이익은 그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개인적 생각들—비록 그들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지도자들의 삶의 태도, 인간에 대한 이해, 끊임 없는 자기 반성, 윤리적 기준들이 절대적으로 간과될 수 없다. 어떻게 주가 조작과 유령회사를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이 이타심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비록 그 사람이 일요일 마다 교회 주차장에서 주차요원으로 봉사를 했다고 해도 말이다. 일생을 공주처럼 떠받들여 살면서, 남에게 섬김만을 받고 그 섬김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봉사와 희생정신을 찾고, 국가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소외된 사람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 성설이다. 아무리 국가 구조가 삼권 분립과 권력의 분산화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지도자들의 도덕성이 일반 국민들의 그것에 미치지 못 한다면, 미국이든 한국이든 현재의 대통령 중심제도는, 국가 구성원 전체의 이익이 아닌,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할 수 밖에 없다. 즉 국가나 특정 집단이 집단화된 개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공동선을 위해 집단 이익을 포기할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집단이나 국가의 지도자들이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타집단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전쟁을 일으키고, 권력을 사유화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니버는 종교가 정치를 해석하려고 할 때, 많은 경우에 있어서 정치적 혼란과 윤리적 혼란을 일으킨다고 했다. 정치적 사건을 “하느님의 뜻”으로 해석할 때, 미국이 세계 평화를 위해 하느님께 선택받았다는 미국 패권주의 신학이 등장하게 되고, 정치 권력과 결탁하여 약자를 억압하거나, 정치인들을 무지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종교가 정치 세력과 떨어져서, 비판적 관찰자의 입장을 갖는 것이 세상의 고통을 훨씬 더 덜어주는 길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종교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종교적 관점에서 자신의 입신양명을 설명하려는 지도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민중들은 올바른 정치 지도자들이 국가를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세계 민중들은 도덕적으로 흠없는 정치자들을 원하기 보다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보여줄 수 있는 지도자를 현실적으로 기대할 것이다.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는 것, 자신과 측근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권력을 쓰지 않는 것은 도덕성이라기 보다는, 인간에 대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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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 역사, 그리고 텍스트 II : 역사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1. 사실 및 진실 추구로서의 역사


     역사란 무엇인가? 대체로 사람들은 특정한 시기에 일어난 사실에 관한 기록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역사를 허구와는 다른 성격을 띠는 소위 진실에 관한 기록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역사란 종종 거짓내지는 환상으로 취급되고 있는 신화와 대척관계에 있는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에 관한 기록으로서의 역사라면 적어도 신화적 성격들은 서술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셈이다. 또한, 이러한 점에서 비록 역사에 관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플라톤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음미해 볼만하다.[각주:1] 


호메로스나 그 밖에 다른 시인들은 우리가 이 구절들과 그런 따위들을 지워 없애도 화를 내지 않도록 부탁할 것인데, 그것은 그런 구절들이 시답지가 않고, 또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들어주지 않는 데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시다울수록 자유로워야하고, 죽음보다는 노예됨을 더욱 두려워해야 하는 애들이나 어른들이, 그만큼 덜 들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일세. …… 그렇다면 우리는 또 그런 문제들에 속하는 두렵고 무서운 낱말은 모두 제거해야 하네. 즉 코키토스라든가, 스티크스라든가, 악귀라든가, 송장이라든가, 그리고 그밖에, 같은 나이의 누구든 듣는 사람을 소름끼치게 하는 그런 따위의 낱말 말이세. 


      결국, 플라톤은 “호메로스를 비롯해서 모든 작가들은 사람으로서의 덕성이라든가 또 그밖에 그들의 작품의 주제가 되는 것들의 허깨비를 모방하는 자들로서 참다운 것 그 자체에는 결코 접하지 않고 있다고 우린 주장하도록 할까?”[각주:2]라고 묻는다. 심지어, “이렇게 해서 이제 우리는 작가를 붙들고, 그를 화가와 동격자라고 규정짓는 것이 정당할 걸세. 왜냐하면 진리와 견주어 보아 하잘것없는 것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도 화가와 비슷하고, 또 영혼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 아니라 역시 하잘것없는 부분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는 화가와 비슷하기 때문일세. 그래서 한 나라가 잘 다스려져야 한다면, 결국 그 나라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정당할 걸세. 왜 그런고 하니, 그는 영혼의 이 하잘것없는 부분을 일깨워서 키우고 이것을 강하게 해서 이지적 부분을 파멸시키기 때문일세.”[각주:3]라고까지 말한다. 요약하면, 진실의 담론을 추구하는 일과 관련해 작가란 영혼을 파괴하는 모방자이기 때문에 플라톤에 따르면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하는 자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특별한 담론법으로서의 역사는 진실 추구의 측면에서 문학 장르와의 계속적인 단절을 통해, 그리고 더딘 출현을 통해 태어났다.”[각주:4]는 프랑수아 도스의 말을 참작하면, 플라톤의 이러한 지적들이 철학뿐만 아니라 역사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의 논의를 따르는 자에게 역사란 신화와 달리 사실과 관계해야하고 더 좋게는 영혼의 이지적인 부분을 증대시켜야 하는 과제를 맡은 하나의 진실에 관한 담론으로 등장한다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역사학의 아버지인 헤로도토스를 신화론자로 규정하면서, 투키디데스는 역사가라면 진실을 탐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플라톤과 유사하게, “여기 제시된 증거에 따라 내가 기술한 대로 과거사를 판단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분명한 주제가 무엇이든 찬양하려 드는 시인의 시구나, 사실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청중의 주목을 끄는데 관심이 많은 산문 작가의 기록에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다루는 주제는 증명의 영역 밖에 있으며, 세월이 흘러 대체로 사료로서의 신뢰성을 상실하여 신화의 영역에 속한다.”[각주:5]라고 말함으로써 그는 역사와 신화/문학 간의 분리를 시도한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가는 “진리를 규명하고자 노력하지 않고, 전해오는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받아들”[각주:6]이는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야 하는 것이다. 확실히 “눈에 보이는 증거, 혹은 가능한 한 완벽하고 주의 깊은 비평적 고증을 거친 후에야 정보들을” [각주:7]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역사를 묻는 일은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이데아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신화/문학과 같은 허탄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탐구를 통한 진실을 추적하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진실의 원천으로 보는 것, 즉 눈이 매우 중시되었다. 


      역사를 신화/문학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했던 이러한 경향은 1681년 장 마비용의『고문서학』이라는 저서와 함께 더욱 강화되었는데, 프랑수아 도스는 “마비용은 지식 학문들의 시리즈 속에 역사를 등록시키고, 기록보관학 총체의 접근 속에서 엄격한 유사성의 규칙들을 고려하여 역사장르가 도래한 문학과의 분리를 강조한다.”[각주:8]고 말한다. 그리고 “자체의 규칙·관례가 있는 방식을 갖추고, 확립과 재인의 특별한 양식들 가진 방법론을 갖추면서 실제로 전문화된”[각주:9] 19세기와 더불어 역사는 비로소 신화/"문학과의 근본적인 단절을 표명한다."[각주:10]고 지적했다. 여기서 좀 더 도스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1]


역사학 입문의 작가인 샤를 빅토르 랑글루아와 샤를 세이뇨보가 수사학과 가장, 혹은 학술적인 역사 이야기를 더럽히는 문학의 미세한 입자들이라고 부른 것을 훌륭한 역사가는 모두 거부한다. 기술방식은 교육적 가치를 지닌 거의 익명의 문체론을 위해 문학의 미학적인 흔적들을 지울 것을 절실히 요구한다. 


     따라서 “그 시대의 가치는 그 시대가 낳은 결과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 그 시대가 자체적으로 갖는 고유한 것 속에 있다.”[각주:12]고 말함으로써 랑케 역시 당연하다는 듯 “인식주체인 역사가는 자기 자신을 해소함으로써 사실이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각주:13]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 실제 일어난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며 그것의 가치는 시간의 흐름을 초월해서 불변적으로 존재한다.”[각주:14]고 믿었기에 사실에 입각한 역사의 재구성을 역사가의 최대의 과제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 본 역사에 대한 이런 시도들에 대해 니체라면 아마도 조롱을 퍼부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이런 시도들은 기껏해야 생기 없는 죽은 문자를 대하는 일과 같은 그런 일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을 기준으로 복음서를 연구하고 마침내 신화적 이야기로 간주했던 슈트라우스에 대한 그의 통렬한 비판은 이에 대한 적절한 예일 것이다. 길지만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5]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근대적 이념에 맞는 성서를 위해 칸트의 이성비판으로부터 무엇을 획득할 수 있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는 어디서나 극히 조야한 사실주의의 마음에 들게만 말하고 있다는 것,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이야말로 이 새 복음서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이며, 여하튼 이 복음서는 끊임없는 역사연구 및 자연연구의 노고의 성과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이며 또 그럼으로써 철학적 요소를 부인한다. 그는 관념론의 기본적인 이율배반에 관하여, 또 일체의 학문 및 이성의 극도로 상대적인 의미에 관하여 아무것도 예감하지 못한다.…… 개념은 인간을 결코 윤리적으로 더욱 선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 도덕을 설명하기는 쉽지만 도덕의 기초를 다지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 슈트라우스는 이런 것조차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시대 특유의 학문에 종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으로써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설령 문화를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최선의 능력과 가장 성실한 의지가 도처에 현존한다고 가정할지라도 그러한 방법으로 학문에 종사함으로써 문화에 대하여 도대체 무엇이 나올 것인가 하는 물음을 거의 한 사람도 제출하는 자가 없는 것이다. ……그는 근대의 세계고찰이 근거를 두고 있는 증명을 진술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증명을 학문에서 인용함으로써 여기서도 또 신앙인으로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지식인으로서 행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새 종교는 새 신앙이 아니라 근대적 학문과 일치하며 그에 따라서 그런 것으로서는 전혀 종교가 아니다. 


2. 지배 및 배제로서의 역사


     니체의 이 같은 비판을 염두에 둔다면, 역사를 신화/문학과 달리 사실탐구를 통한 진실을 추적하는 작업으로 정의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신화/문학과 완전히 분리된 순수 사실만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일은 자주 주장되어왔던 것처럼 가능한 일인가? 더구나 니체의 말대로 과연 의미가 있기나 한 일일까? 나아가 19세기와 더불어 역사연구에서 하나의 강박관념처럼 따라다녔던 문제, 즉 과학적 탐구처럼 어디에서나 무시간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를 역사는 산출해 낼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랑케는 이와 관련해 주목해 볼만한 인물들 중 한 사람에 속한다. 왜냐하면 그는 독일 역사주의의 창시자이고 “발견을 왜곡하는 상상적 영감을 배제한 채 정밀한 조사와 입증 같은 과학적 개념을 고수하며 문헌을 신중하게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지만 말할 수 있기를”[각주:16] 바랬던 그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E·H 카 역시 이를 확인해주듯 “1830년대에 랑케가 역사의 도덕화에 대해 정당한 항의를 제기하면서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이 진정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을 뿐이다 라고 말했을 때 별로 심오하다 할 것 없는 이 경구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3세대 동안 독일과 영국의 역사가들, 심지어 프랑스의 역사가들까지 Wie es eigentlich gewesen이라는 마술적인 문구를 주문처럼 외우면서 다녔다”[각주:17]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역사란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을 뿐이라던 랑케의 태도에 대해 카라면 “역사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코 순수한 것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 역사의 사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해 항상 굴절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역사책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책에 실린 사실들보다 그 책을 쓴 역사가에 대해 일차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각주:18]고 답할 것이다. 또한, 과학적 개념을 고수하고자 했던 랑케의 태도에 대해서도 “19세기의 과학자 및 액턴과 같은 역사가들은 잘 검증된 사실들의 수집을 통해 모든 논쟁점을 한꺼번에 해결하게 될 포괄적인 지식체계가 수립될 수 있을 날이 오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오늘날 과학자들과 역사가들이 품고 있는 희망은 보다 겸손한 것이다.”[각주:19]라고 지적할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지난번 강연에서 말한 바 있는 여러 이유 때문에 역사의 법칙을 말하지 않는다. 원인이라는 말조차도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 되고 말았다.”[각주:20]고 응수할 것이다. 


      그렇다면, 신화/문학과 완전히 분리된 순수 사실만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그에 따라 진실을 추구하는 작업으로서 역사를 정의하는 일은 사실상 회의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하지 않을까? 귀스도르프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말을 들려준다.[각주:21]


역사가의 역사 자체도 온갖 전설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역사가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엄격하고 고결한 스파르타의 신화나, 그 굳건함이라 용기가 현실 속에서 별다른 토대를 지니지 못한 이상을 모방하려는 학생 세대나 성인 세대를 빚어낸 공화정 시대의 로마신화만큼 보편적으로 존중받는 신화들을 경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더 일반적으로 말해, 프랑스 혁명 당시의 루이 14세나 제 3공화국을 다루던 직업역사가는 가치판단을 내리려는 어떠한 의도나 전설적인 전제로부터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역사가 자신에게 영양을 공급해주고 있는 전설들을 축소하려 한다면 자기가 가장 좋은 색깔이나 가장 확실한 의미를 상실해버리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역사인식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를 철학과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비판을 가한다. “신화를 관조적인 사고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 플라톤에서 플로티노스에 이르기까지, 데카르트에서 스피노자, 말브랑슈 또는 라이프니츠에 이르기까지 이성에 따른 황홀감에는 신화적 요소가 배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 아니다. 합리적인 관념들이나 요소들은 신화적인 참여가 배제될 수 없는 사고 역동성의 위탁물과 잔고로 나타난다.”[각주:22] 때문에, 앞서 보았듯이 신화와 같은 허탄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는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설파한 플라톤의 주장은 그 자신이 배척하고자 했던 신화만큼이나 설득력이 없는 그런 것이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바로 그렇기에 니체 역시 우리보다 앞서 “근대인은 단지 그 저명한 역사에 관한 객관성 때문에 스스로 강하다고, 즉 공정하다고 부를 권리, 더구나 다른 시대의 인간보다도 고도로 공정하다고 부를 수 있는 권리를 과연 가지고 있는가 라고 하는, 물론 고통스러운 물음을 수반하고 있다. 어쩌면 객관성은 근대인의 덕에 관한 편견으로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라고 물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그는 이렇게 처방을 내렸다.[각주:23] 플라톤이라면 놀랄법하지만 귀스도르프라면 흔쾌히 동의할만한 그런 말로 말이다. 


자 놀라지 말라. 그것은 독약인 것이다. 역사적인 것에 대한 해독제의 이름은 비역사적인 것과 초역사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 이름과 더불어 우리의 고찰의 발단과 그 평안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비역사적인 것이란 말로써 가리키는 것은 망각할 수 있고, 자기를 제한된 시계 속에다 가두어 놓는 기술과 힘이며, 내가 초역사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성으로부터 눈을 돌려 현존재에다 영원하고 불변의 의미를 지닌 성격을 부여하는 것, 즉 예술과 종교 쪽으로 향하도록 하는 힘들이다. 


     계몽적 사유를 신화적 사유와 대비하면서 “사유를 수학적 장치로 환원하는 것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한 승인”[각주:24]이라고 한 아도르노의 지적 또한 니체의 이러한 주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실 그대로의 세계를 탐구하고 이를 통해 진실을 찾고자 했던 역사적 이성은 “사실성만이 정의로 인정되며 인식은 사실성의 단순한 반복으로 제한되고 사유는 단순한 동어반복”[각주:25]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인 사건을 구해내려는, 역사적인 사건에 그 자체로서, 그 자체를 위하여 의미를 부여하려는 온갖 노력이 경주되었다.”[각주:26]는 엘리아데의 지적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역사는 그에게 해방이 아니라 공포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이라는 사실로써, 달리 말하면 그런 식으로 일어났다는 사실로써 역사적 사건을 정당화하는 것은 그 역사적 사건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기 어려울 것이다.”[각주:27] 그렇기에 역사가 아니라 이제는 신화가 선생으로 나서서 가르치려 든다.[각주:28]


호머의 서사시는 이미 올바른 이론을 포함하고 있다. 문화적인 재화는 명령받는 노동에 정확히 대응되는 상관물이다, 양자는 모두 자연에 대한 사회의 지배라는 빠져나갈 수 없는 강압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배 위에서 사이렌과 대면하면서 행해진 조치들은 계몽의 변증법에 대한 함축성 있는 알레고리다. 지배라는 척도가 대표성을 지니고, 제반 업무 관계 속에서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 자가 가장 힘이 센 자이듯이 대표성은 진보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퇴보에 있어서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역사 역시 마찬가지로 해방이 아니라 지배였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플라톤 이래로 자신과 반대되는 신화/문학을 철저히 배제한, 바로 그렇기에 반쪽자리 사유양식의 지배로 점철되어온 시간들이었다고 말이다. 때문에 역사란 분류하고, 정돈하고, 분배함으로써 지배를 실천하고자 했던 일종의 담론적 욕구였다고 해도 별 탈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푸코도 “어떤 사회에서든 담론이 생산을 통제하고, 선별하고, 조직화하고, 나아가 재분배하는 일련의 과정들-그의 힘들과 위험들을 추방하고, 그의 우연한 사건을 지배하고, 그의 무거운, 위험한 물질성을 피해가는 역할을 하는 과정들-이 존재한다. 유럽과 같은 사회에서, 우리는 배제의 과정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지 않던가. “하나의 진술이 만들어지고 분배되고 통용되고 작용하도록 만드는 질서화된 절차의 체계”[각주:29]로서의 진실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는 일어났던 사실을 근거로 해서 인간과 그의 삶에 대한 탐구를 하기 때문에 과학이고, 영화는 사실에 근거할 필요 없는 꾸민 이야기이기 때문에 기껏해야 예술에 불과하다고 서로의 영역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것은 너무나 안이한 타협이다.”[각주:30]는 김기봉의 지적은 꽤 타당해 보인다. 고로, 이제 역사는 자신이 그토록 멀리하고자 했던 타자인 신화/문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푸코는 이에 대한 훌륭한 예다. 이영남의 말을 들어보자.[각주:31]  


푸코는 역사의 문학성이라는 문제의식도 껴안았다. 역사를 문학에서 분리해 과학에 편입시킨 랑케도 투키디데스처럼 문학적 우아함을 겸비하여 과거를 진실하게 재구성하는 역사를 서술하려고 했다. 푸코가 문학을 했다는 것은 그가 문학적 표현을 즐겨 썼다거나 문학 평론에 밝았다는 점 때문이 아니다. 형용 모순이기는 하지만 푸코는 형이상학적 실증주의 또는 실증적 형이상학을 추구했기 때문에 문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문학박사답게 전문적이고 실증적이면서도 상상력과 가치판단을 배제하지 않고 여러 담론을 포괄하면서도 아름다운 필치로 수놓은 문학을 했다.  


     이로써 사실보다는 이야기로서의 역사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 웹진 <제3시대>


  1. 플라톤, 『국가』, 조우현 옮김, 올재, 2012, p.115 [본문으로]
  2. 플라톤, 같은 책, p.460 [본문으로]
  3. 플라톤, 같은 책, p.469 [본문으로]
  4. 프랑수아 도스, 『역사-성찰된 시간』, 김미겸 옮김, 동문선, 2001, p.11 [본문으로]
  5.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천병희 옮김, 숲, 2011, p.44 [본문으로]
  6. 투퀴디데스, 같은 책, p.44 [본문으로]
  7. 프랑수아 도스, 앞의 책, p.15 [본문으로]
  8.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0 [본문으로]
  9.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0 [본문으로]
  10.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0 [본문으로]
  11.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1 [본문으로]
  12. 김기봉,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푸른역사, 2000, p.99 [본문으로]
  13. 김기봉, 같은 책, p.98 [본문으로]
  14. 김기봉, 같은 책, p.99 [본문으로]
  15. 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임수길 옮김, 청하, 1999, pp.59~77 [본문으로]
  16. 존 H. 아널드, 『역사』, 이재만 옮김, 교유서가, 2015, p.91 [본문으로]
  17.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 곽복희 옮김, 청년사, 1993, p.19 [본문으로]
  18. E·H 카, 같은 책, p.37 [본문으로]
  19. E·H 카, 앞의 책, p.96 [본문으로]
  20. E·H 카, 같은 책, p.135 [본문으로]
  21. 조르주 귀스도르프, 『신화와 형이상학』, 김점석 옮김, 문학동네, 2003, pp.330~331 [본문으로]
  22. 조르주 귀스도르프, 같은 책, p.321 [본문으로]
  23. 프리드리히 니체, 앞의 책, p.185 [본문으로]
  24.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김유동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1, p.57 [본문으로]
  25.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앞의 책, p.57 [본문으로]
  26. 미르치아 엘리아데, 『영원회귀의 신화』, 심재중 옮김, 이학사, 2003, p.149 [본문으로]
  27. 미르치아 엘리아데, 같은 책, p.152 [본문으로]
  28.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같은 책, p.68 [본문으로]
  29. 콜린 고든, 『권력과 자식-미셸푸코와의 대담』, 홍성민 옮김, 나남출판, 1991, p.167 [본문으로]
  30. 김기봉, 앞의 책, p.277 [본문으로]
  31. 이영남,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푸른역사, 2007, p.24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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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여섯 번째[각주:1]


교회건축과 대형교회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1990년대’라는 시대성, 그 반영으로서의 교회의 캐릭터화


    앞의 글들에서 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개신교 교세의 정체 상황에서 성장을 거듭하여 대형교회의 대열에 진입한 교회들 중 사랑의교회와 온누리교회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였다. 그것은 이 교회들의 빠른 성장이 ‘1990년대’라는 변화된 시대성을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것을 ‘이성의 기획으로서의 제자훈련’과 ‘감성의 기획으로서의 귀족영성’이라고 요약하였다. 

    그 변화된 시대성에 대해 좀더 살펴보자. 권위주의 시대는 절대권력의 영웅주의적 통치자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오직 충성이라는 덕목으로 무장한 수동적 국민이어야 했다. 이 시대에 사회와 함께 동반성장을 이룩한 교회들도 카리스마적 지도자라는 절대일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결속된 종교집단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정치에서 영웅주의는 퇴출되었고 ‘주권적 존재’로서의 시민이 민주주의를 위한 주역으로 부상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변화의 직접적 계기는 대통령 직선제의 도입이었다. 이제 정치인은 주권적 시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세력을 캐릭터화해야 했다. 여전히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을 장악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주권적 시민의 선택을 받기 위한 노력이 절대 필요한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국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같은 캐치프레이즈(catch phrase)들은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시민에게 어필하기 위해 새 정부를 캐릭터화 하려 했던 대표적 흔적들이다. 

    한데 이러한 캐릭터 정부의 출현에서 중요한 전제조건은 주권적 시민의 대두에 있다. 이때는 국민의 생활수준이 한결 높아졌고 고학력층도 비약적으로 늘어난 시기다. 그 무렵 사회에는 민주국가를 설계하기 위한 무수한 강좌와 공부모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수많은 저작들이 출간되었다. 인문・사회 비평적 계간잡지의 전성시대이기도 했고, 무수한 논쟁이 벌어지던 때이기도 했다. 전례 없는 광범위한 지적 탐구 붐이 일어난 것이다. 주권적 시민의 대두는 대안적 사회 설계를 위한 이와 같은 활발한 이성적 탐구의 과정에서 나타났다. 

   한편 이 시대는 민주주의의 시대인 동시에 자본주의의 시대이기도 했다. 독재권력의 손아귀에서, 국민만이 아니라, 기업도 벗어난 것이다. 아니 실은 기업들은 거의 방임에 가까울 만큼 무분별한 자율공간으로 풀려났다. 고삐 풀린 기업들은 어떠한 공공적 책임의식도 없이 게걸스런 욕구를 무한히 발산하는 시장을 만들어 시민을 유혹했고, 시민은 그곳에서 탐욕의 노예가 되어 자본주의적 경쟁의 시스템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런데 한번 들어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그 무한경쟁의 질서 속에서 사람들은 몸과 정신이 병들어 갔다. 그 시스템에서 경쟁력을 지닌 이들도 예외 없다. 하여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도 그 체제가 일으키는 질병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은 온갖 치료(therapy)와 치유(healing) 프로그램의 열광적 소비자가 되었다. 이때 치료가 이성의 프로그램이라면 치유는 감성 프로그램의 성격이 강하다. 특히 종교적 치유는 감성의 기획으로서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을 다룬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개신교 일각에서 각각 이성과 감성 부문의 종교적 상품으로 캐릭터화된 신앙 프로그램들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주권교인들은 그것을 열렬히 소비하였다. 이 두 교회의 빠른 성장은 바로 이렇게 1990년대라는 시대성을 반영한 결과였다.  


1980년대, 교회건축과 대형교회의 탄생


   시간을 조금 앞으로 돌려보자. 캐릭터화된 대형교회가 탄생하게 되는 1990년대, 교회의 위기가 엄습해오던 그 시기와는 달리, 한국교회가 승승장구하던 1980년대에 그 교회들은 이미 대형교회로 급성장하고 있었다. 즉 그 시대는 캐릭터화된 교회들이 대형교회로서 탄생하던 때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대형교회의 탄생이 특정 지역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강남, 강동, 분당이 그곳이다. 왜 이곳인가?

    이향순과 이광순의 공동연구인 〈도시 구조의 변동과 대형교회의 성장〉(《선교와 신학》 10집. 2002.12)은 이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이 지역들에서 대형교회가 집중된 것은, 근대도시로 서울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국가 정책의 효과로 발생하게 된 도시구조 변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강북의 사대문 인근과 영등포 지역에 한정된 근대도시 서울의 첫 번째 발전 단계는 과잉도시화(over-urbanization)다. ‘과잉도시화’란 도시의 수용능력을 크게 초과하는 인구 밀집 현상을 뜻한다. 이에 정부는 인구 분산을 위해 도시를 확장하는 정책을 취하는데 이것이 두 번째 발전 단계다. 이때 영동(영등포 동쪽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인데, 오늘의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지역 일대를 가리킨다.) 지구가 개발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그 옆의 강동지역까지 확장된다.(이때 강서, 강북 지역도 대대적인 개발이 이루어지지만 강남과 가까운 강동지역이 과잉발전 하였다.) 또 인근 지역에 신도시들을 개발하여 서울의 부속도시화하는 일련의 단계를 통해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 서울이 완성된다. 여기서도 강남과 인접한 분당이 다른 신도시들보다 월등히 발전한다. 이 두 번째 단계는 1970년대부터 시작되지만, 1980년대에 와서 본격화되고 1990년대에 절정에 이른다. 

'영동' 신시가지 조감도 (1971)


    그런데 강남 개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정부는 안정계층을 이 지역으로 유치하는 조치들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인다. 특히 이곳에 현대화된 아파트 대단지가 조성됨으로써 자산능력이 있는 젊은층이 대대적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지역에 대한 다양한 특혜조치가 마련된다. 여기에 토건세력들이 이러한 정책기조에 기생하여 활개 치면서 지대가 다른 지역들보다 놀라울 정도로 크게 상승한다. 즉 이곳으로 이주한 젊은 중산층 이주민들은 지대 상승으로 인해 보다 안정된 중상위계층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강남과 그 주변의 지역들에서 대형교회로의 성장이 집중되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그것은 무엇보다도 대단지 아파트로 인구집중이 빠르게 일어난 덕이다. 강남의 인구 증가는 1970년대 빠르게 증가하다 1980년경부터 급가속화되기 시작해서 1990년경 절정에 달하고, 이후 거의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즉 강남으로의 인구 유입의 급격히 일어난 시기는 1980년대이고, 바로 이때에 인구가 많이 유입된 지역들에서 대형교회들이 탄생했다. 그것은 1980년대는 인구 유입 현상과 대형교회 현상이 서로 정비례 관계였음을 뜻한다.  

    담임목사들이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교인들의 총화를 이룩했고 그것을 성장에 집중 투여함으로써 대형교회로의 성장이 이룩되었다는 공식은 이때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다만 이 시기의 특이점은 그 리더십이 ‘교회 건축’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교인들을 총동원하여 대규모 교회 건축에 성공하였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교회의 비약적 성장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강남, 강동, 분당이라는 지역의 특성과 교회의 독점적 리더십이 결합된 결과 대규모의 교회 건축이 실현되었다는 얘기다.  

    대규모의 교회 건축은 막대한 비용을 조달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때 수완 있는 목사들은 교인들을 설득하여 발 빠르게 개발 초기에 큰 땅을 비교적 저렴하게 매입하거나 대단지 아파트의 종교부지 입주권을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 이것은 비용 절감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교회당 건축은 일반 건조물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게 상례다. 하여 교인 규모에 비해 월등히 큰 교회당 건축을 시도하는 것은 무모한 계획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교인들을 설득하는 것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특별한 능력에 속한다.  


광림교회 담임목사인 김선도는 신동아 그룹의 회장으로부터 3억 원을 빌렸고 교인들로부터 2억 원을 기부받아 1976년부터 강남구 서초동에 대규모의 교회당 건축을 시작하여 1978년 완공한다.


    물론 그것은 교인들이 그럴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강남, 강동, 분당이 서울과 인근 신도시의 다른 곳들과 명확히 대비되는 점은 대규모의 중상위계층이 유입되어 들어오고 지대의 급격한 상승으로 그들의 자산이 빠르게 증가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들은 지대로 인한 초과이윤의 상당부분을 건축헌금으로 교회에 기부했다. 그 결과 대규모의 교회당이 건축되었고, 많은 이들이 이 교회들로 몰려들어왔다. 

    오늘날 강남 못지않은 중상위계층의 밀집지역이고 지대가 급격히 상승한 곳인 목동과 과천의 경우에는 대형교회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이 지역의 중상위계층의 규모가 강남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그 인근지역은 여전히 중하위계층이 많고 지대상승이 상대적으로 지체된 곳들이기에 대규모 교회당 건축을 위한 재원 마련이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요약


    이것을 글 서두에 언급한 교회의 캐릭터화와 연결시켜 정리해보자. 강남의 교회들은 1980년 어간부터 빠르게 증가하는 젊은 중상위층을 교회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함으로써 신흥교회들임에도 급격한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 성공의 주된 요인은 대규모 교회당의 건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 건축은 지대의 상승과 밀접히 관련된다. 이때 지대로 인한 초과이윤을 건축헌금으로 기부하도록 이끈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교회 건축과 대형교회로의 부상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많은 교회들은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은퇴 혹은 사망의 국면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은 흥미롭게도 교회 권력구조가 변화하는 기반이 되었다. 

    가뜩이나 이들 교회의 교인들인 젊은 중상위계층은 고등고육을 받은 데다 민주화와 소비사회화를 겪으면서 선행세대보다 더 주권의식이 강했다. 반면 신학대학은 퇴조하고 있었고, 목회자들의 수준은 퇴화했다. 교인들의 의식에서 이러한 지적 역전 현상이 뚜렷이 각인된 시기가 1990년대 이후다. 바로 이 시기에 많은 엘리트 교인들이 교회를 떠도는 현상이 심화되었고 그들이 교회에 정착하는 과정은 주체의식의 차원에서 그들이 주권교인이 되는 것과 겹친다. 이러한 상황의 초기에, 떠돌이 교인을 정착시키는 데 성공한 대표적 교회가 사랑의교회와 온누리교회다. 시대성과 부합하는 캐릭터화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양적인 성공뿐 아니라, 수많은 교회들이 이 두 교회의 캐릭터를 벤치마킹하여 모방하는 붐이 일어났다는 점에서도 이 두 교회는 1990년대 한국의 대형교회 현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교회의 모델은 2천 년대에 오면 그 위상이 격하되거나 좌초해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대형교회의 캐리터화 현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더 많은 교회들이 다른 방식으로 다양하게 캐릭터화를 모색하는 시대가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권교인의 신앙적 정치문화가 새롭게 형성되어 갔다. 한국사회의 보수주의는 1990년대 이후 이렇게 변모하면서 발전하고 있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다섯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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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뜻


박정상

(IT 관련 직장인, 아파트 동대표, 한백교회 교인)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매일 매일 최순실 비선 실세가 대한민국의 모든 화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드라마에 나올 듯한 사실들이 밝혀 지며,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공주가 사는 세상에 자의든 타의든 모두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식탁 위에 다양한 가십거리가 되어 오르내리는 사실에 씁쓸한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의 51.6%가 뽑은 대통령, 가까이는 박정희/육영수 초상화 핸드폰 고리를 달고 다니시는 부모님, 박근혜에 대한 연민의 정을 표현하신 친지 분들, 대구가 고향인 외가 친지들...  박근혜를 지지한 이분들에게만 원망과 비난의 화살을 던질 수 있을까요? 나는 48.4프로 편에 있었기에 오늘의 사태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제가 태어난 1979년은 박정희 독재자가 그리고 2016년 그의 딸, 박근혜 불통령과 한 시대를 살았던 이 역사의 현장이 마치 운명의 장난인 듯 싶습니다.


  뒤돌아보면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까지 반세기 동안 존경할 만한 대통령이 손에 꼽을 정도 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지지리도 복이 없는 건지..


  2008년 한미 FTA로 촉발된 촛불집회 흔적이 남아 있는 곳,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순신 장군이 내려다 보는 곳, 백성들이 올바르게 살려면 왕과 관료들이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백성들을 다스린 세종대왕 앉아있는 그 곳, 2016년 11월 5일 어제입니다. 아이러니한 그 곳, 광화문 광장에 다시 한번 성난 촛불 20만의 민심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고사리 손, 갈라진 손 가리지 않고 들려진 촛불 하나하나는 이내 거대한 물결로 변해 청계천과 광화문을 에워쌌습니다.    


    어제 그 시간 저는 아파트 내 작은 도서관 개관식을 진행하느라 역사의 현장인 광화문에 가지 못했습니다. 지난 한달동안 많은 시간을 거기에 할애했고, 아파트 내 첫 공동체 행사이었기에 그만큼 준비도 많이 해야했기 때문입니다. 작은 도서관은 주로 이용하게 될 아이들에게 올바른 생각과 바른 역사의식의 싹을 틔우는 곳입니다. 때문에 비록 저는 광화문 그 역사의 자리에 있지 못했지만, 광화문에 모인 그분들과 함께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음이 탄이, 우리 아이들이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대통령, 비정상적인 세상을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자그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정정당당 경쟁이 아닌 빽을 통해 뒷문으로 들어가는 세상, 

 같은 일을 하지만 비정규이라 당연히 차별받아도 되는 세상, 

 시민을 죽여놓고 유족에게 그 원인을 넘겨도 분노하지 않는 세상, 

 아이들이 세월호와 함께 수장되어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세상, 

 독재자의 자녀가 다시 독재하는 당연한 세상, 

 비정상의 정상화를 박근혜 대통령이 외치는 세상  


  이렇게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순수, 본심, 아름다운 마음을 생각하며, 제가 어제 도서관 개관식 축시로 낭송했던 워즈워드 시의 무지개를 읽으며 마치겠습니다.  



무지개                             

워즈 워드 


 하늘에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마음 뛰노나니, 


 어린 시절에도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니 

 나 늙어서도 그러하기를 

 아니면 차라리 나의 목숨 거둬 가소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건대 내 인생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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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 Sculpture 



정승원_Sans titre(무제)_드로잉종이,접기_지름약6m_가변설치_2007


size 50× 65cm 드로잉 종이를 한 장씩 접어 유니트를 만든 후 이것들을 모두 연결시키거나 끼워 넣어 만든 작업 반복에 의해 형태가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오브제 자신의 공간을 확장시키며 동시에 전시 공간을 점령하는 관계를 볼 수 있다 종이를 조금 다르게 사용해 보고자 평소 드로잉 하던 종이위에 무언가를 그려서 재현하는 대신 종이 한 장씩 접어서 작업을 하였다 빛과 그림자에 의해 강조 되어진 종이 접은 선을 관찰할 수 있고 오브제와 그것이 설치되는 환경에 대해 인식한다  


디테일 1

디테일 2



설치전 3


 


 

  

정승원 作 (설치작가)


- 작가소개

프랑스 부르주 국립 고등 미술학교 졸업, 경기창작센타 입주작가 

개인전 | 2014 해석의 재해석, 경기창작센터 

           2011 PLI, Eapace PRIVAT, 디종, 프랑스 

그룹전 | 2015 알 수 없는 그 무엇? 하하하, 전라남도 도립 옥과미술관 

           2014 루와얄 섬 레지던시 보고전2 금천예술공장 

프로젝트 | 2015 프롬나드(황금산프로젝트), 아르코,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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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키츠의 <아무도 모른다>




이희승*



  프로이트가 인간 정신의 구조와 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정립한 여러 이론과 가설 중에는,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이제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있습니다. 섹슈얼러티와 사회화라는 과제를 통해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과 대면하는 인간화의 과정이 필연적으로 비극을 내포하고 있다는, 결코 반갑지 않은 진실을 전달하는 신화적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장과 비극의 이중주는 비단 개인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한 사회가 성장이라는 모티브로 운용되는 동안 개개인의 삶에 쌓여 가는 필연적인 고통은, 자랄 수록 피부를 파고드는 내성발톱처럼 더욱 예리하게 비극의 깊이를 더하게 마련인가 봅니다. 억울한 죽음을 맞은 한 시민의 주검을 앞에 놓고 벌어지는 희극을 닮은 어느 비극에서 우리는 고속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 사회 안에서 그간 ‘아무도 모르게’ 자라온 서글픈 괴물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허나, 성장과 비극의 필연적인 동반 관계를 운명이라고 순응하기에는 인간이라는 개별적 존재가 고통에 매우 민감하다는 현실을, 제 눈을 찔러 버린 오이디푸스의 형상을 통해 소포클라스의 비극이, 그리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역설하고 있는 듯 합니다.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성장영화라는 장르화된 공식 또한 고통과 성장이 맞물린 인생의 진리를 소재로 삼지만, 그 안에서 개별화된 의미를 생산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대개, 성장영화의 미덕과 교훈은 다름아니라 고통을 이겨내고 성장을 이뤄내는 주인공의 투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장과 고통의 명쾌한 일차함수는 그리스 비극이, 그리고 프로이트가 담아내려는 인간화의 아이러니를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매우 특별한 성장영화라고 할 수 있는,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부모에게 버려지고 사회에서 잊혀진 채로 도시 한복판에서 성장하는 네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결코 간단히, 가볍게 풀어 낼 수 없는 이 어마어마한 비극의 핵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시도합니다. 1988년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나시 스가모 사남매 방임 사건을 소재로 해서 2004년에 만든 이 영화는 주인공을 연기한 12세 소년 야기라 유야가 최연소 칸느영화제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평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쿠엔틴 타렌티노 감독이 수많은 영화제 출품작들을 보고나서 단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바로 이 영화 속 소년의 얼굴이었다라고 했을 정도로, 히로카즈 감독의 사려깊은 카메라는 성장과 비극의 틈바구니에 갖힌 소년 아키라와 어린 형제들의 모습을 잊지 못할 이미지로 관객의 마음에 각인시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동경의 한 아파트로 후쿠시마 모자가 이사를 오는 것으로 시작하지요. 주인집 남자는 어린아이가 있으면 다른 세입자들이 불평을 많이 한다고 주의를 줍니다. 젊은 엄마는 이제 중학교에 진학하는 외아들 아키라가 얌전하고 공부를 잘 하는 모범생임을 강조하며 주인을 안심시키고는 부지런히 이사짐을 정리하지요. 명랑한 톤으로 가볍게 움직이는 카메라와 무심한 듯하지만 인물들의 디테일한 움직임과 시선을 이어 붙이는 편집은 여느 이삿날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을 담아내면서도 아키라와 엄마가 주고 받는 은밀한 눈빛안에 숨겨진 비밀의 존재를 암시합니다. 이삿짐 속에 섞여 있던 두 개의 커다란 여행가방 안에 막내 유키와 장난꾸러기 시게루가 각각 숨어 있었던 것이지요. 저녁이 내려 앉은 낯선 거리를 지나, 아키라는 기차역으로 바로 밑의 여동생인 쿄코를 데리러 나갑니다. 재잘거리는 네 아이들이 저녁식탁에 다 모이자 엄마는 큰 아들인 아키라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규칙을 정합니다. 빨래를 담당하는 쿄코는 베란다에 설치한 세탁기까지는 나갈 수 있지만 어린 시게루와 유키는 아예 집밖 출입을 할 수 없다고 말이지요.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학교에 갈 수도 없는 네명의 아이들이 속절없이 갇혀 있는 비좁은 아파트에도 어김없이 새날의 아침이 찾아 들고, 거실 깊숙이 팔을 뻗은 햇살을 동무 삼아 네명의 아이들은 일하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냅니다. 이사 온지 며칠 후, 아버지가 각기 다른 이 아이들의 엄마는 또다른 사랑과 그 사랑이 약속하는 행복을 찾아 아이들을 남기고 떠납니다. 무책임하게 사라진 아빠들을 대신해 여지껏 아이들을 맡아 왔다고 주장하는 철없는 엄마에게 아키라는 쉽게 따지지도 못하지요. 간간히 돈을 부쳐 주는 것으로 엄마의 존재를 희미하게 느끼지만 이제 아무런 보호장치없이 12살 아키라와 그의 어린 동생들은 세상을 향해 조금씩 발을 내딛습니다.    


    모두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만 모두가 불행해지고만 이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부지런히 자랍니다. 먼지 한톨없이 깔끔한 동경의 한복판에서 네 아이들의 행색이 눈에 띄게 남루해지는데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현실을 극명하게 암시하는 몇개의 롱 쇼트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영화의 제목에 숨겨진 언중유골을 드러냅니다. 사실, 이 영화는 모두가 다 알지만, 누구도 알고 싶어 하지 않기에 아무도 모르는 그 지점을 보여 주려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모른다>의 진정한 매력과 힘은 누구를 탓하지 않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키라와 아이들은 돌아 오지 않는 엄마나 애초에 사라져 버린 아빠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사회의 무관심에 상처받는 것 같지도 않고요. 부모 그늘에 사는 다른 아이들을 부러워 하거나 자신들의 처지가 부끄러워 세상으로부터 숨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지메로 상처받고 소외된 여학생 사키를 보듬기까지 하지요. 절망과 박탈감에서 자유로운 네 아이들은 쉽게 받아 들여지지 않는 상황이지만 굳이 그것때문에 성장을 멈추거나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쉼없이 자라고, 키가 자라고, 표정에서 언뜻언뜻 나이보다 웃자란 세상에 대한 이해심이 배어 나올 때, 관객은 아이들에 대한 먹먹함이나 미안함보다는 비극과 접붙은 성장에의 본능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순간까지도 살아 있는 생(生)의 동력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특히, 자신의 생일에 엄마가 돌아 올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기차역에 나가 엄마를 기다리겠다는 막내 유키의 첫번째 외출장면이 그렇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아파트를 빠져 나가야 하지만 막내 유키가 고른 신발은 이제는 좀 작아지고 추워 보이는, 걸을 때마다 뽁뽁 소리나는 슬리퍼지요. 사람이 꽉 찬 저녁 거리에서 오빠 손을 잡고 야무지게 간판에 쓰인 글씨를 읽으며 지나가는 유키의 발걸음에 맞춘 슬리퍼 소리는, 나름의 비극에 눈 먼 이 세상이 애써 보지 않으려고 해도 난 이렇게 살아 있다라고 외치는 아이를 위한 행진곡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오지 않을 엄마를 한참 기다리다가 텅빈 거리를 통과해 집으로 돌아오는 유키의 슬리퍼는 이 서글픈 장면에 관습적인 눈물 대신 리듬을 불어 넣습니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년의 긴 촬영기간 동안 비전문 배우들인 아이들과 지내면서 비극과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섬세하게 관찰하고 예리하게 잡아 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미 성장을 멈춘 누군가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해석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잊혀지고 버려진 아이들의 눈물보다는, 아무데서나 터져 나올 준비가 된 아이들의 높은 웃음소리와, 잡초씨를 받아다가 다먹은 컵라면 그릇에 심고 자신들이 마실 물을 나누어 주면서 기어이 싹을 틔우는 아이들이 표현하는 살아 성장하는 모든 것에 대한 동질감, 그리고 극도로 곤궁한 중에도 누구하나 적으로 몰지 않고 함께 살아 가는 법을 터득하는 아이들의 천진함을 관객이 보아주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영화의 후반부는 가혹한 현실을 무시하고 세상을 동화로 포장하는데 급급한 성장영화의 뻔한 결론을 버리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도 너무나 분명하게 감지되는 비극의 깊이와 그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유키의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묘사합니다.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어떤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마음을 정하기 어려울 만큼 세상의 도움을 받아 본적 없는 아이들은 막내 유키의 주검을, 아파트에 이사온 그 날 엄마가 그랬듯이, 여행가방에 넣고 유키의 마지막 외출을 준비합니다. 이 지긋지긋한 반년을 보내면서도 아이가 끊임없이 자랐던 듯, 유키의 시신은 이사 올 때 들어갔던 작은 여행가방에 더이상 맞지 않습니다. 더 큰 여행가방에 유키와 유키가 좋아하던 초코과자를 잔뜩 넣은 채로 길을 나서는 아키라와 사키는, 큰소리로 한번 울지도 않고 동생을 묻고 나란히 돌아오죠. 텅빈 기차 안에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망연히 앉은 두 아이들의 모습은 그간의 성장, 성장과 함께 깊어진 고통, 그리고 고통과 함께 전진하는 생의 운동력을 조용히 관찰하게 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동경 하늘에 원을 그리는 모노레일 트랙을 닮은 이 성장과 비극의 순환고리 안에서 여전히 악착같이 자라는 아이들을 대견한 듯 바라보며 끝을 맺습니다. 관객의 눈을 파고들며 작렬하는 여름 한낮의 태양빛을 온몸으로 견디며 함께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카메라의 시선을 차마 거두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이죠. 숙명처럼 성장에의 요구와 고통의 늪 사이에 놓인 인간 안에서 작은 기적을 발견하려는 감독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냅니다. 


 

* 필자소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강사 및 정신분석가. 동 대학의 미디어 영화학과에서 각색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시안학과에서 한국 영화와 텔레비젼 드라마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호주 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가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 라캉 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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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rene
    2016.11.09 18:2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편집장님, 지난글의 마지막 문단이 이번 리뷰 끝자리에 아직 붙어 있네요...
  2. 2016.11.20 23:1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수정했습니다. 이희승 선생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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