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변 기행1
- 재래시장, '위생도시'와 '원초성'의 틈새 공간

 

유승태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연변에 도착하고 둘째 날 아침,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모두가 서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출발을 앞두고 현지 진행 담당을 하는 한국 측 목사님과 조선족 가이드가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획에 없던 일정을 갑자기 추가했기 때문인데, 가려는 장소가 연길시의 '재래시장'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조선족 가이드는 "다른 데 갈 데도 많은데 왜 하필 거길 가려는 거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한국에서부터 "시장을 꼭 한번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으레 재래시장에 가겠거니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이드의 반응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짧은 실랑이가 끝나고, 한국 측 목사님의 의견대로 연길시의 재래시장인 '흥안시장'에 가게 됐다. 시장에 도착하기 전 가이드는 재래시장에서만큼은 '아무거나 사먹지 말 것'을 주문했다. 중국에 왔으니 한번 맛은 봐야 한다며 가이드가 사준 '꿔즈'(한국식 한자 발음으로는 '과자'?)를 보니 왜 아무거나 먹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꿔즈는, 모양은 꽈배기 같았지만 오래된 기름에 튀겨서인지 튀김 특유의 고소한 맛이 아닌 새카맣게 탄 맛이 났다. 설탕을 덧입히지 않은 밀가루 튀김 그 '날 것' 혹은 그 밀가루가 수도 없이 들락거린 기름 그 '묵은 것'의 진수를 맛본 느낌이었다.

연변대 앞의 대학서점 울타리에 걸려 있던 긴 현수막

그런데 이 맛은 꿔즈의 맛이면서 흥안시장의 맛이기도 했다. "국가급 위생도시를 건설하자." 연길시의 가는 곳마다 이 선전문구의 여러 버전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흥안시장은 이 선전문구에서 가장 빗겨나 있는 곳이었다.

연변 일대에서의 일정은, 한국 측의 기획의도와 희망 방문지를 반영해 현지에서 구체적인 일정을 기획하고 제안하면, 다시 한국 측에서 이를 확인하고 확정하는 과정을 통해 결정됐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족 가이드의 역할이 매우 컸다. 발전하고 있는 연변, 이를 위해 애쓰고 있는 조선족 지도자와 교육자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가능케 한 한민족의 역사적 흔적들(주로 항일 유적)을 보여주는 것이 가이드의 기획 의도(와 한국 측 의도의 접점)인 듯했다. 그녀의 기획 속에서 '연변'은, '발전'이라는 미래의 목표와 '항일'이라는 과거의 경험이 안정적으로 통합돼 '자긍심'을 갖게 만드는 공간으로서 재현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러한 공간 기억 방식은 '위생도시'를 건설하려는 국가 또는 자치주 차원의 도식계획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것이었을 터이다. 그러니 '날 것' 혹은 '묵은 것'의 느낌을 주는 흥안시장이라는 공간은 그녀의 기억이나 연길 도시계획 어디에도 자기 자리를 안정적으로 마련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재래시장에 가자고 제안했을 때, 조선족 엘리트에 속하는 가이드에게 흥안시장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주최 측이 예측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시장에 가자고 했던 것은 "중국 인민의 생생한 삶을 볼 수 있다" 정도의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의도였을 듯하다. 그러나 조선족 가이드의 반응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가 재래시장을 당연히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날 것' 혹은 '원시성'을 발견함으로써 '인간적인 것' 혹은 '진정한 것'을 보았다고 믿는 식민주의적 감상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반성을 하게 됐달까.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침에 있었던 실랑이는 한 공간의 의미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종의 해석투쟁이었는지도 모른다. 연변을 '발전과 문명'의 가능성 그리고 역사적 자부심을 간직한 '위생도시'로 기억하려는 조선족 엘리트와 자본이나 개발논리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인간의 공간으로 기억하려는 '진보적' 한국인의 해석이 경합하는 곳이 바로 흥안시장이었다.(이 공간해석에서 어느 한쪽이 무조건 옳다 할 근거는 없다. 그리고 꼭 둘 중 하나여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대세는 전자의 편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연변과학기술대학을 방문했을 때 한 교수를 통해 연길시의 도시계획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가까운 미래에 흥안시장은 '대규모 최첨단 농업 물류유통단지'로 조성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통해서도 흥안시장은 타파해야 할 '나쁜 습성'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중국 도시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이 1800위안(한국돈으로 30만원 남짓) 정도라는데, 도심의 백화점에서 옷 한 벌 가격이 400~900위안인 것을 보며 걱정이 앞섰다. 물류유통단지가 완성되는 그때 흥안시장의 재래상인들은 다 어디로 가게 될까. 첨단과 부의 상징인 백화점에서 청소년들이 노동자 월급의 절반에 이르는 의류를 소비하고, 한국에서 돌아온 조선족들이 아파트를 두세 채씩 사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타워크레인이 움직이고 있는 연변. 이곳의 도시화와 발전은 10위안 대의 물가로 거래를 하는 시장상인들에게 어떤 삶의 공간을 만들어내게 될까.

그런데 조선족과 조선족 자치주의 위기론이 1990년대 제기된 이래 최근 들어 광범위한 실체적 위기로 조선족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연변의 도시화로 인해 조선족은 '개발'에 대한 장미빛 꿈을 꾸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조심스럽지만, 나는 이런 추측을 해본다. '조선족 위기론'은 재래시장을 기억에서 지우고자 하는 욕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때문에 조선족의 위기에 대한 사유는 이 욕망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흥안시장 풍경>

1.


연길시의 흥안시장. 

3, 6, 9일에 장이 열린다 하여 '삼육구시장'이라고도 불린다. 장이 서면 사람들이 팔 물건을 들고 하나둘 모여든다. 주로 농산물인데, 농산물만이 아니라 각종 생활용품부터 물고기, 가금류, 심지어 지붕의 뼈대(!)까지 판다. 집터와 기둥은 내가 마련하고, 지붕은 시장에서 산다?!

사진을 찍은 곳부터 가운데 산 아래쪽까지가 모두 시장이다. 시장을 다 둘러보고 반대쪽 끝으로 돌아 나갔을 때 사기꾼 차력사가 불장풍을 쏘는 시범을 하고 있었다. 일행중 한 명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불같이 화를 내는 바람에 언른 사진기를 치웠다. 켕기는 게 있는 듯.. (-_-;;



2.








시장 통로 좌우로 사진과 같이 경계가 그어져 있었다. 여기가 좌판을 벌이는 구역이다.











3.






시장 끝 한 공터에도 상인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4.



할머니 한 분이 경계선 안에 좌판을 벌이고 계셨다. 저 멀리 타워크레인이 보인다. 연길 어디서나 보이는 타워크레인은 왠지 감시탑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타워크레인과 아파트를 보며 나의 욕망이 자본주의적인지 끊임없이 자기검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5.






당나귀가 싣고 가고 있었던 것은??
정답 : 돼지 두 마리.

어쩌다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ㅠㅠ








6.




시장 끝 한쪽에 한 교회가 보였다. 마크로 보나, 한국어 교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나 한국에 뿌리를 둔(?) 교회가 아닌가 싶다. 저 교회를 모독할 생각은 없으나 뒤에 보이는 타워크레인은 저 교회의 꿈과 닿아 있는 듯했다.





7.





이 사진이 그 증거랄까. 교회 마당 한켠에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성전 조망도'가 있었다. 실현되지 못한 꿈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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