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거는 여자들



유하림*

 


열일곱 살에 나는 암묵적으로 혼후관계를 지향하고 있었다. 암묵적었던 이유는 학교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 술, 담배, 섹스 같은 종류의 것들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쿨해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낙태는 살인이다’ 라는 슬로건에 동의하는 바였고, 페미니스트였던 학교 선생님께서 낙태와 관련한 여성인권에 대해 말씀 하실 때에 페미니즘은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기괴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시기에 가끔씩 만나던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모르는 남성과 섹스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새로운 애인과 섹스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삼일을 넘기지 않았다. 지금이야 아무런 감정없이 그녀의 행동에 대해 서술할 수 있으나, 당시엔 쿨하다고 여김과 동시에 문란하고 저급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자가 스스로 지켜야 할 몇가지 의무가 있는데, 그것은 몸 이기도, 정조 이기도, 순결이기도 했으니 그랬다.

나는 그녀와 그리 친하진 않았고 다만 그녀가 하는 이야기에 쿨하다는 감정만 내비치며 대화에 임했다. 어느 날인가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 전화는 잘 하지 않던 사이였기에 내키지 않는 맘으로 전화를 받았다. “하림아 나 생리를 안해” 그녀의 말을 이해하기엔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내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지난번 애인과 섹스를 한 후로 몇 달째 생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나는 무조건 그녀의 뱃속에 있는 생명인지 세포 덩어리인지간에 그것을 없애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들기 전엔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그녀의 삶을 떠올렸다. 생리를 오래도록 하지 않았던 걸 알아채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내게 전화를 하던 그녀의 마음, 배부른 모습으로 지하철에 탄 그녀를 바라볼 사람들, 그녀가 안게될 아이가 아닌 부담감, 그리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육아에 대해 상상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 많은 생각들을 모조리 말 할 수는 없었고 임신테스트기를 해보자고만 했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으로 테스트기의 가격을 알아보았다. 기계라고 하면 왠지 2만원은 훌쩍 넘을 것 같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오천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그녀에게 전달해주고 연락을 기다렸다. 연락을 기다리면서 낙태를 할 수 있는 병원에 대해 알아봤던 것 같다. 평소 즐겨 이용하던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도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한줄이래.” 

“한줄이 뭔데?” 

“임신 아닌거.”


그녀가 한줄이라고 말해주는 순간까지도 나는 마음이 쿵쾅거렸다. 그리곤 질문을 했던 거 같다. 

“앞으로 계속 섹스할거야?” … 

“아마”


그리곤 전화를 끊었고 몇번 쯤 친구들에 섞여 그녀를 만나다 점점 연락이 뜸해졌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나는 비슷한 전화를 무수히 받았다. 모두가 잠든 어둔 밤에,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이른 새벽에, 햇살이 직선으로 꽂히는 정오에, 여자들은 내게 전화를 했다. 내가 가장 무서웠던 건 생명인지 모를 것을 없애는 일보다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계획되지 않은 아이를 낳는 일이었으며 그것이 책임회피라고 하더라도 나는 지지할 수 밖에 없다.

내게 전화를 걸어온 여자들은 왜 그들의 상대에게 전화하지 못했을까. 하긴 했던걸까. 그러고도 여자들은 다시 그 상대를 만났을까. 헤어졌을까. 못 만났을까. 여자들에게 죄가 있다면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점일까. 그렇다면 여자들은 무엇을 지켰어야만 했을까. 순결을? 피임을? 침묵을? 그렇다면 왜 여자들만 지키지 못한걸까. 여자들이 아닌 존재는 아무것도 지키지 않아도 되는걸까.

죄가 없다면 모두에게 없어야 한다. 죄가 있다고 해도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 죄의 유무는 본인만이 판단해야 한다. 그 누구도 타인의 신체와 선택에 대하여 단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절이 불법이라면 국가는 출산과 육아를 최선으로 도와야만 한다. 상대 남성에게도 똑같이 처벌해야만 한다. 무엇도 보장되지 않은 채로 임신중절이 불법이라면 나는 가장 최전선에서 그것을 반대하겠다.


많은 여자들을 봤다. 그 여자들 속엔 나도 존재한다. 나는 더이상 나와 비슷한 여자들을 보고싶지가 않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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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유하림*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소개 할 낱말을 찾는 것은 항상 고민이다. 짧은 시간 내에 나를 정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해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현재 나의 상태와 고민, 가치관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낱말은 ‘페미니스트’다. 그치만 자주 망설인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스트란 누군가에게는 반가울테지만 누군가에게는 선전포고일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분노를 돋구는 불쏘시개이기도 하다. 그러니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꺼내기에 망설일 수 밖에 없는 소갯말이다.

   페미니스트는 성차별에 반대하며 모든 성이 평등하다고 믿는, 나아가 성해방을 도모하는 사람들이다. 굳이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성평등을 지지해” 라는 문장 안에는 단순히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행간이 숨어있다. 과연 성평등을 지지한다는 건 뭘까? 그건 ‘성평등’ 이라는게 내 입 안에만 머무는게 아니라 실제로 이뤄질 수 있으려면 어떤 일들을 거쳐야 하냐는 질문이다. 그러니 페미니스트란 성차별에 반대하며 모든 성이 평등하다고 믿는, 나아가 성해방을 도모한다는 문장의 비교적 구체적인 방향성이다.

   이를테면 ‘나는 동물을 사랑해’라는 문장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동물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동물원에 자주가는 걸 떠올릴테지만, 어떤 사람은 동물원에 대한 폭력성을 인지하고 그런 구조를 바꿔나가는 걸 궁리한다. ‘나는 자연을 사랑해’라는 문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에 꽃을 꺾어 간직하지만, 어떤 사람은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담는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우리는 한 문장 안에서 발견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식들에 대해서 무엇이 정말로 그 문장에 가까운 일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세세하고 구체적인 방식은 더 많은 고민과 이야기가 필요하다. 당연하게 옳은 일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여태껏 합의된 방식이란 건 있기 마련이다. 페미니즘이라고 다를쏘냐.

   ‘성평등을 지지한다’는 문장은 이런거다. 적어도 임신중절에 찬성하며,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에 반대한다는 것. 여성에게 밤길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길 바라는 것.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당신이 당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아니하길 바라는 것. 그 때문에 페미니스트 선언은 성평등에 찬성하는 동시에 그것을 삶의 실천 방식으로 가져가겠다고 말하는 적극적 행위가 된다.  

   여태껏 합의된 방식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페미니스트로서 중요한 덕목이랄게 있다면 ‘나는 언제나 가해자가 될 수 있음’에 대한 인지 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다. 나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가해자가 될 수있다. 이해하기 쉽게 일화로 예를 들겠다.

   필자는 여성이고, 22살이고, 휴학생이고, 페미니스트다. 길을 가다가 성희롱을 당하고, 앳된 얼굴 덕에 택시기사는 늘 반말이다. 그러나 서울에 살고 있으며, 비장애인이다. 서울 어디서 약속이 잡히든 삼십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는 한없이 약자의 정체성을 지니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누구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내가 항상 같은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는 없는거다.

   알바할 때의 일화이다. 휠체어를 탄 중년 남성분이 카페에 왔다. 카운터에는 나와 신입 알바생이 있었는데, 신입 알바생의 용모는 긴 생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을 지니고 있던 39세 알통남이었다. 손님은 “사장님 이 과자 얼마에요?” 물었고, 나는 3000원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손님은 “나는 사장님한테 물었는데~ 정확한 가격 맞아요?” 하고 되물었다. 그 순간 엄청나게 화가 났다. 정확한 가격이 맞다며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손님을 쏘아봤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나는 장애를 가진 중년 남성 손님에게 화를냈다. 화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비장애인으로서의 권력관계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 사람이 비장애인 중년 남성 손님이었다고 해도 화를 낼 수 있었을까? … …

   이 일화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위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위치일 수 없다. 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의도였건, 내가 어디서 어떻게 약자의 위치성을 가지고 있던지간에 나는 충분히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위치성 또한 가지고 있다. 위치에 대한 유동성을 인지하는 것은 나의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일이다. 나도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자는 얘기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함축적이지만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낱말이 아직까지는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생각한다’라고 밖에 쓸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은 다 각자의 페미니즘을 한다. 다양한 방식의 고민과 실천으로 페미니즘의 다양성을 넓혀간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이 페미니스트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또 보류다.

   얼마 전에 새롭게 만나게 된 분에게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니 어디까지를 성해방이라고 봐야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체 무엇이 성해방이냐는 질문이다. 무엇이 성해방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남이 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이 성해방일 수도 있고,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이 사라지고 모두가 탈젠더화 된다면 그것이 성해방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부터가 성해방(혹은 성평등)의 시작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출발선은 존재한다는 점이다.

   내가 페미니스트 감별사가 되어서 페미 완장을 채워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래야 한다는 또 다른 페미 코르셋이 존재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해방을 위해 시작한 일들이 누군가를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선 안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람에게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 뿐이다. 꾸준히 고민하고 공부하는 것. 나의 빈약한 상상력에 아무도 다치지 않으려면 나를 확장시키는 수 밖에는 없다. 새해에도 나는 여전히 페미니스트이며, 나에게 페미니스트라는 소갯말은 성평등을 지지하는 사람, 가해자성을 인지하는 사람, 꾸준히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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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민소매 입기



유하림*

 


    올 여름은 정말 더웠다. 에어컨을 발명해 낸 사람에게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은 수준이었다. 바깥에서 10분만 서 있어도 땀이 주륵주륵 흘렀고, 습도는 높아 숨이 막혔다. 이런 몇 주간의 무더위 속에서도 내가 차마 도전하지 못한 것이 민소매다. 민소매를 입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깨를 가리는 한 뼘만한 천때기의 있고 없음이 생각보다 쾌적함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작년 여름에 여행으로 베트남에 갔다. 첫 해외여행이었으므로 큰 맘 먹고 민소매 원피스를 입었다. 겨드랑이 사이로 바람을 맞이 한 것은 초등시절 이후로는 처음이었는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매가 없다 뿐이었지만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베트남에서 돌아오는 날 다시 반팔 티를 입었고, 허무함을 느꼈다. 나에게 민소매란 남의 눈을 피해서만 입을 수 있는 것이니까.

   페미니즘 열기가 한창 뜨거운 이 때에 노브라도, 겨털 기르기도 아니고 민소매 입기 따위가 무슨 글감이냐고 스스로에게도 질문했지만 내게 민소매란 그런 것이다. 삐져나오는 겨드랑이 살과 통통한 팔뚝에 대한 좌절과 증오를 뚫고 용기를 내야만 하는 것.

   아직 십대가 되기도 이전, 0-9세 사이로 분류되던 때에 한의원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 엄마는 태양인 태음인 등의 체질 분류에 꽂혀있었고, 나의 체질 또한 가늠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생년월일 등을 묻고, 내 손목에 맥을 짚어보기도 했다. 그리곤 드러난 내 팔뚝을 보더니 “너 치킨 좋아하지 ?” 하는 것이다. 그렇게 덧붙였던 이야기. “살을 빼려면 치킨을 먹지 말아야해. 치킨 먹으니까 팔뚝에 살 찌는거야.”

   그 뒤로 몇 해간 꾸준히 할머니와 엄마는 치킨을 먹을 때 마다 내가 가진 팔뚝 살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면 치킨이 아니라 팔뚝 살을 집어먹고 있는 것 같았고, 이상한 죄책감이 들었다.

   팔뚝 살은 안 좋은 것. 팔뚝 살을 만드는 것은 치킨. 치킨을 먹으면 안돼. 그런데 나는 치킨이 먹고 싶어. 그럼 치킨을 먹어야지. 그치만 치킨을 먹으면 팔뚝 살이 찌는데. 팔뚝 살은 안좋은 것. 이라는 생각의 회로가 나를 괴롭혔다. 팔뚝과 치킨, 치킨과 팔뚝. 이 사이에 실제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렸을 적 한의원에서부터 거슬러온 내 팔뚝 살에 대한 증오는 꽤나 긴 것이다.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났다. 한 여름이지만 반팔에 긴바지를 입고 있었다. 자신은 몸이 너무 왜소하고 말라서 그것을 가리기 위해 여름에도 긴 옷을 입는다고 했다. 무언가 이상했다. 나는 통통한 팔뚝 살과 삐져나온 겨드랑이 살에 대한 눈초리를 이길 수 없어 몸을 가리는데, 나와는 달리 마른 체형의 그녀 또한 몸에 대한 눈초리를 이길 수 없어 몸을 가린단다. 우리는 다른 몸을 가졌지만, 같은 이유로 민소매를 입지 못한다..

   이러나 저러나 눈초리가 신경 쓰인다면 그냥 한번 입어볼까 싶어 칠 천원을 주고 민소매를 하나 샀다. 집에 돌아와 입어보니 삐져나온 겨드랑이 살과 통통하고 하얀 팔뚝이 밉지만은 않았다. 밖에도 입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최고 기온이 33도를 찍던 날, 민소매를 꺼내 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나가기 직전, 현관 앞 거울에서 몸을 이리저리 비춰보다 결국 다른 옷을 입고 나갔다. 괜찮아보이다가도 막상 마주하면 무너지는 게 나의 몸이다.

   이제는 타인의 몸 (특히나 살이 찐 사람)에 대한 왈가왈부가 경솔한 일이라는 게 상식이다. 내가 민소매를 입고 나간다고 해서 대놓고 수군댈 만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오랜 기간 이어져 온 팔뚝 살에 대한 증오가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 혼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란거다.

   팔뚝 살에 대한 미움은 주위 사람들의 온갖 협조를 통해 만들어졌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용기를 내야만 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게 어디 팔뚝 살 뿐이랴. 통통한 허벅지도, 뱃살도, 다리 털도, 겨드랑이 털도, 얼굴에 난 여드름도, 까무잡잡한 피부도.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용기를 내야만 하는 종류의 것이다. 그러니 민소매를 입는 것 하나도 내게는 어려운 일이다.

   외모에 대한 기준이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잣대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하겠다. 그러나, 많은 다이어트 제품이, 피부 미백제가, 제모 용품이, 여드름 패치가 여성을 타겟팅 해 광고를 만든다. 티비를 켜면 비교적 다양한 체형의 남성이 나오지만 (사실 티비 예능에선 여성을 찾는 것이 어렵다.) 여성은 말랐거나, 뚱뚱해서 놀림 받을 뿐이다. 그렇게 티비에 나오는 여성들의 피부와 다리는 어찌나 매끄러운지, 손가락을 올려보면 미끄러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민소매를 입었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간 건 용기를 내지 못한 내 탓이 아니다. 민소매를 입는데에 무려 ‘용기’까지 필요하게 되는 것, 그러나 차마 그 용기도 낼 수 없었다 것. 이 세계의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다는 증명이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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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노인의 나라에 나는 없을 것이다.



유하림*

 


    서울 시청 지하에 위치한 공정무역 카페에서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한지 2년 째다. 가끔씩 큰 집회가 있을 때면 손목이 뻐근하도록 컵에 얼음을 퍼야하지만, 평상시에는 그리 바쁜 편이 아니다. 게다가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도 있고, 음료의 레시피도 간단하다. 흔히 말하는 꿀알바인 셈이다. 

   바야흐로 2016년 12월. 가끔씩 열리던 큰 집회가 매주 열리면서 ‘꿀알바’는 ‘쓴알바’로 바뀌었다. 시청 광장을 가득 채웠던 ‘태극기’가 카페마저 가득 채우게 된 것이다. 볼이 따갑게 세찬 바람이 부는데도, 어깨와 발등에 쌓이게 눈이 내려도 어떤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었다.

   태극기를 든 사람 중에는 노인이 많았다. 가만 보면 그들은 자못 진지해 보인다. 서로를 향해 당신이 대한민국의 희망이라고 어깨를 두드리고, ‘투사’라는 말로도 부족하다며 ‘투투사’ 라고 부르겠단다. 비록 당신들의 커피를 만드는 어린 여자 알바생에게는 “언니가 잘해주면 매일 카페에 와주겠다”고 말할지라도 탄핵반대집회에 나오는 것을 과업으로 여기는 듯 했다.

   계산하려고 꺼낸 지갑 안에 박정희 사진이 들어있기도 했고, 어디서 난건지 각종 뱃지를 단 군복을 입고 오기도 했다. 적당히 손님이 빠지면 카페 내부를 정리해야하는데 그 때마다 기괴한 것들을 발견한다. ‘계엄령을 선포하라’, ‘촛불은 종북, 태극기는 애국’이라고 뾰족뾰족한 글씨체로 적혀진 빨간색 종이,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접착성 좋은 스티커, 커다란 성조기.  

   처음부터 태극기 노인들이 카페를 점령한 것은 아니었다. 최순실에 대한 비리가 밝혀지고 나서 한달 정도는 촛불을 든 사람들이 카페를 채웠다. 바쁜 건 마찬가지였다. 주문을 하려고 선 줄이 카페 바깥까지 이어져있어서 계속해서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었다. 특대형 쓰레기 봉투를 자주 교체해야 했고, 영업시간이 끝나면 모아둔 쓰레기만 내 키를 훨씬 넘었다. 그치만 즐겁게 일했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문구가 적혀진 피켓을 정리하면서 몇장은 가방에 넣어 챙기기도 했고, 앞치마에는 세월호 추모 리본을 달고 연대의 의미를 전했다.

   김일성 만세의 자유 뿐 아니라 박근혜 만세의 자유도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내 탓일까. 태극기를 든 노인들은 유독 일을 힘들게 만들었다. 어린 여자 알바생으로서 나이 든 손님을 상대한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반말은 물론이고, 돈 던지기, 아무 말 안하고 서 있기, 소리 지르기, 본인 순서가 아님에도 불쑥 끼어들어 주문하기, 성희롱 하기 등 갖은 진상 짓을 마스터하여 우리를 곤란에 빠트린다. 거기에 태극기과 성조기를 나란히 든 모습이라니.

   특히 날이 갈 수록 유려해지는 성희롱 기술에 나는 더 이상 웃으며 주문을 받을 수 없었다. 조금만 미소를 보이고 친절하게 대하면 “예쁘다”, “너 때문에 내가 여기에 온다”며 불쾌한 말들을 남발했다. 스탭 중에 한 명을 지목한 뒤 쟤가 내 스타일이야 하지를 않나, 테이블 정리를 하고 있으면 노골적으로 위아래를 훑어 본다. 유일한 남자 스탭에게는 “꽃밭에서 일해서 좋겠다”며 나름의 ‘유머’를 건네고, 내게는 “커피가 네가 줘서 더 맛있다며” 나름의 ‘칭찬’도 잊지 않는다. 웃지 않는 건 선택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말이 두려워 웃을 수 없어졌을 뿐이다.

   나는 22살, 여자, 알바생.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표적이 되고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태극기 노인들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나를 부른다. 기분이 안좋으면 ‘야’하고 부르고, 기분이 좋으면 ‘아가씨’하고 부른다. 내 몸을 훑고 싶으면 언제든 그렇게 한다. 그러다 한마디 건네고 싶으면 그러면 된다. 내가 농담을 받아주지 않고, 웃지 않으면 ‘좀 잘해달라’며 내 탓을 하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들은 그래도 되는 사람들이니까. 남자고, 나이 들었고, 그들에게 나는 어린 여자 알바생이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 어린 여자를 ‘사람’으로 취급해본 적 이 없는 사람들. 그들이 꿈꾸는 자유 대한민국에 내 자리는 없겠지. 그치만 나는 그들에게 여전히 커피를 팔아야겠지.

   태극기 노인들과 6개월은 마주한 것 같다. 나는 그들이 태극기를 드는 행위에서 오는 만족감을 마주했다. 그것은 대통령을 ‘수호’하며,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키려는 나라에 나는 없을 것이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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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사실 섹스했어



유하림*

 


    개방적인 부모 밑에서 자랐다.(고 믿어왔다.) 물론, 섹스를 하기 전까지.

   엄마 아빠는 이십대에 환경운동을 했고, 아빠는 여전히 시민운동 진영에서 활동한다. 집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한겨레 21이 배달 오고, 가족끼리 대화를 하면서도 구조 문제, 계급 문제, 여성 문제, 환경 문제 등 다양한 정치적 의제를 나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땐 그것에 자부심이랄게 있었다. 건강하고, 진보적인 가족 구성원은 그리 흔하지 않았으며, 무작정 공부하라거나,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고 닥달하지 않는 부모를 만난 것은 여지껏 행운이다. 그러나 그들도 예외인 구석이 있었다.

   엄마는 열여덟이던 내 두 손을 잡고 이야기 했다. 하림아, 뽀뽀는 꼭 스무살을 넘기고 해야한다. 등 한가운데로 땀줄기가 흘렀다. 마음 속으로는 엄마 미안해를 외쳤지만 입으로는 알겠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당시에 그것은 미안한 일이었다. 나는 차마 엄마의 철썩 같은 믿음을 뒤집을 수 없었고, 엄마가 원하는 열여덟 순진한 소녀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때 깨달았다. 절대로 들키면 안된다. 내가 애인을 만나는 것은 알리더라도, 그와 어떤 걸 하는지는 들키면 안된다. 적어도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는.  

   스무살을 넘긴지 고작 2년이다. 그래도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메갈리아와 강남역 사건등이 계기가 되어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각종 언론과 SNS는 페미니즘 이슈로 도배되고, 페미니스트를 타겟팅한 상품과 광고가 나온다. 

   페미니즘이 우리집만 빗겨갈리 없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엄마 또한 페미니즘 서적 몇 권을 뒤적이며, 내게 종종 질문했다. 우리는 자주 대화했다. 임신중절수술 합법화에 대해서, 동성애에 대해서,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서, ‘예쁘다’는 말의 폭력성에 대해서, 내 몸에 대해서도 대화했다. 주로 내가 말하고, 엄마는 들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엄마한테 말을 할 것이다. 언제까지 숨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엄마에게 더 이상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친하지도 않은 친구를 유학길에 오르게 하고, 없는 동아리를 만들어 엠티를 가는 것은 꽤나 피곤한 일이었으며, 이렇게 둘러댈 거짓말을 생각해내는 것 또한 중노동이다. 그래서 작년 여름, 엄마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이하 우리의 대화.   


   나 : 엄마, 나 다음주에 남자친구랑 여행갈거야. 

   엄마 : (눈이 동그래지며) 갑자기 여행에 간다니까, 뭔가 불안하네. 

   나 : 뭐가 불안해? 내가 남자친구랑 섹스할까봐? 

   엄마 : 그런 건 안물어보면 안될까? 나도 프라이버시가 있거든 !?


   그렇게 대화는 끝났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엄마의 말대로 불안해보였다. 그런 엄마 입장에서는 다행이었을까, 여행은 가지 못했다. 남자친구와 크게 싸웠기 때문이다. 여행 당일 날 집에 누워있는 나를 보며, 엄마는 아무것도 못해봐서 어쩌냐고 말했다. 엄마의 말은 틀린 말이었지만, 모른 척 했다. 여전히 내가 섹스를 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못한 것이다. 세상이 차츰 변해가고,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었으나 나의 섹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엄마, 나 사실 섹스했어. 라는 말을 들은 엄마의 표정을 자주 상상한다. 특히나 섹스를 끝내자마자 그런 상상을 하고, 동시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똑같이 우리 엄마의 자식인 오빠도 섹스를 한 뒤 죄책감을 느낄까? 오빠의 ‘나 오늘 안들어가’ 라는 카톡에는 반응하지 않으면서, 나의 ‘나 오늘 안들어가’라는 카톡에는 당장 전화를 걸어온다. 엄마는 오빠가 열아홉이 되던 해에 섹스할 땐 콘돔은 꼭 끼라고 말해줬으면서, 내가 열여덟이 되었을 때는, 스무살은 넘기고 스킨십을 해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섹스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 엄마가 성에 대해 보수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이 사회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억압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다. 여성과 남성의 섹스를 바라보는 방식은 너무나 다르다. 남성의 섹스는 경험이며,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을 수록 멋진 남성이 된다. 반면에 여성의 섹스는 헤프거나 싼 것이 돼버린다. 또한 남성의 성욕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묘사되면서, 여성의 성욕은 가시화 시키지 않는다.

    나는 잘 모르겠다. 왜 내가 섹스를 한 것이 엄마에게 미안한 일이 되어야하는건지, 왜 내가 섹스를 했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숨겨야 하는지. 그것은 이른 아침에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하고, 가방에 넣어놨다가 지하철 역 화장실에 버려야 한다는 것이고, 사후 피임약을 먹어서 속이 메스꺼워지고, 생리 불순이 찾아오더라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렇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과 이어진다.

   페미니스트라고 섹스가 자유로워야하고, 아무한테나 섹스한 사실을 떠벌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더군다나, 엄마와 나의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만 건강한 관계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외박할 때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임신에 대한 불안을 나눌 수 있다면, 나는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아니, 그런 결과까지 가지 않더라도 섹스를 하면서 엄마 얼굴이 떠오르며 죄책감을 느끼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여성이 섹스를 한다는 것, 여성도 섹스를 말 할 자유가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은 보장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엄마가 볼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엄마, 나 섹스했어.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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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이유



유하림*

 


   6개월 정도 만난 애인은 어쩐지 나를 답답하게 만든다. 그에게 귀엽고, 착하고, 애교많고, 철없고, 왈가닥인 나는 진지하고, 예민하고, 거칠고, 폭력적일 수 없었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가서 시작 전에 나오는 광고를 보고 있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자가 엉덩이를 쭉 내민 자세의 운동을 하는 장면이 광고내내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더 저렴하게 이용하자!’ 같은 카피가 나왔다. 광고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저렴한 가격이었는데, 내가 본 것은 한 여자의 몸매와 그것을 통한 섹스어필이었다. 화가 나서 “아니, 저게 무슨 광고야.” 하고 투덜댔다.


   “통신사 광고지.” 

   “그걸 내가 몰라서 물어?” 

   내가 어떤 의미로 말한지 뻔히 알면서도 눈치 없는 답을 하는 그에게 쏘아댔다. 

   “왜 또 짜증났어. 좋게좋게 하자.”   


   애인은 내게 자주 그렇게 말했다. 좋게좋게 하자고.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는 과는 다르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는데, 학교에서 있었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대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흥분한 채로 가해자를 욕했다. 애인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항상 그렇게 많은 곳에 열을 쏟으면 힘드니 진정하라고 말했다. 진정하라고? 같이 화내주지는 못할 망정, 진정하라니. 힘이 풀리는 말이었다.  

   비슷한 몇번의 사건을 겪고 나니 애인의 앞에 설 때면 자기검열을 하게됐다. 내가 흥분하며 말한 것은 아닌지, 좋은 우리 사이를 방해할 정도로 다른 일에 화가 나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다. 그가 내게 좋게좋게 하자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일이 아닌 다른 일로 싸우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혔다. 분노 해야 할 대상에게만 화내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애인에게 할 말이 없어졌다. 심지어는 그에게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누구는 싸움이 체질이라 여기저기 시비걸고 다니는 줄 아나. 좋게좋게. 나도 좋아한다. 그거 못해서 안하는 거 아니다. 이 세계는 나를 자꾸만 화나게 하고, 지금 나는 나의 정당한 분노를 대중적인 언어로 푸는 것에 한참 흥미를 느끼는 중이다. 무엇보다 여태까지 사람들이 평가하는 나에 대해서 신경끄기로 작정한 상태였는데 나는 다시 그를 상대 할 차분하고, 사랑스러운 언어를 골라야만 했다. 그래서 말 수가 적어졌다.

   애인에게 몇번 말했다. 싸우지 않는 게 중요한게 아니라, 잘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불만이 있으면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서로의 삶과 경험과 생각을 자꾸만 나누는 것이 관계를 맺는 거라고. 누가 그랬는데,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역사와 역사가 만난다는 거라고. 그러니 우리 서로 오만해하지 말고 열심히 들어주자고. 그런데도 그는 그냥 싸우는게 싫단다. 서로 좋다고 말하기도 부족한 시간에 왜 싸워야 하는건지 모르겠단다. 아니. 무작정 싸우자는게 아니라, 불만이 있으면 이야기 하자는 거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알게된다면 당연히 못마땅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상대에게 기대를 걸고, 그 기대에 못미치면 실망하기 마련이다. 그런 기대 안한단다. 본인은 그냥 나 자체를 사랑한댄다. 애인이 생각하는 ‘나’는 뭘까. 잘 모르겠다.

   그는 고양이를 예뻐하고, 뭘 먹든지 옷에 다 흘리고, 쓸데없이 걱정이 많은 나를 좋아한다. 그러나 사소한 것에 화내고, 때로는 거친 언어로 분노를 표현하고, 어떤 사람이든간에 적절치 못한 말을 한다면 신랄하게 까버리는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싫은 모습은 있다. 그걸 부정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연애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것, 그리고 상대가 그것을 봐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혹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을 보여주고 보는 것. 그렇다면 내 정의로 우리는 연애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한 것을 하는 중이다. 그는 나의 분노를 보지 못하니까. 나의 분노를 예민함 따위로 취급하니까. 그래서 나는 애인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으니까.

   아무래도 우리의 연애는 여기까지다.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과의 연애는 6개월이면 충분했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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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지 않아도 돼



유하림*

 


   예쁘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난 뒤로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말이다. 가느다란 팔 다리에 잘록한 허리, 커다란 가슴과 엉덩이. 큰 눈과 오똑한 코, 빨간 입술, 매끄러운 피부. 이런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예쁘지 않은걸까? 그럼 나는 예쁘지 않은거네. 근데 나는 꼭 예뻐야만 하는걸까? '예쁘다'는 것의 기준은 누가 만들고,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나는 4kg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어딜가나 덩치가 큰 편이었고 덩치가 큰 사람들에겐 으레 따오르는 별명들이 내게 붙여졌다. 엄마는 소아당뇨나, 이른 초경을 걱정하며 더 이상 살이 찌지 않도록 먹던 밥을 빼앗아 버리기도 하고 큰 돈을 들여 다이어트 약을 사주기도 했다. 어쩌다가 옷을 사야 할 시간이 오면 꼭 우울해진 채로 집에 돌아왔다. 내가 입고 싶은 짧은 치마나 무늬가 화려한 옷들을 고르면 엄마는 ‘뚱뚱해 보인다’는 이유로 그 옷들을 사주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래도 사달라며 졸랐던 것 같은데 조금씩 머리가 크면서 이내 엄마 말에 수긍하게 됐다. 싸우기도 싫었을 뿐더러 엄마 말 처럼 뚱뚱해보이는 옷은 입고 싶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나의 선호와는 상관없이 무난하고, 덜 뚱뚱해 보이는, 그리고 사이즈가 맞는 옷을 찾아서 구매했다.   

   어린 시절은 내 몸에 대한 혐오와 덜 뚱뚱해 보이고 싶은 욕구로 가득 차있었다. 나는 예뻐지고 싶었고, 뚱뚱한 사람은 예쁘지 않으니까. 음식을 보고 식탐이 생길 때는 죄책감이 들었고, 입안 가득 달달한 음식을 먹을 때면 불안했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건 그나마 타고나게 낙관적인 구석이 있었다. 언젠가는 빠지겠지, 뭐 그런 마음가짐이었다.   

   중학생 정도 되니 대놓고 ‘뚱뚱하다’고 놀리거나 면박을 주는 애들은 없었다. 그러나 예뻐지고 싶은 욕구는 날이 갈 수록 강해졌다. 사건이 하나 있었다. 전교생이 20명 남짓한 기숙형 대안학교에서 생활을 했는데, 남자와 여자가 각각 10명씩 있었다. 언제인가 그 10명의 남자애들끼리 모여 여자애들의 얼굴, 몸매, 성격 같은 것들로 1위부터 10위까지 순위를 매겼다고 했다. 여자애들은 화가 나서 다같이 남자애들에게도 똑같이 순위를 매기고, 칠판에다 그 순위를 적어놓았다. 나도 화가 나기는 했지만 실은 남자애들한테 왜 매력적으로 보이지 못할까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아마 그때 그 경험이 내가 내 몸을 더 혐오하는 계기이자, 예뻐지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끼게 한 동기가 되었던 듯 싶다. 

   겨우 중학교 2학년이 돼서야 혐오에서 아주 조금 벗어날 수가 있었는데, 그 때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그 애는 학교의 신입생이었고, 자신을 잘 챙겨주는 내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1년 정도 연애를 하며 뚱뚱하지만 매력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렇게’ 뚱뚱하진 않다는 말로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그래도’ 매력적이라는 말로 용기를 가졌다. 그러나 스스로 말을 건네는 동안에도 마음 속에는 날씬한 몸과 예쁜 얼굴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삶은 앞서 말했듯 태생적으로 낙관적인,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성향 덕에 견뎌낼 수 있었던거지 실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내 몸을 계속해서 혐오하고 있었다. 정작 나는 내 몸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위 사람들은 자꾸만 내 몸에 대해 말했다. 통통하게 나온 배나, 친구들보다 한 사이즈 옷을 크게 입어야하는게 걱정스런 일이 된건 그런 주위사람들의 말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내게 해방이고 곧 구원이다. 세상이 만들어낸 ‘예쁨’의 기준 따위에 내가 나를 맞춰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물론 예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부터 갑자기 내 몸이 자랑스러워진 것은 아니다. 다만 혐오하지 않을 수 있을 뿐이지. 그러나 그 혐오하지 않음으로서 내 삶은 많이 바뀌었다. 더 이상 ‘사실’이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많이 편해졌다.  

   뚱뚱함은 상대적인 기준이지만, 어쨌든 난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뚱뚱한 여자다. 근데, 뭐, 어쩌라고.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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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투쟁을 원한다



유하림*

 


   엄마아빠는 이십대 시절 소위 말하는 운동권 이었다. 덕분에 어릴 적 부터 집회에 참여하곤했다. 그들 대신 나를 맡아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따라 나선 집회 였지만 신나게 ‘2MB OUT’을 외쳤다. 그 말에 담긴 의미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같은 구호를 외친다는 것이 그저 재밌었다. 그리고 열네살이 되었을 때 아빠 손에 이끌려 대안학교에 들어가게 됐다. 입학하고 2년 정도가 지나서 였을까, 친구들과 내가 조금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5.18에 관한 다큐를 보면 줄줄 흘렀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다 가슴이 뜨거워져서 친구들 몰래 눈물을 닦던 일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책상에 엎드려 시간을 때우거나 담담히 보던 영상들을 가슴이 벅찬 채로 시청했다. 나는 친구들과는 달랐다.  

   학교에는 운동권이었던 선생님들이 많았다. 그들에게서 한국 현대사와 정치, 경제 같은 것들을 배웠다. 처음으로 세상의 온갖 불의한 일들에 대해 알게 되어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주말에 열리는 집회에 나가는 것이었다. 그 때는 2011년 겨울이었는데 한창 한미 FTA 반대 집회가 열리던 시기였다. 평일에는 강원도에 있는 학교에서 기숙생활을 하고, 주말에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회에 나가는 것으로 보냈다.   

   솔직히 내가 스스로 찾아간 집회는 너무 지루했다. 영상을 보는 것 만큼 가슴이 벅차 오르지도 않았고 오히려 빨리 시위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잘 알아듣지도 못하겠는 말을 듣고 있으니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집회에 참여했다. 십대의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FTA 발효를 하루 남기고 있던 평일날에는 선생님께 매달려 수업도 빼고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했다. 그렇게 열정적이던 나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FTA는 2012년 3월 15일에 정상적으로 발효되었다.   

   너무 허무했다. 바뀔 수 있을 줄 알았다. 간절히 원하면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어른들의 말처럼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집회에 나갔다. 내 마음 속엔 역사적 존재로서의 사명감 같은게 있었다. 타고난 것도 있고, 어릴 적부터 보고 자라기도 했다. 당장은 내 일이 아닐지라도 결국엔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집회에 나갔다. 그러니까 의리로 집회에 간 것이다. 가면 지루할 것이 뻔한 집회를, 당장 바뀌는 것이 없을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시간을 내고 친구들을 모아 꾸준히 참여했다.  

   작년에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긴 투쟁의 역사를 지닌, 진보 대학이라고 손꼽히는 대학이다. 우리 대학에는 여전히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존재한다. 학생운동, 젊은 사람들이 꾸리는 운동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기존의 집회 문화와 다를거라는 기대였다. 그 기대는 얼마가지 않았다. 학생총회가 열리던 날이었다. 대학 구조조정에 대해 반대 하며 다같이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치자고 했다. 우리가 보고 자라온 것이 그것 뿐이어서 그랬던걸까? 대학에서도 지루한 그 구호를 외쳤다. 박근혜 정권이 퇴진한다고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 정권의 문제로만 다가가는게 실제 우리에게 닥친 일의 본질을 흐려버린다. 나는 대학 안에서 조차 의리로 투쟁 현장에 나갔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 불만이 쌓였다. 어렵게 시간을 내고 마음을 모아 참여한 집회에서 얻는 것이라고는 내가 이 곳에 왔다는 사실 뿐이라면 갈 필요가 있을까.  

   영화로도 나온 "리스본 행 야간열차"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다.’ 불의한 일에 대한 투쟁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 투쟁의 방식이 늘 똑같을 필요는 없다. 집회는 무언가 바꾸기 위한 행동이지만 동시에 퍼포먼스다. 기득권을 향한 퍼포먼스 이면서 집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퍼포먼스 이기도 하다. 모든 집회를 재밌고 웃기게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늘 비슷한 집회의 구조에서 벗어나자는거다. 30년 전에 부르던 민가를 부르고, 현 정권을 향한 퇴진을 요구하고, 각 소속집단의 대표들이 돌아가며 연설하는 집회말고, 가끔은 꿀같은 주말을 희생할 만큼 재밌는 집회를 원한다. 나는 현실적이던지, 흥미롭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춤이라도 출 수 있는 그런 집회를 원한다. 고등시절에 우연히 본 월가의 시위 장면이 아직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가면을 쓰고, 얼굴에 그림을 그리고, 피켓엔 제멋대로 쓴 글씨들을 채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월가를 점령했던 그들을 떠올린다. 재밌고 신나서 가고싶은 집회라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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