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지젝을 아느냐? (III)
: 지금, 여기서 다시 이데올로기를 묻다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지난 <49호>, <50호> 웹진에서 필자는 라깡을 경유한 지젝식 주체에 대한 해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고, 이를 위해 나는 지젝을 세상에 알린 책이자, 지젝 사상의 근거가 되는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에 나와 있는 라깡의 욕망그래프 하단에 대한 지젝의 해설을 인용하였다. 이번 웹진부터는 지젝 사상의 백미이자, 가장 중요한 이론적 틀이라 할 수 있는 실재(the real)에 대한 부분이 전개된다. 지젝식 ‘실재’가 사상사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하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이러한 지젝식 실재가 어떻게 정치학, 윤리학, 신학과 관련을 맺게 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것들이 함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앞으로 남은 과제들이다.
우선, 이번 웹진(51호)을 포함하여 앞으로 3회에 걸쳐 지젝의 실재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하겠다. 하지만, 그것은 지젝이 말하는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그 진상이 서서히 드러나는 마치 스무고개와도 같은 지난한 작업이다.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서 우리는 맑스주의 사상사에서 등장하는 백가쟁명에 대해 빠르게 살펴봐야 할 것이고, 알튀세와 라깡도 지나야 하며, 숭고의 미학과 헤겔 변증법 사이의 관계도 살펴야 한다. 이런 전체적인 틀 속에서 이번 웹진과 다음 웹진은 ‘이데올로기의 계보학’이라는 주제로 지젝의 이데올로기론에 주로 초점을 맞출 것이고, 그것은 알튀세와의 만남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지젝 시카고 강연사진: 지젝은 몇 차례 걸쳐 시카고에 방문했었다. 위의 사진은 가장 최근 2011년 10월에 있었던 시카고에 위치한 일리노이 주립대 강연 후 청중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지젝은 이날 ‘modern culture and its problem’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괴물, 지젝의 탄생!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지젝의 생애에 대해 간략히 돌아볼 필요를 느낀다. 지젝이 중앙무대로 진출하기 전까지 그가 겪었던 부침에 대해 잠시 살펴 본 후, 그 끝에 등장하는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1989)가 갖는 의미가 무언인지를 밝히면서 서서히 이 글은 본론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지젝은 1949년 구 유고 연방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났다. 유고의 공산주의는 소련의 휘하에 있었던 다른 동구 공산권과는 형태가 매우 달랐다. 티토라는 걸출한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 유고식 공산주의는 1948년에 공산권 내에서 민족주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스탈린이 주도했던 ‘일국혁명론’에 반기를 들었다. 이는 국제공산주의 운동 사상 최초의 항명사태로 기록되었고, 이를 계기로 유고는 소련에 의해 코민테른에서 제명당한다. 스탈린 사후에 유고와 소련이 겉으로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고는 하나, 양국 사이 공산주의 주도권을 둘러싼 자존심 경쟁은 티토가 사망한 1980년까지 계속되었다..
지젝은 이렇듯 체제 경쟁에서 소련과 대립각을 세웠던 유고식 공산주의 시스템속에서 성장하고 자랐다. 교조적인 소련식 공산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널널한(?) 유고 분위기속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서구사상을 흡입하였던 지젝은 슬로베니아 수도에 위치하였던 류블냐나 대학에서 공산권 학자로는 드물게 라깡과 데리다, 쥴리아 크리스테바, 들뢰즈 같은 프랑스 사상가들의 이론을 정리해 <프랑스 구조주의의 이론적, 실천적 타당성>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1975년), 하이데거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1981). 후에 지젝은 당시 공산권출신 학자로는 거의 유일하게 파리 8대학에서 라깡의 사위이자, 라깡의 모든 학문적, 물적 토대를 계승한 자크 알랭 밀레 밑에서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주제로 본인의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는다.(1985년).
공산권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탓에 유물론적 인식을 마치 공기처럼 받아들였던 지젝!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물론이 아닌 독일관념론의 완성이자 해체론의 발단이라 할 수 있는 하이데거를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는 후에 지젝의 거의 모든 저작에서 칸트와 헤겔에 대한 탁월한 독해를 가능케 했던 원동력이 되었다. 자크 알랭 밀레와의 만남은 어쩌면 지젝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지젝은 그를 통해 라깡을 만났고, 마침내 라깡을 넘어선다. 지젝은 자신의 거의 모든 지식체계가 그 무렵 파리에서 완성되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하지만, 지젝이 한창 지적 흡입을 하던 6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당시 세계는 미.소의 냉전체제가 팽팽히 지속되었던 시기로, 미국에서는 반공사상이 팽배하였고, 이에 맞서 동구권에서는 체제유지 차원에서 정통 맑시즘이 강조되던 시기였다. 물론, 유고가 소련식 공산주의와는 달랐다고는 하나 맑스와 레닌에 대한 숭배에 있어서는 별반 다르지 않았던 공산권 분위기 속에서 지젝은 정통 맑시즘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단권력으로부터 제외되었다. 이것이 오히려 지젝에게는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이렇듯 무척 특이한 지적 이력을 거듭하면서 점차 괴물로 성장한 지젝은, 마치 무협영화에서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15년 동안 산속에 쳐박혀 무술을 연마한 주인공이 하산하여 강호를 누비듯, 현대 사상계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지적 이단아로서의 이름을 휘날리기 시작한다. 그 영웅의 출몰을 알린 책이 바로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1989)이다. 
지젝이 쓴 대부분의 책들이 그렇듯이,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역시 제목부터 난해하고 자극적이다. 어떻게 ‘이데올로기’와 ‘숭고’가 한 제목 안에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마치 내게는 이런 낯설움이었다.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한 여름 오후 12시, 그날따라 웬일인지 고속도로에는 지나다니는 차 한대 없었다. 쫙 뻗은 고속도로를 100마일로 주행하고 있는 나!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전방에 검정색 물체가 놓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급 브레이크를 밟고 속도를 줄여 천천히 그 물체 앞으로 가까이 가 확인해 보니 검정색 시장 비닐봉지가 덩그란히 고속도로 한복판에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차문이 잠겨있는지를 재차 확인하고, 차창너머로 그것을 다시 똑바로 응시하였다. 작열하는 태양빛을 받아 녹아 흘러 넘칠 것 같은 아스팔트 위에 또렷히 놓여있는 검정 봉달이! 언뜻 보아도 물컹하고 질퍽한 질감이 피부로 전달되는 것이 느껴지고……차에서 내려 그 검정 봉지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지나쳐야 할까? 독자들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갑자기 내 눈앞에 펼쳐진 이 낯선 풍경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한다.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는 행위와 시장에서 순대와 내장과 간을 사서 검정 봉달이 안에 넣고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한 광경인가! 그런데 너무나도 일상적인 고속도로와 시장 검정 봉달이를 조합시켰더니 낯선 효과가 나타났다. 정말 이런 느낌이었다. ‘이데올로기’와 ‘숭고’를 한 권의 책 제목 안에서 동시에 접했을 때……갑자기 나는 고속도로 위에 놓여있는 검정색 시장 봉달이가 생각났다. 

이데올로기와 숭고, 그 어울리지 않는 조합

그것은 분명 잘못된 만남이었다. 이데올로기라는 정치. 사회적 용어와 숭고라는 미학적 용어가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가? 책 제목을 접하고서 나는, 맑스 이후 레닌을 지나 알튀세가 등장하기 전까지 맑스주의 발전과정에서 다양하게 등장했던 이데올로기론의 전사가 일단 빠르게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레닌과 함께 시대를 같이 했던 베른슈타인, 카우츠키, 트로츠키의 실패한 이데올로기론이 떠올랐고, 불꽃 같은 의지로 살다가 장렬히 전사한 로자 룩셈부르크도 생각났다. 그녀는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80년대 영국 수상 마거릿 대처보다도 수 십년 앞서, 인간해방과 혁명의 기수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진정한 철의 여인이었다. 그람시와 루카치는 맑스주의의 외연확장과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논의를 다양하게 이끌었던 장본인들이었고, 나중에 등장하는 맑시스트들에게 풍부한 영감을 제공하는 인물들이었다. 위에서 간략히 언급한 인물들과 그들의 이데올로기론은 사실은 하나하나가 세미나 제목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중요하다. 이렇게 복잡다단하게 전개되는 이데올로기론의 역사속에서 각각의 이데올로기들은 먼저 등장했던 이론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노릇과 후에 등장하는 이론에 대한 암시와 징후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반면, ‘숭고’는 어떠한가? 숭고는 미학적 용어이다. 우선, 칸트가 그의 감성론과 미학을 다룬 <판단력비판>에서 미와 숭고를 대비시키며 전개시키는 대목이 생각나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리오타르가 내세웠던 현대예술 안에 깃들어 있는 숭고미에 대한 찬양도 떠오른다. 요즘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세계관을 미리 예단한 학자였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언어철학에는 숭고에 대한 집착이 강하게 베어있다. 복제(요즘 유행하는 폼나는 말로 시뮬라크르)와 숭고가 아찔하게 교차하는 매력이 그에게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점이 근래에 등장하는 사상가들이 벤야민에게 훅 가는 이유일런지 모른다. 이렇듯 숭고에 대한 논의 역시, 물론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논쟁만큼 피비린내 나지는 않지만, 다양한 지적 지형 위에 위치한다.
그렇다면, 왜 지젝은 전혀 다른 계열상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와 숭고를 결합시키는 것일까? 혹 그 결합 안에 숨어있는 무엇, 아니 그 결합의 방식 내지는 서술의 형태가 지젝이 실재를 드러내는 패턴이 아닐까? 이러한 질문을 갖고 지금부터 지젝의 이데올로기론으로 진입할 텐데, 그 전에 우리는 알튀세를 경유해야 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알튀세를 걸고 넘어지는 이유

난데없이 지젝을 이야기하다 말고 알튀세를 끌어들인 이유는 분명하다. 지젝의 이데올로기비판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치는데, 특별히 지젝과 마찬가지로 라깡의 욕망이론에 의지했던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과의 대결을 통과하면서 그 윤곽이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웹진에서는 지젝 사상 이해의 중요한 정거장이라 할 수 있는 알튀세를 회고하는 시간을 잠시 갖도록 하겠다. 
알튀세는 맑스주의 진화과정에서 이전 이데올로기론과 이후 이데올로기론을 구분짓는 변곡점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맑스부터 68혁명 때까지 전개된 맑스주의는 범박하게 표현하자면 근대적 주체가 지녔으리라고 사려되는 보편적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밑에 깔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근대정신에 기반한 맑스주의는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대변되는 이론적 혼종성으로 인해 그 약발이 예전만 못하고,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탈주체적 사유를 내적 동력으로 내세우는 새로운 맑시즘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 도화선이 되었던 인물이 바로 알튀세였다. 그가 던진 패는 맑스주의 안에서 맑스주의 이론을 수정하고 쇄신하려는 시도들 중 사실상 마지막 카드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알튀세는 항상 현실적 문제의식 위에 자신의 사유를 위치시키려 했던 사상가였고, 이후 등장하는 많은 후학들에게 현실에 적합한 철학적.정치적 문제의식과 그에 걸맞는 비판적 무기와 이슈가 될만한 개념들을 지적 유산으로 남긴 20세기 맑시즘의 마지막 거목이었다. 알튀세로부터 바디우, 랑시에르, 발리바르가 나왔고, 지젝 역시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에 자극을 받아 본인의 이데올로기론을 예각화시킨 경우다. 둘은 공히 라깡의 이론을 교집합으로 삼고 각자의 이데올로기론을 전개시키고 있다. 하지만, 알튀세가 라깡의 초기이론에 근거한다면, 지젝이 관심하는 부분은 라깡의 후기이론이라는 점에서 양자간에는 분명한 간극과 갈등이 상존한다.

알튀세를 통해 바라본 맑스주의 논쟁사

앞서도 언급했듯이 알튀세는 맑스주의 전개과정에서 독특한 지점에 위치한다.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라고 할까? 여전히 스탈린적 교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련의 정통 맑스-레닌주의를 향해서도, 이에 대한 반론으로 등장하는 서구 맑시즘, 소위 휴머니즘적인 맑시즘에 대해서도 알튀세는 동일한 비판을 가한다. 이를 통해 알튀세가 궁극적으로 제시하고자 했던 맑시즘은 ‘탈향(脫鄕)적 맑스주의’ 내지 ‘반목적론적 맑스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알튀세적인 의미에서 역사란 하나의 원형으로 환원불가능하고, 하나의 목적으로도 통분불가능한, 오히려 아이러니컬하게도 反-역사적 시각을 가질 때야 비로소 그것의 전체적인 조망이 확보되는 그런 역사이다. 이를 위해 알튀세는 우선, 근대(성)의 획득이라 할 수 있는 주의(主意)주의, 진화론적 역사주의, 인간주의로부터 과감히 결렬한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알튀세가 노렸던 바는 분명하다. 우선은 헤겔이 완성한 근대철학의 주체론에 대한 비판이었고, 그 연후에는 헤겔과 맑스의 연결고리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런 차원에서 알튀세는 유명한 “맑스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를 제창하는데, 여기서 돌아갈 맑스는 헤겔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맑스, 즉 <1884 경제철학수고>를 썼던 당시 청년 맑스가 아니다. 우리가 돌아갈 맑스는 <자본론>을 쓴 성숙한 맑스, 즉 헤겔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맑스이다.
자본주의 전개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체의 역할, 즉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투쟁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논의는 엄격히 말해 맑스가 썼던 <자본론>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주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상품분석, 교환가치, 잉여가치, 노동의 사회적 성격 등 자본주의 운동법칙에 대해서만 이야기 했을 뿐이다. 맑스는 오히려 역사적 변혁의 주체로서의 개인보다는 체계(구조)에 우위를 두고 과학적으로 전체를 분석하려 했던 인물이었다. 알튀세는 이런 맑스, 즉 휴머니스트 맑스가 아닌 사이언티스트 맑스에 방점을 두었고, 이를 위해 라깡의 구조주의적 정신분석학과 공모한다.
이러한 알튀세를 향해 휴머니즘적인 맑시스트 루카치는 ‘자본주의 운동법칙에 대한 천착도 중요하지만, 그 법칙을 변형시킬 전망과 비젼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반문한다. 그런 다음  루카치는 알튀세와는 반대로 <1884 경제철학수고>로 돌아가자고 제안한다. 맑스가 이 책에서 주체의 의지와 실천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카치는 알튀세와는 다르게 휴머니스트 맑스를 주장하면서, <1884 경제철학수고>를 쓴 청년 맑스와 <자본론>을 쓴 성숙한 맑스가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하지만, 알튀세는 바슐라르가 썼던 “인식론적인 단절”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헤겔주의에 경도되었던 청년 맑스와 헤겔로부터 벗어난 성숙한 맑스를 서로 다른 맑스로 간주한다.
이상의 논의에서 보이듯 알튀세는 소련식 스탈린주의로 상징되는 공식적 맑스주의와 대결했을 뿐 아니라, 비공식적 맑스주의 (서구맑스즘 혹은 휴머니즘적 맑시즘) 진영과도 거리를 두었다. 그는 ‘전환시대의 맑시즘?’이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무엇이 맑스주의인가?’라는 질문에 정직하고 치열하게 온몸을 던져 답하려 했던 우리시대 사상가였고, 그 정신적 가위눌림으로 인해 (진짜로)미쳐버릴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사상가였다.  

에필로그

맑스주의의 과학성을 재건하려는 알튀세의 노력은 무의식을 구조로 파악한 라깡의 초기이론(상상계-상징계)에 기대면서 전개되었고, 그 흐름속에서 알튀세는 본인의 이데올로기론, 즉 이데올로기의 호명이론을 고안하였다. 하지만,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은 이론 자체의 정합성보다는 그것으로 인한 파장 때문에 더 유명해진 케이스다. 실례로 알튀세와 동시대 혹은 이후에 등장하는 맑스주의자들, 예를 들어, 데리다, 바디우, 랑시에르, 발리바르, 지젝, 라클라우와 무페 등이 맑스주의의 현재성에 대한 논의를 알튀세에 대한 계승과 극복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알튀세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떤 관점과 얼마만한 간격에서 알튀세를 받아들이고, 어느 지점에서 알튀세와 결별하는지를 따지는 것이 현대 맑시즘의 경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은 흠모의 대상이자 동시에 ‘공공의 적’이다. 그 한 가운데 지젝이 있다.

(다음 웹진에서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과 지젝이데올로기론 사이의 차이를 밝히면서 지젝의 실재개념으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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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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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3.03.12 23: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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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젝이 경희대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불온하다는(?) 철학자가 이제는 과다노출에 벌금을 때리겠다고 선언하기까지 이른(그냥 빨갱이라고 하지), 온통 '불온'히스테리에 젖어있는 땅으로 환영을 받으며 들어가네요. 지젝이 불온한 철학자가 맞는지? 아니면, 한국사회는 그 어떠한 불온에도 흔들림없는 안전한 사회는 아닐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백년동안 '불온'이라는 단어는 어쩜 이리도 강력히 작동하는지? 갑자기 '볼온'이라는 말이 옆집 똥개 처럼 느껴지네요.
  2. 2013.03.21 08:3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다행히도 그들은 지젝이 누구인지 모르는 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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