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방문 답사기
: 거리의 몰락, 기억의 종말, 그리고 MB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지난 7월 한달 간 한국을 방문했다. 2년 만에 찾은 조국은 정권이 바뀌어 있었다. 용산에서는 사람들이 불타 죽어갔으며, 전 정권의 대통령은 현 정권의 표적수사에 심한 모멸감과 자괴감에 빠져 자살했다고 누군가 내게 귀띔해 주었다. 내가 한국에 체류하고 있던 기간에도 방송법이 국회에서 한 바탕의 볼거리를 제공하며 통과되었고, 쌍용자동차 사태는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자살한 전직 대통령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도 가보고,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그 서글픈 건물에도 가봤는데 사람들은 모여있지 않았다. 옛날 같았으면 이 정도의 메머드급 사건들이 줄줄이 터졌더라면 뭔 일이 일어나도 벌써 일어났을텐데. 너무나도 고요하고 아무일 없다. 그래, 우리는 이제 그렇게 아무일 벌이지 않아도 꾸역꾸역 살 수 있게 되었다. 잘된 일이다. 하지만 한번 물어나 보자, 그 동안 무엇이 달라진걸까? 내가 서울에 와서 던졌던 첫 번째 질문이었다.

로보트 태권 V, 광화문 사거리에서 길을 잃다

과연, 서울은 달라져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현 대통령의 서울시장시절 업적이라는 청계천을 잠시 둘러보고 찾은 인사동은 현대와 고전이 조화된 어울림으로 많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니, 고전과 현대 그 어느 것 하나 살아남지 않은 동떨어짐으로 사람들을 토해내고 있다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세계화된 거리 인사동, 그곳 스타벅스 매장 간판은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쓰여져 있었다. [스 타 벅 스 커 피] 라고 말이다. 전통을 고수하려는 그 피맺힌 절규와 숭고함에 하마터면 눈물이 날뻔했다.

인사동을 끼고 있었던 피막골은 도심정비 사업때문인지 정리중이었고, 창경궁부터 시작해서 인사동 윗길을 지나 광화문으로 이르는 고즈넉한 그 길도 공사중이었다. 광화문 사거리는 무슨 광장을 조성한다는 팻말이 크게 붙어있었는데 머지 않아 완공된다고 한다. 지금쯤이면 완성이 되었으려나. 광화문광장 조성공사를 보며 광장 콤플렉스에 걸려있는 현 정권의 마스터베이션 같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는 것은 왜일까? 이렇듯 내가 살짝 돌아본 서울은 온통 파헤쳐져 있었다. 도시전체는 뉴타운 열풍으로, 대학은 경쟁력 있는 대학을 모토로, 거리 거리는 세계화된 도시에 걸맞게 요소요소에 스타벅스와 멀티플렉스 극장을 배치시키며 발빠르게 공사중이거나 그 변신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서울을 돌아보고 난 제주도로 내려갔다. 부모님이 그 섬에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제주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3학년이 되던 해에 서울로 올라왔다. 30년 만에 찾은 제주도 역시 변해 있었다. 관광코스를 개발하고, 해안을 따라 도로를 조성하며, 한라산 산간에 골프장을 건설하여 관광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야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도심은 30년 전과 비교 할 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지 2학년이었는지 확실히 기억은 안 나는데, 김청기 감독의 ‘로버트 태권 V’를 보러 갔던 극장이 여전히 남루한 채 보존되어 있었다. 그날 ‘로보트 태권 V’를 보고 하늘을 날아서 집으로 왔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표준전과와 동아전과를 사러 갔던 동네 어귀 ‘남문서점’도 그대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는 자식들에게 표준전과나 동아전과 한 권 사주는 것으로 부모님들의 1년 사교육비 지출이 끝이 났던 말도 안 되는 세상이었다.
동네 아이들과 저녁 먹고 나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했었는데, 술래가 손등에 이마를 대고 주문을 외우던 건물 대문 위엔 ‘제주소방공사’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다. 그 곳은 아직도 영업중이었다. 아버지에게 ‘제주소방공사’ 끝에 붙어있는 ‘공사’가 ‘한국방송공사’ 끝에 붙어 있는 ‘공사’와 같은 것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뭐라고 설명해 주셨는데…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다.

아버지가 나를 가끔 데리고 갔었던 다방이 도심 한가운데 있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친구분과 계란이 떠 있는 쌍화차나 다방커피를 드셨고, 내게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시켜주셨다. 난 그곳에 있었던 커다란 어항 속 금붕어 보는 것을 좋아했었다. 여행 기간 중 밤길 제주를 걷다가 발견한 불이 켜져 있는 30년 전 그 다방의 간판이 왜 그리도 나의 마음을 환하게 하던지. 다음날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거리의 몰락, 기억의 종말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조국의 무엇이 달라진걸까?  2년 만에, 아니 미국으로 유학간 지 5년 만에 찾은 서울의 무엇이 달라진걸까?  거리가 달라졌다. 동네가 변해 있었다. 정권이 바뀐 것 보다 내가 놀던 동네와 내가 활보했던 거리가 달라졌다는 것이 내게는 더 어색했다. 무작정 ‘그때 그 거리를 기억하십니까? 그때가 좋았죠’라고 말할 수는 없다. 더 큰 거리로 나가야 하고, 더 큰 세상으로 진출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 씁쓸한걸까?

거리와 동네가 사라지고 달라진다는 것은 이름이 없어지고 기억이 상실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제 예전 거리의 이름과 옛날 동네어귀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회상하는 것에 대해 낯설어하고 불편해한다. 그곳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바탕 싸움을 치르고 미끄러져 들어가 앉은 피막골에서 가뿐 숨을 몰아 그날의 전과를 과장하며 마시던 막걸리와 석쇠 위에서 구워지던 고갈비를 이제는 그 거리에서 먹을 수 없다.

인사동의 혹은 신촌의 어느 선술집에서 김광석이나 해바라기가 불렀던 노래들을 낮게 읊조리는데, 한 친구가 ‘지금이 그런 사랑타령이나 하는 노래를 부를때냐? 너 같은 뿌띠 부르조아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며 나를 몰아친다. 나도 열 받아 ‘변혁에 참여하는 사람은 사랑을 하면 안 돼냐구. 혁명이 식어버린 심장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면 난 기꺼이 빠지겠다’며 고래고래 티격태격 각자의 진정성을 알아달라고 우겨대던 철없고 유치했던 그 시절! 그때의 거리와 그 당시 동네가 사라져 버렸다. 그곳에서 함께 놀던 사람들까지도. 그래서 불안하다.

혹시, MB가 민중들이 지니는 기억의 매커니즘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마다 4월과 5월 그리고 6월이 되면, 거리와 광장에서 출렁이며 메아리 쳐졌던 민중들의 율동과 함성 안에 감추어져 있는 봉기의 기억과 그 기억의 반복이라는 매커니즘을 말이다. 그것이 지니는 파괴력을 성실히 학습한 후 그것에 대처하는 자세를 MB가 이미 터득한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그가 우선적으로 민중들이 지닌 기억의 연쇄고리를 하나씩 절단하기로 작정을 했고, 그 잘려나간 지면을 잘 다지고 정리하여 새로운 기억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라면? 새롭게 조성된 광장과 거리에서 제한적으로 뛰어 놀게 하고, 폼 나게 단장된 동네에서 세계시민이 되어 촌티내지 말고 세련되게 그 문화를 향유하라고 다독이고 있다면 말이다.

다시 보자, MB!

점점 발전하는 터미네이터나 에어리언처럼 MB정권은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와 학습을 거쳐 이제는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트랜스포머와 같이 진화한 정권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한국 방문 기간 내내 스멀스멀 올라와 기분이 엿 같았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MB 정권을 향해 실소와 비웃음, 격멸에 찬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는데, 한 달 가까이 그가 다스리는 땅을 밟으면서 그의 진정성을 느끼며 그가 결코 호락 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깨닫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칙과 소신을 강조했는데, MB는 노무현보다 훨씬 더 자신의 원칙과 소신에 철저하다. 노무현이 걸어갔던 정치·문화적 행보와 경제적 측면간의 행보가 갈지자였다면, MB는 정치, 경제, 문화적 정책 어느 것 하나 흔들림 없이 수미일관 하다. 그 누가 뭐라고 하든 전혀 동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MB는 노무현 보다 훨씬 더 자신의 원칙과 소신에 철저하다. 무엇보다 이 정권이 악한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숨겨진 욕망을 깨우고 부추긴다는 점이다. 마치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뱀과 같다. 우리의 ‘이드’와 우리 ‘에고’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MB에게, 당신의 리비도에 충실해도 괜찮다고 국가가 그것을 보장하겠다고, 그러니 당신의 욕구를 구태여 ‘슈퍼 에고’를 작동하여 다스리려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해주는 MB의 속삭임 앞에 우리가 모두 못 이기는 척하면서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우리를 멈춰 서게 했고 모이게 했던 ‘민주’와 ‘통일’, 우리를 춤추게 하고 고함지르게 했던 ‘평등’과 ‘인권’, 우리를 울게 하고 웃게 했던 ‘정의’와 ‘자유’라는 강력한 ‘슈퍼 에고’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 하나하나의 기억이 서려있는 우리의 거리와 광장과 동네를 MB가 집요하게 파헤치고 뒤엎어 고쳐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사들은 지금도 진행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욕망의 눈덩이를 끊임없이 증폭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MB정권을 유령처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뉴타운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어 사람들의 ‘이드’을 한껏 부풀리고, ‘영어공교육’이다 ‘특목고’다 하면서 자식들을 볼모로 부모로서의 ‘에고’에 어떻게 하면 충실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차라리 표준전과와 동아전과 하나로 자녀교육이 모두 해결되던 우리 부모 세대가 더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세계화된 경제시스템 아래에서 전통적인 고용정책과 경제운영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다. 기업마다 구조조정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노동시장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경제가 살아난다. 그러니 언제 잘릴지 모른다. 미리미리 자기 앞길, 자기 밥벌이 잘 챙기고 미래를 위해 긴 안목으로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잠시 한눈 팔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그러니 열심히 뺑이쳐라. 그래야 살아남는다. 명심하란다. 그것이 이 시대의 정언명법임을.

에필로그

다시 시카고로 돌아왔다. 악몽에서 깨어난 느낌이다. 이명박이 다스리는 땅에 내가 없다는 안도감과 이명박이 다스리는 땅을 내가 떠나있다는 면목없음이 널을 뛰는 요즘이다. 몇 년후 내가 돌아갈 때쯤이면 서울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로보트 태권 V’는 지구를 잘 지키고 있을까? 제주에 있는 ‘남문서점’과 ‘제주소방공사’는 무사할까? 우리가 정말 대단한 놈을 만난 것일까? 별것 아닌데 내가 너무 오바하나? 어쨌든…

두 눈 똑바로 뜨자.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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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진양
    2009.09.08 14: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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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목락" "기억의 상실" 대단히 묵직한 화두입니다. 이번 한국 방문이 아마 큰 충격이었나 봅니다. 정신이나 이념보다는 물질적 풍요를 위해 내 달리는 한국의 현실을 꿰뚫는 화두인 것 같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나쁜 피
- 저들의 폭력 배후에는 ‘텅 빈 앙심’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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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기드온은 가나안 중부 이북의 이스라엘 부족들 사이에서 유포됐던 영웅설화의 주인공이다. 므낫세, 납달리, 잇사갈, 즈블론 부족 등은 부족연합 시대 이스라엘 가운데서 변두리 부족들이지만,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성서의 여느 영웅들을 압도하는 걸출한 스타임에 분명하다. 「사사기」에 나오는 다른 이들보다 분량도 길게 다루어져 있고, 막아낸 외적의 규모도 다른 사사들을 압도한다. 훗날 국가 이전 시대의 설화를 모아서 영웅전을 만들어낸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 사관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북방 변두리 부족들의 영웅을 자신들의 영웅보다 더욱 부각시키는 것은 분명 이례적이다. 필경 기드온 이야기는 점차 북부 부족들의 차원을 넘어서 전 이스라엘 대중 사이에서 매우 유명해진, 전승과정에서 이른바 ‘전국구 스타’가 된 덕이겠다.

이 글의 핵심 소재는 이 걸출한 영웅 기드온과 그의 아들 아베멜렉이다. 「사사기」에 의하면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후처의 자식이다(8,31). 하지만 「사사기」 본문이 그에 대해 악의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본처의 자식이 아닌 후처의 자식이라는 주장은 그리 믿을만하지 않다. 그러니 여기서는 그냥 아들이라는 점만 고려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아비의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70명이나 되는 배다른 형제들을, 요행히 살아남은 단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학살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또한 그는 자기를 따르지 않는 족속들을 공격하고 무참히 학살한다.

설화의 배경은 아직 왕이 없던 때다. 아직 누군가 권력을 독점하고, 공물을 수거하고, 자기를 따르지 않는 이들을 마음대로 학살하는 왕권적 권력전통이 등장하지 않던 때다. 그럼에도 그는 아비의 권력을 세습하여 독점하는 자가 되었고, 마치 왕처럼 행세한다. 도대체 그는 이것을 어디서 배웠을까.

반면 그의 아비 기드온은 전혀 다른 인물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는 미디안 족속이라는 강력한 유목집단의 침략을 막아낸 전쟁영웅이었음에도, 부족의 장로들이 그를 ‘군장’1)으로 위촉하려 하였으나 이를 물리치는 겸손함을 보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 뒤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장군께서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 주셨으니, 장군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대를 이어 아들과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기드온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아들도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주님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 「사사기」 8장 22~23절

게다가 ‘왕(군장) 없는 부족동맹’2)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에브라임 지파가 그를 의심하자 동맹의 정신에 대한 신실함을 보인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8,1~3). 또한 그는 가문의 신상인 바알과 아세라 상을 부수고 야훼의 제단을 집안에 모신 신실함의 상징이기까지 하다(6,25~26). 요컨대 그는 충분히 ‘왕’이 될 수 있었으나 사심 없는 겸허한 영웅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아비멜렉은 업적도 없으면서 아비의 영웅적 공적을 도둑질한 존재다. 아비의 겸허함과는 반대로, 통치자의 오만함과 잔인함을 과시한 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다 왕국의 사관들의 시각을 반영한 「사사기」 서사의 이면으로 들어가 보면, 텍스트 속에 힐끗힐끗 드러나는 이전 시대의 역사적 정보들은 기드온에 대해서 전혀 다른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우선 그의 집안은 동시대 다른 집단보다 훨씬 부유했고 권세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6장 25~26절에서 그의 집단에 바알과 아세라 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정보다. 「사사기」를 쓴 유다 왕국 말기의 사관들은 예루살렘 성소 이외의 것을 사교라고 보면서 일종의 단일교적 신앙의 야훼종교화를 모색했다. 그런 시각에서 기드온의 신상 파괴 이야기는 우상 파괴의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기드온이 살던 사사시대는 단일종교사회가 아니었다. 많은 신들이 마을마다, 씨족마다, 부족마다 다양하게 숭배되었고, 어느 집안이 신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 마을/씨족/부족의 중심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대다수 마을들은 바알과 그의 파트너인 아세라 신을 숭배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스라엘 부족동맹은 야훼동맹이었다. 즉 야훼가 동맹을 추동하는 신이었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본문을 다시 해석하면, 기드온이 바알-아세라 신상을 부수고 야훼 성소를 세웠다는 것은 기드온이 이제 자기 집안은 마을을 대표하는 집안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집안이라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제 그의 가문은 지파동맹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경쟁에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70명의 아들을 두었다고 한다(8,30). 군장이 이 정도의 아들을 두었다는 건 다소 과장되어 보이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그가 ‘왕 없는 사회’로서의 지파동맹의 평등 가치와는 판이하게 다른 세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추정에 이르게 된다. 또 침입자인 미디안 족속을 무찌른 뒤, 전리품의 일부를 부족들로부터 수거하여 ‘에봇’이라고 하는 어떤 조각상을 만들어 가문의 상징물로 삼았다고 하는데(8,24~27), 이는 그가 일종의 왕 행세를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나아가 미디안 족속과의 전쟁 과정에서 자기에게 협조하지 않은 제3자인 숙곳 족속과 브누엘 족속을 학살하는 모습(8,16~17)은 잔인한 전제군주의 정복전쟁을 연상케 한다.

그렇다면 아비멜렉의 모습과 기드온의 모습은 무엇이 다를까. 둘은 아직 왕이 없던 사회, 군주제 사회와는 달리, 아직 권력 집중을 향한 구심력이 그리 강하지 않던 사회, 특히 권력 집중보다 평등한 공존의 가치가 유달리 강했던 사회에서 이들 부자(父子)의 모습은 이스라엘이 추구하던 가치의 정반대를 향한 길의 최전면에 서 있는 존재로서 마치 하나처럼 닮아 있다. 「사사기」의 서사 속에서는 아들이 아비의 다른 자식들을 학살함으로써 아비와는 더 이상 공존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음에도, 아들은 너무도 정확하게 아비의 방식대로 사람을 대함으로써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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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Sadao Watanabe의 <Abimelech's Downfall>(1975)

여기서 우리는 이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나쁜 피’를 보게 된다. 그것은 물론 생물학적 연결고리만은 아니다. 자기 시대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한 선택이 또 다른 위기를 낳았다. 그 선택이 한 집안의 특권화로의 길을 더욱 심화시켰고, 비록 그 집안의 지도자가 명목상의 군장직을 거절했을지라도, 그는 사실상 세습적 통치자인 군장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의 혈통에서 또 다른 통치자가 나왔다. 그는 자기 아비만큼이나 피를 좋아했고, 심지어는 경쟁자인 자기 형제들조차 학살하는 주역이었다.

그의 외가 친척이 그의 부탁대로 세겜 성읍의 모든 사람에게 그가 한 말을 모두 전하니,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 기울어져서 모두 “그는 우리의 혈육이다” 하고 말하게 되었다.
―「사사기」 9장 3절

그런데 이 세습되는 ‘나쁜 피’에 관한 역사적 악취가 지금의 세상 속에서도 풍기고 했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이 글을 쓰는 동기다.

사사시대는 대략 2백년 정도 지속되었는데, 한국의 민주화는 고작 20년 정도 제도화의 길을 모색했을 뿐이다. 하지만 실은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민주적 제도화를 향한 본격적 모색은 훨씬 더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민주화’는 그것을 열망하던 대중에 의해 기각되었다. 오늘 우리 시대 대중의 피로감의 근저에는 물론 좌절된 민주화에 대한 실망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또한 지구적 자본의 난폭성에 대한 두려움, 민주화는 그것의 대안이 아니라는 대중적 인식이 그 주된 원인임은 의심의 여지없다.
 
하여 너무도 빠르게 민주화 대신 ‘포스트 민주화’의 문제가 새로운 정치적 의제로 부상하게 되었다. 한국의 민주화가 권력집중 체제에 대한 해체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면, 포스트 민주화 담론은 새로운 사회적 통합의 가능성에 지대한 관심을 함축하고 있으며, 특히 경제 성장에 대한 강렬한 열망에 크게 의존하면서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실용정부’를 기치로 내건 MB체제가 대두한 것이다.

하여 처음엔 ‘실용’이라는 것이 이 체제 해석에 화두라고 생각했다. 비판자들인 우리만이 아니라, 심지어 현 정부의 주역들 또한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 참신한 용어로 자기를 해석하려 했을 것이다. 한데 그것은 실제를 구성하는 데 어떠한 영향력도 갖지 못하는 말장난임이 곧 드러났다. MB정부는 처음부터 ‘원한의 정치’에 몰두하였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그들은 마치 민주화의 주역들이 구상했던 것 일체를 제거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인양 10년간 삐거덕거렸던 빈약한 제도적 흔적들을 난폭하게 지워버리려 했다. 심지어 민주정부의 주역들은 권력형 비리 혐의로 정치적 존재의의를 박탈당하기까지 했다.
 
단지 10년일 뿐인데, 근대국가체제가 형성된 식민지 체제 이후부터 계산해도 권위주의 시대가 1990년대 말의 이른바 IMF 체제까지 거의 한 세대동안 계속된 것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기간만 반권위주의적 제도화가 그나마 삐거덕거리며, 어찌 보면 위선적으로 진행되었을 뿐인데, 그것이 그렇게 참을 수 없는 모욕감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누가 일사분란하게 지휘한 결과라기보다는 기득권집단이 도처에서 무차별하게 원한의 정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의 수많은 정치적 행동들 속에는 원한의 정치가 분리할 수 없게 얽혀 있다는 것이다.

원한의 정치가 작동되는 동력은 ‘복수’다. 복수할 수 없는 이의 앙심은 자기 내적 병증을 낳지만, 복수할 능력을 갖춘 이의 앙심은 심각한 폭력을 낳는다. 하여 복수의 정서는 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직 되갚아주어야 할 것을 갑절로 되돌려주는 폭력만이 남을 뿐이다.

도대체 그 짧은 기간이 왜 저들에게 그토록 모욕감을 주었을까. 그 빈약한 민주적 제도화의 시도가 그렇게 치명적이었을까.

이른바 저 ‘잃어버린 10년’ 간 한국의 기득권 집단은 전례 없는 비대칭적 부를 축적했다. 개발이 본격화된 1960년대 이후 빈부격차가 가장 극심해졌다. 특히 일부 재벌이나 몇몇 기업은 정부를 압도하는 권력자원을 독과점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에서 천박하든 고상하든 귀족주의적 문화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요컨대 이 기간 동안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결코 모자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원한의 정치가 잔인하게 춤을 춘다. 도대체 무엇을 잃었기에 모욕감을 느끼고 앙심을 품게 된 것인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겨우 10년간, 기나긴 권위주의 체제를 거치면서 뿌리 깊게 ‘지배자 의식’이 훼손되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권위주의적 지배자들은 시혜를 베풀지언정 피지배자의 요구에 대화하면서 자원을 나눌 수 없는 존재다. 그런 지배자의 자존심이 민주화, 그 삐거덕거리는 10년 동안 상처를 받았던 것이 아닐까.

최근의 국가폭력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비록 불충분하더라도 민주화를 거친 사회로서는 용인할 수 없는 ‘야만의 행실’을 보인다. ‘나쁜 피’는 다시 비시민으로 추락한 이들의 목을 옥죄고 있고, 시민의 영혼과 육체를 잠식하고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 뿌리 내린 ‘나쁜 피’가 다시금 시대의 혈관을 관류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다시 활개 치는 그럴듯한 이유는 없다. 단지 사소하게 다친 권력자들의 앙심이 이유라면 이유다. 거기에는 정치가 부재하며, 정책의 일관성도 없다. 다만 폭력이 그리운 이들의 나쁜 피가 앙심 때문에 자제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하여 다시금 직면하게 되는 것은 나쁜 피가 다시는 흐를 수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부족사회에서 고대국가사회 사이의 중간단계로 알려진 부족연합사회를 신진화론적 고고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군장사회(chiefdom society)라고 부르곤 한다. 이때 부족연합의 지도자인 ‘군장’은 일단의 씨족들의 통치자가 세습적 지위를 갖게 되는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를 가리킨다. 국가 이전 시대라는 점에서 군장은 왕이라고 할 수 없기도 하지만, 동시에 원초적 국가의 지도자라는 점에서 일종의 (의사)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위의 「사사기」 8장 22~23절에서 장로들이 기드온을 자신들의 ‘군장’으로 추대하고자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2) 사사시대 이스라엘에는 세습적 권력이 여간해선 등장하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모세 최후에 관한 설화(「신명」 34장)는 이 동맹이 세습적 권력에 대해 저항하는 어떤 기조가 강하게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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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트 : 자명한(doubtless) 것을 의심(doubt)하라

유승태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다우트(doubt)’.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의 제목이다. 유명한 연기파 배우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플린 신부 역)과 메릴 스트립(알로이시스 수녀 역)이 열연했다는 것이 무색하게도, 올해 초 개봉했던 이 영화를 기억하는 이가 별로 없다. 그러니 이 영화가 ‘망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영화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블로그나 여러 인터넷 글들을 살펴보니 그 반응이 흥미롭다. 마치 영화의 의미에 대해서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듯 일종의 합의가 있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 본 영화평들의 공통점을 요약하면, 애초부터 잘못된 믿음에 근거해 누군가를 의심(doubt)하던(유죄를 확신하던) 원장수녀가 결국 자신의 확신을 회의(doubt)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 청년부 사람들과 이 영화에 대한 인상을 함께 이야기했을 때 나왔던 이야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대다수 사람이 이 영화를 읽는 방식에 일종의 ‘합의’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꼭 ‘오버’는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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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은 의심할 필요 없이 자명해(doubtless) 보이는 ‘교훈’이 아니라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영화’라는 단어를 ‘삶’이라는 단어로 바꿔 보면,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수용하고 있는 삶의 전제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확고한 지위를 얻게 되는지, 그리고 그 전제들을 성찰하지 않는 것이 현실에서 어떤 효과를 낳고 있는지 사유할 수 있는 단초를 우리는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플린 vs. 알로이시스, 당신은 누구에게 끌리는가?

이 영화의 스토리 전개를 끌고 나가는 주된 동력은 한 카톨릭계 학교에서 벌어지는 주임신부 플린과 원장수녀 알로이시스의 갈등과 대립이다. 이들의 갈등은 새내기 수녀 제임스가 자신이 목격한 플린 신부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원장수녀에게 고백하면서 수면 위로 부상한다. 제임스 수녀는, 수업 중 도널드 밀러를 사제관으로 불렀던 주임신부가 도널드의 속옷을 사물함에 갖다 놓는 것을 목격하고 원장수녀에게 이를 이야기한다. 도널드가 사제관에 다녀온 후 ‘겁에 질린 듯 이상한 자세로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술냄새가 났다’는 의혹 혹은 의견도 이야기에 덧붙여졌다. 제임스 수녀의 말을 듣고 ‘이제야 확실한 것을 잡았다’고 확신한 원장수녀는 주임신부를 ‘권력형 아동성추행범’이라 단정 짓고 그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주임신부가 ‘설마 이렇게 좋은 사람이 그런 범죄를 저지를 리가 없다’고 믿고 싶을 만큼 타인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말과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는 점이다. 반면, 원장수녀는 주임신부와 대조적으로 말과 행동이 차갑고 권위적인, 한마디로 ‘비호감’인 인물이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의심을 증명할 ‘직접적’ 증거를 명확하게 제시하지도 않는다. 비호감 원장수녀가 ‘증거’도 없이 호감형 주임신부를 몰아붙이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기본 얼개이다. 원장수녀의 ‘쥐몰이’같은 공격에 질린 주임신부는 마치 자신이 큰 양보를 하듯 학교를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학교를 떠난 주임신부는 더 좋은 직위로 ‘승진’해 자리를 옮긴 것이다. 이 때문에 마지막 장면에서 원장수녀는 “나에게 (믿음에) 회의가 생겼다”는 절규를 한다.(그녀는 ‘진실은 승리한다’는 믿음을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결부시키고 있었던 듯하다.)

이 영화는 절묘한 대사의 배치와 장면 구성으로 인물들의 갈등을 첨예하게 보여주고 있으므로,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만으로는 이 영화의 느낌을 도저히 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위의 이야기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정식화하는지를 보는 데에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를 정식화하는 가장 흔한 방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편들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방식은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의 갈등관계에서 어느 쪽이든 한쪽이 ‘옳은 편’일 것이라는 전제 하에 영화의 서사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이 영화는 원장수녀의 의혹을 정당화해줄 증거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원장수녀는 터무니없는 의혹을 진실인 양 여기며 엄한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인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블로거들이 자신의 영화해석을 어떤 방식으로 현실에 오버랩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쉽게 확인된다. 한 블로거는 미네르바 사건과 용산참사를 예로 들며 이명박 대통령과 경찰 등이 보이는 행태를 원장수녀의 그것과 동일시하고 ‘도덕적 확신범’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함께 이야기했던 교회 청년들 사이에서는 한국 보수세력의 터무니없는 태도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알로이시스 수녀를 비판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편들기’가 실패하는 지점

그런데 사실 영화에서 제시된 ‘불충분한 증거’를 문제 삼는다면, 의혹을 제기한 원장수녀만 비난할 수는 없다.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의혹의 당사자인 플린 신부도 자신의 결백을 명확하게 증명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가 보이는 몇몇 태도는 그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원장수녀의 면담 요청으로 학교를 방문한 도널드의 어머니(밀러 부인)를 보고 긴장하는 장면, 알로이시스 수녀가 플린의 예전 교구 수녀에게 그에 대해 묻기 위해 전화를 했다는 말을 듣고 ‘왜 주임사제가 아니라 수녀에게 전화했냐’며 흥분하는 장면, 알로이시스가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다그치자 ‘수녀님도 죄를 지은 적 있으시죠?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라고 딴소리 하는 장면 등이 그 예이다. 알로이시스 수녀나 플린 신부나 모두 자신이 옳고 상대가 틀렸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우리는 명확하게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누군가를 편드는 방식으로 이 영화를 해석하는 것도 쉽게 정당화될 수 없는 읽기 방식인 것은 아닐까?

이런 측면에서 영화를 다시 살펴보면, 이 영화는 오히려 애초부터 특정한 이를 편드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이 영화가 은유와 생략을 무수히 나열하는 방식으로 장면들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 원장수녀와 제임스 수녀의 대화, 원장수녀와 주임신부의 논쟁, 원장수녀와 밀러 부인의 대화 등에서 대화의 주체들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명확하게 지칭하기를 회피하며 끊임없이 은유적인 표현과 암시들을 나열한다. 가령, 알로이시스 수녀는 플린의 혐의가 ‘권력형 아동성추행’임을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고, 밀러 부인도 자신의 아들이 동성애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직접 말하지 않는 식이다. 오히려 자신의 결백을 정돈된 언어로 명확히 지칭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알로이시스가 플린에게 두는 혐의는 더 짙어진다. 때문에 이 영화 속의 대화들은 의미를 고정시키고 의사소통을 순조롭게 하기보다는 모호함만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우리는 이들의 대화나 표정, 몸짓 등 이 모든 것이 어떤 의미의 경향성 안에 포섭된다고 생각한다. 즉, 이 영화는 의미의 공백을 만드는 방식으로 서사가 구성되나, 영화를 보는 이는 그 공백을 채우는 방식으로 서사를 이해한다. 그리고 이렇게 의미를 채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편들기’를 하게 된다.

‘호감=진실’ vs. ‘비호감=거짓’ 구도 뒤틀기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영화가 초반 장면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호감 vs. 비호감’과 ‘옳은 것 vs. 그른 것’의 배열을 의도적으로 교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영화의 앞부분은 알로이시스와 플린의 갈등이 시작되기 전 이들이 각기 어떤 캐릭터인지를 묘사하는 데에 치중하고 있다. 한 장면 한 장면 교차하며 두 인물에 대한 묘사가 대립되는데, 두 인물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기 전까지 전개됐던 장면에 편의상 이름을 붙여보면 다음과 같다. <플린의 강해>-<등교 시간>-<교실>-<수녀들의 식사>-<학생 식당>-<교실>-<농구장>-<신부들의 식사>. 이러한 배열 이후 알로이시스는 자신과 플린의 대립을 ‘진실 대 거짓’의 구도로 보고 플린이 은폐하고 있는 거짓을 드러내기 위해 그를 표독스럽게 몰아간다. 반면 플린은 오히려 자신이야말로 진실의 자리에 있고 알로이시스가 거짓의 자리에 서 있다고 항변한다. 아마 위에서 이야기한 장면들 중 <신부들의 식사> 장면이 없었다면 플린의 시각으로만 이 영화의 갈등을 이해하는 것이 별 문제가 없었을 수 있다. <신부들의 식사> 장면은 핏물 흐르는 고기를 탐욕스럽게 먹으며 뚱뚱한 모녀에 대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플린과 두 명의 나이든 신부를 담고 있다. 장면 배치 속에 호감=플린, 비호감=알로이시스의 순서를 분명하게 지켜오던 것을 상기해보면 이 장면은 분명 이물질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이물질 같은 장면 때문에 우리는 ‘부당하게’ 누군가를 편들지 않고도 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하면, 이 영화를 본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로이시스 수녀가 부당한 의혹을 전제로 한 신부를 괴롭혔으나, 결말에서 플린 신부가 오히려 승진이라는 보상을 받고 알로이시스는 자신의 확신에 회의를 품게 된다고 보는데, 이러한 해석은 전적으로 플린의 시선으로 이 영화를 보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무엇이 ‘사실’인지 우리에게 ‘객관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서로 자기가 옳다며 대립하는 두 개의 주장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한쪽의 주장에 쉽게 감정이입한다. 그리고 다른 한쪽이 진실일 가능성은 거의 생각해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무서운 상상을 해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플린은 이곳저곳 자신이 옮겨온 곳마다 거기서 따돌림 당하기 쉬운 아이를 보호하는 척하며 사실은 성폭력을 행사한다. 그는 권위적이지 않고 사교적이며 언변도 좋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윗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다. 그래서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평소 비호감이던 한 수녀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플린이 성범죄자라는 ‘되도 않는 소리’를 하고 다닌다. 사람들은 그 수녀를 더 미워하게 되고 나아가 그녀를 학교에서 쫓아내기로 결정한다.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플린을 지지하는 사람이 바로 ‘나’일 가능성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공감의 체계’ 속에서 작동하는 ‘죽임의 질서’

<신부들의 식사> 장면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은 우리가 이 영화를 감상하는 태도에 우리의 삶의 태도가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우리가 내리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들은 우리에게 내면화된 ‘선호’ 또는 ‘공감’의 체계와 칼로 자른 것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가 옳다고 굳게 믿고 했던 행동들을 시간이 지난 후에 되돌아보면 그다지 일관성 있지도 않고 심지어 서로 모순되는 지점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일관성 있게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우리의 ‘올바른 행위들’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플린 신부의 시선을 빌려 현 정권과 보수세력의 아집과 편견을 비판하며 그들을 ‘적’으로 규정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이 내면화한 아집과 편견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행위들은 이 사회 보수층의 ‘아집과 편견’을 옹호하고 있다. ‘뉴타운’과 ‘경제성장’이라는 구호 혹은 정책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같은 편’으로 만들었는지를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동시에 이 ‘같은 편’들은 광우병에 반대하며 ‘미친소, 너나 처먹어’라는 공통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말을 따라 ‘서로 사랑하자’고 말하기도 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며 ‘지못미’를 부르짖기도 했다. 그런데 이 ‘같은 편’들이 마치 용산참사는 ‘그런 일이 있었나’ 생각하는 듯 조용하다.

이 글의 논지를 이해하는 이라면, 지금 용산참사를 언급하는 것이 단순히 용산참사 현장에 나가서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거나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할 것이다. 또한 이 글의 목표가 현 정권과 보수세력의 편에 서서 그들에 대한 비판에 반비판을 하거나,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에게 편드는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도 이해할 것이다. 요점은, 상대가 ‘틀리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을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세대, 계급, 이념적 성향의 사람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을 사람마저 그에 대한 추모 의례에 참여했던 것을 돌이켜볼 때, 세대, 계급, 이념, 이해관계 등을 기준으로 나뉜 ‘적’은 ‘나’와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적과 동지의 명백한 대립이 은폐하는 ‘공감의 체계’, 그 공감의 체계가 있기 때문에 작동하는 ‘죽임의 질서’, 그리고 죽임의 질서에 ‘공모하는 자로서의 나’에 대한 성찰과 반성에까지 이르지 않는 한 ‘참사’는 계속될 것이다.(‘참사’의 의미는 여러분 각자가 채우시라. 우선 나는 그 자리에 ‘이명박 정권’을 두겠다. 바꿔 말하면, ‘이명박 정권’은 ‘적’이라는 실체가 아니라 ‘참사’(=사건)이다.)

결론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알로이시스가 자신의 패배에 절규하는 장면을 보며 통쾌함을 느낄 것이 아니라 영화의 서사를 모호하게 하고 교란하는 그 지점에 착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서도 우리가 굳게 믿는 ‘편들기’의 기준들이 어느 지점에서 교란되고 있는지 성찰하는 것이 우리가 죽임의 질서를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이러한 자기 성찰의 과정이 구원과 해방의 과정인 것은 아닐까.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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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열매실
    2009.07.22 17:5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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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어내려 가면서 "공감"이 갔다, 안 갔다 했는데,
    "마지막에 엘로이시스가 자신의 패배를 절규하는 장면"이라는 지점에 와서는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본 바로는, 엘로이시스의 마지막 대사는
    "나는 너무 의심스러워!"였던 것 같습니다.
    (명확하진 않지만 그런 뜻이었다고 봅니다.)
    여기서의 의심은 무엇을 향한 것이었을까요?
    저는 이 말이 많은 것을 내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의 표현을 빌자면, 자신이 어떤 사람의 편에 섰느냐에 따라서
    엘로이시스 자신의 확신이 될 수도 있고
    플린 신부의 행동일 수도 있고, 둘 다 일수도 있겠지요.
    심각하게 말하면 옳고 그름, 윤리와 비윤리 혹은
    자신이 절대화하고 있는 신앙 자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엘로이시스 비호감, 플린 호감이라는 구도도
    내키지 않습니다.
    겉보기에 냉정하고 완고한 종교인 같지만
    적어도 엘로이시스는 이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고자 했고
    자기 나름의 정당한 절차를 밟으려 했습니다.
    플린 신부에게 직접적으로 물었고, 아이의 어머니에게 충고했으며
    플린 신부의 직설적인 물음에 정직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입장과 위치에서 해야 할 바를 한 것이지요.
    플린 신부가 부드럽고 따뜻하고 원장 수녀에 비해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그 중요한 식사 장면'에서 보듯이
    비만하지만 단것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을 절제하기가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는 약자처럼 보이지만, 남자의 특권인 강론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을 향해 거침없는 독설을 퍼붓기도 합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왜 신부에게 묻지 않고 수녀에게 물었느냐고
    따지기도 하고, 너는 죄 지은 것이 없느냐고 강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 신부들의 회의를 통해 영전해 갑니다.
    하지만 그의 영전이 그의 결백을 보증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로 인하여 엘로이시스의 "의심", 그리고 관객인 저의 의심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제 생각엔 감독이 비교적 이 두 상반된 인물의 됨됨이와
    사건의 전개 과정을, 그 어느쪽의 편도 들지 않고
    공평하게 전개시키며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편을 들고 공감하는 건 관객의 자유겠지만,
    이 영화의 메시지를 어느 한 사람의 승리로 읽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결국 "인간의 의심"에 관한 영화이고
    진실에 관한 영화이고, 더 나아가 과연 그 진실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용산도 마찬가지겠지요.
  2. 유승태
    2009.07.22 21:5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열매실님께..

    답글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다 써놓고 보면 꼭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발견되는 것 같습니다.
    열매실님께서 이야기해주신 것들의 대부분은 저도 공감하는 문제입니다.
    열매실님께서 '문제화'해주시니 이렇게 더 해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군요.

    제가 보기에, 열매실님은 제가 '영화의 메시지를 어느 한 사람의 승리로 읽'고
    있다고 보셔서 그것 때문에 마음에 거리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글은 기본적으로 '대다수가 플린에게 공감한다'는 전제(혹은, '상상')에서
    논의를 시작했으니 이 전제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아마 그 뒤에 이어진 논의가
    대부분 수긍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알로이시스의 패배' 운운한 것이 제 생각이
    아니라 플린의 시선을 통해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의 입장을 표현한 것이라는 걸
    아실 겁니다. 저는 오히려 마지막 장면에서 알로이시스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제가 문제 삼고 있는 건 왜 다수의
    사람들이 플린에게 쉽게 감정이입하고 그에게 공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감상하냐는
    것이지요.

    <신부들의 식사> 장면을 언급한 것도 플린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는 이들이 많다고
    생각해서 언급한 것일 뿐입니다. 사실 열매실님이 동의할 수 없다고 하신 것처럼
    제 생각에도 알로이시스가 '비호감'으로만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점점 눈이 멀어가는
    연배 높은 수녀님을 돌봐드리는 행동이라든가 제임스 수녀에게 냉정한 듯하면서도
    그를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은 보기에 따라 '비호감'이 아닐 수도 있지요. '비호감'이라는
    표현도 플린에게 공감하는 많은 이들이 다양하게 표현한 것들을 제 나름 요약한
    것일 뿐입니다. 제게도 알로이시스는, 물론 끌리지 않는 면이 더 많았지만, 나름
    공감도 가고 이해도 되는 인물입니다.

    다만 열매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알로이시스를 '그녀는 자신의 입장과 위치에서
    해야 할 바를 한 것'이라고 보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실제 한백교회
    청년들과 이야기할 때 나왔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만, 어떤 이는 이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아니, 꼭 그런 식으로 해야 해?' 이 질문이 나온 건 알로이시스에게
    공감이 가지 않아서이기도 했을 것이고, 알로이시스가 '객관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플린과 권력을 두고 다투는 '욕망'도 발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플린과 알로이시스가 서로 상석(?)을 차지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인 장면이
    이 점을 드러내는 좋은 장면일 것 같습니다.)

    플린과 마찬가지로, 알로이시스를 '우리편'으로 여기는 것도 문제가 많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플린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거나, 알로이시스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는 게 아니냐는 거지요. 이 지점에서 약간 비약이 있긴 했습니다만,
    우리가 당파성을 전제하고 사안이나 사태를 보려 하는 태도 때문에 서로의 '적대'를
    무화시키는 '공감의 체계'는 쉽게 가시화되지 않고, 이 때문에 '죽임의 질서도'
    작동할 수 있다는 거지요.

    때문에 저는 이 영화가 '인간의 의심'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감독이 의도했든 안했든, 이 영화는 그 이상의 것을 성취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영화를 감상하는 태도에 우리의 정치적 '습속'이 배어나오고 있음을
    이 영화는 사고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물론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저는 사실 마지막 장면에서 일종의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 강인하고 자기절제의
    화신 같았던 알로이시스가 왜 무너지듯 울음을 터뜨렸는가 생각해보면,
    바로 앞 장면의 대사를 볼 때 그녀는 자신의 신념에 따른 행동이 은폐와 속임수의
    달인 같던 플린이 학교를 떠남으로써 그의 유죄를 인정하는 행동을 이끌었다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플린이 일종의 승진을 하는 것이었고,
    자신이 믿던 신의 '정의'가 관철되지 않는 학교 밖 세계의 권력을 감지하면서
    무기력과 절망감에 "I have such a doubt!"라는 절규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플린에 대한 알로이시스의 의심이 명확하게 규명된 것이
    아님을 생각한다면, 플린에게만 의심이 깊어질 특별한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알로이시스의 의심이 '허구'로
    밝혀지는 것으로 읽는 것도 논리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용산에 대해서도, 개인적 차원에서의 반성이 있었든 어떻든 그건 제가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일 것입니다. 다만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용산참사를
    둘러싼 '사회적 행위'의 의미를 어떻게든 규명하고 그것이 개인적 차원의 확인되지
    않는 반성만이 아니라 어떤 정치적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죽임의 질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나는 그 작동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닐까 반성하는 데까지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답글이 주저리주저리 또 길어졌네요. 이 답글 때문에 오히려 논쟁거리만 더
    확대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영화평 밖에서 영화평에 대해 변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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