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한 번 내리고 간


십이월의 오늘...



푸욱~ 담궈 두었던,


해 질 녁


밭질에 피부를 뚫는


독한 모기떼 같은 여름의 볕을


꺼냈다.



겨우 십이월인데,


여름 밭에 김 매러 다녔던 치매 할머님이 떠나셨고,


가물었던 배추밭에서, 함께 물을 대며 쿨럭이시던 할아버님도 어제.. 떠나셨다.



그 배추밭 앞에서 깨를 털던 할머님께선


그날의 하루를 일기에 적었다.



'오늘은 펑뚜기 장사가 와서 펑뚜기도 맛있게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며 재미있게 놀았다.


오후 4시경에 경로당 회원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인생이란 너무 허무하고 쓸쓸했다.'





해질녘 밭질에 독한 모기떼 같은 인생도


사라지면 허무하고 쓸쓸하니, 


아름다운 것은


그저 지나간 것 뿐이다.




 

 

 이수만 作 (한백교회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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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으로 잠겼던 수몰지역에 땅이 드러나고 넓은 평야가 펼쳐졌다.




제 부모도 누려보지 못한 평야를 활보하다.. 사냥을 당하였다. 



시선을 빼앗는 갑작스런 빛이, 망막을 가득 채울 때...

탕~~!

헤드라이트에 묶인 고라니가 쓰러졌다.



이십 청년의 망막에 빛이 침입하여,

탕~~!

거죽만 남은 오십중년이 쓰러졌다.



 * 진안고원의 밤길을 운전하다보면, 헤드라이트를 보고 순간 그 자리에 얼음이 되어버리는 고라니를 종종 만난다. 헤드라이트의 강한 빛이 고라니의 망막에 부딪히면 순간 맹인이 된 것처럼 꼼짝을 못하는데, 이때 고라니는 돌진하는 차를 피하지 못하고 로드킬을 당한다. 수몰지역에서의 고라니의 참사는 이런 고라니의 습성을 이용한 사냥꾼의 소행이 분명하다.  


   난 20대의 젊은 날,  '종교'라는 강한 빛에 망막을 강탈당하였는데, 50이 되어서야 ‘무능한 남편, 부끄러운 애비’가 된 나를 발견케 되었다. "수치스럽다." 그것은 수몰지역에서 벗겨져 껍질만 남겨진 존재도 없는 고라니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젊은 날, 나를 사냥한 자여!!!!!!!!



 

 

 이수만 作 (한백교회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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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첩첩산중으로 걸어 들어 온, 첫 사내가 궁금하다. 

 길도 없는 산을 뚫고 들어 온 사연들은 저렇게 마을이 되었겠지ㅡ





길은 열리고, 전기가 들고 

 눈이 내리고 ㅡ 


 방 한켠 머리맡에 열여섯 가지의 약을 쌓아 두고, 

두려운 잠을 청하는 여인의 사연도 소복소복 쌓인다.



 

 

 이수만 作 (한백교회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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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깊은 산속 일곱난장이 소녀


여름이면 반딧불이 모여들듯 움막에 모여


밤새 도란도란



움막이 사라진 도심에 일곱난장이 할머니


여름내내 골목녁에 저리 앉아


밤새 도란도란



더위려니 했더니,


추석도 지난 시월에 두터운 옷 챙겨입고


밤새 도란도란



 

 

 이수만 作 (한백교회 교인)

 

 

 

 * [사진에세이]는 한백교회 사진동아리 '눈숨' 회원들의 작품을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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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몽유병과도 같은 속죄의식이었다.

 


 

색바랜 노란가죽로퍼 신발을 범계역 지하철 쓰레기 통에 버렸다. 

신발 볼쪽이 5cm 정도 찢어져 약간의 비라도 내리면 양말이 젖었다. 

짚신을 신은 듯한 편안함에 사진을 찍으로 나갈 때면 꼭 챙겨 신던 신발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어찌나 서운하고 후회가 되던지, 

밤 10시가 넘어 버렸던 전철역 휴지통을 찾았으나 흔적이 없었다. 


 친숙함은 죽음 너머로 사라졌다. 고통이다. 

 고통도, 새 신발에 적응하며 서서히 잊혀갔다. 


 한달이 지난 즈음, 

 압구정역 지하철 쓰레기통에서 버려진 어린 화분을 보았다. 

 누군가에게 유기된 화분이었다. 

 화분은 버려진 강아지마냥 멍한 표정이었다. 

 지나치지 못하고, 

 집으로 가져와 다른 화분 옆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그것은 몽유병과도 같은 속죄의식이었다.  

 


 

 

 이수만 作 (한백교회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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