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우울한 노동자'[각주:1]


조영관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ㄱ은 프로그래머다. 스마트폰 게임을 만드는 일을 한다. 어제도 새벽에 퇴근했는데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새벽에 회사로 출근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가 이번주는 징검다리 휴일이 많아 하루 15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이른바 ‘전투모드’. 그러다 보면 집이 회사인지, 회사가 집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빨갛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달력에 빨갛게 표시된 오늘 날짜를 본다. 근로자의날. 막내디자이너가 근로자의날에 회사가 쉬는지 팀장에게 물었다. 팀장은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그런 거 없어.”

   ㄴ은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휴대폰 부품을 만드는 작은 공장에서 일한다. 한 달에도 여러 새로운 제품이 나오기 때문에 부품의 종류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여러 하청업체를 거쳐 일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물량이 늘 들쭉날쭉하다. 일이 없는 날은 회사 옆 컨테이너에서 일주일 넘게 쉴 때도 있고, 일이 몰리면 주말까지 잔업과 특근을 해야 한다. 베트남에서 5월1일 노동절은 국가에서 정한 중요한 공휴일이다. 그날은 일하러 가지 않고 동료나 가족들과 함께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ㄴ은 노동절에 회사를 쉬어본 적이 없다. 다른 공장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노동자의 날에 왜 회사가 쉬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사장이 말했다. “이놈 빨갱이네.”

   ㄷ은 오토바이 퀵서비스로 물건을 배달하는 일을 한다. 오토바이는 10년이 넘은 골동품을 타고 다니는데, 스마트폰은 화면이 큰 최신 기종으로 4개를 사용한다. 주문을 뿌려주는 중개업체마다 각각 다른 프로그램을 쓰는 데다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빨리 좋은 주문을 받으려면 프로그램을 항상 켜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물건을 싣고 이동하는 중간에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물건을 전해주고 배달비를 받지만 수수료, 휴대폰 비용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얼마 없다. “당신은 노동자입니까?”라는 질문에 ㄷ은 스스로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하루 10시간 열심히 일하지만 회사에서 정해준 일이 아닌 매일 콜을 받아 일하니 노동자는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자영업자 대우받는 것도 억울하다 했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 (둘) 사이 어디쯤 있지 않을까요?”

   ㄹ은 음식을 배달하는 일을 한다. 학교를 다니며 학자금 대출을 갚으려고 시작했던 치킨배달이 벌써 3년이 넘었다. 똑같은 치킨매장에서 일하는데 올해부터 월급을 다른 곳에서 받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월급이 아닌 ‘배달수당’을 받는다. 배달직원을 직접 쓰지 않고 배달대행업체로 위탁을 주었기 때문이다. 휴대폰 터치 한 번이면 주문이 가능하고, 배달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ㄹ은 ‘알바’가 아닌 유니폼을 입은 ‘라이더’가 되었으나 학자금 대출금은 줄어들지 않았다. 자영업자가 되면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기 어렵고, 다쳐도 산재로 치료받기 어렵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ㄹ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래도 그랬어요.”

    오늘은 127주년 노동절이다. 1년에 단 하루, 일하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유급휴일이다. 그러나 하루 8시간만 일하며 “햇빛을 보고 싶고, 꽃 냄새도 맡아보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마트폰 게임을 만드는 프로그래머들은 오늘도 하루에 15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고 있고, 스마트폰의 부품을 만드는 이주노동자들은 고된 일이 끝나고 공장 옆 작은 컨테이너로 돌아가야 한다. 스마트폰을 4개씩이나 오토바이에 달고 다니며 하루종일 물건을 실어 나르는 이들과 배달 애플리케이션의 등장으로 늘어나고 있는 라이더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이 발명한 가장 최첨단 기술이라는 정보기술(IT)이 발달할수록 노동권은 후퇴하고 노동자의 얼굴은 사라지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70430204903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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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좋은 피’인가
- ‘미누’의 추방을 결정한 체제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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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레오 카락스(Leos Carax) 를 좋아하다 보니 그의 영화 제목이 익숙하다. 얼마 전 레오의 영화를 표절해서 ‘나쁜 피’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좋은 피’를 표제로 잡았다. 연작의 글로 기획된 것이 전혀 아니지만, 굳이 말하자면, 전자가 ‘권력의 의도하지 않은 자기 복제’를 말하고 있다면, 이번에는 ‘박탈의 의도하지 않은 복제’를 말하고 있다. 말한 것처럼 이 두 편은 아무런 관계를 연상하지 않고 쓴 것이지만, 양자 사이에는 아비와 자식 사이의 불온한 연계성이 가정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아비를 증오하거나 거부하고, 혹은 무관심하고자 했는데, 어느새 아비의 길과 자식의 길이 겹치는 비극의 연쇄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글은 서로 연관된다.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순혈주의’에 관한 문제제기다. 순혈주의가 지배담론으로 사회를 뒤덮던 시절, 거기에 이견을 제시하던 한 예언자의 고독한 외침에서, 우리는 예수의 그림자를 보며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한 전형을 읽고자 하는 것이다.

때는 페르시아 제국 식민지가 시작되던 기원전 6세기 말이었다. 황제(고레스)는 과거 바벨로니아에 의해 유배되었던 각 종족에게 귀향을 권장한다. 바야흐로 메소포타미아 세계는 귀향 정국이 찾아왔다. 유다 왕국 출신의 유배민들이 집단거주하고 있던 지역들도 술렁였다. 반백년 전 황무지에 유배되어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그 세월은 그런대로 살만하게 정착한 적지 않은 이들이 생겨났다. 하여 그이들은 다시 먼 길을, 전혀 미래의 보장이 없는 그 길을 되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꿈에 그리던 고국땅으로의 귀향을 선택하였다.  
초기 귀향자들은 다분히 묵시적 열광주의에 젖어 있던 사람들이었다. 스알디엘, 즈루빠벨 같은 구왕족 출신 인사들이 이 초기의 귀향집단들을 이끌었고, 몇몇 예언자들은 열렬히 왕정 복구와 해방의 때가 왔다고 대중을 선동했다.
하지만 그 땅은 너무 혹독했다. 귀향의 공간,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의 현실은 꿈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저 ‘위대한 성전’은 잿더미만 남아있을 뿐이었고, ‘거룩한 도시’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불타거나 부서진 오래된 가옥들뿐이었다. 사람들은 거의 살고 있지 않았고, 농사지어 먹고 살만한 땅도 없었다. 신은 이들 돌아온 이들을 위해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고, 주변의 도적들만이 그들을 반겨주었을 뿐이다. 강간, 약탈, 굶주림, 그리고 죽음. 얼마 안가 지도자들은 사라졌고, 홀로 남겨진 대중은 폐허가 된 땅에서 근근이 연명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귀향 정책은 너무 안이했음이 판명되었다. 바벨로니아 시절 유배된 이민자들 다수가 한때 고국의 지배계층이었으니, 그들이 돌아가면 쉽게 귀향자 정부가 세워질 줄 알았다. 그러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준 제국에게 감사하며 황제에 충성하는 지방 정부들이 세워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기엔 유배된 세월이 너무 길었다. 고향엔 이미 다른 체제가 세워졌거나 다른 체제의 영역에 복속되어 있었고, 그 속에서 나름 안정을 유지하여 왔다. 지배의 변화는 대다수의 원주민에게 불안한 조건일 따름이었다. 게다가 황제의 칙령을 받아 귀향한 사람들 대다수는 유배지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개 하위층 사람들이었다. 오랫동안 누군가를 지배하기보다는 누군가의 지배에 익숙한 이들이었다. 게다가 귀향자 대부분은 유배지에서 태어난 이민 2세들이었으니, 돌아갈 곳은 고향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이방 공간인 셈이었다. 그러니 나라를 재건할 곳은 그네들의 몸에 낯설기만 한 곳이었다.
제국의 유배민 귀향 정책 제2기는, 아마도 제국 황실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 같다. 우리는 기원전 5세기 중반에 와서야 이 새로운 황실 정책의 결실을 발견하게 된다. 황실에서 관료로 봉직했던 이들이 이끄는 새로운, 하여 더 많은 물적 자원과 정치적 수완을 갖춘 귀향민들이 돌아온 것이다. 그들은 꿈을 꾸기보다는 훨씬 현실적이었고, 따라서 정치적이었다. 지역을 순회하는 황실 칙사들의 지원을 받아, 귀향지에 세워진 지방정부들을 압박할 줄 아는 정치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에 의해 예루살렘과 인근 유대 땅에는 또 하나의 정부가 등장하였다. 한데 이 정부는 왕정체제가 아니었다. 제국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황제 직속의 총독국가가 세워졌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즉 세습왕권이 형성된 게 아니라 황제가 파견한 통치자가 수반이 되는 귀족과두정부가 세워진 것이겠다. 그런데 이 귀족체제의 주도권을 쥔 이들이 다름 아닌 ‘사제계 귀족’이었다.
이 사실은 총독령 귀환 정부가 토착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취한 이데올로기가 이른바 ‘순혈주의’였다는 점과 맞물린다. 유대 인근의 기존의 정치세력들, 사마리아, 암몬, 에돔 등은 혈연간 연대를 통해 체제를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이 체제는 과거 아시리아와 바벨로니아에 의해 유배되어 이곳으로 들어온 이들과 토착귀족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지배집단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대 지역에 새로 세워진 귀환 정부가 내세운 순혈주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될 만했다. 총독 정부는 주위로부터 고립된 정치체제였지만, 각처로 흩어진 이민자들에게는 비로소 고국의 정부가 세워졌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축되자 즉각 실효성을 드러내었다. 이민자들의 기부금을 받는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총독 정부의 주요 지배계층이 혈통에 특별한 엄격성을 갖춘 사제집단이었고, 이들이 지배집단으로 부상하는 데 유효한 수단이 인근 정치세력과의 혈통적 차별화였다는 사실은, 순혈주의적 조치들이 이 사회를 얼마나 강력하게 요동하게 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느헤미야기」와 「에즈라기」는 그 일단을 시사해주고 있다. 즉, 타종족과 결혼하여 살고 있는 이들을 배신자로 취급하고, 그들을 강제로 갈라놓는 정책이 폭력적으로 시행된 것이다. 수년 아니 수십년간 혼인관계에 있던 이들을 체제는 강제로 갈라놓으려 했고, 반발하는 이들을 무찰별 처형해 버린 것이다. 외부 족속 사람들은 추방되었다. 남편과 아내가 갈라졌고, 부모와 자식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들은 갑자기 배신자로 낙인 찍혀 온갖 수모와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아마도 순혈주의를 권장하는 각종 조치들이 강도 높게 수반되었겠다. 이런 정책은 흔히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정치인들의 정책이라는 게,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원래는 특별한 정치적 이익을 위해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다지방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매우 오랫동안 비교적 일관성 있게 지속되었고, 점차로 거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타종족의 흔적이 자기들을 오염시킨다는 타부가 자리잡아 갔다.
그것은 이 과정에서 유다의 지배층이 사제귀족 중심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일의 제사를 통해 그러한 순혈주의를 사람들의 인식 속에 심어놓았던 것이다. 이때가 기원전 5세기 이후인데, 그로부터 몇 백년이 지난 기원전 2세기 중반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하는 「마카베오상」에는 마을에 세워진 ‘제단’들이 언급되어 있고, 마을의 제관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시대적 정황이 반영되어 있다. 즉 사제체제는 귀환 정부가 세워진 이래 하스몬 왕조가 세워진 기원전 2세기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고, 촌읍 구석구석까지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점차 성서에 수없이 등장하는 표현, ‘이방인의 역겨운 짓’은 일상이 된다. 하여 순혈주의는 이제 정책이 아니라 인식이 된 것이다.
정책을 넘어서 ‘인식의 순혈주의’가 확산되면, 사회의 어두운 공간에서는 순혈주의에 위배된 조건의 사람들의 생태가 펼쳐진다. 사회의 최말단 영역에는 순혈주의 같은 사회를 오염시키는 타부들이 그들을 규정하는 일반적 평판이 되고, 또 그들은 공공연히 그러한 타부를 실행에 옮기면서 동시에 범죄 같은 문제적 행동을 하곤 한다. 즉 그들이 순혈성을 지니지 못한 부정한 평판의 사람인 것이 먼저인지 아니면 범죄를 저지르는 행태가 먼저인지 알 수 없는, 두 조건이 서로를 악순환에 빠뜨리는 상황이 일상화된다는 것이다. 하여 이른바 ‘나쁜 피’ 이데올로기가 정착하게 되는 것이다.

네팔인 이주노동자 미누를 강제출국시켰다는 보도가 있었다. 알고 있겠지만, 그는 이주노동자일 뿐만 아니라 다국적 밴드 ‘스탑크랙다운’(Stop Crackdown)의 리드보컬로서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을 하는 문화활동가였다. 그는 우리사회의 순혈주의적 배제와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의 상징적 존재였다.
정부는 그를 ‘질서 확립’을 위해 부득이 추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질서 확립’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1992년 관광비자로 입국한 이후 식당, 봉재공장 등에서 노동자로 일했고, 2003년부터 다국적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활동과 다큐제작 등에 참여한 사람이다. 그 18년간 그는 한국사회의 병폐를 낳는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질서확립이라는 명분으로 추방되었다.
그것은 그가 불법체류자라는 법률을 위배했다는 것이고, 그 법은 한국사회의 다문화적 가능성을 제약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 인권단체들로부터 많은 지적을 받아왔던 문제의 법률이다. ‘다문화적 가능성’이라는 말은 한국 내에 체류하는 소주종족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 사회적 인식적 틀을 말한다. 요컨대 이주노동자에 관한 법률적 질서는 그들에게 두 가지 방식의 삶만을 허용한다. 하나는 노예적 주체로 사는 것, 다른 하나는 범죄적 주체로 사는 것. 즉 노예가 아니려면 범법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누는 이 두 가지 방식 모두를 거부하면서 사는 한 사례를 보여준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질서 확립을 위해 추방되어야 했다.

다큐멘터리 <스탑 크랙 다운>에서

순혈주의는 우리의 법제 속에 깊게 새겨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순혈주의는 우리의 의식 속에도 자리잡고 있다. 참여정부 때에, 정부가 다문화주의 정책을 활발히 펼치고 있을 때에도 관료들의 다문화주의가 또 다른 ‘동화주의’였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그것은 정책의 컨셉이 문제가 아니라 의식 속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관습의 문제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많은 시간과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한데 참여정부 5년이 지나고 MB정부가 들어선 지 2년도 안 되어서 다문화적 가능성은 공공연히 억제하는 조치들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의식의 순혈주의는 제도를 통해 자기 생산의 견고한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사야서」 56장 7절을 주목해본다.

내가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겠다. 또한 그들이 내 제단 위에 바친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내가 기꺼이 받을 것이니, ‘나의 집은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귀환 공동체가 제도의 순혈주의를 통해 의식과 순혈주의를 강화하고 있던 때다. 타종족에 대한 폭력적 배타주의가 넘쳐나고 있었고, 굳이 폭력이 아니더라도 은연중에 배타성이 마음 속 깊게 일상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때, 한 익명의 예언자는 그 제도의 온상이 야훼의 제단을 행해 이렇게 외친다. ‘나의 집은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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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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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역에서

김현숙
(Ecole supérieure des beaux-arts de Marseille에서 비디오아트 전공)




부평역... 풍경 / 09년8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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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일지
조선족 이주노동자인 그녀는 부평에 산다.
나의 첫 부평 나들이는 그녀와 만나기 위해서다.
부평역, 어지럽다.
형형색색의 간판, 어울리지 않는 간판글씨, 상품, 색깔, 사람 .........
그 모두는 나의 시선을 초대하느라 경쟁 중이다.
어지럼증에 빠진 나는 어느 것도 볼 수 없다.
허우적대며 부평역 밖으로 나왔다.
저녁 햇살이 그녀를 비추고 있다.
하지만 그녀 또한 보이지 않는다.
부평역의 자본주의는 점점 시력을 앗아간다.

사진 안과 밖을 넘나드는 글자들,
늘어지기도 하고 뛰어 쓰기도 제멋대로다.
부평역의 풍경이 이 글자들의 모습 같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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