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하나의 키워드 : 이단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Ⅰ.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초기 기독교 이단 연구에 대한 비판적 읽기


     이단이란 정통종파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른 교리나 견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흔히 붙여지는 종교적 용어로서 대체로 불온하고 미심쩍으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수반한다. 한 예로, 사전에도 "헬라어 원어 하이레시스의 기본 의미는 선택이나 의견으로서 단순히 분파, 파(벌) 등을 일컫는 경우(행22:22)와 교회 내에서의 편당(고전 11:19)을 뜻하는 경우, 그리고 다른 교리를 주장하는 이단(벧후 2:1) 등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나온다. 하지만 사회학자 피터 버거에게 이단적 명령은 근대 사회의 전형적 특성에 속한다. "전근대적 인간에게는 이단은 가능성에 불과했고 대개 거리가 먼 가능성이지만,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전형적으로 이단이 하나의 필요성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근대성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데 이 상황에서 취사선택은 하나의 명령인 것이다."[각주:1] 따라서, 앞서 본 사전적 정의와 달리 새로운 상황에 직면한 해석자로서 권위에 대한 도전을 감행한 개척자라는 긍정적 이미지가 이단에게 부여될 수 있다. 물론, 맥그라스라면 단호히 대처할 것이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이단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단이란 용어는 겉으로는 복음의 모양을 하고 있되 궁극적으로 복음의 본질을 전복시키는 신앙 체계를 가리키는 말이다."[각주:2] 사실, 이단적 명령에 따른 하나의 신학적 프로그램으로 버거는 19세기 자유주의 개신교 신학을 지지하고 있는데, 맥그라스에게 이것은 근대 유럽 초창기 자유지상주의의 열망과 궤적을 같이하는 인간주의적 주장에 지나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이단이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해방을 안겨준다는 신념은 1세기의 현실보다는 오늘날 서양의 문화 풍토와 훨씬 더 관련이 깊다."[각주:3]고 쓴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말이다.

     확실히 이 같은 맥그라스의 비판은 어떤 면에선 꽤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알다시피, 해석자란 역사를 자기 시대와 관련해 해석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존재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초기 기독교의 이단들에 대한 맥그라스의 견해 역시 비판적인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맥그라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단은 경험적 개념이 아니라 평가적 개념이다. 어떤 차원에서 보면 이단은 어떤 공동체의 사상에 대한 판단 내지는 평가가 낳은 결과인 만큼 구성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각주:4] 다시 말해, "이단은 역사적 분석으로 정당성이나 부당성을 증명할 수 없는 평가적 개념"[각주:5]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놓고 "이단에 관한 역사적 연구는 다른 이들이 이미 규정지은 것을 역사가가 묘사해야 하는 일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엇이 이단이고 무엇이 정통인지에 대한 판단은 역사가가 정당한 역사방법론을 활용하여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각주:6]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단을 정의하고 구성하는 그의 방식은 애초에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역사적 작업은 아닌 셈이다. 그 스스로 말한 바와 같이 특정한 신학적 관점이 미리 전제된 작업이고, 그에 따른 평가인 것이다. "사실은 잘못된 견해가 초창기부터 등장했기 때문에 후대가 이를 바로 잡아야 했다."[각주:7]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게다가, 초기 기독교는 어떤 종류든 획일성을 강요하는 권위구조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훗날에 정립된 신학 공식들은 명시적으로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 사상과 예배 속에 이미 내재해 있던 사상과 주제를 점진적으로 펼쳐 보이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각주:8]는 고어의 말을 자연스럽게 인용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것이 역사적 주장이라기보다는 기독교 교리의 역사를 설명할 때 정통주의자들이 흔히 동원하는 씨앗의 비유와 유사한 주장이란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4세기에 정립될 정통주의가 처음부터 존재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정통주의를 발현할 씨앗은 처음부터 품고 있었다고 보는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당시의 정통은 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는 중이었다고 말이다. 정통은 기성복처럼 이미 만들어진 상태가 아니라 씨앗처럼 상당 기간에 걸쳐 자라나는 중이었다. 장차 정통의 구조에 편입될 모든 기본 주제들은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각주:9]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그에게 다윈은 기독교의 역사를 살피는 데에 적격인 인물로 등장한다. "교리의 발전이란 사상은 1859년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됨과 동시에 새로운 지적 에너지를 공급받았다. 생물학 세계에서 진화를 얘기할 수 있다면 사상의 세계에서도 그와 똑같은 과정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각주:10]

     그러므로, 기독교의 이단에 대한 맥그라스의 평가는 역사이기보다는 특정한 신학적 이해를 전제한 하나의 해석학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발터 바우어라면 이러한 신학적 전제는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고 비판할 것이다. 그에 따르면 "2세기 말까지 대다수의 장소에 있었던 주류 기독교는 정통파가 아니라 이단들이었다."[각주:11] 앞서 언급된 맥그라스의 씨앗 비유를 참조하면 "정통은 최초의 원래 견해와 다수의 보편적 견해를 모두 함의하고 있으며 이단은 그러한 정통적 믿음을 고의로 저버리는 타락을 뜻한다."[각주:12]는 에오세비오스의 설명을 맥그라스가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해 얼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각주:13]


바우어의 입장은 단순한 주장에 의거한 것이 아니었다. 각 지역에서 입수한 자료들을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에우세비오스의 기록과는 달리 최초기와 혹은 승리자측이 지배하기 이전에는 대부분 지역에서 이단적 형태의 기독교, 즉 승리자측이 나중에 공격한 기독교의 제형태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후기의 정통 기독교인들은 승리를 거둔뒤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 발생한 내분의 역사에 대한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어만의 이런 주장을 다소 과장된 레토릭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흥미로운 점은 바우어를 비판하고 있는 맥그라스조차도 바우어의 핵심적인 테제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바우어가 확실히 옳은 점이 한 가지 있다. 초기 기독교가 당시의 대표적인 일부 인물들이 우리에게 심어준 인상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고 다양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더 이상 논란거리나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각주:1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그라스는 바우어의 주장을 수용한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받아친다. 한 예로, 영지주의를 페민적인 평등주의 운동으로 보는 페이절스의 주장에 대해 영지주의 저술은 반여성적 진술로 가득하다는 매크라이트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전혀 근거가 없다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단이 정통에 대해 자신의 합법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는 바우어의 주장이 붕괴되진 않는다. 애석하게도, 이 지점에서 맥그라스는 논점을 교묘하게 흩뜨리고, 정통은 비록 원형적 혹은 씨앗의 형태지만 애초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초기 기독교 이단들에 대한 맥그라스의 작업을 단적으로 평한다면 발터 바우어를 비롯해 초기 기독교의 이단들을 새롭게 인식하려는 최근의 학문적 작업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각고의 노력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교회가 당면한 진정한 도전은 정통이야말로 강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정서적으로 매력있고, 심미적 감각을 증진하며, 개인적으로 해방감을 주는 것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고대한다."[각주:15]는 그의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각고의 노력이 “이단은 후기 고전 시대의 다원적이고 경쟁적인 세계 안에서 소멸될 수밖에 없는 결함이 있고 무기력하고 진정성이 없는 기독교의 한 부류였다. 반면에 정통은 그 장래를 안전하게 지키는 수단으로 진정성에 대한 추구를 촉진하는 등 이단보다 더 강한 생존력을 갖고 있었다.”[각주:16]는 논리비약인 동시에 일종의 결과론적인 주장으로까지 치닫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안쓰러워 보인다. 어떻게 역사가 맥그라스가 말한 바처럼 씨앗으로 이해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결과론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평가하고 마는 것일까? 그렇다면, “한 개념의 역사란 반드시 그의 점진적인 세련화의, 계속 증가하는 그의 합리성의, 그의 추상화의 변화율의 역사가 아니라 그의 구성과 유효성의 다양한 장의, 그의 사용에 있어서 계기적인 규칙들의, 그의 정교화가 추구되고 성취되는 복수적인 이론적 환경의 역사일 수 있다.”[각주:17]는 푸코의 지적은 애초에 상상할 수 없는 것 아닐까? 때문에, “마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 전통을 재구성하는 것에, 진화론적인 곡선을 따라가는 것에, 목적론을 기획하는 데에, 그리고 끊임없이 생명이라는 은유에 호소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는 바로 그 곳에서, 차이를 생각하는 것에 대한, 간극과 분산을 기술하는 것에 대한, 동일한 것의 확고한 형태를 해체시키는 것에 대한 어떤 거부감을 느낀 듯이”[각주:18]라는 푸코의 지적을 맥그라스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독교에 대한 푸코의 논점이 중세에만 해당된다고 맥그라스가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권력이라는 개념을 순전히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맥그라스의 푸코에 대한 오독이다. 푸코에게 권력이란 단순히 정치적인 차원에서만 행사되는 그 무엇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대교와 비교해볼 때 기독교는 믿음체계라는 맥그라스의 주장 자체가 푸코에겐 이미 하나의 권력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4세기 황제의 정치적 수단에 의한 이단 규정이 2세기와 같은 초기에는 없었다고 할 수 있지만 지식의 형태라는 점에서 보면 권력이 작동하고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푸코가 지적한 바와 같이 단일한 기원이라는 신화를 해체하고 복수적인 기원을 상상함으로써 초기 기독교의 이단들을 맥그라스와는 다른 관점에서 해석해 볼 여지를 얻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것은 발터 바우어의 논의를 숙고함으로써, 다시 말해 때론 수용하고 때론 거부하고 때론 혁신하면서 초기 기독교의 이단들과 관련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그런 작업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예로 맥그라스가 이단으로 낙인찍은 에비온파를 들 수 있다. 하나의 이단적 명령으로서 “타종교와 심각한 대결을 한다면, 적어도 가설적으로 다른 종교 역시 진리라는 명제에 대하여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달리 표현한다면 종교간의 대결에 돌입하려면 자기 자신의 현실관까지도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각주:19]는 버거의 주장을 참조하고서 버메스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경청한다면[각주:20] 다소 비극적이지만 그럼에도 초기 기독교의 한 분파로서, 정통이 이단이라고 낙인찍은 에비온파는 유대교와의 대화에도 생산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신성화 등과 같은 기독교의 부착물 없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랐던 토라를 준수하던 유대인들로 구성된 1세기의 수확인 유대-기독교의 쇠퇴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유대인 진영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이방인 교회의 교인들에게도 인기가 없었다. 그들은 예수에게 가장 가까이 남아 있었음에도 유대인들은 그들을 기독교인으로 여겼고 기독교인들을 그들을 이단으로 여겼다. 제롬이 어거스틴에게 보낸 글을 보면 그들은 유대인이면서도 기독교인으로 남아 있기 원했지만 그들은 유대인도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그들은 역사에서 사라져갔고 생존하던 몇몇 사람들은 다시 유대인 진영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와 함께 예수가 전하고 실천했던 종교의 흔적은 마침내 사라져 버리고 비유대인 세계에서 헬라화된 기독교가 승전가를 부르며 승전을 거듭할 수 있게 되었다. 공평하게 말하자면 생소한 교리적, 교회적 특징들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가난한 자를 위해 부를 포기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나 우리의 시대에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람바레네에 있는 병든 자를 위해 초기한 알버트 슈바이처, 그리고 노구를 이끌고 캘커타의 더러운 거리에서 죽어가는 자들을 돌보는 테레사 수녀를 통해 본을 볼 수 있는 동기의 순수성에 대한 강조, 자비의 마음과 같은 예수의 경건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아직도 소유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에비온파와 관련한 맥그라스의 이야기 역시 상당히 흥미롭게 들린다. “최근에 유대적인 기독교가 부활함에 따라 예수의 중요성을 유대인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일에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 그들은 예수라는 이름이 헬라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그 이름을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방식들이 그리스의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고 진정한 유대적인 방식으로 다시 진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예수를 선지자로 보는 것이 그런 예이다. 이로 말미암아 유대의 기독교 진영에서는 에비온주의 그리스도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각주:21]


ⓒ 웹진 <제3시대>



  1. 피터 버거, 『이단의 시대』, 서광선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81, p.36 [본문으로]
  2. 알리스터 맥그라스,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홍병룡 옮김, 포이에마, 2011, p.291 [본문으로]
  3.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20 [본문으로]
  4.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59 [본문으로]
  5.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103 [본문으로]
  6.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103 [본문으로]
  7. 알리스터 맥그라스, 앞의 책, p.48 [본문으로]
  8.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45 [본문으로]
  9.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125 [본문으로]
  10.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112 [본문으로]
  11. 정용택,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자리, 2012, p.45 [본문으로]
  12. 정용택, 같은 책, p.43 [본문으로]
  13. 바트 어만, 『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 이제, 2008, p.365 [본문으로]
  14. 알리스터 맥그라스, 앞의 책, p.123 [본문으로]
  15.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343 [본문으로]
  16.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134 [본문으로]
  17. 미셸 푸코, 『지식의 고고학』, 이정우 옮김, 민음사, 1998, p.21 [본문으로]
  18. 미셸 푸코, 같은 책, p.33 [본문으로]
  19. 피터 버거, 앞의 책, p.169 [본문으로]
  20. 게자 버미스, 『유대인 예수의 종교』, 노진준 옮김, 은성, 1995, p.262 [본문으로]
  21. 알리스터 맥그라스, 앞의 책, p.17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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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타자성의 관점에서 본 신약성서 2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3. 포괄주의적인 기독교적 동일자로서 복음서 읽기 : 지라르의 『희생양 』 및 『나는 사탄이』


     지라르만큼 폭력의 문제를 집요하게 탐구한 이는 드물 것이다. 이것은 『폭력과 성스러움』, 『희생양』, 그리고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와 같은 그의 저서들이 폭력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그에게 종교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종교란 폭력이 내장된 성스러움에 대한 추구라고 정의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그는 대뜸 화를 낼 듯하다. 종교만 그렇겠는가라고 하면서 말이다. 왜냐하면 『폭력과 성스러움』에서 그는 현대의 사고가 폭력을 멀리하면 할수록 폭력은 오히려 귀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탈신화화되었다고 믿지만 현대세계는 결코 폭력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고, 다만 애써 외면할 뿐이라고까지 말한다. “스스로를 성스러운 것에서 생겨난 유일한 사회라고 믿지 않는 사회는 하나도 없다. 이것이 바로 다른 사람들은 결코 사람이 아닌 이유이다. 우리라고해서 이 보편법칙, 보편적인 무지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다.”[각주:1] 단지 “어떤 식으로든 항상 폭력에 종속되어 있는 어떤 무지 속에서 폭력을 피하고” 있을 뿐이다. 원시문화에서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폭력에 대한 그의 논의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다소 과장일 수 있지만, 폭력의 문제를 성찰하는 데 있어 지라르만큼 독보적인 사상가는 별로 없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처럼 폭력을 사유한 사상가이지만 지라르는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환영받는 인류학자다. 사랑의 종교라 불리는 기독교가 폭력을 사유한 사상가를 환영하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하지만 독일의 일간지 디 벨트(Die Welt)는 ‘지라르가 기독교를 구했다’고 극찬했다. 심지어, 정일권은 “다른 신화와 종교를 초월하는 ‘십자가’의 의미가 드러나면서, 세계 인류는 ‘유일한 진리’를 얻게 됐다. 다원주의 상대주의, 곧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힘을 잃게 된 것이다.”[각주:2]라고 까지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지라르 사상의 무엇이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극찬하게 만든 것일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각주:3]


복음서는 인간의 폭력을 진정으로 문제삼은 유일한 기록이다. …이런 것과는 달리, 구약의 요셉이나 욥 혹은 예수나 세례 요한 그리고 다른 희생양들을 보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토록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그토록 격분한 군중들에 의해 왜 추방을 당하거나 학살을 당하는 것일까? 기독교의 계시는 그 전에 있던 신화와 제의 같은 것뿐만 아니라 그 후에 오는 다음과 같은 것까지 다 밝혀주고 있다. … 예수의 수난 이야기는 이 세상의 왕의 비밀을 밝히고 모방 작용과 희생양 메커니즘의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인간 질서의 기원을 전복시킨다.


     한 마디로, “인류학자가 인문학을 통해 다른 종교나 신화의 한계를 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를 주창“[각주:4]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야단법석과 달리 차분하게 한번 물어보자. 다른 종교나 신화의 한계가 대체 무엇인지를 말이다. 뒤집어 표현하자면, 어떻게 복음서가 유일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지가 될 것이다. 일단, 『희생양』이란 저서에서 그는 <로이 드 나바라의 판단>이라는 유대인 박해에 관한 기욤 드 마쇼의 텍스트를 해석하면서, "이 텍스트에 나타나 있는 모든 표현들 간에는 상호 합치, 즉 단 하나의 가설로써만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일치가 존재한다. 우리가 읽은 이 텍스트는 분명 박해자의 시각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실제로 일어난 박해에 근거하고 있는 텍스트다. 박해자의 시각은 자신들의 폭력의 정당성을 믿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잘못된 시각이다. 스스로를 재판관이라고 여기는 그들에게는 그러므로 유죄의 희생물이 필요하다.“[각주:5]고 말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런 판단은 『폭력과 성스러움』의 연장일 수도 있는데, 여기서 그는 인류의 종교적 활동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들도 폭력으로 인해 붕괴될 위기에 처한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해 하나의 예방책으로 소위 희생할만한 희생물에게로 폭력의 욕망의 방향을 돌리는 희생양 메커니즘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 희생물들에는 ”전쟁포로도 있고 노예도 있으며 아이, 총각, 신체장애자도 있고, 그리스의 파르파콘처럼 인간 쓰레기도 있으며 어떤 사회에는 왕도 있다.“[각주:6]는 점은 잘 알려진 흔한 이야기다. 요약하자면, 희생양메커니즘이란 공동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복수의 분노를 희생제물인 공동체 내의 약자나 외부인에게 전가시킴으로써 공동체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호폭력을 예방하고 정화하는 수단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지라르는 복음서의 이야기가 다른 종교텍스트들처럼 이와 같은 희생양메커니즘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박해자가 아닌 희생자의 시각을 보여주기에 다른 것들과 분명하게 구분되며 그렇기에 진실에 관한 유일한 기록물이라고 평한다. 다시 말해, 복음서의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기욤 드 마쇼의 텍스트 류의 것들이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라는 점이다. 지라르의 판단에 따르면, 복음서는 다른 것들과 달리 철저하게 희생자의 시각을 보여주기에 박해하는 자들의 잘못된 시각을 폭로하고 교정해주는 진실한 기록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놓고 말한다. ”신학자들에게 너무 오랫동안 잊혀져왔던 복음서의 인류학 영역에 대한 나의 이 연구는 간접적으로만 신학적이다.“[각주:7]라고 말이다.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하기도 했다.[각주:8]


그리스도의 적은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약속만 하고 가져다주지 않은 평화와 관용을 자신은 주고 있다고 자랑한다. 아닌 게 아니라 희생을 극단적으로 운운하는 오늘날의 풍조가 가져다준 것은 사시살 낙태, 안락사, 유니섹스, 엄청나게 많은 곡마단 놀이들과 같은 예전 이교도의 온갖 풍습으로의 회귀다. 그러나 여기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같은 기술 덕택에 진짜 희생양이 없다. 이 새로운 이교는 십계명을 비롯하여 유대 기도교의 모든 모럴을 참을 수 없는 폭력으로 추정하고 이런 계명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제일 목표로 삼는다.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은혜롭게 들릴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때문에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정일권도 “다른 신화와 종교를 초월하는 ‘십자가’의 의미가 드러나면서, 세계 인류는 ‘유일한 진리’를 얻게 됐다. 다원주의 상대주의, 곧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힘을 잃게 된 것이다.”[각주:9]라고 까지 말했던 것이다. 기독교적 변증으로선 손색이 없다.

     하지만 복음서에 대한 지라르의 변증과 이런 변증을 극찬하는 신학자들에 대해 누군가는 민망했을 수도 있다. 한 예로, 월터 윙크는 "나는 희생양 주제가 전 세계의 신화들의 바탕이라거나 혹은 유대교-기독교 성경이 폭력에 대한 비판을 독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폭력적인 신화도 있어서(하나만 예를 들면 Hopi 인디언의 탈출신화), 기독교가 설명한 것들 못지않게 참된 것들도 있으니 지라르가 말하는 기독교 승리주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각주:10]라고 일침을 가했다. 특히,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바울의 이해 역시 박해자의 시각을 고발한다는 지라르의 주장에 대해서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하여 어떤 모호함을 드러낸다. 지라르는 그 모호함의 한 면을 강조했고 그의 비판자들은 그 다른 면을 강조했다."[각주:11]면서 균형 잡힌 비판을 보여주었다. 흥미롭게도, 오래 전 이미 다른 쪽에 속했던 포이에르 바하는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각주:12]


일반적으로 인간희생을 폐지했다는 이유로 기독교를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 기독교는 그러나 피를 흘리는 인간희생 대신에 다른 종류의 희생, 육체적인 인간희생 대신에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인간희생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므로 현상에만 얽매이는 사람들은 기독교가 이교의 종교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을 세상에 가져다놓았다고 믿지만 그것은 하나의 환상일 뿐이다.


     게다가 희생자의 시각을 드러내 주기에 복음서의 예수의 수난이 박해자의 폭력을 고발한 것이라고 본 지라르와 달리, 포이에르 바하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각주:13]


기독교는 고통의 종교다. 우리가 오늘날 아직도 모든 교회 안에서 만나게 되는 십자가상은 우리에게 구원자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사람, 고통받는 사람을 제시할 뿐이다. 기독교도들 사이에서는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의식이 지배적인데 그것은 심리적으로 깊게 뿌리박혀 있는 그들의 종교관에서 오는 결과다. 십자가상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서 자기자신 또는 타인을 십자가에 못 박고 싶다는 욕망이 왜 생기지 않을 것인가?


     기독교의 역사를 참고한다면, 포이에르 바하의 이런 지적은 꽤 설득력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지라르의 말대로 희생자의 시각을 드러내주기에 복음서가 『티아냐의 아폴리니우스의 생애』와 같은 박해자의 텍스트들보다 더 뛰어난 것이라면, 왜 교부들은 이런 텍스트를 읽으면서도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저주를 내뿜었던가. 기독교의 도덕을 원한의 도덕이라고 불렀던 니체를 씹어대면서 복음서는 결단코 니체가 말한 바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격찬한 지라르는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인용한 터툴리안에 대해선 대체 뭐라 말할지 궁금하다.[각주:14]


그날이 오면 물론 또다른 구경거리가 있다. 최후의 영원한 심판의 날인 그날에 이교도들은 뜻하지 않게 자신들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보게 되고, 그토록 낡은 세계와 그토록 많은 소산이 거대한 불길 속에서 송두리째 타버리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얼마나 엄청난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겠는가! 얼마나 탄복하겠는가! 얼마나 웃어야 할까!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주님을 욕되게 한 그들을 그 때문에 하염없이 지켜보고 싶은 심정이다. 이 자야말로 목수나 매춘부의 아들, 안식일을 파괴한 자, 사마리아인이자 귀신들린 자이다. 이 자야말로 그대들이 유다에게서 사들인 자다. …내가 생각한 바로는 그것은 원형 경기장이나 두 개의 무대 관람석보다도, 또는 다른 어떤 경기장보다 더 재미있는 광경이다.


     터툴리안 뿐만이 아니다. 니체는 토마스 아퀴나스도 서슴없이 인용했다. "천국의 축복받는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진 자들이 벌 받는 것을 보고, 그로 인해서 자신의 축복을 더욱 기쁘게 여기리라."[각주:15] 마찬가지로, 이러한 원한의 도덕이 유대인을 대상으로 했을 때 역사는 가장 비극적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확실히, 역사는 유대인을 향한 증오가 기독교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그 중에서 가장 파괴적인 인간으로 히틀러를 꼽을 수 있지만 실은 근본적인 싹은 이미 피어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예로, 4세기 교부 크리소스토모는 “(유대인은)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야비한 이들로… 음탕하고 탐욕스러우며 게걸스럽고 배신을 일삼는 강도이며 …상습적인 살인자에다 파괴자이며 악마에 사로잡힌 이들로서… 그들은 사나운 짐승의 잔인성을 능가하며 자기 자손을 죽여서 악마에게 희생물로 바친다.”[각주:16]는 끔찍한 독설을 퍼부었다. 불행하게도, 이런 독설은 시간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뿌리 깊게 박힌 하나의 기독교적 신앙의 원형이라는 것을 루터는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각주:17]


그대는 유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며, 그들이 어디서 음모를 꾸미는지 알아야 한다. 그곳은 바로 악마의 소굴이며 거기에는 헛된 자만, 교만, 거짓, 비방만이 난무할 뿐이다. 만일 그대가 유대인을 보았고 그들을 가르치는 것을 들었다면, 그대는 사람의 얼굴에 독을 뿌려 죽이는 살인 뱀을 본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루터가 뿜어낸 유대인을 향한 증오의 말들을 참고하면, 불행히도 20세기의 히틀러와 사실상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루터의 견해에 따르면 유대회당과 학교는 불태워져야 하고 더 나아가 하느님께 우리의 진실을 보여드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지옥불 속으로 던져버러야 한다. 유대인의 집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유대인이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 고통 속에 사로잡힌 존재라는 것을 깨닫도록 집시들처럼 지붕 아래 또는 헛간에 머물게 해야 한다. 유대의 기도서와 탈무드 서적 그리고 성서마저 유대인들이 비방하기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압수해야하고 랍비들에게는 절대로 가르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통행로나 거리에서 유대인을 발견하면 즉시 체포해야 한다."[각주:18]

     안타깝게도, 이처럼 터툴리안에서 루터에 이르까지 기독교의 역사에 나타난 유대교를 비롯한 타종교에 대한 가해의 텍스트를 들이댄다 할지라도, 지라르는 그것은 그들이 복음서의 진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체로 기독교의 역사란 타인을 십자가에 못 박고 싶은 욕망을 폭력으로 해결한 역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반유대주의 문제는 지라르가 말한 바와 같이 대충 넘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라르는 대놓고 이렇게 말한다.[각주:19]


반유태주의, 선민의식, 반진보주의나 희생물이라 할 수 있을 무고한 인류에 대해 복음서가 범했을지도 모르는 어떤 범죄를 들추어내려는 모든 작업들이 흥미로운 것은 그것들의 명백한 상징성 때문이다.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스스로 명쾌하게 해결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바로 그 텍스트에 의해 바로 자신이 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인간의 헛된 사업들 중에서 이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것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절망스럽게도 "20세기를 통틀어서 가장 센 모방의 힘은 나치도 아니고, 희생양 근심에 들어 있는 유대교적 기원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 근심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던 나치의 이데올로기도 아니다."[각주:20]라고 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신앙은 본질적으로 당파적이다. 그리스도를 찬성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나를 찬성하든가 또는 나를 반대하든가 둘 가운데 하나다. 신앙은 적 또는 친구만을 알고 있을 뿐 비당파성을 알지 못한다."[각주:21]는 포이에르 바하의 말을 지라르에게 헌정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모방하는 경쟁과 충돌, 그리고 희생양에 대한 그의 이해는 우리 시대의 가장 심오한 지적 발견의 하나”[각주:22]라는 윙크의 지적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사실, 희생자의 시각을 복음서가 다른 텍스트들보다 더 잘 드러내고 있다는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럼에도 현대의 모든 비평이 이교적이고, 반유대주의를 파헤치는 작업은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그의 지적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이 지경이 된 이유는 제의의 위기로 인해 발생한 폭력에 대해 종교들이 추구했던 해답의 차이를 역사적으로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다시 말해, 복음서가 유대전쟁 와중에 혹은 그 이후에 쓰인 것이라면, 유대교의 희생제의의 위기를 반영하는 일종의 논쟁적 이야기임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설령 했다하더라도 신화들의 비교를 통해 보는 방법론이 역사를 보는 감각을 망쳤을 수도 있다. 고로, 지라르는 브라이트의 다음과 같은 물음을 좀 더 신중하고 철저하게 고려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각주:23]


유대교가 실제로 추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의 남은 외길뿐이었다. 그것은 바리사이파가 지적한 길이니, 율법적 유대교, 곧 미쉬나와 탈무드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구약성서신학은 탈무드에 결합되어 그 열매를 맺은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대답이 있다. 그것은 크리스챤의 답이며, 또 크리스찬으로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답이다. 즉 그리스도야말로 모든 사람이 기다려 온 대로 하느님의 절대적인 구원권능이 인류역사에 결정적으로 침투한 그 사역 자체요, 모든 시대의 분기점인 대전환점이라고 선언한다. 요컨대 크리스찬의 대답은 그분이 바로 이스라엘 역사의 신학적 종착점이라고 확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디로? 라는 물음에 대해 이와 같은 상반되는 두 가지 답이 있다.


     이처럼 지라르와 달리 브라이트가 좀 더 겸손한 해법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브라이트는 "크리스챤과 유대인이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바로 이 문제에 관해서다. 비록 견해를 달리하더라도 양자가 사랑과 상호이해 속에서 각기 자기 입장을 지키도록 하자."[각주:24]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달리, 지라르 자신의 연구의 다산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개념들, 즉 짝패/쌍둥이, 제의의 위기, 초석적 폭력, 희생자의 시각에서 박해자를 고발하는 텍스트로서의 복음서 등은 기독교의 역사에서 발생한 반유대주의를 비롯한 타자에 대한 여러 폭력들을 성찰하도록 해 주는 소중한 유산이고, 그렇기에 브라이트의 겸손한 해법보다 좀 더 생산적인 해법을 내놓을 수 있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라르 그 자신은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보다 우월하다는 전통주의적인 기독교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는 한 때는 희생자였던 이들이 다른 때에는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몰랐던 것일까? 설령 희생자라 하더라도 폭력적 성향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내다보지 못했던 걸까? 이미 기독교의 역사는 이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비록 르낭처럼 유대교에 대해 독설을 내뿜거나 인종주의적인 색채를 풍기진 않았다할지라도 적어도 기독교 승리주의는 숭배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를 모든 것을 포괄하는 우월한 기독교라는 이념을 충실히 대변한 변증론자로 자리매김 해야 할 것이다. 이미 그 자신도 그렇게 말한 바 있지만 말이다.


4. 다원주의적 타자로서 복음서 읽기 : 프로이트의 『인간모세와 유일신교』 


     프로이트는 『인간모세와 유일신교』를 여러 차례에 걸쳐 썼고, 최종 저작본에는 서문을 두 개나 포함시켰으며, 더욱이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기 직전에 완성했다.[각주:25] 때문에 이 저서에서 반유대주의가 다루어지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할 대목은 반유대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모세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프로이트의 폭탄과도 같은 발언이다. 프로이트 역시 이런 발언이 아주 충격적이고 위험한 짓이라는 점을 잘 숙지하고 있었는지 이 책의 첫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각주:26]


한 민족이 자신들의 겨레붙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을, 그 민족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행위는 잘 하는 행위도 못될뿐더러 함부로 할 행위도 못된다. 적어도 그 민족에 속한 사람에게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적 이득으로 추정되는 것을 위해서 진실을 도외시한다는 비난을 당해서도 안된다. 더구나 실세 사태의 해명이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베풀 수 있는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


     자 그렇다면 모세란 누구였단 말인가. 프로이트에 따르면 모세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프로이트가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모세가 만약 이집트인이었다면 이라는 전제를 달고 연구를 진행했다. 또한, 자신의 이런 전제가 매우 불충분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연구는 이 불충분하고 더구나 불확실한 결론에 만족하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다."[각주:27] 더구나 "잡지 이마고에 이 글이 게재되는 근거는 이것이 정신분석학의 적용을 그 내용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근거는 정신분석학적 사고에 익숙한 극소수의 사람들, 정신분석학의 성과를 평가하는 사람들에게만 인정받을 수 있을 것"[각주:28]이라고까지 말했다. 다시 말해, 역사학적으론 극히 빈약한 자료에 기초한 주장일 수 있겠지만 정신분석학적으론 충분히 타당한 연구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역사학이 보지 못한 진실을 정신분석학은 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일종의 자긍심이 깔린 말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처음엔 "모세가 이집트인이었다는 통찰에서 파생하는 모든 추론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각주:29]는 신중한 자세를 취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새로운 종교를 마련해 준 모세가 이집트 인이었다면 우리는 그가 마련한 이 새로운 종교는 이집트 종교였다는 가정을 뿌리칠 수 있을 것인가?"라며 본격적으로 실마리를 풀어가는 논의를 전개했다. 그리고선 결론을 내렸다. "만일에 모세가 이집트 인이었고, 그가 자기 종교와 유대 인에게 전했다면 그 종교는 아케나덴의 종교, 즉 아덴교였다는 것이다."[각주:30]

     이런 결론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겐 분명 충격이었을 것이다. 특히, 유대인들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학자들의 이론을 끌어들여 나름대로 증명하고자 애썼다. 증명을 위해 역사비평학의 논의를 살펴볼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이것은 "우리 앞에 놓인 성서의 보고는 참으로 귀하고 가치 있는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지만, 이 기록은 어떤 목적을 향한 강력한 의도의 영향 아래 형편없이 왜곡되고 문학적인 창작의 산물에 의해 지나치게 미화되어 있다."[각주:31]는 그의 진술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래서일까, 성서의 이야기에서 "탈락, 신경에 거슬리는 반복, 명백한 모순"[각주:32]을 잘 읽어내고 있다. 그런데 프로이트에게 이런 탈락, 반복, 모순은 단순히 사료 처리의 문제가 아니라 흔적의 제거나 왜곡과 같은 정신분석학적 개념들과 만나게 해주는 현상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흔적의 제거와 왜곡이라는 개념을 견지하고 성서의 이야기를 분석한 결과 프로이트는 모세가 이집트인이라는 논제보다 더 충격적인, 즉 유대 민중이 모세를 살해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런 살해가 죄의식을 불러일으켰고 결국엔 야훼숭배에 이르도록 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살해와 숭배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또 다른 변형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종교가 분명히 정신병적 증후의 성격을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각주:33]

     이쯤이면,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프로이트는 대체 왜 이런 일을 착수했을까하는 물음을 말이다. 더욱이, 당시의 유대인들이 충격과 분노를 보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예감했음에도 말이다. 이를 위해, 일단 『토템과 터부』 히브리어판 서문을 참조해 보자.[각주:34]


이 책의 독자는 성서의 언어에 무지하고, 자기 조상의 종교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어 있으며, 민족주의적 이상을 공유할 수 없는, 그러나 아직까지 결코 자기 민족과 의절한 적이 없고, 자신의 본질적인 천성에 있어 한 사람의 유대인이라고 느끼고 있으며 그러한 본성을 바꾸고자 하는 어떤 욕망도 없는 저자의 감정적 위치에 자신을 올려놓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만약 그에게 당신이 당신 동포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모두 버렸으니, 당신에게 유대적인 무엇이 남아 있소라고 질문한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많은 것이 남아 있소. 그리고 아마 그 정수도 말이오.


     유대민족의 정체성과 관련한 프로이트의 복잡한 심경을 읽어볼 수 있는 글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이 글에 대한 로즈의 평은 『토템과 터부』뿐만 아니라 『인간모세와 유일신교』에서 프로이트가 행한 작업이 갖는 의미를 잘 포착해 내고 있다. 들어보도록 하자.[각주:35]


프로이트는 여기서 현대의 세속적 유대인에 대한 가장 충격적인 자기규정의 하나를 보여줍니다. 즉 언어적․종교적․민족적 정체성이라는 치장을 벗겨내는 것이 그를 덜 유대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유대적으로 만드는 유대인이 그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도이처가 말했듯이 세계의 틈새들에 거주하는 비유대적 유대인입니다. 이 비유대적 유대인은 자기 자신에게 유대인성의 정수가 있음을 주장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을 그것의 후견인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소유물로서 그것에 대한 권리를 강경하게 주장하며, 자신이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바로 이런 권리주장을 통해 특정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1930년대의 위기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부터 프로이트는 스스로를 보편화하는 것이 유대인적 특수성의 과업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모세와 유일신교』의 모세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한 프로이트 자신을 투영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모든 해석이 해석자가 처한 정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을 굳이 참조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분명한 것은 로즈가 말했던 것처럼 비유대적 유대인으로서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특정한 공간에다 박아놓지 않으려는 프로이트의 이러한 정체성 모색은 민족의 시원인 모세를 새롭게 읽고 정의해내는 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프로이트에 대한 사이드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길지만 들어보도록 하자.[각주:36]


도이처는 유대주의 내부의 주요한 이의 제기의 전통이 스피노자, 맑스, 하이네, 그리고 프로이트와 같은 이단적인 사상가들에 의해 구성된다고 논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의해 박해받고 파문당한 예언자이자 모반자였습니다. 그들의 사상은 강력한 사회비판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도이처는 그 사상 콤플렉스의 본질적인 구성요소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치유불가능한 국외이산적 특성, 고향에서 추방당했다는 특성이 그것입니다…유대인적 관점에서 비롯된 비유럽인에 대한 프로이트의 성찰과 주장은 내가 생각하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나 필사적으로 뛰어들고 싶어하는 민족주의적이거나 종교적인 집단 속으로 정체성을 용해시켜 넣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러한 관점이 수반하는 것에 대한 감탄할만한 스케치를 제공해줍니다. 더욱 대담한 것은 가장 잘 정의될 수 있고, 가장 식별가능하며, 가장 강고한 집단적 정체성조차도 거기에는 그것이 하나의 오직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완전히 병합되는 것을 방해하는 내재적인 한계가 존재한다는 통찰에 대한 프로이트의 심오한 예증입니다. 프로이트에게 있어 그러한 한계를 상징하는 것은 유대인 정체성의 정초자 그 자신이 비유럽적인 이집트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인간모세와 유일신교』에 대한 사이드의 이러한 지적이 프로이트에게만 해당되고 마는 일일까. 다시 말해, 우리에겐 적용되지 않는 사안일까. 앞서 본 것처럼 탈락, 신경에 거슬리는 반복, 명백한 모순을 야기하는 구약성서의 이야기들을 흔적의 제거 및 왜곡이라는 정신분석적 관점을 동원해 해체함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민족을 민족이라는 틀을 넘어 좀 더 보편적인 맥락에 위치시킨 프로이트의 작업은 복음서를 읽는 우리에게도 상당히 의미하는 바가 크다. 사실, 프로이트가 모세를 이집트인으로 해석한 작업은 개신교 성서학, 특히 역사적 예수 연구가 예수를 해석해 온 역사와도 일치한다. 한 예로, 예수가 유대인으로 와서 유대인으로 살다가 죽었다는 벨하우젠의 논제를 들 수 있다. [각주:37]분명, 이것은 모세가 이집트인이라는 프로이트의 논의만큼이나 예수를 기독교의 창시자로 본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낯설거나 혹은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논제는 벨하우젠 이래로 표준적인 이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르낭적인 논의, 즉 예수가 유대교에서 출발한 것은 맞지만 그 정신은 유대적인 것과의 단절이라는 주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벨하우젠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이런 이해는 역사적이기보다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고수하기 위한 신학적 이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이런 이해는 할 수만 있다면 특정한 어떤 한계선 안에 가두어 놓으려 하기에 타자에 대한 이해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쩌면 홀로코스트 이후 계속 제기되고 있는 반유대주의 문제에 대한 치열한 역사적 신학적 싸움은 이것을 반증하는 예일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민족의 시원인 모세를 이집트인이라고 칭한 프로이트의 작업은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던져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인간모세와 유일신교』가 전해주는 의미는 이 뿐만이 아니다. 오스트리아로 침공해 오는 나치를 염두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프로이트는 이 저서를 통해 반유대주의와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비판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 비판과 관련해 레너드는 중요한 설명을 곁들였는데, 들어보도록 하자.[각주:38]


프로이트는 유럽 중심의 설명은 물론 유대인 중심의 설명에서 드러나는 배제의 수사를 거부했던 것 같다. 프로이트는 긴 역사에 걸쳐 그리스인과 유대인 모두 순수성을 고집하는 사고에 반기를 들면서 이집트인 모세로 하여금 그리스인이 아니면서도 유대인에 대한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을 확실히 헛갈리게 하는 잡종 인물을 만들어냈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의 다신교가 아닌 유대인의 유일신교 덕분에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는지 강조함으로써 지성의 역사와 관련해 아주 도발적인 주장을 펼쳤다. 프로이트는 앞서 시대의 멘델스존처럼 유대교를 이성의 종교로 회복시키려 했던 것이다. 더구나 멘델스존과 마찬가지로 유대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적대감과 관련된 광범위한 담론이라는 맥락에서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 …프로이트 자신은 유대인의 지적 자신감, 곧 그들의 우월한 이성을 그리스도교의 반유대주의적 원천으로 여겼다. 혹자는 그리스인에게만 독점적으로 이성의 속성을 부여하는 것이 어떻게 그리스도교의 반유대주의 산물인지 보여주려 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모세를 잡종적인 인물로 만듦으로써, 게다가 모세의 유일신교가 갖는 이성적 측면을 부각시킴으로써 반유대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던 프로이트의 이러한 관심은 바울에 대한 그의 비판에서도 드러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바울이 만든 "새로운 종교는 선행하던 유대교에 대한 문화적 퇴행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각주:39] 이제 프로이트는 대놓고 말한다. 바울의 기독교가 갖는 "현상은 수준이 낮은 새로운 인간집단이 다른 집단에 침윤하거나 침윤의 허락을 받아 낼 때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유대교는 정신성의 정점에 이르러 있었지만 기독교는 이같이 높은 수준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기독교는 무엇보다도 아덴교와 여기에 이어지는 모세교와는 달리 미신적, 마술적, 신비적 요소의 침투를 거부하지 않았다."[각주:40] 바로 이 지점에서, 어쩌면 경계인으로서의 유대인이라더니 결국 프로이트도 원한에 섞인 증오를 감행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게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세속화된 유대인으로서, 그리고 종교란 극복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로 보는 인간에게 그런 의문은 자칫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프로이트 역시 "기독교는 인간이 이룬 하나의 진보였고, 이때부터 유대교는 화석으로 전락했다."[각주:41]고 지적한 바 있다.

     바울뿐만 아니라 프로이트는 복음서에 대해서도 메스를 가했는데, 이 부분은 아주 짧지만 빛나는 통찰을 지니고 있다. 그에게 복음서란 사람들을 반유대주의에 오염시켜 유대인에게 원한을 퍼붓게 한 주범이다. "복음서가 유대인 사이에 있었던 일, 오로지 유대인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원한의 전이를 훨씬 용이하게 만들었다."[각주:42] 하지만 원한의 전이보다 좀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복음서가 순전히 유대인만 다루고 있다는 프로이트의 통찰이다. 왜냐하면 어쩌면 이것은 프로이트가 기독교 경전이란 폭력이 배제된 깨끗하고 순수한 영성적 언어가 아니라 논쟁적이며 배제와 차별이 담긴 담론적 투쟁의 장소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경전이 하나의 투쟁의 장소라는 점은 큄멜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유대교와 관련한 논쟁으로서의 경전에 관한 논의는 아니지만 말이다.[각주:43]


마르시온이 이미 바울의 경전적인 권위를 확립했다고 하는 사실은 틀림없이 이미 교회 내에 있는 경향, 즉 사도적인 문헌들을 복음서의 문헌들과 같은 수준에서 평가하고, 이러한 새로운 성경을 분명하게 구분하려고 하는 경향을 아주 정확하게 강화해준 것뿐이다. 이러한 발전은 몬타너스주의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와 사도들에게서 계약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성에 의해서 더욱더 요구되었다.


     마르시온과 몬타너스주의 뿐이었겠는가. 그렇지 않다. 페이절스는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에서 네 가지 복음서를 주장하는 정통파의 주장이 영지주의를 배제하려는 시도였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정통파가 주장하는 사도적 승계는 경전의 형성을 도모하는 주된 논지였고, 정통파 자신들이 인정한 신약성서만이 "미래의 모든 교리와 형식을 결정하는 정전"[각주:44]이라고 믿었고, 이로 인해 신약성서 안에 있는 "네 가지 복음서 이외에 어떠한 복음서도 인정하지"[각주:45]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복음서가 유대인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기에 원한의 전이를 일으키는 텍스트라는 프로이트의 지적은 『신앙과 형제살인』이라는 류터의 책에서 직접적으로 확인된다. 게다가 류터의 이 책은 희생제의의 위기에는 쌍둥이/짝패에 관한 담론이 출몰한다는 지라르의 논의를 멋지게 보여주는 책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자기정립의 행위로서 아버지 유대교에 대해 아들 기독교가 행한 살해를 이만큼 잘 보여주는 책은 흔치 않을 것이다. 들어보도록 하자.[각주:46]


우리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죽음에 대한 비난을 로마 정치 당국으로부터 유대인의 종교적 지도자들에게로 전이시키려는 욕구가 복음서에 두드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역사가들은 대개 이러한 이유를 이방 선교의 긴박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 그러나 중요하게 지적되어야 할 점은 책임 전가가 단순히 로마당국으로부터 유대 당국으로 넘겨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부터 종교적 당국으로 넘겨진 것이다. … 이것은 이 책임 전가의 목적이 단순히 이방인들에 대한 변증적인 목적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유대 종교적 전승에 대한 논쟁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변절한 이스라엘의 종교당국은 항상 예언자들을 살해했으며, 따라서 대메시아적 예언자를 죽임으로써 그 배교적 유산의 정점을 이루었다는 사상은 모든 복음서 안에 들어 있는 대부분의 이야기 방향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복음서만 이 지경일까? 사실 반유대주의가 아닌 다른 관점을 동원하더라도 문제가 돌출하지 않는 것은 없다. 뤼드만은 신약성서의 다른 본문들이 불관용을 조장한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각주:47] 윌스 역시 신약성서에는 그들과 우리를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깊게 스며있다고 주장한다.[각주:48] 그렇다면, 기독교 경전인 신약성서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반유대주의 및 불관용을 설파하는 신약성서의 어떤 이야기들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만 하는가?

     불행하게도, 이것은 단순히 경전의 문제만이 아니다. 게르드마에 따르면 역사비평적 성서연구의 초기에 속하는 제믈러로부터 불트만을 거쳐 그룬트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학자들이 앞서 본 르낭처럼 유대교에 대한 복음서의 폭력적 서사를 암묵적으로 승인했음을 보여준다. [각주:49]수잔나 헤셀은 히틀러 시대에 망령처럼 떠돌아다니던 아리안 우월주의에 맞게 기독교 신학을 개작하고, 그럼으로써 유대인 학살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고만 신학자들을 추려내어 적극적으로 비판했다.[각주:50] 때문에, 미쓰오의 다음과 같은 말은 핵심을 찌른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각주:51]


지금까지는 신약성서에 나타난 유대교에 대한 비판적 경향이, 기독교의 많은 성서해석에서 무비판적으로 계승되어 신약성서 전체의 해석을 위한 단서로 여겨졌습니다. 아직까지도 신약성서의 이러한 비판을 기독교적· 신학적으로 본질적(W. 윌켄스)이라고 언명하는 신약학자도 없지 않습니다. 신약성서의 반유대교적 발언이 기독교 신학에 던지는 문제에 정면에서 답하려는 시도는 지금까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 아우슈비츠 이후의 신학이 화제가 되기 시작한 이후, 겨우 최근에 이르러 조직신학 차원뿐 아니라 성서신학의 차원에서도 이 문제가 다루어지게 되었습니다.”[각주:52]는 미쓰오의 지적은 기독교 신학이 반유대주의를 성찰하고 청산하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객관적인 학문을 수행한다는 전제 하에 행해진 작업들 가운데서도 유대교를 비방하고 저주했던 루터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태반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역사적 예수 연구 제 3의 탐구시기 이전까지는 그랬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다. 예수의 성전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특히 율법과 관련한 논쟁들은 역사적 예수가 아닌 교회의 시기를 반영하는 논쟁이라고 못 박은 샌더스의 저작 『예수와 유대교』 이래로 이 분야에서 나름의 반성이 생겨났던 셈이다. 훌륭하게도, 샌더스는 “보다 납득할만한 가정은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행한 그들의 일이 하나님에 대한 참된 봉사로 보았다는 것과 바리새인들이 진심으로 그들이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 그들도 모두가 정상에 오르고자 원했고, 그것을 확고히 하기 위해 합리적인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바리새인과 맞선 논쟁을 보다 면밀히 검토할 경우, …그들의 실제적 동기에 관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각주:53]고 말했다. 물론 그 이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일어났던 유대교에 대한 천주교의 반성도 빠질 순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각주:54]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천주교는 놀랍게도 유대교에 대한 선교 자체를 포기하는 선언을 감행하기까지 했다. 독일 개신교도 이런 선언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유대주의적 시선이 신학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성서해석학의 역사에 대한 고찰의 결론으로서 동시에 버트챌의 말을 인용하면서 티슬턴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각주:55]


버트챌에 따르면 많은 영역에서 학자들을 혼란시키는 지점은 개별적 인간의 사건이 하나님과 인간의 연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뿌리에 있는 문제는 성육신이다. 우리는 가현설과 아리우스주의를 동시에 피해야 한다.


     따라서 여전히 기독교 신학에 내재해 있는 이런 배제적인 해석학적 작업을 참조한다면, 경계인으로서 프로이트가 수행했던 작업은 꽤 의미 있는 과제를 던져준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경전에 박힌 타자를 배제하는 언어들에 함몰되어 배타적이고 포괄적인 기독교 승리주의를 발설하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서술된 타자, 정신분석학적으로 본다면, 흔적이 제거되고 왜곡되었을 수 있는 타자를 고려하는 읽기의 가능성을 프로이트가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특히, 혐오와 배제가 경전을 통해 더욱 힘을 얻고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선 말이다.


III. 마치며


     후설은 『데카르트적 성찰』에서 "일상적인 실천적 삶은 소박하며, 그 삶은 미리 주어진 세계 속으로 들어가 경험하고, 생각하고, 평가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 경우 모든 것에서는 경험작용의 지향적 작업수행들이 익명적으로 실행되는데, 이 작업수행들을 통해 사물들은 단적으로 현존하게 된다. 즉, 경험하는 자는 이 작업수행에 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며, 마찬가지로 작업을 수행하는 사유에 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각주:56]고 말 한 적이 있다. 평균적인 보통의 사람들이 자기가 처한 역사적 상황이나 환경을 객관적으로 성찰해서 판단하지 않고, 대체로 상황이나 환경이 제공하는 선입견을 그대로 수용해 해석을 감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퇴락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고, 보통은 선입견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인 것이다. 이로 인해 타자는 해석자의 선입견에 의해 포착되고 해석되며 점령당한다. 설령, 비판적 성찰을 거쳐 보편적 인식에 관한 감각을 기른다할지라도, 후설이 설명한 바와 같이, 인간이란 우선은 "모나드적 자기인식"을 거쳐야 하는 존재이며 상호주관적 인식은 단지 공감을 통해서만 실행될 뿐이다. 이것은 일상성에 빠져 사는 보통의 인간이 자기를 반성하고 타자를 포용함으로써 자기를 넘는 하나의 보편적 인식과 이해를 획득하기란 쉽지 않음을 가르쳐 준다. 아무튼, “보편적 자기성찰을 통해 세계를 다시 획득하기 위해서는 판단중지를 통해 세계를 상실해야" [각주:57]하지만, 분명히 인간이란 선입견 속에서 움직이며 그것을 토대로 끊임없이 판단을 수행하는 존재다. 하이데거식으로 고친다면, ”해석은 그때마다 하나의 앞서 가짐에 근거하고“[각주:58] 있는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살펴본 유대교에 대한 기독교적 자기 이해는 후설에 따르면, 타자를 고려한 상호주관성이기보다는 기독교적 자아에 의해 구성된 일종의 모나드적 자기인식일 것이고, 하이데거라면 기독교적 앞서 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프로이트를 따라 정리해 본다면, 이런 모나드적 자기인식 혹은 앞서 봄은 이미 반유대주의적 색채가 담긴 현상이었고, 이 현상이 반영된 아버지 유대교 살해에 관한 이야기들이 유포될 수 있도록 해준 원동력이었으며, 복음서 저자들은 자신들 보다 앞서 유포되고 있던 이런 이야기들을 자신들의 신학적 구상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하고 심화시켰고, 그리고 이를 통해 들어서게 된 원한과 증오가 다른 민족들에게로까지 전파되고 만 역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로 인해 기독교 초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대인을 향한 박해가 지속적으로 있어왔고, 최후엔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학살이 자행되었음을 상기하면, 오늘날 전투적 무신론자들이 추천하는 바와 같이 단순한 하나의 신화적 이야기로만 치부하고 끝내기엔 너무나 비극적이고 무서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심각하게는 이러한 비극이 다른 형태로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들이 얼마나 많이 타자들을 향한 혐오를 쏟아내고 있는가. 여성안수, 동성애, 이슬람 등과 같은 이슈와 관련해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담론들을 무수히 양산해내고 있다. 세월호와 관련해서도 어처구니가 없는 설교를 한 교회들도 상당한 수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과연 이 모든 일들이 성서를 잘못 해석한 인간들 탓에 생겨난 것일까? 그렇게만 본다면 너무 안일한 인식이 아닐까? 복음서에 나타난 반유대주의를 초점 삼아 지금까지 논의를 진행해 온 이유도 타자와 관련해 오늘날 교회들이 쏟아내는 혐오적인 발언이 이것과 무관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복음서 자체가 이미 유대인이라는 타자를 정의하고 대처하는 방식들과 관련해 다소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쪽으로 가르쳐 주고 있기에, 유대인이 아닌 다른 타자들에 대해서도 혐오와 배제를 실행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었다. 때문에, “차이는 있어도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모두가 거룩한 경전에 너무 많은 권위를 부여하는 위험을 안고 산다.”[각주:59]는 폴마이어의 지적은 한국 교회의 현실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는 게 아닐까. 경전이 제공하는 배타성에 함몰되어 타자를 배제할 위험성이 너무 많은 것이다. 더욱이 근본주의적 성서 이해가 판을 치는 이 사회에선 더욱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해석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본 것처럼 성서 자체에 이미 타자에 대한 배제의 담론이 투영되어 있다면, 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의 답변으로 프로이트적 독법을 제안한 것이 고작이라 자괴감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다원적이고 개방된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이런 독법이 최선이지 않을까.


ⓒ 웹진 <제3시대>



  1. 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 김진식․ 박무호 옮김, 민음사, 1997, pp.483~484 [본문으로]
  2. 정일권, "르네 지라르 '십자가 승리' 주목하라",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92703 [본문으로]
  3.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김진식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4, pp.230~231 [본문으로]
  4. 정일권, "르네 지라르 '십자가 승리' 주목하라",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92703 [본문으로]
  5. 르네 지라르, 『희생양』, 김진식 옮김, 민음사, 1998, p.17 [본문으로]
  6. 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 p.25 [본문으로]
  7.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p.240 [본문으로]
  8. 르네 지라르, 같은 책, p.226 [본문으로]
  9. 정일권, "르네 지라르 '십자가 승리' 주목하라",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92703 [본문으로]
  10. 윌터 윙크,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한성수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p.250 [본문으로]
  11. 윌터 윙크, 같은 책, p.249 [본문으로]
  12. 포이에르 바하,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강대석 옮김, 한길사, 2006, p.130 [본문으로]
  13. 포이에르 바하, 『기독교의 본질』, 강대석 옮김, 한길사, 2008, p.141 [본문으로]
  14.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학』, 홍성광 옮김, 연암서가, 2011, pp.61~63 [본문으로]
  15.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책, p.61 [본문으로]
  16. 레너드 스위들러, 앞의 책, pp.230~231 [본문으로]
  17. 이스마 엘보겐, 『로마제국에서 20세기 홀로코스트까지 독일 유대인의 역사』, 서정일 옮김, 새물결, 2007, p.115 [본문으로]
  18. 이스마 엘보겐, 앞의 책, p.115 [본문으로]
  19. 르네 지라르, 『희생양』, p.189 [본문으로]
  20.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p.225 [본문으로]
  21. 포이에르 바하, 『기독교의 본질』, p.401 [본문으로]
  22. 윌터 윙크, 앞의 책, p.251 [본문으로]
  23. 존 브라이트, 『이스라엘의 역사(하)』, 김윤주, 분도출판사, 1979, pp.358~359 [본문으로]
  24. 존 브라이트, 앞의 책, p.359 [본문으로]
  25. 데이비트 스태포드 클라크, 『한권으로 읽는 프로이트』, 최창호 옮김, 푸른숲, 1997, p;.245 [본문으로]
  26. 지그문트 프로이트, 『종교의 기원』,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5, p.257 [본문으로]
  27. 지그문트 프로이트, 앞의 책, p.267 [본문으로]
  28.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책, p.261 [본문으로]
  29. 지그문트 프로이트, 앞의 책, p.270 [본문으로]
  30.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책, p.281 [본문으로]
  31.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책, p.305 [본문으로]
  32.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책, p.307 [본문으로]
  33.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책, p.362 [본문으로]
  34. 재클린 로즈,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응답」, 『프로이트와 비유럽인』, 주은우 옮김, 창비, 2003, pp.99~100 [본문으로]
  35. 재클린 로즈, 앞의 책, pp.100~103 [본문으로]
  36. 에드워드 사이드, 『프로이트와 비유럽인』, pp.80~83 [본문으로]
  37. Julius Wellhausen, Einleitung in die Drei Ersten Evangelien, Berlin: Druck und Verlag, 1905, pp.108~115 [본문으로]
  38. 미리엄 레너드, 『소크라테스와 유대인』, 이정아 옮김, 생각과 사람들, 2014, pp.333 [본문으로]
  39. 지그문트 프로이트, 『종교의 기원』,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5, p.366 [본문으로]
  40.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책, pp.366~367 [본문으로]
  41. 지그문트 프로이트, 앞의 책, p.367 [본문으로]
  42.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책, p.371 [본문으로]
  43. W. G. 큄멜, 『신약정경개론』, 박익수 옮김,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p.493 이와 관련해 바트 어만의 책, The orthodox Corruption of Scriptur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3은 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본문으로]
  44. 일레인 페이절스,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 하연희 옮김, 루비박스, 2006, p.62 [본문으로]
  45. 일레인 페이절스, 같은 책, p.61 [본문으로]
  46. 로즈메리 류터, 『신앙과 형제살인』, 장춘식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1, pp.124~125 일레인 페이절스는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서가 반유대주의와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이에 대해서는 사탄의 탄생, 권영주 옮김, 루비박스, 2006, p.52를 참조하라. 하지만 뤼드만은 마가복음서에서 수난사화는 반유대주의적 성향이 스며있다고 지적한다. Gerd Ludemann, The Unholy in Holy Scripture, trans by John Bowden, Louisvill: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7, pp.85~90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47. Gerd Ludemann, Intolerance and the Gospel, New York:Prometheus Books, 2007 [본문으로]
  48. Lawrence Wills, Not God's People, United kingdom:Rowman& Littlefield Publishers, 2008 [본문으로]
  49. Anders Gerdmar, Roots of Theological Anti-Semitism: German Biblical Interpretation and the Jews, from Herder and Semler to Kittel and Bultmann, Leiden: Brill, 2009 [본문으로]
  50. Susannah Heschel, The Aryan Jesus,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8 [본문으로]
  51. 미야타 미쓰오, 앞의 책, p.50 [본문으로]
  52. 미야타 미쓰오, 같은 책, p.49 [본문으로]
  53. E.P. 샌더스, 『예수와 유대교』, 황종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8, p.458 [본문으로]
  54. 이와 관련해 펠리칸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어떠한 때 어떠한 자료이든, 가령 그 자료가 로마카톨릭 교회의 과거 공적인 자료를 포함하더라도 유대인에 대한 증오, 박해, 또 반유대주의의 표명을 슬퍼한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또 예수의 죽음을 당시 살았던 모든 유대인이나 현재의 유대인의 탓으로 돌리는 일체의 시도를 단죄하고 유대인을 하나님이 부정하고 저주한 자들로 여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는 점을 기술하고 있다. 야로슬라프 펠리칸, 『예수의 역사 2000년』, 김승철 옮김, 동연, 1999, p.364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55. 앤서니 티슬턴, 『앤서니 티슬턴의 성경해석학 개론』, 김동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2, p.528 [본문으로]
  56. 에드문트 후설, 『데카르트적 성찰』, 이종훈 옮김, 한길사 2002, p.227 [본문으로]
  57. 에드문트 후설, 앞의 책, p.233 [본문으로]
  58.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이기상 옮김, 까치, 1998, p.208 [본문으로]
  59. 잭 넬슨-폴마이어, 『예수를 배반한 기독교』, 한성수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12, p.14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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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타자성의 관점에서 본 신약성서 1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1. 시작하며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평했다. 세월호 이후를 사는 우리 역시 그렇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절망적이게도 300여 명의 아이들이 수장된 현실을 애도하기는커녕 혐오스러운 말을 쏟아내는 교회들을 돌아보면서 야만이 아닌 살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의심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교회는,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 해온 신학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앙리 레비의 말대로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으로 전락해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 세월호 사건을 향한 교회의 혐오스러운 발언들은 교회뿐만 아니라 신학에서 신앙적인 것으로 공공연히 통용되던 타자를 향한 평상시의 폭력적인 이해가 표출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고 말이다. 또한, 자연스럽게 이러한 의심은 내게 기독교의 경전인 성서를 다시 묻도록 만들었다. 어쩌면 타자를 향해 혐오스러운 말들을 내뱉도록 하는 하나의 근거로 이미 성서가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하나의 깊은 회의가 찾아왔던 것이다. 다행인 걸까. 바로 그 순간 다음과 같이 물었던 스퐁의 말이 떠올랐다.[각주:1]

 

우리는 궁극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서구 종교계에서 그렇게 널리 존중되고 있던 이 성경책이 어떻게 또 다른 악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성경을 악용하는 것을 막고 중지시킬 수 있을까? 성경은 다시 한번 생명의 원천, 그것도 궁극적 원천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늦었고 성경도 이미 너무 더럽혀졌나? 나는 이 책에서 이런 주제들을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당연히 스퐁의 이러한 질문들 중 눈에 들어온 것은 그 어느 것도 아닌 “이미 늦었고 성경도 너무 더럽혀졌나?”라는 그의 물음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르낭, 지라르, 그리고 프로이트의 복음서 해석은 꽤 유용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내게 타자에 대한 기독교적 폭력의 시초가 반유대주의라는 점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기독교적 동일자로 신앙을 일궈온 내게 이것은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믿고 따랐던 복음서가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을 일으키는 근거가 되었다는 점은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타자에 대한 폭력의 문제가 성서에 이미 내장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였다. 사실 이런 나와 달리, 이미 교회의 역사에서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아주 오래된 하나의 전제였다. "반유대주의는 결코 근대에 생겨난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과 함께 오랫 동안 몇 천년에 걸쳐서 그들의 존재를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이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는 다양한 변종을 하고는 했습니다. 오래전 신을 죽인 백성 유대인에 대한 기독교회나 교부들의 적의에서 시작된 그것은 이윽고 세속화되어 유럽 정신사의 그림자 부분을 형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각주:2] 하지만 교부들에서야 비로소 이 문제가 돌출했을까? "바울의 선교행동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원시 기독교회는 저들을 유대교에서 떼어놓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1세기 말부터 2세기 초에 걸쳐 발생한 원시 기독교회의 유대교 회당으로부터의 분리 단절은 그 후 수많은 트라우마를 야기했던 기독교적 반유대주의의 배경을 이루는 사건입니다."[각주:3]는 지적을 참조하면, 애초에 복음서부터가 유대교를 하나의 타자로 놓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반유대주의 문제는 복음서가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 이미 얼룩져 있음을 보여주는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 문제뿐이겠는가. 여성과 동성애도 성서에 내장된 타자에 대한 폭력을 보여주는 예들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 도킨스를 비롯한 전투적 무신론자들이 엄청난 열을 올리고 있음을 참조한다면 말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이고, 관용을 모르며, 인종차별주의, 부족주의, 편협성과 손을 잡고, 무지라는 옷을 입고, 자유로운 탐색을 적대시하고, 여성을 경멸하고, 아이들에게는 강압적인, 조직화된 종교는 양심에 커다란 짐을 지고 있어야 마땅하다."[각주:4]는 히치스의 말을 인정하고선 성서를 찢어버려야 하는 걸까. 마치 2세기의 마르시온처럼 말이다. 하지만 무시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참조한다면, 성서 역시 악으로 혹은 폭력으로 더럽혀져 있다는 점을 너그럽게 인정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결국 어떻게 읽고 해석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해진다고 봐야하는 건 아닐까. 사실 이런 일이 비단 성서에만 적용되는 일이겠는가. 다른 종교의 경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투적 무신론자들이 유대교뿐만 아니라 이슬람 경전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을 가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아가 종교의 경전들뿐만 아니라 실은 모든 텍스트가 떠안고 있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복음서의 폭력성을 인지시키고, "반유대주의적 편견의 뿌리로 만들려 하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그대로 동일시할 수 없는" 해석을 제안하는 일이지 않을까.

     이를 위해, 본론에서 독서행위에 관한 논의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독서행위는 읽고 있는 텍스트를 그대로 따르는 행위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육영수가 지적한 것처럼 독서행위는 "흰 종이 위에 고정된 검은 글씨를 인지하는 지각 행위가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경험, 교육과 가치관 등에 비추어 텍스트의 복잡한 의미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능동적 행위"[각주:5]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비록 폭력에 오염된 성서구절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늦깍이 신학생 마르틴 루터는 어느날 수도원 다락방에서 오직 신앙에 의한 의로움이라는 성경 구절에 벼락 맞아 면죄를 구원의 보증수표로 선전하는 가톨릭 천년왕국에 분연히 도전"[각주:6]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루터가 유대인을 향해서는 "전 그리스도교국에 대한 굶주린 경찰견이자 살인마이며, 완전 고의로 … 그들은 물과 우물에 독을 풀고, 아이들을 유괴하며 토막 내었는데 이는 그리스도인의 피로 은밀하게 자신의 분노를 삭이기 위해서였다."[각주:7]는 악랄한 저주를 퍼부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가 유대인에게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한때 그는 유대인을 약속의 자녀로 꽤 극찬했던 적이 있다. 그렇다면 루터는 독서행위는 단순히 텍스트를 따르는 행위가 아니라 이 보다 좀 더 복잡한 행위라는 육영수의 지적을 잘 보여주는 예이지 않을까. 아무튼, 독서행위에 관한 논의는 우리에게 성서가 나쁜 텍스트이기에 찢어버리거나 애초에 믿지 말아야 하는 열등한 경전이라고 주장하는 오늘날의 전투적인 무신론자들보다 좀 더 복잡한 물음과 답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계속되는 논의에서 독서행위가 텍스트를 단순히 반복하는 행위가 아닌 좀 더 복잡한 행위라면 대체 성서를 어떻게 읽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모색하기 위해 르낭, 지라르, 그리고 프로이트를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한 바 있지만, 이들을 반유대주의가 복음서에 내장되어 있음을 보여준 사람들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복음서를 읽고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서로 달랐다. 기독교적 사고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 킴볼의 논의에 기대어 보자면, 르낭은 배타주의적 사고에, 지라르는 포괄주의적 사고에, 그리고 프로이트는 다원주의적 사고에 속한다. 킴볼에 따르면 배타주의적 사고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정당한 구원의 방법을 제공해준다는 신념”[각주:8]인데, 특히 배타주의에서도 극단에 위치한 입장인 문자주의는 “종교적 다양성이 야기하는 복잡한 이슈들을 해결해보려 애쓰는 태도는 찾아보기”[각주:9]어려운 그런 사고를 갖고 있다. 포괄주의적 사고는 "과거 수백 년 동안의 많은 다툼과 불화를 잊고 상호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며 함께 힘을 합쳐 평화, 자유, 사회적 정의, 도덕적 가치관을 보존하고 장려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각주:10]하는 입장지만, 그럼에도 "모든 종교에 나타난 하느님의 구원과 역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계시를 모두 인정"[각주:11]한다. 다원주의적 사고는 "기독교를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보지도 않고, 다른 종교의 완성형으로 보지도 않는다. 구원을 얻기 위한 다양한 행로가 모두 실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인정한다."[각주:12] 물론 르낭, 지라르, 프로이트를 이 유형들에 딱 들어맞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에 나타난 반유대주의를 어떻게 대면하고 해석해 가야하는지를 모색함에 있어 중요한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하나의 결론적 제안을 도모할 것이다. 반유대주의를 비롯해 타자에 대한 폭력을 하나의 성스러운 종교적 경험으로 제안하는 신약성서의 이야기들을 읽을 때 어떤 독법이 권장될 수 있는지와 관련해서 말이다. 특히, 개인의 거룩한 종교적 행위로서의 성서 읽기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함께 고려하면서 말이다.


2. 중심글


   1. 종교적 체험으로서의 독서행위 : 배제인가 포용인가


     엘리아데는 종교적 체험을 성스러움에 대한 경험이라고 했다. 물론, 그에 따르면 성스러움은 혼란스러운 것들을 정돈해주는 일종의 방향잡기 혹은 자리 잡기로 정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방향잡기는 소위 신들이 행한 것들을 그대로 따르려는 소위 모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엘리아데의 논의를 참조할 때 비로소 이해가 가능해진다. “인간 행위의 의미와 가치는 있는 그대로의 물질적인 여건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원초적인 행위의 재현, 신화적인 전범의 반복이라는 인간 행위의 특성과 결부되어 있다. 영양섭취는 단순한 생리작용이 아니라 일종의 성찬식의 되풀이이다. 혼례와 집단적인 오르지도 신화적인 원형들의 반향이다. 그런 행위들이 반복되는 것은 태초에 신들, 조상들, 영웅들에 의해 그 행위들이 축성되었기 때문이다.”[각주:13] 한 마디로, 종교적 체험은 신들이 행한 행동들을 그대로 따르려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책의 종교인 기독교는 성서를 읽음으로써 이런 욕망을 실현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기독교, 특히 오직 성서만으로를 외치는 개신교는 이런 현상이 좀 더 심하게 나타난다. 스펄전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4]

 

다른 모든 책이 한곳에 모아져 불에 태워졌다고 해도 그것은 거룩한 책 한 페이지를 소거했을 때보다 세상에 끼치는 손실이 적습니다. 다른 모든 책은 아무리 좋더라도 단지 금박과 같아서 금 1온스를 얻기 위해서는 다량의 책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순금입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들의 정신적인 부라 해도 그 안에는 계시의 진리와 같은 보석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성서가 다른 어떤 책보다 귀하고 중요하다는 논지는 기독교인들이라면 대체로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지가 좀 더 확대되면 성서는 영감 받은 책이기에 오류가 없고, 성서만으로 충분하며, 최고의 책이고, 일관되고 참된 세계관을 주는 유일한 책이라는 주장으로까지 번진다. 성서는 일종의 나침반으로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해석해주는 결정체가 된다. 이렇게 되면 이미 스펄전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다른 모든 것은 열등하고 하찮으며 성서에 비춰서 이해되어야 하는 부차적인 것이기에 배타적인 태도가 쉽게 형성된다. 성서가 말하는 바가 무조건 옳다는 식으로 정립되고 나면 성서가 말하는 모든 문자는 진실이고 진리이고 따라야 할 기준이 되는 것이다. 특히, 개신교인들에겐 성서와 일치시키는 삶이 하나의 종교적 체험임을 상기하면 때론 꽤 위험한, 심지어 폭력으로까지 비화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예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때문에 개신교에서 독서, 특히 성서읽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알다시피, 점차 사회가 다원화되고 개방되어가고 사람들 역시 그러함에도, 교회는 배타적인 방식의 성서읽기만을 추천함으로써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측면이 많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서읽기가 배타적이 아닌 타자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은 일단 자기가 읽는 성서에 대해 거리를 두고 심지어 비판적으로 읽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읽기의 묘미는 설사 문자 그대로를 따른다하더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폭력적인 본문을 읽는다하더라도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것이고, 누군가는 그대로 따라할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성서를 문자 그대로 따르려는 사람들이 교회에선 신앙심이 깊은 걸로 존중받는다. 그렇기에 나쁘게는 성서읽기란 무엇이며 어떤 태도로 성서를 읽어야 타인과 소통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 오늘날 교회에서 드러나는 소수자와 타종교를 향한 끊임없는 혐오는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제 중심을 잡아주는 성스러운 종교적 체험으로서의 성서 읽기가 타자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는 읽기가 되기 위해선 어떠해야 하는지를 르낭, 지라르, 그리고 프로이트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또한, 이 세 사람을 통해 서문에서 독서란 흰 종이 위에 고정된 검은 글씨를 인지하는 지각 행위가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경험, 교육과 가치관 등에 비추어 텍스트의 복잡한 의미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능동적 행위라는 육영수의 말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같은 복음서를 읽었음에도 이 세 사람은 전혀 다르게 읽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2. 배타주의적인 기독교적 동일자로서 복음서 읽기 : 르낭의 『예수의 삶』


     1863년 에른스트 르낭은 초자연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순전히 인간적인 모습만을 묘사한 『예수의 삶』을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날 우리가 보기엔 당연하게 보이지만 당시에 이 저서는 많은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다. 왜냐하면 당시 프랑스의 가톨릭은 이 책을 금서목록으로까지 지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바이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아주 감동적인 사건으로 묘사한다.[각주:15]

     르낭의 예수의 삶은 세계 문학의 한 사건이었다. 그는 지금까지는 단지 신학자들만 관심을 가졌던 문제를 전 교양인의 세계에 제시한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하나의 예수상을 제시했는데, 그 예수는 생활한, 그가 문예작가로서 갈릴리의 푸른 하늘에서 만난, 감동된 붓으로 포착한 예수였다. 세상은 감동을 받았으며 살아있는 예수를 보는 것 같았다. 세상은 르낭과 함께 푸른 하늘을, 물결치는 누런 곡식들을 먼 산들과 화려한 백합들을 게네사렛 호수 주변에서 보았으며, 그와 함께 살랑거리는 갈대밭에서 산성 설교의 영원한 선율을 들었다.  

     확실히, 르낭은 슈바이처의 이런 찬사를 받을 만하다. 그는 이 저서를 쓰기 위해 갈릴리 지역을 자주 여행했음을 강조하고, 특히 역사비평의 원칙을 고수했음을 분명히 밝힌다.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기까지 우리는 역사비평의 원칙, 즉 조차연적인 이야기는 말 그대로 허용될 수 없으며 그것은 항상 고지식함이나 속임수를 내포하고 있고,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을 해석하고, 그것이 품고 있는 진리와 오류가 어떤 것인가를 찾아내는 것이라는 원칙을 고수할 것이다.”[각주:16] 따라서 독자는 1세기 갈릴리에서 살았던 한 인간을 객관적이고 편견이 없는, 마치 살아있는 실제의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자신의 저서에 묘사된 예수는 기독교의 교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그가 주장하는 대목에선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기독교 기원에 관한 역사를 구상했을 때, 하고 싶었던 것은 요컨대 인물이 거의 관련이 되지 않은 교리의 역사였다. 그러나 그 이후 역사란 추상적인 개념의 단순한 유희가 아니며, 역사 속에는 교리보다는 인물이 더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종교개혁이 만들어 낸 것은 은총 받음과 속죄에 관한 교리가 아니라 루터와 칼빈인 것이다.”[각주:17]

     그러나 르낭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슈바이처의 찬사는 길어봐야 한 페이지를 넘지 않았다. 이후 슈바이처는 줄곧 르낭을 비판하기에 여념이 없다. 르낭은 자신이 역사적 원칙을 견지했다고 불평하겠지만, 슈바이처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르낭이 취급한 방법들에게는 역사적 계획에 관한 언급을 볼 수 없다. 말은 모두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되는 곳이면 어디나 삽입해 넣었다. 한 마디 말도 거저 버려두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적 상황에 맞는다고 본 것은 한 마디도 없다. 개체 장면들을 너무나도 마음대로 짜 맞추고 있다.”[각주:18] 심지어, 찬사를 보낸 뒤 바로 거침없는 혐오를 내뿜었다. “르낭의 예수의 생애처럼 무미한 것들이 꿈틀거리는 책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혐오한 책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말이 가진 가장 추악한 의미에서의 그리스도교적 예술품이다.”[각주:19] 또한, 르낭에 대한 콜라니의 비판을 전하며 확인사살을 감행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기대에 부풀어서 관심을 가지고 르낭의 책을 읽었으나 가장 분격된 실망으로 그 책을 덮었다.”[각주:20] 슈바이처가 이렇게까지 비판하는 이유는 르낭이 그린 예수가 1세기 유대교의 맥락이 아니라 19세기 서구의 도덕적 이상향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로, 1세기 유대교의 묵시적인 세계상을 고려하고자 했던 슈바이처에게 “그가 실현하려는 혁명은 언제나 정신적인 혁명이었다. …사실 그가 세운 것은 내가 영혼의 나라라고 부르고 싶은 하느님 나라였으며, 예수가 세웠던 것, …바로 이것이 영혼의 자유라는 교리”[각주:21]라는 르낭의 진술은 "단순한 세계에서 살기 위해 감상으로 향유를 바르고 화려하게 꾸며야 했던 것“[각주:22]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이 같은 슈바이처의 비판엔 가혹한 측면이 있다. 1세기 유대교의 맥락을 르낭이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을지라도, 르낭의 『예수의 삶』은 슈바이처 자신도 인정한 바와 같이 대중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비판적으로 조사된 예수의 생애』를 썼다가 독일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대학으로부터 쫓겨난 슈트라우스마저도 르낭의 필체를 본받아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으려 했을 정도니 말이다. 더군다나, “이교적이지만 공손함으로 가득한 종교의 역사를 만들고자 하며, 18세기의 메마른 합리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신학의 엄격함으로부터 종교를 보호하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랑송은 르낭이 비종교적인 과학으로 이 작품을 종교적으로 만들었다고 쓸 수 있었던 것”[각주:23]이라는 박무호의 지적을 기억하면, 르낭은 19세기의 일반적인 서구 기독교 대중들에 맞는 새로운 기독교를 제시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특히, 당시의 기독교 교리에 염증이 난 일반 대중들에게 1800년 동안 기독교는 보편적이고 단순한 영혼의 가르침을 설파한 예수를 교리로 혹은 철학으로 가두어왔다는 르낭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가슴을 뛰게 하는 한편의 시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각주:24]

 

     예수는 교리의 창시자가 아니라 상징의 제작자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정신을 가진 세상의 선구자인 것이다. 한편으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덜 기독교적인 사람들은 4세기부터 기독교를 형이상학적인 유치한 토론의 수단으로 몰아 버린 그리스 교회의 박사들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복음서로부터 거대한 대전이라는 수백만 개의 논문을 끌어내려 했던 중세 라틴의 스콜라 철학자들이었다. 어떤 예외적인 운명에 의해서 18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여전히 순수한 기독교가 보편적이며 영원한 종교라는 특성을 지닌 채 나타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기독교는 완전히 자발적인 영혼들의 운동의 결실이며, 태어날 때부터 교리의 속박이라고는 없었고 300년 동안이나 양심의 자유를 위하여 투쟁해 왔기 때문에 기독교가 겪어온 타락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그 탁월한 기원의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새로워지기 위해서 기독교는 복음서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 때문에, 다시 말해 기독교가 보편적이고 영원한 종교라는, 따라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복음서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르낭의 인식은 다른 종교, 특히 유대교를 꽤 폭력적으로 다루는 토대가 된다. 역사가 아닌 인간의 보편적 정신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르낭은 "예수가 유대교에서 출발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예수는 유대교의 계승자라기보다는 그의 업적이 특징짓고 있는 것을 보면 유대 정신과의 단절인 것이다."[각주:25]라고 선언해 버린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은 건방지고 오만하며, 중세의 스콜라 철학자나 신학자들처럼 논쟁과 궤변을 일삼기를 좋아할 뿐 영혼에 대해서는 정작 아무 것도 모르는 얼간이들로 전락하고 만다. 샴마이 학파는 편협하고 배타적이다. 이들의 율법은 구시대적 악습이고 철폐되어야 하는 유치한 것이다. 때문에 율법이란 단지 기독교 탄생의 필수적인 근원만을 보유한다는 의미에서만 좋은 것이다. 이 외에는 위선이고 광기이고 오류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미치광이에 가까울 정도로 율법을 사랑했던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 자체에 휩싸여 버린 낡은 엄격함은 유치한 것에 불과했다. 엄격함을 유지하고 있던 유대 회당은 단지 오류의 산실에 불과했다. 융통성이 없는 위선과 예수와의 투쟁은 지속되었다."[각주:26] 심지어 유대교에 그치지 않고 이슬람과 교묘하게 겹쳐놓고선 이 두 종교에 대해 독설을 퍼붓기까지 한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1세기 유대교의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예수의 생애를 다루었다는 슈바이처의 지적은 정확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 “르낭이 예컨대 유태인이나 이슬람교도에 관한 의견을 서술하고자 하는 때면 언제나 그의 마음 속에는 셈족에 관한 현저히 신랄한 비판이 숨어 있었다. 인도 유럽어에 비하면 셈어는 윤리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타락된 형태이고 …르낭의 자아에서 셈어가 유럽인의 동양지배의 상징이며 또 자신이 속하는 시대를 지배하는 것의 상징이기도 했다는 점을 우리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각주:27]고 지적한 사이드의 말을 참조하면, 르낭이 『예수의 삶』에서 왜 그렇게 유대교와 이슬람을 다음과 같이 헐뜯었는지도 이해가 된다. [각주:28]

     조그만 갈릴래아인 집단은 이곳이 상당히 낯설었다. 당시의 예루살렘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현학적인 태도, 신랄함, 논쟁, 증오, 그리고 영혼의 왜소함 등으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그곳에서는 광신이 극에 달해 있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결국 궤변가의 문제로 귀착되어 버리는 율법연구가 유일한 공부였다. 이러한 문화는 영혼을 연마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러한 것은 회교도들의 부질없는 교리, 즉 회교 사원 주변에서 발생되는 공허한 지식과 다를 바 없었으며, 많은 시간과 추리력을 소비하면서도 손실만을 초래할 뿐, 영혼에 대한 교리에는 이용되지 않았다. 유대박사와 율법학자들의 지식은 완전히 미개한 것이었으며 도덕성이 완전히 결여된 보상없는 부조리였다.  


     인류를 고양시킬 수 있는 보편적인 영혼의 종교를 예수를 통해 찾고자 했던 르낭이 어떻게 유대교나 이슬람교를 이렇게까지 왜곡하고 저주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물론 <예수의 삶>의 저자로서 유명하고, 그것이야말로 기독교와 유대인에 관한 그의 기념비적인 역사서술의 선두를 장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의 삶이 사실은 일반사와 완전히 동일한 유형의 업적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각주:29]는 사이드의 말을 거치면 놀랍지 않다. 차라리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이드는 르낭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민족지의 발생과 함께, 차이가 분류되고 다양한 진화 과정이 확장되었다. 즉 진화는 원시종족으로부터 종속 인종을 거쳐 마지막으로는 우등 인종 또는 문명 민족으로 나아간다. 고비노, 메인, 르낭, 흄볼트는 핵심이다. 원시, 야만, 퇴화, 자연, 반자연과 같은 일반적으로 사용된 범주도 여기에 속한다."[각주:30] 그렇다면, 르낭이 그린 예수는 유럽중심이고, 심하게는 인종주의적인 측면까지도 내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이를 확인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각주:31]

 

     자국민보다도 현명하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사람은 스스로의 조국에 대하여 고통을 느낄 수 없다. 국민들에게 가혹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과 함께 과도하게 바르게 사는 것보다도, 도리어 국민과 함께 오류를 범하는 쪽이 낫다.  


     이제, 기독교가 보편적이고 영원한 영혼의 종교라는, 따라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복음서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르낭의 말은 이전과 달리 아름답게만 들리지 않는다. 한번 물어보자. 과연 그는 자신이 말한 바대로 복음서로 되돌아갔는가. 되돌아갔음에도 복음서에 서술된 초자연적 요소를 배제해 버리는 그의 시도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참조한다면, 복음서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그의 말은 차라리 어떤 의도, 즉 교리나 철학을 던져버리고 단순한 영혼의 세계에 살고자 하는 소망을 강렬히 키워야 하는데, 그 영혼의 세계란 다른 어떤 장소도 아닌 유럽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유럽의 타자인 유대교가 열등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더구나 복음서마저도 유대교를 비판해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문명 대 야만이라는 19세기의 서구적 서사를 이미 승인한 르낭에겐 말이다. 서구 백인 기독교라는 동일자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사유했던 르낭에게 유대교에 대한 복음서의 폭력적 서사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고 오히려 예수의 선한 영혼을 선명하게 부각시켜주는 촉진제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폭력과 타자성의 문제는 예수의 고귀한 영혼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었고, 할 수만 있다면 짓밟아도 상관없는 배경이지 전경은 결코 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존 쉘비 스퐁, 『성경과 폭력』, 김준년․ 이계준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07, p.31 [본문으로]
  2. 미야타 미쓰오, 『홀로코스트 이후를 살다』, 박은영·양현혜 옮김, 한울, 2013, p.18 [본문으로]
  3. 미야타 미쓰오, 앞의 책, pp.58~59 [본문으로]
  4.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 김승욱 옮김, 알마, 2008, p.90 [본문으로]
  5. 육영수, 『책과 독서의 문화사』, 책세상, 2010, p.40 [본문으로]
  6. 육영수, 같은 책, p.21 [본문으로]
  7. 레너드 스위들러, 『절대 그 이후』, 이찬수·유정원 옮김,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3, p.234 [본문으로]
  8. 찰스 킴볼, 『종교가 사악해질 때』, 김승욱 옮김, 에코리브르, 2005, p.286 [본문으로]
  9. 찰스 킴볼, 같은 책, .p286 [본문으로]
  10. 찰스 킴볼, 같은 책, p.289 [본문으로]
  11. 찰스 킴볼, 같은 책, p.288 [본문으로]
  12. 찰스 킴볼, 같은 책, p.291 [본문으로]
  13. 미르치아 엘리아데, 『영원회귀의 신화』, 심재중 옮김, 이학사, 2003, p.15 [본문으로]
  14. 토니 레인케, 『독서신학』, 김귀탁 옮김, 부흥과 개혁사, 2012, p.40 [본문으로]
  15. A. 쉬바이처, 『예수의 생애연구사』, 허혁 옮김, 대한기독교출판사, 1986, p.188 [본문으로]
  16. 에르네스트 르낭, 『예수의 삶』, 박무호 옮김, UUP, 1999, p.47 [본문으로]
  17. 에르네스트 르낭, 같은 책, p.48 [본문으로]
  18. A. 쉬바이처, 같은 책, p.190 [본문으로]
  19. A. 쉬바이처, 같은 책, pp.188~189 [본문으로]
  20. A. 쉬바이처, 앞의 책, p.196 [본문으로]
  21. 에르네스트 르낭, 앞의 책, p,132 [본문으로]
  22. A. 쉬바이처, 같은 책, p.198 [본문으로]
  23. 에르네스트 르낭, 같은 책, p,420 [본문으로]
  24. 에르네스트 르낭, 같은 책, pp.348~349 [본문으로]
  25. 에르네스트 르낭, 같은 책, p.356 [본문으로]
  26. 에르네스트 르낭, 앞의 책, p.273 [본문으로]
  27.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박홍규 옮김, 교보문고, 1999, pp.256~257 [본문으로]
  28. 에르네스트 르낭, 같은 책, pp.189~190 [본문으로]
  29. 에드워드 사이드, 같은 책, p.264 [본문으로]
  30. 에드워드 사이드, 『문화와 제국주의』, 박홍규 옮김, 문예출판사, 2005, p.229 [본문으로]
  31.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p.268 이와 관련해 르낭의 예수 연구가 인종주의에 오염되어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켈리의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Shawn Kelly, Racializing Jesus, London: Routledge, 2002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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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 역사, 그리고 텍스트 II : 역사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1. 사실 및 진실 추구로서의 역사


     역사란 무엇인가? 대체로 사람들은 특정한 시기에 일어난 사실에 관한 기록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역사를 허구와는 다른 성격을 띠는 소위 진실에 관한 기록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역사란 종종 거짓내지는 환상으로 취급되고 있는 신화와 대척관계에 있는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에 관한 기록으로서의 역사라면 적어도 신화적 성격들은 서술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셈이다. 또한, 이러한 점에서 비록 역사에 관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플라톤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음미해 볼만하다.[각주:1] 


호메로스나 그 밖에 다른 시인들은 우리가 이 구절들과 그런 따위들을 지워 없애도 화를 내지 않도록 부탁할 것인데, 그것은 그런 구절들이 시답지가 않고, 또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들어주지 않는 데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시다울수록 자유로워야하고, 죽음보다는 노예됨을 더욱 두려워해야 하는 애들이나 어른들이, 그만큼 덜 들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일세. …… 그렇다면 우리는 또 그런 문제들에 속하는 두렵고 무서운 낱말은 모두 제거해야 하네. 즉 코키토스라든가, 스티크스라든가, 악귀라든가, 송장이라든가, 그리고 그밖에, 같은 나이의 누구든 듣는 사람을 소름끼치게 하는 그런 따위의 낱말 말이세. 


      결국, 플라톤은 “호메로스를 비롯해서 모든 작가들은 사람으로서의 덕성이라든가 또 그밖에 그들의 작품의 주제가 되는 것들의 허깨비를 모방하는 자들로서 참다운 것 그 자체에는 결코 접하지 않고 있다고 우린 주장하도록 할까?”[각주:2]라고 묻는다. 심지어, “이렇게 해서 이제 우리는 작가를 붙들고, 그를 화가와 동격자라고 규정짓는 것이 정당할 걸세. 왜냐하면 진리와 견주어 보아 하잘것없는 것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도 화가와 비슷하고, 또 영혼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 아니라 역시 하잘것없는 부분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는 화가와 비슷하기 때문일세. 그래서 한 나라가 잘 다스려져야 한다면, 결국 그 나라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정당할 걸세. 왜 그런고 하니, 그는 영혼의 이 하잘것없는 부분을 일깨워서 키우고 이것을 강하게 해서 이지적 부분을 파멸시키기 때문일세.”[각주:3]라고까지 말한다. 요약하면, 진실의 담론을 추구하는 일과 관련해 작가란 영혼을 파괴하는 모방자이기 때문에 플라톤에 따르면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하는 자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특별한 담론법으로서의 역사는 진실 추구의 측면에서 문학 장르와의 계속적인 단절을 통해, 그리고 더딘 출현을 통해 태어났다.”[각주:4]는 프랑수아 도스의 말을 참작하면, 플라톤의 이러한 지적들이 철학뿐만 아니라 역사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의 논의를 따르는 자에게 역사란 신화와 달리 사실과 관계해야하고 더 좋게는 영혼의 이지적인 부분을 증대시켜야 하는 과제를 맡은 하나의 진실에 관한 담론으로 등장한다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역사학의 아버지인 헤로도토스를 신화론자로 규정하면서, 투키디데스는 역사가라면 진실을 탐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플라톤과 유사하게, “여기 제시된 증거에 따라 내가 기술한 대로 과거사를 판단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분명한 주제가 무엇이든 찬양하려 드는 시인의 시구나, 사실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청중의 주목을 끄는데 관심이 많은 산문 작가의 기록에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다루는 주제는 증명의 영역 밖에 있으며, 세월이 흘러 대체로 사료로서의 신뢰성을 상실하여 신화의 영역에 속한다.”[각주:5]라고 말함으로써 그는 역사와 신화/문학 간의 분리를 시도한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가는 “진리를 규명하고자 노력하지 않고, 전해오는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받아들”[각주:6]이는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야 하는 것이다. 확실히 “눈에 보이는 증거, 혹은 가능한 한 완벽하고 주의 깊은 비평적 고증을 거친 후에야 정보들을” [각주:7]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역사를 묻는 일은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이데아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신화/문학과 같은 허탄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탐구를 통한 진실을 추적하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진실의 원천으로 보는 것, 즉 눈이 매우 중시되었다. 


      역사를 신화/문학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했던 이러한 경향은 1681년 장 마비용의『고문서학』이라는 저서와 함께 더욱 강화되었는데, 프랑수아 도스는 “마비용은 지식 학문들의 시리즈 속에 역사를 등록시키고, 기록보관학 총체의 접근 속에서 엄격한 유사성의 규칙들을 고려하여 역사장르가 도래한 문학과의 분리를 강조한다.”[각주:8]고 말한다. 그리고 “자체의 규칙·관례가 있는 방식을 갖추고, 확립과 재인의 특별한 양식들 가진 방법론을 갖추면서 실제로 전문화된”[각주:9] 19세기와 더불어 역사는 비로소 신화/"문학과의 근본적인 단절을 표명한다."[각주:10]고 지적했다. 여기서 좀 더 도스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1]


역사학 입문의 작가인 샤를 빅토르 랑글루아와 샤를 세이뇨보가 수사학과 가장, 혹은 학술적인 역사 이야기를 더럽히는 문학의 미세한 입자들이라고 부른 것을 훌륭한 역사가는 모두 거부한다. 기술방식은 교육적 가치를 지닌 거의 익명의 문체론을 위해 문학의 미학적인 흔적들을 지울 것을 절실히 요구한다. 


     따라서 “그 시대의 가치는 그 시대가 낳은 결과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 그 시대가 자체적으로 갖는 고유한 것 속에 있다.”[각주:12]고 말함으로써 랑케 역시 당연하다는 듯 “인식주체인 역사가는 자기 자신을 해소함으로써 사실이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각주:13]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 실제 일어난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며 그것의 가치는 시간의 흐름을 초월해서 불변적으로 존재한다.”[각주:14]고 믿었기에 사실에 입각한 역사의 재구성을 역사가의 최대의 과제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 본 역사에 대한 이런 시도들에 대해 니체라면 아마도 조롱을 퍼부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이런 시도들은 기껏해야 생기 없는 죽은 문자를 대하는 일과 같은 그런 일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을 기준으로 복음서를 연구하고 마침내 신화적 이야기로 간주했던 슈트라우스에 대한 그의 통렬한 비판은 이에 대한 적절한 예일 것이다. 길지만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5]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근대적 이념에 맞는 성서를 위해 칸트의 이성비판으로부터 무엇을 획득할 수 있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는 어디서나 극히 조야한 사실주의의 마음에 들게만 말하고 있다는 것,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이야말로 이 새 복음서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이며, 여하튼 이 복음서는 끊임없는 역사연구 및 자연연구의 노고의 성과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이며 또 그럼으로써 철학적 요소를 부인한다. 그는 관념론의 기본적인 이율배반에 관하여, 또 일체의 학문 및 이성의 극도로 상대적인 의미에 관하여 아무것도 예감하지 못한다.…… 개념은 인간을 결코 윤리적으로 더욱 선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 도덕을 설명하기는 쉽지만 도덕의 기초를 다지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 슈트라우스는 이런 것조차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시대 특유의 학문에 종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으로써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설령 문화를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최선의 능력과 가장 성실한 의지가 도처에 현존한다고 가정할지라도 그러한 방법으로 학문에 종사함으로써 문화에 대하여 도대체 무엇이 나올 것인가 하는 물음을 거의 한 사람도 제출하는 자가 없는 것이다. ……그는 근대의 세계고찰이 근거를 두고 있는 증명을 진술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증명을 학문에서 인용함으로써 여기서도 또 신앙인으로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지식인으로서 행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새 종교는 새 신앙이 아니라 근대적 학문과 일치하며 그에 따라서 그런 것으로서는 전혀 종교가 아니다. 


2. 지배 및 배제로서의 역사


     니체의 이 같은 비판을 염두에 둔다면, 역사를 신화/문학과 달리 사실탐구를 통한 진실을 추적하는 작업으로 정의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신화/문학과 완전히 분리된 순수 사실만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일은 자주 주장되어왔던 것처럼 가능한 일인가? 더구나 니체의 말대로 과연 의미가 있기나 한 일일까? 나아가 19세기와 더불어 역사연구에서 하나의 강박관념처럼 따라다녔던 문제, 즉 과학적 탐구처럼 어디에서나 무시간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를 역사는 산출해 낼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랑케는 이와 관련해 주목해 볼만한 인물들 중 한 사람에 속한다. 왜냐하면 그는 독일 역사주의의 창시자이고 “발견을 왜곡하는 상상적 영감을 배제한 채 정밀한 조사와 입증 같은 과학적 개념을 고수하며 문헌을 신중하게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지만 말할 수 있기를”[각주:16] 바랬던 그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E·H 카 역시 이를 확인해주듯 “1830년대에 랑케가 역사의 도덕화에 대해 정당한 항의를 제기하면서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이 진정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을 뿐이다 라고 말했을 때 별로 심오하다 할 것 없는 이 경구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3세대 동안 독일과 영국의 역사가들, 심지어 프랑스의 역사가들까지 Wie es eigentlich gewesen이라는 마술적인 문구를 주문처럼 외우면서 다녔다”[각주:17]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역사란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을 뿐이라던 랑케의 태도에 대해 카라면 “역사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코 순수한 것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 역사의 사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해 항상 굴절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역사책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책에 실린 사실들보다 그 책을 쓴 역사가에 대해 일차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각주:18]고 답할 것이다. 또한, 과학적 개념을 고수하고자 했던 랑케의 태도에 대해서도 “19세기의 과학자 및 액턴과 같은 역사가들은 잘 검증된 사실들의 수집을 통해 모든 논쟁점을 한꺼번에 해결하게 될 포괄적인 지식체계가 수립될 수 있을 날이 오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오늘날 과학자들과 역사가들이 품고 있는 희망은 보다 겸손한 것이다.”[각주:19]라고 지적할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지난번 강연에서 말한 바 있는 여러 이유 때문에 역사의 법칙을 말하지 않는다. 원인이라는 말조차도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 되고 말았다.”[각주:20]고 응수할 것이다. 


      그렇다면, 신화/문학과 완전히 분리된 순수 사실만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그에 따라 진실을 추구하는 작업으로서 역사를 정의하는 일은 사실상 회의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하지 않을까? 귀스도르프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말을 들려준다.[각주:21]


역사가의 역사 자체도 온갖 전설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역사가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엄격하고 고결한 스파르타의 신화나, 그 굳건함이라 용기가 현실 속에서 별다른 토대를 지니지 못한 이상을 모방하려는 학생 세대나 성인 세대를 빚어낸 공화정 시대의 로마신화만큼 보편적으로 존중받는 신화들을 경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더 일반적으로 말해, 프랑스 혁명 당시의 루이 14세나 제 3공화국을 다루던 직업역사가는 가치판단을 내리려는 어떠한 의도나 전설적인 전제로부터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역사가 자신에게 영양을 공급해주고 있는 전설들을 축소하려 한다면 자기가 가장 좋은 색깔이나 가장 확실한 의미를 상실해버리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역사인식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를 철학과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비판을 가한다. “신화를 관조적인 사고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 플라톤에서 플로티노스에 이르기까지, 데카르트에서 스피노자, 말브랑슈 또는 라이프니츠에 이르기까지 이성에 따른 황홀감에는 신화적 요소가 배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 아니다. 합리적인 관념들이나 요소들은 신화적인 참여가 배제될 수 없는 사고 역동성의 위탁물과 잔고로 나타난다.”[각주:22] 때문에, 앞서 보았듯이 신화와 같은 허탄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는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설파한 플라톤의 주장은 그 자신이 배척하고자 했던 신화만큼이나 설득력이 없는 그런 것이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바로 그렇기에 니체 역시 우리보다 앞서 “근대인은 단지 그 저명한 역사에 관한 객관성 때문에 스스로 강하다고, 즉 공정하다고 부를 권리, 더구나 다른 시대의 인간보다도 고도로 공정하다고 부를 수 있는 권리를 과연 가지고 있는가 라고 하는, 물론 고통스러운 물음을 수반하고 있다. 어쩌면 객관성은 근대인의 덕에 관한 편견으로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라고 물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그는 이렇게 처방을 내렸다.[각주:23] 플라톤이라면 놀랄법하지만 귀스도르프라면 흔쾌히 동의할만한 그런 말로 말이다. 


자 놀라지 말라. 그것은 독약인 것이다. 역사적인 것에 대한 해독제의 이름은 비역사적인 것과 초역사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 이름과 더불어 우리의 고찰의 발단과 그 평안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비역사적인 것이란 말로써 가리키는 것은 망각할 수 있고, 자기를 제한된 시계 속에다 가두어 놓는 기술과 힘이며, 내가 초역사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성으로부터 눈을 돌려 현존재에다 영원하고 불변의 의미를 지닌 성격을 부여하는 것, 즉 예술과 종교 쪽으로 향하도록 하는 힘들이다. 


     계몽적 사유를 신화적 사유와 대비하면서 “사유를 수학적 장치로 환원하는 것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한 승인”[각주:24]이라고 한 아도르노의 지적 또한 니체의 이러한 주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실 그대로의 세계를 탐구하고 이를 통해 진실을 찾고자 했던 역사적 이성은 “사실성만이 정의로 인정되며 인식은 사실성의 단순한 반복으로 제한되고 사유는 단순한 동어반복”[각주:25]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인 사건을 구해내려는, 역사적인 사건에 그 자체로서, 그 자체를 위하여 의미를 부여하려는 온갖 노력이 경주되었다.”[각주:26]는 엘리아데의 지적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역사는 그에게 해방이 아니라 공포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이라는 사실로써, 달리 말하면 그런 식으로 일어났다는 사실로써 역사적 사건을 정당화하는 것은 그 역사적 사건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기 어려울 것이다.”[각주:27] 그렇기에 역사가 아니라 이제는 신화가 선생으로 나서서 가르치려 든다.[각주:28]


호머의 서사시는 이미 올바른 이론을 포함하고 있다. 문화적인 재화는 명령받는 노동에 정확히 대응되는 상관물이다, 양자는 모두 자연에 대한 사회의 지배라는 빠져나갈 수 없는 강압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배 위에서 사이렌과 대면하면서 행해진 조치들은 계몽의 변증법에 대한 함축성 있는 알레고리다. 지배라는 척도가 대표성을 지니고, 제반 업무 관계 속에서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 자가 가장 힘이 센 자이듯이 대표성은 진보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퇴보에 있어서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역사 역시 마찬가지로 해방이 아니라 지배였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플라톤 이래로 자신과 반대되는 신화/문학을 철저히 배제한, 바로 그렇기에 반쪽자리 사유양식의 지배로 점철되어온 시간들이었다고 말이다. 때문에 역사란 분류하고, 정돈하고, 분배함으로써 지배를 실천하고자 했던 일종의 담론적 욕구였다고 해도 별 탈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푸코도 “어떤 사회에서든 담론이 생산을 통제하고, 선별하고, 조직화하고, 나아가 재분배하는 일련의 과정들-그의 힘들과 위험들을 추방하고, 그의 우연한 사건을 지배하고, 그의 무거운, 위험한 물질성을 피해가는 역할을 하는 과정들-이 존재한다. 유럽과 같은 사회에서, 우리는 배제의 과정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지 않던가. “하나의 진술이 만들어지고 분배되고 통용되고 작용하도록 만드는 질서화된 절차의 체계”[각주:29]로서의 진실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는 일어났던 사실을 근거로 해서 인간과 그의 삶에 대한 탐구를 하기 때문에 과학이고, 영화는 사실에 근거할 필요 없는 꾸민 이야기이기 때문에 기껏해야 예술에 불과하다고 서로의 영역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것은 너무나 안이한 타협이다.”[각주:30]는 김기봉의 지적은 꽤 타당해 보인다. 고로, 이제 역사는 자신이 그토록 멀리하고자 했던 타자인 신화/문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푸코는 이에 대한 훌륭한 예다. 이영남의 말을 들어보자.[각주:31]  


푸코는 역사의 문학성이라는 문제의식도 껴안았다. 역사를 문학에서 분리해 과학에 편입시킨 랑케도 투키디데스처럼 문학적 우아함을 겸비하여 과거를 진실하게 재구성하는 역사를 서술하려고 했다. 푸코가 문학을 했다는 것은 그가 문학적 표현을 즐겨 썼다거나 문학 평론에 밝았다는 점 때문이 아니다. 형용 모순이기는 하지만 푸코는 형이상학적 실증주의 또는 실증적 형이상학을 추구했기 때문에 문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문학박사답게 전문적이고 실증적이면서도 상상력과 가치판단을 배제하지 않고 여러 담론을 포괄하면서도 아름다운 필치로 수놓은 문학을 했다.  


     이로써 사실보다는 이야기로서의 역사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 웹진 <제3시대>


  1. 플라톤, 『국가』, 조우현 옮김, 올재, 2012, p.115 [본문으로]
  2. 플라톤, 같은 책, p.460 [본문으로]
  3. 플라톤, 같은 책, p.469 [본문으로]
  4. 프랑수아 도스, 『역사-성찰된 시간』, 김미겸 옮김, 동문선, 2001, p.11 [본문으로]
  5.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천병희 옮김, 숲, 2011, p.44 [본문으로]
  6. 투퀴디데스, 같은 책, p.44 [본문으로]
  7. 프랑수아 도스, 앞의 책, p.15 [본문으로]
  8.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0 [본문으로]
  9.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0 [본문으로]
  10.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0 [본문으로]
  11.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1 [본문으로]
  12. 김기봉,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푸른역사, 2000, p.99 [본문으로]
  13. 김기봉, 같은 책, p.98 [본문으로]
  14. 김기봉, 같은 책, p.99 [본문으로]
  15. 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임수길 옮김, 청하, 1999, pp.59~77 [본문으로]
  16. 존 H. 아널드, 『역사』, 이재만 옮김, 교유서가, 2015, p.91 [본문으로]
  17.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 곽복희 옮김, 청년사, 1993, p.19 [본문으로]
  18. E·H 카, 같은 책, p.37 [본문으로]
  19. E·H 카, 앞의 책, p.96 [본문으로]
  20. E·H 카, 같은 책, p.135 [본문으로]
  21. 조르주 귀스도르프, 『신화와 형이상학』, 김점석 옮김, 문학동네, 2003, pp.330~331 [본문으로]
  22. 조르주 귀스도르프, 같은 책, p.321 [본문으로]
  23. 프리드리히 니체, 앞의 책, p.185 [본문으로]
  24.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김유동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1, p.57 [본문으로]
  25.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앞의 책, p.57 [본문으로]
  26. 미르치아 엘리아데, 『영원회귀의 신화』, 심재중 옮김, 이학사, 2003, p.149 [본문으로]
  27. 미르치아 엘리아데, 같은 책, p.152 [본문으로]
  28.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같은 책, p.68 [본문으로]
  29. 콜린 고든, 『권력과 자식-미셸푸코와의 대담』, 홍성민 옮김, 나남출판, 1991, p.167 [본문으로]
  30. 김기봉, 앞의 책, p.277 [본문으로]
  31. 이영남,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푸른역사, 2007, p.24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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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 역사 그리고 텍스트 I : 전승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1. 전승 : 집단 대 개인


     신약학에서 흔히 사용되는 전승사 비평이란 “성서 본문의 최종적인 형태가 이루어지기까지 문서와 구전(口傳)자료로 전승되어온 경로 즉, 성서본문이 단계별로 이뤄진 전승과정에 비추어 그 문헌을 분석하는 방법을 가리키는 용어”다. 또한, “역사적 정확성을 추구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본문 속에 왜 그런 설화가 기억되었고, 왜 그것이 변화되었으며, 그 변화에 어떤 요인이 반영되었는지를 살피는 데 관심을 갖는다.” 다시 말해, “역사성을 발굴해내는 것이 아니라 전승사에 나타난 다양한 관계를 확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어떤 이들에겐 맥이 빠질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전승사비평을 통해 전승을 처음 전해준 사람들과 그들이 전해준 전승의 최초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전승의 형태, 예를 들어 마가복음서와 같은 최초의 형태가 취해진 것은 예수의 죽음 이후 40여년이 지난 후라는 점을 기억하면 그리 실망할 일도 아니다. 게다가 이 복음서가 전승의 최초의 형태라고 감히 확신할 수도 없다. 이미 불트만은 “마가와 같은 시대 혹은 그 전에 복음서라고 불리워질 만한 작품을 썼지만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작품의 저자가 전혀 없으리라고는 물론 단정할 수 없다.”[각주:1]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전승의 최초의 형태를 넘어 역사적 예수에게로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추가한다면 수많은 난관이 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알다시피, 복음서의 단화들을 추적한 결과 이 단화들 뒤에는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교회가 놓여 있음을 양식비평은 설득력 있게 잘 보여주었다. “전승자료의 수집은 팔레스틴 초대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변호와 논박은 아포프테그마적 부분의 수집과 작성을 유도했다. 교화의 필요성과 교회 안에서의 예언자적 영의 활력에 의해 예언자적, 묵시문학적 주의 말들을 전하는 일과 작성하고 수집하는 일이 생겼다. 주의 말들의 좀 더 계속된 수집은 생활 계율과 교회 규율의 필요성에 의해 생겼다.”[각주:2] 이처럼 이미 단화들은 집단으로서의 익명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양식비평의 이러한 논제를 깨고 최근 보컴은 '목격자의 증언'이라는 대담한 가설을 들고 나왔다. 그는 양식비평이 전제하고 있는 전승의 익명성이라는 테제를 목격자로 대체하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그는 복음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개별적인 이름들을 하나하나 추적하고선 서슴지 않고 이들을 목격자라고 부른다. 더욱 놀라운 점은 파피아스가 전한 말이 과장이거나 일종의 변증이라는 학자들의 비판적인 견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역사적으로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파피아스가 말하는 내용이 가장 중요하게 암시하는 것, 곧 예수의 말씀과 행위를 전하는 구전들이 이름이 밝혀진 특정한 목격자들과 단단히 결합해 있었음을 믿을 수 있다.”[각주:3] 결국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다.[각주:4] 


내가 이 책을 쓴 의도 중 하나는 복음서가 기록되기까지 예수 전승이 전달되었던 기간 내내 예수전승과 특별한 전승 전달자들 사이의 인간적 연결고리가 그 존재를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확실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적어도 역사적으로 이런 연결 고리가 존재했을 개연성이 아주 높았음을 증명할 증거를 제시하고 싶다. 


     하지만 보컴의 이러한 주장은 별로 신뢰할만하지 않다. 어만이라면 "마가복음에 대한 증언은 서너 다리를 건넌 정보이다. 여기에서도 그가 유난히 강조하는 이야기, 즉 마가의 주된 목적 중 하나가 베드로에게 들은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것이란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마가복음은 큰 소리로 읽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한 양이다.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수개월 어쩌면 수년을 지냈다. 어떻게 마가가 들은 이야기 전부가 두 시간이면 읽어낼 수 있는 양에 불과하겠는가?"[각주:5]라고 비판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또한, 파피아스의 이야기를 수용하여 전승이 목격담일 수 있는 이유로 음성을 거론하는 그의 논지는 치명적 결함일 수도 있다. “파피아스가 살아서 남아 있는 음성을 이야기할 때 많은 학자들이 추정하는 것과 달리 구전에 대한 은유로서 음성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리어 이 음성은 문자 그대로 정보 제공자의 음성을 말한다. 실제로 파피아스가 당대의 역사기록관습을 자세히 언급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앞에서 말한 음성의 의미는 그가 말하려는 의미임이 틀림없다.”[각주:6] 분명 데리다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각주:7] 


자연적 문자 언어는 목소리와 숨결에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것의 본성은 문자학적이지 않고 영기학적이다. 그것은 성직자의 것이고 신앙 고백의 내적인 성스러운 목소리와 아주 가깝고, 우리가 자신 안으로 되돌아가면서 듣는 그 목소리와 아주 가까운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적 감정에 신의 목소리가 충만되고 진실하게 존재하는 현전이다. 


     그러나 좀 더 날카로운 비판은 롤랑 바르트일 것이다. “그 누구의 목소리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 천만에! 정확하게는 언제나 그 누군가의 목소리가 문제된다. 나는 찾아낼 수 없다. 문화가 내게 생각나게 하는 단어들과 내 귀에 불현듯 생각나는 그 기묘한 존재(그것이 단지 소리에만 연관될까?)와의 단절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재현에의 노력이 무기력하다는 것은 반드시 다음과 같은 사정에 의한 것이리라. 목소리라고 하는 것은 늘 벌써 죽어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절망적인 부정을 통하여 겨우 그것을 살아있다고 부르는 것이다.” [각주:8]다시 말해, 어떤 목소리를 들은 이가 그 목소리를 재현하고자 할 때는 필연적으로 일종의 소음인 문화가 개입한다는 점이다. 또한, 그 목소리를 재현하는 언어 자체도 문화의 힘을 입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잘 알다시피, 전해들은 목소리와 그 목소리의 재현 사이에는 그것이 문화이든 무엇이든 간에 일종의 소음이 발생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소음으로 인해 재현된 목소리는 이전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의미와 효과를 산출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보컴은 음성과 언어가 어떠한 관계를 갖는지, 그리고 그 관계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튼, 이쯤에서 어만의 말로 정리해보도록 하자. 조금 길더라도 말이다. 


기독교는 이런 식으로 전파됐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난 후에는 누군가 예수의 이야기를 글로 썼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건네지고 또 건네진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목격자가 공평무사한 관점에서 증언한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개종시킬 목적의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가 과연 애초의 이야기와 같았을까? 아이들이 생일날에 전화 연결 놀이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동그랗게 둘러앉은 채, 한 아이가 옆에 앉은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하면 그 아이가 다시 옆 아이에게 연결하는 것이다. 그 아이가 전달받은 말은 처음의 말과 사뭇 다르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화 연결 놀이의 의미가 없다. 똑같은 환경과 학교, 언어, 연령을 가진 동일한 사회 집단에서가 아니라 다른 지역과 환경과 언어를 가진 집단에서 40년 이상 전화 연결 놀이를 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럼 첫 이야기가 어떻게 되겠는가? 엄청나게 달라질 게 뻔하다. 복음서 저자들 역시 이야기를 자신의 관점에 따라 바꿔놓은 게 분명하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예수에 대한 마가복음의 이야기를 누가복음 저자는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한 작가에서 다음 작가로 넘어갈 때도 이렇게 바뀌는데 구전될 때는 얼마나 많이 바뀌겠는가! 


     그러므로 예수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다시 말해 독특한 한 주체와의 만남을 통해 얻어진 개인적 체험은 시대와 문화에도 흔들림 없이 변질되지 않고 그대로 재현된다는 신념은 정정될 필요가 있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에 나오는 「돈키호테의 저자 피에르 메나르」라는 단편이라면, 이와 같은 신념은 일종의 망상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라는 책을 단어 하나하나 줄 하나하나 다르지 않게 베낀다하더라도, 베껴진 이야기는 베끼기 이전의 원래 이야기와 전혀 다른 의미를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화자(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 삶의 우연들에 내맡기는 약간 자율적인 인간이고 그의 이야기만이 자율적인 데 반해, 모방하는 작가는 자기 삶을 창조적으로 이용한다. 두 번째 작가는 이야기를 규칙에 따라 구성하며, 그것을 위해서 자기 삶을 투신한다. 그는 자기 삶이 그 이야기에 의해, 적어도 간접적으로, 이끌어지게끔 조직한다. 그것은 조율되고 도구화된 삶이다.”[각주:9] 그렇다면, 진정성의 기준을 인내심을 갖고 적용하다보면 복음서 전승의 거의 모든 부분이 진정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블롬버그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의 말을 설령 받아들인다할지라도, 이미 보았듯이 보존된 목소가 누군가에 의해 재현될 때는 보존된 목소리와 전혀 다른 의미의 궤적을 그린다면, 보존되었다는 점만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양식비평의 관찰, 즉 전승에서 어떠한 말들은 그 맥락을 잃어버려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주장은 이에 대한 좋은 예일 것이다. 때문에 “복음서 저자가 수집하고 기록한 정보가 상당 부분 사실과 허구, 역사와 전설,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와 상상력을 동원한 각색 등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것”[각주:10]이라는 양식비평의 견해를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 

     한데 전승 과정에서 교회 공동체라는 집단이 일정정도 역할을 수행했다는 양식비평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는 하나의 독특한 역사적 개별주체가 아니라 이미 집단적으로 투사된 혹은 치환된 범례적 주체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해가 선뜻 되지 않는다면 엘리아데의 이야기를 일단 들어보도록 하자. [각주:11]


아주 드물긴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신화로 변형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루마니아의 민속학자인 콘스탄틴 브라일로이우는 마라무레쉬라는 마을에서 아름다운 민요 하나를 채집할 수 있었다. 비극적인 사랑이 그 내용이었다. ……노랫말은 신화적인 암시들로 가득한,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제례용 가사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래의 변이형들을 채집하면서 동시에 브라일로이우는 그런 비극이 일어난 때가 언제였는지도 조사하였다. 사람들은 오래 전에 일어난 오랜 옛날의 이야기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조사를 계속해나가면서 그는 사건이 겨우 40년 전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여주인공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 핵심증인이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진실성을 완전히 박탈해버리고 사건을 전설적인 이야기로 변형시키는 데에는 불과 몇 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 자체는 만족시키지 못했다. 결혼 전날에 죽은 한 남자의 비극적인 죽음은 단순한 사고사 이상의 어떤 것이었다. 그 죽음에는 신화적인 범주 안으로 통합되었을 때에만 드러나는 어떤 비의가 담겨 있었다. …… 진실을 말하는 것은 신화였고, 실제 역사는 이미 거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민중의 기억은 한 영웅의 생애에서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요소들은 보존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고차적인 신비경험들 속에서도 인격신은 궁극적으로 초인격적인 신으로 고양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많은 전통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영혼은 기억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소위 그들의 역사적 개별성은 상실된다."[각주:12]고 지적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노먼 페린 역시 “만일 신화가 역사를 해석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말해 만일 설화가 사건을 해석한다면 우리는 신약성서에서 이야기된 역사는 해석된 역사라는 것을, 그리고 더 나아가 해석된 역사는 필연적으로 사실적인 역사와 신화에 의해서 해석된 역사를 포함하며, 마지막으로 사실적인 것으로서의 역사 그 자체도 신화로 작용하게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각주:13]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진실을 말하는 것은 신화였고 실제 역사는 거짓에 불과하다는 엘리아데의 주장은 “관심을 갖는 시간은 신성한 시간이 되었다. 이야기된 사건들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존재의 실재를 보게 했고, 역사 자체는 신화된 것이다.”라는 페린의 말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신성한 이야기들은 대체로 집단의 가치관이나 믿음을 대변하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들이 아니던가. 따라서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 역시 일반적인 민담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집단을 상징하는 범례적 주체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 범례적 주체는 문화에 의해 변용된 상호텍스트적 주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에 관한 논의는 잠시 뒤로 미루도록 하고 역사가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 웹진 <제3시대>




  1. 루돌프 불트만,『共觀福音書傳承史』, 허혁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2, p.456 [본문으로]
  2. 루돌프 불트만, 같은 책, p.455 [본문으로]
  3. 리처드 보컴,『예수와 그 목격자들』, 박규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5, p.52 [본문으로]
  4. 리처드 보컴, 같은 책, p.30 [본문으로]
  5. 바트 어만, 『예수왜곡의 역사』, 강주헌 옮김, 청림출판, 2010, pp.160~161 [본문으로]
  6. 리처드 보컴, 같은 책, p.63 [본문으로]
  7.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4, p.39 [본문으로]
  8.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이상빈 옮김, 강, 2002, p.94 [본문으로]
  9. 군터 게바우어․ 크리스토프 볼프, 『미메시스』, 최성만 옮김, 글항아리, 2015, p.165 [본문으로]
  10. 크레이그 블롬버그,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 안재형 옮김, 솔로몬, 2007, p.59 [본문으로]
  11. 미르치아 엘리아데,『영원회귀의 신화』, 심재중옮김, 이학사, 2003, pp.57~58 [본문으로]
  12. 미르치아 엘리아데, 앞의 책, p.59 [본문으로]
  13. 노먼 페린,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상)』, 박익수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2004, p.11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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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의 “또 다른 책”에 관한 상상, 그리고 연대와 비판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제목이 좀 괴기하다. 그 이유는 도킨스의 독자가 만일 종교적 근본주의자였다면 전투적인 무신론자의 책으로 잘 알려진 『만들어진 신』을 이런 식으로 평가할 순 없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와 관련해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라는 로버트 퍼시그의 견해를 도킨스가 수용하고 있기에 기독교인이라면 일단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종교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사실 새롭지 않다. 프로이트 역시 종교를 하나의 강박증상으로 이해했고 그에 따라 설명을 시도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도킨스와 달리 망상보다는 환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종교에 대한 도킨스의 이해를 진화론적 모형에 따라 종교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19세기의 종교기원론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해도 상관없는 것처럼 보인다. 흥미롭게도 그 역시 이러한 지적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도 아주 긍정적으로 말이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어떤 논증을 19세기의 것이라고 칭한다고해서 그것이 어딘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 19세기의 개념들은 대단히 훌륭했으며 다윈의 위험한 생각이 특히 그렇다.” 따라서 다른 이들이 어떻게 판단하든 간에, 이 전투적인 무신론자의 주장이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이 책에서 도킨스가 제기한 주장들, 특히 기독교와 관련한 여러 주장들에 대해서는 "이용하기에 좋고 사실처럼 여겨지는 것들을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한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사실처럼 여겨지는 것들은 최대한의 영향력을 얻기 위해 적절히 과장되고 논증을 이루는 것처럼 여겨지게 하기 위해 느슨하게 배열되어 있다. 증거를 이렇게 매우 선별적으로 사용한 글을 논박하는 것은 너무나 따분해서 결국 그저 까탈스럽고 반동적이기만 한 한심한 책이 될 수도 있다"[각주:1]는 맥그라스의 비판을 피해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날 근본주의 기독교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그가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물음을 고쳐 다시 물어보도록 하자. 과연 그가 기독교의 모든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가? 특히, 기독교의 역사에서 성장하고 발전해 온 신학적 전통들 모두를 무시하고 있는가? 라고 말이다. 사실 그렇게까지 강심장이지는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문고판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각주:2] 


      왜 늘 종교에서 최악의 사례를 공격하고 최선의 사례는 무시하는가. 당신은 틸리히나 본회퍼 같은 뛰어난 신학자들이 아니라 테드 해거드, 제리 팔웰, 팻 로버트슨 같은 조잡하고 어중이떠중이나 몰고 다니는 위험 분자들을 다룬다. 그런 세심하고 미묘한 종교가 주류라면 세계는 확실히 더 나은 곳이 되었을 것이고 나는 다른 책을 썼을 것이다. 우울한 사실은 이런 유형의 절제되고 온건하고 개혁적인 종교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소수파라는 것이다. 전 세계 신자들의 대다수는 로버트슨, 팔웰, 해거드, 오사마 빈 라덴, 아야톨라 호메이니 같은 지도자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것과 너무나도 유사한 종교를 믿는다. 그들은 허수아비가 아니라 모두 대단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고, 현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과 대면해야 한다. 


     따라서 도킨스를 열렬하게 비판하는 사람들과 달리 "다른 책"을 썼을 것이라는 그의 말은 내게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때문에 정작 나와야 할 책은 이항대립적인 정신성을 가진 전투적인 무신론자가 그 자신과 동일한 정신성을 가진 종교적 근본주의자를 꾸짖는 책이 아니라 "다른 책"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언급한 "다른 책"은 나오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다른 그 어떤 누구보다 아직도 이들이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에 대한 비판이 가장 시급했고 이러한 상황은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고 있다고 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사실, 도킨스와 같은 부류인 히친스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또한 참조한다면, 열렬한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그리 해로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각주:3]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는 현재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미국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적은 예산으로 앞서 완성한 인물이며, 현재 국립보건원의 수장을 맡고 있다 …… 이 위대한 인본주의자는 또한 C. S. 루이스의 헌신적인 추종자이며 자신의 저서 <신의 언어>에서 과학과 믿음이 양립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나는 도한 종교에 관한 다양한 공개토론과 사적인 토론을 통해서도 프랜시스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와 내게 적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최근에야 겨우 상상할 수 있게 된 온갖 새로운 치료법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와의 대화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그는 내게 기도를 제안하지 않았고, 나는 그 보답으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갖고 그를 놀리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고통 속에서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사실상 가장 이타적인 기독교인 의사의 노력이 물거품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콜린스 박사가 뭐라고 신의 계획에 감히 끼어들겠는가?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지옥불에 타기를 바라는 사람들 또한 나를 구제불능의 악마로 보지 않는 상냥한 신앙인들을 조롱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도킨스를 비롯한 오늘날의 전투적 무신론자들이 신학의 모든 형태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본 것처럼 때론 그 상대가 보수적인 신앙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과학과 종교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네 가지 유형, 즉 갈등, 분리, 대화, 통합의 유형에서 이들이 근본주의자들에게는 갈등의 방식을 취하지만 소위 자유주의적인 신학 노선을 걷는 사람들에겐 분리 내지는 대화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흥미롭게도 도킨스는 근본주의 신학적 노선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각주:4] 


      성경을 곧이곧대로 자기 도덕의 근간으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존 셸비 스퐁 주교가 성서의 죄악들에서 제대로 간파했듯이 그 책을 읽지 않았거나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스퐁 주교는 기독교인이라고 자칭하는 대다수 사람들이 거의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발전된 믿음을 지닌 개방적인 인물이다. 영국에서 그에 상응하는 인물은 최근에 에든버러 주교직에서 퇴임한 리처드 할러웨이다. 할러웨이 주교는 심지어 자신을 개심한 기독교인이라고까지 말한다. 나는 에든버러에서 그와 공개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그는 내가 만난 인물 중 가장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사람에 속했다. 


     그래서일까.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와의 대화에서 도킨스는 자신을 전투적인 무신론자에서 불가지론자로 지칭하는 변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그가 기독교에 대해 전적으로 호의적이라거나 찬성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를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고 심지어 궤멸시키기로 작정한 인간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해야 할 것이다. 19세기 다윈의 진화론이 끼친 긍정적인 영향 못지않게 도킨스는 19세기의 독일의 역사비평학을 훌륭하게 평가하고 있기에 말이다. “신학자들, 특히 독일의 신학자들이 증거에 토대를 둔 역사적 방법을 사용하여 이른바 역사적 사실성에 큰 의문을 제기한 것이 바로 19세기였다.” 또한, 카메룬의 팡족 이야기를 헛된 이야기라고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이 믿고 있는 성서의 이야기도 팡족의 이야기만큼이나 황당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케임브리지의 신학자들을 향한 도킨스의 비판은 나름 공평하다. 한번 읽어보도록 하자. 다소 언짢더라도 말이다. 


      조상들의 시대에 한 남자가 생물학적 아버지 없이 처녀인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나사로라는 친구의 이름을 불렀고 죽은 지 오래되어 악취를 풍기던 나사로는 부활했다. 그 아버지 없는 남자 자신도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다. 40일 뒤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언덕 위로 올라가서 육신을 지닌 채 하늘로 사라졌다. 당신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그 아버지 없는 남자와 그의 아버지가 그 생각을 알아차릴 것이고 조치를 취할지 모른다. 그는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당신이 나쁜 짓이나 좋은 짓을 하면 설령 아무도 모를지라도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볼 것이다. 당신은 죽은 뒤에라도 그런 행위에 대한 보상이나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 아버지 없는 남자의 처녀인 어머니는 죽지 않고 육신을 지닌 채 승천했다. 빵과 포도주는 사제의 축복을 받으면 그 아버지 없는 남자의 피와 살이 된다. 어느 객관적인 인류학자가 이런 믿음에 새롭게 접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아직은 “다른 책”을 쓴 것처럼 보이지 않기에 종교, 특히 기독교와 관련해 어떤 입장인지 불투명하다는 인상은 지울 수가 없다. 그렇지만 만일 그가 “다른 책”을 썼다면, 그 책은 적어도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각주:5] 


      전선은 무신론자 대 유신론자가 아니라 극단주의자 대 온건주의자로 그어야 한다. 평화롭고 정의로운 미래 세계에 대한 꿈을 갖고 있고, 합리적인 이성과 판단력을 지닌 온건주의자들은 어떤 분야에 속해 있든지 연대해야 한다.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성차별적 편견에 기반한 극단주의와 근본주의자들의 반인도주의적 행태에 함께 대항하여 보다 선한 사회와 제도를 만들기 위한 온건주의 연대를 꾸려야 한다. …… 이러한 선한 싸움은 결코 종교 대 과학의 싸움이 아니라 진보적 가치와 상생을 추구하는 정치인, 학자, 시민운동가, 과학자, 예술가, 종교인, 기업인, 사업가, 상인, 샐러리맨, 주부, 학생들이 연대하여 벌이는 싸움이다 …… 만사가 그렇듯이 종교도 긍정적인 역할이 있고 부정적인 역할이 있다. 과학도 마찬가지로 이기의 도구일 수도 있고 파괴의 도구일 수도 있다. 그 판단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그것이 인간의 자유와 해방, 진리와 도덕, 그리고 생명의 아름다움을 꽃 피우도록 기여했는지, 아닌지로 판단할 일이다. 거듭 말하자면 모든 종교는 사악하지 않다. 모든 철학과 과학과 사상이 그러하듯이, 좋은 놈이 있는가 하면 나쁜 놈이 있다. 


      물론, 이런 추측에 대해 누군가는 도킨스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에게서 과학제국주의적이고, 그렇기에 고대 세계를 혹은 현재의 서구 이외의 여러 문화들을 서구적인 과학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평가하려는 경향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도킨스가 말한 바와 같이 구약의 신은 “불쾌한 주인공이자 시기하고 거만한 존재,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자를 증오하고 인종을 차별하고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어린 자식들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증에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에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각주:6]일 수 있다. 그렇기에 굳이 부인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그의 이러한 지적은 도킨스 그 자신이 살고 있는 문화와 고대의 텍스트인 성서가 갖고 있는 문화 간의 시대적 간격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을 면할 순 없다. 또한, 구약만 그럴까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시간의 차이로 인한 문화적 격차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 한국의 고대설화가 기록된 삼국유사를 보면 구약성서보다 훨씬 괴기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삼국유사는 출애굽이 텍스트로 기록된 시기와 현재의 중간보다도 훨씬 더 현재에 가까운 시기에 기록된 책이다.”[각주:7]라고 지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도킨스가 보는 것처럼 구약의 신이 변하지 않고 영원히 동일한 그런 존재로만 이해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흔히 주장되고 있는 것처럼, 구약에서 신의 형상이 폭군인 동시에 해방자로 드러나고 있다면 좀 더 다층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도킨스는 단 하나의 관점, 즉 근대 이후의 계몽주의적 관점으로, 그것도 계몽주의 이신론자들이 가졌던 종교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마저도 폐기처분해버리는 일종의 과학제국주의적 방식으로 읽어내고 있다. 때문에 텍스트를 읽는 방식이 단선적이고 과격하다는 인상을 면하기란 어렵다.

     때문에 도킨스를 비롯한 현재의 전투적 무신론자들을 향한 암스트롱의 지적은 꽤 의미 있게 다가온다. 종교가 일종의 퇴화된 상태로 계속 남아 있을 뿐이라는 소위 종교에 대한 19세기 진화론적 설명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도킨스에게 종교가 퇴화만이 아니고 과학 못지않게 진화하고 발전해 왔음을 역설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각주:8] 


      한편 무신론자들은 인간에게 굴종만을 요구하는 신으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하며 기존의 전통적 신 개념을 부정했다. 그들은 인격적 신 이해의 폐해를 잘 인식했다. 인격적 신 이해는 성서에 나타난 모든 신에 대한 묘사를 문자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율법준수만을 강요하는 폭군적 이미지의 신을 낳았다. 이처럼 인간에게 굴종만을 강요하며 협박하는 신은 1989년 공산주의 국가의 붕괴처럼 오늘날 급속히 몰락하고 있다. 율법 수여자이자 통치자로서의 인격적 신은 이제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신 이해의 부당성을 지적한 무신론자들의 종교 비판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 무슬림, 기독교인은 모두 기본적으로 유사한 형태의 절대자 신 개념을 발전시켜 왔다. 비록 그들의 신 개념이 여러 결점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삶의 궁극적 의미와 가치를 발견했다. 더구나 그들의 종교적 신앙은 강요된 것이 아니었고 인간 모두에게 잠재된 본원적 종교성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바로 이 점을 무신론자들은 올바로 인식하지 못했다. 


     위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도킨스의 공헌은 무시될 수 없다. 전통적인 신 개념이 더 이상 우리 세계와 맞지 않고 심지어 때론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잘 역설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도킨스는 종교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치는 못하고 있다. 바로 종교란 인간들처럼 일종의 야누스적 얼굴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신도 악이기에 없어져도 괜찮은 것이라면 인간 역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종교를 구성하는 근본적 주체들이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급진적인 견해에서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긍정적 세계관을 취하고 있는 도킨스가 인간의 죽음을 선언하리라곤 상상할 순 없다. 그렇다면 도킨스의 책 곳곳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종교의 죽음을 혹은 신의 폐기를 말할 순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는 신의 폐기를 과감하게 주문한다. 구시대의 인격신은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도킨스의 지적처럼 인격신의 폐해가 적지 않기에 죽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즉, 인격신은 그 폐해가 크기에 무조건 폐기되어야 하는 그런 것일까 하는 점 말이다. 다른 점에서 보면, 역사를 통해 인격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이 처한 곤궁한 상황을 뚫고 나가도록 하는 기제가 되었던 건 아닐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맑스의 말 속에서 종교가 담긴 긍정적 의미를 애써 끌어내고자 한다면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암스트롱이 도킨스를 향해 던진 날선 비판은 꽤 흥미롭다.[각주:9] 


      그러나 이 모든 갈등이 전적으로 종교적인 탓만은 아니다. 신 무신론자들은 현대 사회의 경험의 복잡성과 모호성에 관해 놀라우리만치 이해 또는 관심이 부족하다. 그들은 비록 명백한 결점들을 지니기는 했지만 세 유일신교 모두 정의와 공감을 지니고 있음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적을 악의 전형인 것처럼 과장하는 이러한 경향은 신 무신론자들을 너무 쉬운 비판에 머물게 한다. 그들은 종교에 관해 자신들과 견해를 달리하며 어떤 근본주의자들보다 주류 전토에 가까웠던 불트만이나 틸리히 같은 신학자들은 절대 거론하지 않는다. 신 무신론자들은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프로이트와는 달리 신학적인 이해를 갖추지 못했다. 또한 이들은 윤리적으로도, 지적으로도 보수적이다.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잉거솔, 밀과 달리 신 무신론자들은 자신들이 개탄하는 잔혹행위들을 낳은 빈곤, 부당함, 치욕감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소 복잡한 사안을 때론 매우 단순하고 과도하게 환원시켜 버리는 그의 어법은 오늘날 과학과 종교 간에 생겨나고 있는 문제들과 관련해 어떤 진전을 낳기보다는 단절을 몰고 올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과학적 논법은 무조건 옳고 종교적 논법은 무조건 일단 깨부수고 보자는 논법은 너무 단순하고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흑백논리에 기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과학의 영역에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문화의 영역에까지 과학을 과도하게 적용시키려는 그의 열정으로 인해 자칫하면 그의 이해는 서구과학에 근거한 문화제국주의 아닌가하는 의심을 받을 여지가 다분하다. 흥미롭게도, 구약에 대한 그의 혐오는 교회사적으로 보면 마르시온과 다소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마르시온과 달리 그는 신약에도 구약에 대한 비판을 확대해 적용하고 있다. 사실 반윤리적이고 폭력적인 측면이 신약성서에도 존재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측면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시간의 격차라는 혹은 문화적 격차라는 점을 고려해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서구 과학주의적인 관점으로 고대의 텍스트를 재단해버리는 선입견은 텍스트에 대한 진정한 비판을 가로막는 행위로 전락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학의 문제도 과학에 힘입는 현대의 문화가 고대의 문화를 바라보는 문제도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킨스는 문화의 문제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쉽게도, 서구 백인 남성중심주의 문화가 일으킨 문제를 진지하게 묻는 포스트 모던에 대해서는 강력한 알러지 반응을 보이고 있기에 이런 물음을 물을 가능성이 그에게는 거의 남아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 역시 과학에 근거한 백인남성중심주의 문화를 나머지 세계에 혹은 고대 세계에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의심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게다가, 도킨스의 지적처럼 종교란 늘 퇴화적이고 퇴행적인 일종의 지적인 불성실성만을 보여주는 그런 영역인지에 대해서도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인격신이 지적인 퇴행과 테러만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관념인지를 말이다.  

      아무튼, 이제 정리하도록 하자. 일단 인격신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도킨스의 비판은 유효하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신이 갖는 부정적인 측면을 과감하게 폭로한 도킨스는 일종의 파르마콘적 처방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약을 처방하되 아주 센, 극약 처방을 한 셈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해서라도 세상을 좀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게 만들려 했다는 점에선 분명 옳다. 하지만 "인간이 위로를 필요로 한다는 주장으로 돌아가서, 물론 그 말은 옳다. 하지만 우주가 당연히 우리를 위로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믿음은 다소 유치하지 않은가"[각주:10]라고 그의 답변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러한 단순한 답변은 "종교가 다시 돌아왔다. 종교는 이제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종교의 소멸이 그런 확신을 가지고 예고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오늘날의 세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맥그라스의 지적에 대해 제대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치하고 마치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종교라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분명 도킨스는 적절한 대답을 제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기껏해야 "인간이 종교를 필요로 한다는 같잖은 신화"[각주:11]라는 말 이외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점에서, 도킨스의 인격신 비판은 한편으론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지만, 다른 한편으론 교육받은 백인중상층의 가치관, 그것도 다소 지나치게 과학주의적으로 경도되어 있어서 그 진단이 너무나 소박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종교관은 19세기의 진화론적 종교 이해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도킨스가 한 마디도 허투루 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 그 점에서 이 책은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할 법하다."[각주:12]는 『만들어진 신』의 번역자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행여나 그가 "다른 책"을 출판한다면, 앞서 본 것처럼 신학적 전통 모두를 그가 부정하고 있진 않기에, 또한 암스트롱과 김기석이 지적한 바와 같은 문제를 정직하게 다룬다면, 종교를 대하는 그의 진면모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이런 그를 기대하는 일이 현재로선 다소 어렵다하더라도 말이다.  


ⓒ 웹진 <제3시대>



  1. 알리스터 맥그라스,『도킨스의 망상』, 전성민 옮김, 살림, 2007, p.22 [본문으로]
  2.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 이한음 옮김, 김영사, 2007, pp.579~580 [본문으로]
  3. 크리스토퍼 히친스,『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김승욱 옮김, 알마, 2012, pp.41~42 [본문으로]
  4. 리처드 도킨스, 앞의 책, p.357 [본문으로]
  5. 김기석,『종의 기원 신의 기원』, 동연, 2009, pp.99~102 [본문으로]
  6. 리처드 도킨스, 앞의 책, p.50 [본문으로]
  7. 김기석, 앞의 책, p.82 [본문으로]
  8. 카렌 암스트롱, 『신의 역사Ⅱ』, 배국원․ 유지황 옮김, 동연, 1999, p.673 [본문으로]
  9. 카렌 암스트롱, 『신을 위한 변론』, 정준형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0, pp.466~467 [본문으로]
  10. 리처드 도킨스, 앞의 책, p.586 [본문으로]
  11. 리처드 도킨스, 앞의 책, p.588 [본문으로]
  12. 리처드 도킨스, 같은 책, p.59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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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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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신화론자들, 성서 텍스트, 그리고 롤랑바르트 Ⅰ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헬름스는 “1세기 지중해 동쪽 끝에서 유일신에 대한 숭배를 가르치고 종교는 짐승들의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와 경건을 실천하고 증오와 적개심을 피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선언한 한 명의 두드러진 종교적 지도자가 나타났다. 그는 선한 기적들을 행하고, 데몬들을 쫓아내고, 아픈 자를 치유하며, 죽은 자를 일으키는 일들을 행했다고들 한다. 비록 그 자신은 인자라고 칭했지만, 그의 모범된 삶으로 인해 그의 몇몇 추종자들은 그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로마에 대한 선동죄로 기소되어 체포되었다. 그가 죽은 후, 제자들은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했고, 자신들에겐 살아서 나타났으며, 그런 다음엔 하늘로 승천했다고 주장했다. 교사이자 기적을 행하는 자였던 이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의 이름은 바로 티야냐의 아폴리니우스였다.”[각주:1]는 말로 자신의 저서 Gospel Fictions 를 시작한다. 무척 흥미롭다. 왜냐하면 우선, 글의 말미에 나타난 질문과 관련해 보통의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대부분 아폴리니우스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라고 답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아폴리니우스다. 이로써 보통의 그리스도교 신자가 가질법한 기대가 여지없이 박살나 버린 셈이다. 물론 충격이 아닐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사는 동안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비슷한 류의 이야기들을 접하고선 신기해하거나 의심에 빠져본 적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도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넘기는 신자들도 개중에는 있을 법 하다. 그럼에도 아직은 먼 훗날의 일로만 보인다. 그 예로 김진호의 말을 들어보자.[각주:2] 


     2000년 12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신문사 기자라고 밝힌 그는 다짜고짜 최근 일고 있는 역사의 예수 논쟁에 대한 나의 견해를 물었다. 움찔했다. ……당황해하는 내게 그는 그 무렵 TV에 방영된 도올 선생 강의 얘기를 간단히 들려주었다. 그제서야 사태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교회나 열혈신자들의 항의가 방송국에 전해졌을 것이고, 이것이 기자들에게 사건거리로 읽혀졌던 것이다. 그 전화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꽤나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즉각 항의공문을 방송국에 보냈고, 많은 기독교인 시청자들의 문제제기가 방송국 홈페이지에 접수되었다. 


     비단 이런 일은 2000년 그 해에만 일어나지 않았다. 2008년 SBS에서 방영된 <신의 길 인간의 길>에서도 이런 일은 그대로 반복되었다. 2000년 12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예수는 사생아라는 도올의 폭탄 발언보다 한술 더 뜬, 즉 예수는 신화적 인물이라고 주장한 로버트 프라이스와 피터 겐디의 말을 공중파에서 여과없이 내보낸 것이다. 단순히 이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보수 개신교 진영에선 난리가 났고, 결국 이 방송에 대한 보수 개신교계의 반론이 짧게나마 방영되기도 했다. 따라서 예수가 순전히 인간적인 인물이라는 주장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신화적 인물이라는 주장은 더더욱 신성모독 죄로 다스려져야 한다는 게 보수 개신교계의 일반적인 입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유지되어야 하는 일종의 신앙의 시금석인 것이다. 어쩌면 역사적 예수연구라는 학문분과가 한국의 신학교들에서 강의되고 또한 지역 교회들로 유포되어 교인들이 접촉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인 이유도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그런 일만은 아니다. 역사적 예수연구가 거의 200년 동안 이루어진 1세계에서도 도그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연구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검열이든 타인에 의한 검열이든 간에 검열은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수의 부활과 관련해 자신은 이것을 역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고백했기에 괴팅엔 대학의 신약학자 게르트 뤼드만은 대학의 신학과로부터 해임을 당했다.[각주:3] 그리고 학문적 자유냐 신학적 권위냐의 문제로까지 비화되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해 여러 학자들이 토론하기도 했다.[각주:4] 이와는 좀 다르지만 자신의 책 The Illegitimacy of Jesus 에서 예수의 탄생설화를 세밀하게 주석하면서 예수가 당대의 유대교에서 결코 명예롭다고 할 수 없는 일종의 불법적인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논지를 펼쳤다는 이유로 슈아베르그는 우편물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각주:5] 또한 Crucifixion in Antiquity라는 책에서 사무엘손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복음서에 적힌 대로 해석되기엔 난점이 많다는 주장을 펼쳤을 때, 전 세계의 신자들이 그에게 수많은 메일과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각주:6] 물론 이것은 그에게 자신의 학문적 진가를 알리는 계기가 되도록 해주었지만 말이다. 하기야 역사적 예수에 관해 학자들이 투표를 통해 그 말의 진정성을 결정짓고자 했을 때 들이닥친 각종의 비난과 조롱을 참작하면, 1세계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철저히 계몽된 그러한 세계가 애초에 아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세속화 이론이 내다봤던 것과 달리 종교적 도그마/검열이 은밀히 작동하는 그런 세계였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방금 소개한 세 사람처럼 역사를 통해 적어도 1세계에선 지난 200년 동안 성서와 신앙에 대해 균열을 내고자했던 사람들이 꾸준히 존재해 왔다. 그 중에서도 신화론자들은 가장 급진적이었고, 현재는 무신론과 결탁해 근본주의 신학진영에 대해 열성적인 전투를 감행하고 있다. 때론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종교학적 관점에서 기독교 경전을 해석하고 있는 바트 얼만과 같은 이들에 대해서도 이들은 비난과 조롱을 퍼붓기도 한다. 따라서 도킨스처럼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이들의 논의가 허접한 수준의 아마추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전문적인 신학연구의 성과물들을 철저히 읽고 독해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그러니까 그저 몇 권의 책을 읽고 논평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극적인 사람은 로버트 프라이스인데, 그는 고든콘웰이라는 보수적인 신학교에서 출발해 드류대학교에서 신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나중에는 신화론자로 전향했다. 신약학뿐만 아니라 조직신학에서도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아마추어는 아닌 셈이다. 때문에 그의 책은 번역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새물결 플러스에서 출간된 『역사적 예수논쟁』은 그를 접해볼 기회를 제공해 준다.[각주:7] 하지만 그의 비평이 전해주는 짜릿함을 맛보기엔 이것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쯤에서 누군가는 왜 우리가 신화론자들의 논의를 굳이 알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법하다. 다시 말해, 이들은 어차피 예수를 신화적 인물로 간주하기에 예수를 역사적 인물로 간주하는 정통의 관점에서 보면 적대자이거나 변증의 대상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말년에 예수의 역사성을 부인한 브루노 바우어 같은 이에 대해 슈바이처는『예수의 생애 연구사』에서 다음과 같은 멋진 논평을 해놓았다.[각주:8] 다소 길지만 읽어보도록 하자.  


      우리에게 바우어와 비교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라이마루스일 것이다. 이 둘은 자기들의 시대에 무시무시하고 손상시키는 영향을 주었다. 누구도 이들처럼 예수의 생애 문제의 이렇게 심한 복잡성을 느끼지 못했다. …… 복음서 역사에 대한 바우어의 비평은 한 타스의 좋은 예수의 생애보다 중요하다. 그 비평은 우리가 지금 비로소, 반세기 후인 지금 비로소 인식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지금까지 있던 것들 중에서 예수의 생애의 난점들의 가장 천재적이며 가장 완전한 목록이기 때문이다. 그의 해결들의 비범성은 문제들을 문제들로서 이해했던 지향성에 근거를 두었다는 것과 그가 너무 예리하게 관찰했기 때문에 역사에 대해서 너무 어두웠다는 것을 그들은 느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동시대인들에게는 단지 환상가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환상에는 역시 하나의 깊은 인식이 숨겨져 있었다. 이 훌륭한 것은 아직 누구의 머리에도 떠오른 일이 없었다. 원그리스도교도 초기 그리스도교도 예수의 설교의 단순한 결과로서 파악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기원 전후 첫 세대들에서의 세계 정신의 체험을 반영한 것이다. 바우어는 그것을 역사에 옮겨놓고 죽음의 움직임에 놓여 있는 로마 제국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들었다. 


     반면에 슈바이처는 스미스와 로버트슨 그리고 드류스와 같이 바우어 이후에 나타난 신화론자들에 대해서는 꽤 비판적이다. “브루노 바우어가 전한 것과 같은 본문들의 비판적 연구는 그의 근대적 제자들 중 한 사람도 시도한 일이 없다. 또 그들은 복음서 설화들 중에 전제되어 있는 세계에 관한 설명을 위해 후기 유대교 사상들을 시도적으로 인용하고 그렇게 함으로 학문성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들 중의 한 가지를 만족시키려는 데 전혀 무관심했다. 신의 나라에 관한 예수의 선포에 관해 로버트슨은 아무 것도 말할 줄 몰랐다.”[각주:9]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슈바이처가 스미스와 로버트슨 그리고 드류스와 같은 신화론자들만 비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근대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그리고 항상 예수의 역사성의 있을 법한 포기의 가능성을 계산해야 한다.”[각주:10]라고 말하면서 “근대의 신학이 예수의 역사성을 위해 싸우지 않고 오히려 단지 어떤 특정한 예수의 역사성만을 위해 싸울 뿐”[각주:11]이라고 통렬히 지적한다. 즉, 근대의 맥락에 맞는 예수상을 구성하기 위해 신학이 목숨을 걸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신학이 예수의 죽음과 삶에 관한 자체의 역사적 주장을 수호해야 하는 바, 여기에 그 종교의 사활이 달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억지같이 작용한다.”[각주:12]라는 비판을 가했다. 

     한데, 좀 더 흥미로운 점은 그리스도 신화론과 근대의 역사적 예수 연구가 부지불식간에 공모를 하고 있다는 슈바이처의 주장이다. 길지만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3] 


      종교철학적 물음은 예수가 근대적 종교성을 위해서라면 실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실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아니면 그가 너무나도 역사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근대 신학은 역사적인 것을 충분히 비역사적인 것에 의해 완화함으로 종교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수를 얻으려고 꾀한다. 가장 단순한 길은 여기에 있다. 즉 근대신학이 예수의 사상들의 종말론적 성격에 통찰이 진입된 때 자체로부터 끌어내는데, 그 성격이 그와 함께 자명적으로 비종말론적으로 생각했으며 이미 현존하는 정신적 신의 나라를 설교하고 이에 상응하는 윤리를 가르쳤다는 데 있다. …… 시초에 그렇게 맹렬히 공격하던 브레데도 너무나도 역사적인 예수의 포기를 신학에 허락했다. ……이 얻어진 가벼움은 그러나 신학이 생동적인 메시야 대신 단지 흔들리는 개략적인 것만을 제시하는 유대인 교사만을 남은 것으로 얻은 희생을 치른다. 이 교사는 사실 근대종교를 위해 전혀 아무 것도 의미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게 일종의 역사적 영예의 위치를 부가한다. 왜냐하면 그의 처음 추종자들, 즉 그리스도교를 형성시킨 그들은 그를 유대인의 메시야라는 이름으로 꾸미고 그에게 근동적 그리스적 구속신의 성격을 첨가했다. 역사적 예수는 그러므로 단지 피상적으로만 구출된 것이다. 종교가 실제로 일하는 것은 처음 공동체 및 상징적 신화적 그리스도, 다시 말해서 드류스도 자신을 관련시킬 거대한 것과의 공동과제이다. 


     이처럼 그리스도 신화론자들과 근대의 신학은 부지불식간에 공모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슈바이처의 눈에는 말이다. 따라서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철저종말론을 외치며 예수를 1세기의 묵시적인 종말론자로 설정한다. 이것은 그가 지적한 바와 같이 교회가 아니라 예수의 역사성 그 자체를 위해 투쟁한 결과로 나타난 산물인데, 문제는 교회의 도그마와는 애초에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파괴하는 것으로까지 치달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에겐 “의지로부터 의지를 이해하는 일”[각주:14]이었고 그렇기에 “그의 본질을 위해 표현할 수 있는 어떠한 칭호”[각주:15]도 있을 수 없는 그러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화론자들의 주장이 형편없는 아마추어 수준의 연구결과로 나타난 망상된 주장이라는 흔한 착각은 교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슈바이처가 신화론자들을 비판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 논의의 전개가 형편없는 수준이어서가 아니라 근대의 신학적 연구들과 궤를 같이하면서 그 자신의 방법론이 지향하고 있는 묵시적인 종말론적 예수상을 이들이 도외시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화론자들에게 일종의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예수를 구출해낼 수 있는 유일한 치료책은 그 자신의 철저종말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후기 유대적 형이상학에서 실존한 하나의 도덕주의자이자 합리주의자”[각주:16]라는 그의 주장을 교회가 혹은 신학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교회로선 그리스도 신화론자들이 주장한 그리스도 신화론을 껴안는 것이 속편한 일일 것이다. 슈바이처가 『예수의 생애 연구사』 6판에서도 불트만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기이하기까지 하지만, "그리스도 신화를 본질적 내용으로 담은 그리스도에 관한 헬레니즘적 케리그마 - 바울에게서도 볼 수 있다(특히 빌 2:6, 롬3:24) - 를 예수의 역사에 관한 전승에 조화시키는 일이었다. 이 목적을 위해 아포프테그마와 이적 사화를 수집하고 편집해 놓"[각주:17]는 것이 마가의 의도였다는 불트만의 지적을 참작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맥 역시 불트만의 논의를 따라 "마가의 천재성은 그가 일종의 지혜 신화를 이용하여 예수전승과 그리스도 신화 모두에 연결시킴으로써 그 둘 사이를 중개시켰다는 점"[각주:18]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더구나 마가는 "그리스도 신화에서 필요한 것만 취하였는데, 그것은 그의 묵시록적인 예수의 신화를, 그의 예수 그룹을 거부한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극적이고 시각적이기도 한 역사적 기사 속에 교묘하게 집어넣기 위함이었다."[각주:19]는 맥의 주장은 슈바이처의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슈바이처가 신화론자들로부터 구출해냈다고 본 그 묵시적인 종말론적 예수상도 1세기의 종교적 언표들에서 추출해 낸 신화적 예수상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쯤에서 서두에서 제시했던 헬름스의 글을 다시 떠올려 보도록 하자. 그 글은 어떤 한 인간의 생애에 대한 묘사가 1세기 당시의 지중해 세계에서 떠돌던 특정한 이야기 틀에 의해 주조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어떤 면에선 예수와 아폴리니우스의 생애가 서로 유사하다면 그것은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특정한 지역의 종교문화적 에토스에 의해 영향을 입은 일종의 텍스트적 현상으로 간주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바로 그렇기에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후자인지에 관한 논의는 무의하다고도 할 수 있다. 차라리 이해해야 할 것은 한 인간의 생애가 이처럼 종교문화적 에토스를 거쳐 텍스트화된다는 점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이러한 현상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우리에게 꽤 유익한 도움을 주고 있다.[각주:20] 읽어보도록 하자.  


      아주 드물긴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신화로 변형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루마니아의 민속학자인 콘스탄틴 브라일로이우는 마라무레쉬라는 마을에서 아름다운 민요 하나를 채집할 수 있었다. 비극적인 사랑이 그 내용이었다. ……노랫말은 신화적인 암시들로 가득한,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제례용 가사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래의 변이형들을 채집하면서 동시에 브라일로이우는 그런 비극이 일어난 때가 언제였는지도 조사하였다. 사람들은 오래 전에 일어난 오랜 옛날의 이야기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조사를 계속해나가면서 그는 사건이 겨우 40년 전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여주인공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 핵심증인이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진실성을 완전히 박탈해버리고 사건을 전설적인 이야기로 변형시키는 데에는 불과 몇 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 자체는 만족시키지 못했다. 결혼 전날에 죽은 한 남자의 비극적인 죽음은 단순한 사고사 이상의 어떤 것이었다. 그 죽음에는 신화적인 범주 안으로 통합되었을 때에만 드러나는 어떤 비의가 담겨 있었다. …… 진실을 말하는 것은 신화였고, 실제 역사는 이미 거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민중의 기억은 한 영웅의 생애에서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요소들은 보존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고차적인 신비경험들 속에서도 인격신은 궁극적으로 초인격적인 신으로 고양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많은 전통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영혼은 기억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소위 그들의 역사적 개별성은 상실된다."[각주:21]고 지적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프라이스 역시 “웰스나 알바 엘레가드 같은 신비주의자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에 대해서 그가 가까운 과거에 살았던 인물이라기보다는, 평범한 그리스 사람들이 헤레클레스와 아킬레우스가 과거 어느 시점에 실제로 살았다고 믿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예수를 역사적인 인물로 여겼다고 주장했다……인자로서의 예수의 죽음은 리그베다의 원인 푸루샤의 원시적 죽음과 유사하다. 리그베다를 보면 하늘에서 푸루샤의 자기희생이 창조를 일으켰다.”[각주:22]고 한다면서 전통적인 그리스도 신화론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점은 슈바이처가 비판한 드류스나 스미스에게서도 또한 발견된다. 그렇다면 엘리아데와 전통적인 그리스도 신화론은 분명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신화론도 엘리아데의 주장처럼 예수와 아폴리니우스가 역사적 개별성을 상실하고 특정한 지역의 종교문화적 에토스에 흡수된 종교적 영웅들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그리스도 신화론도 엘리아데 못지않게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어떤 인물에 대한 종교의 텍스트화 현상에 관한 것이다. 물론 이 텍스트화 현상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예수를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고 쉽게 단정해 버린 그들의 치명적 실수는 정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에서 유별난 혹은 독특했던 어떤 한 개인이 새겨놓은 사건의 흔적과 그 흔적을 통한 종교의 형성 및 발달이 아니라 종교적 관념들의 유사성에 따른 텍스트의 형성과 그로 인한 종교들 상호간의 치열한 정체성 투쟁을 우리로 하여금 돌아보게끔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적 텍스트가 하나의 주체를 보여주고 있다면 그 주체는 이미 집단적으로 투사된 혹은 치환된 범례적 주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Helms Randel, Gospel Fictions, Prometheus Books, New York, 1988, p.9 [본문으로]
  2. 김진호,『예수의 독설』, 삼인, 2008, p.23 [본문으로]
  3. 뤼드만의 예수의 부활에 관한 연구에 대해서는 The Resurrection of Christ : A Historical Inquiry, Prometheus Books, New York, 2004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4. 이에 대해서는 Jacob Neusner, Faith, Truth, and Freedom: The Expulsion of Professor Gerd Lüdemann from the Theology Faculty at Göttingen University, Global Academic Publishing at SUNY Binghamton University, New York, 2002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5. Schaberg Jane, The Illegitimacy of Jesus: A Feminist The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Infancy Narratives, Sheffield Phoenix Press, Sheffield, 2006 [본문으로]
  6. Samuelsson Gunnar, Crucifixion in Antiquity: An Inquiry into the Background and Significance of the New Testament Terminology of Crucifixion, Mohr Siebeck, Tubingen, 2011 [본문으로]
  7. 이에 대해서는 『역사적 예수논쟁』, 손혜숙 옮김, 새물결플러스, 서울, 2014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8. A.쉬바이처, 『예수의 생애 연구사』, 허 혁 옮김, 대한기독교출판사, 1986, p.169 [본문으로]
  9. A.쉬바이처, 같은 책, p.521 [본문으로]
  10. A.쉬바이처, 같은 책, p.481 [본문으로]
  11. A.쉬바이처, 같은 책, p.483 [본문으로]
  12. A.쉬바이처, 같은 책, p.480 [본문으로]
  13. A.쉬바이처, 같은 책, p.485 [본문으로]
  14. A.쉬바이처, 같은 책, p.590 [본문으로]
  15. A.쉬바이처, 같은 책, p.593 [본문으로]
  16. A.쉬바이처, 같은 책, p.592 [본문으로]
  17. 루돌프 불트만,『共觀福音書傳承史』, 허혁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2, p.432 [본문으로]
  18. 버튼 맥,『잃어버린 복음서』, 김덕순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1999, p.284 [본문으로]
  19. 버튼 맥, 같은 책, p.285 [본문으로]
  20. 미르치아 엘리아데,『영원회귀의 신화』, 심재중옮김, 이학사, 2003, pp.57~58 [본문으로]
  21. 미르치아 엘리아데, 같은 책, p.59 [본문으로]
  22. 로버트 프라이스, 『역사적 예수논쟁』, pp.93~9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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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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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03 09:0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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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기독교 신자로서 한 종교의 창시자이자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종교학적 관점과 성서학적 관점 (역사적 예수 학파를 포함), 그리고 조직신학적 관점은 모두 예수를 다르게 바라보는 것 같은데요. 위 세 가지 중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며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기독론(Christology)이 대중화되는 그 날을 기대해봅니다!


해석의 출발점이자 종교간 대화로서의 반유대주의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해석의 사전적 의미를 뒤지면, 문장이나 사물 따위로 표현된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텍스트는 기호 가운데 특히 구어/문어 등의 언어로 이루어진 복합체를 뜻하는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텍스트와 해석을 합치면 언어로 표현된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인간의 활동쯤 될 것 같다. 그리고 텍스트와 관련한 해석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로 취급될 수 있다. 하지만 이때의 텍스트란 좁은 의미에서 정의된 것이다. 좀 더 넓은 맥락, 즉 문화연구의 개념을 통해 본 사전에서 텍스트 개념은 이데올로기 분석 연구, 수용 연구, 또는 담론 분석 연구 등과 관련해 정의되고 있다. 다시 말해, “문화연구에서 텍스트 분석을 통해 텍스트가 어떤 방식으로 이데올로기를 재현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텍스트에 대한 수용 연구, 즉 하나의 텍스트가 해독될 때 독자는 그 텍스트와 어떻게 상호작용하거나 교섭하는지에 대한 연구 등에서 텍스트라는 용어는 빈번히 사용”[각주:1]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텍스트와 관련한 해석은 그리 간단치 않다고 할 수 있다. 텍스트도 해석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하나의 사물로 덩그러니 놓여 있지 않은 셈이다. 마지막으로, 타자란 자기 이외의 사람 또는 다른 것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타자 역시 하나의 사물처럼 그저 그렇게 놓여 있지 않다. 현상학은 이 문제를 처음으로 중요한 주제로 부각시켰는데, 후설에게 타자란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지향적 대상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고유한 지각 영역에 속하는 나의 신체와 유사한 하나의 물체'로서 만약 내가 거기에 있게 된다면'이라는[각주:2]”식으로 파악되고 있기에, 그에게 타자란 자아와 유사한 존재 내지는 그 변양태에 지나지 않았다. 즉, 타자가 주체에 의해 언제든 처분될 수 있는 존재로 나타나 있는 셈이다. 이와 달리, 하이데거에게 타자란 단순히 눈앞에 있는 존재이거나 내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타자는 나처럼 살아 움직이는 존재인 것이다. “나처럼 현존재이며 세계-내-존재로서 도구적인 것을 둘러보는 가운데 고려하며 실존”[각주:3]하고 있다. 때문에 “현존재의 세계는 공동 세계이고, 이 공동세계 속의 우리는 서로 타자이지만 동시에 공동 현존재(Mitdasein)”[각주:4]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므로 텍스트, 타자, 해석을 묶어 하나의 주제로 고찰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고 할 수 있다. 텍스트라는 문제 하나만 고찰해도 버거운 일인 것을 텍스트, 타자, 해석을 묶어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 고찰하는 일은 어쩌면 무덤을 파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아드소처럼 “나는 나 자신에게 유물의 파편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때 있었던 이 일련의 사건과 그 사건을 연결하는 시간 사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되풀이하면 할수록 나는 여기에서 멀어져 가는 것 같다. 죽음의 문턱에 이른 늙은 수도사에게 제가 쓴 글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많은지 적은지, 있는지 없는지 그것도 모른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각주:5]라고 고백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주제를 뽑은 것은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에 매우 흥미로운 화두거리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대인/교 문제다. 알다시피, 기독교에서 유대교는 해결할 수 없는 타자였다. 그것도 신의 아들을 죽인 살해자이자 개종을 거부하는 타자였다. 그렇기에 중세에 유대인은 악마나 사탄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이후 이러한 사태는 변해왔고 마침내 지난 10일 바티칸은 가톨릭은 유대교인을 개종시키려 들지 말라고까지 선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한때는 악마나 사탄으로까지 이해되던 인종/종교가 어떻게 개종대상이 아닌 인종/종교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일까? 정말 우리가 가진 종교 텍스트, 즉 경전인 신약성서는 유대인을 개종대상이 아니라고 혹은 사탄의 자식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을까? 그러니까 어제까지는 살인자 및 사탄이라고 외치던 것에서 오늘에는 개종대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 현상을 성서라는 기독교 텍스트에 근거해 볼 때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이 문제는 카톨릭에선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카톨릭은 ‘오직 성서만으로’라는 프로테스탄트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 카톨릭에선 성서 이외에 교회의 전통이 또 하나의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오직 성서만으로’라는 논제를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개신교에서는 심각한 도전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근대에 시작된 개신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우선적으로 책의 종교로 등장했고, 그것도 우선적으로 문자적으로 이해해보고자 노력한 종교이며, 그렇기에 텍스트적인 종교적 인간형을 산출해낸 특이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텍스트적 인간형은 홀로코스트를 산출하는데 결국 일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미쓰오의 말을 들어보자.[각주:6] 


 사실 영향사적으로 봤을 때 예를 들면 마태복음 23장은 중세 말까지는 상대적으로 거의 미지의 텍스트로, 수사본에 기반을 둔 성서 기사의 영향력도 한정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활판 인쇄가 시작되었던 16세기 이후 성서가 광범한 독자를 얻게 되면서 기독교적 바리새파상이 각인되어 갑니다. 유럽 각국의 언어에서 바리새적=위선적이라는 관용어법이 일반화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바리새파의 모습이 현대 유대교의 조상으로서 이해되어 근대 이후의 시민적=기독교적 반유대주의와 결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데 이러한 상황은 단지 서구에만 해당되는 일일까? 다시 말해, 서구는 반유대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반면 서구 이외의 지역은 상관없는 그러한 일일까 하는 점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흥미롭게도 노만 콘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뼈아픈 지적을 한 바 있다.[각주:7] 


     절멸적인 반유대주의가 맹렬히 불타오르는 현상은 대중이 유대인이라는 존재가 그들 이외의 인류를 섬멸하고 지배하고자 획책하는 집단적인 악의 화신이라고 상상하는 경우로만 한정된다. 이런 종류의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이 현실 생활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실제로 이러한 반유대주의는 한 번도 유대인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 수백 년도 전에 유대인이 사라진 나라들에서도 출현한다. 


     그렇다. 실제로 이러한 일은 일어났다. 일본의 일유동조론은 그 한 예다. 타츠루는 “언제 유대인을 일본에 출현하게 됐는지, 우리는 그 날짜까지 알 수 있다. 그럼 소개하겠다. 일본에 유대인을 존재하게 만든 사람은 스코틀랜드인 선교사 노먼 매클러드라는 인물이다. 그는 일본에서 행한 현지 조사의 결과 일본인은 유대인의 잃어버린 10부족의 후예라는 기상천외한 설을 1875년에 발표했다. 이것이 그 후 현재까지 전해지는 일유동조론의 기원이 되었다.”[각주:8]라고 말한다. 이것은 유대인이 현실 생활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출몰한다고 지적한 콘의 말을 정확히 대변해주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타츠루도 “낮과 밤, 남과 여, 평화와 전쟁, 이러한 대립은 그 밖에도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습니다. 이런 대립은 현실적인 세계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대립은 현실 세계에 골격과 축과 구조를 부여하고, 현실 세계를 조직화하고, 인간에게 현실이 존재하게 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다시 발견하게 만드는 그러한 대립입니다.”[각주:9]라는 라캉의 말을 적용해서, “유대인과 비유대인이라는 대립은 현실적인 세계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대립이 아니다. 반대로 이 대립은 현실 세계에 골격과 축과 구조를 부여하고, 현실 세계를 조직화하고, 인간에게 현실이 존재하게 만드는 대립이다.”[각주:10]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타츠루의 책을 번역한 역자 박인순의 말은 더욱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렇게 적고 있기 때문이다.[각주:11] 


     북왕국이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게 멸망당하면서 10부족은 아시리아로 끌려가 나머지 2부족에 의해 잃어버린 10부족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기록이 남지 않아 이들의 행방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게 되었다. 10부족의 일부가 아프가니스탄, 인도, 미얀마, 중국, 일본, 한국, 영국, 미국, 스키타이, 아프리카 등으로 이동했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10부족의 일부가 이동했다는 지역으로 언급되고 있는 지역 가운데 우리나라가 들어 있다. 그리고 잃어버린 10부족 중 하나인 단지파가 바로 한국이라고 주장을 하는 이들이 실제로 있다.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2]  


     삼성기 하편에 의하면 환국의 12국 중 하나인 수밀이국은 단군 족, 곧 백두산족의 일파이다. 기독교의 12지파 중에 단지파가 있다. 체형, 언어, 생활습관이 수메르인과 이스라엘인과 한국인이 유사하다이스라엘이 말하는 선민(選民)은 그 뜻을 선택받은 민족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원어는 chosen people로써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조선 사람」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단군 민족이라는 의미다. 세계를 방황하던 이스라엘이 유엔에 청원할 때 만주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고향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인 아브라함은 수메르 인으로써 함께 천신제(天神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한민족과 이스라엘의 동질적 역사와 문화(文化)를 보면 너무나 유사점이 많이 있다. 


     이러한 말은 분명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너무나 허무맹랑하여 정신병자가 지껄이는 말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심을 두고 봐야 하는 것은 이 말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니까 “일본인이 이 가상의 유대인을 반복하여 호출하는 까닭은 자신들의 사정 때문이었다. 일유동조론부터 시오텐의 반유대주의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에 공통된 점은 국민국가의 정치적 위기와 국민적 정체성의 동요라는 두 가지 정치적 요인이다.”[각주:13]라는 타츠루의 말을 참조했을 때, 왜 이러한 일이 우리나라에도 일어나는지를 한번쯤은 검토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일단 지금까지 살펴본 주장, 즉 실제의 유대인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 일어난 유대인에 관한 생각들이 반유대주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고 물을 수 있다. 이에 대해 타츠루는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반유대주의란 꼭 유대인을 배척하라는 명시적인 박해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이 일종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매개로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사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유대인에 대해 친화적인 태도나 경의를 표한다고 해도, 반유대주의자와 기본적인 세계인식의 도식을 공유한다는 말이다.”[각주:14]라고 말이다. 경제적 성공을 위해 유대인의 지혜를 배우자는 한국 개신교인들의 뜨거운 반응은 성서를 통해 예수를 살해한 사람이 유대인이라고 말해야만 하는 자신의 신앙적 고백과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러한 지적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어쩌면 한민족이 단지파라는 망상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진 유대인의 기원이 바로 한민족이라고 말함으로써 우리 민족이 가진 힘을 역설하고자 하는 욕망일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맞닿아 있는 야누스적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반유대주의는 유럽 및 비유럽을 가리지 않는다는 콘의 지적은 꽤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텍스트적 인간형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 개신교인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타츠루가 지적한 것처럼 비유럽 지역의 나라들이 처한 위기와 관련해 유대인이 해석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현실 속 유대인이 아니라 텍스트, 특히 신약의 복음서에 박힌 고정된 전혀 변함이 없이 책을 뒤지면 언제나 특정한 타입으로 등장하는 유대인이 복음서를 읽는 독자가 처한 특정한 상황과 맞물려 어떻게 읽혀지고 있는지를 해석해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불행히도, 유럽의 역사에서 유대인은 언제나 약탈하는 경제적 인간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베니스 상인의 샤일록은 그 한 예이다. 사실, 고리대금업자로서의 샤일록은 우연히 탄생한 인물이 아니다. 오한진의 지적을 참작하면, 고리대금업자로 유대인이 등장하는 맥락은 반유대주의와 결부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3세기 이후부터는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다는 비난이 점증되었고, 페스트 전염으로 인한 대량사망이 유대인들의 인신제물죄로 유포되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적개심은 날로 커져갔다. 그리고 이러한 비난들이 유대인과 적대시하고 있는 승령들이나 신분 낮은 로마카톨릭 성직자들에 의해 설파되고 있었기에 일반 국민들에게는 쉽게 전파되었다.”[각주:15] 약탈하는 경제적 인간으로서의 유대인은 유럽의 역사에서 언제나 하층민에게 불쾌한 반응을 일으켰고 하층민이 돈을 갚지 못할 상황에 이르면 유대인을 폭력으로 응수했다. 이러한 일이 중세 유럽에만 일어났었던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토브는 21세기에도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도 미국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이다. “반유대주의자는 흑인과 백인 실업자, 노숙자, 빈민, 하층계급, 엘리트 코스에서 탈락한 중산 계급의 사회적 불만을 희생양인 유대인에게 향하게 만들어 피해 간다. 엘리트들은 반유대주의적 폭력을 저지하기는커녕 유대인, 흑인, 빈곤층 백인 등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괴리의 심화에 가담한다. 그들이 단결하여 엘리트들에게 반격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한 고전적인 분열 통치의 룰이다.”[각주:16] 한데, 이처럼 통치엘리트의 분열전략으로 반유대주의가 사용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의를 위해, 가난한 자를 위한 싸움을 위해 혹은 아나키즘을 위해서도 반유대주의는 동원될 수 있다. 다시, 타츠루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내가 반유대주의자의 저작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은 그 사람들이 꼭 사악한 인간이거나 이기적인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신앙심이 깊고, 박식하고, 공정하며, 불의를 격렬히 증오하고, 탁상공론을 싫어하고, 싸움의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으며, 자신의 주먹에 사상의 무게를 주저 없이 거는 수컷 농도가 짙은 인간이 자주 최악의 반유대주의자가 되었다. 단순한 반유대주의자=인간의 탈을 쓴 악귀라는 설에 기댄다면 분명 역사 기술은 간단해진다. 그러나 거기에 머문다면 지금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존재할 인종차별이나 민족차별이나 제노사이드라는 재앙을 막을 수 없다. 


     이러한 지적들, 13세기부터 시작된 약탈하는 경제적 인간으로서의 유대인이라는 것에서부터 불의를 격렬히 저항하며 기꺼이 해방을 도모하는 인간이 반유대주의자일 수도 있음을 말하는 이런 지적을 복음서를 통해 해방을 역설하고자 하는 여러 착한 학자들의 담론과 포개어 놓는다면 어떤 밑그림이 그려질지 궁금해진다. 물론, 이들이 반유대주의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자신이 실제적으로 유럽이 반유대주의자들 소굴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텍스트에 나타난 유대인의 이미지를 국가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해방의 담론에 적용코자할 때 자기도 모르게 걸려드는 반유대주의의 여러 유형들,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무의식적으로 접속하게 되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 유대인은 용서받아야 마땅하다는 식의 논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유대인이 홀로코스트를 겪었기에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현대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탄압은 눈감아줘야 한다는 식의 발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한 예로, 사이드는 이와 관련해 이미 옳게 지적한 바 있다. “레온 폴리아코프는 아리안 신화를 쓴 사람입니다. 가설에 불과한 인도-유럽어족의 특징으로 상정된 석과 이른바 아리안족이라는 관념과 인종주의 사이의 공생관계를 연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폴리아코프는 유럽에서 셈족을 유대인뿐만 아니라 무슬림까지도 가리키는 말로 쓴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당면 목표와 어울리지 않는 현실에는 눈을 슬쩍 감아버리는 것이 요즘 지식인들의 유행인 모양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폴리아코프의 책이 인종 이론을 공격하면서도 중동 사람과 셈족을 한 데 묶어 말하는 것이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보여줄 역사는 생략한다는 점입니다.”[각주:17] 오히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이드가 이슬람과 관련해 말한 바가, 다시 말해 서구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가진 스테레오타입적인 이미지가 유대인에 대해서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8] 


     다른 문제는 이런 것입니다. 대부분의 동양학 연구에서는 아랍 문학을 아주 조금씩만 다룹니다. 아니면 아랍인의 생활을 보여주는 예로만 살짝 다룹니다. 이것은 오리엔탈리즘에서 가장 주목해 볼 만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제가 오리엔탈리즘을 연구하게 된 것도 이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건, 동양학자들이 아랍을 꾸란의 예시라고 보거나 자신들의 주장이 꾸란에 써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는 겁니다. 방법론적으로 보면 이 태도는 미국의 역사를 신약 성서의 예시라고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무도 셰익스피어, 생 시몽 19세기 미국 역사연구를 대신해서 기독교를 연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동양학에서는 일반화된 일입니다. 


     사이드의 이 같은 지적은 유대교와 관련해 기독교 신학이 저지르는 신학적 논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수 세기 동안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적인 전통으로 굳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이것이 괴기한 일인지를 모르고 지낸다. 따라서 신학자의 글들에는 부지불식간에 반유대주의적 서사가 기어들어온다. 언제나 유대교는 하나의 화석으로, 그러니까 2천 년 전의 복음서에 나온 상태로 발전 하나 없이 굳어져버린 하나의 원시적 정신을 가진 존재로 취급되고 만다. 유대교를 정의할 때 현재의 살아있는 유대인들이 무엇을 믿는지가 아니라 고대의 유대교 경전을 통해 현대의 유대인들과 그 종교를 규정해내며, 그렇기에 늘 이들의 종교는 예수를 죽인 자들의 종교로 정의된다. 유대인, 그들의 종교는 복음서가 규정하는 바와 같이 무자비한 종교이고, 노력의 종교이며, 결국 은혜는 거부하는 그러한 종교다. 따라서 기독교적 서사에서는 헤롯과 가야바를 비롯해 심지어 바리새인들까지도 1세기의 민중들의 피를 흡혈귀처럼 빨아먹는 인간들로, 반면에 예수는 이들과는 달리 비록 천출이지만 고귀한 정신의 혈통을 지닌 자유의 아들로 그려진다. 그렇다면 이것은 반유대주의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종의 사회학적 틀을 빌린 반유대주의 말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이해를 무엇으로 봐야 할까? 솔직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이러한 신학적 해석의 궤도 위에서 예수를 자리매김하고자 한다면, 유대교와의 대화가 과연 가능할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네이버 지식백과] 텍스트 (문화연구의핵심개념, 2014. 4. 15., 커뮤니케이션북스) [본문으로]
  2. [네이버 지식백과] 타자 [他者, der Andere, l'autre] (현상학사전, 2011. 12. 24., 도서출판 b) [본문으로]
  3. [네이버 지식백과] 타자 [das Andere, others, 他者]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본문으로]
  4. [네이버 지식백과] 타자 [das Andere, others, 他者]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본문으로]
  5.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하)』,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1994, p.774 [본문으로]
  6. 미야타 미쓰오, 『홀로코스트 이후를 살다』, 박은영․ 양현혜 옮김, 한울아카데미, 2013, p.56 [본문으로]
  7. Norman Cohn, Warrant for Genocide, London: Eyre & Spottiswoode, 1967, p.252 [본문으로]
  8. 우치다 타츠루, 『유대문화론』, 박인순 옮김, 아모르문디, 2011, p.65 [본문으로]
  9.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59 [본문으로]
  10.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59 [본문으로]
  11.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65 [본문으로]
  12. http://www.dailywrn.com/sub_read.html?uid=5775 [본문으로]
  13. 우치다 타츠루, 앞의 책, p.96 [본문으로]
  14.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75 [본문으로]
  15. 오한진, 『유럽문화 속의 독일인과 유대인, 그 비극적 이중주』, 한울림, 2006, p.30 [본문으로]
  16. Lawrence Taub, The Spiritual Imperative: Sex, Age, and the Last Caste, Clear Glass Press, 1995, p.199 [본문으로]
  17. 에드워드 사이드, 『권력, 정치, 문화』, 최영석 옮김, 마티, 2012, p.58 [본문으로]
  18. 에드워드 사이드, 같은 책, p.6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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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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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 저자의 죽음과 텍스트의 즐거움을 위하여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서구의 모든 신념과 믿음은 이 재현에 대한 자신감을 걸고 도박하였다. 

기호는 의미의 심층을 지시할 수 있고 기호와 의미는 서로 교환되어질 수 있으며 

이러한 교환에 무엇인가가-물론 신이-보증을 서준다. 

그러나 만약에 신 자체가 시뮬라크로 되어질 수 있다면 

즉 신 자신이 보증을 서주는 기호들의 하나로 축소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장 보드리야르-  


     전통적으로 저자란 책의 의미를 보증해주는 자였다. 그렇기에 저자보다 저자를 더 잘 알기 위한 노력들이 뒤따랐는데, 책의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즉 저자가 처한 환경과 맥락을 통해서도 그 의미를 결정하고자 했다. 서구의 낭만주의 해석학은 이러한 시도들의 한 예이며, 특히 사회학적 해석은 적극적으로 외부를 통해 규명하고자 했다. 저자의 의도는 이 해석들에서 주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리쾨르는 하이데거 이후 비평이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작동될 순 없다고 보았다. 때문에, “스토리는 작가에 의해 창조된 장치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에 길들여진 문학비평가는 흐릿한 지평 속으로 사라지는 스토리들 안에서 주체가 수동적으로 뒤얽힌 현상의 연장 선상에 놓이게 될 이야기된 스토리라는 이러한 개념에 그다지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각주:1]고 지적한 바 있다. 한데, 저자와 관련한 문제가 이뿐이랴. 로만 잉가르덴과 볼프강 이저에 따르면 “글로 씌어진 작품은 독서를 위한 스케치이므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독자”[각주:2]임이 드러난다. 간단히 말해, 저자에서 텍스트로 그리고 텍스트에서 독자로 진행되어온 비평의 흐름은 어떤 한 책에 대한 저자의 의도가 해석의 문제를 주도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깨우쳐 주었다. 

     불행히도, 성서해석에서 이것은 우상파괴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교회는 사도적 승계를 입증할 수 있는 제자의 계보에 복음서의 저자가 속해 있기에 복음서가 역사적으로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고대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예수와 그 목격자들』이라는 책을 쓴 보캄은 그 한 예다. 확실히 이것은 글을 쓰는 자 이외에는 어떠한 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주장으로서, 다시 말해 글과 글의 진실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척도가 저자라고 판단함으로써 역사적 연속성과 글의 진실성을 동시에 보장받으려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하지만 보드리야르가 말한 것처럼 신이 하나의 기호로 축소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신이 전달한 내용을 보증하는 저자가 기호들 중 하나로 축소된다면, 이것은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기에 단일하고 확실한 소통을 가능케 해주었던 바벨탑을 무너뜨리는 일과 같을 것이다. 놀랍게도 바르트에게 이것은 전혀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텍스트의 즐거움이라고 불렀다. 사실, 바벨탑을 무너뜨린 이도 하느님이지 않던가. 아무튼, 그에게 저자란 신의 계시의 확실성을 담보하고자 애쓴 일종의 신학적 변증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히 작품은 더 이상 단 하나의 의미, 즉 모든 다양한 견해들을 수렴하는 일을 가능케 하는 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한 단어들의 짜임이 아니었다. 차라리 한 작품 안에 다양한 글쓰기가 내재해 있어 서로 간에 충돌을 빚고 모순을 일으키는 다차원적인 투쟁의 공간이었다. 텍스트는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서 온 인용들의 짜임이기에 하나의 의미만을 고집할 수 없는 그러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저자를 죽이고 텍스트를 돌출시킴으로써 텍스트에 다양한 저자/목소리가 내재해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그것도 단수가 아닌 복수의 저자를 말이다. "우리는 이제 텍스트가 하나의 유일한 의미, 즉 <신학적인>(저자-신의 메시지인)의미를 드러내는 단어들의 행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중 어느 것도 근원적이지 않은 여러 다양한 글쓰기들이 서로 결합하며 반박하는 다차원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텍스트는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서 온 인용들의 짜임이다. ……텍스트에 저자를 부여하는 것은 그것에 안전장치를 부과하고, 최종적인 기의를 제공하고, 글쓰기를 봉쇄하는 것이다. 저자의 통치는 역사적으로 곧 비평의 통치였으며 그리고 이런 비평이 오늘날 저자와 더불어 붕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 텍스트에 하나의 <비밀>을, 최종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를 거부하면서, 이른바 반신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활동을, 진정으로 혁명적인 그런 활동을 분출시킨다. 왜냐하면 의미를 고정시키는 것을 거부하는 것, 결국 신과 그 삼위일체 위격인 이성·과학· 법칙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각주:3] 

     그렇다면 복음서 역시 바르트가 말한 것처럼 읽혀질 수 있을까? 앞서 잠시 언급한 바 있지만 교회의 전통은 이러한 해석을 지지하지 않았다. 유세비우스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특히, 마가복음과 관련한 그의 말을 말이다. 


 장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베드로의 해설자였던 마가는 주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신 많은 일들을 비록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그가 주목한 대로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마가는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직접 듣거나 혹은 주님을 따르던 제자는 아니었다. 후에 그가 베드로와 동행할 때 베드로는 그에게 주님의 교훈을 기록한 완성된 책을 남겨준 것이 아니라 일화 형식으로 주님의 교훈을 말해 주었다. 그러나 마가는 자신이 전해들은 교훈들을 그대로 기록할 때에 실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오로지 자신이 들은 사실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그대로 말하고자 하는 그 한 가지 일에 주의를 집중했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해설자라고 말함으로써 마가복음서의 저자를 사도적 승계의 관점에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은연중에 저자가 복음서를 해석하는데 있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또한 “실수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중했기 때문이다.”라는 언급을 참작한다면, 역사 속에 계시된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역사적 복원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설령 유세비우스가 이러한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하더라도, 의도와 상관없이 그의 진술은 마가복음서가 예수의 생애를 가장 잘 나타낸 복음서라는 홀츠만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결론에 철퇴를 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는 분명 순서대로 적은 것은 아니라고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보수적인 학자 레온 모리스의 말도 흥미롭다.[각주:4] 


     마가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로 그의 복음서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복음서의 끝 부분에 가서 그는 백부장이 십자가에서 예수의 죽음을 보고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말한 것을 우리에게 전한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마가복음서에서 예수에게 사용된 건 처음과 마지막이다. … 제자들은 마가복음서에서 이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예수도 재림의 때에 관하여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단 한 번 자신을 아들이라고 말한 것 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이 기독교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유대교의 자료는 그들이 메시야에 관해 말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은 마가복음서가 다층적임을 보여주는 단서로 간주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초기 제자들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용어를 예수에게 적용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기에 마가복음서 저자는 최소한 자기 이전의 전통과 자신 간에 간격이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고고학적 지층들을 보존하고자 애썼다는 점을 드러내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층들을 화석이나 지질학적 단층들처럼 이미 고정된 것으로 간주한다면 곤란해진다. 던이 말한 바와 같이 전승들은 여전히 유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원시 교회들은 전혀 예수-전승을 처음부터 확고하게 존립해 있었던 바, 내용과 개요를 함유하고 있는 어떤 고정된 것, 하나의 전승체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전승들 자체는 이미 결정적인 형태로, 혹은 최종적으로 권위 있는 형태로 간주되지 않았는데 그 전승들의 권위라는 것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예언적 영에 의해 제기되는 적용과 해석에 연루되어 있는 것이다.”[각주:5] 

     그렇다면, 텍스트는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서 온 인용들의 짜임이라는 바르트의 말이 복음서와 관련해서도 유효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자기 이전의 여러 문화에서 온 전승들을 짜 맞추어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 마가복음서라고 말이다. 공교롭게도 카독스는 이와 관련해 꽤 시사적인 논지를 던져주고 있다. 우선, 그는 마가복음서의 전승이 구전이 아닌 문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에 어떤 것이 더 원시적이고 그로 인해 권위를 갖는 것인지를 논하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디벨리우스 역시 생생하고 우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단화들이 반드시 원시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지 않던가. 그러나 좀 더 흥미로운 대목은 마가복음서에는 3개의 문헌적 층이 보이는데 이 층들은 각각 팔레스타인적, 디아스포라적, 이방인적 색채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 층들이 편집을 거쳐 최종적으로 우리가 아는 마가복음서로 정착되었다고 말한다.[각주:6] 또한, 마가복음서가 호머의 서사시를 본뜨고 있다고 역설한 맥도날드의 논의도 눈여겨 볼만 하다.[각주:7] 그는 어리석은 제자들, 천둥의 아들, 배에서 잠자는 제자들, 급식기적, 변화산에서의 변모, 삼백 데나리온의 향유를 부은 여인, 마지막 만찬 등 마가의 이야기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들이 호머의 서사시와 매치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개론적인 수준에서도 소개되고 있는 일반적인 주장, 즉 마가복음서가 혼합된 청중을 가진 공동체를 배경으로 한 복음서라는 논의를 참작하면 그리 매력을 끄는 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개론수준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마가복음서가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 온 인용구들의 짜임이라는 바르트의 주장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바르트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예증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 연구는 꽤 흥미롭다. 

     한데 지금까지의 주장, 즉 마가복음서가 여러 층들을 지니고 있고 이 층들은 여러 문화의 온상에서 온 색채들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은 마가복음서의 저자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명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러한 물음은 대번에 아주 유치하고 초보적인 것으로 취급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흔히 생각되는 것처럼 마가복음서가 하느님의 영감으로 한 명의 저자에 의해 단번에 작성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벤들링은 마가복음서 내에서 최초의 이야기꾼의 이야기, 후대의 이야기꾼의 이야기, 그리고 최종 편집자를 구분해내고 있다.[각주:8] 얼핏 보면, 이것은 마가복음서의 이야기가 자료와 편집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일반적인 주장과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자료의 문제만을 말하고 있진 않다. 그러니까 자료의 문제를 넘어 한 이야기꾼에 의해 특정한 줄거리를 갖는 이야기가 마가복음서 내에 잠복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마가복음서의 저자가 요한 마가 하나뿐이라는 전통적인 주장은 그에 따르면 순진한 착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저자의 문제는 아니지만 마가복음서가 두 단계에 걸쳐 작성되었다고 주장하는 크롬의 논의는 마가의 이야기가 단번에 쓰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꽤 유용하다.[각주:9] 게다가 마가복음 16장 8절 이하가 원래의 것이 아니라 덧붙여진 것이라는 벨하우젠의 주장은 너무나 잘 알려진 바다. 하지만 이뿐일까. 얼만에 따르면 마가복음서 1:1의 하느님의 아들은 양자론적 이단들에 대항하기 위해 첨가된 것이다. 그는 여러 중요한 사본들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란 용어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각주:10] 그런데 잘 뜯어보면 이러한 논의들 역시 벤들링 못지않게 덧붙인 편집자도 한 명의 저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마가의 이야기가 16장 8절에서 끝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16장 8절로 끝난다면 우리는 여성들이 부활의 이야기를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전해주지 않았다고 여길 것이다. 반면에 첨가된 9절과 10절은 최소한 여성들 중 하나인 막달라 마리아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마가복음서가 16장 8절로 끝난다면 예수를 처음부터 따랐던 유대인 여성들 역시 남성 제자들 못지않게 우둔한 인물로 간주되어야 하겠지만, 첨가된 9절과 10절을 고려하면 적어도 막달라 마리아만은 깨달은 인물로 변신했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서 1장 1절에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어구가 없다면, 마가복음서 전체는 예수의 신성과 관련해 일종의 양자론적 견해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어구를 첨가함으로써 양자론적 견해를 취하는 이단적 문헌이라는 혐의는 벗어버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어구 하나를 첨가함으로써 이 후대의 편집자는 마가복음서 전체의 의미를 결정짓는 사실상의 저자가 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작가는 결코 근원적인 몸짓이 아닌 다만 이전의 몸짓을 모방할 뿐이다. 그의 유일한 권한은 글쓰기를 뒤섞거나 대립하게 하여 그 중 어느 하나에도 의존하지 않게 하는 데에 있다."는 바르트의 지적은 촌철살인적인 논평처럼 보인다. 

     이제 결론적인 물음을 하나 던져보도록 하자. 이처럼 저자들이 뒤섞여 있고 덧붙여졌다면, 어떻게 우리는 마가복음서를 일관된 흐름을 지닌 하나의 텍스트로 읽어낼 수 있었을까를 말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들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오독이었다고 판단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독자에 의해, 즉 일관된 흐름을 부여하고자 욕망하는 신앙적/신학적 독자에 의해 마가복음서의 사상 내지는 신학이라는 틀이 건져졌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오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럼으로써 한 가지는 얻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들뢰즈가 말한 바와 같이 고유명사의 퇴락이다. 저자라는 고유명사를 중심으로 사고해야만 텍스트의 원래의 의미가 얻어진다는 믿음. 신학에서 혹은 경전에서 최종적으로 신의 목소리를 확인하기 위한 중요한 지표로 사용되는 저자에 관한 믿음. 이것은 붕괴되어야 한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는 동화책을 분석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펼쳐 낸 들뢰즈의 지적처럼 말이다.[각주:11] 


     무한한 동일성 속에서 등장하는 이 모든 뒤바뀜들은 엘리스의 인칭적 동일성의 흔들림, 고유명사의 전락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고유명사의 전락은 앨리스의 모든 모험들을 관통해 반복되는 모험이다. 왜냐하면 고유명사 또는 단수명사는 한 지식의 항구성에 의해 그 동일성을 보장받으며 이 지식은 일정한 고정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정지와 휴지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들 속에 구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칭적 자아는 신과 세계 일반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명사와 형용사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 정지와 휴지의 명사들이 순수 생성의 동사들에 연결되고 사건들의 언어로 미끄러져 들어갈 때 자아, 세계, 신 등의 모든 동일성은 상실된다. 


     그리고 이러한 반신학적 붕괴가 텍스트의 즐거움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가복음서에서 텍스트의 즐거움은 어떻게 추구될 수 있을까? 이것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자. 하지만 텍스트의 즐거움이 어떠한지를 에코의 말로 대신하면서 마칠까 한다.[각주:12] 사실 지금까지의 논의들도 아래에서 에코가 전하는 즐거움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지만 말이다. 물론, 마가의 말처럼 귀 있는 자는 이미 듣고 깨달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엘레나 코스추코비치는 '장미의 이름'을 번역하기 전에 이 작품에 관한 긴 글을 쓴 바 있다. 어떤 대목에서 그녀는 에밀 앙르와의 브라티슬라바의 장미를 언급하는데, 이 책에는 어떤 신비로운 원고의 추적과 도서관의 최후의 화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프라하인데 나의 소설의 첫머리에서도 프라하가 언급된다. 더구나 내 책에 등장하는 사서의 이름이 베렝가리오인데 그 책의 사서는 벵가르 마르라는 이름이다. 내가 경험적 저자의 자격으로 앙르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고 그런 책이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고 말해 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내가 읽은 평론들 중에는 비평가들이 내가 잘 알고 있는 출처를 찾아낸 것도 있다. 비평가들이 스스로 찾아내도록 내가 교묘하게 감췄던 것을 그들이 교묘하게 찾아낸 것을 보고 나는 아주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출처를 전혀 알 수 없었던 글을 읽기도 했는데, 어떤 사람이 그 출처를 밝히며 그런 책에서까지 내가 인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을 때 나는 매우 기뻤다. 또 어떤 해설자는 내가 작품을 쓸 때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에 읽어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책들을 찾아내기도 했다(내 친구 조르지오 첼리는 옛날에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는 드미뜨리 메레쥐꼬프스키의 소설도 있었을 거라고 귀뜸해주었는데 나는 그가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웹진 <제3시대>

  1. 폴 리쾨르, 『시간과 이야기1』, 김한식․ 이경래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99, p.167 [본문으로]
  2. 폴 리쾨르, 같은 책, p.170 [본문으로]
  3. 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 김희영 옮김, 동문선, 1997, pp.32~34 [본문으로]
  4. 레온 모리스, 『신약신학』, 박용성 譯, 기독교문서선교회, 1990, pp.165~167 [본문으로]
  5. 제임스 던, 『신약성서의 통일성과 다양성』, 김득중․ 이광훈 공역, 솔로몬, 1990, p.129 [본문으로]
  6. Cadoux Arthur Temple, The Sources of the Second Gospel, The Macmillan Company: New York, [본문으로]
  7. Macdonald Dennis R, The Homeric Epics and the Gospel of Mark, Yale University Press: New York, 2000. [본문으로]
  8. Wendling Emil, Die Entstehung des Marcus-Evangeliums, J.C.B Mohr: Tubingen, 1908, pp.214~237 [본문으로]
  9. Crum J. M. C, St Mark's Gospel: Two Stages of its Making, W. Heffer & Sons Limited: Cambridge, 1936 [본문으로]
  10. Ehrman, Bart. The Orthodox Corruption of Scripture,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93, pp.72~75 [본문으로]
  11. 질 들뢰즈, 『의미의 논리』, 이정우 옮김, 한길사, 1999, pp.46~47 [본문으로]
  12. 움베르토 에코 외, 『해석이란 무엇인가』, 손유택 옮김, 열린책들, 1997, pp.99~10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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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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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시뮬라크르, 그리고 제의"_ 텍스트로서의 복음서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양식비평 연구에서 미학적 의미에서의 ‘작가’라는 개념은 떠오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연구가 관심을 둔 곳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한 예로, 불트만은『공관복음전승사』에서 “삶의 자리가 개체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한 공동체의 삶의 전형적인 상황 혹은 행동방식인 것처럼 문학 형태 및 형식은 사회학적 개념이지 미학적 개념이 아니다.”[각주:1]라고 썼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는 전승의 역사뿐만 아니라 그 법칙성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고 자신하도록 만들었다. “마태와 누가의 마가 처리에는 어떤 법칙성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Q는 마태와 누가에서의 재구성에 의존되지만, 그러나 여기서도 마태와 누가를 비교해 보면 가끔 Q에서부터 마태와 누가까지의 어록 자료의 발전이 어떤 법칙 하에 있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법칙성이 실제로 확인될 수 있다면, 이 법칙성은 마가와 Q에서 확정되기 전의 전승 자료에서 이미 작용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 자료의 형태로 확정되기 이전의 전승 단계에까지 소급해 갈 수 있다.”[각주:2] 그러나, 샌더스는 이러한 확신이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각주:3] 뿐만 아니라, 구테게만스는 형식주의와 구조주의 언어연구에 힘입어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는 양식비평의 방식이 과연 옳은 일인지 진지하게 되물었다.[각주:4] 또한 개별적인 전승 자료들의 문제를 넘어 문헌 구성의 문제를 물음으로써, 그는 양식비평이 가진 대부분의 전제를 반박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전승의 익명성, 공동체성, 전승의 발전 법칙 등과 같은 양식비평의 여러 전제들에 물음을 제기했던 것이다.[각주:5] 

     물론, 여기서 편집비평에 대한 언급은 빠트릴 수 없다. 막스젠에 따르면 복음서 저자들은 전승 자료들에 변화를 가하지 않고 단지 짜깁기만을 시도한 그러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순한 편집자 이상이었던 것이다.[각주:6] 때문에, 양식비평에서와 달리 복음서 저자들은 전승 자료들을 날것 그대로 보존해서 넘겨준 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관점에 맞게 전승들을 재구성한 하나의 신학적 작가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고로, 미학적 관점에 대한 고찰을 더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미학적 개념은 신학적 비평에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미학적 개념은 자료들의 구성뿐만 아니라 자료들 자체에도 저자의 개성이 개입되었을 수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 저자가 단순한 수집가가 아니라 신학적 작가의 지위로 격상된 이상 구성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전승 자료들의 신뢰성 역시 담보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절단된 개별전승들조차도 각 복음서들의 줄거리에 맞게 주조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노릇이 된 것이다. 사실, 형식과 내용을 분리할 수 없다는 언어연구의 관점에서 보자면 절단된 개별전승들마저도 신뢰성에 있어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은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미 불트만은 “편집이 단지 구전으로 전승된 것만을 대상으로 했다고는 볼 수 없다……또 우리의 마가복음서가 처음 문서화된 이후에도 가필되었으리라는 가정을 반대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차적인 자료들을 전승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각주:7]라는 벨하우젠의 말을 기꺼이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일차적 자료와 이차적 자료가 분리될 수 있고 그렇기에 복음서에서 역사적으로 순수한 일차적 자료를 안전하게 분리해낼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미학적 개념에서는 일차적 자료냐 이차적 자료냐 하는 구분은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미학적 개념에서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생생한 체험, 즉 일차적 자료가 후대의 공동체의 체험, 즉 이차적 자료를 지배하고 움직이며 나아가고 있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미학적 개념은 그 반대의 경우를 요구할 수도 있다. 종교적 경험의 측면에서 보자면 부활에 대한 미학적 경험과 같은 것을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우얼 바하는 “성서의 화자는 전설의 진실성에 대한 그의 믿음이 그에게 요구하였던 바로 그것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가 만들어낸 것은 본래 리얼리즘을 지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성을 향한 것이었다. 그것을 믿지 않는 자에게 재앙있거라!”[각주:8]라고 썼다. 마찬가지로, 그는 “마가복음을 쓴 필자는 그로 하여금 예를 들어 베드로의 성품을 객관적인 사실로써 그릴 수 있게 할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일어나고 있는 일의 복판에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명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만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위에든 사건에서는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즉 베드로가 어떻게 도망할 수 있었는가를 말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다.”[각주:9]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정타를 날렸다. “성스러운 글들의 전체 내용이 주석에 관련시켜지고 주석은 말하여진 것을 그 감각적 기초에서 떼어내는 일을 했다. 왜냐하면 독자나 청자는 실제 일어난 감각의 사건에서 눈을 돌려 그 의미를 생각하도록 요구받았기 때문이다.”[각주:10] 

     따라서 복음서 연구에서 전승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기준으로 논의되고 있는 구전이론 역시 미학적 개념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찮은 일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바하가 지적한 것처럼 종교적인 미학적 경험은 주석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날 것 그대로의 감각적인 체험은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석적 텍스트/이야기를 구성할 사명을 지닌 신학적 작가에게 대체 일차적 혹은 이차적 구분이나 구전과 같은 개념이 어떤 의미를 지녔겠는가? 과연 개별전승들의 신뢰성을 구전이론으로 방어해보고자 노력하는 최근의 보수적인 보컴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는 타당한가? 역사적인 예수와 가까웠을 수도 있는 특정한 개인들의 원초적인 목소리에 기대어 전승의 신뢰성을 설득하고자 애쓰는 보컴의 노력은 실로 눈물겹다.[각주:11] 하지만 그는 이것이 데리다가 지적한 현전의 형이상학을 추구하는 신학적/철학적 노력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길지만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2] 


 왜 음소는 기호들 중에서 가장 이념적인가? 소리와 이념성 사이의 아니 그보다는 목소리와 이념성 사이의 이 공모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내가 말할 때, 이 수행의 현상학적 본질에는 내가 말하는 그때 내가 나를 듣는다는 사실이 속한다. 나의 숨결에 의해 그리고 기표작용의 의도에 의해 혼이 불어넣어진 기표는 내게 절대적으로 가까이 있다. 살아있는 작용, 생명을 주는 작용, 기표의 신체에 혼을 불어넣어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표현으로 변형시키는 생기, 언어의 영혼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자기현전과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혼은 세계에 그리고 공간의 가시성에 내버려진 기표의 신체 속에서 죽음을 맞을 위험에 처하지 앟는다. 음소는 현상의 구사가능한 이념성으로 주어진다. 이렇게 영화작용이 자신에 의해 혼이 불어넣어진 것의 투명한 정신성 속에서 자기에게 현전함, 이렇게 삶이 자기 자신에게 내밀함, 이로 말미암아 말은 살아 있다고 늘 일러져 왔던바, 그러한 모든 것은 그러므로 말하는 주체가 현재에 자기를 듣는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서 데리다는 “기의의 형식적 본질은 현전이고, 소리로서의 로고스와 그것이 인접하는 특권은 현전의 특권이다.”[각주:13]라고 고쳐 썼다. 또한, 우리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자연적 문자언어는 목소리와 숨결에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것의 본성은 문자학적이지 않고 영기학적이다. 그것은 성직자의 것이고, 신앙고백의 내적인 성스러운 목소리와 아주 가깝고, 우리가 자신 안으로 되돌아가면서 듣는 그 목소리와 아주 가까운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적 감정에 신의 목소리가 충만되고 진실하게 존재하는 현전이다.”[각주:14]라고 말이다. 신학의 구전에 대한 집착은 바로 이러한 연유때문일 것이다. 신의 목소리는 역사적 두께를 몰아내고 순수한 것을 되찾도록 최초로 믿은 자들의 음성 속에 심어놓은 것이기에 우리가 그 목소리의 목격자를 찾아낸다면 역사적 신뢰성을 충분히 담보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이미 문자로 정착된 복음서에서 때가 끼지 않은 순수한 전승을 찾는 것이 가능한가? 이와 관련해, “문자는 자신의 망각이고 외재화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면화하는 즉 정신의 역사를 여는 기억의 반대[각주:15]”라고 한 데리다의 지적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록 데리다의 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리쾨르 역시 “직접적인 목소리, 얼굴표정, 몸짓 대신에 이러한 매개물들을 이용하는 기록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굉장한 문화적 성취이다. 여기서 인간적 사실은 사라져 버린다. 대신 이제 물질적 표식들이 메시지를 전달한다.”[각주:16]고 지적한 바 있다. “담화의 운명이 이제 목소리에서 글자로 옮겨[각주:17]”진 것이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이것보다 좀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글로 씌어진 담화에서는 저자의 의도와 텍스트의 의미가 더 이상 일치하지 않는다.[각주:18]”는 점이다. “절대적인 지금/여기는 시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위치들의 절대적 원천이었던 화자의 목소리, 얼굴 표정, 몸짓이 외적인 물질적 표지들로 대체되면서 폐기된다. 그리고 텍스트를 작가의 현존과 분리시키며 그것을 미래의 잠재적 독자층에게 열어 놓는 텍스트의 의미론적 자율성이 생겨난다.”[각주:19] 그렇다면, 텍스트란 목소리를 통한 자료들의 신뢰성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살펴 본 작가라는 미학적 개념까지도 파괴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적한 것처럼, 텍스트란 텍스트의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개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다른 의미는 영향사를 통해 중개될 것이다. 그렇기에 영향의 불안은 텍스트 내에 잠복해 있는 하나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전의 전승들과 해석들을 위협하고 덮쳐버리는 하나의 시뮬라크르로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텍스트로서의 복음서란 개별적인 전승 자료들만의 문제도 그렇다고 저자만의 문제도 아닌 독자가 개입되는 훨씬 더 복잡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 웹진 <제3시대>

  1. 루돌프 불트만, 『共觀福音書傳承事』, 허혁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70, p.4 [본문으로]
  2. 루돌프 불트만, 같은 책, p.7 [본문으로]
  3. Sanders, The Tendencies of the Synoptic Tradi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9, pp.23~24 [본문으로]
  4. Guttgemanns, Candid Questions Concerning Gospel Form Criticism, trans by William Doty, The Pickwick Press, 1979, p.75 [본문으로]
  5. Guttgemanns, 같은 책, p.129 [본문으로]
  6. Willi Marxsen, Mark the Evangelist, trans by Roy Harrisville, Abingdon Press, 1969, p.21 [본문으로]
  7. 루돌프 불트만, 앞의 책, p.2 [본문으로]
  8. 에리히 아우얼 바하, 『미메시스』, 김우창, 민음사, 1987, p.25 [본문으로]
  9. 에리히 아우얼 바하, 같은 책, p.62 [본문으로]
  10. 에리히 아우얼 바하, 같은 책, p.62~63 [본문으로]
  11. 이에 대해서는 리처드 보컴, 『예수와 그 목격자들』, 박규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5, pp.39~79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12. 자끄 데리다, 『목소리와 현상』, 김상록 옮김, 인간사랑, 2006, pp,118~119 [본문으로]
  13.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4, p.42 [본문으로]
  14. 자크 데리다, 같은 책, p.39 [본문으로]
  15. 자크 데리다, 같은 책, p.53 [본문으로]
  16. 폴 리쾨르, 『해석이론』, 김윤성․ 조현범 옮김, 서광사, 1994, p.61 [본문으로]
  17. 폴 리쾨르, 같은 책, p.64 [본문으로]
  18. 폴 리쾨르, 같은 책, p.65 [본문으로]
  19. 폴 리쾨르, 같은 책, p.7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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