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난민들에 대한 짧은 생각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유엔 난민 기구(UNHCR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s for Refugee])의 통계에 의하면, 2014년 한 해 동안 전세계적으로 오천 오백만명의 난민들이 발생했다. 이들 중 대부분이 오랜 내전과 기근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들이다. 대한민국 인구수와 맞먹는 오천 오백만이란 숫자는 국제 난민들의 규모와 다양성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실제로 유엔 난민 기구는 2015년 현재 약 7천만명의 사람들이 무력 충돌과 환경 재앙으로 난민이 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각주:1] 
          내전으로 인하여 대규모의 시리아 난민들과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콩고, 소말리아 출신의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탈출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지금, 우리는 난민들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국제 난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교회는 난민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난민 인권 문제, 특히 전쟁 난민은 국경, 국적, 국가 간 이익 문제 뿐만 아니라, 종교와 인종 문제, 성차별 문제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회 구조적 문제와 맞물려 있다. 특히 “인종”이란 관점에서, 난민 문제를 살펴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1990년대에 옛 유고 연방이 내전에 휩싸였을 때, 국제 정치 무대에서 리더쉽을 보여주려한 클린턴 행정부는 십육만구천여 명의 옛 유고 연방 출신의 난민들을 받아들였고, 이들 중 대부분이 내전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였던 보스니아 무슬림들이였다. 현재의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난민을 대하는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태도와 비교해 볼 때, 유럽에 거주하던 보스니아 난민들은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서방 국가에 이주하였다.
          미국에 정착한 가장 큰 난민 그룹은 옛 소련 연방 출신들로, 이들 중 상당수가 유대인들이다. 현재 미국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이 약 칠십만명인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들 중 30%가 옛 소련 연방이 붕괴되기 전에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이고, 나머지 70%는 그 후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 난민들의 수는 이스라엘에 정착한 유대인들의 수 보다 많다.
         보트 피플 (boat people)로 알려진 베트남 난민들은 국제 사회에서 난민들의 대표 얼굴이 유색인종으로 바뀐 사건이다. 1975년 남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이 북베트남에 함락되고, 미군이 철수하면서 남베트남 정부나 미군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던 약 14만 명 정도의 베트남 사람들이 미국이나 유럽 국가로 떠났다. 그러나 1978년 호치민 정부의 과거 청산 정책이 가속화 되면서, 화교 출신 등을 비롯한 소수 민족들, 남베트남 정부에 가담했던 사람들 등등이 핍박을 피해 베트남을 떠나기 시작했고, 주변 공산국인 캄보디아와 라오스 사람들도 난민 행렬에 가담했다. 1975년과 1995년 사이 약 이백만명의 사람들이 베트남을 떠난 것으로 보고 되고 있으며, 이들 중 약 팔십만명이 해로를 통해 베트남을 탈출하여 안전하게 다른 나라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는 수의 사람들이 항해 도중 태풍을 만나거나, 조악한 배가 파도에 뒤집히거나, 해적떼에게 약탈을 당하여 목숨을 잃었다.
          틱낫한 스님과 함께 보트 피플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한 찬공 스님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베트남 전쟁의 즉각적 종료를 원했다. 전쟁은 모든 베트남 사람들에게 치유할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이 상처는 보트 피플로까지 이어졌다… 인도네시아,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같은 베트남 주변국들은 보트 피플의 상륙을 허락하지 않아서, 난민들이 탄 배는 공해상에 머물러야 했다. 공해는 위험한 공간이다. 해적떼들과 높은 파도 때문에, 지치고, 양식도 부족하고, 병약한 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베트남을 떠났지만, 살 수 있는 희망이 너무 적었다….호주는 유색인종의 이민을 허락하지 않아서, 미국은 비자를 내주지 않아서, 유럽은 지리적으로 너무 멀어서, 주변국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모두 난민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베트남 주변국들은 유럽과 미국 국가들이 나서서 난민 문제 해결을 약속하고, 유엔이 제한된 지역에 난민촌을 만들어 주고 나서야, 보트 피플의 일시적 상륙을 허락했다. 호주는 이민법을 바꾸어 유색인종의 이민을 허락하면서, 베트남 난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을 열었고, 미국과 캐나다, 북유럽 국가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베트남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무력 분쟁 지역을 탈출하여 국외로 간 모든 사람들이 난민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 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들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이주 자격을 허락한다. 이 심사 기간 동안 난민들은 난민 캠프나, 임시 수용소와 억류소 (detention center)에 머물러야 하며, 이 기간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될 수도 있다. 영국과 같은 나라는 심사 기간 동안 난민들의 경제 활동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난민들은 영국에 이주하는 것이 쉽지 않다. 호주는 지금도 해로를 통해 도착한 난민들을 심사 기간 동안 구금 센터에 머물게 하는데, 여기에 머무는 기간 동안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난민들이 난민 심사에 떨어지거나, 심사 기간이 길어져, 더 안전한 곳, 경제 활동이 가능한 곳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난다.
         지난 여름 터키 해안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세살 짜리 시리아 난민 아이, 알랜 쿠르디 (Alan Kurdi)의 사진 한 장은 시리아 난민의 인권 문제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유럽 국가들은 2차 세계 대전 동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유럽 난민을 이야기하며, 시리아 난민에 대한 자국민들의 감정이입을 호소했다. 자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난민 쿼터를 늘리고, 난민 인권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동안, 미국은 올해 일만명의 시리아 난민들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더 나아가 미국은 2017년까지 삼만명의 난민들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는데, 몇 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여기에 속할지는 미지수이다.
      그동안 한국 언론들 뿐만 아니라 서방 언론들은 시리아 난민 발생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책임을 져야할 러시아와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정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 발발 후,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중동 지역에 정세불안을 가져왔고, 군사화된 이 지역을 더 군사화시켰다. IS와 같은 극이슬람 주의와 군사화가 결합한 반군조직 (para-military)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세력을 키우고, 러시아 무기를 수입하여 세를 불려나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와 미국은 현재 IS에 대해 대대적인 공습을 가하고 있는데, 이 공습으로 인해, 난민들이 더 발생하고 있다.
          기독교의 사랑이란 관점에서 보면,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난민들을 받아 들이고, 난민 문제 해결에 앞장 서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 모습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랑, 또는 국제 정세에 대한 철저한 분석 없이 이루어지는 사랑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또한 난민들, 특히 시리아 난민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할 내 이웃으로 보기 위해서는 기독교 안에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우선 광범위하게 무비판적으로 사용되는 ‘난민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유엔과 유럽 정부들, 그리고 언론들은 ‘난민 문제’에 대한 ‘짐 (burden)’을 전 세계가 함께 져야 한다는 취지의 발표를 종종 한다. 이러한 관점은 ‘난민’을 만들어 낸 전쟁, 미국과 러시아의 군수업자들, 독재 정부 등이 문제의 근원이란 사실을 잊게 만든다. 즉, 난민들이 문제가 아니라, 난민들이 발생하도록 만든 국제 정치 구조와 전쟁이 세계 시민들이 짊어져야 할 ‘짐’인 것이다.
          또한 난민들의 이주 비용에 유럽과 북미국가들이 막대한 사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워싱턴 포스트지의 보도에 의하면, 난민들의 장기 이주와 이민이 오히려 이주 국가의 경제에 도움을 주거나, 최소한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난민들의 이주가 마치 자국민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도, 이 보도에 의하면 오해에 불과하다고 한다. 언어와 문화 장벽 때문에 난민들이 당장 전문직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당수가 소위 3D 업종으로 불리는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로 인해 오히려 이 업종의 임금이 올라가고, 지역 경제가 살아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난민들을 받아들인 덴마크의 여러 지역들은, 지역 노동자들의 임금이 난민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상승하는 효과를 얻었다. 난민들을 억류하거나 심사를 엄격하게 하는 국가가 난민 관리 비용으로 더 많은 돈을 사용하여, 국가 예산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각주:2]

          조금만 더 깊이 살펴 보면, 난민들이 부유한 국가들의 사회 보장제도에 무임승차한다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사를 넘나들며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떠나고 여러 국경 지대를 통과하며, 비인간적인 대우를 참아온 난민들이, 이주 국가에서 사회 보장 제도나 바라는 사람들로 머물거란 생각은, 이들의 생존능력을 무시하는 편견이다. 더구나 난민들도 서구 국가들이 낙원이 아니란 사실도 잘 알고 있고, 본국의 분쟁이 끝나면 또한 많은 수가 고향으로 돌아간다. 세계화된 인종 차별 주의와 이슬람 혐오주의가 맞물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난민들이 환영받지 못 하는 시대에, 국제 사회의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각 국 정부들이 꺼내드는 카드가, ‘자국민을 위한 일자리 보호, 사회 안정 유지, 국가 예산 문제’ 등이다. 더구나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치인들이 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의 실책을 감추거나, 자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난민 문제를 감춰서, 자신들의 전쟁 개입을 은폐하려고도 한다. 이러한 이유들이 난민 발생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세계 정치를 분석해야 할 책임을 우리에게 부여한다.
          하느님 나라는 국경이 없지만, 인간이 만든 나라들은 국경이 있고, 이 국경을 지키는 군대와, 국경을 다스리는 정부가 존재한다. 우리는 인터넷의 발달과 해외 여행의 자유화로 마치 우리와 타인을 구별짓는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인터넷과 무역품들이 여러 나라의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 때, 각 국 정부는 오히려 국경 수비를 강화하고 통제하면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사람들’과 ‘국경을 넘을 수 없는 사람들’로 세계 시민들을 구분하였다. 시리아 난민들과 같은 대다수의 난민들이 종교와 인종, 출신국 때문에 ‘국경을 넘을 수 없는 사람들’로 분류되고 있다. 난민 문제가 세계화되고, 전쟁이 세계화된 시대에 우리는 ‘국경’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가 안보의 중심이 국경이 되고, 국경을 지키기 위한 전쟁, 마치 국경이 없으면 국민의 안전도 보호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인간이 중심이 되는 안보 (human security)로 생각을 전환하고 실천해야 할 때다. 마치 하느님의 나라가 국경으로 이루어지고 지배되는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만들어져 지속되는 것처럼 말이다.
          국제 난민 인권 문제에 올바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기독교가 극복해야할 가장 큰 문제가 ‘이슬람 혐오주의’이다. 이슬람 혐오주의는 십자군 전쟁과 오스만 트루쿠 제국, 이슬람 제국들과 국경 분쟁 등의 역사적 경험때문에 서구 사회에 항상 존재해 왔지만, 이제 이 혐오주의는 유럽과 북미를 넘어, 기독교 세력이 강한 한국에서도 확산되는 추세이다. 하지만 이슬람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알지 못 하는 것에 대해 집단적으로 혐오하고, 그 혐오에 편견을 더 하고, 모든 이슬람 교도들을 테러리스트로, 여성혐오주의자로 몰아가는 것은 기독교 사랑의 정신과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퀴어 문화 축제가 준비되던 지난 여름,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영국의 ‘나라를 걱정하는 기독교인들 Christian Concern for Our Nation’의 대표인 안드레아 윌리암스 (Andrea Williams)가 한국에 전하는 메세지라는 동영상이 공유되었다. 윌리암스의 메세지는 간단했다. 한국이 차별 금지법을 받아들이는 순간 동성애자들과 이슬람교도들이 거리에 넘쳐나서, 한국도 영국처럼 기독교인들에게 지옥이 될 거라는 경고였다. 동성애와 이슬람이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두 가지로 표현하는 것도 비논리적이지만, 이슬람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지옥에 살게 될 거란 것도, 역사적 근거가 없는 주장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이슬람 문화권 안에 기독교 교회는 오랫동안 존재해 왔고, 기독교의 이슬람 박해와 이슬람 혐오주의가 팽배해 지기 전에는 두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해 왔다. 오히려 윌리암스의 주장을 뒤집어 보면, 기독교 세력이 강한 곳이 무슬림들에겐 지옥이다. 기독교와 같이 제도화된 종교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 해서,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 만든 것이고, 항상 만들어져 가는 것인데, 오히려 인간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종교 제도의 노예가 되어서, 사랑이 아닌 증오를 전파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스리랑카의 알로이시우스 피에리스 (Aloysius Pieris) 신부는, 진정한 개종은 기독교라는 종교로의 개종이 아니라, 모든 부조리한 억압으로 부터의 ‘해방 (liberation)’으로 개종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An Asian Theology of Liberation, 1988) 이슬람이 가르치는 정의와 평화에 대한 내용은 다음 칼럼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슬람과 기독교 두 종교 모두,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집단들에 의해, 테러리스트의 종교도 될 수 있고, 서로에게 위협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싶다.
          지금은 종교와 폭력이란 주제에 대해 필독서 중 하나가 된 “Exclusion and Embrace”에서, 옛 유고 연방의 크로아티아 출신의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 (Miroslav Volf)는, 현대 사회에서 죄악이란 타인을 배척 (exclusion)함으로써, 현실을 뒤틀어서 바라보고, 이렇게 뒤틀려진 현실 속에 살면서, 공포심을 가진 채, 타인을 향해 증오와 폭력으로 반응하는 것이라고 했다. 볼프에 의하면 구원은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 타인과 평화로운 공존을 통해서 오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타인에게 열어 보이는 어려운 길을 걸으면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시고, 열어 보이신 것처럼 타인도 똑같이 사랑하시고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행위를 통해서도 온다. (Exclusion and Embrace: A Theological Exploration of Identity, Otherness, and Reconciliation, 1996) 볼프의 구원이란 관점에서 보면, 난민과 우리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우리가 난민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난민들을 끌어 안으면서 우리가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독교인들 모두는 이 세상의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여행자들이 아니라, 국경을 열어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난민들’이란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려고 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하느님 나라를 그리워 하고, 이 땅에 주인이 아니지만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난민들 말이다. 우리가 난민들이란 사실을 망각한 채, 국경을 폐쇄하고, 지구의 주인처럼 살면서, 종교적으로 인종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난민이라 부르고, 우리 땅에 발을 딛지 못 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고유한 신분을 져버리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 교회가 난민 인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종교적 인종적 타자들을 끌어 안으면서, 스스로 사회에서 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것처럼, 스스로 타자가 되어,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기독교인들에게 열린 구원의 길이다. 


<에필로그>
          인천 국제 공항에 가면, 난민들을 위한 임시 수용소 (detention center)가 있다. 주로 아프리카와 중앙 아시아에서 어려움 끝에 한국에 도착한 사람들이, 한국 정부에 망명 신청을 하고, 난민 자격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는 곳이다. 한국의 난민 심사는 절망스러울 정도로 까다롭고 기간도 길며, 이 임시 수용소는 침구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감옥같은 곳이다. 그나마 난민 자격을 얻지 못 하면,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국으로 쫓겨 나거나, 다시 지루한 법정 싸움을 이어 나가야 한다. 기독교 교회는 오랜 동안 난민들을 보호하고, 정착하는데 도움을 준 전통이 있다. 미국의 많은 교회와 교단들이 미국 정부에게 시리아 난민들을 더 받으라고 압력을 넣고 있고, 자신들의 공간을 난민들에게 제공하겠다고 서원했다. 한국 교회가 이들 교회 운동에 동참하여, 난민 인권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한국 국경 안에 들어와 있는 난민들의 이주에 적극적 관심을 표현했으면 좋겠다. 사회적 관심이 일어나면, 한국 정부도 쉽게 난민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전쟁 동안, 우리도 수많은 난민들이였음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베트남 난민들을 바다로 내보낸 책임이 있음을, 중동지역 전쟁에 우리도 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 웹진 <제3시대>

  1. http://www.unhcr.org/5575a78416.html [본문으로]
  2. (Anna Swanson, “The Big Myth about Refugees: Refugees Can Be an Investment Rather Than a Burden,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wonkblog/wp/2015/09/10/the-big-myth-about-refugees/?postshare=20714458158194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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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을 기다린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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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임방주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

어디서 어떤 사람을 어떻게 만날지는 ‘하느님’도 모르는 것 같다. 만약 아신다면 안가르쳐 주시는 걸 꺼다. 모르시든 안가르쳐주시든 ‘나는 알수없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불교에서는 인연을 짓는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 의미는 상황이 끝난 후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 하느님과 부처님을 오가며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만남의 의미는 꽤나 지나서나 아나부다~’라는 상식을 깨우쳐준 소중한 만남에 관한 것이다.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이하 KSCF)의 회원자격으로 태국의 버마이슈라는 곳에서 인턴이 되어 버마 민주화와 난민, 종족 갈등에 대해서 이런 저런 경험을 하고 있던 것이 2003년 여름의 일이다. 숙소에서 버마이슈 사무실까지 걸어서 3분, 아주 짧은 거리지만 그 사이에 식당이 2개, 이발소가 1개, 구멍가게가 1개 있을 정도로 빽빽한 주택가였다. 아침에 출근길에 아침인사와 목례를 하면 ‘Good Morning’이라고 답을 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정말 외국인으로 보이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동네에서 눈에 띄는 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달 가까이 지내다 보니 머리가 많이 자라 지나면서 늘 인사하던 이발소에 들어가 머리를 손질(?)하게 되었다. 이발사 청년과 자연스럽게 짧은 영어로 가계조사와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게 되었다. 워낙 친절한 사람이라 나중에는 머리 깎지 않아도 서서 이야기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태국의 찜통 더위와 소나기를 경험한지 두달이 지날 무렵, 그 친절한 친구가 시간되면 저녁을 먹자고 했다. 가까운데 좋은 곳이 있으니 가자고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요리사’인데 곧 요리를 배우러 유럽에 가게 될지 모르니 가기 전에 식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오히려 현지인과 ‘민주와 인권, 투쟁’이 아닌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 흔쾌히 ‘OK’하고 사무실로 들어와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기쁜 표정으로. 그런데 사무실에 일하는 친구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내가 모르는 정보와 느낌을 나누는 듯했지만 상관하지 않고 저녁식사를 하러 그 친구와 ‘룸비니 공원의 나이트 바자’를 갔다. 시끄럽게 공연과 흥정이 오가는 시장에서 조금 조용한 레스토랑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그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별로 할 말이 없어 주로 듣고 있었는데 식사 시간이 거의 끝날 즈음 그 친구가 나에게 “당신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고 나는 “와~ 기대가 됩니다”라고 답을 했다. 그런데 그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가 ‘커플이 되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생각이 확 스치면서 정확하게 무슨 이야기인지 물어보았다. “무슨~ 뜻이에요?” 돌아온 답은 “당신이 맘에 들어요, 좋아요~”. ‘앗! 이거였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뭐라 할말이 떠오르지 않는 긴장된 상황이 되어버렸다.

‘앗, 어떻하지? 거절해야 하는데, 뭐라고 하지, 어~ 이거 뭐라고 하지???’라며 머릿속을 굴리고 있는데 그 요리사가 꿈인 친구가 폼나게 거절할 미끼를 던져주었다. “내가 같이 살고 있는 친구가 있지만 내 마음을 이해해 줄 거예요”라고. ‘이거다. 이때다!!’ 나는 2.7초도 지나지 않는 순간에 “그러면 안되죠,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안되요, 당신의 친구가 불쌍하잖아요~~”라고  ‘웃으며’ 정당하고, 윤리적으로 거절하였다. 이후 이야기는 순풍에 돗단배처럼 술술 풀려갔다. 그 이발사가 비윤리적인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설득하고, 나중에 더 좋은 기회가 올거라고 달래며 택시를 태워보냈다. 그리고 생맥주 한잔......‘지금 뭔일이 있었는데, 아~~ 정리하고 싶지 않다.. 휴~~’ 한숨을 돌렸다.

한국에서 KSCF회원으로 민주와 통일, 인권, 소수자의 권리 운동에 음으로 양으로 관계를 맺어오면서 논리와 당위는 머릿속에 또라이1)를 틀고 있었지만, 그 권리의 주체가 [사람]이라는 생각은 없었던 것을 알아차린 것은 ‘그 인연’이 시발점이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자각하기까지 6년이란 시간동안 그 기억은 내 머리 한편에 독방에서 구금 당해 있었다.

기독교내의 동성애자가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도 어려운 상황임을 절실하게 알아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이하 차세기연)의 활동이 6년전의 기억을 눈 앞으로 불러세웠다. 여전히 동성애인권을 말하는 내 입은 6년전 눈 앞에 있던 ‘요리사가 되고 싶은 이발사 친구’를 내가 동성애인권을 알게 해준 ‘은인’으로 조작하면서 차세기연에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내 위치를 돋보이게 하는 ‘지지자’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 이 인연을 생각하게 되었다.

6년전 너무나 당당하게, 윤리적으로 설득했던 내 모습과 그 인연을 활용하여 동성애인권과 신앙과 신학을 말하는 내 모습 어디에도 ‘그 인연 속의 그 친구’는 없었다. [사람이 없었다]

6년을 기다린 그 기억의 친구를 다시 만난다면,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미안해~ 내 스타일이 아닌데~”

하느님도 부처님도 말해주지 않는 그 인연의 깊은 뜻은 뭘까?라고 다시 질문하는 내 머릿속에 또 [사람]이 없어지고 있다.
‘에이씨~ 이런 된장~~’

ⓒ 웹진 <제3시대>


1) 오타가 아닌 필자가 독자에게 던지는 30대 개그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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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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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옹달쌤
    2009.05.07 20:1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2.7초가 의미하는게 뭐에요?

우리가 들은 '워낭 소리', 우리가 외면한 '워낭 소리'
-영화 <워낭 소리>의 흥행에 붙여 띄우는 몇 가지 단상

정용택
(본 연구소 회원)


참을 수 없는 눈물의 가벼움

2009년1월 15일에 개봉한 이충렬 감독의 저예산 독립영화 <워낭 소리>가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관객 수 60만을 돌파했다. <워낭 소리>의 예기치 못한 흥행을 두고, 어느 진보적 인터넷신문에서는 한국 사회의 두 가지 희망을 발견했다고 한다. 첫째는 우리나라에서도 <원스>나 <워낭 소리>같은 작품성 있는 저예산 독립 영화라면 언제든지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 둘째는 우리가 그간 잊고 지낸 목가적인 전원의 삶, 즉 오염되지 않은 고향산천과 문명의 이기를 거스르며 사시는 아버지와 사람보다 더 의리 있는 소를 기억하며 눈물 흘릴 줄 '아는' 따뜻한 심성이 한국인들에게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것, 바로 그런 사실들을 영화가 확인시켜 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시사IN, 2009년 02월 10일).

특별히 두 번째의 이유가 몹시 흥미롭다. 이 영화 한 편의 갑작스러운 흥행 현상을 통해, 한국 대중들에게서 모종의 새로운 인권적 감수성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권에 대한 전통적인 문법에 따르자면 인권은 소위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이성적 인식의 문제였는데, 이 영화는 주인공 할아버지를 통해 소와 같은 동물을 인간 자신과 같은 도덕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보는 새로운 인권적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로티가 말한 바, 인권이란 소위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이성적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타자를 자신과 같은 도덕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감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인권, 이성, 감성, 현대사상과 인권, 사람생각, 2000).


40년이 넘게 자기 곁에 남아 있는 단 한 사람, 그리고 자기가 곁에 남아 있어주어야 할 단 한 마리와 함께 걸어온 80년 촌로의 인생 위로 눈부신 황혼이 덮쳐오는 라스트신,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음은 자명하다. 사람들의 눈물을 보면서, 그 눈물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도 그것은 동물로 상징되는 타자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환대,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종(種)의 한계마저 뛰어넘은 존재 대 존재의 우정 혹은 교감 같은 것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 혹은 향수가 아닐까. 우리는 그것을 위에서 인용한 로티적인 의미의 '인권적 감수성'에 대한 대중들의 열정의 징후로 해석해보려 한다.

<워낭 소리>와 같은 좋은 영화가 여전히 제작되고 있는 것, 그리고 그런 영화가 흥행하게 된 것, 그래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감동을 받은 것, 그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다 만족스럽다. 그런데, 아니 그래서 갑자기 슬퍼진다. 한국 사회의 대중들이 이런 영화를 좋아할 만큼 아직 감성이 살아있다, 라는 인터넷신문의 분석을 사실로 받아들일 때 갑자기 슬픔이 밀려온다. 더욱이 평소 TV 모니터로 얼굴만 봐도 토할 것 같았던 대통령께서도 나처럼 이 영화에 적잖이 감동을 받았다, 라고 전해주는 기사를 읽을 때 그 슬픔은 배가된다.

소의 목에 걸린 방울 소리를 통해 소의 아픔을 듣는 노인의 감성에 깊이 매료되거나, 두 존재 간의 아름다운 우정에 감동하는 이들이 60만 명이 넘었고, 더구나 그 60만 가운데 대통령을 포함한 이 사회의 권력자들이 상당수라고 하는데, 어째서 용산의 희생자들을 향해 대통령과 권력자들은, 나아가 시민사회는 한 줌의 동정 섞인 눈물조차 보이지 않는가? 나는 그들이 이 영화를 보며 흘린 눈물이 나의 눈물과 같다는 단순한 사실로 인해 지금 절망한다. 우리가 정말 같은 종(種)의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란 말인가? <워낭 소리>의 소를 향해 드러내는 도덕의 감성이 어째서 용산의 희생자들을 향해서는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로티의 말을 인용하자면,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인종청소를 자행한 세르비아인들의 만행은 그들이 보스니아인을 동물처럼 즉 도덕의식을 작동시키지 않아도 무방한 곧 '인간 범주' 밖의 존재로 여겼던 집단적인 편견, 그러한 왜곡된 감성(sentimentality)의 산물이지, 저들을 제거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합리적 판단에 따른 인권 유보의 상황은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용산 철거민들의 경우, 그들은 자신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데 집단적으로 공모한 국가권력과 시장질서와 시민사회가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우리'라는 자기 귀속 공동체에 대한 도덕적 의식의 범위 밖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용산 철거민들은 한국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국가적 질서와 시장적 질서, 그리고 시민사회적 질서 그 모두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된, 말하자면 삼중으로 배제된 비국민/비시민/비인간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먼저 국가적 질서로부터 배제되었기 때문에 '생떼나 쓰는' 사람들이 되다 못해 결국 망루에까지 올랐고, 공안(公安)적 논리에 따라 대(對) 테러 진압작전에 의해 주검이 되었다가, 죽어서도 검찰 발표대로 폭력과 방화를 일삼은 범죄자가 된다. 동시에 시장적 질서로부터도 배제되었기 때문에, 40층 이상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용산4구역, 이전에 비해 땅값이 10배 이상 오른 덕분에 돈이 없는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부자들에게 그대로 내주는 신세가 되고 만다. 게다가 작게는 용산 구민, 크게는 서울 시민 다수가 동의하고 있는 서울시 재개발 프로젝트에 사적인 동기로 이의를 제기하여 프로젝트 진행에 차질을 초래했고, 나아가 주변 이웃들에게 불편을 주고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는 폭력 시위도 서슴지 않았으니, 인권이니 생존권이니 하는 차원의 알량한 인정(人情) 따위를 시민사회로부터 기대하는 것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자. 87년 6월 두 명의 대학생이 고문과 최루탄에 의해 차례로 사망했을 때, 그리고 그러한 죽음에 대해 국가권력이 책임을 회피하려 들었을 때,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적 인권의 이름으로 궐기하였다. 마찬가지로 2002년 6월 두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미군 장갑차 운전병이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시민사회는 민족주의적 인권의 이름으로 궐기하였다. 지난 2008년 촛불항쟁 때는 급기야 참여민주주의와 국민주권에 기초한 아주 구체적인 인권 즉 건강권, 생명권, 행복추구권 등의 이름으로 거대하게 궐기하였다. 그렇게 한국시민사회는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르지 않았던가? 인권에 대한 존중을 정치적 권리의 쟁취로 연결시키면서, 한국의 시민운동은 성장하고 발전해 왔는데, 왜 가장 인권이 존중되어야 할 상황 앞에서 시민사회는 침묵하고 있을까?

영화의 '워낭 소리', 현실의 '워낭 소리'

억지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워낭 소리>의 소를 향해 작동하던 인권적 감수성이 용산의 희생자들을 향해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면, 대중들에게 용산의 이웃들은 인간 밖의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소와 희생자들의 위치가 뒤바뀌어, 소는 대중들에게 동물이 아닌 인권적 존중과 친밀한 소통의 대상이 되고, 희생자들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 되어 전혀 인권의 보호나 존중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이해하는 바, 영화 관람의 윤리라고 하는 것은 영화를 통해 체득한 감각을 일상의 윤리적 행위로 반복하는 것이다. 이 반복은 단지 영화적 현실, 디제시스적 공간(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장소) 내로 한정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영화들을 통해서 계속 반복되어야 하고, 극장 밖 우리의 현실 속에서 반복되어야 하며, 결국 우리 모두를 통해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 영화의 흥행을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된 한국 대중들의 인권적 감수성의 진정성도 입증될 수 있다. 만일 <워낭 소리> 관람에서 보여준 인권적 감수성의 뜨거운 눈물이 현실에서 반복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대중들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며 흘리는 눈물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차마 조우하지 못하였던 소와 인간의 평등한 우정이라고 하는 전원적인 삶 속의 느낌이나 사건을 때늦게 후회하며 그리워하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은 자신이 어떠한 경우에도 지금 여기 도시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소와 인간이 교감할 수 있는 그런 실재적인 공간은 언제나 영화 관람의 자리에서만 보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실재적인 것으로서 이러한 인권적 감수성에 대한 향수와 열망의 조건은 언제나 그 실재적인 것이 현실에서는 부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심문관은 예수의 역사적 실재와 신성을 독실하게 믿고 있지만, 그의 신앙은 예수가 지상에 절대 강림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의존하고 있었다. 만약 예수가 세상에 다시 내려온다면 대심문관은 현실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 다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것이다. 실재적인 것의 귀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관에서 실재적인 것에 마음껏 탐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넘어 소와 같은 타자에게까지 개방된 인권적 감수성의 발휘가 작금의 한국사회 현실에서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혹은 그런 것이 무의미하다고 믿기 때문에, 대중들은 다만 영화 <워낭 소리> 안에서 그 감수성의 풍경을 거리 둔 채 자유로이 만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소를 향해 인간이 자기의 도덕과 감수성을 뛰어넘은 신뢰와 환대를 보내고, 소와 인간이 종(種)의 차이를 넘어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아름답고 이상적인 공간이 현실로 귀환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중들은 영화를 관람하면서 편안하고 느긋하게 타자에 대한 인권적 감수성의 귀환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다. 그 반가움의 최종점에 물론 뜨거운 박수와 눈물이 있다. 영화에 보내는 박수와 눈물은 영화에서 본 실재적인 것을 다시 영화 안으로 돌려보내고, 우리는 다시 그러한 실재적인 것을 그리워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움을 참을 수 없을 때 물론 영화관으로 다시 가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이 영화는 40년을 함께 살아온 늙은 농부와 소의 관계를 통해 땅과 노동, 나이 듦과 죽음 그리고 특히 인간과 동물의 우정과 교감의 실재성을 시종일관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감독에 따르면, '워낭'이란 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또는 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를 뜻하는 말이다. 영화에서 워낭 소리는 소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주인 할아버지를 소통시키거나 교감하게 하는 '매개음'이며 그들이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상징'이자 '메타포'로 일종의 '맥박'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워낭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소와 노인을 교감시키는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결국 이것은 그들의 관계가 다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고통 공감의 구조, 혹은 사회적 연대의 구조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는 현실의 워낭 소리를 외면하며, 그 워낭 소리에 응답하는 인권적 감수성의 이상적 풍경을 지금 여기에서의 현실이 아닌 영화 속 판타지의 공간에서 관람하며, '실재'가 아닌 '실재의 효과'를 체험하는 데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실재 효과'를 즐기며, 오늘 어쩌면 나에게도 닥칠지 모르는 국가/시장/사회로부터의 고립이나 배제에 대한 불안을 종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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