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대한민국 고딩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학업역량이 우수하며 관련 분야에 탁월한 성과와 열정이 돋보이는 학생.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과 창의성과 성장 잠재력이 우수한 학생.
역경극복 능력과 희생정신, 리더쉽과 협동심이 뛰어난 학생.
그리고 본 대학에서 학습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은 학생.

뭔가 완벽한 슈퍼맨을 찾는 듯 한 이 내용은 대부분의 대학이 수시 입사관 전형에서 학생을 모집할 때 추천기준 대상을 표현한 문구다.
어느덧 우리 차례가 된 입시 앞에서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며 대학이 원하는 그런 학생이 바로 본인이라고 써야하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딸아이는 난감해 한다.
나 또한 추천 기준을 읽을수록 부아가 치민다.
결국은 공부 잘하는 놈 뽑을 거면서 괜히 역경극복이니 희생정신이니
학교와 학원, 집만 오고간 열여덟 아이 인생에 있지도 않은 스토리를 부풀려야 하는지 ..  엉덩이 붙이고 공부만 하게 했으면서 이제와 창의성이니 리더 쉽이니 여지껏 중등교육에서 외면 하다시피한 모습을 대학 문턱 앞에서는 보여 달라하니 참으로 얄밉다.
대학에서 원하는 항목에 뭐 어떻게든 뚜드려 맞출 수는 있을 거다.
대한민국 고딩들 사정은 뻔하지 않을까!
공부를 잘 했다면 활동이 부족했을 것이고 활동을 잘 했다면 공부가 부족했을 것이다. 둘다 다 갖춘 잘난 녀석들도 많겠지만 정원을 다 채우기는 부족 할 터 남은 공간을 넘볼 수 밖에 ..
대입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태교로부터 시작된 아이 교육의 시간 들을 되돌아보면 그저 딱 우리 부부가 갖고 있는 재량 만큼의 범위 안에서 아이를 키웠던 것 같다.
많이 놀아주고 많이 안아주고 공부 못하면 쥐어 박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터무니없는 교회에 다니게도 하고
틀 밖을 박차고 나갈 엄두는 내지도 않았다.
그건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저 무난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길 바란다.
딸아이의 부모가 무쏘의 뿔을 가진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영혼들이 아니니 한계는 분명한 건지 모르겠다.
그나마 우리 부부의 신앙이 달라지면서 조금 더 개방적인 상식이 아이에게도 전해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딸아이가 말하길 방학때 다녀온 한 대학의 전공 박람회 중 반도체학과라는 곳에서 그 곳 관계자가 학생들에게 S 그룹의 모회장 같은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는 그 대학 그 학과 절대 안 가겠단다.
뿐만아니라 아이가 다니는 과학 학원 선생님이 말하 길 너희들은 S그룹의 로열 패밀리는 될 수 없어도 그 그룹의 “일등 머슴”은 될 수 있으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단다. 아이가 듣기에는 그 말이 왠지 현실적이고 시니컬하게 들려서 한참을 웃었댄다.
어째든 올 입시를 무사히 치르고 교육의 주도권이 이 상상력 없는 부모에서부터 딸아이 스스로 에게로 속히 옮겨지길 간절히 바란다.
또 다시 일등 머슴이 되려고 애쓰는 교육이 될 지, 아이가 꿈꾸는 다른 길을 찾을지 장담할 순 없지만 지혜롭고 안정감 있게 자라준 아이를 보면 아이 스스로가 결정하는 앞날이 훨씬 아름다울 거라 생각된다.

요즘 밤마다 전쟁이다. 11시 야자 끝나고 집에 와서 간식 먹고 그 다음부터 쏟아지는 잠 때문에 깨워도 싸움이되고 안깨워도 원망이 된다.
어쩌겠냐 한 줄 세우기 교육의 정점에 와 있는 걸...
그래도 늦은 밤 학교 안에 주차해 놓고 운동장에서 강아지 안고 딸아이를 맞이하는 것은 쏠쏠한 행복이다.
같은 시간 그 동네 다른 남자 고등학교에서도 야자 끝난 아이들이 교문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저 갇혀 있던 피 끓는 젊음들이 쏟아져 나온다.
왠지 여학생들을 볼 때보다 더 가슴이 짠하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냐..
미안하다 대한민국 고딩~~~!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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