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관하여[각주:1]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어느 신학교 노교수의 자살


    1973년부터 2012년 까지 40년 동안 시카고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프로이트와 융을 가르치면서 정신분석학과 신학 사이 학제간 연구를 주도했던 로버트 무어 교수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내게 전해졌다. 시카고 신학대학원이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퀴어신학, 흑인신학, 포스트콜로니얼니즘 등 진보적인 색깔로 유명한 학교이지만, 원래 이 학교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목회상담 때문이다. 100년 전 20세기 초반에 미국에서는 최초로 임상목회실습(CPE)과정을 실시하면서 신학의 대중화 내지 현장화를 이끌어 낸 학교가 시카고 신학교였다. 미국 목회상담의 아버지라 평가받는 안톤 보이스(Anton T. Boisen)가 시카고 신학교에 근무하면서 이 운동을 이끌었고 지금도 학교 도서관의 한 방은 안톤 보이슨 Room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번에 사망한 로버트 무어(Moore) 교수는 시카고 신학교의 심리신학을 담당하던 교수이고, 특별히 그는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분석심리학을 만든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전문가로 미국에서 손꼽히는 학자다. 무어 교수는 시카고에 있는 융 연구소를 이끌었고, 융의 집단 무의식과 신학자 폴 틸리히의 궁극적 실재를 연결하여 새로운 형태의 신학을 구성하려 했던 창의적 신학자였다. “네가 아직 알지 못하는. 네 안에 있는 그것을 발견해라! 그것이 궁극적 실재이고, 그것이 신과 만나는 통로이다! 그것을 향해 달려가고 그것을 위해 행동하라!”를 외치면서 많은 신학도들과 수많은 내담자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던 학자이자 상담가였던 로버트 무어 교수는 늘 매니아들을 거느리고 다녔던 스타강사이기도 했다.

   2012년 은퇴 후에도 학교는 그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연구실도 그대로 남겨두었고, 교수 명단에서도 오랫동안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그만큼 시카고 신학교에서 로버트 무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2016년 6월 22일 시카고 경찰은 로버트 무어 교수가 부인과 함께 총에 맞은 채 발견되었다는 보도와 함께 ‘아직 사고의 원인은 조사중이다’라고 브리핑하였고, 다음 날 로버트 무어 교수가 부인을 권총으로 쏴서 먼저 죽이고 본인도 바로 스스로 자살했다고 공식 발표를 하였다. 그리고 “아직까지 알콜, 약물중독, 마약에 의한 혐의는 밝혀진 바 없 다”라는 소견을 달았다.

   교수님이 왜 자살했을까? 한동안 내가 10년 동안 봐 왔던 무어 교수가 했던 말과 그의 모습 을 되살리면서 무어교수의 죽음을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려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자료들을 가지고는 온전히 그것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 우리가 어떤 사건과 인물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일까, 라는 생각과 함께 ‘무어 교수가 발견한 당신 안의 그것이 과연 무엇이엇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얼마나 그것이 매혹적이고 좋았으면 선생은 이생에서의 삶을 그리 서둘러 단축했을까.

    하지만, 이런 결정은 내가 아는 무어 교수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선택이었다. 그렇게 폭력을 혐오하고, 폭력에 저항했던 선생이었는데, 사랑하는 아내와, 그리고 자신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며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나로서는 당혹스럽다.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까. 일단, 지금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무어교수는 나에게 신학이 얼마나 매력적인 학문인지, 아니 신학이 얼마나 불안하고 균열이 가득한 학문인지를 일러준 스승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2016년 6월 30일 일기 中에서


   자살에 대한 해석


    사건 직후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수소문을 해봤지만 사건에 대한 자세한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시카고 지역 신문에서 사건에 대해 몇 차례 보도되어 약간 술렁이는 듯 하더니 그것으로 끝이다. 시카고 신학교 차원에서 유감의 표현과 추모예배를 드렸다는 소식도 들었다. 사 건이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소식은 들은바가 없다. 무어 교수 부부의 소장품들이 경매 사이트에 올라왔다는 소식, 무어 교수 집 앞에서 책이랑 생활용품을 펼쳐놓고 무슨 업체 같은 데서 나온 사람들이 garage sale 하는 것을 봤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마 도 두 노부부의 유품을 정리하고 처분해 줄 가족조차 없어 그런 일을 대행하는 사람들에 의해 뒷처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며, 무어 교수 집 근처에 사는 옛 동료가 귀뜸해 주었다. 와이프가 심각한 건강 이상에 시달렸다는 소식, 무어 교수가 2012년 돌연 학교에 사의를 표하 고 사라졌는데 그 무렵부터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는 소문까지... 그 누구도 무어 교수에 대해 아무것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무어 교수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할까. 아내를 먼저 총으로 쏴서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신학교수를 말이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에서는 자살한 사람은 지옥에 가고, 중세 때는 자살을 시도한 것만으로도 처벌될 수 있었으며, 자살자의 교회 예식에 따른 장례식은 로마 카톨릭에서는 거부되고 있다. 왜냐하면 자살이 회개와 용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이유에서이다. 자살에 대한 그 리스도교 차원에서의 공식적 반대의견은 중세 스콜라 철학을 완성한 토마스 아퀴나스에 와서 정교하게 완성되었다. 아퀴나스가 자살을 반대한 이유는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인간의 자기 사랑과 자기 보전은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의무이며, 둘째, 인간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 고, 셋째, 생명의 권한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교리적이고 율법적인 잣대로 자살자의 입장과 처지에 대한 이해와 배려없이 자살을 반대하는 그리스도교의 주장은 너무나 무지하고 폭력적이다.

    이것보다는 좀 나아 보이는 그리스도교의 자살에 대한 이해가 있다. 그리스도교가 자살을 거부하는 이유는 복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 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6)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것이 된 존재, 이것이 교회에서 말하는 복음의 핵심이고 이것을 믿는 사람들을 크리스챤 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법칙과 강제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사람들이고,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온갖 속박으로부터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이 말은 크리스챤은 세상의 명령과 육신의 명령에 따라 살지 않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현실의 어려움과 절망과 환난 가운데서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러한 괴로운 질문으로부터 해방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은 현실의 환난에 처한 크리스챤들에게 현실을 견디는 희망으로 작동할 수도 있 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복음의 능력으로 자살의 충동과 유혹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정신의학에서 일탈적 행위를 보이는 개인이 치료를 통해 사회로 복귀하는 것과 같다. 사회, 즉 대타자는 완벽하다. 완벽한 대타자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순응하지 못하는 개인이 문제다. 정신병 걸린 사람이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러니 그 사람들을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신병원에서 하는 것이다. 이를 자살과 복음의 관계에 적용하면 이렇다. 복음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완벽하다. 자살은 복음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저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복음을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런데, 과연 복음이 완벽한 균열이 없는 매끈한 진리인가. 어처구니 없게도 20세기 내내 전 세계적으로 복음전파의 모범으로 군림했던 대한민국이 압도적으로 자살율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자살공화국


    2014년 2월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엄마 박모(60) 씨와 장녀 김모(35) 씨, 차녀 김모(32) 씨가 번개탄을 이용 동반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현장에서는 현금 70만 원이 든 봉투와 함께 다음과 같은 메모가 발견되었다; “주인 아주머니께...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사건은 생활고에 시달 리던 선량하고 정직한 서민이 시스템이 정해 놓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힘겹게 살다가 그 법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그 법의 명령을 어길까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었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발생했던 2014년 그해 우리나라 자살율은 세계 최정상급이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통계청 2014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은 10만 명당 28.7명이 자살한다고 한다. 이는 하루에 40명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말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 1위다. OECD 평균이 12명인데 한국은 두 배가 넘는 수치다. 헝가리(19.4명)와 일본(18.7명), 슬로베니아(18.6명), 벨기에(17.4명) 등이 자살율이 높은 나라들이라고 하는데 한국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하지만 한국의 자살률이 처음부터 고공행진을 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만 해도 자살률은 8.8명으로 당시의 일본(17.5명)과 독일(17.1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랬던 한국의 자살률은 1997년 IMF와 2008년 미국발 금융대란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며 급증했다. 자살률은 IMF이후 서서히 증가하여 2000년 13.6명, 그리고 2003년 22.6명으로 껑충 뛰었다. 2009 년 31.0명, 2010년 31.2명, 2011년 31.7명으로 가파르게 올라갔다가 2012년 28.1명으로 줄어든 이후 2013년 28.5명으로 다시 상승했다.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자살의 원인은 고령화와 경제난이라고 한다. 인구 고령화 시대로 치닫는 사회적 추이속에서 노인들의 삶의 질은 점점 떨어지고 있고, 노인들을 섬기고 대우해주었던 공동체는 파괴된 지 오래다. 전 세대 전 연령층에서 자신들에게 닥쳐온 현실적 삶의 무게 를 견디느라 모두가 아우성이고 그런 까닭에 우리 이웃을 돌아볼 물리적, 감정적 겨를이 없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나라 살림도 어려워 각종 복지정책은 뒤로 밀리고 있고 그에 따라 사회적인 안전망이 제거되는 상황속에서 한국은 그야말로 위험사회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대한민국은 압도적 자살국의 지위로 등극하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자살율을 감소시킬 수 있을까? 시간당 시급을 만원으로 올리고, 기초생활 수급자 대상의 층과 범위를 확장하고, 임시직.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70세 이상 노인들에게 월 50만원 정도씩 보장하고, 치매와 암, 그리고 기타 불치병 희귀병의 치료와 후원에 국가가 전면적으로 개입하면 자살문제는 해결될까? 그렇다면 분명 자살율은 감소할 것이고, 그러한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우리의 권리를 부르짖으며 사회적 안전망을 다시 재건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물리적인 노력들을 실천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자살에 대한 공부다. 우리는 그동안 진지하게 자살을 다루어 본 적이 없다. 자살은 감추고 숨기고 피해야 하는 마치 주홍글씨 같은 낙인과 같아서 자살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었 기 때문이다. 자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자살에 대한 객관적 안내를 제공하는 자료가 지금 소개할 뒤르겜의 『자살론』이다. 100년도 훨씬 전에 뒤르겜의 자살에 대한 통계를 바탕 으로 작성한 이 책은 희미하고 불명확했던 자살의 현상학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빛나는 성과라 할 수 있다.


   뒤르겜의 '자살론'


    자살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 성과물들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에밀 뒤르겜의 ‘자살론’[각주:2]은 자살을 둘러싼 현상학 혹은 종교사회학에서 이룩했던 성과 중 단연 빛나는 저작으로 지금까지 손꼽힌다. 뒤르겜은 우리가 생각하는 여러 자살의 요인들, 예를 들어 정신질환, 유전적 요소, 인종적 특징, 계절과 자살의 관계, 알콜과 자살, 빈곤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후에 “자살은 사회적 조건에 의존하는 것이다”[각주:3]라고 말하였다. 뒤르겜의 발언은 자살이라는 죽음의 형식이 근대성의 일면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알렸고, 그것은 현대의 자살현상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초가 되었다.

    고. 중세 시대에도 물론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당대의 봉건적인 이데올로기와 종교가 내세우는 강압 속에서 수치스럽고 욕된 삶을 산다고 생각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어 산업의 구조가 바뀌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끼리의 관계가 촘촘히 얽히기 시작하면서 자살율은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봉건사회보다 근대사 회는 사회적인 끈끈함(social cohesion)이 느슨한 이기적(egoistic) 사회이다. 뒤르겜은 이기주의를 자살의 중요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지나친 이기주의는 자살을 유발하는 원인을 촉 발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자살을 유도하는 원인이다.”[각주:4] 근대로 접어들면서 개인주의적인 삶이 고착화되면서 공동체를 바탕으로 했던 삶의 원리는 점차 사라져갔고, 개인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정글속에서 홀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뒤처지고 도태되는 개인이 다시 사회로 편입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근대적 삶의 패턴과 자살율의 증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뒤르겜은 최종적으로 사회적 통합의 정도가 자살율의 감소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하 였다: “자살은 종교 사회의 통합, 가족사회의 통합, 정치사회의 통합 정도에 반비례한다.”[각주:5] 뒤르겜에 의하면 자살율 1위를 자랑하는 한국사회는 종교의 사회 통합 기능면에서 실패하였고, 가정의 붕괴와 정치의 상실 또한 이미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실제로 한국은 전체 가구 중에서 1인 가구의 비중이 30%에 접근해가고 있고, 서울시의 1인 가구비율은 30%를 훌쩍 넘었다. 개인의 삶을 지탱한다는 최소 단위인 가정이 빠른 속도로 해체되어 가고 있는 셈이다. 또한 한국 국민의 성직자, 특별히 개신교 목사에 대한 신뢰와 존경의 수준은 밑바닥이고,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도 성직자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한국사회의 현실은 뒤르겜의 자살률 증가원인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눈여겨 볼만 하다.

    뒤르겜의 『자살론』에서 마지막으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종교별 자살율 추이다. 종교별 자살율은 개신교-카톨릭-유대교 순으로 개신교가 월등히 높다.[각주:6]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우선 개신교는 가톨릭과 유대교에 비해서 응집력이 느슨하다. 유대교와 가톨릭은 개신교에 비해 훨씬 조직의 힘이 강하고 뚜렷하다. 예전과 교회법을 중시하는 면에서도 개신교를 월등히 압도한다. 유대교와 카톨릭에 비해 개신교는 훨씬 개인적이다. 개인의 결단이 구원의 필수요소이고, 신과의 접촉도 사제라는 매개없이 직통으로 가능하고, 경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평신도 각자가 말씀에 대한 이해를 갖고 신 앞으로 나간다. 신과 개인 사이 일대일 관계를 강조하는 개인주의적 성격이 가장 강한 종교가 개신교라는 것이다. 개인의 탄생이 근대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때, 개신교는 근대정신과 부합하는 종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성향의 개신교도의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은 한국의 높은 자살률을 이해 하는데 있어 중요한 포인트이다. 한국 개신교도들의 자살률만을 따로 떼어 연구한 결과물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개인주의적 성향의 신앙패턴이 자살율과 상관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나는 자살에 대한 전통적 해석과 뒤르겜의 『자살론』을 토대로 자살이라 는 현상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글의 후반부에서는 자살에 대해 유독 거부반응을 보이는 그리스도교의 자살 해석에 대한 반론이 도모될 것이다.


   신의 음성, 신의 위로


    “보아라, 예루살렘아, 내가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네 성벽을 늘 지켜보고 있다”(이사야 49:16)


    이사야서는 구약성서 예언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예언서이다. 이 책은 바벨론 포로기 전후를 배경으로 한다. 이사야서는 66장까지 있는데, 흔히 1-39장을 제1이사야, 40-55장을 제2이사야, 56-66장을 제3이사야서라 부른다. 제 1이사야는 바벨론으로 잡혀가기 이전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사야 예언자가 하나님을 대신해 심판과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고, 제 2이사야는 바벨론으로 잡혀가 절망과 슬픔과 비탄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이다. 제 3이사야는 새로운 희망을 선포하는 메시지다. 위에 적혀 있는 이사야 49장은 위로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제 2이사야 중 한 대목 이다.

    고대시대 전쟁에 패한 국가의 백성들은 포로의 신세로 전락하였고, 포로들의 삶이 어떠했는 지는 미루어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남자들은 끌려가서 고된 일과 또 다른 전쟁의 총알받이가 되었고, 패전국의 여인들은 승전국 남자들에게 의해 온갖 고초와 능욕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더러는 모진 노동에 시달리다 죽을 것이고, 더러는 자신에게 닥쳐오는 모진 운명에 저항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자기의 존엄을 지키려 했을 것이다.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을 향해, 그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람들 향해, 그렇게 주변에서 사라진 형제, 자매와 부모, 자식을 기억하고 있는 살아남은 자들을 향해 신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희들의 이름을 나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이다.

    극심한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이 말이 무슨 소용이 있나, 라는 부정적 마음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이 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애도한다는 신의 위로가, 삶의 공포와 절망에 지쳐 생을 포기한 이들 하나 하나의 이름을 다 기억하겠다는 신의 다짐이, 욕된 세월을 여전히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이렇게 말하는 신이 자살한 사람들에게 벌을 주었으리라고 생각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은 그 반대의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 하나하나의 이름 을 당신의 손바닥에 꾹꾹 눌러 새기겠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신이라면 오히려 “너를 쓸쓸히 혼자 내버려 둬서, 너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신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자살을 고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사를 찾아와 상담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첫째는 목사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한국교회가 보여 온 번영지상주의, 축복 일변도의 신앙패턴도 영향이 있다. 축복받은 삶만이 신앙의 결실이자 열매라는 잘못된 신앙이 어느 때부터 주입된 관계로, 실패한 사람이나 삶이 주는 무게로 인해 신음하는 사람들은 믿음 이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받기에 교회에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신은 정 말로 번영과 축복만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만을 칭찬하고 반기는 신인가?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을 떠나기 전에 모세가 신에게 “저에게 주님의 영광을 보여주십시오”(33:18)라고 요청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러한 모세의 요청 에 신은 이렇게 답하였다.“네가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33:23) 멀리 길을 떠나는 친구에게, 새로운 사업과 새로운 가정과 새로운 다짐을 굳게 하는 친구가 찾아와 복을 빌어달라고 요청한다면 여러분은 뭐라 말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될거야, 넌 할 수 있어,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의 뜰거야...”등의 온갖 긍정 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 그렇게 일이 술술 잘 풀리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길을 떠나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축복을 빌어주십시오”라는 요청에 하나님은 가장 정직한 답변을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네가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얼굴 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너희들이 원하고 생각하는 축복을 내게서 보이라면 난 그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무심하지만, 항상 없는 듯 너희 곁에 있다”고 말이다. 다석 유영모는 이런 하나님을 “없이 계시는 분”이라고 말하였고, 디트리 히 본회퍼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더불어”라는 아포리즘으로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표현하였다.

    나는 신이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빛으로 인도 하시지만, 우리 앞에서 그 빛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빛은 우리 앞에서 비추는 빛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등 뒤에서 길을 비춘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강렬한 빛이 내 눈 앞에 있으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의 눈이 멀고 만다. 빛은 오직 등 뒤에서 비출 때 우리가 갈 길을 밝힐 수 있다. 그리고 그 빛이 우리 등 뒤에서 비추는 까닭에 그림자가 우리 앞에 있다. 그 그림자는 물론 우리 자신의 그림자이다. 신이 인도하는 삶, 빛으 로 밣히는 길 위에도 어둠과 그림자가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인생의 그림자를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던 사람들의 마음과 행위를 좀 더 나의 문제와 현실로 받아들 일 수 있지 않을까. 자살한 사람들의 결정에 그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다”라고 한 신의 자비만을 구할뿐이다.


   신정론(Theodicy)에서 인정론(Anthropodicy)으로


    정신과 의사들에 의하면, 자살을 택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살기를 원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살에 대한 죄악성 유무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다. 만일 자살의 원인이 온갖 숨겨진 폭력에 기인한다면, 자살의 동기가 경제적 위기, 혹은 외로움과 고독 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것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모두가 자살의 잠재적 가해자인 셈이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한 책임은 살아남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 대목에서 자살에 대한 문제는 신정론에서 인정론으로 넘어온다.

    이유와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에 대한 해석은 모든 종교들이 최종적으로 고심하는 난문제이다. 고통에 대한 정의가 어려운 이유는 고통에 대한 이해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수 만큼 이나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고, 각 종교 전통마다 고통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 다.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은 기독교 전통에서 말하는 고통과 악에 대한 신학적 답변이다. 신정론은 의인에게 닥치는 고난과 악의 명백한 현존 속에서도 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한 다는 사실, 그런 신의 전능과 계획에 의해 악과 고난은 현실적 차원이 아닌 신의 섭리가 작동 하는 영역으로 고양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이론이다. 현재의 고난은 미래에 도래할 축복의 징 표, 라는 신정론적 위안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알 수도 없고 설명도 불가능한 고난 속에서 흔들리는 믿음과 신앙을 지켜주었던 강력한 신학적 근거였다.

    레비나스는 그리스도교의 신정론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지난 20세기에 발생한 양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히로시마 원폭 등으로 대표되는 대학살의 기록은 더 이상 고난의 유의미성을 내세우는 신정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신정론이 내세우는 고난의 낙관성, 즉 신적 섭리로서의 고난, 고난의 유미성에 대한 해석이 고난 자체에 대한 객관적 이해의 길을 막는다고 하면서 신정론의 폐기를 선언하였다.[각주:7]

    자살의 문제는 원인과 이유도 모른 채 다가오는 우리시대 대표적인 고통의 현상학이다. 기존의 신정론은 자살의 유의미성과 자살 뒤에 숨겨진 신의 섭리에 대해 주목하라고, 그리고 그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너의 (개인)구원에 몰두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러한 답변은 고통 의 당사자 혹은 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행위일 뿐 아니라, 자살을 유발하는 원인과 책임에 대 한 방임과 면책의 사유가 된다.

    이 대목에서 자살에 대한 신정론적 회피는 인정론적인 대응으로 전환된다. 인정론은 고통과 탄식 가운데서 발견해야 할 인간의 몫에 대한 문제이다. 신정론이 고통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신을 향한 인간의 질문에서 비롯된다면, 인정론은 고통에 직면했을 때 역으로 등장하는 인 간을 향한 신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신정론의 질문이 “왜 내게 이런 고난이 발생합니까?”라면, 인정론적 질문은 “거기 너 있었는가?”이다. 성서에 나오는 신의 인간을 향한 질문들, 예를 들어 에덴에서 범죄를 저지른 아담을 향한 신의 질문인 “네가 어디있느냐?” 복음증거를 핍박하는 사울을 향한 신의 음성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를 떠올려보면 신을 향한 우리 들의 질문 못지않게, 신 역시 우리를 향해 묻는다: “이 고난의 현장에서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결국 인정론은 고통의 시대, 죽음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질문하는 신의 물음이라 할 수 있겠다.

    자살에 대하여 내가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자살을 향한 인정론적 개입이다. 신정론적 낙관 혹은 관조로 한국사회 자살 현상학을 바라보지 말자. 그러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고, 그렇게 대응하다 우리 모두는 한국 사회 자살열풍의 부역자 내지 당사자가 될 수 있 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자살에 대한 책임적인 물음과 자세를 가질 때만 이 죽음의 대열이 잠잠해 질 것이다. 우리시대 고통의 요체가 무엇인지, 자살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자살에 맞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것이 살아남은 우리들이 던져야 하는 질문이고 행동의 원 칙이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켜켜이 쌓인 고통의 결을 드러내고 그 진실의 힘으로 죽음을 생산하는 매커니즘을 해체하는 것, 그것이 인정론적인 개입 안에 담겨진 기대이고 요청일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2017년 6월 25일 한백교회 “하늘 뜻 나누기” 원고를 각색했습니다. [본문으로]
  2. 에밀 뒤르겜 지음, 황보종우 옮김, 『자살론』 (파주: 청아출판사, 2008) [본문으로]
  3. Ibid., 129. [본문으로]
  4. Ibid., 251. [본문으로]
  5. Ibid., 249. [본문으로]
  6. Ibid., 173~185. [본문으로]
  7. Emmanuel Levinas, “Useless Suffering” in Entre Nous: On Thinking-0f-the-Other. Trans. Michael B. Smith & Barbare Hsrshav.(New York: Columbia Uiversity Press, 1998), 9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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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3]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최규창[각주:1]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집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승민(엄태웅)이 유학을 가기 전, 달동네 집에서 홀로 사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연민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짜증을 내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 아파트 같은 깨끗한 집으로 이사 좀 가! 이런 구질구질한 집이 지겹지도 않아?” 그러자 어머니는 냉장고에서 검은 비닐에 싸인 반찬통을 꺼내면서 무심히 대답한다. “얘는... 집이 지겨운게 어딨니. 집은 그냥 집이지...” 마지막 남은 가족인 아들마저 외국으로 떠나는 상황에 처한 어머니에게 가족이 생활하고 자랐던 집이라는 ‘장소성'은 마치 몸의 일부처럼 작동하고, 말을 걸어오고,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해주는 공기와도 같은 자연스러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현대적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축가인 아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상처와 가난의 표상 같은 달동네 집의 의미가 아련한 추억 이상의 것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어머니에게는 그 집이 곧 자기자신의 삶 자체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성년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을 그 마을과 시장 사람들은 모두 그 집을 중심으로 네크워킹 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익숙해진 공간으로부터의 탈주는 꽤 큰 용기와 분명한 목적의식을 필요로 한다.  

       13년간 마포구 서교동의 작은 골목에서 빌라를 짓고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온 우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동체 주택이라는 공간 자체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간과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인데, 먼저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공간이 협소해지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우리들 스스로가 협소함 외에도 공간 자체에 제약되어 자신의 내면의 개혁과 미래에 대한 상상, 계획, 그리고 그 실행이 매우 힘들어졌다는 점에서 였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는데는 많은 민감성이 필요했다. 사실 주거공간은 하나의 생존 조건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사유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거 공간을 거주보다는 자산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비싸고 넓은 집을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스스로를 공간에 맞춰가는 삶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넓은 집을 소유해도 정작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심한 부조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자신만의 공간이 없으면 시간도 의미가 없어진다. 시공간의 여유가 생겨도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마치 마비증상이 있는 것처럼 생산성 없이 그것을 소모해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삶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자신이 처한 공간을 비판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공간'을 찾아다니는 존재이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는 하루 중 어떤 자투리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나름의 생존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결국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가가 자신의 공간 좌표를 정확히 보여주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공간의 한계


      근대의 공간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그리 많은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근대적 삶은 지난 수 백 년간 과학이라는 신을 영접하기 위해 모든 시간과 공간을 측정 가능한 단위로 분절시키고 운동과 에너지의 공식을 만들어 냈다. 최근 백 여 년간은 효율성이라는 목표 하에 철저하게 ‘구획화’된 시공간 속에 인간을 투입했고, 우리의 삶을 그 속에 안착시켰다. 갈릴레오는 자연에 존재하는 중력, 가속도 등의 개념을 인지하고 말로 서술하였지만, 뉴튼은 구체적인 시간(t)의 단위를 상정하여 이를 공식화했다. 그의 공로는 모든 운동을 시간으로 환원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시간’이 우주 공간의 중심에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데, 이 확신 속에 이제 우주의 시간과 공간은 리듬이 제거된 채 동질화되어 버렸다. (이 동질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작업이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 분석>이다) 이와 같이 과학은 측정단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출발조차 할 수 없다. 과학은 결국 '자연의 수학화’가 아니던가. 이런 점에서 신학자 월터 윙크의 표현대로 뉴튼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발명한’ 것이다. 누군가가 시간과 공간에 기준을 세우고 나머지를 재배열하는 식으로 과학을 시작했고, 그것으로 우리의 시공간을 분절시켜 삶을 통제하게 된 것이다. 공간을 대수적인 수로 환원시킨 기하학이 오래 전부터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 밀접하게 대입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와서다. 앙리 베르그손의 말대로, 우리가 지각하는 시간의 관념은 (이미 어떤 측정 단위로 양화(量化)되어 버렸기 때문에) 사실 시간이 아니라, (시계바늘의 거리처럼) 공간적 속성으로 치환된 시간에 불과하다(여기서 베르그손은 자신의 고유한 사유인 ‘지속’ 개념을 주장한다). 우리는 어김없이 아침에 일어나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가 지나야 퇴근할 수 있다. 동일한 점심시간에 쏟아져 나와 식사를 하고, 다시 시계에 의해 통제되는 오후 근무시간으로 투입된다. 집에서 아무리 달래도 밥을 먹지 않는 아이도 학교에 가면 얌전히 급식대에서 밥을 받아 시간 내에 식사를 잘 마친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이 애초에 왜 정해졌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은채 말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공간 어딘가에 좌표로 존재하는 대상일 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근대적 주체를 발명한 데카르트가 바로 수학적 좌표를 생각해낸 사람이 아니던가) 그리고 시공간은 기계화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의 한 명인 르 코르뷔제는 ‘집이란 그 속에 들어가 사는 기계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20세기 초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근대란 인간의 삶을 효율성이 지배하는 거대한 기계로 환원시키는 작업이었고, 건축물이란 그 연장선상에서 공간을 구획시키는 기계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와 가타리 역시 근대의 모든 산물은 ‘기계와 기계의 이항접속’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한다. 예컨데 밥을 먹는 일은 수저-기계와 입-기계의 접속이고, 자동차 역시 사람들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기계인 셈이다. 인간은 가정, 회사, 거리, 술집, 교회을 전전하면서 자신의 공간을 ‘탈영토화’하고 ‘재영토화’ 한다. 이러한 배치가 안정화되면 그 사회는 다시 커다란 기계로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공간적 신체’(르페브르)이며, 공간의 생산물이 된다. 선생/학생, 의사/환자, 목사/성도는 학교, 병원, 교회라는 거대한 기계적 공간에 부합하는 신체로 가공되고 변형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계는 그 본질상 불가사리처럼 계속 커지고 비슷한 기능을 가진 주변의 사물들을 통합해 가게 되는 것이다. 한국 대형교회의 탄생은 결국 효율성과 시스템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어두움에 거하라"


       사실 시간과 공간의 구획화가 불완전했던 전근대 시대에는 자기 나이가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국가와 민족의 개념도 선명하지 않았다. 근대는 ‘해가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가서 쉬던’ 시대에서, ‘분, 초 단위까지 관리되며 노동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르 코르뷔제의 말대로 집이 거대한 기계라면, 인간의 의식 역시 기계화, 시스템화 되어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집의 개념은 이와 달라야 한다. 집은 인간이 안식하는 곳이고, 기계의 전원을 꺼야 하는 곳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기독교는 ‘빛에 거하라’는 말을, 어둠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 억압을 정당화하는 목적으로 사용해 왔다. 그리고 근대는 그 ‘빛'을 기계, 과학, 효율성으로 재해석했다. 그러나 인간은 불을 끈 어둠 속에서서만 쉴 수 있다. 효율성과 이유를 떠나, 우리는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주는 존재를 필요로 하고(그래서 신이 우리에게 부모를 주셨다), 불을 끄고 마음 속에 있는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인간 내면에 학문적인(위상학) 공간성을 최초로 부여한 프로이트가 전기충격요법이나 최면을 거부하고, ‘자유연상법’(조명을 줄이고 편하게 누워 이야기하게 하는 것)을 정신분석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도입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만약 가정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효율성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원형에 사로잡혀 자신의 의식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계산 가능성’을 신봉하는 근대의 기획은 인간의 상상력이나 직관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고, 형이상학이나 종교는 그것들과 함께 외부로 내몰려 버렸다. 그러나 인간은 이와 같은 기계의 시대를 얼마나 견딜 수 있었는가. 극단적 방식(자살)의 탈주가 급증하고 있고, 기계의 부속으로 자녀를 대하던 부모에 대한 반발이 인류 역사상 가장 거센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근대적 공간이 형성한 근대적 ‘의식’은 이제 그 이면의 무의식의 반발과 그로 인한 부조화로 자신의 좌표를 상실해 가고 있다. 근대적 주체가 실재가 아니라, 담론의 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구조주의자들의 분석 이면에는, 그 주체를 존재하게 하는 의식의 불완전성과 편파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의식은 다분히 공간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직선이 아닌 공간(삐뚤어진 액자, 굽어진 방)을 견디지 못하는 근대 인간의 의식은 분명 기하학적 산물 그 이상으로 평가받기는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가정, 그리고 그 집합인 주거 공동체 공간의 의미는 이와 같은 반(反)기계적 성향을 지닐 수 밖에 없다. 미셸 세르토는 공간의 감시로부터 탈주하여 도시를 가로질러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 공간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동선을 만들고 우리의 일상을 그 라인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훈육한다. 공간은 우리의 움직임을 이미 파악하고 있고, 매 단계마다 이항접속을 실행한다. 이 동선으로부터의 탈주는 용기를 필요로 하며, 전혀 예측되지 않은 방향으로의 전개가 요구된다. 공간의 질서와 법칙을 발견하고 체계화하는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르며(그래서 천재들은 어쨌거나 우리의 언어 체계 안에 존재한다), 공간에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고, 가로지르고, 사각지대를 찾고, 허를 찌르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전혀 새로운 경로, 허를 찌르는 상상력, 어떤 무조건적이 것, 효율적이지 않은 것, 외부로부터의 은혜, 어두움에 속한 것이어야 한다. 흥미롭게도 시간의 구획화를 무시한 채 출퇴근 시간, 휴가 일정을 자유롭게 하고, 오후 일과 중 몇 시간을 사무실 불을 소등하고 자유시간을 가지도록 하는 외국의 일부 기업들의 생산성이 우리보다 훨씬 높고, 아이디어 개발과 특허 출원이 급증하는 것은 무의식으로부터 이런 직관의 힘을 꺼내는 방식을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이런 ‘어두움’의 관점에서 다시 조명되어야 한다. 어찌보면 우리의 구원은 이 영역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구현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바로 가정, 그리고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와 공동체를 허용하신 가장 큰 이유는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두움 속의 안식’을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성품을 담는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간 생산의 시급성


       이런 의미에서, 두 번째 건축을 시도하면서 우리 공동체가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바로 설계였다. 13년 전에는 설계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었다. 우리가 경험했던 공간은 아파트 형태(넓은 거실, 방3, 화장실2, 베란다)의 구조뿐이었고, 그 이상을 상상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59%가 살고 있는(비슷한 구조의 빌라를 포함하면 80%) 아파트는 사실 가장 전체주의적이며 가부장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파트에서는 개인의 삶은 보장받기 어려우며, 불을 끌 수 있는 어둠의 자유 역시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안식할 수 없는 공간에서 우리의 무의식은 더 깊이 억압되고, 그로 인해 외부의 기계적 삶에 억압된 의식은 가정에서조차 안식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더구나 아파트는 동일한 형태의 가옥 구조 속에서 늘 집 값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익공동체가 아닌가. 그 허위적 소속감과 만족감, 자괴감이 안식을 줄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서로를 위로하는 대화, 자기를 성찰하는 기도,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통해 내면을 정돈하는 독서가 가정 내의 어떤 공간에서 가능한가. 가정이 어렵다면 공동체 내의 어떤 공간이 만들어져야 하는가. 우리의 ‘정신승리’로는 가능하지 않은 더 큰 원인이 존재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낼 수 있겠는가. 해가 거듭될 수록 우리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래서 2015년 봄에 우리는 다시 서울을 벗어난 외곽에서 땅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소가 정해지자 6개월에 가까운 기간동안 우리는 모두 각자의 필요를 쏟아 놓고 설계에 집중하였다.   

       르페브르는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라는 칸트, 뉴튼의 생각을 거부하고, 공간이 바로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생산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 생산의 방향을 몇 가지로 설정하였다. 우선 구성원 각자의 사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가족이라해도 서로 방해할 수 없는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우선 가정 내에서 전시용으로 불필요하게 확장된 큰 거실을 포기할 필요가 있었다. 큰 거실은 대형 TV를 멀리서 보는 즐거움과, 외부 손님들이 가정의 경제력과 화목함을 느끼게 할 미장센을 연출하는 용도 외에는 실제적인 목적이 없는 장소로, 주로 가부장적 존재가 TV리모콘을 들고 혼자 소파에 누워있기 일수인, 그리고 가족들이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한없이 지연시키는 죽은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나라 외에는 전체 집의 면적 대비 이렇게 거실이 큰 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두 번째는 이와 반대로 공유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것은 각 가정 바깥에 존재해야 하는데, 이것은 첫 번째 방향(사적 공간의 확보)과 상충되지 않기 위해서다. 공유공간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이며, 외부에 개방하고 타인을 환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적공간에서 일어나기 힘든 환대가 공적 공간에서는 가능해진다. 이것은 공적 영역이 사라져가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투쟁의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건축물의 지하에 넓게 땅을 파고 다용도 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것이 근린생활시설로 신고가 되어 준공허가를 받는데 많은 고생을 하기는 했고, 생각보다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지만, 이 공간이 공동체와 마을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얻는 것이 훨씬 많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탈주 과정


       각 가정의 설계에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한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가정마다 모든 공간의 타일, 벽지, 가구, 부엌, 전기등, 블라인드, 바닥재, 소품을 직접 선택했고, 외부에서 조달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고, 우리는 그들의 의사를 가능하면 존중해 주기로 했다. 특히 사적 공간의 확보와 가정 간의 선호 공간점유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를 수 차례 변경하면서 결국 우리는 2층~5층까지 한 가정이 사용하는 ‘땅콩집’ 형태의 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복층의 답답함을 없애기 위해 반(半)층씩 공간을 조성하는 스킵플로어(skip floor)방식을 도입해서 독특한 공간을 만들었다. 오르내리기 힘든 점도 있지만, 모두가 방해받지 않는 각자의 안정된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장점이 더욱 중요했다. 이웃과의 층간 소음 갈등을 걱정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특히 설계하는 과정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공간의 필요성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공간설계 아이디어들이 쏟아졌고, 우리 집에서는 전혀 필요없다고 느꼈지만 다른 집에서는 반드시 만들기를 원하는 공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건물을 같이 세우는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점과 성향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되는 소득도 있었다. 이것은 앞의 글에서 강조한 공동체의 ‘임의적 특이성’ 또는 ‘다중성’을 구현하는데 필수적인 정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는 획일화, 전체주의화 되어서는 안된다. 구성원들의 개성과 요구가 살아 있고, 그것을 서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정이란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핵심을 리더십, 규약, 목표의식, 비전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를 수용하는 성숙함이다. 우정은 자선이나 환대를 넘어서는 가장 성숙한 사랑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차이에 대한 인식은 향후 공동체의 성격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공동체는 '원래 그래야만 하는’ 형식이나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구성원들의 개별적 차이가 융합되어 형성된다. 그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공동체의 생명력을 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각자의 삶의 방식을 수용하는 다중의 공동체였다.

       이제 다음 글에서는 새로 만들어진 공동체 공간에서의 삶과, 우리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숙제인 교회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묶어주고 지평융합을 이루는 힘은 바로 '공유된 가치’(shared values)에 있다. 이것은, 역사성에 매몰되어 어떤 지속적이고 일관된 의미도 생성해 내기 어려웠던 철학적 해석학에 반(反)하여 움베르토 에코가 주장했던 ‘의미론적 동위체(isotophy)’와도 같은 것이다. 시대마다 용어와 해석이 달라지더라도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는 있는 법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항상 의미를 찾고자 하며, 시대적 언어를 초월해서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공동체의 좌표는 동시대적 관계와 역사적 연계 속에 생성된다. 따라서 ‘공유된 가치’는 반드시 공동체 스스로의 노력으로 시대마다 다른 언어로 정의되어야 한다. 이것은 해석의 과제임과 동시에 실천적 책임이기도 하다.


ⓒ 웹진 <제3시대>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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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의 종언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과
사회적 타살로서의 자살에 관한 신학적 문제제기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는 금령의 뜻은 무엇일까? 카인은 아벨을 죽였고(「창세기」 4,8),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죽일 뻔 했다(「창세기」 22,10). 이스라엘의 여인들은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고 노래한다(「사무엘기상」 18,7). 성서 속의 이 무수한 살인들은 정당한 살인인가? 십계명의 살인 금령은 어떤 살인을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물론 가장 일반적인 경우인 누군가를 고의로 죽게 하는 행위가 그 첫째일 것이다(「민수기」 35,21). 한데 더 나아가서, 오래전 부족동맹 시절의 이스라엘 때부터 유래했던 ‘피의 복수’를 통한 살해(vendetta, 「민수기」 35,25)도 부당한 살인에 해당한다. 또한 ‘명예살인’ 전통(「창세기」 38,24)도 금지되어야 할 살인이었다.

요시아 왕(재위 641~609 BCE.)이 법을 반포할 때,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대중에게 알아듣기 쉽도록 만들어 포고한 십계명[각주:1]에서 ‘살인 금지령’이 담고 있는 구체적 내용은 필경 이런 함의, 고의 살인, 피의 복수 살인, 명예살인 등의 금지를 포함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데 살인죄를 엄단하고자 할 때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과실치사 범죄자는 죽임을 면해줄 필요가 있다. 그것은 피의 복수로부터 구출해주는 것이다.(「신명기」 4,41). 또한 가해자가 명료하지 않은 살해의 경우, 그 사건을 둘러싸고 가문 간에 벌어질 수 있는 피의 복수를 막는 것도 필요했다. 하여 공식으로 그 사건은 누구도 책임이 없음을 공시함으로써 복수의 악순환을 예방하고자 했다.(「신명기」 21,1~9). 반면 존속살해자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극형에 처했다.(「신명기」 21,18~21).

여기서 보았듯이 ‘살인하지 말라’는 법령은, 간단한 듯하지만, 실은 그 내막에는 여러 가지 고려할 것이 있었다. 요시아 정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위에서 본 것처럼, 십계명의 간단한 문구와는 달리, 법을 구체적으로 적용할 때엔 여러 변수들을 함께 고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훨씬 더 복잡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오늘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오늘의 기독교인들은 이 계명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 계명과 더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것들은 어떤 것일까?

당연히 누군가를 죽게 하는 일은 불행한 일이며,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임에 이의가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물론 고의로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는 결코 관용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존엄사’의 경우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또 ‘낙태’의 문제도 생각을 복잡하게 한다. 나아가 사람들과 인격적, 감성적 친밀성을 교류하는 반려(伴侶) 존재의 생명권의 문제도 제기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반려동물과 반려식물, 그리고 최근에는 인조인간을 의미하는 안드로이드(Andriod)의 생명권[각주:2] 등이 고려의 대상이다. 여기에 하나 더, ‘자살’도 오늘의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문제다.

이 글에서는 바로 이 ‘자살’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자살을 ‘공격성이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해 가해진, 일종의 전도된 살해’라고 말했다.(「슬픔과 우울증」 in 『무의식에 대하여』) 또한 교회는 훨씬 이전부터 ‘자살’을 ‘자기 살해’의 관점에서 보면서, ‘살인하지 말라’라는 금령을 어긴 행동으로 간주했다. 이런 자살 반대 교리 탓에 가톨릭이나 개신교 성직자들이 자살자들의 장례미사 혹은 장례예배를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아니 있었다.

 

이렇게 그리스도교가 자살에 대해 적대적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분명한 것은 성서의 ‘살인 금령’에는 자살 문제가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서에 묘사된 대표적인 자살의 예로는 이런 것들이 있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적에게 죽임당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사무엘기상」 31,4). 삼손은 블레셋 신전을 무너뜨려 무수한 블레셋인들과 함께 그 돌무더기에 깔려 죽었다(「사사기」 16, 29~30). 또한 예수운동은 처음부터 무수한 순교자들과 더불어 발전했는데, 순교자 신앙은 권력에 의한 타살을 자발적 죽음으로 해석하는, 일종의 ‘자살의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자살들이 살인 금령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한편 이스카리옷 유다의 자살(「마태복음」 27,5) 같이 성서가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자살도 있지만, 그때에도 자살은 그이가 지은 죄의 당연한 귀결이지 자살 자체를 살인으로 간주하여 비난하지는 않았다. 요컨대 성서에서 자살은 살인 금령과는 무관했다.

자살을 살인으로 해석하여 자살 자체를 ‘잘못된 행위’로 비판했던 대표적인 그리스도교 지도자는 5세기 교부(敎父)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였다. 그는 자살할 권리가 인간에게는 없음을 강변했던 것이다. 

한데 그가 자살을 비난한 맥락은 신학적이라기보다는 너무나 ‘정치적이었다. 그는 아프리카 출신이지만 로마 황제와 로마 교회를 위해 일한 사람이다. 당시 아프리카에는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하는 도나투스파 교회들이 로마 교회와 대립하고 있었는데, 이는 이 지역의 반로마 기조와 결합되어 열렬한 대중운동으로 번져나갔다. 요컨대 이른바 도나투스 논쟁의 내막에는 로마에 의해 혹독한 착취를 당하고 있던,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하는 북아프리카 지역 대중의 반로마 감정이 가로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때 열광적 도나투스파 사제들은 순교를 불사한 반로마 항쟁을 부추겼고, 무수한 대중이 이에 호응하고 있었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도나투스 사제들이 주장한 순교를 자살이라고 격하했고, 자살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권리가 아니므로 신의 구원을 결코 받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로마 제국과 교회는 도나투스 운동과 그 대중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그리고 그들의 신학을 더 이상 존립할 수 없을 만큼 철저히 파괴했다. 이 과정에서 아우구스투수의 자살 반대론은 도나투스주의에 대한 이론적 공격의 의미를 넘어서 신학적 일반론으로 격상되었다. 하여 이제 자살 문제는 자기 살인으로 해석되었고, 자살자는 교회의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교리는 잘못 자리잡은 교리다. 이 교리는 정치적 야바위에 다름 아니고, 그 대가로 자살의 사회적 현실은 망각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여 교회는 자살을 단행한 사람들의 고통, 자살할 만큼 극한의 고통에 시달리는 대중의 고통을 대면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각주:3]

하여 이제 신학은 자살에 대해 다시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망각해 버린 그 현실을 탐구하고, 그 속에 담긴 대중의 고통을 대면하는 일이 필요하다. 과거 유다국의 요시아 정부가 십계명의 살인 금령을 이야기할 때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자살의 문제를, 그리고 교회가 망각하고 폄훼했던 자살의 문제를 보다 현실감 있고, 깊이 있는 통찰을 담은 신학으로 발전시켜 내야 한다.  

더욱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자살률이 단연 1위다. 요컨대 자살은 한국사회의 살인에 관한 연구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에 속한다. 그러니 자살을 신학화하는 일은 오늘 우리에게 절실한 과제인 것이다.

먼저 경제활동인구인 15~64세의 경우 자살자의 비율이 우리나라는 OECD 평균의 2배, 65세 이상은 4배나 된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이를 좀 과장하면 자살은 개개인의 자기 살해 현상을 넘어서, 사회적인 집합적 충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좀 큰 맥락에서 사회의 추이를 살펴보자. 1980년대는 민주화의 열망이 전 사회를 휘몰아쳤다. ‘1987년’은 민주화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실현되어 가는 가능성,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의 질서가 중요하게 작동하였음을 의미하는 상징적 시간이다. 하지만 그 10년 후인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사회는 처절한 생존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난폭하게 휘말려 들었다. 그것은 더 이상 ‘모두의 평등’, ‘모두의 행복’이라는 집단적 가치가 유효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그때 우리사회를 뒤흔든 것이 이른바 ‘부자 되기 열풍’이었다.

이제 전 국민은 ‘부자 되기 경제학’, ‘부자 되기 심리학’에 몰두했다. 사람들은 노동과 휴식 시간 가리지 않고 갖가지 재테크에 열을 올렸고, 모든 여력을 있는 대로 다 가동하여 스펙 쌓기에 전념했다. 남들이야 어찌되든 자기 자신만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열망이 사람들의 생각을 장악했던 것이다. 바야흐로 ‘서바이벌의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MB 정권의 탄생은 그러한 부자 되기 열풍의 절정을 보여준다. 이제 도덕도 가치도 필요 없고, 단지 부자가 될 수 있는 길만을 보려 했다.

하지만 그 5년 사이 이러한 열풍은 절망으로 전도되었다. 그 미친 서바이벌 게임을 거친 뒤 사람들은 공포감에 휩싸여 버린 것이다. 현재를 살아갈 힘도, 노후를 기대할 희망도 몰락했다. 비정규직으로 추락하는 것에 대한 공포, 일터에서 퇴출되는 것에 대한 공포, 가족해체의 공포, 질병의 공포, 빈곤의 공포 등등, 온갖 공포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제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생존에 대한 ‘공포’다. 사회는 공포에 민감해졌다. 그러자 사회적 공포감에 기생하는 시스템이 발전한다. 매스미디어는 각종 안보 파산의 공포를 유포시켰고, 보험사는 건강과 재산의 파산 공포감을 유포시켰고, 심리상담가들은 정신의 파산 공포감을 유포시켰으며, 종교는 세계 파멸의 공포감을 유포시켰다.

공포는 존재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다. 자살 증후군은 바로 이런 ‘서바이벌의 종언’과 함께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 하여 자살은 곧 ‘사회적 타살’의 결과이며, 우리가 만들고 있는 이 저주의 사회는 ‘생명 파괴의 세계’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

ⓒ 웹진 <제3시대>

 

 

  1. 요시아 왕이 법을 반포할 때, 열 개 계율의 묶음인 ‘십계명’을 처음 반포하였다. 법은 문서 형식의 통치 체계를 수반하는 것인데, 대중은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에 대중에 대한 법의 통치를 실효성 있게 실현하기 위해 간명한 형태의 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본문으로]
  2. SF 영화의 고전인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는 안드로이드의 생명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본문으로]
  3. 교회의 자살 금지 교리는 자살한 자에 대한 야만적인 시신 훼손의 관행을 야기시켰다. 이에 대하여는 게르트 미슐러(Gerd Mischler)가 쓴 『자살의 문화사』를 보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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