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문서는 2011년 한백교회 성탄절 예배에서 사용했던 선찬 예식서입니다.



20111225일 성찬식

*성찬상 설치

[교회공간의 정 중앙에 테이블을 길게 놓는다. 흰 보를 덮고 그 위에 포도주 잔을 40 여개 놓는다. (증편)을 한 입에 들어갈 수 있게 썰어놓은 접시를 세 곳으로 나누어 놓는다.]


*
사회자의 멘트(김현숙)

오늘은 2000년 전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입니다. 이 기쁜 성탄절에 드리는 성만찬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한 청년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만찬을 하였던 그 시간은 어떠하였을까? 그 시간에 더 살고 싶은 욕망은 없었을까? 더 좋은 세상을 꿈꾸지 않았을까? 아마도 제자들, 여인들, 후견인들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인생의 회한에 젖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만찬의 시간에 삶을 생각하려 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탄생과 죽음이 만나는 성만찬을 시작하겠습니다.


1_
여는 의식

단위의 촛불을 성찬상으로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여는음악, 위의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짧은 곡: 연주자(박경민,리코더)]
[단위의 촛불을 성찬상으로 가져온다.(양미강)]


2_하늘 뜻 나누기

이어서 양미강목사님의 하늘 뜻 나누기가 있겠습니다.

아가야, 우리 봄을 기다리자[누가복음 1:46-55]”(양미강)

[이어주는 음악1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연주자(박경민,바이올린)]


3_
성만찬을 기리는 시간: 탄생을 생각하며...

낭독
(도홍찬)

너는 기다림이었다.

척박한 팔레스틴에서, 고난의 한반도에서 너는 해방의 메시아였다.

너는 기쁨이었다.

불임의 부부에게, 노산의 어미에게 너는 산고 끝에 오는 환희였다.

너는 황망함이었다.

열정에 사로잡힌 연인에게, 어설픈 신혼부부에게 너는 삶의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너는 슬픔이었다.

가난 속에서, 폭력 속에서 너는 고통의 씨앗이 되기도 하였다.

 

누군가는 사랑의 맨 얼굴을 너에게서 본다.

누군가는 무심하게 너의 옆에 그냥 서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힘들게 너의 존재를 끌어 안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내 발견한다.

너의 얼굴은 영원의 순백이 아니라, 애욕과 세파 속에서 골이 깊이 패인다는 것을.

 

우리들은 깨닫는다.

사랑은 지독한 소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고통의 연단 속에서 삶은 지극히 깊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 우리는 방관하고 삶에서 퇴거할 자유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너의 탄생에 부친다.

너의 삶은 고지되거나 예정되어 있지 않다.

불안이 너의 영혼을 좀먹지 않게 하거라.

죄의식 속에서 신에게 기대지 말라.

너는 가능성이고 자유이다.

 

채워도 차지 않는 곳, 도달해도 남는 곳, 만나도 떠난 그 자리에서

하느님은 당신에게 조용히 말을 걸 것이다.

[이어주는 음악2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연주자(김선우,가야금)]

 

4_성만찬을 기리는 시간: 삶을 생각하며...

낭독(김현숙)

<이것은 김진숙의 기도입니다> @JINSUK_85 김진숙 의 트위터

-열여덟 살,옷 공장, 신발공장, 가방공장, 조선소용접공 대공분실 해고, 징역, 수배, 다시 징역, 장례 치르고 추모사 하다 보니 쉰. 20년 지기가 정리해고 반대하며 129일 매달려있다. 목을 맨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 다시 정리해고 반대하며 올라 와, 울다가 웃다가.

-땅멀미는 서서히 나아가고 있는데 허리가 아파서;; 2.퇴원날짜는 아직 기약이 없어요.

-재키, 자야할 시간일텐데, 여긴 비가 내려요. 크레인에선 아주 작은 빗소리도 크게 들렸는데 창을 열어보고야 비가 오는 줄 알았네요. 재키한테 김장김치를 보내주고 싶단 생각을 자꾸해요.^^

-크레인이 24시간 흔들렸거든요. 바람불면 멀미도 심했구요. 그런데서 살도록 몸이 이미 적응을 해서 이제 정지한 것들을 못견뎌 하는 거 같애요. 사람 몸이 참 희안하면서도 신비롭습니다.^^

-오전에 노사 잠정합의 했습니다.자세한 합의내용은 조합원 찬반투표 과정에서 공개가 될 거 같습니다. 300일 넘게 기다려 오셨는데 몇 시간만 더 두근두근 기다려 주세요.^^

낭독(이종원)

< 이것은 예수님의 기도 입니다> 누가복음 22.41~45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5_
성만찬

이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성찬상을 중심으로 둥글게 서시기 바랍니다.

성찬 테이블에 둘러선 채 배병과 배잔을 동시에 다함께 그리고 자유롭게 하려고 합니다.

우선 잔을 들으세요. 그리고 양미강목사님께서 건배사를 해주시면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고 떡 을 집어서 원하시는 분에게 다가갑니다.

우선 눈빛을 나누세요. 그리고 그 분에게 다가가서 속삭이듯이, 위로와 축하의 말을 건네세요. 그런 후에 또 다른 분에게 다가갑니다. 적어도 두 분 내지 세 분을 만나십시요. 다가가면서 상대방에게 떡 과 위로 그리고 축하의 말을 건네세요. 테이블보를 거두어주십시오.

[성만찬이 차려진 테이블보를 걷는다.(김봉숙,최종봉]

[건배사
:포도주와 빵을 들고 성찬의 의미를 되세김(양미강)]

[배경음악: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중주:연주자 (박경민,김선우)]

떡과 포도주 못 드신 분 계신가요? 다 드셨으면 제자리로 돌아가시겠습니다.

이제 오종희 선생님의 낭독이 있겠습니다. 

 

5_성만찬을 마치는 기도: 죽음을 생각하며...

낭독(오종희)

태어나 이 땅을 꾹꾹 밟고 살아가야 비로소 전해지는 메시지가 있는 것처럼 죽어 이 땅 밑에 꾹꾹 밟혀 묻혀야 비로소 전해지는 메시지도 있습니다. 구원을 갈망하는 우리는 이천년 전 당신이 죽음을 거뜬히 초월한 구세주였음을 기억한다 하지만 당신 앞에 놓인 잔 하나 옮기지 못하는 걸 보면 당신도 비존재의 충격 앞에 그저 순응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오늘 당신의 생일에 죽음을 생각합니다. 보통, 아이들의 돌잔치에서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천년만년 영화가 보장된 어느 나라 왕족처럼 아이도 부모도 화려한 드레스를 걸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돌잔치는 점점 디즈니랜드 성처럼 반짝거리는 환타지를 닮아갑니다. 부모의 주머니를 털어 안간힘을 다해 몇 시간 동안의 구원을 구매하고 소비 하는 겁니다. 성탄절에 죽음을 말하는 건 그런 유사 구원을 거부하는 최소한의 각성 장치인지 모르겠습니다. 뻑뻑한 삶을 살다 보면 때론 유사 구원도 반짝거리는 환타지도 필요 하건만 당신에게서 만은 다른 것을 원합니다. 당신의 탄생에 죽음을 생각하고 당신의 죽음에 삶을 생각 하겠습니다. 옛날 옛날에 무력한 핏덩이로 태어나 외면 받은 삶을 살다가 권력의 폭력으로 살해당한 당신의 메시지가 왜 아직도 읽혀지고 전해지는지 생각하겠습니다.


너무 높이 고양되어 우리가 이름 부르기도 불경한 신이 아닌 죽임 당한 구세주로서
,

아파하는 자들과 힘없는 자들과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과 함께 기꺼이 상관는 그런 주로 임하소서, 예수여~.

[이어주는 음악 (박경민,리코더)]

이제 테이블보를 다시 덮어주시고 촛불을 다시 단으로 가져감으로서 성만찬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6_맺는 의식

[성만찬이 차려진 테이블보를 닫는다. (김봉숙,최종봉)]

[촛불을 다시 단으로 가져간다. (양미강)]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도처에, 당신, 당신, 당신들 뿐


(연구집단 CAIROS)



 태초에 말이 있었다.

 나는 항상 이 문장이 궁금했지만, 왜냐는 물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어떤 말이었을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내게 일어났던 ‘어떤 일들’, 그리고 그 ‘일’들에 대한 내 ‘감정들’까지 나는 말할 수 없었으니까.
 “말하지 마. 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십 여 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온 금기는, 내게 사랑하는 것보다도 먼저, 나를 사랑해주는 모두에게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가르쳤다. 단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나는 숱한 사례로 교육받아왔다. 나의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곳은 오로지 나 자신, 그리고 아무도 없는 어둠 속ㅡ장롱 안 이었다.
 나는 오래도록 장롱 안에 있었다. 장롱 안에서 말을 던지면, 목소리는 뿌연 안개와 같은 메아리로 내게 돌아왔다. 나는 그 목소리가 좋았다. 그래서 자주 나에게 묻고, 나에게 대답하는 식으로 어둠에 대화를 걸었다.
 장롱 안은 어두웠지만, 문틈의 빛줄기가 칼날같이 날카롭게 반을 가르는 곳이기도 했다. 장롱 안에서 나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는데, 가끔 누군가에게 발칵 문이 열릴 때면, 하릴없이 튀어나와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하지만 혹시나 백마 탄 왕자님이 마음 넓게 귀를 쫑긋 세워줄지도 모르니까. 빛줄기가 문 앞에 선 누군가에게 가려져 완전한 어둠이 될 때, 나는 공포와 설렘으로 마음이 뛰곤 했다.

 죽음과 삶이 있다.
 언제나 단절된 것이었을까. 나는 이것도 궁금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어둠 속이었으므로, 나는 생이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는 죽음이 내게 가까웠고, 나는 장롱 속에 들어가듯 죽음으로 빠져들고 싶었다. 죽음을 동반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알지 못했지만, 확실히 삶은 죽음보다 훨씬 먼발치에서 그 자신을 방조하고 있었다.

 삶은 언제나 나를 짓눌렀지만, 죽음은 늘 따뜻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죽음에 귀 기울였다. 그러면 죽음은 슬그머니 다가와 내게 말을 들려주었는데, 그건 반쯤은 우렁찬, 검은 강의 물소리였다.

 
1.

 여자의 강이었다. 《The Hours》(스티븐 달드리, 2003)의 강이라거나, 《시》(이창동, 2010)의 강이라고만 부를 수는 없는. 두 여자가 내처 몸을 맡긴 것만큼 중요했던 건, 그들의 편지였다. 각각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하고 있었고, 그와 함께 세상과, 그녀들의 고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래는 《The Hours》에서 낭송되었던 것과는 다른, 버지니아 울프의 실제 유서 중 한 단락이다.

“(전략) 저는 지난 30년 동안 남성 중심의 이 사회와 부단히 싸웠습니다. 오로지 글로써. 유럽이 세계 대전의 회오리바람 속으로 빨려들 때 모든 남성이 전쟁을 옹호했고, 당신[각주:1]마저도 참전론자가 되었죠. 저는 생명을 잉태해 본 적은 없지만 모성애를 느껴 이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작가로서의 역할은 여기서 중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한 채 저는 지금 저 강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녀가 죽음을 선택한 건, 정신병 때문이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죽어갈 생명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마침내 강물에 발을 내디뎠을 때, 그녀와 함께 했던 건 단 한 장의 편지-그리고 편지를 읽는 하나의 목소리, 그러니까 내게 다가온 ‘말’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의 저작 『자기만의 방』에서,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을 상상했었다. 셰익스피어만큼의 열정과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녀의 ‘불우한 성별’은 그녀를 예술가로 만들어줄 수 없었고, 끝내 그녀는 이름 없는 채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의 상상은 단지 비극으로 그치지는 않았다. 오히려는 희망찼는데, 그건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에게 언젠가 이름을 불러줄, 그리고 이름을 넘어 그녀 자신만의 방, 누구에게도 점유되지 않는 그녀만의 온전한 몸을 돌려줄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만약 한 세기가 더 지난 후, 우리 모두에게 일 년에 500파운드의 돈과 자신만의 방이 주어지고, 우리가 자유를 습관으로서 가지고, 또한 생각하는 그대로 글로 써내는 용기를 지닌다면, 현실 속 서로의 관계에서 인간을 파악하고, 사실을 사실로서 바라보고, 우리를 이끌어줄 팔은 없으니 결국 홀로 걸어가야 하며, 현실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 인식한다면, 그렇다면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이었던 죽은 시인은 그녀의 버림받았던 육신을 다시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라 믿습니다.[각주:2]

 여기에 하나의 진실이 있다. 버지니아는 글로써 저항하다가 절필과 동시에 몸을 던졌고, 그것은 분명 삶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삶들을 사랑하는 의미였다. 그녀에게 ‘몸’은 매초마다 펌프질하는 심장이 아니었다. 오히려는 언제든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이었다. (물로) 걸어가는 것은 오로지 ‘홀로’였음에도, 걸어갈 ‘육신’은 다른 이들의 자가 인식을 통하여, 그러한 인식들이 뒷받침되는 세상을 통하여 다시금 획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생명을 위한 자살’이라는 건 결코 모순이 아니었다. 온몸을 던진 그녀의 투쟁을 통해, 그녀는 재차 반전과 평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혼들에 대한 인식의 울림, 거듭된 각성에의 요청이었다. 오로지, 생(生)들을 위한.
 이러한 맥락에서, 《시》의 <아네스의 노래>는 물에 뛰어든 소녀의 육신을 되살려냈던 진정 시/노래였다. 누구의 귀에도 와 닿지 않았던 소녀의 말은 무던히 허공을 떠돌다가 이윽고 미자(윤정희 역)와의 시/노래로 드러난다. 그제야 그녀는 그녀의 사랑했던 것들과 작별 인사를 건넬 목소리를, 그리고 몸을 얻게 되는 것이다.
 미자는《시》에서 항상 두 차원의 공간을 떠돌아다닌다. 남성성이 지배하는 일방적 권력의 현실과, 그녀와 사물이 편견 없이 공존하는 시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양 쪽 모두 언어의 장이었고, 실제로 그것은 분명히 드러나지 않도록 혼재되어 있었지만, 양쪽의 경계가《시》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던 건 미자의 망각 덕택이었다. 그녀는 현실을 끊임없이 망각했고, 그 망각의 순간동안 대신 그녀는, 그녀가 마주치는 모든 것들에 집중했다. 꽃, 새소리, 나무, 살구…미자는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살피며 글들을 메모했고, 그것은 바로 그녀가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그리는 방법이었다. 동백꽃을 단순한 조화가 아니라 짙은 고통으로 보고, 살구를 땅으로 뛰어들은 하나의 몸으로서 대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윽고 소녀가 뛰어들었던 강을 만났을 때 그녀의 메모지를 채운 건 어떤 글귀가 아니라, 단지 물방울이었다. 침묵이 아닌 깊은 애도, 말로서 꺼내질 수 없는 하나의 슬픔을 그녀는 마주쳤던 것이다.
 <아네스의 노래>는 그녀와 소녀의 고통으로 탄생한 노래다. 생전에는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여성이, 서로의 고통이 겹쳐지는 순간, 현실과 시 양자의 관계를 뒤바꾸어 놓는 몸의 말을 발화하는 것이다. 시는 작중에서 언제나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 그 어떤 논리로도 접근 불가능한 것, 즉 정복할 수 없는 잉여의 것으로 남는다. 시를 쓰기 위해서 ‘마음’을 가져야한다는 강사의 말은 “어렵다”에 내포된 논리와 해석의 위계들을 단숨에 무력화시킨다. 바로 이 안에서 ‘말’이 떠오른다. 어떤 이해관계에도 포섭되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관계를 마주할 수 있을 때, 우리들의 몸 저 쪽 끝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고통의 소리.
 성서의 누가복음 7장에는 한 청년이 등장한다. 과부의 아들로 지칭되는 이 청년은 죽어 관에 실려 나가는 중이었다. 예수가 관에 손을 대고 청년에게 일어나라고 했을 때, 청년은 일어나 앉아 ‘말’을 했다고 한다. 죽음에서 막 깨어난 그가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각주:3] 
 과부의 아들로서 어떤 삶을 살아냈을 지, 그 이른 나이에 어떤 이유로 죽었을 지, 아무도 몰랐지만, 예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 고통들을 감싸 안고, 그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렀을 때, 그는 이윽고 일어나 ‘말’하기 시작했다. 몸의 일어남과 동시에 터져 나왔던 그 말들은, 어떤 말이었을지 감히 추측할 수도 없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은 바로 고통 자체, 몸 자체인 말이었다는 사실이다.

2.

 그리고 말은 흐른다. 편지가 끝난 후에도 강은 여전히 흐른다.
 여기에서 물음은 남는다. 이 물소리는 왜 미자에게만 들렸을까. 소녀의 어머니조차 다가서지 않았던 곳에, 소녀와는 일면식도 없었던 미자가 그 자리로 다가갔을까. 혹은, 왜 버지니아 울프가 죽었어야 했을까. 전쟁터와는 다소 먼 시골에서 살았던 그녀가, 그녀 자신과는 상관이 없었던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 왜 그녀를 던져야 했을까. 혹은…그 청년으로 하여금 말하게 한 것이 왜 예수였던 것일까. 잉여의 물음에 잉여의 언어로 대답한 것은, 이 ‘강’에 대해 오래 생각했던 유하였다.

사라지는 것만이 사라지는 것들을 생각한다
서둘러 노을의 하늘을 갈아치우는 잠자리의 눈동자
흔들릴 때마다 나뭇잎 속에 깃드는 푸른 신성같은 것,

세상은 늘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지만,
끝내 그 어디에도 다다를 순 없었다
가는 곳까지만 길이었을 뿐,
덧없는 물살에 덧없는 마음의 지느러미만
하릴없이 놓아 주다가

다만 물고기는 간데없고 남아 있는
비늘의 번득임만 안타까이 건져 올리듯
기어코 그리운 사람 하나 떠올릴 때,
사라짐보다 더 아픈 정지의 순간이 오고
치자꽃 향기 밟으며
온 강에 멎을 듯 내려앉는 별빛의 나비떼

스쳐가는 바람이 거기 없었다면
송두리때 제 넋을 흔들어 구원받는 갈대를
누가 알기나 했으리[각주:4]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의 목소리가 도저히 사회의 그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시》에서 미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숨 막힐 듯 사방을 가로 막은 남성들의 목소리들 사이에서 미자의 말은 어디에도 가 닿을 수 없었다. 실은 버지니아 울프와 미자도, 전쟁터에서 죽어갈 사람들, 그리고 강으로 뛰어든 소녀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조차 어디에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도처에 흐르고 있지만 여전히 들리지 않았던 말들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단지 스쳐지나갈 뿐, 어느 순간 있었는지도 모르게 잦아들을 뿐인 바람이 있었기에 갈대가 보였던 것처럼.


3.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다시 읽는다. 여기에서 그녀의 말을 들었다. 나는 내 몸의 상처를 자극적인 서사로 재구성해 던지곤 했는데, 그건 타인을 향한 발화의 두려움에서 발로했던 자기방어였다. 어이없게 웃으면서 술안주 삼아 던지는 이야기들에는 내 감정이 없었고, 따라서 내 말도 없었다. 모든 고통을 배제시키고 사건들만 부각시키는 서사적 말하기는, 여전히 나의 고통을 진짜 ‘고통’으로 수용하기를 보류하고 있었다.
 고통을 말하기. 고통으로서 말하기. 그리고 고통을 위해 말하기.
 장롱에서 말하고 장롱에서 돌아오는 내 자폐적 서사를 깨뜨렸던 건 오로지 그녀의 말이었다. 한 세기를 건너 나와 공감할 수 있었던 그녀의 말은 나로서 내 고통마저 사랑하게 만들었다. 이 상처들로 인해서 말할 수 없었지만, 말할 수 없었기에 그녀의 말을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녀의 말은 한 세기를 건너, 그보다도 더 멀리 계속해서 살아 숨 쉬고 있던 것이다. 더 넓은 진폭으로, 보다 많은 생을 만나기 위해. 그렇다면 FTA를 반대하는 말들, 쌍용차의 해고를 규탄하는 말들을 포함하여, 전-지구적으로 외쳐지는 반(反)생명에 대한 우리의 울림들도 결코 공중에서 흩어지는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모든 말들은 강물처럼 도처에 흐르고 있다가, 또 다시 말 못하는 이의 귀에 희망으로 닿으리라.


4.


 태초에 말이 있었다.
 몸이 태어날 말이었다. 머리가 아니라, 고통이, 사무치는 아픔들이.

 그러므로 내가 만났었던 것처럼, 그 어떤 죽음에도 침묵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생보다도 훨씬 가까운 곳에서, 생만큼이나 우렁차게 외쳤던 볼륨이었다. 오로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기 위하여, 더 큰 삶을 사랑하기 위하여 말이다. 그리고 그 말 안에서 바로 내가, 우리가, 태어났던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편지는 버지니아 울프가 자살 직전, 그녀 인생의 동반자였던 레너드에게 부친 것이었다. [본문으로]
  2.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본문으로]
  3. 2010년 9월, 충정로 맑은샘교회의 렉시오디비나 성서 나눔에서 공유된 이야기임을 밝힌다. [본문으로]
  4. 유하, 「7월의 강」 [본문으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쉬운 말 앞에서 머뭇거리다


김강기명
(연구집단 CAIROS 연구원)

 
가끔씩 노약자석 앞에 선 임산부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우리 때는 밭에서 일하다가 애 낳고 다시 일하고 그랬어."같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곤 한다. 자리를 양보하면서도 농담조로 저런 이야기를 보태기도 한다. 아마 그 이야기는 사실일 것이다. , 그렇게 했어도 살아남은 이들에게 말이다. 고된 시집살이를 계속 하면서 애까지 나아 길렀는데도 살아남은 사람들, 밭을 매다가 애를 낳고 다시 일을 했어도 살아남았던 사람들만이,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만이 ''을 할 수 있기에 그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거지만 이 이야기 뒤에는 수많은 은폐된 죽음들이 있다. "우리 때"의 영아사망율, 산모사망율이란 건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것 아니었나.

그러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오늘날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주검으로 돌아갔다. 땅은 그들을 파묻어 버렸다. 벤야민이 이야기한 '신적 폭력'이 우리 앞에 스펙타클로 펼쳐졌다. 피 흘릴 틈도 없이 그들은 땅 속에, 뻘과 건축자재 속에 묻혀버렸다.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번 지진은 우상숭배에 대한 신의 심판이다"라던가, "하느님이 사랑이신데 그럴 리가 없다. 우리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한다."던가 하는 말을 할 수 없다. '의미'는 산 자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전자의 이야기가 분노를 자아낸다면, 후자는 꺼림칙함을 자아낸다. 그래, 하느님이 사랑이라고 하자. 그런데 당신은 그 동안 그 하느님을 인간의 생사화복과 자연만물을 주관하는 분이라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그 하느님의 "주관" 아래에서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지진으로 죽은 자가 말할 수 있다면, 그들은 당신의 말에 항의할 것이다. "하느님이 사랑이시라고?"

"이것은 하느님의 심판이다."가 되었던, "아니다. 하느님은 사랑이다."가 되었든, 그것은 살아남은 자의 발언이며, 신학이다. 어쩌면 모든 구원론이란 구원받은 자의 편에서, 살아남은 자의 편에서만 구성되었던 것 같다. 그들은 살아남았기에 - 그러나 누군가는 죽었기에 - '살아남음'을 해명해야 했다. "나를 살려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에 집중한 자는 사랑의 신학과 구원론을, "하지만 저들은 죽었군요."에 집중한 자는 심판과 징계의 구원론을 각각 열심히 구성했다. 그것을 통해 신은 높여지고, 우리도 신과 함께 높여진다. 그들은 구원론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권리를 누린다. "우는 자와 함께 웁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예수님입니다."라는 사랑의 윤리조차도 살아남은 자들의 권리다.

우리가 죽은 자들의 편에서 구원론을, 혹은 신학을 전개할 수는 있는 걸까?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상상해볼 수 있을 뿐이다. 신의 창조물이 거대한 죽음으로 엄습해올 때 그것은 무엇인가. 그 신은 어떤 신인가?(물론 이 질문은 하느님이 생사화복과 자연만물을 주관한다는 고백을 하는 이들에게 해당할 것이다. 애초에 특수한 개인성이나 개별적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고, 모든 것이 인연 속에서 빚어갈 뿐이라 사유하는 불교도에게는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솔직히 불교가 이러한 죽음 앞에서 섣부른 악담이나 위로가 아닌 '빛나는 초연함'을 보여줄 수 있는 위대한 사유라고 생각한다.) 지진이 신의 심판이나 악마의 놀음이 아니라면, 그 신은 무엇보다도 '무의미'. 지진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은 채 단지 도래할 뿐인 것으로서 도래했다. 그렇게 절대적인 무의미로서, 해석되지 않고, 해석될 수 없는 거대한 폭력으로 신은 임재한다. 죽은 자도 말이 없고, 죽이는 자도 말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 산 자들의 시끄러운 그 구원론들, 그 신학은 바로 이 죽은 자들의 '무의미성의 신학' 위에 서 있는 게 아닐까. 삶이란 죽음 앞에서 삶이므로.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자랑할 때, 거기에는 언제나 그림자로서 절대적인 무의미로서의 그 ''이 따라다니고 있지 않은가. "I am who I am"(3:13) 하느님이 그런 존재라면 그 신은 우리의 신학이 묘사하는 신의 모든 성품 - 심판하는 하느님이라던지, 사랑하시는 하느님 같은 - 을 넘어서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그래서 '무의미'한 존재로서의 하느님이 모든 '의미'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산자들로 하여금 살게 하는 위로이며,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다. "하느님이 사랑이다."라는 말이 그런 위로와 도움을 낳게 한다면 기꺼이 우리는 그 말을 빈번하게, 확신에 차서 외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계속 살기 위해서라도, 죽은 자들의 그 '죽음'을 해명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하느님의 이 무의미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죽음에 빚지고 있고, 우리의 의미들은 무의미에 빚지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빚을 모두 죽음과 무의미가 탕감해 준 것이다. 죽은 자가 빚을 받을 수는 없으므로. 무의미한 신이 우리에게 의미를 요구할 수 없으므로. 그러므로 이 죽음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신앙과 종교체제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자유인이 된 우리를 다시 채무자로 만드는 것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다만 '탕감받은 자'로서 죽음 앞에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아닐까.

ⓒ 웹진 <제3시대>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바우
    2011.03.24 21:4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새책 소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지은이 :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쪽수 : 276쪽
값 : 14,000원
출판사 : 산책자
출간일 : 2009년 12월 9일

             * 책 소개 보러가기

* 이 책에는 본 연구소 정용택 연구원과 김진호 연구실장의 글이 수록돼 있습니다. 한겨레 신문에 소개된 기사를 링크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광장의 눈물, 왜 용산을 비켜 흘렀나"(한겨레, 2009.12.12)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고인(故人)을 추억하는 두가지 방식과 한가지 옳은 방식

박찬선
(본 연구소 회원)

죽은 자를 추모하는 방식이 따로 있을까. 슬프면 슬픈 대로, 눈물이 나면 나는 대로. 담담하면 담담한 대로.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2009년 8월 23일. 김대중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던 날. 서울광장은 사람들의 발길로 빼곡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뒤 이곳에 도착할,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발걸음도 기다리는 발걸음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마음은 달라도 기다림의 대상은 모두 같았다. 초조한 눈빛으로 스크린을 응시하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을 실은(어쩌면 태운) 운구차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영웅은 죽은 채로 도착하였다. 일말의 희망을 품었던 사람들은 탄식했을 것이다. 미망인이 대신 인사를 건넸고 잠시 후 운구행렬은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 콘서트장을 빠져나가는 관객처럼 사람들은 지하철로 향했다.

사회자는 벌써부터 울부짖고 있었다. 그는 잔뜩 고조된 목소리로 군중들은 촉구했고, 군중을 대신하여 고인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모인 사람들의 애도 감정을 극대화하라는 비밀 지령을 받은 사람인양 어쩔 줄을 몰라했다. 고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추억해보고자 마음을 모으고 있으면, 여지없이 더 크고 열광적인 감정으로 곧 도착할 영웅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다그쳤다. 나에게 고인은 고(故)인이었으나 그에겐 고인은 생(生)인이었다. 사회자의 감정몰이에, 그 자리에서 고인의 삶을 대면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고인은 특정인의 고인이 된 채 고도감정속에 함몰되어 버렸다.

지난 8월 30일. 한백교회 예배 중 삶의 고백 시간에 안 선생님은 또 다른 죽은 자를 추억하고 있었다. 공무상 만난 39살의 윤성환 씨인데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한강 다리 아래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안 선생님은 타인의(?) 죽음을 얘기하듯 담담하게 고인을 추억했다. 그를 위해 “낯선 이방을 떠도는 가엾은 나그네의 노래”라는 흑인 영가를 불러 바쳤다. 안 선생님이 어떻게 담담할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렇게 친하지 않았는지, 사람들 앞이기에 감정을 절제하였는지, 아니면 그 슬픔이 시간이 흘러 승화되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다.

만일 그가 눈물을 쏟으며 고인을 추억했더라면 어땠을까. 감정을 드러내며 한껏 슬퍼했다면. 이것 또한 고인을 향한 그의 마음이기에 아름다운 것이리라. 그럼에도 만일 그랬다면 글쎄...고인은 적어도 그의 고인으로만 남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나에게도 고인의 죽음이 불편하게 다가왔던 것을 보니 고인은 그에게서 매몰되지 않았나보다.

고인을 사람들 앞에서 추억할 때는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담담하게 얘기하는 것이 좋다라는 방법론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서두에 밝힌 대로 특정한 방식이 어디 있으랴. 슬프면 슬픈 대로, 담담하면 담담한 대로, 그렇게 마음가는 대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결론을 내려야겠다. 사회자는 마음가는 대로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에게 부여된 역할이 그의 감정이 흐르는 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안 선생님은 담담한 마음 그대로 담담하게 고인을 추억했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된 자연스러움 속에 고인의 죽음에 우리 모두 연결될 수 있었다. 영웅의 추모식 사회는 맡지 않고 볼 일이다. ⓒ 웹진 <제3시대>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2)
: 죽음의 고고학 考古學

이상철
(시카고 신학교 / 윤리학 박사과정)

죽음의 극복과 근대의 탄생

중세 말 ‘죽음의 무도’는 죽음의 일상성, 죽음의 편재라는 절망적 상황을 춤판이라는 상반된 이미지와 결합시켜 그 비극미를 극대화시킴과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녀)가 비록 대단한 권력과 인기를 가진 왕이나 교황, 혹은 유명한 슈퍼스타라 할지라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를 가리켜 사람들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메멘토 모리’라는 짧은 경구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허무와 죽음의 공포는 시대에 따라 그 모양새와 강도가 다르긴 했지만 인류역사의 발생과 더불어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는 근대 이후 전통적 서구기독교 가치의 몰락이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허무를 선물했다고 증언하지만, 서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기독교의 가치가 팽배했던 시절에도 그러한 감정이 여전히 인간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중세 말이 그런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싶다.

죽음의 테마가 중세 말을 휩쓴 이유들 중 하나는 페스트의 창궐에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1437년에 발생한 페스트는 3년 만에 대륙전체를 휩쓸면서 유럽전체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후에도 페스트는 10년 혹은 12년을 주기로 비록 소규모였지만 지속적, 국지적으로 발생하였다. 그 당시 유럽인들에게 있어 삶은 어쩌면 눈앞에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푸닥거리를 필요로 했고, 그 푸닥거리에 쓰일 제물로 유대인들이 낙점되었다. 이는 유럽의 대다수 기독교인들에게 쌓여왔던 유대인들에 대한 앙심이 폭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중세가 진행되면서 도시가 발생하고 수공업과 시장경제의 초기 형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은 고리대금등 지금으로 따지면 악덕 기업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이러한 유대인들을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던 차에 일반 유럽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에서 고양이를 많이 기르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페스트로 인한 사망률이 적었다. 그 무렵 유대인들이 기독교 신자들의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괴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유대인들을 향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결국,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그 공포의 함량에 걸맞는 희생제의를 필요로 했고, 그 희생은 다시 누군가의 죽음을 부르는 광기의 연속이 중세 말 유럽을 휩쓸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급속히 그 영향력을 상실하고 만다. 전능한 하나님이 다스리는 합리적이고 질서있는 우주적 질서와 은총이 넘치는 신의 섭리는 죽음의 공포, 지옥의 공포로 전환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이제 곧 자신에게 닥칠 심판과 죽음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럴수록 로마교황청은 교회로부터 이탈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더욱 죽음의 공포를 강조하면서 기독교 특유의 회개(고백, 고해성사)의 교리를 강요한다. 이는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던 면죄부 판매로 이어지면서 중세는 서서히 몰락의 수순을 밟아가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중세 말 유럽에 휘몰아친 죽음의 테마는 정반대에 놓여있는 이성주의를 앞당기는 계기가 된다. 존재론적으로 느끼는 삶에 대한 허무와 죽음의 공포를 인간들이 인식론적으로 회의하기 시작하면서 근대(성)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중세 철학을 마감했다는 평가를 받는 ‘모든 것을 회의한다’고 외친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후에 근대철학을 열었다는 칸트의 ‘주체 철학’은 결국 중세 말 죽음의 테마로부터 시작된, 존재에 대한 알 수 없는 허무와 보이지 않는 공포를 극복하려는 회의와 반성적 사유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이라는 알 수 없는 세력을 뚫고 피어 오르는 인간정신의 합리성! 근대는 이렇게 우리의 무지와 그 무지로 인한 공포에 한 줄기 빛을 비추며 시작된다. 그렇다면 근대(성)는 죽음을 정복했는가?
아니, 더 근원적으로 인간 정신은 어떻게 죽음을 사유하여 왔는가?

죽음에 대한 생각들 I: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기독교의 부활사상과 맞물려 다루어지는 죽음 이외에 서양의 철학과 종교에서 죽음이 독자적인 관심과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적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현대 철학으로 넘어와서 주로 프로이트와 라깡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을 덕목으로 가져오는 학자들과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서 번져나갔던 실존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죽음이 다루어지고 있을 뿐, 서양철학사에서 죽음에 대한 해석이 이루어졌던 기억은 실로 미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직면했을 때 그 논의의 시작은 플라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플라톤에게 있어 죽음은 없다. 그는 영혼 불멸설을 주장하며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 말한다. 플라톤에게 있어 현실의 삶이란 영혼이 육신의 감옥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고, 죽음은 다시 영혼이 육신과 분리되어 원래의 자리, 즉 이데아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플라톤적 도식은 서구 형이상학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이데아의 세계’와 ‘물(物)의 세계’가 날카롭게 대립한다. 그 다음 단계에서 이데아의 세계는 자신의 속성을 물의 세계로 내어준다. 그것이 플라톤에게 있어 영혼개념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영혼을 물질에 구현한다. 그것이 현실의 삶이고, 현실의 삶 속에 구현되었던(갇혀있었던) 영혼이 다시 이데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다.

헬레니즘적인 사유와 기독교의 상관성에 주목하는 견해들은 플라톤적인 급격한 초월이 후에 서구 기독교의 발전과정에서 절묘한 대칭을 이루며 그리스도교 도그마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태초에 신이 있었다. 신이 인간세계 (피조세계)를 구원하려고 자신을 내어준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는 철저히 인간이라는 물질 안에 구현되었다. 그리고 그는 사망과 권세를 물리치고 부활하여 하늘로 귀환한다. 그 과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존재론적으로는 크리스챤을 하나님에게로 이어주는 탯줄과도 같은 역할을, 인식론적으로는 신의 세계를 가늠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플라톤의 영혼개념은 이와 너무나 닮았다. 영혼은 존재론적으로 인간이라는 물의 세계에 구현된 이데아의 역할을 하고, 인식론적으로 이데아를 밝히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죽음의 의미는 플라톤의 그것과는 달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현실적 삶 속에서 자기라는 것은 육신과 영혼이 현실적 시간과 공간안에 합치되어 하나가 되어있는 것이므로, 이것들이 분리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있어서는 파국이 되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문한다: “이데아의 세계로 돌아간 영혼이, 생물학적이고 물리적인 몸을 입고 있었던 자기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것의 정당성을 무슨 근거로 보장받을 수 있는가?”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나의 개별적 영혼이 나의 생물학적(물리적) 신체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분명한 사실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나의 육신을 입고 개별적 나의 영혼을 감지하고 있다는 것이 생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합일이 깨어지는 죽음은 비록 영혼의 죽음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가 나로서 인지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스승이었던 플라톤과는 달리 생물학적 죽음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육체가 결합된 현실의 개체에 주목한다. 영혼은 자연과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위치한다. 즉, 그는 영혼과 육체를 독자적 실체로 보지 않고 분리될 수 없는 두 측면으로 본 셈이다. 이렇듯 분명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보다는 전향적인 영혼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신체와 결합한 영혼, 즉 개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선까지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적인 영혼의 굴레로부터(예를 들어, 영혼의 선재성과 영혼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는 점)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이후 서구 정신사에서 영혼에 대한 논의는 플라톤적인 초월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내재를 사유하는 경향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며 나타난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내재 역시 엄격히 말하면 초월적 요소를 상당부분 함축하고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플라톤적인 과격한 초월보다 약하다는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내재를 완만한 초월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근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수 천년 동안 서구 역사에서 영혼에 대한 논의는 전체적으로 초월적 사유로 이어져 갔다고 볼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들 II: 근대철학에서 실존주의로, 그리고 임마누엘 레비나스를 향하여

이 글의 초반부에 중세의 붕괴와 근대 탄생의 시나리오에 대해 언급한 바와 같이, 근대 이후에 철학자들 (예를 들어 영국의 경험주의, 칸트, 분석철학, 논리 실증주의 등)에게 있어 죽음은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근대 이후 철학에서는 경험이나 관찰을 통해서 증명해낼 수 없는 것들을 철학적 화두에서 배제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신이나 죽음, 천국 등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이슈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고, 우리 감각에 포획되는 확실한 것, 드러난 것, 자명한 것,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들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하며 실존주의자들에 의해 철학 안에서 죽음의 테마는 다시 새롭게 사유된다.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리라 믿었던, 근대적 이성에 기반한 기술문명이 전체주의와 결합되면서 어떻게 인류를 재앙에 이르게 했는지?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한 민족을 향한 말살이 어뗳게 계몽의 시대를 거치며 진화를 거듭해온 인간 의식 안에서 허용될 수 있는지? 이러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트라우마는 단순히 유태인 혹은 게르만족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20세기 후반 서구 철학, 신학, 사회학, 문학 등 인문학 전반에 원죄의식처럼 새겨져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다음의 문제들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집단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전쟁터로 내몰리는가? 왜 우리는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누구를 죽여야하고 누군가로부터 죽임을 당해야 하는가? 혹, 인간 삶의 형태와 내용이 다른 동물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한 고귀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은, 사실은 인류전체가 저질러 왔던 집단 사기극 아니었던가?

장 폴 샤르트르는 봇물터지듯 폭로되고 있는 인간 삶 전반에 대한 실존적 물음에 대해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대답을 던지며 인간존재에 대한 새로운 해명을 시도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어져오던 서구 전통의 존재론도 아니고, 칸트가 내세웠던 선험적 주체도 아닌, 신으로부터 어떤 선험성도 부여받지 않은 인간 ! 다시 말해 실존주의적 인간이란 신적 디자인에 의해 움직여 가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현실을 향해 내던지면서 그 궤적을 따라 미래를 만들어가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이 부분은 레비나스와 겹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후에 레비나스와 실존주의를 구분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 웹진 <제3시대>

<* 다음 호에는 ‘타자의 윤리학’으로 널리 알려진 레비나스의 죽음에 대한 논의들과 자살이 범람하는 사회에서의 자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글을 맺고자 합니다.>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이문범
    2009.07.23 03:2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잘봤습니다.
    그런데 이 싸으트를 여니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는 군요. 트로이 목가 하이재커라는 바이러스가 감염됩니다.
    조사해보시기 바랍니다

<2009 여름 신학아카데미 탈/향 - 일반강좌>

죽음과 내세

■ 강사_ 이찬수

■ 개강_ 2009년 7월 7일 ~ 8월 10일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정각

장소_ 한백교회 (5호선 서대문역 1번출구, 우체국 신한은행 사이 골목 50m)

수강료_ 6강 6만원 (수강신청 ☎ 02-363-9190,
yminjung@chol.com)

■ 강의개요_

죽음이란 무엇이며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이른바 ‘존엄사’가 사회적 논의 주제가 되어가면서 죽음 및 내세에 대한 관심도 커져가고 있다. 이번 강의에서는 그동안 진지한 학문적 탐구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왔던 죽음 및 내세의 문제를 다양한 종교 전통의 언어와 세계관을 중심으로, 그리고 역사적 차원을 중시하며 정리해본다.

■ 강의내용_
1. 유대교의 죽음 및 내세관 - 내세에 무관심하다가 다양하게 분화해간 고대 유대인의 내세관을 역사적 차원에서 정리한다
2. 그리스도교의 다양한 죽음 및 내세관 - 그리스도교적 내세관은 단일한가? 그리스도교 내세관의 다양성을 성서 및 교부들의 내세관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3. 한국인의 죽음 및 내세관, 무교와 유교의 경우 -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어떤 죽음 및 내세관을 지니고 있었는지, 무교 및 유교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4. 한국 그리스도인의 내세관 - 한국 그리스도교인 고유의 죽음관이 있는지 유교 및 무교적 죽음관과 비교하며 고찰한다
5. 불교적 죽음 및 내세관 - 불교적 내세관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고대 인도의 세계관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6.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내세관, 조화는 가능한가 - 일회적 세계관과 윤회적 세계관은 어떻게 조화되어야 하는지,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내세관의 조화를 도모한다

■ 교재_
1. 이찬수,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가편집교재)

■ 참고문헌_
1. 존 바우커, <세계 종교로 보는 죽음의 의미>, 박규태 외 옮김, 청년사, 2005.
2. 조흥윤, <한국종교문화론>(동문선, 2002)
3. 가지 노부유키, <침묵의 종교, 유교>(경당, 2002)

■ 강사소개(이찬수)_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불교학과 신학으로 두 번의 석사과정을 마친 뒤, 같은 곳 신학분야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9년부터 강남대학교에 교수로 재직하다가, 불상 앞에 절했다는 이유로 2006년 재임용을 거부당했다. 그 뒤 감신대, 성공회대, 이화여대, 한신대, 원광대 등에서 강의를 계속해오고 있고, 2008년 8월까지는 1년간 일본 코세이가쿠린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종교간 대화와 조화의 문화를 진작시키려는 취지로 설립된 종교문화연구원 원장 및 대화문화아카데미 연구위원, 한국죽음학회 연구이사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종교들을 중심으로 한국인의 죽음관 및 내세관의 정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인간은 신의 암호>, <종교신학의 이해>, <종교로 세계 읽기>,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생각나야 생각하지- 사유, 주체, 관계, 그리고 종교> 등을 썼고, <하느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 <화엄철학>,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잇다>, <지옥의 역사>, <절대 그 이후> 등의 책을 번역했다.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by 제3시대

공지사항

카테고리

웹진 <제3시대> (835)
특집 (8)
시평 (96)
목회 마당 (61)
신학 정보 (139)
사진에세이 (41)
비평의 눈 (59)
페미&퀴어 (25)
시선의 힘 (139)
소식 (154)
영화 읽기 (34)
신앙과 과학 (14)
팟캐스트 제삼시대 (12)
연구소의 책 (15)
새책 소개 (38)
Total : 381,085
Today : 87 Yesterday :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