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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22 [시선의 힘] 중식이의 저주 (오종희)


중식이의 저주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좌우의 날선 검


  “그래도 우리는 분단국가잖아” 

  나와 찰떡궁합인 내 친구는 다른 것은 다 개방적이고 감각적이면서 어느 틈엔가 그 놈의 반공 프레임에 꼼짝없이 걸려들었다. 

  “아이고 친구야 그건 썩은 위정자들의 더러운 통치술이야” 

  내가 파르르 떨기도 하고 눈높이에 맞춰 얼러보기도 하면 조금씩 뭔가 통 할 뻔하다가도 결국 친구가 내리는 시사평론은 

   “종북세력 땜에 안 돼!” 


    아마도,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이고 북한이라는 주적이 상존하는 한 온전한 자유를 얼만큼은 저당 잡히는 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판단이 내 지인 만의 생각은 아닐 게다. 해방이후 70여 년간 반공은 이 나라의 종교, 이 나라의 국교 아닌 국교였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세포 깊숙이 반공이 각인 되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내가 기억하는 내 어린 시절 동네 골목의 빛바랜 기억 속 영상에는 항상 구멍가게 원통모양 아스케키 통과 푸세식 변소 오물을 밖에서 수거하기 좋게끔 뚫어 놓은 구멍, 그런 구멍이 즐비한 똥내 나는 골목길 등 늘상 먹고 싸는 아비규한의 모습과 함께 어린 나에게 언제나 어려운 기호로 여겨지는 것이 있었으니 전봇대마다 붙어 있던 ‘반공 방첩’과 좀 더 으슥한 골목의 전봇대에 종이 삐라처럼 붙여있던 ‘조루증’이란 단어였다. 조루증의 뜻을 알게 되기까지는 스무 살을 넘기도록 세월을 보내야 했지만 반공 방첩의 뜻은 초등학교 학년이 올라가고 든든한 유신의 어린이로 훈육되어지면서 이내 알게 되었다. 푸세식 변소와 아스케키 통처럼 ‘반공’은 글자 통째로 그 시절의 내 영상 백그라운드인거다. 

    황해도 출신 월남자인 아버지는 박정희를 싫어하셨다. ‘빨갱이가 싫어서 전쟁터서 죽어라 싸우고 고향 떠나 왔건만 남한 땅에서 박정희가 빨갱이 짓 한다고 우리식 민주주의라니 이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냐’고 날이면 날마다 욕을 해대셨고 나는 그 욕에 진이 빠졌고 넌덜머리가 났고 ‘우리식 민주주의가 뭐가 어떠냐’고 아버지한테 쏘아붙였고... 그리곤 아버지가 내게 뭐라고 쥐어 박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암튼 그건 내가 중2병 걸렸을 때의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아버지는 빨갱이를 혐오하면서 박정희도 혐오하는, 그리 나쁘지 않은 우파였던 것 같다.  

    하긴 대통령이 군복 입은 자였을 때, 대통령에게 총칼의 폭력성이 배어 있었을 때, 대학교 정문에 탱크가 세워져 있었을 때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진짜 적을 구분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박정희 시절 전두환 시절을 보내고 ‘군부’라는 단단한 표지석이 사라진 이후 사람들은, 옷 갈아입고 이름 바꾸고 등장한 그때 그 적을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다. 문제는 적만 놓친 게 아니라 그만 자기 자신, 주체도 놓쳐 버렸다. 그래서 옷 갈아입고 이름 바꾸고 얼굴에 점 하나 찍은 진격의 괴물들이 자기들 앞에서 똥 싸고 썩은 내 풍기고 난리굿을 치러도 유순하게, 아주 유순하게 잘 안 보인 댄다. 

    그리고 잃어버린 자기 자신은, 종북으로 이름 바꾼 ‘반공 프레임’안에서 발견하고야 만다. 거기서 드디어 자기보다 더한 ‘약자’라는 ‘적’도 발견한다. 그러고는 안정감을 느낀다. 적을 놓친 공포감과 자기 자신을 잃은 불안감을 종북에서 해결하고야 만다. 적이 있어야 비로소 나를 가늠하게 했던, 공산주의가 있어야 비로소 자유대한이 굳건했던 군부 독재의 불구적인 정체성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거다. 

     인지언어 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에서 “프레임은 슬로건이 아니라 생각이며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했다.

     지구상에 공산주의가 전멸한 판에 반공이란 슬로건은 한물 지난 거고 그래서 부일 협력 세력과 그 후손들은 그들이 해방초기부터 만들어 재미를 보았던 ‘좌우 프레임’을 지금 시대에 이르기 까지 뻔뻔하게 소환하였고 신자유주의와 함께 이 땅을 기만하는 양대 산맥으로 만들어 놓고야 말았다.

     조지 레이코프의 말대로 좌우 프레임은 대한민국 국민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자 이 나라의 정신적 구조물이다. 좌우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비 실체를 형상으로 도식화하여 세월호도 잡아 쓸어 넣고 교과서도 잡아 쓸어 넣고 노동법도 잡아 쓸어 넣고 좌우의 날선 검 하나로 무엇이든 좌우 동강 내어서 가르강튀아 블랙홀에 털어 놓고 있다.


사토리의 공포


    오늘도 종편 TV, 아니 종편 포르노가 하루 종일 나불댄다. 그리고 오늘도 동네 상점엔 하루 종일 종편 포르노가 ON AIR다. 사람들은 권력에 대해 얼마나 유순한지 ‘저 정도면 잘하는 거’라고 ‘각자의 위치를 지키면 되는 거’라고 한다. 

    포르노가 사람들을 득도 시키나 보다. 이건 실질적인 공포다. 이 사토리 세대들을 누가 흔들어 분노하게 할 수 있을까. 언론은 권력의 마름이 되었고 지식인도 포섭된지 오래고 젊은이들은 깜깜한 제 앞길 더듬거리기 바쁜데, 빨갱이 싫다고 파시즘을 살뜰히 키우고 선거 때 마다 계급 배반 투표를 거행하는 이 사토리 세대들을 어찌해야 할까. TV속 큰 무당과 작은 무당들이 벌이는 난리굿과 개콘을 시청 중인 사토리 세대들은 다음 총선에도 죽음의 카니발을 벌리려나.  


중식이의 저주


    얼마 전 인터넷서 회자된 C일보의 <간장 두 종지>란 제목의 칼럼이 큰 웃음을 준 적이 있다. 내 생전 신문 칼럼보고 그렇게 웃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칼럼의 내용인 즉 

    C일보 근처 중식당서 칼럼 작성자와 동료 합해서 네 명이 탕수육을 시켰는데 간장이 두 종지만 나와서 사람 수 대로 달라했더니 식당 측에선 두 명 당 한 종지가 나가는 거라며 요구한 간장을 주지 않았고 그래서 그 C일보 기자는 분노했고 자괴감이 들었고 이왕 분노한 김에, 내 돈 주고 내가 밥 사먹으면서 음식 나왔다고 종업원에게 ‘고맙습니다’ 인사치레해야 하는 이 부조리한 사회에 환멸 또한 느꼈고 이렇게 하여 ‘을’이 ‘갑’을 만드는 이 사회의 메카니즘을 깨달았고 그리하여 맘 속 깊숙한 울분의 에너지를 끌어 모아 간장 종지 대가리 숫자대로 주지 않은 그 식당이 망하기를, 간장 종지 두 개만 준 그 망할 식당의 이름은 A나 B나 C는 아니라고 목 놓아 목 놓아 외치는 내용이었다. 

    백만 부 이상이나 발행한다는 메이저 신문 칼럼으로 말이다. 그 중식당이 뭔 저주를 퍼 부 었 길래 을이 갑을 만들고 서빙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상식적인 인사말에도 부조리를 느끼고야 말았을까.


    ‘파시즘이 출현한 역사 속에서는 희극이 비극보다 선행하며 궁극의 공포는 처음에는 오페레타 같은 희극으로 나타난다’ (허버트 마르쿠제) 더니 정말로 공포스럽게 위에서 아래에서 큰 놈에서 작은 놈에서 코메디가 횡행하고 있다. 


    중식당 칼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진짜 중식이 저주 좀 불러 볼까. 슈퍼스타 케이에서 나왔던 촌스락 중식이 밴드의 노래인 즉 

    피 고용자 중식이는 자기를 업신여기는 고용자에게 저주를 내린다. 

    “죽어버려라, 죽어버려라, 죽어버려라” 

    월세 때문에 밥값 때문에 모멸감을 참으며 일하러 나가야 하는 중식이에게 입 안에서 우물거리는 그 저주는 오히려 자신의 심성이 폭력으로 물들지 않게 하는 타협점이다. 

     나도 중식이처럼 저주하지 않으면 당장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다. 중식이 처럼 그렇게 하고 싶은 말...  




     내 양심의 가슴에 빨간 비즈 붙이고 녹슨 더듬이로 저주하노니 

     포르노 희극 판을 벌이는 자들아 

     죽어 버려라, 죽어 버려라, 죽어 버려라 !!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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