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 왕들의 유대인 하나님 찬양

: 다니엘서 2-6장 다시 읽기[각주:1]





김진양

(Ph.D. The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the Old Testament))




    다니엘서에 나오는 다니엘과 세 친구의 영웅담은 주일학교나 여름성경학교 교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대부분의 교재에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내어 이방 땅에서 출세한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믿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니엘서의 앞부분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이야기(1-6장) 뒷부분은 묵시적 계시(7-12장)로 나누어지는데, 그동안 성서학자들은 뒷부분의 묵시적 계시에서만 제국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최근 성서학자들은 앞부분 이야기와 뒷부분의 묵시적 비전과의 관계를 다시 해석함으로써 아람어로 쓰인 다니엘 설화를(다니엘서 2-6장) 제국에 대한 저항문학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헬라 제국이든 셀류커스 제국의 안티오커스 4세의 지배이든 유대인 민중은 재국의 지배 아래서 고난 받고 박해 받았던 약자들이었음에 틀림없다. 다니엘서 아람어 설화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의 영웅담은 과히 제국의 박해 아래서 고통 받는 민중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이야기로 읽혀왔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다니엘서의 아람어 설화를 제국에 대한 저항문학으로 해석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들의 저항의 의미와 방법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은 과연 무엇에 대해 저항하는가? 


   다니엘서 설화의 역사적인 배경은 바벨론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이지만, 실제로 설화의 최종형태는 그보다 훨씬 후대인 헬라 시대에 완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다니엘서 2장의 네 번째 제국은 다름 아닌 헬라 제국이기 때문이다.[각주:2] 또 다른 근거로 다니엘서 2장의 “철이 진흙과 섞인다”(다니엘 2:47)라는 표현은 역사적으로 셀류커스 제국과 프톨로미 제국 사이의 혼합 결혼을 의미하므로 다니엘서 아람어로 기록된 설화는 헬라 제국시대에 편집되고 완성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다니엘서가 최종 편집될 당시의 독자는 다름 아닌 헬라 제국 지배 아래 살았던 유대인 민중들이었다.


   다니엘서의 아람어로 기록된 설화는 “이방 왕정이야기”라고 불리는 독특한 장로인데 이는 다니엘서 외에도 구약성서와 외경에서도 각각 발견된다. 다니엘서 설화와 그 이외 다른 이방 왕정 이야기의 공동점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이들의 이야기가 역사적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약자이자 피지배자인 유대인 민중에 의해 이방의 왕들이 유대인의 하나님을 인정하게 된다는 신학적 고백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아람어 설화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는 “유대인 포로” (2:25; 5:13; 6:14 [6:13 한국어성경]) 또는 “유대인들” (3:8, 12)로 소개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사회적 위치는 바벨론 제국의 소수인종이다. 아람어 설화는 바벨론 제국의 지배와 힘을 과시하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또한 특징이다: (1) 국왕의 칙령 (다니엘 3장과 6장); (2) 제국관리의 목록 (다니엘 2장, 4장, 6장); (3) 바벨론 마법사 목록 (다니엘 2장); (4) 금 신상 헌정식 (다니엘 3장); (5) 지방행정 목록 (다니엘 6장)


    제국의 지배와 힘을 과시하는 특성들은 사실 유대인 하나님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는 문학적 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다니엘서 2장의 “거대한 입상”은 바벨론, 페르시아, 메대, 그리스 제국으로 이어지는 세상의 제국 그 자체를 상징한다.[각주:3] 다니엘은 세상의 제국이 산산 조각나 급기야 여름 타작마당의 겨와 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한다. 거대한 입상을 친 작은 돌은 이제 큰 산이 되어 온 땅에 가득 찬다고 한다(다니엘 2:35). 이 땅의 거대한 제국은 멸망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하다는 유대인 민중의 제국의 지배 이데올리기에 대한 저항적 고백을 담고 있다. 


 다니엘서 3장은 다니엘 세 친구의 이야기다. 풀무불에 던져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남는 광경을 목격한 느부갓네살은 유대인의 하나님을 “찬양받으실 분”으로 고백하고 있다(다니엘 3;28). 다니엘서 4장에서 느부갓네살이 본 “거대한 나무”도 역시 제국의 위엄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 제국의 위엄은 유대인 하나님의 심판 앞에 무너지고 만다. 급기야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을 가장 높으신 분이며 영원하신 분으로 유대인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하고 그의 나라는 대대로 이어진다고 고백한다(다니엘 4:34). 다니엘서 5장은 유대인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느부갓네살과 달리 유대인의 하나님의 위대함을 인식하지 못한 벨사살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다. 다니엘서 6장의 설화는 페르시아 제국의 왕 다리오의 고백을 담고 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구원받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다리오는 마침내 다니엘의 하나님을 살아계시며 영원하신 분이라며 찬양한다(다니엘 6:26). 아래는 도표는 다니엘서 아람어 설화에서 사용된 과정법과 이방 왕들의 유대인 하나님을 찬양하는 고백을 보여주고 있다.


 

과장법 

사건 

사건의 해결 

이방 왕들의 고백 

 다니엘서 2장

거대한 입상 

 느부갓네살의 꿈

 다니엘의 꿈 해석

- 가장 위대하신 신

- 가장 으뜸가는 왕

- 비밀을 드러내시는 분 

 다니엘서 3장 

 금으로 된 거대한 입상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의 

우상숭배 거절

 하나님이 다니엘의 

세 친구를 풀무불에서 

구원하심

 - 찬양받으실 분

- 자신의 종들을 구원하시는 왕

 다니엘서 4장

거대한 나무 

느부갓네살의 꿈 

다니엘의 꿈 해석 

-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을 다스리심

- 그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심 

 다니엘서 5장

 거대한 잔치

벽에 쓰인 글씨 

다니엘의 글자 해석 

- 벨사살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함  

 다니엘서 6장

 거대한 제국

 다리오만을 신으로 숭배

 하나님이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구원하심

- 살아계신 하나님

- 영원하신 분


 위 도표로 살펴본 바와 같이 다니엘서 2-6장의 각 설화는 이 땅의 제국이 위대하고 거대하다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이방 왕들이 유대인의 하나님을 배우게 되고 그들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방 왕들인 느부갓네살과 다리오는 유대인의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 가장 위대하신 신 

 • 가장 으뜸가는 왕 

 • 비밀을 드러내시는 분 

 • 찬양 받으실 분 

 • 자신의 종들을 구원하시는 분 

 •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심 

 • 그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심 

 • 살아계신 하나님 

 • 영원하신 분


 이들의 고백에서 주목되는 것은 유대인의 하나님이 왕인 자신들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 바벨론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느부갓네살은 약자 유대인의 하나님을 가장 으뜸가는 왕으로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엘리아스 비컬만(Elias Bikerman)은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 중 느부갓네살은 유대인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상적인 이방 왕이라고 주장한다.[각주:4]  


 외경 마카비하서에 의하면 셀류커스 제국의 군대 22,000명이 예루살렘에 주둔하여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전통적 유대인 종교행위 금지령(기원전 167년)에 위배되는 자는 모조리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많은 유대인들이 왕의 칙령에 순응하였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이 제국의 박해에 완강히 저항했다. 셀류커스 제국에 저항은 마카비 항쟁의 군사적 저항인 반면, 다니엘서 아람어 설화는 다른 차원에서 저항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람어 설화는 “일시적인 세속의 지배” (the temporal human kingship)와 “영원한 천상의 지배” (the eternal heavenly kingship)를 반복하여 강조한다. 아람어 “왕국” (מלכו)은 다니엘 아람어 설화전체에 걸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중 하나다. 이 단어는 때로는 세속의 왕권에 때로는 하늘의 왕권에 적용한다. 즉 아람어 설화의 저자는 제국의 힘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대신 제국의 힘을 제한한다. 아람어 설화는 제국보다 더 위대한 지배자 유대인 포로의 하나님을 다니엘의 입술과 이방왕의 입술(느부갓네살과 다리우스)을 통해 고백하고 있고 이처럼 이방왕이 유대인 하나님을 찬양하는 문학양식은 외경과 사해문서에도 발견된다.  


 • 다니엘의 하나님 찬양 (다니엘 2:20-23) 

 • 느부갓네살의 하나님 찬양 (다니엘 2:47) 

 • 느부갓네살의 하나님 찬양 (다니엘 3:28) 

 • 느부갓네살의 하나님 찬양 (다니엘 3:31-33, 4:31-34) 

 • 다리우스의 하나님 찬양 (다니엘 6:27-28) 

 • 알렉산더 대왕의 하나님 찬양 (요세푸스, Ant. 11.305-339) 

 • 프톨로미 4세의 하나님 찬양 (마카비 3서) 

 • 고레스의 하나님 찬양 (벨과 용, 칠십인역 다니엘) 

 • 네바나이드스의 기도 (사해문서, 4QPrNab ar).  


 다니엘서와 더불어 에스더서, 에스라-느헤미야서, 그리고 역대기서와 같은 포로이후 문서의 특징은 비록 포로 이후 유대인들이 이방제국의 지배 아래 살았지만, 자신들의 하나님이 누구이며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각주:5] 이러한 측면에서 다니엘서 아람어 설화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 이방왕들의 유대인 하나님 찬양은 주전 2세기 헬라 제국의 박해 아래 고통 받는 민중들에게 그들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즉 그들의 하나님은 “찬양받으실 분,” “영원하신 분,” 그리고 “가장 높으신 분”인 것이다. 이와 같은 최상의 표현은 비록 그들이 억압받는 피 지배자이지만 그들의 하나님은 지배자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이방왕들의 찬양은 세상의 제국은 일시적이지만 하늘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비록 제국의 지배아래서 고통 받고 있지만 그 고통은 일시적이며 끝난다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방왕들의 찬양은 포로 이후 유대인 공동체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있다. 즉, 제국의 지배 아래 살았던 유대 민중들은 제국의 황제가 아닌 자신들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그들의 삶의 목적을 삼았던 것이다. 다니엘서 2-6장의 설화는 헬라 제국과 이방 왕의 박해에 대해 무력과 전쟁이 아니라 지혜와 기도와 찬양으로 저항하는 포로이후 유대인 공동체의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필자소개

    현재 미 연합감리교회 북 일리노이 연회에서 목회,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에서 구약학 전공(Ph.D.), Wartburg College에서 강의


ⓒ 웹진 <제3시대>

  1. 본글은 지난 2011년 시카고에 소재한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주최한 제26차 월례포럼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임을 알린다. [본문으로]
  2. 제4에스라와 요세푸스는 다니엘서 2장의 네 번째 제국을 로마제국이라고 명시했다. 다니엘서 2장의 네 번째 왕국에 대한 논의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John Collins, Daniel (1993), Gerhand F. Hasel, "The Four World Empires against Its Near Eastern Environment," JSOT 12 (1979), 17-30. [본문으로]
  3. 성서학자들은 종종 다니엘서 2장의 네 제국과 다니엘서 7장의 네 짐승을 비교 분석하면서 다니엘서 아람어 설화의 중심주제인 제국의 멸망을 강조한다. A. Lenglet는 “La Structure Litteraire de Daniel 2-7," Bib 53 (1972), 169-190. [본문으로]
  4. Elias Bickerman, Four Strange Books of the Bible (New York: Schocken Books, 1967), 67. [본문으로]
  5. Sweeney, Reading the Hebrew Bible after the Shoah (2008), 20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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