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묵시록 13 : 자본주의 묵시록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21세기 초반 묵시록 담론의 중심에 자본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핵폭탄의 묵시록은 자본주의 묵시록에 의해 대체되었다. 냉전 체제가 붕괴한 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세계화 자본주의 속에서 세상의 몰락을 읽는 이유는 자본주의의 생산과 경쟁 속에서 자연과 생태계는 파괴되어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믿음과 세상이 망하더라도 자본주의는 변하지 않을 것이란 자괴적인 인식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진 자본주의 소비 욕구를 채우기 위해 동원된 반생명적인 기술의 대가는 신체의 질병과 인류가 쌓아 올린 가치의 파괴로 나타났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욕망과 소비의 주체로 만들었다. 이전의 도덕성을 중심으로 한 인간 이해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인간 이해로 대체되었다. 인간은 경쟁의 상황 속에서 가장 인간적일 수 있고, 세상은 도덕적인 인식이 아닌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만이 모여도 건제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생산과 소비의 자원으로 전락한 자연은 균형을 잃고 결국 재난의 현장이 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세상을 망치고 있고 결국에는 몰락의 길로 인도할 것이라는 진단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주의를 세상의 파괴와 종말의 묵시록으로 이해하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에 의해 디스토피아의 현장으로 변해버린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 개념이 좀비다. 좀비는 무기력하게 죽음과 삶 사이를 배회하면서, 반죽음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살을 뜯어 먹어야 한다. 결코 이길 수 없는 경쟁의 서바이벌 게임을 하도록 강요받고 사는 현대인들은 좀비에서 그들의 아바타를 찾았다. 인간적인 세상은 이미 끝났고, 마지막 세상에서 생존해 있기 위해서 모든 가치의 종말과 패배를 인정하고 무의식의 상태에서 떠도는 모습이다. 그 상태에서도 유지되는 생각 없는 생산과 소비는 자본주의가 원하는 세상을 완성하고 있다. 인류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좀비 영화들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 인문학의 공통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미국문화의 저변에 묵시록적인 종말론이 흐른다면 미국의 자본주의는 그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실제로 자본주의를 미국의 정신으로 인정하고 미국이 없는 자본주의의 발전은 상상할 수도 없다. 미국의 자본주의와 종말론을 연결할 수는 없을까? 막스 베버의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유명한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추론을 해보자. 베버는 청교도들로부터 시작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기원을 그의 책에서 다뤘지만, 거기서 묵시록의 근거도 찾을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베버는 자본주의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에게 미국은 청교도의 나라였고, 그 나라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했다면 어떤 종교적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베버는 그 이유를 청교도들의 신학 즉 칼빈주의의 예정론에서 찾았다. 구원은 신의 주권에 속한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이 예정된 구원을 받았는지 아니면 저주의 대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상태는 두렵고도 외로운 번민의 상태다. 하지만 선택된 자들의 삶은 외부에서 보기에도 달라야 했다. 그들은 신의 부름을 받아 세상으로 왔다고 믿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의무를 다하고 충실한 삶을 사는 게 하늘에 합당한 선민의 삶이었다. 베버에 의하면 그런 삶은 근검절약을 실천하고 모든 맡겨진 일에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임하는 자세를 요구했다. 즉 구원을 받은 사람은 일상의 생활에서 성실하고 자신감 있게 산다는 말이었다.


    여기서 베버가 다루지 않은 부분을 생각해보자. 베버는 청교도들이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의식이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이런 모습이 선택받은 자들의 삶의 모습이라 했지만, 청교도들의 소명의식 중에 세상의 마지막 날을 준비할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한다는 종말론적인 사명을 간과했다. 세상의 사람들과 구분되어 신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명의식은 그 자체로 종말의 사건이다. 세상의 마지막 날을 신에게 선택된 사람에게 합당한 성실과 열성을 다해 살라는 사명을 받은 것이다. 만약 베버의 말대로 청교도들의 소명의식이 자본주의 정신의 조건이었다면 그들의 삶은 자본주의 정신을 구현하는 종말론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할 수 있다. 여기서 자본주의적인 삶은 종말의 과도기적인 삶이었고 곧 사라질 시대를 사는 방식이었다는 추론도 제기해볼 수 있다. 그 방식은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세계관을 도입해 불필요한 생각과 활동을 제한하고 단순한 삶의 추구를 의미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서구의 기독교 문화 속에서 등장할 수 있었을까 묻는 것은 그 문제가 더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지금도 가치 있는 질문이다. 베버는 자본주의의 정신을 얘기했지만 실제로 자본주의라는 단어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던 19세기에 자본주의의 탐욕이 아닌 정신을 얘기한 사람은 흔치 않았다. 베버와 같은 학자의 영향과 자본주의가 체질화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자본주의와 기독교가 모순된 가치라는 사실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지만, 베버 자신은 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자본주의의 물질적 가치가 중세에는 절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탐욕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베버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청교도들이 자본 친화적인 신앙을 받아들이는데 필요했던 세계관을 칼빈주의의 예정론에서 찾았지만, 그 연결고리가 그다지 견고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돈을 벌고 재물을 축적하는 행위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고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전통적인 기독교 윤리와는 큰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재물을 쌓아두는 행위 그 자체를 죄악이라 생각했던 종교문화 속에서 자본주의가 등장했다고 믿기 위해서는 큰 발상의 전환을 요구했고 이를 베버는 잘 알고 있었다. 베버에게 그런 발상의 전환을 체득하여 미국의 자본주의 정신을 구현한 인물이 벤자민 프랭클인이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부자가 되는 법>은 그가 살아있던 18세기에 이미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책자였다. 그는 지금도 미국의 정신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미국인으로 손꼽힌다. 베버는 프랭클린을 청교도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묶어낸 인물로 설정하면서 그의 근면 정신과 시간 이해에 주목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또는 ‘시간은 금이다’와 같은 프랭클린을 통해 알려진 격언들에 그의 인생철학이 담겨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의 핵심은 그의 시간관이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시간은 언제나 짧다. 시간을 잘 시켜라. 쉬고 싶으면 시간을 잘 써라. 잃어버린 시간은 되찾을 수 없다. 시간을 낭비하는 건 인생을 헛사는 길이다. 프랭클린은 청교도의 후예였지만 교회생활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신 중심의 생활보다는 합리적이고 정직하고 근면한 생활을 더 강조했다. 그의 생각은 매사에 신의 뜻을 찾지 않아도 성실하게 일하고 열심히 돈을 버는 행위 그 자체에 도덕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재물이 목적이 될 수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재물을 모으는 과정에 도덕성을 부여하게 된 것은 큰 발상의 전환이었다 할 수 있다. 프랭클린에게서 종말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자본주의 정신이 청교도의 윤리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세속화된 것이라면, 돈과 시간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할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 즉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아까운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짧아서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등식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추론에 불과하지만, 개인의 종말 또는 시대의 종말 앞에서 재물의 있고 없음이 중요하지 않다면 프랭클린에게 자본의 도덕성은 과도기적이거나 마지막 시대의 현상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만약 청교도들이 자본주의의 정신적 기초를 닦았고 또 그들의 삶의 형태가 종말론적인 것이었다면, 청교도들은 그들의 삶, 즉 자본주의적인 삶을 종말론적인 것이라 보지는 않았을까? 만약 그런 생각이 가능하다면 청교도들은 이미 자본주의 종말론 또는 종말의 자본주의를 예견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를 종말론의 차원에서 이해한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가 내적인 모순으로 인한 과잉생산으로 몰락의 길을 갈 수밖에 없고, 그 잔재 위에 공산주의라는 유토피아적인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는 맑스주의의 진단이다. 여기서 종말론은 자본주의가 망해야 천년왕국과 같은 역사의 완성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역사의 구조를 말한다. 다른 하나는 앞서 언급한 자본주의가 이 세상을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다는 현대 인문학의 진단이다. 맑스주의는 미국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따라서 맑스주의자들이 예언한 자본주의의 종말과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한 예언은 미국의 문화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 이유를 자본주의가 이미 미국의 이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반대를 생각할 수도 있다. 즉 자본주의가 미국에서 그만큼 용납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청교도 시대부터 현재까지 흐르는 미국의 종말론적인 사상 때문일 가능성이다. 그리스도가 지배할 천년왕국에 대한 기대 혹은 곧 닥칠 환란과 휴거에 대한 기대 때문에 자본주의의 탐욕을 마지막 날의 현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제도적 제한을 두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가 자유를 실천하는 이념이라는 공식이 성립한 후에는 자본에 대한 규제는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자본주의의 ‘자유’를 다가올 천년왕국의 가치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본주의에서 다가올 천년왕국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들과 자본주의가 세상을 재난과 파괴의 종말로 이끌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 중립적인 입장은 있을 수 없다.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미국의 제도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자본주의가 ‘자유’를 지향하는 시스템으로 포장되어 홍보된 역사가 있다. 자유는 원래 종교개혁 이후 청교도들에 의해 기독교의 본질로 그리고 미국정신의 근거로 뿌리내린 개념이었다. 지금도 자유는 미국을 의미하고 대변하는 개념으로 인정받고 있고, 미국은 곧 자유라는 관념의 등식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자유를 표방하는 개념으로 포장되지 않으면 미국에서 수용될 수 없었다. 비교적 최근까지 미국에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이 주류의 시민 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미국의 정신인 개인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최고의 정치와 경제의 제도가 바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논리가 펴졌기 때문이다. 그런 논리가 미국의 신앙으로 변하게 되기까지 오랜 홍보와 선전의 역사가 있었다. 미국에서 ‘기업’이라는 영리를 위한 조직이 19세기에는 법적인 사람의 권리를 갖게 되고, 자유의 주체가 되고, 20세기에는 무소불위의 통제되지 않는 권력으로 부각되는 역사다. 시장의 자유가 그 어떤 자유만큼이나 중요한 자유이고, 시장의 자유를 못 믿는 사람은 자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 논리가 1960년대에 등장하기 이전부터 미국의 자유를 자본의 자유와 동일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시장의 자유를 종교적 양심의 자유로 또 미국의 정신으로 승화시킨 건 신자유주의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행태가 용인되어온 미국의 역사 저변에 자본의 자유와 기업의 자유를 미국정신의 일부로 만들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묵시록은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픽션이나 실존의 갈등이 만들어낸 허구가 아니다. 그런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인정하지만, 묵시록의 힘은 어떤 실제적인 것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라는 믿음에서 나온다. 공상과학이란 장르가 묵시록의 테마들을 차용했다고 해서 묵시록이 공상과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묵시록에 대한 신뢰가 남다른 미국 보수 기독교인들은 지구온난화의 현상을 믿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종말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선과 악, 재림과 부활이라는 거대한 드라마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자본주의라는 인간 제도의 남용과 같은 하찮은 이유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온난화의 과학적인 근거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미국엔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학적인 사고를 우선시하던 사람들은 묵시록의 종말론을 추종하던 이들을 광신적인 종교에 빠져있고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류가 묵시록의 종말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묵시록을 의미 없는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실존적인 픽션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자본주의 세계화 시대의 묵시록은 급박한 종말의식을 종교적 세계관에서 상식과 과학의 세계관 일부로 만들었다. 냉전 이후에 등장한 자본주의 세계화 시대는 묵시록의 전환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핵폭탄의 묵시록은 핵무기를 소유한 소수의 국가들에 세상의 운명을 맡기고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는 불공평한 세상의 현실을 반영했지만, 세계화 시대의 환경재난의 묵시록은 모든 인간을 공범으로 만들어 자본주의 묵시록을 보편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묵시록은 멸망의 묵시록이고 이 시대 유일한 보편적인 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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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묵시록 3 


- 청교도 종말론 그리고 사드(THAAD) 감상법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이번 글에선 청교도 종말론이란 주제를 계속해서 앞부분에 다루고 후반엔 약간 우회하여 최근 논란이 되어온 사드배치에 대한 논쟁을 약간 다른 방식에서 읽어보고자 한다) 


코튼 매더


    17세기 미국의 제일 중요한 사상가라 앞서 소개한 코튼 매더의 책엔 유달리 ‘아메리카’란 단어가 제목으로 많이 등장한다. [Magnalia Christi Americana, 1702]이라는 책이 대표적이지만 [Biblia Americana]와 [Psalterium Americanum]이란 저술도 있다. 미국이라는 땅을 학문의 대상으로, 또 미국을 신의 섭리 속에서 이해한 역사의 중심으로 등장시킨 건 매더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아메리카란 용어를 신대륙을 지칭하는 보편적인 용어로 만들어냈고 아메리카를 담론의 대상으로 창조해낸 사람도 매더였다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칸’는 당시만 해도 주로 미국의 원주민들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나, 매더는 자신을 ‘아메리칸’이라 부르기 주저하지 않았다. 그에게 아메리카는 유럽의 종교개혁을 완성시킬 뉴잉글랜드가 아니었고, 그 자체로 의미와 사명이 있는 용어였다. 그러나 그 의미와 사명을 청교도들이 권력을 차지하게 된 영국의 역사에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매더에게 필요했던 것은 아메리카를 설명해줄 성경의 해석과 인류역사의 구원사적인 이해였고, 그는 오랜 시간 그 작업에 몰입해 자신의 ‘미국사상’을 만들어냈다. 그에게 미국은 성경의 예언이 실현될 예언의 땅이었고, 청교도들은 구원사적인 사명을 안고 미국에 온 선민들이었다. 미국의 종말론적인 이해와 선민사상은 매더가 17세기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 것이지만 현재까지도 세속화된 상태에서 미국의식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18세기 미국의 독립운동과 국가건립에서 19세기 서부개척론 그리고 미국의 부흥운동에서 최근의 미국 예외주의까지의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종말론적 선민사상과 같은 뿌리 깊은 개념을 배제하면 그 정신적 연결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매더는 예수의 재림과 종말의 사건들이 곧 일어날 것이란 확신이 있었고 이를 증거하는 걸 자신의 역할로 이해했다. 성경의 예언들이 자신의 시대에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고, 마지막 시대의 신학은 종말론일 수밖에 없었고, 모든 것이 죽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절박함을 안고 살았다. 그렇다고 매더가 세상을 등지고 말세만을 외치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17세기 미국의 청교도 사회의 시대적인 한계 속에서 과학과 진보적인 세상을 상상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청교도들이 미국의 집단무의식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면, 매더만큼 이를 잘 대변해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주술적 세계관에 근거한 종말의 상상력과 함께 자연의 과학적 이해를 동시에 추구했던 그의 모습에서 미국문화의 이중적인 모습의 한 원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더는 미국 청교도들의 종말론에 신학적 논리를 제공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말세의 날에 대한 예언도 잊지 않았다. 두 번이나 번복했지만 나름대로의 계산을 통해 말세의 해를 예언했다. 근대의 역사에서 미래와 종말의 예언을 한 사람은 흔히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만이 아니었다. 17세기 이후 그런 말세에 대한 계산과 예언을 한 사람들의 이름만큼 과학과 주술과 역사와 예언의 구분이 근대초기에 명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건 없다. 뉴턴은 계산을 통해 종말의 해를 2060년이라고 내다봤으니 아직도 유효하다. 세상이 종말을 향해 달리고 있고, 예수의 재림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고, 마지막 날 최후의 심판이 있으리라는 믿음은 신학적 해석을 떠나 기독교 역사의 본질에 속한다. 종말의 사건이나 그 징조는 서구역사의 공통된 관심사였다. 그때가 언제인지를 파악하고자 성경을 찾았고 자연을 연구했다. 그에 대한 예언은 신과의 교감만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당대 학문이 제공하는 상상력에 기초한 계산과 판단의 산물인 경우가 많았다. 산술적인 계산이나 천문학의 관찰에 의거한 판단도 많았고, 최근에는 종교와는 상관없이 환경과학이나 우주생성이론을 근거로 세속적이고 습관적인 종말의 진단을 하는 예도 있다. 몇 년 전 통계에 의하면 미국 기독교인들 중 41%는 예수의 재림이 2050년 이전에 있을 거라 믿고 있다. 복음주의 계통의 기독교인들만을 보면 그 비율이 58%로 훨씬 늘어난다. 19세기엔 종말의 예언이 유럽에서는 뜸해졌지만 미국에서는 황금기를 맞는다. 예수의 재림, 종말사건들의 시작, 휴거 등의 예언은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제7안식일 예수재림교 그리고 전천년주의를 따르던 개신교회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였다. 20세기 한국개신교의 역사도 길선주 목사로부터 시작되는 종말예언으로 점철되어 왔다. 앞으로 다룰 주제이지만, 20세기 세속화된 미국의 역사에선 그 종말의식이 종교만이 아닌 대중의 문화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네이팜과 사드


    네이팜에 관한 신문기사를 접한 건 오래 전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한국의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공포와 테러의 대상이었던 네이팜은 그 당시에도 잔혹한 살상의 무기라는 이유로 도덕적 논란을 일으켰다. 신문기사의 내용은 퇴출된 네이팜탄을 폐기처분하기 위해 기차를 통해 시카고를 거쳐 목적지인 인디애나까지 운송할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폭탄을 실은 기차가 인구밀집 지역을 통과하는 게 공공의 안녕에 위배되는 위험한 일이라며 이를 반대하고 나선 시카고 시의회 의원들과 지역 정치인들이었다.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에 실어 운반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네이팜은 미국 (하버드 대학의 화학교수가 연구하고) 만들어 일본과 한국 그리고 베트남에서 수십만 (아니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분노와 공포의 무기가 아니었나. 뉴스기사는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했고, 네이팜의 잔혹한 역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1945년 일본에선 미국의 네이팜 폭격으로 하룻밤 사이 십만 명이 불에 타죽었다. 또 네이팜은 6.25 전쟁 당시 북한을 초토화시킨 ‘넘버 원’ 무기였다. 네이팜은 베트남 전쟁 때 가장 많이 사용됐고, 미군의 무자비한 폭격을 증언하는 반전운동의 상징이었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사람들이 가장 잘 기억하는 장면도 네이팜이 폭발해 치솟는 불덩어리의 모습이다. 


    네이팜과 사드의 연결점은 무기로서의 유사성이 아니라 슈퍼무기, 즉 적을 한 번에 제압할 수 있는 최후의 무기를 찾았던 미국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둘 다 미국에서 개발된 무기다. 미국의 한 시대를 상징했던 네이팜을 문화사 측면에서 다룬 책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 [Napalm, An American Biography]. 사실 무기는 단순히 사람을 해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의 산물만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한 시대의 문화와 가치와 정신을 대변하기도 한다. 네이팜, 핵무기, 핵잠수함, ICBM, 그리고 사드까지의 역사는 슈퍼무기를 찾았던 미국의 정신사의 일부로 읽을 수 있다. 이 역사를 미국역사의 묵시록으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핵무기보다 먼저 만들어졌어도 곧 핵무기가 개발되면서 슈퍼무기의 명성은 갖지 못했지만, 미국의 B-29 폭격기에서 떨어지는 네이팜탄은 아마겟돈 전쟁의 악몽을 연상케 했다. 1945년 봄 독일 드레스덴에 가해진 미군의 무자비한 공중폭격을 주제로 한 책의 제목은 [Apocalypse 1945]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고, 코폴라 감독의 [Apocalypse now>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폭격은 독일과 일본과 베트남 등의 나라에선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민족적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북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0세기의 역사에서 최후의 무기 또는 종말의 무기는 당연히 핵무기였다. 냉전 이후 지구생명의 역사를 한 순간에 끝낼 핵전쟁이 어는 순간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살아 왔다. 아마겟돈이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종교적인 개념을 믿지 않는 사람들 인간이 억제할 수 없는 최후의 전쟁이 곧 일어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핵무기는 종말의 상징이었고, 20세기의 묵시록 그 자체였다. 핵무기의 묵시록을 언급하는 이유는 20세기 중반 이후 문화와 학문의 발전은 핵전쟁의 종말이라는 매우 가까운 현실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존주의에서 해체이론, 추상표현주의에서 비디오아트, 소비자주의에서 환경운동까지의 변화가 어떻게 종말의 담론을 수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지지만 이는 따로 알아볼 일이다. 당연히 기독교 신학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21세기엔 마치 테러라는 현실이 20세기 핵무기의 진부함을 대체한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테러리즘을 위험시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통제되지 않는 세력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가정이기 때문에 핵무기의 묵시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다만 최근의 문화적 상상력은 더 진보해, 이미 이루어진 묵시적 종말 이후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60년대의 영화가 핵폭발과 함께 모두 죽어가는 장면으로 끝났다면, 90년대 이후의 영화는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의 얘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코맥 맥카시의 <로드>라는 책이 대표적인 예다. 


   슈퍼무기, 최후의 무기를 끊임없이 추구해 온 미국의 역사를 다룬 브루스 프랭클린의 [War stars]라는 책이 있다. 출간된 지 벌써 30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그 논지는 명확하고도 유효한 미국문화사의 고전적인 책이다. 그는 18세기 증기선 개발로 유명한 로버트 풀턴이 추구했던 평화를 이루고 자유를 지킬 슈퍼무기 잠수함 건설에 대한 얘기로 그 역사서술을 시작한다. 이후 미국이 만든 모든 슈퍼무기는 전쟁을 끝내고 영구적인 평화에 기여할 것이란 명분하에 만들어졌다. 폭격기가 그랬고 핵무기, 핵잠수함, ICBM, MD의 역사가 그랬다. 그 사이 순간의 계산착오만으로도 지구의 생명체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체제가 구축되어 왔고, 적의 위협으로부터 평화를 지키고 적의 무기를 무력화 시킬 슈퍼무기 경쟁은 첨예화 되었다. 선택받은 예외주의의 나라 미국은 그 경쟁에서 질 수 없었다. 아마겟돈 전쟁을 무릅쓰고라도 지켜내야 할 군사적 우위였다. 미국의 문화는 무기산업과 군사주의에 우호적으로 발전했다. 네이팜의 불덩어리보다 더 큰 시대의 아이콘은 핵폭발의 버섯구름이었다. 상징은 생각을 낳는다고도 하지만 또 현실을 견디게도 해준다. 종말의 상징인 핵폭발의 버섯구름은 예술가의 손을 통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건이 되었다. 어느 순간 미국적이라는 것과 군사적이라는 것은 유사한 것이 되었다. 그게 정당화되는 이유는 미국의 의도는 선하다는 인식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 의도는 자유를 지향하는 것이고 자유는 죽음과도 바꿀만한 가치다.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를 가르는 심판의 언어는 미국에 가장 가까운 언어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사회비평가 루이스 멈포드는 핵무기 경쟁을 합리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미국의 지도자들을 향해 ‘미쳤다’고 외쳤고, 이들의 행태가 용인되는 이유는 미국인 모두가 똑같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최근에는 그런 비판도 듣기 힘들다. 그 경쟁이 이미 일방적인 승부로 끝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모두가 자살머신에 갇혀 좌절과 절망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드(THAAD)로 돌아가 보자. 사드의 한국배치에 대한 두 관점은 이를 북한의 공격에 대한 대비책으로 보는 시각과 중국의 ICBM에 대한 미사일 방어체제의 일부라는 시각이다. 여기서 한 가지 추가할 관전 포인트는 역사적인 것이다. 위에서 얘기한 미국의 슈퍼무기 개발의 역사라는 측면이다. 종말의 무기인 핵무기를 효과적으로 소유하려면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선제 핵공격을 하고도 핵보복을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하면 상대의 선제 핵공격을 미리 막을 수 있는가이다. ICBM은 상대가 선제적 핵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보복용 무기로 알려져 있다. 보복을 당하지 않는 핵공격은 없다는 걸 증명하는 무기이기 때문에 선제적 공격을 막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양쪽 모두 핵무기가 있다는 전제 하에 성립되는 방정식이다. 만약 ICBM을 공중에서 무력화 시킬 수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한 쪽에선 보복 당하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이고, 다른 쪽에선 적의 공격에 대응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MD라는 미사일 디펜스 시스템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사드가 MD 체제의 한 축이기 때문에 사드의 한반도 배치문제 문제가 남북만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여기서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 내가 잘 모르는 - ICBM이나 사드의 전략적 논리가 아니라 적의 첨단의 무기를 무력화 시키는 슈퍼무기를 찾아온 미국의 역사 속에서 사드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드가 ICBM을 공중에서 분해시키는 상황은 최후의 전쟁일 수밖에 없다. 최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는 전략을 묵시적인 아마겟돈 전쟁을 상상하지 않고 구상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 무기의 역사는 사회사 그리고 문화사의 일부다. 1940년대 핵무기 개발은 수없이 많은 각도에서 연구되어 왔다. 핵무기는 전쟁을 종식시킬 무기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세상을 끝낼 수 있는 무기로 아직도 남아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핵무기가 묵시록의 환상을 일깨운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다. 냉전시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들은 핵무기를 통한 지구의 종말과 예수의 재림을 다룬 것들이다. 냉전시대의 묵시록은 핵무기를 통해서 쓰였다. 특히 예루살렘을 두고 벌어지는 전쟁이 핵전쟁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한 파멸이 예수의 재림와 천년통치로 이어진다는 설정은 20세기 후반 가장 흔한 전천년주의 말세론의 기본적인 줄거리다.  



참고서적에 대하여


    브루스 프랭클린Bruce Franklin의 책의 원제목은 War Stars: The Superweapon and the American Imagination으로 1988년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에서 출판되었다. 멈포드Mufford에 대한 언급은 원래 1946년 그의 에세이 "Gentlemen: You Are Mad"에 출처가 있지만 프랭클린이 그의 책에서 인용하고 있다. 네이팜을 다룬 책 Napalm - An American Biography의 저자는 로버트 니어Robert M. Neer이고 비교적 최근 2013년 하버드 대학 출판부에서 출판했다. 두 책 모두 미국 군사무기의 문화사를 다룬다 할 수 있다. 한국어 번역본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매더가 쓴 책들 가운데 구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그중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Magnalia Christi Americana미국에서의 그리스도의 위대한 업적]은 하버드 대학에서 판이 있다. Post-Apocalyptic 장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코맥 맥카시의 <로드>는 책과 영화 모두 좋은 평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은 장르의 <설국열차>에 대해선 다음에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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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묵시록 2 - 청교도에 관하여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미국이 민족적인 동일성이나 지형적인 특수성에 기초하지 않고 이념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실은 익숙한 사실이다. 그 이념을 자유나 평등과 같은 보편적이고 긍정적인 가치만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그 저변에는 선택받았고, 다르다는 자의식이 깔려있다. 하지만 목적이나 의도성이 없는 선택은 없다. 여기 연재되는 글에선 그 목적과 의도를 종말론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종말론적인 사명을 미국의 무의식의 일부로 또 아직도 진행 중인 미국의 세계적 역사의 일부로 이해한다. 이번 호에선 청교도들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코튼 매더는 여기서 일부 다루고 그의 종말론은 다음에 조나단 에드워즈의 종말론과 함께 더 서술할 예정이다) 


플리머스 바위(Plymouth Rock)


    내가 교수로 있는 시카고 신학대학이 3년 전 지금의 건물로 이사 오기 전까지 한 백년 가까이 쓰던 건물에 특이한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일층 내부의 벽에 돌출되어 있는 작은 돌조각이었다. 바로 위엔 그 돌이 플리머스 바위(Plymouth Rock)의 일부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나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무감각하게 그 옆을 지나 다녔지만 그 의미와 상징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큰 것이었다. 플리머스 바위란 1620년 청교도들이 (엄밀히 말하자면 청교도들과는 견해가 약간 달랐던 필그림Pilgrim들이었지만 큰 맥락에서 청교도라 쓴다) 배에서 내릴 때 첫발을 디뎠다는 바위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바위에 불과했지만 반석 위에 세워진 미국의 정신과 새 하늘과 새 땅의 언약을 상징하는 징표로 이해되어 온 미국역사에서 더 없이 중요한 유물이다. 어떻게 그 역사적 바위의 한 조각이 1855년에 설립된 시카고의 한 신학대학 건물의 내벽에 부착되게 되었는지 사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광야와 같이 무질서하던 19세기 중반 시카고에 신학교를 처음 세우며 플리머스 바위와 같은 반석이 되라는 뜻이 담겨있는 건 분명한데, 그 바위조각의 출처를 아는 사람은 없다. 당시 신문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플리머스 바위조각을 신학교에서 소장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당시 시카고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당시 학교의 입장은 플리머스 바위가 해안가에서 최종 이전되기 전 개인적으로 바위를 깨서 기념품으로 보관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학교에서 소장하게 된 조각도 그렇게 사적으로 보관되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만나본 사람들 가운데 이를 믿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황당한 사기극에 휘말린 거라 믿는 사람도 많았다.  


<Plymouth Rock>


    그 바위조각의 진위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플리머스 바위라고 하는 미국 사람들 마음속의 ‘만세반석’이 실제로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그런 바위가 아예 없었다는 게 상식적인 이해이고, 그렇다면 시카고 신학대학의 바위조각은 ‘실제적이지 않은 플리머스 바위의 비실제적인 조각’이 된다. 20세기 후반 사람들이 영광스런 플리머스 바위 옆을 무심코 지나쳤던 이유는 플리머스 바위의 신화 즉 미국이 신의 섭리를 토대로 시작되었다는 신화를 더 이상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광과 섭리의 신화가 미국역사에서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한때 플리머스 바위가 맡았던 역할은 - 다음에 더 서술할 기회가 있겠지만 - 19세기 중반 이후 미국이 제국주의적인 성향을 드러내면서 절대적 상징으로 등장한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가 맡고 있다. 


    그렇다면 플리머스 바위에 대한 신화는 어떻게 시작 되었을까? 새로운 세상에 대한 사명을 안고 신대륙에 도착한 영국의 선민들의 첫 발자국이 어린 바위가 있다는 게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보다 120년이 지난 후 대각성이란 부흥운동이 일어나던 때였다. 당시 94세의 연로한 토머스 파운스Thomas Faunce 장로는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들려 플리머스 해안가로 향했다. 거기서 미국의 정신과 신앙의 토대를 잊지 말라는 뜻으로 바위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파운스 장로의 증언 외에 플리머스 바위의 진실을 밝혀줄 증거는 없었지만, 그 바위의 진실은 결국 믿음이었기 때문에 당시 별 의심 없이 미국의 신앙과 정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파운스 장로가 그런 증언을 하게 된 동기다. 유력한 설은 영적인 각성을 요구하는 부흥운동이 감정주의로 치우치고 기존 교회공동체들과 마찰을 일으키기 시작했을 때, 청교도 교회의 제도와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그가 어렸을 때 들은 플리머스 바위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교도 1세대들은 자신들이 반석 위에 내린 게 아니라 거칠고 마귀들이 들끓는 광야에 착륙한 것으로 이해했다. 파운스 장로의 해석은 청교도들의 역사가 끝나가는 시대, 거친 광야가 개척지로 변하고, 신대륙이 신앙의 실험장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국가로 변모해가는 시대에 가능했던 수정주의적인 역사이해에 속한다. 신대륙으로 이주해온 청교도들에게 아메리카란 개념은 없었다. 단지 새로운 땅이 있었고 그 위에 종교개혁을 완성시키고 새로운 에덴동산과 새로운 예루살렘을 만들자는 신화적 상상력과 믿음이 있었을 뿐이다. 그로부터 120년이 지난 후 아메리카라는 개념이 국가적인 정체성을 수반하길 요구받고 있을 때 광야가 아니라 반석의 신화가 필요했고, 따라서 플리머스 바위는 그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할 수 있다. 


한국과 청교도 그리고 천로역정


    한국의 기독교를 미국 청교도들의 신앙과 연관 지어 이를 책에 소개한 사람은 아더 브라운 (Arthur Judson Brown, 1856–1963)이 처음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20세기 초반 미국의 해외선교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고, 초기 에큐메니칼 운동에도 관여했던 인물로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선교정책을 주장했던 목사였다. 선교지의 교회들이 선교사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서구중심의 우월의식에서 벗어난 선교정책을 지지했다. 그는 급격한 교회성장으로 주목받던 한국의 선교현장을 돌아보고 극동의 정세와 한국의 선교 상황을 다룬 책 <The Mastery of the Far East>1919년에 출간했다. 한국의 미국선교사들이 청교도적인 성향을 지녔고 한국의 교인들이 이를 따르고 있다는 그의 유명한 분석이 그 책에서 나온다. 브라운은 구체적으로 미국 선교사들이 오래 전 청교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안식일을 지키고, 춤이나 담배 또는 카드놀이를 죄악이라 생각했고,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전천년주의적인 믿음을 진리라 여겼고, 고등비평과 자유주의 신학을 위험한 이단이라 간주했다고 지적했다. 이 내용은 이후 한국 개신교의 특성을 설명하는 글에서 자주 인용이 되어왔다. 그런 부류의 글에서 또 흔히 듣게 되는 건 한국교회 신앙의 뿌리를 청교도들의 신앙에서 찾아야 하고, 그 신앙을 본받고 회복해야 한다는 식의 말이다. 하지만 미국의 역사에서 청교도들에 대한 평가는 일방적이거나 단순하지 않았다. 그들에 대한 극적으로 대립되는 평가는 아직도 존재한다. 청교도적이라 했던 미국 선교사들과 한국교회에 대한 브라운의 평가도 앞서 언급한 내용만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최근 청교도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흔히 듣게 되지만, 20세기 중반까지 청교도들에 대한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인 면이 많았다. 청교도들의 유산을 극복의 대상으로 애써 무시하려는 경향도 있었다. 청교주의는 신정일치를 내세우는 권위와 독선을 연상시켰고, 다른 신앙의 노선을 이단이라 탄압하는 삐뚤어진 정통주의를 떠올리게 했다. 청교도들이 강조한 진노와 심판의 하나님 이해는 역으로 유니테리언(Unitarian)이라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교회가 크게 성장하는 동기가 되었고, 에머슨의 미국적인 학문은 청교도들의 인간이해를 부정하면서부터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청교도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기까지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청교주의를 비판한 소설 <주홍글씨>의 작가 나다니엘 호손이었다. 한때 에머슨과 소로우와 함께 콩코드에서 살기도 했던 호손의 고향은 매사추세츠 주 살렘이라는 동네였다. 청교도 역사의 큰 오점으로 남아있는 살렘의 마녀재판이 있었던 바로 그곳이다. 호손은 뒤늦게 그 재판에서 죄 없는 사람들을 요술 부리는 마녀로 낙인찍어 죽음의 형벌을 내렸던 판사가 자신의 조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환멸을 느껴 자신의 성까지 Hathorne에서 Hawthorne으로 바꾸었다는 설도 있다. 호손은 <주홍글씨>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작품에서 청교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19세기 중반이후 미국인들이 청교도들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데 크게 기여했다. 20세기 중반 미국에 매카시즘의 바람이 불어 양심의 자유가 위협받을 때, 당대 대표적인 문인이었던 아더 밀러Arthur Miller는 이를 청교도 마녀재판과 비교한 희곡 <시련The Crucible>을 써서 마치 청교주의가 매카시즘의 원조였다는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호손이 살았던 시대 청교도들에 대해 매우 다른 생각을 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미국을 여행하고 <미국의 민주주의>란 고전적인 책을 쓴 불란서 사람 알렉시스 토크빌이었다. 그에게 청교도들은 종교적 실험을 하러 미국에 온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실천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토크빌은 교회의 권력만이 아니라 국가의 권력까지도 분산시키고,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대의 정치제도를 실현한 것은 청교도들의 목적이 부의 축적이 아니라 자유의 실천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파악했다. 토크빌은 그 자유의 개념, 더 나아가 개인적 자유의 개념까지도 청교도들의 신앙에서 출발한 것으로 신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고 믿었고, 미국의 역사적 운명이 이미 청교도들에 의해 결정된 것이란 의미심장한 분석까지 했다. 미국을 잠시 다녀간 사람의 관찰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통찰력 있는 분석임에 틀림없다. 호손과 토크빌의 차이를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다. 토크빌은 미국의 제도를 설명하고자 했고 호손은 미국에서의 삶의 경험을 얘기하고자 했다. 민주주의의 자유가 토크빌의 주제였다면 호손의 주제는 종교의 억압이었다. 그러나 청교도들의 유산에 대한 그들의 평가는 달랐고, 그 엇갈린 평가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시 브라운으로 돌아가보자. 브라운의 책에서 ‘청교도’라는 낱말은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미국 선교사들의 성향을 설명하는 용도로 쓰였을 뿐, 더 큰 비교나 분석을 의도하지는 않은 것이다. 또 그가 청교도적인 신앙을 갖고 있던 미국 선교사들에 대한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청교도들에 대한 그의 생각도 안 드러나는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책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면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브라운은 일본교회에 비교해 선교사들의 신앙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인 한국교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의 책은 극동지역에서 일본의 패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기독교에 대해 편향된 입장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한국교회에 대한 그의 진단은 지금 읽어도 매우 진지하고 구체적이다. 그는 한국교회는 왜 자율적이지 못한지 물었고, 어떻게 당시의 선교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록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 그가 한국을 중국과 일본에 비교해가며 내세운 이유들은 그다지 한국교인들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브라운에게 분명했던 것은 여러 이유로 한국인들의 마음속엔 선교사들의 복음의 씨앗을 받아드릴 기름진 토양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브라운은 이것을 청교도 시대의 정서를 떠올리는 표현을 써가며 비유했다. 한국은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미국 서부의 초원과 같았고, 반면에 중국은 뉴잉글랜드 해안의 바위 숲으로 비유했다. 한국의 교회는 준비된 심성으로 복음을 받아들여 세계 어느 곳보다 기도와 성경공부 그리고 주일성수와 전도에 대한 열정이 높은 교회를 만들었지만 그가 보기에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 교리적 경직성이 문제였고, 신학적 입장은 달라도 복음에 대한 열정은 같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다. 브라운은 그 이유를 한국교회가 선교사들의 청교도적인 신앙을 재생산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한국의 기독교는 다음 세상에만 관심이 있을 뿐, 복음을 사회변화에 적용시키지 못했다. 타락한 이 세상을 이 ‘세대’에서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교회는 몰락할 세상을 증거하고 선택받은 교인들을 모아 예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브라운은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교육과 질병치유 등 사회구제를 위한 노력을 했지만 큰 맥락에서 볼 때 개인 중심적이고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브라운이 청교도적인 신앙에 대해 비판적이었다면, 그 입장은 20세기 초반 미국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청교도적’(Puritanical)이라는 표현은 지금도 긍정적인 표현으로 쓰이지 않는다. 청교도 신앙을 ‘재생산’한 당시의 한국교회가 종말론에 치우쳐 있다는 그의 진단은 지금 들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브라운은 한국교회의 그런 신앙을 <천로역정>과 비교해 설명했다. 하지만 망해가는 이 세상을 버리고 천국의 도시를 찾아나서는 고행의 길을 우화로 그려낸 천로역정을 한국교회가 사실적인 묘사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 않는지 우려했다. 브라운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게일 선교사에 의해 한글로 번역되었고, 선교에 큰 도움을 주고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외선교의 동반자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도. 실제로 미국의 해외 선교지에선 <천로역정>이 성경 다음으로 번역되어야 할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브라운이 <천로역정>을 한국교회와 연결해 그만한 언급이라도 한 것은, 그가 그 책의 청교도적이고 종말론적인 배경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번연은 영국의 청교도였고 <천로역정>은 청교주의의 천년주의 사상에 기초해 쓰인 책이었다. 번연의 천년주의와 종말론 사상은 그의 다른 저작 <적그리스도>나 <거룩한 전쟁>을 통해 더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천로역정>만으로도 충분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서양 근대의 역사에서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책이 바로 <천로역정>이었다. 문체는 단순하고 철학적인 논리는 빈약할지 몰라도 세상에 미친 영향은 셰익스피어의 문학이나 홉스의 정치학보다도 컸다. 이런 대조가 가능한 이유는 <천로역정>이 뛰어난 문학작품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라고 할 만한 세상에 대한 의도성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로역정>의 도덕적이고 신학적인 영향력은 20세기에 와서 사라졌다. 최근엔 꿈과 우화와 풍자를 가르치는 영문학의 교재로, 때로는 문학 연구논문의 텍스트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경을 제외하고 서구역사에서 그 책만큼 오랜 기간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도덕의식과 종교의식을 형성한 작품은 없었다. 서구에서의 영향력이 사라지던 20세기 초 <천로역정>은 한글로 번역되어 새로운 땅에서 종말론적 개종과 회개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를 느낀다.  


    한국기독교에서 <천로역정>을 읽고 그 감동으로 회심과 개종을 하게 된 사람으로 흔히 길선주 목사를 떠올리게 된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궁금해진다. 동양의 종교와 사상에 뛰어난 학식을 갖췄다는 학자가 <천로역정>을 읽고 무엇을 느꼈을까? 어찌 보면 삽화가 실린 그림책에 불과했던 책 한 권을 읽고 기독교의 어떤 진리를 만나게 되었을까? <천로역정>과 같은 기독교 고전의 영향력은 이미 증명이 된 것이지만, 그 책의 내용이 종말론적 세상인식이라는 독특한 신학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만은 지적해야 한다. 17세기 미국의 청교도들은 그 책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읽었고, 바로 그들 자신이 망해가는 세상을 버리고 고난 속에 천국의 도시를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 크리스천이라 생각했다. 몰락하는 유럽을 떠나 새로운 예루살렘을 신대륙에서 건설해 역사를 완성하자는 묵시적 관점에서 그 책을 이해했다. 크리스천이 거칠고 황량한 세상을 지나 도달하는 낙원을 청교도들은 천년왕국으로 이해했다. 이 책의 특징은 구원을 세례나 회심과 연결시켜 이해하지 않고 끝없는 광야에서 한걸음 씩 앞으로 나아가는 순례의 과정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낙원이라는 미래의 목적이 설정되어 있지만, 신앙의 삶은 광야에서의 순례였다. 모든 순례는 길 위에서 걷는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다. ‘길 위에서’라는 로드의 모티브는 이미 <천로역정>에서 완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청교도들은 광야에서 예루살렘을 꿈꾸었지만, 광야에서의 삶이 갖는 영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천로역정>이 길선주 목사에게 미친 영향은 그의 신학사상에서 읽을 수 있다. 길선주 목사는 계시록을 만 번이나 읽었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묵시적 종말론에 심취해 있었다. 말세를 연구해 풀이해 <말세학>이란 책도 썼고, 그 내용을 도표로 만든 ‘말세도’를 펼치고 부흥집회를 인도했다. 길선주 목사가 20세기에 수용한 종말론은 번연보다 더 신학적으로 투철한 것이었다. 번연은 자신의 신앙의 비전을 풀어내는데 급급했다면, 길선주의 종말론적 신학은 당시 성행했던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설에 기초한 것이었기 때문에 전천년설이 옳음을 증명하는 건 그에게 매우 중요했다.


청교도들의 종말론


    큰 의미에서 서구의 근대를 만든 사상은 합리주의가 아니었고 계몽이나 이성의 사상도 아니었다. 미셸 푸코가 비슷한 생각으로 한때 근대 내면의 긴장성을 이성과 광기로 대립으로 표현했지만, 나에게 광기보다는 ‘묵시’란 개념이 더 큰 함축성을 지닌다. 근대가 자유를 향한 시간의 행진이었다면 그 자유는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상태, 종국에는 역사와 시간의 가능성을 끝낼 종말 앞에 열린 상태의 자유까지를 말한다. 시간에 의해 구속받지 않는 자유까지도 포함한다. 근대의 역사에서 그 자유에 대한 상상을 떠맡은 건 묵시적 종말론이었다. 청교도들은 그 자유를 종교개혁의 완성과 연결 지어 생각했다. 자유가 종말론적인 차원을 지닌다면, 종교개혁의 완성은 종말론적 사건이었다. 그들의 신앙 속에서 허용된 종말론적 사건은 적그리스도와의 전쟁, 재림 예수의 심판과 최후의 심판을 전제하는 것이었다. 청교도들은 이런 종말의 사건들을 준비하는 단계로 성서의 예언을 이루어낼 새로운 이상의 도시, 새로운 에덴 또는 새로운 예루살렘을 꿈꾸었다. 그들의 종말사상은 16-17세기 영국의 치열한 정치와 종교적 갈등과 전쟁 속에서 탄생한 종말의 신앙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그 신앙은 이후 미국을 통해 종교적 신념을 넘어 근대적 삶의 자세로 또는 세계관으로 포장되어 전해지고 있다.


   청교도들의 신앙이나 신학을 생각하면서 종말론을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겠으나, 그 이상 그들의 세계관을 설명해주는 개념은 없다. 그들에게 가톨릭교회는 마귀의 세력이었고, 이제 영국의 교회까지도 마귀의 세력에 함몰되었다는 인식은 절박한 것이었다. 마귀와의 싸움은 예수의 재림과 심판에 앞서 벌어질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살렘의 마녀재판의 배경에는 요술을 부리는 마녀들의 활동을 종말의 징조로 이해하고, 이에 대한 응징을 재림 전에 있을 묵시적 전쟁의 수순으로 보는 시각도 분명히 있었다. 17세기의 청교도들은 예수 재림의 시기를 예언하는 천년설들이 구분하지 않았다. 천년왕국을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또는 이전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전천년설 또는 후천년설은 19세기에 만들어진 개념이었고 무천년설은 그보다도 더 늦은 20세기의 개념이었다, 청교도들이 주로 전천년설을 믿었고, 청교도 역사의 마지막 시대에 살았던 조나단 에드워즈가 후천년설을 처음 믿기 시작했다는 분석은 후대의 계산적인 평가일 뿐이다. 당시에는 환란과 심판과 천년왕국에 대한 믿음만 혼재되어 있었고, 자신들의 생각을 이론적으로 구분하지는 않았다. 다음 기회에 다루겠지만 청교도들의 종말론적 사명의식은 ‘부름 받아 나섰다’는 선민사상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 선민사상은 미국의 역사에서 세상을 이끌고 구해내야 한다는 메시아적 사명으로 드러난다.


코튼 매더 (Cotton Mather)


    시카고 북쪽에 Mather High School이라는 공립 고등학교가 있다. 예전엔 그 주변에 한인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그 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여럿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들은 기억도 없는데 나는 오랜 세월 그 매더(Mather)라는 인물이 17세기 미국의 청교도 목사였던 코튼 매더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래 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준 기억이 있는 나를 행복한 무지에서 깨워준 건 인터넷이었다. 알고 보니 그 고등학교는 코튼 매더가 아니라 20세기 초에 살았던 그의 먼 후손으로 스티븐 매더(Stephen Mather)의 이름을 따서 세운 학교였다. 그나마 같은 집안의 인물이라 아주 틀린 건 아니란 생각을 위안으로 삼으며 들여다 본 인터넷 사이트에서 눈에 띈 건 스티븐 매더의 이력이었다.


    그의 조상 코튼 매더는 17세기 미국의 제일 중요한 사상가였다 (매더가 17세기 미국의 제일 중요한 사상가라면 18세기에 그 역할을 한 사람은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9세기엔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20세기엔 듀이John Dewey라 말할 수 있겠다). 뉴잉글랜드로 불리던 땅에 미국(America)라는 정체성을 확립시켰고, 엄숙한 칼뱅주의를 바탕으로 청교도 신앙을 신학으로 정리했고, 곧 다가올 예수의 재림과 종말의 사건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했던 목사였다. 최근의 역사책에선 살렘의 마녀재판 때 무고한 여성들을 마녀로 낙인찍어 처형한 사건에 참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스티븐 매더는 조상의 신앙을 물려받지 않고 오히려 청교도 신앙에 저항했던 헨리 소로우 쪽에 더 가까웠다. 소로우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소로우의 사상을 환경운동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자연주의자 존 뮤어John Muir를 만나 큰 감동을 받고 미국 국립공원의 설립과 보존 운동에 헌신했다. 그런 공적과 시카고에서 살았던 이력으로 자신의 이름이 붙은 고등학교까지 생기게 된 것이었다.


    코튼 매더의 후손은 조상의 청교주의를 버리고 에머슨과 소로우의 초월주의를 선택한 것일까? 17세기 청교주의와 19세기 초월주의의 관계를 대립적으로만 생각했던 과거에는 그렇게 볼 여지가 있었지만, 20세기 후반 학자들의 연구는 청교주의와 초월주의 그리고 20세기의 실용주의까지 미국을 대표하는 사상들이 중요한 부분에서 연속적인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왔다. 그 관계의 공통적인 주제는 개인주의적인 인간이해, 모든 권력에 대한 회의 의식, 스스로 해야 한다는 자립정신 등이었다. 20세기 중반 미국 청교도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사람은 역사학자 페리 밀러Perry Miller였다. 그의 대표작 은 출판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꾸준히 인용되고 있고, 그중에서도 ‘에드워즈에서 에머슨까지’란 장은 여러 번 읽을 정도로 내게 의미가 있었다.



참고서적에 대하여


    아더 브라운의 책 <The Mastery of the Far East> 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글에서 참고한 부분은 한국기독교를 다룬 32장과 33장이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참고한 부분은 주로 1권 3장에서 청교도들을 다룬 부분이다. 파운스 장로의 일화는 비교적 많이 알려져 내용을 글에서 간단히 옮겼지만 깊이 있는 논의는 플리머스 바위의 역사적 상징성만을 다룬 란 책 특히 3장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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