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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20 [시평] 총과 남성성 (배근주)


총과 남성성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지난 일주일 동안 미국은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게이 나이트 클럽, 펄스(Pulse)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현재까지 49명이 죽었고, 53명의 부상자들이 발생한 이 사건은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점들을 보여 주고 있다. 총기 규제, 동성애자들을 상대로한 증오범죄, 이슬람혐오주의, 테러와의 전쟁, 인종 차별주의, 남성 폭력 문제, 문화 충돌과 이민법 개혁과 난민을 받아들이는 문제 등등.이 대량 살상 사건으로 인해, 세계는 올해 11월에 치뤄질 미국 대선, 이슬람 국가 (ISIS)와 전쟁을 치루고 있는 유럽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정치적 이익으로 인해 후폭풍을 맞고 있다. 


          다수의 시민들과 여성, 어린이, 소수 인종,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저질러진 폭력행위는 절대로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펄스 나이트 클럽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도, 단순히 동성애자들을 혐오하는 이슬람 과격주의에 영향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이민 2세인 오마르 마틴 (Omar Mateen)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로만 보기에는, 그 밑에 깔린 보이지 않는 사회 구조적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우선 마틴이 살아온 삶 자체가 폭력으로 물들어 있다. 마틴의 삶을 파헤친 다양한 기사들을 보면,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자잘한 싸움과 폭력행위에 휘말려, 정학을 당하거나 퇴학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폭력과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고, 여성들을 무시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이런 그가 경호원이란 직업을 택하고, 경호 훈련과 총기 사용 훈련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오히려 경찰이나 군인이 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랬다면, 그는 아마도 합법적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  


          오마르 마틴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민한 숨어있던 동성애자였다는 보고도 있다. 그의 아버지와 가족들도 마틴의 성정체성을 의심했지만, 굳이 알려고 들지도 않았고, 마틴 스스로도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인정하지 않았다는 설이다. 오마르 마틴이 동성애자라 하더라도, 명예를 목숨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프가니스탄 가족 공동체에서 커밍 아웃하는 것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강경하게 그의 게이설을 부인하고, 그가 동성애자들을 증오했다고 확언하는 것은 아프가니스탄 문화에서 보면 당연하다.  


         아프가니스탄 이민자의 아들로 자라면서, 오마르 마틴의 유년 시절도 평탄하지 않았을 것 같다. 폭력적인 성향이 어렸을 때부터 나타났고, 그의 학교 교사들이 끊임없이 마틴의 행동 장애를 가족에게 알렸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그러한 보고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폭력성을 보이는 아프가니스탄계의 문제아였던 마틴의 학교생활과 교우관계가 어떠했을지는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가 왜 어렸을 때부터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는지, 왜 행동장애에 대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만약 그가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오마르 마틴의 복잡한 인생을 이해하고, 거기에서 대량 학살의 원인을 찾는 것은 나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펄스 나이트 클럽 총기 난사사건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왜 미국에서의 총기 규제가 어려운가 하는 것이다. 이 총기 사건과 관련하여 또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폭력과 총기류와 같은 무기에 기대어 생명력을 유지하는 헤게모니적 남성성 (hegemonic masculinity)이다.  


          미국에서는 총기류의 소지를 규제하려고 할 때마다, 전미 총기 협회 (National Rifle Associations)와 같은 단체가 전방위로 규제에 대한 반대 캠페인을 펴왔다. 그들의 로비는 1977년 카터 대통령이 총기규제를 강화하려고 할 때부터, 더 조직화되었고, 강해졌다. 현재 미국에는 인구 100명당 88정의 총이 존재하지만, 총을 한정 또는 그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22%에 불과하다 (자료ProCon.org http://gun-control.procon.org/view.resource.php?resourceID=006436).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총은 남성성을 상징한다 (총이 나오기 전엔 칼과 창이 남성의 상징물이였다).남성성을 연구하는 호주의 학자, 코넬 (R. W. Connell)은 총기 소유를 방어하는 입장은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라고 주장한다 (Connell, Masculinities, 2005). 여기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이란, 진정한 남성은 ‘이러저러한 성향과 행동’을 해야한다는 사회 관습적 규범이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부합되지 않는 몸과 행동, 생각 등을 보이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탄압의 대상이 된다. 서구화된 대부분의 사회에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가부장적인 남성, 강인함, 지도력, 카리스마, 폭력성 또는 가족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용맹성, 경쟁심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총기류의 정치학에서는 남성성이나 젠더가 보이지 않는다. 주로 토론되는 주제들은 국가 안보, 군수 기업의 이익, 가족의 가치, 종교적 신념, 개인의 자유, 과학 기술의 진보와 같은 것들이다.  


          코넬은 가장 합법적으로 무기와 폭력을 사용하는 군조직이야 말로 유럽과 미국에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한다 (Connell, 2005). 군대 조직과 더불어 미디어에서 생산해 내는 전쟁 드라마, 군 영웅 이야기등을 통해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확대 재생산되고, 진정한 남성에 대한 기준이 세워진다. 남성 영웅은 군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게임에서, 만화에서 다양한 영웅들이 등장하고, 이 영웅들 사이에는 묘하게 닮은 성향들이 존재한다. 바로 영웅이든 악당이든 폭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이들의 남성성은 주로 폭력을 통해 드러난다. 마치 남자라면 당연히 폭력적이라고 믿는 듯하다. 좋은 의도에서건 아니건, 폭력과 연계된 남성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위태롭다. 여성들의 생존은 남성과 같은 수준의 폭력을 보이거나 그들의 폭력을 지지하던지, 아니면 남성의 보호를 받던지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그러나 이 선택도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가부장적인 남성상위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러한 구조 속에서 여성은 폭력의 주체가 되기도 힘들고, 생존을 위한 선택의 주체가 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즉 권위있는 남성들이 보호받을 여성들과 그렇지 않은 여성들을 구별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의해야할 것은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대한 연구가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 구조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헤게모니는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이상 계속 유지되기 마련이다. 또한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직접적인 이슈로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들과 남성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생각을 맞추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소수의 남성 엘리트 그룹의 이익만을 지켜줄 뿐이다.  


          코넬이 주장하는 대로, 정치, 경제, 종교, 이데올로기, 성담론의 주도성을 유지하려는 (소수의) 이성애자남성들은 활발히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방어하려고 한다 (Connell, 2005). 비록 그들이 드러내 놓고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방어하거나, 이것에 대해 의식화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세계 정치가 경쟁적이고, 주도권 쟁취에 바탕을 둔 남성성에 의해 지배되는 한, 폭력과 전쟁, 자연 파괴와 같은 파괴적인 지속될 것이라고 코넬은 경고한다 (2005).  


          나는 코넬의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작게는 개인 간의 관계에서 넓게는 국가 간의 관계까지 보이지 않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이 영향력은 여성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남성들에게 까지도 악역항을 끼친다. 그렇기에 벨 훅스 (bell hooks)와 같은 흑인 여성 운동가는 남성성에 대한 바른 이해와 남성성의 변화가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흑인 여성 신학자 숀 코퍼랜드 (Shawn Copeland)는 더 나아가, 예수의 삶이 대안적인 남성성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가 보여준 사랑과 자비심, 공동체 중심적인 삶, 여성들과 남성들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모두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받아들인 삶 등이 과연 남성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예를 제시해 줄 수 있다 (Copeland, Embodied Freedom, 2008).

  

          성소수자가 아닌 이상, 펄스 나이트 클럽 총기 난사사건을 퀴어 관점에서 이해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들이 느끼는 상실감, 공포, 절망 등등.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단순히 총기 규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동성애 혐오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이슬람교도가 아닌 이상, 9/11 테러와 펄스 학살 사건을 통해, 그들이 사회로 부터 느끼는 증오, 압박감과 공포를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들의 종교가 폭력의 종교로 규정되고, 이슬람교도 모두가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여겨지는 한, 종교간의 갈등과 폭력은 더욱더 극복하기 어려워질 것이고, 또 다른 폭력과 희생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공포를 남성들이 이해하기 어렵듯, 여성인 나또한 한국 사회에서 미국에서 남성으로, 특히 한국인 남성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이제 17개월된 내 아들이 어떠한 남성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은 있다. 나는 내 아이가 타인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폭력과 경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자신이 남자임을 알리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성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모든 인간들이 소중한 존재임을 어느 순간에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은 지금보다 더 강한 총기 규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강력한 총기 규제법 못지 않게, 사회의 폭력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폭력성을 극복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대안적인 남성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실천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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