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취지

기업사회라 불릴 만큼 사회 전반에 대한 기업의 지배력이 강화된 오늘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주체성을 전제로 공동의 운명을 결정하는 체제로서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다. 1987년 이후, 일인에게 집중된 권력은 분산되었지만 권력은 하나의 강고한 체제로서 자신을 재구축하였고, 바로 그 체제는 사실상 시장권력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생존하기에 급급할 뿐 공동운명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워갈 수 없게 되었다.
2014년 4월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세월호 사건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불행하게도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권력의 이동이 철저한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귀결되지 못하고 단지 기존의 지배체제 내에서의 배분에 지나지 않았고, 급기야는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국가 자체가 전적으로 자본의 지배하에 놓인 기업국가가 된 우리 현실에서 빚어진 비극이다.
이번 포럼은, 바로 그와 같은 한국사회와 상호작용하는 교회의 권력이동 문제를 영성권력이라는 차원에서 분석하고 그 대안의 방향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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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 길』

지은이 : 최형묵

펴낸날 : 2013년 5월 31일
페이지 : 220쪽
정  가 : 12,000원
펴낸곳 : 이야기쟁이낙타


             * 책 소개 보러가기

책 소개

권력의 중심에서 이익 집단처럼 행동하는 주류 한국 기독교에
진정한 기독교와 교회의 길을 묻다.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지금까지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말씀 아래 민중의 아픔을 함께 나누어 왔으며, 권력의 횡포가 극에 달했을 때에는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참여하여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권력에 영합한 주류 기독교는 주 5일 근무제, 양심적 병역 거부, 사립학교법, 차별금지법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쟁점마다 스스로의 기준을 절대적 기준인 양 내세우며, 자기 이해에 민감한 태도를 보여 왔다. 이와 같은 교회와 기독교의 폐쇄적인 태도는 일반 대중에게 기독교가 종교보다는 이익 집단에 가까운 모습으로 비춰졌고, 이러한 한국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롭게 개정 출간된 <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 길>은 현재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한국 기독교의 상황을 진단하고, 우리 기독교와 교회가 앞으로 걸어갈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근대화의 역사적 흐름 속에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한국 기독교

 기독교는 이미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하나의 열쇠가 되었다. 따라서 오늘 한국 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한국 기독교를 이해하는 것은 특정한 종교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깊이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 길>은 한국의 근대화와 대부흥 운동, 광주 민주화 항쟁, 17대 대선 등으로 이어지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 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급성장한 주류 한국 기독교가 지니게 된 여러 문제점들을 살피고 있으며,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주류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안을 추구하는 또 다른 기독교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한국 기독교와 그 변화에 얽힌 한국 사회의 단면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내부로부터의 뼈아픈 성찰과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걷는 진정한 길 찾기

지금까지 한국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비판은 주로 외부의 시선으로 제기되어 왔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는 있었지만, 아쉽게도 기독교와 교회 내부의 사정까지 자세히 다루기는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 길>은 기독교인으로서 수십 년간 기독교의 올바른 길에 대해 고민해 온 저자가 안에서 겪고 바라본 교회와 기독교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비판보다 생생하게 와 닿는다.
저자의 우리 기독교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끊임없이 바른 길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은 ‘타자를 위한 개방성으로서의 신앙과 윤리’, ‘사회 문제를 회피하는 장소가 아니라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장소로써의 교회’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삶의 기쁨을 향유하는 신앙’으로 책 속에 잘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은 저자의 시도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진정한 신앙의 길을, 비기독교인들에게는 새로운 기독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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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3.10.24 20:2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지난한 작업이었을텐데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미국 신학교육의 장에서 민중신학에 대해 언급할때 다루는 text 가 CCA에서 30년도 훨씬 전에 출판된 minjung theology가 유일했었는데, 이번에 출판된 책 덕분에 약간 큰소리 칠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쁩니다. 미국에서 3rd world Perspective를 갖고 신학하는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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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봄 회원강좌>


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


• 강의 취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기 8:7). 사람들이 희망하는 대로 모든 일이 그렇게 처음에는 보잘 것 없었지만 훗날 번성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때린 놈은 편히 잘 수 없어도 맞은 놈은 발 뻗고 잔다고 위로를 받아 왔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현실은 정반대다. 욥기는 그 부조리한 현실을 문제 삼으며 세계의 현실을 다시 보도록 촉구한다.
성서 가운데 가장 읽기 어려운 책으로 알려진 욥기의 본문을 따라가며 현실을 부조리를 다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 이 강의의 취지다.

• 강사_최형묵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외래교수
한국신학연구소 연구원과 <신학사상> 편집장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뒤집어보는 성서인물><한국기독교와 권력의 길><반전의 희망, 욥> 등이 있다.

• 교재_『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최형묵 지음; 동연, 2009)

일시 / 수강료
- 4월 6일~5월 11일(매주 화) 오후 7:30~9:30  ※ 4월 27일은 휴강
- 수강료: 7만원(1회 수강시 1만5천원)
   이 강좌는 회원강좌이므로 CMS 후원 신규 신청자와 기존 후원자는 무료입니다.
   
교재는 별도/ 연구소에서 2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합니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는 회원들의 자발적인 힘으로 운영됩니다. 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 장소_한백교회당
        (5호선 서대문역 1또는 2번 출구, 신한은행-우체국 사이골목 30미터. 좌측 안병무홀<1층>)

• 신청방법_
   02-363-9190으로 전화하시거나 yminjung@chol.com으로 신청 메일을 보내주세요.

• 강의구성_

날짜

주제

읽어올 부분

4.6

부조리한 현실과 고통의 기원에 관한 물음의 보편성

•욥기 1~2장, 교재 가운데 그 해당부분

4.13

두 세계의 대결 I: 경건한 지혜와 불경한 지혜

•욥기 3~15장, 교재 가운데 그 해당부분

4.20

두 세계의 대결 II: 흔들리지 않는 신학과 흔들리는 신학

•욥기 16~31장, 교재 가운데 그 해당부분

5.4

소멸의 잿더미를 딛고 일어서는 인간

•욥기 32~42:6, 교재 가운데 그 해당부분

5.11

꼭 보상을 받아야 하나?

•욥기 40:7~17, 교재 가운데 그 해당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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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0.03.08 11:3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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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형묵 목사님은 제가 중학교 1,2학년때 성경공부 선생님이었습니다. 사실 성경공부 한 기억은 별로 없고 김민기 노래를 가르쳐 주면서 "너희가 이 노래의 가사를 전부 이해하는 순간 득도하게 될 거야"라고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었죠. 그래서 저는 중학교 1학년때 김민기의 대부분의 노래들을 익혔습니다. 벌써 그때로부터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네요. 득도까지는 아니지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어렴풋이 알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 그 첫걸음이 알수 없는 김민기의 노래들을 서투른 기타반주에 맞춰 부르던 그때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최형묵 목사님이 성경공부를 하시는군요. 멀리 미국에 있지만 참여하고 배우고 싶습니다.

[저자 초대석] '반전의 희망, 욥' 최형묵
"성경 속 욥은 순종의 인물이 아닌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항변의 상징"

유상호기자 shy@hk.co.kr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성경 '욥기' 8:7)

고린도전서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는 말씀만큼 유명한 성경 구절이다.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긍정적 메시지로 널리 쓰이는 이 말이, 본래는 "독선적 교리에 뿌리를 내린 언어폭력이었다"고 최형묵(48·사진) 천안살림교회 목사는 말했다. 그가 낸 <반전의 희망, 욥>(동연 발행)은 인내와 순종의 인물로 인식되던 욥을 도발과 항변의 상징으로 해석함으로써, 구약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세상의 부조리한 본질을 묻는 책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궁지에 몰리고 절규해도 세상은 굴러갑니다.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문제가 우리 시대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주죠. 욥기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인간의 오랜 물음을 집대성한 책입니다. 욥은 인과응보의 논리로 부조리를 덮으려는 사람들에게, 그 논리와 상반되는 현실을 들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익숙한 성서 해석에 따르면, 욥은 고난을 묵묵히 참고 견뎌 하나님의 위대함을 증거한 인물이다. 그러나 최 목사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공평함을 말할 수 있는 현실은 부조리하며, 그 불공평한 현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주장은 불온하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후략)

기사 출처 : 한국일보 홈페이지
전문 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09/h2009090503514384210.htm



연구소가 기획하고 도서출판 동연이 펴내는 <성서_현대를 읽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 출간됐습니다. 성서와 더불어서 현대를 살고 있는 나를 살피고, 오늘의 인간 문제를 들여다보려는 이 시리즈는 욥기를 새롭게 읽는 첫 번째 책에 이어 앞으로 다음과 같은 책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깊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2권 『무덤에서 모태로 - 생명을 살리는 성서의 지혜』(저자 : 구미정)
            3권 『다니엘과 함께』(저자 : 김응교)
            4권 『구약에서 영성 읽기』(저자 : 김은규)
            5권 『'나는 누구인가' - 성서에서 이웃에 관한 질문들』(저자 : 정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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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소개 : 성서_현대를 읽다 1

『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

지은이_ 최형묵
펴낸곳_ 도서출판 동연
펴낸날_ 2009년 9월 6일
쪽수_ 272쪽
크기_ 148×210mm
장르_ 종교 / 기독교신학 / 구약학
값_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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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소개


『한국 기독교와 권력의 길』

지은이_ 최형묵
펴낸곳_ 로크미디어
펴낸날_ 2009년 6월 30일
쪽수_ 136쪽
크기_ 128×203mm
값_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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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_현대를 읽다 1


『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

지은이_ 최형묵
펴낸곳_ 도서출판 동연
펴낸날_ 2009년 9월 6일
쪽수_ 272쪽
크기_ 148×210mm
장르_ 종교 / 기독교신학 / 구약학
값_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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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5(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설교
본문: 고린도후서 3:4~6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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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꽤 오래 전부터 떠도는 이야기이지만, 천국과 지옥 사이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흉악해지다보니 지옥이 만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옥으로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급기야는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담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천국측에서는 당연히 보수를 요구하였으나 지옥측은 태연히 버팅기고 있었습니다. 천국측은 도리없이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측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 몰라라 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뱃심으로 그렇게 버티는지 천국측이 다그쳐 묻자 지옥측은 세상의 유능한 변호사가 다 자기네 소속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응수했답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특정한 법조인들을 폄훼할 할 의도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 곧 법적 논리가 지니는 근본적 한계를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이 우스갯소리는 법적 정의와 실체적 진실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꼬집고 있습니다.

심오한 법철학 이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법적 논리가 지니는 결함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쉽게 생각해 법적 논리는 그 나름의 일관된 논리와 그 논리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덧붙여짐으로써 완결됩니다. 그 논리는 그것을 주장하는 편에 유리한 조건에 따라 구성되며, 어떤 사건에 관련된 내용들을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명문화된 법조문에 의거해 그 시비가 비교적 분명히 가려질 수 있는 단서들을 중심으로 재구성됩니다. 여기에서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많은 단서들이 명문화된 법조문으로 시비를 가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부차화되거나 아예 사상되는 경우들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법적 소송은 진정한 의미의 실체적 진실보다는 완벽한 논리의 재구성 성패 여하에 그 판결이 좌우되는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더욱이 법적 판결이 이루어질 때 사회적 강자에게는 충분히 배려되는 것도 사회적 약자에게는 배려되지 않는 경우들도 허다합니다. 사회적 유력인사나 재벌 등이 범죄나 비리를 범했을 때 직접적으로 범죄 사건을 구성하는 요인 말고도 사회적 기여도 등이 폭넓게 감안되어 당사자가 형을 선고 받고도 그 집행을 유예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사회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범죄를 범했을 경우 그 동기나 정황 등이 충분히 헤아려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도 아무런 제약 없이 활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소한 좀도둑질만으로 완전히 인생의 행로가 뒤바뀌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법의 집행이 재력이나 권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현실을 말합니다.

법적인 논리 자체가 지니는 근본적인 한계에 덧붙여 그 집행이 재력이나 권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면 법이 곧 정의라는 통념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이 정의를 보증해주는 것도 아니요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주는 것도 아니라면 그 법은 제도적 폭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즘 법을 만들고 그것을 집행하는 일에 관한 논란이 뜨거운 관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수시로 법질서의 준수를 강조하고 있고, 대법관은 ‘촛불재판’에 지침을 내려 개별 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국민의 정당한 권리 주장을 보장하기보다는 권력의 안위만을 보장하려는 의도와 직결되어 있는 사태들입니다.

국회에서는 ‘입법전쟁’이라는 이상한 말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어쩌다 법을 만들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하는 사태에 이르렀을까요? 재벌의 언론사 소유를 가능케 하는 언론관계 법안들은 이미 통과되어 버렸고, 이 밖에 국민의 정당한 권리 주장 및 사생활 보호와 직결되어 있는 집회와 통신 관련법안, 재벌에게 더욱 큰 힘을 실어주는 금산분리 법안, 출자총액 제한 완화 법안, 민생과 직결된 교육세와 농어촌특별세폐지 법안, 수돗물 민영화 법안, 비정규직 법안 등등이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힘있는 이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고 힘없는 서민들을 더욱 옥죌 소지를 안고 있는 법안들입니다. 

법의 집행도, 법을 만드는 일도 온통 힘있는 사람들의 편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법이 곧 정의라는 통념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해 주는 사태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질서의 준수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겠습니까? 그것은 끽 소리 말고 하라는 대로 살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사도 바울의 편지의 한 대목을 함께 읽었습니다. 한편으로 율법의 속박을 강조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그와 대비되는 믿음의 자유를 역설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고린도후서 3:6).

오늘 본문 말씀은 일차적인 맥락이 있습니다. 사도로서 고린도교회 교우들과의 관계를 밝히는 대목에서 이 말씀이 등장합니다. 오늘날에도 추천장 제도가 있지만, 그리스-로마 세계 안에서도 추천장이 널리 통용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와 고린도교회 교우들 사이에 문자로 된 그 어떤 추천장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추천장을 내보여야 하는 관계도, 또는 추천장을 받아 그 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 만큼 서로 신뢰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아주 아름다운 언어로 고린도교회 교우들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표합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작성하는 데 봉사하였습니다. 이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쓴 것입니다.”(고린도후서 3:3).

여기서 사도 바울은 문자로 기록된 그 어떤 추천장이나 편지가 필요하지 않은 까닭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문자로 기록된 문서를 말하면서 한 걸음 나아가 율법의 조문을 유념하고 있습니다.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쓴 것’이라는 말은 율법과 믿음을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 바울의 일관된 논지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따라서 오늘 이 말씀에서 말하는 문자는 율법 조문, 곧 법률 조문을 뜻합니다. 저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오늘의 현실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는 제도적 폭력 내지는 제도적 테러의 결과입니다. 법 조문에 의거한 폭력이요 테러입니다.
  
사도 바울은 때로 법의 운용과 집행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예컨대 사도 바울이 율법의 완성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율법의 긍정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남용을 문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보다 근본적으로 율법의 폐기를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법의 형식 그 자체, 법의 한계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제한적인 의미에서 법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법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하느님의 영을 말하고 있습니다. 법 질서에 순종하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을 따르는 삶을 구원의 희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삶이 우리의 구체적 현실에서 어떻게 가능할까요?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현실적으로 수많은 법의 제약 가운데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느님의 영을 따르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어떤 모양을 띠는지는 끊임없이 물어야 할 과제입니다.

하지만 우선 지금 당장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삶을 결단하고자 할 때 우리의 선택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문자로서 법 조문에 우리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제약하고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법 질서를 준수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삶은 제도나 법조문 또는 문자의 격식에 매여 사람을 소홀히 하거나 죽이는 과오를 범하지 않는 삶입니다. 그 격식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삶이 아니라 그 모든 격식에 앞서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에 이어지는 내용의 말미를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고린도후서 3:17~18).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후손이 모세의 율법을 대할 때 여전히 그들의 마음에서 너울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그 너울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비로소 제거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영으로서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함을 얻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역설합니다.

지금 읽은 이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놀라운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런 힘에나 내맡겨져 굴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누가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놀라운 영광에 이르게 되리라는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 영광에 이르는 삶을 소망하며 진정한 삶의 용기를 얻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웹진 <제3시대>

* 천안살림교회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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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준호
    2009.03.29 22:4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목사님 글 잘봤습니다. 은혜가 깔끔하네요^^

    - 부산에서 이준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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