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하여

채수일
(한신대학교 신학과 | 교수)

1. 이스라엘은 작년 12월 27일 가자 지구에 대한 이른바 ‘캐스트 레드’ 작전을 개시, 지금까지 1천여 차례 이상의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공습으로 주요 시설 대부분이 파괴된 것은 물론, 침공 20일 째를 맞은 1월 15일, 1,0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이 희생당했다. 이스라엘은 수백 톤의 폭탄을 퍼부은 것은 물론 각종 신무기들을 실험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3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희생되었다. 부상자도 5,000명 이상에 이르고 있다. 파괴된 가옥 4천 채 등 피해액은 최소 14억 달러에 이른다.[각주:1] 탱크를 앞세운 지상군의 투입과 시가전은 앞으로 더 많은 사상자를 낼 것이 분명하다. 여성과 어린이들의 희생은 물론, 부상자를 치료할 병원과 의약품의 절대 부족, 물과 전기 부족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명도 위협받고 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미국을 통해 무산시켰고, 유엔의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심지어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 본부에도 포탄을 쏘고, 유엔 구호차량에도 공격을 가했다고 한다.[각주:2] 유럽 연합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관련 당사국들의 자제를 촉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 것은 총선을 앞둔 국내 집권여당의 정치적 상황과 비교적 진보적 입장을 취하는 미국의 새 대통령 오바마를 그의 취임 전, 시험하기위한 의도가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어떤 대통령도 마찬가지겠지만, 대선에서 유대인의 지지를 받은 오바마가 ‘이스라엘 로비’[각주:3]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내는 물론 이스라엘 안에서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공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집단과 개인들이 있겠지만 이스라엘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낼만큼 충분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2. 오늘의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분할과 지배의 역사를 회상할 필요가 있다. 2009년은 국제연합이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 안을 채택한지 62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국제사회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데 있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1947년 11월 29일 뉴욕, 국제연합총회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유대국가(영토의 56%)와 아랍국가(44%)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을 국제관리체제 하에 두기로 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스라엘은 사생아나 다름없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이집트(가자), 요르단(웨스트뱅크)과 함께 나눠먹고 국토면적을 3분의 1가량 늘렸다. 그리고 8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무력에 의해 집과 땅을 등져야 했다.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20년이 지난 후, 1967년 6월, 이른바 제3차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 동예루살렘, 가자지구를 차지했다. 점령은 곧 식민지화로 이어졌고, 우파가 정권을 잡은 이후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1977년에 5천명에 불과했던 이 지역의 유대인 정착민 수는 이츠하크 라빈 노동당 당수가 선거에서 승리한 1992년에 12만 명에 이르렀고, 그 후 10년 동안 다시 두 배나 증가하여 25만 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가자지구 땅의 약 25%를 차지했다. 이스라엘의 점령 통치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저항이 이어졌고, 1987년 이스라엘에 맞선 민중봉기(인티파다)가 일어났다. 그런데 요르단이 웨스트뱅크의 소유권 주장을 거둬들이자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1988년 말 건국을 선포하고 이스라엘을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양국의 평화협상은 1993년의 오슬로 조약으로 결실을 거뒀다. 팔레스타인은 가자와 서안에 자치정부를 수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95년 11월 4일 라빈 총리가 암살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는 큰 타격을 입었다. 후임 총리인 벤야민 네탄야후(1996-1999 재임)와 에후드 바라크(1999-2000 재임)가 점령지 반환을 거부한 것이다. 2001년 총리로 선출된 아리엘 샤론은 자살테러가 증가한다는 핑계로 웨스트뱅크를 재점령하고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2004년 7월 9일 국제사법재판소는 장벽을 불법 시설로 간주하고 철거를 명령했으며, 같은 달 20일에는 국제연합 총회가 찬성 150표, 반대 6표, 기권 10표로 동일한 결정을 내렸지만, 이스라엘은 장벽건설을 계속했다. 이스라엘은 평화협상을 중단하기 위해 2005년 9월 점령 38년 만에 의도적으로 가자지구에서 철수했다. 기막히게 연출된 유대인 정착민들의 가자지구 철수는 2005년 4월 총리로 선출된 에후드 올메르트의 작품이었다. 평화협상의 결렬은 팔레스타인 건국을 불가능하게 하고, 난민과 국경, 예루살렘에 대한 논의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의 정착촌 4개를 제외한 나머지 영토를 모두 합병할 수 있었다.

그 후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한 하마스가 2007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주요세력인 파타와의 내전 끝에 가자를 점령하자 이스라엘은 하마스 정권을 고사시키기 위해 봉쇄를 시작했다. 하마스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서구사회도 식량배급을 끊었다. 봉쇄정책으로 경제기반을 모두 빼앗긴 가자 주민 150만 명 대부분은 8개의 난민캠프에서 유엔의 지원에 의존하여 생계를 이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27일 이스라엘이 갑자기 침공을 시작했던 것이다. 4월 총선을 의식한 이스라엘 집권당의 의도인지, 오바마 미국 대통령 길들이기인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의 침공은 국제사회의 결의도 무시하는 오만함과 팔레스타인 난민들에 대한 만행을 다시한번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힘의 논리가 어떻게, 얼마나 냉혹하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미국의 대외정책에 끼치는 이스라엘 로비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예이다. 1947년 팔레스타인 영토의 44%를 약속받은 아랍 민족이 도대체 어떻게 2007년에는 동예루살렘에 수도도 없이, 난민 문제의 해결책도 없이 영국령 영토였던 시절의 10%에도 못 미치는 땅에 4개의 자치구밖에 차지하고 있지 못한단 말인가?[각주:4]

3. 세계의 양심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래된 정치적, 군사적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길 기원하고 있다. 유럽 연합도 이스라엘과의 동반관계 격상 계획을 잠정 중지했고, 볼리비아, 베네주엘라 등은 국교를 단절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시민단체들이 전쟁의 종식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15일에는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한국기독교회협의회 정의/평화 위원회, 한국교회 인권센터,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한신대학교 학술원 신학연구소, 감신대 기독교 통합학문연구소, 성공회대 신학연구원 등 기독교 단체는 물론, 한국불자교수연합회, 한국이슬람중앙회,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등 관련 인사들이 서울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종교시민단체의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한편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대한 무차별 살상공격과 폭력의 즉각적인 중단, 이스라엘 지상군의 즉각 철수, 이스라엘의 학살행위에 대한 미국의 두둔 철회, 휴전협정의 즉각 수용 등을 종교인으로서의 인도적 정신과 세계 인권선언 정신 위에서 주장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민간희생자들을 위한 의약품과 구호품 지원을 한국정부에 호소하고,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한국교회도 이스라엘의 야만적 침략을 규탄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켜왔다. 한국교회가 이스라엘에 대해서 무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각주:5]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데에는 한국교회의 친미주의, 일제식민지배하의 한민족의 운명과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야기를 동일시했던 전통,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학살당한 600만 명의 유대인들에 대한 기억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홀로코스트’가 지금의 이스라엘의 만행을 정당화하는 역사적 전거가 될 수 없다. 과거의 희생자가 현재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누구도 자신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구원은 기억’임을 스스로 잊어서는 안된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그 과거를 다시 경험하도록 심판받았다’. 뮌헨 근교 다카오에 있는 옛 집단수용소에 걸려있는 철학자 산타야나의 말이다. 희생에 대한 기억이 타인을 위한 배려와 돌봄으로 실현되어야지, 타인에 대한 폭력적인 억압과 지배로 보복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더구나 팔레스타인인은 유대인에 대한 가해자가 아니다.

4. 한국교회는 이스라엘을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서구 그리스도교가 저질러온 이른바 ‘안티 세미티즘’(반유대주의)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한국교회는 자유롭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역사적 고난의 기억을 지금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결부시켜야 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에서의 이스라엘의 만행을 억제하고, 중동에서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나는 한국교회가 다음과 같은 일을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교회는 먼저 고난 받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잠정적으로 중단하는 ‘모라토리움’을 선언할 것을 제안한다. 관광은 이스라엘 3대 산업의 하나로 일 년 관광수입이 30억 달러가 넘는다. 2007년 이스라엘을 방문한 관광객은 전년대비 25%나 늘어난 총 229만 3,700여명을 기록했다. 여기에는 유대인의 친척 방문이 많은 미국이 전체의 24%로 가장 많았고 이어 프랑스, 러시아, 영국 등의 순이다. 이에 비해 동아시아 수요는 전체의 5%에도 못 미치는 11만 2,900명이지만, 이 중 한국은 3만 3,900명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아시아에서 1위를 기록했다. 2006년보다 21%나 성장한 수치로, 주로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한 방문이었다.[각주:6] 성지순례는 소중한 종교체험임이 분명하고, 학문적 연구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중동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한국교회가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잠정적 중지를 선언 할 것을 제안한다. 그 대신에 팔레스타인 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안적 성지순례’를 하면서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과의 사귐과 연대를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은 이스라엘과 1962년에 수교를 했고, 이스라엘에 진출한 기업으로서는 현대종합상사, 대우, 기아, LG, 삼성물산, 효성물산 등이 있다. 1999년 현재 교역량을 보면 수출이 4억 8천 6백만 달러이고, 수입은 5억 6천 2백만 달러로, 한국이 7,600만 달러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의 교역에 압력을 가하고, 이스라엘과 관계된 상품들(이스라엘에 투자하는 회사들의 상품은 물론,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친이스라엘적 영화 등)에 대한 보이코트도 고려해야 한다.

끝으로 한국교회는 이슬람, 유대교와의 신학적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길 제안한다. 근본주의적 그리스도교는 이슬람을 오랫동안 적대시해왔고, 최근 한국을 이슬람이 선교지로 선택하여 공격적으로 선교정책을 추진한다는 소문을 근거로 자칫 현실을 왜곡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 현재 약 117만 명의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이슬람을 배경으로 한 나라에서 온 이주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슬람 적대적인 근본주의적 선교태도는 우리 사회 안에서 또 다른 종교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만드는 종교가 오히려 평화를 해치는 원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이슬람 사이의 갈등은 신학적, 종교적 원인에 의해서만 유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군사적 원인에 의한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불교나 힌두교 등 전적으로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보다 이들 세 종교들 사이의 갈등과 적대감이 더 심한 것은 이들이 어쩌면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들 종교들 사이의 갈등구조를 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선교적 전망을 얻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갈등과 억압과 저항의 역사에 의해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는 것, 그리고 다른 종교를 그 자체로서 정확하게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대화와 증언의 전제인 것이다. 그래야 우월감이나 피해의식 없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를 타종교인의 개종으로 이해하거나, 상대가 듣던 안 듣던 일방적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한, 같은 뿌리를 가진 세 종교 사이의 대화와 화해는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오늘의 이슬람국가들과 서방 세계 사이의 갈등과 분쟁을 ‘문명충돌론’이나 선과 악이 대결하는 ‘성전’으로 왜곡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정치적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신학적 대화는 훨씬 지난하고 긴 과정을 필요로 한다. 한국교회와 신학계는 지금까지 심각하게 숙고하지 못했던 유대교와 이슬람 문제와 대결하게 되었다. 그것이 유감스럽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으로 더 갑자기 강화되었지만, 같은 뿌리에서 나온 세 종교들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는 기회를 한국교회는 선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길을 모색하는데 한국교회가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 웹진 <제3시대>
  1. 한겨레신문, 2009년 1월 16일, 16면. [본문으로]
  2. 한겨레신문, 2009년 1월 16일, 2면. [본문으로]
  3. John J. Mearsheimer and Stephen M. Walt, The Israel Lobby and U.S. Foreign Policy, NY, 2007 참조. [본문으로]
  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 르몽드 세계사, 권지현 역, 휴머니스터, 2008, 154. [본문으로]
  5. 지난 1월 15일 한국-이스라엘 친선협회(회장 튜태영 장로, 전 건국대 부총장)가 주최한 2009년도 신년하례 및 이스라엘의 밤에서 회장인 류태영 장로는 ‘하마스는 그동안 비밀리에 무장해 이스라엘 국민들의 생명을 위협해왔다. 이번 전쟁은 그것을 막기 위한 공격으로 정당방위다... 이스라엘이 그 암세포가 더 커지기 전에 미리 수술을 들어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군사 지도자들이 우리의 혈맹인 미국과 은밀히 의논하는 가운데 대책을 세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우리 민족을 보호해주실 것이다. 우리도 이스라엘 처럼 결단을 내려서 북한의 핵무장을 해제시키는 일에 상당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사상, 2009,2, 70 참조. [본문으로]
  6. 인터넷 여행신문, 2008년 8월 27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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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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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09.03.09 07:0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는 이번 학기에 Northwestern 내에 있는 Garrett Seminary에서 개설되고 있는 ‘War and Peace: Jews, Christians, and Muslims'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Kenneth L. Vaux라는 윤리학 교수님인데 올해 70세인 노학자입니다. 특별히 K. Vaux 교수는 아버지 부시의 91년 이라크 침공이후 종교간 갈등으로 야기된 ‘Ethics and War (or Terrorism)’ 이슈에 있어 많은 저작을 발표하는 그 분야에 있어 손꼽히는 권위자입니다.

    혹, Jews, Christians, and Muslims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 수업시간에 다루는 text에 대한 소개를 잠시 합니다.

    Kenneth L. Vaux, Ethics and the Gulf War: Religion, Rhetoric, and Righteousness (Boulder, Colo.: Westview Press, 1992)

    __________________, Ethics and the War on Terrorism (Eugene, OR: Wipf and Stock Publishers. 2002)

    ____________________, Jew, Chritian, Muslim: faithful unification or fateful trifurcation? (Eugene, Or.: Wipf & Stock Publishers, 2003)

    ____________________, Ameirca in God's World (2009 가을 출판예정)


    Christopher Catherwood, MAKING WAR IN THE NAME OF GOD (New York: Citadel. 2007).

    Karen Armstrong, A History of God: the 4,000 Year Quest of Judaism, Christianity, and Islam (New York: Knopf, 1993)

    ________________, The battle for God (New Your: Alfred A. Knopf, 2000)



    K. Vaux 교수님의 책들은 다소 중복되는 내용이 없지않으나, 한 노학자가 특정분야에 있어 오랫동안 자신의 입장을 일관성을 가지고 전개하고 있다는 측면과 특정시기에 나타났던 역사적 맥락(ex. 91년 이라크 전쟁, 보스니아 내전, 9.11 테러)에 대한 친절한 해설과 다시 그 개별적 사건을 큰 틀안(Jew, Christian, and Muslim 관계)으로 합류시키고 있다는 면에서 돋보이는 성과라 생각됩니다.

    Christopher Catherwood와 Karen Armstrong의 책들은 미국 인문학계에서 Jew, Christian, and Muslim 문제가 등장할때마다 다루어지는 교과서적인 책들입니다. 역시 세 종교간의 계보학적 이해를 기본 바탕으로 냉전이후 구유고연방의 종교전쟁, 팔레스틴 문제, 9.11 테러까지 커다란 틀안에서 엮어냅니다.

    미국신학계에서도 Jew, Christian, and Muslim 문제는 가장 시급한 화두입니다. 각 신학교마다 이슬람과 유대교를 연구하는 과정을 두고 그 분야 학자를 초빙하고 학생들도 이슬람권에서 선발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재학하고 있는 Chicago Theological Seminary만 보아도 다음 학기 부터 유대교분야 석좌교수로 레비나스를 전공한 랍비를 초빙하여 유대교와의 대화를 강화하고 있으며, 옆에있는 LSTC(루터란 신학교)는 몇 년전부터 이슬람권(터키) 학생들을 박사과정에 받아 종교간 이해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과 유대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전무한 한국사회 속에서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발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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