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개가 아니다" 당연한 '인간 존엄'을 되찾기 위한 그의 여정[각주:1]


 

권오윤[각주:2]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대부분 영국 하층 노동 계급에 속한 주인공의 삶을 다룹니다. 주인공의 애정 생활이나, 가족 혹은 유사 가족들과의 교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영국 사회의 모순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죠. 그 중에서도 불합리한 영국 복지 제도에 대한 비판은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구직 활동을 해야 실업 수당을 받을 수 있는 노동 복지의 현실은 <외모와 미소>(Looks and Smiles)(1981) 같은 초기작뿐 아니라, 90년대의 <레이닝 스톤>(1993), <내 이름은 조>(1998) 등의 영화에서도 생생하게 드러난 바 있습니다. 또한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1994) 같은 영화에서는, 지키기 힘든 조건들을 내세우는 관료적인 사회 복지 제도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어렵게 살아가는 싱글맘을 보호하고 돌보기는 커녕, 점점 사회 바깥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통찰을 보여 주기도 했지요.

 

이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도 그런 계열입니다. 40여년간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 온 60대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는 심장 발작을 일으키는 바람에 일을 그만두게 됩니다. 그는 법적으로 보장된 질병 수당을 신청하지만, 담당 직원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실랑이를 벌인 끝에 지급을 거부당합니다. 항소를 준비하면서 실업 급여라도 받기 위해 애를 쓰지만, 절차를 지킬 것을 요구하는 관료적인 영국 복지 제도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직접 찾아간 고용 센터에서는, 불과 몇 분 늦었다는 이유로 고용 센터 상담을 거부당한 싱글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를 도우러 나섰다가 쫓겨나기까지 하지요. 영화는 이 때부터 다니엘과 케이티 두 사람의 삶을 따라갑니다.

 

켄 로치 영화의 주인공들은 하층 계급의 리얼리티에 맞게 인간적인 단점도 많이 지니고 있고, 결국 큰 사고를 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반적인 중산층의 도덕 기준으로 볼 때 많이 부족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이들에게도 충분히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역설하기 위한 설정이지요. 각기 아버지가 다른 4명의 아이를 키우면서도 또 다시 쉽게 사랑에 빠지곤 하는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의 싱글맘 매기, 마약 거래로 모은 돈으로 어머니와 살 멋진 집을 구입할 꿈을 꾸는 꾸는 <스위트 식스틴>(2002)의 리암, 친구들과 함께 값비싼 싱글 몰트 위스키를 훔칠 생각을 하는 <엔젤스 셰어>(2012)의 비행 청소년 로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의 주인공들은 다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잘’ 해 보려고 합니다. 규정과 절차에 질린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그것을 존중하는 가운데,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나쁜 길로 들어서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안간힘을 쓴 대가로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모멸감뿐입니다. 다니엘은 고용 센터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하나 둘씩 어렵게 맞춰 나가지만, 그럴 수록 시스템은 그에게 더 완전한 복종을 원합니다. 그는 아내의 추억이 깃든 집안의 가구를 몽땅 팔아치우지 않고서는 연명할 수 없는 처지에까지 몰립니다.

 

 

아무 기술도 없고 배움도 부족한 싱글맘 케이티는 더 기가 막힌 일들을 당합니다. 그녀는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늘 아이들이 우선이지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마트에서 먹거리와 아이들 물건은 사면서도 개인 위생용품인 생리대와 데오드란트, 면도기 등을 살 돈이 없어 훔치다 창피를 당하기도 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푸드 뱅크에서 장을 보다가 배고픔을 못 이기고 그 자리에서 통조림을 따서 입에 마구 욱여 넣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 참혹한 빈곤의 굴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정직하고 성실한 노력만으로는 절대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돈을 손에 쥐어야만 탈출이 가능합니다. 다니엘의 운명과 케이티의 삶이 달라지는 분기점이 케이티가 성매매에 나서기 시작하면서라는 것은 의미심장한 설정입니다. 자본의 논리와 그것에 기초한 사회 체제는 돈이 없다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걸 서슴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 나온 영국 복지 제도의 뻣뻣하고 관료적인 모습은 영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정 기준을 갖춘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는 보편 복지가 아닌, 차등적으로 적용되는 선별 복지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게 되는 일입니다. 대상자가 얼마나 지원을 필요로 하느냐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지원 대상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기 위한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주업무가 되기 마련이니까요. 우리나라의 초중고 무상급식 논쟁부터 시작하여, 양육 수당의 차별적 적용,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기준 문제, 기초노령연금 차등 지급 등과 관련한 논란들 역시 재정 여력이 없다는 핑계로 선별 복지 개념을 추구하면서 벌어진 것들입니다.

 

모든 사람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국가의 복지 제도는 국민에게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지, 불쌍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시혜 행위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자선과 기부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받는 사람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드러내게 만듦으로써 더 큰 모멸감을 줄 뿐입니다. 먹고 살려면 자존감이라도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푸드 뱅크의 자상한 사람들, 위생용품을 훔친 사실을 눈 감아 주는 점장, 성매매를 알선해 주는 포주 등은 케이티에게 모두 같은 요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니엘 역시 질병 수당이나 실업 급여를 받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절차와 규정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노예처럼 행동하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영화 말미에 다니엘이 겪는 불행은 부당한 처사에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고, 당당한 인간으로 버텨낸 끝에 받게 된 징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고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 힘 있고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다니엘 블레이크의 꿋꿋함과 주저하지 않는 연대 의식에 감명 받는 것에 그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의 안타까운 실패가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와 사회 제도를 만드는 일에 소중한 씨앗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12월 18일자 기사 <"우리는 개가 아니다" 당연한 '인간 존엄'을 되찾기 위한 그의 여정>(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271106)으로 게재된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2. <발레교습소> <삼거리극장> <화차> 등의 영화에서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현재 연출 데뷔작을 준비 중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물 [권오윤의 더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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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




이희승*



  학회 참석 차, 런던을 다녀 온 지 일주일만에 영국에서 들려 온 끔찍한 소식에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 바로, 노동당의 젊은 여성 국회의원인 조 콕스가 백주 대로에서 한 극우주의자, 혹은 극우 성향을 가진 정신병자의 손에 무참히 살해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일명 브렉시트라고 일컬어지는 영국의 EU 탈퇴의 찬반을 놓고 벌인 뜨거운 논쟁과 과열된 정치적 대립이 이렇듯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민낯을 드러내고, 사회운동에서 의회로 선한 영향력을 막 넓혀 가던 젊은 여성 정치인의 생을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잔혹하게 끝장내었습니다. 유월 초였지만 아직 매서운 기운이 남아 있던 거리에서 노숙을 하던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를 활기차게 지나던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거대하고 불균질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런던 거리의 잔상이 아직 가시기도 전에 접한 조 콕스의 피살 뉴스는 휴머니티, 공동체 그리고 이 모두를 집어 삼키는 신자유주의의 경제 논리에 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영화를 읽고 정신을 분석하는 일을 직업삼은 이가 복잡한 경제 논리와 정치 공학으로 파악해야 하는 브렉시트 논쟁에 대해 코멘트를 한다는 것은 무리겠지만,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불거져 나온 대립항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오래된 영화 한편을 다시 꺼내 보기로 했습니다.


  여든의 나이로 올해 두번째 칸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영원한 좌파 켄 로치 감독의 1995년도 작품 <랜드 앤 프리덤 (Land and Freedom)> 이 바로 오늘의 영화입니다. 칸 영화제 대상을 두번 수상한 감독은 열손가락으로 꼽는다니 켄 로치 감독의 기나긴 여정에 대한 칸의 존경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수상이었습니다. 물론,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별로 새롭지 않은 미니멀한 텔레비젼 영화 형식에다가 지난 40년간 지치지도 않고 표현해온 좌파적 세계관을 담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2016)>의 대상 수상을 놓고, 유럽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에게만 유독 편파적인 칸의 심사 기준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만, 저는 이 영화가, 그리고 켄 로치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휴머니즘을 핵심으로 한 좌파적 세계관이 유럽의 문제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본이 아니라, 노동 – 그것이 어떤 종류의 노동이던간에 – 으로 생존을 감당해야 하는 모두를 향한 노감독의 변치 않는 애정은 단순히 정치색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힘과 진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세상 힘든 줄 모르고 천방지축이던 이십대 초반의 저에게 이런 확신을 준 영화가 바로 이름조차도 너무 정직한 <랜드 앤 프리덤>이었습니다. 영국 노동자 데이빗의 눈으로 목격한 스페인 내전의 기록인 <랜드 앤 프리덤>은 ‘나, 내 가족, 내 나라가 우선’이라는 이기적이고도 폭력적인 명제를 훌쩍 뛰어 넘는 타인들 사이의 이해와 연대를 처절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영화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데이빗의 고독하고 늙은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사람이 두셋만 들어서도 비좁게 느껴지는 궁색한 아파트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데이빗은 병원으로 향하던 응급차 안에서 말없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남겨진 유품을 정리하던 이십대의 손녀는 거실 한 켠에 놓인 낡은 가방안에서 오래된 신문기사, 편지 뭉치, 사진들 그리고 빨간 머플러에 담긴 정체 모를 흙 한줌을 발견하지요. 그로부터 손녀는 관객을 이끌고 할아버지의 젊은 날을 향해 시간여행을 시작합니다.    


    1936년 프랑코 장군의 깃발 아래 모여든 파시스트와 왕정주의자들은, 국민 선거로 정당하게 선출된 국민의 대표인 공화주의자들을 무력으로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세계 각지의 공산당, 노동조합, 무정부주의 단체에서는 스페인 땅에서 흔들리고 있는 인간 존엄과 자유를 함께 지키기 위해 힘을 보태기로 하고, 영국 공산당 당원이자 실직한 노동자였던 데이빗도 리버풀에서 이 소식을 듣자마자 무작정 스페인으로 향합니다. 영화의 초반은 이 순진한 혁명주의자들이 인종, 국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치기와 우정으로 서로와 가까워지는 모습을 아기자기하게 그립니다. 혁명은 장밋빛이고 연대는 순조롭고 파시스트와의 전쟁은 귓가를 간지르는 총성으로만 느껴질 뿐이지요.  


  영화가 삼분의 일 지점을 지나는 순간, 세계 각지에서 몰려 든 젊은이들은 타인의 땅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자신들의 희생이 결코 추상적이고 낭만적인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누가 적이고 동지인지 알 수 없는 지옥같은 혼돈과 난장이 눈앞에 펼쳐지고, 조금전까지 담배를 나눠 피우던 친구가 죽음을 준비할 새도 없이 쓰러지는 첫 전투는 모두를 두려움과 비통함 그리고 혼란으로 몰아 넣습니다. 산도 물도 사람도 낯선 스페인의 어느 시골 마을을 파시스트의 손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던 젊은 혁명주의자들의 첫 승리는 이제 마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입장 속에서 지루한 논쟁으로 치환되고, 땅주인으로부터 토지를 부여받아 농사를 지어온 소작인들, 토지를 받지 못하고 부역만으로 살아 가던 농부들, 주인집에서 평생을 봉사하던 하인계급들은 모두 제각각 마을 지주의 재산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를 놓고 격렬한 토론을 벌입니다. 혁명군들 스스로도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을 놓고 편이 갈라지기 시작하지요. 혁명의 정신을 다림줄 삼아 이 작은 소동은 잠시 소강 상태를 맞이하지만, 이 난장토론은 혁명군들의 마음에, 어쩌면 프랑코 군대와 벌이는 전투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역사적 사실과 맥락을 함께 합니다. 스탈린의 개입으로 혁명군은 반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총을 겨누죠. 스탈린의 무기 원조와 병력 지원을 받아서 조직적으로 전쟁을 해야 한다는 스탈린주의자들과 혁명은 조직화되고 권력화되는 순간 내부에서부터 와해된다는 순수 혁명주의자들은 끝내 서로를 밀어내고 적이 되어버립니다.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는 확신과 믿음을 바탕으로 이뤄낸 인간주체적인 연대는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실질적인 욕망 앞에서 흔들리게 됩니다. 공산당원이자 혁명주의자였던 데이빗은 이 두 편을 모두 오가며 자신이 서야 할 곳이 어딘지를 찾습니다. 결국 목표를 위해 정신을 희생하는 스탈린주의자들의 잘 정렬된 진지를 빠져 나와, 경제논리보다는 사람의 노동과 애씀을, 정치권력보다는 사람사이의 연대를 중심에 둔 혁명주의자들의 초라하지만 따뜻한 병영으로 돌아 옵니다. 비극적인 이 영화의 말미, 두 진영의 반목으로 내 몸처럼 애틋한 동지들이 죽어 나가고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데이빗에게 스페인은 남의 땅, 그리고 스페인의 자유는 남의 자유가 되어 버린 듯합니다. 쓸쓸히 영국으로 돌아왔을 데이빗의 모습,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로써 ‘번영과 발전’의 시대를 살아낸 데이빗의 삶을 영화는 과감히 생략합니다. 데이빗이 대지로 돌아 가는 마지막 장례식 장면에서 긴 세월동안 침묵해야 했던 할아버지 삶의 구심점을 이해한 손녀딸은, 젊은 날 데이빗이 연인 블랑카를 스페인 땅에 묻고 돌아서면서 그녀의 무덤에서 가져온 한 줌의 흙을 데이빗의 관 위에 뿌립니다. 그녀의 땅과 그의 땅, 그리고 그녀의 자유와 그의 자유는 한치도 다를게 없는 한몸, 한뿌리라는 켄 로치의 선언이겠지요. 늙은 동지의 무덤가에 선, 백발이 성성한 몇몇 노인들은 데이빗이 젊은 손녀의 손에 남겨 놓은 붉은 머플러를 보면서 주먹 쥔 손을 짧고 힘차게 들어 올립니다. 다시 볼때마다 새로운 출발을 요구하는 이 마지막 장면은, 1939년 끝나버린 스페인 내전에서 남겨진 ‘나와 타인’의 관계에 관한 질문이 데이빗의 삶을 통과해 1995년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의 피날레에서, 브렉시트로 분열된 2016년의 영국땅에서, 그리고 자유시장의 방패 뒤에 숨어 타인의 땅과 자유를 나의 소유로 귀속하려는 탐욕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다시한번 진지하게 성찰되어지기는 바라는 켄 로치의 유산이 아닐까 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진리를 구현할 수 있는 네가지 영역으로 사랑, 예술, 정치, 과학을 꼽습니다. 영화 읽는 사람으로써 이런 영화를 볼때마다, 마음을 다해 나의 문제와 타인의 문제에 관한 최선의 답을 구하다 보면, 이 네가지 영역 모두를 아우르는 – 즉, 뚜렷한 정치적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과학의 객관성과 집요함을 잃지 않으며 소박한 예술적 감흥을 통해 인간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애정을 소통하는 – 진리에 가까운 무언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네요. 영화적 형식이나 주제로 볼때 그다지 화려하거나 새롭지 않고, 주제를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미학적인 의도나 계산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무뚝뚝한’ 영화지만 꼭 한번 다시 보시기를 마음을 다해 감히 권합니다. 



* 필자소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강사 및 정신분석가. 동 대학의 미디어 영화학과에서 각색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시안학과에서 한국 영화와 텔레비젼 드라마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호주 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가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 라캉 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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