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비' 성폭행 사건을 대하며 : 빠지지 말아야 할 '유혹'들




김나미

(미국 Spelman College 교수, 종교학)




     나의 연구실과 강의실이 있는 학교 내의 건물 이름은 코스비 (Cosby)이다. 정확하게는 ’카밀 올리비아 행스 코스비 빌딩’ (Camille Olivia Hanks Cosby Building)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코스비 쇼]의 주인공인 빌 코스비의 부인인 카밀 코스비의 이름이 붙여진 빌딩이지만 줄여서 코스비라 불리고 있다. 이 대학은 1988년에 코스비가족으로 부터 약 200억원 ($20 million)을 기부 받았는데, 미국내 흑인 대학교들이 받은 기부금 중 최고의 액수였다. 그 기부금의 일부로 시설이 좋은 코스비 건물이 지어졌고, 기부금의 또 다른 일부는 매년 ‘코스비 교수’ (The William and Camille Olivia Hanks Cosby Endowed Professorship)를 초빙하는데 쓰여져 왔다 (‘코스비 교수’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문학이나 예술 분야에서 명망이 있는 학자를 일년에 한명씩 뽑아 학교로 초빙해 왔다). 작년 겨울에 빌 코스비의 성폭행 (sexual assault)과 관련된 혐의가 또다시 제기되었을 때 이 대학은 ‘코스비 교수’ 프로그램을 폐지했다.[각주:1] 올 여름 마흔 명이 넘는 여성들이 빌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을 하면서 그의 혐의가 다시 제기되었을 때는 남은 기부금 전액을 카밀 코스비가 세운 클라라 엘리자베스 잭슨 카터 재단 (The Clara Elizabeth Jackson Carter Foundation)에 되돌려준다는 결정을 내렸다.[각주:2]


    코스비의 여성을 상대로 한 다양한 형태의 성폭행은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코스비의 성폭행에 대한 혐의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즈음이다. 지난 십년 동안 몇 명의 여성들이 그의 성폭행 혐의를 제기하고 자신들의 피해경험을 얘기 했지만, 그때마다 코스비 사건은 묻혀버렸다. 2014년에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이 여러 명 나타나면서 코스비 사건은 더 이상 묻혀 버릴 수 없는 일이 되었다.[각주:3] 그동안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피해 여성들의 숫자는 현재 52명 (2015년 8월 25일 기준)이다.[각주:4] 수십명의 여성을 상대로한 성폭행 혐의와 관련해서 빌 코스비는 아직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 기소되지 않은 상태이다.


    코스비의 성폭행 혐의를 접한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반응도 엇갈렸다. 피해자들의 편에 서서 코스비를 비난하는 소수의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혐의를 일단 믿기 어려워 했다. 1980년대 [코스비 쇼]에서 화목한 흑인 중-상류층 가정의 유쾌하고 자상한 ‘가부장’을 연기하면서 ‘아메리카의 아버지’로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코스비의 이미지가 성폭행을 행사한 가해자로서의 코스비와는 도저히 맞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흑인 커뮤니티에서 코스비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흑인들이 코스비를 옹호하거나 보호하려는 것은 ‘존경받고 사랑받는’ 코스비의 이미지 때문 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잔인했던 흑인 ‘폭행’ (lynching)의 역사와도 일련의 관련이 있다. 노예 해방후 남부 지역에서 흑인들을 향한 백인들의 잔인한 폭행과 살인은 흑인 남성들, 여성들, 그리고 아이들에게 까지도 거침없이 자행 되었다. 특히 흑인 남자들은 백인 여성을 ‘강간한 죄’로 폭행 당하고 살해 당했으며, 심지어는 ‘눈으로 하는 강간’ (eye rape)도 수감과, 폭행, 심지어는 살해를 당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흑인 남성들에 대한 미 백인들의 폭행의 대부분은 조작되었거나 거짓 증언의 결과였다. 폭행과 살해를 정당화 하는데 사용되었던 “흑인 남성은 강간범”이라는 이미지가 고정관념이 되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이런 잔인한 역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흑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코스비 역시 그의 피해자들로 알려진 여성들 중 대다수인 백인여성들의 거짓 증언의 희생자라고 여기고 그를 옹호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흑인여성 피해자들과, 피해자들의 증언을 우선 믿고 연대하는 여성들은 도데체 몇 명의 피해자가 나와야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 들일 것인가라고 울분을 토하면서, 코스비가 자신의 행동을 책임 질 것을 촉구해 왔다. 또한,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코스비를 옹호했던 몇몇 유명인사들도 자신들의 코스비 지지발언을 철회하고 있다.  


    미국의 잔인한 흑인 폭행과 살해의 역사가 코스비 사건을 수면으로 떠오르게 하는데 시간을 지체시킨 면도 있지만, 코스비 사건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성폭행의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질문과 시선이 다른 비슷한 사건들의 경우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된다. 성폭행 피해자가 거짓 증언을 하는 경우는 사실 매우 드문데,[각주:5] 다른 범죄들의 경우와 달리 성폭행일 경우 유독 피해자의 거짓 증언의 가능성이 제기되거나, 가해자보다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일이 빈번하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성폭행의 사례들, 특별히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남성들이 가해자일 경우들도 그 예외가 아니다.  


    믿고 뽑아준 국회의원, 믿고 배운 교수, 믿고 따른 교사, 믿고 헌신한 목사, 믿고 맡긴 의사, 믿고 보는 배우, 믿고 안심한 경찰, 믿고 도와준 시민운동가… 만약 그렇게 굳게 믿었던 공동체의 영향력있는 남성이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내가 속한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근절을 위해 지난 수십년간 활동하고 글을 써온 마리 포춘 (Marie Fortune)과 제임스 폴링 (James Poling)은 피해자 여성이 그녀가 속한 공동체 (교회 공동체도 포함해서)의 영향력 있고 힘있는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폭로했을 때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여섯가지 유형의 ‘유혹’에 대해 말한다.[각주:6] 그 “유혹’들은 다음과 같이 나타날 수 있다.  


    1. 믿지 못하는 유혹

    예)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 “그 남자가 그랬다니… 믿을 수가 없어!” “그럴 남자가 아냐!” 


    2. 교회 (공동체)의 이미지를 보호하려는 유혹

   예) “교회를 위해서 일을 더 크게 벌리지 말자.” “모두를 위해서 그냥 조용히 덮고가자.” “우리가 어떻게 이뤄 온 공동체인데... 왠만하면 공동체를 생각해서 이번 한번만 넘어가자.” 


   3. 피해자를 탓하려는 유혹

   예) “그 여자는 왜 그 시간에 그 남자의 사무실에 갔지?” “그 여자가 뭘 바란건 아닌가?” “왜 굳이 따로 만나려고 했지?” “왜 그 여자는 그 시간에 그런 (야한) 옷을 입고 거기에 갔지?”: 


   4. 가해자를 동정하는 유혹

   예) “어쩌다 그렇게 됬을까.” “외로웠나 보다.” “마음이 너무 약해서 만나주다 보니 그렇게 됬다.” “아마 무슨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피해여성의) 유혹에 너무 쉽게 넘어갔다.” 


   5. 가해자를 그의 행동의 결과로부터 보호하려는 유혹

   예) “앞날이 창창한데 한번 정도 실수는 봐줘야지.” “경찰서까지 갈 필요없이 그냥 합의를 하지.” “법으로 처리하면 그 사람과 그 가족은 앞으로 어떡하라고.” 


   6. 값싼 은혜의 유혹

   예) “이제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으니 앞으로는 다시 그러지 마라.” “하나님께 회개를 하고 용서를 구하면 죄사함을 받고, 다 해결 될 것이다.”  

   

   이 여섯가지 유혹들 중 그 어떠한 것도 피해자를 ‘위한’ 유혹은 없다. ‘유혹’ (temptation)이란 단어의 여러가지 어원들 (한 예로 희랍어peirasmos) 을 보면 ‘유혹’은 결과를 수반하는데 그 결과는 잘못된 것이거나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즉, 위의 여섯가지 유혹들 중 한가지에라도 빠지게 되면 잘못된 결과를 가져 오게 되는데, 그 결과는 어렵게 자신의 피해를 폭로한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잘못을 덮어주고 넘어 감으로써 결국엔 그가 또 다른 가해를 행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또한, ‘유혹’에 넘어간 개개인들과 공동체는 성폭행의 악순환을 끊는 것을 방해하고 지체함으로써 넓은 의미에서 공범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유혹들이 되풀이 되면 피해자의 회복은 점점 어려워 지고, 가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들어 내면서 교회든 어느 공동체에서든 성폭행의 악순환은 계속되는 것이다.

  

    만약 공동체가, 특별히 교회가, 가해자와 공범 집단이 되어서 사건을 은폐하는데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성폭행의 악순환을 끊어 내는 것을 우선 순위로 여긴다면,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유혹들을 떨쳐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여섯 가지의 ‘유혹’을 여섯 형태의 ‘용기’으로 바꾸는 것이 그 첫 단계가 될것이다.  


    한국어사전은 ‘용기’를 날랠 용 (勇)과 기운 기(氣)를 써서,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라고 적고 있다. ‘용기’라고 번역되는 영어 단어인 ‘courage’는 심장, 즉, 마음과 연결되는 단어이다. Courage의 어원인 ‘cor’는 라틴어로 심장/마음 (heart)을 뜻한다. 지금은 그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용기(courage)라는 단어는 원래 “온 마음 (heart)을 다하여 내 생각을 말하는 것”[각주:7] 이란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혹’ 대신에 어떤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피해자의 얘기를 듣고 믿어주는 용기 

    피해자를 탓하지 않는 용기 

    상황을 덮으려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막는 용기 

    공동체나 조직의 이미지 유지보다 피해자의 편에 서는 용기 

    지위와 영향력에 상관없이 가해자가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용기 

    가해자에게 값싼 은혜 (빠른 용서)를 퍼부어 주지 않는 용기.  


    그런데, 공동체를 이루는 개개인들의 이러한 용기는 제도적으로 뒷받침 되어져야 한다. 피해자에게는 정의로운 해결과 회복을 가져다 줄 수 있고, 가해자에게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그리고, 공동체 역시 적합하고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을 경우에 그 담당자들도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가 개개의 교회와 교단 및 일반 사회에 정착되어져야 한다.  


     이렇듯이 개개인이 ‘유혹’에 빠지지 않고, 공동체 및 사회의 제도가 제대로 적용되고 정착되는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뿌리 깊은 여성혐오, 성차별, 남성우월주의, 위계질서가 왜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문제인지를 묻는 비판적인 교육이다. 개개인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고 용기있게 행동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와 지속적인 교육이 병행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위의 여섯가지의 유혹들이 더 이상 ‘유혹’이 될 수 없고, 여섯가지의 ‘용기’가 특별한 것이 아닌, 그저 내가,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이 될 때 성폭행의 근절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코스비빌딩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계속해서 물을 것이다. 데이트 폭력을 포함해서 성폭행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 지고 있는 대학 캠퍼스와 사회에서 학교는, 교수들은, 직원들은, 동창들은, 종교기관들은, 사법기관들은, 그리고 사회 구성원 개개인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또 다른 코스비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누구든지 빠질 수 있는 유혹과 누구나 가져야 할 용기들에 대해 계속해서 대화해야 할 것이다. 갈길이 멀지만 바로 지금 여기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http://www.huffingtonpost.com/entry/spelman-college-drops-bill-cosby-professorship_55b4417ee4b0224d8832819b [본문으로]
  2. http://time.com/3972281/bill-cosby-spelman-college/ [본문으로]
  3. http://www.slate.com/blogs/browbeat/2014/11/21/bill_cosby_accusers_list_sexual_assault_rape_drugs_feature_in_women_s_stories.html [본문으로]
  4. http://starcasm.net/archives/306591 [본문으로]
  5. http://web.stanford.edu/group/maan/cgi-bin/?page_id=297 [본문으로]
  6. Marie M. Fortune and James Poling, “Calling to Accountability: The Church’s Response to Abusers,” in Violence Against Women and Children: A Christian Theological Sourcebook, ed. Marie M. Fortune and Carol J. Adams (New York, NY: Continuum, 1995). [본문으로]
  7. http://www.pbs.org/parents/experts/archive/2010/11/courage-is-a-heart-word-and-a.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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