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 서구신학을 쏘다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자기의 윤리 vs. 타자의 윤리

‘자기의 윤리학’[각주:1]으로 세상의 눈물과 회한을 닦을 수 있을까? 레비나스의 의심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도덕적 규범을 강조하고 개인을 그 규범에 종속시키려했던 기존의 윤리에 맞서 니체-푸코-들뢰즈로 이어지는 계열이 ‘자기의 윤리학’을 전개했다면, 레비나스는 ‘타자의 윤리학’을 제안한다. 그의 시도는 근대적 주체가 지녔던 자율성(autonomism)에 반하는 타율성(heteronomism)의 추구라 할 수 있다.

윤리는 그동안 세상의 억압과 불평등과 불의에 맞서는 자율적 주체의 윤리적 행위가 무엇인지 물어왔다. 그러나 타자의 윤리학은 그 주체에서 빠져나올 때 비로소 윤리적 행위가 작동된다고 주장한다. 니체류의 윤리학이 서구 형이상학이 시도했던 초월에 반대하여 자기 안으로의 내재를 전략적 도구로 취했다면, 레비나스는 오히려 서구 형이상학의 초월개념에 대한 적극적인 윤리적 해석과 실천으로 그것이 지녔던 병폐를 극복하려 했던 것이다. 즉, 초월적 세계 저편에 있는 타자를 통해 바로 이곳에 있는 우리를 다시 발견하고, 이곳의 문제를 다시 바라본 것이다. 이때의 타자란 레비나스에 의하면 억압받고 소외된 경계 밖의 사람들이다.[각주:2]

결론과도 같은 서론으로 ‘자기의 윤리’와 ‘타자의 윤리’간의 굵직한 논쟁거리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자기의 윤리와 다른 레비나스로 대표되는 타자윤리의 쟁점을 조목조목 열거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미국 철학계와 신학계에서 레비나스에 대한 연구는 보통 세 가지 측면에서 전개되고 있다. 하나는 후설-하이데거-레비나스로 이어지는 현상학적인 계보를 따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레비나스에게 영향을 주었던 로젠츠바이크로 대표되는 유대교 전통을 이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레비나스가 직접 경험한 아우슈비츠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영향, 그리고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다.

필자는 이번 웹진부터 네 차례에 걸쳐 레비나스로 대표되는 타자의 윤리에 대해 다룰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전통적인 레비나스 연구의 경향을 따르지도, 레비나스에 대한 주례사적 비평도 지양할 것이다. 그보다는 레비나스의 서구형이상학을 향한 비판, 신학이 어떻게 악(고통)을 정당화 시키는 기재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추적, 그 고리를 파헤쳐가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포물선을 그렸던 레비나스의 타자론과 본회퍼의 타자론 간의 비교, 그리고 최종적으로 타자의 윤리가 기독교 윤리학 안에서 차지하는 함의가 무엇인지를 예단하는 것이 이번 시리즈의 전체적 그림이다.

그 전에 일종의 워밍업 차원에서 지난 웹진에서 살펴보았던 라깡의 사유와 레비나스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이는 서구 전체성을 비판하는 레비나스가 지닌 비난의 탄착군이 어느 지점에서 형성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

레비나스와 라깡

근대는 인간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사한 시기였다. 계몽이성의 빛은 몽매한 중세의 두터운 장벽을 허물며 새로운 시대를 앞당기는 역할을 하였고, 인류에게 번영과 진보를 약속하는 장미빛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근대는 인간을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따른 생존경쟁의 난투극 속으로 몰아넣은 시기이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을 주체와 객체로 분류하고 주체로 하여금 대상을 지배하게 하는 논리가 싹튼 시기이기도 하다. 주체와 객체간의 간극은 헤겔에 의하면 변증법적 발전과정을 거치며 진화하여 마침내 절대정신에 도달한다. 이것이 바로 근대의 형이상학이 지녔던 주술이었다.[각주:3] 레비나스는 이를 서양철학이 걸어온 ‘전체성의 향수’ 라 지적하고, 개인들의 고유성을 말살하고 타자를 제거하는 폭력적인 개념이라 비판하면서,[각주:4] 홀로코스트를 서양철학의 전체성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으로 지목한다.

우리는 지난 호 웹진에서 라깡에게 있어 타자가 상징계 속의 타자와 실재계 속 타자로 분류되고 있음을 알았고, 상징계속 타자를 향한 욕구를 욕망, 실재계속 타자를 향한 욕구를 욕망과 구분하여 향유라고 불렀음을 기억한다. 라깡적으로 해석하면 홀로코스트는 전체성의 철학이 실재(the Real)를 드러낸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 유토피아를 창조하겠다던 현실의 기표와 욕망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실재였는지가 확인되었던 순간이, 이성의 법칙이라는 상징적 질서 안에 잠재되어 있었던 실재계속 대상소타자가 우리에게 불쑥 다가 온 것이 바로 홀로코스트이다.

이렇듯, 라깡이 말하는 타자성의 진면목은 상징계속 타자에 갇히지 않는다.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타자가 아니라, 향유의 대상으로서의 타자는 (레비나스의 표현대로라면 동일성의 형태로 환원되지 않는) 연기되면서 미끄러져가는 그 무엇이다. 그렇다고 볼 때, 라깡이 말하는 향유의 대상으로서의 타자는 기존의 서양철학의 전체성으로 타자를 포획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레비나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굳이 양자를 비교하는 이유는 서구 전체성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두 사람은 일정 부분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도 구체적 분석 틀에 있어서는 다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레비나스와 라깡은 공히 서구 철학의 전통에서 등장하는 주체에 대한 타자의 전유와 배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동일성의 폭력안으로 말려들어가지 않는 타자를 다시 정초하려 했다. 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 양자는 길을 달리한다. 라깡이 의미의 결정을 계속 연기시키며 미끄러져가는 타자를 상정함으로 전체성으로부터의 탈주를 시도한 반면, 레비나스는 타자를 급격한 초월, 즉 계시의 단계까지 끌어올림으로 현실을 지배하는 전체성과의 과격한 분리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다르다. 이러한 전 이해를 갖고 이제 본격적으로 레비나스의 전체성 비판, 특별히 서구 기독교가 어떻게 그것의 옹호에 기여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서구신학은 어떻게 전체성을 옹호하였나?

신정론(Theodicy, 神正論)은 의인에게 닥치는 고난과 악의 명백한 현존 속에서도 신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한다는 사실, 그런 신의 전능과 계획에 의해 악과 고난은 현실적 차원이 아닌 신의 섭리가 작동하는 영역으로 고양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이론이다. 근대적 이성이 사상적인 측면에서 주체의 타자를 향한 동일성의 폭력을 정당화한 사례라면, 그리스도교 신학의 신정론은 인간의 삶 속에서 부딪치는 삶의 타자들(죽음, 고통, 악)을 신앙의 동일성안으로 끌어들였던 또다른 폭력이었다고 레비나스는 평가한다.[각주:5]

돌이켜보면 서구 그리스도교 발전과정에서 등장하는 악의 문제와 고통의 문제에 있어 각 시대마다 다른 해법이 있어왔다고는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신정론적인 전제로 묶을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제도화 과정에서부터 중세까지 교회를 지배했던 계시신학,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바탕으로 중세신학을 완성한 스콜라철학은 자연의 조화를 인식함으로써 신에 이를 수 있다는 자연신학을 낳았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인간이 이성을 통해 신을 인식할 수 있다는 스콜라적인 신학을 부정하고, ‘오직 믿음으로’ 신에 이르는 ‘십자가 신학’을 모토로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다시 꾀한 패러다임 전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루터가 신앙의 영역에서 이성을 추방시켰다면, 칸트는 이성의 영역에서 신을 제외시켜 물자체의 영역으로 등극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양자는 라깡의 표현대로라면 ‘거울단계’에서 엄마와 아이가 상상적 양자합을 이루는 것과 같이 서로에 기대고 있다. 하나는 초월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하나는 내재라는 이름으로 달리 불릴 수 있겠지만 ‘궁극적 실재의 다차원적인 존재방식(틸리히)’ 이라는 측면에서 양자는 서로의 거울이며 그림자이다. 헤겔은 이런 해묵은 종교 갈등을 ‘세계는 정신의 자기 전개과정’이라는 말로 통합하려 했던 인물이었다.

이렇듯 그리스도교 발전과정에서 치열하게 신론이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고난과 악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양자의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다. 범박하게 표현하면, 신의 섭리와 은총 안에서 예수 잘 믿으면 보상을 받는다는 주장과 신이 우리의 고난과 함께 참여하면서 우리를 통해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 간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리고 양자의 정점에는 공히 십자가신학이 있다.[각주:6] 어쩌면 십자가 신학은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발생했던 악의문제를 신앙인들이 직면할 때 마다 그 사건과 신앙을 하나로 묶어주어 그리스도교의 정체성과 권위가 훼손되지 않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준 부적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레비나스는 지난 세기에 있었던 양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히로시마 등 총체성에 입각한 전체주의의 망령을 목도한 후, 고통의 신학화를 통해 이루어낸 고난의 유의미성, 절대정신으로 나가기 위한 발전단계로서의 고난, 신적 섭리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난 등 다양한 이름으로 포장되는 고난에 대한 낙관적 해석을 거부하면서 최종적으로 신정론의 폐기를 선언한다.[각주:7] 만일 레비나스의 지적처럼 신정론이 현재의 고난을 미래의 축복으로 연결시킴으로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고난을 신앙적으로 무마시키는 역할을 했다면 맑스의 종교 폄하발언, 즉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표현은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비판들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해야하는가? 다음 호 웹진에서 레비나스 사상을 대변하는 키워드인 ‘제일철학으로서의 윤리학’과 ‘타자의 얼굴’을 고찰함으로써 서구신학 내지 서구윤리에 대한 반성을 도모하고자 한다.

ⓒ 웹진 <제3시대>


  1. 웹진 제3시대 29호에 실렸던 필자의 졸고 “자기의 윤리I-주체여, 안녕히!”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235)와 30호 기사 “자기의 윤리II-주체여, 다시 한번!”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241)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2. 임마누엘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강영안 옮김 (서울: 문예출판사,1996), 101. [본문으로]
  3. 근대의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많은 글들이 있다. 대부분 백인에 의한 백인의 자기비판 내지 1세계 관점에서 풀어보는 해법으로 머무는 경우가 허다하다. 얼마 전 출판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는 『대학의 몰락』(동연, 2011)의 저자인 시카고 신학교 서보명 교수는 1.5세 이민자의 눈으로 서구의 근대성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 받는 학자이다. 그의 저서 A Critique of Western Theological Anthropology: Understanding Human Beings in a Third World Context. (New York: Edwin Mellen Press, 2005)은 이러한 취지를 잘 살린 책이고, 특별히 이 책의 1장 The Project of Modern Theological Anthropology: The Question of Freedom 에 근대성의 특징과 문제점에 대한 그의 신학적 분석이 잘 전개되고 있다. [본문으로]
  4. “헤겔철학에게서 정점에 이르는 서양철학이 모두 그렇다. 헤겔은 철학 그 자체의 정점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어떻든 영의 차원이든 분별력의 차원이든 모두 앎으로 해결하려고 한 서양철학 속에서는 어디서나 전체성의 향수를 볼 수 있다. 전체성이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그것이 곧 죄인 것처럼 알이다.” -임마누엘 레비나스, 『윤리와 무한』,양명수 옮김 (서울: 다산글방,2000), 98. [본문으로]
  5. Emmanuel Levinas, Entre Nous: On Thinking-of-the-Other. Trans. Michael B. Smith & Barbare Harshav.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8), 96. [본문으로]
  6.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책 중에 미국 신학계내에서 십자가신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몇 권의 책을 아래에 소개한다. /// _Jennings, Theodore W., Jr.Transforming Atonement: A Political Theology of the Cross.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9.(한국에서는 퀴어신학자으로 알려진 시카고 신학교 제닝스 교수의 주된 관심사는 바울과 제국과의 관계를 데리다, 지젝, 맑스의 이론을 갖고 바라보면서 신자유주의 체제를 신학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이러한 틀속에서 제닝스 교수는 십자가 신학이 어떻게 서구문명의 발전과정에서 자리매김을 해왔는지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 _ Douglas, Kelly Brown. What’s Faith Got to Do With It? Black Bodies/Christian Souls. N.Y: Orbis Books, 2005.(유명한 The Black Christ 의 저자이기도 한 Kelly Brown Douglas는 이 책에서 흑인에 대한 lynching과 십자가 신학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교의 대속론이 흑인들 스스로에게 체제의 폭력을 견디고 순응하게 하는 기재로 사용되었음을 밝힌다.) /// _Terrell, Joanne. Power in the Blood?: The Cross in the African American Experience. N.Y: Orbis Books, 1998.(시카고 신학교에서 윤리와 조직신학을 강의하고 있는 Terrell은 유니언 신학교에 있는 흑인신학의 대부 제임스 콘의 직계제자이다. 그녀는 Womanist 관점에서 십자가 신학을 gender와 race, 그리고 power의 문제로 돌려 바라보고 있다.) /// _Westhelle, Vitor. The Scandalous God: The Use and Abuse of the Cross.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6(시카고 루터란 신학교에 있는 Vitor Westhelle는 미국신학계에서도 보기드문 헤겔좌파 신학자이고 브라질에서 신학수업을 받은 탓에 해방신학에도 조예가 깊으며 유럽에서도 활동한 바 있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이런 이력을 바탕으로 Vitor는 다양한 문화에서 이해하는 십자가신학에 대한 풍부한 해석을 이 책을 통해 선사한다) /// _Joh, Anne. Heart of The Cross: A Postcolonial Christology. Louisville: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6(시카고인근 에반스톤에 위치한 Garrett신학교에서 Theology를 강의하는 Anne Joh교수는 Drew의 Catherine Keller의 제자이고, Heart of The Cross는 그녀의 박사논문으로 출판 당시 신학계에 화제가 되었던 책이다. Anne Joh교수를 언급할 때 흔히 ‘정(jeong, 情)의 신학’을 먼저 거론한다. 전통적인 서구 십자가 신학에 대한 포스트콜로니얼니즘적인 해석(혹은 여성신학적 해석)을 통한 기독교 구원의 재발굴은 한인 이민 2세로 미국땅에서 신학을 하고 있는 그녀의 고투와 맞물려 많은 착상과 울림으로 미국 신학계로 번져가고 있다. /// _Trelstad, Marit. ed., Cross Examinations: Readings on the Meaning of the Cross Today,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6.(Trelstad가 책임편집에 참여한 이 책은 근래 일고 있는 십자가신학 논쟁을 총망라한 책이라 볼 수 있다. 독일의 Moltmann 교수, 자칫 미시적 차원으로 함몰될 수 있는 목회상담의 영역을 정치와 사회 시스템 등 거시적 차원으로 확대시켰다고 평가 받는 Garrett을 상징하는 미국 목회상담계의 거목 James Poling, 뉴욕 유니언 신학교의 명예교수 Delores S.Williams 등 원로들의 글 뿐 아니라, 시카고 신학교의 Joanne Terrell, 주목받는 일본계 신학자 Rita Nakashima Brock 등 신.구 학자들이 공동으로 이 책에 참여하여 십자가신학의 이슈들을 다시 써 내려간다) [본문으로]
  7. Emmanuel Levinas, Entre Nous: On Thinking-of-the-Other. Trans. Michael B. Smith & Barbare Harshav.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8), 9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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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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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17 15:0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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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의 실수로 이번 원고에 지난 호 원고 한 문단이 삽입돼 있었습니다. 지금은 수정했습니다만, 본의 아니게 혼동을 드린 것 같네요. 이상철 선생님과 이미 글을 읽으신 모든 분께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타자 I :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따라서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 이제 타자(他者, the other)다!

 

타자에 대한 논의만큼 21세기에 유행처럼 번지는 담론이 있을까? 하지만, 타자에 대한 이론만큼 논란이 많은 경우도 드물어 타자에 대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나 그에 대한 책을 접하는 독자들 모두 왕왕(아니, 대부분) 혼란에 빠지는 경우를 목격한다. 필자 역시 타자에 대한 윤리를 주제로 논문을 진행시키고 있는데, 타자에 대한 사상적, 신학적 의미를 논하기 이전에, ‘타자가 누구이고 무엇이냐?’는 첫 번째 질문에서부터 말문이 막힌다. 우리가 이런 문제에 봉착하는 이유는 타자에 대한 논의가 굉장히 복잡하고 길었던 사상사의 전개과정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타자에 대한 논의가 지난 호 웹진에서 살펴보았던 주체에 대한 논의, 다시 말해 자기에 대한 이해와 맞닿아 있기에 그렇다. 타자의 반대말이 자아, 주체 아닌가? 자기를 어떻게 무엇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타자에 대한 규정과 이해가 다르다. 저마다의 입장과 맥락에 따라 저마다의 주체가 성립하고 그에 대한 대립각으로 다종의 타자가 존재한다고 볼 때 타자에 대한 논의는 그야말로 타자적이다.

 

본격적으로 타자의 윤리를 논하기 이전에, 사상사에 등장했던, 촘촘한 의미의 두께를 지닌 타자에 대한 굵직했던 흐름을 살펴보는 시간을 차례로 갖는다. 우선, 이번 웹진에서는 근대 이전의 타자론에 대한 부분을 다룬다. 특별히 몰락하는 중세를 배경으로 쓰여진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통해 중세인들이 지녔던 타자에 대한 배제의 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그리고 타자의 출현이 중세의 몰락과 근대의 도래라는 역사적 전환기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칸트와 헤겔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의 타자론이고, 마지막은 프로이트와 라깡으로 이어지는 타자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논의는 거칠고 매끄럽지 못하다. 그것이 거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필자가 지닌 타자에 대한 이해가 아직 과문하기에 그렇다. 비록 지금은 이처럼 남루하지만, 언젠가 너덜너덜 이곳 저곳에 붙어있는 타자론을 유려한 칼솜씨로 깔끔하게 발라낼 그날을 꿈꾸며이제 타자에 대한 여행을 시작한다.   

 

 

 

투박하게 읽어내는 근대이전의 타자론

 

서구 기독교 발전과정에서 여러 교리 논쟁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신과 인간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관한 해석을 둘러싼 싸움이 아니었나 싶다. 그것은 흔히 내재와 초월로 불리며 고대의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의 논쟁에서부터 20세기 바르트와 브루너의 자연신학 논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학 논객들에 의해서 계속 이어져 왔다. 이처럼 신의 내재와 초월에 대한 해석은 당대 신학의 최대 이슈였으며 앞으로도 마땅히 그러할 것이다. 중세교회를 바라보는 이해의 창도 커다란 틀에서는 위의 도식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초월적 신에 대한 일방적 독주가 중세 1000년을 내내 지배했다는 말이 옳다. 이 시기에는 세상과 유리된 전적타자로서의 신에 대한 믿음과 순종만이 허락되었고, 체제(로마교황청)밖에서 제공되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그것이 무엇이든 에어리언으로 취급되었다. 그리하여 중세인들에게 타자란 두려움, 죄악, 악마, 공포, 마녀, 처단 등등의 말로 대치되면서 중세 특유의 타자포비아를 낳았다.   

 

타자에 대한 의식이 광기적으로 작동하고 합리적인 타자에 대한 접근이 지연되었던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언급하면 중세인들이 지녔던 세계관에 기인한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세계를 아름답고 친근하고 낙천적으로 이해한다. 세계관이 이처럼 따뜻했던 이유는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되는데, 하나가 공동체 자체의 안정성(폐쇄성)이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늙고 죽음을 맞이하는 인생의 모든 회로가 중세 전 까지는 모두 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졌고 익숙한 구성원들 사이에서 발생하였다. 이렇듯 끈적하고 친밀한 횡적 공동체인 가정과 사회와 교회, 그리고 국가는 종적으로 하늘과 맞닿아 있다. 단일한 공동체성이 첫 번째 특징이라면, 하늘()과 관계맺는 무한에 대한 집단적 신뢰(믿음)가 중세 세계관의 두 번째 특징이었던 것이다. 근대 이전은 신과 인간 사이의 불연속성, 즉 무한에 대한 믿음이 당대를 지배했던 사회이고, 무한한 하나님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인 계시(은혜)에 의해 인간은 신과 만났다. 이러한 매커니즘에 의해 중세의 (폐쇄적)공동체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고, 그 중심에는 어김없이 교회가 위치하였다.

 

만일, 이런 안정된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타자)이 등장하면 무차별한 숙청이 자행된다. 중세의 마녀사냥이 그 좋은 예이고, 특별히 무한한 하나님의 자기현현 방식인 계시에 반하는,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시도는 그것이 무엇이든 감시와 통제와 제재를 받았다. 이를 통틀어 신비주의(mysticism)’라 부르고, 그것을 중세교회는 이단이라 정죄하였다. 근대이전 타자는 바로 이단자였던 셈이다. 전적 타자인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접속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에 기인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더 이상 피조물들의 타자로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인간 역시 하나님에게로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두렵고 위험한 존재로 다가왔겠는가? 이처럼 타자에 대한 억압과 배제가 사회전체를 지배했던 사회가 중세였고, 중세의 위기는 이 공식에 균열이 가해지면서 도래하기 시작하는데……

지금부터 다룰 <장미의 이름>은 중세교회가 지녔던 타자규정의 매커니즘을 파악하기에 유용한 자료이고, 중세가 지녔던 타자에 대한 증오의 두께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케해주는 흥미로운 해석이 될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따라서

 

쟝자크 아노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져 상영된 바 있는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은 단순한 소설이기에 이전에, 중세 말 흔들리는 교회의 권위와 위기속에서 이를 수호하려는 수구 기독교 세력이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학하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14세기 중세교회가 상한가를 치고 십자군 원정의 실패 후 차차 몰락의 길로 접어들던 그 무렵, 한 수도원(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이에 윌리암 수사(영화에서는 숀 코너리가 배역을 맡음)가 사건의 해결을 위해 급파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범인은 수도원 도서관 사서로 40년 넘게 수도원을 장악했던 요르게 수도사였다. , 요르게는 사람들을 하나씩 죽였을까? 그리고 죽임을 당했던 인물들이 넘었던 금단의 벽은 무엇이었나? 이 질문은 소설의 주제이면서도 동시에 중세가 당면했던 교회의 위기와 세계관의 붕괴를 바라보는 중세 교권주의자들의 초조와 불안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장미의 이름’ 책표지


우선, 사건의 시작이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벌어진 것이 흥미롭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서방교회 수도원 운동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는데 생활의 특색이 켈틱(Celtic) 수도원의 그것과 유사하였다. 켈틱 수도원은 영국의 웨일즈와 아이랜드에서 발달한 수도원 유형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은 묘하게도 어거스틴과의 인간론 논쟁 이후 이단으로 몰린 펠라기우스가 숨어들어간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각주:1]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원죄교리를 배격하였다. 무엇보다 그에게 있어 은혜란 인간의 이성을 개발시켜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은혜는 인간성의 한 부분이지, 인간 본성에 예외적으로 부가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펠라기우스의 이러한 견해는 제국의 질서를 신의 질서로 등치시키기 위한 로마제국의 기독교 국교화 정책에 반하는 발언이었고, 무엇보다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제도기독교의 입장에서도 마땅히 제거해야 할 불온 사상이었다. 이렇듯 교회사의 전개과정에서 변방으로 내몰리고 이단으로 정죄당했던 펠라기우스가 자리잡았던 곳에서 베네딕트 수도원의 전통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펠라기우스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자연신학을 신봉하였고, 창조의 선함과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들은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학문을 장려하였고, 창조의 선함을 믿기에 금욕생활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지도 않았으며, 피조세계의 건강함을 근거로 노동의 신성함도 이끌어낸다.

 

사실, 펠라기우스와 어거스틴의 대결은 그 전시대에 있었던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 논쟁, 중세로 넘어가서는 유명론과 실재론 논쟁으로 이어지며 등장했던 초월과 내재를 둘러싼 오래된 지적, 신학적 전통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그리고 양자간의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긴장과 갈등은 토마스 아퀴나스로 대표되는 스콜라 철학에 와서 표면적으로 봉합되고 종합되었다. 스콜라철학은 그간 교회사 전통에서 배제되어왔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자연현상과 창조현상을 이해하는 도구로, 아울러 세상속에 내재하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접촉점으로 인간 이성을 내세웠다. 그 후 억제되어왔던 인간이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점차 (교황청입장에서 볼 때) 암세포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하면서 1000년의 전통을 자랑하던 중세교회는 서서히 몰락의 수순을 밟게 되는데[각주:2]

 

소설 속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사건은 수도원내 도서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의 유일한 필사본을 둘러싼 비밀로부터 연유한다. <시학> 2권은 희극론, 즉 웃음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살해당한 사람들은 웃음은 예술이며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의 내용을 알고 이에 접근했던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요르게는 왜 그들을 죽이면서까지 <시학> 2권의 존재를 감추려 했을까? 이는 혹 중세 세계 전체를 감싸고 있었던 신과 인간사이의 불연속성, 즉 무한에 대한 믿음을 수호하기 위한 중세 교회의 최후 발악이 아니었을까? 요르게로 대표되는 중세교회의 교권주의자들에게 있어 웃음이란 엄숙과 경건을 저해하는 요소이며, 교회에 대한 권위와 두려움마저 소멸케하는 위험인자이다. 그리하여 필경에는 신적 계시의 위엄과 무한한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파괴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기에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된다. 만약 이 사실이 만방에 알려졌을 경우 교회를 위협하는 많은 이단(타자)들이 창궐할 것이고 그 전에 미리 이것을 차단하여야 한다.[각주:3]

  

요르게 수사는 몰락하는 중세교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로서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의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한 투쟁를 벌이며 온몸을 바쳐 잠재적 이단의 등장을 막고자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요르게의 발악은 이미 시작된 근대를 향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이키기에는 너무 역부족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그에 따른 타자의 등장은 <시학> 2권을 감추는 것만으로 멈춰서지 않는다.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이미 전방위적으로 중세의 붕괴는 시작되고 있었고, 그것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타자의 출현을 의미하였다. 

 

무너지는 중세, 도래하는 근대

 

중세의 붕괴와 근대의 도래를 규정하는 여러 가지 입각점이 있다. 문화사적으로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부터 중세에 대한 균열과 근대를 여는 단초가 마련되었다고 주장 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에 따른 봉건경제의 붕괴, 이에 따른 초기 자본주의의 등장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적으로는 종교개혁의 후폭풍이라 할 수 있는, 수 백년간 진행된 각종 종교전쟁들로 인한 유럽대륙의 국민국가화와 프랑스 대혁명의 발발로 야기된 고양된 시민의식을 들 수 있다. 이는 중세 교회와 봉건영주의 전횡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태동과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이 밖에도 각 분야별로 중세의 종말과 근대의 도래를 예감케하는 여러 전조들을 거론 할 수 있겠지만, 특별히 타자론의 관점에서 근대의 시작은 물리적으로는 지리상의 발견, 정신사적으로는 칸트와 헤겔로 이어지는 지적전통에 기반한다. 지리상의 발견을 통한 횡적 세계의 확대는 안정적이고 폐쇄적 공동체이었던 중세사회에 틈을 내면서 다름에 대한 공포, 충격, 그를 대하는 자세, 대책 등을 한꺼번에 모색하게 만들었다. 상상해보라! 평온했던 우리 마을에 배를 타고 온 노란머리 하얀피부 (검은 머리 검은피부 혹 노란피부)의 사람들이 등장한다면? 그 다름과 차이에 대한 해석, 타자를 하나로 엮어내는 방식, 타자에 대한 논의의 집대성, 내지 (당대 유럽식) 타자에 대한 해법의 완결판이 바로 헤겔철학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1. Philip Newell, A Celtic Spirituality, 정미현 역, 『겔트 영성 이야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중 1장 “창조의 선함에 귀기울이기: 펠라기우스”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2. 소설 속 요르게는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창세기는 우주의 창조에 대해 모자람 없이 설명하고 있는데도 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는 자연과학으로 우주를 음산하고 불결한 언어로 나타내고 있소”-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이윤기역 (열린책들, 1989), 533. [본문으로]
  3. 계속 요르게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소설 속 발언을 인용하면: “저 철학자(아리스토텔레스)의 일자일언은 이 세상의 형상을 바꾸어 놓았오. 이 서책( 『시학』 2권)이 공공연한 해석의 대상이 되는 날, 우리는 하느님이 그어놓으신 마지막 경계를 넘게 될 것이오.”- Ibi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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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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