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적인 사회에 맞선 당찬 도전장[각주:1]


 

권오윤[각주:2]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013년부터 매년 국제 여성의 날(3월 8일)을 앞두고 ‘유리천장 지수’(Glass-ceiling Index)를 발표해왔습니다. 이 지수는 고등교육과 임금의 남녀간 격차, 기업 임원 및 국회의원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 등을 종합해 점수로 낸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올해까지 4년 연속 OECD 회원국 중 꼴찌를 찍고 있지요. 작년과 올해에 우리보다 아주 조금 점수를 더 받아 꼴찌를 면한 나라가 있는데, 바로 터키입니다. 

       이 영화는 그 터키의 북동부, 그러니까 수도 이스탄불에서 1천km 떨어진 흑해 연안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부모없이 할머니와 삼촌 밑에서 살고 있는 다섯 자매는 여름 방학날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바닷가에서 남자애들과 어울려 놀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자유를 박탈당합니다. 전화나 인터넷 같은 문명의 이기도 완전히 빼앗긴 이들은 칙칙한 색깔의 긴 옷을 입은 채, 집안에서 신부 수업이나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되지요. 

       이들을 옭아매는 것은 낡아빠진 순결 이데올로기입니다. 이 시골 마을에서 젊은 여성이란, 스스로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발산하는 건 꿈도 못 꾸고, 처녀성을 잃기 전에 시집이나 빨리 가야 하는 번거로운 존재에 불과합니다. 영화는 다섯 자매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이에 저항해 나가는 과정을 인상깊게 그려냅니다. 

       어떤 영화의 완성도를 논할 때, 촘촘하게 잘 구성된 서사라든지 기술적인 탁월함, 어떤 장면이 담고 있는 속깊은 의미 같은 것들을 따지게 됩니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적은 예산의 신인 감독 데뷔작인 이 영화를 아주 높이 평가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핵심 테마를 영화적으로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 영화의 성취는 탁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과 세계와의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과 그 해소를 다루는 간명한 플롯, 그리고 공간이나 행위의 연속성보다는 인물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 과감한 편집이 쟁점을 강렬하게 부각시키고 있으니까요.  

       흔히 이렇게 이야기보다 주제가 강조되는 영화에서는 모호한 비유나 상징이 난무해서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잘 짜여진 극적 에피소드보다는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장면들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지요. 하지만 이 영화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 그리고 의도가 분명하게 잘 드러나는 설정들을 사용하여 그런 함정을 잘 피해 나갑니다. 

       또한 단순히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순결 이데올로기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이면에는 폭력적인 가부장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환기합니다. 이 터키 시골 마을 소녀들의 이야기가 보편적인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면 바로 그런 부분 때문일 겁니다. 

       감독 데니즈 감제 에르구벤은 터키에서 나고 자랐지만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외국 생활을 오래했고,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작업해 온 여성 감독입니다.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 역시, 프랑스/터키 합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프랑스 영화를 대표해서 올라갔었지요.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영화가 터키에서 공개되었을 때 꽤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영화 속의 상황이나 배우들의 억양이 터키의 실제 현실과 전혀 가깝지 않으며, 이슬람에 대해 험담하기 좋아하는 서양인들의 시선에 기초한 것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았었죠. (그러나 터키의 시골은 여전히 끔찍하게 보수적이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새 신부에 대한 처녀막 검사도 실제로 많이 시행된다는 반론 역시 존재합니다.)

       21세기 한국 관객의 눈으로 보기에도, 순결을 잃기 전에 무리하게 결혼을 시키려 하는 설정 자체가 너무나 전근대적이어서 현대에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볼 것이 아니라 달을 봐야 합니다. ’유리 천장 지수’가 보여주듯 우리나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터키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떠올려 보세요. 

       한국 여성의 전화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에게 살해 당한 여성이 90명, 살인 미수 사건에서 살아남은 여성 또한 95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불과 이틀에 한 번 꼴로, 여성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남성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런 통계를 인용할 필요도 없이,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대상으로 비하하는 기사나 댓글쯤은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제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저 역시 한국 남성으로서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사람도 동물이기 때문에, 성적 욕망이 높은 남성이 여성에 대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합리화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날 동물적 욕망 탓을 하며 스스로를 동물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보다는,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속적인 학습과 교정을 통해 인간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참다운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요? 차별과 억압을 어떤 방식으로든 정당화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3월 18일자 기사 <처녀성 잃기 전에 빨리 시집이나 가라? 헐…>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191564&PAGE_CD=C1400&BLCK_NO=4&CMPT_CD=S5011)로 게재된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2. <발레교습소> <삼거리극장> <화차> 등의 영화에서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현재 연출 데뷔작을 준비 중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물 [권오윤의 더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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