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 역사, 그리고 텍스트 II : 역사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1. 사실 및 진실 추구로서의 역사


     역사란 무엇인가? 대체로 사람들은 특정한 시기에 일어난 사실에 관한 기록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역사를 허구와는 다른 성격을 띠는 소위 진실에 관한 기록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역사란 종종 거짓내지는 환상으로 취급되고 있는 신화와 대척관계에 있는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에 관한 기록으로서의 역사라면 적어도 신화적 성격들은 서술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셈이다. 또한, 이러한 점에서 비록 역사에 관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플라톤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음미해 볼만하다.[각주:1] 


호메로스나 그 밖에 다른 시인들은 우리가 이 구절들과 그런 따위들을 지워 없애도 화를 내지 않도록 부탁할 것인데, 그것은 그런 구절들이 시답지가 않고, 또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들어주지 않는 데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시다울수록 자유로워야하고, 죽음보다는 노예됨을 더욱 두려워해야 하는 애들이나 어른들이, 그만큼 덜 들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일세. …… 그렇다면 우리는 또 그런 문제들에 속하는 두렵고 무서운 낱말은 모두 제거해야 하네. 즉 코키토스라든가, 스티크스라든가, 악귀라든가, 송장이라든가, 그리고 그밖에, 같은 나이의 누구든 듣는 사람을 소름끼치게 하는 그런 따위의 낱말 말이세. 


      결국, 플라톤은 “호메로스를 비롯해서 모든 작가들은 사람으로서의 덕성이라든가 또 그밖에 그들의 작품의 주제가 되는 것들의 허깨비를 모방하는 자들로서 참다운 것 그 자체에는 결코 접하지 않고 있다고 우린 주장하도록 할까?”[각주:2]라고 묻는다. 심지어, “이렇게 해서 이제 우리는 작가를 붙들고, 그를 화가와 동격자라고 규정짓는 것이 정당할 걸세. 왜냐하면 진리와 견주어 보아 하잘것없는 것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도 화가와 비슷하고, 또 영혼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 아니라 역시 하잘것없는 부분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는 화가와 비슷하기 때문일세. 그래서 한 나라가 잘 다스려져야 한다면, 결국 그 나라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정당할 걸세. 왜 그런고 하니, 그는 영혼의 이 하잘것없는 부분을 일깨워서 키우고 이것을 강하게 해서 이지적 부분을 파멸시키기 때문일세.”[각주:3]라고까지 말한다. 요약하면, 진실의 담론을 추구하는 일과 관련해 작가란 영혼을 파괴하는 모방자이기 때문에 플라톤에 따르면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하는 자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특별한 담론법으로서의 역사는 진실 추구의 측면에서 문학 장르와의 계속적인 단절을 통해, 그리고 더딘 출현을 통해 태어났다.”[각주:4]는 프랑수아 도스의 말을 참작하면, 플라톤의 이러한 지적들이 철학뿐만 아니라 역사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의 논의를 따르는 자에게 역사란 신화와 달리 사실과 관계해야하고 더 좋게는 영혼의 이지적인 부분을 증대시켜야 하는 과제를 맡은 하나의 진실에 관한 담론으로 등장한다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역사학의 아버지인 헤로도토스를 신화론자로 규정하면서, 투키디데스는 역사가라면 진실을 탐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플라톤과 유사하게, “여기 제시된 증거에 따라 내가 기술한 대로 과거사를 판단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분명한 주제가 무엇이든 찬양하려 드는 시인의 시구나, 사실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청중의 주목을 끄는데 관심이 많은 산문 작가의 기록에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다루는 주제는 증명의 영역 밖에 있으며, 세월이 흘러 대체로 사료로서의 신뢰성을 상실하여 신화의 영역에 속한다.”[각주:5]라고 말함으로써 그는 역사와 신화/문학 간의 분리를 시도한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가는 “진리를 규명하고자 노력하지 않고, 전해오는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받아들”[각주:6]이는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야 하는 것이다. 확실히 “눈에 보이는 증거, 혹은 가능한 한 완벽하고 주의 깊은 비평적 고증을 거친 후에야 정보들을” [각주:7]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역사를 묻는 일은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이데아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신화/문학과 같은 허탄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탐구를 통한 진실을 추적하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진실의 원천으로 보는 것, 즉 눈이 매우 중시되었다. 


      역사를 신화/문학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했던 이러한 경향은 1681년 장 마비용의『고문서학』이라는 저서와 함께 더욱 강화되었는데, 프랑수아 도스는 “마비용은 지식 학문들의 시리즈 속에 역사를 등록시키고, 기록보관학 총체의 접근 속에서 엄격한 유사성의 규칙들을 고려하여 역사장르가 도래한 문학과의 분리를 강조한다.”[각주:8]고 말한다. 그리고 “자체의 규칙·관례가 있는 방식을 갖추고, 확립과 재인의 특별한 양식들 가진 방법론을 갖추면서 실제로 전문화된”[각주:9] 19세기와 더불어 역사는 비로소 신화/"문학과의 근본적인 단절을 표명한다."[각주:10]고 지적했다. 여기서 좀 더 도스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1]


역사학 입문의 작가인 샤를 빅토르 랑글루아와 샤를 세이뇨보가 수사학과 가장, 혹은 학술적인 역사 이야기를 더럽히는 문학의 미세한 입자들이라고 부른 것을 훌륭한 역사가는 모두 거부한다. 기술방식은 교육적 가치를 지닌 거의 익명의 문체론을 위해 문학의 미학적인 흔적들을 지울 것을 절실히 요구한다. 


     따라서 “그 시대의 가치는 그 시대가 낳은 결과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 그 시대가 자체적으로 갖는 고유한 것 속에 있다.”[각주:12]고 말함으로써 랑케 역시 당연하다는 듯 “인식주체인 역사가는 자기 자신을 해소함으로써 사실이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각주:13]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 실제 일어난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며 그것의 가치는 시간의 흐름을 초월해서 불변적으로 존재한다.”[각주:14]고 믿었기에 사실에 입각한 역사의 재구성을 역사가의 최대의 과제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 본 역사에 대한 이런 시도들에 대해 니체라면 아마도 조롱을 퍼부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이런 시도들은 기껏해야 생기 없는 죽은 문자를 대하는 일과 같은 그런 일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을 기준으로 복음서를 연구하고 마침내 신화적 이야기로 간주했던 슈트라우스에 대한 그의 통렬한 비판은 이에 대한 적절한 예일 것이다. 길지만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5]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근대적 이념에 맞는 성서를 위해 칸트의 이성비판으로부터 무엇을 획득할 수 있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는 어디서나 극히 조야한 사실주의의 마음에 들게만 말하고 있다는 것,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이야말로 이 새 복음서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이며, 여하튼 이 복음서는 끊임없는 역사연구 및 자연연구의 노고의 성과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이며 또 그럼으로써 철학적 요소를 부인한다. 그는 관념론의 기본적인 이율배반에 관하여, 또 일체의 학문 및 이성의 극도로 상대적인 의미에 관하여 아무것도 예감하지 못한다.…… 개념은 인간을 결코 윤리적으로 더욱 선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 도덕을 설명하기는 쉽지만 도덕의 기초를 다지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 슈트라우스는 이런 것조차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시대 특유의 학문에 종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으로써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설령 문화를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최선의 능력과 가장 성실한 의지가 도처에 현존한다고 가정할지라도 그러한 방법으로 학문에 종사함으로써 문화에 대하여 도대체 무엇이 나올 것인가 하는 물음을 거의 한 사람도 제출하는 자가 없는 것이다. ……그는 근대의 세계고찰이 근거를 두고 있는 증명을 진술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증명을 학문에서 인용함으로써 여기서도 또 신앙인으로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지식인으로서 행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새 종교는 새 신앙이 아니라 근대적 학문과 일치하며 그에 따라서 그런 것으로서는 전혀 종교가 아니다. 


2. 지배 및 배제로서의 역사


     니체의 이 같은 비판을 염두에 둔다면, 역사를 신화/문학과 달리 사실탐구를 통한 진실을 추적하는 작업으로 정의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신화/문학과 완전히 분리된 순수 사실만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일은 자주 주장되어왔던 것처럼 가능한 일인가? 더구나 니체의 말대로 과연 의미가 있기나 한 일일까? 나아가 19세기와 더불어 역사연구에서 하나의 강박관념처럼 따라다녔던 문제, 즉 과학적 탐구처럼 어디에서나 무시간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를 역사는 산출해 낼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랑케는 이와 관련해 주목해 볼만한 인물들 중 한 사람에 속한다. 왜냐하면 그는 독일 역사주의의 창시자이고 “발견을 왜곡하는 상상적 영감을 배제한 채 정밀한 조사와 입증 같은 과학적 개념을 고수하며 문헌을 신중하게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지만 말할 수 있기를”[각주:16] 바랬던 그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E·H 카 역시 이를 확인해주듯 “1830년대에 랑케가 역사의 도덕화에 대해 정당한 항의를 제기하면서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이 진정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을 뿐이다 라고 말했을 때 별로 심오하다 할 것 없는 이 경구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3세대 동안 독일과 영국의 역사가들, 심지어 프랑스의 역사가들까지 Wie es eigentlich gewesen이라는 마술적인 문구를 주문처럼 외우면서 다녔다”[각주:17]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역사란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을 뿐이라던 랑케의 태도에 대해 카라면 “역사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코 순수한 것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 역사의 사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해 항상 굴절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역사책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책에 실린 사실들보다 그 책을 쓴 역사가에 대해 일차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각주:18]고 답할 것이다. 또한, 과학적 개념을 고수하고자 했던 랑케의 태도에 대해서도 “19세기의 과학자 및 액턴과 같은 역사가들은 잘 검증된 사실들의 수집을 통해 모든 논쟁점을 한꺼번에 해결하게 될 포괄적인 지식체계가 수립될 수 있을 날이 오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오늘날 과학자들과 역사가들이 품고 있는 희망은 보다 겸손한 것이다.”[각주:19]라고 지적할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지난번 강연에서 말한 바 있는 여러 이유 때문에 역사의 법칙을 말하지 않는다. 원인이라는 말조차도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 되고 말았다.”[각주:20]고 응수할 것이다. 


      그렇다면, 신화/문학과 완전히 분리된 순수 사실만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그에 따라 진실을 추구하는 작업으로서 역사를 정의하는 일은 사실상 회의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하지 않을까? 귀스도르프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말을 들려준다.[각주:21]


역사가의 역사 자체도 온갖 전설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역사가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엄격하고 고결한 스파르타의 신화나, 그 굳건함이라 용기가 현실 속에서 별다른 토대를 지니지 못한 이상을 모방하려는 학생 세대나 성인 세대를 빚어낸 공화정 시대의 로마신화만큼 보편적으로 존중받는 신화들을 경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더 일반적으로 말해, 프랑스 혁명 당시의 루이 14세나 제 3공화국을 다루던 직업역사가는 가치판단을 내리려는 어떠한 의도나 전설적인 전제로부터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역사가 자신에게 영양을 공급해주고 있는 전설들을 축소하려 한다면 자기가 가장 좋은 색깔이나 가장 확실한 의미를 상실해버리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역사인식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를 철학과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비판을 가한다. “신화를 관조적인 사고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 플라톤에서 플로티노스에 이르기까지, 데카르트에서 스피노자, 말브랑슈 또는 라이프니츠에 이르기까지 이성에 따른 황홀감에는 신화적 요소가 배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 아니다. 합리적인 관념들이나 요소들은 신화적인 참여가 배제될 수 없는 사고 역동성의 위탁물과 잔고로 나타난다.”[각주:22] 때문에, 앞서 보았듯이 신화와 같은 허탄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는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설파한 플라톤의 주장은 그 자신이 배척하고자 했던 신화만큼이나 설득력이 없는 그런 것이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바로 그렇기에 니체 역시 우리보다 앞서 “근대인은 단지 그 저명한 역사에 관한 객관성 때문에 스스로 강하다고, 즉 공정하다고 부를 권리, 더구나 다른 시대의 인간보다도 고도로 공정하다고 부를 수 있는 권리를 과연 가지고 있는가 라고 하는, 물론 고통스러운 물음을 수반하고 있다. 어쩌면 객관성은 근대인의 덕에 관한 편견으로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라고 물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그는 이렇게 처방을 내렸다.[각주:23] 플라톤이라면 놀랄법하지만 귀스도르프라면 흔쾌히 동의할만한 그런 말로 말이다. 


자 놀라지 말라. 그것은 독약인 것이다. 역사적인 것에 대한 해독제의 이름은 비역사적인 것과 초역사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 이름과 더불어 우리의 고찰의 발단과 그 평안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비역사적인 것이란 말로써 가리키는 것은 망각할 수 있고, 자기를 제한된 시계 속에다 가두어 놓는 기술과 힘이며, 내가 초역사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성으로부터 눈을 돌려 현존재에다 영원하고 불변의 의미를 지닌 성격을 부여하는 것, 즉 예술과 종교 쪽으로 향하도록 하는 힘들이다. 


     계몽적 사유를 신화적 사유와 대비하면서 “사유를 수학적 장치로 환원하는 것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한 승인”[각주:24]이라고 한 아도르노의 지적 또한 니체의 이러한 주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실 그대로의 세계를 탐구하고 이를 통해 진실을 찾고자 했던 역사적 이성은 “사실성만이 정의로 인정되며 인식은 사실성의 단순한 반복으로 제한되고 사유는 단순한 동어반복”[각주:25]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인 사건을 구해내려는, 역사적인 사건에 그 자체로서, 그 자체를 위하여 의미를 부여하려는 온갖 노력이 경주되었다.”[각주:26]는 엘리아데의 지적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역사는 그에게 해방이 아니라 공포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이라는 사실로써, 달리 말하면 그런 식으로 일어났다는 사실로써 역사적 사건을 정당화하는 것은 그 역사적 사건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기 어려울 것이다.”[각주:27] 그렇기에 역사가 아니라 이제는 신화가 선생으로 나서서 가르치려 든다.[각주:28]


호머의 서사시는 이미 올바른 이론을 포함하고 있다. 문화적인 재화는 명령받는 노동에 정확히 대응되는 상관물이다, 양자는 모두 자연에 대한 사회의 지배라는 빠져나갈 수 없는 강압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배 위에서 사이렌과 대면하면서 행해진 조치들은 계몽의 변증법에 대한 함축성 있는 알레고리다. 지배라는 척도가 대표성을 지니고, 제반 업무 관계 속에서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 자가 가장 힘이 센 자이듯이 대표성은 진보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퇴보에 있어서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역사 역시 마찬가지로 해방이 아니라 지배였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플라톤 이래로 자신과 반대되는 신화/문학을 철저히 배제한, 바로 그렇기에 반쪽자리 사유양식의 지배로 점철되어온 시간들이었다고 말이다. 때문에 역사란 분류하고, 정돈하고, 분배함으로써 지배를 실천하고자 했던 일종의 담론적 욕구였다고 해도 별 탈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푸코도 “어떤 사회에서든 담론이 생산을 통제하고, 선별하고, 조직화하고, 나아가 재분배하는 일련의 과정들-그의 힘들과 위험들을 추방하고, 그의 우연한 사건을 지배하고, 그의 무거운, 위험한 물질성을 피해가는 역할을 하는 과정들-이 존재한다. 유럽과 같은 사회에서, 우리는 배제의 과정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지 않던가. “하나의 진술이 만들어지고 분배되고 통용되고 작용하도록 만드는 질서화된 절차의 체계”[각주:29]로서의 진실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는 일어났던 사실을 근거로 해서 인간과 그의 삶에 대한 탐구를 하기 때문에 과학이고, 영화는 사실에 근거할 필요 없는 꾸민 이야기이기 때문에 기껏해야 예술에 불과하다고 서로의 영역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것은 너무나 안이한 타협이다.”[각주:30]는 김기봉의 지적은 꽤 타당해 보인다. 고로, 이제 역사는 자신이 그토록 멀리하고자 했던 타자인 신화/문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푸코는 이에 대한 훌륭한 예다. 이영남의 말을 들어보자.[각주:31]  


푸코는 역사의 문학성이라는 문제의식도 껴안았다. 역사를 문학에서 분리해 과학에 편입시킨 랑케도 투키디데스처럼 문학적 우아함을 겸비하여 과거를 진실하게 재구성하는 역사를 서술하려고 했다. 푸코가 문학을 했다는 것은 그가 문학적 표현을 즐겨 썼다거나 문학 평론에 밝았다는 점 때문이 아니다. 형용 모순이기는 하지만 푸코는 형이상학적 실증주의 또는 실증적 형이상학을 추구했기 때문에 문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문학박사답게 전문적이고 실증적이면서도 상상력과 가치판단을 배제하지 않고 여러 담론을 포괄하면서도 아름다운 필치로 수놓은 문학을 했다.  


     이로써 사실보다는 이야기로서의 역사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 웹진 <제3시대>


  1. 플라톤, 『국가』, 조우현 옮김, 올재, 2012, p.115 [본문으로]
  2. 플라톤, 같은 책, p.460 [본문으로]
  3. 플라톤, 같은 책, p.469 [본문으로]
  4. 프랑수아 도스, 『역사-성찰된 시간』, 김미겸 옮김, 동문선, 2001, p.11 [본문으로]
  5.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천병희 옮김, 숲, 2011, p.44 [본문으로]
  6. 투퀴디데스, 같은 책, p.44 [본문으로]
  7. 프랑수아 도스, 앞의 책, p.15 [본문으로]
  8.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0 [본문으로]
  9.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0 [본문으로]
  10.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0 [본문으로]
  11.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1 [본문으로]
  12. 김기봉,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푸른역사, 2000, p.99 [본문으로]
  13. 김기봉, 같은 책, p.98 [본문으로]
  14. 김기봉, 같은 책, p.99 [본문으로]
  15. 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임수길 옮김, 청하, 1999, pp.59~77 [본문으로]
  16. 존 H. 아널드, 『역사』, 이재만 옮김, 교유서가, 2015, p.91 [본문으로]
  17.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 곽복희 옮김, 청년사, 1993, p.19 [본문으로]
  18. E·H 카, 같은 책, p.37 [본문으로]
  19. E·H 카, 앞의 책, p.96 [본문으로]
  20. E·H 카, 같은 책, p.135 [본문으로]
  21. 조르주 귀스도르프, 『신화와 형이상학』, 김점석 옮김, 문학동네, 2003, pp.330~331 [본문으로]
  22. 조르주 귀스도르프, 같은 책, p.321 [본문으로]
  23. 프리드리히 니체, 앞의 책, p.185 [본문으로]
  24.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김유동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1, p.57 [본문으로]
  25.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앞의 책, p.57 [본문으로]
  26. 미르치아 엘리아데, 『영원회귀의 신화』, 심재중 옮김, 이학사, 2003, p.149 [본문으로]
  27. 미르치아 엘리아데, 같은 책, p.152 [본문으로]
  28.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같은 책, p.68 [본문으로]
  29. 콜린 고든, 『권력과 자식-미셸푸코와의 대담』, 홍성민 옮김, 나남출판, 1991, p.167 [본문으로]
  30. 김기봉, 앞의 책, p.277 [본문으로]
  31. 이영남,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푸른역사, 2007, p.24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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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 역사 그리고 텍스트 I : 전승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1. 전승 : 집단 대 개인


     신약학에서 흔히 사용되는 전승사 비평이란 “성서 본문의 최종적인 형태가 이루어지기까지 문서와 구전(口傳)자료로 전승되어온 경로 즉, 성서본문이 단계별로 이뤄진 전승과정에 비추어 그 문헌을 분석하는 방법을 가리키는 용어”다. 또한, “역사적 정확성을 추구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본문 속에 왜 그런 설화가 기억되었고, 왜 그것이 변화되었으며, 그 변화에 어떤 요인이 반영되었는지를 살피는 데 관심을 갖는다.” 다시 말해, “역사성을 발굴해내는 것이 아니라 전승사에 나타난 다양한 관계를 확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어떤 이들에겐 맥이 빠질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전승사비평을 통해 전승을 처음 전해준 사람들과 그들이 전해준 전승의 최초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전승의 형태, 예를 들어 마가복음서와 같은 최초의 형태가 취해진 것은 예수의 죽음 이후 40여년이 지난 후라는 점을 기억하면 그리 실망할 일도 아니다. 게다가 이 복음서가 전승의 최초의 형태라고 감히 확신할 수도 없다. 이미 불트만은 “마가와 같은 시대 혹은 그 전에 복음서라고 불리워질 만한 작품을 썼지만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작품의 저자가 전혀 없으리라고는 물론 단정할 수 없다.”[각주:1]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전승의 최초의 형태를 넘어 역사적 예수에게로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추가한다면 수많은 난관이 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알다시피, 복음서의 단화들을 추적한 결과 이 단화들 뒤에는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교회가 놓여 있음을 양식비평은 설득력 있게 잘 보여주었다. “전승자료의 수집은 팔레스틴 초대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변호와 논박은 아포프테그마적 부분의 수집과 작성을 유도했다. 교화의 필요성과 교회 안에서의 예언자적 영의 활력에 의해 예언자적, 묵시문학적 주의 말들을 전하는 일과 작성하고 수집하는 일이 생겼다. 주의 말들의 좀 더 계속된 수집은 생활 계율과 교회 규율의 필요성에 의해 생겼다.”[각주:2] 이처럼 이미 단화들은 집단으로서의 익명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양식비평의 이러한 논제를 깨고 최근 보컴은 '목격자의 증언'이라는 대담한 가설을 들고 나왔다. 그는 양식비평이 전제하고 있는 전승의 익명성이라는 테제를 목격자로 대체하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그는 복음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개별적인 이름들을 하나하나 추적하고선 서슴지 않고 이들을 목격자라고 부른다. 더욱 놀라운 점은 파피아스가 전한 말이 과장이거나 일종의 변증이라는 학자들의 비판적인 견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역사적으로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파피아스가 말하는 내용이 가장 중요하게 암시하는 것, 곧 예수의 말씀과 행위를 전하는 구전들이 이름이 밝혀진 특정한 목격자들과 단단히 결합해 있었음을 믿을 수 있다.”[각주:3] 결국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다.[각주:4] 


내가 이 책을 쓴 의도 중 하나는 복음서가 기록되기까지 예수 전승이 전달되었던 기간 내내 예수전승과 특별한 전승 전달자들 사이의 인간적 연결고리가 그 존재를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확실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적어도 역사적으로 이런 연결 고리가 존재했을 개연성이 아주 높았음을 증명할 증거를 제시하고 싶다. 


     하지만 보컴의 이러한 주장은 별로 신뢰할만하지 않다. 어만이라면 "마가복음에 대한 증언은 서너 다리를 건넌 정보이다. 여기에서도 그가 유난히 강조하는 이야기, 즉 마가의 주된 목적 중 하나가 베드로에게 들은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것이란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마가복음은 큰 소리로 읽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한 양이다.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수개월 어쩌면 수년을 지냈다. 어떻게 마가가 들은 이야기 전부가 두 시간이면 읽어낼 수 있는 양에 불과하겠는가?"[각주:5]라고 비판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또한, 파피아스의 이야기를 수용하여 전승이 목격담일 수 있는 이유로 음성을 거론하는 그의 논지는 치명적 결함일 수도 있다. “파피아스가 살아서 남아 있는 음성을 이야기할 때 많은 학자들이 추정하는 것과 달리 구전에 대한 은유로서 음성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리어 이 음성은 문자 그대로 정보 제공자의 음성을 말한다. 실제로 파피아스가 당대의 역사기록관습을 자세히 언급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앞에서 말한 음성의 의미는 그가 말하려는 의미임이 틀림없다.”[각주:6] 분명 데리다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각주:7] 


자연적 문자 언어는 목소리와 숨결에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것의 본성은 문자학적이지 않고 영기학적이다. 그것은 성직자의 것이고 신앙 고백의 내적인 성스러운 목소리와 아주 가깝고, 우리가 자신 안으로 되돌아가면서 듣는 그 목소리와 아주 가까운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적 감정에 신의 목소리가 충만되고 진실하게 존재하는 현전이다. 


     그러나 좀 더 날카로운 비판은 롤랑 바르트일 것이다. “그 누구의 목소리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 천만에! 정확하게는 언제나 그 누군가의 목소리가 문제된다. 나는 찾아낼 수 없다. 문화가 내게 생각나게 하는 단어들과 내 귀에 불현듯 생각나는 그 기묘한 존재(그것이 단지 소리에만 연관될까?)와의 단절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재현에의 노력이 무기력하다는 것은 반드시 다음과 같은 사정에 의한 것이리라. 목소리라고 하는 것은 늘 벌써 죽어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절망적인 부정을 통하여 겨우 그것을 살아있다고 부르는 것이다.” [각주:8]다시 말해, 어떤 목소리를 들은 이가 그 목소리를 재현하고자 할 때는 필연적으로 일종의 소음인 문화가 개입한다는 점이다. 또한, 그 목소리를 재현하는 언어 자체도 문화의 힘을 입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잘 알다시피, 전해들은 목소리와 그 목소리의 재현 사이에는 그것이 문화이든 무엇이든 간에 일종의 소음이 발생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소음으로 인해 재현된 목소리는 이전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의미와 효과를 산출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보컴은 음성과 언어가 어떠한 관계를 갖는지, 그리고 그 관계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튼, 이쯤에서 어만의 말로 정리해보도록 하자. 조금 길더라도 말이다. 


기독교는 이런 식으로 전파됐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난 후에는 누군가 예수의 이야기를 글로 썼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건네지고 또 건네진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목격자가 공평무사한 관점에서 증언한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개종시킬 목적의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가 과연 애초의 이야기와 같았을까? 아이들이 생일날에 전화 연결 놀이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동그랗게 둘러앉은 채, 한 아이가 옆에 앉은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하면 그 아이가 다시 옆 아이에게 연결하는 것이다. 그 아이가 전달받은 말은 처음의 말과 사뭇 다르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화 연결 놀이의 의미가 없다. 똑같은 환경과 학교, 언어, 연령을 가진 동일한 사회 집단에서가 아니라 다른 지역과 환경과 언어를 가진 집단에서 40년 이상 전화 연결 놀이를 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럼 첫 이야기가 어떻게 되겠는가? 엄청나게 달라질 게 뻔하다. 복음서 저자들 역시 이야기를 자신의 관점에 따라 바꿔놓은 게 분명하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예수에 대한 마가복음의 이야기를 누가복음 저자는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한 작가에서 다음 작가로 넘어갈 때도 이렇게 바뀌는데 구전될 때는 얼마나 많이 바뀌겠는가! 


     그러므로 예수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다시 말해 독특한 한 주체와의 만남을 통해 얻어진 개인적 체험은 시대와 문화에도 흔들림 없이 변질되지 않고 그대로 재현된다는 신념은 정정될 필요가 있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에 나오는 「돈키호테의 저자 피에르 메나르」라는 단편이라면, 이와 같은 신념은 일종의 망상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라는 책을 단어 하나하나 줄 하나하나 다르지 않게 베낀다하더라도, 베껴진 이야기는 베끼기 이전의 원래 이야기와 전혀 다른 의미를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화자(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 삶의 우연들에 내맡기는 약간 자율적인 인간이고 그의 이야기만이 자율적인 데 반해, 모방하는 작가는 자기 삶을 창조적으로 이용한다. 두 번째 작가는 이야기를 규칙에 따라 구성하며, 그것을 위해서 자기 삶을 투신한다. 그는 자기 삶이 그 이야기에 의해, 적어도 간접적으로, 이끌어지게끔 조직한다. 그것은 조율되고 도구화된 삶이다.”[각주:9] 그렇다면, 진정성의 기준을 인내심을 갖고 적용하다보면 복음서 전승의 거의 모든 부분이 진정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블롬버그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의 말을 설령 받아들인다할지라도, 이미 보았듯이 보존된 목소가 누군가에 의해 재현될 때는 보존된 목소리와 전혀 다른 의미의 궤적을 그린다면, 보존되었다는 점만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양식비평의 관찰, 즉 전승에서 어떠한 말들은 그 맥락을 잃어버려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주장은 이에 대한 좋은 예일 것이다. 때문에 “복음서 저자가 수집하고 기록한 정보가 상당 부분 사실과 허구, 역사와 전설,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와 상상력을 동원한 각색 등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것”[각주:10]이라는 양식비평의 견해를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 

     한데 전승 과정에서 교회 공동체라는 집단이 일정정도 역할을 수행했다는 양식비평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는 하나의 독특한 역사적 개별주체가 아니라 이미 집단적으로 투사된 혹은 치환된 범례적 주체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해가 선뜻 되지 않는다면 엘리아데의 이야기를 일단 들어보도록 하자. [각주:11]


아주 드물긴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신화로 변형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루마니아의 민속학자인 콘스탄틴 브라일로이우는 마라무레쉬라는 마을에서 아름다운 민요 하나를 채집할 수 있었다. 비극적인 사랑이 그 내용이었다. ……노랫말은 신화적인 암시들로 가득한,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제례용 가사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래의 변이형들을 채집하면서 동시에 브라일로이우는 그런 비극이 일어난 때가 언제였는지도 조사하였다. 사람들은 오래 전에 일어난 오랜 옛날의 이야기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조사를 계속해나가면서 그는 사건이 겨우 40년 전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여주인공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 핵심증인이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진실성을 완전히 박탈해버리고 사건을 전설적인 이야기로 변형시키는 데에는 불과 몇 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 자체는 만족시키지 못했다. 결혼 전날에 죽은 한 남자의 비극적인 죽음은 단순한 사고사 이상의 어떤 것이었다. 그 죽음에는 신화적인 범주 안으로 통합되었을 때에만 드러나는 어떤 비의가 담겨 있었다. …… 진실을 말하는 것은 신화였고, 실제 역사는 이미 거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민중의 기억은 한 영웅의 생애에서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요소들은 보존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고차적인 신비경험들 속에서도 인격신은 궁극적으로 초인격적인 신으로 고양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많은 전통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영혼은 기억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소위 그들의 역사적 개별성은 상실된다."[각주:12]고 지적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노먼 페린 역시 “만일 신화가 역사를 해석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말해 만일 설화가 사건을 해석한다면 우리는 신약성서에서 이야기된 역사는 해석된 역사라는 것을, 그리고 더 나아가 해석된 역사는 필연적으로 사실적인 역사와 신화에 의해서 해석된 역사를 포함하며, 마지막으로 사실적인 것으로서의 역사 그 자체도 신화로 작용하게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각주:13]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진실을 말하는 것은 신화였고 실제 역사는 거짓에 불과하다는 엘리아데의 주장은 “관심을 갖는 시간은 신성한 시간이 되었다. 이야기된 사건들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존재의 실재를 보게 했고, 역사 자체는 신화된 것이다.”라는 페린의 말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신성한 이야기들은 대체로 집단의 가치관이나 믿음을 대변하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들이 아니던가. 따라서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 역시 일반적인 민담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집단을 상징하는 범례적 주체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 범례적 주체는 문화에 의해 변용된 상호텍스트적 주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에 관한 논의는 잠시 뒤로 미루도록 하고 역사가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 웹진 <제3시대>




  1. 루돌프 불트만,『共觀福音書傳承史』, 허혁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2, p.456 [본문으로]
  2. 루돌프 불트만, 같은 책, p.455 [본문으로]
  3. 리처드 보컴,『예수와 그 목격자들』, 박규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5, p.52 [본문으로]
  4. 리처드 보컴, 같은 책, p.30 [본문으로]
  5. 바트 어만, 『예수왜곡의 역사』, 강주헌 옮김, 청림출판, 2010, pp.160~161 [본문으로]
  6. 리처드 보컴, 같은 책, p.63 [본문으로]
  7.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4, p.39 [본문으로]
  8.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이상빈 옮김, 강, 2002, p.94 [본문으로]
  9. 군터 게바우어․ 크리스토프 볼프, 『미메시스』, 최성만 옮김, 글항아리, 2015, p.165 [본문으로]
  10. 크레이그 블롬버그,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 안재형 옮김, 솔로몬, 2007, p.59 [본문으로]
  11. 미르치아 엘리아데,『영원회귀의 신화』, 심재중옮김, 이학사, 2003, pp.57~58 [본문으로]
  12. 미르치아 엘리아데, 앞의 책, p.59 [본문으로]
  13. 노먼 페린,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상)』, 박익수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2004, p.11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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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시뮬라크르, 그리고 제의"_ 텍스트로서의 복음서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양식비평 연구에서 미학적 의미에서의 ‘작가’라는 개념은 떠오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연구가 관심을 둔 곳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한 예로, 불트만은『공관복음전승사』에서 “삶의 자리가 개체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한 공동체의 삶의 전형적인 상황 혹은 행동방식인 것처럼 문학 형태 및 형식은 사회학적 개념이지 미학적 개념이 아니다.”[각주:1]라고 썼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는 전승의 역사뿐만 아니라 그 법칙성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고 자신하도록 만들었다. “마태와 누가의 마가 처리에는 어떤 법칙성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Q는 마태와 누가에서의 재구성에 의존되지만, 그러나 여기서도 마태와 누가를 비교해 보면 가끔 Q에서부터 마태와 누가까지의 어록 자료의 발전이 어떤 법칙 하에 있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법칙성이 실제로 확인될 수 있다면, 이 법칙성은 마가와 Q에서 확정되기 전의 전승 자료에서 이미 작용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 자료의 형태로 확정되기 이전의 전승 단계에까지 소급해 갈 수 있다.”[각주:2] 그러나, 샌더스는 이러한 확신이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각주:3] 뿐만 아니라, 구테게만스는 형식주의와 구조주의 언어연구에 힘입어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는 양식비평의 방식이 과연 옳은 일인지 진지하게 되물었다.[각주:4] 또한 개별적인 전승 자료들의 문제를 넘어 문헌 구성의 문제를 물음으로써, 그는 양식비평이 가진 대부분의 전제를 반박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전승의 익명성, 공동체성, 전승의 발전 법칙 등과 같은 양식비평의 여러 전제들에 물음을 제기했던 것이다.[각주:5] 

     물론, 여기서 편집비평에 대한 언급은 빠트릴 수 없다. 막스젠에 따르면 복음서 저자들은 전승 자료들에 변화를 가하지 않고 단지 짜깁기만을 시도한 그러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순한 편집자 이상이었던 것이다.[각주:6] 때문에, 양식비평에서와 달리 복음서 저자들은 전승 자료들을 날것 그대로 보존해서 넘겨준 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관점에 맞게 전승들을 재구성한 하나의 신학적 작가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고로, 미학적 관점에 대한 고찰을 더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미학적 개념은 신학적 비평에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미학적 개념은 자료들의 구성뿐만 아니라 자료들 자체에도 저자의 개성이 개입되었을 수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 저자가 단순한 수집가가 아니라 신학적 작가의 지위로 격상된 이상 구성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전승 자료들의 신뢰성 역시 담보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절단된 개별전승들조차도 각 복음서들의 줄거리에 맞게 주조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노릇이 된 것이다. 사실, 형식과 내용을 분리할 수 없다는 언어연구의 관점에서 보자면 절단된 개별전승들마저도 신뢰성에 있어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은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미 불트만은 “편집이 단지 구전으로 전승된 것만을 대상으로 했다고는 볼 수 없다……또 우리의 마가복음서가 처음 문서화된 이후에도 가필되었으리라는 가정을 반대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차적인 자료들을 전승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각주:7]라는 벨하우젠의 말을 기꺼이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일차적 자료와 이차적 자료가 분리될 수 있고 그렇기에 복음서에서 역사적으로 순수한 일차적 자료를 안전하게 분리해낼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미학적 개념에서는 일차적 자료냐 이차적 자료냐 하는 구분은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미학적 개념에서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생생한 체험, 즉 일차적 자료가 후대의 공동체의 체험, 즉 이차적 자료를 지배하고 움직이며 나아가고 있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미학적 개념은 그 반대의 경우를 요구할 수도 있다. 종교적 경험의 측면에서 보자면 부활에 대한 미학적 경험과 같은 것을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우얼 바하는 “성서의 화자는 전설의 진실성에 대한 그의 믿음이 그에게 요구하였던 바로 그것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가 만들어낸 것은 본래 리얼리즘을 지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성을 향한 것이었다. 그것을 믿지 않는 자에게 재앙있거라!”[각주:8]라고 썼다. 마찬가지로, 그는 “마가복음을 쓴 필자는 그로 하여금 예를 들어 베드로의 성품을 객관적인 사실로써 그릴 수 있게 할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일어나고 있는 일의 복판에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명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만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위에든 사건에서는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즉 베드로가 어떻게 도망할 수 있었는가를 말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다.”[각주:9]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정타를 날렸다. “성스러운 글들의 전체 내용이 주석에 관련시켜지고 주석은 말하여진 것을 그 감각적 기초에서 떼어내는 일을 했다. 왜냐하면 독자나 청자는 실제 일어난 감각의 사건에서 눈을 돌려 그 의미를 생각하도록 요구받았기 때문이다.”[각주:10] 

     따라서 복음서 연구에서 전승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기준으로 논의되고 있는 구전이론 역시 미학적 개념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찮은 일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바하가 지적한 것처럼 종교적인 미학적 경험은 주석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날 것 그대로의 감각적인 체험은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석적 텍스트/이야기를 구성할 사명을 지닌 신학적 작가에게 대체 일차적 혹은 이차적 구분이나 구전과 같은 개념이 어떤 의미를 지녔겠는가? 과연 개별전승들의 신뢰성을 구전이론으로 방어해보고자 노력하는 최근의 보수적인 보컴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는 타당한가? 역사적인 예수와 가까웠을 수도 있는 특정한 개인들의 원초적인 목소리에 기대어 전승의 신뢰성을 설득하고자 애쓰는 보컴의 노력은 실로 눈물겹다.[각주:11] 하지만 그는 이것이 데리다가 지적한 현전의 형이상학을 추구하는 신학적/철학적 노력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길지만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2] 


 왜 음소는 기호들 중에서 가장 이념적인가? 소리와 이념성 사이의 아니 그보다는 목소리와 이념성 사이의 이 공모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내가 말할 때, 이 수행의 현상학적 본질에는 내가 말하는 그때 내가 나를 듣는다는 사실이 속한다. 나의 숨결에 의해 그리고 기표작용의 의도에 의해 혼이 불어넣어진 기표는 내게 절대적으로 가까이 있다. 살아있는 작용, 생명을 주는 작용, 기표의 신체에 혼을 불어넣어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표현으로 변형시키는 생기, 언어의 영혼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자기현전과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혼은 세계에 그리고 공간의 가시성에 내버려진 기표의 신체 속에서 죽음을 맞을 위험에 처하지 앟는다. 음소는 현상의 구사가능한 이념성으로 주어진다. 이렇게 영화작용이 자신에 의해 혼이 불어넣어진 것의 투명한 정신성 속에서 자기에게 현전함, 이렇게 삶이 자기 자신에게 내밀함, 이로 말미암아 말은 살아 있다고 늘 일러져 왔던바, 그러한 모든 것은 그러므로 말하는 주체가 현재에 자기를 듣는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서 데리다는 “기의의 형식적 본질은 현전이고, 소리로서의 로고스와 그것이 인접하는 특권은 현전의 특권이다.”[각주:13]라고 고쳐 썼다. 또한, 우리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자연적 문자언어는 목소리와 숨결에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것의 본성은 문자학적이지 않고 영기학적이다. 그것은 성직자의 것이고, 신앙고백의 내적인 성스러운 목소리와 아주 가깝고, 우리가 자신 안으로 되돌아가면서 듣는 그 목소리와 아주 가까운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적 감정에 신의 목소리가 충만되고 진실하게 존재하는 현전이다.”[각주:14]라고 말이다. 신학의 구전에 대한 집착은 바로 이러한 연유때문일 것이다. 신의 목소리는 역사적 두께를 몰아내고 순수한 것을 되찾도록 최초로 믿은 자들의 음성 속에 심어놓은 것이기에 우리가 그 목소리의 목격자를 찾아낸다면 역사적 신뢰성을 충분히 담보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이미 문자로 정착된 복음서에서 때가 끼지 않은 순수한 전승을 찾는 것이 가능한가? 이와 관련해, “문자는 자신의 망각이고 외재화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면화하는 즉 정신의 역사를 여는 기억의 반대[각주:15]”라고 한 데리다의 지적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록 데리다의 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리쾨르 역시 “직접적인 목소리, 얼굴표정, 몸짓 대신에 이러한 매개물들을 이용하는 기록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굉장한 문화적 성취이다. 여기서 인간적 사실은 사라져 버린다. 대신 이제 물질적 표식들이 메시지를 전달한다.”[각주:16]고 지적한 바 있다. “담화의 운명이 이제 목소리에서 글자로 옮겨[각주:17]”진 것이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이것보다 좀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글로 씌어진 담화에서는 저자의 의도와 텍스트의 의미가 더 이상 일치하지 않는다.[각주:18]”는 점이다. “절대적인 지금/여기는 시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위치들의 절대적 원천이었던 화자의 목소리, 얼굴 표정, 몸짓이 외적인 물질적 표지들로 대체되면서 폐기된다. 그리고 텍스트를 작가의 현존과 분리시키며 그것을 미래의 잠재적 독자층에게 열어 놓는 텍스트의 의미론적 자율성이 생겨난다.”[각주:19] 그렇다면, 텍스트란 목소리를 통한 자료들의 신뢰성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살펴 본 작가라는 미학적 개념까지도 파괴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적한 것처럼, 텍스트란 텍스트의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개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다른 의미는 영향사를 통해 중개될 것이다. 그렇기에 영향의 불안은 텍스트 내에 잠복해 있는 하나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전의 전승들과 해석들을 위협하고 덮쳐버리는 하나의 시뮬라크르로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텍스트로서의 복음서란 개별적인 전승 자료들만의 문제도 그렇다고 저자만의 문제도 아닌 독자가 개입되는 훨씬 더 복잡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 웹진 <제3시대>

  1. 루돌프 불트만, 『共觀福音書傳承事』, 허혁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70, p.4 [본문으로]
  2. 루돌프 불트만, 같은 책, p.7 [본문으로]
  3. Sanders, The Tendencies of the Synoptic Tradi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9, pp.23~24 [본문으로]
  4. Guttgemanns, Candid Questions Concerning Gospel Form Criticism, trans by William Doty, The Pickwick Press, 1979, p.75 [본문으로]
  5. Guttgemanns, 같은 책, p.129 [본문으로]
  6. Willi Marxsen, Mark the Evangelist, trans by Roy Harrisville, Abingdon Press, 1969, p.21 [본문으로]
  7. 루돌프 불트만, 앞의 책, p.2 [본문으로]
  8. 에리히 아우얼 바하, 『미메시스』, 김우창, 민음사, 1987, p.25 [본문으로]
  9. 에리히 아우얼 바하, 같은 책, p.62 [본문으로]
  10. 에리히 아우얼 바하, 같은 책, p.62~63 [본문으로]
  11. 이에 대해서는 리처드 보컴, 『예수와 그 목격자들』, 박규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5, pp.39~79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12. 자끄 데리다, 『목소리와 현상』, 김상록 옮김, 인간사랑, 2006, pp,118~119 [본문으로]
  13.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4, p.42 [본문으로]
  14. 자크 데리다, 같은 책, p.39 [본문으로]
  15. 자크 데리다, 같은 책, p.53 [본문으로]
  16. 폴 리쾨르, 『해석이론』, 김윤성․ 조현범 옮김, 서광사, 1994, p.61 [본문으로]
  17. 폴 리쾨르, 같은 책, p.64 [본문으로]
  18. 폴 리쾨르, 같은 책, p.65 [본문으로]
  19. 폴 리쾨르, 같은 책, p.7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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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비평’이다, 또한 ‘비평되는’ 텍스트다
- 설교 쓰기/말하기, 설교 읽기/듣기에 관한 하나의 생각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기독교 출판물 가운데 스태디셀러 중 하나는 설교집 장르의 책이다. 전국의 목사들 거의 모두에게 설교는 가장 큰 부담거리의 하나인 탓이다. 대개의 담임목사들은 주일 예배를 절대로 남에게 양도하지 않는다. 그것은 담임목사의 철칙에 가깝다. 게다가 수요일 예배와 금요일 예배가 있다. 또한 매일 새벽에도 예배가 있고, 1년에 두 차례씩 교인들의 집을 방문하는 심방예배가 있으며, 그 외에 결혼식, 장례식 등 이런 저런 예배들이 일년 전체를 가득 채운다.

개신교에서 설교는 모든 예배의 하이라이트이니 빠뜨릴 수 없지만, 그 많은 예배를 일일이 준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해서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주일 예배 외에 다른 예배의 설교는 부목사나 전도사 등과 분담하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설교 수가 너무 많다. 게다가 교회 행정, 교인 관리, 교회간 정치 등 목사에게 부여된 일은 생각보다 과중하다. 이런 일로 시달리다 보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러니 설교를 하려 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난감함에 빠진다. 하여 많은 목사들은 원고 없이 설교를 하며, 그중 적지 않은 설교는 거의 즉석설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순발력에만 의존한다.

그래도 설교를 전혀 준비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것이 많은 목사들이 남의 설교집을 참조해야 하는 이유다. 여러 개를 펴 놓고,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내고 다른 데서 예화를 빌리며, 또 다른 데서 해석을 발췌한다. 이런 것들이 조합되어 한 편의 설교가 만들어지곤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개의 설교들은 내용이 그저 그렇다. 깊이는 말할 것도 없고 귀담아 들을 만한 내용도 찾아보기 힘들다. 상투적인 말들, 안 해도 그만인, 입에 발린 말들로 가득하다. 대형교회의 경우는 이른바 설교용역을 주는 경우도 있다. 자료를 준비해주는 ‘알바’를 고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사정이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지식만 현란하게 나열될 뿐이지 생각의 깊이가 배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곰곰이 생각하고 삶을 성찰하는 시간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해서 훌륭한 설교를 하는 이들의 경우는 거의 예외 없이 설교 편수를 줄이고 기타 업무를 줄이는 ‘목회의 기술’을 발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한 달에 네 번은 해야 한다. 더구나 설교 내용이 좋기로 유명한 목사들의 경우는 교인들이 설교노트를 만들고, 녹음테이프나 녹화테이프를 구해다 반복해서 듣고 본다. 심지어 인터넷을 통해 무차별 대중에게 공개되곤 하니, 아무리 업무를 줄이고 설교 횟수를 줄여도 한주 내내, 아니 일년 내내, 시도 때도 없이 설교 생각에 정신이 스탠바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탄성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빛나는 설교를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정말로 대단한 필력과 사고력, 그리고 몸과 영혼이 지쳐도 정신의 기복이 남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다.

공적으로 글을 쓴 경력이 20년이 넘었어도 그이들 정도의 지력이나 필력이 따라붙지 못하는 나에게 한 달 네 번의 설교는 불가능에 가깝다. 목사로서 교회를 전담해본 8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 때에도 보통 한 달에 3회 정도를 했고, 네 번을 했던 경우는 손에 꼽힌다. 더구나 목회를 그만 둔 지금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설교를 하는 셈이어서, 대개의 목회자들의 경험과 정신의 수고를 대신하는 글을 쓸 자격은 내게 없다. 다만 설교자의 한 사람으로 살아온 세월이 20년이 넘은 덕에, 나름의 설교에 관한 관점도 생기고 나름의 스타일도 만들어졌으니, 설교쓰기에 관한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우선 내가 설교하는 교회 얘기를 해야겠다. 여기에서 나의 첫 설교가 1988년에 있었으니 20여년이 되는 동안 나의 설교관과 스타일이 형성된 토양이다. 그중 6년간은 목회 보조자였고, 8년간은 담임목회자였으며, 목사직을 사임한 이후 9년 동안은 교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있으면서 고정 설교자로서 한 달에 한 번 설교를 맡아 한다.

이 교회에서는 ‘설교’라는 말 대신에 ‘하늘뜻 나누기’라는 명칭을 붙였다. 이것은 나름의 신학적 주장을 담고 있다. 핵심은 ‘하늘뜻+나누기’라는 데 있다.

전통적인 견해는 ‘하늘뜻’은 ‘선포하기’ 혹은 ‘펴기’ 같은 말과 결합되어, ‘하늘뜻+선포하기’, ‘하늘뜻+펴기’이어야 한다. 여기서 ‘선포하다’, ‘펴다’라는 말이 시사하듯 ‘하늘뜻’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경로는 일방향적이고, 하향적이다. 이때 선포자가 설교의 중심에 있음은 물론이다. 청중은 수동적으로 듣는 자다. 그이들에게 부여된 자율권은 그 선포된 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한정된다. 일방향적, 하향적, 수직적인 하느님의 말은 절대불변의 것이다. 그 말의 뜻은 이미 결정된 채로 사람들에게 설교자를 통해 전해진다.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일지 거절할지 선택해야 한다.

해서 전통적인 설교학은 선포의 주체는 하느님이고, 선포자, 곧 설교자는 하느님의 말을 대언하는 자다. 해서 설교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명제가 제기되었다. ‘설교자는 설교하는 순간 하느님의 말을 하는 것이다.’ 서양의 종교개혁기부터 정립된 관점으로, 설교자는 바로 이 설교의 순간 역할상 신을 대리한다.

반면 ‘나누기’와 결합된 ‘하늘뜻’은 사뭇 다른 방식으로 사람과 엮인다. ‘나눔’, 곧 수평적인 방식으로 신과 사람이 뜻으로 얽힌다는 얘기다. 또한 그 뜻은 미리 결정된 의미가 단지 선포되는 게 아니라, 나눔으로써 형성된다. 사람과 사람, 신과 사람의 나눔, 곧 대화의 과정에서 ‘하늘뜻’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은 이 교회만의 독특한 설교 제도를 만들어냈다. 설교자의 설교가 끝나면서 예배는 곧바로 ‘대화나눔’으로 이어진다. 곧 이 교회의 ‘하늘뜻 나누기’는 ‘설교+대화나눔’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오랜 실험을 거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형성된 관행이다. 모두들 설교를 두고 바로 대화나눔을 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해서 예배를 마치고 토론을 하거나, 애초부터 집단설교를 하면서 토론을 하거나, 혹은 토론 주제를 놓고 난상토론을 하거나, ......, 이런 시도 저런 시도를 했다. 그러다 발견된 것이 ‘수다떨기’였다. 주제를 두고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설교 속에서 발견된 ‘소재’를 두고 말꼬리를 이어가며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주제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어떤 때는 설교자가 던진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다른 때는 설교에서 떠오른 말을 소재삼아 자기 얘기를 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맞장구를 치기도 하며, 또는 말이 이어지지 않으면, 자기가 느낀 것을 얘기하기도 한다. 형식과 내용에 대한 제약을 최소화하니 얘깃거리가 다양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시간 동안 설교자의 말을 듣고, 또 다른 이가 하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며 자기 말을 한다. 때로 이야기를 독점하려는 이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해서 하늘뜻나누기 전담 사회자가 생겼다. 예배 전체의 사회자와는 별도로 말이다. 그이의 역할을 특정인이 이야기를 독점하지 않도록 하고, 말이 끊길 때 말이 나오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자는 한 달 단위로 돌아가며 맡는다.
 
여기서 하나 첨언하면, 이 교회의 대화나눔 속에는 갈등도 포함된다. 그것은 종종 얼굴을 붉히는 것으로 이어지며, 어떤 경우는 설교자가 상처를 받고 더 이상 설교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난감한 일이 벌어질 때 예상외로 교인들 중에 그런 난감함을 중개하고 갈등의 당사자들의 상처를 봉합해주는 이들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상처받은 이를 껴안아 주고 보듬는 이도 있었다. 또 어떤 경우는 설교자의 말에 혼란과 상처를 입은 이가 사적으로 설교자를 찾아와 그 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것은 충분한 대화로 이어지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서로의 말을 들으면서 자기의 생각의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해서 이 교회의 ‘하늘뜻나누기’의 대화나눔은 예배 안에서만이 아니라, 예배가 끝난 이후에도 이어진다. 그러한 과정에서 하늘뜻이 서로에게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설교자의 말을 실마리 삼아 자유롭게 서로 수다떨기를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 각자가 자기의 성찰에 이를 때 그것이 바로 ‘하늘뜻’이다. 이 교회가 말하는 설교의 신학에 의하면 말이다. ‘하늘뜻’은 내려오는 게 아니라, 남의 말을 듣는 ‘과정’이고, 그 말에 자기의 말을 섞는 ‘과정’이며,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사람들 각자가 대화를 통해서 ‘뜻’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 곧 ‘하늘뜻’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하늘뜻’의 ‘뜻’은 함석헌의 용어에 영향 받은 것이다. 그이는 역사 현실 속에 내재된 신의 형상을 ‘뜻’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역사의 운동과 함께 존재하며,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신을 발견하는 과정, 달리 말하면 역사라는 장(fields)에서 사람들이 신과 대화하는 과정이다. 매순간 역사가 달라질 때마다 뜻은 변모하며, 그 변모 속에는 신과 사람들의 만남이 다르게 구현된다. 뜻은 현실 너머에서 내려오는 고정불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역사 과정에서, 역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함께 나누면서 만들어내는 진리인 셈이다. 그것을 함석헌 선생은 역사에 구현된 하늘의 형상으로서의 ‘뜻’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바로 그러한 ‘뜻’의 의미가 이 교회의 ‘하늘뜻’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설교를 일방적인 말하기가 아니라 말하고 듣기, 그리고 듣고 말하기가 교차되는 과정이라고 하면, 더 이상 설교자는 특별한 사람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설교자가 설교하는 순간 신의 말을 대언한다거나 그이가 그 순간 신의 모상(image)이라거나 하는 주장이 전제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일반적으로 설교학에서는 이런 주장을 보충하기 위해 설교자의 ‘소명’을 강조했다. 이때 소명은 주관적인 인식작용이다. 그것은 원리상 부름의 주체인 신과 부름의 대상인 특정인 사이에서 일어난 내밀한 관계 맺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것을 다시 다른 요소가 보충해야 한다. 바로 설교자의 ‘객관적 자격’이 부여되어야 하는 것이다. 개신교에서 설교는 목사의 고유 권한이다. 예외적 상황이 아닌 한 다른 이는 설교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교단마다 조금씩은 달라도 목사가 되려면 신학대학원을 나와야 하고, 목사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하며, 유급의 목회 경력을 일정기간 거쳐야 하고, 마지막으로 그이를 목사로 받아들이는 교회의 ‘청빙’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논리상의 위기가 있다. 소명이라는 주관적 인식작용과 목사가 되는 객관적 자격조건 사이에는 어떤 필연성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실재로는 후자가 전자를 대체하며, 그렇게 목사가 된 사람은 자기의 말이 설교 시에 신의 말이 된다는 신학적 주장으로 무장하며 설교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를 내장한 논리 아닌 논리는 신학적 주장이라기보다는 ‘신학적 억지’에 가깝다.

반면 하늘뜻의 나눔으로서의 설교론은 특화된 특정인만이 맡아 하는 설교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린 설교를 지향한다. 누구든 설교자가 될 수 있다. 하여 내가 설교자로 참여하는 교회에서는 여러 명이 돌아가며 설교를 맡는다. 그중에는 목사도 있고 목사 아닌 이도 있으며, 종종 집단으로 하는 설교도 있다. 그리고 언제나 설교 후에는 대화나눔이 이어진다. 물론 실재로 설교자의 자격은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지만, 공동체가 동의할 만한 이가 설교자로 선임된다. 목사인지 여부가 아니라 대중이 그이의 말을 경청할 수 있는지 여부가 암묵적인 자격 조건이다.
이 교회는 3명의 고정 설교자가 있으며, 그이들의 설교 주기는 담임목사가 예배위원회, 그리고 설교자들과 협의하여 조정한다. 그리고 고정 설교자 외에 간간이 설교자로 참여하는 이가 몇이 더 있고, 교인들의 조직이 자발적으로 기획하여 진행하는 설교도 횟수가 연 단위로 정해져 있는데, 이 경우 대개 집단설교나 퍼포먼스의 형식으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이 교회에서 설교는 잘 분담되어 있으며, 누구도 과중한 설교의 짐을 지고 있지 않다. 내가 보기엔 이것은 설교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다. 특출한 필력과 사고력을 가진 ‘슈퍼휴먼’이 아니어도, 설교자로서 충분히 생각하고 나름 깊게 연구할 틈을 통해 교인과 교인, 교인과 신의 대화나눔 과정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설교의 말을 구성할 최소한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와 그 설교신학에 대해 얘기가 길었다. 이제 설교쓰기에 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눠보겠다. 여기서 주지할 것은 설교란 그것이 연행(performance)되는 ‘현장의 언어’라는 점이다. 인터넷에 원고가 공개되고, 그 녹음 혹은 녹화한 것이 무차별 대중에게 바로 공개된다고 해도 원칙적으로 설교는 설교자와 대중이 마주보며 일어나는 그 현장의 것을 옮겨온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 시작된, 이른바 방송설교라는 현장 해체적 설교도 있지만, 그것은 아직까지 설교의 예외적 현상일 뿐이다. 

설교 쓰기 과정에서부터 현장은 설교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일종의 ‘예비검열’(preparatory inspection)이 작동하는 것이다. 청중과 대화할 수 없는 언어를 선택하며 설교를 연행하는 이는 없다. 이때 예비검열자인 청중은 그 교회가 오랫동안 펼쳐오면서 제도화된 예배와 설교 신학 속에 응축되어 있다. 즉 교회가 공유하는 예배와 설교 신학은 설교자가 상상하는 청중의 이미지인 것이다. 특히 일반적인 교회의 관례를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경험을 녹이면서 제도를 구축해온 실험적 교회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내가 설교하는 교회도, 갖가지 실험을 하면서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나름의 관행을 정착시킨 예에 속한다. 이 관행 속에는 갖은 실험과 문제의식이 얽혀 있다. 그것은 이 교회가 발전시킨 예배와 설교 신학인 셈이다.

설교쓰기에서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다. 각 교회의 교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예배와 설교 신학 속에는 시공간에 대한 공통감각이 함축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현장감각이겠다. 가장 간단하고 직접적인 시간의 문제는 얼마간 설교를 하느냐의 문제다. 교인들이 생각하는 적정한 시간보다 넘치면 너무 길고 모자라면 너무 허전하다. 매주 반복되는 설교를 통해 교인들은 적정시간을 몸에 간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설교의 내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기억하는 그 교회 나름의 시간감각인 것이다.

이것은 글쓰기의 분량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금석이다. 내가 설교하는 교회의 경우 30분 설교와 30분 토론이 적정시간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데, 거기에 알맞은 나의 글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 23매 정도다. 그만큼의 분량 속에 글이 구성되도록 생각을 배분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설교자의 말의 속도와 스타일에 따라 그 분량은 달라진다. 또 가장 간단한 공간의 문제는 설교와 대화나눔이 연행되는 장소에 관한 것이다. 나의 경우 적정한 공간은 둘러앉았을 때 각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 반응을 살필 수 있을 정도다.

시공간에 관한 가장 복잡한 문제는 ‘지금’과 ‘여기’의 해석에 관한 것이다. 교인들이 공지하고 있는 구체적 사건에서 출발하며, 그 사건에 관한 교인들의 이해의 틀, 혹은 교인들이 익히 알고 있는 사회 일반적인 이해의 틀에서 제기할 논점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좀 더 광역의 시공간 속에서 다시 생각해본다. 즉 ‘지금 여기’의 사건을 하나의 국부적 사건이 아니라 보다 넓은 사회적 역사적 맥락과 연관시켜 그 사건에 관한 종전의 생각을 더욱 깊게 발전시킨다. 하여 여기에서 교인들에게 일반적인 이해의 틀을 넘어서서 생각할 수 있는 대화의 실마리를 제기한다. 요컨대 ‘지금’과 ‘여기’에 대한 해석은 설교의 출발점이고 또 종착점이다. ‘지금’과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하고, ‘지금’과 ‘여기’에 대한 성찰에서 끝나는 것이다.

다음은 ‘지금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과 성찰에 관한 설교의 한 사례로, 나의 설교 중에서 퍼뜩 떠오르는 것 하나를 선택했다. 선택하고 나서 이 글을 쓰는 중에 확인해보니 이 설교는 수련회 때에 다른 교회와 연합하여 나눈 예배의 설교인 탓에 대화나눔이 생략된 것이었다. 낭패감에 다른 설교로 이 글을 다시 쓸까 했으나,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왜냐면 그날 밤 여러 사람과 길게 얘기를 나누었으니, 사실상은 하늘뜻나누기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독주에 제동을 건 시민의 승리.’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많은 이들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저 역시, 대반전의 스펙터클을 통해 드러난 선거 결과에 고무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 천안함의 정치, 과학주의의 형식을 빌려 전 세계를 향해 타전된 북한 테러리즘에 대한 폭로의 정치가 뜻밖에도 한국의 시민사회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이른바 ‘북풍’은 무력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의 해석에 의하면, 정부가 주도한 천안함의 과학주의적 네러티브가 신냉전주의로 귀결되는 것에 시민사회가 주저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5월 13일에 발생했던 천안함 침몰사건과 6.2지방선거 직후에 있었던 설교의 한 부분이다(<욕망의 습격>. 2010.6.13). 이 설교의 출발점이 된 ‘지금 여기’는 천안함 사건에도 불구하고 북풍이 부는 대신 정부, 여당에게 지방선거에서 치명적인 실패를 안겨준 성숙한 시민정신에 많은 이들이 고무되어 있던 상황 인식과 관련이 있다. 그런 사정은 교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인식이라는 시공간적 좌표가 바로 이 설교의 출발점인 것이다.

시민사회가 선거를 통해 보여준 것은 MB 정부의 토건주의적 행보에 제동을 건 것이 아니라, 신냉전주의적 정치의 호전성이 담고 있는 정치적 불안에 대한 반대인지도 모릅니다. 혹은 정부의 일방적 토건주의 정치가 오히려 더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대인지도 모릅니다.

해서 나는 MB 정부의 토건주의에 대한 우려 못지않게 우리 자신의 욕망 분출의 전략에 대해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욕망을 절제하는 삶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MB의 토건주의를 좌초시키는 데 성공할지라도 우리는 또 다른 ‘MB’를 불러오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같은 설교의 맺음부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6.2지방선거의 결과는 ‘성숙한 시민정신’ 덕이 아니라 ‘시민의 넘치는 욕망’ 탓일 수 있다는 문제제기에 있다. 소비사회가 도래하면서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시민의 게걸스런 자산 축적의 욕망이, 그리고 그러한 삶의 전략이 과하게 고조되고 있는 시기에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다. 더욱이 지구화의 광폭한 태풍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치열하게 욕망의 게임에 몰두하게 만들고 있던 시기다. 그런데 정부가 담론화하던 천안함 사건에 관한 해석들은 전쟁의 위기의식을 한층 고취시켰다. 이것은 주가를 떨어뜨리고 부동산 경기를 침체하게 하고 국제무역에서 좋지 않은 징후로 해석될 수 있었다. 시민사회는 그렇게 이해했다. 즉 정부와 여당은 천안함 사건을 위기담론으로 해석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자 했는데, 시민사회는 그것에서 자신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에 불만을 품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선거에서 여당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인 것은, 이 선거의 민심이 4대강 사업 같은 정부의 토건주의 정치를 반대하게 하는 동력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에 있다. 교회가 지향하는 하느님나라의 질서에 반하는, 땅을 착취하고 농민과 서민의 건강한 삶을 유린하는 자본 친화적인 MB 정부의 토건주의 정책이 이번 선거로 그다지 제동이 걸릴 것 같지 않다는 문제제기다. 하여 너무 낙관적인 마음으로 ‘지금 여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좀 더 냉철하게 사태를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설교 후 ‘지금 여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관한 격렬한 토론을 낳았다. 선거결과를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선거행위가 이 설교에서 모욕을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다. 반대로 다른 이들은 설교의 주장에 공감했다. 그이 중에 한 사람이 부동산에 관한 사람들의 욕망이 어떤지에 대해 자기의 기억을 풀어놓았다. 그러자 욕망에 관한 얘기가 꽃을 피웠고, 그 욕망을 어떻게 절제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생각을 나눴다. 거기에는 무소유를 주장하는 스님의 책 얘기도 나왔고, 동양고전에 관한 얘기를 꺼낸 이도 있었다. 또 예수에 관한 생각을 펴는 이도 있었다. 

하여 설교자의 생각을 사람들이 지지하든 않든, 이 설교는 하나의 생각의 실마리가 되어, ‘지금’과 ‘여기’를 보다 냉철하게 생각하고 성찰하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에 관한 사회의 일반적인 이해의 틀에서부터 교인들 각자가 품은 자기 자신의 욕망까지 되돌아보면서 이 사건에 관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 설교의 ‘지금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과 성찰 사이에는 ‘성서 읽기’가 있다. 시공간에 대한 이해가 설교에서 특별히 고려해야 하는 첫 번째라면, 성서 읽기는 두 번째 요소다.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적 이해가 현재라면, 성서는 ‘과거의 텍스트’다.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를 동원하는 방식, 그것이 설교의 중요한 형식적 틀이다. 즉 설교는 과거를 ‘회상’함으로써 현재(‘지금 여기’)를 다르게 바라보고 성찰에 이르게 안내하는 데 목적을 둔 텍스트다.

위의 설교로 돌아가 보자. 생각의 실마리로 선택한 성서 구절은 「창세기」 6장 2절이다.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저마다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 이것은 기원전 3세기에 널리 회자된 묵시적 구문의 하나인데, 5개 묵시록의 묶음집인 『에녹1서』에 수록된 「파수꾼의 책」에서는 이 수수께끼의 실마리가 들어 있다. ‘하느님의 아들들’은 ‘타락한 천사’라고. 다시 이 설교의 한 부분을 인용해보자. 

한데 그것에 제동을 걸 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천사 아사엘은 심판을 받지만, 그 종말을 되돌리게 할 이는 부재합니다. 어느 인간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천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신조차도 불가능합니다. 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재앙 이후 역사를 다시 시작하는 것뿐입니다. 욕망의 침입은, 그 절정에 이르면 이렇게 환원 불가능한 파멸로 인간을 몰아간다는 것, 이것이 프톨레마이오스 제국 시대, 그 욕망의 질주 시대를 맞아 「파수꾼의 책」을 저술한 한 묵시가의 문명비평적 고언(苦言)입니다.
타락한 천사들이 인간에게 신의 비밀을 발설하였다. 가령, 아사엘은 야금술을 가르쳤다. 그것은 문명을 낳았고, 그 결과 제국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 식민지 사회에서 형성된 묵시록들의 문명인식의 한 단면이다. 발전된 문명의 추동자인 제국의 치하에서 식민지인 팔레스티나는 적지 않은 발전을 이룩했다. 물론 그것은 ‘더 많은’ 땅을 병합한 지주들과 그들의 하수인인 토지관리인(청지기), 그리고 몰락의 위기에 놓인 농민들과 이미 몰락하여 떠돌이가 되어버린 이들로 사회적 계층 분화를 심화시켰고, 성장의 꿈에 부푼 이들의 향락과 몰락의 나락에 떨어진 이들의 비탄이 겹쳐지는 사회를 낳았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한 묵시가는 부풀려진 욕망, 그 욕망의 습격으로 환각에 빠진 영혼들의 파멸을 상상한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6장 2절의 구문 속에 담긴 종말론적 비판인 것이다.

이와 같이 성서는 ‘지금 여기’에서의 문제의식과 성찰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키며, 그 사이를 괜한 낙관으로 메우는 대신 문명에 대한 종말의 위기의식으로 채워 넣는다. 천안함 사건이 6.2선거에서 북풍으로 귀결되지 않고 오히려 정부와 여당에게 패배를 안겨준 것은, 시민정신의 발로가 아니라 소비사회를 사는 우리 모두가 탐닉하고 있는 욕망의 경제학 탓이라고, 그런데 이것은 우리 모두의 파멸을 부르고 있다고 ......

여기서 우리는 설교에서 고려해야 하는 세 번째 요소에 이른다. 현장의 대중에게 던지는 논점이다. 논점은 청중에게 불편한 진실 혹은 낯선 진실을 가지고 설득하려 할 때 형성되곤 한다. 물론 모든 설교가, 언제 어디서나 이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위로가 필요하고 때로 슬픔을 공감하거나 분노를 공유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설교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낯설거나 불편한 진실에 생각이 헛갈리게 하고 때로 반감을 불러일으키게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당연한 생각의 코드를 교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해석은 하나의 자명한 진실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의 틀도 가능하다는 다중의 현실에 직면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설교의 말/글은 신학적으로 예언이며 문예학적으로 ‘비평’이다.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말하되, 그 사건에 대해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는 스토리라인을 빗대면서, 그 담론에서 말하고 있지 않은 말을 찾아내고 또 말하고 있는 은폐된 소리를 들춰낸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생각을 발전시키고 성찰에 이르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언 또는 비평으로서의 설교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설교를 다른 점에서 불편해 한다. 그것은 설교가 예언이고 비평이어서가 아니라, 뜬금없는 소리이거나 아무 의미 없는 소리로서, 현장도 없고 진정성도 없는 메아리로만 울려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보다 생각을 지우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화 중에 “너 설교하니”라는 말은 아무런 애정도 진실도 담기지 않는 ‘훈장짓’ 하는 말을 뜻한다. 실재로 많은 설교가 그렇다. 

일차적인 책임은 목사들에게 있겠다. 동시에 그러한 설교 말을 공명하는 교회와 교인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러한 나쁜 관행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가지 방안이 있다. 그것은 ‘설교가 비평인 것처럼 설교도 비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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