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과 해방: 팔레스타인의 눈으로 보는 출애굽




김진양

(Ph.D. The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the Old Testament))




옥중에서 완성된 문익환 목사의 책 「히브리 민중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신학교에서 구약성서를 가르칠 때, 흔히 학생들이 들이대는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애굽에서[각주:1] 종살이하다가 도망쳐 나온 히브리인들이 40년 후에는 오히려 침략군으로 전락 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해방군이 침략군이 된 것이다. 하지만 문 목사는 히브리인들은 약속의 땅에서 침략군이 아니라 여전히 해방군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히브리인이 가나안의 농민과 합세하여 가나안 봉주를 물리친 해방군으로서 출애굽의 진정한 정신은 애굽에서의 탈출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서의 해방전쟁에서 완성된다고 주장한다.[각주:2] 사회과학적 방법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관점에서 보면, 초기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경험한 히브리인과 가나안 민중이 연대하여 가나안 봉주에 항거한 민중 봉기의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서는 고대 이스라엘을 가나안 민중과 연대한 해방군의 이미지보다는 가나안 침략군의 이미지를 서술하고 있다. 출애굽의 해방군이 가나안의 침략군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넋두리를 쳐야 할 사람들은 다름 아닌 팔레스타인이 아닐까?

 

이 글은 세 명의 팔레스타인 지식인들이- 탈식민주의 이론의 선봉자 팔레스타인 계 미국인 정치 사회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팔레스타인 성공회 신부 나임 아틱(Naim Ateek), 베들레헴 루터란 교회 목사 미트리 레헵(Mitri Raheb)- 말하는 출애굽의 의미를 되짚어 보면서 출애굽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지난 80년대 중반 이스라엘 계 미국인 마이클 월츠와 팔레스타인 계 미국인 에드워드 사이드 사이의 출애굽 논쟁이 뜨거웠다. 이 논쟁의 시작은 정치 철학자이자 사회 비평가인 마이클 월츠가 「출애굽과 혁명」 (Exodus and Revolution)이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책에서 월츠는 출애굽을 모든 혁명의 패러다임이라고 평가했다. 영국의 청교도나 미국의 식민지 개척자, 네덜란드계 남아프리카 민족주의자, 미국 인종차별에 대항한 마틴 루터 킹 목사 같은 시민혁명은 출애굽의 혁명정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야말로 이들에게 출애굽은 ‘억압에서의 자유’를 상징한다. 따라서 왈츠는 혁명정신에서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첫째, 애굽이라는 ‘억압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둘째, ‘더 나은 세상’인 약속의 땅이 존재한다는 것도 인지해야 한다. 셋째, ‘약속의 땅’은 반드시 광야를 거쳐야만 한다.[각주:3] 그러나 월츠가 설명하는 출애굽기의 ‘억압의 세상’과 현대의 ‘억압의 세상’에 문제가 있다. 그는 애굽인들이 히브리인들을 박해한 것을 20세기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비교하면서, 아랍국가와 근대 이스라엘 사이의 갈등을 애굽인과 히브리인 사이의 갈등으로 동일시 한 것이다.

 

이에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적이고 상황적인 갈등을 왜곡한 해석이라고 즉각 비판했다. 사이드의 논지는 분명하다. 월츠의 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관계를 왜곡하고 합리화한 책으로 [해방군 히브리인이 가나안 침략군으로 전락한 것처럼] 가나안 땅 정복의 단순한 역사적 반복이다’고 비판하였다.[각주:4] 월츠의 출애굽은 20세기에 세워진 국가인 이스라엘의 정책을 옹호하는 빈약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월츠는 아메리칸 대륙의 인디안을 학살하며 땅을 빼앗은 청교도의 이미지를 간과했고, 나치정권이 유대인들에게 했던 일을 그대로 답습한 유대인 시오니즘을 간과한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즉, 월츠는 애굽의 압제에서 탈출한 해방군이 가나안의 땅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침략군으로 전락한 사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성공회 신부 나임 아틱(Naim Ateek)은 성서가 정치적으로 오용되고 남용된 점을 지적한다. 특히 근대 이스라엘의 설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성서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안타깝게도 히브리인들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고 해방시킨 하나님이 팔레스타인에게는 편파적이고 차별적인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주장처럼 아틱 신부는 이스라엘 국가 설립 이후 시오니즘의 시각에서 읽혀졌던 출애굽의 의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아틱 신부는 다음과 같이 성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던진다:

 

과연 어떤 차원에서 구약성서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해방신학자들은 출애굽 해방 정신에 기초하여 구약성서를 해방의 근 거로 역설하지만, 오히려 성서는 팔레스타인을 노예로 전락시킨 문헌적/종교적 근거 제공하고 있다.[각주:5]


베들레헴 루터란 교회 목사인 미트리 레헵(Mitri Raheb)는 히틀러의 박해라는 ‘애굽’에서 출애굽 한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에 이주한 이후 유럽에서 온 침략군으로 변했다고 한다. 레헵 목사는 자신의 책에서 출애굽을 강연할 때 주고받은 학생과의 대화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목사님! 출애굽은 히브리인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럼 누구의 이야기인가요?”
“바로 우리 팔레스타인의 이야기입니다.”
 
1969년 이후 팔레스타인은 새로운 이스라엘 건설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팔레스타인은 아무런 권리를 가질 수 없었다. 1980년 이후 팔레스타인은 높은 세금 폭탄을 맞고 수많은 사람들이 추방되거나 학살당했다. 팔레스타인의 박해는 히브리인들이 바로의 압제 아래 박해 받았던 것과 상황이 다르다. 히브리인과는 달리 팔레스타인은 외부에서 유입된 ‘침략자’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지금의 이스라엘 땅과 웨스트 뱅크)본토민이다. 출애굽의 히브리인들은 애굽에서 탈출하는 것이 해방을 의미하지만, 팔레스타인은 자신들의 땅 안에서 해방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다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에게 애굽은 지리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상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각주:6]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부정하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의 협상도 거절한다. 따라서 레헵 목사는 하나님의 개입만이 진정한 출애굽을 가져 올 것이라고 믿는다. 레헵 목사는 열 가지 재앙은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경제봉쇄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팔레스타인의 출애굽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경제 봉쇄없이 불가능하다고 레헵 목사는 주장한다.[각주:7]
 

세 명의 팔레스타인이-사이드, 아틱, 레헵- 말하는 출애굽은 자유나 해방이라는 단어로 결코 출애굽의 진정한 의미를 담을 수 없다. 출애굽은 억압과 노예에서의 자유를 넘어 끊임없는 해방을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05년 겨울, 베들레헴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소 근처의 벽에 그려진 그림.

이스라엘 사람들이 군인으로 묘사된 점이 특이하다.


 


* 필자소개

    현재 미 연합감리교회 북 일리노이 연회에서 목회,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에서 구약학 전공(Ph.D.),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 외래교수,  Wartburg College에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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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애굽을 지칭하는 히브리어는 ‘미츠라임’으로서 이 히브리어를 가장 잘 번역한 단어가 ‘애굽’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이집트와 고대의 이집트 사이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애굽’이라는 지명을 의도적으로 사용함을 알린다. [본문으로]
  2. 문익환, 「히브리 민중사」 (서울: 삼민사, 1990), 38쪽. [본문으로]
  3. Michael Walzer, Exodus and Revolution (New York: Basic Books, 1985), p. 149. [본문으로]
  4. William D. Hart, Edward Said and the Religious Effects of Culture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p. 1. [본문으로]
  5. Naim S. Ateek, "A Palestinian Perspective: The Bible and Liberation," in Biblical Studies Alternatively: An Introductory Reader. ed. Susanne Scholz (New Jersey: Upper Saddle River, 2003), p. 397. [본문으로]
  6. Mitri Raheb, I Am A Palestinian Christian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5), p. 89. [본문으로]
  7. Mitri Raheb, I Am A Palestinian Christian, p. 9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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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 기원에 대한 성서 해석학과 정치학

김진양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에서 구약학 Ph.D. 과정중)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은 과히 지난 20세기 성서 해석학에서 가장 중심된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서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스라엘의 기원에 대한 해석적 담론을 지속적으로 쏟아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였고, 그리고 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이 성서학자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끈 이유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차원에서 이야기 될 수 있다. 첫째, 고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 성서의 자체의 진술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의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 11:16-17) 이스라엘이 가나안 도시를 단번에 완전히 정복하였다는 (all-at-once) 것을 서술하는 반면, 사사기서는 (사사기 1:9) 이스라엘이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도시와 몇몇 영역들을 서술하고 있다. 성서학자들은 이런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서의 모순된 진술에 대한 답을 소위 객관적(?) 증거를 제공하는 고고학에서 찾고자 노력하였다. 둘째, 고대 이스라엘 기원이라는 과거 역사의 재구성은 오늘날 현실 정치에 깊숙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지난 100년동안 성서학자들의 고대 이스라엘 기원에 대한 해석학은 팔레스타인 땅의 권리를 둘러싼 이민자 이스라엘과 토착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이라는 현실 정치의 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에세이에서 성서 해석학과 현실 정치와의 관련성을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이라는 주제를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1996년 키쓰 와이트럼(Keith Whitelam) 이라는 구약 성서학자는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e History (「날조된 고대 이스라엘: 침묵의 팔레스타인의 역사」)라는 도발적인 책을 출판하였고, 그리고 이 책은 성서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와이트럼은 “이스라엘 역사는 근대성에 근거한 성서 해석학의 결과물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지난 20세기 성서해석의 담론을 일축한다. 지난 세기 성서 학자들의 주된 정치적 이념은 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권리를 옹호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권리에는 침묵하였다. 다시 말하면, 성서 학자들의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는 근대 이스라엘 건국의 성서적/이념적/정치적 합법성을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 책은 성서 해석과 현실 정치의 연관성을 날카롭게 보여준 대작임에 틀림없다. 와이트럼은 20세기의 고대 이스라엘 기원에 대한 세가지 전통적인 모델- (1) 평화 이주설, (2) 정복설, 그리고 (3) 민중 봉기설- 을 탈 근대의 담론으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1) 평화 이주설
평화 이주설은 알브레이트 알트(Albrecht Alt)의 1925년 논문 (“Die Landnahme Der Israeliten in Palästina”)에서 출발한다. 이 가설은 고대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으로 (당시 가나안 사람의 땅) 평화롭게 이주한 것이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이라고 것이다. 평화 이주설은 구약성서 사사기서가 서술하는 이스라엘의 기원에 가장 가까운 가설이다. 그러나 와이트럼은 “[평화 이주설]은 조작적 과거의 재구성으로서 1920 년대 급증했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시오니즘을 반영한다”고 비판한다 (와이트럼 1996, 74). 평화 이주설은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유대인들과 매우 유사한 상관관계가 있다. 알트의 논문과 당시 시대적 상황이 1920년대라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와이트럼의 비판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평화 이주설의 핵심적 내용은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은 타자의 소유지를 빼앗은 폭력적 행위가 아니라, “비어있는 땅”(uninhabited land)에 평화롭게 이주하였다는 것이다 (Weippert 1971, 6).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비어있는 땅”의 의미는 무엇인가? 과연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할 때 그 땅의 주인은 없었을까? 성서 어디에도 “비어있는 땅”으로의 이주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비어있는 땅”이라는 해석적 관점과 1930년대의 이스라엘 역사학자들의 팔레스타인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비교하면 더욱 흥미롭다. 이스라엘 역사학자들은 1930년대 팔레스타인 사회는 내부적으로 와해된 국가라는 조직이 불가능한 소위 “비어있는 땅”과도 같다고 여겼다. 따라서 평화 이주설을 주장하는 학자나 이스라엘 역사학자들은 월등한(주체) 이스라엘인이 열등한(타자) 팔레스타인을 대치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2) 정복설
정복설은 윌리암 팍스웰 올브라이트(W. F. Albright)가 처음으로 주장한 가설이다. 올브라이트는 구약성서 여호수아서가 진술하는 고대 이스라엘인의 가나안 도시 정벌이라는 성서의 기록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였다. 올브라이트는 소위 근대정신의 중심된 담론인 성서 기록에 대한 “객관적(?) 사실과 증거”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가 믿었던 객관적(?)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는 어떻게 읽어 내는냐에 따라서 다른 결론을 얻을수 있다는 도전을 받고 있다. 와이트럼은 올브라이트의 정복설을 결국 폭력으로 팔레스타인의 “땅”을 차지한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비판한다.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사실은 올브라이트는 결코 토착민 팔레스타인의 땅에 대한 권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팔레스타인을 멸종의 대상인 “타자”로 규정하였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올브라이트는 유대인들이 중동에서 유럽문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와이트럼은 “정복설은 이주민/상위계층/서구인이 토착인/하위계층/동양인(중동인)을 학살하는데 대한 성서적 혹은 객관적(?) 정당성을 부여하였다”고 비판한다 (와이트럼 1996, 84-85). 와이트럼은 정복설의 정치적 이념은 “[서양의] 기독교가 열등한 [토착] 종교를 대치한 것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3) 민중 봉기설
조지 멘덴홀 (George Mendenhall)은 1962년 “The Hebrew Conquest of Palestine” 이라는 논문에서 고대 이스라엘은 사회 정치적 측면에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문에서 멘덴홀은 고대 이스라엘은 타락한 토착 가나안의 정치/사회적 체계에 대항한 사회적 약자 연대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면, 고대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하부계층과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연대하여 혁명의 (혹은 농민봉기) 결과라는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로서 The Amarna Letters에서 “하비루 (Habiru)”라는 하부계층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민중 봉기설이 초기 시오니즘의 유럽 국가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유대인 민중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미국, 유럽, 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다른 인종들이었지만, 동일한 사회적 억압을 경험한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멘덴홀의 가설을 더욱 발전시킨 갓월드는 (The Tribes of Yahweh, 1979) 자신의 책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을 서술하면서 반 베트남 전쟁을 역설하였다. 갓월드와 멘덴홀은 이스라엘을 단일 인종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고대 이스라엘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배경에서 온 사회계층의 동일한 정치적 경험의 담지자들이 가나안 지배층에 대항 강력한 도전과 봉기가 이스라엘의 기원이라는 가설이다 (Gottwald The Tribes of Yahweh, 215). 갓월드는 민중 봉기설을 주장하면서 베트남 사람들을 옹호하였지만, 그러나 근대 팔레스트인의 “땅”에 대한 권리에는 철저히 침묵하였다.

위의 세 전통적 가설과는 달리 와이트럼은 팔레스타인의 “땅”에 대한 권리를 옹호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이라는 “타자”를 위한 성서 해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잔 콜린스의 지적처럼, 근대 아랍 팔레스타인은 기원 후에 등장한 인종으로서 고대 가나안인과는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인종임을 와이트럼은 간과하고 있다 (Collins 2005, 42).

위에서 살펴본대로, 근대정신에 바탕한 성서 해석학은 현실 정치와 깊숙히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와이트럼이 보여준 비판적 해석처럼 성서를 해석하고 과거를 제구성하는 가치관의 재고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혹자는 종종 이러한 해석적 담론을 “탈 근대주의” 또는 “탈 식민주의”라고 부른다.

아래의 사진은 필자가 지난 2005년 1월 팔레스타인(현 이스라엘)로 Travel Seminar 갔을 때 찍은 예루살렘 장벽 사진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의 테러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세운 단절의 벽이다. 당시 저 무시무시한 벽을 세우는 성서적/정치적 정당성을 성서학자들의 해석적 담론이 제공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름이 끼치는 전율을 느낀 일이 생각난다.


참고문헌

Collins, John J. Encounter with Biblical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5.

Weippert, M. The Settlement of the Israelite Tribes in Palestine. A Critical Survey of Recent Scholarly Debate. London: SCM, 1971.

Whitelam, Keith.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e History. London; New York: Routiedge,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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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토론회] 홀로코스트 종교를 넘어서
 
- 개혁을 위한 종교인 네트워크 열린 포럼

2009년 2월 5일(목) 오후 3:00~6:00에 안병무홀에서 열린 긴급토론회 "홀로코스트 종교를 넘어서"의 동영상입니다. 이 토론회는 '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가 주최하였습니다.(이 영상은 공동주최자인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촬영했으며, 다음카페 '우리신학 배움터 울림' http://cafe.daum.net/wooriwoolim에서 퍼온 것입니다.)


홀로코스트 종교를 넘어서
-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적대는 어떻게 생산되는가 -

발제1_홀로코스트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_임지현 | 한양대. 서양사
발제2_홀로코스트 신학과 홀로코스트 너머의 신학_김진호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토론1_장석만 | 충간문화연구소 소장
토론2_박준영 | 아시아가톨릭뉴스 한국지국장
토론3_종명 스님 | 화계사 사회국장








* '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는 (1) 사회 개혁 의제에 대해 종교계의 의견을 모아 밝히고 참여하며, (2) 각 교단 안 개혁 문제에 대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3) 종교 자유와 종교 간의 관용성 확대와 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취지로 200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참여불교재가연대(불교), 우리신학연구소(천주교),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개신교)가 세 종단의 간사단체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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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하여

채수일
(한신대학교 신학과 | 교수)

1. 이스라엘은 작년 12월 27일 가자 지구에 대한 이른바 ‘캐스트 레드’ 작전을 개시, 지금까지 1천여 차례 이상의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공습으로 주요 시설 대부분이 파괴된 것은 물론, 침공 20일 째를 맞은 1월 15일, 1,0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이 희생당했다. 이스라엘은 수백 톤의 폭탄을 퍼부은 것은 물론 각종 신무기들을 실험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3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희생되었다. 부상자도 5,000명 이상에 이르고 있다. 파괴된 가옥 4천 채 등 피해액은 최소 14억 달러에 이른다.[각주:1] 탱크를 앞세운 지상군의 투입과 시가전은 앞으로 더 많은 사상자를 낼 것이 분명하다. 여성과 어린이들의 희생은 물론, 부상자를 치료할 병원과 의약품의 절대 부족, 물과 전기 부족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명도 위협받고 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미국을 통해 무산시켰고, 유엔의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심지어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 본부에도 포탄을 쏘고, 유엔 구호차량에도 공격을 가했다고 한다.[각주:2] 유럽 연합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관련 당사국들의 자제를 촉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 것은 총선을 앞둔 국내 집권여당의 정치적 상황과 비교적 진보적 입장을 취하는 미국의 새 대통령 오바마를 그의 취임 전, 시험하기위한 의도가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어떤 대통령도 마찬가지겠지만, 대선에서 유대인의 지지를 받은 오바마가 ‘이스라엘 로비’[각주:3]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내는 물론 이스라엘 안에서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공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집단과 개인들이 있겠지만 이스라엘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낼만큼 충분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2. 오늘의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분할과 지배의 역사를 회상할 필요가 있다. 2009년은 국제연합이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 안을 채택한지 62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국제사회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데 있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1947년 11월 29일 뉴욕, 국제연합총회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유대국가(영토의 56%)와 아랍국가(44%)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을 국제관리체제 하에 두기로 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스라엘은 사생아나 다름없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이집트(가자), 요르단(웨스트뱅크)과 함께 나눠먹고 국토면적을 3분의 1가량 늘렸다. 그리고 8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무력에 의해 집과 땅을 등져야 했다.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20년이 지난 후, 1967년 6월, 이른바 제3차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 동예루살렘, 가자지구를 차지했다. 점령은 곧 식민지화로 이어졌고, 우파가 정권을 잡은 이후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1977년에 5천명에 불과했던 이 지역의 유대인 정착민 수는 이츠하크 라빈 노동당 당수가 선거에서 승리한 1992년에 12만 명에 이르렀고, 그 후 10년 동안 다시 두 배나 증가하여 25만 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가자지구 땅의 약 25%를 차지했다. 이스라엘의 점령 통치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저항이 이어졌고, 1987년 이스라엘에 맞선 민중봉기(인티파다)가 일어났다. 그런데 요르단이 웨스트뱅크의 소유권 주장을 거둬들이자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1988년 말 건국을 선포하고 이스라엘을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양국의 평화협상은 1993년의 오슬로 조약으로 결실을 거뒀다. 팔레스타인은 가자와 서안에 자치정부를 수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95년 11월 4일 라빈 총리가 암살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는 큰 타격을 입었다. 후임 총리인 벤야민 네탄야후(1996-1999 재임)와 에후드 바라크(1999-2000 재임)가 점령지 반환을 거부한 것이다. 2001년 총리로 선출된 아리엘 샤론은 자살테러가 증가한다는 핑계로 웨스트뱅크를 재점령하고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2004년 7월 9일 국제사법재판소는 장벽을 불법 시설로 간주하고 철거를 명령했으며, 같은 달 20일에는 국제연합 총회가 찬성 150표, 반대 6표, 기권 10표로 동일한 결정을 내렸지만, 이스라엘은 장벽건설을 계속했다. 이스라엘은 평화협상을 중단하기 위해 2005년 9월 점령 38년 만에 의도적으로 가자지구에서 철수했다. 기막히게 연출된 유대인 정착민들의 가자지구 철수는 2005년 4월 총리로 선출된 에후드 올메르트의 작품이었다. 평화협상의 결렬은 팔레스타인 건국을 불가능하게 하고, 난민과 국경, 예루살렘에 대한 논의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의 정착촌 4개를 제외한 나머지 영토를 모두 합병할 수 있었다.

그 후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한 하마스가 2007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주요세력인 파타와의 내전 끝에 가자를 점령하자 이스라엘은 하마스 정권을 고사시키기 위해 봉쇄를 시작했다. 하마스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서구사회도 식량배급을 끊었다. 봉쇄정책으로 경제기반을 모두 빼앗긴 가자 주민 150만 명 대부분은 8개의 난민캠프에서 유엔의 지원에 의존하여 생계를 이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27일 이스라엘이 갑자기 침공을 시작했던 것이다. 4월 총선을 의식한 이스라엘 집권당의 의도인지, 오바마 미국 대통령 길들이기인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의 침공은 국제사회의 결의도 무시하는 오만함과 팔레스타인 난민들에 대한 만행을 다시한번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힘의 논리가 어떻게, 얼마나 냉혹하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미국의 대외정책에 끼치는 이스라엘 로비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예이다. 1947년 팔레스타인 영토의 44%를 약속받은 아랍 민족이 도대체 어떻게 2007년에는 동예루살렘에 수도도 없이, 난민 문제의 해결책도 없이 영국령 영토였던 시절의 10%에도 못 미치는 땅에 4개의 자치구밖에 차지하고 있지 못한단 말인가?[각주:4]

3. 세계의 양심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래된 정치적, 군사적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길 기원하고 있다. 유럽 연합도 이스라엘과의 동반관계 격상 계획을 잠정 중지했고, 볼리비아, 베네주엘라 등은 국교를 단절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시민단체들이 전쟁의 종식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15일에는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한국기독교회협의회 정의/평화 위원회, 한국교회 인권센터,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한신대학교 학술원 신학연구소, 감신대 기독교 통합학문연구소, 성공회대 신학연구원 등 기독교 단체는 물론, 한국불자교수연합회, 한국이슬람중앙회,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등 관련 인사들이 서울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종교시민단체의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한편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대한 무차별 살상공격과 폭력의 즉각적인 중단, 이스라엘 지상군의 즉각 철수, 이스라엘의 학살행위에 대한 미국의 두둔 철회, 휴전협정의 즉각 수용 등을 종교인으로서의 인도적 정신과 세계 인권선언 정신 위에서 주장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민간희생자들을 위한 의약품과 구호품 지원을 한국정부에 호소하고,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한국교회도 이스라엘의 야만적 침략을 규탄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켜왔다. 한국교회가 이스라엘에 대해서 무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각주:5]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데에는 한국교회의 친미주의, 일제식민지배하의 한민족의 운명과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야기를 동일시했던 전통,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학살당한 600만 명의 유대인들에 대한 기억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홀로코스트’가 지금의 이스라엘의 만행을 정당화하는 역사적 전거가 될 수 없다. 과거의 희생자가 현재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누구도 자신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구원은 기억’임을 스스로 잊어서는 안된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그 과거를 다시 경험하도록 심판받았다’. 뮌헨 근교 다카오에 있는 옛 집단수용소에 걸려있는 철학자 산타야나의 말이다. 희생에 대한 기억이 타인을 위한 배려와 돌봄으로 실현되어야지, 타인에 대한 폭력적인 억압과 지배로 보복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더구나 팔레스타인인은 유대인에 대한 가해자가 아니다.

4. 한국교회는 이스라엘을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서구 그리스도교가 저질러온 이른바 ‘안티 세미티즘’(반유대주의)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한국교회는 자유롭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역사적 고난의 기억을 지금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결부시켜야 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에서의 이스라엘의 만행을 억제하고, 중동에서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나는 한국교회가 다음과 같은 일을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교회는 먼저 고난 받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잠정적으로 중단하는 ‘모라토리움’을 선언할 것을 제안한다. 관광은 이스라엘 3대 산업의 하나로 일 년 관광수입이 30억 달러가 넘는다. 2007년 이스라엘을 방문한 관광객은 전년대비 25%나 늘어난 총 229만 3,700여명을 기록했다. 여기에는 유대인의 친척 방문이 많은 미국이 전체의 24%로 가장 많았고 이어 프랑스, 러시아, 영국 등의 순이다. 이에 비해 동아시아 수요는 전체의 5%에도 못 미치는 11만 2,900명이지만, 이 중 한국은 3만 3,900명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아시아에서 1위를 기록했다. 2006년보다 21%나 성장한 수치로, 주로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한 방문이었다.[각주:6] 성지순례는 소중한 종교체험임이 분명하고, 학문적 연구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중동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한국교회가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잠정적 중지를 선언 할 것을 제안한다. 그 대신에 팔레스타인 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안적 성지순례’를 하면서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과의 사귐과 연대를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은 이스라엘과 1962년에 수교를 했고, 이스라엘에 진출한 기업으로서는 현대종합상사, 대우, 기아, LG, 삼성물산, 효성물산 등이 있다. 1999년 현재 교역량을 보면 수출이 4억 8천 6백만 달러이고, 수입은 5억 6천 2백만 달러로, 한국이 7,600만 달러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의 교역에 압력을 가하고, 이스라엘과 관계된 상품들(이스라엘에 투자하는 회사들의 상품은 물론,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친이스라엘적 영화 등)에 대한 보이코트도 고려해야 한다.

끝으로 한국교회는 이슬람, 유대교와의 신학적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길 제안한다. 근본주의적 그리스도교는 이슬람을 오랫동안 적대시해왔고, 최근 한국을 이슬람이 선교지로 선택하여 공격적으로 선교정책을 추진한다는 소문을 근거로 자칫 현실을 왜곡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 현재 약 117만 명의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이슬람을 배경으로 한 나라에서 온 이주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슬람 적대적인 근본주의적 선교태도는 우리 사회 안에서 또 다른 종교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만드는 종교가 오히려 평화를 해치는 원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이슬람 사이의 갈등은 신학적, 종교적 원인에 의해서만 유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군사적 원인에 의한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불교나 힌두교 등 전적으로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보다 이들 세 종교들 사이의 갈등과 적대감이 더 심한 것은 이들이 어쩌면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들 종교들 사이의 갈등구조를 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선교적 전망을 얻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갈등과 억압과 저항의 역사에 의해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는 것, 그리고 다른 종교를 그 자체로서 정확하게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대화와 증언의 전제인 것이다. 그래야 우월감이나 피해의식 없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를 타종교인의 개종으로 이해하거나, 상대가 듣던 안 듣던 일방적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한, 같은 뿌리를 가진 세 종교 사이의 대화와 화해는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오늘의 이슬람국가들과 서방 세계 사이의 갈등과 분쟁을 ‘문명충돌론’이나 선과 악이 대결하는 ‘성전’으로 왜곡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정치적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신학적 대화는 훨씬 지난하고 긴 과정을 필요로 한다. 한국교회와 신학계는 지금까지 심각하게 숙고하지 못했던 유대교와 이슬람 문제와 대결하게 되었다. 그것이 유감스럽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으로 더 갑자기 강화되었지만, 같은 뿌리에서 나온 세 종교들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는 기회를 한국교회는 선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길을 모색하는데 한국교회가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 웹진 <제3시대>
  1. 한겨레신문, 2009년 1월 16일, 16면. [본문으로]
  2. 한겨레신문, 2009년 1월 16일, 2면. [본문으로]
  3. John J. Mearsheimer and Stephen M. Walt, The Israel Lobby and U.S. Foreign Policy, NY, 2007 참조. [본문으로]
  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 르몽드 세계사, 권지현 역, 휴머니스터, 2008, 154. [본문으로]
  5. 지난 1월 15일 한국-이스라엘 친선협회(회장 튜태영 장로, 전 건국대 부총장)가 주최한 2009년도 신년하례 및 이스라엘의 밤에서 회장인 류태영 장로는 ‘하마스는 그동안 비밀리에 무장해 이스라엘 국민들의 생명을 위협해왔다. 이번 전쟁은 그것을 막기 위한 공격으로 정당방위다... 이스라엘이 그 암세포가 더 커지기 전에 미리 수술을 들어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군사 지도자들이 우리의 혈맹인 미국과 은밀히 의논하는 가운데 대책을 세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우리 민족을 보호해주실 것이다. 우리도 이스라엘 처럼 결단을 내려서 북한의 핵무장을 해제시키는 일에 상당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사상, 2009,2, 70 참조. [본문으로]
  6. 인터넷 여행신문, 2008년 8월 27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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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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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09.03.09 07:0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는 이번 학기에 Northwestern 내에 있는 Garrett Seminary에서 개설되고 있는 ‘War and Peace: Jews, Christians, and Muslims'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Kenneth L. Vaux라는 윤리학 교수님인데 올해 70세인 노학자입니다. 특별히 K. Vaux 교수는 아버지 부시의 91년 이라크 침공이후 종교간 갈등으로 야기된 ‘Ethics and War (or Terrorism)’ 이슈에 있어 많은 저작을 발표하는 그 분야에 있어 손꼽히는 권위자입니다.

    혹, Jews, Christians, and Muslims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 수업시간에 다루는 text에 대한 소개를 잠시 합니다.

    Kenneth L. Vaux, Ethics and the Gulf War: Religion, Rhetoric, and Righteousness (Boulder, Colo.: Westview Press, 1992)

    __________________, Ethics and the War on Terrorism (Eugene, OR: Wipf and Stock Publishers. 2002)

    ____________________, Jew, Chritian, Muslim: faithful unification or fateful trifurcation? (Eugene, Or.: Wipf & Stock Publishers, 2003)

    ____________________, Ameirca in God's World (2009 가을 출판예정)


    Christopher Catherwood, MAKING WAR IN THE NAME OF GOD (New York: Citadel. 2007).

    Karen Armstrong, A History of God: the 4,000 Year Quest of Judaism, Christianity, and Islam (New York: Knopf, 1993)

    ________________, The battle for God (New Your: Alfred A. Knopf, 2000)



    K. Vaux 교수님의 책들은 다소 중복되는 내용이 없지않으나, 한 노학자가 특정분야에 있어 오랫동안 자신의 입장을 일관성을 가지고 전개하고 있다는 측면과 특정시기에 나타났던 역사적 맥락(ex. 91년 이라크 전쟁, 보스니아 내전, 9.11 테러)에 대한 친절한 해설과 다시 그 개별적 사건을 큰 틀안(Jew, Christian, and Muslim 관계)으로 합류시키고 있다는 면에서 돋보이는 성과라 생각됩니다.

    Christopher Catherwood와 Karen Armstrong의 책들은 미국 인문학계에서 Jew, Christian, and Muslim 문제가 등장할때마다 다루어지는 교과서적인 책들입니다. 역시 세 종교간의 계보학적 이해를 기본 바탕으로 냉전이후 구유고연방의 종교전쟁, 팔레스틴 문제, 9.11 테러까지 커다란 틀안에서 엮어냅니다.

    미국신학계에서도 Jew, Christian, and Muslim 문제는 가장 시급한 화두입니다. 각 신학교마다 이슬람과 유대교를 연구하는 과정을 두고 그 분야 학자를 초빙하고 학생들도 이슬람권에서 선발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재학하고 있는 Chicago Theological Seminary만 보아도 다음 학기 부터 유대교분야 석좌교수로 레비나스를 전공한 랍비를 초빙하여 유대교와의 대화를 강화하고 있으며, 옆에있는 LSTC(루터란 신학교)는 몇 년전부터 이슬람권(터키) 학생들을 박사과정에 받아 종교간 이해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과 유대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전무한 한국사회 속에서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발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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